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제21호
2015.6
2017, 대선이 다가온다
www.laborparty.kr
값 10,000원
특집
2017, 대선이 다가온다 기획 ■ 위기의 진보정치, 노동당의 향방은? 숨은 문화예술 당원 찾기 ■ 만화가 황혜준 쥰짱, 본격의 삶을‘지대로’살아가는 청년
표지 이야기
만화가 황혜준
쥰짱, 본격의 삶을 ‘지대로’살아가는 청년 “본격적인 삶의 시작이 있을 거 같은데, 지금은 임의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만화가가 되고 싶으냐는
미래에서 온 편지 제21호 발행인 나경채 편집인 이장규 위원회 김건담 김성현 박권일 백시진 장석준 정정은 정철수
조윤호 최백순
질문에는 대답을 못하겠어요. 어떤 내용의 만화를 그리고 있
교 열 노정 오승준 정정은
냐고물으면대답할 수있지만요.”
디자인 고미숙
본인은 임의의 삶을 사는 것 같다고 하지만,‘쥰짱’황혜준
등록일 2013년 6월 11일 (등록번호 영등포, 라00407)
당원은‘지대로’본격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진지한 고민과 자기성찰, 자기 부감으로 자기 삶의 완결성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생각 없이 살다보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지만, 쥰쨩은사는대로 생각해도되는삶을 살고있다.
발행일 2015년 5월 26일 주 소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 664 한흥빌딩 2층 노동당 전 화 02) 6004-2006, 2007 팩 스 02) 6004-2001 이메일 laborzine@gmail.com 홈페이지 www.laborparty.kr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 황혜준 당원의 인터뷰 전문은 110~117쪽 <숨은 문화예술 당원 찾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인 쇄 인천시 계양구 계산동 973-15 원일컴 가격 10,000원
미래에서 온 편지
‘ 미래에서 온 편지’ 는 영국의 사회주의 사상가이자 작가, 미술가인 윌리엄 모리스가 1891년에 낸 소설 제목
News 『News from Nowhere』 을 우리말로 의역한 것입니다. from Nowhere
nowhere는 ‘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 이라는 뜻입니다. ‘ 유토피아’ 라는 말의 원래 의미도 ‘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 이라고 하지요. 이제 노동당의 기관지에 ‘ 미래에서 온 편지’ 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한국 사회의 답답한 현재에 햇살을 들이는 미래의 틈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러고 보니 nowhere는 now+here(지금 여기)이기도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미래가 되기 위해, 이 편지를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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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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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띄우며 어려워도, 생각과 실천을 멈출 수는 없다|<미래에서 온 편지>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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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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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 노동당 ■ 2015 노동당 당협위원장 워크샵 후기 지역정치의 어려움, 함께 고민해요|양동석
특집 ■ 2017, 대선이 다가온다 12 2년 반이나 남았다? 2년 반밖에 안 남았다|김민하 18 김무성, 과연 새누리당 3기 집권의 희망인가|장석준 24 사면초가 문재인에게 필요한 건|양솔규 30 박원순, 세 번째 박 대통령 되나|조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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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진보정치 열전 10|정당과 협동조합을 넘나드는 활동가 안상연 “삶도 운동도, 나의 필요로부터” |이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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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르포 물러설 수도, 물러설 곳도 없는 이곳은 낭떠러지 끝|서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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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포럼 최저임금과 공적연금‘슈퍼갑’재벌·대기업들이 더 부담해야|조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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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을 논평하다 CCTV는 불안을 먹고 자란다|황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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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현장에서 광주를 광주답게|박상욱
2015년 6월 제21호
·목차
기획 ■ 위기의 진보정치, 노동당의 향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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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이기고 싶다는 욕망을 조금 더 불태워 달라는, 쉽지 않은 이야기|김경미
41
을지로의 빅텐트를 찢기 위해 광장으로|홍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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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함을 끝내고 명확한 길을 가자|구형구
51
노동당의 길로 한 걸음씩 전진하자|김성수
먼 좌파 이웃 좌파⑮ 유럽 신생 좌파 바람의 또 다른 줄기,
슬로베니아 연합좌파|장석준 92
빨간 도시교통 이야기 자가용 중독 사회 이대로 둘 것인가|김상철
98
연속기획 한국 대학 체제의 형성⑥
1990년대의 교육 개혁 담론|김예찬
삶과 문화 102
오덕칼럼 보드게임 한 판! 깔깔대다보면 속마음도 보인다|최경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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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로 보는 한국언론 추측 반 소설 반, 오보가 태반인 북한 보도|조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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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문화예술 당원찾기 만화가 황혜준
쥰짱, 본격의 삶을‘지대로’살아가는 청년|최윤정 118
불온한 서재 비극을 마주하고, 기억하고, 그 기억을 남기는 것|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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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민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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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파견의 품격?|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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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접으며 황당하게 끝난‘잔혹 동시’논란|박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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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띄우며
어려워도, 생각과 실천을 멈출 수는 없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는 폴 부르제의 경구가 있습니다. 관성이나 기존의 경험은 그만큼 사람들의 생각을 좌우합니다.‘지금껏 그래 왔으니까 앞으로 도 그렇겠지’ ‘내가 해봐서 아는데 결과는 뻔해’그간의 관성이나 경험만으로 판단하려는 경 향은 진보적인 사람들조차 예외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간의 관성이나 경험만이 절대적이라면 한국, 아니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진보정 당의 성장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익숙하고 손쉬운 판단을 뛰어넘어 새로운 길을 찾으 려는 치열한 노력이 진보의 핵심입니다. 상황이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그 어려움을 극복할 길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지금의 자리에서부터 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 실천하지 않으면, 이는 진보라는 이름에 관계없이 실제로는 정체와 퇴행을 의미할 뿐입니다. 생각과 실천을 멈추지 않는 태도야말로 진보의 처음이자 끝입니다.
이번호 특집은 잠재적인 대권주자와 그 주변세력에 대한 분석입니다. 2년 반이 넘게 남은 대선에 누가 나올지 뭘 벌써부터 생각하느냐고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특히 한 치 앞을 내다보 기 어려운 한국정치라면 더욱 그렇다고 말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대선에 대해 생각하고 우리가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 해야 합니다. 2년 반 후도 생각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생각을 멈추는 일입니다. 기획 또한 재보선 이후의 진보정치의 전망에 대해 당내외의 다양한 입장을 반영하여 다루 었습니다. 각 입장의 사람들이 늘 하던 이야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 은, 그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이 다시 생각하는 것입니다. 늘 듣던 뻔한 이야기라고 쉽게 판 단하지 마시고, 무엇이 과연 우리가 나아갈 길인지 끊임없이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마침 6.28 당대회라는 중요한 일정을 앞두고 있는 만큼 더더욱 그렇습니다.
6월은 87년 유월민주항쟁이 있었던 달입니다. 그 항쟁의 결과, 지금의 제6공화국 이른바 ‘87년 체제’ 가 성립되었습니다. 87년 체제를 뛰어넘어,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 데 우리 노동당 이 가장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 공화국을 우리가 만들어 갑시다. 2015. 5. 26 <미래에서 온 편지> 편집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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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모집 우리는 길을 내는 사람들입니다. 노동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 사람과 자연이 공존 가능한 지구생태계, 차별과 소외 넘어 모두가 평등한 세상, …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밑그림을 그려나가면서 없는 길을 만들고, 스스로 길이 됩니다. 그래서 노동당의 꿈은 곧 <미래에서 온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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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잡습니다■ 《미래에서 온 편지》2015년 5월호 특집 기사 17쪽의‘농업진흥청’ 을‘농촌진흥청’ 으로, 기획 기사 38쪽의‘새정치민주엽합’ 을‘새정치민주연합’ 으로, 102쪽 <오덕칼럼>의 필자 이름을‘김민하’ 로 바로잡습니다. 더 꼼꼼히 살피지 못한 점, 독자 여러분과 필자께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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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 노동당
지역정치의 어려움, 함께 고민해요 2015 노동당 당협위원장 워크샵 후기 글 : 양동석 조직실장|사진 : 정정은 편집실 부장
지역정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직접 당원들을 만나고 챙겨가며 당협을 운영하 는 일, 주민들과 접촉하고 그들을 조직하며 지지를 확보하고 당세를 늘려가는 일, 지역정치는 당 활동의 가장 일선에서 그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어려움 역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현수막 한 번 시원하게 걸기 어려운 교부금, 홍보물 한 번 뿌리려 해도 쉽게 모이지 않는 일손, 사람 한 명 만나기 부족한 시간, 이런 어려움을 안고서도 지역동네에서 진보정치의 싹을 틔우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3월 진행한 당협기본현황 조사는 지역당협의 절대 수와 운영 역량 등이 감소하고 있음을 확인시 켜 주었다. 당이 당원들과 주민들을 만나는 가장 큰 접점인 당협의 역량 감소는 당뿐 아니라, 의외로 주민 6
들을 만나는 접점이 적은 진보진영 전체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런 고민의 연장에서 노동당은 당협위원장 워크샵을 준비하기로 했다. 우리 당뿐 아니라 진보진영 전 체가 어려움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당장의 해법을 제안하거나 묘책을 제시할 수는 없겠지만, 고민들을 공 유하고 그 논의 과정 속에서 활동의 방향을 다시 한 번 찾아보는 시간을 가져볼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 었다. 또, 다른 지역의 사업 사례들을 통해 소속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사업들을 한 번 더 고민해볼 수 있다 면 지역에서 활동하는 당협임원들을 포함한 당원들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프로그램은 거의 마지막까지도 유동적이었다. 일부 당협위원장들께 서면으로 수요조사를 진행하기도 하고 직접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일방적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형식이 아닌, 최대한 공감대 를 형성하고 함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형식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당일 행사는 지역활동 토크, 지역활동 사례공유, 조별토의로 진행되었다. 지역활동 토크는 강상구 당 대변인이 진행을 맡고 신지혜 고양파주당협위원장, 이원희 마산당협위원장, 최복준 관악당협위원장이 패 널로 출연했다. 상대적으로 경험이 많거나 활발한 활동을 하는 분들이라 당협활동의 목표, 당원참여를 이 끌어내는 방법, 재정확보 방안 등에 대해 경험을 토대로 한 많은 얘기들이 오갔다. 활동 목표, 진행 중인 사업, 당원참여를 이끌어내고 재정을 확보하는 방법에 있어 각 당협은 저마다 다양하고 다른 의견을 내놓 았다. 이는 우리가 아직 지역활동과 지역정치의 전형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각 지역이 처 한 조건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대응, 다른 전략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지역이라 는 진보정치 일선에서 성과를 내고자 하는 고민들이 충분히 엿보였다. 지금+여기 노동당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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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1. 손은숙 전 은평당협위원장 2. 김기홍 경기도당 위원장 3. 장태수 대구 서구의원 4. 이성준 경남 마산 당원 5. 워크샵이 끝난 후 단체사진
객석에서도 다양한 반응과 질문이 나왔는데“재정문제는 결국 활동당 원들이 더 부담하는 방향일 수밖에 없다” “단순히 당원참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뜻을 같이할 세 명이 지역에 필요하다” 와 같은 답은 지역활동의 경 험과 그동안 견뎌왔던 풍파를 그대로 느끼게 하는 대답이었다.
지역사업 사례공유는 다른 지역에서 어떤 사업을 진행했는지를 듣는 시간으로 마련했다. 세 분의 전·현직 당협위원장께서 사례공유를 해주셨 다. 김일웅 강북당협위원장이 주민사업과 주민조직이라는 주제로, 손은숙 전 은평당협위원장은 원외정당의 구정감시를, 장태수 대구 서구의원은 동 네 선거 어떻게 준비할까를 주제로 준비를 해주셨다.
김일웅 위원장은 1인 정치자영업자의 비애를 안고도 강북지역에서 여 러 주민사업과 조직을 해나갔던 얘기를, 손은숙 전 위원장은 단순한 구정 감시 활동을 넘어 그것을 통해 주민을 만나고 조직한 경험을 얘기해 주셨 다. 대구에서 3선에 성공한 장태수 의원은 대구라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비 애를 들려주는 동시에, 대구에서 3선을 할 수 있었던 저력도 알게 해주었
진보정당이 지역에서
다.
성과를 만들어내려면
이야기를 듣는 동안 때때로 강의실 안이 숙연(?)해질 만큼, 진보정당이
얼마만큼의 노력을
지역에서 성과를 만들어내려면 얼마만큼의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해야 하는지, 이야기
시간이었다.
를 듣는 동안 때때로
저녁을 도시락으로 먹고 곧이어 조별토의를 시작했다. 총 5개 조로 나
강의실 안이 숙연(?)
눠 각기 다른 장소에서 토의를 진행했는데, 그 중 한 조는 20~30대 청년
해졌다.
들로 구성했다. 기존의 관성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토의를 진행하시 라는 의도였다. 주제는 1부 지역활동 토크에서 다룬 당원참여 활성화 방안, 재정확보 방안, 활동가양성 방안 등 당협 운영/활동 과제에 대한 해법이었다. 토의 시간은 1시간을 배정했는데 그보다 시간을 훨씬 넘긴 뒤에야 모든 토의가 끝났다. 조별로 논의내용을 발표했는데 많은 의견들이 나왔다.“자주 연락하고 많이 만나는 것이 지역당협 조직의 기본” “활동으로 당원들을 늘리고 당비 와 후원을 늘려야” “중앙당이 전략을 잘 세워 지역당협을 이끌어가야”알 지금+여기 노동당 9
지만 잘 실천하기 어려운 것에서부터 중앙 당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주문하는 의견까 지 다양한 해법들이 나왔다. 다양한 지역의 임원, 활동당원들과 함께 논의하는 시간 속 에서 그 결과뿐 아니라 과정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시작할 때에는 자리가 듬성듬성 비어 있 었지만, 행사 중간에는 의자를 더 가져와야 할 만큼 많은 분들이 오셨다. 그만큼 당협 위원장을 포함한 많은 당원들이 지역활동 에 대한 여러 고민과 과제를 안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지역 당협 활동 문제에 있어 당장의 해법이나 모 범답안을 내기는 어렵다. 이번 당협위원장 워크샵 역시 해법보다는 고민과 과제를 더 많이 공유한 시간이었다. 이날 나온 많은 얘기들을 하나의 토대로 삼아 지역활동 지
해법보다는 고민과 과제를 더 많이 공유한 시간
원을 위한 다음 단계를 만들어가야 하는 과 제가 주어졌다는 생각이다.
이었던 만큼, 이 날 나온 많은 얘기들을 하나의 토대로 삼아 지역활동 지원을 위한 다음 단계를 만들어가야 하는 과제가 노동당에 주어졌다.
진보정당, 특히 우리 같이 작은 정당이 라면 거리에서, 동네에서 주민들을 만나고 조직하는 당협활동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일선에서 애쓰고 계신
당협위원장, 임원, 활동당원들의 노고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지지고 있다. 이번 워크샵이 지역활동을 하 는 데 있어서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울러 당협위원장을 비롯한 지역 활동당원, 그리고 더 나아가 지역뿐 아니라 다른 영역의 일선에서 활동 중인 당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워크샵을 정례화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다. 서로의 활동과 새로운 내용, 주어진 과제를 공유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것은 매번 필요한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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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17, 대선이 다가온다 ‘세 번째 새누리당 대통령’ 의 당선을 점치는 불길한 예언이 여기저 기서 들린다. 문제는 그다지 황당무계하게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다. 거대야당은 내홍에 휩싸였고, 진보정치는 절멸의 위기에 처했 다. 2년 뒤 우리는 누구를 새로운 대통령으로 맞이할까? 그리고 진 보정치는 어떤 모습일까?
특집 2017, 대선이 다가온다 11
특집 / 2017, 대선이 다가온다
2년 반이나 남았다? 2년 반밖에 안 남았다 “대선은 2년 반이나 남았다” 는 핑계를 대다 그때 가서 허둥지둥하는 것은 최악의 수다. 이미 형성된 대권구도의 흐름 속에서 우리 자신의 역할을 정립하고 노선을 제출해야 한다.
김민하 <미디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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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이른 대권주자 이야기에 고개를 갸우뚱할 독자들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대선은 앞으로 2년 반이 남 았다. 정치평론가들의 말을 빌자면‘조선왕조 500년’ 의 시간이다. 지금 대권주자로서 유력해 보이는 정치 인도 2년 반 뒤에는 어떤 처지에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이런 판국에 새삼 대권주자들에 대해 논 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지금 시점에 이런 논의가 제기되는 이유는 두 가지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박근혜 대통 령의 임기 반환점을 향해 달려가는 이때에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양자의 갈등 구도로 대표되는 상 층고공정치가 대권주자를 중심으로 짜여간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경우 김무성 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 의 경우 문재인 대표가 일종의 양강구도를 형성 중이다. 당대표와 유력 대권주자를 겸하는 두 사람의 주 위에 정치적 인력(引力)이 강하게 형성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대권주자로서의 두 사람에 대 해 논하지 않으면 현재의 정치구도를 완전히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
여당과 청와대의 핑퐁게임 당대표와 대권주자를 겸하는 이 두 사람의 특이한 포지션 때문에 발생하는 대표적인 상황으로는 당청 관계와 계파갈등의 문제가 있다. 이 중 당청관계에 대한 문제는 최근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한 여야합의안 을 청와대가 사실상 뒤집으면서 다시 한 번 불거졌다. 요컨대 김무성 대표가 나름의 정치력을 발휘해 합 의안을 만들었으나 이를 청와대와 친박 직계 정치인들이 뒤집는 결과가 나온 데에는 공무원연금 개혁안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도 있지만,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입지와 당권을 모두 거머쥔 김무성 대표의 존재감 이 더 커져서는 안 된다는 청와대의 판단이 작용했다고도 볼 수 있다. 사실 당청관계에 대한 문제는 김무성 대표가 서청원 의원을 이기고 당권을 장악하면서부터 제기됐다. 김무성 대표가 당선됐을 때, 직후 치러진 재보궐선거를 김무성 대표가 승리로 이끌었을 때, 비주류로 분 류되는 유승민 원내대표가 탄생했을 때, 김무성 대표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천만 원을 받 았다는 의혹을 받던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퇴를 대통령에게 사실상 요구했을 때
대통령의 임기 중에 여당 소속의 유력 대권
등의 시기에 언론들은 언제나 어김없이
주자가‘자기정치’ 를 시작하면 국정운영 동
당청관계의 축이 당으로 기울어졌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의 임기 중에 여당 소속의 유력 대권주자가‘자기정치’ 를 시작하면 국정
력이 유실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박근 혜 정권의 입장에서는 김무성 대표를 일정 부분 견제할 수밖에 없다.
운영 동력이 유실되는 것은 정해진 수순 이다. 따라서 박근혜 정권의 핵심 세력들은 김무성 대표를 일정 부분 견제할 수밖에 없고 이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이라는 정권의 양대 축이 서로 핑퐁게임을 벌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 게임에서 아직 임기 반환 특집 2017, 대선이 다가온다 13
점도 돌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가 일단은 우위를 보이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김무성 대표에 게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다. 박근혜 정권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세 가지 방법을 전망해볼 수 있다. 첫째는 김무성 대 표와 대적할 만한 친박 직계 대권주자를 키워서 김무성 대표를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안대희 전 국무총리 후보자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그야말로 화려하게 낙마를 함으로써 사실상 물 건너 간 얘기가 되고 말았다. 두 번째 방법은 과거 신한국당 구룡(九龍)을 연상시킬 만큼 다수의 대권주자들이 출현해 일대 지각변동 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권주자의 입지를 둘러싼 당내 경쟁 속에서 김무성 대표의 기득권이 일정 부분 허물어지는 결과를 바랄 수 있게 되고, 이를 통해 박근혜 정권은 국정운영 동력을 시한부로나 마 안정적으로 확보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러한 구상이 작동한다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남경필 경기도지사, 유승민 원내대표 등이 수혜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 세 번째 방법은‘이명박-박근혜’ 의 예처럼 김무성 대표와 평화적인(?) 정권이양을 위한 신사협정을 체 결하는 것이다. 이 경우 김무성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을‘성공한 대통령’ 으로 만들기 위해 협조해야 할 것 이고 박근혜 대통령은‘공정한 대선 경선 관리’ 를 약속해야 할 것이다. 이 세 가지 경우의 수에서 어느 쪽 이 현실화 되느냐에 따라 무상복지 정책이나 경제민주화, 야권과의 연정 등의 이슈가 춤을 추게 되리라는 점은 설명할 필요도 없다.
새정치 계파갈등의 점화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 4.29 재보궐선거 이후 본격화된 계파갈등의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역 시 대권주자로서의 입지와 당권을 모두 거머쥐고 있는 문재인 대표의 정치적 위상으로부터 문제가 시작 된다. 4.29 재보궐선거의 최대 이변은 광주 서구 을 선거구에서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당선된 것이라 할 만한다. 광주는 새정치민주연합의‘심장’ 과 같은 곳이고 전통적인 의미에서 제1야당의 정치적 발상지이 기도 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었다는 것 자체가 상층고공정치에서는 그야말로 큰일로 다뤄질 수밖에 없다. 특히 천정배 후보가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후보와의 경쟁에서 박빙 승부를 벌인 것이 아니라 과반이 넘 는 득표를 점하며 국회에 입성한 사실은 단지 천정배라는 정치인을 매개로 한‘바람’ 만이 이러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보기는 어렵단 결론을 내리게 한다. 실제로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치적 기반을 제공해야 할 조 직이 흔들리고 이탈하는 현상이 나타나고야 만 것이다. 이런 현상은 문재인 대표에 대한 새정치민주연합 호남지역 조직의 거부감으로부터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거부감은 참여정부에서 자신들이 정치적 소외를 당했다는 감정적 앙금과‘영남 사람’ 으로서 문재인 대표가 이 문제의 해결에 소홀하다는 점에서 표출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야 14
온갖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에 조력하기라도 한 사람이지만 문재인 대표는 해준 것 도 없으면서 호남지역이 정치적 뒷받침을 해주기만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광주의 이런 분위기가 재보궐선거 결과를 통해 문재인 체제에 그야말로‘옐로우 카드’ 로 작용하였다 면, 정청래 최고위원의 실언으로 시작된 새정치 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봉숭아 학당’사태는 언
정청래 최고위원의 실언으로 시작된
론을 통해‘친노-비노’갈등으로 표현되는 본격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봉숭
적인 계파갈등의 서막을 열었다. 정청래 최고위 원의‘공갈’발언에 그‘공갈’ 의 장본인인 주승용
아 학당’사태는 언론을 통해‘친노-
최고위원이 사퇴를 표명하고 여수에 칩거를 하면
비노’갈등으로 표현되는 본격적인 계
서 이 사태가 시작됐지만, 본질은 당권과 대권주
파갈등의 서막을 열었다.
자로서의 입지를 모두 장악한 문재인 대표에 대 한 비주류의 2016년 총선에서의 공천 쟁취 투쟁에 가깝다. 새정치민주연합 비주류들은 당권과 유력 대권 주자를 친노진영이 거머쥔 판에 공천마저도 이들 마음대로 하리라는 우려를 갖고 있지만 이러한 상황을 둘러싼 논란이 고질적인 계파갈등으로 비춰지는 상황에서 이를 표현할 기회가 없었는데, 마침 정청래 최 고위원이 울고 싶은 사람들의 뺨을 때려준 셈이다. 이제 사태는 문재인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주류와 김한길 의원, 안철수 의원, 이종걸 원내대표 등이 대 변하는 비주류가 총선을 기점으로 어떤 형태의 권력투쟁을 벌이느냐의 문제만 남은 셈이 됐다. 여기서 누 가 어떤 방식을 통해 승리하는가에 따라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책적 지향과 총선 및 대선에서 진보정당들 과의 선거연대에 대한 입장이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이 계파갈등의 승자는 문재인 대표나 안철수 의원, 그도 아니면 박원순 서울시장이 될 가능성이 지금으로서는 높다. 이렇게 승리한 사람이 2017년 대선이라 는 최종 승부에서도 역시 승자가 될 수 있을지는 그 다음 문제다. 이렇게 현실정치에서 움직이는 대권주자들의 문제는 이후의 상층고공정치를 전망하는 데 중요한 근거 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보수정치에서의 대권주자들과 이들의 운명에 영향을 받을 총선과 대선 을 걱정하는 것은 단지 정치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하는 문제의식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이 것이 우리가 지금 이 시점에 대권주자들에 대한 논의를 해봐야 하는 두 번째 이유다.
또 다시 기로에 선 진보정치 진보정치세력은 대선을 기점으로 급격한 조직적·노선적 변화에 휩싸인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 1987년 대선에서 백기완 선생의 출마와 사퇴는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위한 후보전술의 필요성과‘민주 화’ 의 진전이라는 대의가 타협한 결과였지만, 결국 당시 운동세력의 다수였던 제헌의회파(CA)에서 소수 파가 분리되는 빌미 중 하나를 제공하고야 말았다. 당시 다수파는 민족해방파로 전향했고 소수파는‘남한 특집 2017, 대선이 다가온다 15
사회주의 노동자동맹 준비위원회’ 를 결성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어진 1992년 대선은 민중당 실 험의 실패 이후‘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를 외치며 1987년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백기완 후 보의 완주를 고수함으로써 지금까지 진보정당에 몸담고 있는 많은 활동가들의 정신적 지지대가 되고 있 다. 1997년 대선은 1996년 노동법 개악 투쟁으로 집약된 노동운동의 성과와 그때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진보정당운동 세력의‘총결산’ 을 시도했다. 이 선거에 출마한 권영길 후보는 약 30만 표를 득표함으 로써 진보정당에 기반을 둔 진보정치를 영향력 있는 방식으로 실현하지 않고서는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줬다고
진보정치세력은 대선을 기점으로 급격한 조직적·노선적 변화에 휩싸인 역사적 경 험을 갖고 있다. 노동당의 정계개편 시나 리오 또한 진보정치의 역사적 경로라는 점에서 총괄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평가할 만하다. 2002년 당시 노무현 후보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뚫고 95만 표를 얻은 권영길 후보와 2만 표를 득표한 김영규 후보, 2007년 야권 후보의 난립으로 인한 지리멸렬 속에서 71만 표를 득표한 권영길 후보와 1만8천 표를 득 표한 금민 후보 등의 존재 역시 시기마다 요
구됐던 진보정치의 과제를 해소해나가는 하나의 기점이 됐음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노동당은 4자연대를 기본적 틀로 진보정치세력들을 대상으로 한 정계개편(진보결집)을 시도하고 있다. 이 과정은 대권주자들이 좌우하는 상층고공정치의 맥락에 더해 위에 서술한 진보정치의 역사적 경로라는 점에서 총괄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그간의 경험으로 보건대 결국‘진보결집’ 의 성패는 1차적으로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잇는 정치 일정 속에서 판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수야당이 대권주자를 중심으로 한 사분오열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진보정치세력 역시 이와 연동된 인적 구성의 영향력을 고려해야 하는 상태다. 4.29 재보궐선거에서 서울 관악구 을에 출마해 20.1%의 득 표로 3위를 기록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진로 문제가 그 예다. 보수언론 등에서는 정동영 전 장관의 정치인생이 이미 끝난 양 보도하고 있으나 4자연대가 유지되고 이를 통한 진보결집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 을 하게 되면 2017년 대선에서 그가 어떤 역할을 다시 맡아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 장이 없다. 정동영 전 장관 본인은“내가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은 버렸다” 고 주장했으나 4.29 재보궐선거 와 같은 상황이 2017년 대선에서도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나 노회찬 전 대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도 판 이 벌어지면 진보정치세력의 대표적 인물로 거론되고 행보를 거듭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이렇게 다양 한 색깔을 가진 인사들이 대권을 놓고 경쟁하게 되면 서로 간의 차이에 민감한 진보정당의 구성원들끼리 도 이후 진로를 놓고 다양한 논쟁을 벌일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의 대선후보로 문재인 대표가 확정되는 경우나 박원순 서울시장이 다크호스(?)로 떠오르는 경우 등은 진보정치세력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해볼 수 있다. 문재인 대표의 경우 정 16
의당 내에서 활동하는 옛 국민참여당 출신 당원들에게 심정적 동요의 근거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고, 박원 순 시장의 경우 그의 당선에 기여했거나 서울시정에 어떤 형태로든 결합하는 활동가들이 흔들리거나 시 민사회 단체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주요 인사들에 의한 원심력이 강력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 불안한 모든 경우의 수를 상정하며 향후의 정계개편에 대한‘불가론’ 을 들먹이려는 것은 전혀 아니 다.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앞서 언급한 대로 이 모든 상황이 진보정치세력의 조직적·노선적 전망에 큰
2017년 대선이 다가오면 유례없는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양한 측면에서 이
정권교체의 열망 속에서 결국 진보
에 대한 나름의 준비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다. 2017년 대선이 다가오면 유례없는 정권교체의 열망 속에서 결국 진보정치세력들은 독자후보를 내 고 완주할지, 보수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할지, 조건
정치세력들은 판단과 선택의 기로 에 서게 될 것이다. 그때 가서 허둥 지둥하는 것은 최악의 수다.
없이 사퇴할지, 능력의 부족으로 주저앉고 말지를 판 단하고 선택해야 할 처지에 각각 놓이게 될 것이다.“대선은 2년 반이나 남았다” 는 핑계를 대다 그때 가서 허둥지둥하는 것은 최악의 수다. 이미 형성된 대권구도의 흐름 속에서 우리 자신의 역할을 정립하고 노선 을 제출해야 한다. 혹여나 패배를 하더라도 준비된 패배를 하는 것과 우왕좌왕하다 목표를 잃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음을 우리는 이미 2012년 대선을 통해 배웠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바로 지금부터 2017년 대선 을 겨냥한 다양한 움직임들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특집 2017, 대선이 다가온다 17
(사진 : 김무성 의원 홈페이지)
특집 / 2017, 대선이 다가온다
김무성, 과연 새누리당 3기 집권의 희망인가 김무성이 실제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돼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다면, 온전히 ‘여의도’정치로 성장한 정치인이 대선에 승리하는 첫 번째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장석준 기관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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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재보선의 최대 승자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는 여당 대선후보군 중 지지 율 1위였지만, 야당 쪽 선두주자를 앞서지는 못했다. 그러나 재보선을 거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그의 지 지율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제치며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대로라면 2017년 새누리당 대선후 보로 김무성 대표 외에 다른 인물을 떠올리기 힘들 것 같다.
이제까지 대선 승리의 조건 - 제도 정치 바깥의‘신화’ 여권 후보군 중 김무성의 독주,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 현상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답하려면, 우선 과거 한국 대선에서 승자의 공통분모가 무엇이었는지 되짚어봐야 한 다. 2002년 대선까지 승자는 여든 야
2002년 대선까지는 민주화운동 지도자들의 민주
든 가릴 것 없이 민주화운동 지도자
투사‘신화’ 가 승리의 핵심 자산이었다. 그 뒤 한
들이었다. 민주투사의‘신화’ 가승 리의 핵심 자산이었다. 이 투쟁 경력 은 제도정치 틀을 넘어서는 것이었 다. 김영삼, 김대중은 유신독재와 신
나라당-새누리당은 또 다른‘신화’ 를 동원해 연 거푸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들 역시 좁은 의미의 정치 바깥에서 끌어온 것들이었다.
군부 때문에 오랫동안 국회를 떠나 있어야 했다. 노무현은 자의반 타의반 제도권과 재야를 넘나들며 성장했다. 민주당-열린우리당-새정치 민주연합은 이런 승리의 조건에 부응하며 10년간 집권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성공의 여파였다. 10년이나 여당으로 행세하고 나자 어제의 민주투사들은 다들 한나 라당 국회의원과 구별이 잘 안 되는 직업정치인이 돼 있었다. 이제 이들에게는 제도정치 영역 말고 다른 무대가 없었다. 그 바깥에서 동원할 수 있는‘신화’ 가 더 이상 없었다. 열린우리당 정치인들은 이를 현실 로 받아들이면서‘그럼에도 불구하고’대선에서 승리할 길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이들은 그 길을 발견하 지 못했다. 바로 이 상황에서 한나라당-새누리당은 정치 바깥의 또 다른‘신화’ 를 동원해 연거푸 대선에서 승리했 다. 이명박 후보는‘성공한 CEO’ 의 신화를 날개 삼아 대권을 향해 날아올랐다. 박근혜 후보는‘산업화 영 웅, 아버지 박정희’ 의 신화를 후광 삼아 청와대를 접수했다. 민주화 투쟁과는 성격이 달라도 아무튼 이들 신화 역시 좁은 의미의 정치 바깥에서 끌어온 것들이었다. 물론 미묘한 변증법이 작동하기는 했다. 제도정치‘밖의’자원이 지지연합을 구축하는 데 핵심이기는 했지만, 이 지지연합이 단단하게 완성되는 데는 제도정치‘안에서’능력을 인정받는 게 중요했다. 이명박 은 서울시장으로서 인상적인 치적을 남김으로써, 박근혜는 정당 지도자로서 몇 차례 선거 승리를 이끌어 냄으로써 이 시험에 통과했다. 이것은 제도정치‘바깥’ 의 무기로만 대권에 도전하려 한 2012년의 안철수 특집 2017, 대선이 다가온다 19
에게는 없었던 요소다. 하지만 어쨌든 이명박, 박근혜에게 정당인으로서의 이력은‘양념’ 이었을 뿐이다.‘주재료’ 는 역시 정당 과 국회 바깥의 신화였다. 이 신화를 바탕으로 이들은 영남+산업화 경험 세대+부동산 소유 계층으로 이 뤄진 중핵 지지집단을 형성했고,‘지속 성장’ 의 약속을 통해 이 지지기반을 다른 지역-세대-계층으로까 지 확장했다. 이 지지연합이 지금도 좀처럼 균열되지 않을 것만 같은 유권자 3분의 1(35% 안팎) 수준의 새 누리당 절대 지지층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제도 정치‘안’ 에서 출발해 대권 도전에 성공하는 첫 사례? 2017년이 되면 새누리당도 어느덧 집권 10년 차가 된다. 이 해에 있을 대선에서 새누리당도 10년 전 열 린우리당이 마주한 것과 같은 상황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기에 한나라당이 마 련한 이명박, 박근혜 카드는 그 역할을 다했다. 다시 한 번 정치권 바깥의 신화‘재벌’ ( )에 기댈 수 있었던 유일한 유력주자 정몽준은 제도정치 내부의 시험
이제 남은 것은 집권 10년 동안 후광은
에서 낙방하고 말았다(2014년 서울시장선거 패배).
