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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 제 호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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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9.23 12:35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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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제13호
2014.10
인권은 상상력이다
www.laborparty.kr
값 원
10,000
인권은상상력이다
지금 +여기노동당 ■ 강원도에당협만들기 특집 기획 ■ 지금은마을라디오시대 쟁점토론 ■ 진보의혁신, 어떻게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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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이야기
“재즈로노래하는상처와연대” 재즈싱어송라이터이효정 이효정은최근에첫번째앨범《상처난손가락》 을발표 한재즈싱어송라이터다 미국뉴욕에서비정규노동자로아르 바이트를하던시절 그는잠시도앉아쉬지못하고내내서서 일해야하는사람들과함께있었다 그리고일을하다가손가 락을베어생간상처가아물틈도없이끊임없이물기를만져 야했던노동자의이야기를기억했다 상처난손가락 은그 렇게만들어진곡이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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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없이만들고싶었는데정치색이보인다고도해요 전혀 의도한바가아니에요 하고싶은대로했더니이런음반이나 왔어요 그때그때의내가표현된것이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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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개념은내겐너무가혹하다 너의처사는내겐너무모질다 혁명을꿈꾸기엔가진게많은나는 초연해지기에는가진게없는나는 이렇게길위에서는것밖에는도리가없네 저버리기엔무겁고함께하기엔힘겨운 그네들과함께 <파업> 이효정작사 / 이효정작곡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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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싱어송라이터 이효정 인터뷰 전문은 112~117쪽 <숨은 문화예술당원찾기>에서볼수있습니다.
미래에서온편지제13호
발행인 이용길 편집인 이장규 위원회 김건담김성현노정박권일장석준정정은정철수
조윤호최백순홍원표
교 열 노정정정은 디자인 고미숙
등록일 2013년 6월 11일 (등록번호영등포, 라00407) 발행일 2014년 9월 26일 주 소 서울영등포구국회대로 664 한흥빌딩 2층노동당 전 화 02) 6004-2006, 2007 팩 스 02) 6004-2001 이메일 laborzine@gmail.com 홈페이지 www.laborparty.kr 인 쇄 인천시계양구계산동 973-15 원일컴 가격 10,000원
미래에서 온 편지
‘ 미래에서 온 편지’ 는 영국의 사회주의 사상가이자 작가, 미술가인 윌리엄 모리스가 1891년에 낸 소설 제목
News 『News from Nowhere』 을 우리말로 의역한 것입니다. from Nowhere
nowhere는 ‘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 이라는 뜻입니다. ‘ 유토피아’ 라는 말의 원래 의미도 ‘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 이라고 하지요. 이제 노동당의 기관지에 ‘ 미래에서 온 편지’ 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한국 사회의 답답한 현재에 햇살을 들이는 미래의 틈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러고 보니 nowhere는 now+here(지금 여기)이기도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미래가 되기 위해, 이 편지를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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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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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띄우며 인권의 상상화를 그리다|<미래에서 온 편지>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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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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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 노동당 ■ 강원도당 영동당협 준비위 뜬다 강원도에 당협 만들기|노 정
특집 ■ 인권은 상상력이다 10
나는 왜‘만인에 의한 만인의 인권책임’ 을 비판하나|김형완
16
군 인권에 대한 상상력, 과연 가능하기나 한 걸까?|김숙경
21
인권, 연대를 넘어 주체의 보편화 모색해야|김주현
26
상상하고, 연대하고, 실천하라|종이봉투
31
더 이상‘여성’문제가 아니다|김고연주
37
발칙한 청소년을 상상하자|아리데
기획 ■“지금은 마을라디오 시대” 42
마을라디오 활동가들 한자리에 모여|나비
66
여성 진보정치 열전 6 |까칠한 매력의 부산 여자, 서영아 “후보가 제일 힘들다는 걸 이제 알았다” | 최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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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제13호
57
·목차
노동르포 콜트콜텍을 읽는 열두 개의 시선⑧
같은 운명을 지닌 다른 싸움 - 콜트이야기 2⃞|이선옥
쟁점토론 ■ 진보의 혁신, 어떻게 가능한가? 76
진보정당운동의 혁신은 진보정치 통일·재편으로부터|나경채
80
제3지대 창당? 이루어질 수 없는 제안|신석준
84
정책포럼 퇴직연금, 국민연금, 공무원연금|홍원표
90
동아시아 시민운동사‘노동자’ 로 자각하며 산다는 것|임경화
94
빨간 도시교통 이야기 사영화의 예쁜 얼굴,‘시민펀드’ |김상철
100
왼쪽에서 본 농업이야기 농촌총각|연승우
삶과 문화 104
오비환의 야담외전 변강쇠와 옹녀 - 19세기 하층민의 성과 삶 ②|오비환
108
오보로 보는 한국언론 사실 확인도 반론도 없다?|조윤호
110
숨은 문화예술 당원찾기 재즈 싱어송라이터 이효정
“재즈로 노래하는 상처와 연대” |나도원 118
불온한 서재 위험한 계급의 성장, 프레카리아트와 접속하라!|양솔규
122
노래의 꿈 어머니는|민정연
126
만화 파견의 품격?|공기
128
편지를 접으며 연애상담과 삼포세대|박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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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띄우며
인권의 상상화를 그리다 답답한 시국입니다. 세월호 특별법은 도무지 언제 통과될지 알 수 없고, 노동 현장에서는 현행 노동법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는 자본의 행태 때문에 투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또한 잇단 충격적 사건을 통해 군 비리와 인권 침해 문제가 터져 나와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리고 있습 니다. 물론 이런 소식들이 여성, 청소년, 장애인, 성소수자에게는 이미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 는 일상일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어쩌면 최근의 이러한 인권 논란이야말로 한국 민주주의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싶 습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 시작된 보수화는 단지 정치권이나 거대 경제 문제만이 아니 라, 우리 삶의 모든 곳에서 퇴행을 낳고 있습니다. 이게 무엇보다도 인권의 후퇴로 체감되고 있습니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애초에 87년 이후의 민주화 자체가 생활 현장의 인권 신장으 로까지 이어지지 못한 뼈저린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런 한계가 이제 와서 더욱 아프게 실감되 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인권 감수성을 다지는 것은 진보 정치가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제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미래에서 온 편지》이번호는‘인권’ 을 특집 주제로 택했습니다. 우선 인권이 무엇 을 뜻하는지부터 따져 보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권리’ 라는 개념과‘인권’ 은 무엇이 같 고 다른 것인지,‘인권’ 이라고 말할 때에는 어떤 수많은 깊은 의미들이 따라 붙는 것인지, 살 펴봅니다. 그러고 나서 군대, 청소년,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를 열쇳말로 해서 여러 각도로 인 권의 다양한 측면을 짚어봅니다. 사실 한 번의 특집으로 만족스럽게 정리하기에는 너무도 중 요하고 복잡한 쟁점입니다. 이번 특집을 계기로 이후 지속적으로 한국 사회의 숨은 인권 쟁점 들을 다뤄나갈 것을 다짐합니다.
10월호는 그밖에 당의 여러 지역조직들에서 새로운 활동 영역으로 주목하고 있는‘마을 라 디오’ 의 가능성과 방향을 논하는‘기획’ 을 마련했습니다. 또한 요즘 당 안팎에서 뜨거운 쟁점 이 돼 있는 진보 정치 재편 문제에 대해서도 논쟁의 마당을 열었습니다. 이후로도 더욱 뜨겁고 풍성한 토론의 장을 제공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2014년 9월 26일 <미래에서 온 편지> 편집팀 드림 4
구독자 모집 오늘 우리의 한 걸음이 길을 엽니다. 미래가 됩니다. 우리는 길을 내는 사람들입니다. 노동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 사람과 자연이 공존 가능한 지구생태계, 차별과 소외 넘어 모두가 평등한 세상, …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밑그림을 그려나가면서 없는 길을 만들고, 스스로 길이 됩니다. 그래서 노동당의 꿈은 곧 <미래에서 온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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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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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① 최종문 당원 ② 최현주 영동당협 준비위원장
지금+여기 노동당
강원도에 당협 만들기 강원도당 영동당협 준비위 뜬다 인터뷰·정리 노 정 편집실장 / 사진 정정은 편집부장
“화천은 당원이 한 명이에요. 철원도 한 명, 양양은 두 명.(웃음) 당원 한 명 만나러 세 시간을 차타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거리가 너무 멀어서 당원모임이 잘 안돼요.” 강원도당 박성기 사무국장의 전언이 아니라도, 지도만 펼쳐 보아도 강원도는 넓다. 태백과 영월, 평창 등지를 아우르면 이미 경기도 면적을 훌쩍 넘는다. 그에 비하면 서울이나 대도시 당협들은 그야말로 복 받은 사람들이다. 지난 8월 28일 저녁, 속초부터 삼척까지의 당원들이 모인 영동당협 준비위원회 창립총 회가 게스트하우스에서 1박2일로 개최됐다.
사고 당부 멍에 벗고 정상화 향해 한 걸음 “모임을 십여 차례 했어요. 5월부터 공식적인 모임만 다섯 번이에요. 본격적으로 6월부터 체계적인 당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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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홈플러스 파업 지지 1인시위 중인 최종문 당원(사진 : 영동당협(준)) ④ 총회의 안건을 확인하는 당원들 ⑤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단식에 함께한 당원들 (사진 : 영동당협(준))
사업도 시작했고 당원도 늘릴 계획이에요. 기본적으로 정당의 존재이유는 선거에 있고, 노동자 서민의 삶 을 달래주는 것이 진보정당의 과제인데, 우리가 이제까지 당 사업을 너무 못하지 않았나 싶어요.” 노동당 강원도당은 지난 당직 선거에서 단 한 명의 당협 위원장도 출마하지 않아 4개 당부 모두가 사고 당협이 되었다. 그 후 당의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그 와중에 영동당협 준비위원회가 재건을 향해 어 려운 한걸음을 뗀 것이다. 속초, 고성, 양양을 통틀어 한 명, 강릉 세 명, 동해삼척에 한 명의 운영위원을 뽑았다. 그리고 준비위원 장으로 김강호, 최경민, 최현주 당원이, 사무국장으로 한종일 당원이 선출됐다. 규약을 제정하고 하반기 사업계획도 세웠다. 일과 후 만나기 힘든 당원들과 점심모임을 추진한다고 한다. 컴퓨터 대리점을 운영하 는 당원 가게 한 쪽에 당협사무실도 마련했다. 그동안 운영해 온 강릉당협 밴드(모바일 커뮤니티)도 영동당 협(준) 밴드로 전환했다. 민주노총 강릉지역지부와 협의해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초청강연회 일정도 잡아놓은 상태다. 이날은 때마침 서울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 유민아빠 김영오 씨가 단식을 중단한 날이다. 영동당협 (준)은 이날 총회 자리에서 세월호 릴레이 단식을 결의하고 참가자 명단을 금세 만들어냈고, 다음날부터 차례로 단식에 돌입했다.
2016 총선, 지금부터 준비한다 영동당협은 오는 2016년 총선에 대비해 후보를 미리 발굴, 선거 준비에 돌입한다. 아니 벌써부터? 싶 지만 그들은 외려“빠른 게 아니라 늦다” 고 말한다. 지금+여기 노동당 7
“전국 통틀어 진보정당에서 가장 먼저 낸 총선후보 아닐까요? 든든한 후보를 중심으로 당 사업을 만들 어갈 예정입니다. 2년 동안 정말 알뜰하게 준비해서 단일후보로 내세워야지요. 지금 당이 이리저리 말이 많고 시끄러운데 거기 신경 쓰지 않고 지역에서는 늘 선거를 한다는 마음자세로 사업을 벌여나갈 생각입 니다.” 2016년 총선에 강릉에서 출마할 예정인 최종문 당원은 97년부터 20년 가까이 민주노총 상근자로 활동 해온 노동운동가다. 민주노총의 성장과 굴곡을 줄곧 지켜보아온 그는 최근의 선거들이‘민주노총 조직후 보다운’내용과 방식으로 치러지지 않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올해 지방선거 때 민주노총 강원본부에서 조직후보가 아홉 명 출마했어요. 그런데 노동당 이건수 강 원도당 위원장을 제외한 여덟 명은 모두 무소속 출마예요. 강릉에서는 조합원들 사이에 문제제기가 많았 어요. 이를 계기로 우리 조직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을 직접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고, 조직을 살려야겠 다는 게 출마를 결의한 첫 번째 계기예요.” 한 마디로 조합원들이 선거 때 찍을 수 있는 진보정당 후보, 노동자 정체성을 띤 후보가 필요하다는 것 이다. 민주노동당-진보신당의 분당, 그리고 불꽃놀이와도 같았던 통합진보당의 탄생과 재편까지 보아온 그들에게 선택지는 자연스럽게 하나로 굳혀졌다. 노동당의 이름으로 후보를 내고, 2년간 한발 한발 차근 차근 선거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가장 큰 과제는 당 인지도를 높이는 일이다. “노동당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고 노동당이라는 이름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가야지요. 당 사업이 일차적 이라고 생각해요. 방사능 등 유해물질 위치와 성폭력 우범지역 등을 세세히 체크한‘강릉안전지도’ 를만 들어 당원모집 리플렛으로 활용할 예정이고요. 체불이나 해고 등 상담사업을 특화시켜서 건설일용노동자 들을 위한 상담을 당의 이름으로 해보려고도 해요, 지역의 복지체계와 연계해서. 그리고 영동당협이 공식 적으로 창립하면 해방과 전쟁을 겪고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완전히 단절된 지역 진보운동의 역사 찾기, 뿌 리를 찾는 작업도 해볼 계획입니다.”
무너졌으면 다시 세운다 당부가 무너졌다고들 말한다. 기초조직이 부실하니 어떤 사업을 해도 힘이 실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맞다. 112개 지역당협 중 서른 곳 넘게 사고 당협이다. 위원장만 뽑고 사무국장이 없는 곳도 부지기수다. 당협 사무실이 있는 곳은 겨우 열한 군데다. 이런 와중에도 속초부터 삼척까지 동해안선을 따라 길쭉하게 당협을 만들었다. 노동자 중심성을 잃지 않고 지역에서 제대로 된 진보좌파 정당운동을 해보겠다며 뭉쳤다. 당을 떠난 사람들을 복당시키고, 당권 회복 운동도 자체적으로 조직하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당원모집에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인근 대학들 을 중심으로 젊은 당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입당 캠페인도 벌이려고 한다. 지역조직이 무너졌다는 것은 재건을 해야 한다는 근거이지 당의 기간을 흔드는 근거여선 안 된다고, 강원도 태백산맥 오른쪽으로 오종 종하니 모인 일군의 당원들이 몸으로 말한다. 8
특집
인권은 상상력이다 인정과 존중은 인권의 출발이다. 존중은 다른 것에 대한 존중이다. 근대 인 권이 절대권력에 대항하면서 자유를 신장시켰고, 현대 인권이 파시즘과의 투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고양시켰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자유와 민 주주의의 적은 다양성의 부정이다.
특집 / 인권은 상상력이다
인권 이해를 위한 몇 가지 논점
나는 왜‘만인에 의한 만인의 인권책임’ 을 비판하나 인정과 존중은 인권의 출발이다. 존중은 다른 것에 대한 존중이다. 근대 인권이 절대권력에 대항하면서 자유를 신장시켰고, 현대 인권이 파시즘과의 투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고양시켰 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적은 다양성의 부정이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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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의 낭만성 인권의 구체성을 추상화시켜 그 치열한 예각성(인권의 정치성-역사성과 사회성을 말한다)을 해체해버리고 마는 악습(!) 가운데 하나가 역지사지(易地思之), 즉‘입장 바꿔 생각하기’ 이다. 좋은 말이긴 하다.‘우리 모두 서로 존중(배려)합시다’ 라는 식의‘교양 있고 우아한 품성’ 을 갖는 것이 문제될 게 무엇이겠는가. 게 다가 홉스가 주장한 바대로 자연상태에서의 인간사회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이기성의 투쟁 현장이라면, 역지사지야말로 어찌 보면 인간존엄성 실현에 유일하고 결정적 해법이 될 터이다. 그런데 역지사지와 같 은 일종의 자책적 품성론(自責的 品性論)만으로는 숱한 인권의 현장이 갖는 살벌함을 이해하기에는 턱없 이 순진하고 낭만적이다. 아니 나아가 인권을 박제화시키는 것이기까지 하다. 역지사지는 권력관계를 사 상시킨다. 마치 프리드만이나 하이에크가 주장하는‘자유’ 와 같이 인권을 실체 없는 가상의 것으로 만든 다. 이런 왜곡은 멍청하게 순진하거나 교활하게 불온하다. “권리를 주장하는 만큼 책임도 져야 한다” (또는“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 )는 얘기는 곧“무분별한 권리주 장은 인정할 수 없다” 는 것으로, 권리에 관한 의식과 태도를 원천적으로 제약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권리 주장에 앞서 자기검열을 요구한다. 권리담론이 아닌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오늘날 중대한 인권침해 의 현장을 둘러보시라. 과연 무분별(무책임)한 이기성의 주장이 빚어낸 것들인가. 고문이나 불법구금이? 체벌이? 양극화와 성불평등이? 자살이? 온갖 차별들이? 세월호가? 인권은‘만인의 만인에 대한 교양 있 는 배려와 존중’ 에서 탄생되지도 않았거니와, 권리주체와 책무주체가 혼연일체가 되어(또는 뒤범벅이 되 어) 통제되고 제약되며 절제되는 구조 속에 있지도 않다. 인권은 태생부터 오 늘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권력을 향하 여 날카롭게 서 있다. 권력관계야말로 인권의 자궁이다. 그것이 국가의 공권
인권은 태생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권력을 향하여 날카롭게 서 있다. 권력관계야말 로 인권의 자궁이다.
력이든, 시장권력이든, 기득권에 대하 여 그 대척점에서 주장하고 요구하고 행동해 온 것이다. 인권 안에서는 책무주체와 권리주체가 확연하게 분리된다. 인권에서는 권리주체이면서 동시에 책무주체인 것은 없다. 유엔의 9대 인권관련 협약의 주어 가 누구로 되어 있는가? 모든 인류, 또는 개인인가? 당사국이다.
모든 권리가 인권은 아니다 인권을 둘러싼 또 하나의 착란지점은‘권리’ 와‘인권’ 을 동일시하거나, 같은 층위에서 다루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에서 권리란,“어떤 일을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처리하거나 타인에 대하여 당연히 주장하고 요 구할 수 있는 자격이나 힘” , 또는“특정의 이익을 주장하거나 누리기 위해 그의 의사를 관철할 수 있는 법 특집 인권은 상상력이다 11
률상의 능력” 을 말한다. 그런데 이 같은 해석은 최소한 무엇이‘당연’ 한지, 또‘자격’ 이나‘힘’ 은 누구로부 터 부여 받아 누구를 향하는지,‘의사를 관철할 수’없는 주체에겐 권리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반 드시 법률로써 뒷받침되어야만 비로소 권리로서 인정되는지, 오로지 인간에게만 한정되는지 등등에 대한 논란을 피할 수 없게 한다. 요컨대 권리는 이익, 권익, 이권, 이해관계와 별반 다르지 않은 개념이랄 수 있 다. 권리는 그 자체로서 정당성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권리주체와 책무주체의 경계가 불명확하거나 또 중요하게 간주되지도 않는다. 인류의 역사는 권리 가운데 아주 특별한 권리를 인권이라고 명명하였다. 모든 인권은 권리이지만, 모 든 권리가 인권은 아니다. 게다가 인권은 단순히‘인간의 권리’ 라고 축자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고유한 의미가 있다. 특정한 역사/사회의 시대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저 추상화된 초역사적이고 초사회적인 인간의 권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적인 권리가 인권의 범주에 포착되려면 적어도 세 가지 의 전제가 교집합으로 성립되어야 한다. 첫째 규범적 정당성. 둘째 권력관계. 셋째 권리주체와 책무주체 관계. 이 세 가지의 전제를 사상시킨 채 모든 권리를 인권으로 치환시키면 인권담론은 결국 형이상학적 불가지론에 빠지고 만다. 인권의 역사는 존엄성과 박애를 향한, 자유 및 평등을 위한 투쟁으로 점철됐다 ‘정의’ ( 가 빠진 점에 주목하시라!). 그런데 근대혁명이 발발한 지 삼백년이 지난 오늘에도 인권이‘선험적인
것’ 이라는 주장이 적지 않다. 인권의 보편성과 자연권을 이렇게 굴절시킨다. 인간존엄성이 어디로부터 와 서 어디로 가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고? 그저 추상적인 도덕 담론일 뿐이라고? 인권은 묻는다. 대체 누가 누구를 존중하라는 것이냐? 존중의 주체는 누구이고 그 실현의 책무는 누구에게 있는가? 세계인권 선언 전문 중의“폭정과 억압” 의 장본인은 과연 누구였나? 다시 말하거니와 인권(Human Rights)은 권리(rights) 가운데서도 매우 특별한 권리이다. 일반적으로 권 리는 의무를 그림자처럼 동반한다. 책임의 한계 내에서만 권리가 인정된다. 권리의 주체가 곧 책무의 주 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권은 일반권
인권(Human Rights)은 권리(rights) 가운데서 도 매우 특별한 권리이다. 모든 권리침해가 곧 인권침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리와는 달리 권리의 주체자와 권리실현 의 책무자를 나누고,‘모든 사람’ 을주 체로 선언하는 한편, 그 보호와 증진의 책무는 국가(권력)에게 부과한다. 국가 가 국민주권 실현의 도구라는 국민국가
의 정체성도 여기서 비롯된다. 근대 이후 인권의 주창은 일단 시민권 수준에서 제도화되었는데, 시민권의 구조에서, 헌법의 명문규정을 빌어 표현하면,“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 며,“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이것이“개인이 가 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 인 바,“국가는 (이를) 확인하고 보장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2항 및 제10조). 돌이켜볼 때 전쟁과 대량학살 등 중대한 인권침해의 당사자가 바로 국가권력이었다는 역사적 경
험은 이 같은 사실을 입증한다(린드그렌의 삐삐롱스타킹을 기억하시라!). 따라서 모든 권리침해가 곧 인권침 12
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인본주의·인도주의적 실천과도 다르다 인본주의(humanism)나 인도주의(humanitarianism)에는 인권만이 갖고 있는‘권력관계 속의 권리주체 와 책무주체’ 라는 관점이 결여되어있다. 인본주의나 인도주의 관점에서는 권력관계나 권리/책무주체 따 위는 주요 관심사항이 아니다. 기아극복이나 생명의 유지와 같이 인간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수준의 존엄 성 유지를 위해 당장 긴급하고도 절박한 구호와 지원은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동정심이나 시혜, 선량함이라는 매우 불안정하고 변덕스러운 감상에 기댈 때 명백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 같은 긴급상황이 초래된 서사와 맥락은 은폐되기 십상이다. 인본주의적 실천이나 인도주 의적 실천이 인권적 실천과 구별되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인권의 역사는 자유, 평등, 박애를 중심으로 한 인간 존엄성 실현을 위한 투쟁으로 점철됐다. 자칫 인권을 자선, 시혜, 부조, 선행, 또는 개인 들의 훈고적인 도덕담론 정도로 치부한다면 인간존엄성이 어디로부터 어떻게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 구 체성이 모호해진다. 인권은 단지 추상적인 도덕담론이 아니다. 인권적 개입이란, 보호대상(범주)을 외부에 설정하고(=타자화) 또 다른 타자의 개입과 영향에 의해 대상을 지원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주체 의 자력화를 토대로 규범, 제도, 정책을 재구성하는 것이야말로 인권의 핵심 기둥이다. 인권을 제도화하는 이유는 물론 인권보호와 증진을 도모하기 위해서이다. 인권보호(protection)는 인간 존엄성을 유지, 보존하는 데 발생해서는 안 될 인권침해에 대한 대응이다. 대개 사후적인 조처를 강구하 며 국가의 소극적 책무를 묻는다. 카렐 바작이 말하는 바, 1세대 인권인 정치적, 시민적 권리(자유권)는 국 가의 인권보호 책무를 강조하면서 확립됐다. 개인의 안전과 자유를 지향하며 인권침해의 현장에서 더 이 상의 침해 행위를 중지시키고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사법적 조치가 인권 보장의 하나로 자리매김 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세계인권선언에서 천명한 대로“사람들이 폭정과 억압에 대항하는 마지막 수단으로서 반란에 호소하도록 강요받지 않으려면, 인권이 법의 지배에 의해 보 호됨이 필수적” 이다. 법치주의는‘인권보호’ 의 기본적인 실천방법이다. 주권자인 인민(국민)이 법을 통해 항상적으로 국가권력을 지배, 통제하는 것이기에 민주주의의 뿌리를 이룬다. 그러나 권력은 언제나 스스 로 오/남용되고자 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권력에 의한 개인의 안전위협과 자유의 훼손은 법치주의에 의한 방어에도 불구하고 다반사로 저질러진다. 그러나 이미 저질러진 일을 수습하는 것보다는 가능하다 면 인권침해 예방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 최선이다. 인권침해에 대한 사후적인 수습에만 급급하는 것이 아 니라 선제적으로 인권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여, 인권침해에 대한 예방적, 능동적인 대응을 모색하는 것 이다. 이것을 인권증진(promotion)이라고 하며, 이의 실현을 위해 국가의 적극적 책무를 묻는다. 바작에 의해 2세대 인권이라고 불리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사회권)가 여기에 해당된다. 따지고 보면 사회 권은 자유권과 달리 단지 개인들의 이익(또는 자유)을 증대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망과 공 특집 인권은 상상력이다 13
동체에 의해 개인들간의 안전망(따라서 협동과 연대를 통한 박애의 실현은 사회권의 증진 없인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을 도모하는 것이다.
1993년 세계인권대회에서 채택한 비엔나선언은 민주주의와 개발, 그리고 인권 및 기본적 자유의 존중 은 상호불가분적이며, 상호의존적이고, 상호보완적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근대 이후 확립된 국민국가체 제에서는 시민권의 발전을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으론 모든 인간이라는 보편성보다는, 국경의 테두리 안 에서만 권리의 주체를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형용모순인 셈이다. 특히 선거권, 피선거권, 공무담임 권, 참정권, 이주권, 노동권, 사회보장서비스 부분에서의 국적에 따른 배제는 그야말로‘보편화’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한나 아랜트는 인권은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상정하지만, 인권보호의 주체가 국가가 될 때 인권이 시민권의 범주에 갇혀버리게 됨을 지적한다『전체주의의 ( 길』 , 한나 아랜트, 한길사). 그런데 역설적이 게도 GATT, IMF, WTO, FTA로 이어지
국제사회의 유기적 연관성을 고려할 때 인권 보호의 책무가 일국 내에 국한될 수 없게 되
는 세계체제의 확대는 인권의 상황을 국 제적인 층위로 확대시키고 있다. 국제사 회의 유기적 연관성을 고려할 때 인권보
었다. 국내적 책무뿐만 아니라 국제적 책무까
호의 책무가 일국 내에 국한될 수 없게
지 수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되었다. 국내적 책무뿐만 아니라 국제적 책무까지 수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러나 본질적으로 국가는 (자신의) 책무의 수행보다는 (국민의) 책무의 강요를 원하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 에 시민권은커녕 (헌법적) 기본권조차도 다반사로 등한히 한다. 적지 않은 법률가(법학자)들이 헌법에 대한 축소해석을 통해 인권을 기본권, 또는 기껏해야 근대 법치주의 수준으로 묶어두려는 시도는 인권의 이러 한 원심력(상향평준화 관성)을 부정하려는 데서 비롯된다.
다름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출발이다 존중은 다른 것에 대한 존중이다. 나와 다른 것, 익숙하지 않은 것, 나아가 불편한 것에 대한 인정과 존 중이 인권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인류가 다름을 인정하지 않아 비극을 초래한 경험은 허다하다. 근대 인 권이 절대권력에 대항하면서 자유를 신장시켰고, 현대 인권이 파시즘과의 투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고양 시켰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적은 다양성의 부정이다. 적대, 배제, 폭력, 강압 (요), 증오, 규탄, 정복은 물론, 차별, 일방, 획일은 인권의 언어가 아니다. 나아가 배려, 시혜나 심판, 정의 도 인권의 언어가 아니다. 인권은 인간의 행위를‘선악의 결과론적 관점’ 보다‘결핍의 과정적 관점’ 에서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악 은 단지 결과일 뿐, 어떤 악도 반드시 그 서사와 맥락이 있기 마련이다(레미제라블을 상기하시라!). 악은 타도 와 발본색원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다. 이러한 가치관의 전환은 선순환적 지속가능성을 불러온 14
다. 인권실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정과 절차에 주목하여야 한다. 인권침해행위 를 결핍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가해/피해자가 상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선/악을 양 축으로 하는 적대 적 모순관계가 아니라‘결핍’ 이라는 공통분모를 찾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결핍이 해소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곧 인권침해 예방이자 증진이다. 결핍의 해소를 통해 가해자 를 배제하지 않고, 인권증진의 한 파트 너로 초대하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인권의 지도(Map)에는 인권옹호자나 피해자뿐
인권의 지도(Map)에는 인권옹호자나
만 아니라 그만큼의 가(침)해자나 이해관계자가
피해자뿐만 아니라 그만큼의 가(침)해 자나 이해관계자가 존재한다. 네 주체 의 참여가 균형 있게 이뤄질 때 인권실
존재한다. 네 주체의 참여가 균형 있게 이뤄질 때 인권실현의 지속가능성이 실현된다.
현의 지속가능성이 실현된다. 그런데 가해=악으로 간주되는 순간 인권증진구도에서 가해자는 배제됨으로써 한 축의 역량을 상실한다. 인권상 황이 심각하게 역진하고 열악하다 해서 규탄과 투쟁 일변도로 대응하는 것은 인권의 정당성은 확보할지 언정 인권의 주류화를 도모하지는 못한다. 새는 한편의 날개로만 나는 것도 아니고, 또 양 날개만으로 나 는 것도 아니다. 새는 온몸으로 난다. 그 몸 안에는 똥도 있고, 세균과 바이러스도 있다. 문제는 멸균이 아 니라 주도성과 균형이다.
특집 인권은 상상력이다 15
(사진 : KBS)
특집 / 인권은 상상력이다
군 인권에 대한 상상력, 과연 가능하기나 한 걸까? 나의 하루는 전화벨 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군대에 아들을, 형제를, 애인을, 그도 아니면 자신을 군대에 (어쩔 수 없이) 부려놓고 노심 초사하는 사람들의 호소가 수화기를 타고 내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김숙경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경기 고양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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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내가 이런 글을 쓰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나는 여성이고 군에 대해서 관심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는 빛나는 태양이 되고 싶었고 그래서 시골보다는 화려한 도시를 동경했던 나였다. 하지만 터무니없이 야심만만했던 내게 정작 사회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들이야 나름의 기대가 있었다 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지역사회나 한국사회는 내게 아무런 기대도 요구도 하지 않았다. 지역사회와 한국사회… 사실 그리 멀리 갈 필요도 없다. 그래도 딸이라고 제사상 밥 상머리에 평등하게 앉는 걸 허락해주던 우리 집안에서조차도 나를 비롯한 딸들에게는 아무런 기대도 하 지 않았다. 남성들만의 커뮤니티가 있었을 뿐이었다. 사실 나는 그곳에 들어가고 싶었다. 딸도 아들 못지 않게 집안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나는 여성에게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은 한국사회가 오히려 고마울 따 름이다. 기대가 없었기에 그만큼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기대가 없으면 의무도 없 다! 나는 실정법상의 투표권은 있다 해도 진정한 의미의 시민권은 없는 여성이기 때문에 국방의무로부터 일찌감치 배제되었고 그래서 국방과 관련된 모든 것들에서 자유롭기만 하다. 더구나 나름 여성주의자요 평화주의자라고 생각했기에 더욱 군과 무관하다고 여겼다. 세상에 신경쓸 일이 많은데 나와 아무런 관계 없는 군대에까지 왜 관심을 가져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나는 어찌어찌 하다보니 군인권센터에서 군 인 권 향상을 위해 활동하는 NGO 활동가가 되어 버렸다.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현실 나의 하루는 전화벨 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군대에 아들을, 형제를, 애인을, 그도 아니면 자신을 군대 에 (어쩔 수 없이) 부려놓고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의 호소가 수화기를 타고 내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작은 웅얼거림에서부터 애끓는 호소가 내 심장을 후벼 파기도 한다. 일이 힘들어 그만 두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지원하는 사건의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을 떠올리면 다짐이 무뎌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들의 뺨을 얼룩지게 하던 눈물방울들. 그들의 몸을 쥐어짜게 하던 고통어린 비명들. 나는 여기서 지금껏 살아오면서 봤던 정신병에 걸린 사람들을 합친 수보다 훨씬 많은 정신병에 걸린 군인들을 보고 있 다.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구타와 입에 담을 수 없는 폭력적 행위들을 보고 있다. 영혼을 어둑한 심연의 나락으로 빠트릴 법한 욕설들
나는 여기서 지금껏 살아오면서 봤던 정신 병에 걸린 사람들을 합친 수보다 훨씬 많은 정신병에 걸린 군인들을 보고 있다.
을 보고 있다. 도저히 치유될 수 없는 상흔을 안겨주는 성추행들을 보고 있다. 나아가 다쳐도 나 몰라라 하는 군 지휘관들, 세상은 첨단을 걷고 있어도 오래된 기억에서나 등장할법한 조악한 부대시설들과 물품, 식사들, 사건이 터져도 지휘관 보호에만 급급 한 헌병대와 군검찰, 그리고 군사법원들. 당장 내일 들통 나더라도 우선 거짓으로 뒤덮인 변명부터 하고 특집 인권은 상상력이다 17
보는 국방부의 높은신 분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군대의 본질은 아닐 것이다. 가끔씩은 고귀한 사명감 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물론이요 부하들을 위해 뛰는 군인들을 보기도 하고, 지휘관이나 선임병 들을 잘 만나 평탄하게 군 생활을 했다는 이들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드물다는 데 문제가 있다. 소박하나마 천직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군인들이 하나 둘 포기하고 나가떨어지는 데 문제 가 있다. 전 세계인들이 생중계로 지켜보는 가운데 무수히 많은 꽃들이 스러져 가도 구조의 시늉조차 하지 않는 국가를 지닌, 이 한국 땅에서 군 생활이 평탄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가당치 않은 꿈일지도 모른다. 그 런 우리네 현실을 곧이곧대로 인정한다 해도 악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군대에서 인권을 얘기하고 꿈을 꾸는 것이 죄는 아니리라. 한 번쯤은 인권에 대한 상상도를 그려보는 것도 무력한 우리네 삶에 위안이 되 어 줄지도 모른다.
