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
제15호
2014.12
미리 보는 정책당대회
www.laborparty.kr
값 10,000원
미리보는정책당대회
특집
기획 ■ 2014년 6대 미스터리 숨은 문화예술 당원 찾기 ■ 언저리의 중심에 선 자립음악가, 단편선 "올바름과 좋음과 기쁨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표지 이야기
“이주여성들의 빛나는 친구 ” 이주여성 인권활동가 고명숙 당원 이주여성 쉼터에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거나 성폭력 피해를 당해 들어 온 이주여성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부끄러운 한국사 회의 얼굴을 비추고 있는데, 때로는 언어가 서툴러서, 때로는 정보가 부 족해서, 때로는 이주민을 대하는 차별적인 사람들 때문에 이중, 삼중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고명숙은 쉼터에서 이 여성들을 폭력으로부터 보 호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필요로 하는 가해자 처벌, 아이 양육, 자립에 필 요한일까지도지원하고있다.
미래에서 온 편지 제15호 발행인 이용길 편집인 이장규
“새누리당이 정말 잘한 거 한 가지는 이자스민을 내세운 거예요. 아무래 도 폭력 피해 여성에 더 관심을 갖는단 말이에요. 그걸 해주는 건 정당 밖 에 없어요. 이 사람들의 목소리가 좀 더 나타난다면 더 다양한 정책들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걸 부문위원회에서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노 동당에 이주민위원회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죠. 좀 더 그들의 힘을 모아 줄수 있는 데가진보정당밖에 없다고생각했어요.” 고명숙이 힘을 냈으면 좋겠다. 이주여성들에게 욕조차 스스럼없이 내지
조윤호 최백순 홍원표 교 열 노정 장석준 정정은 최백순 디자인 고미숙
등록일 2013년 6월 11일 (등록번호 영등포, 라00407) 발행일 2014년 11월 26일 주 소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 664 한흥빌딩 2층 노동당 전 화 02) 6004-2006, 2007
르며 그들의 친구로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또 몇이나 되겠는가. 오랜 세월,
팩 스 02) 6004-2001
고통 받고 소외 받는 이주여성들의 친구이길 자처하며 걸어온 길이 진보
이메일 laborzine@gmail.com
정치로 이어지고, 다시 또 정치가 이주여성들의 삶을 바꾸는 힘이 되기를
홈페이지 www.laborparty.kr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는 여자 고명숙의 파이팅이 지역과 정치에서 활짝
인 쇄 인천시 계양구 계산동 973-15 원일컴
피는진보정치의봄날이진정 왔으면좋겠다. *고명숙 당원 인터뷰 전문은 70~78쪽 <여성진보정치 열전>에서 볼 수 사진 : 정정은 편집부장
위원회 김건담 김성현 노정 박권일 장석준 정정은 정철수
있습니다.
가격 10,000원
미래에서 온 편지
‘ 미래에서 온 편지’ 는 영국의 사회주의 사상가이자 작가, 미술가인 윌리엄 모리스가 1891년에 낸 소설 제목
News 『News from Nowhere』 을 우리말로 의역한 것입니다. from Nowhere
nowhere는 ‘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 이라는 뜻입니다. ‘ 유토피아’ 라는 말의 원래 의미도 ‘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 이라고 하지요. 이제 노동당의 기관지에 ‘ 미래에서 온 편지’ 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한국 사회의 답답한 현재에 햇살을 들이는 미래의 틈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러고 보니 nowhere는 now+here(지금 여기)이기도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미래가 되기 위해, 이 편지를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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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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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띄우며 금을 밟고 랄라!|<미래에서 온 편지>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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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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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 노동당 ■ 정책당대회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전망을 전망하라|노 정
특집 ■ 미리 보는 정책당대회 12
전망섹션 과감한 진보재편, 우리의 임무다|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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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섹션 녹색좌파의 길로 가자|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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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섹션 노동당 노선이 진보다|윤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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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섹션 이제 사민주의의 옷을 입자|홍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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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섹션 기본소득과 불안정 노동 체제 |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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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섹션 상가임차인상담소, |김상철 노동당만이 할 수 있는‘블루오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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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섹션 고등교육 개혁을 위한
노동당 당원모임을 제안한다|김예찬 38
정책섹션 국민연금 하나로, 기초연금 두배로|김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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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섹션 사회서비스 바우처 폐기하고
노동자는 지자체 직접고용해야|배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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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진보정치 열전 7 |전생에 나라를 구한 여자, 고명숙 “이주여성들의 빛나는 친구” |심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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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르포 콜트콜텍을 읽는 열두 개의 시선⑩
기타가 맺어준 아름다운 인연 2⃞ : 문화가 노동을 만나다|이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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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제15호
·목차
기획 ■ 2014년 6대 미스터리 44
사라진 안철수, 어디서 뭐하나|한윤형
48
이건희 회장 살았나 죽었나|이정환
52
최경환의‘초이노믹스’그 향방은?|김민하
57
IS의 비극적 성공,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김낙호
61
출판의 위기, 텍스트의 위기인가|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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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K-Pop) 열풍, 이대로 사그러드나|서정민갑
87
정책포럼 밥그릇 싸움은 가라 : 정치관계법 개혁 시작해야|윤현식
93
의정일기 밥만 굶나, 아이들 마음도 굶는다|여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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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현장에서 택시 노동조합 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하다|송민영
102
빨간 도시교통 이야기 대중교통요금‘사회적 가격’ 으로 보자|김상철
삶과 문화 107
오비환의 야담외전 왕, 시간, 그리고 주체①|오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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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문화예술 당원찾기 언저리의 중심에 선 자립음악가, 단편선
“올바름과 좋음과 기쁨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나도원 118
불온한 서재 용기있는 선택이 녹색전환을 이끈다|양솔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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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꿈 아, 대한민국|민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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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파견의 품격?|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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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접으며 법이라는 최종심급|박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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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띄우며
금을 밟고 랄라! 오는 11월 29일, 노동당이 창당 이후 처음으로 정책당대회를 엽니다. 당의 향후 노선과 주 요 정책을 두고 1박2일의 불꽃 튀는 토론의 장이 벌어집니다. 진보정치의 오늘을 돌아보고 노 동당 운동의 방향을 다시 한 번 가늠해 봅니다. 진보정치의 꽃, 세상을 바꾸는 우리의 정책들 도 당원들의 힘으로 만들어 갑니다. 그래서《미래에서 온 편지》12월호 특집은‘미리 보는 정 책당대회’ 입니다. 정책당대회에 참여하는 당원들이 사전토론회와 팟캐스트 등 그간의 준비과 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들을 담아 보내왔습니다. 노동당의 현실을 진단하는 것을 넘어 오늘의 바깥을 멀리 조망하고자 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안철수가 사라졌습니다. 제시카가 소녀시대를 떠났습니다. 베스트셀러가 줄을 잇는데 출판계는 경영난이랍니다. 그런가 하면 잔혹한 인질 살해 비디오를 무람없이 인 터넷으로 퍼뜨리는 테러 집단이 전세계의 주목을 삽시간에 끌어 모았습니다. 오늘도 세상은 요지경입니다. 12월호 기획에서는‘2014년 6대 미스터리’ 를 꼽아 보았습니다. 미스터리한 오 늘날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문화적인 현상들을 새삼 의혹의 눈으로 들여다봅니다. 시장의 바깥, 제도의 바깥, 현실의 바깥에 대한 상상력을 추동합니다. 그래서‘6대 미스터리’ 는 모두 물음표로 끝맺습니다.
얼마 전 헌법재판소에서는 국회의원 선거구를 재획정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투표를 하는 다수 시민들을 대의하는 데 실패한 정치 현실 위에서 우리는, 진보정치는, 노동당은 무 엇을 해야 할까요?《미래에서 온 편지》12월호는 묵직하고 서늘한 물음표들로 가득 차 있습니 다. 그래도 섣불리 짓눌리지는 말 일입니다. 오늘의 바깥을 묻고 또 꿈꾸는 우리는 유쾌 발랄 하게 폴짝 뛰어 오릅니다. 김승희의 시처럼“금을 밟고 랄라!”외치면서요.
2014년 11월 26일 <미래에서 온 편지> 편집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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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모집 오늘 우리의 한 걸음이 길을 엽니다. 미래가 됩니다. 우리는 길을 내는 사람들입니다. 노동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 사람과 자연이 공존 가능한 지구생태계, 차별과 소외 넘어 모두가 평등한 세상, …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밑그림을 그려나가면서 없는 길을 만들고, 스스로 길이 됩니다. 그래서 노동당의 꿈은 곧 <미래에서 온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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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 노동당
전망을 전망하라 정책당대회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노 정 편집실장 / 사진 박성훈 홍보실장
늘‘전망’ 이 화두였다. 대표단 선거 때마다, 당내 주요한 문제 국면마다, 그리고《미 래에서 온 편지》지면을 통해서도 무수한 사람들이 나와서 연거푸 토론회를 열고 강력 한 열변을 토했다. 이제 슬슬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냐고 물을 법하지만, 아니다, 여전 히‘전망’ 은 우리의 화두다. 창당 이래 처음으로 열리는 이번 정책당대회도 마찬가지다. 오는 11월 29일과 30일, 대전 동구청소년수련관에서 전망섹션, 정책섹션, 참여섹션으 로 구성된 정책당대회가 개최된다. 당의 노선과 주요 정책을 놓고 다시 한 번 불꽃 튀는 토론의 장이 벌어진다.
노동당 운동,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당원들의 가장 큰 관심은 역시‘전망섹션’ 이다. 정책당대회 전망섹션은 진보신당에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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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사진설명 : ①②③ 전망섹션 사전토론회 모습
서 노동당으로 이어진 운동을 평가하고 이를 기반으로 노동당 운동의 전망에 대해 논의한다. 적극적인 진 보재편을 주장하는 그룹(이하‘진보재편 그룹’ )부터‘녹색좌파정당’ 을 노선으로 제시하는‘신좌파당원회 의’ ,‘당의 미래를 여는 당원모임(이하‘당의 미래’ )’ ,‘사민주의 당원모임’ 에 이르기까지 총 네 개의 그룹이 제안문을 제출한 상태다. 10월 27일 중앙당에서 개최한 사전토론회를 시작으로 전국 시도당과 지역당협 에서 잇따라 토론회를 진행중이다. 제출된 입장들을 보면, 노동당의 현재를 진단하고 위기의 원인을 분석하는 데 네 개의 입장이 조금씩 겹치면서도 갈라진다. 진보재편 그룹에서는 진보정치의 분열과 그로 인한 대중들로부터의 소외 등 외적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당의 미래 그룹은 노동당이 재창당 이후 완결된 당으로 출발했으며, 구체적인 기획과 전망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당적 구심력을 상실한 현 상황이 위기라고 보았 다. 신좌파당원회의는 당에 대한 애정을 여전히 갖고 당을 지키고 있는 당원들의 다양한 힘과 역량을 하 나로 모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사민주의 당원모임은 민주노동당 이후의‘분리주의 노선’ 자체는 옳았으나 몸에 맞지 않는 옷(사회주의)을 입고 있었다면서 대중적이지 못한 노선과 전략을 위기의 원인으로 짚었다. 위기 극복 대안에 대해서도 진보재편 그룹은 제 진보정당 및 세력의 통합을 강조한다. 반면 당의 미래 그룹은 이미 제시된 당 발전 전략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신좌파당원회의는 녹 색사회주의, 특히 정책적으로는 기본소득이나 탈핵과 같은 의제를 선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민주의 당원모임에서는 사민주의로 옷을 갈아입고 당을 대중적으로 알려나가기 위해 복지의제 등 국민적 관심의 집권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여기 노동당 7
진보정치 재편에 대한 이해에서도 차이가 엿보인다. 진보재편 그룹은 진보혁신회의 테이블에 적극적 으로 참여하여 진보재편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의당을 포함해 진보교연, 노동계와의 통합 을 추진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신좌파 당원회의는 진보정치 1기가 끝났음을 인정하고 진보정당 다자구도 를 상정할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동시에 녹색당과 민주노조 혁신세력 등 새로운 좌파정치 비전을 중심으 로 하는 재편을 제안한다. 사민주의 당원모임은 사민주의를 표방하는 정치세력을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 인 국민정당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당의 미래 그룹은 노동당 노선을 관철하면서 가치 중심의 진보재 편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요 쟁점들에서 보이는 이 같은 차이와 간격을 증명하듯, 10월 27일 노동당사에서 열린 첫 사전토론 회에서부터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진보재편 그룹에서는 김종철 서울 동작당협 위원장이, 신좌파당원 회의에서는 나도원 문화예술위원장, 당의 미래 그룹에서는 윤현식 정책위 의장, 사민주의 당원모임에서 는 홍기표 서울 영등포 당원이 토론자로 나섰다. 발제문 발표에 이어진 주도권 토론에서 입장차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이하 토론자 직함‘당원’ 으로 통일) 나도원 당원이 진보재편 그룹에 대해“진보재편의 주체가 없고,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합당할 가능성 도 없고, 설사 합당한다 하더라도 새로운 진보정치의 미래가 없다” 고 비판하자 김종철 당원은“주체가 없 다는 것은 당의 침체를 반영할 뿐이고, 현실 가능성은 이 논쟁을 통해 당이 만들어나갈 문제이며, 대표단 선거 과정에서 내용으로 검증을 받을 것” 이라고 반박했다. 또한“당이 뭔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재편논의 가 당을 흔들었다고 말하는데, 2011년 9월 이후 통합-독자 논쟁이 특별히 있었던 것이 아님에도 당이 침
2차 심화토론 팟캐스트를 녹음중인 김한울 당원(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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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기를 겪은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 인가”반문하기도 했다. 정의당을 포함한 진보정치세력과 의 통합 역시 날카로운 쟁점이 됐다. 홍기표 당원은“정의당과 노동당이 정책적 차이는 별로 없을 거라고 생 각하나 다만 근거와 명분이 있는 통 합이어야 한다” 고 하면서 통합진보당 이 만들어졌다가 정의당으로 재분열 한 궤적이 설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 다. 김종철 당원은“(정의당이)만들어 진 시점이 중요한 게 아니라 현실에 서 재평가되어야 한다” 며 사민주의를 중심으로 한 정의당과의 친화성을 점 쳤다. 윤현식 당원은“정의당과의 통 합을 통해 (정의당의)우경화를 막는다 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질문
심화토론 팟캐스트의 진행을 맡은 김민하 기자
을 던졌고, 김종철 당원은“(정의당 내 에)새정치연합을 선택하지 않고 정의당을 해야 된다고 모여 있는 당원들이 있다” 며“독자적인 진보정치로
나아가기 위한 설득의 대상이 분명” 하다고 대답했다. 홍기표 당원은“(진보재편 그룹이)위기의 주요 원인을 진보정치의 분열 구조에서 찾고 있는데 그 분열 구조는 우리가 만든 것 아닌가”물으며“민주노동당 분당 을 후회한다는 함의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비판했고, 김종철 당원은“2011년과는 달리 경기동부 없는 정의당은 북에 대해 상당히 유연한 태도로 전환했다” 며 패권주의의 뿌리인 종북주의가 변하면서 그때와 는 다르다고 판단했다. 청중 질문에서는“2011년 통합-독자 논쟁 당시 통합을 주장하셨던 분들도 참여계 와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는데 지금은 어느 누구도 문제 삼고 있지 않다” 고 지적했고, 김종철 당원은“(정의당 내에서)참여계의 위상은 참여정부로의 회귀라기보다 상당히 왼쪽으로 와 있다” 며“그것이 압도적이라서 통합이 안 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고 답했다. 사민주의 노선에 대한 반박도 제기됐다. 나도원 당원은“역사 속의 한국 사민당들은 실제로는 대중성 을 확보하지 못했다” 면서 사민주의 노선을 반박했고, 윤현식 당원은“사민주의의 예시는 대개 북유럽 국 가들인데 호황기와 강력한 노조가 있었고 냉전구도 등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 며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사 민주의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주장했다. 김종철 당원은“사민주의 당원모임에서 주장 하는 것이 결국은 당명이 사민당이 아니라는 데로 귀결되고 만다” 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홍기표 당원은 지금+여기 노동당 9
“사민주의를 주장하고 있지만, 사민주의가 모든 걸 해결해준다고 보지는 않는다” 면서 “다만 사민주의 채택이 새로운 출발점이자 최초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고 답했다.
노동당의 길, 당원들이 만들고 잇는다 전망섹션 토론은 사전토론회에 이어 당 팟캐스트를 통해 2차 심화토론으로 이어졌 다. <미디어스> 김민하 기자가 진행을 맡아 11월 셋째 주부터 넷째 주까지 네 차례 방송 을 탈 예정이며 당 홈페이지에서 들을 수 있 다. 진보재편 그룹에서는 강상구 전 부대표 가,‘신좌파연대회의’ 에서는 나도원 문화예 술위원장,‘ ‘당의 미래’ 에서는 김한울 당원, ‘사민주의 당원모임’ 에서는 권범재 당원이 토론자로 나섰다. 2차 심화토론 팟캐스트를 녹음 중인 강상구 당원
전망섹션 이외에도 정책섹션과 참여섹 션이 진행될 예정이다. 정책섹션에는 11월
14일 현재 여섯 개의 제안문이 접수돼 있다. 사회적 일자리 정규직화, 국민연금 하나로, 사회서비스 바우 처 폐기, 기본소득, 대학 구조조정에 맞서는 고등교육정책, 상가임차인 권리상담소 등이다.《미래에서 온 편지》12월호 특집에 전망섹션과 함께 정책섹션 제안자들의 간략한 제안문을 함께 싣는다. 기획단에서는 당원 의견과 추천을 받아 본대회 주제 3개 내외를 선정한다. 정책당대회 당일 쟁점토론이나 제안자 프레 젠테이션 형식으로 진행하며 주제 수에 따라 균등 분할하여 순차적으로 토론이 열릴 예정이다. 참여섹션 은 장애인 평등교육, 정치관계법 개혁운동, 버스공영제운동 사업단, 청년 당원의 눈으로 바라본 노동당, 당 혁신 방안 등의 주제가 제출돼 있다. 참여섹션은 30일 오전 정책당대회 현장에서 진행하며 주제 선정 부터 기획과 준비까지 모두 당원들의 참여로 이뤄진다. 이용길 대표는 지난 사전토론회에서“노동당의 길은 강령이지만 수준 높은 이론 속에 있는 것이 아니 라 당원들에게 있다” 며“노동당의 길을 확장하고 만들어갈 주체는 당원” 이라고 인사말에서 강조한 바 있 다. 창당 이래 최초로 개최되는 정책당대회에 당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란다. 정책당대회는 이미 시작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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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미리 보는 정책당대회 11월 29일 열리는 정책당대회, 쟁점은 무엇이며 어떤 정책들이 제출되었을까요? 전망 섹션과 정책섹션에 참여한 제안자들에게‘새로 쓰는 제안문’ 을 요청했습니다. 기관지 를 통해 현장의 열기를 맛보고 싶은 독자들을 위한‘미리 보는 정책당대회’ 입니다.
특집 미리 보는 정책당대회 11
특집 / 미리 보는 정책당대회 : 전망섹션
과감한 진보재편, 우리의 임무다 다시 한 번‘우리 중심으로 잘해보자’ 는 결의만으로 이 국면을 돌파할 것인지, 진보재편을 추진하여 제3당의 초석을 쌓을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 여하에 달렸다.
김종철‘진보재편’공동제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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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변화에 조응하지 못하면 - 영국 자유당의 경우 보수양당의 힘이 더 강해지고 있는 한국에서 노동당이라는 작은 당이 힘을 쓸 수 있을까? 아니 노동당 을 넘어 전체 진보정치 세력이 힘을 합해도 자기 자리조차 잡을 수 있을까? 소선거구 승자독식체제가 80% 이상을 차지하고 비례대표는 장식품이 된 우리나라 정치에서 말이다. 이런 비관적인 전망을 넘어서 기 위해 우리는 우리보다 앞서 진보정치를 시작하고 자리를 잡은 많은 나라의 역사를 공부해왔다. 그중에 서도 소선거구 양당제 아래에서 미약한 제3당으로 시작하여 창당 20여년 만에 짧게나마 집권에 성공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집권기에는 많은 급진개혁을 추진한 영국 노동당의 경험, 그리고 그 상대편에서 노동 당의 부상에 맞서려 했으나 결국에는 실패하고 소수파 정당으로 전락한 영국 자유당의 역사는 지금 우리 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고 생각한다. 잘 알려진 대로 영국은 보수당과 자유당이 번갈아 정권을 주고받던 전형적인 보수양당제 국가였다. 노 동당은 1900년대 초반에 의원을 배출했지만 그것도 자유당의 배려 아래서 가능했던 미미한 정치세력이 었다. 노동당의 상대는 영국 정치를 2백여 년간 분할해 왔던 보수당과 자유당이라는 양대 산맥이었다. 그 런 노동당이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는 자유당을 제치고 보수당에 이어 제2당으로 올라서게 된다. 정치 는 상대평가적인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내가 잘못해도 다른 당이 더 잘못하면 나의 위치가 저절로 올라 가는 성격이 있다. 노동당의 성장에는 자유당의 몰락이 큰 영향을 미쳤는데 자유당의 몰락에 관해서는 보 통 두 가지를 가장 큰 요인으로 분류한다. 첫째는 노동계급의 성장과 경제위기, 전쟁이라는 시대상황에 대응해 자유당이 새로운 지도이념 을 정립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대 는 변화하는데 그것에 적극적으로 조응하는 대신 과거의 노선에서 제 대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둘 째는 자유당이 당시 당 대표였던 헨
영국 자유당의 몰락에는 두 가지 큰 요인이 작용 했다. 시대상황에 대응해 새로운 지도이념을 정 립하지 못했던 것, 그리고 양대 파벌로 나뉘어 극 심하게 내부투쟁을 하였다는 것이다.
리 애스퀴스와 총리였던 로이드 조 지의 양대 파벌로 나뉘어져 극심하게 내부투쟁을 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자유당은 당의 단합이 유지되 지 못하고 화해할 수 없는 세력으로 오랫동안 나뉘어 있었다. 이들은 형식상 같은 당에 있으면서도 선거 를 각자 대응하기까지 하는 등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전쟁 전에 무려 4백 석이라는 압도적 의석을 가졌던 정당이 전쟁 이후에는 몰락에 몰락을 거듭하여 1920년대에는 40석 정도만을 가진 초라한 정당으로 전락한 것이다. 반면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나름의 정체성과 단결을 유지했던 노동당은 자유당을 대신해 제2당을 차지하였고, 이후 보수당과 집권을 다툴 세력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렇게 20 세기 초반에 성립된‘보수당 대 노동당’ 의 정치구도는 1백 년이 흐른 지금에도 유지되고 있다. 정당의 흥 망성쇠는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특집 미리 보는 정책당대회 13
노동당의 현실, 냉정하다 이 당시 영국의 역사를 오늘날 우리 정치와 비교해보면 어떨까. 새정치연합은 국민들에게 끊임없는 비 판을 받으면서도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당의 외연을 유지하며 새누리당의 유일한 대항마로 인식되고 있 다. 반면 진보세력은 노동당, 정의당, 진보
진보세력은 4개 당으로 나뉜 채 이 상황을 개선할 어떤 노력도 시도조차 못하고 있다. 가진 것도 없는 채 분열 상태가 지속되면서 대중의 선택지에서 멀어지고 있다.
당, 녹색당 등 진보 4당으로 나뉜 채 이 상 황을 개선할 어떤 노력도 제대로 시도조차 못하고 있다. 4백 석의 영국 자유당도 시대 에 뒤떨어진 이념과 내부의 극심한 대립으 로 순식간에 소수정당이 됐는데 우리 진보 진영은 가진 것도 없는 채 분열 상태가 지
속되면서 대중의 선택지에서 멀어지고 있다. 새정치연합이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데도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 노동당은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까. 물론 우리 당의 실력만으로 오랫동안 활동을 펼쳐서 사회를 바꾸고 집권해나간다면 제일 좋은 일일 것 이다. 그러나 우리 당의 현실은 그와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한때 1만 명이 넘었던 당권자는 이제 6천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사무실이나 상근활동가를 두고 있는 당협이 손에 꼽을 정도이고 그나마도 계속해서 줄고 있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현실은 냉정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어렵 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정당들과 재편을 논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당장의 어려움만을 핑계로 정체성 이 다른 정당이 재편을 논하는 것은 야합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의 눈에서 볼 때 지금 각개 경쟁하는 진보 4당이 과연 그렇게 큰 차이가 있을 것인가.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약간의 색깔 차이 와 정서적인 이질감이 있을지언정 이러한 진보의 위기 상황에서도 반드시 따로 있어야 할 정도로 이질적 인 수준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재편’ 의 대상은 누구인가 아무리 우리가 진보재편을 하려고 해도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는 녹색당과 우리 당은 정책 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매우 가까운 당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녹색당과 재편을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녹색당은 신생정당이고 자신들이 기존의‘진보’ 와는 다른 정당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진보재편 논의에 대해 그다지 큰 관심이 없을뿐더러 본인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당이 자 꾸 거론되는 것을 불편해 한다. 그러므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재편을 언급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옳지 않은 일이다. 물론 사적인 자리에서 녹색당의 몇몇 인사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나도 재편하면 좋겠다. 다만 딱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 당명은 녹색당이어야 한다” 는 얘기를 한 적이 있어 함께 크게 웃기도 했지 14
만, 녹색당 전체로는 자신의 길이 있어 보인다. 정의당은 어떠한가. 정의당의 강 령이나 중앙정치의 모습이 우리 당 과 큰 차별점이 없는 것은 둘째 치 고, 동네에서도 보면 두 당이 그렇 게 큰 차이를 보이는 것도 아니다 (사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역량이 부족한 진보진영에서 그나마 여러 당 으로 나뉘어있다 보니 두 당 모두 동네 에서 허덕이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표 현일 것이다). 물론 정의당과의 진보
재편 추진은 쉬운 일이 아니다. 참 여정부와 궤를 같이 했던 국민참여 당 계열에 대한 의구심, 진보신당의 결정을 뒤로 하고 탈당한 인사들에 대한 감정 등 여러 문제가 놓여있 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의당 을‘절대로 같이 해서는 안 될 당’ 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지나치다. 정
7.30 동작(을) 재보궐 당시 정의당 노회찬 선본 사무실 앞을 지나가는 노동당 김종철 유세차량 모습 (사진 : 홍원표)
의당이 지난 9월 전국위원회에서 ‘우리는 정책적으로나 조직적으로 지향이 다른 당과의 통합을 배격’ 한다고 선언하여 새정치연합과의 거 리두기에 나섰고,‘진보재편을 추진하는 세력과 함께하겠다’ 고 우리 당을 포함한 진보진영에 손을 벌린 마당에 우리만이‘당신들은 믿을 수 없다’ 고 선을 긋는 것은 옳지 않은 태도다. 더구나 정의당만이 아니라 노동정치연대, 진보교연 등이 노동당-정의당의 연대에 함께하고 민주노총이 참관을 하면서까지 진보정 치재편에 관심을 표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정의당과의 관계를 그동안의 시선이 아니라 변화된 조건 과 우리에게 부여된 임무를 중심으로 새
정의당과의 관계를 그동안의 시선이 아니라 변화된 조건과 우리에게 부여된 임무를 중심 으로 새롭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통합진보당 과의 관계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롭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통합진보당(이하 진보당)과의 관계를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 다. 나는 당내에서 진보당과의 관계를 가장 우호적으로 보는 사람 중의 한 명 특집 미리 보는 정책당대회 15
이다. 그러나 이후에 진보당과 당을 같이 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 그것은 누차 얘기한 것처럼 북한 정권에 대한 일방적인 옹호가 아니라, 상식적인 비판과 옹호를 할 수 있는 당이 돼야 한다는 것, 그리 고 그런 문제로부터 연유하는 패권주의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 등이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재판과 헌법 재판소의 정당해산심판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자 과도한 단죄임에는 틀림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이석 기 의원의 행동이나 그간 진보당이 보인 모습을 지지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국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진 보진영의 수많은 인사들도 진보당의 그간 모습과 행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최근 에는 진보당이 자신들이 탄압받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이러한 우려의 시선을 무시하고 반성과 혁신에서 후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진보당은 진보진영의 단결을 지금도 끊임없이 외치고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들에게 제기되는 이 물음들에 대해서 먼저 명확히 답변을 해야 할 것이다.
진보정당 각개 약진 시대를 끝내자 우리 정치사에는 언제나 제3정치 세력에 대한 요구가 존재해왔다. 그것은 보수정치 일색의 한국정치 에서 보수양당에게서 자신의 전망을 보지 못하는 수많은 국민들이 있음을 입증해준다. 멀리 가서 보면 1992년 정주영이 그랬고, 1997년 이후 권영길의 민노당이 그랬고, 민노당이 가라앉은 이후에는 안철수로 대표되는 새정치에 대한 기대가 그러했다. 안철수마저 가라앉은 지금 이 시점에 우리는 어떤 정치를 해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당의 지반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한 번‘우 리 중심으로 잘해보자’ 는 결의만으로 이 국면을 돌파할 것인지, 아니면 과감하게 진보재편을 추진하여 날 이 갈수록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새정치연합을 대신해 새누리당의 대항마로 나아갈 진보세력이 될 수 있 는 제3당의 초석을 쌓을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 여하에 달렸다고 나는 판단한다. 그 일이 무조건 쉬운 일이 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회피하는 것은 무능함 에 다름 아니다. 기업이나 어떤 조직이 과감한
쉽지 않은 길이지만 하루 빨리 이러한
혁신을 하는 것은 본받자고 하면서 우리가 능동 적으로 대세를 만들어가는 일은 회피하는 것은
진보정당 각개 약진 시대를 끝내고 대
우리 스스로가 혁신의 대상임을 자인하는 것이
안정당 시대를 열기 위해 당원들이 함
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하루 빨리 이러한 진보
께 나서주시기를 바란다.
정당 각개 약진 시대를 끝내고 대안정당 시대를 열기 위해 당원들이 함께 나서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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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3일 인천에서 열린 신좌파당원회의 전국순회 토론회 (사진 : 노동당 인천시당)
특집 / 미리 보는 정책당대회 : 전망섹션
녹색좌파의 길로 가자 안으로‘녹색좌파 대중정당’ 으로의 내용적 재창당, 밖으로 의제와 전망 이라는 고리로써 맺어지는‘녹색좌파 정치연합’ 의 추진. 이것이 실현될 때에 이른바 진보정치 제2기, 아니 새로운 좌파정치가 도래한다.
나도원 신좌파당원회의 대표제안자
특집 미리 보는 정책당대회 17
초록빛이었다. 2013년 7월에 처음 나온 창간준비호부터《미래에서 온 편지》 는 빨간색 표지를 입어 왔 다. 그 빛깔이 바뀐 적이 두 번 있다. 고 박은지 부대표를 추모하는 제8호(2014. 4)는 검은빛이었고, 특집 으로 <미래가 있다면, 녹색>을 기획한 제14호(2014. 11)는 초록빛이었다. 정책당대회에“녹색좌파 대중정 당” 이란 제목과 함께“녹색좌파 대중정당으로 혁신·강화하고, 녹색좌파 정치연합으로 연대·확장하자” 고 제안한 당원으로서 반가울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동의하는 내용이었다. 몇 차례의 정책당대회 사전토론회뿐만 아니라 여러 당원협의회가 주최한 토론회, 그리고 독자적으로 기획한 전국순회토론회를 합하면 10~11월 두 달 동안 20여 차례의 토론회에 나섰다. 생업을 당분간 파할 정도의 강행군이었고 육체적으로나 금전적으로 감수해야 할 부분들이 있었지만, 여러 지역의 당원들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기에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 기회에 여러 토론회에서 당원들 이 가장 궁금해 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들을 모아보고자 한다.
‘녹색좌파’ 는‘녹색+좌파’ 인가? 《미래에서 온 편지》지난 호 덕분에 필요 이상의 추가설명을 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돈’세상의 포 식자가 모든 영역에 전염시킨 바이러스는 행정구역과 세대의 경계를 지키지 않을 뿐더러 파괴적인 수레 바퀴는 제 스스로 멈추지 못한다. 가로막아선 자를 깔아뭉개는 이유는 급정지하면 전복될 수밖에 없기 때 문이다. 눈부신 빛을 향하여 질주하다가 눈이 멀어 암흑으로 굴러 떨어지고 있는 거대한 수레에 올라탄 채 반대 방향으로 맹렬히 내달리면서 막연히 새로운 삶에 가까워진다고 믿고 있다. 더 지독하게 표현하 면, 단맛이 도는 독에 빨대를 꽂고 조금씩 그리고 계속 빨아먹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는, 우리의 삶은, 이 수레바퀴에서 자유로운가? 녹색좌파는 이 수레를 과감히 뛰어내려 멈춰 세우자는, 그래 야 하며, 그럴 수밖에 없다는 선언이다. 녹색좌파는 단순히 녹색과 적색의 기계적 접합이나 생태와 노동의 결합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전환을 위한 노선이며, 새로운 노동이 결집할 수 있는 넓은 마당이다. 우리 또한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어야 한다는 호소이다. 그래서 정치·경제적으로는 나눌 수 있어야 하고, 사회·문화적으로는 이어야 하 며, 개인적으로 비울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녹색사회를 지향하는 정당의 당원들부터 다른 삶 을 사는 사람들이 됨으로써 이념과 생활의 만남은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을 우리 당원들 이, 노동당의 농업위원회가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21세기는 성장주의에 대한 반성을 바탕
당원공감연수원을 농업위원회와 함께 꾸리자고 제
으로 녹색사회를 향한 성찰을 요청하고
안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더구나 그것이 비용
있다. 녹색좌파는 당 강령의 충실한 반영 이자 시대의 요청에 응답한 해법이다. 18
면에서 현실성 있고, 지향 면에서 바람직하다. 당의 강령은‘평등 생태 평화 공화국’ 을 주창했 다. 21세기는 성장주의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녹
신좌파당원회의 전국순회 정치토론회 홍보 웹자보
색사회를 향한 성찰을 요청하고 있다. 이처럼 녹색좌파는 당 강령의 충실한 반영이자 시대의 요청에 응답 한 해법이다.
‘녹색좌파’ 는 반-재편 독자파인가? 한국에서 진보를 표방한 정당들이 하나로 뭉쳐 시대에 맞는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기꺼운 일이 다. 그러한 주장을 하는 당원들의 고심과 상황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적으로 가능하 지 않으며, 시대의 흐름과도 멀어지기 때문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이다. 노동당과 정의당의 1단계(!) 통합을 주장하는 노동당 내 재편론은 다자구도 해소를 소명처럼 말하지만, 실은 민주노동당에서 탈당하여 진보신당을 만들어 그 다자구도를 촉발한 장본인들을 말하지 않는다. 그 토록 강조하는 당의 어려운 현실에 대한 책임을 말하지 않는다. 지역조직과 당원 수를 언급하며 통합 이 후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주장 역시 스스로 강조하는 당의 현실 진단과 충돌하는 모순화법이자, 당이 단 일대오가 아니라는 사실의 외면이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계획 제출 없이 2016년부터 2018년 사이의 연속 선거의 결과로 또 다시 제기될 제3, 제4, 제5의 재편론마저 상정해야 하는 유랑의 길로 떠나자고 호소한 다. (재편론에 의한 정당은 태생부터 각각의 선거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2016년과 2017년 그 리고 2018년까지 매해 이어지는 연속선거 과정에서 반드시 붕괴한다.)