없이 때만 잔뜩 묻은 고만고만한 정치
이제 남은 것은 집권 10년 동안 후광은 없이 때만
인들이다. 이런 조건에서 김무성은 다 름 아닌 제도정치 무대를 발판으로 삼 아 경쟁력을 만들고 있다.
잔뜩 묻은 고만고만한 정치인들이다. 과거 열린우리당은 이런 상황에서 당내 정치 인들을 강력한 대선후보로 부각시키는 데 실패하 고 말았다. 오히려 이때부터 저마다 엇비슷한 강 점과 한계를 지닌 정치인들의 할거가 시작됐고,
범민주당 세력은 지금도 이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도 박근혜 정부의 예정된(아니 이미 시 작된) 실패를 마주하며 이런 늪에 빠질 위험이 높다.
김무성의 독주는 역설적으로 이런 조건을 배경으로 한다. 실은 김무성도 제도정치 안에서 그 논리에 적응하며 성장한‘여의도’정치인 중 한 명이다. 김영삼 계열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이력이 있다고는 하 지만, 이것으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기업인의 아들이라고 하지만, 그를 재계인사로 여기는 이들도 없다. 과거 대선 승자들만큼의 이야깃거리가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어차피 김무성 외의 다른 새누리당 야심가들도 다 비슷한 처지다. 이런 조건에서 김무성은 다 름 아닌 제도정치 무대를 발판으로 삼아 경쟁력을 만들고 있다.‘여의도’바깥의 신화가 아니라 정당과 국 회에서의 성공을 대권주자의 이야깃거리로 삼으려 한다. 그리고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게 통하고 있다. 우선 김무성은 당대표로서 새누리당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있다. 여기에서‘안정적’ 이라는 말은 어디까 지나 상대평가다. 새정치민주연합에 비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새정연의 친노파와 비노파가 분당까지 염두에 두며 투쟁을 거듭하는 데 반해 그는 친이계와 친박계를 적절히 조율하며 새누리당이 훨씬 더 단결 20
이 잘 된다는 인상을 심는 데 성공했다. 새정연의 분열이 계속될수록 새누리당의 이런 단결은 더욱 부각 되며, 이것은 고스란히 김무성 대표의 성적으로 합산된다. 더 나아가 김무성은 당과 지지층 사이의 소통에 탁월한 면모를 보인다. 그는 현안에 대해, 그게 새누리 당에 극히 불리한 쟁점일지라도, 수세가 아닌 공세의 입장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끊임없이 모범을 제 시한다. 가령 2013년 말“안녕들 하십니까”대자보운동이 일자 김무성은 자기도 직접 대자보를 써 붙였 다. 이게 이 운동에 참여한 젊은이들에게는 우스꽝스러운 짓으로 보였겠지만, 운동 바깥에서 정국을 불안 한 눈초리로 쳐다보던 이들에게는 통쾌한 맞대응이었다. 또한 그는 한국 사회의 전통과 경험에 비추어 어떤 발언과 행동이 지지대중의 공감을 살지 정확히 안 다. 예컨대 재보선 승리의 순간에 새누리당 대표는 웃음을 참을 줄 안다. 대신 그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새누리당의 승리보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더 중요하다” 는 일성을 토한다. 그의 이러한 모습에서 많은 이 들이, 최소한 새누리당 핵심 지지층은 평소 정치 지도자에게 기대했던 면모를 확인한다. 이런 장점은 특히 재보선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재보선은 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다. 대선과는 비교 도 되지 않는다. 대선이“누가 최대 지지층을 확보할 것인가” 의 싸움인 데 반해 재보선은“누가 핵심 지지 층을 유실 없이 유지할 것인가” 의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김무성은 새누리당을 전투대오로 움직이고 핵심 지지층에게 사기를 불어넣는 능력을 유 감없이 보여주었다. 그래서 이명박, 박 근혜를 거치며 다져진 지지층의 이반을 막으며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 승리는 곧바로 대권주자 경쟁에서 재보선 사령관 김무성의 위상 급상승으
재보선에서 김무성은 새누리당을 전투대오로 움직이고 핵심 지지층에게 사기를 불어넣는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래서 지지층 의 이반을 막으며 승리를 이끌어냈다.
로 이어졌다. 더구나 여당의 승리는 곧 야당의 패배다. 야당 대선 선두주자인 문재인 새정연 대표는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 물론 이 충격은 다시 여당 대선 선두주자인 김무성에게는‘경쟁력’ 의 증거가 된다.
그러나 아직은 모른다 김무성이 실제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돼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다면, 이것은 한국의 대선 정치에 새 막을 여는 일이 될 것이다. 온전히‘여의도’정치로 성장한 정치인이 대선에 승리하는 첫 번째 사례일 것 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2007년에 열린우리당이 실패한 지점에서 새누리당은 그 운명을 벗어나는 데 성 공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대선은 기존 핵심 지지층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는 승리할 수 없는 싸움이다. 가능한 한 최대의 지지연합을 구축해야 승리를 넘볼 수 있는 싸움이다. 또한 특집 2017, 대선이 다가온다 21
(사진 : 김무성 의원 홈페이지)
타당이 지지연합을 넓힐 가능성을 차단하려면, 지난 번 선거에서 구축한 지지연합조차 새 후보를 통해 다 시 다져야만 한다. 이게 대선의 논리다. 재보선에서 발휘된 김무성의 장점이 이러한 대선 전투 지형에서 도 역시 강점이 될지는 미지수다. 여든 야든 김무성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지닌 후보도 달리 보이지는 않 지만 말이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이 점이 못내 불안하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새누리당 자신의 궤적 바깥으 로부터 새로운‘신화’ 를 끌어들여야만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의심과 우려를 떨쳐버리기 힘들 것이 다. 그래서 끊임없이 기성 정치권 바깥에서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이 나타날 것이다. 여당 일각에서 벌써 부터 반기문 UN 사무총장을 대선후보로 영입, 추대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게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말하 자면 새누리당에서 김무성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김문수나 홍준표 같은 동료 정치인이 아니다. 항상 그 의 강적은 아직 정치권 바깥에 있는 누
그는‘관리’ 에 능한 정치인이지‘비전’ 의 인물 이 아니다. 지금껏 그가 높은 평가를 받은 것
군가이다. 또한 김무성 자신의 약점도 작지 않 다. 그는‘관리’ 에 능한 정치인이지‘비
은 주로 이명박, 박근혜를 통해 다져진 지지층
전’ 의 인물이 아니다. 지금껏 그가 높은
을 훌륭하게‘관리’ 했기 때문이다.
평가를 받은 이유는 주로 이명박, 박근 혜를 통해 다져진 지지층을 훌륭하게
‘관리’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선에서 새롭게 최대 지지연합을 구축하자면 그런‘관리’능력만으로는 안 22
된다. 최소한 이명박의‘한반도 대운하(즉, 토목성장)’ 나 박근혜의‘복지-경제민주화(즉, 진보의제의 납치)’ 정도의 비전은 제시해야만 한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김무성의 입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최근 새누리당 안 팎에서 유승민 원내대표가 부각되는 것도 이런 당대표의 한계와 무관하지 않다. 당대표가 채워주지 못하 는 차기 집권 비전을 경제학자 출신인 새 원내대표에서 찾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의 선례 때문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 힘들다는 문제도 있다. 이것은 김무성만의 문제는 아니고 새누리당 전체가 직면한 궁지다. 유권자들은 박근혜 후보가‘복지-경제민주화’ 까지 이야 기해놓고는 집권 후 이를 헌신짝처럼 저버린 것을 이미 경험했다. 따라서 새누리당 후보가 다시‘복지’ 를 꺼내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박근혜 정부처럼‘통일 대박’ 을 내세우는 것도 민망하다. 그렇다고‘성장’ 만 으로 돌파하자니 무기가 취약하다. 김무성 대표가 새누리당 대선후보군 중 선두이다 보니 이런 문제를 가 장 앞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중압감도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가. 김무성은 대통령 후보가 되기보다는 자신이 가장 잘 하는 일, 즉 정당과 국회의 정치가 주된 집권 경로가 되길 더 바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2014년에 김무성이 중국 방문 중에 뜬금없이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제를 검토해야 한다” 고 말한 것은 결코 돌출발언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본인의 자질이 보다 빛을 발할 일본식의 보수파 독점 의원내각제(소선거구제와 병행하면 분명 이렇게 될 것이다)를 내심 바라는 게 아닐까. 이게 어디 김무성만의 속마음이겠는가. 김무성 정도가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마주하며 한국 사회의 지배집단 모두가 이심전심으로 떠올리는 생각이 아니겠는가. 이미 그들에게도 대 통령 선거는 피곤하고 쉽지 않은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지금‘김무성’ 은 이 복잡한 상황과 속내 의 인격화다.
특집 2017, 대선이 다가온다 23
특집 / 2017, 대선이 다가온다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후보 출마 당시 전국대의원대회 에서 연설 중인 문재인 (사진 : 새정치민주연합 홈페이지)
사면초가 문재인에게 필요한 건 배운 대로 하지 않는 것, 익숙한 방식으로부터의 탈피가‘범생이’문재인에게 필요하다. 사회가 보수화되었는데 진보적(?) 정권이 창출될 리 없다.‘장기보 수시대’ 에 문재인을 통해 우리가 돌아봐야 할 지점이다.
양솔규 경남도당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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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이번호 특집은 여야의 대선 잠룡들에 대한 분석이다. 문재인 대표가 현재 가장 유 력한 대권후보라고는 하지만 그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다. 예전에 비해 잠룡이라 불리는 후보들도 적고, 파괴력도 형편없다. 절멸의 위기에 처한 진보정치는 잠룡은 고사하고 의지를 가진 도롱뇽조차 없다. 박근 혜 정권의 레임덕에도 불구하고 아직‘포스트 박근혜’ 는 드러나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대통령 선거가 아직 2년하고도 6개월이 남았고‘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길지’알 수가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문재인 대통령 시대’ 를 예측하고 그려보는 일이 실효성 있는 시도인지 의문스럽다. 쉽게 쓸 수도 있다. 구체적 상황들을 소거해 버린 뒤, 새롭게 탄생할(?) 문재인 정권 역시 신자유주의 정권에 불과할 것이며 이러한 한계 때문에 진보정치 또는 노동당이 열심히 하면 뭔가 의미 있는 초석을 만 들 수 있다는 식의 스토리와 결론 말이다. 우리 당의‘불세출의 저술가’홍기표 동지는 18대 대선을 1년 8개월가량 앞둔 지난 2011년 4월에《보 수 집권 플랜B》 라는 책을 통해 표의 확장성이 높은 김문수(플랜B)가 한나라당의 후보가 되어야 보수 집권 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실은 모든 가정을 비껴갔다. 그만큼 미래 예측은 쉽지 않다. 어차피 실 효성 없는 분석이라면, 대권을 쥘 수 있을 지 불안해 하는 저 사내의 처지를 더욱 동
대권을 쥘 수 있을지 불안해 하는 저 사내의
정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감정이입을 해볼
처지를 더욱 동정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감정
까? 아니, 솔직히 그가 대통령이 되든 안 되든, 후보조차 되든 안 되든 무슨 상관인 가? 다만 현 제1야당의 유력 대권후보 문
이입을 해볼까? 노동당과 진보정치의 현실 을 간접적으로 유추해 볼 필요는 있겠다.
재인에 비춰 지금의 노동당과 진보정치의 현실을 간접적으로 유추해 볼 필요는 있겠다. 문재인에게 노동당의 깃발이 겹쳐지는 이유는 그도 우리만 큼이나 사면초가에 빠진 듯 보이기 때문일 게다.
노무현도 김대중도 아닌, 이문세도 될 수 없는 노무현은 불가능할 것 같았던 당내 경선을 통해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그 후 3개월 뒤 새천년민주당은 6.13 지방선거에서 대패하고 만다. 노무현 불가론이 득세했다.‘후단협’ 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을 뚫고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군사독재정권 시절 형성된 3김정치 이후 최초로 성공한 정치리더십이었다. 이른바‘노빠’ 와‘깨시민’ 은 새로운 유형의 대중이었다. 예술에 대한 격언을 빌 려 표현해보자.“정치에 있어서의 진보가 대중과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창조하는 데에 있다면” 노무현은 바로 그 예라고 할 만하다. 여기‘하나의 장르’ 가 된 정치인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그는 지역감정의 희생양이기도 했지만 호남정치의 총수로서 DJP연합이라는‘지역권력연합’ 을 통해 삼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박정희, 전 특집 2017, 대선이 다가온다 25
2012년 민주통합당 전북도당 대통령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 당시 대통령 후보 출마자로 참석한 문재인 (사진 : 문재인 네이버 블로그)
두환 군사정권에 맞서면서 형성된 호남기반의 강력한 당내 리더십은 이후에는 볼 수 없었다. 1985년 이문세 3집을 통해 작곡가이자 작사가인 이영훈의 페르소나가 된 이문세는 1987년 이문세 4집 《사랑이 지나가면》이라는 시대의 명반을 만들어낸다. 1980년대 중반, 그는 TV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가 수들과는 다르게 라디오와 음반, 공연을 중심으로 한 활동으로 새로운 팬들을‘창조’ 했다. 그랬던 그가 오 랜 공백을 깨고 2015년 새 앨범《뉴 디렉션》을 발매했다. 오래된 그의 팬들은 눈시울을 적시며 감회에 젖 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20년을
문재인은 죽은 노무현의 살아있는 대변자다.
경유하면서 바로 자신이 창조한 대중들
그러나 세월은 견고한 지지층도 모래알처럼
과 함께 나이 먹고, 서로 위로하며 추억
흩뿌린다. 그는 김대중도 아니다.‘선생님의 아우라’ 를 기대할 수 없다. 이문세처럼 팬들과 함께 늙어갈 수도 없다.
을 나눈다. 문재인은‘친노’ 의 수장이다.‘죽은 노무현’ 의 살아있는‘대변자’ 다. 그러 나 세월은 제 아무리 견고한 지지층과 팬심이라도 모래알처럼 흩뿌린다. 사
람들이 향수에 젖는 이유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문재인이 아니라) 노무현이 만든‘새 로운 대중들’ 에게 문재인은‘유일한’대변자도 아니다. 안희정도 있고, 유시민도 있고, 김두관도 있다. 더 26
욱이 그는 노무현의 비서실장이었다. 80년대에는 법무법인 부산의 변호사로서 노무현의 동업자였다. 대 등하지 않은‘2인자’ 다. 게다가 그의‘운명’ 을 결정지은 그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2인자 출신 재수생인 그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의 팬이 아니라‘자신의 대중’ 을 스스로 창출해 1인자가 되는 것이 다. 그는 김대중도 아니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공천권을 움켜쥐고 일사불란하게 선거와 정국을 진두지휘 하던‘선생님의 아우라’ 를 기대할 수 없다. 4월 재보궐선거 패배를 기점으로 친노 중심의 공천권 행사에 새정치 내 각 정파들이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청와대‘문고리3인방’ 에 빗대 문재인의 비선라인인 일명 ‘삼철이’ (전해철 의원, 양정철, 이호철 청와대-부산 인맥)가 당내 결정을 좌우한다며 모든 비노 세력들이 들고 일어나는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 레임덕에 버금간다. 안철수는 친노-문재인과의 차별성을 고심하고 있 고, 손학규는 전남 강진에서의‘셀프 유배’ 를 종결지을 명분과 타이밍을 찾고 있다. 내년 총선을 통해 광 주-전남에서는 천정배가, 전북은 정동영이 나서 새정치의‘곡창지대’ 에 불을 놓으려 한다. 한술 더 떠 2015년 말‘호남발 정계개편’ 이 현실성 있게 그려지고, 안희정 등‘충청대망론’ (2013년 충청권 인구가 호남 권 인구를 넘어섰다)도 솔솔 나오는 중이다.
그는 이문세처럼 팬들과 함께 늙어갈 수도 없다. 동교동계는‘호남(과 과거)’ 에 기대어 늙어가며 저승길 로 가면 되지만, 문재인은 살아있는 권력의 정점이 목표다.‘미래 권력’ 을 선봉에서 창출해야 하는 그는 그렇기 때문에 이문세나 동교동계처럼 과거에 묶여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자신의 창조물이 아닌 경우에 는 더더욱. 그렇기에 노무현이 그에게 씌운 (한시적)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야 한다. 도대체 문재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니, 할 수는 있나?
정당정치에 의존은 강하고 토대는 약하고 운동의 양적 역량이 약화되고 진보정치도 형해만 남으니, 운동사회는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돌파하기 보다는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에 대놓고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우리 운동사회의 생존 자체가 위 협받고 있는 시대적 곤란을 반영하기에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런데 단지 양적인 역량 손실만으로 그 치지 않는다. 운동사회가 광범위하게 공유했던‘산별노조’ ,‘노동자 정치세력화’또는‘자주민주통일’ 이 나‘노동해방’등의 거대 목표가 더 이상 공유되지 않는다. 실패는 목표의 상실을 의미한다. 동지는 가지 않고 멀쩡히 있는데 깃발은 사라졌다. 그때그때마다 즉자적으로 살아남는 것이 중요해졌다. 우리 운동은 ‘87년 운동세대’ 와 함께 늙어가는 중이다. 그들의 생애주기에 맞춘 운동은‘새로운 대중’ 의 창출에 초점 을 맞추지 않는다. 목표의 상실은 공동체의 해체로 이어진다. (상상된 것이라 할지라도) 공동체가 해체되면 조직의 응집력도 사라진다. 함께했던 사람들의 끈끈했던 물질적 관계는 생존을 위한‘실용적 관계’ 로대 체된다. 그리고 이는 또다시 제도정당정치와 운동사회의 실용적 관계를 강화한다. 신자유주의 20년이 한국사회에 남긴 것은 다름 아닌 공동체의 해체, (공동의) 목표의 상실이다. 비단 특집 2017, 대선이 다가온다 27
‘운동권’ 이라는 좁은 의미의 공동체만 해체되는 게 아니다. 시대정신(또는 시대감성?)을 공유한 세대집단 일 수도 있고, 같은 처지에 놓인 빈자들의 감정적 연대일 수도 있다. 잘 먹고 잘 살아 보겠다는 삶의 목표 는 거세되었다. 꿈을 위해 달려가겠다는 열정은 사그라 들었다.“과거 사람들은 미래가 보이질 않아서 불 안해했으나 요즘에는 미래가 너무 뻔히 보여서 불안해 한다” 고 한다. 개인들로 파편화된 사람들,‘불확실 성의 확실성’ 을 평생 가슴 깊이 새기고 살아야 할 청년들, 저소득층, 노인들에게 이제 필요한 것은 확실한 비전이며 피해야 할 것은‘더 이상의 희생’ 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비정규직 의 불공평한 처지를, 가진 자들의 횡포를, 권력의 뻔뻔함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야당의 섣 부른 변화의 약속을 믿지 않는 것이다. 그들에게는‘박근혜 퇴진’ 만큼 허무맹랑한 구호가 없다. 그렇다고 새정치민주연합이 재보궐선거에서 박근혜 정부 심판론이 아니라‘민생정치’ 를 부각시켰으면 승리할 수 있었을까? 글쎄올시다. 마음이 열리지 않았는데 기대치가 구체적일 리 없다. 유권자에 대한 선언보다는 내부의 정리정돈이 먼저다.
자신의 대중을 창조하라. 진보, 그대들도 이완구 총리 인준, 정윤회와 십상시, 성완종 리스트, 세월호 참사 1주기, 연말정산 사태 등으로 인한 박 근혜 지지율 폭락과 레임덕, 2월 8일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표 선출을 통한 컨벤션 효과 등 질 수 없는 조건 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아니 문재인 대표는 패배했다. 당내에서도 선거 패배를 기정사실화하거나 수수 방관한 세력이 적지 않았다. 조직력은 최악의 상태이고, 같은 당인지 아닌지도 알기 힘들 지경이다. 호 남-친노 분열 프레임은 보수극우언론이 만들어낸 허구의 프레임이 아니다. 천정배도, 국민모임도, 또는 야당의 다른 잠룡들도 패배를 종용했다. 게다가 가장 확실한 비전은 새누리당에게서 나온다는 점을 대한 민국 국민들은 경험적으로 안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이명박, 박근혜가 승리한 과정을 상기해보자. 한 국정치사를 뜨겁게 장식했던 드라마틱한 상황은 더 이상 연출되지 않았다. 예상대로 이명박이 이겼고, 예 상대로 박근혜가 이겼다. 불안정한 대중들의 생존전략이었다. 사회적 관계는 이완되었는데 오직 보수여 당만이 이러한 불안정함을 메꾸어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관심과 요구는 뜨 겁지만 그 뿌리는 허약하기 그지없다. 높은 요구 수준은 바꿔 말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는 더 많은 실망과 냉소로 돌아온다. 이것이 바로 문재인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이 당면한 딜레마다. 나 서지는 않고 뒤에서 야당 욕만 하는 제법 익숙한 풍경은 한국사회의 성격에 가장 잘 조응하는 반응이다. 선거를 통한 새누리당의 세 번째 집권이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여전히 결과는 모르는 거다. 문재인은 스스로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한 아이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어떻게 하면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노무현 대통령은“대통 령이 되면 해나갈 일을 대통령이 되기 전에 해나가는 것이 대통령이 되는 방법” 이라고 답했다. 그 일이란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 일 것이다. 공동체를 만들고, 사회를 재조직하는 것이다. 기계적인 중도화 전략 28
은 대선을 앞둔 야당 유력 대권주자의
기계적인 중도화 전략은 대선을 앞둔 야당 유력
익숙한 포지셔닝일 뿐이다. 모든 전략
대권주자의 익숙한 포지셔닝일 뿐이다. 자기만
과 자원을 동원하되 자기만의 전략과 승부수 없이는 공고한 새누리당의 안 정적인 구조를 돌파할 수 없다. 대중들
의 전략과 승부수 없이는 공고한 새누리당의 안 정적인 구조를 돌파할 수 없다.
의 뜨거운 요구와 배반하는 표심에 따 라 자기의 전략을 추수적으로 이동시킬 게 아니라 전략적 선택과 과감한 돌파를 해야 한다. 대중들은 익 숙한 것만을 요구하다가도 어떤 시기가 되면 결정적으로 신선한 무엇을 요구하기도 한다. 사회경제적, 정 치적 비전을 선명하게 제시하고 이를 뚝심 있게 설득하는 과정이 바로‘문재인 대통령’ 을 만드는 길이며, 대통령이 해야 하는 일이다. 사회를 처음부터 새롭게 짜겠다는 대인배다운 실천 없이는 대통령도, 대통령 후보도, 제1야당 유지도 장담할 수 없다. 문재인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대중들을 끊임없이 창조하기 위 한‘예리한 배포’ 다. 그래야만 대중들도 닫힌 마음을 열고‘포괄’ 의 범위에 들어올 수 있다.‘unlearn’ 이 라고 했던가? 배운 대로 하지 않는 것, 익숙한 방식으로부터의 탈피가‘범생이’문재인에게 필요하다. 사 회가 보수화되었는데 진보적(?) 정권이 창출될 리 없다.‘장기보수시대’ 에 문재인을 통해 우리가 돌아봐 야 할 지점이다.
특집 2017, 대선이 다가온다 29
(사진 : 서울시청 홈페이지 갈무리)
특집 / 2017, 대선이 다가온다
박원순, 세 번째 박 대통령 되나 진보진영과 시민사회진영의 지지는 확고하다고 판단하고 지지층을 넓히는 전략을 취하는 셈인데,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고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 는데도 이들이 박 시장을 지지할까.
조윤호 서울 도봉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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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는 행운아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 행운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박원순 서울시장 이야기다. ‘희망제작소’ ‘아름다운 재단’ 으로 알려진 시민사회계의 거물 박원순이 정계에 진출한다는 말은 예전 부터 있었다. 하지만 현실감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기회는 갑작스레 찾아왔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을 주민투표에 붙이자며 사퇴라는 승부수를 띄웠고, 결국 투표함도 열어보지 못한 채‘셀프 탄 핵’당했다. 2010년 무상급식으로 만들어진, 야권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이어지던 와중에 2011년 10.26 재보궐선거가 열렸다.
5%의 지지율에서 재선에 성공하기까지 오세훈의‘셀프 탄핵’ 이 박원순에게 유리한 판은 아니었다. 첫 주인공은 안철수였다. 누구도 박근혜를 능가하지 못하는, 능가는커녕 따라가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안철수가 박근혜를 지지율로 누르는 첫 대선 후보로 등극했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서울시장 지지율 50%를 기록했고, 박원순은 5% 에 그쳤다. 그러나 50%의 안철수가 5%의 박원순에게 양보하면서 드라마가 시작됐다. 안철수의 양보를 얻어낸 박 원순은 나경원 새누리당 후보와의 대결에서 승리했다.‘반값 등록금’같은 복지의제를 전면에 내건 채 정 치 초짜인 박원순이 새누리당의 간판 정치인 나경원을 누른 것이다. 박원순 시장은 2014년 6월 지방선거에서도 재선에 성공했다. 정몽준 새누리당 후보가 각종 토건공약 을 앞세우며 박원순 시장을 네거티브로 공격했으나, 박 시장은 13% 차이로 정몽준 후보를 가볍게 눌렀다. 지금은 개그 캐릭터로 자리 잡았지만, 정몽준 전 의원은 결코 우습게 볼 만한 정치인이 아니다. 7선 국회 의원에, 유력한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거물이다. 그런 거물을 여유롭게 꺾고, 민주당의 서울 승리까지 이 끌었다. 박 시장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그의 정치적 포지션은 더욱 넓어졌다. 그는 야권과 개혁진영의 적극적 지지를 얻는 동시에‘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 라는 경력답게 진보진영의 비판적 지지를 얻었다. 이제 재 선을 통해‘일 잘하는 서울시장’ ‘시민의 서울’ 이라는 그의 전략이 중도파에게도 통한다는 점이 확인됐 다.
박원순, 시민사회의 성장? 아니면 종속? 박원순 시장은 이미 기존 시민사회 운동가들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기존 시민사회 인사들은 정치권 에 흡수되어 그냥 그저 그런 개혁적 정치인 중 한 명으로 전락하거나, 아니면 계파정치에 밀려 나가떨어 지곤 했다. 하지만 박 시장은 민주당을 뛰어넘은‘시민의 정치’ 를 내세우며 재선에 성공했고, 당의 유력 특집 2017, 대선이 다가온다 31
대선후보로 자리매김했다. 박 시장은 재선 직후 여론조사에서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 한 때 자신에게 양보했던 안철수 의원은 물론 문재인 의원, 김무성 의원 등까지 모두 제쳤다. 그러자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서는“어쩌면 (박 정희,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 박 대통령을 볼 수도 있겠다” 는 반응까지 나왔다. 문재인 의원과 김무
성 의원이 각각 새정치민주연합·새누리당 대표로 취임한 이후에 박 시장의 대선주자 지지율은 약 10%를 기록하며 3위로 밀려났다. 하지만 항상 정치적인 논란의 중심에 서서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는 문재인·김무성 대표와 중앙정 치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서울시정에 주력하는 박원순 시장 간에 격차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새 정치민주연합 내 지리멸렬한 계파갈등으로 문재인 대표의 지지율과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이 떨어질수록 박 시장의 보폭은 더욱 넓어지고, 지지율을 끌어올릴 기회도 더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유로 박 시 장의 성공이 시민사회운동의 성장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적지 않다. 반론도 만만찮다. 오히려 박 시장이 성공할수록 시민사회운동이 독자적인 정치 감시의 영역을 구축하 기보다 기존 정치에 종속돼 간다는 지적이다. 시민사회 내부에서도 이러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상봉 서울풀뿌리시민사회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은 지난해 12월 19일 열린‘박원순 시정, 어떻게 볼 것 인가’토론회에서“8월 1일 시민단체들이 박 시장의 경전철 공약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는데 박 시장 의 참모들이‘왜 참여하느냐’ 고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박 시장과 우호적 관계에 있거나 서울시에 발을 딛고
박 시장이 성공할수록 시민사회운동이 독자적인 정치 감시의 영역을 구축하기보다 기존 정치에 종 속돼 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시민단체가 (박 시장의) 이중대 역할을 하고 있다” 는 비판이다.
있는 사람들이라면 신경을 쓸 수밖 에 없는 상황” 이라며“그때 기자회 견을 통해 입장이 갈리면서 내부 네 트워크가 약화됐다” 고 밝혔다. 전 위원장은 나아가“시민단체 가 (박 시장의) 이중대 역할을 하고
있다” 고 비판했다.“서울시민운동이 자기중심과 방향을 갖고 있지 않고, 어떻게 자립할 것인지에 대한 원 칙과 기준이 없으니 서울시 사업에 동원되는 데 그쳤다” 는 것. 조금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박 시장이 들어서고 나서 서울시가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수 많은 사업들을 만들었다.‘마을 만들기’사업이 대표적이다. 시민사회진영에 일자리와 돈을 제공한 셈이 다. 시민사회진영이 박 시장의 재선과 성공에 따라 밥줄이 끊기거나 혹은 이어지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는 뜻이다. 같은 토론회에서 김상철 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도 시민사회가 박 시장에 종속되는 현상을 우려했다. 서울시장의 직속 보좌관으로 서울혁신기획관과 시민소통기획관이 편재되어 있는데, 서울시는 서울시 행 정기구 설치조례 시행규칙 개정에 따라 서울혁신기획관 내 민관협력담당관을 신설했다. 업무는 △민간단 32
체 시정참여사업 공모, 지원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업무 총괄 △비영리법인 관리시스템 운영에 관한 사 항 △시민사회 육성 지원 업무 등이다. 민간단체의 등록업무, 공모사업 등을 시장 직속 보좌기관의 업무로 삼은 것이다. 김상철 위원장은“서 울시 민간협력담당관의 업무가 민간전문가의 주도성을 보충하기 위한 것인지 밖에서 싫은 소리하는 시민 사회에 대한 효과적인 순치를 위한 것인지 모호하다” 고 지적했다.
박원순이 오른쪽으로 가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문제는 박 시장이 오른쪽으로 가면 시민사회진영과 그의 비판적 지지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이다. 박 시장의 서울시 2기에서 그의 우향우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인권헌장 논란이 대표 사례다. 서울시는 수많은 시민들이 수없이 많은 토론을 거쳐 만들어낸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을 포기했고, 그 로 인해 성소수자단체들이 서울시청에서 점거농성을 벌였다. LTE급 트위터 소통으로 유명한 박 시장은 인권헌장이 무산된 것을 묻는 이들의 질문에는 묵묵부답이었다. 박 시장이 강조하던‘시민참여’정신에도 어긋나는 일이었다. 각계각층의 시민위원 150여 명과 전문위 원 30여 명으로 구성된 서울시 시민위 원회가 위원회 회의 6번, 분야별 간담 회 9번, 권역별 토론회 2번, 공청회 1번 등 수많은 합의와 논의를 거쳐 만들어 진 것이 인권헌장이었다. 동성애혐오단 체들의 반대에 시민위원회가 다수결로 결정했으나 서울시가 끼어들어‘만장 일치가 아니면 수용할 수 없다’ 고 초를 쳤다. 박 시장의 우향우 행보는 이것이 다 가 아니다. 서울시가 2014년 말 발표한 2015년 예산안에서 저소득층급식비, 방과후 자유수강권 지원,‘학습부진학 생 책임지도’ ‘학교폭력 예방’ ,‘특성화 고 교육내실화 지원’등 복지/교육 예산 등이 삭감됐다. 반면 서울역고가프로젝 트 사업을 비롯해 토건사업으로 분류할 수 있는 전시성 사업들의 예산은 늘어
2014년 지방선거 당시 박원순 포스터
특집 2017, 대선이 다가온다 33
우향우 행보로 성소수자단체, 시민사회진 영 일각에서 박 시장에 대한 지지를 철회 하겠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박 시장의 이런 행보는 대선 행보로 해석해야 한다.
났다. 인권헌장 논란이 한창이던 와중에 박 시장 은 보수 기독교단체를 찾아가“동성애를 지지 할 수 없다” 는 입장까지 밝혔다. 이런 우향우 행보로 성소수자단체, 시민사회진영 일각에 서 박 시장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목소
리까지 나왔다. 박 시장의 이런 행보는 대선 행보로 해석해야 한다.‘인권변호사’출신 박 시장이 자신의 지기기반을 까먹으면서 우향우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뿐이다. 결국 박 시장과 그 주변 참모들이 진보진영과 시민사회진영의 지지는 확고하다고 판단하고, 지지층을 넓히는 전략을 취하는 셈이다. 바꿔 말하면‘진보진영에서 박원순 외에 대안은 없다’ 는 자신감이다. 실제 인권헌장 폐기 이후 서울시청을 점거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상황에서 점거농성은 과하다는 조심스러운 입 장의 인권/시민단체들도 있었다. 박 시장과의 관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박원순 시장이 기억해야 할 그의 지지기반 집토끼는 내 손아귀 안에 있으니 이제 산토끼를 잡자는 식의 박원순 시장의 대권전략은 성공할 수 있 을까. 박 시장이 우향우한다면,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이 박 시장을 지지할까. 박 시장은 동성애포비아들 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동성애 포비아들은 동성애를 혐오하는 걸까 아니면 박원순 시장을 혐오하는 걸까. 박 시장이‘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 는 입장을 내비쳐도 여전히 서울시청 앞에서는‘박 시장이 서울을 동성애 도시로 만든다’ 는 식의 동성애혐오단체들의 선전선동이 계속되고 있다. 박 시장이 대선후보가 되려면 먼저 성공한 시장이 되어야 한다. 대권경쟁을 돌파하려면 자신의 지지기 반이 있어야 하고, 서울시장으로서 잘해야 지지기반을 다질 수 있다. 박 시장은 새정치연합 내에서 지분 이 많지 않다. 당장 대권경쟁이 벌어지면 새정치연합 의원들이 문재인 대표를 지지할까, 아니면 당내 기 반도 계파도 없는 박 시장을 지지할까. 박 시장이 2011년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을 꺾고 본선에 오를 수 있던 이유는 그가 내세운‘시민의 서 울’덕이었다. 그가 처음 시장이 될 때 그의 지지기반은 변화를 바라는 시민, 시민사회와 진보진영, 새정 치연합 내 개혁세력이었다. 박 시장이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고, 보수단체들을 껴안기 하고‘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 는 말을 이어가도 이들이 박 시장을 지지할까. 박 시장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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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위기의 진보정치, 노동당의 향방은? 4.29재보궐선거도 끝이 났다. 작금의 상황에서 노동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묻는다. 당 밖의 목소리와 함께 당내 의견그룹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기획 위기의 진보정치, 노동당의 향방은? 35
기획 / 위기의 진보정치, 노동당의 향방은?
