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회 지구촌 청소년 한글사랑 글짓기 대회 수상작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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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회 지구촌 청소년 한글사랑 글짓기 대회 수상작 모음집

하는 글로

마음

주관 및 발간 : 사회복지법인 백암재단 주 최 : (사)모두하나교육회, 지구촌모두하나스쿨, 경기도교육공동체봉사단 후 원 : 외교부, 교육부, 경기도, 연세대 자원봉사센터, 단국대, 동국대, 숙명여대, 한림대, 백석대 등


CONTENTS I. 격려의 글 05

발간사 사회복지법인 백암재단 이사장 & 글짓기 대회장 / 이원준

07

대회사 (사)모두하나교육회 & 경기도교육공동체봉사단 대표 / 최정숙

09

대회사 (사)모두하나교육회 중국지회장 / 박순엽

11

축 사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이준구

13

대회 수상자 목록

II. 수상작품 소개 대상 (교육부장관상) 1. 대 상 ❖ 교육부장관상 17

내가 받은 특별한 선물–우리말 사랑과 나 / 홍가영 / (중국) 선양시 제11고등학교 고등 2학년

1. 최우수상 대상 (교육부장관상) 2. ❖ 서울시장상 20

넘치는 사랑 / 구예화 / (중국) 돈화시 제4소학교 초등 6학년

22

조선족에 대한 잘못된 인식 / 리정민 / (중국)
심양시 조선족 제1중학교 고등 3학년

25

퍼즐조각 / 도한정 / (중국) 심양시 조선족 제1중학교 고등 3학년

27

기억, 남기고 싶은것 / 류국화 / (중국) 무순시 조선족 제1중학교 고등 3학년

30

통일의 열쇠 / 김유성 / (중국)
선양 국제학교 고등 3학년

33

베트남에서 피어난 한글 사랑 / 이혜림 / (베트남)
하노이 한국국제학교 고등 3학년

❖ 경기도지사상 36

설날 / 한지은 / (중국) 장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초등1학년

38

나의 꿈-교육부 부장 / 신예준 / (중국) 장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초등 1학년

41

까만 밥을 먹는 아이 / 박탄주 / (뉴질랜드) 정원 한글학교 초등 5학년

44

통일! 그 날이 오면 / 홍지민 / (중국) 선양 한국국제학교 중등 2학년

47

나는야 Kirin선생님 / 유지선 / (베트남) Singapore International School 중등 2학년

51

배려와 나눔으로 하나 되는 우리 / 이도연 / (중국) 셔코 국제학교 (SIS) 고등 1학년


❖ 경북도지사상 55

또 다른 하나의 / 로준석 / (중국)
심양시 혼남신구 조선족학교 초등 5학년

57

20년후 나의 모습 / 김홍리 / (중국) 할빈시 동력 조선족 소학교 초등 6학년

60

그리웠던 한국땅 / 선우지원 / (중국) 심양시 혼남신구 조선족학교 초등 4학년

62

흔들리고있는 민족의 뿌리-우리말 / 문예영 / (중국) 길림시 조선족 중학교 중등 2학년

64

우리의 어머니—지구를 살리자 / 김천룡 / (중국) 할빈시 조선족 제1중학교 중등 2학년

66

민영이의 바램 / 박지연 / (중국) 오상시 조선족 중학교 중등 2학년

3. 우수상 ❖ 거주자 국적 < 초등학교 우수상 > 69

욘수라 불리는 나, 준서 / 김준서 / (영국) St Matthew's Primary School 초등 6학년

71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한서영 / (영국) Westbourne Primary School 초등 5학년

73

어머니를 그립니다 / 최홍철 / (중국) 천교령 조선족학교 초등 5학년

75

형제친구 / 장철진 / (중국) 장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초등 5학년

77

할머니 사랑 / 황진 / (중국) 천교령 조선족학교 초등 6학년

79

아버지를 그리는 마음 / 구애화 / (중국) 천교령 조선족학교 초등 6학년

81

“무뚝뚝한” 아버지 / 박철 / (중국) 천교령 조선족학교 초등 4학년

83

미래와 현실 / 권혁 / (중국) 천교령 조선족학교 초등 6학년

85

송편빚기 / 명옥윤 / (중국) 서탑 조선족소학교 초등 6학년

86

사랑 / 박연미 / (중국) 천교령 조선족학교 초등 6학년

87

한국사람 한국사랑 / 변예원 / (호주) Newington 초등학교 초등 6학년

88

어머니 어서 돌아오세요 / 박춘영 / (중국) 천교령 조선족학교 초등 6학년

90

내 짝꿍 이비(Evie) / 김한서 / (영국) St Matthew's Primary School 초등 2학년

91

감격의 나무 / 리춘길 / (중국) 천교령 조선족학교 초등 6학년

93

한국어와 나 / 이지나 / (호주) 시드니 천주교 한글학교 초등 6학년

94

산타할머니도 있어요 / 김소혜 / (중국) 장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초등 1학년

96

뽀뽀뽀 가족 / 김경운 / (중국) 장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초등 1학년

97

20년후의 나 / 황재우 / (중국) 장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초등 5학년

98

진돗개 / 최지혁 / (중국) 매하소학교 초등 5학년

100 고마운 친구들이여 / 강지모 / (중국) 할빈시 동력 조선족 소학교 초등 6학년 102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랑 / 고휘연 / (중국) 매하 소학교 초등 5학년 104 엄마를 바꾸고 싶어요 / 김해욱 / (중국) 매하구시 조선족 실험 소학교 초등 5학년 106 누나 / 김승준 / (중국) 장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초등 2학년 107 운동대회 / 박혜진 / (중국) 천교령 조선족학교 초등 3학년 108 이모의 아들이 되였어요 / 함상규 / (중국) 장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초등 4학년 110 이 행복 쭈욱 이어가요 / 박흠미 / (중국) 장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초등 6학년 111 추석 / 리용군 / (중국) 천교령 조선족학교 초등 4학년 113 남의 흉 보면 안돼 / 전아연 / (중국) 장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초등 6학년


< 중학교 우수상 > 114 함께 나누고 싶어요 / 최은주 / (중국) 장춘시 조선족 중학교 중등 3학년 115 자랑스럽다, 우리말이여 / 황은정 / (중국) 영구시 조선족학교 중등 3학년 117 20년후의 나 / 림계염 / (중국) 집안시 조선족학교 중등 3학년 120 ‘통일 골든벨’에 참가하고... / 신영서 / (브라질) Colegio Rumo 중등 3학년 122 한마디 말의 힘 / 김동우 / (중국) 장춘시 조선족 중학교 중등 3학년 124 마음의 상처 / 김선미 / (중국) 벌리현 조선족 중학교 중등 3학년 126 저도 조선말로 대화할수 있어요 / 배효영 / (중국) 벌리현 조선족 중학교 중등 1학년 129 라벤터의 깨달음 / 신림향 / (중국) 영구시 조선족중학교 중등 3학년 131 “한차례의 려행” / 동우선 / (중국) 길림시 조선족 중학교 중등 3학년 132 통일의 다리를 건너며 / 변승원 / (호주) 시드니 한인 천주교 한글학교 중등 2학년 133 20년후의 나의 모습 / 김수연 / (중국) 영구시 조선족 중학교 중등 2학년 134 한국인으로 태어나 행복한 나 / 백현인 / (일본) 교토 국제중학교 중등 3학년 135 안녕하세요 / 박미연 / (중국) 영구시 조선족 중학교 중등 2학년 136 우리 말을 사랑하고 빛내 여가자 / 김춘란 / (중국) 길림시 조선족 중학교 중등 3학년 137 한마디 말의 힘 / 윤려홍 / (중국) 장춘시 조선족 중학교 중등 3학년

< 고등학교 우수상 > 138 그대에게 가고 싶다 / 렴지혜 / (중국) 무순시 조선족 제1중학교 고등 3학년 140 훈민정음의 향기 / 최영준 / (중국) 길림성 연변 제1중학교 고등 1학년 142 우리말 보호, 사랑 / 김경종 / (중국) 심양시 제21중학교 고등 2학년 145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 박미경 / (중국) 연변 제1중학교 고등 1학년 149 버려질 욕망 그리고 그 끝 / 박건 / (중국) 심양시 조선족 제1중학교 고등 3학년 151 봄을 기다린다 / 최미향 / (중국) 무순시 조선족 제1중학교 고등 2학년 153 우리의 소원 / 손석중 / (중국) 선양 한국국제학교 고등 1학년 155 우리말을 소중히 여기자! / 리현미 / (중국) 길림성 연변 제1중학교 고등 1학년 158 그대 앞에 난 돛대이여라! / 윤춘홍 / (중국) 심양시 조선족 제1중학교 고등 1학년 161 이별은 아프다 / 유정민 / (중국) 무순시 조선족 제1중학교 고등 2학년 163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사는 친구들 / 신영림 / (브라질) Colegio Rumo 고등 1학년 166 억지로 딴 수박은 달지않다 / 민준혁 / (중국) 길림시 조선족 중학교 고등 2학년 168 봄의 매력 / 리자룡 / (중국) 길림시 조선족 중학교 고등 2학년 170 미안함과 고마움 / 윤동매 / (중국) 무순시 조선족 제1중학교 고등 1학년

❖ 유학생 / 이민자 자녀 < 초등학교 우수상 > 173 나의 사랑하는 대한민국에게 / 김재은 / (호주) St Joachim’s Primary School 초등 4학년 175 지구촌 저 편의 나의 친구들 / 김도연 / (베트남) 하노이 국제학교 초등 4학년 177 통일이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한다 / 박이현 / (중국) 선양 한국국제학교 초등 4학년 179 나의 이웃 세계인 / 김지우 / (베트남) SIS Hanoi 초등 4학년 180 베트남은 내 친구 / 이민영 / (베트남) 하노이 한국국제학교 초등 3학년 182 나의 소원 통일 / 최효정 / (중국) 청도 국기외국어학교 초등 3학년


< 중학교 우수상 > 183 얼음보숭이와 아이스크림의 차이 / 박고은 / (중국) 선양 한국국제학교 중등 2학년 186 그리울 그 곳 / 강소이 / (중국) Beijing City International School(BCIS) 중등 3학년 189 통일 / 류승이 / (중국) 선양 국제학교 중등 1학년 191 아픔이 무뎌지기 전에… / 장서희 / (중국) 선양 한국국제학교 중등 2학년 194 하체뿐인 호랑이, 완전체는 어디에 / 조수안 / (중국) 선양 한국국제학교 중등 2학년 197 통일에 대하여 / 조훈희 / (중국) 선양 한국국제학교 중등 2학년 200 함께 / 최승환 / (중국) 청도 국기외국어학교 중등 2학년 203 우리민족의 평화통일 / 윤자현 / (중국) 천진 한국국제학교 중등 3학년 205 통일을 품은 우리 / 정유진 / (중국) 청도 국기외국어학교 중등 2학년

< 고등학교 우수상 > 208 순망치한 / 신동화 / (중국) 선양 한국국제학교 고등 2학년 210 잃어버린 맹호의 심장 / 김호영 / (중국) 청도 MTI 국제학교(ISQ) 고등 1학년 213 갈림길 / 서동명 / (중국) 청도 국기외국어학교 고등 3학년 216 질곡 / 정상윤 / (중국) 선양 한국국제학교 고등 2학년 219 열일곱 긍지 / 박도윤 / (태국) 방콕 한국국제학교 (KISB) 고등 1학년 222 한류와 K-POP, 그리고 나의 꿈 / 조예경 / (중국) 북경 한국국제학교 고등 3학년 225 나의 한글 사랑 / 김승환 / (중국) 선양 한국국제학교 고등 3학년 227 뉴질랜드에서 듣는 강남스타일 / 오현경 / (뉴질랜드) Auckland International College 고등 3학년 230 한글 / 이소희 / (태국) 방콕 한국국제학교 (KISB) 고등 2학년 233 눈(眼) / 정한솔 / (중국) 선양 한국국제학교 고등 3학년 236 나의사랑 대한민국 그리고 나의꿈 / 이지우 / (일본) 동경 한국학교 고등 1학년 238 흉터는 저 혼자 사라지지 않는다 / 김래효 / (태국) 방콕 한국국제학교(KISB) 고등 2학년 240 그 눈물을 기억 하는가 / 이가영 / (중국) 청도 국기외국어학교 고등 2학년 244 구차한 변명 / 정운영 / (중국) 선양 한국국제학교 고등 2학년 247 625번지의 소원 / 고은비 / (일본) 동경 한국학교 고등 1학년 249 통일, 나의 꿈 / 최예지 / (중국) 청도 국기외국어학교 고등 2학년 253 우리말 사랑이 곧 나라사랑 / 곽정현 / (베트남) 하노이 한국국제학교 고등 3학년 255 한류! 국가의 이미지와 문화전파의 ‘창’ / 김유리 / (중국) 청도 이화한국학교 고등 3학년 258 저도 한국인이에요 / 박보영 / (일본) 동경 한국학교 고등 2학년 261 그래도 내 고향은 한국이다 / 윤예람 / (태국) Grace International School 고등 2학년 264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 강영은 / (태국) 방콕 한국국제학교 고등 2학년


대회장 발간사 사회복지법인 백암재단 이사장 이 원 준

여러분은 한민족의 미래요. 꿈이요. 바로 희망입니다. 어느덧 제 5회 지구촌 청소년 한글사랑 글짓기 대회가 마무리되는 시기에 이르렀습니다. 2010년 1회 대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변함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여러분은 한민족의 미래요 꿈이요 희망 이라는 사실입니다. 현재 많은 한(韓)민족이 전 세계 곳곳에서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韓)민족이라 는 핏줄만 같을 뿐 다른 언어와 다른 문화 속에서 차츰 우리의 글과 말을 잃어버리면서 살아가고 있습 니다. 이에 백암재단에서는 한글사랑 글짓기 대회를 통해 전 세계 한민족 청소년들이 한 음절, 한 구절 그리고 한 문장으로 한글사랑의 마음을 가득히 담아내어 한글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한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고, 한민족 청소년들의 생각을 한 곳에 담아내기 위해 매회 대회 수상작 모음집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한 편의 글은 시대와 공간을 아우르는 힘이 있듯 세계 각국의 한민족 청소년들의 정성과 노력이 깃든 수상작 모음집은 시공간적인 제약에서 벗어나 한글을 통해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공유하여 담아내는 하나의 그릇이 될 것입니다. 한민족의 주인인 청소년 여러분! 보다 넓고 깊은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 십시오. 여러분들이 노력으로 좋은 결실을 이루기를 바라며, 무엇보다도 한민족의 주체성을 잃지 않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끝으로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시고 빛내 주신 (사)모두하나교육회 최정숙 대표님과 심사에 열정을 쏟아주신 이준구 교수님, 이봉준 부장님 그리고 멀리 심양에서 큰 열정으로 본 대회에 협조해 주신 박순 엽 선생님께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이외에도 외교부, 교육부, 경기도, 연세대 자원봉사센터, 단 국대, 동국대, 숙명여대, 한림대, 백석대 등의 후원처와 아쉽게 수상자 명단에는 오르지 못하였지만 글 짓기대회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주신 참가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2014년 9월 25일

이 원 준 드림


대회사 (사)모두하나교육회 & 경기도교육공동체봉사단 대표 최 정 숙

지구촌 곳곳에 사는 청소년 여러분들이 참여하여 참 좋으신 표창장을 받게 되신 것 축하드리며, “지구 촌 청소년 한글사랑 글짓기대회” 역사부터 알려 드리겠습니다. 2007년 여름, 제가 경기도교육공동체봉사단 단장을 겸임한 교육공무원으로 근무할 당시 중국 요령성 심양대학교의 부총장님과 마주한 자리에서 ‘한 중 청소년문화교류’를 위한 객좌교수 임명장을 받으며 합의를 한 바 있습니다. 그 날 계기로 시작 된 한중 청소년문화교류를 위한 일환으로 조선족 청소년 학생을 대상으로 “제1회 한글 글짓기 대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는 중국인이 한국으로 관광을 오고 싶어도 쉽게 올 수가 없었던 시절입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7~8년 전인데도 국제적 양상이 무서우리만큼 바뀐 현실을 실감하실 겁니다. 그러므로 첫 시작을 하던 당시의 조선족 청소년들의 모습 역시 대단한 변화를 거듭 하였으므로 저는 점차, 이 대회를 지구촌 전체로 확대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고, 그렇게 추진을 해 왔던 겁니다. 그런 와중에 참가비가 없는 행사로서 교육적인 최고의 보상인 “격려의 표 창장”만 수여해 드리는 것을 목표로 한 방침을 세웠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각 장관님들의 표창장과 각 시도 지방 자치 기구 도지사님들, 시장님들, 교육감님들, 대학교 총장님들, 각 언론사의 대표 와 각 유관 단체장님들의 표창장을 받도록 하는 기획의 일은 해마다, 또 다시 후원 요청을 해야 하는 아주 번거롭고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한 해에 150명이상 250명 정도 되는 수상자를 위해서 끊임없이 반 복노력을 해 왔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한국의 기관(관청) 행정은 대단히 까다롭습니다. 반드시 1년 전에 후원명칭 사용과 표창 예정자 인원수를 신청해야 하는데 그 기관에서 발급된 단체의 이름으로만 받아주 는 기득권 단체가 따로 있습니다. 정치관계가 어려웠던 중국과 첫 소통을 하던 단체로서는 경기도교육 공동체봉사단, 교육부로는 모두하나교육회, 그리고 외교부로는 지구촌모두하나스쿨, 경기도로는 경기 교육자원봉사단체협의회 이름으로 요청을 해 왔습니다. 여기서 위에 열거한 모든 단체들의 공동체 대표 로서의 저는 여러분에게 참가비도 안 받듯 , 어느 곳으로부터도 후원금을 받지 아니한 단체라서 정부의 각 기관 후원을 받을 자격이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이 대회를 주관하여 주시는 좋은 단체는 따로 있었 습니다. 8년 전 중국의 한 조선족학교(안도2중)에 연 200만원씩 장학금을 지급해주시는 한국의 젊은 이