그래서 정책당대회에 제출된 네 개의 의견들 중 진보재편을 주장하는 의견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개의 의견과 제안자들 모두 현시점에서 정의당과의 통합을 주장하는 재편에는 반대의견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집 미리 보는 정책당대회 19
그들 모두가 반정치적이며 독야청청 독자노선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고, 현 시점에서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2016년 총선 준비를 2015년 상반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소모적인 논의에 매몰될 시간이 없다.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준비하고 토론하고 점검하여 내놓은 녹색좌파 대중정당은 혁신의 제안이며 녹색좌파 정치연합이라 는 확장의 틀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혹은 막연한 구상만으로는 부족하다. 재편이나 보존을 넘어 ‘가치 있는 재구성’ 이 절실하다. 그러므로 우리 의 과제는 당의 혁신과 안정성 확보 그리고 21 세기에 걸맞은 좌파의 재구성이다. 새로운 비 전과 구체적인 프로그램의 제출이다. 1년이 넘
는 시간동안 준비하고 토론하고 점검하여 내놓은 녹색좌파 대중정당은 혁신의 제안이며 녹색좌파 정치연 합이라는 확장의 틀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
‘녹색좌파’ 는 청년주체를 세울 수 있는가? 녹색좌파는 새로운 정치주체, 특히 청년 주체에 주목한다(물론 청년은 일정한 세대로, 동일한 의제로 묶이 는 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제한다). 후속세대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고민을 가진 이들이 있는데 실제로 그
러한가?‘안녕들하십니까’운동, 세월호 참사에 대응한‘가만히 있으라’운동, 이른바‘청와대 투쟁’ 의선 두에는 청년 당원들이 있었다. 당의 활동 영역과 제반 체계의 부실로 인하여 자신들의 구상과 기획을 실 현할 수 없었을 뿐이다. 더구나 통합재편 논쟁 등으로 미래가 불분명한 당에 어떻게 신뢰를 갖는가. 어떤 사안에 적극 가담하고 싶을 때에 누구와 함께 기획하고 행동할 수 있었는가. 근본적으로 노동당의 과거 노선은 과연 21세기 좌파 청년들의 전망과 일치하는가. 이러한 이유들로 일찌감치 정치 진로를 정한 소수 를 제외한 다수는 정치의식으로, 혹은 의무감으로 당적을 갖고는 있으되 관망하거나, 당 바깥의 활동에 동참하거나, 아니면 다른 정체성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바꿔야 한다. 청년을 위한 정책 브랜드를 가져야 하며, 개인 차원에서는 유급 활동가들을 양성하고, 조직 차원에서 는 당 안팎의 조직들의 허브로서 작용하는 개방형 청년 사업을 추진하고자 한다. 당의 조직에 청년 주체 들을 전면배치하고, 특히 이 시대 청년의 관심사와 문제의식을 당의 이념에 녹여내고자 한다. 또한 당은 사회문화운동의 허브로 기능해야 한다. 당원 으로 조직하거나 당의 지도 아래 운영하는 조 직을 세우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노동부 문 역시‘오늘의 노동’ 에 주목한다. 시대와
시대와 세대에 조응하는 녹색좌파 대중정 당은 청년을‘동원을 위한 육성’ 의 대상이
세대에 조응하는 녹색좌파 대중정당은 청년
아니라 당 중심세력의 세대교체를 위한 환
을‘동원을 위한 육성’ 의 대상이 아니라 당 중
경을 조성하자는 기획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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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세력의 세대교체를 위한 환경을 조성하자는 기획을 담고 있다.
‘녹색좌파 정치연합’ 은 실현가능한가? 녹색좌파 정치는 이미 우리 앞에 놓이기 시작했다. 노동당 내에서 녹색좌파 정치를 공식적으로 제시한 시점에 때를 맞춰, 2016년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 나선 허영구 선본(이갑용 선대본부장은 노동당 노동위원 장 겸 울산광역시당 비대위원장이다) 또한《민주노총 5대 혁신과제》 (박종철 출판사)에서“노동자정치세력화는
신자유주의 종식과 사회적 생태적 전환을 위한 녹색좌파 정치의 관점에서 장기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는 입장을 밝혔다. 녹색당은 기본소득에 대한 토론에 돌입하였고, 정치제도 개혁을 요구해왔다. 노동당이 녹색좌파 대중정당에 걸맞은 모습으로 전환한다면 여러 세력들과 공동전선을 선도적으로 구성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확인해 둘 것은 녹색좌파 정치연합은 당장의 통합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역사는 우리에 게 충분한 교훈을 주었다. 우선 노동당과 녹색당, 반(反)금융 운동, 탈핵 운동, 비정규·불안정노동 운동, 기본소득 운동, 그리고 민주노총 혁 신세력들까지 아우르는 녹색좌파 정 치연합을 제안하고, 2016년을 목표 로 결집을 시작하면 2015년부터 공 동행동을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총 선의 해이자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
총선의 해이자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5주년인 2016년, 기본소득과 정치제도개혁 그리고 녹색경 제를 매개로 한 녹색좌파 정치연합에게는 선명한 명분과 치열한 현실이 함께 할 수밖에 없다.
고 5주년인 2016년, 기본소득과 정 치제도개혁 그리고 녹색경제를 매개로 한 녹색좌파 정치연합에게는 선명한 명분과 치열한 현실이 함께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2020년 총선과 2022년 대선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새로운 좌파정치가 도래한다 노동당가인 <대지와 미래를 품고>(작사/작곡 정윤경)는“우리는 길을 이어 가는 사람들 무너진 길을 다시 열어, 미래로 한 발 또 한 발 가슴을 펴고 당당히” 라고 노래한다. 안으로‘녹색좌파 대중정당’ 으로의 내용 적 재창당, 밖으로 의제와 전망이라는 고리로써 맺어지는‘녹색좌파 정치연합’ 의 추진. 이것이 실현될 때 에 이른바 진보정치 제2기, 아니 새로운 좌파정치가 도래한다. 이 길을 향하여 당의 역사와 당원들을 믿고 시대의 요청에 응답하며“녹색좌파 대중정당의 곧은길과 녹색좌파 정치연합의 신작로에 동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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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의 미래’페이스북 페이지
특집 / 미리 보는 정책당대회 : 전망섹션
노동당 노선이 진보다 당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현실의 부박함은 거의 대부분 새로운 뭔가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마땅히 했어야 할 일을 하지 않은데서 비롯된다.
윤현식‘당의 미래’공동제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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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짜여진, 그러나 잘못된 프레임 당 노선과 관련하여 묘한 프레임이 설정되어 있다.“진보정치를 재편할 거냐? 말 거냐?”거두절미 이야 기하자면 이 질문은 하나 마나 한 질문이다. 고립노선을 고집하는, 혹은 정당을 동아리로 착각하고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아니라면, 우리 당원 거의 절대 다수는 오늘날 남한 진보정치를 시급히 재편해야 한다 고 판단할 것이다. 현재 진보정치의 상태는 호흡기를 부착하지 않으면 생명연장마저 위태로울 정도로 위 험한 상황이다. 그 위험한 언저리에 노동당이 겨우 매달려 있다. 이 판국에 재편의 당위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진부한 일이다. 지금의 과제는 당위를 재확인하는 게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과 구체적 기획을 통해 난국을 헤쳐 나가는 일이다. 그런데 이“재편 할 거냐? 말 거냐?” 라는 질문은 오히려 현실적인 판단과 구체적 기획이라 는 당면의 과제를 왜곡한다. 왜냐하면 작금 의 이 질문은 당위의 인정 여부를 묻는 것이
“재편 할 거냐? 말 거냐?” 라는 질문은 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다른 답변을 원
실적인 판단과 구체적 기획이라는 당면의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정당(들)과 합칠 것인 지 말 것인지의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이 질문은 지금 당장 다른 어떤 정당
과제를 왜곡한다. 이 질문은 다른 정당(들) 과 합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묻고 있다.
과 합칠 것인지를 묻고 있다. 저‘재편’ 이라 는 용어가 단어의 선택과 활용에 신중하려는 선의와는 무관하게 직관적으로‘통합’ 이라는 단어와 등치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따라서 이러한‘재편’논의는 아무리 그 형식을 달리하려 해 도 결과적으로 당을 처참하게 추락시켰던 2011년의‘독자 통합 논쟁’ 의 후속버전이 될 수밖에 없다. 발화 당사자들의 절제된 표현에도 불구하고 통합과 독자를 둘러싼 공방은 당의 구심력을 약화시킨다. 이로 인해 위기감은 오히려 더 증폭된다. 이들 논의에 따르면 당은 위기가 아니면 안 되는, 절대적으로 위 기여야만 하는 위치로 전락한다. 당이 상수가 아닌 변수로 전락하면서 당의 사활을 건 문제들이 조건의 문제로 환원된다. 통합의 논거는 당 외곽의 조건이, 독자의 논거는 누가 당을 장악하느냐는 조건이 문제 가 된다. 노동당이 창당과 더불어 설정한 노선은 이 과정에서 사라진다. 한쪽은 당장의 고사를 막기 위해 서라도 우선 세를 불리자는 논지를 전개한다. 다른 한쪽은 노동당 노선을 실패한 노선으로 규정하고 다른 가치와 대안으로 전환하자고 주장한다. 양쪽의 주장은 결국 이 상태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넘어 이 당으로는 안 된다는 논의로 전이된다.
이보다 더 큰 위기는 없다 문제가 잘못되면 답이 잘못될 수밖에 없다. 문제를 바꿔보자. 과연 노동당은 애초부터 진보정치의 주 특집 미리 보는 정책당대회 23
체가 될 수 없을 정도로 허약한 정당이었는가? 그렇다면 노동당의 창당은 잘못된 선택이다. 스스로 설 주 제도 되지 못할 정도로 허약한 조직체였다면 차라리 진보정치의 미래를 위해 장렬하게 산화해버렸어야 한다. 영양실조에 걸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정도로 휘청거리게 된 원인은 다른 기회에 말하기로 하자. 어쨌든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당은 체계를 정비하고‘노동당’ 이라는 이름을 걸고 다시 섰다. 그 선택은 바 로 지금 이 당에서 당의 미래를 논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 의해 이루어졌다. 당은 당명을 결정하기 위해 치 열하게 논쟁했다. 노동당의 노선을 강령으로 정했다. 장기성장전략을 수립했고, 당의 CI를 선정했으며, 당가를 채택했다. 천여 명의 정기구독자를 꾸려 기관지를 발간했다. 노동당으로 재출발하기 전보다 외형 적 체계로는 더 훌륭하게 변모했다. 지금은 떠나버린 명망가들이 국고보조금을 받아가며 당 지도부로 활 동할 때도 제대로 못한 일을 맨바닥에서 일구어냈다. 다른 정당과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면서 노동당만이 제시할 수 있는 가치와 대안의 방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강령과 장기성장전략은 당이라는 외연을 갖추기 위해 걸쳐놓은 포장지가 아니다. 그것을 구체적 으로 현실화할 기획과 추진이 부족했음을 비판할 필요는 있다. 노선에 대한 논의는 여기서 출발했어야 한 다. 좀 더 들어가 보면 위태로운 이 당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당원들, 바로 그 당원들을 중심에 놓고 사 고해야 한다. 당원들이 이 당에 함께 함으로써 만족과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왜 지금 그렇지 못한 가를 반성해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당원들이 당의 정치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 지지하면서 보다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
이 당으로는 안 된다는 논리가 횡행하면서 당원들은 더욱 실망하고 고립된다. 누적된 피로감은 위기감의 공유가 아니라 당에 대
해야 한다. 그런데 이 당으로는 안 된다는 논리가 횡행하면서 당원들은 더욱 실망하 고 고립된다. 누적된 피로감은 위기감의 공유가 아니라 당에 대한 외면으로 귀착
한 외면으로 귀착된다. 위기라고? 이보다
된다. 위기라고? 이보다 더 큰 위기가 어
더 큰 위기가 어디 있는가?
디 있는가? 혹자는‘당의 미래’ 가 당의 현실을 지
나치게 낙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한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비관과 낙관은 분석의 차 원에서 이야기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분석의 시간이 아니라 결단의 시간이다.“할 수 있느냐?” 를 따질 때는 이미 지났다.“할 것인가, 말 것인가?”사이에서 어느 한 쪽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당의 미래’ 는“하겠다” 고 결의한 거다. 그만큼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결정적인 차이 는‘무엇’ 에 있다.‘당의 미래’ 에 참여한 당원들은 단지 세력재편이나 당의 색깔을 바꾸는 것이 진보정치 의 위기를 극복할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의 미래는 진보정치의 미래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따라 서 위기의 원인에 대한 진단은 단지 우리 당의 지금 형편이 곤란하다는 수준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또한 주체적 측면에서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과정을 건너뛰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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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질문, 진부한 대답, 그러나 또 다시… ‘당의 미래’ 에 참여한 당원들이 가장 크게 공감하고 있는 것은 이대로는 진보정치 자체의 미래마저 잠 식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다. 암울한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진보정치의 가치와 대안 및 그 바탕이 될 정치사상의 형성, 구체적 현실에 대한 분석과 구체적인 대응의 기획, 보수정당과 크게 구별 될 수 있는 진보정치의 프레임 구축이다.‘당의 미래’ 가 찾은 답이다. 이 대답은 획기적이지 않다. 오히려 구태의연하다. 그러나 왜 다시 이 답이 나오는가?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당의 미래’ 는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답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제시한 것이 당 중심, 당원 중심, 노동당 노선 완수다. 너무 당연해보이지 않는가? 정당이라면 당연히 당과 당원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노동당이라면 노동당의 노선을 관철해야 하지 않는가? 문제는 이 기초적인 일들조차 부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당으로는 안 된 다는 속절없는 체념 속에서! 노동당 노선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아직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당의 미래’ 가 내린 진단이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노선의 폐기 가 아니라 보다 강력한 추진이다. 노동당 노선은 상상의 산물이 아니다. 실천을 필 요로 하는 명확한 사상적 지반이며 진보 정치의 재건을 위한 선행요건이다. 위기 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노동당 노선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아직 시도 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당의 미래’ 가 내린 진단이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노선의 폐기가 아니라 보다 강력한 추진이다.
설정한 진보의 가치와 대안이 유효적절 한 것임을 노동자 민중에게 인정받는 일이다. 이를 위해 중점적으로 고려해야 할 점은 첫째, 한국사회에 진보정당의 존립이 가지는 의의를 재확인 하는 것, 둘째, 이 당에 남아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당원들에 게 확신을 줄 수 있는 행동원리의 발견, 셋째, 앞의 두 가지 사항이 실천적으로 실물화될 수 있는 당적 차 원의 여건을 마련하는 방법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해법에 대한 고려 없이 이 당으로는 안 된다는 판단으 로 시작해 왜 이 당으로는 안 되는지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는 것은 부당하다. 부당한 논리 의 귀결은 당의 노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당 체계를 해소하는 논의로 번진다. 산술적 이합집산의 득실계산이 결코 진보정치의 미래를 밝히지 못함을 명확히 하자. 노동을 탈색시키 고 다른 색깔을 입혀야 대중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은 노동당 노선을 왜곡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 자. 노동당이 다른 어떤 정당과도 다른 차별적인 진보의 가치를 선명히 할 때, 그리고 그러한 가치를 합리 적이고 유효한 대안으로 제시할 때, 더 나가 노동당이 제시한 가치와 대안이 보수정치와 대응하는 사회적 의제로 설정될 때, 그 때가 바로 진보정치의 재구성이 시작되는 때임을 확인하자. 따라서 지금은 분열된 현실이 주는 곤경을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정당은 혹은 정치조직은 시대적인 요청과 필요에 따라, 주체 의 역량과 의지에 따라 여러 조직이 합칠 수도 있고 반대로 같이 했던 조직이 깨질 수도 있다. 분열은 두려 특집 미리 보는 정책당대회 25
움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오히려‘당의 미래’ 가 두려워하는 것은 진보정치가 내세울 가 치와 대안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그것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던 것을 반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 우, 어느 당과 합치던 거기서 세 불리하면 또 다른 당과 합치자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그 반대편에서 자 폐적 서클주의에 매몰될 경우 제도정치를 통한 진보이념의 확산은 몽상으로 그치게 된다.
두려운 것은 분열이 아니다 ‘당의 미래’ 가 구상하는 구체적인 대안이 뭐냐는 질문이 잇따른다. 난감하다. 구체적 대안이라는 것은 먼지를 쓰고 누워있는 지난날의 각종 문서에서, 하드 드라이브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문건에서 이미 제 시되고도 남았다. 물론 기존에 제안되었던 각종의 대안들은 상황에 맞게 재구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수없 이 생산해놓고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대안들을 꺼내 하나하나 되짚는 것이 우선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없다는 명언이 달리 명언이 된 게 아니다. 당의 미래에 대한 기획과 로드맵은 여기서부터 설계되어야 한다. 현실의 부박함은 거의 대부분 새로운 뭔가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마땅히 했어야 할 일을 하지 않 은데서 비롯된다. 그렇기에‘당의 미래’ 는 노동당 노선을 중심에 둔다. 당을 변수가 아닌 상수로, 당을 중심에서 사고하 고, 노동당의 노선을 관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당의 미래’ 가 제시하는 위기의 해법이다. 그 해법의 한 가운데에는 처절하리만큼 추락해버린 이 당을 끝내 부여잡은 채 평등·생태·평화의 공화국을 향한 기대를 놓치지 않고 있는 당원들이
이 당원들은 노동당의 당원이지 다른 외부 정당 혹은 노동이 탈색된 어떤 정당의 예비
있다. 이 당원들은 노동당의 당원이지 다 른 외부정당 혹은 노동이 탈색된 어떤 정 당의 예비당원이 아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당원이 아니다. 바로 그들이‘당의 미래’ 와
들이‘당의 미래’ 와 함께 당의 미래를 열
함께 당의 미래를 열어젖힐‘동지’ 들이다.
어젖힐‘동지’ 들이다. 당원들이 당의 미래 에 대해 신뢰하고 당의 활동에 만족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당의 미래’ 가 주목하는 지점이다. 위기? 그것은 굴복의 대상이 아니라 돌파의 대 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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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7일 노동당사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발언 중인 홍기표 제안자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특집 / 미리 보는 정책당대회 : 전망섹션
이제 사민주의의 옷을 입자 사회주의의 탈을 쓰고 사민주의를 하는 것이 좋은가, 사민주의의 탈을 쓰고 사회주 의를 하는 것이 좋은가? 사민주의 정당으로의 전면적 변신이 우리 당의 새로운 성장 전략이 될 수 있다.
홍기표 사민주의 당원모임 공동제안자
특집 미리 보는 정책당대회 27
6월 항쟁이 있었던 1987년. 그 시절은 정말 뜨거웠다. 그때 나는 얼마나 흥분했던지 자본주의가‘다음 달’그러니까 7월에 망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물론 그런 판단이 한낱 망상에 불과했음은 금방 확인 되었지만, 그 후로도‘자본주의가 어느 날 갑자기 확! 망할 것’ 이라는 나의 판단은 한참 동안 변하지 않았 다. 90년대 초반 함께 공장을 다니던 내 친구들 중 누군가가“주택청약저축과 근로자재형저축에 가입해 야 한다” 는 말을 했을 때, 그 소릴 듣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정도였다.“거 참, 한심한 소리하고 있네. 좀 있다가 자본주의 망할 텐데…”그러나 나는 그 후로 20년이 지난 올해 초, 주택청약저축에 가입했다. 그때 그 녀석 말을 들었더라면 벌써 20년을 부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같은 인식상의 오류는 우리가 어렸을 때 보던 <똘이장군>이라는 만화영화 때문일 수도 있다. 똘이장 군이 돼지처럼 생긴 독재자(=김일성)를 쓰러뜨렸더니, 어둡던 하늘이 갑자기 하얗게 변하면서 밝은 세상이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깜깜하던 세상이 갑자기 밝은 세상으로 바뀌는 식의 혁명 모형을 나는‘똘이장군 모형’ 이라고 부른다. 자본주의란 똘이장군 모형처럼, 어느 날 갑자기 망해서 그 다음날부터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식 으로 바뀌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꾸준히 수정될 뿐이다.
강령은 사회주의, 실제 프로그램은‘빨간날 놀기’ 이미 우리의 실천은 이런 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 우리 당은 강령에 사회주의를 등장시키고 있지만 실무적으로 추진하는 대국민 캠페인은 사회주의 운동이라 보기 어렵다. 실제 우리가 했던 운동은 결국 ‘빨간날 놀기’ 나 카드수수료 인하 같은 것이다. 당 홈페이지에 게시된 각종 당
각종 당 정책 중에‘사회주의냐 사민주의냐’
정책 중에‘사회주의냐 사민주의냐’ 라
라는 구분법을 적용해서 사회주의라고 할 만
는 구분법을 적용해서 사회주의라고 할
한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카드수수료 0.1%
만한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카드수수
씩 낮춰서 언제 사회주의를 할 수 있을까?
료 0.1%씩 낮춰서 언제 사회주의를 할 수 있을까? 지난 6월 재보궐 선거에서 동작구에
출마한 김종철 후보가 내세운 슬로건은“동작에는 김종철이 있습니다” 였다. 타 후보들은 딴 동네에서 갑 자기 왔고, 우리는 동작에서 오래 살았으니 찍어달라는 의미의 슬로건이다. 이 역시 사회주의랑 아무 상 관없는 슬로건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강령에 사회주의를 걸어 놓고, 실천적으로는‘빨간날 놀기 운동’ 을 해왔다.‘빨간 ( 날 놀기 캠페인’ 의 의미를 무시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각 개인이 마음속 깊이 고이 간직해온 이념적 상징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사회주의라는 이념적 상징이 현실정치에서 거의 써먹 28
을 곳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오늘의 사회주의란 현실정치에는 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장롱에 수십 년째 계속 보관 중인‘장롱 사회 주의’ 가 되고 말았다. 이것은 너무 먼 미래를 기약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기도 하다. 머나먼 미래 에 대한 기약은 단순히 마음의 위안이 될 뿐, 결과적으로 현실 개척 과정에서는 아무 역할이 없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말이 있지만, 현실투쟁에서 너무 먼 미래를 제시하는 것은 운동권의 아편이다. ‘장롱 사회주의’ 는 현실 정치가 바뀌건 말건 자기 삶에 아무 부담이 없는 사람들이 그냥 말로만 펼쳐내 는 이상으로 끝날 우려가 있다. 재정적, 시간적 여유를 갖고 단순히 논리적 이상만 설파하는 강남좌파의 논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사민주의의 옷을 입자 사회주의란 그 자체가 하나의 개념적 이상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어차피 구체적 변화를 위한 현실적인 수단은 아니다. 다시 말해 사회주의란 하나의 지향성이지 현실적인 정당 홍 보의 소스가 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우리는 지금까지 누가 시
사회주의란 하나의 지향성이지 현실적인 정당 홍보의 소스가 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우리는
키지도 않았지만, 사회주의의 탈을 쓰
지금까지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사회주의의
고 실제로는 사민주의를 해왔다. (혹은
탈을 쓰고 실제로는 사민주의를 해왔다.
사민주의보다 더 개량적인 정책노선을 밟 아왔다.) 사회주의의 탈을 쓰고 행해지는 사민주의적 행태는 당 외부에도 광범하다. 이른바 민중의 집은 스
웨덴 사민주의자 한손이 제출한 개념이다. 최근 확대되고 있는‘기본소득론’ 이라는 것도 과격하고 몽상적 인 얘기 같지만 따지고 보면 사민주의적 발상이다. 자본주의 체제를 그냥 놔둔 채, 가난한 사람들한테 돈 을 많이 줘서 돈으로 체제의 모순을 완화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사회주의의 탈을 쓰고, 사민주의를 하는 것이 좋은가? 사민주의의 탈을 쓰고, 사회주의를 하는 것이 좋은가?” 한 가지 참고할 사례가 있다. 이탈리아 공산당은 1992년까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가장 크고 대중적인 공산당이었다. 공산당 중에서는 제일 잘 나가는 당이었던 그들은 한 번도 집권을 하지 못했다. 이 당은 1992년 로마에서 자진해산을 선택한다. 붉은색 당기를 스스로 내리고 마지막으로 인터내셔널가를 부른 다음에 해산했다. 그러나 당원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곧바로 이름을 바꿔 새로운 당을 창당한다. 이탈리 아 좌파민주당이 그것이다. 바로 이 정당으로 1996년 집권에 성공한다. 이탈리아 공산당과 이탈리아 좌파민주당 사이에 무엇이 바뀐 것일까? 실상 바뀐 것은 많지 않다. 당 이 특집 미리 보는 정책당대회 29
름이 바뀌고 당 깃발의 색깔이 빨간색에서 초록색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어차피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점이다. 사람들 생각이 갑자기 바뀌었다고 볼 수도 없다. 우리가 잘 알지만 나이 먹은 사람 들이 생각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결국 공산당이건 좌파민주당이건 그들이 실제 갖고 있는 영혼 즉 지향성은 바뀌지 않았다. 공산당에서 좌파민주당으로의 변신이 갖는 본질은 대중에게 전달되는‘신호’ 의 변화다. 당의 본질적 지향성이 바뀐 것이 아니라 당이 입고 있는 옷이 바뀐 것이고, 당이 대중에게 보낸 신호가 바뀐 것이다. 대 중은 빨간색 신호일 때는 길을 안 건너다가, 초록색 신호로 바뀌는 것을 보고 길을 건넜다.
사민주의는 전 세계적 프랜차이즈 우리는 사민주의 정당으로의 전면적 변신이 우리 당의 새로운 성장전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우선 사민주의가 전 세계적 개념이며 전통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즉 이미 형성된 인지도가 높고 역사적인 개념이라 브랜드화 전략에 적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엄청난 브랜드 가치의 주인이 한국 에는 없는 실정이다. 전통적 브랜드의 장점은 당 밖 대중들에게 당에 대한 설명을 하기가 무척 쉽다는 점 이다.‘사민당 어쩌구’하면 네이버에 가서 검색어 쳐보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렇게 포털 사이트에 검 색어 쳐서 5분 안에 내용을 전달하고 동의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이념정당이 디지털 시대의 이념정당이라 고 생각한다. 사민주의는 우리나라가 산업화-민주화 시대를 거친 이 시점에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산업화 시 기와 민주화 운동 시절에는 복지국가를 말하기 어려웠다.‘독재정권 타도!’ 를 외치는 마당에 사민주의 하 자는 얘기는 개량주의 이전에 뜬금없는 얘기로 들리기 쉬웠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동네 노인 정에 모인 할아버지들도 자신이 수급자인지 아닌지 온통 그 얘기에 관심이 가 있다. 그런데 사민주의 브랜드화 전략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한국의 운동권 세대는 사민주의에 대한 비 호감을 갖고 있다. 그 이유는 알고 보면 당시 나이로 스물 몇 살 먹었던 선배들이 자기도 잘 모르면서 해준 얘기 즉‘사민주의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회피하고, 자본주의의 체제 내적 해결을 추구하는 개량주의 이 념’ 이라는 오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
이제 오래된 이데올로기적 자존심, 다수 대중과 괴리된 언어감각을 버려야 한다. ‘대중적 감각에 맞는 정치적 신호’ 를채 택하지 않을 바에는 굳이 선관위에 등록 한 합법정당을 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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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오래된 이데올로기적 자존심, 다수 대중과 괴리된 언어감각을 버려야 한다. 우 리가‘대중적 감각에 맞는 정치적 신호’ 를채 택하지 않을 바에는 굳이 선관위에 등록한 합법정당을 할 이유가 없다. 그냥 데모당을 하면 된다.
간과 쓸개는 빼주되, 영혼은 지키자 요즘 당 내부에 무정부주의의 흐름이 부쩍 많아졌다. 이쪽 길도 안 보이고 저쪽 길도 잘 안 보이니‘정 당운동’ 이 아니라‘그냥 운동’ 으로 넘어가는 경향이 발생한 것이다. 한쪽에서는 못 먹어도 고를 외치는 경 향도 있다. 그러나 지금 당 밖에는 대안정당론이 풍년이다. 한때는‘진보통합’ ‘야권통합’같은 말들이 유 행이었지만, 요즘 유행하는 개념은 진보통합이 아니라‘대안정당’ 이다. 여기서 우리는‘위기는 기회’ 라는 격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국면에서 주도적으로 당의 이미지 를 스스로 파괴하고, 기득권 없이 대안정당 논의를 주도하면 당 밖의 시민 세력들과 광범위하게 연대할 수 있다. 그 에너지로 다시 양당구도 극복을 위한 새로운 정당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공산당 선언》 은 이렇게 시작한다.“하나의 유령이 지금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이 말을 정치 홍보의 관점에서 해석해보면, 결국 그 당시에 공산주의라는 말이 대유행이었다는 것으로 이 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마르크스는 서른 살 때, 그 당시에 유행하던 어떤‘단어’그러나 무슨 뜻인지 정 확하지 않은 어떤‘단어’ 에 대해 체계적인 의미를 부여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우리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면서 우리의 지향성을 녹여내는 전략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현실에 맞지도 않는 옛 성인들의 단어와 개념
저소득, 저학력, 고연령 노동대중의 눈이 우리
을 고집하는 것은 훈구파 소리 듣기에
를 이해할 수 있도록 당의 포장지를 바꾸고 당
딱 맞다. 이데올로기적 자존심을 버리 고 실제 먹히는 정치를 해야 한다. 저 소득, 저학력, 고연령 노동대중의 눈이
의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그 속에서 당이 추구 하는 아름다운 지향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우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당의 포장지 를 바꾸고 당의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당이 추구하는 아름다운 지향성을 잃 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간과 쓸개를 빼주면서도 영혼을 잃지 않는 위대한 전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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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일체의 자격 심사 나 노동 강제 없이 누구에게나 지 급된다. 달리 말하자면, 노동과 무관한 소득이다. 그렇기에 기본 소득은‘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 는 항의에 부딪친다. 기본소
특집/미리 보는 정책당대회 : 정책섹션
기본소득과 불안정 노동 체제
득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노동과 소득의 연계 원칙은 이미 일자리
금민 서울 마포구 당원
부족과 불안정 노동의 확대로 깨 어졌다고 말한다. 일자리가 없거 나 있어도 제대로 된 일자리가 아 니니까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반론이다. 그런데 이는 자칫 실업 과 불안정 노동을 불변의 요소로 간주하고 기본소득을 단지 이와 같은 폐해에 대한 보완책으로 보 는 위험을 안고 있다. 기본소득을 불안정 노동 때문에 필요해진 확대된 복지 정책으로 보는가 아니면 신 자유주의 노동시장의 근본 특징인 불안정 노동 체제를 해소할 수단으로 보는가는 기본소득의 의의에 대 한 상반된 이해를 함축한다. 정책당대회에 제안한 모델은 기본소득과 노동시간 단축을 연동하여 불안정-저임금-장시간 노동 체제 를 해소하자는 제안이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OECD 평균보다 약 20% 많다. 대략 연간 362 시간을 더 일 한다. 장시간 노동은 그 자체로도 문제이다. 그런데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OECD 평균 수준으로 노동시 간을 줄이면 고용률도 오르고 불안정 노동도 준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노동시간 단축에는 자본도 노동도 적극적이지 않다. 노동이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는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소득 저하로 이어질 우려 때문이 다. 게다가 한국의 노동소득 분배율은 60%에 못 미치고 영미와 비교해도 10% 정도 낮다. 노동소득 분배 율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경향적으로 하락해 왔다.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한 전통적인 해법은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다. 그런데 이는 한국의 경제 구조, 고용구조, 임금구조에 맞지 않다. 일자리가 없는 사람도 많고 아르바이트와 불안정 노동자들이 넘 쳐나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도 심하다. 일을 하지 않게 된 시간에 대해 누구는 원래 임금이 높 아서 더 많이 보상받고 누구는 더 적게 보상받는다면 임금격차가 만들어 놓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분 구조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서도 동일하게 재생산된다. 더욱이 경제구조는 재벌 중심인데 고용의 대부 분은 중소기업이 담당한다.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은 기업별로 해결하라는 모델인데 결국 재벌 대 32
기업이나 중소영세기업이나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부담을 진다. 기업별 해결보다는 사회 전체적 해 결이 요구되며, 노동시간 단축의 비용을 개별 기업에 떠넘기는 것보다 재벌 대기업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우는 모델이 바람직하다. 또한 35시간제를 쟁취했던 1991년 독일 금속노조의 사례처럼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변형 근로제를 통한 더 많은 유연화와 교환하게 된다면 불안정 노동 체제의 해소와 동떨 어진 결과가 된다. 노동자의 총소득의 저하 없이 노동시간을 단축할 다른 방법이 있다. 기본소득과 노동시간 단축을 연계 하는 것이다. 단축되는 노동시간에 시간당 평균임금을 곱한 액수를 기본소득으로 사회
노동자 총소득의 저하 없이 노동시간을
구성원 모두에게 지급한다. 물론 이 모델에
단축할 다른 방법이 있다. 기본소득과 노
는 전제 조건이 따라 붙는다. 수당 중심의 임 금 체계를 바꾸어 시간당 임금을 인상하는 것과 최저임금의 획기적 인상이다. 현재 월 평균 임금은 223만 원이고 월평균 노동시간
동시간 단축을 연계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안은 고용 확대와 불안정 노동 축소에 가시적인 효과를 낼 것이다.