이기고 싶다는 욕망을 조금 더 불태워 달라는, 쉽지 않은 이야기
노동당이 걸어왔던 쉽지 않은 여정에 힘을 보태본 적이 없는 사람 으로서, 재보궐 이후 노동당을 포함한 진보정치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오랜 시간 노동당을 지지해왔던 팬 으로서 가졌던 몇 가지 생각들을 나눠보고자 한다.
풍경1. 너무 쉽게 그 자리를 얻는 이들 이기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vs 그 자리를 얻기가 너무 어려운 이들
야 한다. 이기고 싶다는 욕망을 드러내고, 선거 승리를 위한 자
2014년 지방선거가 있기 전, 정치권에서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원으로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
안철수 대표가 제기한 정당공천제 폐지 여부를 둘러싸고 한참 논란이
한다.
일고 있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청년 몇 명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 는데, 정당이 정당공천을 포기한다는 것은 공당으로서 사회적 책무를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은 말 아니냐, 새정치민주연합 청년당원들이 왜 이 문제에 대해서 당대표와 지도부들에게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 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한 청년당원이“왜 새정 치민주연합 내부 일에 왜 그렇게 왈가왈부하며 문제를 제기하느냐. 공 천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당 내부적으로 내천을 하면 된다.” 라고
김경미 정치발전소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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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했다. 결국“나도 새정연 당원이다. 그리고 내천이 있어 정당공천 제를 폐지해도 된다고 하면, 그게 무슨 기초공천제 폐지냐. 그냥 새정
연 혼자 공천을 안 하면 되지, 왜 그것을 법제화하려고 하느냐” 라며 둘 사이에 설전이 오갔다. 그리고 몇 달 후, 그 친구는 6.4 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천을 받아 구의원이 되었다. 반면, 당시 통진당 사태 등으로 인해 진보정당 전체가 유권자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고 있던 상황 에서 무소속으로 나가는 것이 본인에게는 더 유리할 수도 있었던 노동당 나경채 후보는“하나의‘당’ 이불 필요하고 비민주적 방식으로 당원들과 정치인들을 예속하고 있다면 그것은 시정되어야 합니다.‘당’ 이당 원과 소속 정치인들에 대해 꼭 필요한 가치에 공감을 형성하고 있지 못하다면 그 당은 존재가치를 의심받 아야 마땅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제가 속한 작은 당, 노동당의 공천을 신청하려고 하고 있고 또 공천 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의 당으로서 유권자들에게 책임을 다하는 것이고, 저는 이런 절 차가 자랑스럽습니다.” 라는 입장을 밝히고, 그 작은 정당의 이름표를 달고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낙선했 다. 최근에 한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참석한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의원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 떻게 정치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듣게 되었다.“회사를 다니다가 당시 안철수 대표가 진행하던 새정치연합 을 보며 정치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후 새정치연합이 민주당이랑 합당을 하며 새정연에 들어오게 되었고, 곧이어 있었던 지방선거 때 공천을 받아, 다니던 회사를 한 달 휴 직하고 선거를 준비해 나갔는데 당선
“안철수 대표의 새정치연합을 보며 정치에 대해
이 되어 정치를 시작하게 되었다.” 라
생각하게 되었다. 이후 합당을 통해 새정연에 들
고. 정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선
어왔고, 곧이어 지방선거 때 공천을 받아, 당선
거에 나가, 당선되기까지 채 3개월 이
이 되어 정치를 시작했다.”정치를 생각하게 된
상이 걸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때부터 당선까지, 채 3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반면, 노동현안이 발생한 곳에는 언제든 뛰어가고, 비례대표제 확대 운
동, 정치관계법 개정운동, 이상한 나라의 선거 기자단 등 한국 정치밭이 좋아지기 위한 정치제도개혁 운 동을 늘 함께해왔던, 또 어떻게 하면 좋은 진보정당을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직업으로서의 정치가로 진로를 고민하고 준비해왔던 황종섭 노동당 시의원 후보는 낙선했다.
풍경2. 공천을 받아야 하니 필요에 따라 분당도 하고 할 수 있는 것 아니에요? 얼마 전 새정치민주연합 청년위원회 간담회가 있었다. 문재인 등 현 지도부 책임론이 결국은 분당을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내용의 토론이 오가던 중에, 한 청년 당원이“공천을 받아야 하니 필요 에 따라 분당도 하고 할 수 있는 것 아니에요?” 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사기업이면 폐업을 하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나. 하지만 일정 정도 이상의 규모를 가진 기업도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과 연결 기획 위기의 진보정치, 노동당의 향방은? 37
2014년 6.4 지방선거 노동당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이 되어 있기 때문에 폐업을 할 때 많은 것들을 고려하는데, 하물며 한국 사회에서 유일하게 선출직을 공 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정당이 공천을 둘러싼 유·불리를 따라 분당, 사실상의 폐당을 마음대로 하면 되느냐” 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가 아무렇지 않게“어차피 정당이란 것도 다 사익을 추구하는 건데 그게 뭐 가 문제냐” 고 이야기를 하는데, 살짝 말문이 막혔다. 그러면서 자신은 언제고 꼭 선출직에 나가고 싶고 이 를 위해 준비 중이라고 얘기하는 그 청년 당원을 보며 나는 속이 상했다.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분당도 필요하면 할 수 있다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이 친구가 만약 새정연의 공천을 받는다면, 여러 가지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진보정당의 필요성에 대한 소명의식 하나로 버티는 진보정당의 친구들보다 선 출직 정치인이 될 가능성이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는 더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
풍경3. 노동당 활동가가 아닌 노동당 의원을 어서 빨리 국회와 지방의회에서 보고 싶다. 상황이 이러하다. 특정 정당 예를 들긴 했지만, 왜 정치를 하려고 할까라는 의문이 들게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정말 좋은 사람들이 당선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의 당선이 한 국 사회에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당선이 되어야 가난하고 평범한 보통 사람들을 위한 입법도 할 수 있고, 이들을 위해 예산이 사용되도록 조정하는 역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나를 슬프게 하는 풍경 하나가 있다. 2014년 지방선거 당시 노동당 후보들 중 일부 38
가 지역구에서 선거운동을 하지 않고 세월호 집회에 참석했다가 연행되었던 일이다. 왜, 어째서, 선거에 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 할 수 있을 선거 전 마지막 주말에, 그 분들은 지역구에서 유권자를 만나는 대신 광장에서 깃발을 들어야 했을까. 한국의 이상한 선거법상 후보자가 없으면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선거운 동이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서 후보자가 동네를 떠나 광장의 집회에 가고, 게다가 연행되어 이틀을 구치소 에 갇혀 있다 나왔다는 사실은 그 분들이 선거 전 마지막 선거운동을 사실상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 로 내게 다가왔다. 이 소식을 듣고 하도 속이 상해 당시 잘 알고 지내던 노동당 당직자에게 메시지를 보내 도대체 어찌된 연유냐 물어보기까지 했다. 유권자에게 노동당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공식선거운동 기간을 활용해 노동당에 대해 한 번이라도 더 설명하고 알리는 일이 당원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투쟁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 순간 집회를 나가고 싶은 욕구를 참는 것이 자신들을 믿고 자발적으로 선거운동을 하고 특별당비를 모아주는 당원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냥 무심히 넘길 수 있는 일이었음에도, 노동당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노동당을 무척 좋아했기에, 이 날의 일은 두 고두고 나를 참 많이 속상하게 했다.
이기는 것에 무관심하면, 이길 수 없다. 정당의 핵심은 선거고, 선거의 핵심은 이기는 것이다. 어떤 정치를 해야 하는가? 누구를 대변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도 정치에 있어서 매우 중 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를
선거의 핵심은 이기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고민하는 것 또한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길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노동당은 시민단체가 아니고 정 당이기 때문이다. 활동가를 키우는 곳이 아
노동당은 활동가를 키우는 시민단체가 아
니라 선출직 공무원을 배출해야 하는 곳이
니고, 선출직 공무원을 배출해야 하는 정당
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냥 조금 멀리서 지
이기 때문이다.
켜본 노동당은 이기는 것에 무관심한 듯 보 인다. 혹은 우리는 선거나 당선 등에 그렇게 연연하지 않는다는 입장이 강한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연연한 다. 자기 유·불리에 따라 스스럼없이 당을 쪼개고 붙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밀착 해 그들을 위한 사회를 고민해왔던 사람들이 입법과 예산을 다루는 자리에 가는 데 연연한다. 그러려면 이기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기고 싶다는 욕망에 불타올라야 한다. 수단과 방법 을 가리지 않고 선거 승리를 위해 달려들라는 것이 아니다. 이기고 싶다는 욕망을 드러내지 않고선 이길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어렵기에, 이기고 싶다는 욕망을 드러내지 않고선 이길 수 있는 사람으로 훈련될 수 가 없기에, 그 욕망을 이제는 선거 승리를 위한 좋은 자원으로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획 위기의 진보정치, 노동당의 향방은? 39
나경채 대표의 4.29 재보궐선거 출마 선언 기자회견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지난 4월 재보궐선거에서 노동당은 소리도 없이 존재감도 없이 조용히 선거를 중도하차해야 했다. 노 동당이 이 문제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방안이 독자노선일지, 진보결집일지는 잘 모르겠다. 이기는 정당 이 되는 방안이 독자노선일지, 진보결집일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노동당이 이야 기하는 평범한 보통사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다는 큰 대의 속에 작은 갈등들은 봉합하고 해결할 수 있 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정치력이 아닌가 싶다. 노동당이 독자냐 진보결집이냐에 대한 논의로 갈등 중이라는 이야기 대신, 어떻게 하면 우리가 평범한 보통사람, 가난한 사람을 대의할 수 있을까를,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이기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들이 더 많이 들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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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위기의 진보정치, 노동당의 향방은?
을지로의 빅텐트를 찢기 위해 광장으로 자존심 싸움은 그만, 깔끔하게 토론하자
불행히도 우리 진보정당운동의 도전은 실패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상황은 점점 음울해지고, 전면적인 돌파구를 만들 가능성은 현저히 낮 다. 운동진영 안팎에서 좋지 않은 일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주체적인 노력으로 상황을 바꾸기는 어렵다. 활동가들은 하나둘 좌절 에 빠지고 있다. 이럴 때 좌파의 조직적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역사 투쟁의 대의를 갖고 장렬히 전사(또는 문호를 닫고 자기보호)하거나, 새 임박한 파국 앞에서 마이크 스 피커를 최대한 높이고 넓게 외
로운 땅을 개척하기 위해 한치 앞도 계측하기 어려운 길로 나서거나. 좋든 싫든 오늘 우리는 어떤 결단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
칠 수 있는 언덕 위에 올라서는
다. 사실 이런 조건은 누구도 원치 않았고, 예고된 것도 아니다. 그러
게 지금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니 억울하고 분통 터진다 할 수밖에. 게다가 몇 년 전 통진당으로의 이
최선의 태도다.
합집산 과정에서 발생했던 진통은 일부 당원들에겐 여전히 상처로 남 아 있다. 이런 뒤틀림과 과오, 증폭된 아이러니에 의해 이 지경까지 왔 고, 십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일어났다. 과거를 되돌 릴 수 있는 신묘한 능력이 있지 않다면,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할 처지 에 놓인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홍명교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교육선전위원, 서울 종로 당원
분리될 수 없는 진실 물론 이렇게 이야기해 볼 수도 있다.‘노동당(진보신당)이 지금껏 제
기획 위기의 진보정치, 노동당의 향방은? 41
대로 시도라도 해본 적이 있느냐’ ,‘우리 나름대로 제대로 된 도전을 해보기라도 하고 접든 말든 해야 할 것 아니냐’ ,‘우리에겐 아직 재편 과정에 주체적으로 가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등등. 이런 지적들에도 엄연한 진실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재편 논의의 절차적인 과정에 대해 강조 하고‘아직은 포기하지 말고 제대로 해보자’ 는 목소리들이 존재하는 것일 게다. 그러나 그 반대편의 조건 역시 우리가 똑바로 응시해야 할 사실임은 분명하다. 노동자운동은 추락하고 있고, 좌파는 이제 어디 가 서도 존재감을 찾기 어렵다. 미디어에서 흔히 말하는‘좌파’안에도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시민이나 주진우 같은 스타들이 보일 뿐이다.
재편이 곧‘포기’ 인 것처럼 취급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한국사회의 변혁운동을 제 대로 하기 위해 노동당이 존재해왔던 것이
더군다나 재편이 곧‘포기’ 인 것처럼 취 급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좌파정당은 대 중조직이 아니지 않은가. 정세적으로 유리 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옷을 바꾸고 폭을
지 우리끼리 노동당을 잘 하기 위해 운동에
넓히며 다른 친구들을 만나는 것은 이상한
동참해온 것이 아니다.
일이 아니다. 한국사회의 변혁운동을 제대 로 하기 위해 노동당이 존재해왔던 것이지
우리끼리 노동당을 잘 하기 위해 운동에 동참해온 것이 아니다. 특히나 노동조합운동에서 진보정당이 자 기 자리를 잃은 지 오래다. 나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우리 당원들이 보여준 헌신적인 연 대를 잘 알지만, 조합원들이 선거에서나 미디어에서 접근할 수 있는 선택지는 을지로위원회밖에 없다. 이 런 뼈아픈 기억은 이따금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아주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상이다. 2013년 가을 최종범 열사가 돌아가신 지 이틀째 되던 날 밤, 삼성전자서비스 천안두정센터 앞에서 나 는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금속노조는 뼈아프게 모든 것을 건 싸움을 다짐하고 있었지만, 은수미 의 원이 마이크를 잡았을 때 조합원들은 비정규직 양산의 또 다른 주범인 새민련(열린우리당-민주당)의 의원 들을 향해 박수치고“은수미! 은수미!” 를 연호했다. 그건 결코 조합원들이‘개량’ 이어서도, 파견법 개악의 주역이 민주당이었다는 사실을 몰라서도 아니다. 케이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오랜 고공농성 투쟁을 마치고 내려올 때에도 두 노동자들의‘착륙(?)’ 을 마중할 수 있는 지분을 지닌 정치인은 오직 을지로위원회뿐이었다. 지분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헌 신적으로 도왔다는 의미이기도 할 게다. 그 자리에 서너 개로 분리된 진보정당들의 자리는 없었고, 뼈아 프지만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건 누군가의 탄식처럼 당의 깃발이 데모현장에 게으르게 보여서도 아니고, 덜 헌신적이어서도 아니다.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선택지에도 보이지 않는 진보정당. 자 리를 잘못 잡았음을 알아차리기는 너무도 쉬운 일이다.
전략의 방황, 전술의 부재, 정념의 과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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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지인들로부터,‘노동당은 내 생애 마지막 당’ 이라는 선언을 들을 때 놀라움을 감추기 어렵다. 그런 굳은 다짐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는 것은 가히 모범적이라 하겠지만, 그것 자체로 정치 적 입장을 세울 순 없는 노릇이다. 대중/운동이 있기에 (대중)정당도 존재하는 것이지 당이 있어서 대중/운 동이 있는 것이 아니며, 조직논리가 당위가 되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속한 조직, 당이 얼마나 해당 정세에 걸맞는 형태를 갖추고, 얼마나 견고한 전략전술, 정치의 질서를 갖추 고 활동하느냐다. 지금 당의 형질은 대중정당이라기보다는 사회운동단체의 성격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빠져 있 다. 전국적인 조직망은 와해되다시피 했고, 이를 하나하나 재건하는 일로 곳곳에서 다른 진보세력들과 충 돌하기도 한다. 해산 이후 전면적인 대중조직으로의 산개를 통해 무섭게 토대를 닦는 중인 구 통진당 활 동가들이나 원내정당으로서의 장점을 십 분 살리며 무섭게 파고를 올리는 정의당, 자신만의 장점을 살리며 전망을 확장 중 인 녹색당에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 조직의 형태를 감정적으로 고수하는
조직의 형태를 감정적으로 고수하는 태도는, 당의 진로에 대한 여러 견해차를 막론하고 마 주할 수밖에 없는 당면 문제, 즉 불가피한 조
태도는, 당의 진로에 대한 여러 견해차를
건에 대해 침착하고 냉정하게 다루기를 방해
막론하고 마주할 수밖에 없는 당면문제,
하기 일쑤다.
즉 불가피한 조건에 대해 침착하고 냉정 하게 다루기를 방해하기 일쑤다. 썩 맘에 들지는 않지만, 모든 것을 원점에 놓고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체 제가 직면한 위기의 정세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길을 모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제3항-되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남유럽 국가들의 극심한 내핍 속에서 유로화폐동맹 은 전무후무한 격변을 겪고 있고, 서유럽은 우경화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경찰국가 미국은 금리 인상 시기를 점치며 다른 국가들을 긴장케 하고, 장기불황의 늪에 빠진 일본은 미국과의 군사동맹과 평화 헌법 개정을 통한 군사화의 길을 노리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일본식 장기불황의 미래로 가는 듯 하면서도 통화의 불안정성 문제까지 걱정할 처지다. 물론 이에 대해선 조금씩 다른 견해들이 있기에 잠시 차치해두기로 하자. 중요한 건 정세의 긴박함에 비해 주체들의 조건이 한없이 뒤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대중이데올로기 는 끝없이 우경화되는데 좌파는 속수무책이다. 따라서 조직된 운동들(노조, 협동조합, 지역운동 등)의 정치 적 응집을 도모하면서 동시에 이런 운동들의 제2의 정치세력화를 꾀해야 한다. 지금처럼 국가권력과 운 동들이 제대로 충돌할 수 있는 자리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절대 다수의 미조직 대중들을 매개 기획 위기의 진보정치, 노동당의 향방은? 43
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조건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존립에 대해 시험받게 되고, 노동운동은 양당 제로 굳어지는 정치질서에 함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오늘 우리의 중대한 과제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제3의 대안’ 으로 자리잡는 것이다. 영미권의 좌파들이 처한 냉혹한 현실을 보라. 영원한 이항대립의 정치질서에서 좌파가 설 자리는 없다. 문제는‘그 세 번째 항에 누가 설 것인가’ 다. 지난 5년 사이 보수세력이 이‘3항’ 으로서의 민노당-통진당을 삭제하기 위해 애썼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나는‘국민모임에게 정당을 건설할 실력 따위는 없다’ 는 견해에 대해 그리 반대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 럴 수 있고,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정치적인 활동이나 대중조직 운영의 경험이 일천 했을 때 벌어지는 여러 과오들이 보
국민모임이 지지부진하게 3항의 자리를 선점한 상황에서의 재편논의를 죄다‘국민모임스러운
였다. 그러나 그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국민모임이 지지부진하게 3항의 자
것’ 으로 취급하고 재편의 전략적 가치까지 폄훼
리를 선점한 상황에서의 재편논의를
하는 것은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죄다‘국민모임스러운 것’ 으로 취급 하고 재편의 전략적 가치까지 폄훼
하는 것은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자기 실력을 갖추고 보다 합리적이고 급진적인 견해를 지닌 좌파들이 주도하자고 말하는 것 아닌가. 좋든 싫든 미디어가 머릿속에 그리는‘3항’ 의 견적 따위가 있다면, 우리는 그 견적을 짜고 질서를 흔들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이를테면 일간신문 정치면에 서 천정배가 아니라 좌파가‘3항’ 의 자리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노동당은 악조건을 감수하며 고군 분투 중이다. 향후 몇 년간 역변할 정세 속에서‘3항’ 의 자리에 서기 위해서라도‘질서재편’ 을 통해 대중 정치의 토대를 확보해야 한다.
심플하게 논쟁하자 지난 1월 당대표 선거를 통해, 과거의 여러 풍파를 겪고 남아있는 평당원의 과반 이상이 당 안팎 제 진 보세력의 결집이라는‘프로젝트’ 에 동의한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했다. 물론 그 밑바탕에는 각자의 지역에 서 탁월한 활동을 펼쳐온 주요 활동가들에 대한 신뢰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새 지도부의 여정은 순 탄치 않았다. 당선 직후 열린 전국위원회 회의에 대한 소식들, 4.29 재보궐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잡음들, 그리고 최근 당 게시판에서의 논란까지. 그러나 새 지도부에 브레이크를 거는 여러 공격들이 과연 얼마나 생산적이고 유의미했는지, 정말 당내 에서 미래전략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토론을 촉진시켰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눈팅’ 하는 당원들의 혐오 를 키웠을 뿐이며, 당게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게 만들었다. 결집의 조건과 전술에 대한 토론은 미진하고, 44
절차에 대한 흠집내기와 정념적 대립만 가득했다.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더라도,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의 논쟁은 아무 이득이 없다. 결국 우리는 전략 적 견해차에 대해 논쟁해야 하며, 이에 대해 심도 깊고 폭 넓게 토론하고 표결에 부치는 일은 그 자체로 유 의미한 정치적인‘운동’ 이 될 수 있다. 경제위기가 점쳐지는 불안정한 정세에서 좌파의 미래전략이 어떠 해야 하는지 전체 당원이 토론하고 선택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지극히 합당하다. 더군다나‘진보결집’ 과‘당원총투표’ 는 현 지도부가 당선의 과정 속에서 과반 당원에 의해 대중적으로 승인받은 것이지 않은 가. 심플하게 논쟁하자. 제 진보세력이 결집해 광범위한 블록을 만드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깃발을 고수 하는 게 맞는가. 나는 전자가 옳다고 확신하며, 그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이미 다수 당원은 이 쟁점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우리는 그 내용에 대해 더 토론하고, 당원총투표 를 통해 길을 정하면 된다. 상황을 자꾸 실제 쟁점이 아닌 곳으로 이끌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두 개의 길이 놓여 있다.
우리에게 두 개의 길이 놓여 있다. 군소정당이 지만‘좌파적 자존심’ 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대중적으로 의미있는 각인 속에서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줄다리기의 장으로 나설 것인가.
군소정당이지만‘좌파적 자존심’ 을지 킬 것인가, 아니면 대중적으로 의미 있는 각인 속에서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줄다리기의 장으로 나설 것인 가. 앞서 말한 여러 근거들 때문에, 몇 년 전 완고한 독자파였던 나는,‘결집’ 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임박한 파국 앞에서 마이크 스피커를 최대한 높이고 넓게 외칠 수 있는 언덕 위에 올라서는 게 지금 우 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다. 그때 좌파는 어떤 포지션을 취하고, 얼마나 프로패셔널하게 대중들을 만날 텐가. 나는 여러 조직된 노동자들, 당 밖으로 흩어진 여러 좌파들을 결집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우리 안의 지독한 냉소를 뚫고, 그 길에 더 많은 당원들이 함께 해주시기를 간절히 호소한다.
기획 위기의 진보정치, 노동당의 향방은? 45
기획 / 위기의 진보정치, 노동당의 향방은?
모호함을 끝내고 명확한 길을 가자
이 글의 주제인‘진보정치’ 의 범위를 정하는 것은 이제 간단한 문제 가 아니게 되었다. 여기서는 전통적으로 진보를 자처하는 세력을 모두 포함했다. 그게 타당한 분류인지의 판단은 유보한다.
재보선, 그리고 일련의 과정들 ‘진보정치 분열’ 이 아니라‘진 보정치 다양화’ 를 현실로 인정
4.29 재보선에서 진보정치의 성과를 평가하는 데 있어 정동영 후보
하고 거기서부터 다시 사고해
의 20% 득표는 특수하게 다룰 수밖에 없다. 그가 비록 진보정치를 표
야 한다. 진보진영의 실질적 연
방하는 국민모임1) 소속이지만 그의 득표를 국민모임의 성과로 보기는
대를 모색하는 새로운 과제로
곤란하다. 실제로 그가 선거 과정에서 주요하게 형성한 전선은‘친노
전환할 때다.
vs 비노’구도였지, 보수와 진보 구도가 아니었다. 즉 민주당 계파 갈 등의 연장일 뿐이다. 이를 감안하자면 이번 재보선에서 진보정치의 존재감은 거의 없었 다고 볼 것이다. 이런 결과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대체로 2012년 대선부터 2014년 지방선거에 이르기까지 진보정당들의 성과는 거의 정치적 의미를 잃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 원인은 대략 아래와 같이
구형구 당의미래 회원, 서울 용산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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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법적으로는 무소속 후보였지만 정치적으로 국민모임(창당준비위) 소속이다.
요약할 수 있겠다. 주체가 무능했다는 상투적 수사는 제외한다. 근본적 원인으로 노동운동을 비롯한 대중운동 쇠퇴를 들 수 있다. 특히 전세기 말과 금세기 초에 걸쳐 서 한국 사회에 전면화한 신자유주의 지배에 의해 기층대중의 분열과 파편화가 심해졌고 조직된 대중운 동은 고립되었으며 고착화한 기존 조직 기반마저 축소되었다. 정치적 요인으로는 정권의 반동적 성격 강화를 들 수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는 세력의 집권이 장기화하고 반동적 성격을 강화함에 따라 대중의 지지가 보수 양당으로 집중되는 것이다. 더불어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도 가까운 원인으로 작용했다. 통합진보당은 그해 총선까지도 민주당 과의 전면적 선거연대에 의해 13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충격적인 내분 사태에 의해 분당에 이르렀 을 뿐만 아니라 진보정치 전체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 이 같은 원인들 외에 흔히 회자되는 것이 이른바 진보정치 분열이다. 그러나 이를 주장하는 분들이 중 요시하는 선거공학 측면에서 보더라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최근의 각종 선거에서 진보정당 후보끼리 같은 선거구에서 대결한 일은 별로 없다. 가장 큰 선거였던 2014년 지방선거를 보더라도 그 많은 선출 단 위 중에서 노동당과 정의당의 후보가 중복된 선거구는 2곳뿐인데, 그나마 당락에 영향을 준 바는 없다. 이 른바 진보정치 분열에 관해서는 아래서 다시 다룰 것이다.
멀고도 어려운 길 위에서 제시한 쇠락의 원인 세 가지 중에서 어느 하나도 단기간에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신자유주의 지배에 의한 기층대중의 분열과 파편화는 당분간 심화할 것이다. 이는 새롭게 노동시장으 로 내던져질 미래세대에게도 이미 예정되었고 심지어 학습되어 있다. 극복할 길은 불안정노동 해소를 위 한 투쟁과 그 당사자들을 조직하는 (길고 어려운) 사업뿐이다. 이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누구나 안다. 노동 형태 자체가 고립 분산적이고 단절적이며 상호 경쟁이 심할 수밖에 없는, 이름 그대로‘불안정노동’ 은당 사자 조직이 매우 어렵다. 이는 어제나 오늘이나 모르던 바가 아니지만 이것 말고는 길이 없다. 어쨌거나 진보정치는 노동 대중에 근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권의 반동적 성격 강화에 따른 보수 양당 집중 현상은 좀 더 짧은 기간에 해소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또한 장담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그 결과 가 우리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위에서 말 한 대중과 함께하는 사업의 성과에 달렸다. 요컨대 진보정치의 전망은 매우 긴 시간을 두고 모색할 수밖에 없다. 이는 원하든 아니든
진보정치의 전망은 매우 긴 시간을 두고 모색할 수밖에 없다. 이는 원하든 아니 든 현실에서 주어진 조건이다.
현실에서 주어진 조건이다.
기획 위기의 진보정치, 노동당의 향방은? 47
진보재편 논의 일단락해야 진보정치를 재편해서 하나의 정당으로 결집하자는 주장은 그 자체로 절대 선도 아니고 절대 악도 아니 다. 정당은 주객관적 정세와 조건에 따라 분리할 수도 있고 통합할 수도 있다. 정의당과 국민모임은2) 진보정치 재편에 대해 명시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각각의 핵심적 지향 과 처지는 또 다르다. 지금 정의당에서 진보재편이 절실한 과제인지는 의문이다. 그보다는 내년 총선에서 중도우파정당과의 선거연대 또는 그 이상의 모색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그 결과는 일부 명망가 정치인의 당선이라는 개인 적 성과로 귀결될 것이다. 이는 그간의 과정에서 부인할 수 없게 입증되었다. 국민모임의 전망은 더욱 불투명하다. 정동영 후보의 인지도에 의존해서 재보선을 치렀으나 그에 따른 혼란은 매우 커 보인다. 어떻게든 다른 정당과 결합하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재편 의지는 누 구보다도 뚜렷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정당 형태도 갖추지 못했으며 정치적 실체조차 불명확한 집단이 어 떤 전망을 갖고 우리 당과 결합할 수 있을지는 도무지 상상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이번 재보선(특히 후보단일화 협상 과정)을 통해 진보재편 논의 당사자들의 심각한 무책임함 과 무능함이 드러났으며 이른바 4자연대라는 협의 틀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노동당은 진로가 불투명한 가설적 전망 속에서 너무나 오랜 시간을 보냈다. 2013년 7월에 가설적 성격 을 마감하고 비로소 재창당을 완료했다. 그로부터 불과 1년 후에 또다시 진로가 불투명한 상황에 직면해 오늘에 이르렀다. 진보재편이 불필요하거나 영원히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재편의 대상도 의 지도 실체도 전망도 모두 불투명한 상황에
수사에 그치는 무의미한 재편 논의를 대신
서 지금의 모호함을 지속할 수는 없다. 결
해서 진보진영의 실질적 연대를 모색하는
단이 필요하다.‘현 시점’ 에서 진보정당의
새로운 과제로 전환할 때다. 상반기까지 지 금의 몽롱한 상황을 끝내고 명확한 전망으 로 하반기를 맞아야 한다.
물리적 통합은 불가능함을 인정해야 한다. ‘진보정치 분열’ 이 아니라‘진보정치 다양 화’ 를 현실로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다시 사고해야 한다. 수사에 그치는 무의미한 재편 논의를 대신해서 진보진영의 실질적
연대를 모색하는 새로운 과제로 전환할 때다. 마침 예정된 6월 정기당대회가 알맞은 시기가 될 것이다. 상 반기까지 지금의 몽롱한 상황을 끝내고 명확한 전망으로 하반기를 맞아야 한다.
2) 여기서 녹색당과 계급정당추진위는 일단 논외로 한다. 무시해서가 아니라 존중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그들을 진보 재편 대상으로 거론한다면 큰 결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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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면한 총선, 선택과 집중 2016년 총선은 전 세계적 신자유주의 위기에 따른 경제침체와 사회갈등이 고조되는 시기에 치러진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세력 구도가 재편되는 계기이기도 하다. 우리 당은 제한된 조직/재정 역량을 갖고 선택과 집중에 의해 최대한의 정치적 효과를 가져 올 전략을 세워야 한다. 지역구에서 다수 후보를 낼 조건이 아닌 상태에서 2개 정도의 전략지역구를 선택해서 당선(내지는 유력 득표) 목표로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최대한의 효과를 내기 위해 전략지역구는 영남권 노동자 밀집지역이
될 수밖에 없다.3) 구체적 선정은 중앙당의 능동적 점검과 함께 해당 지역의 결의 및 준비 조건에 따라 결 정할 일이다. 비례대표에 있어서는 선거에 임박해서 인지도 있는 인사를 발굴하기에 급급한 기존 관행에서 탈피해 야 한다. 비례선거에서 집중할 핵심의제를 우선 수립해야 한다. 핵심의제는 다른 정치세력과의 차별성과 사회적 보편성을 함께 갖춰야 하며 이를 통해 사회운동의 동력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에 따라 후보 전략은 의제전략에 의거한다. 총선 준비는 조기에 시작해야 한다.4) 6월 정기당대회에서 총선 기본방침을 확정하면 하반기부터 전략 지역구 지원과 핵심정책 의제화 사업에 착수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6월 정기당대회가 매우 중 요하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진보재
6월 정기당대회가 매우 중요하다. 진보재편
편 논의를 일단락하고 동시에 총선 준비
논의를 일단락하고 동시에 총선 준비를 본격
를 본격화하는 전환점이자 출발점이 되는
화하는 전환점이자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것이다.
혁신할 지점 우리 당이 갈 길은 진보정치 전반의 장기적 전망과 다르지 않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 먼 길을 가려면 그 에 맞는 활동 방식이 필요하다. 긴요한 세 가지 혁신 지점들을 짚어보기로 한다. 우리 당원들은 어느 정당보다도 자발성이 뛰어나다. 당원들이 스스로 진행하는 수많은 사업들이 있다. 문제는 당의 공식 사업으로 묶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게 말처럼 쉽지 않은데, 두 가지 방향의 혁신이
3) 엄밀히 말하자면 한국의 도시지역 대부분이 노동자 밀집지역이다. 흔히 말하는 영남권‘노동벨트’ 는 생산노동자 밀집지역이라고 불러야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수도권을 비롯한 대도시 소비지는 노동자 조직화가 진척되지 않았고 당의 지지기반이 취약하다. 보수 양당의 경쟁이 상대적으로 치열해서 선거 구도에서도 불리하다. 제한된 역량을 집중해서 최대한의 성과를 내자면 영남권 노 동자 밀집지역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4) 우리 당은 창당 이래로 두 번의 총선을 모두 시간에 쫓겨 졸속으로 치렀다. 2008년에는 창당 1개월 만에 총선을 치렀다. 2012년 에는 통합 논쟁의 혼란 수습과 사회당과의 합당 절차 등을 총선 직전까지 거쳐야 했다.
기획 위기의 진보정치, 노동당의 향방은? 49
필요하다. 하나는 당직자의 사업 마인드다. 당직자는 15명이 일하는 사무실의 직원이 아니다. 1만 당원이 모인 정당의 당직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적극적인 문제의식과 넓은 안목을 갖고 사업에 임해야 한다. 자발적 사업에 참여하는 당원들도 약간의 변화가 필요하다. 사업이 진전될수록 당의 성과로 가져가기보 다는 자기 사업 자체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다. 당에서 오래 방치한 탓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언제나 당의 성과로 귀결되도록 유의하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 제한된 인원으로 당직자들이 모든 사업을 기획하 고 집행하기는 어렵다. 당직자와 사업 당사자의 마인드를 공히 혁신하고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것만이 자 발적 사업을 당으로 묶어내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정당은 궁극적으로 국민을 상대하는 조직이며 집권하고자 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당의 조건 에서 대국민 정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대당원
지금 우리에게 대국민 정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대당원 정치다. 당의 존재 와 방향을 체감하고 뚜렷한 모티브가 보이도록 해야 한다.