원준(사회복지법인 백암재단 이사장)님의 활동을 지켜보며 부탁을 드리게 되었고, 흔쾌히 이 대회의 운 영을 도맡아 진행하여주셨습니다 시작단계의 지구촌 각 국에 대회 공지를 하는 연락하는 일부터 진행 과정, 심사, 그리고 표창장을 일일이 각 기관으로부터 받아서 수여를 하여 주는 일, 마지막 끝으로 특별상, 장학금 수여, 마지막단계 우수 작품 글 모음집을 발간하여 전체 참여자 여러분에게 보내드리는 일까지 모든 비용을 아끼지 아니 하고 백암재단의 한글사랑 글짓기 대회 사업비 몫으로 지급하여 주고 계셨습니다. 실로 아무나 할 수 도 없는 일을 이렇게 6년 간 계속 진행하여 주신 이원준 이사장님께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그리고 미안함이 많은 주최 측 대표자인 저는, 젊은 이원준 이사장님께서 그간 해 오신 사업 중에, 중, 고, 대학생, 대학원생, 1,000여명이 넘는 젊은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해 오신 과업과 그 수혜를 받은 모든 사람들이 부디 이 사회의 성공자가 되기를 기원하여 드리는 바입니다. 지구촌모두하나스쿨 및 (사)모두하나교육회를 이끄는 대표자로서 저는, 실제로 하는 일이라고는 각 부처에 각기 다른 단체의 이름(대표자 이름은 동일)으로 행사후원 명칭 허가 신청과, 행사 결과 보고 서를 제출하여주는 일 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서 호주-퍼스로 이민을 와서도 제가 섬기던 많은 단체들의 꼭지 점의 사업 활동인 “국제평화교육봉사단”의 코디네이터로서의 사명을 계속 감내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여러분께 호소할 말씀은 많이 있습니다. 지구촌 각 국에 살고 있는 청소년 여러분의 가슴에 <한글 사랑의 영혼> 을 고이고이 간직하고 보관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지금 한참, 한국의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져 가는 이즈음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지구촌 곳곳에서 한글을 보급할 수 있도록 앞서 주시고, 이러한 사실을 알게 하고, 또 잊지 않게 할 우리 한반도 땅 한민족 동포로서의 숙명적인 사명을 다하는 일에 우리 모두 함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14년 8월 31일 서 호주-퍼스에서 최 정 숙 드림


대회사 (사)모두하나교육회 중국지회 지회장 박 순 엽

꿈, 미래로 가는 안내자 한류의 힘은 강했습니다,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국은 거리마다 골목마다 한류바람으로 춤을 추고 있습니다. 드라마, 음식, 영화, 여행, 의료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최 호황을 누리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얼마 전 한 TV 드라마의 여파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치킨 맥주가게 앞에서는 대기번호표를 손에 들고 수십 미터 이상 기다리는 진풍경도 있었습니다. 또한 골목어귀에서 담배가게 운영하는 중국아주머니는 혼자서 한글공 부를 하고 있어 깜짝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중국 공무원들도 예외 없이 한국어 공부에 열중하여 한국정부와 교류를 활발히 하고 있으며, 한국방 문을 꿈꾸는 중국인들이 늘어나고 있답니다. 각 도시마다 교민들이 운영하고 있는 ‘한국문화원’ 에서는 무료한국어강좌를 개설하여 중국인들에게 한글을 보급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쉬우며, 자음 14개, 모음 10개의 글자로 세상의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Macdonald의 영어문자는 일본어와 중국어 에서는 원어발음으로 표현을 못하지만 한글은 ‘맥도날드’ 원어발음으로 정확히 표현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문화와 융합이 잘 되어 확장이 넓 은 미래 지향적인 언어이기 때문에 문자가 없는 인도네시아 소수민족에서는 한글을 그 나라 문자로 공 식 채택함은 물론, 세계의 석학들도 이구동성으로 한글의 우수성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곳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은 향후 21세기 한. 중 양국간 국제교류는 물론이고 남북통일시대와 동 아시아 평화에 기여하는 매개인 이자 미래 건설적인 매우 중요한 인적자원입니다. 우리는 역사적인 형 편에 따라 자의든 타의든 이 땅에 이주한 조선인, 즉 한민족 디아스포라(Diaspora)를 주목할 필요가 있 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말과 얼과 문화를 지켜왔으며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특히 자라나는 꿈나 무들은 중국어와 조선어(한글)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알며, 영어와 일본어까지 습득하고 있어 미래의


큰 리더로 우뚝 설 것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도 있습니다. 조선족 인구가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학생수가 적어서 조선족 학교가 사라지고 있는 가슴 아픈 현실에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역사의 여울목에서 만나는 우리 후예들의 마음들을 읽어 보고자 시작한 글짓기공모대회가 벌써 5년이 지나갔습니다. 그 동안 ‘가족사랑’, ‘환경문제’, ‘바른말사용’, ‘나의 꿈 나의 미래’ 등 다양한 주제로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 작은 마음속에 가족에 대한 애틋함과 사랑을 마음껏 표현하는 것은 물론 이고, 내가 살고 있는 지구촌 환경을 걱정하기도 하며, 한글의 우수성을 새삼깨달으며 한글사랑에 심취 할 뿐 아니라, 나의 미래 나의 꿈에 대한 포부도 유감없이 발휘하는 모습을 지켜 보았습니다. 올해부터는 무대를 더 넓혀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민족청소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중국은 물론 일본, 태국, 베트남, 호주, 영국, 뉴질랜드, 브라질 등지에서 우리말을 할 줄 아는 현지인, 교포, 유학생들이 참가하여 그들의 속내를 다 들어 내어 꿈을 나누고 미래를 위해 설계하며 기도하는 지구촌 한민족청소년대잔치이었음을 확신합니다. 글짓기에 참여한 학생들과 뒤에서 애쓰신 교사 선생님들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특히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우리말과 문화를 지키고자 노심초사 노력하시는 각 분야 어르신네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 니다. 우리글은 세계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문자 입니다. 앞으로 이 한글을 유지해 나감은 물론 이며 더 많이 전파하는데 우리 모두가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입니다. 내년에는 더 많은 학생들이 참가하기를 바라며, 끝으로 이 대회를 주관하시고 물심양면으로 힘써 주 시는 (사)모두하나교육회 최정숙회장님과 사회복지법인 백암재단 이원준이사장님께 지면을 통해서나마 진실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014년 9월 5일 심양에서 박 순 엽 드림


축사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 준 구

사회복지법인 백암재단이 주관하는 제5회 지구촌 청소년 한글사랑 글짓기 대회에 참가해주신 224명 의 8개국 해외동포 학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 달 가까이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글을 심사하면서 느낀 점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좋은 작 품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작품들을 보고 또 보면서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리움을 확 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거주국 학생들의 경우 다소 서투른 표현이 있었지만 우리말과 글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구구 절절 담겨있어 가슴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본 글짓기대회의 목적이 글짓기를 통한 한글의 우수성을 확인하고 한민족의 동질성 확보하는 것이었 습니다. 그리고 한민족의 얼을 이어가고 있는 지구촌의 청소년들이 한글로 표현함으로써의 한글의 소중 함을 깨닫고 한글 사랑을 실천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남북통일을 지향하고 각 국가에 흩어져 살고있는 대한민국 청소년들 사고의 다양성을 확인하 고, 교류의 장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1910년 한일합방 이후 1945년 광복을 맞기까지 36년 간 겨레의 말을 글을 쓰지 못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름마저 일본식으로 개명하는 수모와 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독립투사와 애국지사 들이 일제 치하에서도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 우리말과, 우리말 속에 담긴 정신을 굳게 지켜왔습니다. 순 국선열들이 피로써 지켜온 우리말과 문화는 여러분들이 계승 발전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이 작품에서 표현했듯이 요즘 길거리의 간판과 일상생활의 대화중에 살 펴보면 외래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칠 정도로 높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세계화를 향 한 문화의 폭넓은 수용이라지만 무분별하게 쓰여 지는 외래어 습관은 지나치다 할 것입니다. 북방민족인 말갈족 거란족 여진족들이 나라를 이루지 못한 것은 고유의 언어와 문화가 없었기 때문입 니다. 나라와 민족마다 자기 나라의 언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유는 그 언어와 글속에 민족의 정체성 이 녹아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문자이자 언어입니다. 그 래서 우리말과 글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부단한 훈련과 노력을 통해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한 노력으로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을 권합니다. 많이 읽고, 많이 써보며, 많이 생각하는 가운데 여러분의 글솜씨는 늘어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끝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매년 대회를 열어주시는 사회복지법인 백암재단과 (사)모두하나교육회, 경기도교육공동체봉사단에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글짓기대회에 참가한 해외 학생 여러분께도 건승을 기원합니다.

2014년 9월 5일

이 준 구 드림


제 5회 글짓기 대회 수상자 목록 포상명(수량)

거주국 국적 초등

중등

유학생 / 이민자녀 고등

초등

중등

교육부장관상(1) (15년 2월 수상 예정)

홍가영(고2) 선양시 제11고등학교 이정민(고3) 심양시 조선족 제1중학교

서울시장상(6)

김유성(고3) 선양 국제학교

도한정(고3) 심양시 조선족 제1중학교

구예화(초6) 돈화시 제4소학교

이혜림(고3) 하노이 한국국제학교

류국화(고3) 무순시 조선족 제1중학교 한지은(초1) 장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경기도지사상(6)

경북도지사상(6)

고등

박탄주(초5) 정원 한글학교

신예준(초1) 장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로준석(초5) 심양시 혼남신구 조선족학교

문예영(중2) 길림시 조선족 중학교

김홍리(초6) 할빈시 동력 조선족 소학교

김천룡(중2) 할빈시 조선족 제1중학교

선우지원(초4) 심양시 혼남신구 조선족학교

박지연(중2) 오상시 조선족 중학교

홍지민(중2) 선양 한국국제학교 유지선(중2) Singapore International School

신동화(고2) 선양 한국국제학교

렴지혜(고3) 무순시 조선족 제1중학교

김호영(고1) 청도 MTI국제학교(ISQ)

이찬열 국회의원상(6)

서동명(고3) 청도 국기외국어학교

최영준(고1) 길림성 연변 제1중학교

최은주(중3) 장춘시 조선족 중학교 수원시장상(6) 황은정(중3) 영구시 조선족학교

김재은(초등4) St Joachim’s Primary School

이도연(고1) 셔코국제학교 (SIS)

정상윤(고2) 선양 한국국제학교 박고은(중2) 선양 한국국제학교 강소이(중3) Beijing City International School(BCIS)

박도윤(고1) 방콕 한국국제학교(KISB)


포상명(수량)

거주국 국적 초등

중등

유학생 / 이민자녀 고등

초등

중등

고등

김준서(초6) St Matthew's Primary School 한서영(초5) Westbourne Primary School 화성시장상(6)

최홍철(초5) 천교령 조선족학교

림계염(중3) 집안시 조선족학교

장철진(초5) 장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황진(초6) 천교령 조선족학교

연세대 자원봉사센터장상 (10)

김경종(고2) 심양시 제21중학교

조예경(고3) 북경 한국국제학교

박미경(고1) 연변 제1중학교

김승환(고3) 선양 한국국제학교

박건(고3) 심양시 조선족 제1중학교

오현경(13학년) Auckland International College

최미향(고2) 무순시 조선족 제1중학교

이소희(고2) 방콕 한국국제학교(KISB)

손석중(고1) 선양 한국국제학교

정한솔(고3) 선양 한국국제학교 이지우(고1) 동경 한국학교

한양대 총장상(2)

김래효(고2) 방콕 한국국제학교(KISB)

리현미(고1) 길림성 연변 제1중학교 김도연(초4) 하노이 국제학교

동국대 총장상 (10) 윤춘홍(고1) 심양시 조선족 제1중학교

류승이(중1) 선양 국제학교

이가영(고2) 청도 국기외국어학교

장서희(중2) 선양 한국국제학교

정운영(고2) 선양 한국국제학교

조수안(증2) 선양 한국국제학교 조훈희(중2) 선양 한국국제학교

고은비(고1) 동경 한국학교


포상명(수량)

거주국 국적 초등

중등

유학생 / 이민자녀 고등

초등

신영서(중3) Colegio Rumo 김동우(중3) 장춘시 조선족중학교 김선미(중3) 벌리현 조선족중학교 숙명여대 총장상(10)

구애화(초6) 천교령 조선족학교

박이현(초4) 선양 한국국제학교

배효영(중1) 벌리현 조선족중학교 신림향(중3) 영구시 조선족중학교 동우선(중3) 길림시 조선족중학교 변승원(중2) 시드니 한인 천주교 한글학교

박철(초4) 천교령 조선족학교 권혁(초6) 천교령 조선족학교 명옥윤(초6) 서탑 조선족 소학교 박연미(초6) 천교령 조선족학교

단국대 총장상 (10)

변예원(초6) Newington 초등학교 박춘영(초6) 천교령 조선족학교 김한서(초2) St Matthew's Primary School 리춘길(초6) 천교령 조선족학교 이지나(초6) 시드니 천주교 한글학교 김소혜(초등1) 장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김지우(초4) SIS Hanoi

중등

고등


포상명(수량)

거주국 국적 초등

중등

유학생 / 이민자녀 고등

초등

중등

고등

김경운(초1) 장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아주대 총장상(3)

황재우(초5) 장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최지혁(초5) 매하 소학교 최예지(고2) 청도 국기외국어학교

한림대 총장상(2)

곽정현(고3) 하노이 한국국제학교 강지모(초6) 할빈시 동력 조선족 소학교

백석대 총장상 (10)

고휘연(초5) 매하 소학교 김해욱(초5) 매하구시 조선족 실험소학교 김승준(초2) 장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김수연(중2) 영구시 조선족중학교

유정민(고2) 무순시 조선족 제1중학교 이민영(초3) 하노이 한국국제학교

백현인(중3) 교토 국제중학교

최승환(중2) 청도 국기외국어학교

신영림(고1) Colegio Rumo

김유리(고3) 청도 이화한국학교

민준혁(고2) 길림시 조선족중학교 경상북도 청소년수련원 원장상(6)

박미연(중2) 영구시 조선족중학교 김춘란(중3) 길림시 조선족중학교 박혜진(초3) 천교령 조선족학교 함상규(초4) 장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박흠미(초6) 장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한국문구공업 협동조합 이사장상(3)

윤예람(고2) Grace International School

리자룡(고2) 길림시 조선족중학교

백암재단 이사장상(6)

한국문구유통업 협동조합 이사장상 (3)

박보영(고2) 동경 한국학교

리용군(초4) 천교령 조선족학교 전아연(초6) 장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윤려홍(중3) 장춘시 조선족중학교