은 대략 170시간이므로 시간당 평균임금은 1만 3천 600원 정도 된다. 현재 한국의 연간 실노동시간은 2163시간인데 OECD 평균인 1770 시간 수준 에 근접시키려면 매월 32시간 정도의 실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하다. 월간 32시간 단축이 지나치게 급진적 이라면 월간 22시간을 단축하고 여기에 시간당 평균임금으로 곱한 액수를 기본소득으로 지급한다. 액수 는 대략 30만 원 정도이다. 30만 원 기본소득과 22시간 실노동시간 단축을 연동시키면 대기업 정규직의 개별 총소득은 준다. 하 지만 피부양자가 있는 경우에는 가구 단위의 소득 저하는 일어나지 않는다. 자유로운 활동시간은 늘어나 고 시간 빈곤으로부터 탈피한다. 따지고 보면 정규직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반면에 비정규직 노동 자는 실노동시간이 줄었음에도 총소득이 크게 증대한다. 또 다른 효과는 정규직의 실노동시간 단축으로 추가 고용의 필요성도 늘어나서 비정규직 비중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장시간 노동 체제의 해소가 저 임금 체제와 불안정 노동 체제의 해소로 이어진다. 매월 30만 원의 기본소득을 도입하고 1000인 이상 대기업에만 월간 22시간 단축을 우선 실시하는 모 델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방안은 고용 확대와 불안정 노동 축소에 가시적인 효과를 낼 것이다. 후에 중소기업까지 확대하면 모두가 더 적게 일하면서도 모두 함께 사는 사회로 전환하게 된다. 불안정 노동을 없애려면 지금보다 더 적게 일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노동자의 소득저하가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가능하 게 해 줄 것이다. 나아가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은 더 생태적인 경제로 나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특집 미리 보는 정책당대회 33
서울시당은 지난 8월부터 매주 목요일마다 홍대 앞에서 상가임 차인권리상담소를 운영하고 있습 니다. 보통 당에서 하는 상담사업 이란 법제도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고 이를 활용해서 곤란함을 해 소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라는 데 에 익숙해 익숙해져 있지만, 상가
특집/미리 보는 정책당대회 : 정책섹션
상가임차인상담소, 노동당만이 할 수 있는‘블루오션’
임차인 상담은 이와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법제도 자체
김상철 서울 영등포구 당원
가 상당히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실제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은 건물 소유주의 권리를 부분적으 로 제한하는 내용을 나열식으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소유주 입 장에서는 늘 법령을 피해갈 수 있 는 방법이 있어왔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재건축을 이유로 하는 재계약 거부 및 퇴거 요청입니다. 지난 9월 에는 권리금 양성화를 골자로 하는 정부의 상가임차인 보호대책이 나왔으나, 여기서도 소유주가‘1년 이 상’상업용도로 사용하지 않으면 중간에 계약을 종료하거나 계약갱신을 거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만약 소유주가 해당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이미 임차인은 퇴거한 이후이기 때문에, 대책 역시 사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듯 현재의 상가임차 관계는‘소유 중심의 경제’ 라는 자본주의의 특징을 보 여주는 핵심적인 연결고리 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전국의 상업지역이 전통적 으로 지방정부의 재정투자 나 혹은 시책을 통해서 육성 되고 있다는 점에 비춰보면, 공공투자로 조성된 상권이 구조적으로 건물 소유주에게 집중되는‘공공재정의 이전’현상도 두드러집니 다. 이를 실제‘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중심, 즉 점유 중심으로 바꾸는 데 상가임차인 상담은 중요한 출발 34
점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서울시당에서 비교적 손쉽게 상가임차인권리상담소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맘편히 장사하고픈상인들의모임(맘상모)’ 이라는 상가임차인 조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조직은 서울부터 제주 까지 광범위한 회원을 가지고 있는 전국 조직입니다. 하지만 상인들의 특징상 정례적인 사업을 펼치기엔 한계가 있고, 무엇보다 현재 문제가 되는 회원 상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형편입 니다. 서울시당은 맘상모와 함께 상담소를 차리면서 상인 조직은 맘상모에, 법제도적 지원과 연대는 당의 몫으로 구분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지역 상권 내에 상가임차인권리상담소가 노동당에 의해 운영되고 있 다는 것이 알려지고, 무엇보다 정기적으로 상담소가 운영되는 것만으로도 지역 내 약탈적인 관행들이 제 어되는 과시적 효과도 얻을 수 있습니다. 특히 상가임차인 상담의 장점은, 현행 제도에 의해 최장 5년간 장사가 보장되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계 맺음을 하기에 용이하고 주요 상업지에 위치한 가게를 주요한 활동 거점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상가임차인 상담이라는 것이 대부분 법제도의 애매함에서 발생하기 보다는 법제도의‘공백’ 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다루어지기 때문에 한 번의 상담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일 례로 홍대상담소의 경우에는, 3년 계약기간 종료 후 건물주를 만나지 못해 재계약을 하지 못하는 임차상인을 대신 해서 재계약 의사를 명시한 내용증명을 작성해주었습니다. 이후 재계약이 된 후에는 계약 종료 시에 권리금을 어떻 게 보장받을 수 있을지 상담을 해왔습니다. 이에 계약 종료 3개월 전에 재계약의사를 통보하고 재계약이 안 될 경 우 다른 임차인을 찾아 양도양수를 하겠다는 통보를 하도록 권했고 이를 통해서 건물주와 계약기간 내에 권리금 문 제를 협의하도록 조언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내년 9월까지는 정기적으로 이 분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이 사업이 맘상모라는 상인조직과 함께 연대해서 추진하는 사업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당 입장에서는 상가임차인들을 직접 당원으로 조직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상인조직인 맘상모의 가입을 권하고 상가임차인 간에 유대를 강화하도록 지원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상가임차인 싸움에서는 동료 임 차인의 도움이 가장 중요하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당이 당 명의를 통해 보호되는 현수막을 제공하면서 지역 내 약탈적인 임차관행을 막아내는 사례가 나오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관련 상담과 지원 요청이 당 으로 오게 됩니다. 경험적으로 보았을 때, 기존 정치세력들이 장악하고 있는 지방정부나 지방의회는 모두 건물주의 이해관계와 더욱 친밀하기 때문에 계층적으로 임차인 문제를 전면에 나설 수 없는 한계가 있습 니다. 이 점 역시 상가임차인 문제가 노동당에 적합한 이유입니다. 따라서 당 차원에서는 맘상모 지역조직이 있고 당의 여력이 되는 주요 당부를 중심으로 지역 내 상업 거점지역을 한 곳 선정하여 정기적인 상가임차인권리상담소를 운영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크게 부담이 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 효과 또한 단기적이지 않습니다. 당 차원에서는 정기적으로 각 지역별 사례 들을 취합하여 공유하고, 바뀐 제도에 대한 상호 교육과 지역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제도 도입 방안들을 모 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집 미리 보는 정책당대회 35
정부가 저출산 대책으로‘싱글 세’ 를 도입하겠다는 어이없는 발 상을 내놓고 있는 현재, 저출산 추세로 인해 위기를 맞이한 분야 가 있다. 바로 고등교육이다. 장 기적인 저출산으로 인해 현재 학 령 인구는 점차 줄어가고 있는 상 황이며, 2023년이 되면 한해 고 등학교 졸업자 수는 40만 명 정도 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2013년 현재 대학의 입학정원이 54만 5
특집/미리 보는 정책당대회 : 정책섹션
고등교육 개혁을 위한 노동당 당원모임을 제안한다
천 명인데, 10년만 지나면 고등학 교 졸업자가 전원 대학에 진학한
김예찬 서울 강남서초 당원
다 하더라도 입학 정원이 15만 명 이나 남게 되는 상황이 오는 것이 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대학의 입학 정원을 주기적으로 감축하겠다는 구조개혁 방안을 내놓았다. 문 제는 정부의 감축 방안이 전국 대학을 대상으로 일률적으로 감축하는 방식이 아니라, 감축률을 대학 평가 에 반영하여 재정지원과 연동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수도권 대형 종합대학들에게 평가 지표 가 밀릴 수밖에 없는 지방 중소규모 대학들은 획기적인 정원 감축을 하지 않으면 재정 지원이 끊기게 되는 난관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정원 감축은 곧 등록금 수입 저하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지방 사립대들은 진 퇴양난의 처지에 놓였다. 때맞춰 새누리당 김희정 의원이 대표 발의한‘대학 구조개혁 및 평가에 관한 법률안’ 은 정부의 구조개 혁안의 진의를 보여준다. 지방 사립대의 대규모 몰락이 예견되는 상황에서,‘자진 해산하는 사학법인에 대해 잔여재산 전부 또는 일부’ 를 돌려주겠다는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는 김영삼 정권의 5.31 교육 개 혁안 이후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대학을 장사 수단으로 이용해 왔던 기존의 사학재단들이, 자신들의 부 실 운영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먹튀’ 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겠다는 뜻이다. 이른바‘대학 구조개혁’ 이 재학생과 교직원들에게 일방적으로 피해를 강요하면서, 교육 공공성 확장의 방향보다는 사학 재단들 의 몫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을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동안 사립대 편중과 수도권 대학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서열 체제, 고액 등록금 문제는 한국 대학 교 육의 대표적인 문제들로 지적되어 왔다. 특히 한국의 사학 재단은 그 출발부터 농지개혁을 피하기 위한 지주와 기업가들의 도피처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재단 이사장 일가의 사적 소유물 성격이 강했다. 여기 36
에 사학 재단과 연결된 정치권, 관료 집단, 언론, 종교계의‘철의 보수 동맹’ 이 강고하기 때문에 정부의 대 학 정책은 큰 틀에서 사학의 소유권을 건드리지 않는 구조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지금의 사회적 상황은 지금까지 양적 팽창만을 일삼았던 한국 대학 교육 체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병폐에 찌든 한국 대학 교육 체제를 강제적으로 재편해야 할 상황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학 구조조정에 대한 반대 운동과 더불어, 지금껏 대학 정책에서 일방적으로 소외되어 왔던 지방대학과 전문대학생들의 이해 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대안적인 대학 개혁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방적인 대학 구조조정에 맞서‘대학공공성 강화를 위한 전국 대학구조조정 공동대 책위원회’ 가 구성되었지만, 노동당을 비롯한 제 진보정당들은 대학 구조조정에 대한 명확한 대안을 제대 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민주노동당 시기부터 진보정당들은‘국립대학교 통합네트워크’ 를대 표적인 고등교육 정책으로 제시하였으나, 진보 진영의 분열 과정에서 정책적 역량이 상실되면서 수년 간 고등교육 정책을 재검토하고 보완할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특히 정부의 정책에서 항상 소외되기 마련인 전문대 정책에 대해, 진보정당들 역시 제대로 신경 쓰지 못했던 현실은 상당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대학 구조조정 국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노동당의 고등교육 정책을 갱신
현재의 대학 구조조정 국면에 대응하는
하고 총론을 바로 세울 필요가 있다. 그 과정
과정에서, 노동당의 고등교육 정책을 갱
은 이제까지 교육 운동계에서 제시된 새로 운 논의들을 점검하고, 고등 교육에 관련된
신하고 총론을 바로 세울 필요가 있다. 고
다양한 참여 주체들의 의견을 모아내는 작
등 교육에 관련된 다양한 참여 주체들의
업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노동당
의견을 모아내는 작업이어야 한다.
의 교수, 비정규 교수, 대학 직원, 대학 비정 규직, 대학원생, 대학생 등 고등교육 정책의 당사자들을 발굴하고, 이들의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고등교육 사안에 대해 대응하는‘고등교육 개혁을 위한 노동당 당원 모임’ 을 제안하고자 한다. 대학을 둘러싼‘철의 보수동맹’ 을 깨뜨리기 위한 이 모임에, 당원들의 많은 관심과 의견,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사자들의 참여 를 부탁드린다.
특집 미리 보는 정책당대회 37
저는 공무원 등 특수직역연금 을 폐지하고 국민연금으로 대통 합하는 것만이 모두를 위한 이익 이라 생각합니다. 아시겠지만 이 미 2009년부터 상호 다른 연금의 가입기간을 합산 인정해주는‘공 적연금 연계제도’ 가 시행중이라 현재 공무원연금이 폐지되더라도 국민연금 승계가 기술적으로 어 렵지 않습니다. 공무원연금은 단순 소득비례 연금입니다. 즉 월급이 5배 차이
특집/미리 보는 정책당대회 : 정책섹션
국민연금 하나로, 기초연금 두배로 공무원연금은 ‘사수’ 도‘개혁’ 도 아닌‘폐지’ 가 답이다
면 연금도 5배 차이입니다. 그러 나 국민연금은 사회적 재분배가
김형모 서울 동작구 당원
엄청난 연금입니다. 왜냐하면 연 금액 결정에 가입자 평균소득이 무려 50%나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국민연금 최저소득 기준이 26만 원이고 소득상한이 408만 원입니다. 소득 차이에 따라 내는 연금 보험료는 16배 가까이 차이가 나지만 26만 원 버는 사람이나 408만 원 버는 사람이나 나중에 받는 연금 수령액차가 불과 2.7배가 안될 정도로 소득 재분배 기능이 대단합니다. 그리고 명색이‘공적연금’ 이라면서 왜 따로 운영하는지 사실 이해가 안 됩니다. 직종의 특수성을 주장 하지만 별개의 보상 시스템과‘부가적’ 인 연금 체계로 가야지 2천 74만 명을 포괄하는 국민연금과 별개로 공무원, 사학, 군인연금을‘병립적’ 으로 유지하는 것 자체가 공적연금의 사회연대성과 효율성을 저해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공무원연금은 국가가 충성을 필요로 하는 일부에 대해 선별적으로 제공하는 복지였습니다. 선별적 복 지의 유산인 공무원연금은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는 21세기에 맞지 않습니다. 현재 특수직역연금 가입자가 150만 명이 넘습니다. 그리고 150만 특수직역연금 가입자의 평균소득은 450만 원을 넘나듭니다. 민간에 비해 훨씬 높은 급여에 직업 안정성까지 보장된 공무원, 교사, 교수, 군 간부들이 국민연금에 가입한다면 불과 198만 원 수준인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은 자연스럽게 대폭 상 승을 하게 되고 국민연금 가입자 모두의 연금 수령액 상승이라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특히나 저소득 계층 일수록 효과는 더 큽니다. 통합 과정에서 국민연금 보험료를 공무원연금처럼 14%로 인상하고, 408만 원에 불과한 소득 상한선 38
을 공무원연금 수준인 800만 원대로 올리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보험료와 함께 소득 대체율도 2008년 이 전 수준인 60%로 원상회복해야 합니다.
1) 소득수준 높은 150만 특수직역연금 가입자 국민연금 통합 2) 보험료 인상과 함께 이뤄지는‘소득 대체율’향상 3) 지나치게 낮은‘소득 상한선’ 의 상승
이 세 가지 요인으로 국민연금의 가입자 평균소득은 대폭 상승하고 노후 보장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제대로 된 공적연금으로 탈바꿈할 수 있습니다. 지금 공적연금 제도가 별개로 있다 보니 오해도 많고 사 회적 갈등이 유발되고 있습니다. 이번 공무원연금 개편 논란이 해결되더라도 향후 또 이런 문제가 불거집 니다. 구조가 이렇다 보니 공무원 노동자들의 투쟁은 광범위하게 지지받기 힘듭니다. 공적연금 등 사회보험에 국가 세금을 쓰는 것은 당연합니다. 건강보험만 하더라도 매년 보험료 수입의 20%를 국가가 예산으로 지원합니다. 문제는 대다수 노인들이 20만 원 기초연금에 목숨 거는 현실에서 최 소 그 열 배 이상을 받는 소수의 연금 수령자들을 위해 국민 혈세를 점점 쏟아 부으니 예산 사용의 우선순 위, 즉 정당성과 상대적 박탈감이 더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공무원연금 적자 보존액 3조 원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열 배인 30조 원을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강화에 쓴다면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저부터 세금 더 걷어 가라고 국세청에 전화할 겁니다. 더불어 정부는
공무원연금 적자 보존액 3조 원이
1995년 OECD에 가입하면서 공무원 교사의 노동기
많아서가 아니라 그 열 배인 30조
본권과 정치참여권리를 가까운 시일 내에 보장하겠 다고 약속했으나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공무원연금 폐지와 국민연금 하나로
원을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강화에 쓴다면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의 과정에서 공무원과 교사에게 부당하게 가해진 권 리 박탈을 바로잡고 공무원 노동자가 일반 국민과 동일한 권리를 되찾을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되길 희망 하는 바입니다. 사실 지금의 공무원연금 문제는 흑백논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구도입니다. 노동당 같은 약자의 존재감은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감히 다수 민중의 이익에 부합하는‘더 나은 길’ 이 있다면 눈치 보지 말고 과감히 주장하고 실천하는 것이 우리 당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연금 하나로>와 <기초연 금 두배로>를 기회로, 우리 노동당이 역동적인 복지국가 실현에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길 희망합니다.
특집 미리 보는 정책당대회 39
지방선거 당시 노동당은 광범 위하게 확산된 민간위탁의 폐해 를 막기 위해 사회서비스 바우처 폐기를 전제로 한 사회서비스 노 동자의 지자체 직접 고용을 공약 으로 내걸고 각 지역을 돌며 정책 설명회를 열었다. 하지만 안타깝 게도 지역에 뿌리내리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생활임금 확대를 말하지만 실은 지자체를
특집/미리 보는 정책당대회 : 정책섹션
사회서비스 바우처 폐기하고 노동자는 지자체 직접고용해야
중심으로 한 민간위탁의 폐혜를 감추기 위한 우회적 방법이며, 바
배정학 서울 성북구 당원
우처 문제는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공공부문 저임금 불 안정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의 노 동조건에 무관심했다. 사회서비스는 지난 10년 간 빠른 속도로 확대되었으나, 그 방식은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제도 라는 취지를 실현할 수 있는 공공성의 확대가 아닌 민간시장(민간위탁)을 확대하는 형태였고, 그 매개가 바 우처다. 바우처는 복지시장 확대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으면서 사회서비스 분야의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고용불안과 저임금 구조의 고착화, 노동자 특히 여성 노동자의 인권침해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낳고 있다. 특히 민간위탁과 바우처를 통한
민간위탁과 바우처를 통한 서비스의 확대는 국가가 책임을 회피하고 민간에 책임을 떠넘 김으로써 서비스의 질은 하락하고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악화시키는 주범이 된지 오래다.
서비스의 확대는 국가가 책임을 회피하 고 민간에 책임을 떠넘김으로써 서비스 의 질은 하락하고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악화시키는 주범이 된지 오래다. 생활정치가 대중이 가장 고통스러워 하는 의제를 발굴하고 대안을 만들어내
는 정책능력이라는 점에서, 또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이 우리 삶과 가장 밀접하게 관계 맺는 이웃이라는 점 에서 사회서비스 분야는 당의 중요 정책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바우처를 매개로 복지시장을 확대하는 방 식에 제동을 걸고 국가가 직접 책임지도록 강요하는 것, 바우처 폐기와 사회서비스 노동자 지자체 직접 고용의 문제를 지역활동의 의제로 삼고 이를 지속적으로 실천한다면, 다른 정당의 노동 정책과는 근본적 40
으로 다른 노동당만의 정책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바우처를 매개로 한 사회서비스 정책은 보건복지부가 결정한 수가를 기준으로 중앙정부, 시/구/군, 이 용자의 본인 부담금이 결합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복지시장의 구조는 일반 노동시장과 달리 이중 구조 로 설계되어 있다. 보건복지부가 수량과 수가를 결정하고 민간위탁기관은 일정한 수수료로 수익을 얻는 형태다. 민간위탁기관은 이용자의 총 시간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의 수에 따라, 근본적으로 바우처 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수익이 결정된다. 그러다 보니 사회서비스는 임금과 고용 모두 지속성과 안 전성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정부는 단기간에 수십 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고만 홍보할 뿐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나 노동조건의 개선에는 전혀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진보진영 장애운동조차도 바우처를 매개로 한 방식이 이용자의 만족도가 높다는 이유로 바우처 폐기 에 대해 소극적이다. 별다른 수입원이 없는 장애인 단체가 민간위탁 구조에 편입됨으로써 발생한 폐해라 고 볼 수 있다. 바우처가 복지시장 확대의 주범이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생존 때문에 개선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아직 민간위탁 확산방지를 위한 지자체 직접 고용에 대해 진보진영에서도 구체적으로 연구된 바가 없 다. 마찬가지로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조차도 직접고용 문제는 이제 아예 언급도 하지 않는 형편이다. 노 동당에서는 사회서비스 관리공단을 통해 공공성을 확보하자는 주장이 있으나 한국의 통념과 구조상 이는 낙하산 인사를 조장하는 등 공공노조 쪽에서는 폐해에 대한 우려적인 시각이 많다. 국가 채권발행으로 민 간위탁기관을 정부가 관리하자는 의견도 있으나 이는 구체적으로 연구된 것이 아니고 아이디어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사회 진보진영 내에서 바우처 폐기가 주요 정책요구안이라고 해도 실천적인 정책 연구 는 담론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노동당은 초기부터 사회서비스 시장화 저지 공대위에 참여하고 있으나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보다 중앙 의 관성적인 사업에 머물러 있고 지역적 사업 실천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사회서비스 노 동자들의 조직화 사업을 시도했지만 지지부진한 것 역시 안타까운 사실이다. 최근 사회서비스 시장화 저 지 공대위에서 바우처 폐기를 위한 사업을 논의하고 있다. 당의 입장에서는 적극적인 정책적 연대와 지역 실천으로 사회서비스 시장화 저지 공대위 활동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런 활동으로 지난 지방선거에서 펼치지 못한 사업을 2016년 총선에서 당의 적극적인 공약으로 만들고 생활정치의 한 이슈로 자리 잡기를 희망한다.
특집 미리 보는 정책당대회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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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2014년 6대 미스터리
기획 2014년 6대 미스터리 43
기획/2014년 6대 미스터리
사라진 안철수, 어디서 뭐하나
‘느닷없는’급부상과 급전락 2011년 가을, 메디치미디어라는 출판사가 느닷없이 나와 몇 명의 필자를 불러‘안철수’ 와‘대통령’ 을 키워드로 붙이는 책을 써보자고 했을 때는 아직‘안철수 현상’ 이란 것이 떠오르기 전이었다. 그때는 출 판사의 기획이 어처구니없다 여겼다. 내가“그렇다면 안철수가 정치 지나치게 빨랐던 부상과 그보 다 더 급했던 전락, 안철수는 한국 사회에서 무엇이었을까.
권에 입문하지 않더라도 의미가 있는 책을 쓰고 싶다” 《안철수 ( 밀어서 잠금해제》 , 4쪽)고 어필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머리말에 적었듯“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정치 의 생명력과 역동성은 정치평론가의 부실한 상상력 저 너머에 있음이 또 한 번 증명되었다.‘안철수’ 란 이름 뒤에‘대통령’ 이란 음절을 발화 하는 건 몽상가의 객기가 아니라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업무가 되었 다.” (같은 책 4쪽)‘다이나믹 코리아’ 라고는 하지만 한 명의 사회적 명 사가 단 한 달 만에 유력 대선후보로 부각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놀라 운 일이었다. 그리고 일 년 뒤인 2012년 가을, 안철수는 대선후보 출마선언의 시 점을 재고 있었다. 지나치게 늦은 개입이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 그는 출정선언을 했고, 치고 나가지 못했으며, 결국 단일화 압박 속 에서 협상을 하다가 사퇴했다.
한윤형 <미디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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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2013년 4월, 그는 재보궐선거를 거쳐 정계에 복귀했다. 정 확히는 여의도 정계에 처음으로 입문했다.‘X파일’판결 확정으로 의
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지역구를 뺏으면서 말이다. 여의도 정계에 나타난 무소속 안철수 의 원은‘정책네트워크 내일’ 이란 조직을 만든다. 2013년 10월, 그는 10월 재보선에 대응하지 못하고 건너뛴 다. 이어서 2014년 3월에 이르기까지 그는‘새정치연합’ 이라는, 아직 정당조직은 아닌 창당을 준비하는 조직을 띄운다. 2014년 3월 2일, 안철수는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함께 느닷없이‘통합’선언을 한다. 이른바‘새정치 민주연합’ 의 탄생이다. 그는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통합의 명분으로 삼았다. 6월 지방선거, 세월호 참 사 이후의 상황에서도 야권은 사실상 참패한다. 이어진 7.30 재보선에서 야권은‘사실상 참패’ 가 아니라 ‘궤멸적 대패’ 에 직면한다. 김한길·안철수 공동 대표 체제는 만 5개월 만에 붕괴한다. 안철수는 2011년 가을 한 달여의 시간 동안 갑 자기‘대선후보’ 가 되었다가, 2014년 여름 한 달 여의 시간 동안 갑자기‘일개 국회의원’ 으로 전락 했다. 대선 대응 실패 후 정치권에 입문한 시점부
안철수는 2011년 가을 한 달여의 시간 동안 갑자기‘대선후보’ 가 되었다가, 2014년 여름 한 달여의 시간 동안 갑자 기‘일개 국회의원’ 으로 전락했다.
터 계산해 봐도 겨우 일 년 반이다.‘제3정치세력 화’ 를 포기하고 느닷없이‘제1야당 개혁’ 에 시동을 걸겠다며 새정치민주연합에 합류한지는 아직 일 년도 지나지 않았다.
무당파 제3후보들의 운명 지나치게 빨랐던 부상과 그보다 더 급했던 전락, 안철수는 한국 사회에서 무엇이었을까. 안철수가 한 국 사회에서 무엇이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 중 하나가 최근 정치권에 불고 있는‘반기문 열풍’ 이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최근 여야 대선주자들을 제치고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반기 문 총장이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하게 된 현실이야말로‘안철수 현상’ 의 소멸을 공식화한 것이라고 하겠 다. 무당파 유권자들은‘신상’ (새로운 상품)을 선택했다. 안철수는 재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나, 일단은 자 신의 정치적 지분을 상실했다. 반기문이 서 있는 땅은 과거 안철수가 서 있는 땅이기도 했다. 그 땅을 뭐라 고 부를 수 있을까. 반기문은 직선제 개헌 이후 줄곧 존재했던‘무당파 제3후보’ 의 계보를 잇는다고 평가할 수 있다.‘1노3 김’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모두 나와 지역할거 정치구도를 형성한 1987년 대선 이후‘무당파 제 3후보’ 로 나선 정치인들은 언제나 존재했다. 1992년 대선의 정주영과 박찬종, 1997년 대선의 이인제, 2002년 대선의 정몽준이 그런 이들이었다 볼 수 있다. 2007년 대선에선 고건이 그 위치를, 2012년 대선 에선 안철수가 그 위치를 점유했다. 사실 그간‘무당파 제3후보’ 들의 운명은 썩 순탄치 못했다. 1992년과 1997년의 대선에서는 자신들이 기획 2014년 6대 미스터리 45
기대한 것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고, 그 후 세 번의 대선에선 아예 대선에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됐 다. 2002년 대선과 2012년 대선에서는 후보단일화에서 패배했고, 2007년 대선 고건은 창당을 준비하다 가 대선 출마를 포기했다. 이처럼 현재 한국의 선거제도는 무당파든 좌파든 제3후보가 선전하고 성과를 내기 힘든 성격의 것이다. 사실 제3정치세력으로 안정적인 지분을 확보했던 건‘충청도 지역주의’정당들 뿐이었다.
안철수 현상, 그 텃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무당파 제3후보’ 에 대한 열망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비록 안철수를 지지했을 때만 큼 열정적이지 않을지라도, 그를 지지했던 이들은 이제 반기문을 쳐다본다. 오히려 그 열망의 저변은 더 넓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일까. 과거의 제3후보들은 주로‘영남의 비(非)여권 성향 지지자’ 들이 그 기반이었다. 그들은 김영삼 의 3당 합당으로‘야당 선택지’ 가 사라진 것에 대한 불만은 가졌지만 차마‘호남당’ (이라고 그들이 생각한 민주당)은 찍을 수 없었던 이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래서 1992년의 김대중은 정주영과의 단일화를 고려하
지 않았고 1997년의 김대중은 이인제가 영남 표를 깨주는 바람에 당선될 수 있었다. 그런데‘안철수 현상’ 부터는 다른 현상이 감지되었다. 안철수는 오랫동안 친노(親盧) 세력이 강세를 보 였던 수도권 중간층에게도 한때 인기가 있었고, 무엇보다 친노 세력에 반감을 가진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 의 지지를 받았다. 이는‘수도권과 호남에 거주하는, 반(反)새누리 성향이나 현재의 제1야당에 불만이 많 거나 그들의 승리 가능성을 낮게 보는 야당 지지자’ 의 지지로 읽혔다. ‘안철수 현상’ 이 보여준 건 이젠 무당파가 너무 많아져 새누리당 지지자나 민주당 지지자와 비슷한 규 모를 형성할 정도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한국 사회의 정당이 다수 시민들을 대의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현실에서‘안철수 현상’ 은 자라났다. 어느 쪽도 지지할 수 없는 이들 의 숫자가 많은 것은 여전한 현실이다.
한국 사회의 정당이 다수 시민들을 대의하 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현실에서‘안철수 현상’ 은 자라났다. 비록 안철수 의원이 민주당과 합당하여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든 이후 그 정당은 이 들의 지지를 붙드는 데 실패했지만, 어느
쪽도 지지할 수 없는 이들의 숫자가 많은 것은 여전한 현실이다. 반기문의 39.7%라는 지지율도 이들의 총 합, 즉‘영남의 비(非)여권 성향 지지자’ 와‘수도권과 호남에 거주하는, 반(反)새누리 성향이나 현재의 제1 야당에 불만이 많거나 그들의 승리 가능성을 낮게 보는 야당 지지자’ 의 합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국, 제대로 된 정당 조직이나 거점지역을 가지지 못한‘무당파 제3후보’ 가 한국 사회에서 성공하기 힘들다는 현실은 여전하다. 그렇다고‘무당파 제3후보’ 에 대한 열망이 실체가 없다고 말하기도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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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와‘안철수 현상’ 한국 사회의 시민들이 정치의 기능을 체계를 통해 복원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 수혈되어 ‘더러운 정치’ 를 정화해줄‘메시아적 개인’ 을 염원하는 것은 분명한 문제이다. 그러나 그것을‘문제’ 라고 규탄하는 것만으로 정치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 이들의 열망을 어떻게 다른 방법으로 조직하여 정치세력이 정치권력을 획득해 관료조직을 통제하고 이를 활용하여 경제권력을 통제하도록 할지에 대한 고민이 절실히 필요하다. 안철수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그런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안철수는 자신의 역할 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지가 부족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능력과 역할을,‘안철수라는 개인’ 과‘안철수 현상’ 을 혼동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새정치는‘민주당’ 보다 화끈하게 보수적으로 나가 중도파를 이 끌지도 못했고,‘민주당’ 보다 화끈하게 진보적으로 나가 서민층의 환호를 받지도 못했다. 끝까지 알 수 없 는 대중의 환호 속에서 2012년 대선 당시‘국회의원 정수 축소’ 나 2014년 지방선거에서의 기초선거 정당 공천 폐지와 같은‘반(反)여의도 포퓰리즘’ 을 던지지 못했고,‘친노’ 를 싫어하는‘반노(反盧)’ 의 지지를 받 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두 번의 선거를 치르면서 공천 과정에 잡음이 난 건 치명적인 일이었다. 지방선거의 윤장현 광주시장 공천과, 이정현의 승리를 불러온 재보선의 여수·순천 서갑득 공천으로 인해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지지하던 호남 유권자들의 신망마저 잃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반기문? 안철수는 반기문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반기문에 대한 지지는 열정적이지 않다. 다만 찍고 싶은 사 람이 없어서 거기다 찍었을 뿐이다. 게다가,‘안철수 현상’ 으로부터 시작된 기현상,‘○○○는 좋지만 ○ ○○가 정치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는 모순적 소망이 반기문에게도 투영된다. 언제는 안 그랬겠냐마는, 한국인들은 예전보다도 훨씬 더 심하게‘정치’ 를 경멸하게 되었다. 그리하여‘비정치’ 가‘정치’ 를 쇄신해 주기를 바라지만,‘비정치’ 가‘정치’ 가 되기를 원하지는 않는 상황이 되었다.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저렇게 해도 안 되며 도무지 어찌 해야 할지 모르는 당혹스러움. 이것은 대중을 바 라보는 진보정당만의 감정만도 아니고 한국 정치를 바라보는 대중의 감정이기도 할 것이다. 대중이 진보 정당에 잠깐이라도 호의적이고 신뢰를 가졌던 한두 번의 시기를 놓친 진보정당 운동은, 이러한 모순적 욕 망의 시선에 포착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기획 2014년 6대 미스터리 47
기획/2014년 6대 미스터리
이건희 회장 살았나 죽었나
올해 최대의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과연 살아있냐는 것이다. 이 회장이 쓰러진 게 지난 5월 10일. 아직 죽었다 는 소식이 없으니 살아있다고 보는 게 맞을 텐데 실제로 이건희 회장 을 봤다는 사람이 없다. 언론보도는 가끔 있었다. 이승엽 선수가 홈런 을 쳤다는 TV뉴스에 눈을 번쩍 떴다거나 병세가 호전되어 자택으로 옮길 거라는 기사도 있었고, 하루 19시간까지 깨어있고 휠체어에 앉기 분명한 것은 삼성그룹이 이건 희 이후를 20년 가까이 준비해
도 한다는 기사도 있었다. 그런데 이 기사들은 모두 삼성그룹 홍보실에서 흘러나온 걸 받아쓴
왔고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왔다
것일 뿐 기자들 가운데 누구도 이 회장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직접 본
는 사실이다. 몇 가지 걸림돌이
사람이 없다. 그나마 홍보실에서도 이 회장이 아직 의식은 돌아오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이건희 회
않았다고 말하는 상황이다. 의식이 없는데 어떻게 홈런 소식에 눈을
장은 죽어도 죽을 수 없는 상태
뜰까. 의식이 없다는데 어떻게 휠체어에 앉을까. 정확하게 말하면 휠
다.
체어에 앉은 게 아니라 앉힌 거겠지. 미스터리한 일은 또 있다. 인터넷 신문 아시아엔이 5월 16일 이건 희 회장이 사망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삼성은 몇 차례 아시아엔에 공문을 보내 정정보도를 요청했으나 아시아엔은 아직까지 정정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 이상기 아시아엔 대표는 <미디어 오늘>과의 인터뷰에 서“삼성 내부를 잘 아는 믿을만한 취재원에게 제보를 받아 취재했고 지금도 팩트에 문제가 없다고 확신한다” 고 밝혔다. 이 기사는 <미디어
이정환 <미디어 오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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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9년 사상 최다 조회수를 기록했다.
아시아엔 홈페이지 5월 16 일자 편집판 (사진: 아시아엔 캡쳐)
죽어도 죽을 수 없는 이유 이 회장이 이미 죽었는데 그 사실을 숨기고 있을 수도 있을까. 일단 알 수 없는 일이다. 살아있으면 사 진이라도 보여달라고 말하는 건 알 권리 따위와 무관한 지나친 요구다. 다만 추론을 할 수는 있을 텐데, 살 아는 있되 여전히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식물인간에 가까운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재벌 문제를 오래 취 재해 온 한겨레 곽정수 기자는“경영자로서 수명은 이미 끝났고 건강을 회복하더라도 경영 복귀는 어려울 거라고 본다” 고 말했다. 이 와중에 첫째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이혼 소식이 알려지기도 했다. 집안일이야 알 바 아니지만 이 회장이 건강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회장이 첫째 딸을 각별히 아꼈기 때 문에 한때 이부진 사장이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던 때도 있었다. 이 때문에 이 재용 부회장이 은근히 파경을 부추긴 것 아니냐는 루머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좀 더 추론을 해보자면 삼성이 이 회장이 죽음을 숨기는 것까지는 아니라도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설령 이 회장이 식물인간 상태라 하더라도 당장은 아들이나 딸들이 경영을 물려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유병언은 살아있는데 죽은 척을 하고 이건희는 죽었는데 살아있 는 척을 한다” 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다. 그만큼 일반 국민들 사이에도 의심이 쌓여있다는 이야기다. 사람의 목숨을 두고 이런 이야기하는 게 마음이 무겁지만 실제로 삼성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이 회 장이 살아있어야만 하는 이유, 또는 죽어도 죽을 수 없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아직 상속을 받을 준비가 안 돼 있고 둘째, 그룹 경영권을 넘겨받을 준비가 안 돼 있기 때문이다. 둘 다 같은 말 같지만 상속 은 상속이고 경영권은 경영권이다. 둘 다 통째로 넘겨받으려다 보니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획 2014년 6대 미스터리 49
첫째, 아직 상속을 받을 준비가 안 돼 있고 둘
워낙 복잡한 이슈라 여기서 자세히 설명
째, 그룹 경영권을 넘겨받을 준비가 안 돼 있
하기는 곤란하다. 극단적으로 요약을 하자
기 때문이다. 둘 다 통째로 넘겨받으려다 보 니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면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은 삼성전자 와 삼성생명인데 정작 이 회장 일가가 보유 한 삼성전자 지분은 4.7% 밖에 안 된다. 그 래서 이 회장이 삼성생명을 지배하고 삼성
생명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우회적 지배구조를 이루고 있다. 사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은 삼성생 명 보험 가입자들의 위탁 자산이다. 언젠가 돌려줘야 할 돈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금융산업 분리 원칙에 따라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은 처분하거나 의결권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금산분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공약이기도 하다. 국회에는 더욱 무시무시한 보험업법 개정안도 계류돼 있다. 만약 아무런 대책 없이 상속을 받았다가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연결고리가 끊기 면 이재용 부회장 등의 지배력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게 된다. 자칫 그룹이 반 토막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 다.