‘다른 현실’ 에 대한 상상력을 펼쳐보자 세월호에 이어 국민들을 경악에 떨게 했던 윤 일병 사건을 놓고 군 인권에 대한 상상력을 펼쳐보자. 지 금과는 달리 군 인권이 보장되는 상황에서 윤 일병 사건이 발생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우선 윤 일 병이 구타당하는 것을 본 병사들의 상황
지금과는 달리 군 인권이 보장되는 상황에서 윤 일병 사건이 발생했다면 과연 어떻게 되 었을까? 우선 윤 일병이 구타당하는 것을 본 병사들의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지금처럼 마음의 편지나 소원수리함에 피해 사실을 적어 넣으면서 누가 보지는 않을까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또 편지를 쓴 범인(?) 색출작 업 때문에 정체가 까발려지고 조직의 배 신자로 찍히는 일 따위도 없을 것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자유롭게, 눈치 보지 않고 지휘관들에게 구타사실을 보고하고 시정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 렇다면 윤 일병은? 적어도 맞아서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윤 일병이 구타와 가혹행위로 죽었다 치 자. 그렇더라도 지금처럼 사단장(혹은 군단장)의 지휘를 받는 헌병대가 아니라, 상부로부터 독립된 헌병대 가 기민하게 움직였을 것이다. 그래서 수사를 하고서도 냉동식품을 먹다 기도가 막혀서 죽었다는 거짓 발 표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유가족이 현장검증에 참여하게 해달라고 애원하지도, 유가족이 현장 검증을 거부했다는 거짓 발표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전 수사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현장검증 날짜도 유가족들과 상의해서 잡았을 것이다. 수사결과 가해자들의 혐의가 밝혀지면 검찰관은 허울뿐인 수사를 하고 기소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이를 사단장(혹은 군단장)에게 보고하고 허락을 받지는 않았을 것 이다. 군사법원 또한 사단장(혹은 군단장)이 재판장을 구성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군정으로부터 독립된 검 찰관과 군사법원이 당당하게 제 역할을 다했을 것이다. 어쩌면 국민참여형 군사재판을 열 수 있었을지도 18
모른다. 아니, 군사법원도, 군형법도 없이 일반 민간법정에서 재판을 받으면 된다. 군사법원에서 지휘관 이라고 보호받거나 하급자라고 차별받는 일 없이 일반법정에서 공정하게 재판을 받으면 된다. 물론 민간 법정이 공정하다고 확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적어도 일반법원이라면, 사단장(혹은 군단장)의 통제 아래 법적 지식도 없는 영관급 장교가 지휘관이 임명했다고 재판장이 되지는 않는다. 그리
고 자격 없는 재판장이 한 표를 행사하고 선고 후에도 감경권을 지니는 초월적 지위를 누리지도 않는다. 적어도 상급자의 지배가 아닌 법의 지배를 받는다. 법의 지배라는 법원의 존재 근거마저 부정하는 곳이 바로 한국의 군사법원인 것이다.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데서부터 상상해야 상상력을 조금 더 펼쳐보자. 군인이 되어 받는 월급으로는 보통 체크카드인 나라사랑카드로 필요한 물 품을 구입한다. 하지만 군인월급, 보다 정확히 이야기 하면 병사월급은 월급이라고 할 수도 없는 푼돈에 불과해서 외부에 있는 가족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을 수 없다. 병사들 월급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는 이 야기다. 적어도 최저임금 수준은 지급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22사단 총기난사 사건에서 보았듯이 응급환 자들이 발생했는데도 응급헬기가 없어서 우송이 늦어지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 연대 혹은 사단 별로 응급 헬기를 갖추고 신속하게 응급환자를 우송해야 한다. 응급환자가 우송되면 질 좋은 장비와 우수한 군의관 들이 협진하여 적절하고도 신속한 치료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낮은 월급과 처우로는 제 대로 군의관을 확보할 수 없다. 수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나 군의관을 확보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부 분은 민간병원도 함께 가지 않으면 안 될 부분이다. 의료행위 자체가 부를 축적하는 수단이 되는 한국 의 료 현실에서는 성형외과 등 돈이 되는 의사만 배출되고 정작 필요한 내과와 외과, 응급의학과 등은 의사 수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벌써 그런 조짐을 보인지가 꽤 됐다. 민간병원이 이러할진대 군병원은? 의 료민영화가 아니라 민간병원을 제대로 돌아가게 살리고 이를 바탕으로 군병원도 첨단 장비와 우수한 전 문의료진을 확보하고, 지역 단위로 민간병원과 협력관계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 군병원 시스템 속에 갇혀서 치료 한 번 제대로 받지도 못하 고, 피곤에 절은 군의관의 짜증 섞인 목
무엇보다 국방감독관제도를 도입해서 군이 외
소리와 냉대를 받지도 않을 것이다.
부의 통제와 감시를 받을 필요가 있다. 군대의
무엇보다 국방감독관제도를 도입해 서 군이 외부의 통제와 감시를 받을 필 요가 있다. 우리 군의 가장 근본적이면
견제와 감시의 요체인 국방감독관을 도입해보 면 군은 어떻게 변할까?
서도 고질적인 문제가 과거 군사독재 정부가 부여한 무소불위의, 기밀유지라는 허울로 신성불가침 권력을 부여받았다는 데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권력은 소수의 지휘관들에게만 해당되어서 일반 병사들에게는 이중의 고통만 안겨다 주는 것이 특집 인권은 상상력이다 19
다. 아무리 훌륭한 제도라 해도 외부의 견제와 감시가 없으면 그 자체로 부패하거나 정체되고 만다. 하물 며 한국의 군대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군대의 견제와 감시의 요체인 국방감독관을 도입해보면 군은 어 떻게 변할까? 국방감독관은 군인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국방에 대한 의회의 통제권을 보좌하는 것을 기본 임무로 한다. 군인의 기본권은 여타 시민들과 동등하게 보장된다는,“제복을 입은 시민” 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즉 국방감독관제도는 군인의 기본권과 민주적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에서 출 발해야 한다. 왜 이런 감독관제도가 군대에서 요구되는가? 군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집단으로서 명령체 계에 의해 움직일 수밖에 없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특성들은 군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할 여지가 다 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방감독관은 군인의 기본권이 침해되었다는(혹은 침해 가능성이 있다는) 정황이 포착되면, 조사권을 발동한다. 그러기 위해서 마음의 편지나 소원수리함 따위가 아니라 군인의 진정권과 진정인의 신변이 보장되었다. 그리고 국방감독관은 군인의 진정을 접수하면 365일 언제든 불시에 부대를 방문해서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보장된다. 실효성 있는 조사를 위해서 정보청구권과 열람권 또한 보장되 었다. 그리고 조사한 것을 바탕으로 권고를 하거나 시정명령을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국방감독관은 장관급 에 준하는 지위에 있다. 하지만 국방감독관이 군과 결탁해서 군인의 기본권 보호라는 자신의 임무를 무시 한 채 권력만 탐한다면? 이런 점에서 국방감독관 또한 견제를 받는다. 의회의 견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국 민의 견제와 감시를 받는다. 국방감독관을 국민투표로 선출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국방감독관이 군대 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다 막을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신속하고 공정하게 위기개입은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면 군인의 기본권도 보장되고 인권 또한 향상된다.
상상력 없음을 어찌할 것인가 갓난아기의 엄마였을 때는 갓난아기만 보이더니 이제는 군의 문제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난 지금도 영 궁금하다. 여성인 내가 군대 간 아들 혹은 본인의 문제로 상담을 하는 것에는 아무런 토를 달 지 않던 사람들이, 군대를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치 무면허 의사가 수술한 것처럼 우리 센터 소장에게 독설을 퍼부어 대는 걸 보면. 신검 요청조차 받은 적이 없는 여성인 내가 군 문제를 상담하는 것은 괜찮다 는 것일까? 상담은 서비스직이니 여성에게 적합한 직업이라서 군대에서 배제된 내가 상담하는 것은 괜찮 고, 책임자인 소장은 남성이라서 자격을 엄격히 요구해야 하니까 용서가 안 된다는 것일까? 이렇든 저렇 든 저급한 야유와 독설을 퍼붓는 그들과, 그들의 악다구니를 조장하고 기생하는 군 당국과 국방부의‘나, 상상력 없음’ 을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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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참세상)
특집 / 인권은 상상력이다
인권, 연대를 넘어 주체의 보편화 모색해야 앞으로의 인권운동은 사회적 이슈의 해결을 통해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개인의 각성을 통한 그 주변 환경의 변화와 그것의 확장으 로 사회변혁을 추동해가는 아래로부터의 대중 운동이어야 한다.
김주현 서울시당 장애인위원회(준) 위원장, 광진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특집 인권은 상상력이다 21
장애인 : 연대의 결과로 창조된 신인류 고대 노예국가에서는 인간은 왕과 귀족들에 한정되어 있고, 나머지는 그들의 소유물에 불과했다. 인간 의 형상을 하고 인간처럼 행동한다 하더라도 권력을 갖지 못하면 인간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았다. 권력을 가진 소수 인간들의 필요에 의해 착취당하고 죽임을 당하거나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이 법적으로나 도덕 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중세시대에는 그 권력이 지방의 영주들과 그를 따르는 기사들로 분산되었고. 산업혁명 이후 근대 자본주의에서는 자본가들로 조금 더 분산되기에 이른다. 인간의 범주는 이 권력의 분산에 따라 점차 확장되어왔다. 왕과 귀족의 소유물이었던 노예들은 영주와 기사들과의 계약관계에 묶인 농노들로 왕과 귀족체제로부터 분산된 권력의 극히 일부를 부여받게 되며, 자본주의로 넘어오면서부터는 노동자라는 조직된 계급을 형성하게 되면서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권리에 대해 자각하고 이를 위해 투쟁하기 시작한다. 이후 이 권력투쟁은 자본주의사회 노동자들 뿐 아니라 백인중심사회에서의 유색인종, 남성중심사회에 서의 여성, 이성애중심사회의 동성애자, 민족/국가주의사회에서의 이주민, 나이중심사회에서의 청소년 등의 다원화된 투쟁으로 확산된다. 비장애인중심사회에서의 장애인의 투쟁도 이 다원화된 권력투쟁의 하 나라 볼 수 있다. 그런데 노동자, 여성, 동성애자, 이주민, 청소년 등의 다른 계급, 혹은 계층은‘기존에 존재해왔던’사 람들이 스스로 또는 다른 계급계층과의 관계에 의한 각성을 통해‘인간화’ 되는 반면 장애인은 같은 인간 화 과정을 겪지만‘다른 존재양식’ 을 띤다. 자연계의 적자생존법칙에 의하면 손상이 있는 개체는 포식자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환경에 적응하 지 못해 결국 살아남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은 함께 살고자하는 연대의 본성과 그 연대를 통한 인간적 진 화로 축적된 의학기술의 결합으로, 살아남지 못할 손상된 개체들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장애인은 인간적 진화로 각성되어 인간화
인간은 함께 살고자하는 연대의 본성과 그 연대를 통한 인간적 진화로 축적된 의학기술 의 결합으로, 살아남지 못할 손상된 개체들 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된 존재이기 전에 그 인간적 진화, 즉 연 대의 결과로 새로 나타난 일종의 신인류 (?)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연대의 결과로 신인 류인 장애인을 창조해냈지만, 그들에게 인간의 자격을 부여하지는 않았다. 인간
의 자격, 즉 인권은 누가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각성에 의한 투쟁으로 쟁 취하는 것이고, 그것을 완성시키는 힘이 사회적 본능인 연대인 것이다. 장애인의 인권 향상, 즉 인간화 과 정이 시작된 건 반세기 정도에 불과하며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지는 30여 년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투쟁은 그 연대의 힘이 제대로 발현되지 않은 상태로 당사자들이 중심에서 연대의 기본적 조건들을 만들 22
었을 뿐이다.
자립생활운동 1 : 장애인의 운동에서 보편적 사회운동으로 이제 장애인운동은 노동운동 및 다른 여러 사회운동들과 함께 인간화 투쟁을 위한 연대의 힘을 발휘할 때다. 현재 장애인운동의 핵심 키워드인‘자립생활운동’ 은 비장애인중심의 지역사회에서 장애인들에게 주어지지 않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조건들을 쟁취하는 과정이었다. 따라서 이는 장애인 인권운동의 지 역화된 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 나 이러한 자립생활운동을 이루는 요 소들은 장애인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자립생활운동은 엄밀히 이야기하 면 주체 중심의 운동이 아니라 의제 중심의 운동이고 그것이 장애인들에 게 가장 시급한 인권의 문제이기 때 문에 장애인들이 자기운동으로 시작 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장애인 이라는 개념을 배제하고도 자립생활
진보신당(현 노동당)의 장애인 자립생활을 위한 세바퀴 공약 (사진 : 노동당)
운동을 충분히 개념화할 수 있기 때 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자립생활운동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한 개인이 그가 속한 공동체나 지역사회에서 자기결정권과 선택권, 구성원으로서의 가치와 역할을 존 중받으며 주체적으로 일상을 영유할 수 있도록 하는 제반 활동’ 이 정의를 토대로 자립생활 운동의 주체를 다시 규정하자면‘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이 박탈당하고 구성 원으로서 가치와 역할을 부정당해 지역사회에서 일상을 영유함에 있어 타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들’ 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나열하자면 장애인을 포함해 아동, 청소년, 노인, 홈리스, 성적소수 자, 이주민 등으로 차별금지와 인권의 영역과 거의 일치하게 된다. 더구나 경제사정의 악화로 인해 취업 이 어려워지게 되면서 30~40대가 되어서도 스스로 자립하지 못하고 가족구성원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 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 또한 가족 내에서 경제적인 자기결정 및 선택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일 정정도의 가치와 역할을 부정당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나는 자립생활운동이 더 이상 장애인운동의 영역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미국이나 일본의 장애인자립생활운동이 프로그램과 서비스 중심으로 변질되고 더 이상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지 못 하게 된 이유도 나는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립생활운동은 장애인만의 운동도, 사회적 소수자(약자)들 특집 인권은 상상력이다 23
만의 운동도 아니라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는 전반적인 사회운동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그 중심에 장애인이 배치되어야 하지만 말이다. 물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중심의 장애인운동도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다
자립생활운동의 주체를 앞서 이야기한 여러
양한 연대활동을 모색하고 있지만, 당사
계층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하여 단순한
자주의에 경도된‘장애인’ 이라는 주체의
연대가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운동으로 확장
한계에 의해 연대 상대의 운동내용에 충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히 공감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일부 활 동가의 자발적 연대 수준에 머무르고 있 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이의 해결방안으
로, 자립생활운동의 주체를 앞서 이야기한 여러 계층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하여 단순한 연대가 아니 라 전반적인 사회운동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립생활운동 2 : 지역사회 공동체 중심의 사회변혁운동 또한 위의 정의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운동의 공간적 범위를 규정하는‘지역사회’혹은‘공동체’ 다. 지 금까지의 인권운동은 개별사례들을 사회적으로 이슈화시켜 제도와 인식을 변화시키는 방식이 주를 이뤄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해당 이슈에 대한 사회적인 당위성은 확보되었으나 당사자의 삶을 실질적 으로 변화시키는 것에는 일정정도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담론적 공감대는 형성되었으나 이것이 생활화되지는 못했다는 이야기다. 이는 장애인들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인권운동 영역의 모든 주체들 과 이슈에 있어서 마찬가지의 문제다. 앞으로의 인권운동은 사회적 이슈의 해결을 통해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개인의 각성 을 통한 그 주변 환경의 변화와 그것의 확장으로 사회변혁을 추동해가는 아래로부터의 대중 운동이어야 한다. 이웃에게 존재를 각인시키고, 문제를 드러내며, 함께 해결하고 함께 살아가자 손을 내밀어야 한다. 국 가차원의 선언적인 이슈파이팅보다는 가까이에서 매일 부대끼는 우리의 이웃들과 일상을 함께하면서 서 로에 대해 이해하고 넘침과 부족함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동네 곳곳에 만들어져야 한다. 그것이 민중의 집이건, 거점공간이건, 마을카페건, 어떤 이름이건 이웃과 함께 일상적으로 인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주 민들의 아지트(?)가 필요하다. 그 안에서 사람과 사람, 이야기와 이야기가 만나 정책이 만들어지고, 그 정 책을 중심으로 대안적인 정치가 성장해야 한다. 그것이 진보정치의 청사진이어야 한다. 지난 지방선거에 출마해 제기한 세 가지 키워드‘인권, 정책, 공동체’ 는 그런 나의 신념을 함축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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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생활센터 : 지역주민 모두가 인권의 주체가 되는 아지트 지금 내가 활동하고 있는 자립생활센터도 그런 공간의 하나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자 립생활센터는 그런 이야기의 공간이 아니라 사업을 계획하고 집행하는 사무공간의 기능이 더 큰 것이 현 실이다. 정부와 지자체, 혹은 공적 재단을 통한 지원으로 사업을 진행하다보니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하는 강박에 의해 정작 해야 할 역할을 줄여나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공간과 인력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공적 자원과 그런 공적 자원을 얻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자율성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줄여가야 할 지가 눈앞에 놓인 가장 큰 해결과제 중 하나다. 해결책은 개인의 후원을 획기적으로 조직하거나 정부나 지자체의 최소한의 간섭을 전제로 한 공적 자원의 지원 확충이다. (기업의 후원은 사회공헌이라 하더라도 해 당기업의 사익과 분리하기 어려우므로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없다.)
어떠한 방식을 택하든 연대가 필요하다. 개인 후원의 조직은 물론이고 공적 자원 확보를 위한 정부나 지자체와의 협상 및 투쟁에서도 연대의 힘은 필수적인 요소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느껴지는‘연대’ 의의 미는 주체가 아닌 사람들의 참여행동이기 때문에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내가 제안하는 것이 이 주체가 아닌 사람들을 주체로 포섭해 자립생활운동을 당사자중심의 부문운 동에서 보편적 사회운동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확장된 주체들의 지원으로 유지
이렇게 확장된 주체들의 지원으로 유지 되는 자립생활센터는 장애인을 비롯한
되는 자립생활센터는 장애인을 비롯한 자립생
자립생활이 필요한 모든 지역주민의 아
활이 필요한 모든 지역주민의 아지트가 되어야
지트가 되어야 한다.
한다.
진보, 운동, 인권 : 멈추지 않는 시도 진보정치건 장애인운동이건 자립생활운동이건 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되는 임계점에 달했다는 점 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리고 조금은 식상하지만 아직 명확하게 자리 잡지 못하고 그 대안 의 언저리 어딘가에‘인권’ 이 떠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대안의 중심에 놓고 지역사회 공동체에 뿌 리박을 것을 제안하며, 실제로 그것을 준비하고 있다. 결과는 단기간에 도출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실패 할 수도 있다. 만약 실패한다면 그를 기반으로 또 다른 시도를 할 것이다. 하지만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진보이고 운동이며 인권이기 때문이다.
특집 인권은 상상력이다 25
(사진 : 참세상)
특집 / 인권은 상상력이다
상상하고, 연대하고, 실천하라 간혹“동성애 찬반 토론”혹은“동성애자는 선천적인가요, 후천적인가요?” 와 같은 논쟁이 벌이기도 합니다. 존재에의 찬성과 반대를 통해 없어야 할 존재를 없애고자 합니다.
종이봉투 성정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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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과 여성, 여성과 여성, 남성과 남성을 두고 우리 사회는 흔히 협소한 상상력을 펼칩니다. 이를테면 친구는 될 수 없는 관계, 남성을 두고 질투할 관계, 친구만 될 수 있는 관계 등으로 한정짓곤 하거든요. 물 론 이러한 고정관념이 언제나 잘못인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언제나 모두의 생활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야 만 하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 대해 눈 감아버리거나 보이지 않는 존재로만 치부 한다면 그때부터는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누군가의 삶을‘없는 존재’ 라는 역설적인 상태로 호명하며 사 회에서 치워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없는 존재로 지목된 후로는 사회 구성원 다수를 자처하는 이들이 알아서 차별받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줍니다. 문란함의 아이콘이 되고 낯설음을 넘어 혐오의 대상이 됩니다. 간혹 “동성애 찬반 토론” 혹은“동성애자는 선천적인가요, 후천적인가요?” 와 같은 논쟁이 벌이기도 합니다. 존재에의 찬성과 반대 를 통해 없어야 할 존재를 없애고자 합니다. 더 나아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논쟁하는 맥락 이면에는 변경가능성 여부에 대한 판단이 담겨있습니다. 선천적이지 않다는 주장은, 그렇다면 함께 정상으로의‘치 료’ 를 통해 궁극적으로 없애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과 같습니다.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 속하는 사랑의 방식이나 존재의 방식을 두고,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를 가리고 그 방식이 변경가능한지 여부를 가려 ‘변경 강제 가능’ 을 이끌어내는 게 합당한지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입니다. 사실상 혐오와 차별의 논리는 따져보면 서로 다름을 틀림으로 간주하며 시작됩니다. 틀렸기 때문에 없 는 존재여야 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사고 과정 속에서 편견은 더욱 강화되고요. 이러한 편견과 낙인으로 인해 성소수자는 자신의 존재를 드 러내기조차 어려운 현실에 처하고,
편견과 낙인으로 인해 성소수자는 자신의 존재를
파트너 혹은 공동체를 이루어 살 때
드러내기조차 어려운 현실에 처하고, 적절한 생
에 적절한 생계·생활 공동체를 꾸 리거나 의료보건 체제와 같은 기본 적인 보장을 받는 데에는 더 큰 어려
계·생활 공동체를 꾸리거나 기본적인 생활 보장 을 받는 데에는 더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움을 겪습니다. 예를 들어 정상가족 만이 4인 가족을 기준으로 한 전세금 대출지원을 받기 용이하고 병원에서의 보호자로서 인정받는 가운 데, 정상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성소수자는 제도 바깥에 서기 쉽습니다.
모두가 고통 받게 하는 획일적인 생애주기 사실 우리사회에서는 성소수자만이 비정상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은 아닙니다. 생애주기에 맞는 퀘 스트1)가 태어날 때부터 연령에 따라 부여되고 이를 제때 높은 점수로 완수하지 못할 경우‘인간 대접 받을
1) 게임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이용자가 수행해야 하는 임무 또는 행동
특집 인권은 상상력이다 27
수 없는 인간’ 이 되기 십상이거든요. 게다가 이 퀘스트는 언뜻 보면 공정해보이고 노력으로 극복 가능할 것 같지만 사실상 타고난 요소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비정규직이 어디서는 50%가 넘었다고 하고 어디서는 70%라고 합니다. 건물은 계속 재개발이니 뭐니 하며 계속 지어 올라가는데, 내 집은 요원합니다. 대학에만 가면, 이라는 말을 들으며 미래에 인생을 보류 해왔는데 또 다시 취직이나 고시, 전문대학원을 위해 다시금 인생을 보류합니다. 하지만 어째선지 녹록치 않습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합격하고 나서도 역시 녹록치 않은 모양입니다.”
위 글은 작년 12월 중순,‘안녕들하십니까?’ 라는 대자보 열풍이 일 무렵, 모 학내 커뮤니티의 뜨거운 호 응과 공감을 얻었던 단락입니다. 생애주기라는 컨베이어 벨트에 청춘과 그 부모세대가 묶여 끝없이 무한 경쟁을 겪는 시기란 점에서 큰 공감을 얻었습
경쟁에서 살아남으라는 획일적인 퀘스트 를 지속적으로 부여받습니다.이를 통과하 지 못하면 비정상이고 살아가면서 맞닥뜨 리는 애로사항은 그 개인의 책임입니다.
니다. 그럴듯한 삶을 위해 좋은(?) 초·중· 고등학교를 나와 제때 대학교에 들어가기를 강요받으며 경쟁에서 살아남으라는 획일적인 퀘스트를 지속적으로 부여받습니다. 이를 통 과하지 못하면 비정상이고 살아가면서 맞닥 뜨리는 애로사항은 그 개인의 책임입니다.
이러한 퀘스트 중에는‘결혼적령기’ 라는 큰 이벤트도 있습니다. 제 나이에 결혼시장에 팔려나가 높은 가격의 이성과 결혼하고 대출을 받아서라도 거품 가득한 부동산을 마련하여 제때 자식을 낳아야 사람구 실을 합니다. 그나마‘아들 낳기’ 가 슬슬 구시대 취급받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요. 소위 부모 얼굴에 먹칠하지 않는다는 이 일련의 생애주기는 부모가 되어서도 끝나지 않고 자식의 생애주기 관리 퀘스트로 이어집니다. 자식에게 먹칠 당하지 않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요.
너도 나도 우리도 정상일 수 없는 사회 이러한 한줄서기 속에서 정상성을 꼽다보면 과연 몇이나 해당될까 의문이 듭니다.‘이성애자 비장애인 비청소년 기혼 남성으로 명문대를 졸업하여 대기업이나 전문직의 직업을 획득하고 서울 및 수도권에 거 주…’끝없이 나열할 수 있는 이 무한 퀘스트를 완수해야 비로소‘보편적 시민’ 이 되는 정상성은 생각보다 보편적이지 않습니다. 이 범주에서 벗어난 비정상들은 작게는 눈치나 손가락질부터, 크게는 생활 유지에 위협을 받습니다. 이 가운데 서로를 배제하고 구분 짓기 위해 금이 계속 그어지고 이에 따라 비정상으로 분류되는 인간은 점차 많아집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고정된 생애주기는 많은 이들에게 맞지 않는 옷입니다. 사람을 관찰하고 옷을 짓는 28
것이 아니라 옷을 먼저 짓고 그 옷에 사람을 맞추기 때문에 옷이 맞지 않는 이들은 점점 늘어납니다. 마치 침대 길이에 맞춰 사람을 잡아 늘리고 발목을 자른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습니다. 우리 사회와 법체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을 관찰하고 짓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정한 기준에 맞지 않는 이들을 바 꾸거나 보이지 않게 치웁니다. 치워진 존재들은 보이지 않으니 사회는 점차 획일화 됩니다.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잘 맞는 옷이 좋은 옷이듯 좋은 사회를 위해서는 구성원에 맞는 사회를 구성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고정관념과 편견이라는 상상력의 부재를 다른 존재,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에의 관 찰로 채워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다른 삶을 포용하고 함께 살아갈 사회적 준비가 필요합니다.
다양한 삶에 맞는 사회적 제도의 확보 이 가운데 항상 맞지 않는 옷을 받아드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정상가족을 꾸리는 데에서 배제되는 성소수자입니다. 누구를 사 랑하고 자신을 누구라 인식하는지와 같은 삶
이 가운데 항상 맞지 않는 옷을 받아드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정상가족을 꾸리는 데에서 배제되는 성소수자입니다.
의 중요한 척도가 사회의 줄자와 맞지 않아 엉뚱한 옷을 받아들기 일쑤이거든요. 그 옷에 맞추기 위해서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맞추듯 다리라 도 자르거나 늘려야 할 판입니다. 우리는 줄자를 다시 고쳐들어야 합니다. 누구와 살지, 몇 명이 살든 간에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맞춤형 제도가 필요합니다. 파트너가 어떠한 성별이든 그 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 사회적 수단을 확보하 고, 스스로나 파트너가 응급상황으로 병원에 실려 가더라도 면회, 수술을 요청할 수조차 없는 상황을 맞 이하지 않는 사회를 꾸려야 합니다. 간혹 현실적인 제약으로 모든 이에게 맞는 정책을 도모할 수 없다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현 실에 맞춘 정책이라면 보다 다양한 이들의 삶을 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한 이후의 논의여야 비로소 현실에 맞췄다 할 수 있습니다. 결혼 너머의 다양한 시민결합을 갖춰두고 사랑하는 연인과 삶을 공유할 방식이 필요한 이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그 가능성을 열어줘야 합니다.
서로를 상상하기 위한 역지사지 서로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지사지의 상상력을 가져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당장 사람이 살아가 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성소수자가 살아가는 데에도 당연히 필요합니다. 대체로 4인 가족을 중심으로 만들 어진 지원 정책이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성소수자의 경우에도 마련되어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이 야기입니다. 특집 인권은 상상력이다 29
사회적 시선과 만연한 차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거짓말을 해야 하고 스스로를 숨겨야하는 상황 은 사람이 함께 살 수 없게 만듭니다. 원하지 않는 아우팅으로부터의 보호나 커밍아웃할 수 있는 분위기 의 조성, 사생활 보호의 논의를 보다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모든 이가 인권 감수성을 가진다면 보다 아름다운 사회가 되겠지만 이는 소수자 스스로에게도 어렵기 마련입니다. 타인과 완벽하게 소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노력은 할 수 있습니 다. 역지사지의 상상력이 전부는 아니어도 이해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데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해결책은 연대와 실천 우리 노동당에는 노동당 선언이라는 다음과 같은 강령이 있습니다.“13. 성소수자에 대한 비합리적이 고 반인권적인 차별을 철폐하고 다양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존중하며 누구나 자유롭게 가족을 구성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진보적 성정치를 실천한다.” 당 강령 속 가치 실현을 위해 그 행간을 메우
당 강령 속 가치 실현을 위해 그 행간을
는 실천과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메우는 실천과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주변 사람들을 함께 설득하며, 보다 삶에 직결
함께 정치적 부담을 지는 연대와 그에 따른 실천은 어렵습니다.
되는 주택 문제, 임금 차별을 없애고 안정적인 노동조건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인프라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함께 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최근 보수양당이 형식적인 인권 친화적 제스
처를 보이며 성소수자 인권을 동정하고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곤 합니다. 실질적인 해결을 논하지 않고 우 리도 너희를 인정한다, 라는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의 포용을 이야기 합니다. 잃는 것 없는 수준에서의 동 정은 쉽습니다. 하지만 함께 정치적 부담을 지는 연대와 그에 따른 실천은 어렵습니다. 인권은 프랑스 혁명이라는 계기를 통해 보더라도 시작부터 분명한 정치적 차원의 개념이었습니다. 그 간 지배해 온 권리의 배분체제를 전복하는 정치적 집합행동에 따른 이념이었단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천 부인권의 개념 이상으로 쟁득인권을 논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치를 것 없이 주장하는 이들을 넘어 실질적인 정책을 외치고 부담되는 보장을 요구해야 합니다. 인식 의 개선을 공고하게 할 물적 토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안정된 집을 구할 권리 보장 없이는 희롱에 더욱 취 약하고 혐오범죄나 차별에 의해 나락으로 떨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의식주, 동등한 경제적 기회의 보 장, 사회적 지위의 보호를 확보해갈 수 있는 정치집단으로서 우리 정당이 상상 이상의 상상을 만들어 낼 수 있기를, 그리고 이를 통해 사회를 견인해 나갈 수 있는 내일을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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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KBS)
특집 / 인권은 상상력이다
더 이상‘여성’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상품이 아니라 인간이 되고자 한다.‘여성’ 이라는 기호에 어떻게 동일시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 그 첫걸음일 것이다.
김고연주 서울 구로 당원
특집 인권은 상상력이다 31
대통령, 정당 대표, CEO 등 소수의‘성공한’여성이 등장할 때마다 여성 혐오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오늘날, 여성 인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여성상위시대라며 대학에서는 여성학과가 폐지 되고, 사회에서는 여성부를 폐지하라는 목소리가 높은데 말이다. 이런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일군의 남성 들뿐만이 아니다. 여성주의를 구시대적 산물로 여기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여성 인권을 이야기하 면 소수자의 일반적인 범주인 장애인, 성소수자, 청소년, 이주민 등에 여전히 여성을 포함시킬 수 있는가 라는 볼멘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사실 가장 진보적인 정당 중의 하나라는 노동당의 당원이 된 지 수 년이 지났지만 노동당이 여성주의 적이라고 느낀 적은 많지 않다. 오히려‘여성’ 이라는 단어가 색 바랜 기호로써 당의 진보성을 뒷받침하는 데 동원되고 있는 느낌이다. 노동당조차 이렇기 때문에 결국 여성 인권을 이야기 할 때는 이것이 여전히 중요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해야 한다. 젠더감수성을 주장하기 위 해‘젠더의 줄어든 차이’ 를 부각해서 강조해야 하는 모순적인 형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주의에서 의‘여성’ 은 소수자를 지칭하는 대표적인 상징이며, 여성 문제가 곧 자신의 문제이자 모두의 문제라는 인 식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어서 와, 외모 평가는 처음이지? “일단 키 작은 남자는 싫어요. 키 큰 분이 많고 외모가 중요해진 시대에서 키는 경쟁력이라고 생각하거 든요.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생각합니다. 내 키가 170㎝이니까 최소 180㎝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깔 창 빼고.”
2009년 말 한 티비 프로그램에서 전파를 탄 이 발언은 키가 180cm 이하인 남성을‘루저’ 로 규정함으 로써 평균신장이 173cm인 대한민국 남성들의 공분을 샀다. 방송 후 프로그램의 홈페이지는 1만여 건의 항의글로 도배됐고, 방송사를 상대로 78건의 손해배상 소송이 언론중재위원회에 접수되었으며1), 발언자 의 미니홈피는 악플이 쇄도하여 폐쇄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네티즌들은 각종 영화 포스터와 드라마 장면 을 패러디한 영상물을 쏟아내며‘루저의 난’ 을 일으켰다.‘마틴 루저 킹’ ,‘톰크 루저’ ,‘웨인 루저’ 처럼 각 분야의 영웅이지만 키가 180㎝가 되지 않는 남성들의 이름을 루저로 바꿔 불렀다. 게다가 당시 북한이 반 복적으로 NLL을 침공하자 그 이유가 북한에서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분노한 김정일이 발언자를 잡아 오라고 했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이러한 엄청난 후폭풍으로 방송사가 사과하고 프로그램 제작진이 전원 하차했지만 남성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결국 이 프로그램은 폐지되었다.2)
1)“남자들의 여성 외모 비하 발언과 다를 게 뭐 있나” ,《여성신문》 , 2009.11.20 2) 김고연주, 2010, <'나 주식회사'와 외모관리>,《친밀한 적》 ,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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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후 네티즌들은 각종 패러디물을 쏟아내며‘루저의 난’ 을 일으켰다.
물론, 이 발언이 문제적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미디어에서 외모에 대한 차별적 발언이 끊 임없이 생산되는 현실에서 이 발언에 대한 반응들과 심지어 프로그램 폐지는 매우 이례적이다. 이는 이 발언이 외모 평가자가 여성이고 평가대상이 일반 남성이라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 실 여성들은 외모를 평가하는 발언에 매우 익숙하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외모에 대한 긍정적 평가보다는 부정적 평가를 받는다. 부정적 평가를 받았을 때 여성들은 무례한 평가자에게 불쾌감을 표현하기보다는 외모를 관리하지 못한 자신을 질책한다. 협소한 미의 기준에 스스로를 맞추기 위해 다이어트, 운동, 수술 을 하면서 자기혐오와 우울증에 빠지곤 한다. 그래서 일부 여성들은 이 발언에 대한 남성들의 공분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지금까지 여성의 외 모를 평가하거나 묵인으로 동조해오던 남성들이 자신의 외모를 평가받는 낯선 경험에 분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 발언은 지금까지 가해 자 또는 공모자였던 남성들이 외모지상주의의
남성들의 반응은 외모 평가 행위에 대해 성찰하고 여성들에게 동병상련을 느끼
집단적 피해자가 되는 경험을 하면서 외모 평가
기보다 발언자에 대한 마녀사냥식 공격
행위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에 그치고 말았다.
외모 평가를 받았을 때의 불쾌감을 직접 느꼈으 니 말이다. 그러나 남성들의 반응은 외모 평가 행위에 대해 성찰하고 여성들에게 동병상련을 느끼기보다 발언자에 대한 마녀사냥식 공격에 그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의 외모지상주의는 더욱 심해졌다. 외모 평가 문화가 만연 특집 인권은 상상력이다 33
해 하루에도 몇 번씩 외모 평가를 주고받는다. 사실 협소한 미의 기준에 가까운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긍 정적 평가를 받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긍정적 평가는‘칭찬’ 으로 간주되고,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발언된다. 부정적 평가는 상대방을 비난하기 위해 발언되지만 한편으로 상대방을 걱정하고 자극하 기 위해 발언되기도 한다. 따라서 긍정적 평가보다 부정적 평가가 오히려 상대방을 더 위하는‘진정성’있 는 행위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처럼 외모 평가가 만연하고 그 목적이 다양해진 문화에서 외모 평가를 받 는 대상은 여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5년 전의 발언을 시작으로 남성들도 외모 평가의 대상이 되었다. 이 제 남성들도 외모 평가를 받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 한국 사회가 5년 전에 남녀 대결구도가 아닌 성찰적 방식으로 대응했다면 오늘의 문화는 사뭇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외모로 연애하고 노동하는 세상 외모 평가는 주로 협소한 미의 기준에 가까운 이성을 추앙하고, 그렇지 않은 이성을 조롱하는 행위였 다. 그러나 외모 평가가 일상화되면서 이제 연애뿐 아니라 노동 시장에도 깊이 뿌리내렸다. 이는 신자유 주의 시대 연애와 노동의 공통점에 기인한다. 흔히 연애와 노동은 상호 이질적으로 간주되지만, 공통점도 지니고 있다.‘삼포세대’ 가 보여주듯이 노동뿐 아니라 연애도 시장에 포섭되었다는 점이다. 연애에서도, 노동에서도 개인은 하나의‘상품’ 으로 존재한다. 연애 시장에서 남성은 경제력으로, 여성은 외모로‘상품 성’ 을 평가받고 비슷한 수준의 이성끼리 상호 교환관계를 맺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러한 성별화가 변하고 있다. 경제적 불안정과 빈곤으로 여성에게 더치페이와 맞벌이를 요구하는 만큼 여성도 남성들의 외모를 중요한 자질로 평가한다. 여전히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외모가 중요한 상 품성이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노동 시장에서도 노동자들의 여러 능력 중에서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기업에 따라 두발, 손톱, 스타킹, 구두, 치마, 색상, 화장, 렌즈 등 세세한 외모 지침이 있고, 성형을 권유하며, 체중 감량을 위한 휴가가 있고, 가장
다른 조건이 비슷할 때 외모를 따진다면 ‘이왕이면 다홍치마’ 라고 말하겠지만,
살을 많이 뺀 노동자에게 포상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외모 관리 요구는 입사한 후부터 시작 되지 않는다. 지원자의 여러 조건들 중에서 외
오늘날은 외모를 우선으로 하기에‘무
모가 채용의 중요한 요건이 되고 있다. 다른 조
조건 다홍치마’ 인 셈이다.