윤동매(고1) 무순시 조선족 제1중학교

강영은(고2) 방콕 한국국제학교

최효정(초3) 청도 국기외국어학교

윤자현(중3) 천진 한국국제학교 정유진(중2) 청도 국기외국어학교


내가 받은 특별한 선물 우리 말 사랑과 나

<대상> 교육부장관상 선양시 제11고등학교 고등 2학년 홍 가 영

중국 로컬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나는 한국 드라마를 보기 힘들다. 그런 나에 비해 한국 드 라마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중국 친구들을 볼 때마다 한류라는 것이 뉴스에서만 나오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은 쉬는 시간이 되면 나도 잘 모르는 한국 연예인에 대 해서 물어보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난감하고 민망해지기까지 하다. 얼마 전 종영한 별에서 온 그대는 예외 없이 우리학교 우리 반에도 영향을 미쳐서 점심시간이면 별에서 온 그대를 틀어놓고 모여서 비 명을 지르면서 좋아하는 친구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천송이의 치맥 영향으로 코리아 타운의 한국식 치킨 집이 대박이 났다는 소식이나 또 천송이가 라면을 먹는 장면이 방영 되고 나서는 한국 신라면의 매출이 엄청 뛰었다는 소리를 들으며 한국 드라마에 환호하는 친구들을 보면 문화라는 상품의 파급력 이 얼마나 대단한가 이해가 된다. 잊을만하면 뜨는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중국인들에게 한국을 알고 싶게 하는 큰 계기가 된다. 수 년 간 계속되는 이 열기로 인해서 한국인을 만나면 한글을 알려 달라는 사람들을 만나는 건 이젠 중국에 서 아주 흔한 일이 되었다. 우리 학교에는 국제부라고 해서 외국학생들을 따로 관리한다. 우리 학교에는 몇 명의 한국 학생들 이 재학 중이다. 어느 날 국제부를 담당하시는 선생님이 한류 동아리를 만들어 한국어반 특별활동을 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우리들을 불러 중국친구들과 후배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을 권하셨다. 나는 중국에 온지 11년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1학년 1학기만 다녔기에 한국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말하기에는 애매하다. 그러나 중국에 와서 한글학교가 중요하다고 주장하시는 엄마 때문에 십일 년 째 한글학교에 재학 중이다. 십일 년이란 시간 동안 중국 교육을 받은 탓에 지금은 중국어가 더 편하고 익숙한 나에게 중국 친 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라는 선생님의 말씀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왠지 모르게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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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것 같았다. 선생님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자 일이 점점 커져 한류 동아리 회장이라는 직책까지 맡기에 이르렀다. 벌써 작년 겨울 방학 전의 일이다. 한국어를 잘 한다고 자부하고 한인회 주체 사생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도 있는 나이지만 막상 수업 할 때가 되니 내가 괜히 나선 게 아닐까, 못한다고 할 걸 그랬나, 너무 쉽게 생각한 건 아닐까. 등등 걱 정과 후회되는 마음마저 들었다. 언어란, 특히 모국어란 살아가는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워가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환경 속 에서 스며들 듯이 배운 한국어를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친구들에게 가르치려니 수학 공식도 아니 고, 막막하기만 했다. 언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첫 시간에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소개해야겠다고 생각 하고 자료를 정리하면서 세종대왕과 한글에 대해서 내가 몰랐던 많은 부분을 알게 되었다. 유네스코가 세계 문맹 퇴치에 기여한 사람이나 단체에 수여하는 King Sejong Prize (세종대왕상) 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도 너무 놀라웠고, 전 세계에 있는 문자 중에 작정하고 만든 문자, 그것도 임 금이 백성들이 글을 몰라 힘들어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만든 글자는 전 세계에 한글 하나 밖에 없다 는 사실에 감탄하게 됐다. 그런 한글을 가르친다는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세종대왕이 누구인지 보여주려고 온 집을 뒤져 세종대왕이 있는 만 원짜리 지폐를 찾아냈다. 1원부터 100원까지 중국의 모든 돈에 새겨진 모택동 주석 이상으로 한국인들이 존 경하는 훌륭한 임금이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시켜 주고 싶었다. 선착순으로 동아리에 가입한 40명의 중국 친구들 앞에 서서 만 원 짜리를 꺼내 들고 세종대왕과 한 글의 우수성을 설명했더니 아이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집중해서 들었다. 반면에 나는 집에서 엄마랑 며칠을 연습했지만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모음과 자음을 먼저 가르쳐 주고 따라 읽고 발음을 교정하는 시간과 지루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적어간 농담 하나하나 덕에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또한 열심히 들어주고 호응해준 중국 친구들 덕분에 수업은 즐거웠다. 손끝이 파르르 떨렸던 첫 수업이 끝 나고 교단을 내려오는데, 다음번에는 오늘 보다 더 잘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갑자기 마음 에 여유가 생긴 것이다. 일 년 반 동안 기숙사 생활을 할 때 같은 방 친구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하루에 몇 마디 씩 가르쳐 준 것도 도움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수업 중에 중국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이민호 이 름을 칠판에 적었을 때 내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이 다 같이 이민호라고 큰소리로 읽었다. 정확한 발음은 아니지만 중국 친구들이 고마웠다. 나는 이민호라고 쓸 수 있게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 왕이 무척 좋아졌다. 그리고 부족한 내가 한글을 가르쳤다는 자부심과 고마움에 새삼 ‘쎄쎄 세종대왕 할아버지’라고 말하고 싶었다. 세종대왕 덕분에 나는 학교에서 인기 있는 한국어 선생님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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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외국인이라는 것 때문에 조금은 당당하지 못한 나에게 이번 기회는 세종대왕이 나에게 준 특별 한 선물 같았다. 중국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지만 나의 모국어는 한국어이다. 지금 나는 중국어와 한국어 그리고 영 어까지 배우고 있다. 세 가지의 언어를 동시에 배우는 나는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느낀 것이 있다. 한 국어가 다른 언어 보다 더 간단하고 배우기 쉽다는 것이다. 내가 가르치는 40명의 중국 친구들이 벌 써 간단한 단어는 혼자서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수업이 재미없을까 봐 곰 세 마리 를 불러주고 한국 문화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면서 나는 한국인이라는 긍지와 우리말과 글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중국학교에서 외국인으로 학교생활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힘든 사춘기를 보냈 고 중국친구들과 항상 벽을 두고 겉에서만 맴돈다는 느낌이 나의 학교생활이었다. 그러나 이번 기회 를 통해서 중국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처음 느껴보는 뿌듯함과 매번 수업 준비를 할 때 마다 새롭게 알게 되는 우리말은 무엇보다도 나를 설레게 하였다. 이번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내가 한국인임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우리말과 글이 있음을 감사하게 되었다. 한국을 배우고 싶어하는 친구들에게 스물여덟 자인 한글 자모를 익히면 모든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매력이다. 드라마에서 시작됐든 노래에서 시작됐든 한국 대중 문화의 인기는 이제 한국 문화를 배우려는 많은 중국 사람들을 만들어냈다. 글자를 배운 친구들은 노래를 외울 것이고 드라마 를 볼 것이다. 나아가 한국의 문화를 배우게 될 것이다. 처음에 선생님의 제안으로 시작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도 그런 열풍이 만들어 낸 것이다. 한국인이지만 한국의 어떤 점이 우수한 것인지 생각 없이 살아온 내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일은 오 히려 우리 것의 우수함을 가르쳐준 셈이 되었다. 친구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나는 한류 전도사의 가 장 기초 단계를 책임지고 있다는 느낌에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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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사랑

<최우수상> 서울시장상 돈화시 제4소학교 초등 6학년 구 예 화

내가 만약 한마리의 작은 새라면 나는 지금 하늘같은 아버지의 넓은 품에서 자유롭게 날고 싶고 내 가 만약 한마리의 작은 물고기라면 바다같은 아버지의 넓은 품에서 자유로이 헤염치고 싶다. 나의 아버지는 아주 평범한 분이시다. 아버지는 내가 네살때부터 나를 남부럽지 않게 먹이고 입히 기 위하여 한국으로 돈벌러 떠나셨다.그래서 어렸을때는 엄마 아빠랑 같이 다니는 애들을 보기만 하 면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그런데 아버지가 작년에 중국에 오셔서 나랑 일년간 지내게 되였다.내가 이렇게 크도록 처음으로 아버지랑 제일 오래 지내는 나날이였다. 지난 겨울에 있었던 일이다. 바람이 쌩쌩 부는 어느 겨울날, 워낙 신체가 허약하신 아버지께서 갑자기 심한 감기에 걸려 누워계셨다. 천성적으로 덤벙댄다고 소문난 내가 글쎄 학교에 가면서 넥타이랑 숙제책을 집에 두고 온것이였다.학교에 도착하여 숙제책을 바치려고 가방을 뒤지는 순간 나는 텔레 비젼앞에 놓았던 숙제책이 생각났다. 설상가상으로 넥타이까지 매지 않았던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아프건 말건 아무런 고려도 없이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아버지의 전화번호를 눌렀다.전화별이 한참 울려서야 아버지께서 전화를 받으셨다.나는 아버지더러 텔레비죤앞에있는 숙제책이랑 넥타이를 가지 고 당장 학교에 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한 10분쯤 지났을때 정말 아버지께서 슈퍼맨처럼 숙제책이랑 넥타이를 들고 교문앞에 나타난것이였다.나는 아버지를 보자마자 가져온 숙제책과 넥타이를 가로채 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학교대문에 들어서다가 우연히 힘없이 몸을 움크리고 걸어가시는 아 버지의 초라한 뒤모습을 보았다.그 뒤모습을 보는 그 순간 가슴이 찡–했다. 요즘 감기에 걸려 식 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여 걸을 힘도 없으면서도 나의 무리한 그 어떤 요구도 말없이 다 들어주시는 아버지, 그게 바로 부모의 사랑이 아닌가? 나는 하루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많은 생각을 하였다.나는 아직까지 아버지가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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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끼였는데 오늘있었던 일도 그렇고 같이 지내면서 항상 즐겁게 해주셨던 아버지, 그게 바로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아버지의 사랑이 아니였던가? 자식을 위해서라면 평생 돈의 노예가 되는것도 마다하지 않는 부모님의 사랑,나는 줄곧 이렇게 과 분한 사랑을 받고 왔으면서도 그동안 몰랐었는지…. 나는 이제라도 부모님께 효도하고 학습에 노력하 여 훌륭한 인재가 되여 부모님의 사랑에 꼭 보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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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에 대한 잘못된 인식

<최우수상> 서울시장상 심양시 조선족 제1중학교 고등 3학년 리 정 민

조선민족은 예로부터 지혜롭고 깔끔한 민족이다. 중국조선족도 조선민족의 한 부분으로 조선민족 의 혈통과 전통을 이어받았다. 중국조선민족의 력사는 짧지만 중국인과 한국인이 겪은 이중의 시련과 고통으로 가득찼다. 탄압속에서도 꿋꿋이 버티며 살아가는 우리 중국조선족에 대해 적지 않은 한국인 과 중국인들이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언짢은 시선으로 보고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부동한 나라에서 태어나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한국인과 중국의 조선족, 일제침략시기 중국에 이 주하여 뿌리를 내릴수 밖에 없었던 우리 민족은 소위 조선족이라 불리는 ‘한국인’이다. 하지만 점점 줄 어들어가는 조선족인구, 중국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과 한국인의 잘못된 인식으로 지위가 점점 낮아 져 가는 조선족, 이는 우리 민족의 발전을 저애하는 걸림돌로 되고 있다. 전 세계를 강타한 한류열풍으로 인해 현재 조선족은 한국의 드라마를 보고 한국의 노래를 들으며 한국의 스타를 좋아하면서 심지어 한국의 모든것을 ‘숭배’하고 있다싶이 하고있지만 그런 조선족을 아 니꼽게 여기는 한국인들은 조선족에 대하여 너무나도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유명 인터넷사이트들에서마저 조선족을 ‘짱깨’라 부르며 비하하는 문장들이 종종 보이군 한다. 19세기 말에 중국 상인이나 사장이 한국에 대거 들어서면서 ‘짱깨’의 어원을 ‘옛날식 궤짝’을 의미하는 장궤(藏柜), 또는 '가게 주인'을 의미하는 장궤(掌柜)에서 유래한 단어가 현재의 ‘짱깨’에 해당하는 단 어였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대표적으로 중국집 사장을 ‘짱깨’라고 부르다 보니 중국인 전체를 일컫는 말처럼 된것인데 한국에서는 주로 비하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요즘에는 중국의 조선족을 비하하는데 많이 사용되고 있다. 한국 유학을 앞두고 있는 나에게 있어서 이는 너무나도 큰 충격이였고 한국생활에 대한 설레임 보 다는 불안감을 더 크게 한다. (조선족인 나를 언짢은 시선으로 바라 볼 한국인들속에서 과연 나는 실 력을 인정받을수 있을가? 대학생활을 유쾌하고 순리롭게 잘 보낼수 있을가? 교수님들에게 배척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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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중시를 받지 못하는건 아닐가? … 이런저런 압력과 고민으로 나는 가끔 유학을 포기할가 하는 생 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나의 꿈을 위해 마음을 굳게 먹고 편한 마음가짐으로 유학을 택하기로 했다. 조선족이 라는 이유만으로 한국인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우리, 그런 우리를 배척하는 한국인, 우리의 몸 속에서는 같은 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고 다만 국적상의 변화가 있을뿐, 한 민족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 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록 억양상의 변화는 생겼지만 우리의 식탁에 항상 김치가 빠지지 않은 습관 이 아직 그대로 남아있듯, 같은 민족으로서 이런 편견부터 없애고 우리 민족의 ‘흑역사’로 남아 후세 사람들의 인식마저 잘못되어 영향을 받게 하여서는 안된다. 지혜롭고 부지런하며 깔끔한 우리 민족이 앞으로 발전해 나갈 길은 휘황찬란하다. 한국인들이 우리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함께 노력하여 우리 조선민족을 발전해 나가기 위한 우리 자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조선족 청년 백청강은 한국의 모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해 자신의 꿈 을 이루었을 뿐만아니라 조선족이라면 안좋게 보던 일부 한국인들의 시선을 바꿔놓았었다. 뛰어난 노 래실력으로 음악인들의 인정을 받은 백청강, 그야말로 조선족의 자랑이자 조선족 사나이의 ‘위대한 탄생’이 아니겠는가? 백청강은 작년 직장암 투병으로 침채기가 있었다. 꾸준한 치료로 건강을 되찾은 그는 현재 열심히 앨범작업을 하고 있는걸로 알고 있다. 백철강 역시 인기를 얻은 동시에 악플에 시달리면서 힘든 시기를 겪어 왔을것이다. 꿈에 대한 그의 열정과 끈기로 기 죽지 않고 지금 까지 버텨왔고 그의 노력으로 조선족에 대한 한국인들의 편견도 조 금이나마 사라진듯 싶다. 코리안드림을 꿈 꾸고 한국에서 꿈을 향해 도전하고 있는 조선족, 비록 평탄치 못한 힘겨운 길이지 만“잘 먹고 잘 살아 보겠다”는 생각만으로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고생끝에 락이 온다고 언젠가는 조 선족이 한국인들의 편견이 아닌 관심과 인정을 받지 않겠는가? ‘접목’의 아픔을 참고 모지름을 쓰면서 중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중국 조선족, 중국인들도 조선족 에 대하여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것도 마찬가지다. 조선족이 중국의 56개 민족중의 하나라는것을 모르고 있는 중국인들도 있다. 특히 택시를 탈 때 조선족이라면 모두 경험했었을것이다. “한국인인가?” “아닙니다. 중국사람입니다.” “그럼 북조선에서 왔는가?” “아닙니다. 조선족입니다.” “그럼 한국에서 왔는가?” “저는 중국의 조선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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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질문을 들을 때 마다 나는 택시기사가 조선족에 대하여 모르고 있다는것에 한심하고 답답했다. 그리고 조선족에 대하여 정확하게 설명할수없는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조선민족에 대하여 전혀 인 식이 없는 중국인이 있다는것은 조선족이 그만큼 중국에서 중시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것을 설명한다. 하지만 모든 중국인이 모르고 있는것은 아니다. 길거리에 크고 작은 조선족 음식점에는 중국인들 로 북적거리고 있으며 조선족민요가 길거리에 울려퍼지고 있다. 조선족 음식을 먹고 조선족 민요를 들으면서도 조선족에 대한 불평의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례를 들면 대학입시 시험 조선족 10점 추가 정책에 다한 중국인들의 불평이 자주 들렸다. 10점 추가로 인해 조선족학생들의 실력은 쉽게 인 정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역시 대학입시를 준비하면서 피땀을 흘려왔고 그들 못지 않는 노력을 해왔다. 그런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 중국인, 조선족 역시 중국인에 속하여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그러는 걸가? 이렇듯 한 나라에서 살고 있는 중국인들에게 마저도 배척을 당하고 있는 우리 조선족, 중국에서는 소위의 ‘한국인’으로, 한국에서는 ‘배척’상대로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조선족, 수많은 편견을 안고 살아 가는 조선민족이다. 하지만 기 죽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참된 모습에 나는 한번 또 한 번 감동을 받고 민족의 미래에 대하여 희망을 가진다. 빠르게 변화하고 발전하는 세상에서 조선족은 날이 갈수록 쇠퇴해지고 있다. 나는 조선족으로서 이런 슬픈 현실을 타파하도록 힘 써 보겠다. 그래서 나는 나의 최종 리상인 방송프로그램 제작자가 되어 서 조선족을 많은 이들에게 알릴수 있는 그런 멋진 프로그램을 만들어 전 세계인들에게 우리 조선민 족을 알리고 싶다. 편견이 아닌 관심과 사랑으로 바뀌는 그 날까지, 더욱 빛날 우리 민족의 앞날을 위하여, 조선족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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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조각