권력 승계를 향한 지난한 길 이재용 삼 남매가 아버지의 재산을 다 물려받는다면 내야 할 상속세는 6조 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상속 세를 다 내고 경영권을 그대로 넘겨받는 두 가지 미션을 모두 수행하려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지분을 그 대로 넘겨받아야 한다. 지주회사 역할을 하게 될 제일모직 지분도 내다 팔 수 없다. 결국 팔 수 있는 지분 은 삼성SDS 정도 밖에 없는데 보유 지분을 모두 내다 팔면 최대 3조 원까지 현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 로 보인다.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주가는 최대한 더 떨어지는 게 좋고(그래서 최대한 싸게 물 려받고 상속세를 적게 내는 게 좋고) 삼성SDS 주가는 최대한 오르는 게 좋다(비싸게 내다 팔아 현금을 마련해 야 하니까). 삼성전자가 몇 년째 배당을 안 주고 현금을 쌓아두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대한 주가
를 낮췄다가 상속이 시작되고 나면 그때 가서 배당을 받겠다는 전략 아닐까. 상속세는 배당을 받아 해결한다 치더라도 지배구조 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다. 삼 성전자와 삼성생명을 둘 다 가져가려면 유일한 대안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것밖에 없는데 이 경우 에도 삼성전자를 사업회사와 지주회사로 나누고 지주회사를 제일모직과 합병하는 등의 시나리오가 거론 되지만, 역시 삼성생명을 계열 분리하지 않으려면 중간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해야 한다. 문제는 중간금융지주회사라는 게 아직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다는 데 있다. 제일모직 밑에 삼성생명을 중간금융지주회사로 두고 삼성생명이 계열사로 편입되는 방안이지만 결국 법이 바뀌지 않는 이상 불가능 하다. 지금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지주회사 전환을 밀어붙일 수도 없고 그냥 버틸 수도 없는 입장이 50
다. 그리고 어떤 경우든 삼성 특혜라는 논란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만약 지주회사 관련법이 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회장이 세상을 떠나고 상속이 개시된다면 이재용 부회장은 떠밀리듯 지배구조 개편에 착수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삼성생명을 계열 분리하고 계열사 상당 부분을 정리해야 할 수도 있다. 이재용 후 계 구도와 관련한 수많은 시나리오가 나돌
최악의 경우 삼성생명을 계열 분리하고 계열
지만 어떤 시나리오도 지배력 축소는 불가
사 상당 부분을 정리해야 할 수도 있다. 준비
피한 상황이다. 준비 안 된 상태에서 상속 이 시작되는 게 이재용 부회장 입장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다.
안 된 상태에서 상속이 시작되는 게 이재용 부회장 입장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민감한 상황에서 이 회장의 부인 홍라 희 여사가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이 회장의 유언장이 없다면 이 회장의 상속 자산은 부인과 삼 남매가 1.5 대 1대 1대 1로 나눠 갖게 된다. 몽땅 물려받아도 지배력 유지가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가뜩이나 서로 사이 가 좋지 않은 집안이 내분을 겪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외척이 득세할 가능성도 있고 만약 우물쭈물 하다 개정 상속법이 통과되면 홍 여사의 상속 비율이 66.7%까지 올라가게 된다.
어쨌거나 지금은 안 된다 조선시대를 돌아보면 왕이 죽기 전까지 아들은 왕이 될 수 없다. 왕이 쓰러져 병석에 누워 있어도 마찬 가지다. 모든 권력은 왕에게 집중되고 왕세자는 왕의 살아생전에는 2인자도 될 수 없다. 왕의 존엄과 권위 를 탐하는 것은 설령 왕세자라고 하더라도 왕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고 반역이기 때문이다. 설령 왕이 식 물인간이 돼서 누워있더라도 왕은 왕이고 왕세자는 왕의 그림자조차도 밟을 수 없다. 삼성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살았거나 죽었거나 분명한 건 경영 공백이 계 속되고 있는데 이를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재용 부회장이 언젠가 그 자리를 잇게 될 가능성이 크다. 왕조 체제에서는 아들이 왕이 되는 게 당연하지만 왕이 무능하면 백성들이 고통을 겪 게 된다. 삼성 같은 수직적 지배구조에서는 무능한 회장이 고집을 부리면 그룹 전체가 위기를 맞거나 아 예 망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삼성그룹이 이건희 이후를 20년 가까이 준비해 왔고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왔다는 사실이 다. 몇 가지 걸림돌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이건희 회장은 죽어도 죽을 수 없는 상태다. 숱하게 많은 불법과 탈법을 저질렀지만 또 한 차례 초법적 특혜가 아니면 이재용 왕국은 오지 않거나 아버지 시절의 영화를 되 살릴 수 없다. 어쨌거나 지금은 안 된다. 아들의 간절한 바람이 아버지의 목숨을 지탱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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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2014년 6대 미스터리
최경환의‘초이노믹스’ 그 향방은?
‘초이노믹스’ 는 등장부터 화려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화려함을 뒷받침해준 것은‘부의 재분배’ 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었다. 최경환 경 제부총리‘부총리 (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 정확한 직책명이다)가 청문회에 나오기 직전 야권 일각에서‘소득주도성장론’ 이 조명을 받았다. 핵심 만 요약하자면 고전적인 대기업 중심의 부양책으로만 성과를 거두는 시대는 지났으며 이제는 분배 구조를 개선하는 것으로 새로운 성장동 최경환 경제팀의 정책은 왜‘근 혜노믹스’ 가 아니라‘초이노믹 스’ 로 불리는가?
력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일부 학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된 이 주 장에 문재인 의원 등 야권의 유력 인사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소득주도 성장론에 대한 관심도 배가됐다. 최경환 부총리가 이 소득주도성장론을 염두에 뒀었던 것인지는 모 르겠다.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소득주도성장론이 화제가 된 직 후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최경환 부총리가“가계 가처분소득 증대를 통 해 내수를 활성화하겠다” 는 발언을 한 것이었다. 경제기획원 관료 출 신으로 국회에서도 고전적 성장주의자로서의 경제관을 자랑해왔던 최 경환 부총리가 한 발언이라고는 믿기 힘들다는 반응들이 나왔다. 상대 적으로 진보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 언론들이 특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당시 <한겨레>는“반갑다” 라고도 썼다.
‘초이노믹스’ 를 향한 진보 언론의 환호 김민하 <미디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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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게 반길 일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모르겠다. 경제 관료
들이 대외변수에 취약한 우리 경제의 체질을 내수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새로운 일 이 아니다. 그것은 매 정권마다 한 번쯤은 제기되 는 약속이며 영원한 핑계다. 최경환 부총리의 당 시 발언은 분명 앞서 화제가 됐던 소득주도성장론
“가계 가처분소득 증대를 통해 내수를 활성화하겠다” “사내유보금에 과세를 고려하겠다”최경환 부총리의 잇따른 발언에 진보적 언론들은 환호했다.
과 한 맥락으로 묶여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다. 물론 당시의 과대평가가 최경환 부총리의 단 한 마디에서 비롯됐던 것은 아니다. 최경환 부총리는 기 업이 사내에 쌓아두고 있는 유보금을 시장에 투입하도록 강제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심지어 사내유보 금에 과세를 고려하겠다고도 말했다. 여기에도‘진보적 언론’ 들은 환호했다. 이러한 환호에 답하듯 최경 환 부총리는“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 고 말했다. 최경환 부총리의 구체적인 구상은 사내유보금을 배당이나 임금에 투입하도록 유도하고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 깎아준 법인세 인하분의 범위 안에서 사내유보금의 규모에 따라 추가로 과세를 하겠다는 거였다. 이에 따라 기업은 사내유보금을 배당에 투입하느냐, 임금 인상에 투입하느냐, 그냥 세금을 더 내느냐의 기로에서 선택을 하게 됐지만 실은 따져보면 별 문제도 아니다. 사내유보금을 배당에 투입하는 경우 대기업 총수와 이런 저런 관계에 있는 주요 주주들이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며 고배당주가 됐다는 사실을 선전해 주가의 상승을 노릴 수도 있게 된다. 그냥 세금을 더 내기로 결심하더라도 그리 부담되는 수준은 아니다. 지난 8월 최경환 경제팀이 세법개정안을 내놓은 당 시 <조선일보>는 1000억 원을 이익으로 남긴 기업이 이익의 60%(이 이상 시장에 재투자해야 과세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인 600억 원에 못미치는 400억 원을 배당이나 임금인상에 투입할 경우 목표액에 미치지
못한 200억 원의 10%인 20억 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고 분석했다. 임금 인상에 유보금을 투입하는 것은 그야말로 마지막 선택지다. 최경환 경제팀의 안은 깎아준 임금 총액에 10%의 세율을 곱한 만큼 법인세 납 부액에서 깎아주자는 것인데 이미 법인세 과세를 회피하는데 이골이 난 대기업 입장에서는 그리 매력적 인 유인책은 아니다. 결국 기업의 입장에서는 배당을 강화하거나 세금을 더 내면 된다. 이 중 배당 강화는 주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기다.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바쁜 중간층 이하 계층에는 크게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세금을 더 내는 것도 앞서 살펴봤듯 액수가 미미할 뿐만 아니라 정부가 이 돈을 복지재정에 투입 하는 것도 아니므로 최경환 부총리가 장담한‘가계 가처분 소득의 증대’ 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그저 미 지수다.
부동산 시장을 들썩인‘초이노믹스’ 오히려 최경환 부총리의 선도적 정책이 효과를 발휘한 건 부동산 경기였다. 부동산 경기부양을 가로막 기획 2014년 6대 미스터리 53
는 대표적인‘대못’ 으로 분류됐던 DTI와 LTV 규제에 기어이 손을 대고야 만 것이다. 익히들 아시는 것처 럼 DTI는 돈을 꾸는 사람이 총소득에서 일정 비율 이상을 상환에 쓰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며 LTV는 담보 가치의 일정 비율 이상을 대출하지 말도록 제한하는 것이다. 때문에 DTI와 LTV를 완화하면 사람들이 부 동산을 담보로 잡고 돈을 더 많이 빌리게 된다. 보통 이렇게 빌린 돈은 다시 부동산 시장에 투입된다. DTI와 LTV 규제 완화에 의한 기대감으로 부동산 시장은 들썩였다. 최경환 경제팀은 부동산 시장의 마 지막 보루 중 하나로 여겨왔던 재건축시장 활성화도 추진했다. 정부가 재건축 시장에 대한 희망적 신호를 보내자 이주수요가 늘어났고, 전셋값도 수직상승했으며, 이 때문에 그냥 세를 살아도 되는 사람들이 아예 빚을 더 내서 억지로 집을 사게 됐고 전체 가계대출규모는 급증했다. 이런 상황이 되자 기대를 모았던(?)‘초이노믹스’ 의 효력이 다 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경환 부총리는 이런 지적들에 굴하지 않았다. 최경환 부총리가 정치권에 있던 시절 별명 중‘황소’ 라는 게 있었는데 어떤‘고집’ 을 보여주는 별명
최경환 경제팀은 소소한 추가 부양책들을 발표하며 경기를 살리기 위해‘마중물’ 이필 요하다는 주장을 반복했는데 결국 이들의 철학은 2015년 예산안에 그대로 반영됐다.
이 아니었나 싶다. 최경환 경제팀은 이런 비판이 나오는 상황에서도 소소한 추가 부 양책들을 발표하며 경기를 살리기 위해 ‘마중물’ 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반복했는데 결국 이들의 철학은 2015년 예산안에 그대 로 반영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예산안에
대한 설명을 위해 직접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했는데‘경제’ 라는 단어가 쉰아홉 번이나 언급될 정도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구체적인 설명은 이렇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지금 적자예산을 감수하고 재정 지출 을 해야 하고, 재정 지출을 공격적으로 하면 경제가 살아나며, 경제가 살아나면 세수가 늘고, 세수가 늘면 재정 지출로 훼손된 재정 건전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최경환 경제팀의 이런 행보에 대해‘같은 편’내에서도 비판이 제기된다는 것이다. 박근 혜 대통령 대선 당시 소위‘경제교사’ 로 불렸던 김종인, 김광두, 이한구 3인이 서로 비슷한 진단을 내놓고 있다.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통한 부양을 도모하기 위해 정부가 재정을 투입했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결국 상황은 나아진 게 없는데, 이 결과로 국가 부채만 급증해 이후 장기불황에 손쓸 수 없게 된 일본의 전 철을 그대로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근혜노믹스’ 가 아니라‘초이노믹스’ 인 까닭 문제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에 더욱 성실하게 나서야 한다는 방안도 제시되 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교사 3인 중 한 명인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은 언론을 통해 반복적으로‘경제체질 개선’ 과‘경제혁신’ 을 강조했다. 구조개혁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올리고 공공부문을 개혁하며 노동유연성 54
취임 직후 기자간담회를 연 최경환 경제부총리 (사진: YTN 캡쳐)
을 확보해야 한다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식 해법이다. 고부가가치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창조경제’ 를주 장하는 김광두와 아직도‘경제민주화’ 를 언급하는 김종인과도 비교되는 강경한 입장인 셈이다. 이한구의 주장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것은‘초이노믹스’이후의 경제정책이 이와 유사한 것으로 귀 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유난히 경제정책에 대한 철학이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최 경환 경제팀의 정책이‘근혜노믹스’ 가 아니라‘초이노믹스’ 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정책의 주요한 결정권을 관료에게 전적으로 떠맡기는 행태를 다른 정부와 비교해서도 심각한 수준으로 반복하고 있다. 이는 1기 현오석 경제팀의‘실패’ 에서도 발견되는 부분이다. 현오석 전 경제부총 리의 경우 경제정책에 있어서의 주도권을 전혀 발휘하지 못한 채 당시 청와대 조원동 경제수석에게 질질 끌려 다닌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렇게 경제부총리가 자기 권한을 활용하지 못하고 청와대에 짓눌린다는 비판이 나오자 이번에는 아 예 최경환 부총리에게 상당한 권한을 보장해주는 식으로 아예 상황을 정반대로 바꿔버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전에는‘조원동 경제’ 였고 지금은 ‘최경환 경제’ 라는 점만 다르지 정권의 일관된 패 러다임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이 게 문제인 이유는 최경환 부총리가 교체되면 또다
이전에는‘조원동 경제’ 였고 지금은 ‘최경환 경제’ 라는 점만 다르지 정권 의 일관된 패러다임이 발견되지 않는 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시 그 인사의 철학을 중심으로 한 경제정책이 전면 적으로 추진될 것인데, 이 인사가‘초이노믹스’ 의 실패 이유를 앞서 이한구 의원처럼 신자유주의적 개혁 기획 2014년 6대 미스터리 55
의 미비에서 찾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체념하기엔 우리가 겪을 고통이 너무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 러니 우리가 최소한의 저항은 해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사회적 담론을 조성하고 여론의 압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진보정당은 경제정책의 밑그림을 그리고 이를 적극적으로 여론화하는데 명백한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
진보정치, 섬세하거나 과감하거나 경제정책의 방향을 눈앞에 두고 진보진영은 늘 정해진 혼란을 겪는다. 이명박 정부 시절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시행된 저금리와 고환율 정책에 대해 제1야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은 대기업만을 위한 정책 이라고 비판했다. 일부 야권 인사들은 박근혜 정권의 과도한 경기부양이 재정 건전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을 내놓는다. 비판은 늘 쉽다. 문제는 대안인데, 이러한 주장의 대안으로 재정지출을 줄이고 금리를 인상하는 긴축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면 어떻겠는가? 실제로 일부 야권 인사들 중에는 이런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가 또다시 노동자·서민들에게 고통을 안기게 될 것 이라는 점은 그간 수많은 사례에서 이미 증명된 바 있다. 이런 식의 비판과 대안 제출은 부양이냐 긴축이 냐, 국가주의냐 시장주의냐의 영원한 핑퐁게임에서 우리를 벗어나오지 못하게 한다. 경제정책에 대한 진보정치의 대안은 늘 아주 섬세하거나 아주 과감할 수밖에 없다. 섬세한 대안은 정 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재정지출을 늘리더라도 노동자·서민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주장 하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이 경우에도‘중소기업도 활력을 찾아야 한다’ 는 수박 겉핥기 식의‘경제민주 화’담론이나‘초이노믹스’ 류의 황당한 가처분소득 증대론을 피해가야만 한다. 그러자면 논리는 길어지 고 문장은 복잡해진다. 과감한 대안은 체제와 소유 문제 그 자체에 대한 도발적 문제제기를 감행하는 것 이지만 현재 진보정치의 수준에서는 그것조차 내부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아주 섬세하거나 아주 과감한 경제정책의 대안을 대중들에게 납득시키는 정치적 전략과 전 술을 세우는 방법 자체를 우리가 잊어버렸다는 점이다. 너무 과한 비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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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2014년 6대 미스터리
IS의 비극적 성공,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이슬람국가’ 자처하는 극단주의 현상 바라보기
“우리는 진정한 무슬림이다” 미군에 의한 오사마 빈라덴의 암살과 그에 따른 2001년 이래로 세 계적 악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알카에다의 무력화는, 마치 극단주의 테 러 세력과의 전쟁에서 마침내 승리를 거둔 듯한 약간의 안도를 선사해 주었다. 이라크의 치안 회복, 시리아 독재정권의 내전에 대한 제재, 이 그들이 무력으로 점유한 영토
스라엘-팔레스타인 영토문제 중재 등 중동지역에서 해결해야할 과제
는 나날이 넓어지고, 도처에서
는 여전히 차고 넘치지만, 적어도 그것 하나쯤은 거의 풀린 듯 보였다.
테러를 감행하고, 야만적인 인
하지만 갑자기, 가장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법한 극단주의 테러집단
질 살해 비디오를 인터넷에 뿌
이 세계의 주목을 단시간 내에 끌어 모으는 것에 성공했다. 그들이 무
리며 악명을 높였다.
력으로 점유한 영토는 나날이 넓어지고, 도처에서 테러를 감행하고, 야만적인 인질 살해 비디오를 인터넷에 뿌리며 악명을 높였다. 이슬람 국가(IS)를 자처하는 이 조직은 과연 무엇이고, 어떻게 이런 비극적 성 공을 거두고 있으며, 그 현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은 무엇인가. 워낙 신흥세력인지라, 이들에 대해서는 아직 명칭조차 치열한 프레 이밍 대결이 이뤄지고 있는 상태다. 우선 당사자들은 자신들을 진정한 무슬림 원리로 운영되는 국가라는 의미에서 이슬람국가(IS, Islamic State)라는 명칭을 강행한다. 이들은 알카에다 같은 과거 지하드 조직
김낙호 미디어연구가, 경기 용인 당원
은 일개 조직이었을 뿐이지만, 자신들은 정식 국가이자 이슬람 세계 전체의 정통성을 지닌 구심점이라고 부단히 강조하고 있다. 물론 대다 기획 2014년 6대 미스터리 57
가장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법한 극단주의 테러집 단이 세계의 주목을 단시간 내에 끌어 모으는 것에
수 중동 국가들과 나머지 세계는 이들을 국가로 승인하지 않을 뿐 아니라 테러단체로 규정하여 규제
성공했다. 이슬람국가(IS)를 자처하는 이 조직은
하고자 하기에, 특정 지역에 출몰
어떻게 이런 비극적 성공을 거두고 있는가.
한 자들이라는 의미로 ISIS(이라크 및 시리아 지역 이슬람국가), ISIL(이
라크 및 레반트 지역) 또는 숫제 알카에다 분리주의자들이라는 뜻의 QSIS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다만 확실
한 것은 이들이 이슬람 사회의 이상향으로 칼리프 국가를 내세우며, 대단히 전근대적인 사회관과 대단히 효과적인 세력 확장이라는 모순된 두 가지 요소를 기이할 정도로 성공적으로 관철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감한 세력 확장… 어떻게? ISIS의 시초는 1999년 만들어진 이라크 알카에다(AQI)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미국의 2003년 이라크 침공 국면에서 산발적인 반미 무력 활동을 하다가 2006년 수니파 저항집단과 무자헤딘 자문위를 거치며 이라크 이슬람국가(ISI)를 만들었으나, 지나친 폭력성향으로 지지층을 잃고 표면에서 사라졌던 바 있다. 그 런 이들이 2013년에 갑자기 ISIL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재등장했는데, 이번에는 상황이 이들에게 대단히 유리하게 흘러갔다. 첫째는 지지 기반이다. 장기 주둔하던 미군의 철수 등으로 온갖 권력 공백과 혼란이 커진 와중에 소수 파로서 더욱 사회적 차별을 받던 수니파 무슬림들의 불만을 초기 지지층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리고 둘 째는 영토다. 속칭‘아랍의 봄’ 으로 불리는 아랍민주화 물결 와중에 시작되었던 비극적인 시리아 내전이 서방세계의 소극적 개입 의지 속에 장기화되고 있는 틈을 타서, 그들은 독재정권에 반기를 든 여러 반군 분파 중 하나인양 시리아 영토에 자신들의 점령지를 세웠다. 여기에는 사담 후세인 사후 이라크 정규군에 서 흘러들어오거나 탈취한 군사장비와 알카에다의 금전적 지원(하지만 그 알카에다조차, 2014년 초에 이들의 비타협성에 질려서 연을 끊었다), 각종 수익성 범죄 사업 등이 도움이 되었다. 즉 핵심 지지층과 확고한 지역
기반을 얻게 되자 이들은 점조직에 가까웠던 알카에다와 달리 더욱 과감하게 자신들의 이상을 추진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2014년 9월 CIA 추산으로 2~3만 명의 병력을 지니고 있고, 시리아와 이라 크 영토 상당부분에 걸친 웬만한 국가 규모의 점 령지를 지니며, 점령지 바깥에도 여러 협력자를 두고 있다. 이들이 이상향으로 추구하는 것은 바로 지중해 연안과 북아프리카, 중동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칼 58
현대적 민주공화국에 한참 못 미치는 구시대 체제에 대한 향수를 내세우며 무력 영토 정복을 노리는 이런 지극히 전근대적 망상이 어째서 국가를 선포 할 정도로 지지자를 모을 수 있는가.
리프 국가의 건설이다. 그것을 이루는 방법은 당연히 무력에 의한 정복이고, 민주주의는 버려야 할 서구 의 발명품이며, 성평등이든 전쟁 방식이든 범죄 대응이든 각종 인권 사안에 있어서 딱 꾸란이 쓰이던 시 절의 기준으로 돌아갈 것을 천명한다. 현대적 민주공화국에 한참 못 미치는 구시대 체제에 대한 향수를 내세우며 무력 영토 정복을 노리는 이런 지극히 전근대적 망상이 어째서 국가를 선포할 정도로 지지자를 모을 수 있는가.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무슬림 교리를 추구하는 방식이 던지는 일종의‘후련 함’ 에 있다.
선명하고 화끈한 전근대적 교리 내세워 원래 중동 지역에서 무슬림은 도덕 윤리를 넘어 사회 체계까지 일관되게 아우르는 원리로서 오랫동안 적용되어 왔고, 현대사에서 정치체계의 세속화와 서구 제국주의에 의한 침략이 불행히도 많은 부분 겹쳤 다. 이란의 80년대 호메이니 집권이 그랬듯, 사회적 자존심을 되찾는 것이 곧 근본주의를 빙자한 극단주 의 종교론으로 흐르기 쉬운 것이다. 외세가 개입하여 망친 사회의 모습에서 다시 좋은 세상을 되찾기 위 한 가치의 잣대로 일관된 윤리 및 정치 원리였던 무슬림 사상을 재발굴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그 기세가 지나쳐서 현대적 민주제와 조화를 시키기보다는 좀 더 선명하고 화끈한 전근대적 교리를 내세워버리는 것이다. 선명한 만큼 열정적 지지자들은 더 확실하게 붙을 수 있고, 기본적으로 시대착오적 인권 개념과 반민주적 권력 구조가 널려있다. 하지만 ISIS가 거의 모든 다른 이슬람 국가들에게도 적대 대상이 된 것 으로 볼 수 있듯, 이런 것은 무슬림 사상의 보편적 문제라기보다는 선명한 극단주의의 문제다. 그런 와중에 영토 확장 등으로 승승장구하니, 후련함은 더욱 강해진다. ISIS가 주는 선명한 후련함을 바탕에 놓고 이해하지 않을 때, 서구 선진국에서 자라난 젊은 여성이 지극히 반여성적인 ISIS에 합류하러 들어가는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어려워진다. 결국 그저 지루한 일상에 신물 나고 감언이설에 현혹되어 충 동적으로 저질렀고 세뇌를 당한다는 식의 피상적 훈계로 흐를 따름이다. 하지만 현실은, 문화적 정체성을 충족 받지 못하고 그에 따른 차별도 느끼는 생활을 하던 이들에게, ISIS가 가장 선명하고 호쾌하며 긍정 적인 무슬림 자기정체성을 공급해주는 것이다. 모든 무슬림들이 정의롭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되 는, 윤리와 사회체제가 일치하는 진정한 이슬람 국가의 건설을 당신의 손으로 직접 이끌어낼 수 있다는 선명한 대의로 삶의 목표를 그려주면, 나머지 문제는 부수적이고 일시적인 단점에 불과해진 다. 실제로 들어가면 그보다는 훨씬 냉혹한 현 실이 기다리고 있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ISIS는 과감하고 성공적인 군사전
ISIS는 과감하고 성공적인 군사전략만 큼이나, 선진적인 미디어전략을 구사하 는 것이 특징이다. 프로파간다 전용 미디
략만큼이나, 선진적인 미디어전략을 구사하는
어 조직을 세워놓고, 세부적으로 메시지
것이 특징이다. 종합적 설계와 수행 방식에 있
의 타겟 집단을 나누어 공략한다. 기획 2014년 6대 미스터리 59
IS가 인터넷에 유 포한 참수 동영상 (사진 : YTN 캡쳐)
어서 완전히 새로운 경지에 이르렀기에 주목을 받고 있다. 국가를 표방하는 것에 걸맞게 프로파간다 전용 미디어 조직을 세워놓고, 세부적으로 메시지의 타겟 집단을 나누어 공략한다. 적으로 간주하는 사회를 향 해서는 정확하게 연출된 참수 살해 동영상을 유튜브로 뿌리며 자신들의 굳센 결의가 서린 잔인함을 과시 하고, 잠재적 지지자들을 대상으로는 트위터 해시태그 가로채기부터 전용 앱 배포까지 온갖 세련된 미디 어 활용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크게 부각시킨다. 무슬림 정체성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상담과 친밀한 소 속감의 느낌을 제공하여 이상적인 이슬람사회를 그리게 유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합성 이미지로 위트를 과시하기도 한다. 게다가 아무리 ISIS에 넘어갈 정도로 심각하게 취약한 사람들의 비율이 낮다하더라도, 미디어 공략이 전(全)지구적 스케일이 된다면 그 낮은 비율만으로도 상당한 머리수가 된다.
극단주의를 향한 열광, 그 반작용에 대처해야 이런 측면을 볼 때, ISIS의 급부상이 우리에게 다시금 상기시켜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우선, 사람들은 살아가는 것이 어렵고 혼란스러울수록 선명하고 호쾌한 사회적 정체성을 갈구한다는 것이다. 그런 정체 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느끼는데 무언가가 그것을 채워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면, 어떤 난감한 결점이 있더라도 과감하게 무시할 수 있다. 극단주의에 대한 열광을 어떻게 경계할 것인가. 나아가, 반작용의 순 간을 늘 대비해야 한다. 내부 동력을 탄탄하게 키워내서 밑에서부터 바꿔내는 것이 아니라면, 공동체 가 치의 혼란과 권력관계의 불안정한 재편 과정 속에서 반드시 가장 원초적이고 극단적인 형태로 회귀하려 는 반작용이 들이닥치는 순간이 온다. 한국 보수층의 박정희 향수와 공안경찰국가 동경이 ISIS식 극단주 의를 동급으로 놓을 수는 없지만, 더 선명한 극단주의로 더 많은 반작용이 이어지지 않도록 대처하는 것 은 중요하다. 여론 캠페인도, 입법 운동도, 감사 참여도, 소송도 모두 소중하다. 적어도 우리 사회는 아직 총을 들고 싸우지는 않아도 되니까. 60
기획/2014년 6대 미스터리
출판의 위기, 텍스트의 위기인가
사상 유래 없는 불황? 지난 20년 동안 출판이 불황이 아니었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일까. 해마다 되풀이되는‘사상 유래 없는 불황’ 이라는 호들갑에도 대다수의 대중은 어느새 무감해져 버린 듯하다. 무슨 큰일이라도 난 듯 떠들어 대 왔지만 지금도 서점에는 책들이 즐비하게 넘쳐나고, 힘들다 힘들다 지난 10여 년 동안 파국을 지 연시키며 위기를 돌파하는 데
되뇌면서도 어떻든 안 망하고 멀쩡하게들 책을 만들어 왔지 않은가. 게다가 불황이라는 아우성이 터져 나오는 와중에도 몇 만 부, 몇 십만
동원되어 왔던 ‘거품’ 이 더는
부 팔렸다는 베스트셀러들이 줄을 잇고 있으니 아무리 봐도‘공연한
유지할 수 없는 막다른 길에 들
엄살’ 로 밖에 안 보일 게다.
어섰다.
올해 초 들려온 일련의 소식들도 흉흉하긴 하지만, 새삼스럽지는 않다. 이른바‘빅4’ 로 불리는 김영사, 문학동네, 민음사, 창비 등의 2013년 순손실이 10억이라는 둥, 교보문고가 최근 4년 사이에 처음으 로 매출액 감소를 기록하며 적자를 냈다는 둥, 사상 첫 영업이익 적자 를 낸 민음사에서 여섯 명을 한꺼번에 해고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가 철회하는 소동이 일어나는 판국이라는 둥, 분위기는 심상치 않지만 그렇다고 노상 안 좋다고 울상이었던 업계 사정이 뭔가 특별히 더 나 빠지고 있다는 체감을 하기는 쉽지 않다. 정말 뭔가 큰일이 일어나고 있기는 한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변정수 출판컨설턴트, 《말과활》책임편집
‘큰일’ 은 이미 10여 년 전에 일어났지만 아무도 그 실체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고, 이제야‘지연된 파국’ 을 조금씩 실감하는 중이라고 말 기획 2014년 6대 미스터리 61
할 수 있다. 이미 맞닥뜨린 파국이 지연되고 있으니 늘‘위기’ 라는 식상한 수사의 되풀이는 당연한 일이 다. 그렇다고 이즈음 새삼스럽게 무슨 일이 더 일어난 건 아니라는 뜻도 아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파국 을 지연시키며 위기를 돌파하는 데 동원되어 왔던‘거품’ 이 더는 유지할 수 없는 막다른 길에 들어선 것이 다.
베스트셀러 내고도 경영난 겪는 까닭 그 배경을 한마디로 간추리자면,‘독자의 감소’ 다. 그것도 출판업의 지속적인 재생산이 불가능할 정도 의 규모로 심각하게 축소되었으며 그 속도도 미처 차분한 대응을 모색할 겨를이 없을 만큼 급격했다. 그 게 벌써 오래 전에 일어난 일이다. 이러한‘파국적 상황’앞에서, 독자를 다시 만들어내는 거시적이고도 장기적인 전망은 어쩌면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피하기 위한 몸부림은, 본질적인 의미에서‘책’ 의‘독자’ 가 사라진 자리를‘책의 꼴을 한 유행상품’ 의‘소비자’ 로 대체하는 방향으로 펼쳐 졌다. 그리고 그 안간힘은 얼마간 성공적이었다. 우선은 지금껏 출판산업의 매출을 일정한 규모로 유지시 켜 주었으며,‘속 빈 강정’ 일망정 외견상으론‘멀쩡하게 책 잘 만들고 있는’것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러 나 다른 한편, 책이라는 상품의 소비패턴을 이런 방향으로 고착화함으로써 새롭게 생겨날 수도 있는‘독 자’ 들의 싹이 자라날 토양을 송두리째 잠식해 버렸다. 이제는‘소비자 대신 독자를 만들어 보자’ 고 방향 전환을 시도한다 해도 무엇을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조차 막막한 상황이다. 나아가 문화다양 성을 확보하고 출판의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한 모든 사회적 요구를 업자들만의 이익을 위한‘저열한 밥그 릇싸움’ 으로 전락시켰다. 예컨대 새롭게 강화된 도서정가제는 시행도 되기 전부터‘소비자’ 들의 뭇매를 맞고 있다.
거품에 의지해 규모를 유지하느라 출판은‘문화산업’ 이라는 허장성세 에 어울리지 않게‘돈 놓고 돈 먹기’ 의 카지노가 돼버렸다.
물론 이것은 말 그대로‘거품’ 이다. 거품에 의지 해 규모를 유지하느라, 출판은‘문화산업’ 이라는 허 장성세에 어울리지 않게도‘돈 놓고 돈 먹기’ 의 카지 노가 돼버렸다. 열 종을 출판하면 아홉 종은 손익분 기를 넘기지 못하는 현실을 일반 대중들은 잘 모른 다. 그저 그 손실을 메우기 위해 화려하게 포장해 소
비자들을 유혹하는 유행상품들의 경쟁에만 눈길을 빼앗긴다. 그래서 몇 십만 부짜리 대형 베스트셀러를 내고도 경영난을 겪는다고 하면 의아해한다. 사정은 이렇다. 출판사는 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이벤 트’ 를 빙자한 제 살 깎아먹기식 덤핑, 베스트셀러 순위에 인위적으로 개입하기 위한 되사들이기, 경쟁 도 서에‘악플 알바’풀기 등 온갖 편법을 동원하는 데‘판돈’ 을 건다. 성공하면‘대박’ 이지만 그래봤자‘겉으 로 남고 안으로 밑지는’노름판의 원리가 고스란히 작동한다. 대개 노름판이 그렇듯 성패는‘판돈의 규 모’ 에 달렸고, 그로 인해 출판의 양극화는 가속화된다. 손익분기를 넘기지 못하는 9할에서 손실의 폭이 더 62
커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은 필연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터질수록 점점 더 파국을 향 해 치달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품’ 은 언젠가 꺼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지금, 붕괴의 조짐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그 방아쇠를 당 긴 것은 대형 인터넷서점이 주도한 중고서점의 확산이다. 새삼스럽게 환기하자면, 출판산업의 핵심 기반 은 개인 소비자가 아니라 도서관 등 공공적 수요여야 한다. 애당초‘독자 감소’ 라는 현실에 직면했을 때, 그 근원적인 해결책은 공공도서관을 통한 출판산업의 공공화였다. 그러나 국가도 사회도 공공도서관 확 충에 나 몰라라 하는 사이에, 시장이 도서관과 유사한 기능을 창출해냈다. 그것이 바로 중고서점이다. 이 제 어떻게든‘유행’ 을 만들어 소비자들의 눈길을 끄는 데 성공한다 해도, 그 성과는 출판사의 매출로 되돌 아오지 못하고 오롯이 중고서점의 회전율만 높여줄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판돈’ 을 건질 방법이 없는 노 름판에서 손을 뗄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만, 문제는 이 거품마저 꺼지고 나면 손해를 보지 않을 만큼의 독 자를 가진 책이 거의 없어진다는 것이다. 출판이 자선사업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책이 100원으로 만들어 50원어치밖에 안 팔리는 구조에서라면 재생산이 불가능해진다. 간단한 산수로, 예외적인 경우도 없지 않지만 대략 책 한 종의 손익분기점은 2천 부 내외이다. 그런데 최근 통계를 역산해 보면, 1종당 평균 판매부수는 900부에 조금 못 미치는 것으로 어림잡을 수 있다. 이 정도로는 간신히 초쇄에 대한 저작권사용료(인세)와 순제작비(용지대, 인쇄비 등 물리적 생산비용)를 건질 수 있을 뿐이다. 편집자를 고용할 여력은커녕 원고가 책으로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에 수반되는 잡다한 부 대비용조차 감당할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른 업종에서라면 채산이 안 맞아 사업을 포기해야 마땅한 상황인 것이다. 이는 줄잡아 1조 원 남짓의 매 출에 1만여 종사자가 밥줄을 걸고 있는 산업이 통째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다른 업종에서라면 채산이 안 맞아 사업을 포기 해야 마땅할 상황인 것이다. 최소한 손해는 나 지 않을 일에 인력과 자금을 투여한다면, 책은 도대체 누가 뭘 가지고 만들겠는가 말이다.