건이 비슷할 때 외모를 따진다면‘이왕이면 다 홍치마’ 라고 말하겠지만, 오늘날은 외모를 우
선으로 하기에‘무조건 다홍치마’ 인 셈이다. 이러한 외모 관리는 여성 노동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여성 이 상당한 구매력을 지닌 주요 소비자이기 때문에 남성 노동자들에게도 외모 관리는 중요한 과제다. 이같 은 현실에서 지원자들은 각 기업이 선호하는 외모를 파악해 얼굴을 성형하는‘OO 기업 성형’ 으로 내몰리 34
고 있다.3) 이처럼 연애에서도, 노동에서도 외모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현실은 신자유주의 시대 외모지상주의의 결과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개인에게 타인은 공생자가 아닌 경쟁자로 간주된다. 타인은 자 신에게 질투와 불안을 주는 존재이므로 시간, 감정, 돈을 들여야 하는 인간관계는 사라지고, 개인은 철저 하게 원자화되어 자기 계발에 몰입한다. 이렇게 원자화된 개인들의 피상적인 인간관계와, 불안정한 고용 시장에서 자신의 차별적인 상품성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맞물리면서 결국 개인은 외모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게 된다. 신자유주의 시대 원자화된 개인들, 자기 계발의 주체들이 새롭게 지니게 된 능력 중의 하 나는‘스캔’ 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주체들은 타인을 만날 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 내리면서 상대를 파악하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협소한 미의 기준에 맞는 외모를 갖추지 않은 사람은 게으르고 탐욕스럽 고 미련하고 고집이 세며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인식된다. 연인으로서의 매력도, 노동자로서의 능력도 떨 어진다고 간주되는 것이다.
분열된 정체성, 누구에게 동일시할 것인가 신자유주의 시대 개인은 사적 영역으로 간주되는 연애 시장에서도, 공적 영역으로 간주되는 노동 시장 에서도 대부분의 시간을 외모가 중요한 하나의 상품으로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은 자신이 상 품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곤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자신이 소비자가 되는 순간일 것이다. 소비자가 되어 상품을 구매할 때 개인은 자신 역시 상품이라는 사실을 깨끗이 지운 채 온전히 소비자로서 행동한 다. 주지하다시피 신자유주의 시대에 개인은 크게 두 가지 정체성을 지닌다. 하나는 노동자(상품)고, 다른 하나는 소비자다. 그런데 이 두 개의 정체성은 상호 모순적이고 극단적이다. 노동자는 인간 대우를 받지 못하는 반면 소비자는 왕 대접을 받는다. 따라서 당연히 개인은 왕이 되고자 한다. 자신이 노동하면서 받 았던 모욕을 소비를 통해 보상받으려는 것이다. 노동자와 소비자라는 분열된 정체성 하에서 소비가 노동 의 이유이자 목적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많은 소비자들이 소비하는 동안 자신의 노동자 정체성을 완벽히 버리고 노동자에게“감히 고객 앞에서” 라고 말한다. 이것이 신자유주의가 소비를 촉발시키는 방식이다. 왕인 소비자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인간이 아닌 노동자는 잘 관리된 외모와 낮은 자세를 갖춰야 한다. 소비자가 온갖 진상을 부려도 항상 웃는 얼굴을 유지하기 위해‘입꼬리 수술’ 을 하고, 물건보다 자신을 낮 추기 위해“빨간 색상이 있으세요”같은 어법에 맞지 않는 잘못된 경어를 사용한다. 결국 외모 관리와 잘 못된 경어는 감정노동의 일환이다. 노동자는 자신의 외모가 물건의 가격에 포함된 부가 상품이 되고, 물 건이 자신보다 더 지위가 높다는 사실을 참고 견뎌야 한다. 예쁘고 젊고 날씬한 노동자가 친절하고 깍듯 이 응대를 해야 소비자가 기분이 좋아 지갑을 열어주실 테니까 말이다.
3) 한국여성민우회, 2013,《뚱뚱해서 죄송합니까》 ,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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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 관리와 잘못된 경어는 감정노동의 일환
흔히 감정노동에 대한 논의는 여성
이다. 예쁘고 젊고 날씬한 노동자가 친절하고
노동자를 주축으로 전개되어왔다. 가부
깍듯이 응대를 해야 소비자가 기분이 좋아 지 갑을 열어주실 테니까 말이다.
장제 하에서 감정은 여성의 영역이고, 자본주의 하에서 감정노동은 가장 비인 간적인 노동 중의 하나로 꼽히기 때문 에‘이성적 인간’ 으로 자임해 온 남성들
의 문제는 아닌 것처럼 간주되어 왔다. 물론 현실에서 감정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다수가 여성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남성 노동자들 역시 감정노동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자본주의에서 소비 권력은 종 종 젠더 권력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비인간적인 감정노동에 지쳐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남성 서비스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게다가 저임금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만 감정노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고액 연봉을 받는 은행의 정규직 직원도 고객님에게 좋은 평가 점수를 매겨달라고 부탁한다. 신자유주의의 상품화는 좀처럼 인간의 젠더를 가리지 않는 것이다. 시선의 주체로서 여성의 외모를 평가해온 남성들이 신자유주의 시대에 연애 시장과 노동 시장에서 외 모를 평가받고, 이성적 인간으로 자임하면서 여성들의 전유물로 취급해온 감정노동을 자신들도 수행하고 있는 현실은 여성의 문제가 결코 여성만의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젠더 권력을 적극적 으로 누리거나 소극적으로 묵인해온 행위가 자승자박의 결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현실 이 젠더 권력의 궁극적 해체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젠더 권력이 훨씬 더 다양하고 복잡하며 교묘 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현실은‘여성’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지하면서 젠더 감수성을 기를 때 더 잘 보일 것이다. 이는 남성들뿐 아니라 여성주의에 무관심하거나 백안시하는 많은 여성들에게도 해당된다. 우리는 모두 상품이 아니라 인간이 되고자 한다.‘여성’ 이라는 기호에 어떻게 동일시할 것인지를 고민하 고 실천하는 것이 그 첫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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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참세상)
특집 / 인권은 상상력이다
발칙한 청소년을 상상하자 학교는 참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잘못했다는 이유로 때리는 것이 정당화되고, 헌법에서 보장한 인권조차도 교육적 인 목적이라며 유예된다.
아리데 노동당 청소년위원회
특집 인권은 상상력이다 37
‘사랑’ 으로 둔갑한 인권침해 최근‘9시 등교’ 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경기도는 많은 학교에서 9시 등교를 실시했 고, 광주를 비롯한 여러 교육청에서도 9시 등교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정작 기뻐해 야 할 학생들은‘9시 등교’ 에 불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9시 등교는 학생들이 선택한, 학생들이 요구하는‘2014 교육감선거 학생이 원하는 10대 교육정 책’ 의 내용이다. 학생들이 원하는 정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불만을 가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등 교시간이 늦춰진 만큼 하교시간도 늦춰졌기 때문이다.‘9시 등교’ 는 분명 중요한 정책이지만, 학교에 있 는 절대적 시간을 줄이지 않고 단순히 등교시간만 늦추는‘조삼모사’격의 정책에 학생들의 반응이 좋을 리 없다. 학교는 참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잘못했다는 이유로 때리는 것이 정당화되 고, 헌법에서 보장한 인권조차도 교육적인 목적이라며 유예된다. 학교는 모두 노력하면 1%의 영광을 누 릴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 존재하는 99%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내가 밟고 올라서지 않 으면 밟히게 되는 무한경쟁 속에서 배려를 이야기한다.‘선배’ 가‘후배’ 를 기합주고, 선도부가 동료 학생 을 감시하게 만든다. 동료학생을 신고하면 상점을 준다고 한다. 그러면서‘협동’ 을 이야기한다. 잘못을 책 임지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더욱 교묘하게 숨기는 것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다니던 학교를 자퇴한 지 2년이 조금 넘었는데, 요즘 학교에 다니는 활동가들의 말을 듣다보면 깜 짝 놀랄 정도로 인권침해의 정도가 무시무시하다. 더 무서운 사실은, 그 인권침해가 학교에 다닐 당시 내 겐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는 것이다. 수업시간에 화장실에 가도 될지를 선생님에게 물어봐야 하 고, 가지 말라 하면 참아야 한다. 반성문도‘깜
학교교육의 목표가 실은, 청소년의 자력 화를 돕는 것이 아니라‘권력자에게 순 종하게 만들기’ 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 “죄송합니다. ( 다음부터 안 그러겠습니다”같은 내용을 조그만 글씨로 종이에 빼곡하게 적는 체벌)
로 작성해야한다. 일상적인 폭력은 결국 그 폭 력의 이름을 바꿔버린다.“체벌을 받지 않으면 솔직히 우리 공부 안하잖아” ,“다 우리 좋은 대
학 가라고 하는 거지” 라며 인권침해를‘사랑’ 으로 바꾸고, 정당화한다. 학교교육의 목표가 실은, 청소년의 자력화를 돕는 것이 아니라‘권력자에게 순종하게 만들기’ 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성숙의 악순환 학교가 바뀌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누군가는 교육감, 시장, 대통령 등의 정부 부처에 청소년 인권에 우호적인 사람들을 보내는 것, 또는 운동을 법률, 조례 등으로 제도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 38
각한다. 누군가는 교사들의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민주적인 학교운영을 위한 청소 년들의 대중조직(!)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하나만 좋고 나머지는 나쁜 게 아니니까, 앞에 나열한 모든 것들은 다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나는 학교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움직 임,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학생들이 스스로의 불만과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는 제도와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노동자들은 더 나은 노동조건을 위해 싸울 수 있다. 개인 노동자와 자본가로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되기 에 노동조합이라는 집단을 만들어 협상을 하고, 협상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얻으면 쟁의행위를 할 권리를 노동3권이라는 이름으로 보장한다. 그것이 실제로 잘 지켜지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그들의 권리는 헌법을 통해 권리로 인정받고, 다퉈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학습조건을 위해 스스로 싸우지 못한다. 억눌리고 유예당한 인권을 되찾기 위한 청 소년들의 행동은 그 자체로 처벌대상이기 때문이다. 집회에 나가는 것조차 학교장의 허락을 받아야하고, 학생들을 모아 서명운동이라도 하려하면‘학생선동’ 으로 처벌받는다. 심지어는 촛불집회에 나갔다는 이 유로 학생회장 출마를 제한당하기도 한다. 헌법에서 보장한 기본권조차 청소년들은 누리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누리기에 미성숙한 사람은 없다. 청소년은 미성숙한 것이 아니라 미성숙 ‘해지는’것이다. 19세기 노예훈련의 5단계는‘엄격한 체벌, 열등 성에 대한 감각, 주인이 가진 우월한 권력에 대 한 믿음, 주인의 기준을 받아들이기, 자신의 무 력함과 의존성을 뼛속깊이 느끼기’ 였다. 이 5단 계를‘엄격한 체벌, 열등성에 대한 감각, 선생님
민주주의를 누리기에 미성숙한 사람은 없다. 청소년은 미성숙한 것이 아니라 미성숙 ‘해지는’것이다.
의 우월한 권력에 대한 믿음, 선생님의 기준을 받아들이기, 자신의 무력함과 의존성을 뼛속깊이 느끼기’ 로 바꿔봐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청소년은 미성 숙하므로 책임질 기회를 박탈당하고, 그 기회의 박탈이 또다시 미성숙하다는 관념을 만드는 것, 결국 미 성숙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상황이다.
청소년 스스로 목소리를 낼 때, 비로소 시작되는 학생 인권 이런 반인권적인 사회와 학교를 바꾸기 위해서 그동안 청소년들을 민주주의로부터 분리시켜 온‘미성 숙’ 의 딱지를 떼어내야 한다. 그동안 막혀왔던 자치와 참여의 기회가 더욱 확대·보장되어야 하며, 무엇 보다도 청소년이 직접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역사회와 학교 안에서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의사결정과정 에 참여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한다. 학생회의 독립적 권한을 강화하고, 학교의 간섭을 최소화해야한 다. 또한 학생회장-학생회가 학생을 대의하는 수준을 넘어 일상적으로 개별학생이 학교 안에서 정치를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당장 떠오르는 것들을 적어보더라도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특집 인권은 상상력이다 39
의 발언기회 보장, 학생총회 개최, 학생발의, 검열 없는 학생게시판 신설 등의 장치가 있을 수 있겠다. 학생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학교생활의 일거수일투족에 점수를 매기는 벌점제를 포함한 감시· 검열시스템을 없애야한다. 당연히 이유를 불문하고 모든 종류의 체벌도 금지되어야 한다. 무엇이 문제로 규정되는지 또한 중요하다. 체벌로 인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자 교육부는 체벌을 근절하기 위한 수단으로 벌점제를 도입했다. 준법정신을 가진 민주시민을 양성하겠다는 그럴듯한 명분도 있었다. 하지 만 어느 순간부터 벌점과 체벌은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맞고 끝낼래, 벌점 받을래?” 라는 질문에 많은 학 생들은 그냥 맞겠다고 대답한다. 벌점이 쌓이면 징계를 받아야한다. 누적된 벌점을 없애기 위해서는 상점 을 받아야하는데, 상점을 받기 위해서는 교사에게 잘 보여야하고, 그 경험이 너무도 수치스럽기 때문이 다. 벌점제는 체벌의 대안으로 등장했지만,‘무엇을 문제로 규정할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학생 스스로‘이런 말·행동을 하면 혼나지 않을까?’ 라는 자기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한다. 그리고 학생이 학교에 있는 절대적 시간이 줄어야한다. 미래에 저당 잡힌 불안한 현재를 꾸역꾸역 살아가는 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사치다. 잘 먹고 잘 쉬고 불안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때, 비로소 스스로 를 돌아보고 고민할 수 있다. 학생인권운동은 학교 권력구조의 가장 밑바
학교 권력구조의 가장 아랫부분에 있는 학생들의 이야기가 터져 나올 때, 비로 소 학교 안의 불평등한 관계에 대한 논 의가 시작될 것이다.
닥에 있는 학생의 위치를 끌어올리면서 학교 자 체의 권력지형을 변화시키는 작업이다. 그런 의 미에서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인권 친화적인 학 교를 만들기 위해 가져야할 방향성에 대한 선언 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선언을 만 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선언이 둥둥 떠다니는 조례가 아니라 실제로 학생들이 요구하고 선언하고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장 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 권력구조의 가장 아랫부분에 있는 학생들의 이야기가 터져 나올 때, 비로소 학교 안의 불평등한 관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다. 학생들의 이야기가 나오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불만을 이야기 할 수 있어야하고, 그런 불만을 제도적으로 보호해줄 수 있어야한다, 작년에 인천의 한 자치구에서 청소 년주민참여예산 프로젝트를 실시한 적이 있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나왔지만, 청소년들이 가장 원하는 정 책은 의외로 교육감선거에서의 청소년투표권 보장이었다. 주민참여예산제로 교육감선거에서의 투표권을 보장할 수 있을지의 여부와는 별개로, 꽤나 시사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를 인권 친화적으로 만드는 작업은 학교 구성원들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학교는 사회에 속해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사회와 상호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선 이 글을 읽 고 있는 여러분 먼저 학생-청소년을 존엄한 인권의 주체로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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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지금은 마을라디오 시대” 서울에서 지역 미디어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2012년부터다. 박원순식 마을 사업에 포함되어 있던‘마을미디어’사업이 시작되고 난 뒤다. 노동당에는 지역 라디오를 만들고 활동하는 이들 이 있다. 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기획/“지금은 마을라디오 시대”
마을라디오 활동가들 한자리에 모여 정리 : 나비 서울 서대문 당원
서울에서 지역 미디어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2012년부터다. 박 원순식 마을 사업에 포함되어 있던‘마을미디어’사업이 시작되고 난 뒤다. 노동당에는 지역 라디오를 만들고 그곳에서 활동중인 이들이 있 다. 허나 이것은 당의 활동으로 기획되기보다는 각 지역에서 살길(?) 을 모색하던 지역 활동가들이 자구책을 찾다가 나온 것에 가깝다. 그 렇기에 한번도‘노동당’ 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함께 이야기하거나 평가 노동당에는 지역 라디오를 만 들고 그곳에서 활동중인 이들
를 했던 적은 없다. 그래서인지 처음 당 기관지에 실릴 대담을 하자고 했을 때 몇몇은
이 있지만, 한번도‘노동당’ 이
당황스러워 했다. 당에서는 사실 늘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갑자
라는 이름으로 모여 함께 이야
기 왜? 라는 질문도 나왔다. 사실은 갑작스럽게 제안된 대담이었다.
기하거나 평가를 했던 적은 없
대담에 참여한 주체들은 강북FM, 동작FM, 용산FM, 마을미디어뻔(중
다.
랑), 가재울라듸오(서대문)이다.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우리는 이 대담
을 통해 지난 2-3년간의 경험들이 나름의 유의미한 질문을 만들어 내 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 진지하게‘미디어’ 라는 것에 대해 고 민할 수 있는 힘도 생겼다. 그리고 이것이 당의 성과로 환원되기를 바 ■참여
김일웅 강북FM 나비 가재울라듸오[서대문] 맹명숙 동작FM 박수영 마을미디어뻔[중랑] 황혜원 용산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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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있다. (매우 간절하게) 누군가는 거점사업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지역 미디어는 기획한 이들의 의도에만 갇힐 수 없는‘열린 미디어’ 라는 속성 때문에 다양한 고민을 하게 하는 기획이다. 주체들이 겪고 있는 중첩된 고민 의 결을 염두에 두시면서 함께 읽어주셨으면 한다.
사회 : 먼저 각자 소개를 해볼까요. 어떤 활동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나비 : 저는 서대문의 가재울라듸오의 나비입니다. 가재울라듸오는 2013년 7월에 서울시에서 교육 사 업을 지원 받아 두 번 교육을 했구요. 시험 방송을 거쳐 올 해 7월부터 정기 방송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지 금 지역 밀착형 프로그램인 <줌인 서대문>을 비롯해 세 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황혜원 : 저는 용산FM 황혜원이구요. 저희는 용산 전역을 다 포괄하지는 못하고 주로 활동하는 지역 은 해방촌과 후암동입니다. 2012년부터 시작해서 3번 라디오 제작교육을 진행했고, 2013년부터 방송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현재 다섯 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박수영 : 저는 중랑에서 마을미디어 뻔을 운영하고 있는 박수영이라고 합니다. 저희는 그동안 계속 중 랑 민중의 집 이름으로 교육을 하다가 마을미디어 뻔이라는 라디오 팀을 만들었어요. 그게 올해 5월입니 다. 이번에 공간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맹명숙 : 저는 동작FM에서 <낭만과 전설의 동작구>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진행자구요. 지금 대표가 바빠서 제가 대신 나왔습니다. 저희는 2012년에 교육을 받은 멤버를 중심으로 그 다음해 2013년 11월에 시작했습니다. 현재 여덟 개 프로그램이 가동되고 있어요. 김일웅 : 전 강북FM에서 북한산 반달곰이라는 DJ명으로 두 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고요. 2012 년부터 미디어 교육을 네 차례 진행을 했습니다. 방송을 정기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하반기 부터구요. 지금 세 개의 프로그램이 고정적으로 나가고 있어요. 올해 4기 교육 한 이후에 주민들이 많이 늘어서 하반기에 세 개 정도 고정 꼭지를 진행할 계획에 있습니다.
기획“지금은 마을라디오 시대”43
미디어, 할 만한 거점사업인가? 사회 : 미디어 사업을 시작한 계기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하는데요. 생각해보니 미디어 사업을 당내 거점 사업과 연결해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알기로는 서대문 가재울라듸오 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서울시당의 거점사업과 연계해 같이 진행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아닌가요? 김일웅 : 그 때 미디어 사업이 시당의 거점공간 전략과 완전히 결합된 것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지역 에 있는 공간들이 거점사업을 하다보면 프로그램의 문제나 그런 것들이 항상 걸리잖아요. 서울시에서 마 을공동체 사업을 시작하면서‘아 미 디어를 시작한다고 하더라’근데 이 게 지역에서 할 만 할 것 같다. 이런 판단이 있었던 거죠. 어쨌든 당내의 거점공간 네트워크라는 게 일정 정 도의 끈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후 운영에 있어서 당차원의 개 입전략이나 이런 게 있었던 건 아니 구요.
가장자리 동네, 서대문 가재울라듸오
맹명숙 : 저희는 당협에서 주도 적으로 한다, 이런 건 아니었던 것
가재울라듸오는 2013년 7월에 첫 교육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활동
같아요. 동작FM 대표가 우연히 당
을 계속해오고 있다. 첫 교육에서는 DJ교육을 받은 이들을 중심으
원이라는 것과, 미디어를 하고 싶어
로. 2013년 11월과 12월에는 시험방송을 제작했다. 2014년 상반 기에는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과 주민문화공간이 공존하는 복합문 화공간을 열고, 7월부터 정식 방송을 시작했다. 서대문 지역 소식 을 전하는 지역 밀착형 프로그램 <줌인 서대문>을 비롯 3개의 프 로그램을 제작, 편성 중이다. ‘가재울’ 은‘가장자리 동네’ 라는 뜻으로 서울의 가장자리였던 남
한다는 계획이 있으니까 우리가 주 도적으로 한 번 해보자, 라고 이야 기가 된 거예요. 그렇게 시작을 했 다가 지금은 당의 거점 공간 전략과 는 거리가 멀어졌어요.
가좌동 북가좌동을 이르는 옛말이다. 가재울라듸오는 가재울-서
박수영 : 저희 마을 미디어 뻔은
대문구 북가좌동 남가좌동-을 중심으로 하지만 넓게는 서대문 전
지금도 중랑 민중의집하고 같은 공
체를 포괄하는 방송 컨텐츠를 만들고자 한다. 방송 제작, 지역 행
간을 쓰고 있거든요. 민중의집 사업
사, 강의를 비롯한 각종 행사 아카이빙을 통해 지역과 접촉면을
을 주민들에게 좀 더 확장시키는 방
넓혀가는 중이다. 가재울라듸오를 청취하고 싶다면 팟빵 가재울라듸오 채널 (http://www.podbbang.com/ch/7853)을 통해 들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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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라디오가 주민들에게 접근 성도 좋고, 활동하는 데 도움이 되 겠다 싶어서 처음 활동을 시작했고,
지금도 그 장점은 여전해요. 처음부터 당 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주민들한테 접
“처음부터 당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주민
근을 하면 주민들은 거의 안 오시죠.‘어… 거기 뭐야 무서워’이런 반응? 그러다보니
들한테 접근을 하면 주민들은 거의 안 오시 죠.‘어… 거기 뭐야 무서워’이런 반응?”
까 저희는 많이 탈색(!)된 감은 있어요. 이 번에 마을 미디어 뻔을 만들면서도 당원 아닌 분들이 보다 많이 참여를 하게 됐구 요. 근데 저희는 아직까지는 불순한 의도 를 버리지는 않았기 때문에 당과 미디어를 어떻게 연결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은 숙 제죠. 황혜원 : 저는 서울시 거점공간네트워 크 이야기가 있기 전부터 (마을미디어 사업 에 대해) 알고 있긴 했어요. 그 때‘아 이거
다. 이걸 해야지 우리가 좀 더 오래 살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죠. 저희는 당원 위 주는 전혀 아니에요. 지역 주민들 위주로 하고 있어요. 나비 : 저희 서대문도 당의 고유의 활동 이 미약했고, 지역에서 뭔가 자리를 잡고 할 만 한 꺼리가 별로 없었어요. 그러다가 박수영
작년 7월에 미디어 사업을 시작하면서 지 역과 접촉할 수 있는‘꺼리’ 가 생긴건데.
말씀하신대로 당의 활동과 딱 연결시키는 게 쉽지가 않아요. 그리고 이런 미디어를 한다고 해서 당협에서 당원들의 공감대도 그렇게 높은 건 아니거든요? 이걸 당의 활동으로 밀고 나가고 싶었던 시기도 있었지 만, 지금은 조금 포기하고 독립적으로 보고 있는 시기예요. 김일웅 : 여기 나오는 이야기가 실제로 거점과 당의 관계에서 나오는 문제의식하고 똑같아요. 거점공 간을 시작한 이유가 사실은 당의 이름으로 다가가기 어렵기 때문이었잖아요? 그러다보니까 이걸 운영하 면 운영할수록 당과 거점공간의 관계는 어떻게 되어야 하나 고민돼요. 더구나 마을미디어가 콘텐츠로서 의 성격이나 미디어의 특징이 상당히 강하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만을 당과 밀착해 운영하기에는 어려움 이 있어요.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미디어로서의 독립적 기능을 가지고 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맹명숙 : 시간이 갈수록 그게 더 커지지 않나요? 기획“지금은 마을라디오 시대”45
김일웅 : 그렇죠. 이거는 그럴 수밖에 없어요. 제가 보기엔.
마을미디어, 지역에서 자리를 잡아갈수록 당과는 멀어진다… 사회 : 지역에서 어떤 위상이나, 역할이 굉장히 궁금해요. 제가 볼 때는 각 지역별로 편차가 있기는 할 것 같지만, 그래도 지역에서 어떤지, 그리고 혹은 당협에서 그걸 어떻게 보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김일웅 : 저희는 운이 좋게도 강북구에 마을미디어 하는 데가 저희 밖에 없어요. 3년째 이렇게 왔기 때 문에 어느 정도 이니셔티브가 있죠. 예를 들면, 저희가 얼마 전에 인터뷰했던 사람 이 전에 구청장 나갔던 사람인데, 이런 사 람들이 인터뷰하고 싶다고 연락을 하기도 하고, 지역에서 공개방송 같은 것들을 했 기 때문에 행사가 있으면 요청이 오죠. 행
“ ‘마을미디어라는 걸 쟤네들이 하고 있고, 이 런 것들이 필요하면 이제 쟤네한테 연락하면 된다.’이 정도는 된 것 같아요.”
사에서 라디오를 했으면 좋겠다라고. 어쨌든 지역에서 이게 완전한 미디어의 기능을 하는 건 아니지만‘마을미디어라는 걸 쟤네들이 하고 있고, 이런 것들이 필요 하면 이제 쟤네한테‘연락하면 된다.’정도 는 된 것 같아요. 저희는 당하고는 완전 상 관없어요. 맹명숙 : 저희 동작FM도 거의 유사해 요. 동작 FM의 대표 포함한 운영위원 중 절반 정도가 당원이고, 그 사실을 다른 DJ 들도 다 알아요. 그리고 동작 FM 대표가 동작 내의 시민단체들을 규합하는 역할을 거의 동시에 했어요. 그런 지역적 네트워 크도 있어서 동작FM이 동작구에서는 유 일한 지역 주민 미디어라는 걸 다들 인정 하는 상황이죠. 저희는 내부 프로그램을 더 하는 편이고, 강북FM처럼 공개방송 경 험은 많지 않아요. 김일웅 : 저희는 잘 안되니까 그거라도 46
김일웅
하는 거예요. 외부적으로 티를 내야 되니까….(웃음) 맹명숙 : 당원들도 특별히 동작FM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당원들은 참여하는 당원들 이외에 사실 딱히 없고, 김종철씨한테 시사 프로그램 이나 이런 걸 해보라고 해도 안 하 더라구요. 박수영 : 노동당 사람들은 말 안 들어요. 김일웅 : 그래서 저는 제가 하잖 아요. 나비 : 가재울라듸오도 비슷해 요. 지역 안에서는 지난 1년 동안 활 동한 것에 비해서는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많이 인정을 받는 편이예
요. 그리고 가재울 라듸오를 매개로 저를 만나면서 노동당에 대해서 알
중랑구 마을공동체미디어의 모든 것! <마을미디어 뻔> <마을미디어 뻔>은“평범한 이웃들이 만드는 비범한 동네방송” 이 라는 슬로건으로 서울 동부 중랑구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마
게 되시는 분들도 생기고 있구요.
을미디어 단체다. 지난 2012년부터 <사람과공감>, <중랑희망연대>
그리고 당협 차원에서는 저희 같은
등 지역단체들이 번갈아 가며 마련한“우리마을미디어문화교실”
경우는 거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
교육생 중 지속적인 마을방송의 필요성에 공감한 교육생들이 의
이 생겼기 때문에 그걸로 인해서 파
기투합, 올해 5월 조직을 꾸리고 출범했다. 지금은 <사람과공감>
생되는 것들이 있는 것 같구요.
과 함께 면목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사무실에 공간을 마련하여
사회 : 중랑은 어떤가요? 박수영 : 중랑도 비슷하죠. 지역 에서 마을라디오라는 이름을 걸고 하는 데는 우리 밖에 없다는 생각은
매주 2~3꼭지의 방송을 제작하고 있다. 현재 제작하고 있는 방송은 모두 세 꼭지로, 50~60대 어머님들 의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차분한 본격 어머니 수다방송“행복한 라디오” , 40대 독거중년남성 3인방의 덕질방송“중구난방” , 한주 간의 TV연예 프로그램을 한번에 정리해 주는“좋은미교의 TV &
들어요. 지역이 전반적으로 보수적
Movie”등이다. 또한“중랑 잇수다” 라는 가칭으로 우리가 지금 살
이다 보니까 초반에 교육하는 동안
고 있는 중랑구의 다양한 소식들을 동네 이웃의 눈높이에서 전달
에는 (외부에서) 알아도 쉽게 접근할
하는 방송을 만들기 위해 한창 준비중이다. 그밖에 지역에 있는
수 있는 대상은 아니었던 것 같아
복지관 및 단체들과 연계하여 작은 라디오방송을 만들 수 있도록
요. 근데 2년 정도 저희가 교육 사업
교육 및 기자재 지원도 하고 있다. 그 성과로 2013년 중순에 신내
하고,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하는 단체들과 접촉하면서 교육도 진행 하니까 이제야‘우리 이런 행사가
동에 있는 서울시립대종합사회복지관에서 매일 점심시간에 복지 관을 찾아오는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규모라디오방송국 "우리사 이"를 개국하기도 했다.
기획“지금은 마을라디오 시대”47
있는데 와서 취재해주면 어떻겠습니까’ 하는 문의가 들어오는 정도거든요. 당과의 관계는, 저희도 사실 운영위원들이 거의 다 당원이고 애초에 민중의집에서 출발하다 보니까 마 을 미디어도 실제로는 민중의집이 하는 하나의 사업이라는 성격을 갖고 돌아가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아 직 당원들이 많긴 해요. 당원들이 많기 때문에 당 이야기를 할 것이다, 라는 선입견을 탈각시키는 데 2년 이 걸렸어요. 지금은 새로운 분들을
“당원들이 많기 때문에 당 이야기를 할 것이다, 라는 선입견을 탈각시키는 데 2년이 걸렸어요. 지금은 새로운 분들을 더 영입해서 좀 더 탈각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더 영입해서 그런 선입견을 좀 더 탈 각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사회 : 용산은 공통된 게 아니라 차 이점이 있으면 그 차이점을 부각시켜 서 말씀해 주시면 좋겠는데요. 황혜원 : 저희는 부각할 건 특별히
없어요. 물론 (용산에서) 지역 라디오는 우리밖에 없지만, 특별히 위상이 갖춰져 있다고 보기는 아직 힘들 어요. 동네 단체들과 공개방송을 두 번 정도 했던 적은 있죠. 하지만 아직 위상이라고 하기엔 부족하구요. 얼마 전에 추석 앞두고 전통시장 예산으로 축제하겠다고 찾아왔더라구요. 같이 좀 해보자 그래서 기획 회의를 했죠. 그런데 그 이후에 연락이 안 왔어요. 날짜는 다가오는데 연락이 안 와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너무 진보적이고 정치적인 데라서 어렵겠다는 거예요. 시장 상인회 회장님이 종교적인 데나 정치적인 데 는 안 했으면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못하게 된 거죠. 그런데 저는 종점수다방 이름으로 정치적인 행위를 한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동네에서 소속을 아는 거죠. 그래서 그런 평가를 받는다는 게 즉자적으로는 되 게 기분이 나빴는데, 한편으로는 사업을 잘 못했다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김일웅 : 그게 잘 한 거죠. 정치색이 드러나는 게. 제가 볼 때는 두 가지인데, 일단 상인회 자체가 보수 성이 있어요. 저희도 수유시장 상인회랑 뭘 하는데요. 근데 희망연대노조 사회공헌 사업을 여기에서 하려 다 상인회 반대로 못했어요. 노동조합이랑 하는 사업이라고 해서. 이렇게 상인회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보 수적 성격이 있는 거고, 또 하나 지역에서는 핵심활동가가 흔히 얘기하는 마을 영역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고 거기에서 어떤 위상을 갖고 있느냐가 그대로 성과와 이어지는 것 같아요.
미디어와 당의 관계, 어떻게 가져가야 하나? 사회 : 아까 숙제라고 했고 미디어라는 특성상 당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말씀들을 하셨어요. 실제로 민중의 집이나 이런 사업들도 그러한가 하는 게 궁금하구요. 두 번째는 지역거점 사업으로서의 당협에서 하는 사업이라는 것과, 지역에서 미디어로서의 역할을 하 는 것들이 성격이 두 개가 같이 있는데 이것의 접점을 찾아볼 수는 없는 것인지, 이런 의문이 들었거든요. 맹명숙 : 저는 같이 결합이 되어야 한다고 동네에서 천문대 사건 때문에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지금은 48
거의 철회되는 분위기이긴 한데, 사설 천문대를 동작구청의 돈으로 지으려는 불순한 계획이 한때 추진되 었어요. 근데 거기에 대한 문제점을 동네 주민들이 거의 몰라요. 모를 수밖에 없죠. 워낙 전문적이고, 과 학에 관련된 내용이니까. 그런데 거기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당원들이었고, 당원들이 좀 더 많이
또한 동작FM은 동작구 주민단체들을 모아 <마음껏>이라는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동작 구 모든 주민단체를 포괄하지는 않지만 <마 음껏>은 다양한 주민단체, 주민모임을 엮어 서 매달 1회 정기모임, 매년 1회 마을박람회, 토론회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동작구방사능안전급식조례제정 주민서명운 동,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요구 주민현수막 게시, 주민동의도 얻지 않고 진행시키려 했 던 (가칭)서울천문대 건설계획 저지 등을 위
동작FM, 끼있는 주민들이 찾아오는 동네 놀이터
해 노력했다. 동작FM은 본연의 라디오방송 외에도 많은
동작FM이 만들어진 지 벌써 2년 가까이 되고 있다. 2013년 1월에
활동을 하고 있다. 먼저 언급한 <마음껏> 활
정규방송을 시작하고 나서 동작FM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다양한
동 외에도 중학교에서의 방과후 라디오수업,
프로그램들을 선보였고, 많은 주민들이 거쳐 갔다. 그리고 지금까
동네축제 및 지역단체의 공개라디오방송, 동
지 유지되고 있는 원년프로그램은 주민인터뷰방송 <수다만만세>,
작구 역사강의 등을 아울러 하고 있다. 또한
그리고 내가 진행하는 동작의 역사와 인물을 알아보는 <낭만과 전
서울지역 다른 공동체라디오와 협력하여 주
설의 동작구>, 지금은 잠시 쉬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 방송했었던
민공동체라디오 확대에 함께 하고 있다.