<최우수상> 서울시장상 조선족 제1중학교 고등 3학년 도 한 정

나의 가치를 퍼즐에 비유해본다. 산산이 흩어진 조각들도 맞추다보면 아름다운 퍼즐이 완성되기 마련이다. 나는 한그루의 나무이다. 비가 내리고 눈이 내려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나무이다. 가끔은 바람에 의해 흔들리지만 끝내 내 자리를 지킨다. 일년 사시장철 온갖 간난신고 다 겪으면서도 사람들에게 조 그마한 행복이나마 주고자하는 한그루의 나무이다. 때론 친구들의 어두운 그림자를 가려주고 가끔은 아이들에게 상쾌한 자연의 향기를 주고 때론 어르신들에게 친구가 되여주는 나무이다. 나는 한송이의 꽃이다. 비록 자연의 꽃처럼 이쁘진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 향기를 주고자 한다. 내가 빛나지 못할지라도 나로 인해 타인이 빛나게 해줄수 있는 그런 꽃이다. 비록 겨울이 오면 잠시 향기를 잃지만 따뜻한 봄이 오면 나 역시 다시 그들의 곁으로 다가간다. 가끔은 자리를 떠나 숨어 버 려도 끝내는 사람들에게 향기를 줄수 있는 한송이의 꽃이다. 나는 흐르는 강물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은 변하고 또 변한다. 하지만 강물만은 묵묵히 자 기의 길을 따라 흐른다. 멀리서 던져오는 돌맹이에도 , 공장으로 부터 흘러나오는 액체에도 아랑곧하 지 않고 자기의 길을 걷는다. 부자들의 멸시하는 눈길에도, 친구들의 불신임에도 나는 내 꿈을 놓치지 않고 항상 달렸다. 그리고 지금도 달리고 있다. 나는 쓰레기통이다. 쓰레기라면 다 좋아하는 쓰레기통이다. 거리를 거닐다 보면 여기저기서 날리는 쓰레기들, 나는 서슴없이 그들을 줏는다. 나는 쓰레기통이기에, 내가 바로 이 지구의 환경 미화사이기 에!… 가끔 나는 친구들의 감정 쓰레기통이 된다. 감정때문에 힘들어하는 애들의 고민을 모두 내 배속 에 집어 넣는다. 그리고 다시는 보이지 않게 소화시켜 버린다. 쓰레기통이기에 나는 항상 배가 불렀다. 나는 열쇠이다. 수없이 많은 문을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내 임무에 충성하고 있는 열쇠이다. 어두웠던 과거, 아팠던 흔적들, 떠올리기 싫은 아픈 추억, 나는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이다.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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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보고 맞지 않으면 다른 열쇠로 다시 열어본다. 그래서 끝내 마음의 문을 열어준다. 나는 열쇠이기 에 많은 사람들의 긍정과 인정속에서 하루하루를 힘차게 보냈다. 나는 따듯한 군만두다. 한번 먹으면 더 먹고싶은, 먹다보면 행복을 느끼게 하는 군만두다. 할머니 를 일찍 여인 터라 할머니의 사랑을 귀하게 여기는 나는 따뜻한 군만두의 길을 선택했다. 젊은층에게 또는 아이들에게 무시당하고 있는, 어르신들에게 나는 웃음으로 그들의 마음에 따뜻함을 줬다. 때론 자리를 양보하고 때론 안타까운 마음에 기도도 해보고 때론 동무도 되여줘보고… 나는 따뜻한 군만두 였다. 솥에서 금방 꺼낸 군만두라 더 달콤했나본다. 나는 동그란 손수건이다. 지금도 한국에서 일하고 계시는 아버지 흘리는 땀 생각하면 마음이 알큰 하다. 그래서 나는 손수건이 되기로 했다. 지치고 힘들 땐 조금이나마 의지가 될수 있고, 속상하고 안 타까울 땐 위로가 될수 있는 손수건이 되도록 한다. 마음에서 흐르는 눈물 닦아주고 아파서 흘리는 피 막아주며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 희망이 되여주는 나는 손수건이다. 나는 시계이다. 앞으로 한발한발씩 내디딛는, 단 한순간도 멈춘적이 없는 시계바늘이다. 청춘의 피 가 들끓는 나이 18세, 나는 꿈이 있다. 웅장하면서도 버거운 꿈–나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 다. 같은 21세기에 살면서 전혀 다른 생활을 보내고 있는 그들, 돈이 없어서 밥을 먹지 못하고, 물이 없어 독이 든 물을 마시고 집이 없어서 아무데서나 자고 있는 그들, 나는 그들을 도와주고 싶다. 비록 나의 힘은 미약하지만 시계바늘처럼 나의 꿈을 위해 계속 달려왔다. 끝까지 달리다보면 언젠가는 목 적지에 도달할수 있다고 믿기에, 나는 시계바늘이기에 좀처럼 포기라는걸 모르기에, 나는 언제나 열 정적이였다. 버겁고 힘들지라도 꿈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시계바늘처럼 달리고 또 달린다. 조심스레 8개의 퍼즐을 맞춰본다. 산산이 부셔졌던 조각들을 다시 붙여본다. 완성된 퍼즐을 가지 고 거리에 나선다. 거리는 여느때와 같이 시끄럽고 복잡했으나 사람들의 얼굴은 환해보였다. 하늘을 바라보노라니 달빛이 우리를 환하게 비추고 있다.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는 우리를 묵묵히 응원하고 있는것만 같다. 나는 단지 지구에서 생존하는 지극히 작은 생물이다. 하지만 나는 가장 아름다운 퍼즐이다. 그리 고 지금도 퍼즐을 맞추고 있다. 더 아름다운 그림이 완성되기 위해, 단지 조각만으로도 화려한 퍼즐 을 맞출수있다고 확신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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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남기고 싶은것

<최우수상> 서울시장상 무순시 조선족 제1중학교 고등 3학년 류 국 화

지저귀듯 속삭이는 새소리에 귀 기울여보고 아침이슬 함뿍 머금은 싱싱한 풀 한포기에 눈여겨보며 싱그러운 풀내음과 청신한 공기도 잔뜩 들여마셔 보고 봄향기 가득 싣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 의 부드러운 촉감에 젖어있노라면 달콤한 분위기속 나의 기억은 어느새 아침이슬같이 반짝이는 아름 다운 추억속 그곳에 머문다. 두고두고 간직해 자꾸만 들여다보고 싶은 아련한 추억 흐려진 기억속 그곳엔 내가 무지무지 사랑 하는 아빠와 엄마가 있고 그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함뿍 먹고 자란 내가 있다. 기억이 머무는 그곳엔 바람이 흩날리는 민들레꽃과 함께 앞마당 고추밭 뒤마당 복숭아나무 살구 나무와 친구가 되어 정다운 화폭속 아빠와 나는 술래잡기를 하고 있고 옆에서 엄마는 행복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흐뭇한 표정으로 그런 우리 모습을 자랑스레 바라본다. 일상의 반찬임에도 뛰여난 엄마의 요리솜씨에 탄복하며 세가족이 화목하게 빙 둘러앉아 맛있게 먹던 식사, 주말엔 어김없이 아빠와 함 께 하던 자전거 나들이… 하나 둘씩 흐릿해졌던 기억이 또렷이 되살아나며 한겨울 내내 꽁꽁 얼었던 내 추억과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은 항상 사람들에게 린색한가보다. 그토록 아름다웠던 내 동년시절 역시 어느날 갑자기 홀연히 떠난 아빠와 함께 가뭇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날 저녁, 달빛이 비스듬히 비추어드는 창가에 기대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던 엄마의 모습이 자꾸 눈앞에 알른거린다. 진정 그래야만 했을가, 엄마와 나를 두고 홀로 이국땅에 발을 붙여야만 했을가, 굳이 그래야만 했을가. 아무리 더 나은 집안 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해 돈벌이하러 가셨다지만 단지 엄마와 나를 두고 발길을 옮겼다는게 어린 나 에게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몸이 약한 엄마가 버거운 짊을 지고 혼자서 모든것을 감 당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하고 미약한 나의 힘으로선 엄마에게 큰 도움을 드릴수 없다는 현 실이 속상하기만 했다. 그리고 분명 자주 연락할것이라는 약속도 받았건만 한국으로 떠난 근 3년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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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감감무소식이였다. 오매에도 그리던 아빠의 모습, 바라던 아빠의 목소리, 헤매던 아빠의 그림 자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힘들고 고달픈 생활에도 이 악물고 악착같이 버티는 엄마의 몸 은 나날이 여위여만 가고 한 가정의 기둥이 되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할 아빠는 생활비를 보내주 긴커녕 연락조차 닿지 않으니 내가 항상 꿈꿔오고 바래오던 생기로 가득차넘치는 그림속은 온통 회백 색으로 깔려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뜻밖에도 아빠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 딸…그동안 잘 지냈어? 많이 힘들었지? 아빠가 그동안 사정이 있어서 연락하지 못해서…아 빠가… 많이 미한해… 》 바들바들 떨리는 전화기속으로 들려오는 나즈막한 아빠의 목소리, 꿈결에서 자꾸만 맴돌아치던 아 빠의 목소리와는 달리 멈춰버린듯한 시간, 흐르는 적막감속 똑똑히 들려오는 아빠의 목소리에는 내가 이루어 다 알수없는듯한 복잡한 기운이 력력했다. 내가 그렇게도 바라던 아빠의 기척이 지금 내귀가 에 생생히 울리고 있건만 그동안 쌓아왔던 아빠에 대한 원망과 울분이 한순간에 확 쏟아져나오는 바 람에 목이 메어 목구멍까지 새여나왔던 말을 그만 삼켜버리고 말았다. 《국화야, 사랑하는 우리 딸 ,아빠 말 듣고 있지? 비록 지금은 많이 힘들겠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꼭 좋은 대학에 가야한다… 그래야 니가 원하는 행복한 삶을 살수가 있어. 우리 모두가 바라는 행 복한 삶. 지금 우리가 떨어져 지내고 있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우린 한가족이야, 알지? 힘내! 우 리 딸, 화이팅!》 의미심장한 아빠의 말을 듣고 불현듯 난 모든걸 깨달았다. 우린 결국 하나였다는것을, 한마음 한 뜻이였다는것을, 모두가 더 나은 미래, 한층 더 새로운 희망찬 앞날을 그리며 달려가고 있다는것을. 한때는 엄마와 나만 남겨둔채 한국으로 돈벌이를 가야했던 아빠가 미웠고 한때는 생활비는 넉넉히 보내주기는커녕 어떻게 지내는지 잘 지내고는 있는지 연락조차 하지않던 아빠가 미웠고 한때는 같은 조선민족이면서도 꼭 저멀리 동떨어져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곳을 망연하게 바라볼수밖에 없다 는점에 대해 의아해하고 원망스럽고 얄밉기만 했었다. 참으로 까마득한 기다림, 아득한 웨침이였다. 나로선 잠시라도 아빠곁에 떨어져있어야만 하는것도 무척 견디기 힘든 일이였는데 력사상 수천수만 에 달하는 하나 또 하나의 리산가족들이 근 반평생 지어는 한평생을 동떨어진 먼곳에서 멀거니 바라 보고 있어야 했으니… 정처없이 떠돌아 다녀야 했던 불안감도 절해고도의 외로움도 산전수전을 겪어 야 했던 쓰라림도 이보다 더 가슴아픈 일이였겠으랴! 뿌직뿌직 찢기는 가슴을 쥐여 뜯으며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깨물어 먹으며 사랑하는 가족과 오손도손 지내기는커녕 빛바랜 그림자조차 볼수 없었 으니 그 마음 어찌 다 헤아릴수 있으랴! 그 심정 어찌 다 절절히 느낄수 있으랴! 하지만 대한민국에 발을 붙이고 아글타글 노력하는 일도, 접목의 아픔을 참고 중국땅에서 모지름 을 쓰면서 뿌리를 내리던 일도, 세종대왕의 최대걸작 훈민정음를 사용하고 있는 우리는 아픔과 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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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이 뒤섞인 과거가 아닌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더 나은 래일을 위해 행복한 삶 아름다운 미 래를 위해 현재 부단히 추구하고 있는 우리는 하나의 조선민족, 하나의 공동체이다. 무릇 한가족이라 면 길고도 험난한 인생길에서 지칠땐 조용한 쉼터가 되어주고 힘들땐 버팀목이 되어주고 상대방의 자 그마한 실수에 너그럽게 용서하며 탄탄대로가 아닌 비탈길도 함께 걸어가 오래오래 곁에 있어줘야 하 는것처럼, 지나간 아픈 력사로 지금 조금은 다른 형식으로 갖추어진 형제들을 쌀쌀하고 랭랭한 눈초 리로 쏘아볼것이 아닌 드넓은 흉금과 평온한 마음가짐으로, 따뜻한 눈길로 바라 보았으면 하는 작은 기대를 해본다. 결코 같은 땅우에 발을 딛고 있지는 않아도 한곳을 바라보는 우리는 모두 한마음 한뜻 이기에. 조선민족 선조들의 빛나는 지혜와 걸출한 능력,드팀없는 의지, 고상한 품격 그리고 그들이 바라는것, 지키고자하는 우리 민족 우리 겨레의 얼을 우리 후예들이 이어받아 거대한 빛이 세상에 찬 란히 빛날것에 이바지해야 할것이 아닌가? 아스라히 멀어진 추억속 그곳, 고스란히 남겨진 기억속 그곳엔 도고한 자태, 우아한 모습, 은은한 향기로, 담담함과 소박함을 지녔음에도 고결함과 고상함이 완연히 묻어나는 령혼이, 순수한 령혼속 지고지상의 미덕, 아름다운 사랑이 깃들어있다. 그리고 빠른 템포로 변화에 변화을 거듭하는 요즘, 세 상에 한마음 한뜻으로 단단히 묶인 끈끈한 혈육의 정, 민들레꽃의 순결하고 어여쁜 마음만은 변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오래도록 고이 간직하고픈 순결한 사랑 어여쁜 마음만은 영원히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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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열쇠

<최우수상> 서울시장상 선양 국제학교 고등 3학년 김 유 성

지난 28일,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 독일의 상징적 도시인 드레스덴에서 대북 3대 제안을 발표한 바 있다. 요약하자면 첫째, 남북 주민의 인도적 문제 해결. 둘째, 남북 공동 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 축. 셋째, 남북 주민 간의 동질성 회복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 연설의 핵심은 바로 세 번째 방안에 있는 듯하다. 상처받은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것과 복합농촌단지를 구성하는 것도 좋지만, 진정한 통일 을 위해서라면 남북한 국민들의 인식을 먼저 바꾸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통일이란 무엇인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분단된 국가에서 자랐기 때문에 나는 줄곧 북한은 다른 나 라라고 여겨왔다. 한국에서 중학교를 다니며 한국 근현대사를 배울 때도 분단이라는 현실을 인지하기 만 하였지 그 문제에 대하여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도대체 왜 잘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수많은 세금 과 외교적 노력을 쏟아 부어 변화를 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통일의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통일은 변화가 아니라 분단이란 과거의 실수 를 되돌리려는 노력이어야 한다. 질문은 ‘왜 통일하여야 하는가’가 아니라 ‘왜 분단이 되었는가’가 되 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한국을 왔다 갔다 하며 중국에 몇 년씩 거주한 것이 올해로 9년 째이다. 한 번씩 올 때 마다 중국 문화와 습관을 나도 모르게 배워가고 있다. 중국인들은 다른 사람의 관계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칭찬이나 좋았던 점을 얘기할 때도 스스럼이 없다. 그들 의 그런 점이 습관이 되지 않은 우리에게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런 솔직한 의사소통이 관 계를 더욱 윤택하고 오랫동안 지속되게 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그런 사소한 교감이 국제적 문제를 푸는 단순한 해결의 열쇠를 제공할 수도 있다. 중국인들 이 보여주는 문화적인 관점에서 보면 민감하게 대립하고 있는 남북 두 나라의 문제도 솔직한 대화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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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으로 시작하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의사표현 방식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우호 적인 대한민국이 계속 북한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면 언젠가는 응답을 해주지 않을까? 물론 미사일이 나 해킹을 통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곳 심양에서의 경험은 남북관계가 민감한 시기와 겹쳐 대한민국의 국세를 더욱 객관적으로 평가 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통일부라는 부서를 따로 만들며 수십년간 진행해온 통일을 향한 대한민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분 단 이후 세대들의 의식은 여전히 북한 사람들에 대해서 적대적이다. 이곳 심양은 동북3성의 중심지로서 한국과 북한사람들의 접촉이 가능한 지역이다. 길에서도 북한 식당, 북한 옷가게 등을 만나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낯선 중국인들 사이에서 같은 문화, 같은 언어 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길에서 만나기라도 하면 반갑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겉으로 표현하 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북한 사람을 만나면 휴전 중인 적국 사람이라 생각되면서 나도 모르게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외국인보다 더 멀리 대하기도 한다. 통일을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서로에게 갖는 적대감을 버리는 것이다. 독일과 다르게 우리 는 1945년에 열강들에 의해 나라가 분단된 어언 70 년이 다 되어간다. 세대가 변하면서 생존해 있는 이산가족 수가 줄고, 점점 한겨레, 한 뿌리라는 의식이 사라지고 있다. 경제적 가치 창출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통일은 어쩌면 민족이 하나 되는 생 각보다 통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더 우려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도덕과 민족사상을 배제하고 세속 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하나의 경제적 거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도 처음엔 천안함 사태 등 막대한 인명 피해를 끼치는 공격적인 대응에 북한은 피해야 될 대상이 라고만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독재자 하나 때문에 그곳에 살고 있는 이천오백만 명의 동포를 외면해 서는 안 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사이버 단체인 반크(VANK, 외국인들과 한인 동포들에게 올바른 한국의 이미지를 홍보하는 사이버 외교사절단) 활동을 하면서 한국의 외교사절단 으로서 세계의 여러 나라 사람에게 해야 할 가장 필요한 노력이 무엇일까 생각했었다. 분단된 나라에 사는 우리들이 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세계 사람들의 대북 인식을 바로 잡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사상을 공부하면서 70 년의 세월이 빚은 문화차이를 느꼈고, 새삼 나라의 미래인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작년 2월, 영사관에서 어린 북한 여자 아이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만남으로 나는 지금까지 가졌던 북한 사람들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었다. 그 아이는 탈북자 신분으로 한국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기초영어를 가르치는 봉사를 하면서 만난 그 아이가 여느 대한민국의 어린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장난으로 북한식 한국말을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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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나와, 한국 갈 준비를 하며 익힌 표준어를 쓰는 북한 아이와의 짧은 만남에서 둘 사이의 거리는 좁 혀졌다. 또한 남북 문화의 공통분모가 늘어나고 있었음을 느꼈다. 담백한 한식보다는 기름진 피자와 치킨을 더 좋아했고 딱딱한 북한식 사상에 세뇌된 아이가 아니 라 창의적이고 나이에 걸맞게 귀여움까지 갖춘 딱 5살 유치원생 그 자체인 아이를 만나면서 나는 북 한 사람에게 갖고 있던 선입견이 사라짐을 느꼈다. 아마 그 아이도 처음 만난 한국인 언니를 만나면 서 한국이 먼 나라가 아님을 느꼈을 것이다. 지금은 볼 수도 만날 수도 없는 아이와의 만남에서 나는 우리가 통일을 해야 하는 당위성을 깨달았다. 통일은 서로의 체제의 우월성을 가리는 게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경제 발전 하나를 위해 통 과해야 하는 거래가 되어서도 안 된다. 통일은 나와 비슷한 얼굴 생김새를 가진, 비슷한 음식을 먹으 며 기쁨을 느낄 줄 아는, 같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흥겨움을 나누는 내 핏줄이 살고 있음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하는 모든 것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좀 더 자주 만나야 한다. 그러 다 보면 휴전의 철조망이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걷어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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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피어난 한글 사랑