뜻이다. 이미 10년 세월 저편에서 사라 져버린 독자가 기적처럼 다시 나타나줄 리도 없고,‘먹고사는’문제와 직결된 복지예산마저 집행할 능력 이 없어 선거공약마저 헌신짝 내던지듯 하는 정부에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며, 이미‘카지노 출판’ 의타 성에 깊이 젖어버린 업계 내부에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출할 역량은 더더욱 없기 때문이다. 아니, 그런 역 량을 발휘할 수 있다 해도 오히려 그것은 출판에 밀어닥친 재앙의‘확인사살’ 일 뿐이다. 최소한 손해는 나 지 않을 일에 인력과 자금을 투여한다면, 책은 도대체 누가 뭘 가지고 만들겠는가 말이다.
책, 액세서리가 되다 게다가‘독자 감소’ 는 어제오늘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이기에 업계 내부의 역량이나 분 기획 2014년 6대 미스터리 63
투로 회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선 출판과 같은‘지식산업’ 은 시장에서라면 아주 전형적인‘중산층 타깃’산업이다.(그래서 현실적으로 구매력이 미약한 저소득층의 문화 향유권을 위해 공공도서관이 필요한 것이 다. 또한‘대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 는 흔한 개탄도 과녁을 빗나간 헛발질일 수밖에 없다. 책값은 고사하고 불 투명한 미래를 담보삼은 학자금 대출이 아니라면 등록금을 마련할 길조차 막연한 것이 대다수 대학생들의 형편이 다.) 그런데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가 심화되고 중산층이 몰락하는 심각한 사회변동이 가속화되
었고, 출판물에 대한‘구매력’ 의 절대적 크기 자체가 크게 축소된 것이다. 물론‘거품’ 을 통해 외형적인 규 모는 유지되었다지만, 이때‘책’ 은 이미‘지식상품’
‘좋은 책이 많이 팔리는 것이 아니라 많이 팔린(다고 알려진) 책이 더 많이
이라기보다는 일종의‘액세서리’ 에 가까운‘과시적 소비’ 의 대상일 뿐이고 출판은‘공격적 마케팅’ 을 통해 그 지점을 집중 공략해 왔다. 그래서‘좋은 책
팔리는’왜곡된 소비패턴이 대세로
이 많이 팔리는 것이 아니라 많이 팔린(다고 알려진)
자리잡게 된 것이다.
책이 더 많이 팔리는’왜곡된 소비패턴이 대세로 자 리잡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교육 불가능’ 이라는 극단적인 언사조차 새삼스럽지 않은 교육 황폐화가 맞물리며 실제 로 책에 대한 접근성이 크게 손상되었다. 한마디로 책에 담긴 내용을 읽고 이해할 능력이 전반적으로 하 락하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성인인구의 3/4이‘실질문맹’ 이라는 충격적인 결과(2005년에 발표된‘성인 인구 문해능력 조사’ )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이후 후속조사가 나오지 않아 현재 상태를 알 수 있는 객
관적 지표는 없지만, 교육 현장에서 심심치 않게 보고되는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하자면 한국의‘높은 교 육 수준’ 이‘실질문맹’ 을 해소하거나 완화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은 단행본 시장의 매출 규모가 현재의 1/10로 줄어든다고 해도 결코 놀랄 일이 아닌 것 이다. 이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집어엎지 않는 한, 출판에는 적어도‘산업’ 적으로 아무런 희망이 없다. 중고서 점이 책을‘액세서리’ 로 소비하는‘거품’ 을 상당 부분 흡수해버리고 나면 시장은 붕괴할 수밖에 없다. 더 구나 도서정가제 강화로‘책값이 인상된 듯한’체감효과가 가중되기까지 하면, 중고서점으로 향하는 소 비자들의 발길을 되돌릴 길은 사실상 없다. 향후 2~3년 안에 단행본 시장규모는 현재의 절반 이하로 축소 될 것이고 상시고용 5인 이상 규모 출판사의 7~8할이 무너지거나 사실상 출판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실 제 시장 축소의 규모나 속도보다 가시화되는 생산기반의 와해 규모가 크리라고 예상하는 것은‘카지노 출 판’ 의 관성 때문이다. 적자누적으로 자금압박이 심해질수록 더 세게‘지르는’모험 말고는 달리 돌파구를 찾지 못할 테고, 승산 없는 도박에서 세게 지를수록 더 빨리 망하게 되는 건 필연이다. 물론 그럼에도 책은 필요할 것이고, 누군가는 책을 만들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확률적 기댓값이 절반에도 못 미치는 로또 구매를 주저하지 않듯 불나방처럼 출판에 뛰어드는 사람도 적지는 않겠지만, 지속적 재생산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논외로 밀쳐두어도 무방할 것이다. 시장 64
에서 답이 안 나온다면 관건은 두말할 나위 없이‘시장 바깥’ 에 있다. 제한된 지면에서 소상히 설명하기는 좀 복잡한 얘기지만, 몇 해 전 어느 출판사에서 시도했던‘독자펀딩’ 을 통한 제작비 조달 방안이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의 위기? 시장 바깥을 상상하라 간략히 정리하자면, 책에는 시장에서의 교환가치 이상의 사회적 가치가 있다. 적어도 어떤 책이 채산 성과 무관하게 꼭 필요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비록 소수일망정 누군가는 그런 가치가 있다 고 믿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가치의 생산을 위한 비용이 시장에서는 온전히 회수되지 못한다면, 기존 처럼 시장에 기반을 둔 출판을 전제하는 한 그런 책은 아예 만들어질 수 없다. 그렇다면 시장을 통해 회수 할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의 생산비용을 그 가치를 인정하고 지지하는‘사회적 연대’ 를 통해 공공 적으로 부담할 수는 없는 것인지 타진해 볼 여지는 충분하다. 게다가 이러한 연대는 사라진‘독자’ 를 되살 려낼 수 있는 유력한 매개이기도 하다. 근대적 출판의 여명기에, 사회구성원 절대다수가 문맹이고 따라서 시장 형성이 미약한 상황에서도 누 군가는 책을 만들었고, 그것은 사회 전체의 역사적 자산으로 남았다. 그 방식이 이른바‘동인(同人)’시스 템이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또한 책이 지향하는‘가치’ 를 매개로 형성되는 사회적 네트워크는 단 지 출판의 재생산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 가치의 성격에 따라 (이즈음에는 전반적으로 빈사 상태 에 빠져든) 정치적 결사, 사회경제적 결
속, 문화적 블록 등이 새롭게 형성되고 분화되는 싹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 그 것이야말로‘출판의 공공성’ 을 가장 강 력히 입증해 주는 결과일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공공성’ 의
정치적 결사, 사회경제적 결속, 문화적 블록 등이 새롭게 형성되고 분화되는 싹으로 작용 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출판의 공공성’ 을 가장 강력히 입증해 주는 결과일 것이다.
토대가 취약한 한국 사회에서‘밥을 위 한 연대’ 조차도 곳곳에서 깨져나가는 지경에서 하물며‘마음의 양식을 위한 연대’ 는 허황한 백일몽에 지 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상상하지조차 않는다면, 작은 꼼지락거림조차 망설인다면, 영원히 ‘시장 바깥’ 은 없다.
기획 2014년 6대 미스터리 65
기획/2014년 6대 미스터리
케이팝(K-Pop) 열풍, 이대로 사그러드나
노동당 기관지《미래에서 온 편지》편집실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 다. 부탁받은 주제는‘2014년의 케이팝을 돌아보며 케이팝 열풍은 여 전히 유효한지에 관한 글.’아무래도 올해 들어 케이팝의 중심을 이루 는 인기 아이돌 뮤지션들의 이탈이 두드러져서 이런 글을 청탁한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케이팝이라는 방식이 계속 유지될 수 있는지, 이 제는 케이팝이 쇠락하거나 몰락하지 않을지를 전망해보고 싶은 모양 어쩌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이다.
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키워가 는지를 지켜보는 일일지도 모
잇따른 아이돌 멤버들의 탈퇴
른다. 아니면 그보다 나은 시스 템을 만들어 내거나.
실제로 올해에는 인기 절정의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탈퇴가 잇따랐 다. 먼저 지난 해 최고의 아이돌로 등극한 엑소(EXO)의 멤버 가운데 중 국인 멤버인 크리스와 루한이 소송을 제기하며 팀을 빠져나갔다. 지난 5월 크리스가 먼저 소속사인 에스엠엔터테인먼트(이하 SM)를 상대로 전속계약효력부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루한도 지난 10월 10일 서 울중앙지방법원에 같은 내용의 소를 제기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두 사람이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거의 비슷하다. 과도한 스케줄, 불합리 하고 부당한 수익배분, 중국 멤버의 차별 대우, 개인 발전의 제한 같은 것들이다. 두 사람은 소를 제기하면서 팀을 떠났고 그 때문에‘중국에
서정민갑 서울 은평 당원, 대중음악 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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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중국어로 활동한다’ 는 엑소-M의 활동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안무 등의 퍼포먼스를 모두 6명 단위에 맞춰서 짜놓은 상황에서 멤버 2명
이 빠져나가면 제대로 된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새로운 멤버를 구해서 활동을 이어가려 고 해도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어려운 문제는 두 명의 중국인 멤버들이 빠져나가면서 엑소-M에 대 한 여론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중국의 여론이 두 명의 중국인 멤버들에게 유리하 게 형성되면서 엑소-M의 인기가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같은 체제를 계속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부 팬들에게서 엑소-K와 엑소-M을 합치자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이유다. 문제가 생긴 것은 엑소만이 아니다. SM의 간판스타인 소녀시대에도 문제가 생겼다. 소 녀시대 멤버 가운데 한 명인 제시카가 갑작스 럽게 팀을 떠나게 된 것이다. 소식을 알린 것
올해에는 인기 절정의 아이돌 그룹 멤버 들의 탈퇴가 잇따랐다. 문제가 생긴 것은
은 제시카의 SNS였다. 그녀가 9월 말 자신의
엑소만이 아니다. SM의 간판 스타인 소
웨이보(중국 SNS) 계정에 글을 올려 회사와
녀시대에도 문제가 생겼다.
멤버들로부터 일방적인 퇴출 통보를 받았다 고 주장하면서 소식이 알려졌다. SM과 제시카가 서로의 입장을 발표하면서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제시카 가 하는 개인 사업과 관련해서 서로의 입장이 부딪쳤으며 잘 조율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 서 소녀시대 멤버들과 제시카 역시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 제시카는 팀을 떠났으며 소녀 시대는 이제 여덟 명의 멤버로 활동할 것으로 보인다. 소녀시대는 최근 들어 멤버들의 연애 소식이 계속 터지고, 올해 발표한 음반《Mr. Mr.》 도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소녀시대가 여전히 톱스타인 것 은 분명하지만 그들도 나이를 먹고 있고, 대중의 반응 역시 항상 똑같지는 않은 것이다. 이렇게 엑소와 소녀시대에 문제가 생기자 케이팝과 아이돌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커지는 조짐이다. 사 실 아이돌 멤버들 가운데 탈퇴한 멤버는 이 셋만이 아니다. 2009년에는 동방신기의 멤버 가운데 영웅재 중, 믹키유천, 시아준수가 SM과의 소송을 진행하며 팀을 떠나 JYJ라는 새로운 팀을 결성한 바 있다. 카 라에서도 올해 4월 강지영과 니콜이 탈퇴해서 솔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티아라에서도 2012년과 2013년 에 화영과 아름이 연달아 탈퇴한 역사가 있다. 카라의 경우에는 이미 리드보컬이었던 김성희가 탈퇴했던 과거가 있다. 지난해에는 보이그룹이었던 유키스에서도 동호가 탈퇴하기도 했다. 한 때 최정상의 아이돌 이었던 원더걸스에서도 현아와 선미가 팀을 떠났던 사례가 있다. 아이돌 그룹에서 멤버 탈퇴는 일상다반 사인 것이다. 그럼에도 올해의 경우에는 케이팝을 대표하는 아이돌인 엑소와 소녀시대 멤버들이 연달아 탈퇴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엑소와 소녀시대의 멤버 탈퇴 사례를 살펴보면 유사한 문제가 나타나 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엑소의 경우에는 외국인 멤버들이 연달아 탈퇴했고, 소녀시대의 경우에는 그 동안 소녀시대 활동을 통해 쌓은 지명도를 개인적으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는 모두 두 아이돌 그룹의 명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거나 SM의 아이돌 운영 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 문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기획 2014년 6대 미스터리 67
아이돌, 철저한 계약과 관리의 산물 만약 엑소의 멤버가 탈퇴한 이유가 그들의 주장대로‘과도한 스케줄, 불합리하고 부당한 수익배분, 중 국 멤버의 차별 대우, 개인 발전의 제한’같은 것이라면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노예 계약’같은 대형연예 기획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어린 나이부터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아이돌 멤버 가 되기 위해 종일 연습만 하고 친구도 못 사귀다가 겨우겨우 스타가 되었는데도 고생만 하면서 제대로 돈 도 받지 못하는 경우 말이다. 만약 아직도 이렇게 반인권적이고 불합리한 방식으로 아이돌 그룹이 운영되 고 있다면 이는 표준계약서를 체결하는 것 이상으로 관련 부처와 음악계의 개입이 필요한 사항이다. SM 같은 한국의 대표적 연예기획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 문제 때문이 아니라 중국인 멤버들이 엑소에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중국에서 개인 활동을 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래서 그들의 배후에 중국 기획사가 끼어 있다면 앞으로 이러한 유사사태를 방지하 기 위한 관리 시스템이 보강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최근 케이팝 아이돌 그룹들은 아시아 시장을 개척 하기 위하여 현지인을 멤버로 결합시키는 등의 현지화 전략이 필수적으로 병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서 일부러 현지인을 멤버로 영입해서 애써 키워놨는데 현지에서 솔로로 독립해버린다면 문제가 되지 않 을 수 없다. 분명 이 부분에서는 SM에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아이돌 그룹 활동의 인 기를 바탕으로 솔로 활동을 하려는 사례는 제시카의 경우에도 그리 다르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례 역시 보다 철저한 계약과 관리로 막을 수 있을까? 사실 케이팝의 중심을 이루는 아이 돌은 그 자체가 철저한 계약과 관리의
아이돌은 노래, 춤, 랩, 연기, 외국어, 태도 등을 철저히 교육받으며 길러진다. 음악 제작 시스 템과 녹음 등의 과정은 수많은 자본이 투여되 며 매우 프로페셔널하고 완벽에 가깝다.
산물이다. 이미 서술했듯 아이돌은 어 렸을 때부터 노래, 춤, 랩, 연기, 외국 어, 태도 등을 철저히 교육받으며 길러 진다.‘칼군무’ 가 하루아침에 이루어 진 것은 아닌 것이다. 그렇게 5년 이상 을 계속 교육받으면서 길러진 결과 노
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연기도 잘하고 외국어도 잘하며 태도도 좋은 아이돌 그룹들이 나오는 것이다. 멤버들만 그렇게 관리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부르는 음악 역시 국내외의 작곡가와 프로듀서 등으로 구 성된 전문가들에 의해 철저히 맞춤형으로 제작된다. 아이돌 음악의 제작 시스템과 녹음 등의 과정에는 수 많은 자본이 투여되며 매우 프로페셔널하고 완벽에 가까운 과정이다. 그렇게 공을 들여 음악을 만들고 훈 련해서 내놓았기 때문에 1990년대 중후반의 아이돌보다 훨씬 음악적으로나 엔터테인먼트적으로 더 뛰어 난 음악과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것이다. 한국의 아이돌팝이 해외에서 케이팝이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얻 는 것도 바로 그렇게 꼼꼼한 육성, 제작, 마케팅 시스템이 구축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같은 방 식을 포기하거나 전면적으로 수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최근 소녀시대 같은 일부 아이돌의 인기 68
가 주춤하기는 하지만 오렌지캬라멜이나 크레용팝처럼 기존 아이돌과 다른 컨셉트를 기획해서 인기를 얻 는 새로운 아이돌의 모습을 보면 아이돌의 제작 시스템이 결코 안일하거나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금세 확 인할 수 있다. 아이돌의 제작 시스템도 꾸준히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식지 않는 케이팝 열풍, 시스템은 굳건하다 그래서‘케이팝 열풍은 여전히 유효한지’ 를 묻는 질문 앞에서 부정적인 결론을 도출하기는 쉽지 않다. 좋은 음악이 반드시 예술가 개인의 독특한 혼이 담겨 있고 개성적이며 의미가 많이 담겨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돌 음악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은 아이돌 음악보다 싱어송라이터나 밴드 음 악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지만 싱어송라이터나 밴드 음악이 절대적으로 우수한 것은 아니다. 아이돌 음 악 역시 멜로디와 연주, 녹음 등의 퀄리티에서 손색이 없고 그들이 보여주는 퍼포먼스 또한 훌륭하다. 물 론 이렇게 완벽에 가까운 제작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음악이 지겨워진 대중들은 <나는 가수다>, <슈퍼스타 K> 등의 프로그램에서 선보인 인간적인 열창에 관심을 보이기도 하지만 웰메이드 음악이자 뛰어난 엔터 테인먼트가 되어버린 케이팝의 인기가 쉽게 식을 리는 없다.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을 갖춘 음악상품들을 계속 내놓고 있는 케이팝은 오히려 다른 장르나 스타일의 음악 상품까지 다 흡수해서 구비하는 초국적이 고 초장르적인 음악 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더 높다. 실제로 그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음악과 퍼포먼스만 업그레이드되고 다양해지 는 것이 아니라 엑소나 소녀시대 등에서 나타 난 관리 시스템의 문제 역시 업그레이드 될 것이 분명하다. 또한 SM이나 YG 같은 한국
음악과 퍼포먼스만 업그레이드되고 다양 해지는 것이 아니라 엑소나 소녀시대 등
의 대표적 연예 기획사들은 대중음악만이 아
에서 나타난 관리 시스템의 문제 역시 업
니라 방송, 영화 등으로 품목을 다각화하며
그레이드 될 것이 분명하다.
규모를 부풀리고 있다. 흡사 삼성이나 현대 같은 한국 대기업의 발전 사례를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어쩌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케이팝 열풍은 여 전히 유효한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키워 가는지를 지켜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아 니면 그보다 나은 시스템을 만들어 내거나.
기획 2014년 6대 미스터리 69
여성 진보정치 열전 7
전생에 나라를 구한 여자, 고명숙
이주여성들의 빛나는 친구 ‘여성의 전화’ 라는 여성단체에 들어가면서 여성운동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을 만나고 성매매여성 인권 실 태조사를 하면서 고명숙은 우리 사회에서 극단적인 고통에 처해진 여성들 문 제에 더욱 매달리게 되었다.
인터뷰 : 심재옥·최혜영 여성위원회 정리 : 심재옥 사진 : 정정은 편집실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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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진보정치 열전 71
여성정치열전이 시즌2로 접어들면서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성당원들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역 에서 의미 있고 탄탄하게 기반을 닦고 있는 여성들을 만난다는 것은 한편으로 우리 당의 저력을 들춰보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명숙 당원과의 만남도 그랬다. 대구에서 이주여성 쉼터를 운영하는 고명숙 당원을 10월 24일 레드북 스에서 만났다. 그의 첫 인상은‘블링블링’ 했다. 노동당 여성들에게서 흔히 볼 수 없는 패션 감각, 정성스 런 화장, 네일아트에 화려한 핸드폰 케이스까지. 자신의 멋과 생각이 확고한 여성들에게서 느껴지는 당당 함이 첫 만남에서 확 풍겨왔다. 고명숙은 마침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이주여성에 관한 강의를 하러 올라온 참이었다. 종종 이주여 성에 관한 강의를 다니는 고명숙은, 98년부터 선주민 여성을 지원해왔고, 결혼으로 들어왔건 노동으로 들 어왔건 한국으로 온 이주여성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6년째 이어가고 있다. 이주민 지원활동을 하는 사람 들은, 한국인들도 이 땅에 먼저 정착한 사람들일 뿐 인간으로서의 권리는 이주민과 다를 바 없다는 의미 로‘선주민’ 이라는 말을 쓴다.
가난하지도 않은데 빈민운동은 왜 하니? 고명숙은 대학 때 빈민운동을 하는 선배를 도와 지역에서 아이들 공부를 돕고 부모들의 노동교육을 했 는데 그때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많이 갔다.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던 고명숙이 빈민운동 에 관심을 갖는 것에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지금의 남편조차도“내야 가난한 빈농의 자식이니까 노 동운동에 관심 가지는 게 당연한데 당신은 뭣 때문에 관심 가졌었노?” 라고 묻는다. 보수적인 대구에서 어 려서부터 선생님 말씀에 순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동창들을 만나면“너는 그때부터 기질이 있었어” 라 고 한마디씩 한다.
“겨울이어서 손이 찬가보다 생각했었죠. 언제나 장갑을 끼고 있었거든요. 이 분이 술 한 잔 하라고 손 을 내미는데, 있잖아 손가락 두 개가 없는 거야.
“그때는 가정폭력이라 안하고 부부싸움 이라고 했어요. 이분 얘기를 듣다 보니, 대부분 동네 사람들 부부가 평등한 관계 가 아니었어요.”
가내수공업 하는 남편 일 돕다가 그랬는데, 그 이후 남편의 폭력이 심해졌대요. 그때는 가정폭 력이라 안하고 부부싸움이라고 했어요. 이분 얘 기를 듣다 보니, 대부분 동네 사람들 부부가 평 등한 관계가 아니었어요.”
어느 겨울, 지나가던 고명숙을 불러 술 한 잔 하기를 청했던 문방구집 아줌마, 그녀가 풀어놓는 가정사 를 듣는 동안 가난한 여성들의 삶이 고명숙의 가슴 속을 파고들었다.‘왜 이 사람들은 힘들 수밖에 없을까 72
…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개인 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이다.’그런 생각 에 다다른 고명숙은 여성문제의 사회적 해법을 찾아보고 싶었다. 여성학 석사공부를 시작했다. 석사를 마 치고‘여성의 전화’ 라는 여성단체에 들어가면서 여성운동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을 만나고 성매매여성 인권 실태조사를 하면서 고명숙은 우리 사회에서 극단적 인 고통에 처해진 여성들 문제에 더욱 매달리게 되었다.
결혼자금으로 만든 쉼터, 앵벌이로 버텨 참여정부 들어서면서 정부지원을 받는 여성단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건 좋은데 간섭도 늘어난다는 게 문제였다. 활동에 제약이 생기고 목소리도 점차 위축되었다. 고명숙은 그게 싫었다. 정부의 간섭과 제약 없이 성폭력, 가정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들을 지원하고 그들의 쉼터를 운영 하고 싶었다. 그런 고명숙의 고민을 알아서였을까, 결혼을 앞두고 신혼집 계약을 하러 가는 고명숙에게 남편이 말했다.“기왕 하는 거 당신 이름으로 대출받아서 쉼터 만들어라.”양가에 기대지 않고 치루는 결 혼. 한 푼이 아쉬운 결혼을 앞두고 남편은 흔쾌히 고명숙의 쉼터를 지지해주며 나섰다. “정부지원 없이 4~5년 했고, 주변에 십시일반 앵벌이처럼 운영하는 게 되게 힘들었어요. 활동비 못 받 여성 진보정치 열전 73
는 것은 괜찮은데 우리조차 잘 먹이지 못하는 게, 그게 제일 힘들었죠.” 어떻게든 정부지원을 받지 않고 운영해보려 했지만 버티기 힘들었다. 쉼터를 찾아온 여성들의 고통의 무게야 어쩌지 못하더라도 그들에게 좋은 밥조차 줄 수 없다는 게 무엇보다 안타까웠다. 고명숙은 정부지 원을 받지 않겠다는 고집을 꺾었다. 정부의 위탁지정을 받기 위해 노력했고,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운영비 지원을 받기로 했다. 지금은 넉넉하진 않아도 쉼터 난방비 걱정 없이 겨울을 날 수 있을 정도의 지원을 받 고 있다. 그렇다고 고명숙이 목소리를 낮춘 것도 아니어서 지자체로부터 껄끄러운 존재가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주여성 쉼터에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거나 성폭력 피해를 당해 들어온 이주여성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부끄러운 한국사
이주여성 쉼터에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거 나 성폭력 피해를 당해 들어온 이주여성들
회의 얼굴을 비추고 있는데, 때로는 언어 가 서툴러서, 때로는 정보가 부족해서, 때 로는 이주민을 대하는 차별적인 사람들 때
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부
문에 이중, 삼중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끄러운 한국사회의 얼굴을 비추고 있다.
고명숙은 쉼터에서 이 여성들을 폭력으로 부터 보호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필요로
하는 가해자 처벌, 아이 양육, 자립에 필요한 일까지도 지원하고 있다.“때로는 내 능력을 넘어선다는 생 각이 들어요.” 라며 들려주는 이주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리 사회는 이주여성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나 “이 친구가 영덕지역에서 왔는데, 남편이 폭력적으로 소문났어. 동네 사람들이 이 사람 여기 살다가는 살인사건 나겠다, 데려가라 할 정도였어. 남편이 장애가 있어서 몸을 끌고 가면서도 때리고. 필리핀에서 대학까지 졸업했는데 여기 와서 정신분열로 병원에서 몇 달간 진료 받고 나왔어요. 이 사람이 애 밥 주는 것도 잊어버리고 다른 엄마들처럼 청소도 안하고 너무 더러울 정도고 약도 안 먹고 상도 뒤엎어 버리고… 그렇지만 나가라 할 수는 없잖아요.” 쉼터에 오는 여성들마다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는가를 유심히 살피던 고명숙이 드디어 이 여성의 장점 을 발견했다. 송년회 때 반칙을 써가며 게임에서 1등을 하고 노래를 부르길래“게임 정말 잘 한다” ,“노래 부르는 발음이 정말 좋다” 고 딱 두 마디 칭찬을 했다. 그런데 이 여성이 그 이튿날부터 달라지면서 스파게 티를 만들고 애 밥도 챙기고 청소도 하면서 변화되더란다. 삶을 놓아버릴 것 같던 이 여성은 결국, 남편과 이혼하고 필리핀에 돌아간 뒤에도 한국대사관을 두 번이나 오가며 위자료를 받아낼 정도로 회복되었다. 자존감을 잃었던 여성이 칭찬을 통해 변화되었던 그 때의 일이 고명숙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런 일 말고도 이주여성 쉼터에는 온갖 사연이 많다. 필리핀에서 온 한 여성은 남편이 운전하는 트럭 74
을 타고 가다가 갑자기 남편이 화가 난다며 주유소 앞에 차를 세우고 아이들과 이 여성에게 기름을 부었 다. 라이터를 찾는 남편을 주유소 사장이 경찰에 신고해 남편이 구속되었지만 재판과정에서 진술을 잘 못 해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갔다. 이를 본 고명숙이 재판장에게 영어 통역이 아니라 따갈로어 통역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해 결국 남편은 살인죄로 처벌받았다. 위와 같은 사례는 그나마 결과가 나은 편이다. 성폭력을 당한 이주여성이 경찰의 초동수사에서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해 결국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많았다. 성폭력 피해 사건에 남자 경 찰을 붙여 제대로 진술하지 못했다거나, 어눌하긴 해도 한국말을 한다는 이유로 통역을 붙이지 않았다거 나, 언어습관이 달라“예” 라고 해야 하는데“아니오” 로 진술하는 경우들로 인해 성폭력 피해를 인정받지 못한 사례들이 많았다. 우리사회가 이주여성의 처지를 조금만 고려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지원시스템을 갖추기만 했어도 이런 억울한 결과들은 없었을 것이다.
노동당에 이주민위원회가 있어야 한다 이주민들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최근 언론에도 이와 비슷한 기사들이 보도되고 있 다. 최근에는 안산의 이주민 단체‘지구인의 정류장’김이찬 소장이 농축산 이주민들의 현실을 동영상으 로 찍어 국회에서 처음으로 고발하기도 했다. 막사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거나, 돼지농장에서 일하다가 성 폭력을 당하거나, 가건물 같은 기숙사에서 자는 이주노동자를 사장이 일하라고 발로 툭툭 깨운다거나, 쌀 만 주고 반찬은 알아서 하라거나, 프레스에 손이 잘린 노동자에게“자기가 일하기 싫어서 집어넣었다” 고 말한다거나. 이주민이 있는 어느 곳에서라도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우리나라에는 이주노동자가 50%, 결혼 이주여성이 20% 정도 될 텐데 복지비용은 이주여성한테만 포 커스가 맞춰져 있어요. 이주노동자에게는 조금도 없어요. 그것도 한국인 남편과 가정을 이룰 때만 지원을 해요. 한국인 아이를 낳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출산율 높이려고 시작했던 국제결혼 정책이 아마 나중에 된통 맞을 거예요. 그 사회적 비용 엄청 들 거예요.” 그러나 정작 심각한 문제는 아직 드러나지조차 않았는지도 모른다. 국제결혼 가정에서 태어나 소위 ‘다문화’ 라는 이름의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의 문제다. 폭력 가정에서 세습되는 폭력, 발달지연, 차 별적인 학교문화와 왕따. 폭력과 차별을 경험하고 자란 이 아이들이 사회에 나올 무렵, 우리 사회는 어떤 방식으로 이 문제를 받아들일까. 부모들과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고 있는 이 아이들의 문제에 고명 숙은 걱정이 태산이다. 여성학 석사공부, 그거면 다 될 줄 알았는데 이주민 여성들을 지원하면서부터 사회복지학 공부를 다시 했고 이제는 아이들에게로 관심이 뻗어간다. 정부정책이 허술하니 문제는 끝도 없이 이어지고 그만큼 개 인들이 감당해야할 일도 많아지고 있다. “새누리당이 정말 잘한 거 한 가지는 이자스민을 내세운 거예요. 이자스민이 의원이 되고 나서부터 이 여성 진보정치 열전 75
“이 사람들의 목소리가 좀 더 나타난다면 더 다양한 정책들이 나오지 않을까요? 그래서 노동당에도 이주 민위원회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죠.” 주관련 단체들하고 간담회라든가 다 열어요. 아무래도 폭력 피해 여성에 더 관심을 갖는 거는 맞거든요. 진보진영은 어쨌든… 솔직히 진보진영뿐만 아니라, 이주민이 표가 안 되잖아요. 근데 그걸 해주는 건 정 당 밖에 없단 말이에요. 선거 때 저는 선거권 가지고 있는 이주민들한테 우리 당 몇 번이라고 얘기해요. 이 사람들의 목소리가 좀 더 나타난다면 더 다양한 정책들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걸 부문위원회에서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주민위원회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죠. 좀 더 그들의 힘을 모아줄 수 있는 데가 진보정당 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당을 보면 더 빨리 소진 돼 고명숙이 2002년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소외된 사람들의 문제를 제도적으로 바 꿔낼 수 있는 일은 단체보다는 당이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입당하기 전에 민주노동당 에서 성평등 교육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머리로는 이해하고 질문도 고난도의 질문을 하는 사람들 76
이 실천은 형편없어서,“내 너그 다시 볼 일 없다” 고 관심을 끊었다. 그랬던 고명숙이 다시 당을 선택한 이 유는 여전히 기대가 남아있어서다. 진보신당 대구시당 부위원장에 출마할 때도 당에 이주민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었고 전국위 원으로 활동할 때도‘다문화’ 라는 용어의 차별성을 지적하며‘다문
전국위원으로 활동할 때도‘다문화’ 라는 용어의
화’ 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제안하
차별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당이 이주민 문제에 더
기도 했다. 당이 이주민 문제에 더 많이 관심을 갖고 정책과 실천에서 힘을 쏟아주기를 기대했다.
많이 관심을 갖고 정책과 실천에서 힘을 쏟아주기 를 기대했다. 그랬던 고명숙이 요즘 상심이 크다.
그랬던 고명숙이 요즘 상심이 크다. 소수정당이라 하더라도 이주민의 목소리, 더 소외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는 게 진보정당 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당의 모습은 그것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길 바랐 던 당이 내부갈등에 골몰하는 당, 사회적 관심을 놓아버린 당이 되어버렸고, 그런 실망이 고명숙의 마음 에 상처가 되었다. 이주여성들을 만나는 일만으로도 에너지 소진이 큰데 당을 보면 소진이 더 빨리 되는 것 같아 그마저 관심을 끄고 싶은 게 요즘의 솔직한 심정이다. “지방선거 때, 우리는 지역운동을 하고 거기서 선거에 나가야 된다고 생각했잖아요. 그렇게 후보로 나 가야 되고 당원들의 마음을 얻어야 된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는 거죠. 꽂으면 되고, 공보물에 당 이름 올리는 게 당 운동이 아니잖아요. 지역운동하면서 선거에 나와야 되는 거지. 그래서 계속 활동할 거면 나온나, 근데 아닌 거예요. 정당이 뭐지 도대체? 뭐를 위한 수단이지? 당선도 아니면서 어떻게든 정 당 활동이 지역 안에서 녹아나지 못하는 모습들, 정당을 바라보는 게 다른 거 같아요. 선거 끝나면 끝. (그 렇게 하지 않는 것이) 진보정당과 다른 정당의 다름이라고 생각했는데…”
고명숙의 고민은 그 자리에 있던 우리 모두를 짓눌렀다. 그것은 고명숙의 삶, 그의 정치와 활동의 문제 이기도 했지만, 당에 기대어 살았던 우리 모두의 가장 큰 고민이기도 한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참을 당에 대한 서로의 고민을 쏟아내고 그래도 힘내야 하지 않겠느냐며 격려성 수다를 떨어댈 수밖에 없었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여자 인터뷰 말미에서나 고명숙의 사는 얘기를 들었다. 남편 얘기, 육아 얘기, 중학교 1학년인 딸 이야기, 시 어머니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쉴 틈 없이“복도 많어” 를 복창하였다. “딸이 하나가 있는데 지금 중학교 1학년이에요. 아이는 제가 키운 건 아니에요. 아빠가 키웠어요. 결혼 하고 바로 아이가 생겼는데, 둘이 약속하기를 양가집 어디에도 손 벌리지 말자. 두 사람 다 활동할 수 없고 3년씩 로테이션으로 활동하기로 했는데 애가 생기니까 안되더라구요. 남편이 계속 돈을 벌고 나는 활동 여성 진보정치 열전 77
하고. 육아는 남편이 했죠. 어딜 가더라도 애 를 데리고 간다던가 어린이집에서 애를 찾는 역할을 남편이 했어요. 아이가 악몽을 꿔도 엄 마 안 찾고 아빠를 찾더라구요.” 딱 한 번 연애해서 한 남자를 만났는데 하 필이면 그 남자가 평등의식이 높아, 게다가 그 남편이 경남 합천에서 누나 셋에 외동아들로 오냐오냐 자랐지만 가부장적인 분위기와 거리 가 멀어, 무엇보다도 시어머니는 선거 때 단 한 번도 1번을 안 찍어, 그뿐만 아니라 진보정 당을 찍어, 그래서 선거 때만 되면 동네 할머 니 친구들에게 왕따가 되는 분이야. 이건 뭐, 전생에 나라를 구한 여자의 덕력이 아니고서 야 가능한 일이 아닌 듯 싶다. “결혼하고 첫 명절에, 어머니하고 비가 오 는 추석 전날 처마 밑에서 송편을 빚는데,‘야 야 니 남편 너무 믿지 마래이. 마음 다 주지 마 래이. 마음 다친데이’ 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
오랜 세월, 고통 받고 소외 받는 이주여성 들의 친구이길 자처하며 걸어온 길이 진보
소리를 들으니까 시어머니가 같은 여자로 느
정치로 이어지고, 다시 또 정치가 이주여
껴지더라구요. 며느리보다는 같은 여자로 대
성들의 삶을 바꾸는 힘이 되기를 누구보다
해주시는 거 같아서 좋았어요. 저는 시어머니,
간절히 바라는 여자, 고명숙.