<싸구려커피> 세 개다.
이렇게 늘어나는 활동을 대표 혼자서만 감당
그 사이에 음악, 시낭송, 책읽어주는 방송, 엄마와 딸이 진행하는
하기가 벅차 서울시의 지원하에 청년 두 명
일상이야기, 동네주부들의 살림살이 이야기, 라디오로 들어보는
이 함께 일하고 있다. 올해에 방송프로그램
연극이야기, 청소년상담이야기 등 정말 많은 프로그램들이 동작
이 늘어난 것도, 녹음실 리모델링 지원사업
FM을 거쳐 갔다.
과 마을미디어사업에 선정된 것도, 동네 학
지금 진행되는 방송은 현재 8개이다. 이번 방송들의 특징은 젊은
교에서 방과후 교실로 라디오 수업을 할 수
친구들의 참여가 높아졌고, 현재 활동중인 음악평론가들이 대중음
있게 된 것도 같이 일하는 든든한 동료들 때
악을 소개하고, 노량진에 사는 주부가 메탈음악방송을 진행 중이
문이다. 동네청년일자리창출에도 기여하는
다. 또 잘나가는 팟캐스트 진행자가 재밌는 심리해설방송을 하고
셈이다.
있다. 소개한 방송들은 모두 주민들이 스스로 찾아와서 시작된 방
이제 9월 중순부터 새롭게 단장한 녹음실에
송이다. 이외에 그동안 취약했던 뉴스 방송이 드디어 시작되었고,
서 녹음을 하게 된다. 더 많은 주민들의 목소
조만간 영화 소개 프로그램도 가동될 것이다.
리를 담아 동네 곳곳을 누벼보자~ 동작FM!
기획“지금은 마을라디오 시대”49
모여 있는 라디오에서 더 그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어요. 당에서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를 정책적 인 측면 법률적인 측면에서 짚어내, 어떻게 싸울지를 라디오를 통해서 동네 주민단체나 활동가들에게 교 육시키고 전 주민적인 차원에서 반대를 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렇게 안 된 거에요. 나비 : 됐다는 이야기인 줄 알았어요. (웃음과 탄식) 김일웅 : 반전이. 박수영 : 멋진 모델이 되겠구나 했었는데. 황혜원 : 아쉬움이…. 맹명숙 : 그러니까. 주민들 개개인이 하기 힘든 것은 단체도 안 하려고 하더라구요. 지원을 받으니까. 그럴 때 이런 걸 가지고 당이 내용을 만들어주고, 싸우는 방법도 제시해주고, 또 지역라디오를 통해 여론 화시켜서 동네에 퍼뜨리고, 그래서 주민들이 진짜 심각한 문제라는 걸 느껴서 스스로 일어나는 모델을 다 음에는 꼭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박수영 : 저도 나름대로 노동당 당협위원장을 했지만. 제가 미디어를 운영하면서 제일 많이 생각했던 게 과연 지역 사업들에 대해서 내 관점을 가지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느냐? 라는 질문이었어요. 저는 그게 막혔었거든요. 그러니까 사안에 대한 컨텐츠가 없는 상태에서는 방송이고 뭐고 아무 의미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우리의 관점을 얼마나, 어떻게 가져갈 지, 또 그것을 정확히 적용 시켜서, 흔히 말하는 방송용으로 얼마
“과연 지역 사업들에 대해서 내 관점을 가지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해법을 제시할 수 있 느냐? 라는 질문이었어요. 저는 그게 막혔었 거든요.”
나 섹시하게 가공을 해 뿌려줄 수 있을 것이냐. 그 부분에 대한 역량이 당이든 당협이든 간에 그게 준비되어 있지 않 으면 미디어고 뭐고 간에 그렇게 큰 의 미는 없겠다. 그런 생각은 해요. 김일웅 : 저는 거기까지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미디어의 역할은 문제만 정리해서 제기하는 걸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면 제가 <웅담패설>이라고 시사 프로그램을 하는데 수유역에 코스타빌딩이라고 청소노동자들이 노동 조합을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가 업무 환경이 이렇게 열악했다. 이런 소식을 넣어요. 그러면 그걸 듣고 (물 론 듣는 사람들이 아직 많지는 않지만) 반응이 있어요. 아 우리 동네에서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아는 거죠.
왜냐하면 지역 신문들이 그렇게 안 하잖아요? 지역 신문 다 보수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정도의 역할 만 해도 미디어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 이후에 해결을 하든 싸움을 만들든 그런 건 당이나 운동 조직의 역할인 거죠. 우리가 꼭 노동당의 관점 이런 게 아니라 그런 문제를 진보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에 서 꾸준하게 정리하고 유통시키고 제기하는 역할만 해도 지역 미디어 환경의 어떤 균형추를 맞출 수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요. 사회 : 제가 좀 더 궁금했던 건 당의 이슈에 대해서 지역 미디어를 통해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해 자신감 50
이 생겼냐 아니냐가 궁금한 거였거든요.
기존에 없던 이슈를 소개하는 것만으로 거부
당의 입장을 거기에 계속 채워 넣는 것이
감을 가지는 건 아니거든요. 그리고 거부감을
부담스럽다면 왜인지도 얘기해보면 좋겠
갖는다고 해서 그 부분을 포기해야 될 것인가
구요.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나비 : 근데 저의 경우는 굳이 탈각시킬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어 요. 오히려 저의 정체성을 알고 있건 모르 고 있건 간에 원래 기존에 없던 이슈를 소 개하는 것-티브로드 노동자들의 이야기 라거나-만으로 매체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는 건 아니거든요. 그리고 거부감을 갖는다고 해서 그 부분을 포기해야 될 것 인가에 대해서는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김일웅 : 그러니까 내용에 대한 입장하 고 당과의 관계는 좀 다른 문제인 것 같아 요. 예를 들어 만약에 제가 진행하는 프로 그램이다 하면‘쟤는 진보적인 걸 하겠지’ 이렇게 볼 거라구요. 당의 어떤 특정한 입 장을 전달한다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우 리는 진보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 잖아요. 그렇다면 그런 진보적인 내용을 내는 것이 어쨌든 진보적인 입장인 거죠.
나비
방송 내용을 그렇게 채우는 건 아무런 부 담이 없죠. 그런데 지금 물어보신 거는 라
디오의 성격이 당과 연결되는 부분에 대한 것인 것 같아요. 황혜원 : 저는 좀 특수한 것 같아요. 내용 관련해서는 그런 식으로 지역의 문제를 밝혀주고 그 중에서 당의 입장이 있다고 하면 당의 입장을 이야기 해주고 이런 건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드는데. 문제는 제 개 인이 처한 위치가 여러 가지 역할을 겸하고 있다 보니까 겪게 되는 문제가 있어요. (김일웅 : 저도 그래요… 죽을 거 같애) 예를 들면 제가 당원인 거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은데 일단 여러 기구나 단체에 여러 얼굴
로 계속 같이 해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워요. 예를 들어 구청에는 노동당 얼굴로 갔다가, 또 다른 회의에는 용산FM 이름으로 가고 하는 상황 말이죠. 이런 게 우리 당협의 문제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기획“지금은 마을라디오 시대”51
김일웅 : 그게 용산만의 문제는 아니죠. 당의 전반적인 역량의 문제고, 아까 말씀드렸듯이 거점이라는 고민이 나오기 시작한 게 사실은 예전에는 당 사업을 했던 부분들인데 그게 진보정당의 역량이 약해지고, 정치적인 게 약해지면서 다른 틀을 찾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거점 사업에 기본적으로 내재될 수밖에 없는 문제인거죠. 황혜원 : 예를 들면 관악당협 같은 경우는 마을 사업을 안 하잖아요. 어쨌든 당의 이름으로 계속 사업 을 한단 말이에요. (김일웅 : 그게 어떻게 보면 맞는 거죠.) 그렇게 하면 시종일관 일관성이 있어요. 그런데 우 리는 그 활동을 상당히 혹은 거의 못하고 있는 거죠. 이렇게 이 활동과 저 활동을 같이 하면서 오는 문제점 이 큰 것 같고, 이게 어쨌든 분리가 되어야 된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지역에서 정당으로서 활동을 해야 되는데 마을사업 하느라고 치여 못하는 일이 많잖아요.
용산FM 방송 프로그램 •엄마와 딸의 동상이몽 : 52회 제작. 엄마 두 명과 고
등학생 딸 두 명이 10대의 관심사와 일상사에 대해 때로는 날카롭게 때로는 조화롭게 이야기를 풀어가 는 방송으로 주1회 제작. •풍류락의 음악 it 수다 : 3회 제작. 음악에 대한 열정
을 풍류락의 수다로 거침없이 풀어내는 방송으로 주1회 제작. •신정숙이 만난사람 : 4회 제작.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인터뷰 방송으로 주1회 제작. •자작나무의 그림책이야기 : 2회. 오랜 기간 어린이책
시민연대 책임자였던 역할을 살려 그림책 읽어주고
용산공동체라디오 <용산FM> 들어보실래요? 동네 주민들에게 사랑받고 싶은 방송 용산FM은 주민들 스스로 기획하고 제작하는 방송이며, 주1회 또는 격주로 제작하고 있다. 용산FM 제작과정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 으며, 다음카페와 팟빵에서 검색하시면 청취가 가능하다. 라디오스(구글 앱)로도 들을 수 있다. 용산FM은 남산아래 후암동 종점 백팔계단 앞에 있으며, 언제나 문이 활짝 열
용산도서관 관련 소식을 꼼꼼하게 전해주는 방송으 로 주1회 제작. •세프오리의 요리이야기 : 18회 제작. 다양한 요리에
대해 추억과 레시피를 묶어 맛나게 풀어내는 방송 으로 주1회 제작. •필리피노 라이프 인 코리아 : 7회 제작. 필리핀에 대한
그리움과 필리핀 사람 이야기를 담은 방송으로 격 주1회 제작. •영민 영진의 인문학수다방 : 8회 제작. 프랑스에서 오
려 있다.
래도록 철학을 공부했던 열정을 바탕으로 다양한
✽용산FM 주소 : 용산구 후암동 415-39 2층
인문학 소재에 대한 수다 방송. 지금은 저자의 사정
문의 연락처 : 070-8279-8964
52
으로 쉬고 있음.
김일웅 : 그것도 관악 활동의 특수성이 반영된 거죠. 예를 들어 나경채 의원이 현역 의원이었고, 상근 활동가가 3~4명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당협의 주요 활동가들이 마을사업을 챙기지 않아도 되는 구조가 있었던 거죠. 나비 : 저희도 마을 미디어 사업으로 시작하긴 했는데 이번 해에는 지원을 공간 지원 사업으로 받았어 요. 올해 지원 받으면서 고민이 들더라구요. 이제는 더 이상 사업을 받지 않아야 되는 거 아닐까? 앞으로 우리가 사업을 지속해야 한다면 독립적으로 갈 필요가 있고, 마을사업을 챙기는 것보다는 내부를 챙기거 나 우리 고유의 것으로 가져가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박수영 : 저희도 좀 비슷한 게 있던 게 저희도 마을넷하고 같이 활동하잖아요.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에 서 박원순 시장 공동선거본부에 같이 들어가자, 또는 조희연 캠프 같이 들어가자,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 그런 부분은 굉장히 부담스럽거든요. 관악같은 모델이 제일 좋아요.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게 제일 좋은데. 돈이 어디 있나요? 저희도 미디어 사업을 4회인가 5회인가 진행을 했기 때문에 그나마 이 정도 인지도도 쌓고 새롭게 공간 얻고 그 럴 수 있었던 건데. 이걸 앞으로 언제까지 이용할 수 있을지… 김일웅 : 두 가지 문제가 섞여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당과 거점공간과의 관계라는 것이 하나 있는 거고, 하나는 마을 사업을 어떻게 개입할거냐 라는 측면인거죠. 다들 아시는 것처럼 마을 사업 하는 단위 들은 박원순으로 다 정리되어 있는 거잖아요? 우리가 어쨌거나 돈이 없기 때문에 한 발을 걸쳐야 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자생성에 대한 부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 지역 차원에서 기존의 마을공동체 흐름으로 포 괄되지 않는 흐름을 어떻게 만들지, 이 고민을 해야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거점이라는 것이 애초에 당의 우회로로서 고민됐기 때문에 이런 한계들이 계속 나오는 거죠. 당협은 계속 약화되고, 어쨌든 거점 운영에 더 많은 것들이 투입되어야 하고, 그러면 지역에서 당조직의 정치력은 점점 하락하고 거점은 거점대로 고민되고, 당에서는 이 두 가지를 어떻게든 연결시키느라고 힘 들어하고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 같 아요. 나비 : 지역 사업을 하더라도 그 안에 서 당의 위상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저희도 운영을 하고 있 지만 이게 이렇게 굴러가다가 만약에 외
지역 사업을 하더라도 그 안에서 당의 위상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외부에 서 깊이 들어오면 우리 성과를 뺏길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런 걱정이 좀 되더라구요.
부에서 운영 체계 안으로 깊이 들어오거 나 그러면 우리 성과를 뺏길 수도 있는거 아닌가. 그런 걱정이 좀 되더라구요. 이 사업을 당의 성과로 어떻 게 만들어야 하나 항상 고민이 들죠. 김일웅 : 저희도 지역에서 공간 마련하고, 조직체계 짜면서 그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죠. 사실 우호적인 사람들로 조직을 꾸리고 지역에서도 우리가 상당 기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로 짜들어 가야 된다 기획“지금은 마을라디오 시대”53
는 고민이 들더라구요. 그런 건 꼭 미디어 차원이 아니더라도 시당 내에서도 고민이 필요한 것 같아요. 나비 : 미디어라는 게 전문성이 있는 영역이기 때문에 다른 이들이 쉽게 들어올 수 없는 부분들이긴 한 데. 만약에 우리가 미디어만 가는 게 아니라 공간까지 연다면, 공간 운영을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 이런 부분도 고민을 해야 되는 거죠.
그럼, 앞으로 마을미디어는 어찌 될까? 사회 : 마지막으로 운영을 하면서 어려운 점. 정리를 좀 짧게 해주시죠. 황혜원 : 일단은 다른 마을 미디어에서 는 공간들을 많이 준비를 하고, 공간 마련 하는 단계는 넘어서고 있는데, 저희는 지
상근자들을 확보해서 월급 주는 게 좋은데 저
금 공간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가 제일
희가 아직은 많이 부족하거든요. 내년에 또
큰 고민이구요. 고민을 이야기하자면 운영
청년일자리를 더 신청해야 될지, 어떻게 상근
비도 있어야 되고, 상근자도 있어야 되고,
자를 뽑아야 될지가 제일 걱정이에요.
컨텐츠도 있어야 되고. 마을 활동과 운동 의 전망도 있어야 되고, 되게 많아요. 나비 : 맞아요…. 다른 지역의 고민도 비슷할 것 같은데 황혜원 위원장님 걸로 정리하면 될 것 같은데요. 맹명숙 : 다 녹아들어가 있네요. 박수영 : 운영비도 고민되고, 상근자 이 야기 하면 정말 미칠 노릇이고, 맹명숙 : 네 맞아요. 저희는 지금 대표 를 도와서 활동을 같이 할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예요. 지금 두 명이 일하고 있는데 그 분들은 올해 12월까지고. 지금 프로그 램이 여덟 갠데, 이러저러한 컨텐츠로 방 송하고 싶다고 스스로 동작FM을 찾아오 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요. 이런 식이니까 혼자서 관리하기는 힘든 거죠. 그래서 상근자들을 확보를 해서 자체적 으로 월급 주는 게 좋은데. 저희가 아직은 54
맹명숙
후원금 걷히는거나 아니면 중학교나 이런데 방과후 교실에서 수업하는 거나 이런 걸로는 많이 부족하거 든요. 그래서 내년에 또 청년일자리를 더 신청해야 될지 아니면 어떻게 하든지 해서 상근자를 뽑아야 될 지가 제일 걱정이에요. 나비 : 운영을 하면서도 어렵죠. 당연히. 공간을 유지하는 것도 올해는 어느 정도 운영비가 나와서 올 해까지는 괜찮을 것 같은데, 근데 내년에 어떻게 될 것인가가 고민이죠. 지금 당장은 지역의 네트워크를 최대한 조직을 하는 게 하반기의 과제인 것 같아요.
마을미디어, 그럼에도 권하고 싶은 이유 사회 : 당원들에게 혹시 마을미 디어를 권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어떤 점에서 권하고 싶은지? 황혜원 : 제가 당원들한테 매일 방송하자고 하죠. 저는 당원들한테 한달 동안 용산 FM에서 어떤 사업 을 했는지 꼬박 꼬박 보고를 해요. 그렇지만 별 반응이 없죠. 당원들에 게 어디어디는 열심히 한다더라,
반달곰과 함께 하는 강북FM
하고 싶고 관심 있는 소재를 가지고 같이 좀 해보자 이야기해도. 그래도 추천하자면 일단 당원들이 하면 서 로 소통하는데도 도움도 되고, 아까
강북구 공동체라디오(강북FM)은 지난 2012년부터 시작된 우리마 을미디어문화교실을 계기로 만들어졌으며 지속적인 방송 제작은 지난 해 하반기부터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15명 정도의 주민들이 방송 제작에 참여하고 있으며 <반달곰이 만난 사람>, <아수라장-
동작 사례를 보면 당의 정책을 알리
아줌마 수다로 라디오를 장악하다>, <문화와 예술의 향기를 전하
는데도 도움이 되고, 어쨌든 당원들
는 Heartist>, <고품격 명랑 시사토크, 웅담패설> 등 5개의 방송을
이 좀 활발히 참여하는 게 좋을 것
정기적으로 제작하고 있으며 올해 중에 2~3개 정도의 고정 방송
같다는 생각입니다.
을 준비할 예정이다.
박수영 : 라디오라는 건 기본적 으로 미디어 플랫폼이잖아요? 플랫 폼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거기에 어 떤 덩어리로 있는 거고 거기에 어떤 내용이 실리느냐는 온전하게 참여
강북FM은 강북구의 유일만 마을미디어로서 지속적인 방송 제작 뿐 아니라 여러 차례에 걸친 공개방송 등을 통해 지역 내 단체들 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아 마을공동체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으며 중앙 언론매체에서는 다루지 않는 지역의 소식들을 전하고 동네 에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획“지금은 마을라디오 시대”55
한 사람의 몫이에요. 다행히 지역별로 미디어를 할 수 있는 플랫폼들이 생겨나고 있어요. 그거는 누군가 와서 자기 이야기를 하면 실릴 수 있는 플랫폼이거든요. 당원들한테 누구나 참여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 때 여러분이 보다 더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늘어났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사회 : 다른 지역에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 우리도 한 번 미디어를 당협 차원에서 만들어볼 까, 이렇게 생각하는 당원들이 혹시 있다면 이런 점에서 이렇게 권하고 싶다. 이것도 한 번 말씀해주세요. 나비 : 저는 지역에서 좀 막막했던 게 있었거든요. 뭘 해야 될지 잘 모르겠고. 그런데 미디어를 통해서 매개가 생기는 것 같아요. 어쨌든 사람들 이 계속 만날 수 있는 매개가 생기고 아까
이렇게 하니까 좋은 점이 있는 것 같아요. 당 의 매체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고. 우리 지역 에 똑같은 문제제기에 부딪힐 수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 지역도 돌아볼 수 있게 되고, 좋 은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게 플랫폼이기 때문에 연 결하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어요. 어쨌든 그걸 통해서 굳이 노동당의 뭔가가 아니더 라도 진보적인 흐름을 만들어볼 수 있는 장이 될 수도 있죠. 저는 좀 어렵긴 하지만 시작해보는 건 되게 좋을 것 같아요. 그리 고 시작해 보면 또 재미있기 때문에 계속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맹명숙 : 제가 할 말을 다 하셨네요.
정리하며 사회 :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 있 으면 하시면서 정리를 하시죠. 황혜원 : 처음에는 이런 토론을 한다고 해서 좀 뜬금없다는 생각이 약간 들었어 요. 왜냐면 그동안 힘들 때도 있고, 잘 될 때도 있었는데. 당이 딱히 관심을 가지지 는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당이 어떤 생각 을 갖고 이런 걸 하려고 하나, 뭐 이런 생각 이 있었는데. 어쨌든 이렇게 하니까 좋은 점이 있는 것 같아요. 당의 매체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고, 우리 스스로 우리 지역에 황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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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도 뉴스레터를 내고 있는데, 사실
똑같은 문제제기에 부딪힐 수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 지역도 돌아볼 수 있게 되 고, 좋은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박수영 : 저는 어차피 하고 싶은 이야 기는 다 한 것 같고. 이 컨텐츠가 방송이 될지 기사가 될지 뭐가 될지 모르지만,
“미디어를 통해서 매개가 생기는 것 같아요. 어쨌든 사람들이 계속 만날 수 있는 매개가 생 기고 아까 말씀하신 대로 이게 플랫폼이기 때 문에 연결하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어요.”
보시는 분들 중에서 혹시 그런 분들이 있을까 싶어서 이 말씀 드리는데요. 지금 지역 미디어에 가장 필요한 것은 돈 많은 독지가입니다. 독지가 여러분 도와주십시오. (오~~ : 일제히 환성) 맹명숙 : 저는 다른 지역의 실제 활동 사례도 들어보고 오늘 이렇게 당내 미디어 활동가들의 이야기도 들어보니까, 제가 동작이라는 우물에 갇혀있다 보니 못 본 부분들, 아 맞다 저런 게 있었구나 싶은 제가 생 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볼 수 있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우리 동작FM은 3년차인데, 처음에는 될까 말까 긴가민가하면서 했거든요. 역시 저질러 놓으면 다 굴러가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어떻게 잘 굴러가 게 할지 매달 운영위원회를 하는데, 오늘 이 모임이 많은 도움이 되었네요.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비 : 저는 전부터 한 번 모여서 얘기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그런 기회는 많이 없었는데 마침 이렇게 제안이 와서, 같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다 싶었던 바람이 이루어져서 저는 좋았 구요. 앞으로도 이런 고민이 많이 이야기 되고, 당내에서도 지역거점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를 하지만 이 것들이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점검하는 자리가 계속 있었으면 합니다. 사회 : 네, 오랜 시간 동안 모두 수고 하셨습니다.
기획“지금은 마을라디오 시대”57
여성 진보정치 열전 6
까칠한 매력의 부산 여자, 서영아
후보가 제일 힘들다는 걸 이제 알았다 이번에 만난 사람은 부산시당 붙박이 활동가 서영아다. 부산시당에 가면 언제 나 누구보다 먼저, 더 풍부하게 당 상황을 얘기해 주던 서영아다. 이번 지방선 거를 거치면서 기초의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선거 후에 부위원장을 사퇴하고, 10년 만에 당직을 벗어나 평당원으로 돌아왔다. 부산시당 민원부장, 조직국 장, 사무처장, 부위원장을 거치며 10년 당직자로 살아온 서영아의 활동과 근 황이 궁금했다. 인터뷰 : 김윤희·심재옥·최혜영 여성위원회 정리 : 최혜영 경기도당 사무처장 사진 : 정정은 편집실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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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진보정치 열전 59
인터뷰를 하자면 그가 있는 부산으로 내려가야 했지만, 서울에서 넷이 움직이는 차비보다도 혼자 올라 오는 차비가 싸다는 이유로 언제나 지역 사람들은 서울로 올라왔다. 어찌보면 부당할 수도 있는 상황을 서영아도 아무런 불평없이 받아들였다. 인터뷰를 위해 서대문 레드북스에서 만난 서영아는 예상과는 달 리 활기찼다. 여전히 빠른 부산 사투리와 대단한 입심으로 최근 상황에서 가졌을 법한 우울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체제순응 소녀가 운동권이 되기까지 서영아는 어렸을 때는 체제 순응적인 소녀였다고 한다. 경남여고 3학년을 다닐 때가 89년, 전교조가 결성되고 한참 초기 싸움을 벌이던 시기였다. 한번은 교장선생님이 조회시간에“우리 학교에는 자랑스럽 게도 전교조가 없다” 는 얘기를 했는데, 그 얘기를 들은 서영아는 정말로 너무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다. 한 편으로는“젊은 선생님들이 왜 그런 것도 안할까?” 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드러내지는 않았다. 91년 에 재수해서 대학을 갔는데, 그 때에도 서영아는 데모하는 대학생들을 몹시 싫어했다. 그때가 한참 백골 단에게 맞아죽은 강경대 열사 정국이어서 전국 대학가에서 연일 데모가 벌어지고는 했다. 학원 마치고 집 에 가려고 차를 기다리면 대학생들의 데모 때문에 차가 오지 않았다. 그러면 열 받은 서영아는‘대학생들 이 공부 안하고 데모질한다’ 고 욕을 해댔다. 그런 소녀가 대학에 들어가서 운동권 동아리를 찾아가게 되었는데 그 이유인즉 이렇다. “대학을 갔는데, 데모하는 애들 욕하러 가야 하는데 알아야 욕을 하니까. 총 다섯 개 동아리에 들었어 요. 문학, 컴퓨터, 검도, 학술, 그 담에 또 하나가 있는데… 학술 이념분과 동아리가 다섯 개였는데, (손가락 을 짚어가며)“어디를 갈까요 알쏭달쏭 합니다” 해서 한국사회연구원에 들어간 거야. 매일 한 시간씩 해서
다섯 군데 가서 다 들었어요. 약 한달 정도 했어요. 그러다가 이 동아리에 정착을 하게 된 거죠. 그러면서 이 길에 들어온 거예요.” 이미 운동권 욕해주겠다던 목적은 선배들하고 공부하면서 다 잊어먹었다. 엠티가서 선배들하고 죙일 공부하는 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다른 데는 낮에 놀고 밤에 술 먹고 하는데 우리는 공부를 했다 는 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더라구요.’물리학과를 다녔던 서영아는 과학을‘억수로’좋아해서 아침마다 도서관에 가서 과학도서 <사이언스>를 즐겨 읽었지만 사회과학 서적은 어려웠던 모양이다. 선배들과‘학 습’ 을 할 때면 서영아는‘요기서 요 문구’ 를 질문하는 수준이었는데 동기는 문장 전체의 의미를 질문하더 란다. 동기와 비교되는 학습수준에 서영아는 스트레스를 받아 학습을‘째기도’했다. 하지만 그 동기들 중 에 지금까지 운동에 남아 있는 사람은 당시의 학습 부진아 서영아 뿐이다. 그 까닭을 한 선배는 그렇게 말 했다고 한다.“그 사람들은 머리로 운동하고 우리는 가슴으로 운동했기 때문” 이라고. 서영아도 그 말이 맞 다고 생각한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심재옥,“그렇지.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라잖아.”옆에 60
서 그 말을 듣던 최혜영이 쐐기를 박는다.“아니야.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가슴에서 손, 발까지야.”그 렇다. 그러고 보면 아직까지도 이 길에 있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멀다는 그 거리를 극복한 사람들이 구나. 머리로 알았던 것으로 가슴 뛰는 열정을 만들고, 다시 손과 발을 움직이며 세상을 바꾸기 위해 뛰어 온 사람들이구나. 그 사람들처럼 서영아도 참으로 보석 같은 사람이구나.
“저도 이제 정규직이 되고 싶습니다” 대학 졸업 후 서영아는 학원 강사를 10년쯤 했다. 2004년 1월에 민주노동당에 입당하고 여름 즈음 사 는 게 너무 지겨워 다시는 학원계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학원을 그만 뒀다. 모아놓은 돈을 다 쓸 때까지 놀 작정으로 인도로 떠났는데 그 때 마침 민주노동당 부산시당에서는 출산휴가에 들어가는 정 책부장의 대체인력을 뽑고 있었다. 서영아는 빚진 마음을 갚겠다며 3개월 정도만 일할 작정으로 인도에 서 돌아와 임시로 정책담당자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3개월 뒤, 서영아는 임시직이 아니라 붙박이 정책부장으로 채용되었다. 대체인력 3개월 임시직을 뽑을 때는 4:1이던 경쟁률이 정규직인 정책부장을 뽑을 때는 달랑 서영아만 지원했기 때문이란 다. 이력서 자기 소개서에“저도 이제 정규직이 되고 싶습니다” 라고 썼다. 그는 원대로 정규직이 되었지만 근로조건으로 따지자면 비정규직보다 더 나을 게 없는 진보정당의 당직자 자리였다. 그렇게 서영아는 3D
2009년 8월 4대강반대 낙동강 퍼포먼스. 페트병을 엮어 만든 보트를 타고 낙동강을 건넜다. (사진 : 노동당 부산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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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종이라는 정치에, 그것도 당직자로서의 길을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맨 처음 받은 직책은 민원부장이었다. 경제민주화운동본부에서 실시하는 파산상담, 노동상담 교육도 남원연수원서 받았다. 그 후 일주일에 한 번씩 파산자 상담도 하고 법률구조공단도 방문하고, 공단에서 넘기는 상담자를 도와주는 일도 했다. IMF 뒤여서 여기저기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 일을 안했다면 지금까지 내가 당 활동을 안했을 거예요. 정당활동은 시민을 만나는 일인데 나는 대 외적인 활동을 한 셈이죠. 사람 도와주는 일의 희열감도 높았고 사는 얘기 듣는 것도 좋았어요. 당에 파산 상담을 하러 온 사람들 열 중 여덟은 여자였어요. 변호사나 법무사를 만날 돈이 없는 사람들이 돌고 돌아 당으로 상담하러 오는 거죠. 이 사람들 사연은 전부 남자를 잘못 만나서 파산한 케이스들이야. 남편이든 남자친구든.”
진보정당이 가장 많이 성장하던 시기에, 당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실제로 어려운 사람들의 문제를 돕는 일을 서영아는 아주 좋아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일이 단순한 봉사활동이 아니라 국가 가 해야 할 정책과 법으로 입안하고‘정치’ 로 연결시키는 활동이었다는 게‘억수로 좋았다.’당이니까 할 수 있는 일, 단체는 할 수 없는 일. 서영아가 아직도 정치에 남아 진보정당의 성장에 삶을 바치는 이유도 그런 활동을 제대로 잘 하고 싶기 때문이리라.
후보가 제일 힘들다는 걸 이제 알았다 이번 지방선거는 어땠을까? 서영아는 2006년 수영구 기초비례 후보, 2010년 남구 광역의원 후보 출마 에 이어 이번 지방선거에 세 번째로 출마했다. 2010년 광역의원 후보로 출마했을 때는 한나라당 후보와 1:1로 붙어서 40.88%를 득표했었다. 그때는 광우병 쇠고기 파동이 있었던 직후여서 보수적인 부산에서도 너나없이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욕할 때였다. 당에서 3명의 기초의원을 당선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거의 전 지역구에 후보를 내는 구도 상의 큰 변화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부 산지역 분위기도 많이 바뀌어서 어느 선거 때보다도 힘든 선거였다. 서영아는 부산 남구의 용호1동 기초 의원 후보로 출마했다가 4.7%의 득표를 얻었다.
“2010년도 유세 때 시민들의 분위기와 이번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어요. 그 때만 해도 한나라당 이명박 이 싫어서 악수해주고 그랬는데, 이번에는 싫어한다는 분위기가 너무 많았어요. 나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 구요.‘그래, 어느 당이고?’ ‘아, 노동당입니다’그랬더니‘안되겠네’이러면서 바로… (가버리고.) 세월호 얘기하는 사람도 많았고. 박근혜 책임이냐? 노무현 때부터 책임이다. 박근혜가 무슨 책임이냐, 공무원이 잘못한 거지, 라고 얘기해요.” 62
2014년 남구 기초의원 출마 당시 선거운동 모습 (사진 : 노동당 부산시당)
“ ‘정책이라는 것이 정말 필요가 없구나’생각했어요. 대선이나 시장선거 같이 큰 선거에서는 가능한 데, 구청장급만 해도 센세이셔널하지 않으면 아무 관심이 없어요. 특히 부산 같은 경우는 버스환승요금이 라는 이슈가 있어요. 교통수단을 바꾸면 200원이 붙어요. 부산이 제일 높아요. 저번 선거에 나왔을 때 줄 기차게 이야기하고 서명도 받으러 다녔는데, 사람들이 관심이 없는 거죠. 쓰레기봉투 값이 서울의 두 배 예요. 부산은 440원이에요. 그래서 이번 선거에도 갖고 나왔는데 관심이 없어요….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중앙정치에 휩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게 당선 가능성인데, 우리는 정당이 작고 당선 가능성이 낮으니까. 다수가 뉴스에 많이 나오는 중앙정치에 많이 휩쓸리는 거죠.”
어차피 어려울 거라는 각오로 마음을 다잡고 시작한 선거였다. 선거비용도 기탁금을 포함해서 500만 원도 채 안 썼다. 후보등록하고 명함 찍고, 사무실 얻고 유급 사무원 두 명에 현수막 한 개, 4페이지짜리 공보물이 전부였다. 유세차는 바퀴 네 개짜리 까발리아 자전거를 썼다. 당이 어려우면 알아서 당 상황에 맞추는 많은 여성 활동가들처럼 서영아도 그랬다. 어차피 어려움을 각오하고 뛰었던 선거였지만, 확연히 달라진 지역 분위기, 후보 혼자 동네를 돌아다니며‘노동당? 안되겠네’ 라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듣고 다닌 선거였으니, 참담한 마음이 왜 없었을까?
“선거기간 중에는 그런 게 없었구요. 선거 끝나고 개표 결과를 보고 많이 슬펐죠. 내 표를 보고 우울한 건 아니었고 당 전체 결과를 보고 많이 우울했어요. 광역비례 결과를 쫙 보는 순간, 아… 정말 앞으로는 희 청소년 진보정치 열전 63
망이 없겠다…. 4%도 절망적인데 이게 더 절망적이었어요. 용호동에 살고 있는데, 바깥엘 못 나가겠는 거 야. 특히 내가 사는 집 근처에 공원이 있는데, 선거 기간 동안 할매 할배들, 애들 놀이터에 정말 많이 갔거 든요. 우리 동네 슈퍼에도 못 가겠더라고요. 한 2주 정도 밖에 못 나갔어요.”
씩씩한 서영아였지만, 어차피 어려움을 각오했던 선거였지만 서영아는 많이 울었다. 애초 광역 2% 지 지율 달성이라는 당 선거기조에 대해서 비판하는 당원들을 설득했던 서영아였다.‘당 공통의 목표는 이것 밖에 없다’ 고 당원들을 설득했었지만, 선거 후반으로 가면서 점점 더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이 느껴졌을 때 선거기조의 문제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선거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지라도‘우리는 망했어’ 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해주는 최소한의 출구전략, 심리적 지지 방안이 없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 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선거 끝나고, 후보가 힘들다는 거 이제 알았어요. 선거 이후 후폭풍이 있는데 그걸 다 후보가 받 아야 돼. 이래서 후보가 힘들구나. 선거 끝나고, 공인이 되는데 그걸 감수해야 되는데, 그게 너무 힘들더 라구요. 2010년까지는 후보가 제일 쉽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선거는 후보가 제일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어 요.”
그런 상황에서 서영아를 지탱해 준 건 주변의 동지들이었다. 멀리 서울에서 김일웅 위원장이 찾아와, 4% 인간이라고 놀리며‘아무도 못 알아본다’ 고 얘기해 준 것도 큰 위로가 됐다. 부산시당 당직자들과 일 본을 가서 끝도 없이 사는 얘기를 나눴다. 최근에는 친한 선배의 후원으로 여행도 갔다 왔다. 사람들과 뒤 섞이며 선거 직후의 우울감은 많이 벗어났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갈피를 못 잡고 있다.‘당의 전망이 안보이니까 내 전망도 안보이는’그런 상황이다.