<최우수상> 서울시장상 하노이 한국국제학교 고등 3학년 이 혜 림

약 500년 전 영어는 영국에서만 사용되는, 아니 사실 영국에서조차 제대로 사용되지 않던 말이었 다. 전 시대에 영국을 지배했던 나라는 프랑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에는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 가 더 많이 쓰였다. 하지만 1564년 셰익스피어가 태어난다. 그는 잘 사용되지 않는 그의 모국어인 ‘영 어’로 희곡들을 썼다. 그의 작품들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가 쓴 풍부한 어휘와 아름다운 문장들은 사람들 사이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그렇게 영어는 엄청난 발전을 거쳐 지금의 영어로 되게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문학이 있기에 한 나라의 언어가 발전한 것처럼, 한 나라의 문학 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그 나라의 언어도 발전하게 된다. 이처럼 문학은 언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셰익스피어로 영어가 발전한 것처럼 나를 ‘문학’이라는 세계에 대해서 발전하게 만든 분이 있다. 그 분의 시는 나를 감동하게 했다. 그 시를 통해 나는 국문학사랑, 국어사랑, 나라 사랑을 하게 되었다. 국어문학에 전혀 관심이 없는 내가 어떻게 국문학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 베트남 땅 에서 국어를 사랑하게 되었는지를 나누고 싶다. 나는 4살 때 부모님을 따라 베트남 하노이에 왔다. 나는 3학년을 한국에서 보내기 전까지는 진짜 ‘우리나라’에 대해서 혼동이 많았다. 베트남의 시뻘건 국기를 보고 태극기라 부를 정도였으니 말이다. ‘우리나라’에 대한 개념은 섰지만, 뭐, 딱히 특별히 내 안에서 애국심이 불타오른 다거나 하는 것은 없 었다. 그냥 프랑스 학교에서 한국학교로 학교를 바꾸었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고등학 생이 되어있었다. 딱히 명확한 꿈은 없었지만, 왠지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모든 과 목을 열심히 했다. 다 그럭저럭 공부할 만했다. 근데 공부의 목적이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과목이 있었다. 바로 ‘문 학’이었다. 나는 꼬불거리는 듯한 이상한 글씨로 된 괴상한 시와 글들을 읽고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국어 문법을 배우는 것은 국어를 배우기 때문에 공부의 목적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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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특히 이해가 안 됐다. 현대문학은 쓸데없이 배배 꼬아서 읽는 이를 헷갈리게 하고 고전문학은 이게 한국언지 중국언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정말 최악이었다. 나는 정말 이렇게 국어와 영영 헤어 져 버리는 줄 알았다. 어느 날, 문학 시간에 나는 한 작품을 배우게 된다. 바로 정철의 ‘관동별곡’이다. 사실 처음 딱 봤을 때 엄청나게 큰 비호감을 느꼈다. 한자가 너무 많고 강혼(자연)지 죽림(대숲)인지 읽어도 도통 이해가 안 됐다. 그래도 ‘난 학생이니까’라며 인내하고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관동별곡은 조선 시대의 기 행문이었다. 그런 여행을 하면서 쓴 작품은 처음으로 접해보는 것이어서 나름 흥미를 느끼며 배웠다. 나는 관동별곡을 배우면서 ‘아 사람이 이렇게 아부를 잘할 수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철은 정말 대단했다. 무엇을 하든지 “전하, 전하, 전하”이러고는 아부를 하는 것이었다. 나라면 그 아름다 운 금강산을 보며 무념무상 경치를 즐겼을 텐데 정철은 시도 때도 없이 입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자 신을 스스로 신선이었다면서 엄청나게 자화자찬하고 임금을 찬양하는 것과 그리워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이 분이 굉장히 재미있었다. 집에 와서도 관동별곡을 읽으며 실실 웃기도 했다. ‘아니 어 떻게 그걸 보고 그런 생각을 하지?’ 하며 그 표현력과 상상력에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관동별곡을 계속 읽고 또 읽다 보니 어느새 그 표현들이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노트를 만들며 관동별곡으로 재미있는 퀴즈도 만들고 만화도 그리고 비슷하게 표현을 따라 하기도 했 었다. 나는 그의 시에 완전히 반한 것이다. 내 마음대로 색다르게 해석도 해보고 친구와 다른 관점에 서 재미있게 해석도 해봤다. 그렇게 나는 ‘시’에 빠졌다. 나는 관동별곡을 감명 깊게 배운 뒤, 다른 작품들 또한 그들만의 아름다운 표현 기법이 보기 시작 했다. 새로운 시를 배울 때마다. 교과서 옆에 있는 딱딱 정해져 있는, 하품이 저절로 나오는 해설을 일 절 보지 않았다. 내가 그 시인의 마음을 직접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정말 말로 이루 말할 수 없이 재미있었다. 이렇게 나는 관동별곡을 통해 ‘국문학’에 빠지게 된다. 어느 날 학교에서 하는, 외국 학교에 다녀서 한국을 잘 모르는 아이들이 다니는 주말 학교에 보조 교사 봉사활동을 듣게 되었다. 나는 굉장히 솔깃하고 가슴이 뛰었다. 왜냐하면, 나는 베트남어와 영어 구사가 가능해서 한국어를 모르더라도 한글에 대해서 알려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거 기에서 2, 3, 7학년 아이들을 만났다. 몇몇 아이들은 한국어가 능숙했지만, 어떤 아이들은 영어나 베 트남어에 훨씬 능숙했다. 나는 언어소통에 전혀 불편함 없이 아이들과 친해지면서 한국어를 자연스럽 게 습득하게 수업을 따라가도록 도와주었고 숙제를 봐주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왜냐하면, 이 봉사활동을 통해 내 장래에 대한 것이 좀 더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이 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 나는 ‘교육’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렇게 관심이 급증하고 있는데 엄 마를 통해 알게 된 중국어 학과에 다니는 베트남 언니가 한국어에 대한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번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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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와 종종 만나서 놀곤 했는데 언니가 나에게 계속 한국어에 대한 여러 질문을 했다. 언니는 한국어 를 독학했기 때문에 나의 도움이 많이 필요했다. 언니가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려고 하는 이유는 뻔했 다. 바로 한국 드라마 때문이었다. 번 언니가 한국어에 관심이 있기 전에, 우리나라 배우인 이민호와 박민영이 나오는 ‘시티헌터’에 한창 빠져있었다. 하긴, 베트남에서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국 가요들 이 들려오고 텔레비전을 보려고 틀면 더빙을 해서 베트남어를 하는 한국사람들을 자주 보기는 했다. 그래도 이렇게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배우는 사람이 신기했다. 한국어에 관심을 가지고 나에게 엄청난 질문을 한 베트남 사람은 또 있다. 바로 버스 기사 아저씨다. 썬 아저씨는 우리 학교 기사님들 중에서 제일 좋으신 분이다. 내가 학교에서 방과 후 공부가 끝나 고 하교를 할 때마다 아저씨를 뵀다. 아저씨는 나에게 어색한 한국어로 인사를 하고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한국어를 물어보셨다. 아저씨의 한국어에 대한 열정은 엄청났다. 종종 나에게 너무 늦게 공 부를 해서 암기가 어렵다면서 후회가 된다셨지만, 나는 그렇게 노력하는 아저씨의 모습이 너무 멋지 고 감사했다. 사실 베트남은 내가 4살 때부터 산, 나의 두 번째 고향이다. 나는 정말 베트남 사람들을 사랑한다. 그들은 내 친구이자 오랫동안 정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근데 이런 사람들이 한국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질문을 하니까 내가 한국어를 쓰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굉장히 기쁘고 내속에서 뭔 가가 끓어올라왔다. 이렇게 정철의 관동별곡을 통해 문학에 빠지게 되고, 국어에 사랑을 느끼다가 주말 학교 봉사활동 을 하면서 교육에 대한 흥미를 같게 되고, 내 주변에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베트남 사람들 때문에 나 에게 한국어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다. 그리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나는 정말 아름다운 한국어가 자랑스럽고 내 모국인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 하지만 요즘 한국어 를 보면 우리의 고유한 언어들 사용하기보다는 지나치게 외래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자주 본다. 물 론 지금 시대가 국제화 시대이기 때문에 영어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영어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지켜 야 하는 것은, 우리나라 말인 ‘한글’이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국어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들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등잔 밑이 어둡듯, 잠시 숨을 돌리고 우리나라에 있는, 우리나라 말에 있는, 우리의 아름다움을 찾고 갈고 닦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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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최우수상> 경기도지사상 장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초등1학년 한 지 은

나는 남경에서 태여난 중국 조선족 아이입니다. 비록 남경이란 도시는 조선족이 밀집된 도시는 아 니지만 저는 엄마 배속에서부터 태교를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아빠는 우리 민족의 말과 글을 더 잘 배울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하여 장춘에 보내였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아빠와 떨어 져 장춘에 있는 외가집에 와서 조선족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고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민족의 음악, 우리말을 듣고 배우면서 항상 우리전통문화를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엄마가 그러시는데 설날은 묵은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는 중요한 명절이며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 합니다. 엄마는 내가 더 한층 우리 민족 전통명절에 대해 알게 하기 위하여 2014년 설을 전통적으로 쇠였습니다. 우리집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그리고 여동생이 함께 살고있는 행복한 가정입니다. 그리 고 많은 친척들도 한 도시에서 함께 살고있는 대가정입니다. 설날 아침에는 모두들 함께 전통복장을 차려입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자주색, 할머니는 분홍색, 엄마는 빨간색, 아빠는 파란색, 나와 동생은 노란색…울긋불긋한 우리 한복은 너무 아름다왔습니다. 어디 가도 모든 사람들의 부러운 눈길을 이 끌었습니다. 다음 차례는 어른들께 곱슬히 절을 올리면서 새해인사를 드렸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공부 잘 하고 건강하게 잘 커라고 빨간 봉투를 주시는데 봉투에는 두툼한 새배돈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새배 돈으로 책도 사고 새옷도 살수 있어 너무 신났습니다. 그리고 모두 함께 할머니와 엄마가 성심껏 준비 하신 설날음식을 먹었습니다. 설날 음식에는 볶음, 무침, 전, 국…등으로 풍성하게 차려지는데 나는 많고많은 음식 중에 쫀득쫀득한 떡국이 제일 맛있었습니다. 냠냠하고 밋있게 먹는 모습에 동생도 따 라서 잘 먹었습니다. 음식을 먹으면서 어른들은 노래하고 춤을 추시면서 온 집안이 노래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쿵짜짜 쿵짜짜하는 장단이 너무 흥겨워 우리들도 저도 모르게 어깨춤이 절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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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설날에 윷놀이를 빼서는 안됩니다. 어른들은 윷판에 주사위를 던지면서 “슝아~ 몽아~” 하 고 웨치고 나서 한발작, 두발작, 세발작, 네발작씩 이동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리둥절하게 구경하고 있지만 어른들께서는 허허허, 하하하, 하시면서 재미있게 게임을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자정이 가까워지면 엄마는 물만두를 삶아주었습니다. 물만두는 설날때 꼭 먹어줘야 하는 음식으로서 새해에 뜻한 바와 같이 모든 일이 잘되기를 바라는 뜻을 상징합니다. 설날에 먹는 물만두 는 우리 식구들이 미리 직접 만들어놓은것이랍니다. 물만두를 만들때 만두속에 매운 고추, 동전을 넣 는 만두를 한두개 정도 만듭니다. 그것을 먹을수 있는 사람에게는 활기찬 한해를 지낼수 있다는 축복 입니다. 누군가 매운 고추속을 먹고 “호호호~~”하는 모습이 생각만 해도 너무 웃겼습니다. 물만두를 먹기 바쁘게 드디여 신나는 불꽃놀이 시간이 되였습니다. 우리는 아빠와 삼촌께 “어서 불 꽃놀이 가요.”하고 간절히 부탁하였습니다. 아빠와 삼촌은 우리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불꽃놀이를 해 주셨습니다. 가지각색의 불꽃들이 반짝반짝 하늘높이 솟아오르면서 행복한 설날을 알리는 꽃으로 송 이송이 활짝 피였습니다. 나는 불꽃을 보며 우리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였습니다. 나는 장춘시록원구조선족학교에 다니면서 우리 민족전통문화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였고 자기만 의 전통문화와 문자를 가진 민족중의 하나인 조선족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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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 -교육부 부장

<최우수상> 경기도지사상 장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초등 1학년 신 예 준

오늘 숙제를 일찍이 다 마친 나는 기대가 부푼 마음으로 옆집 형아네 집문을 두드렸어요. “형, 나랑 놀아줄래?” 형은 한숨을 내쉬면서 “예준아, 요즘 숙제가 엄청 많아, 그리고 오늘 애들이 성적이 낮아 졌다는 이유로 선생님은 또 벌칙까지 내셨단다. 틀린 부분을 100번씩 쓰라구 했어. 오늘 밤을 새워도 다 할수 있을지?…” 여기까지 말하는 형아의 두 눈에는 어느새 안타까움의 눈물이 맺혀 있었어요. “100번이나?…” 전 억이 막혀 두눈이 휘둥그래졌어요. 100번이면? 전 두손 다 펴봤어요. 두 손 다 펴봐야 10번, 그러면… 아쉬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나는 웬지 형아의 기분에 영향을 받았는지 기분이 이미 다운되여있었 어요. 맥없이 침대에 누워서 깊은 생각에 잠겼어요. 생각할수록 형이 참 불쌍하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형은 실험소학교 5학년생, 장춘시에서 제일 좋은 실험소학교에 다녀요. 근데 형은 학교에서 많이 힘들어 하지요. 성적이 낮은 이유로 선생님들에게 미움을 받고 친구들에게 왕따당하고요, 지난해에 는 이상한 병까지 걸려서 북경에 있는 큰 병원까지 다녀왔어요. 어떤 이상한 병이냐구요? 아침 학교 갈려고 그러면 간질을 일으키면서 입에서 흰 거품을 물고 쓰러져요. 또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는데 한방울 한방울씩 나온대요. 그래서 형아는 일년 휴학하여 올해 5학년인거예요. 저의 엄마가 형아네 엄마랑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형아가 학교에서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 그러니 집에서 더는 형아한테 공부얘기 하지말고 많이 안아주면서 학교에서 재미있게 놀게 하라구요. 근데 참 이상하죠? 저의 엄마의 몇마디 권고가 형아의 병을 고쳤어요. 북경 큰 병원에서도 고치지 못한 이 상한 그 병이 어느새 형아의 몸에서 사라져 버렸어요. 좋은 일은 오래 못간다고 형아의 병이 나으니 선생님과 부모님들의 기대도 따라서 높아졌어요. 또 다시 형아의 얼굴에는 그늘이 비꼈고 웃음대신 한숨으로 가득찼어요. 형아에 비해서 전 행운아죠. 전 조선족이여서 조선족소학교에 다녀요. 저희 학교는 참 좋아요. 점심시간 한시간반 운동장에서 실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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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여 놀고 체육시간에는 재미있는 유희도 해요. 그리고 저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매주 월요일에 학교에서 조직하는 미술흥취반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려요. 음악시간에는 흥겨운 우리말 노래도 부르 고요. 형아 말로는 형아 학교에 비록 체육시간 음악시간이 시간표에 적혀 있긴 하지만 다 형식이래요. 음악, 체육시간만 되면 어문선생님과 수학선생님의 다툼이 일어난대요. 서로 자기 수업을 할려고요.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갈때 아빠와 엄마의 의견 다툼이 많았다고 그래요. 엄마는 제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바라는 마음으로 한족(중국인)학교에 보내야 된다고 주장했고요, 아빠는 반면에 조선족으 로서 민족언어를 잊으면 안된다고 해서 조선족학교에 보내자고 주장했대요. 전 장춘에서 태여나서 한 족유치원을 다녀서 조선말을 잘 못해요. 그래서 아빠마음이 더 급했나봐요. 결국은 아빠가 이기셨어 요. 왜냐하면 한번은 아빠가 큰 회의에 참가했대요. 거기에서 각 나라에서 사는 조선족을 많이 만났 었는데 다들 조선말을 할줄 모르더래요. 근데 유독 중국에서 사는 조선족들은 3~4대째 중국에 사셨 는데 그 언어와 민속습관을 잊지 않고 유지해왔더래요. 그래서 아빠는 중국에서 사시는 우리 선조들 이 민족교육을 잘 진행한 결과라고 생각하셨고 우리 아름다운 민족언어를 다음 세대에도 잘 이어나 가야겠다고 결심했대요. 그리고 중국에서 유독 조선족만이 문화수준이 한족을 초과했대요. 아빠의 열변에 결국 엄마도 두손을 들었대요. 그래서 아빠가 이김으로 하여 전 장춘시 록원구조선족소학교 에 입학을 하게 되였어요. 전 학교가는것이 너무 좋았어요. 웃 학년 형아들과 학교 운동장에서 실컷 뛰여 놀수 있었어요. 근 데 미안하지만 제가 학교에 들어가서 첫 한달 동안 청바지 4개나 빵꾸내였어요. ㅎㅎ 엄마한테 참 미 안했죠. 거기에 비하면 형아는 참 불쌍해요. 근데 형아뿐만 아닌 제 주위에 있는 한족(중국인)친구들 은 다 형아처럼 공부에 시달려서 힘들어해요. 제 유치원 짝궁인 친구도 한족학교에 입학한후 애가 딴 사람으로 변해버렸어요. 친구 아빠, 엄마는 많은 돈을 들여서 친구를 동북사대부속소학교에 입학시 켰어요. 친구말로는 학교들가는데 쓴돈으로 집 한채를 살수 있대요. 전 뭔말인지 잘 모르겠지만요. 근데 친구는 매일 숙제만 밤11시까지 하는게 일쑤구요. 주말이 되면 쉴시간도 없이 영어과외반에 다녀야 하고 영어과외 끝나면 또 올림픽수학과외반, 거기서 곧바로 피아노반… 주말이면 팽이처럼 돌 아친대요. 그래서 유치원 졸업후 친구를 한번도 만나지 못했대요. 그리고 전화로 통화하면 친구는 자 유롭게 학교생활을 즐기는 절 많이 부러워해요. 그날 전 참 많은 생각을 하였어요. 옆집 형아와 제 짝꿍, 어떡하면 그들의 얼굴에 행복한 웃음을 찾 아줄까? 아님 내가 커서 선생님이 될까? 근데 선생님들도 교장의 말을 들어야하고 교장도 교육부의 말을 들어야 하니깐, 아님 난 중국의 교육을 움직이는 제일 높은 교육부에 들어가서 교육부 부장이 되 여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까지 생각하니 먹장구름으로 꽉 막혔던 마음이 어느새 뻥뚫리면서 찬 란한 해살이 가슴으로 파고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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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교육부 국장이 되면 중국에 있는 학생들에게 숙제도 내지 않고 모든 학생들이 자유롭고 즐겁 게 공부할수 있게 하고 싶어요. 먼저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인격을 존중해주고 애들의 친구가 되여서 애들이 고민도 털어 놓을수 있게 선생님들의 교육부터 시킬거예요. 그리고 애들이 자연에서 뛰놀면서 흙장난도 하고 식물과 꽃과 동물들과 어울려져서 건강하게 자라게 하고 싶어요. 이것이 저의 꿈입니다. 소박하지만 큰 꿈-교육부국장이 되는겁니다. 오늘도 야무진 꿈을 꾸고있 는 신예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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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밥을 먹는 아이