시누이 스트레스 없어요. 그래서 활동할 수 있 는 거 같아요.” 한국사회에서 사회활동하는 여성 중 남편과 시댁의 조력을 받으며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 까. 조건도 실력이라는데, 그러고 보면 고명숙은 안팎으로 두루 실력을 갖춘 몇 안 되는 여성인 셈이다. 그런 고명숙이 힘을 냈으면 좋겠다. 이주여성들에게 욕조차 스스럼없이 내지르며 그들의 친구로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또 몇이나 되겠는가. 오랜 세월, 고통받고 소외받는 이주여성들의 친구이길 자처하며 걸 어온 길이 진보정치로 이어지고, 다시 또 정치가 이주여성들의 삶을 바꾸는 힘이 되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는 여자 고명숙의 파이팅이 지역과 정치에서 활짝 피는 진보정치의 봄날이 진정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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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르포
콜트콜텍을 읽는 열두 개의 시선 ⑩
기타가 맺어준 아름다운 인연2⃞ : 문화가 노동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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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르포
콜트콜텍을 읽는 열두 개의 시선⑩
기타가 맺어준 아름다운 인연
2⃞
: 문화가 노동을 만나다 이선옥 기록 노동자
희망버스가 한창일 때“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희망버스 신드롬을 만들 동안 노동운동은 뭘 했느냐” 고,“정규직 노조는 제 이익에만 관심 있는 귀족들” 이라고 비난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에게 달려가면서 시작된 희망버스는 쌍용자동차를 향해, 유성 기업을 향해, 스타케미칼을 향해 지금도 달리고 있다. 공교롭게도 희망버스가 달려간 노동 자들은 모두 정규직이다. 정규직들의 삶이 바닥으로 떨어진 건 해고된 후 금방이었다. 수십 년의 세월동안‘귀족’ 으로 살았던 노동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삶을 지탱하던 건 쉽게 해고되지 않는다는 안정성, 그게 다였다. 그게 무너지고 나니 집 한 칸, 얼마간 모은 저축은 몇 달 만에 사라졌고, 보통 월급쟁이들처럼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살았던 이들에게 고임금 이란 낙인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도 보여줬다. 그런데 이런 삶을 응원하러 온 희망버스 탑승객들은 곧잘 정규직을 욕했다.“낡은 문화 에 멈춰 있는 노동운동, 연대하지 않는 정규직, 투쟁하는 노동자를 외면하는 민주노총과 금 속노조” 라는 비판은 노동운동을 욕하는 3종 세트였다. 크레인에 오른 김진숙 지도위원과 진보라 불리는 지식인들이 이런 비판에 목소리를 보태면서 조직 노동운동은 죄인이 되었 다. 조끼를 벗고 순수 시민인 척 했고, 깃발 들기를 주저했다. 발랄하지 못하고 구리다는 핀 잔을 듣는 투쟁가요 대신 트로트를 부르며 춤추는‘시민’ 들의 공연을 구경했다. 한진중공업과 쌍용차 같은 정규직 노동자들에 연대하러 온 사람들은 그 앞에서‘정규직 귀족노조’ 를 욕했다. 민주노총이 정규직 중심의 이기적인 투쟁만 하고 싸우는 노동자들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유난히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을 비난하는 사람이 있어서“당신이 지 금 연대하고 있는 이 사람들이 바로 그 정규직 노조” 라고 말하니 머쓱해하기도 했다. 쌍용 차도 한진중공업도 제 사업장의 비정규직들이 해고될 때 함께 싸우지 않았다. 그들이 욕하 는‘이기주의에 빠진 귀족 정규직’ 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들을 위해 눈물 흘리고 연대를 호 80
6월20일 강남 삼성사옥 앞 전국노동자대회(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소하는 사람들은 곧잘 자신의 욕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른 채 녹음기처럼 정규직을 욕한다. 누구를 원 망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허술한 욕을 해도 문제없이 먹히는 상황을 만든 건 노동운 동이니까.
문화와 노동의 벽을 허물다 내가 만난 문화노동자들도 조직 노동운동과 정규직 이기주의를 많이 비난한다(문화노동자란 노동운동에 서 문화활동가라 불리는 사람들과 노동운동에 우호적인 문화예술인을 말한다). 노동운동에서 문화활동가들은 억
울한 기억이 많다. 노동중심주의는 문화를 투쟁의 액세서리쯤으로 여긴다. 예술이 자신의 노동인 사람들 인데 노동운동은 이들을 노동자로 여기지 않는다. 이를테면 최저임금 인상 집회 무대에 선 민중가수의 출 연료는 최저임금에 못 미친다. 때로는 출연료 없이 무대에 서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한다. 노동자로서 이 들의 삶에 대해 조직 노동운동은 관심이 없다. 투쟁의 흥을 돋우고 노동운동의 승리를 위해 당연히 복무 해야 할 활동가로 여긴다. 이들이 무얼 먹고 사는지, 이들이 노동자인지 아닌지, 이들의 기본생활을 보장 할 적정 개런티는 얼마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유명 연예인에게는 큰돈을 쓰지만 이들에게는 최저 수준 을 밑도는 개런티를 주면서도 깎으려 한다. 정작 조직 노동운동이 챙겨야 할 저임금 비정규 노동자들인데 말이다. 민중가수, 몸짓패, 문화활동가들 대부분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직 노동운동을 바라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노동르포 81
이들과 달리 조직 노동운동과 아직 많이 가깝지 않은 뮤지션, 연극인, 문화예술인들은 보통의 사람들 이 노동운동에 가진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빨갱이, 강성, 좌파, 반자본 운동이라는 이미지는 이들이 선뜻 노동운동에 다가오지 못하는 장벽이다. 같은 사회운동이지만 환경운동단체나 여성운동단체가 주관 하는 무대에 서는 건 가능해도 노동자들의 행사에는 선뜻 서지 못한다. 무엇보다 이들이 말하는‘대의’속 에 자신은 없다고 생각한다. 노조를 가진 조직 중심의 권리 찾기는‘그들만의 밥그릇 지키기’ 로 비친다. 노동운동이 모든 노동자들의 보편적인 권리를 위해 싸우는 상황은 이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 이 런 현실은 문화활동가와 문화예술인 모두 노동운동에 대해 좋게 말할 수 없는 벽을 만든다. 그 벽을 허무 는 과정을 콜트콜텍 투쟁에서 보았고 나는 그게 기뻤다. 콜트콜텍 투쟁은 노동운동과 문화운동이 동등하게 만나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문화가 노동의 하 위가 되지 않는 투쟁, 누가 누구를 위해 복무하지 않는 수평의 관계가 좋다. 노동현장을 기록하다 보면 내 가 쓰고 싶어 취재하는 글도 있고 요청을
콜트콜텍 투쟁은 노동운동과 문화운동이 동등
받아 쓰는 글도 있다. 가끔 터무니없는 원
하게 만나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문화가
고료를 부르는 곳도 있고, 너는 글을 써서
노동의 하위가 되지 않는 투쟁, 누가 누구를 위해 복무하지 않는 수평의 관계가 좋다.
이 투쟁에 복무하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 람도 있다. 그런 글은 쓰지 않는다. 그런 마음이지만 콜트콜텍의 이야기는 몇 차례 원고료 없이 기고를 했다. 이 싸움에 문화
노동자로 나도 무언가 역할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른 투쟁은 대부분 머릿수 하나 보태는 심정으로 가지만 여기는 내 노동으로 함께 투쟁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동료 문화노동자들이 이 싸움에 끈질기게 연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리 되었다. 이원재 활동가의 말처럼 이들이 내 삶에 들어왔다. 내 삶 안으로 들어온 이상 이 싸움은 내 싸움이기도 하다. 그것이 동등한 연대의 출발이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하고 가깝게 지내도 장기투쟁 노동자들의 삶이란 상상할 수 없는 것이고 10분 의 1도 모르는 것 같아요. 수 년 동안 싸우면서 해외도 가고 많은 걸 같이 했지만 사람들이 아무리 가까워 도 누가 대신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니까. 너무 많이 고통스럽고 아파하니까 함부로 알 수 있는 게 아니 더라고요. 그 전엔 머리로 알았다면 이젠 가슴으로 알게 됐죠. 그간 연대했던 다른 노동자들과는 달리 형 들이 내 삶에 깊게 들어왔어요.”
‘내 싸움’ 이라는 경계와 한계 아직 이 싸움의 단순 관찰자였던 때 나는 문화노동자들과 노조원들의 관계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문화 예술 쪽 감수성을 가질 기회가 없었던 노조원들이 혹시 무시당하지 않을까, 노동운동에 이해가 부족한 예 82
술가들이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벌이는 건 아닐까,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이들이 과연 조직 운동과 잘 어 울릴까 걱정했다. 농성장의 규율을 지키고, 의사결정 구조를 거치는 걸 경직된 조직운동 문화라고 여기지 는 않을지, 한 사람이라도 아쉬운 처지의 노동자들이 불만이 있어도 제대로 말도 못하는 건 아닌지 우려 도 했다. 나는 노조원들이 연대하러 온 문화예술인들보다 약자라고 보았다. 그들은 언제나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관계에서는 더 많이 필요한 사람이 약자가 된다. 특히 조직 노동운동이 버거워하 는 상황에 놓인 장기투쟁 해고자들은 스스로 찾아 온 문화노동자들이 절실하게 필요하고 반가웠을 것이 다. 기록자로 함께 다녀온 일본 원정투쟁에서도 모든 상황을 조정하는 역할은 문화활동가들이 맡아 했다. 원정단은 어떻게 꾸리고, 노조원은 누가 가고, 현지에서 안내는 누가 하고, 어디를 방문할 건지 정하고, 노조원 중 누가 어떤 발언을 할지 모든 결정에서 노조원은 주도하기보다 배치되었다. 현지에 가서도 마찬 가지였다. 이게 과연 기능적인 역할 분담의 문제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나는 노동자와 문화활동가 사이에 권력관계가 있는 것 같아 불편하다고 김성균 다큐감독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그 느낌은 문화노동자들의 연대가 깊어질수록 계속됐다. 문화라는 코드의 투쟁으로 갔을 때 이를 주도하는 문화노동자들과 문화예 술에 익숙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갈등을 겪을 수 있고, 또 문화노동자들이 내는 의견을 마지못해 따라가는 식으로 배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노동자들이 정말 끝내고 싶은 순간이 왔을 때“이대로 끝낼 수 없다” 는 강경한 주장 때문에 끝내지 못하는 상황이 올까 두려웠다.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의 역 할은 어디까지일까, 내 싸움이라는 경계는 또 어디까지인가.
“형들이 수동화 되는 것에 대한 문제는 계속 있어요. 전통적인 공장 노동자들이고 수동적일 수밖에 없 는 면이 있어서… 늘 주체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게 딜레마에요. 권력관계에 대한 문제는 우리도 많이 논의를 해요. 조직운동 안에서 마초성을 가진 노동자들과 문화예술인들은 서로 정서나 생활방식이 다른 문제가 있어요. 콜트콜텍은 수평적인 네트워크 형태로 개인들의 참여를 자유롭게 열어놨어요. 자율 적인 예술가들이 많이 오다 보니 서로가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친구들 같아요. 살아가는 과정에 문 화예술이라는 친구가 생긴 거죠. 연극이나 밴드도 다 형들이 선택했다고 생각해요. 밴드도 5년 정도 걸려 서 만들었는데 여러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형들이 밴드를 해보자고 했어요. 물론 예술가들이 이 작업을 도 구적으로 봤을 수도 있지만, 거꾸로 형들이 문화예술을 도구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어요.” (이원재 문화연대 활동가)
원재 씨는 형들이 끝내자고 하면 언제든 끝낸다고 처음부터 얘기했다. 투쟁을 접는 게 더 행복한 상황 이라면 끝내는 게 당연하다. 그가 콜트콜텍 투쟁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노동운동이 무엇을 잃어버리 고 있는지 돌아보고 싶어서다. 그런 마음에서 종종 조직노동운동을 비판하기도 한다. 나는 그게 거슬려서 또 다른 문화활동가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노동르포 83
콜트콜텍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꿈의 공장 김성균 감독 (사진 : 콜트콜텍 공동행동)
당신들이 떠나도 조직 노동운동은 남는다. 노조원들의 삶을 끝까지 책임지는 건 결국 조직 노동운동이 다. 이들이 금속노조 소속 조합원으로 있는 한 조직은 그래야 할 숙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문화예술인 들은 아니지 않느냐, 어떻게 그 삶을 책임질 수 있느냐. 그녀도 그게 고민이라고 했다. 콜트콜텍은 문화활동가들이 있으니 금속노조가 무관심해질까봐 걱정된 다는 것이다. 그녀는 금속노조가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보다 그게 해고자들에게 불리한 결과로 돌아오는 게 걱정이었다. 예를 들어 다른 장기투쟁 사업장에 문화제를 조직하는 건 당연한데 콜트콜텍은 문화활동 가들이 붙어있으니 알아서 할 거라 믿고 배제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열심히 할수록 조직 노동운동과 멀어지고 결국 해고자들만 고립되는 상황이 올까봐 쓴 소리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원재 씨의 고민도 비 슷했다.
“기존의 노동운동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여러 자리에서 콜트와 콜텍이 속한 금속 인천과 대 전충청지부에게 고맙다고 말해요. 금속지부의 투쟁 담당자들 정말 고맙죠. 문화연대와 다르게 재원을 투 자하고 큰 역할을 해주고 있어요. 다만 제가 비판하는 건 장기투쟁 노동자들과 노동운동이 행복해지는 것 에 대해 전망이 없는 부분이에요. 책임 있는 대안이 있어야죠. 노조를 통해 더 행복해져야 하는데, 장기투 쟁 노동자들과 더 같이해야 할 게 많아야 하는데 그게 잘 안돼요. 2천 일 넘는 사업장은 노동운동에서 가 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투쟁하는 노동자가 노조의 주인이라고 하잖아요. 삶이 파괴된 이 사람들을 안고 가는 게 노동운동이 미래에 줄 의제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문제제기를 하면 별 반응이 없어요.” 84
조직 노동운동은 이 쓴 소리가 달갑지 않다. 조직은 굴러가는 질서가 있고 그 질서 안에서 해야 할 일을 안 한 건 없다. 생계비를 지원하고, 연대세력을 조직하고, 법률가를 동원하고, 원정투쟁을 지원하는 일 모 두 해왔다. 그래도 언제나 비판만 남는다. 2천일 넘는 사업장이 노동운동에서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나 머지 14만 명 조직원의 일상을 책임져야 하는 책임만도 버거워서다. 더 잘 하지 못한다는 건 인정해도 뭐 한 게 있느냐는 비판은 그래서 제대로 와 닿지 않는다. 더구나 조직 밖의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한다고 느낄 때는 반감이 먼저 든다. 비판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비판했다는 안 좋은 기억만 남는다. 희망버스의 승객들이, 진보논객들이, 문화노동자들이 조직노동운동에 대해 하는 비판도 그런 공허함이 불편하게 남아있다. 당신들이 한 게 뭐 있느냐는 비판으로 뭘 바꿀 수 있을까. 그러는 당신들은 무얼 했냐는 감정적인 반발만을 불러오는 거 아 닌가. 그게 결국 우리 모두가 함께 가는 옳은 방법인가. 이 투쟁이 왜 중요하고, 어떤 소중한 의미가 있는 지, 조직운동이 미처 느끼지 못하고 지나가는 걸 얘기해주고 설득하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벽을 허무는 구체적인 제안 콜트콜텍 투쟁에서 나는 그 작은 시작을 보고 있다. 우선 노조원들과 문화활동가들이 일상을 교류하고 있다. 이건 서로 동등해지는데 중요한 일이다. 한 활동가는 농성장을‘노동자의 집’ 이라고 불렀다. 투쟁뿐 아니라 삶의 공간으로 공장을 주목하는 그 말이 신선했다. 공장은 사장의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삶을 꾸 려나가는 모든 사람의 것이고, 그래서 노동자의 집이라고. 그 노동자에는 자신과 같은 활동가와 문화노동 자들도 모두 포함된다고 했다.
클럽 빵에서 열린 수요문화제에 함께한 뮤지션 (사진 : 콜트콜텍 공동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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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 씨는 문화연대라는 조직의 결정과 관계없이 활동가로서 이 싸움을 끝까지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가 원하는 건 진짜 이기는 거다. 장기투쟁은 명예와 정치적 올바름과 사회정의의 문제가 다 들어있기 때문에 힘들다는 걸 안다. 기륭전자도 승리라고 하지만 공장으로 못 돌아갔다. 콜트콜텍의 형들이 이 싸 움을 진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뭘까 많이 생각했다. 결론은 박영호 사장이랑 일할 때보다 행복해지는 길 뿐이다. 행복한 투쟁, 조금 다른 투쟁을 만들어보고 싶다. 시간이 지난 뒤 형들은 자립적인 공장을 만들 수 도 있고, 카페를 운영할 수도 있다. 연극을 하거나 밴드활동을 하고, 시를 쓸 수도 있다. 어떤 노동을 하건 여러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엮인 관계와 경험, 경제적인 문제부터 생계 문제까지 이들이 행복해지는 게 이 싸움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운동이 말하는 승리는 간단하다. 원직복직. 다른 목표를 세우는 순간 조직 노동운동은 자기의 책 임을 저버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콜트콜텍 싸움을 함께 하고 있는 문화노동자들은 그것만이 승리가 아 닐 수 있다고 조심스레 제기한다. 농성장이 털리고 재판에서 번번이 지면서도 이들은‘우리는 지지 않을 것’ 이라고 말한다. 발상을 다르게 하면 얼마든 지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재 씨는 구체적인 제안들 을 했다.
“2천 일 넘게 싸우는 노동자들이 많지 않아요. 우리가 기본소득을 주장하는데 적극적으로 먼저 적용해 보는 거죠. 계산해보니 가능해요. 지금 장기투쟁 사업장 지원 규정은 보수적이라고 봐요. 2천 일 투쟁하는 사업장 정도는 조직 노동운동이 책임진다는 확신을 심어주면 노동운동에 대한 신뢰도 회복할 수 있지 않 을까요. 또 발상을 달리해서 이들에게 가게를 차려줄 수도 있어요. 금속노조가 가진 자원은 엄청난 거예요. 스 토리텔링을 만들고 기획을 하면 조직운동 차원에서 가능한 얘기라고 생각해요. 저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처럼 조직노동운동이 문화적인 고민이 없는 게 아쉬워요. 사무실 이사할 때 문화예술 노동자들이 함께 하면 공간부터 달라져요. 민중가수들이 노동운동에 기여한 걸 생각하면 평소 에 이들 음반 작업을 지원해줄 의무도 있어요. 정말 불가능한 일인지 그런 실험을 해보는 논의의 장을 열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필요할 때 콜하고 그 일 끝나면 끝인 관계로 남아 있어요. 이걸 깨야죠.”
이 제안을 조직 노동운동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하다. 투쟁성과 급진성, 연대성이라는 노동운동의 가치를 제대로 지키는 싸움을 해보고 싶다는 원재 씨의 바람처럼, 연대하기 위해 변화하고, 승리하기 위 해 성찰하는 움직임이 꼭 결실을 맺었으면 좋겠다. 문화운동과 노동운동이 동등하게 공존하는 이 곳, 콜 트콜텍 현장이라면 이런 실험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이뤄질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작 은 바람도 조심스레 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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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포럼
밥그릇 싸움은 가라 정치관계법 개혁 시작해야 헌재,선거구 재획정 결정 내려
윤현식 정책위원회 의장
지난 10월 30일 헌법재판소는 현행 공직선거법 중 국회의원 선거의 지역구 획정에 관하 여 헌법 불합치1) 결정을 선고했다(2012헌마190, 192, 211, 325, 2013헌마781, 2014헌마53(병 합)). 공직선거법 제25조 제2항은 국회의원 지역구의 명칭과 그 구역을 별표로 구분하여 규
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 요지는 이 별표에 따른 지역구의 획정이 인구비례 3:1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데, 이것이 투 표의 비례성을 현저히 해치고 있 다는 것이다. 즉 인구비례 3:1로 되어 있는 현행 선거구 획정의 인 구기준은 위헌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지역구의 인구
헌법재판소는 인구비례 3:1로 되어 있는 현행 선거구 획정의 인구기준은 투표의 비례성을 현저히 해치고 있다며 헌법 불 합치 결정을 선고했다.
가 (나)지역구 인구의 3배가 된다 고 가정하자. 이때 (가)지역구에서 당선된 의원의 대표성은 (나)지역구 당선 의원의 3분의 1 밖에 되지 않는 효과가 발생한다. 표의 등가성이 훼손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현행 기준이 선거에서의 평등원칙을 위배한다고 판단했다. 유권자의 한 표는 마땅히 동일
1) 헌법재판소는 법률의 위헌성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합헌결정과 위헌결정 외에 한정위헌, 한정합헌, 헌법불합치 등 변형결정의 주문을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헌법불합치는 당장의 위헌결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혼란을 막기 위 해 일정기간 유예기간을 두고 해당 법률조항을 기한까지 개정하도록 주문하는 결정이다. 해당 법률의 위헌성은 분명히 인정하되 국회가 해당 법률을 개정하기 전까지 그 형식은 존속하게 된다. 국가기관은 해당 법률의 개정 이 있기 전에 그 적용을 유보해야 하고 이후 개정된 신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 이때 해당 법률의 불합치상태 를 해소하기 위한 방식의 선택은 입법권자의 재량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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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원리를 재확인한 것이다. 표 가치의 평등은 국민주권의 원리나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만 할 사항이다. 인구의 균형, 행정구역의 편차, 지세, 교통사정, 생활권, 역사적·전통적 일체감 등으로 인하여 비례평등을 위한 1:1의 원칙을 관철하기 어려운 현실적 고 충이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밝히듯“투표가치의 평등을 실현하여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토양을 마 련하는 것이 보다 중요” 하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 일부 지역에 대해서만 위헌성 여부를 판단할 수 없고 현행 선거구 획정 체계 전반이 위헌일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했다. 헌법재판소는“선거구 구역표는 전체가 불 가분의 일체를 이루는 것으로서 어느 한 부분에 위헌적인 요소가 있다면 선거구 구역표 전체가 위헌의 하 자를 갖는 것” 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현행 선거구 구역표로 획정된 현재의 지역구 편재는 전면적인 재 정리가 필요하게 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인구비례 최대 2:1을 기준으로 선거구 획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결정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2015년 12월 31일까지 공직선거법이 개정되어야만 한다.
인구비례 최대 2:1 기준으로 선거구 획정 바뀐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갑작스럽게 나온 것이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13년 전인 2001년의 결 정(2001.10.25. 2000헌마92)에서 지속적인 제도개선을 통해 선거구간 인구편차가 2배 이상을 넘지 않도록 조정할 것을 주문하였다. 또한 향후 유사한 사례에 있어서는 인구비례 2:1 또는 그 미만의 기준에 따라 위
헌법재판소의 선거구 재획정 판결 뉴스 (사진 : SBS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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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여부가 판단될 것임을 예고한 바 있다. 무려 13년 전의 경고가 이번에 현실이 된 데에는 그동안 제도정 비에 관심을 두지 않은 국회에 책임이 있다. 헌재의 결정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표의 등가성이 선거제도의 기본원칙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국회가 합리적인 수준에서 공직선거법의 개정을 추진했어야 마땅 하다. 그러나 그동안 국회는 투표가치의 평등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1987년 현행 헌 법체제 이래 지금까지 시대적 상황과 정치적 환경 및 국민들의 인식 변화 등에 따라 의원정수 및 선출 방 식, 선거구 조정 등이 이루어져야 했음에도 이를 게을리 했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이 국회의 게으름 과 무능에 대한 신랄한 질책인 이유가 여기 있다.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부터 299명으로 한정되었던 의원정수는 2012년 총선에서 단 1명이 늘어난 300명으로 고정되어 있다. 전체 인구가 4천만 명 수준일 때에 정해졌던 의원정수가 5천만 명이 넘는 지금 까지 그대로인 것이다.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었다고는 하나 1988년 당시 전국구를 75석 뽑던 것 에 비해 현행 비례대표는 54명을 선출함으로써 오히려 줄어들었다. 국회의원의 지역 대표성을 이유로 특 정지역의 의사가 과잉대표되는 것이 합리화될 수도 없다. 지방자치제도 도입 초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지방자치의 수준이 높아진 현실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교통·통신 등 기술이 발전하고 도농 간 교류가 확대된 지금은, 낙후했던 과거만을 생각하고 지역 대표성을 운운할 근거는 사라졌다. 특 히 중요한 것은 국회의원의 지역 대표성은 국가 전체의 이익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본연의 임무 범위와 합 치될 때만 당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의미들을 검토한다면 헌법재판소가 밝힌 기준은 표 가치의 불균등함을 개선하는 합리적 기준 이 되기에는 아직도 보수적인 수준이라고 판 단된다. 헌법재판소가 설정한 이 기준은 선거 구별 인구편차가 0에 가깝도록 해야 한다는 미국 하원선거의 기준이나 원칙적으로 상하 편차 15%를 규정하는 독일에 비하면 아직도 매우 부족하다. 헌법재판소의 기준은 일본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과도하다거나 향후 막대한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고 우려하 는 것은 현실에 대한 판단을 결여한 것일 뿐이다.
1994년에 확인한 2:1 기준을 20년 후 한국에 적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과도하다거나 향후 막대한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판단을 결여한 것일 뿐이다.
헌재 결정에 요동치는 지역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표의 등가성을 지키라는 원론적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그 파문은 요란하다. 선거 구 획정 대상이 된 지역구 의원들의 경우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특히 보수양당의 패권이 작동 하는 영호남의 지역구 의원들은 사태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역별로 선거구 획정을 다시 할 정책포럼 89
경우 현재의 기준에 따르면 지역구 의석은 서울 1, 경기 16, 인천 5석이 늘어나게 된다. 대전, 충남, 충북을 합친 충청권은 변동이 없다. 이에 반해 영남은 4석이 줄어들고 호남은 4~5석이 줄어들게 된다. 강원도 일 부 줄어들게 된다. 지역의 맹주를 자처하며 한반도 남녘의 동서를 분할하고 있는 새누리와 새정연은 골치 아픈 계산을 하 게 되었다. 어차피 빗자루를 꽂아도 당의 이름만 붙여놓으면 당선된다는 영호남이지만 내막을 들여다보 면 당내 인사들의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한다. 예를 들어 부산 영도구와 인접한 서구의 지역구 재획정이 이루어지면 둘 중 한 선거구는 사라지게 된다. 영도구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지역구이고 서구는 친박 계 유기준 의원의 지역구다. 수도권 지역의 의석이 대폭 늘어나는 것도 보수양당에게는 골머리를 싸매게 하는 부분이다. 이렇게 되면 선거를 치루는 과정이 보다 복잡다단해지게 된다. 보수양당이 할거하는 영호 남과는 달리 수도권에서는‘우리가 남이가’ 라는 정서만으로 선거에서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쉽게 이 야기하자면 앉아서 거저먹는 것만으로도 본전치기를 할 수 있었던 봄날이 가버리는 거다. 이처럼 골 아픈 상황을 피하면서 동시에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보수양당에게는 급선무가 되었다. 여기에는 전제가 있는데 바로 현재의 의석수를 재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도개선을 한다는 점이다. 즉 지역구 246석, 비례 54석, 총 300석 의석에 변동을 주지 않은 채 지역구 획정을 한다 는 것이다. 이 경우 보수양당의 입장에서는 전
보수양당의 입장에서는 전체적으로 현재와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내부적으로 후보들 간 및 지역 간의 알력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체적으로 현재와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그러 나 문제는 내부적으로 후보들 간 및 지역 간의 알력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앞서 보았듯이 영호 남과 강원의 의석이 줄어들게 될 경우 이 지역 을 배경으로 하는 보수양당의 정치인들이 감수 해야 할 손실은 말 그대로 정계은퇴가 될 수도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확인한 인구비례 2:1로 조정해야 할 각 선거구를 보면 인구수 초과 선거구는 37개, 미달 선거구는 25개다. 인구 초과 선거구는 쪼개고 미달 선거구는 합쳐 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미달 선거구를 지역구로 하는 의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소선거구 단순다수 대표제를 근간으로 하는 현행 제도 하에서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비례의석을 대폭 줄이고 지역구 의석을 늘리는 것이다. 노동당을 비롯한 군소정당들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과거 민주노동당이 헌법소원을 제기함으로써 만들어냈던 정당명부비례대표제는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하고, 군소정당의 원내진출의 길은 더욱 어려 워지게 된다. 이제는 보수양당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제도 전반에 대한 사회적 문제로 전환된다. 보 수양당의 입장에서 굳이 문제를 불거지게 만들어 대중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이유는 없다. 그래서 제기되 는 대안들이 중대선거구제, 석패율제, 도농복합선거구제와 같은 제도들이다. 하지만 이들 제도 역시 노동 당 등 군소정당들에게 유리할 것이 없다. 중대선거구제는 현재 지방자치선거에 도입되어 일부지역에서 90
시행하고 있으나 지역의 맹주노릇을 하는 정당 소속 당선자들의 숫자만 불려주는 데 그치고 있다. 도농복 합선거구제는 무엇보다도 선거구 획정 자체가 어려워 도입될 가능성도 적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보 수양당에게 손해가 될 여지도 거의 없다. 석패율제는 일본에서 시행 중인 제도로서 지역구에서 낙마한 후 보를 비례로 부활시키는 제도이다. 마찬가지로 보수정당의 당선자를 늘리는데 도움은 될 수 있을지 몰라 도 군소정당들에게는 동기부여를 하기 어려운 제도다.
국회의원정수, 비례대표 획기적으로 늘려야 하는데 현행 공직선거법의 한계 안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현실화하기 위해 가장 확실하게 제안할 수 있는 대안은 국회의원정수의 획기적인 증원이다. 단순계산만으로도 인구 4천만에 설정된 300명 의원정수를 5 천만에 맞게 375명으로 늘릴 수 있다. 또는 인구 10만 명당 1명의 수준으로 의원을 설계해 500명으로 늘 리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어떤 방식으로든 국회의원의 정수가 상당수 늘어나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기계적으로 의원정수를 늘리거나 지역구 조정을 하는 것만으로 표의 등가성을 높일 수는 없다. 헌법재판 소의 결정에 따를 경우 현행 제도 하에서 서울·경기·인천의 수도권에서만 22석이 늘어나게 되는데, 이 러한 결과는 수도권 지역이 과잉대표됨으로써 지역 대표성의 평등을 깨게 된다. 따라서 헌법재판소의 결 정이 목적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는 데 현행 공직선거법의 구조는 근본적인 한계로 작용한다. 무엇보다도 우선 검토해야 할 것은 현행‘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국회의원 선출방식을 유지할 것 인가이다. 무수한 사표가 발생하고 표의 등가성을 현저하게 해치며 승자독식의 폐해를 보이고 있는 현행 제도는 그 자체를 손질해야만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바람직한 방식이 비례대표의 획기적인 증원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 요청이 있었다. 지역구 의석을 유지하면서 비례대표를 확대하고 표의 등가성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방식이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간 것이 바로 전면비례대표제의 도입이다. 노동당은 이 미 2012년 총선 공약을 통해‘광역단위 전면비례대표제’ 를 제안한 바 있다. 우선 전국을 대권역으로 나누 고 각 권역별 최소의석을 우선 할당한 후 인구비례에 따라 나머지 의석을 배분한다. 정당은 권역별로 각 당의 후보명부를 제출하고 유권자는 지지정당과 해당 정당명부 내 선호 후보자 1인을 선택하게 한다. 정 당득표율로 당선자 수를 정하고 명부 내 각 후보의 득표율 순위로 당선자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 경우 현 재 논란이 되고 있는 지역 대표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또한 비례대표의 강화를 통해 국회의원의 직 능 대표성 또한 강화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당의 제안이 제도정치권 안에 수용될 가능성이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다. 보수양당 체제로 형성된 기득권을 마음껏 향유하고 있는 새누리와 새정연이 비례대표의 대폭적인 확대 또는 전면비례대표 제를 수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보수양당은 군소정당의 원내진출을 막기 위한 진입장벽을 더 높이 쌓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예컨대 19대 국회에 올라와 있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중에는 대통령선거 정책포럼 91
보수양당은 군소정당의 원내진출을 막기
방송토론회 참가 자격을 국회의원 10인 이상
위한 진입장벽을 더 높이 쌓는 데 혈안이
소속 정당, 직전 선거에서 10% 이상 득표율
되어 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리그를 결 코 개방할 생각이 없다.
을 가진 정당, 선거기간 개시 전 여론 지지율 10% 이상인 후보자에게만 주는 법안이 올라 와 있을 정도다. 이 외에도 군소정당의 정치 활동과 선거운동에 제약을 주게 될 각종 정
치관계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다. 다 들여다 볼 것도 없이, 보수양당이 추구하는 정계구획의 상이 무엇 인지는 설명의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명확하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리그를 개방할 생각이 결코 없다.