당답게 정치를 하고 싶다 선거 후 부산시당 집행부는 모두 사퇴했고 현재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부위원장을 맡았던 서영아도 10년 당직을 내려놓고 사퇴했다. 선거패배에 대한 책임론의 의미가 없지 않다. 그러나 그보다도 당의 역동적 발전을 만들 계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더 크게 작용했다. 10년 동안 당의 온갖 일 을 했으니 웬만한 일이야 누구보다도 더 잘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당이 어려운 이때, 베테랑 활동가가 더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영아는, 지금 당은 물갈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사람, 새로 운 시도, 당의 새로운 변화를 위해서 자신을 내려놓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10년 당직을 내려놓은 지금, 지난 당 활동에 대한 회한도 생긴다. 좀 더 잘했으면, 좀 더 당답게 잘 활동 했으면 하는 반성도 한다. 64
“2005년, 부산지하철 매표소 투 쟁이 있었어요. 지방선거 앞이었거 든요? 그때 제가 대책위에 들어갔어 요. 매표소를 없애서 이 사람들이 해 고되고 등등. 당 활동한 지 1년도 채 안되었을 땐데 그런 느낌을 받았어 요. 그땐 시의원도 있었고 정당이라 면 연대 말고 정책적으로 대안을 내 놓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고민을 그 때부터 했었거든요. 우리 당도 나도 그런 실력이 되지 못했죠. 시다바리 하고, 시민단체에서 온 사람하고 정 당에서 온 사람하고 아무런 차별성 이 없는 거예요. 그 이후에도 계속 그래요. 중앙당도 그렇고 조승수 있 을 때도 못했고. 지금 하는 일이 뭐 예요? 연대 말고 하는 게 없어요. 세
“당이 진보정당이라고 하면 언론에서 받아주든 안
월호도 그렇고, 그런 식의 정당으로
받아주든, 최소한 부실하더라도 정책을 낼 그런 실
서의 모습, 정당이 해야 할 일이 너
력을 갖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무 부재한 거 아닌가? 저는 당이 진 보정당이라고 하면 언론에서 받아 주든 안받아주든, 최소한 부실하더라도 정책을 낼 그런 실력을 갖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서영아가 하고 싶었던 정치는 원래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첫 당직이었던 민원부장 일을 하면서부터 그런 생각은 더 확고해졌을 테다. 그러나 계속되는 당의 혼란, 당세의 축소, 줄어든 당직자들의 빈자리를 메우고 발등의 불로 떨어지는 일 처리가 당의 주요한 일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당의 정책활동은 제도권 내에서의 통로를 갖지 못하면서 힘이 떨어졌고 대중들을 상대로 하는 정치활동의 긴장감도 잃어버렸다.
“당직자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제가 한 10년 했잖아요. 처음에 민노당 시절, 그때 젊은 친구들이 고민하면 적극적으로 (당직을)‘땡겨’앉히려고 했어요. 당이 커 가면 당 활동하는 사람들을 더욱 더 필요 로 하고 구심력을 갖고 쫙쫙 끌어들일 것이다, 적극적으로 해라, 라고 했었어요. 지금은 누가 나한테 얘기 하면 인간적으로는 하지 말라고 하고 부위원장으로는 하라고 해요. 당 활동가가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청소년 진보정치 열전 65
이게 힘든 거죠. 경제적인 것만 힘든 게 아니라 교육이 없어. 삼성도 사원 재교육 열심히 시키는데.”
서영아는 부산시당의 문제가 비단 부산시당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선거 끝나고, 하다못해 힐링 조차도 하지 못했던 당의 상황이 계속되면서 당 활동가들 전반이 정말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이다. 서영아 의 말을 들으면서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언젠가부터 당직자들에 대한 교육이 없어졌다.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조직활동도 침체되어 있다. 성평등 교육이나 장애인권 교육, 게다가 총무,회계, 조직, 정책 등 각 사업 담당자들에 대한 교육이나 회의, 교류도 없어진 지 오래다. 2012년 총선 이후 확연하게 축소된 당 세는 전국적으로 당직자들 간의 교류나 사기진작은커녕 당의 기본적인 소통, 혈액순환조차 어렵게 하고 있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 한다고, 어려워지는 당 상황을 온 몸으로 감당해온 당직자들의 외롭고 힘겨운 삶이 이제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무거웠다.
여자 나이 40이면 연애 비수기 서영아와의 두 시간 인터뷰가 내내 무거웠다. 어떤 농담도 빛의 속도로 받아치는 서영아의 입심 덕분 으로 우리는 간간이 신나게 웃기도 했다. 하지만 당에 기대 살았던 서영아의 삶이 힘겨운 것은 그만큼 당 이 힘겹다는 것을 의미함을, 그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다. 서영아가 흘렸던 굵은 눈물만큼이 나 아직도 쓰라린 상처가 만져지는 것 같다. 기분을 전환할 겸 서영아의 연애 얘기로 화재를 돌렸다.
“연애는 너무 많이 했어요. 너무 많이 해서… 결혼에 대해서 이러저러한 생각이 있지는 않아요. 근데 이제 허벗어요.‘망했어요’ ( 라는 부산사투리란다.) 저는 그래서 마흔 넘으면서 사람들이 연애 얘기를 하면, 여 자 이 나이는 연애 비수기다. 왜냐하면 30대에는 공급이 좀 있잖아요. 마흔 들어가면 공급 자체가 줄어들 고 다시 돌아온 애들도 이때는 애들이 어려. 이제 50대를 봐야지. 잘 참고 견디면 언젠가 성수기가 오겠 지, 뭐.”
서영아다운 씩씩함이고 때를 볼 줄 아는 현명함이다. 당도, 연애도 비수기라는 서영아지만 사람들 속 에 둘러싸인 삶만큼은 여전히 성수기인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서울에 계신 팬 여러분, 보고 싶은 사람 들은 댓글을 올리시오~” 라는 페이스북 글만으로도 팬들이 뒤풀이에 합류하더라. 당 활동 10년, 서영아는 확실히‘사람’ 을 벌었다. 이제 사람들과 더불어 다시 한 번 진보정치의 성수기를 만들 일만 남았다. 전국 의 노동당 서영아들이여, 힘들 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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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트콜텍을 읽는 열두 개의 시선 ⑧
같은 운명을 지닌 다른 싸움-콜트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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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르포
콜트콜텍을 읽는 열두 개의 시선⑧
같은 운명을 지닌 다른 싸움 콜트이야기2⃞ 이선옥 기록 노동자
차라리 나았던 시절 노동자들이 투쟁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심각한 상황인데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콜트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랬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공장 출입이 막히면서 파업 아닌 파업에 들어가게 된 1988년. 조합원 80여 명이“죽어도 공장 안에 들어가서 죽어야 한다” “아니다, 밖에서 싸워 이겨서 들어가야 한다”치열하게 갑론을박을 벌여 결국 밖에서 싸우다 들어가 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 전에 이미 공장 진입을 시도했다가 사지가 들린 채 내던져진 경 험이 있던 터라 섣불리 공장에 들어가기가 두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돌까지 던져가면서 실컷 싸우고 밤에 공장에 갔는데 안이 조용했다. 계 획과는 달랐지만 80명 모두 그 틈을 타 공장 담을 넘어 진입해버렸다. 그런데 들어가 보니 정말 아무도 없었다. 치열한 토론 끝에 안 하기로 한 일. 모두 두려워 망설이던 공장 진입을 어쩌다보니 해버 렸고, 전투태세로 비장하게 들어갔는데 치밀하게 지키고 있는 줄 알았던 공장 안에는 막상 아무도 없는 당황스런 상황. 80명이 긴장하며 담을 넘는 순간과 그 극적인 장면이 무색해지 는 진입 후의 뻘쭘한 상황이 그려져 피식 웃음이 났다. 박영호 사장과 본사 공장에서 교섭했을 때에는 말이 안 통하는 회사 때문에 교섭대표로 나간 여성 간부가 맨 손으로 유리창을 깨고, 사무장은 죽는다고 몸에 기름을 들이부었다고 한다. 그런데 신나가 아니라서 그만 불발되고 말았단다. 이 자리에서 죽겠다며 몸에 기름을 들이부었는데 기름 종류를 잘못 골라서 불발이 되었다니, 천만다행이긴 하지만 부은 사람 도, 불발된 걸 보는 사람도 얼마나 놀라고 황당했을까를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노동조합이 생기자 박영호 사장은 공장을 따로 만들어 비노조원들에게 노조원들이랑 분 68
리해서 출근하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노조는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사장의 완강한 태도에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웠던 노동자들은 노조를 탈퇴했고, 사장은 그 내용으로 공증까지 했다. 그는“나는 30대에 평 생 먹을 거 다 벌어놨으니 아쉬울 게 없다. 틀림없이 노조 있는 공장은 문 닫고 여러분이랑 따로 공장을 내 겠다”약속했다. 그런데 노동조합이 투쟁해서 결국 교섭 끝에 공장에 복귀하자 비노조원들이 1공장에 사 장을 감금하고 위협했다. 공증 내용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우습게도 이번에는 엊그제까지 서로 원수 관계 였던 노조원들이 경찰과 함께 감금된 사장을 구하러 갔다. 이제 빛바랜 기억으로만 남은 일들이라 웃을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컨설팅 회사를 고용해 치 밀하고 잔인하게 노조를 파괴하는 요즘 기업들의 행태를 보면, 노조도, 회사도 서로 좌충우돌하던 그 시 절이 차라리 그리울 지경이다.
노조 파괴라는 비효율 1988년 4월에 민주노조를 만들고 석 달 동안 공장 밖에서 싸운 끝에 콜트악기 노동조합은 공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지역연대 투쟁의 성과이기도 했다. 이들은 그 해 10월 단체협상을 체결했다. 복귀해서 도 석 달을 더 싸웠다. 비조합원들을 가입시켰고 끝내 가입하지 않은 10명 정도를 빼고는 유니온샵(입사와 함께 자동으로 노조 조합원이 되는 제도)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콜트악기 노조는 2008년까지 우여곡절
을 겪으면서도 20년 가까이 민주노조로 활동했다. 방종운 지회장은 2002년도에 지회장을 했다. 노동조합이 20년을 활동하는 동안 회사도 물론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민주노조 대부분이 그렇듯 콜트 악기 회사에게 노조는 눈엣가시였다. 특히 박영호 사장은 노조를 지독하게 싫어했다. 생산에 차질을 빚어가면서까지 노조를 깨 기 위해 노력했다. 방종운 지회장은 아마도 그가 노조에 졌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 을 거라고 짐작한다.
민주노조가 대부분 그렇듯 콜트악기 회사에 게 노조는 눈엣가시였다. 특히 박영호 사장은 노조를 지독하게 싫어했다. 생산에 차질을 빚 어가면서까지 노조를 깨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의 경영인들, 특히 박영호 사장처럼 자수성가한 기업가들은 회사가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노동조합을 합리적인 경영의 파트너 로 인정하기보다는‘내 재산 빼먹으려는 나쁜 존재’ 로 사고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회사의 주인인 자신 에게‘조직’ 적으로 대항하는 노조에 대해 이성보다 감정이 먼저 거부감을 갖는다. 이들이 자주‘괘씸하 다’ 는 말을 쓰는 것은, 자신과 기업을 분리하지 못하고 노동자를 마음대로 부리는 머슴쯤으로 여기는 사 고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노조를 깨는 데 드는 비용이 노조를 인정하고 공생하는 비용보다 더 큰데도 필사적으로 노동조합을 깨 려는 경우를 보면, 보통 사장의 고집스런 감정이 얽혀있을 때가 많다. 그러면 아무리 노력해도 잘 풀리지 노동르포 69
않는다. 사장 한 명의 결심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인데 노동자 수 백 명이 죽을힘을 다해 싸우는 비효 율성은 제도가 아니면 강제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노사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계몽하면서, 대부 분 노동조합에게 투쟁 대신 화합하라고 한다. 소수인 사장들에게‘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노동3권을 지 켜야 한다는 것, 노동조합을 기업 경영의 중요한 파트너로 인식하고 협상해야 한다’ 는 걸 계몽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일 텐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해고한 노동자를 복직시켜 정년까지 고용했을 때 들어가는 비용보다, 노조파괴 컨설팅을 받고 용역깡 패를 고용하는데 쓰는 수십억 원(때론 수백억 원)이 더 큰데도 이걸 선택하는 이런 비효율을 시장주의자들 조차 지적하지 않는다. 이 지독한 비효율이 정서적으로, 제도적으로 무리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큰 이 유는,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이 남녀노소, 보수진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노동조합에 엄청나게 큰 혐오감 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날마다 확인한다. 이런 혐오감을 깨는 임무마저 노동조합은 지고 가야한다. 그래서 고달프다.
누구의 고집이 더 정의로운가 “박영호 사장 아버지가 옛날에‘수도피아노’ 라는 회사를 경영하다가 망했는데 그걸 노조 때문이라고 했대요. 그래서 자기는 절대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고 늘 말했어요. 박영호 사장은 독특해요. 술이나 여자 같은 유흥을 멀리하고, 골프도 안 치고 그저 돈 버는 일만 해요. 기업가들끼리 교류 모임에도 잘 안 나간대 요. 관공서에 연말연시 구두티켓 한 장 안 돌리는 데가 콜트악기에요. 옛날에 정보과 형사가 찾아와서 하
노조파괴 문제에 대한 정치권과 정부의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모습. 노조와 공생하는 비용보다 노조를 깨는 데 드는 비용이 훨씬 더 크다. 이런 비효율성은 제도가 아니면 강제할 수 없다. (사진 : 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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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말이 연탄 한 장 안 사주는 사람이 콜트악기라고 그럴 정도였어요. 그만큼 인색하다고. 지금 콜텍 문화 재단 만들어서 돈 쓰는 거 보고 우리가 노조 덕에 개과천선 했다고 그런 말을 할 정도예요. 물론 본인은 그 걸 청렴결백이라고 말하겠지만.” 방종운 지회장만큼 박영호 사장도 독특한 사람이다. 고집스런 두 캐릭터를 보면 평행선을 달리는 열차 같아서 이 싸움이 어떻게 끝날 수 있을까 아득해진다. 박영호 사장도 방종운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다고 지회장 스스로 얘기한다. 서 있는 자리가 다를 뿐 둘 다 타협 없는 문제적
서 있는 자리가 다를 뿐 둘 다 타협 없는 문제적
인간이란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문제적
인간이란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문제적 인간이
인간이 진짜 문제가 아니라, 누구의 고 집이 정의로운가에 대한 판단이 더 본질 적인 문제이다.
진짜 문제가 아니라, 누구의 고집이 정의로운가 에 대한 판단이 더 본질적인 문제이다.
콜트악기는 1990년도에 회사가 어렵 다며 감원을 했다. 돈이 많은 회사라 어음결제가 없었고 월급도 꼬박꼬박 제 날짜에 나왔다. 사장도 그게 자부심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노조 활동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감원 명단에 넣어 해고하려 했다. 강제사 직을 받으려는 걸 노조가 싸워서 희망퇴직으로 막았다. 하지만 오히려 회사에 충성하던 사람들이 희망퇴 직을 하고 나갔다. 그 후에도 계속 여러 시도가 있었다. 2002년도에도 파업을 했고 2005년에도 파업을 했다. 회사가 사 정이 어렵다며 임금동결을 주장했다. 그런데 교섭할 때 보니 8억9천만 원이라던 당기순이익은 29억 원이 었고 배당을 27억 원이나 받아간 사실이 드러났다. 회사는 실수로 잘못 표기한 것이라 했고, 노조는 공개 적으로 사과공문을 발표하고 12억 원이 더 있으니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회사는 이를 거부했고 노조는 파 업에 들어갔다. 결국 석 달 만에 성과급 100%와 사과공문, 임금인상을 받아낼 수 있었다. 노동조합은 회사를 신뢰할 수 없었고, 회사는 여러 차례 시도가 노조 때문에 제대로 성공하지 못하자 극단적인 방법을 들고 나오게 된다. 공장을 폐업하고 전원 정리해고를 한 것이다. 2007년, 인천의 콜트악 기와 계룡시의 콜텍악기 노동자들은 공장폐업이라는 공고문 앞에서 망연자실해졌다. 그 순간부터 오늘까 지 이들의 삶은 멈춰 있다. 콜텍 노조는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아 폐업을 맞았지만, 콜트악기 노조는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래도 민주노조를 지켜온 전통이 있다. 나는 그게 투쟁하는 데 조금 더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는 데, 지금 콜트악기 노조의 상황을 보면 딱히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부당해고 소송의 주체로 남아 있는 조 합원이 이십여 명 있고, 실제 투쟁에 나서고 있는 조합원은 아주 소수다. 생각해보면 8년이라는 세월 앞에 버틸 장사가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소송마저 곡예를 타고 있다. 2012년 2월23일, 대법원은 2007년 4월 콜트악기의 정리해고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대법원 앞마당에서 만세를 불렀다. 여성 조합원들은 너무 기뻐서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같은 노동르포 71
날 오후, 콜텍악기의 해고는 고법의 승소판결을 뒤엎고 파기환송 되었다. 이번에는 콜텍악기 여성 조합원 들이 울었다. 하지만 잠시 기뻤던 콜트악기 노동자들은 다시 슬픔에 빠졌다. 2012년 5월 31일, 회사는 이들을 다시 해고했다. 해고 무효 판결을 받고 공장에 출근 한 번 못 한 노동자들도 해고가 가능하다는 걸 콜트악기 사 례를 보고 처음 알았다. 재판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고, 지방노동위원회부터 중앙노동위원회를 거쳐 지 금 행정소송에 들어가 있다. 8년째 싸우고 있고, 그 중 5년 넘도록 소송투쟁을 해 겨우 대법원에서 무효판 결을 받아내도 3개월 후 간단히 다시 해고되는 삶. 이런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할 만큼 하셨으니 이제 그만 그 고통 에서 벗어나셨으면 좋겠다고, 만날 때마다 입 안에서 맴도는 말을 결국 삼키고 돌아온다. 내가 아니어도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은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돈은 가져가도 명예는 줄 수 없다 “복직하는 그날까지 끝까지 싸우겠다” 고 말하는 방 지회장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공장이 이미 없어진 상황인데 솔직히 복직은 불가능하지 않느냐고, 당신이 말하는‘승리’ 란 어떤 것이냐고.
“정리해고를 철회하든지, 1차 해고자라도 복직을 하는 겁니다. 2007년 4월 12일 1차로 56명이 해고됐 어요. 2008년 6월에 59명을 2차로 해고했는데 그 때는 희망퇴직을 받는다고 했어요. 2차 때 희망퇴직을 많이 해서 생산 체계가 무너져 공장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고 공고를 했는데, 그럼 1차 해고하고 나서 희망퇴직 안 받고 적정 인원으로 공장을 가동했으면 되는데, 자기들이 해고를 더 해놓고 노동자들한테 잘 못을 덮어씌우는 거죠. 조선소나 자동차 회사 같으면 공장을 다시 돌리라는 우리 주장이 무리라고 할 수 있어요. 근데 콜트악 기는 100~200명 규모에요. 한 달이면 새로 공장을 꾸릴 수 있어요. 지금껏 사장도 공장을 숱하게 문 닫고 다시 열고 그래왔어요. 부평에도 지금 1공장만 매각했지 2,3공장은 임대를 주고 있어요. 업종도 악기제조 업에서 부동산업으로 변경해놓고. 나는 절대로 박영호 사장이 콜트라는 브랜드를 포기할 거라고 생각 안 해요. 2012년 12월 13일이 콜트 라는 상표권등록이 종료되는 날짜인데, 연장 등록을 했어요. 10년을 더 쓸 수 있어요. 대법원 판결나니까 법적인 투쟁은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새로 시작하려 하는 거 같아요.”
위로금을 받고 합의하는 길도 있었다. 여전히 그 가능성도 없는 건 아니다. 회사는 지역 국회의원을 통 해 공장은 다시 안 돌릴 거지만 돈으로 합의할 생각은 있다는 얘기를 한다. 어떨 때는 힘들어서 그렇게 하 고 싶은 맘이 들기도 했다. 돈 얘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할 때도 많고, 회사는 콜트와 콜텍을 분리해서 해결 72
하려고 한다. 주위에서도 콜트와 콜텍이 지금 사이도 썩 좋지 않으니 콜트라도 먼저 해결하라는 말을 한 다. 그래도 콜텍과 함께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트레스가 엄청 크다.
“내가 비록 이 바닥에서 이름은 없지만 30년을 살아왔어요. 잘했든 못했든 30년 세월이 내 삶이에요. 마무리를 잘 못해서 30년 세월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요. 돈으로 합의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회사는 지금도 우리가 회사를 말아먹었다고 해요. 우리 삶의 터전을 왜 우리가 말아먹겠습니까. 억울합니다. 나 는 사장이 돈은 가져갈 수 있지만 좋은 기업가라는 명예는 못 가져가게 할 겁니다. 그거까지는 못 줍니다. 본인이 노조 싫어서 문 닫아놓고 왜 노조한테 책임을 돌립니까. 내가 가난하고 별 볼일 없어도 콜트악 기를 노조가 말아먹었다는 소리를 남길 수는 없어요. (돈으로) 합의 보는 순간 그게 사장한테 면죄부가 되 고, 나는 평생의 멍에로 가져갈 수밖에 없어요.”
나는 물론 그게 사장의 면죄부가 된다고도, 그에게 평생의 멍에가 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생각이 틀렸다고 말 할 수도 없다. 사장에게 명예는 허락할 수 없다는 말은, 그가 무엇보다 그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뜻도 된다. 사실 많은 해고자들이 그렇다. 그 간의 내 삶과 투쟁이 옳았다는
이동수 화백의 그림. 박영호 사장은 노동조합 활동이 일어나자 국내 공장을 닫고 해외로 이전했고, 이 과정에서 또 다시 해고가 발 생했다. (사진 : 콜트콜텍 공동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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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부심이 이들을 지탱하는 힘이다. 일상의 행복을 포기하는 대신 이들은 고통스런 명예를 얻었다. 정의로 운 삶을 산다는 것, 자존심, 대체 그게 뭐라고! 지금 콜트악기는 10월에 있을 국정감사에 대비해 박영호 사장을 증인으로 신청하려 한다. 금속노조에 서는 장기투쟁 사업장의 사례를 국감에서 다루려 진행 중이다. 콜트악기는 악기 제조업을 포기하겠다고 해놓고 콜트악기 상표권을 연장했고, 지식경제부는 지난 2012년 콜트악기사에‘한국 세계 1등 상품’인증을 해주었다. 기타 제조를 안 하는데 이런 인증을 왜 받았 느냐고 하니 회사에서는 기업 비밀이라며 답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국감에서 따져볼 참이다. 또 2013년 4월에 예전 박영호 사장과 공동대표로 올라 있던 사람이 콜트악기 전 임원들 몇 명과 파주 에 기타공장을 차렸다. 그가“박영호 사장이 공장을 만들라고 해서 만들었는데 내수를 안 준다” 고 하더라 는 얘기를 들었다. 지금 콜트악기는, 콜트, 콜텍, 중국의 대련콜텍, 인도네시아 콜텍, 기타네트, 아발론, 콜텍MIC들로 구 성되어 있다. 박영호 사장의 동생과 아들, 아내 등이 감사와 대표이사들로 되어 있다. 콜트악기만 악기제 조업을 뺐고, 나머지는 업종이 모두 악기제조업이다. 재판부에 이런 정황들을 다 얘기했지만 결국‘구제 실익’ 이 없다는 판결을 받고 나니 허탈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오기가 생겨 더 포기하지 못한다.
장기투쟁이라는 외로움 심각한 상황인데 웃음이 나는 것과 반대로 아무것 아닌 상황인데 울컥할 때가 있다. 2012년 대법원 판 결이 있던 날, 현대자동차비정규직 불법파견 재판이 같이 열렸다. 엄청나게 많은 취재진을 보고 콜텍의 여성 조합원들이 말을 주고받는다. “나는 우리 일 취재하러 온 줄 알았어. 웬일인가 했네.(웃음)” “아유 순진하기는. 야, 우리한테 그럴 리가 있어!(웃음)” 취재하러 온 언론은 없었다. 6년 동안 무관심했던 언론이 갑자기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했을 그 마음. 세상 사람들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우리 일에 관심이 없다는 자조 섞인 농담들. 방종운 지회장이 주머니에서 꺼내는 콜트악기 관련한 서류들. 합의문, 등기부등본, 상표등록증 등등 접힌 자국마다 다 닳아 헤진 그것들을 볼 때도 울컥한다. 그가 보내는 문법도 맞지 않고 맞춤법도 틀린 절 절한 메일, 함께 받는 수십 명 넘는 수신자의 이름 속에 콜트악기 일에 관심 없을 것 같은 사람을 발견할 때, 그 아무것 아닌 일에 눈물이 나는 건 그들이 겪고 있는 외로움 때문이다. 자신들에게는 모든 삶을 건 전부인 이 일이 세상 누구에게도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 그것만큼 외롭고 쓸쓸한 일이 또 있을까. 깊은 밤, 농성장에서 그는 홀로 잠을 청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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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혁신, 어떻게 가능한가? 쟁점토론
1. 진보정당운동의 혁신은 진보정치 통일·재편으로부터 2. 제3지대 창당? 이루어질 수 없는 제안
쟁점토론 75
쟁점 토론
진보의 혁신, 어떻게 가능한가?
진보정당운동의 혁신은 진보정치 통일·재편으로부터 나경채 서울 관악구 당협위원장
몰락의 길을 걷는 진보정당운동 노동당은 지방선거 공식 평가서에서‘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서의 생존’ 이라는 목표달 성에 실패했다는 진단을 내렸다. 냉정하게 말하면 무의미한 정치세력이라는 뜻이다. 불가 능에 가깝지 않은가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100명에 가까운 출마자를 배출했고,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헌신적인 당원들의 선거운동도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말았다. 우리의 헌신은 왜 대중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는지에 대 한 냉정한 평가가 평가서에 서술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외의 다른 진보정치 세력 이 후한 평가를 받은 것도 아니다. 정의당의 경우, 현역 광역단체장 2석을 잃고, 경남과 울산 등 노동밀집지역에서 진보정 당들 중 최저 득표율을 기록하는 등 기대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이에 더해, 보궐 선거에서 노동당 김종철 후보가 줄곧 활동했고 출마선언까지 한 동작 을 지역에 노회찬 후 보를 출마시키는 1차 무리수에 이어, 새정치민주연합 기동민 후보와 정치적 결단에 의한 단 일화가 성사되지 않으면 자신이 사퇴하겠다는 2차 무리수까지 쓰고도, 나경원과의 1:1대결 에서 패배함으로써 야권연대 전략의 험난함을 확인했다. 당의 성장 경로로서 야권연대에 기반을 두고 실리를 챙기자는 것은 검토할 수 있는 기획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진보 정당으로서의 정치적·조직적 독자성뿐 아니라 실리도 확보되지 않았다. 통합진보당은 선거결과가 참담할 뿐 아니라 선거 직후의 여론지형에서 완전히 정의당에 추월당하고 있으며, 여전히 이 당의 계속성에 대한 사법적 판단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 76
다. 무엇보다 통합진보당의 생존은 대중적으로 엄호되 지 못하고 있다. 진보정당운동은 이제 몰락을 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너무 과한 규정이 아닌가 할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노동당을 포함해서, 진보정
진보정당운동은 이제 몰락을 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위기는 혁신을 통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당들이 수년 사이에 대중적으로 제기해 유의미하다는 평가를 받은 문제의식이나 정치적 성과가 매우 적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세 개의 진보정당 전체가 지난 지방선거에서 얻은 9%라는 수치는 감지덕지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위기는 혁신을 통 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진보정당의 분열이 진보정당운동의 위기를 생산한다 나는 노동당이 다양한 형태의 위기에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한다. 지지율·당원·당권자의 3중 감소, 사고당부의 누적 증가, 정책 및 기획역량의 감소, 당 내부의 심각한 분열 등이 그것이다. 나는 노동 당의 위기가 노동당을 일으켜보려는 열정이나 전략적인 기획이 부족한 탓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것이 문 제라면, 서로 다른 목표와 기본기획에 입각하여 임했던 지방선거에서 노동당이 위기를 맞았을 때 다른 진 보정당은 약진을 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노동당을 포함한 진보정당들의 위기는 구조적인 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 구조를 허물고 새로운 조건과 상황을 만들 수 있는가 라는 물음에서 노동당과 진보진영의 혁신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것 이다. 진보정당운동의 위기를 생산하는 이 구조의 정체는 진보정당들의 분열적 상황이다. 우리는 선거나 각 종 현안에서 다른 진보정당과의 차별성을 항상 고민해야 한다. 이 차별성이 자연스러울 때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없는 차별성을 억지로 만들어야 할 때에는 곤혹스럽다. 노동당의 지난 지방선거 정책은 구 체적인 내용과 강조하는 정책 정도의 차이 외에는 다른 진보정당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에 대응하는 투쟁에서 보인 노동당과 다른 진보정당의 주요 방침은 거의 하나도 다르지 않다. 노동조합 조합 원들, 투쟁하는 민중이 진보정당을 지지하
진보정당들의 분열은 경쟁력 있는 진보주의 자들을 양산하기 보다는, 진보정당 상호간의 적대와 증오를 재생산하는 데 더욱 기여하고 있다. 분열적 구조는 적대를 생산하고, 적대는 이 구조를 더욱 고착화한다.
고자 할 때 그들에게 보이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차별성’ 이 아니라,‘분열’ 이었다. 이 분열적 구조는 사회양극화의 주범을 단죄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경쟁력 있는 진 보주의자들을 양산하기보다는, 진보정당 상호간의 적대와 증오를 재생산하는 데 더 쟁점토론 77
진보혁신과 지방선거 공동대응을 위한 진보진영 합동회견. 왼쪽부터 양경규 노동정치연대 대표, 이용길 노동당 대표, 천호선 정의 당 대표, 손호철 진보교연 상임대표 (사진 : 참세상)
욱 기여하고 있다. 분열적 구조가 적대를 생산하고, 이 적대는 이 구조를 더욱 고착화한다. 대중 앞에서 쉽 게 설명하지 못하는 이 분열적 상황이 양산하는 적대는 확산되기도 한다. 이 분열은 노동, 농민, 빈민 운동 단체에까지 확산되어, 이들 민중운동 단체들 내부의 정치적 논의를 왜곡시키고, 현안이 발생하면 이전보 다 훨씬 쉽게 보수정당 국회의원을 찾게 한다. 그리고 이것이 간단히 정당화된다.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이 위력적이지 않은 것은 민주노총에도 책임이 있지만,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는 것이다. 민중운동 진영의 쇠퇴가 주는 영향은 다시 진보정당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어떤 당은 대중성을 말하면서 오른쪽 으로 갈 것이고, 어떤 당은 원칙을 말하면서 왼쪽으로 갈 것이다. 이런 것은 모두 대중성도 아니고, 원칙도 아니다.
진보정당운동의 혁신은 진보진영을 통일과 재편으로부터 그런 의미에서 진보정당운동 진영의 이 구조적 사슬을 끊기 위한 혁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혁신의 시작은 필연적으로 진보진영의 통일과 재편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2013년 봄, 노동당 전국위원회는 당선되고 처음 소집된 회의에서 당시의 진보정치 상황을‘누란의 위 기’ 라고 진단했고, 4대 원칙에 입각하여‘진보정치 결집’ 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보궐선거 의 결과를 두고 진행한 대표단 회의에서도 진보재편문제에 대한 당내 토론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78
9월 15일의 대표단 회의에서는, 진보혁신회의(준)가 노동당과 정의당에게 진보재편을 본격적으로 논의하 자고 한 제안에 대해 3기 1차 전국위원회의 결정사항이 우리의 입장임을 재확인했다. 새삼스럽지만, 진보정치의 결집을 이루겠다고 임기 초반에 선언했던 당 대표단과 전국위원들에게 선 언의 재확인이 아닌, 진보정치 결집을 위한 그간의 노력과 그 성과를 묻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진보정치 통일·재편의 문제에 대해 다른 정치세력들과 협의할 필요성에 대해 공감한다면, 보다 세부적인 쟁점이 있을 수 있다. 어떤 방식으로 통일·재편을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며, 언제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 통일·재편된 당의 민주적 운영은 어떻게 보장하고, 그 명칭은 무엇으로 할 것인가 등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세부적인 쟁점에 앞서 서, 나는 해를 넘겨 끌고 온 이 논의의 종결
진보결집을 위한 우리의 노선이 여전히 유효 한 것인가에 대해 이제 입장을 가질 때이다. 유효하다면 구체적 실행계획을, 더는 유효하
을 요구하고 싶다. 3기 1차 전국위원회가
지 않다면 마침표를, 아직도 시간이 필요하다
선언하고 대표단이 기회가 될 때마다 확인
면 사과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한, 진보결집을 위한 우리의 노선이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에 대해 이제 입장을 가질 때이다. 여전히 유효하다면 그 구체적 실행계획을, 더는 유효하 지 않다면 마침표를, 유효하지만 아직도 시간이 필요하다면 사과를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앞서 노동당의 위기는 노동당을 일으키기 위한 열정 부족과 전략기획의 탓은 아니라는 점에 대 해 이야기 했다. 노동당의 위기가 반환점을 찾지 못하는 것은, 노동당이 노동당 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정치운동 전체가 함께 통일·재편으로부터 혁신을 모색하게 될 때 노동당의 위기탈출은 시작될 수 있다.
쟁점토론 79
쟁점 토론
진보의 혁신, 어떻게 가능한가?
제3지대 창당? 이루어질 수 없는 제안 신석준 충북도당 사무처장
이루어 질 수 없는 제안 어떤 제안이든, 제안을 하는 사람은 자기의 제안이 받아들여지길 바랍니다. 그러나 제안 자의 바람만으로 이루어지는 제안은 없습니다. 그럴듯한 제안이 아닐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노동정치연대는 지난 8월, <진보정치의 재편 논의를 위한 기본 제안>(이하 <제안>)을 발 표했습니다. 일단 내용을 일정 중심으로 요약해보면 이렇습니다.
8월~9월 제안 → 9말 10초 진보혁신회의 결성 → 10월~12월 새 정당 건설(안) 마련 → 1월~ 2월 참여조직 의결 → 2015년 2말 3초 새 정당 건설
<제안>은‘진보혁신회의’ 의 위상이“신당결성 기구” 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진보혁 신회의(준)으로 함께 해 온 참여조직들도 이제는 보다 명확하고 분명하게 자기입장을 가져 주시기” 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애매한 상태를 청산하자는 주문으로 보입니다. 환영합니다. <제안>이 제법 과감합니다. 답변도 과감하게 하겠습니다. 물론 제 개인의 답변입니다. 저는 노동정치연대의 제안에 반대합니다. 게다가 이루어질 수 없는 제안이라고 생각합 니다.‘쫀쫀하게’일정상의 어려움을 들어 반대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속내를 분명 하게 드러낼수록 같은 당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한 정당에 모으겠다는 제안이기 때문에 반 대합니다. 현재 진보혁신회의(준)에는 정당으로서는 노동당과 정의당이 있습니다. 다른 조직들은 80
알 수 없으나, 최소한 <제안>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노동당과 정의당이 각각 합당에 동의하거나 새로운 정당을 함께 만들겠다는 당의 결정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단언컨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싫고 좋은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생각할 때 노동당과 정의당은 같은 정당을 할 수 없습니다.
싫고 좋은 문제가 아닙니다. 노동당과
굳이 먼 과거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최근 행태만
정의당은 같은 정당을 할 수 없습니다.