<최우수상> 경기도지사상 정원 한글학교 초등 5학년 박 탄 주

지구의 가장 남쪽, 이 곳 뉴질랜드는 이 세상의 온갖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랍니다. 노란 머 리, 까만 머리, 갈색 머리와 까만 피부, 노란 피부 그리고 분홍색깔의 피부가 한데 모여 다양한 모습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내가 한글을 겨우 읽게 된 다섯 살 때,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는 아빠의 계획에 따라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ABC도 모르는 나는 이곳에 도착 하자마자 집 근처 학 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나는 첫날 영어를 모르는 것이 두려웠고 파란 눈과 피부색이 다른 친구들 이 쳐다보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친구들이 같이 놀자고 옷을 당기는 것도 괴롭히는 것 같이 생각되었 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몰라 매우 쩔쩔매야 했습니다. 한국말이 아 닌 들어본 적도 없는 말뿐인 수업시간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들이 모두 웃을 때도 나는 따라 웃을 수도 없었습니다. 한번은 수업시간 중에 도서관으로 가는데, 어디로 왜 가는지도 모른 채 나 혼자 책가방을 메고 따 라 갔더니, 반 친구들이 모두 까르르 웃은 적도 있습니다. 쉬는 시간이 언제인지, 언제가 마치는 시간 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이상한 나라에 온 아이가 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선 생님은 이런 나를 다정하게 손을 잡아주셨고,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 친절히, 그리고 천천히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시며 나를 이끌어주려 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이곳은 한국과 달리 모든 학생들이 도시락을 싸가지 고 학교에서 먹는데, 엄마는 그 날 정성스럽게 김밥을 싸주셨습니다. 드디어 점심시간이 되었고, 내 도시락 속의 까만 김밥을 본 이 곳 친구들은 까만 밥(Black rice)이라고 모두 신기한 듯 내 도시락을 보며 뭐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마치 동물원에서 이 상한 동물을 쳐다보듯 수근 대는 것 같았습니다. 순간 나는 얼굴이 빨갛게 되었고 얼른 도시락 뚜껑 을 홱 덮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나는 학교 울타리 숲으로 뛰어가 숨어 버렸습니다. 숨어서 친구들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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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않을 때까지 울면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까만 밥’ 사실 김밥이니 까만 건 맞는데 모두 내 김밥을 보며 모여드는 통에 나는 부끄럽고 창피스럽기만 해서 도저히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던 것입 니다. 마침내 종이 울리고 친구들이 교실로 돌아간 다음에야 나는 뒤늦게 일어나 교실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너무나 슬펐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도 조용한 성격이었던 나에게 그것은 너무 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내가 처음 간 학교는 오클랜드 남쪽, 타카니니(Takanini)라는 작은 시골 학교여서 김밥이라는 것을 먹어본 적이 없는 아이들 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었습니다. 이곳에는 한 국김밥과 비슷한 ‘스시(Sushi)’라는 일본 초밥이 조금씩 알려져 있었는데 가격이 비싸서 잘 사먹을 수 가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 까만 밥 때문에 나는 그날 점심도 못 먹고 울다가 집으로 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김 밥을 도시락으로 싸지 말라고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다정하게 안아 주시며 “김밥은 자랑스러운 한국의 건강식품이고, 비싼 음식이라 아이들이 부러워서 그러는 거야. 김밥을 먹을 수 있 는 너는 행운아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색다른 그 까만 김밥이 부끄럽기만 했습니 다. 그렇게 나는 다른 문화와 부딪히며 배우면서도 한국 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갖지 못한 채 학교생 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지난 해 한국 가수 싸이(Psy)의 ‘강남스타일’이라는 한국 노래가 유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번지더니 나중에는 학교 행사(Family Funday)같은 데서도 춤을 따라하는 게임이 생 기는 등 한국의 바람이 불기 시작 했습니다. 친구들 모두가 나에게 한국가수 싸이에 대해 물었고, ‘강남’이 무슨 말이냐며 한글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러자 나도 싸이가 좋아졌고, 한국 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지게 되었습니다. 항상 한국보다 뉴질랜드에 대해 배우고 싶던 내 마음이 서 서히 바뀌어 한국을 배우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던 중 이곳 한국 학교에서 교민 자녀의 한국 방문 체험이 있었고, 12일 동안 한국으로 가게 되 었습니다. 한국의 충청북도의 ‘한국 사랑관’과 한국의 산업발달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현대동차 견학과 포항제 철을 방문하였을 때, 나는 엄청나게 발달한 한국에 대해 무척 놀랐습니다. 이곳 뉴질랜드보다 훨씬 산 업과 도시가 발달하였고, 한글이 매우 과학적으로 만든 글자임을 배우면서 나 스스로 한국인임이 자 랑스러워졌습니다. 항상 키위(KIWI-뉴질랜드 사람을 키위라고 부릅니다.)들 틈에서 소수인인 한국 사람이라 자신감을 잃어가던 내 마음이 한꺼번에 펴지는 것 같았습니다. 한국 학교의 친구들과 홈스테이를 하는 동안 좋아하는 한국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어서 좋았고, 한국 사람이 가득 찬 쇼핑센터에서도 내가 한국 사람인 것이 좋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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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곳 뉴질랜드 학교로 돌아왔을 때 이제 나는 많은 키위 속에서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았습 니다. 그리고 더 이상 다르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로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5학년 마지막 학기, 학교에서는 마켓데이(market day)가 열렸습니다. 각 조 별로 종목을 정해 우리들이 준비하고 판매하고 그 모금한 돈을 ‘오클랜드 스타십 어린이 병원’에 불치병 어린이 돕 기 성금을 모금하는 행사였습니다. 나는 제일먼저 김밥을 팔겠다고 손을 들었습니다. 나에게 있어 김 밥은 아주 특별한 기억이었습니다. 김밥을 팔던 날, 나는 크게 외쳤습니다. “맛있는 김밥이 1불($1)이요, 뉴질랜드에 한국의 김밥이 왔어요.” 김밥은 순식간에 팔려 그날 마켓데이 품목 중에 제일 먼저 다 팔렸습니다. 나는 75불($75)을 벌었 고 그 돈을 선생님에게 드렸습니다. 선생님은 기특하다며 아픈 어린이들을 치료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한국 문화, 음식인 김밥으로 나는 이곳 뉴질랜드의 아픈 어린이들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가슴이 뿌듯해졌습니다. 더 이상 김밥은 나를 이곳 키위들과 구별 짓는 것이 아닌 이들과 나를 이어주 는 도구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어릴 적 슬픈 기억 속의 김밥이 오히려 한국인으로서 훌륭한 일을 하게 될 줄 미처 몰랐답니다. 한 국인으로 성큼 다가가게 해준 고마운 김밥을 세계인들에게 더욱 많이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달 전 한국에서 막 뉴질랜드로 이사 온 중학교 다니는 같은 교회 누나는, 아직도 김밥이 부끄러 워 도시락으로 먹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마치 처음의 저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누나에게 다가가 “누나도 곧 김밥을 팔 수 있게 될 꺼야. 기운 내!”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내 말을 듣고 어리둥 절한 그 누나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곧 알게 될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이제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어떻게 살든지 간에 나는 자랑스러운 한 국인이란 사실을요. 그리고 아직도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우리 한국 음식뿐 아니라 한국 의 문화를 많이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의 꿈은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꿈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그것은 바로 김밥을 만드는 로봇을 만들어 한국의 김밥을 뉴질랜드 사람뿐 아니라 전 세계에 나누어 주는 것 입니다. 그래서 김밥을 통해 한국을 제대로 알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있어 김밥은 ‘한국’이 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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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그날이 오면

<최우수상> 경기도지사상 선양 한국국제학교 중등 2학년 홍 지 민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강원도의 한 외진 산기슭에서 사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요즘같이 도시가 발 전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사는 시대에 할아버지가 산골에 들어가 사서 힘든 생활을 하는 이유는 바로 6.25 한국전쟁이 일어났던 해, 한반도에 그어진 '북위 38도선' 때문이라고 하였다. 한 때 누군가 의 남편이었고 누군가의 아버지였던 이 할아버지를, 무엇이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고생을 하게 만 든 것일까. 할아버지의 사연은 이러하였다. 아내에게 예쁜 꽃신을, 어린 자식에게는 알사탕을 사오겠다고 약속하고 서울로 내려왔던 할아버지는, 그 후로 6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아내와 자식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떠난 동안 전쟁 이 일어나 38선이 그어진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북한에서 고생하는 아내와 자식을 생각하면 편안한 삶을 살 수 없어 만약 남북통일이 이루어지면 가장 먼저 38선을 넘고 싶다며 고향에서 가장 가까운 강원도 산기슭에 자리를 잡고 계신 것이었다. 이 때 텔레비전 속에서 할아버지의 수많은 주름들을 타고 흐르던 눈물을 보고 나도 함께 울었던 기 억이 난다. 마치 할아버지가 아내와 자식만을 생각하며 산 속에서 보낸 고된 시간을 대신 보여주듯이,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잡혔던 주름들이 아직까지도 눈에 선하다. 사실, 나를 비롯한 요즘 청소년들은 6.25 전쟁과 통일에 대해 큰 관심이 없고, 자신들과 상관이 전 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하다못해 통일을 반대하는 의견들도 많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통일에 대한 찬반 의견은 실제로 내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빈번하게 다뤄지는 주제이다. 그만큼 통일에 대한 사람들의 호, 불호가 많이 갈린다는 뜻은 아닐까. 어떤 이들은 이야기한다. 통일이 되면, 1997년에 일어난 IMF 경제위기보다도 훨씬 규모가 큰 경제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이 때의 경제위기는 매우 심각했다. 실업자들이 강물처럼 불어났고 망해가는 기업과 회사들이 수두룩했으며, 집 값과 땅 값 등이 원래 값의 절반 값으로 떨어졌던, 많은 한국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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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었던 대규모 경제위기였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경제위기라니,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이들도 통일에 대한 많은 의견을 내세웠다. 국민들 사이의 고정관념이나 문화의 차이가 커 져 소통의 문제 또한 피하지 못할 거라고. 오해를 사는 일이 많아지고, 이것을 고쳐 나가려면 매우 오 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그들은 이야기했다. 또한, 본래 각자 국가와 재산에 따라 빈부격차가 매우 심해지거나 직업과 치한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너무 느긋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성급하지도 않아야 하는 게 통일이라고 생각한다. 한 나라가 된다면, 문화의 차이가 반드시 사람들 사이의 불편한 점으로만 남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 한다. 서로의 문화 차이 때문에 오해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이 두 문화를 합쳐 더욱 발전한 문화로 우리나라를 변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남한의 잦은 외래어 사용과 북한의 순수 우 리말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남한에서는 아이스크림, 도넛 혹은 아파트 등 수많은 외래어들을 우리 삶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 이 단어들을 얼음보숭이, 가락지 빵, 다층 살림집 등, 순수한 우리말로 대신 사용한다. 우리는 이 단어들을 통해 북한에는 여전히 순수한 우리 문화가 일상생활 속에서도 오간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국방비의 부담이 줄어들어 남는 예산을 통일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 하는데 사용할 수 있을 것 이고, 남한의 인구만으로도 김연아 선수, 많은 유명 선수와 배우 등 배출한 훌륭한 인재들이 무척 많 은데, 만약 통일이 된다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빛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가 통일이 됐을 때 가장 좋은 점은 바로 ‘유라시아 횡단 철도’가 아닐까? 유라 시아 횡단 철도는 부산에서 출발해 중국과 러시아, 몽골 등을 거쳐 유럽까지 유라시아 지역을 철도로 연결하여 만주벌판을 호령하던 옛 고구려의 기상을 온 세상에 떨칠 것이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고 불리는 경의선 기차가 아직까지도 남북 전쟁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 고 임진각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옛날에 서울에서 의주까지 이어주던 이 기차가 다시 한 번 힘차게 선로를 달리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위에서 이야기 했듯이, 통일은 성급하지 않고 많은 준비를 한 다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 다고 생각한다. 무력이 아닌 평화적 방법으로 통일을 준비하며, 정치, 경제, 그리고 사회 문화를 서로 간의 잦은 교류를 통하여 갑작스러운 낯선 문화의 이질감과 서로에 대한 잘못된 편견들을 줄여 나가 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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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통일을 통해 우리가 생각지 못한 수많은 어려움이 올 수도 있지만, 남북한은 처음부터 한 나라 한 민족, 그리고 한 형제이기에 짧은 시간은 아니더라도 천천히 서로를 이해하며 보듬어 안아줘 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2월, 제 18차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서도 여느 때처럼 남북이 서로 다른 의견으로 대립해 개최에 대한 어려움이 많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수십 년 간 만나지 못한 이산 가족들을 위하여 북한 금강산에서 눈물 어린 상봉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이산가족 상봉이 있기 바로 며칠 전에 세상을 떠나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였고, 또 는 만나더라도 너무 고령이라 건강이 좋지 못하여 구급차를 타고 북까지 간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은 서로 껴안고 60여 년 전 헤어진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고, 각자 자신의 지난 세월의 이야기들을 풀어 놓는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떨어져 있었음에도 서로를 알아보고 얼싸 안는 것을 보고 역시 부모형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그 할아버지도 이렇게 아내와 자식을 만났을까? 저 많은 이산가족들 속에 어쩌면 그 할아버지도 계셨을지 모른다. 이 할아버지의 가족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그들에게도 전해 지지는 않았을까?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꼭 만나고 싶어 산기슭에 들어가 살던 할아버지의 마음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마음이 뜨거워졌다. 통일이 너무 늦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직 자신의 가족을 찾고 싶어 하는 이산가족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소에 아침저녁으로 매일 마주하는 가족들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답답함과 슬픔은 오직 이 사람들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간절한 마음과는 달리, 그들은 오래 기다려 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통일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고 더 나은 남북 간의 관계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통일은 대박이다.”이라는 말을 했다. 또, 통일은 대한민국이 실제로 대 도약 할 소중한 기회라고 하였다. 이 말은 통일을 바라는 모든 남북한 국민들에게 있어 통일 염원에 대한 많은 희망과 긍정의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모든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꿈꾸는 통일 이후의 우리나라의 미래가 있다. 이는 이 꿈들이 한 데 모여 큰 민족의 통일을 만들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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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Kirin 선생님