정치다. 당의 존재와 방향을 체감하고 뚜렷한 모 티브가 보인다면 우리 당원들은 기꺼이 움직인 다.5) 과감한 정책 결정도 필요하다. 우리는 집권당 이나 제1야당이 아니다. 정당의 정책에는 정세에 따른 시의성이 생명이다. 지나친 신중함으로 때
를 놓치고 대중조직보다도 뒤처지는 경우가 있다.6) 소수정당에 걸맞은 과감함이 필요하다. 우리 당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기사회생할 획기적 묘안을 내놓기는 불가능하다. 왕도는 없다. 우리의 역할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믿는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불가피한 조건을 인식하고 그 위에서 고민하고 실 천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5) 국고보조금을 받고 지금보다 재정 조건이 좋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창당 5년이 지나도록 당 기관지를 만들지 못했다. 5기 집행부 가 취임하면서 6개월 내에 기관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허황된 약속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실제로 6개월 만에 기관지를 창간 하고 재정 독립도 이뤘다. 기관지 창간이 실은 의지의 문제였음을 입증하기도 하고 모티브의 중요함을 말해주기도 한다. 단지 당 비 1만원 올려달라고 호소했다면 그 정도의 호응은 없었을 것이다. 뚜렷한 모티브를 제시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6) 수많은 사례가 있고 최근의 경우에도 두 가지 정도의 중요한 사례가 있으나 여기서는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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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위기의 진보정치, 노동당의 향방은?
노동당의 길로 한 걸음씩 전진하자
재보궐 선거 뒤, 한국정치는 지금 지난 4월 29일 실시된 재보궐선거는 새누리당의 일방적 승리와 새 정치민주연합을 포함한 야권의 패배로 끝났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문재인 새정치민 주연합 대표를 제치고 1위에 오른 것도 이런 재보궐선거 결과에 대한 지금은 한 명씩 당원들을 모아 내고 우리 운동 내에서 우리의
평가를 뒷받침해준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큰 성과를 내고 압승을 거둔 새누리당은 내년
영향력을 조금씩 키워가며 성
총선에서 수도권 석권에 기반을 둔 절대 과반의 목표를 세울 수 있게
과를 축적해 나가는 데에 주력
되었다. 새누리당의 승리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보궐선거의 특성
해야 할 시기다.
상 투표율이 낮고, 상대적으로 투표율이 높은 노년층의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새누리당은 야권에 비해 훨씬 유리한 구도에서 재 보궐선거를 치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새누리당의 승리는 다 시 한 번 자신들의 저력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이번 재보 궐선거를 치르는 새누리당의 전략, 전술과 아젠다 선점 능력은 야권 전반을 압도했다.‘새줌마’ 라는 새로운 전략브랜드를 들고 나오고, ‘성완종 게이트’ 로 불리한 상황에 놓이자‘노무현정부 시기의 두 차례 사면 의혹’ 으로 맞서면서 물타기를 진행했다. 선거 막바지의 고비에서 는 남미에서 돌아온 박근혜 대통령의 목감기 와병 퍼포먼스까지. 전방 위적으로 화려하고 능수능란했다.
김성수 전국위원
이에 반해 새정치민주연합의 선거대응은 딱히 평가할 부분이 없을 기획 위기의 진보정치, 노동당의 향방은? 51
정도로 지리멸렬했다.‘성완종 게이트’ 라는 대형 호재를 가지고도 시종일관 새누리당에 끌려 다니기 바빴 다. 더욱이 정동영과 천정배라는 당내 중진급 인물들의 탈당을 막지도 못해 선거구도를 매우 불리하게 만 드는 자중지란으로 4곳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전패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자초했다. 선거 이후 새정치민 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선거 패배에 대해 사과하며‘혁신과 통합’ 을 진행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선거 이후 친노-비노의 대립이 더욱 강하게 벌어지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문재인 대표 사 퇴 요구, 정청래-주승용 의원 간 격한 논쟁 등 당의 혁신이나 통합과는 거리가 먼 뉴스들로 국민의 실망 만 키우고 있는 형국이다. 장고 끝에 관악 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국민모임의 정동영 후보는 집권당 대표 후보였던 전력에도 불 구하고 3등으로 낙선한 뒤, 야권 분열로 새누리당 후보 승리에 기여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선거운동 과 정에서 정동영 후보는 새정치민주연합 때
국민모임이 가진 거의 유일한 정치적 자산인 정동영의 경쟁력이 생각보다 작다는 것이 드 러난 이상, 실제 창당이 가능한 수준의 동력 이 모일지 의문이 든다.
리기와 문재인 대표 등의 친노 진영에 대한 공격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진보진 영의 후보라고 생각하기 힘든 모습들을 노 출시켰다. 정동영의 3등 낙선은 9월중 창 당을 계획하고 있는 국민모임에게 큰 부담 으로 다가오고 있다. 국민모임이 가진 거
의 유일한 정치적 자산인 정동영의 경쟁력이 생각보다 작다는 것이 드러난 이상, 실제 창당이 가능한 수 준의 동력이 모일지 의문이 든다. 일찌감치 국민모임에 합류한 정동영과는 달리 천정배는 이번 당선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호남에 기반 을 둔 정당을 창당하겠다는 포부를 보이고 있다. 현재로서는 천정배당의 창당이 실현 가능해 보이지는 않 는다. 그러나 내년 총선을 전후해 호남지역의 공천을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 내의 친노-비노간의 갈등이 확대되거나 양자 간의 일정한 밀실합의를 통해 개혁적이지도 않고 호남지역 국민들을 감동시키기도 어려 운 공천이 진행된다면, 호남지역의 개혁적 정서에 기반을 둔 당이 일정한 성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의당은 인천 서구강화군 을에 출마한 박종현 후보가 3.03%, 광주 서구을에 출마한 강은미 후보가 6.75%를 득표했다. 완주한 두 명의 후보가 정의당의 정당지지율을 넘어서는 득표를 한 것은 나름 유의미 한 성과였다. 다만, 관악 을의 정의당 예비후보였던 이동영 후보가 정동영에 대한 지지선언 없이 사퇴를 하는 과정 등에서 내부적으로 정동영에 대한 반발이 국민참여당계를 중심으로 상당히 크게 자리 잡고 있 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2016년 총선까지의 정치 지형 이번 재보궐선거 결과는 전반적으로 야권정당들에게 위기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로 인해 이합집산 52
의 다양한 경우의 수들이 검토될 것이며, 이중 일부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실제로 작동할 가능성도 높다. 최근 10여 년간 민주당계와 그 주변의 중도보수진영이 만들어온 당만 헤아려 봐도 새천년민주당, 열린 우리당, 대통합민주신당, 통합민주당, 민주당, 민주통합당, (또다시)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으로, 거의 2 년에 한 번 꼴로 신당을 창당하거나 통합 등을 통해 새로운 당명을 만들어왔다. 여기에 유시민 등이 만든 개혁국민정당과 국민참여당까지 포함하면 계보를 따지기 힘들 지경이다. 우리나라의 정당사는 좋게 얘기 해서 역동적이고 나쁘게 얘기하자면 이합집산의 역사였다. 현 집권당인 새누리당을 포함해도 현재 대한 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당명은 창당한 지 3년밖에 안된 녹색당인 게 우리 정당사의 현실이다. 이처럼 주요 한 선거를 앞두고 거의 매번 필연적으로 진행된 정계개편의 바람은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한 번 불어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당장 새정치민주연합 내의 호남을 중심으로 한 비노 진영과 영남과 수도권 등의 친노(사실은 친문재인) 진영의 대립이 분당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광주에서 당선된 후 광주 및 호 남 지역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꿈꾸는 천정배까지 참여한‘야권재편’흐름은 2016년 총선 까지 진행될 것이다. 한편 노동당과 정의당,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 간에‘진보통합’ 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나 이 논 의의 전망 역시 밝지 않다. 이번 통합 논의는 정동영이 참여하고 있는 국민모임의 창당 과정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지난 2011년의 통합진보당 건설 당시나 이후 2014년까지 진행된 노동
보궐선거 과정에서 국민모임의 아마추어
정치연대 중심의 논의와 차별화된다. 정동영
적인 상황 대응, 그리고 새정치민주연합과
의 보궐선거 패배 이후 국민모임의 창당 동 력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 시각이 일반적이 다. 특히 이번 보궐선거 과정에서 국민모임 의 아마추어적인 상황 대응, 그리고 새정치
친노에 대한 공격 이외에 새로운 비전을 보 여주지 못한 모습은 4자간 신뢰에 매우 부 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민주연합과 친노에 대한 공격 이외에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모습은 4자간 신뢰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이는 노동당과 정의당 내에 반(反)국민모임 정서를 확대시켰다. 국민모임을 바라보는 야권과 진보진영의 시선은 현재 매우 부정적이다. 대다수의 인식은 결국 정의당 으로의 흡수통합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4월 초에 창당준비위원회를 신고했지만 법적시한인 10월 초까지 창당을 마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동영과 국민모임에 모여 있는 일부 명망가들에 기 대어 제1야당을 교체하겠다는 시도는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의 극심한 내홍에도 불구하고 그 실현 가능성 이 갈수록 희박하다. 이러한 흐름들이 크게 정리되지 않은 채 2016년 총선을 치르게 된다면 야권은 전에 없이 많은 정당의 난립 속에 선거를 치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막기 위한 정계개편의 시도는 필연적일 것이다. 기획 위기의 진보정치, 노동당의 향방은? 53
이 과정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일차적으로는 천정배의 독자창당 저지 및 복당추진과 당내 동교동계 및 범 비노 진영의 이탈을 막고, 이를 통해 제1야당으로서의 기득권 유지에 주력할 것이다. ‘진보진영’ 의 통합 논의가 내년 총선 전에 결과를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선 노동당의 경우, 대의 원들의 절대 다수가 통합에 부정적인 입장으로 집계되고 있기에 계속적인 내부 논란을 피하기는 어렵더 라도 정의당이나 국민모임과의 통합이 결정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거의 없다. 정의당 내에서도 노동당 과의 통합에 대해서는 대다수가 동의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국민모임과의 통합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인 당내 정서가 존재하고 있어 4자간 통합의 가능성을 높게 점치기가 어렵다. 문제는 이처럼 야권의 중도자유주의정당과 진보정당들 내부의 두 가지 흐름의 소통합 과정이 큰 성과 를 내지 못하고 다수의 야당으로 총선을 치르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모두가 새누리당의 압승을 예상하게 될 것이고 야권 지지자 전반이 대통합을 요구하는 상황으로 갈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미 대다수의 국민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을‘진보’ 로 규정하는 상황이다. 이런 속에서 정의당, 국민모 임, 노동당만의‘진보통합’논의는 국민들에게 매우 이상하게 비춰질 것이다.‘진보통합’ 을 한다면서 왜 새정치민주연합을 빼고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기 힘들어질 것이고, 이는 새정치민주연합까지 포함한 야권 대통합의 요구를 불러올 것이다.
2008년 이후 매번 선거마다 중도진영과의
이는 현재의 진보진영이 자초한 면이
선거연대가 유일한 선거전략이었다. 매번 야
매우 크다. 2008년 이후 매번 선거 시기
권연대라는 이름으로 후보단일화와 공동 정 책 발표 등을 진행하며 중도 진영과의 차별 성 확보에 실패했다.
마다 예전의 민주노동당과 이후 통합진 보당, 정의당은 민주당류의 중도진영과 의 선거연대가 유일한 선거전략이었다. 매번 야권연대라는 이름으로 후보단일 화와 공동정책 발표 등을 진행하며 중도
진영과의 차별성 확보에 실패했다. 그 과정에서 무상급식 등 다수의 진보적 정책들을 민주당류의 중도진 영과 공유하며 진보의 헤게모니를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대표되는 중도진영에게 빼앗기곤 했다. 이에 더해 정동영, 유시민 등 국민들이 익히 아는 열린우리당의 주역이자 노무현 정권에서 장관으로 활동한 인물들을 포함한‘진보통합’ 의 진행은 결국 새정치민주연합과의 통합 역시 가능하며 필요하다는 정서를 넓게 퍼트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흐름이 형성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언제든 빅텐트론으로 이를 확대재생산하며 추진하려 할 것이다.
노동당의 길은 지난 2011년 통합진보당의 창당 과정과 이후 정의당의 분당 과정 등의‘진보재편’ 의 흐름 속에서 우리 는 매우 많은 세력의 유실을 경험했다. 2011년 당시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의 당원 수와 영향 54
력의 합이 지금보다 작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1 더하기 1을 통해 2 또는 3 이상의 성과를 내자는‘진보통합’ 론은 그 자체로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상황을 냉철하게 돌아볼 때 현실적이지 않은 주장이다. 통합의 과정에는 필연적으 로 통합에 반대하는 세력의 이탈, 통합 과정에서의 유실 등이 따라온다. 진성 정당에 기반을 둔 진보정당 들의 재편 과정은 그 과정이 진행되면 될수록 세력 유실이 커지기 마련이기에 1 더하기 1이 1.5도 되기 힘 들다. 실제로 2011년의 통합진보당 창당은 1 더하기 1 더하기 1이 결과적으로는 1 이하의 합을 만들어냈 다. 우리가‘진보통합’ 이라는 지향점을 계속 가지고 있는 이상 노동당의 독자적인 경쟁력 강화를 추진할 기회는 계속해서 유보될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한국의 정치지형에 있어 정계개편은 지속적으로 반복되 며 이 속에서 중도자유주의정당들과 진보진영까지의 스펙트럼 상의 새로운 정당들이 잇따라 만들어질 것 이라는 데 있다. 결국‘진보통합’ 은 상당 기간 동안 완성될 수 없는 무한반복의 뫼비우스의 띠가 될 수밖 에 없다. 그리고 이 과정 과정마다 극심한 당내 논쟁을 겪고 이 과정에서 많은 세력의 유실이 반복될 것이 다. ‘진보통합’ 을 통해 단숨에 원내정당으로 성장하고 우리의 대표 정치인들을 국회의원도 만들어 주고 싶 은 욕망이‘진보통합’ 에 담겨있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매우 가능성이 낮다. 양당제를 강요하는 소선거구제 가 유지되는 한 매우 제한적인 성공이 가능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의 세력이 더욱 작 아진다는 함정이 있다. 결국 현재의 선거제도 하에서는‘진보통 합’ 이 큰 파괴력을 내지 못할 것이다. 선거 제도 개편이 비례대표의 전면 확대 등으로 진행된다면‘진보통합’ 은 그 필요성이 매우
‘진보통합’ 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선거 제도 개편이다. 이를 위해, 그리고 선거제 도 개편 이후의 대응을 위해서도 지금은 우 리의 내실을 다지고 작은 승리들과 작은 성 장들을 쌓아나가야 할 때다.
작아진다.‘진보통합’ 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 은 선거제도 개편이다. 이를 위해, 그리고 선거제도 개편 이후의 대응을 위해서도 지금은 우리의 내실을 다지고 작은 승리들과 작은 성장들을 쌓아나가야 할 때다. 우리가 가진 것은 작지만 소중한 당원들뿐이다.‘진보통합’ 이라는 큰 도박판에 베팅을 하기에는 어려 운 상황이다. 지금은 한 명씩 당원들을 모아내고 우리 운동 내에서 우리의 영향력을 조금씩 키워 가며 성 과를 축적해 나가는 데에 주력해야 할 시기다. 이제는‘진보통합’ 의 깃발을 내리고 새로운 노동당의 길을 위한 깃발을 들고 한 걸음씩 전진하자. 우리는 길을 이어가는 사람들이지 않은가?
기획 위기의 진보정치, 노동당의 향방은? 55
여성 진보정치 열전 10
정당과 협동조합을 넘나드는 활동가 안상연
삶도 운동도, 나의 필요로부터 안상연 당원은 광주에서 진보정당 초기부터 활동을 해왔으며, 당의 요청 에 따라 2004년 총선에도 출마했다. 성과 없이 표 구걸하는 게 부끄러워 본격적으로 매진한 소비자생활협동조합 활동, 스무 명 남짓한 조합원들과 시작한 남원아이쿱생협의 규모는 현재 남원시 전체 세대 수의 5%에 이른 다. 생협을 기반으로 다양한 활동을 일구고 있는 안상연 당원을 만났다.
인터뷰 : 고미숙, 김윤희, 이봉화, 허옥희 여성위원회 정리 : 이봉화 사진 : 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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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는 못 만들고 신발만 만들었지” 이봉화(이하 이) : SNS에 올리셨던 신문기사가 기억납니다. 어머님께서 스크랩해 놓으셨던 신문기사 사진이었는데, 대학시절에 학생운동했던 내용이더라구요. 대학시절에 어떻게 운동권이 되었는지요? 안상연(이하 안) : 대학교 가면‘학생운동에 참여해야지’하는 생각을 했어요. 아버지가 좌파성향이어 서, 반공방첩에 대해 뭐라고 하고 술을 마시면 항상 박정희 욕을 하고 웅변대회는 절대 나가지 못하게 했 어요.‘우리 아버지 간첩이 아닐까’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데모하는 오빠들이 좋아 보였어 요. 86년에 대학교에 들어갔으니까, 87년은 제일 많이 움직일 2학년 때였죠. 연구하는 것을 좋아해서 여 러 선배들과 학습모임을 했고 러시아혁명사, 철학에세이, 해방전후사의 인식 같은 책을 읽었어요. 87년은 주로 거리에서 보냈고. 3학년 2학기 때는 등록을 하고 시험을 안 보고, 4학년 1학기 때는 휴학 을 하고 2학기 때 복학을 한다고 돈을 받아가지고 방을 구해서 공장에 갔어요. 사상공단에 갔는데 한 번 구속된 적이 있어서 큰 공장은 어렵고 신발 밑창 만드는 조그만 공장에 들어갔어요. 사출 찍으면 밑창 테 두리에 너덜너덜한 걸 자르는 일을 했어요. 손재주가 있는 편이라 예술적으로 잘랐지.(웃음) 일 년 다니다 가 조금 큰 데를 들어가 보자 해서 드디어 신발 완제품을 만드는 세화상사에 들어갔 어요. 노조를 만들려고 들어갔는데 노조는 못 만들고 신발만 만들었지. 그러다가 공장을 나오게 된 계기는 도서 원이었어요. 사상공단지역에는 도서원이 많았어요. 마찌꼬바 같은 작은 공장들이 많 아서 노조를 만들기는 어렵고 대중단체로 도서원을 많이 만들었어요. 사상공단의 첫 번째 도서원이 햇살도서원이었고, 우리는 들불도서원을 만들었어요. 입회비와 한 달 회비(3천 원)를 내면 책을 빌려주는 일종의 책 대여점이었어요. 들불도서원을 만든 선 배가 선거운동을 맡게 되면서 도서원을 챙
“사상공단지역에는 도서원이 많았어요. 마찌
길 사람이 필요했어요. 아버지에게“100만
꼬바 같은 작은 공장들이 많아서 노조를 만들
원만 주십시오”했지. 아버지는 빚을 내서
기는 어렵고 대중단체로 도서원을 많이 만들 었어요. 거기서 남편을 만난 거지.” 58
라도 나를 밀어주는 편이라“그 일은 원래 국가에서 해야 하는 일인데 네가 하겠다고 하니 주겠다” 고 하면서 돈을 마련해 주셨어
요. 그게 91년이었죠. 도서원에서 재밌게 놀았지. 등산도 가고. 어떻게 운영하는지 견학하러 햇살도서원 에 갔다가 거기서 이순규(남편, 노동당 당원)를 만난 거지. 이 : 이순규 선배님은 부산에는 어떻게 오셨대요? 안 : 그 사람은 조직운동을 한 건 아니고 가출을 한 거였어요. 부모님이 교사라 억눌린 게 많았어요. 호 남대를 나오고 마산으로 취직을 해서 3개월 정도 다니다가, 혼자서 맑스 책을 보고 노동자가 되겠다 생각 하고 직업훈련원 다니면서 심심하니까 햇살도서원에 왔어요. 처음 만난 건 구성애 씨가 햇살도서원에서 성교육을 할 때였어요. 다 여자였는데 한 사람이 남자여서 눈에 띄었어요. 들불도서원 회원을 증가시켜야 하니까 순규 씨를 들불도서원으로 옮기게 했지. 그러면서 연애를 한 거고. 도서원 활동하다가 결혼했어 요. 그 때가 92년 3월 29일이었는데 총선 끝난 후라 사람들이 짐을 싸서 배낭을 메고 결혼식장에 왔어요.
증명사진 값도 모르고 차린 사진관 이 : 결혼 후 생활에 변화가 있었어요? 안 : 임신하고 몸이 안 좋아서 후배에게 들불도서원을 물려주고 순규 씨는 공장에 다녔어요. 그러다가 공장에서 다 나오는 분위기였어요. 공장 안에도 여러 정파들이 있었는데 사상구에서 일하다가 도서원 멤 버가 되어 양산으로 들어간 사람들 빼고 나머지가 다 빠져버렸어요. 그때는 애기 낳고 살아야겠다는 생각 만 하고 나왔는데 지금 생각하면 현장 동지들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도망치듯 나온 게 너무 우울해 요. 그때 얘기를 순규 씨랑 많이 해요. 노동조합 만들자고 하던 사람들이 다 빠졌을 때 남은 사람들의 허탈 함이 얼마나 심했을까? 그때가 92년인가 93년인가 그래요. 애기를 낳고 생활을 책임져야겠다고 하니까 순규 씨가 고향으로 가자고 하더라구요. 가서 뭘 할까 하 는데 순규 씨가 자기는 빵을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제빵학원을 뒤지다 보니 사진사가 나오더라 구요. 그래서 사진관 아이디어를 생각했죠. 순규 씨가 학보사 기자를 했었으니까. 사진관은 전통적으로 도제식 수업을 받은 사람들이 하고, 사진학과를 나오면 잡지사 기자를 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걸 안 해 보고 학보사 기자만 하다가 사진관을 차렸으니 증명사진 찍을 때 얼마를 받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 어요. 94년에 광주로 와서부터는 온갖 종류의 선거사진을 다 찍었지. 광주로 오자마자 바로 진보정당추진위 원회(약칭 진정추)에 신고를 했지요,“우리 왔소.”노조 선거사진도 찍고. 사진관을 하니까 웨딩메이크업도 했어요. 그런데 썩 잘하는 게 아니니까 잘 되는 것도 한때고 주인도 나가라고 하고. 그래서 옮기고 또 옮기 고 하면서 안 좋아지기도 했어요. 투자도 많이 해야 하고 자본회전도 안 되고. 게다가 금요일부터 일요일 까지 계속 긴장 상태인 거예요. 애가 유치원에 다니는데 주말에 못 노니까 힘들더라구요. 순규 씨가 사진을 너무 하기 싫다고 해서 신발 가게를 차렸다가 가맹비 회수도 못하고 그만두고 그 자 리에서 또 사진관을 했어요. 디지털기기를 마련해서 음대 팸플릿, 연주회 팸플릿 사진 등 프로필 전문 사 여성 진보정치 열전 59
진을 했어요. 민주노동당이 그 무렵 만들어져서 분회모임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광주 동구 분회모임을 하 는데 저녁 7시에 오라고 하면, 나는 애들 양쪽에 데리고 한 손에 블럭통 들고 다른 한 손에 그림책을 가지 고 갔어요. 우리 애들은 얌전해서 조용히 책 보다가 정 지겨워지면“엄마 지겨워”하고 귓속말을 했어요. 사람들이 다 모여 모임을 시작하는 시간은 9시 정도였고, 아이들이 자야할 시간이니까 나는 집에 가야 했 죠. 애들이 있는데도 분회모임에서 담배를 피
“당에 가면 애 잘 시간에 모임 시작하고,
우고 하던 때였어요. 그러다가 생협활동을 시
아이 있는 데서 담배 피우고, 배려가 없었
작했어요. 하다 보니 생협의 장점들이 보이기
어요. 당에 와서 생협의 장점에 대해 이야 기했더니 여성위원장을 하라고 해서 광주 시당 여성위원장을 했어요.”
시작하잖아요. 생협은 (회의할 때)아이들 돌봐 주고 교육을 많이 하고 여성친화적이에요. 그 런데 당에 가면 애 잘 시간에 모임 시작하고, 아이 있는 데서 담배 피우고, 배려가 없었어 요. 수련회 가면 술은 잔뜩 사 가는데 애들 마
시는 음료는 내가 사 가지고 가지 않으면 아무도 안 사가는 거예요. 체육대회를 하면 여자들은 꼭 상추를 씻고 남자들은 반드시 축구를 하죠. 당에 와서 생협의 장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여성위 원장을 하라고 해서 광주시당 여성위원장을 했어요.
횡단보도에서 표 구걸하다“지역운동을 해야겠다” 이 : 여성위원장으로 활동한 것 중에 기억에 남는 일은요? 안 : 출마했죠, 2004년에. 여성위원장을 한 건 생협활동을 하면서 당에서도 여성활동을 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어요. 여성위원회는 재미있었고 잘 됐어요. 여성당원 명부 받아서 여성당원들을 만나 딱딱한 여성위원회 하려는 거 아니라고 설득했어요. 모임을 할 때 5천 원씩 받아서 베이비시터 부르고 김진숙 씨 불러 강의도 듣고. 이 : 여성당원 모임도 밤에 했어요? 안 : 낮에 했어요. 한 달에 한 번씩 진행했어요. 전체 당원대상으로 강좌도 했는데 비교적 잘 됐고, 광주 시당 운영위원회에서도 좋아했어요. 정당과 생협활동을 하고, 사진관도 하니까 너무 바빴어요. 아침에 생 협회의 하고, 사진관 가서 일하고, 사진관 알바생 오면 넘기고 집에 가서 애들 밥 차려주고, 나는 밥을 못 먹고 택시 타고 당에 가고. 활동을 하다 보니 2004년 선거 때 동구에서 여성후보가 있어야 한다는 명분으 로 출마를 하라고 했어요. 여성위원장이 출마해야 한다고 해서 그렇게 했죠. 정말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 어요. 이 : 득표는 얼마나 했어요? 안 : 4.9%. 내 공약은 없고“새로 성장하는 진보정당에 물을 주십시오”그 이야기만 했어요. 모든 공약 60
은 다 만들어진 거고 내 공약이 아니잖아요. 밑바닥부터 성장해서 후보가 돼야 하는데 갑자기 나오니까 기자들이“시의원 나와야 하는 거 아니냐, 국회의원은 왜 나왔냐?”묻더라구요. 내가 할 말이 있나. 그렇 다고 겉으로는 그렇게 말하지 못하고 진보정당을 알려야 하기 때문에 나왔다고 했어요. 선거 끝나고 두 가지 중압감에 시달렸어요. 주변의 친구, 후배들이 보태준 게 몇 천만 원이었는데 그 돈이 너무 부담스러 워서 고맙다고 전화도 못하고 이걸 어떻게 갚아야 할지 중압감에 너무 시달렸어요. 또 하나는 광주시당에 서 나에 대한 프로그램을 잡아놓고 있는 거예요, 나는 남원으로 왔는데. 2003년에 남원으로 이사를 와있 었고 빛고을생협 이사를 하면서 (광주와 남원을) 왔다 갔다 할 때였어요. 나는 내가 있는 곳에서 활동을 하 고 싶다고 했는데 한번 출마를 한 사람은 자유롭지 못하다면서 무시하는 게 너무 싫어서 엄청 싸웠어요. 한 달 동안 전화를 안 받았어요. 그런 감정들이 깔리면서 남원연수원에 광주 사람들이 안 왔어요. 이 : 연락 안 하면서 당 활동을 마무리한 거예요? 안 : 네. 남원에서 당 활동은 순규 씨가 하고 나는 당 모임에만 나가는 정도였어요. 그래도 2006년 지방 선거 때 후보를 만들어서 선거운동을 했어요. 선거 경험이 있다고 나한테 선본장을 맡기는데, 내가 해 본 건 국회의원 선거이고 시의원 선거는 구체적인 생활로 들어가야 하잖아요. 그런데 내가 남원을 모르는 거 예요, 고민도 안 해봤고. 공약이 당 인트라넷에 올라온 거 말고는 없다보니 한계가 있는 거예요. 후보도 그 다지 건실하거나 신임할 만하지 않았어 요. 그래도 후보를 내야 한다는 목적의
“어느 날 횡단보도 앞에서 선거운동을 하는데
식 때문에 그 사람이 한다고 하니 밀고
‘내가 표 구걸을 하고 있구나’이런 생각이 딱
나갔어요. 후보가 지역운동을 해 본 적 이 없어서 마인드도 없었어요. 그런 상 황에서 선거운동을 하다 보니“다른 후
들었어요. 이런 거지노릇은 안 해야겠다, 그때 부터 지역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보는 도둑놈” 이라는 말밖에 할 게 없었 어요. 어느 날 횡단보도 앞에서 선거운동을 하는데,“내가 표 구걸을 하고 있구나”이런 생각이 딱 들었어 요. 개표를 했는데, 후보 11명 중에 7등이었어요. 이런 거지노릇은 안 해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부터 지역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횡단보도에서 표 구걸하다가. 선거 끝나고 생협 일을 본격 적으로 열심히 하게 된 계기였죠.
조합원 스무 명에서 1400가구로 키워 이 : 광주 빛고을생협 활동 마무리하고 남원생협 활동을 시작한 건 언제부터예요? 안 : 2004년 총선 끝나고. 8월부터 남원생협 준비위원장을 시작했어요. 그때 조합원이 스물 몇 명이었 어요. 협동조합이라는 용어도 생소할 때였어요. 2006년부터는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무리수 를 두면서까지 열심히 했죠. 조합원은 적고 자생을 하려니까(한 달 운영비가 20~30만 원) 잘 안돼서 사람 여성 진보정치 열전 61
아이쿱생협 남원센터 오픈식에 참석한 안상연 당원(가운데) (사진 : icoop생협 홈페이지)
들을 찾아다녔어요. YWCA도 찾아가고 지역자활센터와 사회복지관도 찾아가 도와달라고 했지만 다른 단체 활동하던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는 어려웠어요. 남원 토박이가 이사로 들어오면서 자신감이 생겼어 요. 그래도 여전히 어려웠지만 그렇게 여기까지 왔어요. 어려운 시기에 도망 안 가고 꾸준히 한 게 도움이 되었죠. 남편이 연수원에서 60만 원 받다가 나중에 100만 원 받고, 사진관 정리하면서 빚만 남았어요. 이 : 그 때는 두 분에 대해 면식만 있는 정도라 물어보지도 못했지만“저 가족은 어떻게 살지?”그런 생 각을 했어요. 남원생협 법인창립 전까지는 계속 준비위원회였어요? 법인창립 할 때 이야기 해주세요. 안 : 우리끼리 창립총회 하고 남원생협이라고 그냥 붙였어요. 조합원이 50명밖에 안 되었는데 그래도 마을모임도 하고 조직체계는 다 있었어요. 법인창립은 2010년에 했고, 매장을 연 때는 2011년. 지역자활 센터에서 사업을 따내고 사업비로 생협 물품도 같이 판매하는 자활매장을 내고 상근자도 채용했어요. 그 매장을 2009년부터 2년간 운영했어요. 2009년 말에 법인창립과 매장 개설을 추진하기로 하고 2010년에 총회를 준비했어요. 이 : 몇 달 만에? 안 : 그때 조합원들의 팀워크가 좋았어요. 일거에 조합원을 300명으로 늘리고 조합원 과반수가 출석해 서 법인 창립총회를 성사시켰어요. 2009년에 계획을 세우고 2010년 3월에 창립총회를 하고, 2011년 6월 에 매장을 낸 거죠. 우리가 4억을 모으면 연합회가 건물을 지어주겠다고 했는데, 출자를 의무로 하지 않았 는데도 4억8천만 원을 모았어요. 다른 지역의 성공 사례가 있으니까 두려움도 없었고 조합원 전체의 마음 을 얻기 위해 모임과 설명회를 엄청 많이 했어요. 62
이 : 매장 건물 매입은 언제 했나요?(남원아이쿱생협은 한 건물 전체를 아이쿱센터로 운영 중이다. 1층 매장, 2층 카페, 소극장, 3층 회의실, 4층 사무실, 게스트하우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역거점공간의 기능을 하고 있다. 전 북 남원시 춘향로 38)
안 : 계약서를 쓴 건 2010년 12월 쯤. 조합원도 많아졌어요. 일부는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까 이건 조합원을 위한 거지 시민을 위한 건 아니지 않느냐고 말하는데 협동조합은 원래 이기적인 거예요. 가입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요. 그러나 그것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은 우리가 모두에게 문을 열어야 한다고 하는 거죠. 어쨌든 조합원이 남원시민이고 지금은 1400가구가 되었어요. 처음에 일반조합원(출자 금만 내는 조합원)으로 가입했던 사람도 다 조합비(매달 내는 운영회비)를 내는 조합원으로 전환했어요. 눈에
보이는 사람이 많으니까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아요, 시의원도 찾아오고. 이 : 지금 남원아이쿱생협의 내부 조직률은 어느 정도 되나요? 안 : 매달 1회 이상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은 10%, 150명 정도 돼요. 법인을 2010년에 창립하고 이사장 직을 연임하고 2014년 2월에 이임을 했어요. 어쨌든 내 목표는 성공했어요.‘조직은 내가 없어도 돌아가 도록 해야 된다’ 는 게 제 생각이에요. 이사장 임기 끝나면 뭘 할까 고민하다가 구례자연드림파크(식품 가공 및 물류 기능을 통합한 아이쿱생협의 친환경유기식품 클러스터) 활동을 시작했어요. 지역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하지만 종적인 연대도 필요하죠. 협동조합은 운영의 효율도 떨어지고 순발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네트워 크의 강점을 살려야 해요. 그런 네트워크는 아이쿱생협 안에서 자리를 잘 잡아나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 요. 지역네트워크는 그 다음에 만들면 되고.