참정권 회복 운동, 정치관계법 개정 의제화 해야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첫째, 시민사회가 당사자 운동으로서 참정권 회복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둘 째, 군소정당 특히 진보정당들과 녹색당이 결합해 정치관계법 개혁 의제를 공통의 사업으로 진행할 필요 가 있다. 앞의 것은 보수양당이 현실적인 위기감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여론의 압력이 라는 점에 착안한다. 운동의 주제와 내용은 말 그대로 무궁무진하다. 현행 정치관계법, 즉 정당법, 정치자 금법, 공직선거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뒤의 방법론은 산개해 있는 진보진영이 공통사업을 통해 상호 신뢰를 회복하고 정치관계법 개혁운동을 보다 강도 높은 수준으로 전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내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된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 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보다 정의롭고 효과적인 선거제도를 설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 서도 주목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의미와 기회를 살려갈 수 있는 역량이 우리에게 있는지, 수도 없이 기 획해왔던 변화의 방향을 사회적인 호응과 지지 속에서 추진할 수 있을지다. 노동당의 안타까운 현실을 극 복하기 위해서라도 정치관계법은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부연의 필요 없이 이 문제는 당의 사활을 건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에 대응해 주체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은 현실적 부담이다. 이 부담을 던지고 사활을 건 문제에 사활을 걸고 대응하는 것이 지금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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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일기
밥만 굶나, 아이들 마음도 굶는다 홍준표 경남지사의 급식비 지원 중단에 맞서 여영국 경남도의원(교육위원회)
경남지역 학교운영위원회 시·군 대표들이 만났다. 홍준표 경남지사의 급식비 지원 중 단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아이들이 밥을 굶는 것도 걱정이지만 마음이 굶습니다. 예민한 사춘기에 어쩌라고…”그 자리에서 말을 다 잇지 못했다. 급식비 지원 중단은 계획된 일도 예고된 일도 아니고 갑자기 벌어진 사태였다. 작년 진주의료원 폐업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홍준표 지사는 아무런 정치적 걸림돌 없이 전국적인 이슈를 선점하는 데 성공했다. 경남도 의회는 전체 55명 의원 중에 새누리당 소속 51명, 새정치민주연합 2명(비례대표), 무소속 1 명, 노동당 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의회가 최소한의 견제기능도 상실했으니 홍준표 지사에 게는 아무런 걸림돌이 없는 셈이다.
급식비 지원에“좌파 포퓰리즘”이념 공세 경남도는 2014년 1차 추경 일반회계 예산액 6조 2백11억 원 대비 0.53%인 318억 원을 급식비로 지원했다. 경남도 교육청은 2014년 학교 급식비 2,340억 원을 투입하여 748개 학교 286천 명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급식을 제공했다. 경남도와 18개 시·군은 전체 학교 급식비 중에서 식품비 795억 원(도 318억 원, 시·군 477억 원)을 지원하였다. 경남도는 급식 운영비, 식품비 등 전체 급식비 중 13.6%로 전국 16개 광역시도 가운데 경북, 경기, 울산에 이어 뒤에서 네 번째다. 홍준표는 급식비 지원에 법적 근거가 없다며 전임지사와 교육감이 맺은 약속을 지킬 의 무가 없다고 했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학교급식법은 제3조(국가·지방자치단체의 임무)에서 의정일기 93
홍준표 지사는 급식비 지원에 법적, 정치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양질의 학교급식이
적 근거가 없다며 전임지사와 교육감이
안전하게 제공될 수 있도록 행정적·재정적
맺은 약속은 지킬 의무가 없다고 했다. 새 빨간 거짓말이다.
으로 지원” 해야 하며, 제8조(경비부담 등)에서 “학교급식의 실시에 필요한 급식시설·설비 비는 당해 학교의 설립·경영자가 부담하되,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할 수 있다” 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또한 경상남도 학교급식 지원조례도“학교급식법에 따라 급식에 필요한 경비를 지 원” 하며 제4조(지원계획의 수립)에서“도지사는 매년 제1조의 목적 실현을 위하여 다음 각 호의 사항이 포 함된 학교급식 지원계획을 수립하여야”한다고 못박아 두고 있으며“학교급식 지원에 필요한 재원조달 및 도와 시·군의 재정지원 분담 방안” 을 명시하고 있다. 이렇게 법적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분명하고 이 법에 근거하여 경남도는 조례로 구체화하고 있다. 이것을 지켜야 할 경남도지사 가 조례를 전면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법적 근거뿐만 아니라‘정치적 근거’ 도 없다고 했지만 이 또한 거짓말이다. 더욱이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고 있다.
2011년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취임 후“무상급식은 세금급식이고, 무분별한 복지 포퓰
반대
리즘” 이라고 했고, 국회 연설에서도“사회주의식 좌파복지” 라며 무상급식에 반대했다.
2012년 12월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 나선 홍준표 당시 후보는 1년여 만에 입장을 바꾼다. 무상급식
전면 확대
반대에서 전면 확대로 선회했다. 홍 지사는 무상급식 예산을 대폭 삭감한 예산을 도의회에 제출했다. 홍 지사는“도 교
2013년 11월
육청이 도와 합의한 게 아니고 김두관 지사하고 합의한 거다. 자기가 합의했으면 자기
무상급식 예산을
가 4년을 하고 나가야지 2년 만에 나가버렸다. 그 사람한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며“이
대폭 삭감
제 지방정권이 바뀌었다. 김두관 지사한테 얘기해라. 경남도의 의지가 아니다” 고 강조 했다.
2014년 2월 무상급식비 추가지원 2014년 10월 특정감사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 입장을 바꾸었다. 무상급식 확대 약속을 파기한 홍 지사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자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무상급식비 추가지원을 하겠다고 나선다. “도의 무상급식 확대 의지는 확고하다” ,“무상급식 논란은 종지부를 찍게 됐다” 고 자화 자찬했다. 10월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2010년 지방선거에서 진보좌파들의 어젠다인 무 상포퓰리즘 광풍에 휩싸여 선거에 나선 자치단체장들이 이를 거역할 수가 없어 부득이 하게 끌려 들어간 것"이라고 밝히며 급식비 지원을 중단했다.
이는 도민을 또 다시 우롱하는 짓이다. 홍준표는 급식비 지원을 중단하면서 소외되고 가난하고 어려운 서민 자제들의 교육비 직접지원을 운운한다. 이러한 눈 가리고 아웅하는 행태는 앞서 진주의료원 폐업 당 94
시에도 고스란히 반복됐다. 지난해 11월 18일 전국 최초라고 자랑하며 내놓았던‘서민무상의료대책’ 을 ‘의료취약자에 대한 건강검진 지원정책’ 으로 바꿔치기한 것. 홍준표는 새누리당 도지사후보 경선 토론에 서“도비 36억 원을 투입해서 서민무상의료대책을 시행하려 했는데 복지부의 반대 때문에 못한 것” 이라 고 했지만, 의료급여제도에 대한 충분한 검토나 정부와의 협의도 없는 졸속 정책이 빚은 결과라고 비난받 은 바 있다. 좌파 메카시즘에 사로잡혀 홍 지사는 역사적 사실마저 왜곡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지난 10월 29일 자 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홍 지사는“2010년 지방선거에서 진보좌파들의 어젠다인 무상포퓰리즘 광풍에 휩 싸여 선거에 나선 자치단체장들이 이를 거역할 수가 없어 부득이하게 끌려 들어간 것” 이라고 밝혔다. 작 년에는 의료보험이 박정희의 좌파정책이라고 주장해 물의를 일으킨 적도 있다. 아마도 박근혜정부가 자 신의 진주의료원 폐업 방침에 반대하며 즉각 철회를 압박하고 나서자 박근혜정부마저도 색깔논쟁으로 몰 아붙이려고 했던 것으로 풀이되는데, 이 역시 어불성설이다. 의료보험을 최초로 도입한 이는 좌파가 아니 라 우파 중의 우파, 이른바 철혈재상으로 불리는 독일의 비스마르크였다. 그리고 대한민국에 의료보험을 최초로 도입한 사람도 다름 아닌 대통령 박정희였다. 더욱이 경남에서 무상급식을 최초로 도입한 정치세 력은 다름 아닌 새누리당의 전신 한나라당 소속의 지자체장이었다. 2007년 당시 한나라당 소속 거창군수 가 처음 무상급식을 시작했으며 그 뒤 2010년 지방선거 때 전국적인 이슈가 되면서 보편화된 바 있다.
교육청 측 공동감사 제안에도 거부하고 경남도는‘경상남도 학교급식지원 조례’제 15조 제 1항 및 2항에 따라‘급식경비가 목적대로 사용되 었는지 여부’ 와‘학교급식 우수 식자재가 사용되었는지 여부’ 에 대하여 그동안 지도·감독을 해왔다. 2013년 고등학교의 식품비 외 급식운영비로 사용한 14억 원에 대해서는 경남도에서 삭감조치를 했다. 경 남도에서 2013년부터 학교방문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올해 8월에 확인한 결과‘식품비로 정상적으로 집 행 중’ 임을 2014년 9월 4일 즉 두 달 전에 교육청에 통보했다. 이처럼 경남도는 조례에 따라 행정적 조치 를 취해 왔으며 2014년 9월 25일 급식비 지원을 257억(합의대로 하면 322억)만 하겠다며 경남도교육청에 공식공문으로 통보했다. 그런데 홍 지사가 갑자기 특정감사를 들고 나온 것이다. 경남도가 경남교육청을 감사하겠다는 것은 명백한 이견과 법리 해석의 차이가 있음을 누 구보다 홍준표 지사가 잘 알고 있으면서“감사 를 거부하기 때문에 지원을 할 수 없다” 고말 하는 것은 명분일 뿐이며 책임을 떠넘기려는
“감사를 거부하기 때문에 지원을 할 수 없 다” 고 말하는 것은 명분일 뿐이며 책임을 떠넘기려는 정치술수에 불과하다.
정치술수에 불과하다. 답답한 교육청이 한발 물러서서 공동으로 감사를 하자고 제안을 했는데도 홍 지사는 거부했다. 도민들의 걱정과 갈등만 부추기 의정일기 95
11월 4일 도의회에서 무상급식 지원 중단에 반대 발언하는 여영국 의원 (사진 : 경남도의회)
지 말고 지금이라도 교육청의 공동감사 제안을 수용하여 교육현장의 혼란을 막아야 할 일이다. “무상급식은 단순한 급식비 지원을 넘어 가장 비교육적 차별을 해소하는 가장 기본적인 교육의 출발점 이다. 그런데 이런 차이를 다시 확인시켜 교육현장을 어떻게 하려는 건가? 학생들을 성적으로 줄세우기가 모자라서 가난을 기준으로 줄 세우려는가? 급식비를 지원받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확인시켜 주는 게 홍 지사의 교육 철학인가? 무상금식은 복지가 아니라 헌법 제31조에 의무교육에 대해 명시하고 있듯 국가의 기본의무다. 혹여나 아이들의 밥그릇을 두고 논쟁을 촉발하여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생각이 있다 면 거두어야 한다. 동냥은 못 줄망정 쪽박을 깨서야 되겠는가?” 지난 11월 4일 열린 경남도의회 정례회 본회의에서 이렇게 발언하자, 새누리당 소속 도의회 제 1부의 장이 “동냥은 ( 못 줘도 쪽박은 깨지 말라” 는) 제목과 내용을 문제 삼아 거세게 항의했다. 이후 신상발언을 요 청해“도의회 부의장이 아니라 홍준표 비서실 부대표냐” 고 비판하며 사과를 요구했더니, 홍준표 지사는 발언이 심하다며 고함을 지르고 결국 내가 발언하는 도중에 퇴장해버렸다. 경남에서 촉발된 무상급식 중단 논란의 핵심은 결국‘계급정치’ 다. 홍준표 지사는 보수진영의 입장을 정치적·행정적으로 가장 잘 대변하며 철저한 계급정치를 하고 있다. 아울러 정체성을 전면적으로 드러 내고 보수진영의 정치적 대표주자기 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경남발 무상급식 중단 의 본질이다. 정치란 전략계층에 대한 정치적 대변을 철저히 하고 그것을 조직해야 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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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현장에서
택시 노동조합 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하다 전국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대전지회 투쟁을 되돌아보며 송민영 전국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대전지회 조합원
열네 명, 소수 노조의 힘으로 지난 10월 20일,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는 가운데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대전지회는 대전광역시청 앞에서 지역의 동지들과 함께 매우 뜻 깊은 자리를 가졌다. 시청과 맞닿은 대 전도시철도 시청역 2번 출구 앞에서 550일이 넘도록 진행한 출근 선전전과 240일 동안 펼 쳐 온 철야농성 투쟁을 정리하는 보고대회였다. 그날 우리는 오랜 기간 동안 함께 싸워 준 동지들에게 마침내‘전액관리제 시행을 위한 노사정 합의’ 가 타결됐음을 보고했다. 더불어 노사정 합의에 기초하여 전액관리제를 온전히 안착시키기 위한 교섭 투쟁에 돌입하게 되었 음을, 그리고 그 투쟁에서 반드시 승리하고야 말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이는 대전광역시 전체 4천 명이 넘는 법인택시 노동자 중에서 단 14명만으로 구성된 소수 노조인 우리가 택시 자본의 치밀하고 끈질긴 회유와 협 박을 견뎌내며 쟁취한, 작지만 소중한 결과물이다. 우리는 드디어 택시 노동자의 삶을 근본 적으로 바꿔낼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다. 영원할 것만 같던 착취의 구조에 미세하지만 뚜렷 한 균열을 만들어 냈다. 오래도록 어용이 판쳐 온 택시 현장, 민주의 이름마저 자본에 포섭 되어 이미 그 의미를 잃어버린 택시 노동현장에 다시금‘투쟁하는 민주노조’ 의 깃발을 세 웠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이란 게 있다. 그 법의 21조와 26조에 이런 내용이 있다.‘운송사 업자는 운수종사자가 이용자에게서 받은 운임이나 요금의 전액을 운수종사자에게서 받아 지역에서 현장에서 97
야 한다.’ ,‘운수종사자는 운송수입금의 전액을 운송사업자에게 내야 한다.’참 간단명료하다. ‘운송수입금 전액관리제’ 를 규정한 이 내용은, 그러나 1997년 도입 이후로 이제까지 택시 현장에서 제 대로 지켜진 적이 없다. 오래된 악습인 사납금제의 폐해를 바로 잡고, 운수종사자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취지에서 도입한‘운송수입금 전액관리제’ 는 무한 이윤 추구에 눈 먼 택시 자본의 무력화 전략에 따라 현 장에서 철저히 무시되고 금기시 여겨져 왔다. 택시 자본은 어용으로 전락한 노동조합을 앞세워 매해마다 노사교섭에서 사납금제를 관철시켰고, 살 인적인 수준의 사납금을 강요했다.
택시 자본은 어용으로 전락한 노동조합을 앞세워 매해마다 노사교섭에서 사납금제를 관철시켰고, 살인적인 수준의 사납금을 강요했다. 쥐꼬리만 한 최저임금조차 편법으로 잠탈했다.
쥐꼬리만 한 최저임금조차 소정근로 시간을 줄이는 등의 편법으로 잠탈했 다. 일명‘스페어’ 라 부르는 일용직 형태의 도급 노동자를 통해 매출을 숨기고 세금을 탈루하는 등의 불법, 탈법 경영을 일삼았다. 나아가 신차
구입비, 사고처리비 등 각종 운송비용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며 착취의 구조를 강화했다. 택시 노동자들은 그런 착취 구조의 피해자이면서 방조자로 전락했다. 바른 말 한다고 나섰다가 괜히 회사 눈 밖에 나면 다른 회사에 취직도 못하게 된다는 말에 입을 닫았다. 조금이라도 튄다 싶은 노동자들 을 상대로 부당한 징계와 해고, 협박과 폭력을 남발하는 택시 자본의 폭압적인 노무관리는 노동자들을 더 욱 무력감과 패배감에 젖어들게 했다. 이렇게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던가.
시청역 2번 출구 앞에서 550일 넘도록 진행된 출근 선전전 (사진 : 택시지부 대전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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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잖은 초로의 조합원들 격정 토해내 2013년 4월,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대전지회가 출범했다. 곧바로 대전광역시청 앞에서 출근선전전 에 돌입했다. 택시 자본이 그 오랜 시간 동안 무한 이윤 추구의 탐욕에 빠져 법을 어기고 노동자를 착취해 왔음에도 관리 감독의 주체인 각 지방정부들은 법 취지대로 준수하고 집행하는 것을 소홀히 해 왔다. 따 라서, 일차적인 공격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주장은 이렇게 정리되었다.“불법 사납금제 철폐하 고 전액관리제 시행하라!” ,“전액관리제 위반 택시사업주를 법대로 처벌하라!” “직무 유기 일관하는 대전 시장 퇴진하라!” 2013년 12월, 전액관리제를 위반하고 있는 대전광역시 전체 76개 택시 사업장을 행정처분하라는 내용 의 1차 진정서를 시에 제출했다. 하지만, 시는 여전히 요지부동,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조합원들의 분노 는 더욱 커져만 갔다. 법대로 해달라는데, 없는 법 만들라는 것도 아니고 있는 법 지켜달라는 것인데… 순 진하고 점잖기만 했던 초로의 조합원들이 격정을 토하는 날이 잦아졌다. 2014년 2월, 조합원 총회가 소집되었다. 투쟁계획안이 제출되었고, 토론이 이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시청 철야농성투쟁을 결의했다. 화단을 사이에 두고 인도에 접한 시청 민원인 주차장 구석에 1톤 트럭을 세웠다. 각목과 비닐로 트럭 적재함에 농성장을 꾸몄다. 시 공무원들과 관할 경찰서 정보관의 눈이 휘둥 그레졌다. 주차장에 주차를 한 셈이니 이건 뭐, 어찌 할 도리가 없구나 싶었던 것 같다. 우리는 당당했고, 저들은 할 말을 잃었다. 우리 조합원들은 그렇게 생애 첫 철야농성투쟁을 시작했다. 지역의 동지들이 이전보다 훨씬 자주, 많이 방문했다. 이제껏 생판 남으로 살았던 사람들이‘노동자’ 라 는 이름으로,‘동지’ 라는 호칭으로 같은 공간에 머물기 시작했다. 차가운 공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닐 두 겹으로 얼기설기 엮어 놓은 작은 농성장에 모여 앉아 소주잔을 나눴다. 비루한 과거사 한 자락과 운전 대를 잡으며 느꼈던 삶의 시름과 환멸, 그리고 그것들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라도 끝끝내 택시판을 한 번 뒤집어 바꿔봐야겠다는 다짐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연대’ 의 정신과 태도를 배 우기 시작했다. 농성투쟁이 시작된 지 두 달여, 지역의 동지들이 우리를 후원하기 위한 연대주점을 마련해 줬다. 이렇 게까지 도움을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연대주점은 대성공이었다. 신생 노동조합, 그것도 소수 노동조합 인 우리에게 열심히 투쟁했다고, 더 열심히 투쟁하자고 인정하고 격려해주는 것인가 싶어 감격스러웠다. 우리 조합원들은 난생 처음 투쟁가에 맞춰 서툰 몸짓으로나마 그 응원과 지지에 화답했다. 다들 기쁜 마 음으로 함께 했던 그 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또 하나의 세월호, 택시 노동현장 택시 노동현장은 이 사회의 또 다른 세월호에 다름 아니다. 택시 자본은 오랜 시간 동안 권력의 비호 속 지역에서 현장에서 99
에서 추악한 착취의 역사를 이어왔다. 지방정부가 그들의 변호인이었고, 노동부는 그들의 노무관리 담당 이었다. 그에 반해 택시 노동자들은‘가만히 있으라’ 는 택시 자본의 명령에 주눅 들어 어깨도 펴지 못하고 고개도 들지 못하는 노예였다. 가끔은 그들 중 한 둘이 완장을 차고 매질을 해대기도 하는, 그러니까 그냥 노예였다. 세월호 참사와 그 전후로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일련의 상황을 목격하며 우리는 이제까지의 삶에서 또 렷이 체감하지 못했던 자본주의의 속성을 느끼게 되었다. 정리해고와 위장폐업, 비정규-불법파견-간접 고용 등 온갖 억압과 차별의 기제로 가득 찬 울타리 안에서 실낱같은 숨을 쉬며 신음하고 아파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탐욕스러운 자본이 무능하고 부정한 권력과 손을 잡을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 알 게 되었다.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계급적 대립
전임자 한 명 없어도 열두 시간 노동을
과 투쟁의 과정에서 우리 택시 노동자들이 어
마치고 곧바로 농성장으로 달려왔다. 택
떤 모습으로 거듭나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시 자본과 지방정부는 이런 모습에 두려 움을 느꼈을 것이고, 결국 노사정 합의서 에 사인을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 깨달음이 우리로 하여금 전임자 한 명 없어도 12시간 동안의 노동을 마치고 곧바로 농성장에 달려와 사수조 임무를 교대하게 한 힘이었다. 말 그대로‘전원 수비, 전원 공격’ 의 마음가짐으로 투쟁하도록 한 힘이었다. 택시
자본과 지방정부는 이런 우리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고, 결국 노사정 합의서에 사인을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우리는 현재 노사 합의에 기초한 교섭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아직은 모든 게 서툴지만, 투쟁하는 노동 자계급의‘아흔 아홉 번 패배할지라도 단 한 번 승리’ 를 위해 긴 호흡으로 임하려 한다. 동지 여러분의 많 은 관심과 지지를 바란다. 우리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투쟁! “우리는 강하다! 반드시 승리한다!!”
※ 긴 시간 동안 많은 일을 겪었다. 기쁘고, 슬프고, 화나고, 괴롭고, 힘들고, 우울하고… 그 모든 사연 을 풀어낼 능력도 없거니와 애초에 그럴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또한, 몸과 마음으로 연대투쟁의 모범을 보 여주신 그 많은 분들을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그래도 지면이 지면인 만큼 딱 한 분, 대전광역시당 이 점진 공동위원장 동지께 특별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농성장 식사당번을 자청하여 상당한 기간 동안 참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게 해주셨다. 집밥 먹어본 지 오래된 사람의 입장에서 개인적으로도 정말 소중한 기억이다. 연대주점 총괄진행까지 맡아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밥을 나누지 않고 어찌 연대를 말 할 수 있을까. 그 깊은 의미를 알게 해주신 것에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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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요금 ‘사회적 가격’ 으로 보자
빨간 도시교통 이야기
김상철 서울시당 사무처장
무언가 흥정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말이‘원가’ 다. 그러니까, 시쳇말로“남는 것도 없다” 는 너스레는 그 가격에 팔아도 원가 빼면 이윤이랄 게 없다는 의미가 된다. 국립국어원이 제공 하는 사전에 따르면 원가는“상품의 제조, 판매, 배급 따위에 든 재화와 용역을 단위에 따라 계산한 가격” 을 이른다. 그러니까 원가라는 것은 어떤 재화의 가격이 적절한지를 따질 때 유용한 개념이다. 일전에 서울시의 지하철 안전과 관련한 토론회에 나간 적이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굉 장히 긴 시간동안 진행된 토론회였고, 세션도 네 가지로 나뉘어 진행될 만큼 포괄적이었다. 각각의 발제문은 지하철 운영 체계, 노동 환경, 서울시 정책 등의 맥락에서 굉장히 중요한 시사점을 갖는 정보와 주장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흥미롭게 생각한 부분은 이 네 가 지 발제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요소가 있다는 점이었다. 노인 무임승차 비용이 지하철 적 자의 주요한 원인이며 이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책임지지 않으면 지하철의 재정 구조는 지 속적으로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연간 2,000억 원 안팎의 무임승차 적자는 전체 승객 인원의 14%에 해당하는 규모다 (2013년 현재). 그래서 무임승차 적용 연령대를 높이거나 혹은 완전 폐지하는 방안이 꾸준히
논의되었고, 올해 초엔 보건복지부가 발주한 <노인 교통이용요금제도의 개선방안연구: 지 하철 무임승차를 중심으로>라는 용역 보고서를 내놓고 가장 우월한 대안으로 차등화를 제 안했다. 일종의 정책 세트인데, 우선 3년에 한 살씩 현행 요금할인 연령을 70세까지 올리면 서, 할인폭 역시 50% 수준으로 낮추되 현행 노인복지법을 개정해서 구체적인 할인율을 명 시하지 말고 지방정부와 지방정부가 분담율을 조정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102
노인 무임승차 없애면 적자가 해소되나 하지만 이 논의의 가장 중요한 함정은 정말로 노인 무임승차를 폐지하면 적자폭이 줄어드는가의 문제 다. 공짜수요를 줄이면 적자가 줄어든다는 것은 언뜻 반박할 수 없는 사실처럼 들린다. 하지만 대중교통 도 그런가 생각해보자. 노인 무임승차가 재정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려면 유임승차와 경쟁 관계여 야 한다. 아주 쉽게 노인들이 지하철을 타면 그만큼 유임승차 인원이 줄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 교통의 특징 상 노인의 추가 승차가 다소 혼잡도에는 영향을 미칠지언정 유임 승객과 경쟁 관계라 보기 힘 들다. 더구나 대중교통의 속성 상 승객의 많고 적음을 대략적인 시간대별로 가늠하여 배차할 뿐 매 노선 마다 수요 여부에 따라 차량을 적게 보내고 많게 보내는 방식의, 이를테면 일반 제조업에서 하는 생산의 유연성이라는 것을 갖추기도 힘들다. 그런데도 요금 인상 시기가 되면 입을 맞춘 듯‘생산 원가를 밑도는 요금’운운하며 인상의 타당성을 역설한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마치 지하철을 이용하고, 버스를 이용하 는 시민들이 도둑질이라도 한 것처럼 수치심이 들도록 만든다. 그런데 매년 반복되는 공공요금 인상 시기 마다 누구도 원가 자체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를 한번 살펴보자. 서울도시철도는 매년 수송 계획을 내는데 여기엔 수송 실적, 운수 수입 실적, 시간대별 이용률, 순위별 수송 인원 및 운수 수입 등의 기본 자료들이 실려 있다. 그리고 수송 원가 및 평균 운임이라는 항목도 있는 데, 2014년 자료가 아래와 같다. <서울도시철도의 수송 인원 및 운수 수입>(2013년 말 기준)
교통요금이 2000년에 500원에서 600원으로 오르고, 2003년과 2004년에 다시 100원씩 올라 800원 이 되었다가 2007년에 다시 100원이 오르고 2012년에 150원이 올랐으니 13년 사이에 두 배 넘게 오른 것 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평균 운임이다. 매년 기본 운임에 비해 100원 정도 낮은 금액임 을 알 수 있는데, 이게 매년 바뀐다. 상식적으로 승객이 내는 요금은 고정되어 있는데 어떻게 평균 운임은 이렇게 들쑥날쑥할까? 이는 일차적으로 요금의 정산 과정, 그러니까 환승할인 제도에 따라 타 교통수단과 빨간 도시교통 이야기 103
의 분배 방식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평균 운임을 계산하는 방식에 따른 것이다. 통 상적으로 대중교통의 평균 운임은 당해 전체 운임 수입을 당해 전체 이용 승객수로 나누어서 구한다. 그 래서 거리 비례, 환승 여부 등에 따라 복합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수송 원가의 개념이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원가의 개념에 근거하 면 가격 요소의 총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차량의 감가상각에 따른 유지보수 비용, 전력 구매 비용, 차량을 운행하고 승강장을 운영하는 비용 등이 포함된다. 그리고 이는 점증적으로 늘어나며 고정적인 성 격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실제 자료를 보면 외려 수송 원가가 줄어드는 것이 보인다. 2000년 에 1,477원이었던 수송 원가가 2004년에는 1,213원까지 떨어졌다. 그러다가 점차적으로 운송 원가가 오 르면서 2013년에 1,344원이 되었다. 원가가 들쑥날쑥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누가 원가를 계산하는가 개별 공사의 원가 산정 자료를 확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 이를 내부 자료로 취급하며 공 개 자료로 내놓은 적도 없을 뿐더러 정보공개 대상을 피해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자료가 구체 적으로 언급된 적이 있다. 그것은 2010년 서울시의회가 바뀌면서 추진한‘서울시 재정 진단’과정에서였 는데, 여기에 서울시당 정책국장 직함으로 참여하면서 제공받은 자료가 있다. <서울지하철 원가 산정 방식> (2009년 기준, 단위: 백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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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네 개의 조건이 있는데, 이에 따르면 운송 원가는 가장 낮게는 779원에서 많게는 1,048원 까지 해당되고 평균 운임은 최소 540원에서 최대 834원까지 산정된다. 이에 따라 운수 수익 적자금은 159원에서 321원까지 늘어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그것은 수익을 산정하는 방식과 수송 인원을 산 정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우선 운수 수익의 차이를 보자. <조건1>과 <조건2>는 공통적으로 영업 비용과 자본 비용을 원가로 산 정했다. 그리고 운수 수익으로는 유일하게 운임 수익만을 반영했다. 하지만 <조건3>과 <조건4>는 운임 수 익뿐만 아니라, 지하철공사가 운영하는 시설물 그러니까 지하의 상가임대 수익을 부대사업으로 넣었다. 이 차이만 1천억 원 이상에 달한다. 그리고 수송 인원이라는 측면에서도 자기구간 승차 인원만 계산할 경 우에는 10억 명으로 추산되지만, 여기에 타구간에서 탑승하고 자기구간에서 하차한 유입 승객까지 합치 면 14억 명으로 늘어난다. 이것이 <조건1>과 <조건3>, <조건2>와 <조건4>의 차이다. 그렇게 네 가지 조건 들이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수송 원가는 779원일 수도 있고 1,048원일 수도 있는 것이다. 무려 200 원 가량 차이가 난다. <주요 원가산정 변수 현황>
그런데 만약, 초기 시설 투자에서 파생된 500억 원 규모의 금융비용은 운송 원가와 관계가 없는 비용 이니 제외해 보자. 그러면, 2009년 당시 기준으로 운송비용과 운송 수입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게 된다. 결국 대중교통의 원가라는 것은, 어디까지를 교통요금으로 포괄할 것인가라는 관점의 문제이다.
대중교통요금은‘사회적’ 이다 매번 대중교통요금을 인상할 때마다 따라붙는 이야기가“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요금이 싸다” 는 논리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대중교통요금이 싼 것은 좋은 일 아닌가? 그만큼 서민들이 저렴하게 교통수 단을 이용할 수 있고 이 때문에 자가용 이용을 줄일 수 있다면 적극적인 수요 관리 정책으로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굳이 요금을 올려서‘차라리 자가용을 타자’ 고 하는 계층이나, 혹은 울며 겨자 먹기로 교통요금을 빨간 도시교통 이야기 105
부담해야 되는 상대적인 저소득층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 타당한가. 게다가 교통요금이라는 것이 어 떻게 계산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면, 당연히 이용자의 입장에서 그 원가가 적절한지를 따져 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공공요금에 대해 실제 비용을 부담하는 시민들에게 원가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투명하게 공개된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 앞서 언급한 토론회에서 토론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지하철 적자를 둘러싼 서울시와 노동조합의 갈등은 매우 중요하다. 서울시는 적자를 근거로 노동자들 의 노동 환경을 나쁘게 만들려고 하고 효율 중심의 인력 운영 방안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노동환경의 개선과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자살자 등 산재 발생을 줄이기 위해 사울시가 인력에 대한 추가적인 투 자를 하도록 요구하는 노동조합이 맞붙는 형태다. 그런데 이런 논의가 어느 시점이 되면 노인 무임승차 비용에 대한 정부 지원으로 쏠리고 그 많던 쟁점은 어정쩡 정리된다. 그런데 묻자. 현재 양 공사 노동자의 평균 연령이 50대 전후라고 알고 있다. 여러분들은 지하철을 제 돈 내고 타고 다닐 의향이 있는가?” 안 그래도 빈곤율이 높은 취약한 노인층에게 요금을 물린다고 지하철의 운영 적자가 많이 줄어들까. 글쎄 그럴 것 같지는 않다. 통상 노인들의 이동량이라는 것이 필수 이동량이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신 동네나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고,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노인 커뮤니티는 크 게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더구나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지하철 적자를 위해 매년 요금 인상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것이고 지하철을 이용
교통요금이 사회적 요금이고, 여기서 파 생되는 비용이 사회적 투자라는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어떨까. 자가용을 타지 않는
하는 시민들은‘봉’ 이 될 것이다. 하지만 교 통요금이 사회적 요금이고, 여기서 파생되 는 비용이 사회적 투자라는 관점으로 접근 한다면 어떨까. 그러니까 자가용을 타지 않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함으로서 사회적으
는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함으로서 사회적으
로 얻게 되는 이익이 존재한다.
로 얻게 되는 이익이 존재한다. 그리고 특정 시간대를 제외하면 어차피 여유가 있는 지
하철을 노인들이나 청소년들이 무상으로 이용함으로써 제공되는 편익은 비용을 앞선다. 즉, 대중교통요 금을 일반 회사와 같은 회계가 아니라‘사회적인 관점의 회계’ 를 통해 본다면 전혀 다른 맥락이 보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대중교통 노동자들과 이용자들 간에 할 이야기와 함께 할 수 있는 일들도 많 아질 것이다. 이것이 대중교통의 공공적 특징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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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문화예술 당원 찾기
사진 : 박정근
“올바름과 좋음과 기쁨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언저리의 중심에 선 자립음악가, 단편선 인터뷰·정리 : 나도원 문화예술위원장
벌써 10년 전 일이다. 중학교 3학년 나이에 정식으로 음반을 발표해 이미 음악 마니아들 사이에서 회자 되고 있던 장성건(폐허, 밤섬해적단)과 나는 음악인과 비평가로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가 대학교에 들어 가 만난 선배 하나가 나도원을 소개시켜 달라고 청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세 사람이 서울 회기동의 오래 된 음악카페에서 마주앉았다(훗날 세 사람은 모두 같은 정당의 당원이 된다). 그날 처음 만난 청년은 멀쑥했 고, 말은 어눌했다. 그가 조심스레 데모음반 하나를 내밀었는데, 아주 못쓴 글씨체로 노래 이름들을 적어 놓은 CD 안에는 꽤 괜찮은 음악이 담겨있었다. 몇 해 지나 2007년에 그 청년은 군대에 간다며 새로운 데모음반을 선물하고 떠났다.‘회기동단편선’ 112
의《스무 살 도시의 밤》 이었으며, 상 당히 좋은 음악이 담겨있었다. 정식 으로 발표되지 않은 음악이었음에 도 당시에 필자로 참여하던 웹진에 그의 음악을 꾸준히 소개했다. 이후 음악인이자 활동가로 급성 장한 단편선(본명 박종윤)은 젊은 뮤 지션으로서 사고의 깊이와 음악의 완성도를 함께 성취해내고 있다. ‘두리반 투쟁’ 에 연대하였고, 음악 인들의 공동체인 자립음악생산조합 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무엇보다 단편선은‘보이는 것처 럼’무척 어처구니없기도 하지만,
회기동단편선 데모음반《스무 살 도시의 밤》
‘보이는 것과 달리’무척 진지한 음 악을 만들어내고 있다.
음악인이자 활동가로 급성장한 단편선(본명 박종윤) 은 젊은 뮤지션으로서 사고의 깊이와 음악의 완성도
서울이라는 황무지에서 자라다
를 함께 성취해내고 있다.