보아도 그렇습니다. 이번 추석 때 모인 집안 어른들이‘지금 야당 은 중앙정보부 돈받아 쓰던 유진산이의 사꾸라
굳이 먼 과거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최 근 행태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야당만도 못하다’ 고 탄식하더군요. <제안>도 새 정치민주연합을‘무기력과 국민들의 냉소대상’ 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의당은 7.30 재·보 궐 선거에서 바로 그런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들을 위해 거리낌 없이 후보사퇴를 했습니다. 적어도 진보정 당이라면, 그 국면에서 새정치민주연합과 거래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오죽하면, 한국 정치를 망쳐온 주범 새누리당에게‘뒷거래 정치’ 라는 조롱을 받겠습니까? 저는 정의당이 명색뿐인 진보정당이라도 계속 해 나갈지에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믿을 수 없으면 같 은 당을 못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정의당의 노회찬 전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의 김부겸 전 의원과 함께 ‘파일럿정당’ 을 공공연하게 입에 올리고 있는 형편입니다. 노파심에서 미리 말해 두지만,‘정의당이 새정 치민주연합과 합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통합하자’ 는 우스운 말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런 말도 들립니다.‘단순히 노동당과 정의당만 합치자는 게 아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합류시켜 새로 운 정당을 만들자는 것이다.’설득하고 싶은 심정이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제가 듣기엔‘갈수록 태산’ 입 니다. 정종권 당원은 지난 6월 노동정치연대에 제출한 지방선거 평가 토론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제3지대에서 새롭게 진보정당을 재구성하겠다는 의지로 모이고, 이러한 제3지대에 조직으로 합류가능한 곳은 조직적으로, 개인적으로 합류하려는 사람은 개인적으로, 단체나 무리로 참여하려는 데는 그 방식으로 참여하는 것이 형식적 내용적 대중적 측면에서 타당하다고 본다.
이른바 제3지대 창당론입니다. 그러나 이는 노동정치연대의 <제안>보다도 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 기입니다.
제3지대 창당론은 보수정치의 구태를 답습하는 것 제3지대 창당론에 대해 이야기하자니 서글픈 마음이 먼저 듭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습니까? 진 보정당이 보수정당에게 세련된 정치행태를 보여주어 억지로라도 따라하게는 못 할망정 그들이 하는 구태 쟁점토론 81
‘2014년 지방선거, 진보정치의 선거연대를 묻다’토론회. 왼쪽부터 이근원 민주노총 정치위원장, 권태홍 정의당 사무총장, 장석준 노동당 부대표, 윤현식 노동당 정책의장 (사진 : 참세상)
나 따라하다니요? 원래 제3지대 창당론이라는 것은, 보수정치권에서 몇몇 보스의 이해관계에 따라 당을 이리 쪼개고 저 리 합칠 때나 쓰던 수법입니다. 게다가 한 정당이 분당될 정도로 심각하게 충돌할 때나 떠도는 이야기입 니다. 조금 멀리는 지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대통합민주신당을 억지로 만들 때 썼고, 가까이는 지난 3월 민주당과 안철수 세력이 합칠 때 쓰려던 방법입니다. 2007년에는 유시민을 비롯한 일부 친노세력을 배제 하기 위해, 2014년에는 안철수가 흡수되는 모양새를 피하고 민주당이 받아온 국고보조금 축소를 막으려 는 꼼수였습니다. 투명한 의기투합이 아니라 음습한 모략이었습니다. 세간의 평가가 그렇습니다. 그렇게 생긴 당이니 무슨‘새정치’ 를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들여다봐도 제3지대 창당론은‘○
그냥 노동당과 정의당이 통합하고 여기에 몇몇을 좀 더 붙여 좀 큰 당 만들자고 하면 쉽게 알아들을 것이고, 차라리 솔직합니다.
X 문제를 미분방정식으로 푸는 일’ 입니다. 굳이 말릴 생각도 없지만, 참여할 생각은 더 더욱 없습니다. 당장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 라고 이렇게 틀고 저렇게 돌려 말할 것 없습 니다. 그냥 노동당과 정의당이 통합하고 여
기에 몇몇을 좀 더 붙여 좀 큰 당 만들자고 하면 쉽게 알아들을 것이고, 차라리 솔직합니다. 제3지대 창당론을 밀어붙이고 싶다면, 먼저 누구와 어떤 정당을 만들 것인지, 제3지대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누가 책임질 것인지, 거기에 합류하려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먼저 밝히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것 82
이 지금 당장 어렵다면, 제3지대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어떤 약속이 가능한지 밝히는 것이 최소 한의 도리입니다. 그저‘그런 사람 많다’ 고 큰소리 쳐서 될 일이 아닙니다. 아울러 말해둘 것이 있습니다.“사회주의, 사민주의, 생태주의, 페미니즘, (진보적 자유주의)의 공존이 되어야 하고 … 탈자본주의적 사회구조를 지향한다” 는 정도의‘말조각 맞추기’ 로 시작할 것이라면 사양합 니다. 그런 일은 이미 2011년에 신물 나게 겪은 '낡고 고루한' 주장의 반복일 뿐입니다.
옳고 그름, 이익과 손해 오늘날 진보정당의 쇠락과 패퇴는 결코 세력이 작아서가 아닙니다.‘정치를 혁신하고 세상을 바꾸겠다 더니, 니들도 하는 짓이 똑같다’ 는 진보정당 10년에 대한 동시대인들의 냉혹한 평가와 깊은 관계가 있습 니다. 온갖 편법과 당론불복이 난무했던 2011년의 통합논의, 부정경선으로 촉발되어 중앙위 난동으로 얼 룩졌던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셀프제명’ 이라는 희한한 수단까지 동원한 진보정의당의 탄생 과정 속 에서 많은 사람들이 진보정당에 등을 돌렸습니다. 노동정치연대의 <제안>이나‘제3지대창당론’ 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쓰라린 상처와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때 했던 이야기와 논리들이 다시 떠돌기 때문입니다. 제안 내용에서 지난날의 반성과 새로운 시대의 기획은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많은 사람들이 온 당치 않다고 생각하는 일을 추진할 때는 적어도 이득은 된다고 혹할만한 논리구조라도 가져야 합니다. 제 가 보기엔 그런 것도 없습니다. 더 길게 이야기하는 것도 결례일 듯하니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의 일화 하나 소개하며 글을 마칠까 합 니다. 다산이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큰아들 정학연(丁學淵)의 편지를 받습니다. 자신을 유배 보냈던 권력자들에게 간청해 유배에서 풀려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산의 답이 간명합니다.
천하에는 두 가지 큰 기준이 있는데 옳고 그름이 하나요, 이롭고 해로움이 다른 하나다. 이 두 가지 큰 기준에서 네 단계의 등급이 나온다. 첫째가 옳음을 지키며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단계이고, 둘째는 옳음을 지키며 해를 입는 단계이다. 세 번째는 그름을 추종하고 이익을 얻음이요. 가장 낮은 단계는 그름을 추종하고도 해를 보 는 것이다. 너의 말은 이 가운데 세 번째 단계를 택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네 번째 단계로 떨어지고 말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정치를 혁신하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람들이 헛되이 듣지 말아야 할 충고입니다.
쟁점토론 83
정책포럼
퇴직연금,국민연금,공무원연금 홍원표 정책실장
퇴직금이 없어진다면?! ‘퇴직금으로 뭐 하지?’일반적인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봤을 일이다. 퇴직금은, 로또당첨이라는 대박의 꿈보다는 소박(?)하지만 그만큼 더 현실적인 돈 이다. 그런데 이제 이 꿈조차도 비현실적인 소망이 될 형편이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8월 27일‘사적연금 활성화 대책’ 을 제시했다. 퇴직금 제도를 없애 고 퇴직연금으로의 강제 전환이 핵심이다. 대개 모든 제도가 그렇듯 압도적으로 우월한 제도는 사실 거의 없다. 모든 제도에는 장 단점이 있고, 제도 도입에 따른 단점을 사회적 또는 개인적으로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가가 그 사회의 제도를 결정한다. 퇴직금과 퇴직연금도 마찬가지다. 지금 논의되는 퇴직금의 퇴직연금 전환은 나름의 장 점을 갖고 있다. 일단, 퇴직연금은 일시불로 지급되는 퇴직금에 비해 노후 준비에 훨씬 더 안정적이다. 또한 제도 설계에 따라서는 강한 재분배 효과를 가질 수도 있다. 물론 제도 설 계에 따라 반대로 노동시장의 소득격차가 그대로 노후 소득격차로 연장·확대될 수도 있 다. 정부는 퇴직금의 부정적 효과 중 하나로“퇴직급여는‘후불임금’ 이라는 인식이 남아있 어”노후 대책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퇴직금은 원래 후불임금이다. 연공서열 임금과 더불어 숙련 노동자의 장기근속을 유도하는 임금체계의 주요 구성 요소로 작동해 왔다. 하지만 기업들이 숙련 향상보다는 비정규직 사용 등의 수량적 유연화를 통한 경쟁력 확보를 우선시하면서 장기근속 관행이 사라지고 퇴직금의 이러한 제도적 기능이 약화되었 84
다. 게다가 심각한 고용불안은 퇴직금을 받을 만큼, 그러니까 1년도 채 일하지 못 하는 노동자들을 수백만 양산했고, 이들에게 퇴직금의 꿈은 이제 로또당첨의 꿈만큼이나 비현실적인 꿈이 되었다. 퇴직금이 갖는 또 다른 기능은 부족한 사회임금(복지)의 역할을 대신해 왔다는 점이다. 아래 그림은 퇴 직금이 노후대책으로서‘부정적’ 임을 보여주기 위해 정부가 한국노동교육원의 자료를 인용한 것이다. 이 에 따르면 퇴직금을 수령한 노동자는 그 돈을 주로 생활비, 빚 탕감, 집값, 자녀 교육 및 결혼비용 등으로 사용하였다. 즉 낮은 소득대체율과 짧은 급여 기간으로 실업급여가 사실상 소득을 보전할 수 없게 됐고, 퇴직금을 실업 시 생활비로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된 것이다. 적극적인 부동산 경기부양 정책과 빈약한 공공주택 정책으로 치솟는 집값 역시 퇴직금의 소진을 부추겼다.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은 갑작스럽게 가족이 아 프기라도 하면 퇴직금 중간정산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고, 사라진 반값 등록금 공약 역시 자녀의 대학 진 학에 퇴직금을 사용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형편없는 공적노후연금은 퇴직금을 털고 빚을 얻어 편의점 이라도 열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영업자의 절반(46.9%)은 3년 이내에 폐업한다.) 퇴직금의 퇴직연금으로의 전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이러한 부분은 여전히, 아니 더 큰 공백으로 남을 것이다. 사회적 위기가 고스란히 개인의 부담으로 돌아오는 노동자 서민으로서는 각종 사 회적 위기를 대처할 유력한 (사실상 거의 유일한) 수단을 잃는 셈이 된다.
‘재벌 소득 활성화 대책’ 이라는 합리적 의심 이전 같았으면 아마도‘다층적 노후 보장 정책’정도로 포장했을 퇴직연금 강제 전환 정책을 박근혜 정 부는‘사적연금 활성화 대책’ 이라고 매우 솔직하게 명명했다. 공적연금 보장의 한계를 보완한다는 측면을 넘어 확대된 퇴직연기금의 활용을 통해 금융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뜻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번 정부 대책의 또 하나의 핵심은 확정기여형과 개인퇴직연금 자산운용의 총 위험자산 보유한도 상 정책포럼 85
향과(40%→70%) 개별 위험자산 보유한도 폐지다. 퇴직연금은 확정급여형(DB)와 확정기여형, 그리고 개인퇴직연금으로 나뉜다. 확정급여형은 퇴직 시 정해진 금액(퇴직금과 동일한 금액)을 연금 또는 일시금으로 받는 것이며, 확정기여형은 연간 급여의 1/12 이상을 금융기관에 적립하고 적립금 운용결과에 따라 퇴직 시 급여를 받는 방식이다. 개인퇴직연금은 노 동자가 이·전직 또는 퇴직 시 받는 퇴직금을 은퇴 시점까지 계속 적립하는 방식으로, 급여는 확정기여형 과 동일하다. 매우 복잡한 듯 보이지만, 쉽게 말하자면 확정급여형은 원금이 보장되지만, 확정기여형과 개인퇴직연금은 원금을 까먹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예금자보호법의 보호를 받지 못 하는 저축은행 예금 같은 걸 생각하면 된다. 정부가 이번 대책에서 확정기여형과 개인퇴직연금의 자산운용의 위험자산 보유한도를 대폭 확대해 주 겠다는 건, 민간 금융회사는 맘먹고‘돈벌이’ 할 수 있도록 하되, 손해를 볼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연금 가입자, 즉 노동자에게 돌아가게 한다는
정부의 이번 대책은 민간 금융회사는 맘먹고 ‘돈벌이’ 를 할 수 있도록 하되, 손해를 볼 경
말과 같다. 증권가는 이미 이‘주인 없는 종잣돈’ 에 대한 기대로 술렁였다. 정부는 퇴직
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연금가입자, 즉 노동
연금 운용자산이 2020년에 170조 원에
자에게 돌아가게 한다는 말과 같다.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증권가에 풀리는 돈이 최대 36조
원에 달한다. 민간 금융자본은 손해 볼 걱정 없이 공격적으로‘투자’ (라고 쓰고 투기라고 읽어야 하겠다)할 ‘주인 없는 종잣돈’36억을 손에 쥐는 셈이다. 대책이 발표된 당일에는 삼성증권, 대우증권, 우리투자증 권, 미래에셋증권, 현대증권, 키움증권 등 대부분의 증권주가 5% 안팎으로 급등했다.‘국민연금바로세우 기국민행동’ 이 제기하는‘재벌 소득 활성화 대책’ 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의심이 아닌 사실임을 증권시장 이 앞서 증명해 준 셈이다.
그럼에도,‘국민연금으론 역부족’ 지금까지 살펴본 퇴직연금 전환의 문제점만으로도 현 정부의 대책은 당장 폐기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는 문제는 있다. 한 언론이 기사 제목으로 뽑은 것처럼, 점점 더 심해지는 고령화의 대 책이‘국민연금으론 역부족’ 이라는 것이다. 이미 익히 알려진 것처럼 한국의 노인빈곤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한국의 전체 빈곤율은 15~16% 수준 으로, OECD 평균에 비해 약간 높은 편이다. 반면 60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48.5%(2012년 기준)에 달해 OECD 가입국 중 가장 극단적인 비율을 보여주고 있다. 높은 빈곤율은 높은 자살률과 무관하지 않다. 한 국의 자살률은 전 연령대에서 OECD 가입국 중 가장 높은 비율을 보여주고 있지만, 특히 고령자 자살률은 86
그래프가 갑작스럽게 치솟을 정도로 높다. 다른 나라의 연령대별 자살률이 보통 수평선 또는 완만한 역U 자 형태를 보이는 것과 완전히 대비된다. 이러한 자살률 추이는 높은 노인 빈곤율 외에 다른 원인을 찾기 어렵다. 자살율 그래프
우리 사회의 노인이 빈곤한 가장 큰 이유는 공적연금의 부실이다. 아래 표는 2008년 한국노동연구원 에서 노인가구소득원을 국제 비교한 자료다. 이 표를 보면, 다른 국가의 노인 가구소득 구성은 공적연금 이 40~60%, 시장소득이 20~40%, 개인연금이 10~20%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공적연금이 10% 도 채 안 되며, 시장소득과 사적이전소득(개인적으로 그냥 주는 돈, 주로 자녀나 친지가 줄 것이다)에 대부분 의지하고 있다. 노인가구 소득원 다른가구원의
고령자의 소득 근로소득
자산소득
공적이전소득
스웨덴
36.7
2.3
46.0
덴마크
41.5
5.7
38.8
사적이전소득
개인연금
기타
기여
0.3
9.4
0.0
5.2
0.5
10.2
0.2
3.0
네델란드
33.1
4.7
34.5
0.2
19.1
0.1
8.3
스위스
36.1
6.3
33.4
0.4
12.6
0.6
10.6
미국
39.9
5.6
29.0
1.1
12.9
2.6
8.8
오스트리아
18.7
2.9
61.1
0.6
4.1
0.7
11.9
독일
29.6
4.8
50.5
0.4
5.0
0.1
9.6
스페인
26.2
3.0
60.0
0.9
1.0
0.2
8.8
이탈리아
21.4
2.5
59.3
0.7
3.2
0.1
12.9
그리스
26.1
5.5
62.2
1.7
0.7
0.1
3.6
한국
40.9
3.7
9.2
16.0
0.4
0.5
29.3
정책포럼 87
이처럼 공적연금의 부실이 매우 심각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연금 개혁은 오히려 거꾸로 흘러왔다. 올해 7월부터 기초노령연금이 시행되고 있지만, 그 수준은 여전히 낮고 그나마도 차등 지급되고 있다. 국 민연금은 소득대체율이 의무가입 이전(1998년 이전) 70%에서 의무가입 전환 이후 60%로 조정되었다가, 이마저 기금 고갈 우려를 이유로 2028년까지 매해 0.5%씩 자동 삭감해 40%수준까지 낮추도록 재차 개 악되었다. 개악의 결과 2040년 예상 수급률은 국민의 절반을 겨우 넘는 54.4% 수준에 불과하고, 소득대 체율은 평균소득의 21.8%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제언 박근혜 정부의‘사적연금 활성화 대책’ 에 대한 노동계 및 시민사회 진영의 반응은‘공적연금 강화를 우 선해야 한다’ 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공적연금을 강화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 대안을 찾아보 기 어렵다.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구체적 대안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무엇이든 연금 수입(보험료) 의 인상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2013년 한 해 동안 국민연금 징수액은 약 30조 원에 달하며, 이 중 사업장 가입자의 보험료 징수액은 약 27조(88.77%) 원에 달한다. 만약 퇴직금에 충당하는 사업주의 부담(임금의 8.3%)을 그대로 국민연금으 로 전환한다면, 매해 20조 원 가량의 국민연금 추가 수입이 확보된다. 사실 퇴직금의 국민연금 전환은 지금의 퇴직금/퇴직연금 제도에 비해 많은 장점을 갖는다. 현재의 퇴
정부에 공적연금에 대한 개악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사진 : 참세상)
88
직금/퇴직연금은 단순 소득비례로 재분배 효과가 사실상 거의 없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개인의 평균소득 과 전체 가입자의 평균소득을 동시에 반영해 저소득자에게 보다 유리하다. 또한 여전히 국민연금의 사각 지대가 크지만, 퇴직금/퇴직연금에 비해 포괄범위가 넓어 노후소득 보장 및 재분배의 사회적 효과가 훨씬 크다. 마지막으로, 퇴직금의 국민연금 전환과 그에 따른 보장성 강화는 최근의 문제가 되고 있는 공무원연금 논란을 풀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공무원연금은 보험료율이 14%에 달하는 반면, 국민연금은 9%에 불과 하다. 더 많이 내니 더 많이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더 많이 받게 되니 국민연금과의 형평선 논란이 끊임없 이 발생한다. 또한 공무원연금은 퇴직금/퇴직연금 제도와 마찬가지로 단순 소득비례로 지급수준을 결정 하다 보니 재분배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다. 퇴직금의 국민연금 전환과 그에 따른 보장성 강화는 국민연금 의 보장성을 공무원연금 수준 이상 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그렇게 되 면 특수직역 연금 대상자에게 국민
노동계급과 진보진영은 노동자의 퇴직금으로 금융
연금 통합의 유인이 높아져, 보다
자본의 투기 종잣돈을 만들겠다는‘사적연금 활성
통합적이고 보편적인 연금 체제를
화 대책’ 에 전면 반대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퇴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직금제도를 그대로 지켜내는 것이 진보적 가치에
노동계급과 진보진영은 노동자 의 퇴직금으로 금융자본 투기 종잣
부합하는 것인지도 스스로 물어야 한다.
돈을 만들겠다는 현 정부의‘사적 연금 활성화 대책’ 을 전면 반대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퇴직금 제도를 그대로 지켜내야 하는 것인지, 그 것이 과연 진보적 가치에 부합하는 (사회)임금인지에 대해서도 스스로 물어야 한다. 여기서 제안한 퇴직금 의 국민연금 통합 전환은 노동자에게‘무시할 수 없는 소득’ , 퇴직금을 포기하라는 요구다. 하지만 이를 통해 보다 보편적이고 관대한 사회임금을 함께 쟁취하자는 것이다. 반드시 이 제안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 할 순 없지만, 이 문제에 대해 노동계와 진보진영의 진지한 고민은 반드시 필요하다.
정책포럼 89
‘노동자’ 로 자각하며 산다는 것
동아시아 시민운동사
칫소 노조의「수치 선언」 (1968)이 남긴 교훈 임경화 대학 비정규직 연구자, 서울 금천 당원
원자력발전소 사고, 그리고 전력회사 노동자들 2011년 3월 11일 도쿄 전력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역사상 유례없는 공해 피해가 발생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방사능에 피폭되고, 광대한 토양과 대기와 물이 오염되고, 지금도 10만여 명의 주민들이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집을 가슴에 묻으며 피난생활을 강요당하고 있다. 3.11 원전사고는 피해지역의 자 연환경뿐만 아니라 경제, 문화, 커뮤니티 등을 송두리째 파괴한 대참사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어느 누구 도 이 참사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진 사람이 없다. 그뿐 아니라 참사의 핵심에 있는 도쿄 전력은 정계, 재계, 관계, 학계, 언론계, 법조계 등 원전 마피아라 일컬어지는 이권 세력들과의 공조를 통해 참사를 축소, 은 폐하는 데 급급하다. 아니, 거기서 멈추지 않고 80%에 가까운 탈원전 여론에도 불구하고 마치 참사 같은 것은 일어나지도 않은 것처럼 원전 재가동 및 증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회사는 그렇다 치고, 그렇다면 도쿄 전력을 비롯한 전력회사 노동자들은 이 모든 사태 속에서 어떤 입 장을 취하고 있을까. 놀랍게도 사고 발생 이전과 변함없이 전력회사와 한 배를 타고 있다. 아마도 피폭량 이 높고 고위험·고강도·저임금 노동이 투입되어야 하는 사고현장의 수습 작업은 중층적 하청구조 아래 고용된 파견·일용직 노동자들에게 맡겨져 있는 탓이 클 것이다. 하지만, 원전 추진을 내걸며 민주당, 자 민당을 지지하는 전력총련(전국 전력 관련 산업 노동조합 총연합. 도쿄 전력 노조는 중핵)의 간부가 탈원전 지 지를 표명한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배신한 의원들은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 라는 협박을 하는 걸 보면, 위기에 처한 회사와의 운명공동체적 일체감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고양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진대 국 일본에 더 이상은 치명적인 원전 사고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주민들 절대 다수의 절절한 심정을 배반하 고 현장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구조에 눈을 감으면서까지 회사를 옹호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사람들의 실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 반동으로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바로 신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의 노동조합이 1968년에 결의한 이른바「수치 선언」 이다. 90
구사대에서 주민 편으로 돌아선 칫소 노동자들 구마모토 현 미나마타 시에 공장을 둔 신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이하,‘칫소’ )는 우리에게는 식민지 시기 조선에서 흥남질소비료공장을 만들어 식민지 지배에 참여했던 자본으로 익숙하기도 하다. 이 기업은 패 전 후에도 화려하게 부활하여 유기화학공업을 선도하며 일본의 경제부흥과 고도성장을 견인했다. 미나마 타는 주민들의 거의 전 계층이 직간접적으로 칫소에 의존하여 생활을 영위하는, 말하자면 일본의 화성이 나 울산 같은 기업도시였다. 미나마타병이 공식적으로 발견된 1956년은, 불운하게도 총자본을 대표하는 자민당의 장기집권과 총노동을 대표하는 사회당이 이를 견제하는 구도가 확립되어 고도경제성장을 뒷받 침한‘55년 체제’ 가 막 출범한 시기였다. 지역주민들 중에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경련을 일으키다가 죽어가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고도성장 위주의 경제정책 아래 공해문제는 무시되었고, 공해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외면당했다. 아세트알데히드 공장이 흘린 폐수에 포함된 유기수은이 중추신경 계를 손상시켜 이후에 미나마타병으로 명명되는 공해병을 발병시킨다는 것이 고양이 실험을 통해 밝혀진 것은 1959년의 일이다. 하지만 이때 회사는 공장 조업을 중단하고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보상을 하고 재발 방지에 힘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인이 분명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고양이 실험을 중지시켜 버렸다. 피 해주민들은 면담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자 농성을 시작했고 실력투쟁을 전개하기도 했다. 회사는 그렇다 치고, 그렇다면 이때 칫소의 노동자들은 이 모든 사태 속에서 어떤 입장을 취했을까. 그 들은 겉으로는 원인규명을 요구하면서도 실제로는 회사와 구마모토 현에 공장 조업정지 반대를 표명하고 피해주민들에게는 폭력행사를 하지 말라는 요구를 하며 어디까지나 회사의‘구사대’역할을 떠맡았다. 그 들은 고통받는 피해자의 편이 아니라 회사의 편에 섰던 것이다. 하지만 회사가 이들의 충정을 높이 사주 는 일은 없었다. 때마침 석탄산업에서 석유산업으로 에너지산업의 구조변화가 급속히 진행되었고, 그 영 향으로 전기화학도 석유화 학으로 전환되어 미나마타 공장도 축소될 운명에 처했 던 것이다. 회사측은 경영 합리화라는 이름으로 대규 모 인원 정리를 추진했고 이 를 위해서는 노조의 약화가 필수적이었다. 이에 맞서 일 본탄광노동조합(탄로)에 이 어 칫소의 노동자들이 포함 된 합성화학산업노동조합 연합(합화노련)도 격렬한 노
파업중에 출근행동을 벌이고 있는 어용노조. 검은 상의를 입고 있다. 아래쪽은 회사 정문 을 막고 있는 노조원들(1062년)
동아시아 시민운동사 91
탄로와 합화노련의 지원 속에서 데모 행진을 하고 있는 노조원들(1962년)
동운동을 전개했다. 이에 대해 칫소 측은 4년간 파업을 하지 않으면 타사보다 임금을 높이 인상하겠다는 제안을 해오고, 합화노련은 이를 산업별 통일운동 파괴책으로 보고 반대했다. 그러자 회사는 공장을 폐쇄 하고 새로운 노조를 만들었다‘안정인금투쟁’ ( ). 1963년에 투쟁이 종결된 이후부터는 노동자들에 대한 육체 적, 경제적, 승진 차별 등이 극심해져, 퇴직하거나 어용노조에 들어가는 길 말고는, 조합원으로 남아서 투 쟁하는 길밖에 노동자들에게 선택지가 남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장기에 걸친 저항운동의 시작이다. 그런데 조직의 커다란 희생을 치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고용을 지키고 차별에 맞선 저항운동을 장기 간 전개하며 자본의 민낯을 대면하게 되면서 그들은 그때까지 노조 차원에서 무시했던 미나마타병 피해 주민들과 연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1968년 8월 조합대회에서 피해주민들을 향해 다음과 같은 「수치 선언」 을 결의한다.
미나마타병에 대해 우리들은 무슨 싸움을 해 온 것인가. 우리들은 아무런 싸움도 할 수 없었다. 안정임금 투쟁에서 오늘까지 6여 년 동안 우리들은 노동자에 대한 회사의 공격에는 불굴의 투쟁을 조직화해 왔다. (중략) 그런 우리들이 왜 미나마타병과 싸우지 못했는가. 투쟁이란 무엇인지를 몸으로 채득한 우리들이 지 금까지 미나마타병과 싸우지 못했던 것은 진정 인간으로서 노동자로서 부끄러운 일이며, 진심으로 반성하 지 않으면 안 된다. 회사의 노동자에 대한 처사는 미나마타병에 대한 처사 그 자체이며, 미나마타병에 대한 투쟁은 동시에 우리들의 투쟁인 것이다. 회사는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미나마타병의 원인이 공장 폐 수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또한 모든 자료를 숨기고 있다. 우리들은 회사에 미나마타병의 책임을 인 정하게 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할 것이며 또한 지금도 여전히 고통의 한가운데에 있는 미나마타병의 피해 자들을 지원하며 미나마타병과 투쟁할 것을 결의한다. 92
조합이 미나마타병 환자 가족들과 함께 합동위령제를 올리고 있다.(1970년)
연대는 국경을 넘어 미나마타병의 원인 기업인 칫소가 공해 책임을 회피할 때 당초에는 노조도 회사를 지키는 입장에서 피 해자를 적대했다. 그러나 회사에 의한 해고나 조합 파괴 공격이 미나마타병 환자에 대한 공격과 마찬가지 로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비인간적인 처사라는 점에 조합은 이윽고 주목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 만, 그것은 희생자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늦은 깨달음이 아닐 수 없었다. 조합원들은 일찍이 공장의 조업을 막지 않아 희생자를 늘렸다는 죄의식을 가슴에 품고 희생자들에 적극적으로 연대해 나갔다. 또한 그들의 연대는 거기에서 머물지 않고 이윽고 국경을 넘었다. 회사는 유기수은이 포함된 폐수가 100톤이나 들어 있는 탱크의 처리로 곤란에 처했고, 그래서 1969년 여름에 그것을 한국에 수출하려고 했다. 폐수라 해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조는 그것을 알 고 반대했다.“안전성이 확실하지 않은 것을 왜 한국에 수출하는가. 그쪽에서 또 피해를 주는 게 아닌가.” 회사로서는 이것을 팔면 돈을 벌 수 있기에 수출하려 한 것을 노조가 저지했다. 돈이 아니라 인간의 편에 선 것이다. 이후 반공해운동에 직면한 일본의 공해산업들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로 대거 이전되고 한국 에서도 온산병 같은 공해병이 발생하는데, 이때에도 미나마타병 투쟁을 전개했던 사람들이 적극적인 연 대활동을 펼치게 된다. 칫소 노동자들의 투쟁은, 노동자는 언제나 노동자의 편에 서야 하며, 그것은 바로 인간의 편에서는 것 이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남겼다. 밀양 송전탑 문제 등에서 단 한번도 한국전력과 대치하지 않은 전국전력 노조 노동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무슨 생각을 할까. 그래도 자신들은 한국전력과 한 배를 탔다고 생각할지, 결국에 밀양 주민들과 동일한 운명에 놓일 것이라며 불길한 예측을 시작할지. 동아시아 시민운동사 93
사영화의 예쁜 얼굴, ‘시민펀드’
빨간 도시교통 이야기
서울 지하철9호선 재구조화 1년 평가 김상철 서울시당 사무처장
10월 말이면 박원순 서울시장의 유일무이한 업적이라 말하는 지하철9호선 재구조화 시 행 1년이 된다. 정확하게 민간사업자와의 협약갱신일을 기준으로 하면 10월 23일이다. 노 동당은 애초 지하철9호선 요금인상 문제로 촉발된 논란에서‘유상매입을 통한 직영화’ 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 이유로는, 이미 서울시에는 도시철도공사나 서울메트로와 같이 지 하철을 운영하는 공기업이 존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요금인상 논란의 핵심은 민간사업자 의 일방적인 요금인상 발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민간투자사업의 구조적 인 유인 탓이라는 점을 들었다. 사실 지난 8월에 끝난 지하철9호선 2·3단계(1단계의 종점부 인 신논현역에서 종합운동장까지를 2단계사업, 거기서 보훈병원까지를 3단계사업으로 구분하여 사 업을 진행했다)의 민간위탁은 서울메트로에게 돌아갔는데,“민간의 자율적인 행정참여기회
를 확대하고 사무의 간소화로 인한 행정능률 향상을 목적” (서울특별시 행정사무의 민간위탁에 관한 조례)으로 하는 취지에 비춰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다. 애초 민간위탁동의도 필요 없이
서울메트로에게 운영을 맡기면 될 일을, 별도의 자회사까지 만들어 이를 수탁하게 만들었 다. 하기사 현행 서울메트로는 부산시와 김해시가 출자해서 운행중인 김해경전철의 운영사 이기도 하며, 아닌 게 아니라 김해경전철 운행의 노하우가 높은 가점의 이유가 되었다고 전 해진다(제한경쟁으로 이뤄진 지하철9호선 2·3단계의 위탁과정에서 기존 지하철9호선 운영사가 중간에 입찰을 포기했다는, 다소 미심쩍은 정황은 접어두기로 하자). 그리고 그 김해경전철을 운
영했던 서울메트로 자회사인‘김해경전철운영(주)’ 는 2012년 부산시와 김해시가 최소운영 수익보장 조건에 따라 700억 원의 추가적인 재정부담을 져야 할 상황에서 자체 경영성과를 94
당시 김맹곤 김해시장 등이‘경전철 성과급 반납’ 을 주문하며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운영사의 지분 70%를 가지고 있던 서울메트로에 밀렸다. (사진 : 경남도민일보 누리집 갈무리)
통해 임원 3명에게는 322%, 직원에게는 180%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만약 서울메트로라는 공기업이 운 영하는 지하철 1·2·3·4호선이었다면, 서울시가 재정손실을 봤는데 자체 성과평가를 바탕으로 성과급 을 줄 수 있었을까? 결국 지하철9호선의 문제는 운영사의 일방적인 요금인상 발표 때문이거나 주요 투자자인 맥쿼리가 악 덕 자본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공공 교통을‘수익과 비용’ 만 고려하는 민간
결국 지하철 9호선의 문제는 운영사의 일방적인
시장에 우겨넣었기 때문에 생겨나는
요금인상이나 투자자 맥쿼리가 악덕 자본이어
것이었다. 그래서 지하철9호선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여전히 재직영화가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서가 아니라 공공교통을‘수익과 비용’ 만 고려 하는 민간시장에 우겨넣었기 때문에 발생했다.
‘국민주’ 와‘시민펀드’ 는 뭐가 다른가 기억하겠지만 이명박정부 시절 논란이 되었던 공항철도 매각과 관련하여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대표 가 제안했던 방식이‘국민주’ 를 통한 사영화 방안이었다. 이 방식은 작년 연말 KTX 자회사 설립을 둘러싼 빨간 도시교통 이야기 95
사영화 과정에서도 어김없이 나왔다. 요지는, 공기업을 민간기업에게 넘기는 사영화 방식에 시민들의 불 만도 많고 비판도 많으니 차라리 국민들로 하여금 지분을 사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형태적으로 는 공기업에서 민간기업으로 전환하는 셈이어서 사영화이지만, 주식의 소유자는 일반 국민이 됨으로서 특혜시비 등등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라는 의도였다. 홍준표 전대표나 정부는 국민주 방식의 사례로 포스코를 들었다. 1988년 포스코 사영화를 통한 부의 재분배라는 취지로 시행된 국민주 매각은, 정부지분 69.1% 중 34.1%인 3,128만주를 일반인 322만2천명 에게 매각했다. 인수자 중에는 중하위 소득계층 310만1천명이 포함되었다. 다시 말해, 계층별 안배를 한 것이다. 그런데 한번에 너무 많은 주식이 시장에 나오다보니 주가가 바로 오르지 못하고 결국 1991년에 국민주를 보유하고 있던 개인소유자들이 손실을 줄이기 위해 가지고 있던 주식을 팔았다. 그리고 그 주식 은 고스란히 기업 매수자들이 사들였고, 지금은 외국인 투자자 지분이 50.57%에 달하는 외국기업으로 변 신했다. 주식의 가치는 기본적으로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는데, 개인소유자의 입장에선 당장 현금화될 수 없는 자산을 장기적으로 보유하는 장점이 그리 크지 않다. 결국 법인으로 주식이 집중되는 것은 자연스럽 다. 이렇게 국민주 방식의 사영화를 길게 언급한 배경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도입한‘시민펀드’ 가 있다. 서울시는 작년 지하철9호선 재구조화를 발표하면서, 우선 요금결정권한을 서울시의 승인사항으로 전환 하고, 수입보전방식의 재원지원을 비용보전방식으로 바꾸며, 금융기관 등에게 집중되어 있는 투자자를 ‘시민펀드’등으로 보완하여 복수의 자산운영사로 재구성하겠다는 안을 제시했다(2013.7.27.<지하철9호선 사업 재구조화 추진계획>). 이 중 시민펀드 계획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기존의 재무적 투자자를 다각화하
기 위해 총 1천억 원 규모의 재원을 공모형 펀드로 조성하겠다는 내용으로 2012년 요금논란 당시 참여연 대 등에서 내놓은 시민펀드를 통한 인수방안을 부분적으로만 차용한 것이다.