비판을 넘어 거버넌스로‘시민공감’ 이 : 남원에서 새로운 단체를 만들었다던데 그 얘기를 해볼까요? 안 :‘시민공감’ 이라는 단체를 만들었어요. 정치활동이라는 게 선거 개입하는 것도 있지만 행정의 거버 넌스를 형성하는 것도 있어요. 행정을 비판만 하는 게 아니라 잘 될 수 있도록 거버넌스를 만드는 것도 방 법이라고 생각해서 하게 된 거예요. 이 : 구성원들은? 안 : 일단 아이쿱생협 활동을 하는 사람들. 처음에 같이 하자고 했던 사람들이 녹색당 쪽 사람들(주로 귀 농귀촌자들)이에요. 주민자치 활동하는 분들이 박원순 씨랑 중간지원조직을 만들어 활동했던 경험을 가지
고 남원으로 와서 제안을 하면서 나도 동의를 했어요. 이 : 구상하고 있는 활동은 어떤 것들인가요? 안 : 주체가 오관영 씨(전 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 아이쿱생협, 신협이 있어요. 또 전주 남부시장 청 년몰 사업을 하면서 재래시장 살리기 사업을 해온 청년들이 있어요. 지역으로 갈수록 청년들을 모이게 하 는 게 과제여서 그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어요. 공무원노조, 농민회도 같이 하고. 어느 정도 진행되면 법인 여성 진보정치 열전 63
을 내려고 해요. 지금 한 서른 명 정도가 모여서 준비하 고 있어요. 법인 이름은‘시민공감’ 으로 하고 행자부 소속의 사단법인으로 등록할 예정이에요. 이 : 남원시장 공약 중에 이와 비슷한 사업이 있다면 서요? 안 : 시민활동지원센터. 시민활동의 내용 중에 자발 적으로 만든 협동조합도 있고. 남원도 전국적으로 진행 되는 (건물 중심의)하드웨어 사업을 많이 받아 놨어요. 하드웨어가 있어도 내용이 부족하니까, 프로그램을 살 리고 사람들을 살리는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 : 복지사업에 대한 구상도 하고 계시지요? 안 : 지역에서는 시민공감, 아이쿱생협에서 구례자 연드림파크 안내자 역할을 하고, 복지사업에 대한 활동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 먹거리/생 활용품 협동조합인데, 이걸 넘어서 서 생활 전반의 협동조합으로 가려
은 아이쿱생협 안에서 만든 사적인 동아리예요. 필리핀 공정여행 가서 (아이쿱생협에서는 기여자 우선 정책에 의 거하여 활동마일리지에 따라 활동가들에게 다양한 복지 혜 택을 제공하고 있음. 공정여행도 그 혜택의 일환) 퇴임한 이
면 다양한 요구를 다룰 수 있어야 하
사장들과 이야기가 됐어요.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 먹
고 그 중 하나가 복지사업이에요.”
거리/생활용품 협동조합인데, 이걸 넘어서서 생활 전 반의 협동조합으로 가려면 다양한 요구를 다룰 수 있어 야 하고 그 중 하나가 복지사업이에요. 다양한 협동조
합을 이야기 하는데 일자리 협동조합은 쉽지 않고 많은 연구가 필요해요. 특히 돌봄서비스는 국가복지로 그걸 해결하려고 하면 세금으로 다 할 수가 없는 영역이 있어요. 그걸 상호부조로 해결할 수 있는 (해외)사 례가 있으니까 생협을 중심으로 만들어보자 생각하고 있어요. 상품과 상호부조의 가운데쯤 있는 새로운 영역일 거 같아서 지금 공부하고 준비하는 중이에요. 이 : 고민은 다 비슷한 것 같아요. 정당이든 단체든 모두 현장을 강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현장 밀착성 이 떨어지는 게 현실이에요. 사회적 경제 네트워크 구축, 지역 시민활동 활성화, 또 복지사업 등 하고 계신 일에서 좋은 사례를 많이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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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설 수도, 물러설 곳도 없는 이곳은 낭떠러지 끝 노동르포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KTK 노동자들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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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르포
물러설 수도, 물러설 곳도 없는 이곳은 낭떠러지 끝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KTK 노동자들과의 만남 서분숙 기록 노동자
남의 일인 줄만 알았던 공장의 폐업 미포만의 바다는 푸른빛이 아니다. 수심이 깊은 동해는 해안선을 따라 짙푸른 바다가 흔 들리지만 미포만의 바다는 육지 안쪽으로 깊이 들어와 있는 탓에 여느 동해에 비해 수심이 얕아 그리 푸르지도, 물살이 센 바다도 아니다. 그런 이유로 미포만은 조선소가 입지하기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파랑이 실어다 나른 고운 모래가 넓게 펼쳐진 미포만의 해안에서 누군가 가 노래를 부른다. 요즘 새로 나온 노래인지 이전에는 들어 본 적이 없는 낯선 노래들이다. ‘힘내라, 하청 노동자’ 라는 제목을 단 작은 콘서트라 해서 노동가요를 많이 부를 거라 여겼 지만 바닷가 콘서트장은 여느 젊은이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들로 가득하다. 무대에서 대학 생들의 노래공연이 이어지는 동안 함께 온 동아리 회원인 듯한 젊은이들이 서로 어깨를 걸 고 노래를 따라 부른다. 얼핏 봐서는‘힘내라, 하청 노동자’ 라는 제목을 단 공연에는 어울리 지 않는 풍경인 듯하지만, 좀 더 생각해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 대학생활이 끝나면 졸업 과 동시에 저 젊은 학생들이 마주할 삶도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일 것이다. 지금은 노래에 취하고 함께 어깨 걸고 추는 춤에 취할 나이지만 살다보면 이 기꺼운 행복을 지켜나 가기가 쉽지만은 않은 날이 올 것이다. 누구나 다 그러했다. 다가오는 삶은 좀 더 행복하기 를, 다가오는 삶은 좀 더 안정되기를…. 미포 조선 사내하청업체 KTK 노동자들도 그랬다. 부산, 거제의 조선소, 울산 현대중공 업, 미포조선을 옮겨 다니며 수십 년을 하청공장의 노동자로 살면서 한결같이 꾸었던 꿈은 좀 더 안정된 삶, 좀 더 나은 삶이었다. 어떻게든 한 업체에서 좀 오래 있다 보면 자녀들 학 66
5월 9에 열린 '힘내라 하청노동자' 문화콘서트 (사진 : 서분숙)
자금 지원도 받고 많지 않은 돈이나마 성과급도 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며 버텨왔지만, 노동자들의 기 대가 채 자라기 전에 업체가 먼저 문을 닫았다. 근속연수가 쌓여갈 틈도 없었다. KTK도 설립한 지 일 년 이 안 되어 폐업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문자로 폐업통보가 날아들었다. 2015년 4월 11일 토요일 오후, 지 금 일하는 업체가 폐업을 하게 되었으니 지급한 장비를 모두 반납하라는 문자였다. 전 달인 3월은 유달리 일을 많이 했다. 3월이면 아이들 학비며 준비물이며 유독 돈이 많이 들어가는 달이 아닌가. 일은 힘들지만 돈은 더 받을 수 있으니 잔업이고 특근이 고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 원청뿐만 아니
3월이면 유독 돈이 많이 들어가는 달이 아닌
라 하청업체 사장도 이미 작심하고 노동자
가. 힘들지만 잔업이고 특근이고 가리지 않고
들을 속인 것이다.‘먹튀’ 였다. 업체 사장 은 원청에서 기성금(하도급업체가 공사 진행 정도에 따라 공사비를 신청하는 것)을 미리
일을 했다. 헌데 갑자기 문자로 폐업통보가 날아들었다.‘먹튀’ 였다.
받아 이미 개인채무를 갚는 데 다 써버렸 다며 노동자들에게 줄 돈이 없다고 했다. 업체 노동자들이 건조부 사무실과 미포조선 노동조합 사무실을 찾아가 항의하고 따져 봐도 모두들 자기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만 한다. 다른 업체에서 일하던 노동자 가 죽어 나가도,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권리를 찾겠다고 노조에 가입하니까 그 노동자들이 일하는 업체를 폐업해 버리는 일을 가까이서 겪고도, 그것은 모두 다른 사람들의 일인 줄만 알았다. 예전에 공장 출입문 노동르포 67
을 들어오고 나가며 정문 앞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을 마주치곤 했지만 모두 남의 일인 줄만 알았다. 그러 나 공장이 폐업한 4월 11일, 그날 이후 KTK 노동자들도 거리에 섰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다시 일할 곳 을 찾는 일도, 떼인 임금을 다시 돌려받는 일도 스스로 싸우지 않고는 해결할 길이 없었다. 오월이 초반을 훌쩍 넘어서고 있는 날이었지만 저물녘의 바닷바람은 차갑다. 노래공연이 끝난 무대에 서 KTK 노동자인 김영배 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올해 쉰둘, 그는 맑은 날의 하늘빛을 닮은 색깔의 옷을 입었다. 미포만을 가득 채운 바다보다 밝고 고운 색이다. 삼년 전, 영배 씨는 수술을 했다. 위암이었다. 한 창 나이에 만난 병이었다. 혹독한 병을 품고 산 탓인지 그는 이렇게 솔직하고 당당할 수 있는 지금의 모습 이 참 좋다고 한다. 여느 때 같으면 지금의 체력으로는 출근투쟁이나 노숙농성을 견뎌내기 어렵겠지만 요 즘은 오히려 더 힘이 난다고 한다. 더욱 애틋해진 삶에 대한 사랑 때문일까. 당장은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앞날에 대해 불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더 이상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의지가 그를 쓰러지지 않게 한다. 그의 마음만큼이나 그의 이야기도 길고 간절하다.
예전 같으면 그냥 포기했겠지만 이번엔 우리가 들고일어난 거죠 울산의 오월은 줄장미 넝쿨과 함께 온다. 공장 건물이 많은 동구와 북구 지역은 오월이면 공장 담장마 다 줄장미 넝쿨이 번져간다. 왜 그 많은 식물 중에 하필 줄장미일까. 줄장미는 번식력이 강하지만 그렇다 고 결코 만만한 식물이 아니다. 때로는 사람을 찌르기도 한다. 그냥 수도 없이 피었다가 지는 꽃일 뿐이라 고 쉽게 보았다가는 가시에 찔려 피를 흘리기 십상이다. 세상에 무엇 하나 쉽고 만만한 생명은 없다. KTK노동자들의 농성장이 있는 미포조선 동문 앞 도로 건너편 담장에도 줄장미 넝쿨이 번지고 있다. 오월부터 시작해서 곧 다가올 여름 내내 저 넝쿨에도 얼마나 많은 장미꽃 송이들이 피고 질 것인가. 현대 중공업과 미포조선에서 일하는 하청업체 노동자 수는 약 사만 오천여 명이다. 너무 많아서 언제 어디서 일하고 어디로 사라지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는 숫자다. 마치 끝없이 피었다가 져버리고 또 다시 피기를 반복하는 저 줄장미처럼 말이다. 미포조선 하청업체인 KTK는 선박의 선체를 만드는 건조부이다. 취부, 사상, 용접으로 일의 영역이 나 뉘어져 있는데 KTK 노동자인 김영배 씨는 건조부 일을 옷을 만드는 과정에 비유한다. 취부라 하면 양복 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초 바느질을 거친 후 그 옷이 옷 주인에게 잘 맞는지 어떤지를 재어보는 단계이고 용접은 바느질 단계, 그리고 사상은 완성된 옷을 다림질하는 단계에 해당한다고 한다. 영배 씨가 하는 일 은 바느질을 해서 옷의 형태를 완성하는 용접단계이다. 이 일을 한 지 이십 년 째다. 그동안 그의 손을 거 쳐 단단하게 박음질된 배가 몇 척이나 될까. 대부분이 50대, 60대인 KTK 노동자들은 거제, 통영, 부산 , 울산을 오가며 조선소에서만 일한 전문직 기술자들이다. 전문기술이 있으니 상대적으로 월급을 많이 받 지 않느냐는 오해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다른 수당이 없고 대부분 성과급조차도 받지 못하다 보니 정규 직 노동자들에 비한다면 월급은 삼분의 일 수준도 되지 않는다. 68
농성장 천막을 세워놓으면 불법이라며 뜯어가 버리니 아예 도로가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서너 명 이 앉을 만한 장판 하나만 깔고 하늘을 지붕 삼아, 바람을 이불 삼아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오월 첫날 인 노동절부터 긴 연휴가 시작되었지만, KTK 노동자들은 휴식은커녕 밀린 임금지불과 고용승계를 요구 하며 벌써 여러 날들을 거리에서 잠들고 거리에서 먹고 거리에서 싸우는 중이다. 공장 앞 넓은 도로 위로는 휴일에도 여전히 화물차들이 쌩쌩거리며 지나간다. 미포조선과 중공업 안으 로도 많은 화물차들이 들어가고 또 나온다. 이렇게 분주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공장이니, 열심히 일하면 그래도 자식들 학비 대고 조금씩 저축도 하며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중공업과 미포조선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일하면 일할수록 임금이 줄어들고, 그나마 이제는 한 군데 일 자리에서 채 일 년을 채워서 일하기 도 어렵다. 조선업 전체로 보면 일은 계속 이어지지만, 업체는 계속 폐업
열심히 일하면 그래도 자식들 학비 대고 조금씩 저축도 하며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어 찌된 일인지 일하면 일할수록 임금이 줄어들고, 이제는 한 군데에서 채 일 년을 채우기도 어렵다.
을 하고 노동자들은 점점 더 싼 임금 과 장시간 노동으로 내몰린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 위암수술을 한 후로는 술은 입에도 대지 않던 영배 씨가 오늘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맥주 두 잔을 연거푸 비워낸다. 영배 씨는 요즘 들 어 이런 일들이 부쩍 더 늘어났다고 한다. “요 근래 와가지고 중공업이나 해양도 그렇고, 체불임금도 자주 발생하고, 임금이 제 날짜에 나오지 않 는 일도 허다하고, 나온다고 해도 백 프로 한꺼번에 다 나오지 않고 반반씩 나눠서 나오고, 미포 같은 경우 는 지난 해 11월부터 그런 현상이 자주 일어났어요. 업체가 문을 닫는다는 소문도 나돌고. 이번 일 겪으면 서 알게 된 사실이, 4월 초에 KTK가 문을 닫고 4월 말에 또 다른 업체가 문을 닫게 되어 있었어요. 그런 데 우리가 들고일어나니까 다른 업체가 문을 닫는 게 지금 보류가 된 상태거든요. 만약 계속 이런 상태가 진행돼 업체가 문을 닫으면 거기서 일하는 인원들이 어디로 가느냐, 각각 흩어져서 더 나쁜 조건의 업체 로 일하러 가는 거죠. 결국 원청에서 보면 인력은 그대로 쓰되 임금은 적게 주겠다는, 근데 임금을 적게 받 으면서 사람들이 지금 유지하는 생활의 수준을 맞추려면 결국 잔업, 특근을 더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러니까 원청에서는 임금은 낮추고 생산력은 높이는 그런 계획을 이미 잡고 있는 거죠. 실제로 KTK 노동 자들이 이미 다른 업체로 흩어져 갔는데 임금이 삭감된 채로 간 거죠. 기업에서 그런 걸 노리는 거죠.” 백여 명에 가깝던 KTK 노동자들 중 지금 농성에 합류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살기 바쁜 노동자들의 현실에서는 당장 떼인 임금보다는 다가올 미래가 더 걱정이다. 한 달 일 한 임금을 받지 못하면 그 영향력은 두 달 이상을 간다. 보험료가 밀리고 월세가 밀리고 아이들 학비며 학 원비가 밀리면 그 다음 달은 두 달, 세 달 치의 생활비가 있어야지 겨우 한 달을 버틸 수 있다. 그래서 노동 자들에게는 떼인 임금을 받아내는 일만큼이나 당장 다음 달의 생계를 해결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래서 농 노동르포 69
성장에 남아 싸우는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찾아 떠난 동료들을 이해한다고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악 순환을 되풀이해야 할지, 일을 하면 할수록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내몰리는 현실을 깨뜨리는 방법은 하청 노동자가 많이 뭉쳐서 큰 힘을 내는 수밖에 없는데, 아직 그 길이 멀다. 장시간 저임금 노동이 노동자에게 던지는 고통은 생계의 위기만이 아니다. 인간적인 자존심, 사람답게 산다는 것의 소중함조차 놓쳐 버린다면 어떻게 살 텐가. 땅바닥을 갈라놓을 듯이 진동을 전하며 육중한 무게의 트럭이 지나간다. 도로 건너편 담에 핀 줄장미가 흔들린다. 농성장에 있는 누군가의 목소리도 줄 장미처럼 흔들리며 들려온다. “아이들 학자금 지원이나 성과급이 공장엘 오래 다니다 보면 다닌 햇수에 따라 나오니까, 그게 그렇게 큰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이란 게 참 그래요. 그런 걸 받으려고 한 직장에 오래 있으려고 그래요. 그러 는데 직장이 버텨주질 못하니까, 그러다가 업체가 문을 닫아 버리면 처음부터 다시 또 시작해야 하는데 …. 하나를 기대하고 살아왔는데 하나가 무너져 버리니까, 그런 게 쌓이고 쌓이며 살아오니까, 이제는 아 예 포기해 버리는, 가면 갈수록 삶의 질은 점점 떨어지고….”
진실된 노동의 대가가 보장되는 일터가 되기를 나도 앞서간 열사들의 고뇌와 희생에 같은 심정이다. 나의 한 몸 불태워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 한 환경이 착취당하는 구조가 개선되길 바란다. 악질 협력업체 사장 박진용 같은 사람이 이 사회에 발 붙일 곳 없어야 한다. 부디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진실된 노동의 대가가 보장되 는 일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박일수 열사의 유서 중에서 박일수 열사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다. 1954년생인 그는 쉰 한 살의 봄을 맞지 않았다. 2004년 2월 14일, 그는 절망스러웠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뒤로하고 차라리 그 자신이 겨울을 이기고 힘겹 게 피어 오른, 그러나 차가운 바닥으로
농성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의 가슴에는 동그란 배지가 하나씩 달려있다. 하청 노동자의 삶이 노예와 다르지 않다는 말을 남기고 분신한 박 일수 열사의 모습이 새겨진 배지다.
몸을 던져 버린 동백꽃이 되었다. 그해 2월 그는 방어진 동백꽃처럼 붉은 불꽃 으로 저물었다. 미포조선 동문 앞 농성장에서 만난 KTK 노동자들의 가슴에는 동그란 배 지가 하나씩 달려있다. 십여 년 전, 박
일수 열사가 분신하던 날, 지나가는 소문처럼 그의 죽음 소식을 들었지만 공장 안에서는 그 사실을 가리 기에 바빴다. 하청 노동자의 삶이 현대판 노예와 다르지 않다는 말을 유서에 남기고 분신한 박일수 열사 의 모습이 지금 동그란 뱃지에 새겨져 KTK노동자들의 가슴 위에 놓여있다. 70
미포조선 동문 앞의 KTK 노숙농성장 (사진 : 서분숙)
“그때는 노조를 몰랐어요. 사실 알 틈도 없었고요. 길 가다가 일인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왜 저러 는가 싶었는데, 우리가 직접 당해 보니까 이게 남의 일이 아니더라고요.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잖아 요.” KTK 노동자들은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들이 이렇게 농성장에 있을 줄 몰랐다. 박일수 열 사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듯,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KTK노동자처럼, 박일수 열사처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제는 그들 모두 잘 알고 있다. “하청업체의 폐업은 업체 자체의 판단에 의해 이뤄지지 않아요. 결국은 원청의 판단에 의해서 이뤄졌 다는 거예요. 업체가 폐업을 하고 신생업체가 생기면 그 업체는 살아남기 위해서 더 열심히 일을 하니까. 여기서 그만두고 다른 업체를 가도 새로 간 그 업체는 안전한가 하면 결국은 하청업체 노동자는 어디를 가 도 안전한 데가 없다는 거죠. 이런 문제가 결국은 정규직한테 가겠죠. 하청 노동자가 무너져 버리면 결국 은 그 부담이 정규직한테 가는데 중공업 노동조합 같은 경우는 그걸 알고 아, 이거 하청 노동자 손을 잡아 야겠다 이렇게 하는데 미포조선 노동조합 같은 경우는 노조가 아니라 회사의 일을 맡아서 하는 하나의 부 서 같은 역할, 대변인 같은 역할(을 해요.) 결국 우리 미포조선 같은 경우는 하청 노동자가 설 자리가 없어 요. 결국은 우리 스스로가 깨닫고 깨어나야지.” 아직 돈 들어갈 일이 많은 대학생 딸과 아내의 얼굴이 늘 눈앞에 밟힌다는 영배 씨는 가족들을 위해서 라도 이번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조선소 생활만 이십년 째. 일터를 옮기더라도 더 나쁜 조건으로 노동르포 71
일을 하게 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임금이 낮아지고 노동시간은 길어진다. 지금 현대중공업은 정규직 노동자 수가 이만여 명인데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수가 사만 오 천여 명이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장시간 저임금 노동의 칼날은 머지않아 정규직 노동자들 의 목을 겨눌 것이다. 그 칼날이 눈앞에 있는데도 제 살을 찌르기 전에는 보지 못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KTK 노동자들은 안타깝다. 당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조금만 더 이웃의 아픔을 깊이 들여다본 다면, 그 외침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 아픔이 곧 내게로 번져올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지 않는가. ‘현대 중공업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우산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함께 비를 맞는 일보다 좀 더 나은 일은 함께 우산을 쓰는 일임은 당연하다. 그러나 함께 비를 맞지 않 은 사람은 우산을 함께 나눠 쓸 수 있는 마음을 내기가 어렵다. 지금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은 정 규직 노동자와 함께하는 하청노조 가입 운동이 한창이다. 정규직 노동조합이 우산이 되어준다는 말은 어 떤 뜻일까. 그 우산은 얼마나 단단할까. 미포만에서 만난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우산의 힘이 어디까지인지 물어보았다. 답은 간단 했다. 한마디로 그리 큰 힘은 될 수 없을 거라 했다. 하청 노동자들의 힘은 하청 노동자들 스스로에게서 나 올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노조에 가입하면 블랙리스트에 올려 취업을 못하도록 할 것이다, 노조에 가입하면 업체를 폐업시켜 버 리겠다는 협박이 두려운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조합 가입을 망설이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 을까. 나는 그 두려움을 떠올리며 문득 미포만 해안가의 수많은 모래 알갱이들이 떠올랐다. 먼지 같고 바 람 같은 이 작은 알갱이들이 이렇게 엄청난 모래사장을 만들었구나. 그리고 또 있다. 오월의 줄장미. 바람 만 불어도 훅 꽃잎을 떨구는 저 여리고 작
“노동조합 가입을 많이 해야 합니다. 조합
은 꽃들도 수만 송이, 수천 송이 넝쿨을 이
원이 많아야 노동조합이 힘을 가집니다. 힘
루니 저 거대한 공장의 담을 다 덮는구나.
을 가진 노동조합이 있으면 하청 노동자의 삶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꽃 같고, 모래 알갱이 같은 그 누군가의 외 침이 들려온다. “노동조합 가입을 많이 해야 합니다. 많 이 가입하면 노동조합이 힘을 가질 수 있습
니다. 가입을 하면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는 것, 잘 압니다. 그러니까 많이 가입해야 합니다. 조합원이 많아야 노동조합이 힘을 가집니다. 힘을 가진 노동조합이 있으면 하청 노동자의 삶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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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과 공적연금 ‘슈퍼갑’재벌·대기업들이 더 부담해야
정책포럼
조동진 정책실장
대한민국 국격은 딱 260원 짜리, 최저임금 날치기는 원천무효다 (2011.7.13) 최저임금 4580원, 이명박 씨가 대한민국 대통령인 것보다 부끄럽다 (2012.6.26) 2014년 최저임금 5210원 결정, 갈 길이 멀다 (2013.7.5) 2015년 최저임금 5580원, 노동배제적 인식의 한계 (2014.6.27)
340원 인상이 소득주도 성장인가 지난 몇 년 동안 최저임금 결정을 전후로 나온 당 논평의 제목이다. 2011년 7월 13일 새 벽, 최저임금위원회는 2012년 최저임금을 전년보다 딱‘260원’오른 4580원으로 날치기 통과시켰다. 2013년 최저임금은 경영계가 4580원‘동결’ 을 주장하면서 결국 4860원으로 고작‘280원’인상됐다. 올해에도 최저임금 논의 흐름을 보면 아직도‘갈 길이 멀고’정부와 자본의‘노동배제적 인식’ 이 여전하다. OECD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소득불평등이 경제성장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서 상위 10%의 소득이 하위 10% 소득의 9.5배에 달할 정도로 지난 30년 동안 소득불평등이 악화되 었고, 이 소득불평등이 경제성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여러 나라 정부와 기업에서 최저임금과 임금 인상 움직임이 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걸그룹 아이 돌이 출연한‘알바몬’광고가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유도 있지만, 최경환 경제부총리 가 소득주도 성장론을 일부 수용해 최저임금 인상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면서 기대치가 높아 정책포럼 73
최저시급을 소재로 한‘알바몬’ 의 광고
졌다. 하지만 최경한 부총리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이 내놓은 최저임금 인상안은 6000원으로‘혹 시나’했더니‘역시나’ 였다. 새누리당의 6000원 안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2014년 7.2%, 2015년 7.1% 인상의 연장선상으 로 하던 대로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고작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을 상징하는 1만 원은
7% 인상은 소득분배구조 개선은 물론 정
생활임금, 평등임금에 대한 요구이다. 최저
부와 새누리당이 말하는 내수진작 효과도
임금 1만 원 인상은 저임금 불안정 장시간 노 동 사회를 해소하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기대하기 힘들다. 반면에 민주노총을 비롯 한 노동계와 노동당은‘최저임금 1만원’ 을 주장하고 있다.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을 상징하는 1만원은 생활임금, 평등임금에
대한 요구이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은 저임금 불안정 장시간 노동 사회를 해소하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최저임금 1만원은 왜 필요한가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국내에서 최저임금(5210원) 미만의 급 여를 받고 일하는 노동자는 227만 명에 달한다. 전체 임금노동자의 12.1%다. 10명 중 1명 이상이 최저임 금도 받지 못하고 일하는 셈이다. 최저임금 미달 노동자는 근무형태와 직장규모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 게 존재했다. 최저임금 미달자의 6.9%가 정규직이었고 1.9%는 300인 이상 대기업 노동자였다. 74
현재 최저임금 제도는“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등을 고려하 여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1988년 도입된 최저임금은 다양한 근로자의 생계를 보장하지도 못하고, 유사근로자의 임금 수준을 반영하지도 않았다.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그리고 소득분배 조정분을 충분 히 고려한 것도 아니다. 우선, 최저임금법에 나와 있는 3대 요소 중 무엇보다‘생계비’ 가 최저임금 결정 기준 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최저임금이 사실상 최고임금인 노동자들에게 먹고살 만한 생활
최저임금이 사실상 최고임금인 노동자들 에게 먹고살 만한 생활임금으로서의 역할 을 하려면, 임금이 노동자 본인뿐만 아니
임금으로서의 역할을 하려면, 임금이 노동자
라 세대 전체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현
본인뿐만 아니라 세대 전체의 생계를 책임지
실을 고려해야 한다.
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이미 유엔사 회권위원회와 국제노동기구 등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권고하는 사항이다. 이제까지 최저임금위원회는‘미혼 단신근로자의 생계비’ 를 기준으로 삼았는데, 최근 발표된 지난해 미 혼 단신근로자의 생계비는 155만 3390원이다. 하루 8시간을 일한다고 가정했을 때 시간당 7430원으로 현재 최저임금 5580원보다는 높지만,‘미혼 단신근로자’ 란 기준 자체가 문제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한국 노동패널 자료를 바탕으로 최저임금 미만이나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평균 가구원수(2.5 명)를 고려하여 실태생계비를 산정했다.
둘째, 김유선의 연구에 따르면, 최저임금이 도입된 1989년부터 2014년까지 25년 동안 연평균 최저임 금 인상률은 시급 기준으로 9.8%(월 환산액 기준 9.2%)다. 같은 기간 10인 이상 사업체 상용직의 명목임금 인상률은 시간당 임금 기준으로 9.5%(월 환산액 기준 8.8%)고, 경제성장률+물가성장률은 9.4%였다. 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 조사에서 10인 이상 사업체 사용직 임금통계와 비교한 결과, 2014년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월정액급여의 39.5%, 시간당 통상임금의 25.3% 수준으로 나왔다. 지표에 따라 차 이가 크게 나타났지만, 더 중요한 것은 1989년과 2014년의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이 거의 같다는 점이다. 최저임금을 일반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률과 비슷한 수준에서 결정한다면 저임금 노동자의 해소라는 본연의 역할을 하기 어렵다. 또한 경제성장률과 물가성장률을 합한 수준과 같다면 소득분배 조정분은 반 영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산정 기준으로 2015년 경제성장률(3.4%), 물 가상승률(1.9%)에 더해 소득분배 개선치(2.9%)를 반영했다.
최저임금, 왜‘을’ 끼리 싸워야 하나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저임금 논의에 부쳐>란 시론(한국일보. 5월 13일자)에서 이렇게 지적 정책포럼 75
했다. “논쟁은 비민주적이다. 무언가를 토론에 부치는 것, 그래서 논쟁 ‘거리’ 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대자본 혹 은 권력의 효과적인 지배형식이 됐기 때문이다. 논쟁을 살펴보면, 우습게도‘사소한’사실들이 객관이란 탈을 쓰고 대립한다. 진실도, 보편도 아
<공적연금 강화 합의문>이 나오자 대통령이
닌 일면적 사실들은 논쟁을 통해 스스로
나서서 국민연금 명목 소득대체율 50%를 논
를 부풀리며 진리를 자처한다.”
쟁 ‘거리’ 로 만들었다.‘공적연금’ 의 근본적인 목적에 대한 성찰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건 ‘재정통계’ 뿐이었다.
정부와 자본의 지배전략은 최근 불 거진 연금개혁 논란에서 그대로 드러났 다. 5월 2일 <공적연금 강화 합의문>이 나오고 며칠 후 대통령이 나서서 국민적 합의를 내세워 국민연금 명목 소득대체
율 50%를 논쟁 ‘거리’ 로 만들었다.‘공적연금’ 이 존재하는 근본적인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 사라 진 자리에 남은 건‘재정통계’ 뿐이었다. 모든 공적연금의 목적은 생애기간에 걸친 소득균등화와 사회보험 기능을 통해 노후빈곤을 방지하고 노후불평등을 해소하는데 있다. 공적연금의 윤리적 토대가 내가 낸 보험료에 더해 기업과 부자들이 더 부 담하고 다음 세대가 일정하게 기여하는 방식이라면, 현실적 토대는 노인 빈곤율이 OECD 국가 평균 12.4%의 4배인 48.6%에 달하고 노인 자살률도 세계 최고 수준인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처음에는 공무원들을‘세금 도둑’ 으로 몰더니, 그 다음은 국민연금 강화에 따른 보험료 인상을‘세대 간 도둑질’ 로 호도했다. 공적연금 강화냐, 사적연금 활성화냐가 아니라 공무원 과 국민 간에,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간에‘전선’ 이 그어졌다. 선진국에 비해 유난히 낮은 기업과 부자들 의 사회보험 부담과 국민연금 사각지대를 낳은 불안정 저임금 노동시장 같은 핵심의제는 뒷전으로 밀려 났다. 1973년 국민연금법의 전신인 국민복지연금법이 제정될 당시 직장가입자의 보험료 부담률은 사용자 4%, 노동자 3%였다. IMF 직후인 1998년 국민연금법을 만들면서 사용자와 노동자의 부담률이 1:1로 개악 됐다. 2010년 기준 OECD 국가들의 GDP 대비 사회보장기여금은 고용주 5.3%, 피고용자 3.2%이다. 2013년 기준으로 공적연금에 대한 기업 부담은 핀란드는 노동자의 3배를, 스페인은 5배를 더 낸다.
최저임금, 이제는 국회에서 다루자 국민연금 논쟁에서의‘기금 고갈’ ,‘세금 폭탄’ 이란 공포 마케팅과 은폐 마케팅은 최저임금 논쟁에서 ‘고용 감소’ 로 대체된다. 경영계는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으로‘임금 부담이 늘면 경쟁력이 떨어지고 고 용은 더 줄어든다’ 는 소위‘임금 숙명론’ 을 내놓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영향을 미친다는 경영계 76
의 주장은 곧장‘충격 흡수 여력이 없는 영세기업, 중소기업이 타격을 받는다’ 는 레퍼토리로 이어진다. 원인을 제대로 진단해야 제대로 된 대안이 나온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노동소득분 배율은 1997년 75.8%에서 2011년 68.2%로 7.6% 포인트 하락했다. 1983~1997년 0.9% 포인트 하락한 것보다 8배 이상 높다. 한 나라의 전체 소득 중에서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을 나타내는 노동 소득분배율 이 떨어진 것은 노동에 대한 보상이 줄고 그만큼을 기업이 가져갔다는 의미다. 경향신문이 2013년 9월 금융감독원 공시자료(2012년)를 토대로 조사한 결과 삼성전자·현대자동차를 포함한 20대 기업의 노동소득분배율은 49.9%였다. 국내 기업들의 평균 노동소득분배율(59.7%)보다 10% 가까이 밑돌았고, 500대 기업의 노동소득분배율 역시 53.7%로 전체 평균보다 낮다. 한국경제가 성장해도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이득이 적은 이유는 대기업
중소사업장의 고용감소를 우려한다면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 때문이다. 대기업들
중심 산업정책을 바꾸고 대기업의‘갑질’ 을규
이 자본집약적 투자를 하다 보니 일자 리 창출 효과가 크지 않은데다가 골목
제해야 한다. 최저임금 논의를‘을’ 끼리의 논
상권마저 이들이 장악하면서 영세 자
쟁으로 몰아가는 것은 대기업을 보호하는 은
영업자들도 위기를 맞고 있다. 따라서
폐 마케팅일 뿐이다.
이를 무시한 채, 최저임금 논의를 비정 규직과 영세자영업자 등‘을’ 끼리의 논쟁으로 몰아가는 것은‘수퍼갑’ 인 대기업을 보호하는 은폐 마케팅 이다. 진정으로 중소사업장 노동자의 고용감소를 우려한다면, 대기업 중심 산업정책을 바꾸고 대기업의‘갑 질’ 을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 최저임금 사각지대가 걱정이라면 포괄임금제, 휴게시간‘꺾기’ , 수습·장 애인·특수고용직 적용제외 같은 제도적/행정적 허점부터 정비해야 한다. 현재 최저임금위원회 구조로는 최저임금 인상과 연동된 원·하청 경제구조의 근본적인 개혁이나 영세자영업자를 포함한 사회안전망 구 축, 최저임금 사각지대를 낳는 노동시장 등의 문제를 풀기 어렵다. 이제 국회가 나서야 한다. 매년 반짝하는 최저임금 투쟁에 머물지 않고 하반기 국회와 내년 총선까지 저임금 불안정 장시간 노동 사회를 바꾸는 투쟁을 이어가자.