<최우수상> 경기도지사상 Singapore International School 중등 2학년 유 지 선

“Kirin” 이 단어는 내 인생을 통틀어서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단어일 것이라 확신한다. 등교 할 때 “Kirin”, 수업시간에 “Kirin”, 하교할 때도 “Kirin”, 심지어 집에서도 “Kirin”. 참 많이, 아니, 너무 많이 듣는 단어이다. 나를 생판 모르는 사람은 이 단어가 무엇인지 참 궁금할 것이라 믿는다. 이 단어를 읽고 그 대로 발음해 보아라. 그렇다. 이 단어는 바로 ‘기린’이다. 나는 이름을 세 개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외할머니께서 작명소에 가서 받아오신 내 본명, 유지선. 둘째는 엄마가 공주와 같이 자라라는 뜻을 담아 주신 내가 가장 좋아하고 애용하는 영어 이 름인 Sarah. 그리고 셋째이자 마지막은 내가 싫어하지만, 이중에서 가장 많이 불려지는 내 별명 겸 이름, 기린이다. 사람이 사람을 처음 보면 그냥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첫인상이 있다. 나를 보면 바로 떠오르는 것 이 ‘큰 키’다. 나는 168센티미터로 한국의 여자 평균 키인 160.9센티미터에 비해 훨씬 웃도는 키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젓가락’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는데, 현재 나는 더군다나 여자 평균키가 불과 153센티미터 밖에 안되는 베트남에 있어 주변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훨씬 더 커 보인다. 내가 Kirin이기 전의 별명은 그냥 ‘Giraffe’였다. 그냥 가끔가다 그렇게 남자애들이 부르는 식이었 다. 그러나 어느 날의 사건으로 인하여 내 별명인 Kirin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또한 그 별명이 폭발적 인 인기를 얻게 된 계기가 있었다. 아침 수업이 끝나 45분의 휴식시간을 즐기러 나갈 아이들이 그날은 왠일인지 교실에서 재잘재잘 떠 들고 있었다. 나는 내 친구와 어제 본 소설에 대해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갑자기 우리반의 ‘Sinh’이란 베트남 남자아이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평소에 나를 많이 놀리기도 하는 키가 작은 남자아이, Sinh. 난 친구와 이야기 꽃을 피우는데 정신이 팔려 Sinh이 나에게 무언가를 물었을 때 난 생각도 안하고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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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을 해 버렸다. 그 대답을 하고 난 직후 난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Sinh은 나에게 기린이 한국어로 무엇인지 물어봤던 것이다. 나는 그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서툴게 기린이라 나를 불렀을 때 나는 눈을 흘겼지만 속으로는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 그렇게 그가 처음으로 서툴게 한국어 를 말했을 때 나의 눈에는 그 표정이 얼마나 귀엽고 웃긴 모습인지 그는 모르겠지. 바로 그 사건을 시 작으로 우리 반 아이들의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시작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그 사건이 일어난 후 한국어가 우리 반 모든 아이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물론 그 전부터 쭈욱 관 심을 가지고 있던 우리 반 여자아이들은 몇 있었다. 그들은 정말 한국 문화를 한국인인 나보다도 더 즐기고 사랑한다는 사실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고 또한 기뻤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그들은 정말 많은 한국 문화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K-pop을 매일 듣고, 로맨틱한 한국 드라마도 보며, 거기서 한국말을 하나씩 하나씩 주워듣는다. 놀랍게도 그들은 내가 동생과 한국말로 하는 일상생활 대화도 알아듣는다, 그저 말하는 것이 서툴 뿐. 그들 중에서는 특히 한국 문화와 말에 열정이 있는, 나보다 한 살이 많은 여자아이 Thao Vy가 내 학교생활과 내 미래까지도 바꿔버릴 만한 말을 내게 해주었다. 한숨을 푹 쉬고 허벅지를 꼬집어서 밀려오는 잠을 물리친다. 우리 학교의 중국어 수업은 참 지루하다. 매일 중국어 수업이 끝나면 반 아이들의 얼굴에는 방금 막 잠에서 깨어난 멍한 표정이 가득 담겨있다. 내 뒤에 앉아있던 Thao Vy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사라, 나 죽는 줄 알았어. 우리 학교는 왜 재미 도 없고 배우기도 어려운 중국어를 배우라고 하지? 난 한국어를 배우면 좋겠어. 한국어는 듣기에도 좋고 글씨도 너무 귀여운데. 안 그래?’ 나는 그녀의 이 말에 대답을 망설였다. 왜냐하면 한국어도 선 생님이 가르치면 똑같이 지루해질지도 모르니까. 그녀는 대답을 망설이는 나를 보지 못하고 갑자기 박수를 크게 한번 쳤다. ‘네가 우리를 가르치면 되지 않아?’ 다른 여자아이들을 불러 놓고선 흥분된 목소리로 재잘거리는 그녀들을 보니 ‘못하겠어’라고 할 수가 없었다.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인 Minh Thu도 빨리 답을 달라는 눈짓으로 나를 보챘다. 나는 생각해보겠다고 대답을 얼버무리고 다음 수업을 위해 들어온 담임선생님을 속으로 감사했다. 나는 괜히 내가 지루하게 가르쳐서, 친구들의 한국어에 대한 열정을 식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나를 지금 돌아서 생각해 보면, 그랬던 내가 조금 한심하다. 매일 매일을 도전으로 살겠다던 유지선은 어디로 가버렸단 말인가? 나는 그 부탁을 쉽사리 거절할 수가 없었기에 어떻게 한국어를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답은 의외로 쉽게 얻어졌다. 내가 한국에 있었을 때 내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려고 본 미국이나 영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나는 그 다음날 한국어를 나에게 배우고픈 친구들의 이름을 종이 위에 적고, 각자 보고 싶은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적어오라고 했다. 내일 각자 열심히 써온 리스트를 보니 대다수가 ‘별에서 온 그대’를 보고 싶다고 해서 내가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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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자막이 삽입된 영상을 그날 밤에 찾아뒀다. 그렇게 학교 가는 날이 기대됐던 때도 없었던 것 같다. 그 다음 날, 무거운 노트북을 들고 낑낑거리며 학교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기적인 내 마음이 후회를 시작했다. 왜냐하면 내 노트북이 팔이 빠질 듯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슴속 한 구석에서는 희망이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수업을 할 시간이 조금 더 많은 아침 간식 시간을 이용하기로 했다. 친구들의 눈이 오늘따라 더 빛나 보이는 것은 내 착각일까? 아침 간식 시간에 Minh Thu가 내 무거운 노트북을 도서관으로 들고 내려가는 것을 도와주었다. 내가 처음 이 학교로 전학했을 때와 같은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여 심장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 반 여자애들의 첫 한국어 수업은 시작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각각의 한국어 실력이 천차만별 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일일이 일대일로 과외를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나. 머릿속이 갑자기 깜깜해졌다. 그런 사소한 것도 신경 쓰지 못한 내가 한심했다. 그러나 구원의 손이 나를 잡아 일으켜 주었다. 이 6명의 여자아이들 중 가장 한국어를 잘하는 Thao Vy가 자신이 직접 다른 아이들 의 기본기를 다져주겠다고 제안을 해준 것이다. 그것을 듣고 난 안심했다. Thao Vy는 전학오기 전, 베트남 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웠기 때문에 기초 하나는 탄탄하게 배워놨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날은 그냥 재미있게 ‘별에서 온 그대’를 시청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드라마가 시작한지 몇 분만에 스토리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나는 속으로 시청률 30%를 거뜬히 넘기고도 남을 재미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하였 다. 우리는 함께 호탕하게 웃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같이 슬퍼하고 애처로와 하기도 했다.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푸욱 빠져버렸다. 나는 아침간식시간이 끝나기 5분 전에 잠시 드라마를 멈추고 친구들에게 각자 배운 단어를 하나씩 얘기하라고 하였다. 다들 만족스럽게도 한 단어 이상을 말했고, Thao Vy는 가장 기억에 남았던 대 사를 한국어로 말하였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있어요. 지구인들은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르더군요.”가 주인공의 대사였다. 나는 그것을 듣자마자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과연 내가 이들을 가르치게 된 것도 내 운명일까? 남은 시간 동안 우리는 열심히 본 것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다들 사서에 게 시끄럽다고 꾸중을 들으며 도서관을 나왔을 때 Minh Thu가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그래도 사라 명색이 선생님인데 명칭이 있어야 되지 않겠어?’ 그 말에 Thao Vy가 맞장구를 쳤다. 그녀는 잠깐 고 민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Kirin선생님!”을 외쳤다. 그 말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설마 그게 나를 부르는 명칭이 되는 건 아니겠지?! 그런데 내 예상이 적중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Thao Vy 는 다른 애들에게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려주었다. 그녀들은 장난스럽게 나에게 “Kirin선생님”이라 고 하였다. 나는 소리를 빽 질렀다.“그게 뭐야!”라고 했는데 나에게서 달아나면서도 계속해서 외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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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을 보아하니 포기할 기미가 안 보인다. 나도 모르게 한숨과 헛웃음이 절로 나오게 되는 상황이었 다. 싫어했던 별명과도 정이 들 수 있다는 것을 나에게 일깨워준 사건이었다. 처음에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는데 갈수록 나에게 희미한 웃음을 짓게 하는 말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날이 우리 반에서는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어 수업을 듣는 친구들은 실력이 많이 향상되었고, 가끔가다 남자 아이들도 들른다. 나는 제일 먼저 우리 한국어 수업에 대해 듣고 들 른 Sinh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 우리가 한국어 수업을 하는 도중에 처음으로 그가 도서관으로 들어오 는 모습을 보고, 나는 ‘매일 축구만 하는 남자앤데 도서관은 왠 일로 왔지?’라고 생각했다. 그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을 때 더더욱 놀랐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나는 내 작은 눈을 계속해서 깜빡거렸다. ‘이거 참,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리고선, 나는 그를 환영하였다. 우리의 한국어 클럽은 갈수록 더 공식적으로 진행되고 인원수도 늘어갔다. 우리의 한국어 클럽의 공식적인 이름은 ‘한국에서 온 그대’이다. 여기서 ‘그대’는 당연히 ‘한국어’를 의미한다. 일주일에 총 2 번, 화요일과 목요일에 수업이 진행된다. 우리 반뿐만 아니라 내 동생이 홍보를 잘 해준 덕분에 7학년 여자아이들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인원 수가 많아지다 보니 도서관이 좁아서 아침 간식 시간에 비어 있는 컴퓨터실을 이용하게 되었다. 뿌듯하다. 정말 많이 뿌듯하다. 나 자신이 이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한 글을 널리 알린다는 사실이 이렇게 기쁘고 행복한 일일 줄이야! 더군다나 내가 그 역할의 주인공이 될 줄이야! 친구들을 가르치다 보니 한글에 대한 내 사랑과 열정이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되었다. 내가 한 국인인 것만으로도,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한글을 말할 줄 안다는 이유만으로도 고개를 치켜들고, 어 깨를 딱 피고 다닐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이 기분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어렸을 적 어른들이 나의 꿈이 무엇인지 물어볼 때 나는 공주가 되고 싶다고 대답하였다. 내 꿈은 수시로 바뀌었다. 우주인, 최초의 여성 대통령, 멋진 여전사, 그리고 최고의 부자 등. 그러나 초 등학교를 들어서며 나는 엄마와 아빠가 권하는 판검사의 꿈을 키워야만 했다. 내가 사춘기를 겪고 있 는 청소년 시기인,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꿈도 목표도 아무것도 없었다.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이 유, 그리고 목표. 그것이 없어서 내 세상을 칠흑과도 같이 깜깜하기만 했었다. 그러나 그런 힘든 상황 에도 한 줄기 빛은 있는 법. 한국의 자존심인 한글을 전세계로 퍼뜨리고 싶다. 그래, 나는 ‘Kirin선생 님’이야! 꿈이 싹텄다. 세계를 무대로 하는 새로운 나의 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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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와 나눔으로 하나 되는 우리