단편선은 보이는 것과 달리 1986 년에 태어난 (아직도) 청년이다. 서울 목동에 신시가지 아파트가 처음으로 입주를 시작하던 때 그곳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전문직에 종사했으며, 어머니는 현대무용을 전공한 후 출산 이후에는 전업주부로 일했 다. 그는 스스로 아주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말한다.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헤비메탈과 아트록을 좋 아해 적지 않은 양의 LP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머니는 본인의 전공에 걸맞게 클래식과 유럽의 팝 음악 들을 주로 들었으니 집안에 음악소리가 끊일 날이 없었다. 유치원에 다닐 무렵부터는 바이올린과 피아노 를 배웠는데, 피아노는 중학교를 입학할 무렵까진 계속 배울 수 있었다. 아쉬움 없이 무난하게 자라던 단편선이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닐 무렵은 어머니가 5년 동안 투병생 활을 겪은 시기였다. 단편선은 만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오락실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당시에 일반인 들도 간단한 조작을 통해 2차 창작을 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들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는데, 단편선 역 시 그것들을 이용해 간단한 게임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동인지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음악도 그렇게 시 작한 것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어머니는 단편선이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날 때쯤 세상을 떠났다‘회기동 ( 단 편선’ 의 이름으로 발표한 데모음반에 실린 <추석 1>에 그 빈자리에 대한 이야기가 녹아있다). 삶과 문화 113
목동에서 아주 오랫동안 살아왔으나 단편선은 그 동네에 대한 애착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어릴 적에는 아파트 단지가 제대로 조성되기 전이라 온통 공사판에 황무지였고, 대학에 입학할 때쯤엔 백화점 과 쇼핑몰과 같은 큰 건물들이 높게 들어서 시도 때도 없이 길이 막히는 곳이 되어버렸다. “주민들이 그런 큰 건물들이 들어올 땐 아무도 반대를 안 하다가 공공주택을 지으려 하니 온 동네사람 들이 교통과 학급정원 등을 문제로 삼아 들고 일어나 대대적인 반대운동을 전개했다고 합니다. 대학에 입 학한 후에는 삶을 살아가는 터전 자체가 완전히 바뀌어 더 이상‘동네’ 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 아니게 되 어버렸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년 넘게 흐른 지금에는 거의 다 이주해 친구들도 사라졌고요.” 서울이란 도시를 고향으로 삼은 사람들 중 다수가 이런 풍경과 느낌을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2007년 에 만든 데모음반에 처음 실렸다가‘단편선과 선원들’ 의《동물》 (2014)에 다시 실린 <황무지>에서 그런 쓸 쓸한 풍경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뒤처져버린 삶의 비루한 거죽이 놓일 자린 어델까 어린 날들 날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던 동네 놀이터 아픈 내 가슴을 어루만져 줄 녹슨 철 그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잿빛 미끄럼틀) 이제는 아이들도 놀지 않는 버려진 황무지 - <황무지>(단편선 작사/작곡)
할머니가 차려준 밥상 앞에서 결심한 음악의 길 특별히 음악인의 길을 가겠다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단편선은 그저 어릴 적부터 이야기건 그림이건 만들어보는 것을 좋아했고, 그 중 하나가 음악이었을 뿐이다. 간단한 작업프로그램으로 일렉트로닉에 가 까운 음악들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당시 음향이 강조되던 오락실 음악에도 영향을 꽤 받은 모양이다. 음 악을 만들기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주로 키보드나 신시사이저를 기초적으로 다룰 수 있는 수준에 불과했 지만, 다니던 고등학교가 예체능 쪽에 많은 지원을 하는 학교였던 덕에 음악 경험을 폭 넓게 할 수 있었다. 점차 일렉트로닉이 아닌 다른 음악을 접하게 되고, 소위 모던록이라 분류되던 음악에 빠져들게 되었 다.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하고, 대학교에 입학한 2004년 가을에는 홍대의 라이브 클 럽에서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보 밴드들이 종종 그렇듯 1년 남짓 활동하고는 군 입대 등의 이유 로 뿔뿔이 흩어졌다. 혼자 남게 된 2006년엔‘회기동 단편선’ 이란 이름으로 솔로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2007년에《스무 살 도시의 밤》 을 발매했다. 이 비공식 음반에는 앞서 말한 <황무지> 외에도 <까마귀 떼>, <서울 사람>처럼 지금과는 사뭇 다른 감성의 곡들이 여럿 들어 있다. 군대에 들어간 단편선은 다소 급진적인 스타일의 철학 혹은 인문학 서적, 시와 소설을 적잖이 읽게 되 114
었고, 더욱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접하게 되었다. 고립되어 있는 상황에서 기타 연주도 더욱 잘 하게 되 었고, 점차 스타일이라는 것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제대 후에는 나와 젊은 비평가들이 새로이 만든 웹진을 통하여 음악비평에도 발을 걸치게 된다(안타깝게도 그의 길고 난해한 음악 비평문들은 종종 공격 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가 음악의 길을 결심한 것은 할머니가 차려준 밥상 앞에 앉아 앞날을 생각하며 눈
물을 뚝뚝 흘리고 난 후였다.
“두리반은 학습장이기도 했습니다” 눈 없는 겨울 행색처럼 황량한 공터, 다시 말하면 재개발 부지 한가운데에 섬처럼 홀로 외로이 떠 있는 작은 건물이 음악소리로 들썩였고, 사람들의 물결이 밀려들었다. 2010년 5월 1일 노동절,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온종일 노래하고 연주한 60여 팀의 밴드와 싱어송라이터 그리고 1,000여 명의 음악애호가들이 칼국 수집‘두리반’ 이 처한 부당함에 공감을 표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장소와 사건이 만났고, 참여와 놀이의 장 인 페스티벌이 색다른 현실을 만들어냈다. ‘전국 자립 음악가 대회 51+’혹은‘뉴 타운 컬처 파티 51+’ 로 명명된 이 페스티벌 은 예술가들과 시민들이 함께 만든 축제이 자 시위였다. 합의가 이루어져 헐릴 때까지 그 건물은 여러 장르 예술인들의 소굴이었 고, 몇몇 뮤지션들의 모임인 자립음악생산 조합의 산실이었다. 군대에서 촛불시위와 용산참사를 지켜보고 전역한 단편선은 이 모의의 주모자들 중 하나였다. (재개발의 문 제와 독립음악인들의 상황 그리고 그 둘의 연 대와 문제공유를 다큐멘터리로 기록한 작품인 <파티51>의 정용택 감독 또한 노동당의 당원이 다.)
“두리반 투쟁은 삶뿐만 아니라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한 사건 인데요, 기존에 들어왔던 것보다 더욱 다양 한 스타일의 음악을 집중적으로 경험할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51+’ 에서 공연중인 단편선 (사진 : 박김형준)
각자의 음악들이 어떤 식의 과정을 거쳐 구 삶과 문화 115
자립음악생산조합을 만들었고 그곳을 기반
현되는가를 지켜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
으로 2012년에《백년》 , 2013년에는《처녀》
습니다. 그러니까 두리반은 일종의 학습장
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한 다. 모두 주목을 받은 작품들이다.
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그곳에서 함께 한 친구들과 태도로 서의 언더그라운드를 주요한 키워드로 삼는 자립음악생산조합을 만들었고, 그곳을 기
반으로 2012년에《백년》 , 2013년에는《처녀》 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한다. 모두 주목을 받 은 작품들이다. 음악뿐만 아니라 도발적인 차림새와 퍼포먼스로도 이야깃거리를 만들어갔다. 2012년에 서강대학교 축제 논란에도 그가 있었다. 대학교축제에 인디밴드들을 섭외했다고‘비싼 등록금’내는 학 생들의 항의가 거셌던‘서강대 축제 논란’ 은 수동형을 양산하는 소비문화시대의 적극적 소비자주의의 극 단이었다. 그 공연에 참가한 단편선은 스스로 밀가루를 뒤집어쓰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단편선과 선원들’ 의《동물》 은 매우 진취적인 음악들로 가득하다. 단편선 역시 거의 처음으로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완성도를 충족시킨 작업이라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자평한다.
“제 음악에 대해 제가 평하는 것은 별로 내키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말을 줄이겠습니다. 그냥 지금 시 점에서 한국에서 나올 수 있는 현대적인 스타일의 음악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 정도로 정리하고 싶습니다.”
단편선과 선원들 (사진 : 박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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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문화팟캐스트 <컬쳐쇼크>팀과 함께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언저리의 중심에서 사실 단편선이 음악계의 중심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비주류이지만, 비주류 중의 주류에 근 접해가고 있다. 대학에서도 학생운동권의 언저리에 있었다고는 하지만, 학생회장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단지 당시에 자신이 할 일을 했을 뿐이지 그에 크게 몰입하거나 동일시한 적은 없다고 한다. 다니던 대학교는 신입생들이 소위 운동권들을 만나지 않기가 더욱 어려운 구조였다. 대학교 2년 차 정 도에 맑시즘 같은 것을 조금씩 접하기 시작했다. 두리반과 연관되기 전인 2009년까지는 가라타니 고진이 라든지, 들뢰즈를 많이 읽고 접하고 후배들과 함께 세미나도 했다. 실제로 현장에서 활동을 하게 된 이후 로 그쪽 방면으로의 관심은 계속 떨어졌다(덕분에 그의 글도 덜 길어지고 덜 난해해졌다). “어차피 운동권들하고 딱히 친한 것도 아니었고요. 결국 대학교 다닐 때의 인간관계에서 남은 것은 저 와 비슷하게 언저리에 있던 친구들인데, 생각해보면 그래도 이 친구들이 가장 좋았던 것 같습니다. 맑시 즘이건 뭐건 일단 이 친구들은 시민윤리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이니까요.” 민주노동당 시절을 거쳐 노동당으로 당적을 이어온 단편선은 한국사회와 노동당이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그가 바라는 사회는 친구들과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사회이다. 가난해 도 빈곤하지 않게, 친구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회 말이다. 그의 물음에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이다. “올바름과 좋음과 기쁨을 만들어야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그러고 보니 그 모두를 당으로부터 느끼지 못해본지 꽤 오래된 것 같기도 하네요. 우리가 함께 올바름과 좋음과
노동당 문화팟캐스트 <컬쳐쇼크> 7회
기쁨을 경험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
단편선 편 듣기
할까요? 그걸 묻고 싶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858
삶과 문화 117
불온한 서재
용기있는 선택이 녹색전환을 이끈다 정의로운 전환 김현우 / 나름북스 / 2014년10월 / 15,000원
양솔규 기획조정실 국장
한국은행 경남본부는 10월초 <경남지역 기계산업의 특징 및 정책 과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기계산업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 최근 엔화가치의 하락으로 수출경쟁력이 약화되었 고, 기계산업의 세계적 추세인 IT 융합 부품산업이 취약하며, 핵심부품의 국산화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국내적으로는 경기나 충남에 비해 IT 융합도가 낮다고 한다. 그 결과 경남지역 기계산업은 금융위기 이후 (2009〜12년) 연평균 2.3% 성장에 그쳐 전국평균(경남 제외, 8.9%)보다 훨씬 낮다. 물론 이러한 수치상의
하락이 장기적 추세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산업의 급격한 변동(하락)에 대해 구체적 대응을 고 민해야 한다. 왜냐하면“자본은 경영난과 산업 환경의 변화를 빌미로 먹고 튈 수는 있지만, 노동자와 노동 자의 지역사회는 그럴 수 없” 기 때문(205쪽)이다. 이러한 고민이 우리에게만 닥치는 것은 아니다. 1970년대 영국의 루카스항공은 1만8천여 명을 고용할 정 도로 큰 회사였지만 경쟁력 약화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이에 맞서 선진 활동가 마이크 쿨리 등은‘루카 스 플랜’ 이라고 불리는 협동계획을 구상했다. 이 계획은 지역사회의 모든 사람에게 유용해야 하며, 기업 내 기술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천연자원에 대한 수요를 최소화하는 생산을 시작하자는 것이다. 군 수산업에 속했던 루카스항공은 이러한‘정의로운 전환’ 을 통해 의료기기 등 적정기술과 인간중심 시스템 118
을 적용한 새로운 실험을 기획했던 것이다. 스웨덴의 조선업 중심도시였던 말뫼에는 이 지역 사람들의 자부심이자 지역사회의 상징 이었던 거대한 골리앗 크레인이 있었다. 그 러나 한국, 일본 등에 밀려나면서 조선소는 문을 닫았고, 2002년 이 크레인은 울산 현대 중공업에 단돈 1달러에 팔려나갔다. 크레인 이 떠나던 날 말뫼 시민들은 부둣가에 나와 떠나가는 크레인에 눈물의 작별을 고했다. ‘말뫼의 눈물’ 은 그러나, 새로운 전환점이었 다. 크레인이 철거된 자리에는 마치 꽈배기 처럼 꼬고 있는 친환경 고층 빌딩‘터닝 토르 가 새워졌고, 곧 이 도시 소(Turning Torso)’ 의 새로운 상징이 되었다. 이 도시 인구 중 50만 명이 녹색 일자리를 갖고 있고, 전체 쓰 레기의 98%를 재활용하며, 세계에서 두 번 째로 큰 해상풍력발전소가 6만 가구에 전력 을 공급한다. 도시 교통의 절반은 자전거가 맡는다.
말뫼의 새로운 상징
요컨대 말뫼의 경험과 루카스 플랜에는 산업 의 지리적, 기술적 변동이라는 씨줄과 기후변화라는 날줄이 교차하고 있다. 한 지 역(국가)의 고용안정과 산업생산의 안정화에만 집착해서는 지구적, 시대적 변화에 적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와 오일피크는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문제는 우연한 모
제조업 및 서비스 산업에 강력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는데
래 한 알의 낙하가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어딘가에 떨어지는 모래 한 알에 공든 탑이 무너질
아니라, 임계점에 다다른 지구의 생 태적 한계이다. 선 순환 구조가 영원
수 있다. 문제는 우연한 모래 한 알의 낙하가 아니라, 임계점에 다다른 지구의 생 태적 한계이다. 선순환 구조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으며,‘준비’ 는‘자본’ 의몫 이 아니다.
히 지속될 수는 없
(Just Transition)을 협약 국제노총(ITUC)은 코펜하겐 총회 전부터‘정의로운 전환’
으며,‘준비’ 는‘자
문에 넣기 위한 활동을 해 왔다. 요구사항에는‘기후변화 정책의 설계, 정책 수립,
본’ 의 몫이 아니다.
모니터링에서 노동조합 등 모든 이해 당사자와의 협의와 적극적 참여’ ,‘녹색의 삶과 문화 119
괜찮은 일자리 창출과 전통적 부문들의 녹색화 투자로 재정 방향 운용’등이 포함 되어 있다. 캐나다 노총(CLC)은‘정의로운 전환’ 을 공식적으로 노조의 입장으로 채택했다. ‘공정함’ 과‘재고용 또는 대체 고용’ ,‘보상’ ,‘지속 가능한 생산’등을 포함하는 캐나다 노총의 프로그램은 많은 다른 노동조합들에 귀감이 되고 있다. 영국 철도항만운송노조(RMT)는 런던 히드로공항 확장 계획을 유보시키고 대신 환경친화적 궤도 서비스를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 유럽노총(ETUC)은 2030년까 지유럽연합이 CO2를 40% 감축할 경우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 연구에 착수했으며, 미국노총(AFL-CIO) 등 30개 이상의 노동단체, 환경단체들은 아폴로 동맹(Apollo Alliance)을 만들어 녹색 일자리 창출과 청정에너지 도입을 위해 애쓰 고 있다. 호주의 건설노동자들은 숲을 비롯한 환경을 파괴하는 공사를 거부하는 활동, 즉 그린 밴(Green Ban) 운동을 벌였다. 이 운동을 주도했던 잭 먼데이는 용 산 투쟁을 지지하는 메시지를 보낸 바 있다. 뜻 맞는 사람들과‘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를 설립하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등 에서 활동과 연구를 하면서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을 종횡무진 누볐던 노동당 당원 김현우는 우리 노동운동과 환경운동, 적색과 녹색의 씨앗들에게 말 걸기를 시도 한다.‘정의로운 전환’ 의 선구자인 미국 노동운동가 토니 마조치부터 시작해, 한 국의 토니 마조치인 김말룡, 생태사회주의와 노동해방에 대한 이론적 검토, 녹색 일자리와 녹색 교통, 코펜하겐 투쟁의 경험, 그리고 한국 환경운동과 노동운동의 어색하지만 진지한 만남에 대해 꼼꼼하게 검토한다. 더구나 이 책에 실린 저자의 보다 중요한 것은
글 중 상당수가 노동운동의 새로운 주체형성을 위해 설립된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적록정치의 전략,
의 기관지《함께하는 품》 에 실렸다는 것도 적록동맹의 지평에서 의미 있는 시도
예컨대“제조업 생
이다.
산자-서비스업 생 산자-농업 생산 자-소비자”사이 의 적록연대 전략 을 통해 새로운 적
우리 운동의 공백지점에 대한 저자의 진지한 검토는 한국의 적색과 녹색이 각자 의 영토에서 벗어나 새로운 교차점에서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로 모 아진다. 아직은 충분하지 않은, 어쩌면 서로가 자기 얘기만 하고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 같은 막막함이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이다. 90년대 김포매립지 농지의
록정치의 대안주체
상업용지 변경에 반대했던 민주노총 사무실을 동아건설 노동자들이 점거한 사건,
들을 형성하기 위
새만금 사업 반대에 항의해 농업기반공사노조가 탈퇴한 일,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한 다양한 시도일
대한 환경단체와 전력노조의 대립 등은 적색과 녹색의 결합이 아직은 성과보다
것이다.
과제로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보다 중요한 것은 적록정치의 전략, 예컨대“제조
120
업 생산자-서비스업 생산자-농업 생산자-소비자”사이의 적록연대 전략을 통 해 새로운 적록정치의 대안주체들을 형성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일 것이다. 그런 우리는 무엇을 가 지고 강고한 저들 에게 맞설 것인가?
시도가 없지는 않다. 부산에서는 부산노동자생활협동조합이 움직이고 있으며, 최 근에는 노동당과 녹색당의 서울시당 당부가‘적록포럼’ 을 가동했다. 적록정치 vs 선진국(미중)-화석연료-산업 카르텔의 결정적 싸움이 또한번 예고
미래를 위한 전략,
되어 있다. 2009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15차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는 결국 포스트
‘정의로운 전환’ 을
교토의정서 체제를 마련하지 못했다. 저자는 이번 2014년 겨울 페루 리마에서 열
방향타 삼아 노동
릴 기후변화 총회에 주목하자고 말한다.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강고한 저들에게
해방과 녹색전환에
맞설 것인가? 미래를 위한 전략,‘정의로운 전환’ 을 방향타 삼아 노동해방과 녹색
나서보자.
전환에 나서보자. ■ 더 볼만한 자료
•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이반 일리치 / 느린걸음 / 2014년9월 / 12,000원 • 〈기후변화와 노동계의 대응과제: 정의로운 전환〉자료집, 이유진, 장주영 등 / 한국발전 산업노동조합 / 2008년1월 • 《우리에게 기술이란 무엇인가?》중 7장 / 송성수 편 / 녹두 / 1995년 •다큐멘터리 <누가 전기 자동차를 죽였나? who killed the electric car?> / 크리스 페 인 감독, 2006년 선댄스영화제 출품작 •영화 <실크우드> / 마이크 니콜스 감독, 메릴 스트립 주연 / 1983년
■ 정정합니다 ■ 제14호 불온한 서제 <아이들과 함께 세상 읽기> 편의‘더 읽을만한 책’ 에 이전호의 내용이 실렸기에, 이를 정정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세상 읽기> 편의‘더 읽을만한 책’ 은 아래와 같습니다. • 《흑설공주 이야기2》바바라 G. 워커 / 뜨인돌 / 2005년8월 / 7,500원 • 《어린이를 위한 흑설공주 이야기1,2》양연주 외 / 뜨인돌어린이 / 9,000원 • 《우리 엄마는 왜?》김고연주 / 돌베개 / 2013년5월 / 11,000원
삶과 문화 121
“녹음 버튼이 안 눌러졌네. 내가 천천히 말할 테니 긴장하지 말고 하세요.”
첫 질문을 겨우 던지고 식은땀을 흘리며 메모장만 뚫어져라 쳐다보던 내게 선배가 건넨 첫마디였다. 어떻게 긴장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1979년 그의 노래를 처음 접한 이래 이십 년 남짓 좋아하던 가수이 며 존경하던 활동가인 이 사람, 정태춘을 만나면서. 그게 1997년 초여름이었다. 며칠 전 오랜만에 무대에 올려진 <아, 대한민국>을 들었다. 11월 8일, 노동자대회 전야제에서였다. 노 동자노래문선대가 이 노래를 선곡한 것은 처음이다. 노래가 처음 만들어진 때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 새삼스럽게 <아, 대한민국>이 불린 이유는 점점 후퇴하는 대한민국의 현실 때문일 것이다. 나라 같지 않 은 나라,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 그럼에도 뻔뻔한 나라, 2014년의 대한민국 현실이 이 노래를 다시 불러낸 것이다. <아, 대한민국>에서 시작된 상념은 결국 정태춘에게로 닿았다. 1997년 어느 여름에도, 지금도, 그는 내 게 솟대 같은 사람이다. 마을의 안녕과 수호, 풍농을 기원하며 마을 어귀에 세우는 그 솟대처럼 정태춘은 음악계에서 꽤 멋진 선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가요 사전심의 철폐를 위해 외롭게 싸운 활동가이며 꽤 높은 경지의 음악적 성취를 이룬 음악인인 정태춘을 그 자리에 있던 젊은 친구들이 알까 궁금해졌다. 잘 모 르지 않을까? 삶과 시대를 오롯이 노래라는 그릇에 담아냈던 가수 정태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시’ 가 되어 만난 노래 1979년 겨울, 막내 고모를 통해 그의 노래를 처음 알게 되었다. 최신히트가요 모음집을 통해 노래보다 글로 먼저 만났다. <시인의 마을>은 한편의 아름다운 시였다. 노래책을 펴놓고 노래를 낭송하곤 했었다. 당시에 서슬 퍼렇던 가요 사전심의위원회가‘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일개 가수가 썼을 리 없으니 시인의 글을 도용했을 거다’ 라며 판정을 보류했다 할 정도였으니,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이 그 아름다움을 못 느 꼈을 리 없다. 내게도 그 정도 보는 눈은 있었던 게다. 하지만 열네 살 청소년이 좋아하기에는 그의 처절하 고 한스러운 읊조림은 너무 어렵기만 했다. 그럼에도 그때,‘노래를 책으로 배웠어요’수준에서 벗어나기
노래의
꿈
아, 대한민국 민정연 문화기획자, 꽃다지 대표
122
까지 꽤 오래 그의 노래를 들었던 이유는 또래들과는 다른 어른 취향을 과시하며‘왠지 있어 보이고’싶어 서였으리라.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청소년의 치기 어린 선택이 그리 오래 갈 리 없었으니 겨울방학이 끝 나고 막내 고모가 상경하면서 그의 노래는 내게서 잊혔다. 1985년 여름, 음악다방에서 만난 서클 친구가 꼬깃꼬깃해진 종이 몇 장을 내밀었다.“읽어봐. 너도 좋 아할 거 같아서…” “낭만적인 시네. 어느 시인이야?”아마도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제야 친구가“정태 춘!” 이라고 알려줬다. 빼곡히 적혀있던‘시’ 는 정태춘이 최근에 발표한 음반《북한강에서》 의 전곡 가사라 는 설명을 덧붙여서. 그의 음악과의 두 번째 만남 역시‘시’ 로 전해진 것이다. 그러나 1985년은 행동의 시 대였고 피의 시대였다. 그의 노래를 가까이하기에는 엄혹한 때였다. 행동은 하지 않으면서도, 그런 핑계 로 그의 노래는 또 시나브로 잊혔다. 1996년, 다시 그의 노래를 만났다. 변화한 상황에서 이루고자 노력했던 가치와 민중성을 어떻게 노래 로 담아낼 것인가를 고민하며 1991년에 발표한《아, 대한민국》 과 1992년에 발표한《92년 장마, 종로에 서》 , 두 장의 음반을 한참 지난 후에야 접하게 되었다. 내 관심이 멀어진 탓도 있었지만‘가요 사전심의 철 폐’ 를 외치며 비합법적으로 낸 음반이 합법적인 공간만을 알던 순수한(!) 시민인 나에게 오는 길이 쉽지 않았던 탓이 더 크다 하겠다. 이때가 그의 노래를‘시’ 가 아닌 노래로 처음 받아들였던 때가 아닌가 싶다. 비로소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음악인 정태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음반 타이틀이자 첫 곡인 <아, 대한민국>은 천둥 같은 울림으로 내게 다가왔다. 마지막 트랙인 <우리들 세상>까지 듣고선 나는 그저 멍하니 있었던 것 같다. 정태춘의 노래는 내 슬픔과 기쁨을 어루만지는 수준 을 넘어‘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이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라 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노래의 힘으로 세상을 조금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라며 꽃다지에 들어가겠 다고 작정하던 때여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 대한민국>은“노래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겠 어요” 라는 내게“하던 사람도 그만두는 끝물에 네가 무얼 하겠다고 그러냐? 아서라” 라고 힐난하던 사람들 이 주던 불안감을 잠재우고‘네가 선택한 길은 해볼 만한 일이야’ 라는 확신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괜찮은 몫을 하는 가수’정태춘 1997년 초여름에 드디어 그를 직접 만났다. 꽃다지 신입이었던 내게 민중가요 월간지《꽃사람》 에 실을 ‘정태춘 인터뷰’ 를 취재해 오라는 업무가 맡겨진 덕이었다. 그가 13년 만의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친 직후
<아, 대한민국>은“노래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겠어요” 라는 나를 힐난하던 사람들이 주던 불안감을 잠재우고‘네가 선택한 길 은 해볼 만한 일이야’ 라는 확신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삶과 문화 123
였다. 콘서트 소회를 묻는 내게 그가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람들과 어떻게 만날 것이냐를 고민하면서, 그동안 우리에게 관심을 보여준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는 생각으로 준비했다. 너무 많은 분들이 와 주셔서 고맙다. 또 생각지 못했던 의외의 대중들을 만 날 수 있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여러 계층의 다양한 관객을 보면서‘국민가수’ 라는 말을 떠올렸다. 진정 한‘국민가수’ 라고 불리려면 국민의 삶의 모습을 진실하게 투영해야 한다. 나는 그런 거창한 것보다는 그 냥 괜찮은 몫을 하는 가수가 되고 싶다. 내게 그런 몫을 할 수 있는 예술행위 기반이 조금 있다고 생각한 다. 허위의식에 의해 흠모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집 아저씨처럼 함께 사는 시민의 모습으로 아껴주는 분들 이 있다는 사실을 이번 콘서트에서 확인했다. 그분들께 감사드린다.”
과잉되지 않은 담담한 태도에서 그의 결기를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영원히 우리 곁에서 든든한 선배 로 노래할 거라는 믿음이 생겨서 좋았다. 그러나 그는 2002년 대추리 싸움에서 진 후 오랫동안 노래를 멈 추었다. 그 무렵 그는“시대가 좋아졌으니 투쟁적인 노래는 그만하라” 는 사람들에게“시대가 좋아졌느냐?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냐? 더는 할 말이 없다” 라고 일갈하더니 정말로 노래를 멈추었다. 노래를 멈춘 그에게 잠시 화가 나기도 했다. 간혹 속으로 투덜거리기도 했다.“대추리 싸움 이전에도 이 땅에는 쫓겨나는 사람이 있었고 대추리 싸움 이후에도 도처에서 사람들이 쫓겨나고 있는데 형은 마치 세상 다 끝난 것처럼 말하네요. 여전히 싸워야할 게 많다고요. 어디 가시는 거예요?”아마 내 꿈이 잠시 흔 들릴 때, 흔들리지 않는 꿈을 가진 선배 한 사람이 간절했는지도 모르겠다. 객기 섞인 호기를 부리며 새로 운 우리들 세상의 꿈을 장담하기에는 살아온 날이, 활동한 날이 너무 많은 나이. 그래서 더욱, 바람막이가 되어줄 선배 한 사람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걸 모른 체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를 원망이라도 하며 짐을 덜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떠났다고 지레짐작하고 있던 그 기간에 정작 그는 다른 것을 만들 었다고 한다. 사진을 찍고, 붓글씨를 쓰고, 시를 쓰고, 가죽 바느질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2012년《바다 로 가는 시내버스》 를 발표했다. 《92년 장마, 종로에서》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 이 석 장의 음반은 80년대 에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꿈을 꾸는 젊은이였던 이들에게 그가 보내는 편지였다고 했다.“이 땅의 순정한 활동가에게 바치고 싶다” 며 보낸 그의 편지 세 통. 비록 당신에게 직접 건넨 편지는 아닐지라도 한 번 귀 기울여보지 않겠는가? 당신은 단박에 그의 편지가 당신에게로 향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지 않을 까? 우리는 아직도‘아! 대한민국’ 이 아니라‘아, 대한민국’ 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의 네 번째 편지를 기다리고 있다. 10년에 한 번씩 전해준 편지였으니 이제 8년 남았다.
우리는 아직도‘아! 대한민국’ 이 아니라 ‘아, 대한민국’ 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124
아, 대한민국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사랑과 순결이 넘쳐흐르는 이 땅 새악시 하나 얻지 못해 농약을 마시는 참담한 농촌의 총각들은 말고 특급호텔 로비에 득시글거리는 매춘 관광의 호사한 창녀들과 함께
정태춘 작사·작곡·노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기름진 음식과 술이 넘치는 이 땅 최저임금도 받지 못해 싸우다가 쫓겨난 힘없는 공순이들은 말고 하루밤 향락의 화대로 일천만원씩이나 뿌려대는 저 재벌의 아들과 함께 우린 모두 풍요롭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만족하게 살고 있지 않나 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공화국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저들의 염려와 살뜰한 보살핌 아래 벌건 대낮에도 강도들에게 잔인하게 유린당하는 여자들은 말고 닭장차에 방패와 쇠몽둥이를 싣고 신출귀몰하는 우리의 백골단과 함께 우린 모두 안전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평화롭게 살고 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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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접으며
법이라는 최종심급 박권일 기관지위원,《88만원 세대》공동저자
2014년 11월 13일은 쌍용차 해고자들과 가족, 그리고 쌍용차 투쟁에 힘을 보탠 많은 이들에게 참으로 끔찍한 날이었다. 이날 대법원은 쌍용차해고노동자들이 낸 해고무효확인 소송을 파기환송했다. 즉, 회사 는 정리해고를 회피하려는 노력을 다했으며 따라서 정리해고는 합리적이었다는 판단이다. 이미 여러 매체나 전문가들이 비판하듯, 이번 판결은 문제가 많다. 삶이 벼랑으로 몰린 노동자들, 이미 25명의 목숨을 잃은 해고자 및 가족에 대한 인간적 배려를 애초 대법원에 바라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이 정도로 사측에 유리한 근거들만 고려한 일방적인 결론이 나올 줄은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급휴직 조치 같은 최소한의 자구책도 없이 해고부터 저지른 쌍용자동차 경영진에게, 대법원은 사실상 면죄부를 발급해줬다. 쌍용차는 분명 매출이 감소하는 국면이었던 건 맞지만, 수천 억대의 부동산이 여전히 남아 있었고 신 차생산 계획도 이미 잡혀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회사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일 방적인 정리해고부터 단행했다. 핵심쟁점 중 하나는,‘실제로 경영상 어려움을 극복할 여러 수단이 있었 음에도 성실히 노력하지 않았다는 문제’ 였다. 고의로 이런 수단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비등했을 정 도다. 이에 대해 항소심은 회사가 정리해고를 최대한 회피하려는 노력이 부족했음을 조목조목 지적한 바 있지만 대법원은 항소심 판단을 거의 대부분 무시했다. 대법원은 사실에 대한 확인이 아니라 법리적 판단 을 하는 곳임에도 항소심서 이미 확인된 사실을 굳이 뒤집으며 개입했던 것이다. 월권적 행위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것은 그 때문이다. 이 판결 하나가 쌍차 투쟁에 뼈아픈 타격임은 분명하다. 들인 노력에 비해 잃은 게 너무 크다. 판결 내 용을 납득하고 하지 않고를 떠나서, 모종의 회의감이 밀려온다. 사법부에 노동과 자본이라는 사회모순에 대한‘최종심급’ 의 판결을 요청하고 그것에 좌지우지되는 현실이 과연 옳은 걸까? 비단 쌍용차 문제만이 아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2013년 노사관계를 결산하면서“노사쟁점의 사법화” 라는 표현을 썼을 정도다. 나아가 이는 노사관계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사회전반의 문제다. 최근 들어 정치적·사회적 갈등을 법 에 의존하는 경향이 지나치게 확산되고 있다. 사회가 갈등해결능력 자체를 상실했다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다. 그 중심에 정당정치의 기능부전이 놓 여 있다. 정치적 중재와 갈등의 완화과정이 없으니, 사람들은 서로 욕설을 주고받다가 끝내 물리적 폭력 에 이르거나 사법부라는‘데우스 엑스 마키나’ 를 소환한다. 물론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경우,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음에도 문제해결이 안됐기에 사법부에 호소한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정치가 좀 더 제 기능을 하고 있었다면? 만약 노동이 중심이 된 진보정당이 지금보다 강력했다면? 지금 그들의 눈물은 아마 없었을지 모른다. 쓰디쓴 나날들이다. 128
표지 이야기
“이주여성들의 빛나는 친구 ” 이주여성 인권활동가 고명숙 당원 이주여성 쉼터에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거나 성폭력 피해를 당해 들어 온 이주여성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부끄러운 한국사 회의 얼굴을 비추고 있는데, 때로는 언어가 서툴러서, 때로는 정보가 부 족해서, 때로는 이주민을 대하는 차별적인 사람들 때문에 이중, 삼중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고명숙은 쉼터에서 이 여성들을 폭력으로부터 보 호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필요로 하는 가해자 처벌, 아이 양육, 자립에 필 요한일까지도지원하고있다.
미래에서 온 편지 제15호 발행인 이용길 편집인 이장규
“새누리당이 정말 잘한 거 한 가지는 이자스민을 내세운 거예요. 아무래 도 폭력 피해 여성에 더 관심을 갖는단 말이에요. 그걸 해주는 건 정당 밖 에 없어요. 이 사람들의 목소리가 좀 더 나타난다면 더 다양한 정책들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걸 부문위원회에서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노 동당에 이주민위원회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죠. 좀 더 그들의 힘을 모아 줄수 있는 데가진보정당밖에 없다고생각했어요.” 고명숙이 힘을 냈으면 좋겠다. 이주여성들에게 욕조차 스스럼없이 내지
조윤호 최백순 홍원표 교 열 노정 장석준 정정은 최백순 디자인 고미숙
등록일 2013년 6월 11일 (등록번호 영등포, 라00407) 발행일 2014년 11월 26일 주 소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 664 한흥빌딩 2층 노동당 전 화 02) 6004-2006, 2007
르며 그들의 친구로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또 몇이나 되겠는가. 오랜 세월,
팩 스 02) 6004-2001
고통 받고 소외 받는 이주여성들의 친구이길 자처하며 걸어온 길이 진보
이메일 laborzine@gmail.com
정치로 이어지고, 다시 또 정치가 이주여성들의 삶을 바꾸는 힘이 되기를
홈페이지 www.laborparty.kr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는 여자 고명숙의 파이팅이 지역과 정치에서 활짝
인 쇄 인천시 계양구 계산동 973-15 원일컴
피는진보정치의봄날이진정 왔으면좋겠다. *고명숙 당원 인터뷰 전문은 70~78쪽 <여성진보정치 열전>에서 볼 수 사진 : 정정은 편집부장
위원회 김건담 김성현 노정 박권일 장석준 정정은 정철수
있습니다.
가격 10,000원
2014. 12
제15호
2014.12
미리 보는 정책당대회
www.laborparty.kr
값 10,000원
미리보는정책당대회
특집
기획 ■ 2014년 6대 미스터리 숨은 문화예술 당원 찾기 ■ 언저리의 중심에 선 자립음악가, 단편선 "올바름과 좋음과 기쁨을 경험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