정책포럼 77
논평을 논평하다
CCTV는 불안을 먹고 자란다 황종섭 노동당 언론국장
[2015년 4월 29일 노동당 대변인실 논평]
CCTV로 집회 현장 지휘, 경찰은 준법정신 잊었나 서울지방경찰청장이 CCTV를 이용해 집회를 관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8일, 세월호 1주기 추모 집회 때 서울 광화문 부근 교통용 CCTV 9대의 외부시청이 중단됐는데, 이같은 용도로 쓰인 것이다. CCTV가 시민들 감시에 사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3월, 경찰은 고속도로 CCTV를 이용해 집 회 참가자를 촬영했다가 비판이 제기되자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세월호 유가족을 몰래 촬 영하다 들키는 등 CCTV를 이용한 감시가 계속되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법 제25조 5항에 따르면,“설치 목적과 다른 목적으로 영상정보처리기기를 임의로 조작하거나 다른 곳을 비춰서는 아니”된다.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교통용 CCTV를 임의로 조작하여 시위대를 촬영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휘까지 하였다. 명백한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에 강신명 경찰청장은“CCTV를 통해 집회를 관리하고 사람을 찍은 것이지만 교통관리와 직결되는 일” 이라며,“법령상 근거가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검토해서 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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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겠다” 고 밝혔다. 이렇게 편의적인 태도라니, 법집행기구의‘장’ 이 한 말이라 믿을 수 없을 정도다. 경찰은 시민들을 상대로 언제나‘준법정신’ 을 부르짖는다. 지난 18일에도 경찰은 CCTV 화면을 보며,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에게 연신 법을 지키라고 을러댔다. 도둑이 도둑질하지 말라는 꼴이다. 이제 경찰은 스스로 한 말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2015년 4월 22일 노동당 정책위원회 정책논평]
보육교사 실시간 감시가 안심보육을 위한 대책인가? 지난 2월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 법안’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21일 국회 보 건복지위원회의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특히, 이번에는 학부모와 교사의 동의를 전제로 네트워크카메라 (IPTV, 웹캠 등)를 설치할 경우 CCTV를 설치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취지의 내용도 포함했다. 이번 개정안은 외부가 아닌 실내에서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사실상 최초의 사례인 데, 이번에 실시간 감시가 가능한 네트워크카메라가 포함되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이와 관련 이미 ▲ 헌 법상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 보육교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여 보육환경을 저해할 수 있는 반면 ▲ 아동학대 예방에 실질적 효과는 의문시되는 등 다양한 문제점이 지적된 바 있다. 정부와 국회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보육문제를 부모와 교사에 떠넘기지 말고 ▲ 부모가 참여하는 어린이집 운영위원회의 역할 강화 ▲ 어린이집의 교사 대 아동 비율 현실화 ▲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의무화 ▲ 보육교 사 양성교육과 보수교육 강화 등 근본적인 대책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
‘안전’ 과‘보안’ 의 범위는 어디까지? 지난 4월, 노동당은 CCTV와 관련한 논평을 두 차례 냈습니다. 하나는 경찰이 CCTV를 이용해 불법적 으로 집회 참가자를 찍고, 시위 대응 지휘를 한 것에 대한 지적이었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지난 30일 본회 의를 통과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의 내용인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를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두 사례는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연결해서 보면 CCTV가 인권침해에 이용될 소지가 크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일단 경찰이 교통용 CCTV를 다른 목적으로 쓰는 행위는 논평에서 쓴 바와 같이 <개인정보 보호법> 위 반이므로 불법입니다. 여기서 강신명 경찰청장의 태도가 흥미로운데, 4월 18일 당일 경찰의 CCTV 사용 은 다른 목적으로 이용한 것이 아니라고 변명하였습니다. 교통용으로 썼으니 불법이 아니라는 얘기죠. 그 논평을 논평하다 79
러면서도 완전히 합법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법령상 미비점이 있으면 수정하겠다고 합니다. 경찰 스스 로 편법을 저질렀다고 시인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이에 대한 사과나 재발방지 약속은 하지 않고 법을 바 꾸겠다고 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CCTV를 시민 감시용으로 쓰겠다는 뉘앙스입니다. 여기가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와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이번에 통과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은 어린이집 CCTV 설치를 의무화하면서“최소한의 영상정보만을 적법하고 정당하게 수집하고, 목적 외의 용도로 활용하지 아니하도록 할 것” 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의 CCTV 사용 실태를 봤을 때,“아 동학대 방지 등 영유아의 안전과 어린이집의 보안” 이라는 목적은 광범위하게 해석될 소지가 있습니다. “영유아 및 보육교직원 등” 의 권리가 침해되어선 안 된다고 명시했지만, 교통용 CCTV를 시민 감시용으 로 쓰는 행태를 보면 이것도 어디까지 적용될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하루 평균 80번, CCTV와의 동행 간단히 역사를 살펴보면, CCTV는 1942년 V2로켓 시험발사 장면을 감독하는 데 최초로 쓰였다고 합 니다. 이후 교통량 관제 목적으로 공공장소에 CCTV가 처음 도입되었고, 1960년대 후반부터는 고객 감시 목적으로 백화점에 설치되었습니다. 1970~80년대에 는 대형쇼핑센터에 기본 설비로 장착되기 시작합니다. 감시의 목적으로 대중화된 것이죠. CCTV와 가장 밀접한 나라는 영국입니다. 1993년 영국에서 10세 소년 두 명이 2살 난 아기 제임스 벌저 를 납치해 살해하였는데, 납치 장면이 CCTV에 포착되 면서 CCTV 카메라 수요가 폭증했습니다. 현재 영국 전역에는 4백만 개 이상의 CCTV가 설치되어 있습니 다. 이는 지구 전체에 설치된 CCTV 카메라의 2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한국도 21세기에 들어서면서 CCTV 설치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2010년 기준 한국에 설치된 CCTV는 약 350만 개에 이릅니다. 영국과 비교해도 적지 않습니다.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민간부문 CCTV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수도권에 거주할 경우 하루 평균 80여 차례나 CCTV에 찍힌다고 합니다. 이동 중 에는 거의 초 단위로 찍힙니다.
불안을 먹고 자라는 CCTV ‘CCTV 천국’ 이라는 영국의 연구결과를 종합해 봐도 CCTV와 범죄예방의 유의미한 상관관계는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CCTV 설치 후 범죄가 늘어난 곳도 있고 줄어든 곳도 있습니다. CCTV 1,000개를 설치 80
하면 1년에 한 건의 범죄를 적발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2002년 범죄자사회복귀협회 (National Association for the Care and Resettlement of Offenders)의 조사에 따르면 CCTV를 설치한 24
개 도시 중 13곳에서만 범죄가 감소했습니다. 영국에서도 CCTV가 가장 많은 런던에서 CCTV가 해결한 사건은 강도 사건 중 3%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효과도 불분명한 CCTV는 우리의 불안을 먹고 자랍니다. 이번에 통과된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 도 같은 맥락입니다. 불안해하는 시민들을 탓할 수는 없겠지만, CCTV가 만능인 양 얘기하는 것도 무책임 한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새누리당이든 새정치민주연합이든 다르지 않았습니다. 주류 언론 역시 공포 마 케팅을 하기에 여념이 없었고요. 모든 CCTV에 반대할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정책논평에서 지적했듯이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가면서 최소한의 용도로 CCTV 사용을 제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CCTV 설치를 찬성하는 사람 들을 설득할 수 있을 정도의 사회적 신뢰를 쌓아나가야 합니다. 하나마나한 얘기 같지만, 바로 여기가 노 동당이 힘써야 할 지점이 아닐까요?
■참 고 <민간부문 CCTV 설치 및 운영 실태조사 결과 요약>, 국가인권위원회, 2010 《감시 사회, 안전장치인가, 통제 도구인가?》로빈 터지, 추선영 옮김, 이후, 2013 <일상적 감시를 의심하라> 홍성수,《감시사회: 벌거벗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한홍구 외, 철수와영희, 2012
논평을 논평하다 81
지역에서 현장에서
광주를 광주답게 박상욱 광주광역시당 부위원장
1년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 5월이면 우리는 35년 전 그 날을 떠올린다. 그리고 광주 5·18묘역을 돌아 보며 시대의 민주주의를 위해 먼저 가신 분들을 생각한다. 그렇다면 80년 광주가 아닌 2015년의 광주는 어떤 모습일까? 광주시당에서 연대 중인 투쟁들을 통해 2015년 현재의 광주 모습을 바라본다.
시민운동가 출신 시장, 천막 치는 장애인 서울에서 4.20 장애인차별철폐 투쟁이 있던 날, 광주에서도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광주장차연) 동지들이 광천터미널에서 장애인이동권 쟁취를 위한 선전전을 마치고 광주시청으로 향했다. 윤장현 광주 시장을 만나 저상버스도입 공약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시장과의 면담은 이뤄지지 않았고, 해당 공무원들은 광주장차연의 요구에 대해 믿어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에 광주장차연은 면담을 종 료하고 시청 앞에 천막을 쳤다. 윤장현 시장은 공약으로 2015년에 저상버스 30대를 추가 도입해 총 156대를 운행하겠다고 했으나, 지 난달 20일 기준 광주시가 운영 중인 저상버스는 117대에 불과하다. 광주시는 2016년 60대, 2017년 60대, 2018년 96대를 추가 도입해 일반버스의 40%에 해당하는 총 372대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으나, 2018년 까지 기존 저상버스 중 50여 대가 대/폐차될 예정인 점을 고려하면 국토교통부 권고사항인 일반버스 대비 40%의 저상버스 도입에 미달하는 수준이다. 광주장차연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하며 폐차되는 차량을 저상 버스로 바꿔야만 공약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직 새벽녘은 차가운 4월과 5월을 광주장차연 운동가들은 그렇게 천막에서 보냈다. 비단 장애인에게 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교통약자들에게 필요한 것이었기에 투쟁의 정당성 두말할 필요가 없다. 천막 에서 잠을 자면서도 광주장차연은 이동권 투쟁만이 아니라 시청 주변에서 진행된 택시노동자들의 투쟁이 나 5.18기념재단 해고노동자들의 투쟁 같은 다른 투쟁에도 적극 연대했다. 이런 그들의 투쟁에 지역에서 도 많은 연대가 이어졌다. 통신비정규직노동자들, 동네 촛불, 시민상주모임 등 많은 시민들이 이들의 투 82
쟁을 지지하고 나섰다. 하지만 시민운동가 출신이라는 윤장현 시장은 천막을 보려 하지 않았다. 급기야 광주장차연은 시장의 동선을 따라다니는‘그림자 투쟁’ 을 하며 피켓 등으로 요구사항을 직접 시장에게 알려야 했다. 윤장현 시 장은 농성 8일차가 되어서야 단 한번 천막을 방문했다. 매일 출퇴근하며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농성하 는 천막 앞을 지나다녔을 텐데. 천막에서 자고 일어난 장애인들을 봤을 텐데. 농성장을 다녀간 즈음 윤장 현 시장은 페이스북을 통해‘광주다움’ 을 말했다.“과거 광주다움이 불의에 저항하는 것이었다면 이젠 옳 다고 믿는 것에 남들보다 한발 앞서 결정하고 실천하는 것” 이라고. 그렇다면 천막농성 중인 장애인의 요 구를 더 귀담아 듣고 한발 앞서 결정하고 실천했어야 할 텐데. 천막농성은 그 후로도 십여 일이 지나서야 해결된다. 결국 시에서 광주장차연의 요구를 수용하며 19일간의 천막농성은 5월 8일에 마무리되었다. 이번 천막 농성에 열성적으로 결합한 김영애, 도연, 박려형, 정성주 당원의 투쟁이 만들어낸 성과다. 하지만 약속이 이행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할 일이 많다. 시의회에서 예산이 통과되는지를 감시해야 하고, 이동권을 넘 어 보다 넓은 기본적인 권리도 쟁취해 가야 한다.
진보교육감시대? 탄압은 구시대! 불타는 금요일 저녁. 여성노동자들이 광주교육청 로비에 모여 구호를 외친다.“무기계약직 전환하 라!!” 지난 4월 24일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가 끝난 시각. 공립유치원 시간제근무 기간제 교원, 병설유치원 등에서 방과 후 교사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광주교육청에서 3박4일간의 교육청 로비 점거농성에 나섰다. 농성에 나선 이들은, 하는 일은 방과 후 교사와 같지만 공식 업무시간이 두 시간 적은, 6시간 근무 노동자
5월 8일 광주시청 앞에서 열린 장애인권 농성투쟁 승리 기자회견 (사진제공: 박상욱)
지역에서 현장에서 83
들이다. 2012년 3월 31일 광주교육청은 유치원 종일반 강사 가운데 2년 이상 근무한 강사를 무기계약(상시전일) 으로 전환하고, 2년 미만 근무한 강사는 이름만 시간제근무 기간제 교원으로 바꾸어 근로조건을 저하시 키며 계약을 전환했다. 그렇게 무기계약을 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이후에도 계속 근무하여 이젠 3년차, 4 년차가 되어 간다. 교육청 옥상에서 고용보장 촉구 1인시위를 하기도 했던 교육공무직본부 조직국장 민동원 당원은 이들 의 형편을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 비유한다. 가장 낮은 계급에 있다는 말이다. 항시적인 고용불안에 처해 있기 때문에 온갖 궂은일을 하며 학교행사에 불려 다니기까지 한다. 1년 단위로 재계약하기 때문에 고용 이 불안한 그들은 공식적 근무시간인 6시간만 일하지 않는다. 아니 6시간만 근무하고 퇴근하는 날이 없 다. 항상 더 많은 시간을 일하지만 시간외근무 수당을 받은 적도 없다. 고용불안은 노동자에게 더 많은 노 동을 강요하는 가장 좋은 무기다. 4월 27일 아침, 농성을 풀고 교육청 입구에서 선전전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담당 장학사가 물어온다. “여기 있는 사람들 신분을 밝힐 수 있나?”아, 극심한 고용불안을 느끼는 노동자들에게, 조합원임을 밝히 는 순간 근무지에서 어떤 탄압이 올지 모르는 노동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어떤 생각일까? 하지만 탄압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교육부가 전교조 등을 탄압할 때 등장하는‘국가공무원법 제66조 (집단 행위의 금지)’ 를 각 학교(유치원)에 공문으로 발송하며 노동조합의 활동을 원천적으로 막고자 한 것.
일은 노예처럼 부려먹고 기간제 교원 대우도 해주지 않으면서, 권리를 주장하자 국가공무원을 찾는 광주 교육청. 광주교육청 수장인 교육감은 진보교육감 중 한명인 장휘국 교육감이다. 전교조 지부장 출신이기도 한 장휘국 교육감은, 그러나 아직 이 문제와 관련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선생님들이 항시적으로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유치원 현장에서 그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유치원 기간제 교원에서 교육공무직으로의 전환을 촉구하는 선전전 (사진제공: 박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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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 자라길 기대하는 것이 올바른 걸까? 광주교육청은 교육노동자 중 가장 약자인 이들의 요구에 응 답해야 한다. 그래야 최소한‘진보’ 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장휘국 교육감에게 진보라는 명칭 을 계속 써도 될지, 노동당 광주시당은 이 문제의 해결을 끝까지 지켜볼 것이며 해결될 때까지 연대해 갈 것이다.
5.18정신의 훼손 일베나 극우정치인들의 80년 광주에 대한 극도의 혐오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5.18 민중 항쟁 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설립해 5.18과 관련된 각종 기념사업을 전담하다시피 하는 5.18기념재단의 비 정규직 해고와 관련된 얘기다. 오재일 전임 이사장의 독단적 운영에 환멸을 느껴, 2013년 말부터 2014년 초까지 열다섯 명 안팎의 직 원 중 5명이 퇴사를 했다. 남은 직원들도 이후 계속 문제제기를 해왔으나 이사장의 독단적이고 독선적인 운영은 계속되었다. 2015년 1월에는 급기야 두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하는 일까지 발생한다(재단은 계약만료라고 주장). 기존에는 2년 근속 이후 자동으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어왔기에, 이번 해고는 재단
운영방식에 문제제기를 하는 노동자들을 길들이기 위해 가장 약한 비정규직을 탄압한 해고라고 판단된 다. 이에 더해, 해고자 복직과 재단의 민주적인 운영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및 5.18기념재단 역대 자원활동가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는 행태까지 발생했다. 5.18기념재단에서 기념하고자 하는 5.18은 무엇이란 말인가? 1년에 하루, 기념식을 여는 날만은 아닐 게다. 수많은 희생자들이 지키고자 했던 바로 그 정신일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대동세상을 열어갔던 80년 5월이 2015년 지금, 다시 민주주의를 지키자고, 돈보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자고, 비정규직을 없애자고 말한다. 재단이 하루빨리 부당해고를 철회하는 것만이 스스로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 길이다. 광주시당은 논평을 통해“박제화된 5.18대신 오늘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의 5·18정신, 그 편에 서겠 다” 는 입장을 밝혔다. 5.18은 아직 끝나지 않았나 보다. 더구나 광주, 5.18기념재단에서마저.
5.18은 2015년 우리에게, 그리고 광주에게 어떤 의미일까? 진보교육감 시대는 진정‘진보적’ 인 걸까? 시민운동가 출신의 시장은 그 이전과 다른 시대를 열어가고 있을까? 광주는 여전히 우리에게 위의 질문에 답을 찾아가라고 말한다. 우리는 투쟁하는 노동자, 투쟁하는 장 애인, 투쟁하는 시민들에게 그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낮은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사회적 약자의 손 을 잡는 일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투쟁하는 깃발 옆에는 항상 노동당 광주시당의 깃발이 펄럭일 것이 다. 끝으로 이 모든 투쟁에 가장 열심히 연대하는 박재현 광주시당 사무처장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지역에서 현장에서 85
먼 좌파 이웃 좌파 ⑮
유럽 신생 좌파 바람의 또 다른 줄기, 슬로베니아 연합좌파 장석준 기관지위원
[주] 요즘 유럽 좌파 정치의 총아는 단연 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SYRIZA), 스페인의 포데모스 (PODEMOS)다. 한데 이들만이 아니다. 작년 슬로베니아 총선에서 바람을 일으킨‘연합좌파’ (Zdruzena levica) 또한 주목할 만한 신생 좌파 정치조직이다. 슬로베니아 연합좌파는 마치 초기 ˇ SYRIZA처럼 몇 개의 좌파정당들이 결성한 정당연합이다. 민주노동당(DSD), 슬로베니아의 지속가 능발전을 위한 당(TRS),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행동(IDS)이 연합좌파에 참여하는 정당들이다. 연합좌파는 2014년 7월 총선에서 6.0%를 득표해 총 90석 중 6석을 확보했다. 처음으로 총선에 뛰어든 정치세력으로서는 괄목할 성과였다. 슬로베니아는 다름 아니라 구 유고슬라비아연방에서 갈라져 나온 국가들 중 하나이고, 저명한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모국이기도 하다. 과거 유고슬라 비아에서 추진했던 노동자 자주경영 사회주의 실험은 1990년대 초 연방의 해체와 함께 급속한 시 장 자본주의화, 참혹한 민족 간 내전으로 종료되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 그 계승 국가들(반 긴축 대 중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에서는 놀랍게도 새 세대의 좌파 정치가 부활하고 있다. 슬로베니아 연합좌파는 그 중에서도 가장 앞선 정치적 성과라 할 만하다. 이번 호에서는 이들의 지향과 생각을 살펴보기 위해 연합좌파의 구성 조직 중 하나인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행동(Initiative for Democratic Socialism, IDS)’ 의 강령을 소개한다.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행동’선언 자본주의만이 현실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생산양식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지배는 이제 끝 나가고 있다. 1970년대 후반에‘선진’ 국들에서 급속하고 안정적인 경제성장이 중단되자 자 본 세력은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한 공격을 강화했으며, 이 공세는 지금껏 계속되는 중이다. 86
▲슬로베니아 연합좌파 로고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당원들 ▶슬로베니아 연합좌파 로고. 아래는 참여 조직들의 로고다.
이와 더불어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 지배를 뒷받침하 던 토대는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자본주의 외 에 다른 체제가 현존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사실만이 자본주의의 존속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현실 사회주의와는 달리 자본주의는 붕괴하지 않 았다는(비록 파시스트 깡패와 군부독재의 힘을 빌려야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사실 덕분에 자본주의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는 주장이, 따라서 자본축적이라는 이름 아래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자본이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불평등이 늘어나야 하고 전 세계 민중의 다수가 빈곤에 시달려야 하며 독 재의 공포와 자연 파괴가 필요하다면, 당연히 그래야만 했던 것이다. 자본주의에서는 경제가 삶의 질 향상에 복무하는 게 아니라 정반대로 인간의 삶이 자본축적 확대에 복 무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만 현재의 위기를 해결해나갈 수 있다. 현 위기는 자본주의 작동의 예외 국면이 아니다. 시장의 자기 조절이 잠시 교란된 것도 아니고, 기업가 정신이 부족하고 경쟁력이 떨어지 는 게으르고 부패한 개인들이 갑자기 늘어난 탓도 아니다. 오히려 위기는 자본주의 경제가 인류와 자연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는 수단이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은 경제위기가 아니다. 자본주의 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 민주적 통 제, 노동자 권리 그리고 공공서비스의 마지막 찌꺼기마저 이윤을 위해 제거되어야 하는 이 시대를 넘어서 야 한다. 정치 엘리트들은 각 개인의 전면적 발전을 보장하고 사회적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경제에 고삐 를 채울 방도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아니, 이들은 자신들의 이해력과 통제를 넘어서는 자본의 힘 먼 좌파 이웃 좌파 87
에 따라 누가 다음 번 희생자가 될지를 놓고 주사위를 굴릴 뿐이다. 하지만 금융과 그 밖의 시장에 거하는 이런 신비로운 힘은 사회적 생산의 특정한 시스템 아래서 인간 노동으로부터 생명력을 얻을 뿐이다. 개인을 다른 개인뿐만 아니라 노동의 산물로부터 소외시키는 이러 한 시스템의 특성으로 인해, 노동생산물은 독자적인 생명을 얻어서 이해하기도 길들이기도 어려운 낯선 힘으로 개인과 마주한다. 이것이 우리 시대에는 금융파생상품이나 정부발행채권의 이자수익이라는 유령 으로 출몰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과 교육의 발전 덕분에 우리는 빈곤을 철폐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하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달성할 기술적 가능성을 확보했다. 하지만 사회 세력들이 경쟁이라는 전투 속에서 교착 상태에 빠져 있고 이윤극 대화의 눈 먼 독재에 복종하는 한, 이러한 기술적 가능성은 단지 순전한 가능성으로만 남고 말 것이다. 이제 다른 발전 경로의 밑그림을 그릴 때다. 이 새로운 발전의 길에서는 민주적으로 계획된 경제가 사회 적 목표들을 달성할 수단 역할을 할 것이다. 또한 경쟁이 아니라 연대에 바탕을 둔 발전을 추구할 것이다.
민주적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민주적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우리의 목표는 정치/경제 영역의 직접 민주주의와 민주적으로 계획된 생산에 바탕을 둔 사회-경제 시스템이다. 우리는 각 개인의 필요와 동시에 사회 전체의 필요에 부응하는, 그리고 자연환경의 재생 역량을 고려하는 생산 및 분배 시스템을 추구한다. 우리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먼 미래의 유토피아적 비전이 아니라 민주적 수단을 통한 자본주의 극복 과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행동 지도자 아네이 코르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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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 연합좌파의 젊은 얼굴 루카 메세치
정으로 바라본다. 여기에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노동자, 농민, 여성 그리고 원주민의 유구한 해방투쟁 전 통이다. 자본주의의 이러한 민주적 극복은 다음의 노력들을 통해 이뤄질 것이다.
정치 차원에서는 : 참여예산, 지역 수준의 직접 민주주의(시민총회와 공개모임) 등 공적문제에 대한 대중 참여의 여러 형태를 창조하고 실행한다. 정책 결정에서 명령적 위임 시스템[역주-소환제 등을 활용해 유권 자에 대한 선출직 대표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 등을 통해 대의제를 직접 참여로 대체한다.
미시경제 차원에서는 : 노동자 소유, 자치 및 자주 경영 그리고 협동조합 같은 경제민주주의의 여러 형 태를 실시한다. 거시경제 차원에서는 : 자본주의의 항구적인 위기의 원인, 즉 시장과 경쟁이 사회적 [조절] 메커니즘이 되는 것을 폐지한다. 재화의 생산 및 분배의 대안적 조정 양식, 예컨대 생산 단위 사이의 경쟁이 아닌 협 력,‘눈먼’시장 생산이 아닌 민주적 계획을 구축한다. 자연환경과 관련해서는 : 자연환경의 재생 역량과 조화를 이루도록 생산규모를 계획한다. 이미 쌓인 부의 재분배에 바탕을 두면서 동시에 환경 친화적인 기술의 실현에 바탕을 둔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추 구한다. 이와 병행해 전 지구적 수준에서는 좋은 삶을 가능케 할 필수요소인 식수, 농지 및 여타 천연자원 을 각 개인이 평등하게 확보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계급 및 정체성 문제와 관련해서는 : 노동과 자본 사이의 계급분화를 철폐한다. 또한 여타의 모든 불 평등 및 종속의 사회적 형태들, 특히 인종, 성별, 성적 지향, 출신 국적 혹은 민족 그리고 장애 유무에 바탕 을 둔 차별을 철폐한다. 먼 좌파 이웃 좌파 89
우리는 이러한 정책들이 한 민족국가 안에서만 홀로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국제주의의 대 의에 헌신한다. 우리는 세계 자본주의의 폐지를 위해 노력하며, 이를 위해 전 세계 모든 해방 운동과 정당 들의 투쟁에 연대한다. 우리의 투쟁은 유럽의 분노한 자들 운동(스페인의‘지금 당장 진짜 민주주의를!’운 동), 그리스 시리자, 독일 좌파당, 프랑스 좌파전선, 스페인 연합좌파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의 사파티
스타와 볼리바리안 혁명가들, 이집트 노동조합운동, 중국 노동자운동 등이 벌이고 있는 전 지구적인 반자 본주의 운동의 일부다. 시스템 변혁을 위해 투쟁하는 해방운동에는 크게 두 가지 조직 방식이 있다. 일부는 정치권력을 획득 해 기존 시스템에 맞서는 정권을 수립하고자 정당을 조직한다. 다른 일부는 정치권력을 장악하려는 의사 없이 시스템 변혁을 위해 싸우는 운동을 조직한다. 우리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은 반드시 이 두 전략 유형을 다 활용해야 한다고 믿는다. 즉, 현존 사회 관계를 아래로부터 폐지하면서 동시에 정치시스 템의 제도화된 장 안에서 정책을 위로부터 바꿔야 한다.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행동’ 의 정책 프로그램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행동’ 은 위에 제시한 목표들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기획이다. 민주적 사회주 의의 원칙들은 하룻밤에 실현할 수 없다. 점진적으로 발전시키고 실시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당면 요 구는 개혁주의의 성격을 띤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우리는 우리의 궁극 목적이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연대, 관용, 지속 가능성에 바탕을 둔 새로운 시스템을 뿌리내리는 일임을 잊지 않는다. 우리의 요구는 완전무 결한 사회를 좇는 유토피아적 계획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 노동계급, 즉 생존을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팔 아야 하는 모든 사람들의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필요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에 따른 우리의 단기 정책은 다음과 같다. 만인을 위한 공공서비스의 질을 더욱 발전시킨다. 의료, 교육, 사회보장, 공공교통, 문화재화, 법률지 원 그리고 노령 및 장애 연금은 모두 비영리 공적조직을 통해 제공돼야 한다. 이들 서비스의 재원 역시 전 액 공공기금이어야 한다. 심의 형태의 직접 정치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발전시킨다. 이를 통해 공동의 사안에 대한 진중한 토의 및 결정 과정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심의 방식은 인권 및 사회정의에 바탕을 두어야 하며, 동시에 모든 정치적 대의기구와 복지 국가의 탈 관료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다. 어떠한 기구든 보편적 참여가 보 장될 때에만 실제 필요에 바탕을 둔 서비스를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역사회, 노동자 그리고‘이용자’ 가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민주주의를 수립한다. 기업을 자주 경영할 권리와 공동 소유할 권리는 노동자의 근본적인 민주적 권리다. 공공부문, 민간부문 가릴 것 없이 노동자는 결정 과정의 모든 수준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90
시위에 참여한 슬로베니아 연합좌파 당원
경제정책의 목표를 완전고용과 함께 생산의 사회적, 환경적 조건을 고려하는 사회적, 환경적 지속가능 발전에 둔다. 재생가능 에너지 자원, 에너지 효율성, 전략적 천연자원(나무, 물, 종자, 경작지 등) 그리고 식 량자급을 발전시키는 것이 경제정책의 우선 목표가 되어야 한다. 동시에 누진적 녹색 조세정책을 도입해 야 한다. 완전고용을 달성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한다. 생산성 향상과 생산 자동화로 인해 주 40시간 노동은 구시 대의 유물이 됐다. 이는 현재 실업의 주된 원인 중 하나다. 우리는 완전고용을 실현할 수 있는 수준까지 노 동시간을 단축할 것을 주창한다. 최저임금을 평균임금의 70%로 인상한다. 사회적 불평등의 계속된 증가를 뒤집어야만 하며, 따라서 최 고소득과 최저소득 사이의 격차에 상한선을 두어야 한다. 공공교육 및 의료의 모델에 따라 은행이 공적서비스에 체계적으로 중점을 두도록 뜯어고친다. 은행은 사적 이해가 아니라 공공의 이해에 복무해야 한다. 위에 제시한 공공서비스의 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누진세를 확대한다. 법인수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한 다. 마찬가지로 금융 거래와 토지 및 여타 자산에 대해서도 과세를 강화한다. 이러한 정책은 소득이 일정 액수를 초과하는 모든 자산 소유주(종교 단체를 포함)에 대해 예외 없이 적용돼야 한다.
■ 바로잡습니다 ■ 《미래에서 온 편지》2015년 5월호에 실린 <포데모스, 더 깊이 들여다보기>의‘시우다다도스(Ciudadados)’ 를‘시우다다노스(Ciudadanos)’ 로 바로잡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혼선을 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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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도시교통 이야기
자가용 중독 사회 이대로 둘 것인가 김상철 서울시당 위원장
왜 이렇게 차가 많을까? 도로에서부터 걸어 다니는 일상의 공간까지, 어디에서건 하루 종일 자동차를 본다. 집 근처 조그만 골목길은 아예 주차장이 되어버리기 일쑤다. 토요일, 일요일 대형쇼핑몰 근처는 지나다니는 것조차 힘들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주변은 매주 일 요일마다 거대한 주차장이 되어버린다. 참고로 여의도 순복음교회는 서울시로부터 아예 여 의도 한강공원 주차장 관리권을 얻어내 일요일마다 자기 교회 주차장으로 쓴다. 이런 볼멘소리에 바로 받아치는 말이‘당신은 자동차를 타지 않나?’ 라는 질문이다. 탄 다. 하지만 설사 스스로가 원인의 한 부분이라 하더라도 문제는 문제다. 더구나 이런 반론에 는 의도적인 프레임의 왜곡이 존재한다. 여기서 문제는 자동차 일반이 아니라 자동차를 소 유하는 특수한 형태인‘자가용’문화이기 때문이다. 이동성이 중요한 덕목이 되어버린 근대 사회에서 좀 더 빠른 이동수단을 비판적으로 볼 수는 있어도‘없애야 한다’ 고 주장하긴 힘 들다. 하지만 그 질문을 돌려서“ ‘어떤’이동이냐” 라고 고쳐 물으면 다른 지점이 보인다. 단 적으로 현대사회의 자동차 중독 현상은 사실상‘자가용 중독’ 에 다름 아니라고 말이다.
넘쳐나는 도로, 그래도 부족한 도로? 낭비예산을 부르는 대표적인 단어가‘토건예산’ 이다. 왜 그럴까? 일차적으로 대부분의 토건예산이 실제 목적과 사업의 효과가 불일치하기 때문이다. 많은 문제성 사업들이 이러 한데, 특히 도로를 만들거나 커다란 건물을 짓는 등 대규모 공사가 수반되는 사업들이 더 심 각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강원도나 전라도의 국도건설사업이다. 한국도로공사가 2010년 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익산과 장수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는 애초 하루에 5만 대 이상의 92
차량이 이용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실제 이용량은 8천 대에 불과했다. 이용률이 17%에 불과한데 사업비는 1조 원이 넘게 들었다.
낭비되는 도로들. 이처럼 의도적으로 수요를 부풀려 건설한 도로들이 이후에 뜯겨져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미 토지보 상과 건설 과정에서 도로 투자를 통한 개발이익은 모두 사유화된다. 이런 구조의 대표적인 사례가 오른쪽에서 보이는 민자 도로건설사업이다. 자료는 한국도로공사(2010년), 시사저널 <텅빈 도로 위를‘돈 먹는 하마’ 가 달리고 있다>(2008년 11월 25일자)에서 인용
2007년부터 2010년 사이에 개통된 도로 중 사업비가 1조 원 넘게 쓰인 곳은 네 군데에 달한다. 모두 실 제 이용량이 예상량의 절반을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민자사업이 끼어들면 셈법이 복잡해진다. 인천시는 각종 터널 사업을 추진하면서 민자를 끌어당겼다. 문학터널에서 시작해서 2004년에 천마터널, 2005년에 만월산터널 등이 줄줄이 개통했다. 예상량에 비해 실제 이용량은 30%도 채 되지 않았다. 문제 는 민자사업자의 이익을 보장해주기 위한‘최소운영수입보장제도’때문에 예측 치와 실제 치의 수입 차이 를 인천시가 고스란히 물어주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사단 속에서도 도로는 끊임없이 지어진다. 애초 중앙정부의 중장기적 재정지출 규모를 정해놓은 2013년~2017년 국가재정운영계획에서는 SOC(도로, 철 도, 공항 등 사회간접자본) 분야를 지속
적으로 줄여나간다는 기본 방향을 정 했지만 실제로는 계속 높아졌다. 실제 2015년 예산만 놓고 보더라 도 전체 SOC 예산은 전년 대비 3.8% 포인트 늘어난 21조 4천억 원에 달했
거액의 사업비를 들여 도로를 만들지만 실제 이 용량은 예상량의 절반을 밑돌기 일쑤다. 차량이 다니든 다니지 않든 일단 도로부터 짓고 보는 식 의 토건사업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고, 이중 도로 예산만 8조 7천억 원 규 모로 전년 대비 4.8% 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니까, 차량이 다니든 다니지 않든 일단 도로부 터 짓고 보는 식의 토건사업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전체 이용도로 중 포장도로의 비율을 나타내는 도로포장률을 보면, 2005년 77%이던 전체 포 장률이 2013년 83%로 급격하게 높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주요 광역지역은 도로포장률이 95%를 빨간 도시교통 이야기 93
넘어서는데, 추세로 보면 그중에서도 충남이나 충북과 같은 전통적인 도농복합지역에서 도로포장의 비율 이 급격하게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전국 광역정부 도로포장률 (단위:%) * 숫자표시는 전국 평균 ** 데이터는 나라지표(www.index.go.kr) 재가공
토건 중독이 부르는 자가용 사회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도로의 총량이 늘어나는데도 자동차 1대당 도로연장은 외려 줄어들고 있다는 점 이다. 2005년에 자동차 1대당 도로연장이 7미터 수준이었는데 2013년에는 2미터가 줄어서 5미터 수준을 보였다. 이는 여전히 도로연장의 속도보다 자동차 보급량이 더욱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수치는 매 년 수조 원의 예산을 도로건설 사업에 사용하는 예산구조를 유지시키는 내적동기가 된다. 세부적으로 보면 서울이나 인천, 울산과 같은 광역도시가 전국 평균에 비해 낮아서 2미터에서 4미터 수준을 보이고 있고, 가장 높은 수치의 강원도는 2005년 19미터에서 2013년 16미터로 줄어들었음에도 서울에 비해 8배나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자동차 등록현황 자료를 보면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연간 자동차 등록률은 평균적으로 3% 를 상회하는 증가폭을 보인다. 2005년에 등록차량수가 1,540만 대 수준이었는데 2014년에는 2,012만 대 에 이르렀다. 10년 동안 500만 대 가깝게 새로운 자동차가 등록되었다. 이런 자동차의 증가에는 정부의 집중적인 정책지원이 한몫했다. 실제로 2009년에 정부는 노후차를 신차로 교체할 때 세금감면 혜택을 주 는 등 자동차 구매 촉진정책을 내놓았다. 또한 2012년에도 개별소비세 인하 등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신차 구입을 유도했다. 그 결과 2014년 기준 자동차 1대당 인구수는 2.55명으로(나라지표) 세계에서 10번째로 94
자동차 1대당 도로연장(단위: m/대) * 숫자표시는 전국 평균 ** 데이터는 나라지표(www.index.go.kr) 재가공
적은 수준을 보이고 있으며, 전체 자동차 등록수로만 보더라도 세계에서 16번째로 많은 차량을 가진 나라 가 되었다. 이 중 한국보다 국토면적이 작은 나라는 폴란드 정도다. 정말 빼곡하게 자동차들이 차지하고 있는 형국이다.