<9호선 시민펀드 목표수익률> (14.8. 정보공개청구에 의한 서울시자료) 펀드구분
1호
2호
3호
4호
만기
4년
5년
6년
7년
목표이익분배율 1회차
4.13%
4.23%
4.34%
4.44%
1회차이후
4.19%
4.29%
4.40%
4.50%
이 시민펀드는 기본적으로 투자자에게 고정수익률을 제공하는 것인데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투자’ 와‘출자’ 의 차이다. 기존 맥쿼리 등이 포함된 재무출자자의 총 출자액 819억 원 정도였다(지하철9호 선사업자의 자본금은 1,671억 원 수준). 기본적으로 지하철9호선 운영사의 운영권에 대한 권리는 출자자에게
귀속되는 것으로, 건설출자자와 재무출자자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시민펀드는 출자가 아니라 투자의 개 념에 따라 조성된 것이고 기존의 4,960억 원 수준의 일반 금융차입금의 일부를 대체하는 것에 불과하다. 96
그래서 1,000억 원에 달하는 시민펀드는 지하철9호선(주)의 자본금 대비 59.8%에 달하는 규모임에도 불 구하고 경영권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전무하다. 그저 시민펀드에 투자한 시민들은 여타 펀드를 구매한 것과 같이 약정된 수익률을 기대한 것에 불과하다.
<9호선 시민펀드 가입자 현황> (14.8. 정보공개청구에 의한 서울시자료 일부 보완) 펀드구분
1호
2호
3호
4호
가입자(명)
1,363
1,325
1,434
1,386
1인당 평균구매액(만원)
1,834
1,886
1,743
1,803
각 호당 4.19%에서 4.5%까지 보장된 수익률로 공개된 시민펀드는 판매를 시작한 지 반나절도 안 되어 동이 나고 만다. 5천명이 넘는‘시민’ 투자자가 대거 몰린 것이다. 1인당 총 구매 제한을 2천만 원으로 제 한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펀드는 거의 한도액에 달하는 금액으로 팔려나간다. 서울시 자료를 바탕으로 계산해본 결과 가장 단기인 1호의 경우에는 1인당 평균구매액이 1,834만 원에 달했고 가장 최장기인 4호 의 경우에도 1,803만 원에 달했다.
시민투자가 아니라 시민소유로 가야한다 최소 4년에서 최장 7년까지는 펀드로 예치해야 되는 성격상, 과연 누가 이 펀드를 구매했는가라는 점 이 궁금해진다. 참조할 수 있는 통계가 통계청이 2013년 11월에 발표한 <2013년 가계금융 복지조사>다. 이를 통하면 현재 우리나라 국민이 처분할 수 있는 금융자산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통상 자산 이라면 부동산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특징인지라, 자산 중에서도 바로 처분할 수 있는 예치금 성격의 금융자산을 분리해서 보는 것이 타당하다(지하철9호선 시민펀드의 경우에는 계획의 발표 에서 실제 판매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장기투자를 목적으로 서민들이 자신들의 기존자산을 유동화해서 재투자했다고 보긴 힘들다). 이 통계에 따르면, 적립식 저축(적금) 외에 예치식 저축을 하고 있는 소득 1분위
중위 값은 1,500만 원 정도다. 소득 2·3분위까지가 2,000만 원 수준이다. 소득 4분위 정도는 되어야 2,500만 원까지 올라간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가? 계층별로 차등적인 효과를 내는 공공재 중 하나인 대중교통의 특징에 따라 가장 높은 이해관계를 지닌 소득하위계층보다는 오히려 자가용 등 개인교통을 이용할 것으로 기대되는 소득상위계층이 시민펀드의 주요 구매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시민펀드라는 명목으로 고정된 수익률을 약속받고 서울시 대중교통정책에‘투자자’ 로 나선 이들이 대부분 대중교통정책보다는 자산 수익에 더 관 심이 많은 이들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민펀드는 정확하게 국민주 방식의 사영화와 겹친다. 의도여부와 상관없이 금융회사가 벌어가는 이익을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는 발상이 대중교통요 빨간 도시교통 이야기 97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민펀드는 정확하게
금인하 등과 같은 이용자의 시각이 아니라
국민주 방식의 사영화와 겹친다. 서울시
투자자의 시각에서 나온 순간부터 그렇게 될
대중교통정책에‘투자자’ 로 나선 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지하철9호선의 문제로 돌아
대부분이 대중교통정책보다는 자산 수익
간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단순한 지점에서
에 더 관심이 많은 이들이다.
시작해야 한다. 과연 지하철9호선을 둘러싼 문제의 근원은 무엇인가? 노동당은 이를‘민
간투자사업’ 이라고 제시했다. 그래서 해법은 그나마 시민통제가 용이한 공사체제로 흡수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것이 어려운 일일까? 그렇지 않다. 이미 서울시는 100% 귀책에 의해 부담해야 될 위약금 규모 는 7,605억 원으로 추산했다. 그리고 서울시가 장기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보전금액(관리운영권 가치)은 7,464억 원이다(민간사업자의 투자금액은 6,631억 원이었고, 3년 동안 이미 800억 원 이상의 수익보장에 따른 보조금이 지출되었다). 여기에 무임승차에 따른 보조금은 별도이기 때문에 사실상 운영비용만 따진다면 직
영화에 따른 부담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며, 아예 시민펀드 방식으로 위약금을 출자금으로 전환시킬 수 도 있다. 만약 1,600억 원에 불과한 민간사업자를 출자자가 아니라 투자자로 전환시키면서, 서울시의 재정투 자와 시민출자를 바탕으로 별도의 특수법인을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기본적으로 투자와 운영을 분리하는
9호선 시민펀드는 판매 시작 첫날, 목표치의 90%가까이 팔렸다. (사진 : YTN24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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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방식을 차용하면서도 출자자 대표인 시민이 이사회를 구성하는 한편, 노동자와 이용자가 함께 참여하는 운영기구를 만들었다면 말이다. 기술자문과 운영에 대한 부분은 기존의 운영사인 서울메트로나 도시철도와 협약을 통해서 제휴하고, 시설 운영 및 임대 수입을 바탕으로 저소득층 및 학생에 대한 요금 할인권을 지급하는 거다. 꿈같은 이야기 일지도 모르지만 이미 협동조합 방식의 대중교통 운영은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미국 메이슨 지역과 같이 스쿨버스 운영으로 특화된 형태는 부지기수이고 기존 철도 망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협동조합 기차를 운영하는 영국 브리스톨의‘GO-OP’ 과 같이 아예 지역 간선망을 협동조합 방식 으로 운영하는 사례도 많다. 아니 협동조합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시의 대중교통정책을 결정할 때 이용자위원 회를 꾸려 정책 결정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은 주요 대도시 교통 행정의 기본 중 기본이다.
시의 대중교통정책을 결정할 때 이용자위
결국 핵심은 투자가 아니라 소유이고 서비스
원회를 꾸려 정책 결정에 참여하도록 하
평가가 아니라 운영권한이다.
는 것은 주요 대도시 교통 행정의 기본 중 기본이다. 다시 말해 핵심은 투자가 아니라 소유이고 서비스평가가 아니라 운영권한이다. 박원순 표 혁신 의 대표격인 지하철9호선 재구조화는 예쁘고 감동적인 이벤트를 걷어내면‘빙빙돌아 제자리’ 라는 다소 황망하기 그지없는 역설을 마주하게 된다. 그 이유는 그의 혁신이 근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빨간 도시교통 이야기 99
왼쪽에서 본 농업 이야기
농촌총각 연승우 농업 전문 기자
결혼과 함께 한국에 온 이주여성들의 문제는 여성주의적인 입장에서만 볼 수 있는 문제 는 아닐 것이다. 영화 38살 먹은 농촌총각의 장가가기 프로젝트를 소재로 한 영화《나의 결 혼원정기》 를 보면 우리 농촌의 문제를 단편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농촌총각의 결혼이 사회적 문제가 된 건 아주 오래전 이야기다.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부 서구에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은 80년대에 이미 가톨릭 농민회 등을 중심으로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을 진행 했고, 국가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농촌 총각 맞선 등을 주선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농촌 노총각‘응삼이’ 가 등장하는 장수 드라 마《전원일기》 에도 서울 여성들과 마을 노총 각들이 단체로 맞선을 보는 에피소드가 나온 다. 사진1 - 영화《나의 결혼 원정기》포스터 그 유명한 강기갑 전 의원도 이 운동에 동 참하면서 본격적인 농민운동에 돌입했다. 재 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당시 강기갑 전 의원 은 모든 농촌총각이 장가를 가는 그날까지 수 염을 깎지 않겠다고 결의했다가 지금까지 수 염을 기르고 있다. 만약 남성이 부족해 여성들이 돈을 주고 영화《나의 결혼 원정기》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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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남성들을 사다가 국제결혼을 한다면 한
국사회의 반응이 어떨까? 아마도 국가적 반인륜적 범죄행위로 매도한 뒤 일부다처제를 도입할 거다.
농촌총각의 국제결혼 과정상의 문제점 농촌총각이 국제결혼을 할 때 지자체는 5백만 원 정도를 지원해 준다. 지난해 최순영 의원실 주최 토론 회에서 나온 자료에 따르면, 제주/경남 2개 광역도 24개의 시·군에서‘농어민 국제결혼비용지원 조례’ 를 제정해 지원하고 있으며, 58개 시·군, 경북 등의 지자체가 조례 제정과 무관하게 예산을 집행하고 있 다. 농촌총각들 결혼하는 데 국가에서 비용을 지원하겠다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많은 농민들도 이 혜택에 대해 고마워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국제결혼은 매매혼이다. 다 시 말해, 돈을 주고 아가씨를 사다가 결혼을 하는 것이다. 일주일동안 수십 명의 여자들을 세워놓고 그 중 에 마음에 드는 여성을 골라, 데이트도 하고 집에도 찾아간 후 식을 올린다. 비용은 1천만 원에서 1천2백 만 원. 지자체는 이 중 5백만 원 이상을 지 원하는 것이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혼인신
지자체 주도의 국제결혼은, 지역정치인의
고를 하면 수백만 원 상당의 혼수용품을
농촌발전을 위한 정책부재를 은폐하는 동시
제공한다. 지자체 주도의 국제결혼은, 지역정치인 의 농촌발전을 위한 정책부재를 은폐하는
에, 농촌의 모든 문제를‘짝짓기’ 를 통한 임 시적, 일시적, 감정적 만족으로 대체한다.
동시에, 농촌의 모든 문제를‘짝짓기’ 를 통한 임시적, 일시적, 감정적 만족으로 대체하는 무책임한 일이다. 지원 지자체와 결혼중계업소의 결탁으 로, 중계업자들만 이득을 챙긴다. 베트남 등에서는 오히려 여성이 부족해져서 그 지역의 결혼문제가 발생 했고, 문제가 심각해지자 국제결혼을 법으로 막았다. 그러자 한국의 남성들은 캄보디아로 몰려가고 있다.
이주해 온 여성들, 행복할까? 한국의 농촌은 아직도 상당히 보수적인 동네다. 가부장적 남성우월주의가 팽배하다. 이런 문화에 익숙 하지 않은 결혼이주여성들이 제일 먼저 부딪히는 건 남편과의 의사소통, 그리고‘시집살이’ 라는 이상한 문화다. 또한 돈을 주고 사왔다는 의식 때문에 본전만 생각하는 마초 남편들도 문제다. 온갖 일들을 시키 면서, 의사소통이 안 되니 조그마한 실수에도 커다란 불화가 생기는 일이 다반사다. 아이를 낳으면,‘유구한 단일민족의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의 순수혈통주의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따돌림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아빠는 자기 자식의 피부색이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애착을 갖지 못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갖는다. 엄마는 서툰 한국말로 인해 아이에게 한국말과 한글을 제대로 가르치 왼쪽에서 본 농업이야기 101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결혼 이주여성에 관한 방송 화면 (사진 : MBC)
지 못하고, 아이는 학교에서‘왕따’ 를 당하고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리고 이 모든 책임은 아이 엄마 에게 떠넘겨진다. 가부장적 문화가 익숙한 한국 농촌에서 매 맞는 아내는 아직도 일상적인 이야기다. 말이 안 통하니 주 먹이 앞서고, 어디 도망갈 때 없는 결혼이주여성들은 하소연 할 곳도 없다. 결혼이민자는 결혼 3년이 지나 야 국적을 받을 수 있는데, 이를 악용해 결혼한 지 3년이 되기 전에 이혼한 뒤 이주여성들을 낯선 도시에 몰래 갖다 버리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전남지역 결혼이주여성 2,134명을 방문 조사한 결과, 이주여성의 46.6%가‘이혼을 원한다’ 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은 자녀문제(66.9%), 밝힐 수 없는 이
전남지역 결혼이주여성을 방문 조사한 결과, 46.6%가‘이혼을 원한다’ 고밝 혔다. 부부 관계에는 54.5%가 불만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유(13%), 이혼 후 경제적 자립 문제(4.9%) 등의 이 유로‘이혼하지 못하고 있다’ 고 대답했다. 부부 관계 만족도는 그저 그렇다(41.5%), 대체로 불만 족(5.5%), 매우 불만족(2.5%) 등으로, 54.5%가 불 만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부부 사이의 나이 차는 6~10년(26.7%)이 가장
많고 11~15년(24.2%), 5년 이하(21.6%), 16~20년(17.7%) 순이었으며, 21년 이상도 9.8%에 달했다. 이들은 남편이‘결혼정보’ 에서 밝힌 직업(13.6%), 소득(13.5%), 재산(9.2%), 건강상태(7.9%), 나이(5.6%), 학력(4.8%), 결혼경력(3.1%)과 달라 갈등을 겪었다고 대답했다. 또 생활비 또는 용돈 문제(14.3%), 폭언과 모욕적인 말(12.2%), 외출통제(9.6%), 본국 송금 통제(6.5%), 신체적인 폭력(5.6%), 의처증(4.7%)으로 남편의 통제를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102
농촌의 소득불균형 등 기본부터 해결해야 2010년 통계를 보면, 이주민(남녀 포함)이 100만 명을 넘어섰다. 정부는 다문화사회, 다문화가정 등 허 울 좋은 말만 앞세우며 새로운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한다. 실제로 결혼이주여성 한글교육 등의 지원사 업을 하고는 있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일시적인 대책일 뿐이다. 농촌총각들의 국제결혼은 결혼시장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회적 주변부 남성의 일이며, 이들의 배 우자로 한국에 오는 여성들 또한 주변부 여성이라는 생각 때문에, 이 문제를 특정 계급의 이슈로 한정하 고 한국 사회변화의 핵심에 놓인 중심적인 의제로 부각하지 않는다. 농촌지역에서 국제결혼이 많은 이유는 농촌과 도시의 소득격차 불균형의 문제에서부터 시작된다. 소 득은 매년 줄어들고, 석유가격 폭등은 생산비 폭등으로 이어져 올해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불균 형으로 인한 농촌의 인구공동화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부터 세워야 한다. 농촌지역은 이미 고령화 사회를 넘어선 초 고령화 사회로, 65세 이상의 농가가 46%에 이른다. 하루에 3명의 농민이 자살을 한다. 직업별 자살률이 가장 높은 직업이 농민이다. 오늘도 논에 나가 제 초제를 논에다 뿌릴까 마셔버릴까 고민하는 농민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농촌 총각의 결혼문제는 결국 농촌문제를 종합한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결혼이주여성의 문제를 단순히 여성만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 라, 근본적인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정부는 국민의 혈세를 들여 국제결혼만 을 조장하고 있다. 식량위기의 사회다. 국제곡물가격은 연일 최 고가를 기록한다. 농촌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식량위기의 사회다. 농촌이 더욱 중요해 지고 있는 상황이다. 농촌문제 해결은 국 가 생명산업의 근간을 살리는 일이다.
상황이다. 에너지 자급률이 0%에 가까운 한국 이 식량자급마저 못한다면 국가적 위기에 몰릴 것이다. 농촌문제 해결은 국가 생명산업의 근간을 살리는 일이다.
왼쪽에서 본 농업이야기 103
오비환의 야담외전
변강쇠와 옹녀 19세기 하층민의 성과 삶 ② 오비환 역사 오타쿠, 경기 군포 당원
무차별적인 죽음에 대한 이야기, 변강쇠전 몇 년 전에 <가루지기>라는 영화가 나왔다. 변강쇠가 큰 물건으로 인해 마을의 최고 인 기남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변강쇠에 대한 뻔한 이야기보다는 제목이다.‘가루지기’ 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변강쇠전》 의 별칭인《가루지기전》 은변 강쇠의 무엇을 설명하는 말일 텐데, 대체 그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가루지기’ 란 가로로 짊어진 송장이라는 의미이다.《변강쇠전》 의 다른 이름은《횡부가 (橫負歌)》 로, 여기에서 횡부는‘가로로 지다’ 라는 의미이다.《변강쇠전》 의 전반부가 옹녀 의 청상살로 인한 남자들의 죽음에 대한 이야 기였다면, 후반부는 변강쇠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 또다른 죽음의 시작을 이야기한다. 《변강쇠전》 은 성행위만이 부각되어 주목 받는 바람에 실제 이 사설이 그로테스크하고 무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사실은 잊혀졌 다. 앞의 이야기에서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 은 일차적으로는 이것이다. 음란한 성행위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는 두 사설 중《춘향전》 은 살아남고《변강쇠전》 은 살아남지 못한 것이 영화 <가루지기>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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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에 기인한 것이라면, 이 사설이 끔찍하고
처참한 하층민의 삶을 가감 없이, 희망 한 줄 없이 묘사하고 있다는 것 또한 그 이유 중 하나라고 나는 생 각한다.《춘향전》 은 어쨌거나 해피앤딩이다. 기생의 딸인 춘향이가 양반이 되는 일종의 성공기이기 때문 이다. 그러나《변강쇠전》 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것도 누군가의 죽음이 아닌, 무차별적인 죽음에 대 한 이야기이다.
옹녀, 하층민들의 현실을 맞닥뜨리다 잠시《변강쇠전》 의 배경에 대해서 살펴보자. 한 조선의학사가는 조선의학사에서 가장 끔찍했던 죽음 의 기억으로 1821년(순조 21년)의 괴질, 곧 콜레라의 대유행을 꼽는다.《변강쇠전》 은 1821년 콜레라에 대 한 기억의 연장선 위에서 유행된 사설이다. 당시《실록》 에 따르면 괴질이 유행한지 한달만에 10만 명 이상 이 죽었다고 한다. 평안도에서 시작된 콜레라는 곧 한성, 경기, 영남지방으로, 호남, 함경도, 강원도로 번 져 나갔다. 옹녀의 여정은 재미있게도 콜레라가 퍼져나가는 순서와 유사하다. 여하튼, 지난 호에서 옹녀 때문에 남자들이 다 죽어 황해도 평안도가 여인국이 될 지경에 이르자, 옹녀 를 쫓아내는 데까지 얘기했었다. 추방당한 것을 계기로 옹녀는 하나의 결심을 하게 된다. 그것은 그 다음 결혼을 할 때는 다른 것이 아닌 궁합을 먼저 보겠다는 것이다. 옹녀는 평안남도 중화, 황해도 황주와 동선 령, 봉산, 서흥, 평산, 금천을 지나 개성에서 서북쪽으로 10여리 되는 골짜기인 청석관에 이르러 변강쇠를 만나게 된다. 변강쇠는“천하의 잡놈으로 삼남에서 빌어먹다”북쪽으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예쁜 옹녀와 마주친 변강쇠는 옹녀에게 수작을 걸어 서로 과부와 홀아비인 걸 확인하고 같이 살 것을 약조하며 청석관에서 정사를 벌인다. 둘 다“이력이 찬 것이라”이런 야단이 없다. 먼저 변강쇠가 옹녀의 옥문관을 보고 묘사하며 수작을 걸면, 옹녀는 변강쇠의 기물을 가리키며 받아친다. 그렇게 서로의 성기를 가지고 희롱을 한 뒤에 서로를 한번씩 번갈아 가며 업고서 사랑가를 부른다. 그들은“신혼 첫날밤 기다려 무엇하리 대낮의 정사가 더욱 좋다. 황금으로 만든 집 나는 싫으이. 청석관이 신방이네!” 라며 부귀영화보 다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외친다. 변강쇠와 옹녀의 시작은 좋았고, 변강쇠는 옹녀의 청상살을 이길 정도로 강한 남자였지만, 막상 결혼 관계로 들어가자 둘의 관계가 좋지만은 않다는 것이 드러나기 시작된다. 둘의 성적 욕망은 함께 사는 동 안 지속되었고,“부부가 훌쩍 벗고 사랑가로 농탕치며 닫힌 문 열어 사랑놀음을 맛있게 하였구나” 라고 말 할 정도로 둘의 성적 관계는 좋았지만, 이들에게는 먹고 사는 문제가 언제나 병존했다. 옹녀는 결혼 후 생존을 위해 들병장사, 막장사, 낮부림, 넉장질 등을 하기 시작하지만, 변강쇠는 옹녀 가 돈을 모으는 족족 노름이다 뭐다 해서 다 써버린다. 먹고 살기 위해 옹녀는 행상과 막노동을 마다하지 않는데, 변강쇠는“낮이면 잠을 자고 밤이면 배만 타” 고, 전혀 도박, 싸움, 술먹기만 일삼았다. 그렇다면 변강쇠는 왜 옹녀가 모은 돈을 다 써버렸던 것인가. 당시 부익부 빈익빈이 극심하다보니 성 실하게 살아가더라도 그 성실성이 사회적 대가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변강쇠의 불성실함은 삶에 삶과 문화 105
대한 절망에 기인한 것이었다. 변강쇠보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던 옹녀는 혹여 변강쇠가 계속 싸움만 하 다 맞아 죽을까봐 그에게 지리산에 들어가자는 제안을 해 둘은 지리산에 정착한다. 그러나 산에 들어갔다 고 해서 변강쇠의 게으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에 대해 옹녀가 불만을 표출하자, 홧김에 장승을 뽑아 와서 장작으로 쓰라고 내던졌다가, 장승의 저주를 받아서 변강쇠는 죽게 된다. 여기부터 진짜《변강쇠전》 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옹녀의 모든 것을 받아줄 것 같던 사랑의 화신 변강쇠 가, 결혼생활에서 슬슬 가부장적인 면모를 드러내더니, 옹녀에게 수절하고 살 것을 요구하고, 옹녀에게 접근하는 모든 남자를 죽일 것이라는 저주를 내리고는 장승처럼 뻣뻣하게 굳어서 죽는다. 변강쇠에 의해 청상살을 잊고 살았던 옹녀는 그 저주를 여상하게 듣고는 변강쇠의 장사를 도와줄 남자를 찾는다. 그러나 옹녀의 미모에 반해 변강쇠의 시체를 치워주러 온 여덟 명의 남자들이 모두 죽어 변강쇠의 몸에 붙어 거대 한 시체더미가 되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그녀가 외면하고 있던 어떤 강고한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혼자의 힘으로 구조적 문제를 넘어설 수 없었던 옹녀 옹녀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옹녀는 미인이다. 미인이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 을 수 있지만, 조선에서 가장 손쉬운 방법은 부자의 첩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옹녀는 모든 결 혼에서 누군가의 첩이 되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 경제생활을 영위하고자 했지, 남자의 일 방적인 보호를 원하지 않았다. 옹녀는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한 여자이다. 옹녀에게 중요한 것은 내일의 삶 이지, 지나간 과거가 아니다. 그런 그녀를 인정해주었던, 그리고 성관계에서도 대등함을 보여주었던 변강 쇠는 그녀의 경제적·성적 자립성을 저주하는 마지막 관문으로 등장한다. 그렇다면 옹녀는 혼자의 힘으로 구조적 문제를 넘어설 수 있을까? 아쉽지만《변강쇠전》 은 그렇지 않다 고 말한다. 그녀는 현실을 살아가야 했기 때문에 자신의 상황을 객관화하거나 구조를 관조할 수 있을 만 한 여유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변강 쇠전》 이 문제를 해결하 기 위해 선택한 인물은 왕도 관료도 아닌 노비 뎁득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 만《변강쇠전》 의 백미는 뎁득이가 나오는 부분부 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 변강쇠전을 재해석한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한 장면 (사진 : YTN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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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뎁득이는 시체를 치
워주면 같이 살겠다는 옹녀의 말에 처자식이 있으면서도 변강쇠와 여덟 구의 시체더미를 치우러 온 사람 이다. 재상댁 마종인 뎁득이는 이 사설에서 유일하게 옹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인물이자, 변강쇠의 옹녀 에 대한 집착을 이해해주는 존재이다. 살기 위해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남자들을 도구로 이용하려 했던 옹녀는, 다정하게 말을 받아주는 뎁득이에게 자신을 살려달라고 호소한다. 뎁득이는 그러겠다며 그 녀를 달래지만, 막상 변강쇠의 시체를 보자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변강쇠에 달라붙어 있는 여덟 구의 시체들은 산자들을 끌어들여 자신의 신체를 거대하게 만든다. 이 현상을 본 뎁득이는 이것이 원한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는다. 망자들을 달래기 위해 굿을 하고 변강쇠에게 매년 그를 위해 제사를 드리겠다는 약조를 한다. 그는 변강쇠와 여덟 송장에게 그들의 원통하고 슬픈 인 생을 이해하고 있다는 말을 건넨다.
“살았을 때는 집이 없고 죽은 뒤에는 자식이 없어, 높은 산 깊은 구렁 이리 저리 구는 뼈를 묻어줄 이 뉘 있으며, 슬픈 바람 지난 달에 애고애고 우는 혼을 조상할 사람 누구 있으리. 생각하면 허사로다. 심사 부려 쓸데 있나. …당신네들 신체들은 청산에 터를 잡아 각각 성의를 다해 장례를 지낸 뒤에 연년기일 돌아오 면 내가 제사를 받들 것이니…”
그렇게 해서 겨우 단단하게 굳은 송장들을 등에 짊어지고 뎁득이는 절벽으로 가 송장들을 갈기 시작한 다. 여섯 구의 송장은 묻고 남은 송장은 갈아 절벽에 날린 뒤 뎁득이는,“좋은 남자를 잘 가려 만나 백년해 로하시오” 라며 옹녀를 축복한다. 옹녀는 그 뒤 어디로 갔을까.《변강쇠전》 은 그 뒷이야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옹녀는 뎁득이를 내심 다 음 남자로 생각하지만, 옹녀를 통해 타인의 고통에 직면한 뎁득이는 남녀관계, 그리고 그 남녀관계가 놓 여 있는 사회적 조건의 복잡성을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에 옹녀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 게다가 그는 변강 쇠의 원한을 이해하면서도 한편 괴물이 된 변강쇠의 시체를 토막 내어 갈아 없애는 모순된 행위를 한 사람 이기도 하다. 그는 옹녀를“대상” 이 아닌 인간으로, 변강쇠를 타락하고 사회적으로 실패한 인간이 아닌 감 정을 가진 존재로 대해주었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이들과 진짜 인간적 관계를 맺 을 수는 없는 것이다. 《변강쇠전》 에는 그러므로《춘향전》 에서처럼 결과적으로 신분상승에 성공했다는, 옹녀가 좋은 남자를 만나 잘 먹고 잘 살았다는 해피앤딩도 없다.《변강쇠전》 의 말미에는 권선징악적인 상투어가 들어 있어 마 치“이 사설을 권선징악적으로 독해하시오” 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이야기는 하 층민들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어떻게 견뎌 나갔는지에 대한 일종의 그로테스크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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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로 보는 한국언론
사실 확인도 반론도 없다? 노동조합 때리는‘반노동’오보 조윤호 <미디어오늘> 기자
오보를 내고 싶어 하는 기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종종 별종들이 있다. 오보인 것이 빤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쪽의 일방적인 입장만 대변하면서 발생하 는 오보다. 오보를 각오하면서까지 이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대변하는 이들이 힘이 세기 때문이다. 몇몇 언론들은 한국사회 최대의 권력,‘삼 성’ 의 칼이 되어 오보를 휘두르곤 한다. 민영통신사 뉴스1이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집회를 악의적으로 묘사 해 결국 오보를 양산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뉴스1은 지난 3월 삼성전자서비스지 회의 1박 2일 집회를‘술판시위’ ‘쓰레기더미’ 로 묘사했다. 하지만 이 기사를 쓴 기 자는 현장에 있지도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뉴스1,‘술판’ ‘쓰레기’ ‘행인 희롱’ …노조 집회 난타 지난 3월 28일-29일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서초구 삼성본관 앞에서 1박 2일 집회를 가졌다. AS 노동자와 금속노조 간부 등 2000여 명이 모인 상당한 규모의 집회였다. 이들
유독 뉴스1의 기사가 다른 기사들과 달랐 다. 이 기사는 노조의 요구보다 1박 2일 간 의 농성이 얼마나 지저분했고 위험했는지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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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삼성전자서비스의 지점 폐업 철회와 단체 협약 체결을 요구했다. 노조는 3월 28일 저녁 10시까지 집회를 이어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집회를 보도한 3월 30일자 뉴스1 기사 갈무리.
가다 삼성본관 앞에서 노숙을 했고, 3월 29일 오전에 해산을 했다. 많은 언론들이 1박 2일 집회에 동행 하며 현장을 스케치하는 기사를 내보냈 다. 하지만 유독 뉴스1의 기사가 다른 기사들과 달랐다. 문제의 기사는 뉴스1 의 최명용 산업부 기자(삼성출입)가 쓴 기사 <시위할 땐 술판 벌이고 불내도 괜 찮다?>이다. 이 기사는 노조의 요구보 다 1박 2일 간의 농성이 얼마나 지저분 했고 위험했는지 강조했다. 술판, 쓰레 기, 지나가는 행인 희롱 등의 단어를 통 해 집회를 설명했다. 뉴스1이 기사에서 지적한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다. 쓰레기가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쓰레기 더미 가 산처럼 쌓였다” ,“쓰레기를 치우는 환경미화원들을 시위대는 멀뚱멀뚱 쳐다만 봤다. 시위하는 노 동자와 쓰레기 치우는 노동자는 달랐다” 며 쓰레기를 모아놓은 사진과 모아놓은 쓰레기를 청소노동자 들이 수거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기사에 실었다. 사진 밑에“밤샘 술판을 벌인 뒤 버린 쓰레기 더미 들. 곳곳에 술병과 스티로폼 등이 방치돼 있다” “서초구청 소속 환경미화원들이 이를 치우느라 새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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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 땀을 흘렸다” 와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두 번째 문제점은 노조원들이 지나가는 행인을 희롱했다는 것이다. 뉴스1은“밤샘 시위에선 일탈 행동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며“시위현장을 지나가는 행인들을 희롱하거나 여성을 추행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지나가는 여성 행인들을 희롱하는 발언도 많았다” 라고 전했다.
현장에도 없던 기자…기사 근거는 삼성이 준 사진? 필자는 이 기사를 보자마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확인취재를 했다. 이상한 점은 크게 두 가지였 다. 뉴스1 기사 안에는 쓰레기더미가 쌓여 있는 사진들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는 집회에서 발 생한 쓰레기를 치우기 좋게 모아둔 모습이었다. 보기 좋게 모아둔 것을‘쓰레기더미가 이렇게 많이 쌓 여있다’ 는 식으로 악의적으로 보도한 것 아닌가하는 의심이 일었다. 뉴스1 사진을 자세히 보면 쓰레기 들이 분리수거까지 되어 있고, 쓰레기봉투 안에 넣어져 있다. 이에 대해 노조 측에 문의하자 노조 측은 매우 분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아침에 일어나자마 자 조합원들에게‘여기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깨끗이 하고 가자’ 고 말했고, 담배꽁초 하나 없이 깨끗 이 치웠다. 수거하기 쉽게 다 모아놓은 것인데 모아놓은 쓰레기 더미를 카메라 프레임에 가득 차도록 찍어 놨다” 또 다른 이상한 점은 쓰레기더미가 쌓여 있는 사진의 앵글, 사진 각도였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 한 구도의 사진이었다. 마치 삼성본관 건물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사진이 찍혀서 의문이 들었다. 삼성이‘아무나’삼성 본관 건물로 들여보내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사진은? 기사를 쓴 최명용 기자와 통화를 했
기사를 쓴 최명용 기자와 통화를 했고, 의심 은 사실로 드러났다. 최명용 기자는 필자와 통화에서 28일 저녁까지 집회현장에 있었지 만, 29일 현장에는 없었다고 말했다.
고, 의심은 사실로 드러났다. 최명용 기자는 필자와 통화에서 28일 저녁까 지 집회현장에 있었지만, 29일 현장에 는 없었다고 말했다. 본인은 쓰레기더 미가 쌓여 있는 모습이나 미화 노동자 들이 이를 치우는 모습을 직접 보지 못
했다는 것이다. 최 기자는“쓰레기 사진이나 새벽에 청소하는 사진은 삼성 직원들이 찍은 사진을 받은 것” 이라고 말했다. 삼성이 준 사진을 받아 삼성노조를 매도하는 기사를 쓴 것이다. 그렇다면 최 기자는 왜 모아둔 쓰레기를‘쓰레기더미’ 라고 판단한 것일까. 직접 보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이에 대해 묻자 최 기자는“쓰레기통이 있는 자리에 버려져 있지 않고 길거리에 쓰레기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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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에 쓰레기를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버린 것이라 판단했다” 고 답했다.‘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려야 된다’ 는 논리다. 우리가 월드컵 응원을 할 때도 쓰레기가 많이 나오면 쓰레기를 치우기 편하도록 한 곳에 모아둔다. 이걸 가지고 쓰레기를 마구 버렸다는 식으로 보도한 것은 명백한 오보다. 지나가는 행인을 희롱했다는 내용은 사실일까. 기자는“행인 희롱의 경우 신체적 접촉을 했다는 것 은 아니고 지나가는 행인들에게‘일로 와봐’ 라고 농을 걸었다는 의미” 라며 직접 본 게 아니라 누구한 테 들었다고 말을 했다.‘누구한테 들었냐’ 고 묻자“ ‘주변분들’ 한테 그런 사례가 있었다는 증언을 들 었다” 면서 주변분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주변분들은 노조원일까, 삼성직원일까, 경찰 일까, 누구일까? 본인이 직접 보지도 않은 걸 가지고‘희롱’운운하는 기사를 써도 되는 걸까.