자동차가 사람을 죽인다 문제는 이렇게 토건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자가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동안 자동차가 사회적 흉기 가 되어간다는 점이다. 즉, 자동차가 많아짐에 따라 자동차 사고로 인해 사망하는 빈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특히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약자 층에서 자동차 사고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 심각한 것은 차량 대 차량의 추돌에 의한 사고보다 차량 대 보행자의 사고가 유독 높다는 점이다. 실제로 14세 이 하 인구 10만 명당 보행 중 사망자 수는 0.8명으로 OECD 국가 중에서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고, 65세 이 상 인구 10만 명당 보행 중 사망자 수는 아예 16명을 넘어서 2위인 폴란드에 비해 2배가량 높다. 자동차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쇳덩어리이고 운전 자는 그 안에서, 보행자는 철제 차체와 직접 부딪힌 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비대칭성 이 너무나도 크다. 다시 말해, 자동차는 기본적으로
자동차는 기본적으로 흉기와 같은 속 성을 지닌다. 단일한 원인으로 발생하 는 인명 피해 중 자동차 사고만큼 지속 적이고 치명적인 사례가 있을까 싶다.
흉기와 같은 속성을 지닌다. 따라서 자동차 사고는 이런 비대칭성에 근거해 좀 더 적극적으로 규제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부분이 고려되지 않는다. 오 히려 정확한 사고 규모조차도 가늠하기 힘든 실정이다. 외국에서는 교통투자 우선순위의 선정, 국가 전체 빨간 도시교통 이야기 95
*자료: 도로교통공사, OECD 회원국 교통사고 비교, 2014.12.
교통사고 규모의 파악 등을 위하여 경찰에 보고되지 않는 교통사고에 대한 많은 연구와 분석이 이루어진 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이러한 작업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경찰청에서 관리하는 데이터와 도로교통공단에서 관리하는 데이터는 교통사고 발생 건수에 있어서는 약 5.2배, 부상자는 약 5.4배 정도 차이를 보인다(사망자의 숫자는 두 데이터가 동일하다). 도로교통공단에서 관리하는 통계로 한정해 보아도 2013년 1년 동안 발생한 교통사고만 111만 9,280건으로 이 중 5,092명이 사망하고 178만 2,594명이 부 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1일 평균 3,067건의 교통사고로 인해 14명 정도가 사망하고 4,884명이 부상을 당 하는 것으로, 18초당 1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셈이다. 우리 사회에서 단일한 원인으로 발생하는 인명 피 해 중 자동차 사고만큼 지속적이고 치명적인 사례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 정도면, 2013년 기준으로 봤 을 때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보다 2.6배, 부상자 기준으로는 19.9배가 많은 수치에 해당한다. 96
특히 자동차 사고는 고속도로와 같은 주행도로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거지 인근에서 발생하 는 빈도가 더 높다. <지역별 교통사고통계>를 보면 전체 발생 건수 21만 건 중 타 지역 거주자 교통사고는 3만8천 건에 불과하고 동일지역 거주자 교통사고가 16만 건에 달해 81.4%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것은 동 일지역 거주자 교통사고의 비중이 지역마다 차이가 크게 나타난다는 점인데, 전국 평균이 81.4%일 때 서 울은 74.5%이지만, 다른 지역은 부산 87%, 대구 87%, 전북 89.3%, 경남 85.2%를 보였다. 이는 생활권 도로환경이 보행 중심이 아님을 보여준다. 지역 내 자동차 안전조치로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가용이 아닌 사람을 위한 공간 2013년 기준으로 도로교통공단이 추계한 도로교통사고비용은 총 24조 44억 원으로 2012년에 비해 4,545억 원이 늘어난 수치다. 또한 세부 구성을 보면 인적피해가 56.3%, 물적피해가 38.7% 순으로 나타 났다. GDP와 견주면 2%에 달한다(<도로교통사고비용의 추계와 평가>, 도로교통공단, 2014). 2012년 화재피해 액인 2,895억 원의 83배로, 이 돈이면 기초노령연금을 3년 4개월 동안 지급할 수 있다. 또 교통경찰예산 인 1조 349억 원의 23배에 이르는 규모이자 2015년 기준 서울시의 1년 예산(총계기준)에 해당한다. 한국처 럼 모든 것을 경제적 가치로 환원해 가치를 매기는 나라에서 자동차 사고 문제가 수면 위로 제대로 떠오르 지 않는 것은, 자가용 중심사회를 떠받치는 사회경제적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독점화된 자동차 기업이다. 그리고 사고로 돈을 버는 보험사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앞서 살펴보았던 도로를 비롯해 주차장 등 각종 토건사업을 이익구조로 가지고 있는 기득권층이 광범위하다. 여기에 자동차 소유 여부를 사회적 지위와 연관시키는 문화적 장치들이 작동한다. 그렇다면 자동차를 다 줄여야 하나? 그렇다고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가용 소유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과 동시에 대중교통의 접근성을 높이는 전략이 필요하다. 즉, 자가용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이동이 편리 한 사회구조를 만드는 방식으로 사회를 바꿔야 한다. 기본적으로 고정된 노선을 지닌 대중교통의 안전성 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효과적으로 강구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서울과 같은 도시 공간이, 특히 사 람이 살아가는 주거공간이 자동차라는 기계덩어 리로 가득 차 있는 모습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 다. 자가용이 빽빽하면서도 동시에 생태적이고
자가용이 빽빽하면서도 동시에 생태적 이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자는 바람 은 환상에 가깝다. 자동차에 점유된 도 시공간을 인간의 공간으로 되찾자.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자는 바람은 환상에 가 깝다. 자가용의 필요를 줄일 수 있는 도시정책과 함께 그 필요를 충족할 대중교통 정책이 급진적으로 제 안되어야 한다. 자동차에 점유된 도시공간을 인간의 공간으로 되찾자.
빨간 도시교통 이야기 97
연속기획
한국 대학 체제의 형성⑥
1990년대의 교육 개혁 담론 5.31 교육 개혁과 시장주의적 대학 정책 김예찬 서울 강남서초 당원
교육‘개혁’시대의 등장 1990년대는‘개혁’ 의 시대였다. 정부가 먼저 시장원리에 입각한 대학 개혁을 강도 높게 주장했고, 이를‘대학 자율화’ 라는 표어로 칭했다. 김영삼 정권은‘세계화와 정보화 시대’ 를 화두로 개혁 정책을 밀어붙였고, 이에 따라 미국식 대학 제도를 도입하려 했다. 이를 전 면화 한 것이 이른바 5.31 교육 개혁안이었다. 이러한‘교육 개혁안’ 의 골자들은 이후 정권 들에서도 큰 변화 없이 수용되었으며, 오늘 날 대학의 신자유주의화를 이끈 계기가 되었다. 먼저 대학 정책에 있어서‘개혁’ 이라는 담론이 등장하게 된 계기를 좇아보자. 지난 연재 글에서 보았듯이 전두환 정권은 7.30 조치 등 실패한 교육 정책으로 인한 혼란을 겪었고, 이는 교육 정책에 있어서 정부의 강력한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는 상황을 가져왔다. 이는 노 태우 정권기의 교육 정책 결정 과정을 분석했을 때 더욱 분명해진다. 박정희-전두환 시기 에는 정부의 교육 정책을 연구/조사로 뒷받침하거나 거수기에 불과한 역할을 했던 한국대 학교육협의회나 한국사학법인연합회가 노태우 정권 시기에는 사립대학의 이익을 옹호하 기 위해 강력하게 정책 건의에 나섰으며, 학생들이나 학부모들 역시 나름의 교육 정책에 대 한 방향성을 가지고 시위/청원 등의 형태로 정책 결정에 관여하였다.1) 이는 87년 민주화 체 제나 여소야대 정국 등 기존 정권과 판이하게 달라진 상황에 놓인 노태우 정권의 정치적 취
1) 최준렬, <제6공화국 교육개혁의 정치학 : 노태우 대통령 집권기의 교육개혁 정책과정을 중심으로>, 교육정치학 연구 vol3,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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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개혁위원회 회의를 주재 중인 김영삼 전 대통령 (사진 : e-영상역사관)
약성과도 연결되는데, 더 이상 정부가 엘리트주의적 통제 정책을 펼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교육 정책과 관련한 유관 단체나 이익 단체들의 주장을 수용하고 타협하는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이는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하고‘수요자 중심 교육’담론이 전면화 되는 계기를 낳았다.‘교육 개혁’ ,‘대학 개혁’ 과같 은 슬로건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1990년대의 대학 정책으로 이어진다.
신자유주의적 교육 개혁의 시작, 5.31 교육 개혁안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교육 대통령’ 을 자임하면서 교육 개혁을 중요한 과제로 설정했다. 이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교육개혁위원회’ 를 구성한 것에서부터 드러난다. 사실 김영삼 정권 이전에도 대 통령 직속 교육 자문기구는 계속 존재해 왔으나, 교육개혁위원회는 그 인적 구성이나 조직 구성에 있어서 이전의 기구와 큰 차이를 보였다.2) 특히 그 역할에 있어서 이전의 자문기구들이 대통령의 교육 철학을 이 론적으로 정당화하는 역할에 가까웠다면, 김영삼 정권의 교육개혁위원회는 5.31 교육 개혁안을 비롯하여 교육 개혁에 관련한 의견을 수렴하고 실질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3)
2) 이전의 교육자문기구가 주로 관계부처 공무원과 교수, 학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면 교육개혁위원회는 시민단체 및 언론인사에 이르기까지 교육 개혁에 대한 의견 수렴을 위한 다양한 구성원을 두었다. 이전의 자문기구가 교육부처의 개혁 추진에 대해 의견 을 제시하는 구조였다면, 교육개혁위원회는 국무총리와 12개 관계부처 장관으로 구성된 교육개혁추진위원회와 관계부처 1급 이 상 공무원들로 구성되는 교육개혁추진실무협력위원회를 두어 기구 자체의 목적이 교육 개혁의 실질적 추진에 있다는 점을 분명 히 했다. 3) 김성열, <대통령자문 교육개혁기구의 역할과 재조명 : 교육개혁위원회를 중심으로>, 교육정치학연구 vol.9, 2003
연속기획 99
5.31 교육 개혁안의 내용은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이 글에서 길게 다루지 않겠다. 다만 특기할만한 것 은 5.31 교육 개혁안이 초중등 교육에서 이른바‘열린 교육’ 을 표방하고, 평생학습 체제를 도입하면서 교 육의 민주성이라는 측면을 강화하면서도, 고등교육에 있어서는 규제 완화와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강한 신자유주의적 특성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면서 시장자유주의와 친연성이 큰 이른바 민주개혁파 인사들이 대거 한국 사회의 주류에 편입된 것, 그리고 미국 유학파 지식인들이 대거 정책 전문가로 임용되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5.31 교육 개혁안을 성안한 교육개혁위원회의 구성원들만 보더라도 그러한 특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시장주의적 대학 정책의 전면화 특기할 만한 인물로 먼저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을 꼽을 수 있다. 경실련 창립 멤버이자 경 제정의연구소장으로, 김영삼 정권 당시 정책기획수석비서관이 되어 교육개혁위원회 출범을 주도했던 박 세일은 5.31 교육 개혁안을 만들어낸 주요 인사로 손꼽힌다. 코넬 대학 경제학 박사로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교육개혁위원회 전문위원이 되어 5.31 교육 개혁안에 참여한 이주호는 이후 김대중 정권 하에서 교육정책심의위원으로 활동하고, 이명박 정권 때는 교육부 장관이 되어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을 이끈 인 물이다. 일리노이대학교 철학 박사이자 2기 교육개혁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이명박 정권 시기 청와대 교육 과학문화수석비서관을 지낸 정진곤, 교육개혁위원회 전문위원을 거쳐 이명박 정권 아래서 대학선진화위 원장, 한국교육개발원 원장 등을 지낸 김태완, 교육개혁위원회 상임위원을 거쳐 김대중 정권의 교육부 장 관, 서울시 교육감 등을 지낸 문용린 등 당시 교육개혁위원회를 거쳐 오늘 날 교육 정책에도 영향을 미치 고 있는 주요 인사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경쟁을 통한 교육의 질 제고’ 를 개혁의 모토로 미국식 대학 교 육을 도입하여, 시장주의적 대학 정책을 전면화 했다. <5.31 교육 개혁안 중 대학과 관련한 주요 내용과 추진 과정> 주요 내용 대학 자율화
비
고
대학설립준칙주의, 대학 정원 및 입시 자율화
부실 사립대 양산
대학 평가제도
대학 평가와 교육 재정지원의 연계를 강화
대학 구조조정
대학정보 공개
교육 수요자를 위한 정보 공개 의무화
(규제완화)
사립학교법 개정 국립대 특수법인화
사립학교의 민주성과 책임성 강화 국립대학 법인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
사학재단의 반대로 실효 상실 서울대, 한국교원대, 카이스트 등 법인화
일례로, 대학설립준칙주의로 인하여 사학재단의 대학 설립이 용이해지면서 대학의 수가 크게 증가했 100
다.4) 처음 대학설립준칙주의가 등장한 것은 수요자의 특성에 맞춘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대학에 대한 시장원리 도입으로 인해 경쟁력 강화를 꾀하겠다는 의도였으나, 결과적으로 부실 사립대가 양산되 고 대졸자의 숫자가 급증하여 교육에 대한 사회적 비용만 과도해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대학 평가제도 역시 대학의 건전성과 경쟁력 강화를 도모하겠다는 취지로, 자구적 개혁을 촉진하는 대학에 대한 재정 지 원을 강화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으로 대학의 시장주의적 구조조정을 이끌고, 대학의 다 양성 증진과 특성화보다는 일률적인 평가 기준에 맞춘 양적 성장에 매몰되게 만드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노무현 정권에 이르 기까지 사학재단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반쪽 법안으로 통과되는 결과를 맞이하였 으며 사학재단에 대한 견제와 책임성 강화 라는 본래 목적을 달성하는 것에 실패했다. 결국 5.31 교육 개혁안 중 대학 교육과 관
결국 5.31 교육 개혁안은 대학의 신자유주의 화를 촉진시켜 고등교육의 공공적 성격을 파괴하고, 이에 따른 부담을 교직원과 학생 들에게 분담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련한 부분들은 대학의 신자유주의화를 촉 진시켜 고등교육의 공공적 성격을 파괴하고, 이로 인한 부담을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분담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처럼‘개혁’ 을 필두로 한 5.31 교육 개혁안은 정작 그 원 취지였던 세계화·특성화·전문화로 인한 대학 경쟁력 확보보다는, 대학평가와 취업률을 기준으로 한 획일화를 낳았다. 특히 IMF 외환 위기로 인 한 기업과 대학 수요자들의 변화 역시 빼놓을 수 없는데, 기업의 채용 축소로 인한 대학생들의 전문직 선 호, 취업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대학 구조 조정, 기업과 연계한 브랜드 캠퍼스의 등장 등은 IMF 외환 위기 이후 대학이 본격적으로‘취업 학원화’되는 경향으로 이어지게 된다.
4) 대학설립준칙주의 도입 이후 5년간 무려 63개 대학이 설립되었다. 전체 대학의 5분의 1이 대학설립준칙주의 이후 설립된 것이 며, 이 중 6개 대학이 벌써 폐교되었을 정도로 준칙주의 이후 부실사학이 난립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연속기획 101
오덕 칼럼
보드게임 한 판! 깔깔대다보면 속마음도 보인다 최경송 경기 과천 당원
끝내 혁명은 없었던 노동절 조금 겸연쩍게 말을 꺼내자면, 올해 노동절엔 아침부터 보드게임 판을 벌였다.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 시달리는 게임 회사 프로그래머들인 부부가 출근을 가장해서 아기를 맡겨놓고 놀러왔기 때문이다. 또 다른 희생자가 된 아기 보실 아주머니께는 안된 이야기지만, 이 부 부도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었다. 보드게임‘덕후질’ 을‘강사질’ 로 연결시켜 이 엄혹한 신 자유주의 시대에 최저생계의 자립에 성공한 나로서는 이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는 뻥이고 같 이 놀 사람 생겼다고 아싸!). 제대로 놀려면 머릿수는 채워보자는 마음으로 동네 옆집 아저씨
와 딸내미도 불러 모았다. 혹시나 하고 꼬셔보았으나 자기는 이미 그 세계 졸업했다는 듯이 쿨하게 거절하는 중 2짜리 아들놈 뒤통수에 주먹질을 한 번 해준 다음 집을 나섰다. 이른 아 침부터 시작된 보드게임은 들락날락하는 동네 사람들 십여 명과 함께 깜깜한 밤까지 이어 졌다. 이 날 가장 치열했던 게임은‘달무티’ . 피라미드처럼 숫자 1은 한 장, 2는 두 장, 3은 세 장, 이런 식으로 열두 장짜리 12까지의 카드 80장을 참가자들끼리 나눠 가진 후 규칙에 따 라 가장 빨리 자신의 카드를 털어낸 플레이어부터 왕, 귀족, 여러 명의 평민들, 천민, 노예, 이렇게 다섯 가지 계급으로 서열을 정한다. 서열이 정해지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왕부 터 계급 순대로 다시 앉는다. 노예는 패를 돌리는 노동부터 왕의 시중까지 전담한다. 안 그 래도 힘든 판에 천민은 귀족에게 1장, 노예는 왕에게 2장의 가장 좋은 패를 세금으로 바쳐 야 한다. 이렇다보니 왕의 독재와 노예의 노동은 끝없이 이어지기 마련. 이 계급사회의 수 102
달무티에 쓰이는 카드. 각 카드에는 중세의 구성원들을 묘사한 그림이 있는데, 숫자가 클수록 계급이 낮다.
렁에도 한줄기 희망의 빛이 있으니, 그건 혁명(!)이다. 누구든지 처음에 받은 자신의 패에 두 장의 조커가 모두 들어있으면 혁명을 선언할 수 있고, 그 라운드에서는 세금 납부가 면제된다. 그중에서도 혹여나 노 예가 혁명을 일으키면 이른바 대혁명인데, 그 순간 모든 서열이 거꾸로 뒤바뀐다. 노예가 왕이 되고, 천민 이 귀족으로, 귀족이 천민으로, 왕은 노예가 된다. 물론 혁명은 쉽지 않다. 왕인 딸에 노예인 아빠, 부부가 나란히 천민과 노예, 하층민에겐 하등 관계없는 왕과 귀족 간의 권력 교체 등등 수많은 배꼽 잡는 상황 속 에서도 끝내 혁명은 없었다.
나는‘서로를 알아가는 게임’ 의 오타쿠 사람이 사람을 알아가는 데엔 여러 방법들이 동원된다. 토론회 자리에서 죽어라 말싸움도 해보고, 같 이 술도 마셔보고, 무슨 일을 한 번 빡세게 같이 해보기도 하고. 그렇지만 나이가 들수록 자기검열과 자기 방어의 벽은 높아만 가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도 파 악하기 어려운 자가당착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만
같이 깔깔대며 의식이 무장해제 되고,
큼 사람을 안다는 것은 총체적인 일이랄까. 같이
무의식의 세계까지 들여다보는 데엔
깔깔대면서 의식이 무장해제 되고, 또 무의식의 세 계까지 들여다보는 데엔 보드게임만한 놈이 없는 듯싶다. 내가 보드게임 오타쿠를 자처한다면 그 넓 고도 깊은 세계에 대한 결례일 테고, 굳이 좁혀서
보드게임만한 놈이 없다. 말하자면 나 는 사람끼리‘서로를 알아가는 게임’ 의 오타쿠랄까.
얘기하자면 나는 사람끼리‘서로를 알아가는 게 임’ 에 대한 오타쿠랄까, 그런 게임들을 찾아내고 시도해보는 데에는 편집광이랄 수도 있겠다. 예컨대 십 수 년째 지치지도 않고 즐겨 하는‘픽셔너리(Pictionary)’ 라는 게임이 있다. 원래 게임은 별도 삶과 문화 103
의 보드가 필요하지만, 펜과 종이만이 필요 한 변형판이 더 재미지다. 동네 호프집에 엄 마들 아빠들 한 대여섯 명이 모일라치면 종 업원더러 종이와 펜을 갖다 달라 한다. 보통 세 팀으로 나눠서 한 팀은 문제를 출제하고 두 팀끼리 맞붙는다. 문제 출제팀이 문제를 내면, 나머지 두 팀에서 선수 한 명씩이 나 가 출제 문제를 본다. 요번 문제는‘질투’ 다. 햐아~ 요걸 어떻게 그릴까. 좋아, 생각 복잡하게 해봐야 소용없지. 남녀 졸라맨 둘 이 손잡고 가는데 옆에서 한 놈이 눈을 째리 는 걸 그린다.“질투!”답이 튀어나오고 진 팀에선 천원을 꺼내 팝콘 그릇 밑에 묻는다. 이러다보면 술값 마련은 금방이고, 어쩐지 공짜 술 먹은 거 같아서 기분마저 상쾌하다. 빨리 집에 가서 아기 엄마한테‘질투’ 를그 려 이긴 무용담을 늘어놓고 싶다. 픽셔너리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정 말 감동적인 기억이 있다. 한 대안학교에 보 드게임 수업을 나갔다. 그곳은 비장애인 학 생들과 장애인 학생들이 함께 수업을 받는 곳이었다. 평소와 같이 픽셔너리를 소개하 고 흥겹게 몇 판이 돌았다. 작심하고‘경험’ 을 문제로 냈다. 그리고선 일부러 한참동안 힌트도 주지 않고 아이들이 이걸 정말 그려 낼 수 있을까, 맞출 수 있을까 지켜보았다. 아빠들 술자리에선 끝끝내 맞추지 못했던 문제다. 10여 분 지나 아이들이 몸을 비비꼬 며 지겨워할 때 쯤, 한 모둠에서 답이 튀어 나왔다. 그쪽으로 뛰어가 보니 평소 왕따를 당했다던 자폐아 한 명이 씩 웃고 있다. PC What's it to ya(위) / 딕싯(Dixit)(가운데) / 스파이폴(Spyfall)(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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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캐릭터를 그려놓고 옆에‘경험치’ 를나
타내는 막대그래프를 그린 것이다. 꼬마 천재의 발견이었다.
왁자지껄, 의미심장하게, 보드게임 한 판? 최근에 나온‘너도나도!’ 라는 게임도 소개한다. 이 역시 펜과 종이만 있으면 된다. 주제어를 하나 정한 다. 당원모임이라면‘노동당’ 이란 주제어도 좋겠다. 그 다음엔 그 주제어를 들을 때 연상되는 단어를 각자 남에게 보여주지 말고 8개씩 적는다. 말은 쉬워 보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8개를 다 채우기가 은근히 쉽지 않다. 이때 주력할 점은 다른 사람들이 적음직한 단어를 적는 것이‘뽀인트’ 인데, 몇 명이 같은 단어를 적 었는가에 따라 그 명 수만큼 점수를 따기 때문이다. 다 적고 나서 한 명씩 돌아가며 연상되는 단어를 불러 점수를 매겨보노라면,“아 그 단어도 있었지!”해가면서 연신 무릎을 치게 된다. 더불어 같이 노는 사람들 의 사고방식과 취향까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덤으로 얻는 건 자신의 빈곤한 어휘력에 대한 뼈아픈 자 각. 나이가 얼만데 단어 여덟 개를 못 적어서 쩔쩔매다니. 너한테 이것은 뭐냐? 쯤으로 번역되는‘What's it to ya?’ 라는 게임도 재밌다. 수백 장의 단어카드 중 에 임의의 다섯 장의 카드를 펼치고, 한 사람을 정해 그 사람이 이 단어들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할지 다 른 사람들이 맞춰보는 게임이다. 지금 내 옆의 카드 더미에서 바로 다섯 장을 뽑아본다. 꽃, 아침밥, 언론 의 자유, 음악, 자동차. 자, 이렇게 다섯 개의 단어가 나온다면 당신은 어떤 우선순위를 매길 것인가? (음… 나라면 음악-언론의 자유-아침밥-자동차-꽃의 순서가 되겠다.) 모두가 보이지 않게 순서를 예측하고 나면
당사자가 자신의 우선순위를 공개하고 누가 가장 잘 맞췄는지를 따져본다. 게임을 시작하면 막상 점수보 다는“넌 왜 이거보다 저게 더 중요해?”해가면서 침 튀겨가며 이야기 나누는 데로 관심이 더 쏠린다. 이 게임을 하다보면 정작 당사자 본인이 가장 늦게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만큼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자신의 가치관과 취향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뜻일까? 누군가가 나의 우선순위를 100% 맞 추는 순간, 나의 소울 메이트가 찾아지는 셈이다. 처음 만난 사람끼리는 확 친해지는 데에, 잘 아는 사이끼 리는‘아 이놈이 이런 면이 있었군’ 하고 재발견하는 데에‘개이득’ . 이 외에도 갖가지 그림카드를 가지고 서로의 생각을 탐색하는‘애플투애플(Apple to Apple)’ , 내가 낸 그림카드를 다른 모든 사람들이 다 맞춰도 안 되고 다 못 맞춰도 안 되기 때문에 힌트를 내는 데 끙끙대는 ‘딕싯(Dixit)’ , 누가 어떤 생일 선물을 가장 받고 싶어 하는지를 테마로 하는‘해피 버스데이’ , 모두 같은 장 소에 있지만 이 장소를 혼자 모르는 스파이 한 명을 찾아내는‘스파이폴(Spyfall)’ , 이건 뭐 동지 반 배신자 반의 콩가루 조직에서 말싸움 사투를 벌여야 하는 최신판 마피아 게임‘레지스탕스’ , 저 사람이 술술 이야 기하는 경험담이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판단해야 하는 스토리텔링 게임‘피노키오’ , 단 둘이 있을 때에도 이마에 포스트잇 붙여놓고 낄낄댈 수 있는‘마빡 게임’등등 이 밤에라도 생전 처음 보는 당원들끼리 모여 도 왁자지껄 의미심장하게 놀 수 있는 수많은 게임들이 있으니, 언제 한번 판을 벌여 볼까나!
삶과 문화 105
오보로 보는 한국언론
추측 반 소설 반, 오보가 태반인 북한 보도 조윤호 <미디어오늘> 기자
대한민국 언론이 가장 많은 오보를 내는 영역은 단연‘북한’관련 보도다. 지난 13일 국가정보원은 국회정보위원회 비공개 현안보고에서 인민군 서열 2위인 현영철 인민무력 부장이 처형당했다고 밝혔다. 수백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사총으로 처형당했다고 한 다. 이유는 군 일꾼대회에서 조는 모습을 보이는 등‘불경죄’ 를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국 정원은 설명했다. 언론은 이러한 사실을 대대적으로 받아썼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는‘졸았다는 이유로 재판도 없이 측근까지 처형시킨 무자비한 놈’ 이 됐다. 그러나 국정원 보고 다음날 인 14일 현 부장의 모습이 조선중앙TV에 등장했다. 2013년 기록영화를 재방송하면서 현 부장이 김정은 제1비서를 수행하는 모습을 내보낸 것이다. 북한이 숙청된 인물은 모두 기 록에서 지운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그러면서 오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김일성 사망’ 부터 장성택까지,‘설’ 로 도배된 북한 기사 한국 언론의 북한 관련 오보는 역사가 깊다.‘김일성 사망’오보가 대표 사례다. 1986 년 11월 16일 조선일보는 1면 4단 기사에서 김일성이 북한군에 의해 암살당했다는 소문 이 돈다고 전했다. 처음에는‘설’ 이었으나 설은‘김일성 피격 사망’ 이라는 단정적인 보도 로 바뀌었다. 조선일보는 <주말의 동경 급전 … 본지 세계적 특종>이라는 자화자찬 보도 까지 내보냈다. ‘물먹은’언론들은 휴간일인 11월 17일 호외를 발행했다.“열차에서 총 맞았다”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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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당했다” “쿠데타”등 미확인
김일성 사망 ‘설’ 이‘김일성 피격 사망’ 이라는 단정
정보들이 지면을 채웠다. 하루 만
적인 보도로 바뀌었다. 언론이 미확인 정보들로 호
에 언론은 민망해졌다. 김일성 주 석이 다음날 평양공항에서 몽골 주석을 맞이하는 모습이 TV를 통
외를 발행한 다음날, 김일성 주석이 공항에서 몽골 주석을 맞이하는 모습이 TV에서 방영됐다.
해 방영됐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의 96년 2월 13일자‘성혜림 망명설’ 도 대표적인 오보다. 김정일의 본처로 알려진 성혜림 이 서방으로 망명을 했다는 것. 그러나 중앙일보가 성혜림이 러시아에서 북한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안기부장이 국회정보위원회에서 중앙일보 보도가 맞다고 밝히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94년 2월 15일 경향신문 1면 기사 <북한 이미 핵 실험>도 오보였다.“북한이 이미 핵 폭탄을 제조했 으며 아프리카에서 실험까지 마쳤다” 는 러시아 안보전략연구소 고문 블라디미르 쿠마초프의 발언을 전한 일본 지지통신과 프랑스의 AFP통신을 인용한 보도였다. 그러나 당사자인 쿠마초프가 근거를 묻는 중앙일보 기자의 물음에“단지 러시아 언론과 일본 언론 에 보도된 사실 등을 보고 개인적인 의견을 낸 것일 뿐” 이라고 발�하면서 결국 이 보도도 오보로 남 게 됐다.
2012년 1월 17일자 조선일보 기사 갈무리. 제목에‘정정 내용 있음’ 이라는 말이 붙어 있다.
삶과 문화 107
2014년 10월 11일 채널A 돌직구쇼 갈무리
한국에서 북한 관련 정보를 가장 잘, 그리고 많이 접한다는 연합뉴스도 몇 차례 오보를 냈다. 2011 년 5월 20일 연합뉴스는 <북 김정은, 투먼 통해 방중> 기사를 내보냈으나 김정은이 아니라 김정일 위 원장의 중국 방문이었다. 연합뉴스는 또한 2013년 4월 4일 <북, 개성공단 입주기업협에‘10일까지 전원 철수’통보>라는 제 목의 기사를 내보냈으나 오보였다. 북한이 개성공단 입주기업협회에 10일까지 통행계획을 제출하라 고 요구했는데, 이것이 와전된 것이다. 청와대와 통일부가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자 연합뉴스는 <정부, “개성공단 전원철수 요구설은 와전” >이라는 속보를 내보냈다. 기본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오보도 있다. 조선일보는 2012년 1월 17일 1면 기사에서 김정남(김정일 의 첫째 아들)이“천안함 피격이 북한의 필요로 이뤄진 것” 이라는 말을 했다고 보도했다. 도쿄신문의
고미요지 편집위원이 김정남과 교환한 이메일을 모아서 낸 책《아버지 김정일과 나》 가 출처였다. 그러나 고미요지 편집위원은 서울신문 등과 인터뷰에서“천안함 내용은 책에 없다” 고 반박했다. 그러자 조선일보는 정정보도를 통해 책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고 인정하며 김정남 주변을 취재하다 알 게 됐다고 해명했다. 당사자 확인도 없이 저지른 오보였다. 김정은을 둘러싼 보도에는 온갖 추측이 난무한다. 지난 2014년 9월 김정은 제1비서가 40일 간 잠 적하자 출처가 불분명한 평양 계엄령 선포설, 정신병설, 김여정의 대리통치설 등 지라시를 근거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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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들이 쏟아졌다. 이미 사망한 조명록 전 군 총 정치국장이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설까지 돌았다. 장 성택이 처형됐을 때도 온갖 추측 보도가 쏟아졌는데, 김정은 제1비서의 부인 리설주와 염문설 때문에 처형당했다는 근거 없는 루머까지 기사로 썼다.
남북관계에 도움 안 되는 오보, 국정원이 앞장서 이런 오보가 발생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복수확인이 안 된다는 이유로 일부 탈북자, 소 식통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쓴다. 둘째, 오보를 저질러도 북한에서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하거나 소송 을 하는 일이 없다. 셋째, 자극적인 보도로 페이지뷰를 올리려고 인터넷뉴스 속보팀들이 마구잡이로 받아쓴다. 문제는 이런 오보들이 남북관계 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북한은 언론사 이름까지 거명하며 비판 논평을 낼 때가 많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오보를 바로 잡아야 할 국가정보원이 오보를 양산하 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병호 국정 원장은 지난 4월 29일 국회에서 김정은
언론의 오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오보를 바로잡아야 할 국가정보원이 오보를 양산 하는 경우다. 특종경쟁에 시달리는 것도 아 닌데, 국정원은 왜 이러는 걸까
제1비서가 러시아 전승절에 참석할 가능 성이 높다고 했지만 하루 만에 북한이 불참을 통보했다. 언론에 북한 관련 소식을 흘리거나 확인되지 않은 첩보를 발표하는 때도 많다. 특종경쟁에 시달리는 것도 아닌데, 국정원은 왜 이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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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문화예술 당원 찾기
쥰짱, 본격의 삶을 ‘지대로’살아가는 청년 만화가 황혜준 글 : 최윤정 문화예술위원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대한민국 청년들의 생생한 삶이 담긴 만화‘쥰쨩’ “요즘 영어학원에 다니고 있고요. 영어가 요즘 저의 가장 큰 정체성이라서요. 미술학원에서 알바를 하 고 있고, 돌곶이에 살고, 만화를 그리는 쥰쨩입니다.”
쥰쨩 황혜준의 자기소개 말이다. 처음 만나서 명함을 건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는데, 쥰쨩의 자기 소개가 나로 하여금 쥰쨩에게 빠져들게 만들었다. 자신을 구성하는 요소 중 현재의 것만을 이야기하는 자 110
기소개가 인상적이었다. 졸업시험을 위해 최근 영어학원에 다니고 있다는 쥰쨩은 노동당‘몸치’ 패 두둠칫 이기도 하다.‘두둠칫’ 은 당을 매개로 모인 청년당원들이 당 행사나 집회·시위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 는 집단이다. 두둠칫 활동 역시 쥰쨩의 현재를 차지하는 큰 부분이다. 두둠칫 활동을 하느라 만화 그리는 시간이 부족할 정도라고 한다. 황혜준 당원은 2014년 5월부터‘쥰쨩’ 이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북에 만화를 연재 중이다. 블로그에서는 <야한 만화>(가제)를 올리고 있는데, 아쉽지만 아직은 비공개라고 한다. 쥰쨩의 페이스북은‘좋아요’수가 1600이 넘는다. 만화의 내용은 쥰쨩 황혜준 당원의 일상과 친구들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소소한 일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쥰쨩의 만화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대한 민국 청년들의 삶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현재 청년들이 사용하는 언어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 삶의 태도, 사고의 단면, 고민들이 뭔지 알 수 있다.
사심으로 응모한 평화통일 만화공모전 대상 수상 쥰쨩의 만화그리기는‘사심’ 으로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제1회 전국 평화통일 만화전에서 반 공주의를 극복한 통일한국의 모습을 그려 대 상을 수상했다. 응모 이유는 공모전의 부상 이‘금강산 여행’ 이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 교 6학년이 금강산을 가고 싶어 했다니 평범 한 어린이는 아니었지 싶다. 어린 시절부터 통일문제, 사회문제에 관 심을 가진 데에는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현 재 부산에 살고 계시는 쥰쨩의 부모님은 원 래는 서울에 살았는데‘노동자의 집’ 을 하기 위해 부산으로 가셨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차를 타면‘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와 같은 가사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부모님이 구 독을 신청해주신《고래가 그랬어》 나 집으로 배달된 한겨레신문을 읽기도 했다. 어린이로 서 잡지와 신문에서 가장 관심을 갖고 본 것 이 만화였고, 그래서인지 만평까지 그리게 되었다.‘전국 평화통일 만화전’ 의 대상수상 특전으로 심사위원이었던 박재동 화백과 금
만화공모전 대상수상 특전으로 심사위원이 었던 박재동 화백과 금강산 여행을 다녀왔다. 박 화백에게 만평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지만, 사실 그때는 만평이 뭔지도 잘 알지 못했다. 삶과 문화 111
강산 여행을 다녀왔다. 사실 그때는 만평이 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박 화백에게 만평작가가 되고 싶다 고 했다. 쥰쨩의 사심 가득 만화그리기는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계속 된다. 그 무렵 게임에 빠져서, 게임 캐시를 쌓으려면 문상(문화상품권)이 필요했다. 문화상품권을 사기 위해서 공모전을 훑기 시작했다. 한 번 공모전 에서 상을 타고 나니 공모전에서 상을 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길이 보였다.
집회 시위를 섭렵한 촛불 소녀
중학 시절을 게임과 함께 보낸 후, 고등학교 때 다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역사 선생님의 권유로 응모한‘4.3 전국문예공모전’만화 부문에서 또다시 대상을 거머쥐었다. <43번 버스를 타고>라는 제목으로, 각각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탄 43번 버스가 피로 물든 붉은 유채꽃밭을 지나가자 유채꽃이 노랗게 변하는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2012년에 쥰쨩은, 이한열 기념 사업회에서 주최한 만화공모전에서도 대상을 수상한다. 이한열 만화상 은 1987년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열사가 대학 재학시절 만화동아리에서 활동했던 것을 기리기 위해 제정되었다. 여기서 쥰쨩이 <촛불소녀>라는 작품으로 수상한 것이다. <촛불소녀>는 입시제일의 교육환경 에서 조용히 숨죽여 사는 법을 깨달아가는 여고생들이 2008년 촛불집회, 2011년 한진중공업에서 고공농 성 중이었던 김진숙 위원 지지방문, 강정마을의 미 해군기지 반대투쟁에 대한 토론 등을 통해서, 굳이 숨 죽이지 않아도 숨쉬기가 어렵지 않다는 걸 깨달아가는 내용이다. 고등학교 때까지 각종 공모전을 휩쓸었으니 만화를 전공으로 선택했다면 대학에 쉽게 들어갔을 법도 한데, 쥰쨩의 전공은‘회화’ 다. 상 타기용 만화그리기 훈련을 자초했고, 만화 기계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는 생각에 회화과 입시를 봐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데모의 뽕을 뽑기 위해 노동당에 가입하다 <촛불소녀>라는 만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들과 집회·시위에 참가했던 쥰 쨩은, 서울에 오니 아쉬운 것이 많았다. 데모에 함께 나갈 친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저기 단체 나 모임들을 기웃거렸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귀한 시간을 내서 나간 집회인데 나간 만큼‘뽕을 뽑고’싶 었다. 자기만족에 그치자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기에, 내가 내는 목소리의 힘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 서 노동당을 선택했다. 내가 내는 목소리가 실질적인 힘이 될 수 있도록 사람을 조직하고 정책을 만드는 정당이 쥰쨩에게는 필요했다. 서울시당 페이스북페이지에서 만화가 최규석의 책을 보내주는 이벤트를 한 적이 있다. 몸치패 두둠칫 의 매니저인 백상진 노동당 서울시당 총무부장이 그 이벤트에 쥰쨩이 응모했던 것을 기억했다. 아직 노동 112
제주 4.3 사건을 주제로 그린 <43번 버스를 타고>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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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유의미한 질문은 노동당에‘왜 가입했는가’ 보다‘왜 가입하지 않고 있었느냐’ 예요.”쥰짱은 자신이 얼마나 알아야 당 활동을 할 수 있을지 고민 이 많았다. 무엇보다, 자기가 번 돈으로 당비를 낼 수 있을 때를 기다렸다. 그 래야 제대로 당원의 권리를 누리고 의무를 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원이 아니었던 쥰짱이‘아, 최규석이 노동당 당원이라니!’ 라는 내용의 댓글을 달았고, 그 댓글 이후 백 상진, 강남규 당원의‘쥰쨩 당원 만들기’물밑 작업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공작도 한몫 했겠지만, 입당하는 데 만화가 최규석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었는지 궁금했다.
“어떤 선택을 할 때, 어떤 네임드(named) 때문에 선택하지는 않아요. 최규석 당원에 대한 것은 일종의 드립성 댓글이었어요. 최규석 당원과 같이 유명인이 있는 어떤 집단에 진입할 때 그 유명인은, 말 꺼내기 좋은 소재잖아요. 당원 가입은 그 이전부터 계속 고민하고 있었어요. 저에게 유의미한 질문은 노동당에 ‘왜 가입했는가’ 보다는‘왜 가입하지 않고 있었느냐’ 예요.”
쥰쨩은 자신이 얼마나 알아야 당 활동을 할 수 있는 건지 고민이 많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가 번 돈 으로 당비를 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당비를 자신의 힘으로 낼 수 있어야 제대로 당원으로서 권리를 누리고, 의무를 질 수 있을 것 같았다. 2014년 11월 노동당 가입 후, 쥰쨩은 비공개 블로그에 만화 그리는 일을 정도로 당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비공개 블로그에 그리는 <야한 만화>는 대체 얼마나 야한 것일까? 114
입시제일의 교육환경 속에서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안을 다룬 <촛불소녀>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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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제일의 교육환경 속에서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안을 다룬 <촛불소녀>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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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그냥 <야한 만화>라고 한 것인데 실제로 야하다고 할 수는 없을 거 같아요. 올바르고 교훈적인 만화만 그리는 것 같아서, 그런 것 말고, 제 속에 있는 비밀스러운 생각들을 표현한 것입니다.”
‘지대로’본격의 삶을 살고 있는 쥰쨩 만화 그리기는 물론 좋아서 하는 일이겠지만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물었다. “어릴 때 침대에 누워 만화책 보는 것을 좋아했어요. 제 만화도 종이책으로 나와 그렇게 될 수 있었으 면 좋겠습니다. 일종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어떤 만화가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스트레스 받는 게 싫고 삶의 여유를 만들고 싶어요. 그래야 더 좋은 만화를 그릴 수 있을 거 같은데 말 이에요. 본격적인 삶의 시작이 있을 거 같은데, 지금은 임의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만 화가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는 대답을 못하겠어요. 어떤 내용의 만화를 그리고 있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 있지만요.”
무언가를 원하면 원할수록 절망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살아가는 데에도 과도한 비용을 지 불해야 하기에 피로감이 크다. 남들처럼, 또는 남들 만큼 살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아야 삶을 재구성하 고 삶의 여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쥰쨩 황혜준 당원은 이미 다르게 사는 법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본인은 임의의 삶을 사는 것 같다고 하 지만,‘지대로’본격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진지한
노동당 문화팟캐스트 <컬쳐쇼크> 12회
고민과 자기성찰, 자기 부감으로 자기 삶의 완결성을
만화가‘쥰짱’황혜준 편 듣기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생각 없이 살다보면 사는 대
http://www.podbbang.co/ch/1858
로 생각하게 된다지만, 쥰쨩은 사는 대로 생각해도
노동당 문화팟캐스트 <컬쳐쇼크> 황혜준 편에
되는 삶을 살고 있다.
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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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서재
비극을 마주하고, 기억하고, 그 기억을 남기는 것 체르노빌 다크 투어리즘 가이드 아즈마 히로키 외 / 마티 / 2015년3월 / 20,000원 강현주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팀, 서울 양천 당원
이 새로운 형태의
다크 투어리즘은‘전쟁·재해와 같은 인류의 아픈 족적을 더듬어 죽은 자에 대한
관광 방식은, 단순
추모와 함께 지역의 슬픔을 공유하려는 관광의 새로운 패러다임’ 으로, 처음 이 용어
히 그 지역의 역사
가 등장한 때는 1966년이나 널리 알려진 건 2000년부터다. 이 새로운 형태의 관광
를 학습하는 데 그
방식은 단순히 그 지역의 역사를 학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극이 일어난 곳을 직
치지 않고, 비극이
접 방문함으로써 참담함과 슬픔을 직접 느끼고 그 슬픔을 기억하고 널리 공유하는
일어난 곳에 직접
데에 의의를 둔다. 슬픔을 마주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므로 비극과 그 비극이 자
가 슬픔을 대면하 고, 그 슬픔을 기 억하고 공유하는 데에 의의를 둔다.
리잡은 장소는 대개 잊히기 마련이다. 슬픈 이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하고 그 비극을 의도적으로 지우려는 세력들도 존재한다. 이는 한국 현대사에서도 지속적으 로 나타나는 경향이다. 그리고 나는 그 가리어진 목소리들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다.
‘관광’ 이라도 좋다, 직접 만나러 가자 자,‘관광’ 이라도 좋으니 체르노빌에 한 번 가보자. 그리고 자신의 무지를, 현실 의 복잡 미묘함을, 이미지가 가하는 폭력을 직접 대면해보자. 이것이 이 책의 기 획 의도이다. (10쪽 서문) 118
이 책은 다크 투어리즘을 기조로 체르노빌에 다녀온 일본인 여섯 명의 관광기와 원전 관련 인물들에 대한 취재로 구성되었다. 책의 앞부분은 2013년 4월 11일부터 12일까지 약 36시간 동안의 체르노빌 원자 력 발전소 관광을 다룬다. 관광은 사고 현장에서 대략 1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 프에서 시작된다. 관광 참석자들은 편의상‘30킬로미터 체크포인트’ 라고 불리는 디차토키 체크포인트에 서 처음으로 차를 세우고 검문을 받는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사고 지역 반경 30킬로미터 권내의 지역을 강제이주구역으로 지정했다. 이 구역의 정식 명칭은‘체르노빌 출입금지구역’ 이지만 일반적으로는‘존’ 이라고 불린다. 디차토키 체크포인트에서 10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체르노빌은 모스크바보다 역사가 오래 된 곳이다.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었으나 19세기 말의 포그롬1)과 2차대전 중 나치의 점령으로 대부 분의 유대인이 학살당했다. 그 뒤 체르노빌은 소련에 영입되고, 1978년 당시 명칭으로‘V. I. 레닌 기념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가 지어진다. 현재 존에는 사고 이후 자발적으로 귀환하여 살아가는‘사마셜’ 들 이 약 190명 정도 있으나 고령화 때문에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체르노빌 시내에는 원전사고 관련 조형물 들을 모아놓은‘국립 쑥의 별 공원’ 이 자리잡고 있다. 2011년 개장한 이 공원에서는 매년 4월마다 기념식 을 여는데, 수천 명의 사람들이 찾아와 자신이 살았던 마을에 다녀온 뒤 공원에 돌아와 추도식을 갖는다.
후쿠시마에도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기념공원이 있으면 좋겠네요. 히로시마가 그런 것처럼 후쿠시마 도 그 역사가 드러나 보이도록 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저도 돕겠습니다. (92~93쪽) 이 쑥의 별 공원을 지나 체르노빌 발전소 야외를 간단히 둘러보는 순서로 첫 날의 일정은 끝이 난다. 다 음날 이들은 관리동에서 시작해 1호기를 지나 4호기를 막아놓은 석관까지의 코스로 체르노빌 발전소 내 부를 관광한다. 70년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발전소 내부에 대한 묘사는 글보다는 사진이 주를 이룬 다. 발전 기능은 2000년에 멈추었지만 지금도 송전업무는 진행중어서 28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이곳에서 여전히 업무를 보고 있다. 생각보다 차분하고 평온하게 농담을 나누기도 하며 일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취재진은 인상 깊게 묘사한다. 그 후 일정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와 함께 만들어진 인공도시 프리피야 트 견학이다. 사고 이후 30여 년 동안 폐허가 된 프리피야트는 건물이 많이 노후해 개인의 책임 하에만 들 어갈 수 있다. 이후 소개받은 사마셜과의 인터뷰로 이들은 관광을 마무리한다.
비극을 기억하기, 기억을 마주한 이들에게 물음을 던지기 책을 읽는 동안, 있는 그대로의 체르노빌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이미지가 가 하는 폭력을 직접 대면’ 하자는 기획의도에 여러모로 충실한 서술이다. 1) 포그롬(러시아어 погром) : 특정 인종이나 민족, 또는 종교적 집단에 대해 그들의 집과 일터, 종교시설 등을 파괴하는 형태의 폭력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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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여정 중 키예프에 위치한 체르노빌 박물관이 특히 기억에 남는데, 과거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여주려 하는 많은 박물관들과는 다르게, 이 박물관은 종교적 상징을 활용해 감정을 자극시키는 전시물들로 채워져 있다.
전시를 준비할 때에는 감정과 상징성을 중시합니다. 회의록과 같이 사실을 나열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환기하는 배치가 되도록 주의를 기울입니다. 이른바 시 를 쓰듯이 전시를 합니다. 무미건조한 사실을 열거하는 것만으로는 역사가 지닌 무게가 전해지지 않습니다.(80~81쪽)
망각을 외치는 이 들의 목소리가 더
원전사고로 인해 생겨난 디아스포라를 상징하는 이미지, 성 가브리엘 성상과 방 호복이 나란히 놓인 동방정교회의 이코노스타시스2)를 지나 노심영역에 들어오면,
욱 드높아지는 한
다큐멘터리가 상영되는 모니터 뒤로 사고 때문에 피해를 입은 아이들의 얼굴 사진
국 사회에서, 비극
이 붙은 벽이 자리잡고 있다. 어떤 이들에겐 낯설 수도 있는 상징들로 가득한 이 박
을 기억하고 보존
물관은 방문자로 하여금 어떠한 형태로든 기억을 이끌어내려고 노력하는 공간이다.
하는 동시에, 그
존 투어를 처음 기획한 주체는 사고 당사자 또는 그 관계자들이었다. 그들이 존
기억을 마주한 이
에 머무르는 이유는 각각 다르다. 존 개방을 승인한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를 새로운
들에게 물음을 던 지는 방법을 체르 노빌을 통해 다시 생각해볼 만하다.
원전 추진 정책의 프로파간다로 사용하려고 한다. 놀라운 발상이다. 그러나 사고 지 역을 실제로 본 관광객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우크라이나 정부의 의도를 벗어난다 고 한다. 존 투어와 체르노빌 박물관은 관광객에게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는 공통의 의도를 지닌다. 망각을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가 더욱 드높아지는 한국 사회에서, 비 극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보존하는 동시에 기억을 마주한 이들에게 물음을 던지는 방법을 체르노빌을 통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만하다.
‘슬픔에는 한계가 있지만 우려에는 한계가 없다’ 2부 취재 편에는 관광을 하며 만난 사람들의 인터뷰, 취재과정과 방사선량을 측 정한 디렉터의 기록, 관광을 다녀온 후 있었던 집필진의 좌담,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를 비교하며 후쿠시마 관광지화 계획에 대해 쓴 사회학자의 글과 체르노빌에 대해 참조할 만한 매체들의 안내가 실려 있다.
2) 이콘을 거는 칸막이로 주로 동방교회에서 발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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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나쁜 상황이라든가 또는 모든 일이 순조롭다든가 하는 일은 없습니다. 눈물에 기대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우리 박물관이 내거는 슬로건이 있는데 혹시 보셨나요? 전시실 입구 쪽에 걸려 있습니다.‘슬픔에는 한계가 있지만 우려에는 한계가 없다.’이것이 우리 철학입니다.(201쪽)
‘거부할 줄 아는
우리는 위험 버튼을 누르라고 명령 받았을 때 그것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인간을 길러야 합
인식하고 있음에도‘아니요’ 라고 말할 힘을 지니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거부할
니다. 누가 버튼을
줄 아는 인간을 길러야 합니다. 누가 버튼을 눌렀는가가 아니라 왜 버튼을 눌러
눌렀는가가 아니
야 했는가, 그것을 사회학자, 철학자의 시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202~203쪽)
라 왜 버튼을 눌러 야 했는가, 그것을 사회학자, 철학자 의 시점에서 생각 해야 합니다.’
체르노빌 측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대부분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실제 겪은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차분하고 냉정하다는 인상을 준다. 정부지원금 같은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업무량도 과다하지만‘평생 이 일을 놓지 못할 것 같다’ 는대 목에선 활동가의 삶은 어디든 똑같은가 싶기도 하다. 몇 년 전, 다크 투어리즘이란 단어도 모를 때에, 나는 책을 읽고 홀린 듯 독일 곳 곳의 나치 관련 유적들을 쫓아다닌 적이 있다. 보수·유지하는 데에만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지만 가해의 기억을 잊지 않고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허물지 않는다는 안 내문을 보며, 시종일관 반성하는 모습 깊이 감동을 받았다. 거의 마지막에 들렀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피 해의 흔적을 마주하는 일이 나에게는 더 서글픈 경험이었다. 존 투어를 가게 된다 면, 독일에서의 시간보다 더 차분하고 냉정하게 앞날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절취선이 포함된 우크라이나 및 투어지역 관련 지도, 후쿠시마와 체르노빌 사건 의 규모를 보여주는 인포그래픽, 풍부한 사진자료와 각종 기념관들의 방문을 돕는 안내자료 등 이 책은 여러모로 가이드북을 많이 본뜬 모습이다. 실제로 취재진에게 인상 깊었던 전 세계의 다크 투어리즘 지역에 대한 안내도 덧붙어 있어, 슬픔의 공 유와 승계를 키워드로 하는 다크 투어리즘의 본 의도에 충실하다. 안내하는 지역 중 에는 제주도의 4.3 평화기념관도 있다. 일본식 디자인의 느낌이 물씬 풍겨나는 깔끔 한 레이아웃과 픽토그램을 활용한 용어 설명부분 등은 안내서 디자인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삶과 문화 121
‘꿈’ 조차 거짓말이 되는 세상 한때는 온갖 기념일 챙기고 이벤트 열기를 좋아하던 제가 이제는 생일 챙기는 일조차 귀찮아한 지는 꽤 되었습니다. 평소에 잘해야지 365일 중 하루를 챙기는 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누구누구의 날이 이어지는 오월이 가고 있습니다. 어버이날조차 챙기지 않았지만, 올해는 꼭 챙겨야겠다고 마음먹고 부모님을 찾았습니다. 조카들에게는 책과 손편지를, 부모님 께는 부모님 선물 선호 1위라는 현금을 준비했습니다. 자연스레 조카들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은 여섯 명의 조카 중에서 가장 예뻐하는 열네 살짜리 조카의 수학점수가 36점이라는 거였습니다. “헉. 어떻게 그런 점수를 받을 수 있어? 눈감고 찍었어?” 라고 묻자 조카는 공부했는데도 그렇다고 대답하 더군요.“언니~ 왜 이래. 나도 중학교 때 수학점수 그랬어. 언니에게는 상상 불가 점수지만 존재하는 점수 야. 평균점수라도 받으면 좋겠지만 말이야.”조카의 엄마인 여동생의 답변이 시원합니다. 36점 받은 조카가 당당하고 그 부모가 닦달하지 않고 받아들이니 심각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다만, 내 일 아침이면 변할지라도‘나는 무엇이 되고 싶다’ 는 꿈이 없는 건 많이 아쉬웠습니다. 조카들과 대화하다 보면 성적을 묻는 물음보다 꿈을 묻는 물음에 더 난감해 합니다. 성적으로 매기는 행복 말고는 가르쳐주 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둘째 조카가 담뱃가게 주인이 되고 싶다고 해서 무척 기뻤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더는 담뱃가게 주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지 않을 만큼, 세상 물정을 조금 더 알 만큼 자란 조카들의 모습에 흐뭇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합니다. 성장 자체가 주는 밤톨만 한 흐뭇함은 순간이었고,‘성적’ 이 아닌 다른 꿈으로 만들 수 있는 미래가 있 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씁쓸함과 미안함이 더 크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금 조카에게 할 수 있는 말은 고작“그래, 30점 받으나 60점 받으나 100점 받으나 별 차이 없더라. 점수 높다고 출세하 는 것도 아니고 출세한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어떤 꿈이든지 꿈을 갖는 게 더 중요하지.” 뿐이었습니 다. 다음에 이어지는 말은“꿈이 있다면 이렇게 저렇게 살 수 있어.” 여야 할 텐데, 차마 할 수 없었습니다. 그건 거짓말이니까요.
노래의
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민정연 문화기획자, 꽃다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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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지옥에 빠진 십대들 30년 전에 20%가량이었던 대학진학률이 90년대에는 30%대로 진입하더니, 최근에는 80%가량이라 고도 합니다. 2007년 기준으로 각국의 대학진학률을 살펴보면 미국이 65%, 영국이 55%, 일본이 46%, 독 일은 34%라고 합니다. 산업구조가 제조업 중심이어서 한국과 유사하다는 독일과만 비교한다면 지나치게 높은 대학진학률입니다. 한국의 십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적성과는 상관없는 입시지옥에서 빠져나올 수 가 없는 실정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매년 11월과 2월 사이에 200여 명의 학생들이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한다고 합니다.
난 1등 같은 것은 싫은데, 앉아서 공부만 하는 그런 학생은 싫은데, 난 꿈이 따로 있는데, 난 친구가 필요 한데 이 모든 것은 우리 엄마가 싫어하는 것이지. 난 인간인데 난 친구를 좋아할 수도 있고, 헤어짐에 울 수도 있는 사람인데 어떤 땐 나보고 혼자 다니라고까지 하면서 두들겨 맞았다. 나에게 항상 수단과 방법 을 가리지 말고 이기라고 하는 분, 항상 나에게 친구와 사귀지 말라고 슬픈 말만 하시는 분, 그분이 날 15년 동안 키워준 사랑스런 엄마라니 너무나 모순이다.(중략) 난 나의 죽음이 결코 남에게 슬픔만 주리라고는 생각지 않아. 그것만 주는 헛된 것이라면, 난 가지 않을 거야. 비록 겉으로는 슬픔을 줄지는 몰라도, 난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줄 자신을 가지고 그것을 신에게 기 도한다.
친구에게 유서 같은 이 편지를 남긴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은 스스로 이 세상을 등졌습니다. 1986년 1월 15일 새벽의 일입니다. 그녀는 전교 1등을 하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녀의 유서가 언론에 공개되자 세상이 들썩였습니다. 전문가를 모셔 입시과열의 문제점에 대해 떠들어대더니 며칠 지나지 않아 언론은 다른 화 젯거리를 찾아 부나방처럼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있었습니다. 어떤 교 육자는‘참교육’ 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실천했을 겁니다. 어떤 영화인은《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라는 영화를 통해 십대의 고민을 세상에 전했습니다. 어떤 작가는 소설로 그녀의 죽음을 추모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음악인은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꿈이 있다면 이렇게 저렇게 살 수 있어.” 라고 조카에게 말하고 싶지만, 차마 할 수 없었습니다. 그건 거짓말이니까요.
삶과 문화 123
발랄하고도 슬픈 노래 오늘 소개하는 노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안치환이 만든 노래입니다. 안치환이 정확하게 위에 소개한 소녀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노래를 만들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소녀의 죽음에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안치환 1집》 에는 이병철 작사로 되어 있었는데《안치환 1+2》 에는 아이들과 안치환의 글로 소개된 걸 보면 영향을 받았다는 쪽에 무게가 더 실립니다. 딱 꼬집어 그 소녀의 죽음이 아니더라도, 한국의 교육 현실과 학벌 위주의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과 청소년들에 대한 관심이 어 우러져 자연스럽게 노래로 만들어졌겠지요. 만든 사연이야 어찌되었든 청소년의 시각으로 입시지옥을 이 만큼 표현된 노래도 없으니 매우 유의미한 노래이지 않나 싶습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1990년에 발매한《안치환 1집》 에 수록되었으나, 그의 첫 솔로 음반 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1993년 <자유>와 <소금 인형>이 수록된 3집 음반《Confession》 이 성공 한 이후, 세상에서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1집과 2집에서 발췌한 곡을 1994년에 재녹음한《안치환 1+2》 음반에 재수록 되어서야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1집에서 처음 접한 후 너무 많이 들어서 테이프가 늘어질 때쯤《안치환 1+2》 이 발매된 덕에 이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어 반가웠던 기억이 납니다. 안치환 본인보다 학생들이나 선생님에 의해 더 많이 불리고 사랑받는 노래가 아닌가 합니다. 그는 이 노래를‘이 젠 부르기 쑥스러운 발랄하고도 슬픈 노래’ 라고 소개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지옥 같은 현실을 담고 있음 에도 멜로디와 사운드가 매우 발랄합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노래를 다 듣고 나면 더 서늘한 여운이 짙 게 남습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것을 죽음을 통해 보여주려 했던 소녀가 떠난 지도 30여 년이 흘렀습니다. 제 죽음이 슬픔보다는 큰 것을 주었으면 좋겠다던 소녀의 기도는 여전히 우리에게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십대들에게 꿈을 꾸지 못하게 하고‘성적’ 을 위해 모든 것을 견디라고만 합니다. 성적이라 는 올가미에 걸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또 다른 소녀가 한 해에 200여 명씩 생겨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성적에 연연하냐는 물음에 대부분 자식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합니다. 출세나 부가 목표 자체라고 말하는 부모는 별로 없습니다. 그렇다면 가정의 달이라는 오월이 가기 전에 서로 눈 마주 보며“네가 원하는 건 뭐니? 네가 가장 즐거운 일은 뭐니?”라는 대화를 나눠보는 걸 어떨까요? 같이 꿈을 찾는 여정을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고요? 그럴 지도요. 하지만 혁명은 늘 아주 작은 파문에 서 시작되었던 게 아닐까요?
세상은 여전히 십대들에게 꿈을 꾸지 못하게 하고‘성적’ 을 위해 모든 것을 견디라고 합니다. 제 죽음이 슬픔보다 큰 것을 주었으면 좋겠다던 소녀의 기도는 여전히 우리에게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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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아이들 작시/안치환 작곡·노래 행복은 그 잘난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매일같이 공부 또 공부 지옥같은 입시전쟁터 어른들의 그 뻔한 얘기 이젠 정말 싫어요 행복과 성적이 정비례하면 우리들의 꿈은 반비례잖아요 행복은 그 잘난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자율학습 또 보충수업 시험 시험 시험 입시전쟁터 세상은 경쟁 공부 대학 출세 명예 돈 서로 서로 사랑 하고 나줘주는 세상은 어디 행복은 그 잘난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내 무거운 책가방속에 무엇이 들었을까 아주 공갈 사회책, 따지기만 하는 수학책, 외우기만 하는 과학책, 국어보다 더 중요한 영어책, 부를게 없는 음악책, 꿈이 없는 국어책 얼마나 더 무거워져야 나는 어른이 되나 얼마나 더 야단맞아야 나는 어른이 되나 행복은 그 잘난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1번 2번 3번 4번 넷 중에서 행복은 몇번 우리들 살고 싶은 사랑 가득한 세상 내 무거운 책가방 속엔 행복은 없고 성적 뿐이죠 행복은 그 잘난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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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접으며
황당하게 끝난‘잔혹 동시’논란 박권일 기관지위원,《88만원 세대》공동저자
엄마와 아이 사이에‘존재해선 안 되는 판타지’ 가 두 종류 있다. 아이를 죽이고 싶다는 엄마의 욕망, 그 리고 엄마를 죽이고 싶다는 아이의 욕망. 전자는‘모성의 신화’ 를, 후자는‘동심의 신화’ 를 위협한다. 엄 마는 아이를 무조건 사랑해야 하고, 어린이는 무조건 순수해야 한다는 판타지. 소위‘잔혹 동시’ 에 사람들 이 그토록 격렬하게 반응한 까닭은, 첫째로 그것이 동심의 신화에 생채기를 냈기 때문이다.“엄마를 죽이 다니 이게 대체 어린이가 할 소리인가?” 두 번째 이유는 <학원가기 싫은 날>이라는 시가 많은 한국 엄마들의 죄의식을 건드린다는 점이다. 세 계 각국으로부터‘아동학대’ 라는 비난을 받는 게 한국 사교육이다. 그 수라장에 아이를 내모는 엄마들은 ‘아이의 미래를 위해 최선’ 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가끔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다.‘아이도 내 마음을 알아 줄까? 날 원망하지는 않을까?’시는 한국 엄마들의 그런 불안과 공포를 그야말로‘직격’ 한다.‘실은 우리 아이도 겉으론 말을 잘 들으면서 속으로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시집의 존재와 시를 쓴 어린이의 나이만 알려졌을 때, 당장 부모를 신고해야 한다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아이를 학대했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정상적인 가정” 에서 자란 어린이라면 절대 저런 시를 썼을 리 없 다는 확신들.“정상가정” 에 대한 그 굳건한 믿음이 깨지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변호사, 어머니는 시인이라고 했다. 풍족한 중산층 가정임은 물론, 부모의 문화자본까지 대한민국 최상위였다. 시집 회수 및 폐지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는 등 여론에 가장 강경하게 맞선 건 어린이의 변호사 아버지 였다. 이미 시인 엄마는 문제가 된 시를 보고 당장 학원을 그만두게 했다고 한다. 부모는 심지어 출판사가 논란을 우려해 출간을 망설이자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 아이의 재능을 꽃피워주기 위해 시집을 출간해 주고, 세간의 오해와 비난에 맞서 싸워줄 수 있는 부모는 흔치 않다. 자체로 드문 미담이다. 그런데 상황이 갑자기 급변한다. 아버지가 시집 폐기 금지 가처분 신청을 취하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 렇게 밝혔다.“일부 기독교, 천주교 신자들이 우리 딸이 쓴 동시집을‘사탄의 영이 지배하는 책’ 이라며 깊 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우리 역시 신자로서 심사숙고한 결과 더 이상 논란이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원하 지 않아 전량 폐기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 아이는 비정상이 아니라고 세상과 맞서 싸우던 아버지는,“사탄의 영이 지배한다” 는 소리에 금세 소신을 꺾었다.《빌리 엘리어트》 를 방불케 하던 미담은 그렇게 한국적인 해프닝으로 종결됐다. 앞으로도 한국의 어린이는‘학원 뺑뺑이’ 를 돌 것이다. 부모들은 착한 아이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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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이야기
만화가 황혜준
쥰짱, 본격의 삶을 ‘지대로’살아가는 청년 “본격적인 삶의 시작이 있을 거 같은데, 지금은 임의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만화가가 되고 싶으냐는
미래에서 온 편지 제21호 발행인 나경채 편집인 이장규 위원회 김건담 김성현 박권일 백시진 장석준 정정은 정철수
조윤호 최백순
질문에는 대답을 못하겠어요. 어떤 내용의 만화를 그리고 있
교 열 노정 오승준 정정은
냐고물으면대답할 수있지만요.”
디자인 고미숙
본인은 임의의 삶을 사는 것 같다고 하지만,‘쥰짱’황혜준
등록일 2013년 6월 11일 (등록번호 영등포, 라00407)
당원은‘지대로’본격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진지한 고민과 자기성찰, 자기 부감으로 자기 삶의 완결성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생각 없이 살다보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지만, 쥰쨩은사는대로 생각해도되는삶을 살고있다.
발행일 2015년 5월 26일 주 소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 664 한흥빌딩 2층 노동당 전 화 02) 6004-2006, 2007 팩 스 02) 6004-2001 이메일 laborzine@gmail.com 홈페이지 www.laborparty.kr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 황혜준 당원의 인터뷰 전문은 110~117쪽 <숨은 문화예술 당원 찾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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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호표지 17
2015.1.19 10:2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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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
제17호
2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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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통합진보당해산, 그다음은 쟁점토론 ■ 6기대표단선거: 나는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