반복되는‘악의적’오보…기자도 노동자다 문제는 이런 악의적 오보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전에 삼성전자서비스가 부산 해운대 지점을 폐업시키려고 한 적이 있었다. 뉴스1은 폐업이 강성노조 때문이라는 보도를 내보냈고 노조는 사실이 아니라며 정정보도를 요청하는 공문까지 보냈다. 그 외에도‘노조 장기파업에 협력사 줄줄이 폐업’ ‘노조의 황당 요구에 삼성 협력사 첫 폐업’ ‘삼성채용도 국민합의 거쳐야 하나’ ‘심상정의 삼성 때리기 우려된다’등 주옥같은 기사들 이 많다. 물론 노동조합이 신이 아니기 때문 에 잘못하면 비판을 받아야 한다. 하지 만 문제는 이런 기사들이 노조 측에 기 본적인 사실확인도 거치지 않고, 반론
노동조합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잘못하면 비 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기사 들이 노조 측에 기본적인 사실확인도 거치지 않고, 반론도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도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삼성노조는 “기사가 이런 기사가 너무 많기 때문에 기사 하나하나에 대응하기보다 추후에 하나로 다 모아서 악의 적인 보도나 왜곡보도들을 상대로 언론중재위 제소나 명예훼손 고발 등을 하려고 생각 중에 있다” 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노동자들이 기본적인 권리를 행사하는 것조차 마땅찮게 여기는 기자들이 많다. 그 기자가 노동조합에 속해 있건 속해 있지 않건 기자도 노동자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하면 이런 악의적 오보는 못하지 않을까. 노동자들을‘대변’ 해주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 상처는 주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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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문화예술 당원 찾기
“재즈로 노래하는 상처와 연대” 재즈 싱어송라이터 이효정 인터뷰·정리 : 나도원 문화예술위원장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나에겐 꿈꾸는 시간, 나만의 뮤즈의 시간 아무런 방해도 없는 그 시간이
너에겐 흐린 눈으로 어둠을 헤쳐 나가서 끝없는 그 삶을 시작해야 하는 시간
조금씩 지쳐가는 너의 쉼 없는 몸짓 고단한 몸 앉힐 틈 한번 없는 반복된 노동에
작은 상처에도 아물지 못하는 너의 손가락 벌어진 그 틈 사이로 차가운 물이 또 닿네
<상처 난 손가락> 하상호·이효정 작사 / 이효정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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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와 상처 미국 뉴욕에서 비정규노동자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그는 잠시도 앉아 쉬지 못하고 내내 서서 일 해야 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그리고 일을 하다가 손가락을 베어 생간 상처가 아물 틈도 없이 끊임없 이 물기를 만져야 했던 노동자의 이야기를 기억했다. <상처 난 손가락>은 그렇게 만들어진 곡이다. 이효정은 최근에 첫 번째 앨범《상처 난 손가락》 (2014)을 발표한 재즈 싱어송라이터다. 사람에 따라‘재 즈’ 라는 단어를 접할 때에 떠올리는 분위기가 사뭇 다를 텐데, 이효정이 뉴욕에서 만난 외국인 음악인들 과 만들어낸 이 앨범의 무드는 시종 편안하다. 작은 살롱에서 우아한 포즈로 노래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네 곡의 재즈 스탠더드(잘 알 려진 명곡)와 함께, 직접 작곡한 여
덟 곡의 노래가 담겨 있다. 과하거 나 덜하지 않은 연주들을 이끌어가 는 것은 남다른 보컬이다. 보사노바 풍을 겸한 상쾌한 앨 범인데, 잘 들여다보면 노랫말들 이 범상치 않다. 앞서 말한 <상처 난 손가락>도 그렇지만, 제목부터 남다른 <파업>이 있고, <소금꽃 나 무>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을 소재로 해, 더 많은 사람들의 이 야기를 그려낸 곡이다. 재즈라는 형식에 사회적인 내
이효정의 첫 번째 앨범《상처 난 손가락》 (2014)
용을 담아낸 경우가 처음은 아니 다. 재즈가“야경이 내려다보이는 레스토랑의 배경음악, 도회적이고 세련된 취향의 표식, 고도로 전문 화된 고급음악처럼 포장된 시절이
재즈라는 형식에 사회적인 내용을 담아낸 이효정의 시도는, 처음은 아닐지라도 무척 귀한 것임에 틀림없 다. 애초에 재즈와 상처는 하나였다.
있었” 지만,“재즈는 블루스와 록처 럼 노예가 되어 낯선 땅으로 끌려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손끝에서 태어났다. 미국의 경제구조 재편과 함께 남부에서 북부로 이동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고된 발길과 궤적을 같이 한다. 그들의 정서와 감각 이 유럽의 기교와 만나 탄생한 재즈의 정신은 자유로움이지 엘리트주의와는 다른 것이었다.” 《결국, ( 음악》 나도원 / 2011) 삶과 문화 113
드물기는 하지만 한국에서도 색다른 시도가 없지는 않았다. 노래운동과 가극 활동을 하다가 재즈에 심 취하여 유학을 다녀온 강은영이‘강은영쿼텟’ 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Someday》 (2007)에는 <明天 대추 리에서>, <오월의 노래>, <Someday-임을 위한 행진곡을 위하여> 등이 실려 있다. 민중가요의 뉘앙스를 재즈에 얹고‘극’ 적인 창법을 더하여 이채로운 품새였는데, 재즈를 활용한 진보적·민중적 음악이라기보 다는 사회적 가사를 입혀놓은 독특한 재즈에 가까웠다. 이처럼 이효정의 시도가 처음은 아닐지라도, 무척 귀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애초에 재즈와 상처는 하나였다.
“되게 별난 아이” , 부산에서 음악에 젖다 “노동자의 딸” 로 서울에서 태어나 일곱 살이 될 때까지 살았지만, 이효정이 내내 자란 곳은 부산이다. 전기조명 관련 일을 하던 아버지는 외삼촌이 하는 사업에 기술자로 참여하기 위하여 서울에서 부산으로 삶터를 옮겼다. 그의 말투 역시 그 동네의 바로 그것이다. 어린 시절의 이효정은“되게 별난 아이” 였다. 부모는 결혼한 지 10년 만에 얻은 자신들의 외동딸을 여 성스럽게(?) 키우려고 노력했으나, 꼬마 이효정은 통 넓은 치마라든가 레이스가 달린 옷 따위는 좋아하지 않았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세 살 때에 다리미를 갖고 놀다가 다리에 화상을 입더니, 네 살 때에는 하이힐 을 신고 보자기를 뒤집어쓴 채 2층에서 뛰어내렸다. 저항의식으로 무장한 소녀는 피아노를 배우다가 선 생님에게‘자’ 로 맞은 이후 다니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가 노래하는 재능을 인정받은 계기는 중학교 2학년 음악시간이었다. 수업시간에 지난 시간에 배운 <메기의 추억>을 불렀는데, 선생님으로부터 격찬을 들었다. 이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지만, 그 경험이 이렇게 특별한 기억이 되는 것은 훗날의 인생에 달려 있다. 미술시간에 칭찬받은 학생, 음악시간 에 칭찬받은 학생은 많아도 그들 중에 정말 예술가가 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효정이 처음부터 재즈에 빠진 것은 아니다. 대개 그렇듯이 처음에는 팝과 록이 음악으로 인도했다. 케이블방송과 음악잡지를 통하여 외국의 대중음악을 접했고, 고등학교 때에는 기존의 곡들을 연주하는 커버밴드에 가입하여 성인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주선한 ‘백악관 블루스 파티’ 를 시청하고는 당시 십대 천재 블루스 기타리스트로 이름을 날리던 조니 랭(Jonny Lang)의 팬이 되었다. TV를 보고 있던 고등학교 3학년 이효정과 동갑이었다.
커피심부름이 싫어 자판기를 설치한“싸움닭” ‘록의 정신’ 을 발휘하여, 정해진 길에 반항하고자 대학진학 거부투쟁을 벌이던 이효정은 어머니가 사 준“피자 한 판과 설득” 에 굴복하고 만다. 일종의 타협으로, 대학에서 클래식 작곡을 전공하기로 했다. 대 학생활 동안 온갖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업을 이어가 졸업까지 했지만,‘주위의 기대 속 114
에 전공을 살려 음악인의 길로 나서 주목을 받더니, 곧 재능을 인정받아 전문음악인이 되어 왕성히 활동 했다’ 는 프로필은 이효정과 거리가 멀었다. 한국에서 예술을 전공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걷게 되는 경로와 비슷할 수밖에 없었다. 졸업에 즈음할 적부터 학원에서 피아노를 가르쳤는데‘자’ ( 로 학생들을 때렸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수입이 충분치 않았고, 결국 중소기업에 취업하여 평범한 회사원으로 지냈다. 물론 여기에서 평범하다는 말은 꼭 그렇다는 뜻이 아니다. 회사에서 그의 별명은‘싸움닭’ 이었으니까. 작은 회사의 여직원으로 근무하면서 겪어야 하는 불합리한 악습은 직장생활 을 해본 사람이라면 능히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이효정 역시 젊은 여직원
여직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커피 심부름을 하는 건 이해할 수도, 참을 수도 없는 행태였다. 결국 회사에 커피 자판기를 설치함으로써‘마시고 싶 은 자가 직접 뽑아먹으라’ 는 지령을 하달했다.
이라는 이유만으로 커피 심부름 따위를 해야 했는데, 이해할 수도 참을 수도 없는 행태였다.‘록의 정신’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그는‘투쟁’ 에 돌입했다. 이번에는 피자 한 판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결국 회사에 커피 자판기를 설치함으로써‘마시 고 싶은 자가 직접 뽑아먹으라’ 는 지령을 하달했다. 3년 반의 회사생활을 마무리하고 나오면서 이것만큼 은 뿌듯했다. 다음에 들어올 여직원들은 더 이상 커피 심부름은 하지 않아도 될 테니.
팟캐스트 녹음할 때 노래를 한곡 들려줄 수 있겠냐는 요청에, 이효정은 피아노 연주자까지 직접 섭외해 와 멋진 라이브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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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열린 제주 강정 미군기지 반대 시위에 함께한 이효정 (사진 : 이효정 제공)
무작정 뉴욕으로 음악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2009년에 재즈밴드‘러브레터’ 에서 보컬리스트로 활동하던 이효정은 2010년, 미국 뉴욕으로 떠난다. 가방을 다섯 개나 들고 공항에 내렸으나 막상 갈 곳이 없어 한 시간이나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미국생활이 4년 반 동안 이어졌다. 어학원을 다니다가 학교에 입학하 고, 대학원을 다니면서 재즈를 공부했다. 처음에는 배경과 언어가 달라 힘들었으나 점차 적응해나갔다. 졸업장을 받으면서 체류기간이 연장되어, 음악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앨범을 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뉴욕에서의 생활은 우아하고 치열한 음악인의 삶으로만 채울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역 시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였다.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서빙과 계산원, 그리고 시식코너에서도 일했다. 이 과정에서 비정규 노동 환경의 현실을 보았다. 알선업체에 보증금을 내고 하루 12시간씩 일했지만 일거리 는 불안정했다. 그래서 알선업체를 옮기다가 임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싸워서 기어코 돈을 받아냈는데, 그 때 받은 금액이 우리 돈으로 15만원 정도였다. 남몰래 겪는 외로움 속에서도 우리의 싸움닭(?)은 미국에서 벌어지는 연대시위를 주도적으로 기획하기 도 했다.《상처 난 손가락》 은 이 모든 과정을 겪고 태어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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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세상과의 소통 젊은 예술인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이효정 역시 대학시절에는‘운동’ 에 참여하지 않았다. 소속과 조 직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혼자 늘 분노하였고, 함께하고픈 마음은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2009년, 아무도 권하지 않았는데 제 손으로 진보신당에 입당해 지금의 노동당까지 당적을 이어오고 있 다. 이러한 경력 때문인지, 우리의 시선 때문인지 몇몇 곡의 노랫말과 제목에 주목하게 되지만, 실은《상 처 난 손가락》 의 모든 곡은 이효정 자신이 자연스레 낳은 음악이다. 아니, 그가 좋아한다는 소주와 함께 낳은 음악일지도 모른다.
“목적 없이 만들고 싶었는데 정치색이 보인다고도 해요. 전혀 의도한 바가 아니에요. 하고 싶은 대로 했더니 이런 음반이 나왔어요. 그때그때의 내가 표현된 것이죠.”
“제게 음악은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에요.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뿐이죠. 제 색깔을 찾으면서 음악을 들려주는 사람이고요.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구나 해주시면 좋겠는데, 그나저나 일단 들어보셔야 지요!”
너의 개념은 내겐 너무 가혹하다 너의 처사는 내겐 너무 모질다 혁명을 꿈꾸기엔 가진 게 많은 나는 초연해지기에는 가진 게 없는 나는 이렇게 길 위에 서는 것 밖에는 도리가 없네 저버리기엔 무겁고 함께하기엔 힘겨운 그네들과 함께
노동당 문화팟캐스트‘컬쳐쇼크’5회 이효정 당원 편 듣기 http://www.podbbang.com/ch/1858?e=21480235
<파업> 이효정 작사 / 이효정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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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서재
위험한 계급의 성장, 프레카리아트와 접속하라! 프레카리아트 가이 스탠딩 / 박종철출판사 / 2014년6월 / 30,000원
양솔규 기획조정실 국장
새로운 맑스주의 사회학자들의 기세
2014년 7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세계 사회학회(ISA)가 주최한 세계 사회학대회가 열렸다. 현재 세계 사회학회 학회장은 ≪생산의 정치≫로 유명한 마이클 뷰러워
가 등등한 사회학
이(Michael Burawoy) 교수이다. 그는 노동자들은 저항과 동의의 양면적 태도로
대회에 전세계 6천
‘생산의 정치’내에서 노동과정의‘상대적 자율성’ 을 획득한다고 주장하면서, 구
명이나 되는 사회
상과 실행의 분리로 인한 탈숙련화 테제를 주장했던 해리 브레이버만의 1974년
학자가 몰린 데에
기념비적 저작 ≪노동과 독점자본≫을 논박한 바 있다. 사회학회 전임 회장은《리
는 자본주의가 더
얼 유토피아》 로 유명한 분석마르크스주의 계급론의 대가 E.O.라이트로, 마이클
욱 깊은 수렁에 빠 지고 있는 지구적 위기상황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뷰러워이와 함께‘유토피아 프로젝트’ 를 진행 중이다. 이렇듯 새로운 맑스주의 사 회학자들의 기세가 등등한 사회학대회에 전 세계에서 6천명이나 되는 사회학자 가 몰린 데에는 자본주의가 좀처럼 위기에서 탈출하기는커녕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지고 있는 지구적 위기 상황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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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위험한 계급, 프레카리아트 이번 학술대회에서 가장 이목을 끌었던 주장은‘기본소득론자’ 로 잘 알려진 영국 의 경제학자인 가이 스탠딩(Guy Standing) 교수였다고 한다. 그의 저작 ≪프레 카리아트≫는 계급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면서‘변혁주체’ 로서의 프레카리아트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저자에 따르면, 지구적 신자유주의는 새로운 위험한 계급을 창출하고 있는데, 이 계급은 이전 시대의‘노동계급’ 이나‘프롤레타리아트’ 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계급 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친디아(Chindia)를 포함해 풍요로운 시장경제와 신흥 시장 경제에 속한 수백만 명의 새로운 존재들이기도 하고, 제1세계의 배제되고 정체성 이 결여된 노인, 범죄자, 여성, 청년 등의 불안정 노동자들과 실업자들이기도 하 다. 이름하여‘프레카리아트’ . 불확실하다는 뜻의“precarious” 라는 형용사와 그 이들은 고용주가 누구인지 모르고, 피고용인으로서의 집단적 관계나, 미 래에 대한 전망도 알지 못한다. 실업
어근이 되는“proletariat” 라는 명사를 조합한 신조어인 이 말은 일시직 노동자, 계절노동자를 묘사하기 위해 80년대 프랑스 사회학자들이 최초로 사용했다고 한 다. 이들은 고용주가 누구인지 모르고, 피고용인으로서의 집단적 관계나, 미래에 대 한 전망도 알지 못한다. 또한, 노동시장 보장, 고용보장, 직무보장, 소득보장, (집
은 이미 그들 삶의
단적) 대표권 보장, 숙련기술 재생산 보장 등에서 제외되어 있으며, 일에 기반을
일부이며, 불안은
둔 정체성, 즉 직업정체성이 결여되어 있다. 다른 집단의 화폐임금보다 더 낮게
내재적 속성이다.
받고 더 가변적이다. 실업은 이미 그들의 삶의 일부이며, 불안은 내재적 속성이 다. 따라서 프레카리아트들은 분노(anger), 아노미(anomie), 걱정(anxiety), 소외 (alienation) 등 네 가지 A를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하게 된다.
프레카리아트의 취약성 그렇다고 이 성장하는 계급은 20세기‘프롤레타리아트’ 처럼 세상을 확 뒤집을 수 있을까? 저자는 이들이 성장하고는 있지만, 아직 대자적 계급이 아니라고 말한 다. 그 이유는 이들은‘기술상의 힘들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 이기도 하고,‘스스 로와 교전 중이기 때문’ 이기도 하다. 3차산업 중심의 사회이고, 더구나 업체 유동 성이 늘어나면서 프레카리아트들은 내부 경력을 쌓거나, 기술적 숙련을 쌓는 것 을 포기해야 했다.(일본의 NEET족)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공통된 이해관계를 찾기 이전에 이미 집단 내부에서 스스로와 교전 중이라는 것이다. 각종 연금개혁 삶과 문화 119
과 복지의 축소 속에서 노인들은 청년들과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여성들은 남 성들과 경쟁하며, 신자유주의 정치는 점증하는 범죄자, 장애인, 이주자에 대한 적 대감을 부추긴다. 국가는 이러한 프레카리아트의 취약성을 이용해 이간질에 몰두한다. 또한, 이들 의‘시간을 쥐어짜면서’생활속 여유를 거세하고 스트레스에 기반한 지옥정치 (politics of inferno)를 구사한다. 영장 없이 도청이 행해지고 촘촘한 감시가 일상
적인 사회경관이 된다. 근로연계복지(workfare)를 통해 죄책감을 주입하면서 노 동윤리를 훈육한다. 프레카리아트의 일부 집단(예컨대 이주자, 범죄자)을 악마화하 면서 네오파시즘으로 이끈다. 민주주의는 앙상해진다.
극우파의 부상과 그 계급적 토대 저자는 프레카리아트를‘좋은 프레카리아트’ 와‘나쁜 프레카리아트’ 로 나누는 것 은 사태를 단순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나쁜 프레카리 아트’ 의 준동(?)이 지배적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예컨대 일본에서‘조선인’ 의 권리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자이토쿠가이(ざいとくかい, 在特 )는 일본 프레카리 아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일본의 넷우익(Net 極右)들은 한국으로 건너와‘일베’ 가 되었다. 추석 연휴기간동안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극렬하게 집결해 먹방 을 선보였던‘일베’ 들은 일본의 우익들이 조선인들의 권리를 문제삼는 것과 마찬 비단 일본과 한국
가지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공격, 다문화주의에 대한 반대에 열을 올린다. 비단
만이 아니라 유럽
일본과 한국만이 아니라 유럽과 북미에 불고 있는 극우파 정당의 부상에는 이러
과 북미에 불고 있
한‘계급적 토대’ 가 자리하고 있다. 그들의 태도는 면밀히 분석될 필요가 있다. 태
는 극우파 정당의
어나면서부터 경쟁은 치열하고, 자기 존재는 찌질하고, 일자리는 없고, 불안이 내
부상에는 이러한
재화된 현재가 좋을 리가 없다. 나쁜 프레카리아트에게 기름을 붓고 있는 것은 지
‘계급적 토대’ 가자 리하고 있다. 그들 의 태도는 면밀히 분석될 필요가 있 다.
난날의‘황금기’ 이다. 저자는 이들에게 집단적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기본적인 생존을 보장해주기 위한 낙원정치(politics of paradise)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 공동체의 합법적 거주 자 모두에게 정기적으로 현금 급여를 주는 기본소득은 시장 압력으로부터 독립적 인 힘을 길러줘 자본과의 교섭에 당당하게 임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시간 쥐어 짜기’ 에 맞서 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다시 되찾기 위한 가능성을 높인다.‘슬로우 타임운동’ 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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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형태의 저항은 어떻게 가능한가 우리는 프레카리아트의 상태를‘일시적인 예외상태’ 로 보아서는 안된다. 지구적 으로 늘어나는 점차 다수가 되는 이들의 삶의 양태를 그대로 인정해주고‘정상상 태’ 로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지만 이들의 삶의 조건에 부합하는 새로운 형태의 저항방식, 조직방식, 운동방식, 공감과 자긍심의 고양이 이루어질 수 있다. 예컨 대 아마미야 가린이 주도한 일본‘프리타운동’ 과 기존 노동조합운동의 외부에서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하는‘유니온운동’ , 그리고 유럽의 유로 메이데이운동(Euro mayday)의 퍼레이드(한국에서도 이를 모방한 시도가 있었다), 영국의‘거리되찾기
운동’ (Reclaim the Street)은 프레카리아트의 집단적 역능의 일부를 보여준다. 정통적 맑스주의자들에게는 이러한 프레카리아트라는 카테고리가 계급을 대체할 수 있는 개념으로서는 자격미달로 보일 수도, 따라서 분석도구의 무용성을 주장 할 지도 모른다. 더구나 이러한 반란주체의 새로운 조합과 제시가 새로운 것도 아 니다. 네그리와 하트는‘사회적 노동자’ 라는 개념과‘다중(multitude)’ 을 제시한 바도 있다. 또한 계급론적 분석도구로서의 유의미함이 곧바로 실천적 유의미함을 우리가 이러한 노 력을 게을리하고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가이 스탠딩의 개념과 논의를 교조적으로 받아들 일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가 오랫동안 마주하고 있는‘운동의 위기’ 의 알맹이가
있는 사이 프레카
‘운동 주체의 (재)생산의 위기’ 라고 한다면 우리는 익숙하지 않더라도 좀 더 긍정
리아트는 우파들의
적인 숙고를 일부러 해야만 한다. 노동운동 내에서도 되풀이되는 세대론에 기댄
선동 속에서 정말
폄하는 지겨울 뿐만 아니라 반대급부의 혐오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우리가 이러
로 위험해질 수도
한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는 사이 프레카리아트는 우파들의 선동 속에서 정말로
있기 때문이다.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더 읽을만한 책
• 《만국의 프레카리아트여, 공모하라!》이진경·신지영/ 그린비/ 2012년8월 /20,000원 • 《일본 노동운동의 새로운 도전》/ 기노시타 다케오 / 2011년7월 / 15,000원 / 이 책의 5장과 6장에는 프리터를 중심으로 기업횡단적, 개인가입 유니온 건설의 과정이 서술되 어 있다. • 《프레카리아트》/ 아마미야 가린 / 미지북스 / 2011년7월 / 15,000원 • 《분배의 재구성》/ 브루스 액커만 외 / 나눔의집 / 2010년 2월 / 18,000원 / 이 책은 기본소득에 대한 논쟁과 분석을 다루고 있다.
삶과 문화 121
‘달그락 달그락’부엌에서 분주한 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벽시계가 보이지 않는, 아직 어두운 기운에 휩싸인 방. 핸드폰을 켜고 확인하니 새벽 4시다. 추석이라고는 하지만 분명히 전날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 이렇게 이른 시각에 무얼 하시는 걸까? 방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 성의도 없는 딸은 누운 채로 한마디 한 다.“엄마! 왜 이렇게 서두르세요? 상만 차리면 되는 걸…”탕국은 오래 뭉근히 끓여야 제맛이라며 더 자 라 하신다.‘암요. 더 자야지요.’딸은 그대로 냉큼 잠속으로 빠져든다. 말로는 걱정하지만 절대 먼저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게으르고 냉정한 존재.‘딸’ 이라 불리는 사람, 바로 나다.
모든 것이 당연한 줄 알았던‘엄마’ 라는 이름 가족이 원하는 먹거리가 밥상에 올라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나이 서른이 넘어서야 알았 다. 제 때에 먹는 끼니나 출출함을 달래줄 새참이나 말 한마디면 언제든 먹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 렇게 세상물정에 어두웠던 것은 그런 경험을 할 기회를 주지 않으신 엄마의 탓이다. 나의 엄마는 언제나 원하는 밥상을 차려주셨으니까. 피곤하다는 이유로 도시락을 안 싸주는 엄마가 있다는 사실도 나이 서른 이 넘어서야 알았다. “엄마, 도시락 안 싸주는 엄마도 있대요. 귀찮거나 피곤하다고 용돈만 주고 도시락을 안 싸주었대요.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엄마가…. 새삼 엄마께 고맙다는 생각을 했어요.”어느 날 무심코 말하던 내게 돌아 온 엄마의 답이 내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많이 힘들면 그럴 수도 있지. 나는 너 고등학교 삼년 내내 새벽 세시에 일어났었다. 너 지각하거나 도시락 못 싸줄까 걱정돼서 깊은 잠을 잔 적이 없어. 늘 노심초사 했지. 우리 딸 성격이 좀 칼칼했어야 말이지.” “……” 집에서 새벽 다섯시에 나와야만 지각을 면할 수 있었던 고등학교 삼년 내내 한 번의 지각도 하지 않은 건 내가 성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야 아침마다 짜증내는 딸을 달래 가며 깨운 엄마 덕분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그 깨달음 이후에도 엄마는 언제나 엄마였다.
노래의
꿈
어머니는 민정연 문화기획자, 꽃다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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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그대만을 생각해봐요. 그대만을 위해 시간을 내요.” 엄마는 엄마이기 전에‘사람’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게 언제부터일까? 마흔 무렵이 되어‘이제 나도 빼 도 박도 못하는 중년이 되는구나. 이제 새로운 시도나 꿈을 꾸는 것 같은 행위는 가당치도 않은 나이인건 가? 아직 못한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그리고 제대로 놀기도 해야 하는데. 이제 늙어가는 건 가?’라는 생각에 우울했던 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문득‘엄마는 지금의 내 나이였을 때 무엇을 하고 계 셨지?’ 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제 좋은 일, 원하는 일을 하면서도 여전히 모자라다 생각하며 우울해하던 나 와 같은 나이일 적에 우리 엄마는 성실하기만하고 별 재주는 없어 빈한하기 짝이 없는 한 남자의 아내였 고, 8남매의 맏이인 남편의 형제자매를 곰살궂게 챙기고 홀시어머니를 모셔야하는 맏며느리였고, 네 남 매를 둔 엄마였다. 그뿐이었다. 불린지 너무 오래되어 그녀조차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기억이나 할까 싶을 정도로 자신은 없어진지 오래인…. 이런 나의 생각을 그대로 담은 노래가 있다. 바로 윤미진의 <어머니는>이라는 노래이다. 그녀의 마음 도 나와 같았나보다. <어머니는>은 3집《노래여 날아가라》이후 7년 만에 발표한 윤미진의 4집《마음아 미안해》 에 수록된 곡이다. <어머니는>은 모든 딸들의 마음을 담담히 표현한 노래이다. 과장된 미사여구도 없고, 격한 감정의 내비침도 없고, 구구절절한 사연도 없다.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며 눈물 흘리지도 않는 다. 게다가 윤미진은 이 노래를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관조하는 듯한 목소리로 부른다. 그래서 오히려 듣는 이가 자신의 어머니의 삶을 떠올리며 감정이입 하게 된다. 윤미진의 노래 중 <어머니는>과 더불어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이름>이라 는 노래다.‘그대 이름을 부르니 눈물이 나요. 어리던 그때와 똑같은 이름. 예쁜 그 이름 소녀였지요. 지난 시간을 떠올려 고독해지거나 잘못을 탓하지 말아요. 그대 잘못이 아냐. 울지 말고 행복해져요.’ 라는 노래 를 읊조리면 엄마를 위로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허튼 시간은 아니었지요. 무엇이 되거나 이뤄 야 하나요. 어색한 마음 어색한 표정, 어색하기만 한 내 나이. 조금만 더 그대만을 생각해봐요. 그대만을 위해 시간을 내요. 그대를 닮은 시를. 그대를 닮은 그림을. 울지 말고 행복해져요.’ 라는 부분에 이르러서 는 이제라도 엄마가‘엄마가 아닌 엄마의 삶’ 을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다. 이 또한 비겁한 딸의 변명과 면피는 아닌가 하는 자책은 제쳐두고 말이다. 그러나 정작 엄마는 타인을 돌보는 삶에만 익 숙해진 삶의 태도 때문에 온전히 자신을 위하기에는 어색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따뜻한 시선과 깊은 사색을 노래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 윤미진 위에 소개한 두 곡을 만들고 부른 윤미진을 기억하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40대 초중반에 들어선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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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이라면‘조국과 청춘’시절에 발표한 <그대를 처음 만난 날>이나 <통일일세대> 또는 <나의 소망>을 떠 올릴 것이다. 그보다 연배가 조금 낮은 사람이라면 꽃다지 시절 발표한 <접동새에게>나 <청호동 할아버지> 를 떠올릴 것이다. 혹은 솔로 독립한 후에 발표한 <희망은 있다>나 <노래여 날아가라>를 좋아하기도 할 것 이다. 그녀는 한국에서 몇 안 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이다. 그녀가 발표한 노래는 몇 곡의 리메이크 곡을 빼 고는 전부 자작곡이다. 연 200여회의 현장 공연을 하던 꽃다지 시절에도 꽤 여러 곡을 만들었다. 창작이 가수의 주요 역할이 아니었음을 상기하면, 음악을 대하는 그녀의 성실성과 몰입도가 꽤 높음을 엿볼 수 있다. 꽃다지 시절에 연습실이 조용하다 싶으면 기획실로 찾아와 직접 기타를 연주하며 새로 만든 노래를 들 려주곤 했다. 노랫말을 아직 붙이지 않은 노래는 멜로디를 들을 때 어떤 장면이 연상되는지, 어떤 내용의 노랫말을 붙이면 좋을지 아주 막연한 의견이라도 듣고자 했다. 새 노래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하면 자존 심이 상할 만도 한데 귀 기울여 듣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열린 태도와 성실함이 있었기에, 학생시 절에는 조국과 청춘에서 졸업 이후에는 꽃다지에서 팀 활동을 꽤 오래 했음에도, 솔로 독립 후 비교적 빠 르게 자신의 음악 언어를 구축할 수 있던 게 아닌가 싶다. 솔로 3집 음반을 듣고, 대놓고‘가수 윤미진’ 의 장점이 전혀 살아나지 않은 매우 실망스러운 음반이라 고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아무개 같은 프로듀서랑 작업하면 좋겠다고 했을 때도“그래도 내 음악이니까 스 스로 더 책임지고 해보고 싶다” 라고 조근조근 이야기하던 그녀의 4집 음반. 이전의 노래보다 더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고 더 깊어진 사색의 흔적이 담겨있다. 오랜 침잠의 결과가 한층 다듬어져 담겨있는 4집 음 반이 그녀의 음악 인생에 곱고 정갈한 매듭 하나를 지어냈다. 다음에는 어떤 결의 깊이를 보여줄지 기대 하게 된다.
다시 윤미진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엄마를 떠올린다. 친구네 집에서 공부하고 돌아오는 열세 살짜리 딸을 마중나왔던 나의 엄마를 떠올린다.“반딧불이네. 반딧불이 잡아줄까?” 라며 슬그머니 딸의 손을 놓고 풀숲으로 들어가던 서른일곱 살의 나의 엄마를 떠올 린다. 그때 반짝이던 그녀의 눈빛은 소녀였다. 그 눈빛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딸 꿈 많은 소녀 / 어깨가 시린 아주머니, 아내 그리고 여인 / 어머니는 어머니의 딸 꿈 많은 소녀 / 다리가 무거운 아주머니, 아내 그리고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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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윤미진 작사·작곡·노래
어머니는 몸에서 나온 실로 아이를 짓고
아이는 그 정성을 모르지 절대로 절대로 모르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무럭무럭 자란다
한가닥 진한 사랑을 모르지 세월 따라 무심히 흐르다 제 아일 지을 때쯤
어머니는 혼에서 나온 실로 아이를 짓고
그제서야 알게 될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무럭무럭 자란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딸 꿈 많은 소녀 아이는 그 정성을 모르지 절대로 절대로 모르지
어깨가 시린 아주머니 아내 그리고 여인
꼬깃꼬깃한 사랑을 모르지 어머니는 어머니의 딸 꿈 많은 소녀 커다랗게 자라난 아이와 점점 작아지는 어머니
다리가 무거운 아주머니 아내 그리고 한 사람
가볍고 작아지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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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접으며
연애상담과 삼포세대 박권일『88만원 세대』공동저자
요즘, 시청자들 자신의 이야기나 고민을 패널이 듣고 이런저런 코멘트를 해주는 형식의 TV 프로그램 이 승승장구 중이다. JTBC의《마녀사냥》 과 tvN의《로더필(로맨스가 더 필요해)》 이 대표적이다. 특히 20대 의 반응이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자신의 이야기든 남의 이야기든 연애 이야기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연애 에 관한 속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연애담, 그것은 인류에게 무궁무진한 영감과 재미의 보고라 해도 과언 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의 이런‘연애상담 전성시대’ 는 기묘한 구석이 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언론에서 기획 특집으로 내놓는 식상한 아이템이 바로‘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청년세대’ , 소위‘삼포세대’문제 다.《88만원 세대》 가 나온 지도 무려 7년이 넘었건만, 사람들은 계속해서 청년세대의 빈곤에 대해 떠들어 대고, 현실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돈이 없어 연애하기도 힘들다는 젊은 사람들이 연애상담 프로그램에 는 열광한다? 뭔가 좀 모순적으로 들린다. 물론 연애상담 프로그램의 인기는 그 자체의 기획과 내용이 참 신했기 때문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전부 설명할 수 없다. 대체 왜 이런 포맷이‘떴을까’ . 왜 사람들은 자신 의 연애담을 불특정 다수 앞에서‘전시’ 하고 타인에게서‘진단’ 과‘조언’ 을 구하는 걸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나의 연애’ 란 개별적이고 내밀한 사적체험의 영역에 속한 사건이었다. 연애 에서 문제에 부딪쳤을 때 조언을 구하는 사람은 친구나 선배 같은 주변 사람들이었다. 만나서 직접 눈을 맞추고, 술잔을 나누고, 등을 토닥이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면서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의례를 수행한 다. 이를 통해 개인은 충분한 위로와 나름의 실용적 처방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개인적 제의(ritual)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만, 최근에는 이런 사적체험의 공유가 개인의 네트워 크에 국한되지 않는다. 평범한 개인의 사적체험들이 이제는 인터넷 게시판이나 방송을 통해 집단적 오락 (amusement)이 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체험이 과연‘정상적’ 이고‘평균적’ 인지, 집단지성이나 권위자
에게 확인받으려 안달한다.《마녀사냥》 의‘그린라이트’ 와‘레드라이트’ 는 그 정서를 중독성 있는 엔터테 인먼트로 만든 영리한 장치였다. 연애상담 프로그램이나 네이트판 같은, 사적체험을 전시하는 인터넷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이 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사적체험의 데이터베이스화. 이는 분명 연애(혹은 결혼)라는 체험 자체가 점점 어려워지는 현실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연애가 희소한 경험이 될수록 연애를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대 리만족을, 연애를 하는 사람에게는‘매뉴얼’ 을 제공하는 일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사적체험을 고유성 의 영역에 남겨두기보다 범용성 내지 호환성의 영역으로 재배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혹시 이것은 실 패가 용납되지 않는 사회, 패자부활 없는 사회가 만들어낸 새로운 강박은 아닐까.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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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이야기
“재즈로노래하는상처와연대” 재즈싱어송라이터이효정 이효정은최근에첫번째앨범《상처난손가락》 을발표 한재즈싱어송라이터다 미국뉴욕에서비정규노동자로아르 바이트를하던시절 그는잠시도앉아쉬지못하고내내서서 일해야하는사람들과함께있었다 그리고일을하다가손가 락을베어생간상처가아물틈도없이끊임없이물기를만져 야했던노동자의이야기를기억했다 상처난손가락 은그 렇게만들어진곡이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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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없이만들고싶었는데정치색이보인다고도해요 전혀 의도한바가아니에요 하고싶은대로했더니이런음반이나 왔어요 그때그때의내가표현된것이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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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개념은내겐너무가혹하다 너의처사는내겐너무모질다 혁명을꿈꾸기엔가진게많은나는 초연해지기에는가진게없는나는 이렇게길위에서는것밖에는도리가없네 저버리기엔무겁고함께하기엔힘겨운 그네들과함께 <파업> 이효정작사 / 이효정작곡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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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싱어송라이터 이효정 인터뷰 전문은 112~117쪽 <숨은 문화예술당원찾기>에서볼수있습니다.
미래에서온편지제13호
발행인 이용길 편집인 이장규 위원회 김건담김성현노정박권일장석준정정은정철수
조윤호최백순홍원표
교 열 노정정정은 디자인 고미숙
등록일 2013년 6월 11일 (등록번호영등포, 라00407) 발행일 2014년 9월 26일 주 소 서울영등포구국회대로 664 한흥빌딩 2층노동당 전 화 02) 6004-2006, 2007 팩 스 02) 6004-2001 이메일 laborzine@gmail.com 홈페이지 www.laborparty.kr 인 쇄 인천시계양구계산동 973-15 원일컴 가격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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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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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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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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