<최우수상> 경기도지사상 셔코 국제학교 (SIS) 고등 1학년 이도연

아주 춥고 고요한 새벽 4시에 엄마가 나지막한 소리로 나와 내 동생을 깨웠고 우린 졸린 눈을 비비 며 잠에서 깨어나야 했다. 그 날은 2006년 1월 16일 중국의 선전으로 가야하는 날이었다. 12월 겨울 방학식날 정들었던 2학년 친구들과 선생님과 작별인사를 할 때 에도 아쉽고 자주 볼 수 없음에 약간 슬프기도 했지만 한국을 떠난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질 않았다. 공항에 도착해서도 나와 동생은 비행 기 탄 다는 생각에 마냥 신나 있었던 것 같다. 도착한 선전의 날씨는 몇 시간 전 우리가 있던 서울의 날씨와 너무 달랐다. 우리 가족은 외투를 다 벗고도 소매를 걷어야 할 정도였다. 날씨뿐만 아니라 거리의 가로수, 사람들의 모습 모든 것이 다 달 랐고 특히 거리는 온통 붉은색 커다란 등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중국 사람들 집에서는 설날이 다가오 면 악귀를 내쫓기 위해 붉은 옷을 입고 붉은색 등을 걸어놓을 뿐만 아니라 종이로 된 장식품을 문에 다 붙인다고 아빠가 알려주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내가 앞으로 다녀야 하는 학교에 처음 등교하는 날 가슴만 콩닥콩닥 거렸다. 중국어는 한마디도 못하고 영어는 겨우 인사할 정도이니 국제학교를 어찌 다닐까, 아빠는 왜 중국으 로 와서 내 친구들도 못 만나게 할까, 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던 나는 어느새 교실 문 앞에 서 있었다.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문을 열자 환하게 웃는 담임선생님과 새로운 친구들이 나를 반겨 주었다. 미국, 캐나다, 프랑스, 영국,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등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이 있어서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다행히 한국 친구 혜원이가 나의 도우미로 내 짝꿍이 되어 도와주었다. 그렇게 나의 새로운 생활은 시작되었고, 올해로 벌써 9년째이다. 학교를 다닌 9년 동안, 매년 12월이면 학교에서는 윈터 바자라는 큰 행사가 열리는데, 2013년의 윈터 바자는 지난 12월 7일에 열렸다. 윈터 바자는 일 년에 한번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전 학년 학생과 선생님들 학부모님들 모두 함께하는 행사로 축제의 의미도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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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의 수익금은 매년 중국에 어려운 학교에 기부를 했으나, 올해는 특히 태풍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필리핀에도 기부금을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하고 행사가 끝난 뒤 필리핀 학부모님들이 직접 필요한 물품들을 사서 필리핀까지 가서 전달했다고 하니 더욱더 뜻 깊은 행사가 된 것 같다. 이 행사는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부터 학교 선생님과 학생뿐만 아니라 각 나라 학부모님들까지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했다. 선생님들은 그날 행사가 잘 진행되기 위한 전반적인 관리, 중학생들과 고등학생들은 게임 진행과 악기, 연주, 노래, 봉사 등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봉사를 시간에 맞춰 짜고, 각 나라 학부모님들은 그 나라의 대표하는 맛있는 음식 준비와 판매를 준비해야했다. 올해 윈터 바자에서는 예전과는 다른 특별한 활동이 추가 되었다. 각각의 부스마다 자기 나라의 음식을 팔았는데, 음식을 팔면서 동시에 “여권 게임”이라는 활동도 같이 진행되었다. 여권 게임이란, 말 그대로 아이들이 자신의 여권이 될 종이를 들고 다니며, 각 나라의 부스에서 게임을 성공하면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는 것 이였다. 그리고 도장을 다 모으면 상품을 받을 수 있는 형식 이였다. 음악 쪽으로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은 터라, 연주나 노래보다는 이 여권게임에서 봉사 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더 끌렸다. 게다가 이 게임은 각국 어린이들이 자기 나라를 제외한 다른 나라의 부스로 가 서 게임을 함으로써 그 나라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그런 게임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게임으로 신청했고, 나는 한국인이므로 한국 부스에서 봉사를 하게 되었다. 한국 부스의 게임은 바로 태극기 를 색칠하는 게임으로, 우리 조가 이 게임을 고른 이유는 초등 저학년이 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흥미 있는 동시에 우리나라를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태극기를 색칠하는 동안, 우리는 옆에서 한국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하기도 하고,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의 질문에도 성실하게 답해 주었다. 태극기를 색칠하면서 자기 나라 국기도 옆에다 그려놓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이 색칠을 끝낸 후에 환한 얼굴로 자기가 칠한 태극기를 한국의 국기라고 말하면서 우리에게 내밀면, 여권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나라 테이블에서는 한국 학부모님들이 김밥, 잡채, 불고기, 떡볶이, 그 리고 비빔밥을 팔았다. 사는 지역별로 음식을 나누어 재료 준비부터 음식 만들고 파는 모든 과정을 다 같이 의논하며 정성스럽게 준비하였다. 그 결과 행사 시간이 되기도 전에 한국 부스 앞에는 한국 음식 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매년 한국 음식은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올해는 예전에는 하지 않았던 비빔밥까지 추가해서 음식의 양을 더 늘렸지만, 역시나 음식이 금방 다 팔려서 나중에 온 사람 들은 아쉬움에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어쩌면 이 윈터 바자 행사가 나에게는 올해가 마지막이기 때문에, 나는 봉사시간이 끝난 다음 추억 을 간직하는 의미에서 친구들과 함께 다른 나라 부스 사진을 찍으면서 윈터 바자를 둘러보며 이야기 를 나누었다. 그러는 동안 마지막 정리를 맡은 봉사자들이 행사장 곳곳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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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6년 12월부터 8번의 윈터 바자를 경험한 셈이다. 하지만 올해가 되어서야 나는 윈터 바자 라는 행사가 얼마나 멋진 행사인지 제대로 느낄 수가 있었던 것 같다. 어렸을 적, 나는 그저 시작하는 시간에 맞춰서 나간 뒤, 친구들과 게임을 하고, 배고파지면 맛있는 걸 먹으며 마냥 신나게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오늘 차분히 윈터 바자를 둘러보며 조금은 다른 시선 으로 생각해 보니 이 윈터 바자란 큰 행사를 성사시키기 위해 합심하여 노력하는 여러 나라의 우리 학 교 구성원들이 보였다. 모두 국적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지만 학교라는 매개체로 묶여진 우리들은 누 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다 같이 봉사하기로 결정했고 각자가 맡은 일을 그 시간에 정확히 해내고 나머지 시간은 행사를 즐겼다. 윈터 바자 시간 내내 모두의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함 께 했으며 그 결과 행사는 마치 영화 속 해피엔딩처럼 잘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 할 몫 을 다하는 나 자신이 새삼스럽게 자랑스러웠다. 한 공간에서 세계 여러 나라 음식을 맛보고, 여러 나 라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소통하며, 각 나라의 문화를 느끼면서 동시에 그 속에서 우리나라의 좋은 점 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이런 행사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다는 것이 한없이 고맙게 느껴졌다. 얼마 전 책에서 “세상에는 ‘끈’과 ‘구슬’, 두 부류의 인간이 있는 것 같다”라는 글귀를 읽었다. 많은 사람들이 구슬이 되고 싶어 하겠지만 끈이 없다면 구슬 또한 혼자서 빛날 수 없을 것이다. 서로의 좋은 점을 연결하여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끈의 역할일 것이다. 나를 통해 다른 나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면서 친구가 되고 멘토가 되고 서로에게 도움과 따뜻한 맘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며 찾던 중 한국 컴패션이란 단체를 알게 되었다. 나는 모집 기간을 기다린 후, 온라 인으로 번역 메이트 봉사를 신청하여 작년 7월부터 지금까지 봉사를 하고 있다. 일회성으로 그치는 봉사가 아니라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점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려운 다른 나라 아이들을 후원하면서 서로에게 편지를 주고받는다. 내 가 하는 일은 아이들이 영어로 쓴 편지를 한국말로 번역해서 후원자들에게 보내는 일이다. 편지를 번 역하다보니 아이들에게 후원자들의 도움이 얼마나 절실하고 감사한지, 후원을 통해서 그들의 생활이 얼마나 변화되는지를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느낄 수 있었다. 번역 메이트가 만나는 대부분의 편지 주 인공은 가난하고 어려운 상황인 아이들이 대부분이지만 하나같이 마음만은 가난하지 않고 꿈을 가지 고 살아가며 배움에 대한 열의 또한 대단하여 늘 감동과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편지에서 처음으로 자 신이 사랑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아이, 항상 불편한 자세로 공부하였는데 후원금으 로 책상을 사서 공부하기 편해져서 너무 감사하다는 아이, 청각 장애인인 오빠가 드디어 “엄마”라고 말하기 시작했다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아이, 자기보다 후원자님의 건강과 행복을 더 걱정하고 바라 는 아이 등 번역하면서 가슴이 뭉클하고 내 자신이 부끄러운 적도 많았다. 번역 메이트 일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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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으로 알게 되는 것도 있다. 그것은 보통사람이 쉽게 갈 수 없는 나라들, 예를 들면 우간다, 아이티, 방글라데시, 케냐, 부르키나파소, 에티오피아등 편지내용에서 그 속의 의상, 축제, 전통 음식은 내가 이 봉사를 하지 않았다면 이런 것들을 접할 기회는 아마 없었을 것 같다. 소외받고 힘든 아이들이 후 원자들을 통해 사랑을 알게 되고 더 멋진 일은 그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남들에게 더 큰 사랑을 베푼다면 점점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이제 올해를 마지막으로 나는 국제학교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가 처음 외국생 활을 하면서 낯선 환경에서 말이 통하지 않을 때나 힘들어 할 때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고 웃어주면 서 도와주었던 사람들이 얼마나 고맙고 큰 힘이 되었는지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요즘 은 어느 곳에서나 지금 이 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든 지구촌 사람들이 동시에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세계에 어느 나라를 가던 어렵지 않게 다른 나라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외국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다. 지금까지 나는 세계 속의 한국을 경험했다면 한국으로 돌아가면 아마 도 한국 안에서 또 다른 세계를 보게 될 것이다. 그 속에서 작은 일이더라도 내가 할 수 있고 필요로 하는 곳에서 여기서 배운 영어와 중국어를, 그리고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과 함께한 경험들을 바탕으 로 내가 받았던 따뜻했던 마음들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마음 한편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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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하나의

<최우수상> 경북도지사상 심양시 혼남신구 조선족학교 초등 5학년 로 준 석

한국? 한국은 중국과 1시간 빠른 시차가 있고 기후는 심양과 비슷하다고 한다. 한국에도 중국처럼 사투리가 있는데 제주도 사투리는 한국 사람들도 못 알아 듣는 다고 한다. 아! 그리고 한국에서는 외 래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 돈 만 원짜리에는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이 있고 오만 원짜리 에는 신사임당이 있으며 지금의 대통령은 여자 분이라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는 삼겹살 과 불고기를 즐겨먹고 김치와 된장 고추장은 한국의 전통음식이라고 한다. 전통복장은 한복이고 우리 학교에서는 단오절 활동 때마다 한복을 입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추면서 민족의 명절을 즐긴다. 한국어? 나는 지금 한글을 쓸 줄 알고 읽을 줄은 알지만 뜻을 모를 때가 훨씬 많다. 발음도 제대로 잘 되지가 않아 선생님이나 가족들이 잘 알아듣지 못해 똑같은 말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내 뜻을 제 대로 전달하기도 하고 그래도 안될때는 중국말로 해버리기도 한다. 그럴 때 마다 온몸에서 진땀이 나 고 당황해지고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주눅이 들고 자신감도 뚝! 떨어진다. 손가락에 돌돌 말려 감겨지 는 옷깃에 나의 어깨가 조여들고 목은 점점 움츠러든다. 발끝만 쳐다보면서 말소리는 점점 작아지다 가 목이 메고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나는 한국의 ‘붕어빵’이란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나랑 비슷한 또래의 어린이들이 엄마 혹은 아빠랑 나와서 속담을 누가 빨리 맞추는지 시합도 하고 평소 기억에 남았던 일, 자신의 성장에 영향을 끼친 사건, 일상에서 생겼던 의문이나 호기심 등등을 털어놓고 해결도 해주는 오락프로그램인데 가끔씩 그 들과 함께 텔레비전 안에서 오락을 진행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속담을 누구보다 빨리 맞추려고 크 게 답을 하고 일단 맞추기라도 하면 누가 상이라도 주는 것처럼 어깨가 으쓱 올라가고 틀렸을 때는 아 ~이~ 하는 탄식이 절로 나가며 한없이 아쉽기도 하다. 또 내가 마치 해결사가 되기라도 하는 것처 럼 그들의 고민도 들어주고 해결책을 내놓기도 하고 나의 고민도 생각해보군 한다. 그럴 때마다 그런 나를 지켜보는 가족들은 때로는 나랑 같이 참여하기도 하고 때로는 웃음을 참느라고 킥킥거릴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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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 멋 적어 입을 다물고 있다가도 나도 모르게 또 그 속에 빠져들곤 한다. 나는 씩씩하고 활발하고 호기심 많은 그들과 마음을 주고받고 정을 나누는 친구가 되고 싶다. 나의 작은 고모는 심양시 중점고등학교의 조선어문 선생님이다. 문장도 많이 써서 발표하고 상도 많 이 받았다. 큰고모는 한국기업에서 근무하고 있고 엄마 아빠는 금년3월5일에 돈번다고 한국에 갔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무슨 경기를 하나 목이 터지게 한국을 응원했고 한국에 사건 사고가 있을 때마다 혀를 쯧쯧 차면서 가슴아파했다. 한국 전라도에 살고 계시는 또다른 할아버지는 비록 세 번 밖에 만나 뵙지 못했지만 50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 쓰기를 견지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집에 오셨을 때도 수시로 작은 수첩을 꺼내서 잠시 잠시 적으시곤 했는데 몇 년 전에는 한국의 텔레비전에도 나왔었다고 한다. 내가 태여나기 한참전에 돌아가신 노할아버지 노할머니는 살아생전에 "우리가 죽거든 화장해서 혼하강에 뿌려라, 세상에 강줄기는 다 연결되어 있으니 이리저리 떠돌다가 언젠가는 부모형제가 있는 한국 땅에 돌아갈 수 있겠지?.." 라는 말씀을 노래처럼 외웠다고 한다. 나는 작년에 기회가 되어서 배를 타고 한국에 갔다온적이 있다. 친구들과 갑판에 모여서 먹이를 꺼내들자 갈매기떼들이 끼욱~끼욱~ 울 면서 망망한 바다위에 떠있는 우리의 머리위를 빙~빙~ 맴돌고 있다가 너도나도 먹이를 던져주자 활짝 폈던 날개를 접으로 곤두박질치며 달려들어 잽싸게 먹이를 나꿔채여 다시 날개를 쫘~악~ 펼치면서 하 늘높이 날아올라가기를 반복하는 갈매기들을 바라보면서 갑판에서는 환호와 감탄 그리고 웃음소리가 끊 이지 않았다. 여행길은 즐거웠고 나와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피를 나누고 있는 친구들의 마음은 따뜻했 고 정은 뜨거웠다. 난생 처음 밟아보는 한국땅은 친근했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어린시절 추억이 담겨져 있고 노할머니 노할아버지의 유골이 묻혀있는 한국에서의 짧은 4일간은 정답고도 포근했다. 나는 중국에서 태어난 조선족이다. 중국어 영어 한국어 세가지 언어를 배우고 있다. 중국어는 내가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는 땅덩어리 즉 모국의 언어이기때문에 또 모든 일상생활에서 꼭 필요한 언어이 기 때문에 배우고, 영어는 세계에서 제일 많이 사용되고 있는 국제적인 언어이기 때문에 배우고 있다. 그럼 한국어는? 국제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언어도 아니고, 나의 일상생활에서 꼭 필요한 언어도 아니 고, 오히려 한개 과목이 더 늘어 게임시간도 줄고 친구들과 노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나는 앞으 로도 계속 한국말을 배워나갈 것이다. 한국어는 나와 서로 마음을 주고 받고 정을 나누는 친구들이 살고 있는 곳의 언어이기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계속 한국을 알아나갈 것이다. 한국은 내가 사랑하고 의지하 고 있는 친인들이 꿈에도 그리워하고 죽어서도 찾아가고자 하는 또 다른 하나의 모국이기 때문에. 나의 마음에 어느 샌가 선조들의 뼈가 묻혀있고 넋이 깊이 잠들어 있는 한국이 또 다른 하나의 모국으로 자 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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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후 나의 모습

<최우수상> 경북도지사상 할빈시 동력 조선족 소학교 초등 6학년 김 홍 리

저는 꿈이 아주 많습니다. 저는 커서 수의사와 환경 운동가가 되고싶습니다. 저는 이 두 직업을 다 하고싶은데 두 직업을 다 같이 하기에는 무척 어려울것 같습니다. 하지만 20년후 모두가 어려울것 같 다고 생각하는 일을 제가 하게 됩니다. 19년후 저는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환경운동가 50위안에 선정될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중에서 30 위로 선정됩니다. 그리고 다음해-20년이 되던 해에 저는 책을 한권 냅니다. 그 책을 많은 사람들이 구매해주어서 저는 방송에도 나오고 환경운동가로서 아주 의미있는 활동을 하게 될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세계인들이 다 아는 훌륭한 환경운동가가 됩니다. 그럼 평범했던 한 여자아이가 이런 큰 꿈을 꾸고 도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알아 볼가요? 2012년 책을 읽기 좋아하고 환경과 동물에 관심이 많지만 꿈이 없는 10살 여자애 김홍리는 어느날 직업에 관한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그는 환경운동가에 관한 직업을 보고 있었는데 그때 우연히 데니 서라는 환경운동가를 알게 되였습니다. 데니 서는 미국에서 자란 한국 사람입니다. 데니 서는 12살때 부터 미국에서 10달러만 가지고 친구들과 같이 고래사냥을 반대했고 역사 깊은 숲을 개발하려고 하 자 친구와 함께 켐페인을 벌려 숲이 개발되는것을 막았으며 생물시간에 동물해부 실험을 거부했습니 다. 친구와 함께 모피제조 및 판매 반대운동을 벌렸고 수많은 백화점앞에서 시위를 벌렸으며 결국 미 국은 그 시위로 인해 약 4천여개의 모피상점이 문을 닫았습니다. 또 데니 서는 이름없는 호수에게 이 름을 붙여주었으며 동물해부 실험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려 법안을 통과하게 되였습니다. 데니 서는 십대의 나이에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선정을 받았고 2년 후 데니 서는 세계에서 아름다운 50인에 선정되였습니다. 환경과 동물에 관심이 많은 어린 저는 세상에 이런 착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환경과 동물에 관심이 많으면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부끄러워 얼굴이 홍당무우처럼 발갛게 달아올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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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도 당장 실천에 옮기자란 마음으로 친구들을 불러 학교 주변에 있는 쓰레기를 청소하고 떠돌 이 강아지들에게 먹을것을 주고 목욕을 해주었으며 모피를 판매하지 말자는 시위도 벌렸습니다. 또 전교에서 쓰레기를 제대로 버리자는 행사를 벌리고 몇몇 학생들과 실천에 옮기면서 드디여 환경운동 가라는 꿈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지구는 사람들 때문에 오염이라는 병에 걸렸습니다. 지구는 매일 가슴이 답답하고 기침이 쉴새 없이 나고 머리가 아파 죽을것만 같습니다. 사람들이 농약, 살충제, 세척제, 가루비누 같은것을 많이 쓰고, 쓰레기, 병쪼각, 비닐 등을 마구 버리고 자동차 페기가스와 공장에서 나오는 연기를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것입니다.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쓰거나 자동차나 택시를 타는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환경도 보호하고 건강에도 좋고 얼마나 일석이조겠습니까?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환경보호라는 말을 못들은척 하고 계속하여 쓰레기를 마음대로 버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등 지구를 오염 시키는 나쁜일을 하고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답답할뿐입니다. 그 사람들은 왜 자기가 살고있는 지구가 오염되고 있는데도 지구를 오염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지 않는것일가요? 어린 홍리는 이제 환경을 조금 지켰으니 이제는 동물을 지키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매번 동물에 관한 프로그램 을 보면 사람들의 욕심으로 인해 동물들이 희생되는것을 많이 볼수 있었습니다. 그런것을 볼때마다 저는 눈물이 났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처럼 계속 호기심때문에 동물 을 괴롭히고있습니다. 례를 들어 자동차 트렁크에다 고양이를 묶어 놓고 출발하여 고양이가 죽었는 지 살았는지 확인하거나 강아지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하여 가둬놓아 벽에 부딪치게 하기, 6달동안 강아지에게 밥 안주고 죽었는지 보기 등 어른들의 호기심으로 많은 동물이 희생되고있습니다. 이런 것은 다 일종의 학대입니다. 저는 항상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도 다 우리와 같은 생명체이 고 아무리 하찮은 동물이라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한번 키운 동물을 그렇게 매정하 게 버리다니 우리 인류가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생명이 희생되고 있 는데도 그 학대를 가한 사람에게는 아무런 처벌이 없습니다. 나라에서는 이런 법이 없기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저는 커서 수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12살적 나의 꿈입니다. 20년 후 나는 아주 유명한 환경운동가와 수의사가 되였습니다. 저는 동물을 학대하지말자는 법을 내세우고 그 법안을 통과하였습니다. 동물을 학대한 사람에게는 10년의 징계와 벌금을 내릴수도 있 게 되였습니다. 동물도 사람처럼 중요하게 대하자는 중시가 더욱 커졌기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한 달에 한번씩 자전거를 리용하는 날도 만들었습니다. 이 날에는 모든 사람이 자전거와 택시를 이용하 면 안되고 자동차나 택시를 이용하면 처벌을 내릴수도 있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엄격하게 법을 내리 니 환경은 매우 아름답게 변하였습니다. 사람마다 에너지를 절약하고 화학용품을 쓰지 않으며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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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애호하게 되였습니다. 그러니 멸종되는 동물도 없고 오염되는 현상도 줄어들게 되였습니다. 이렇 게 환경은 전보다 매우 아름답고 깨끗하게 되였습니다. 저는 환경운동가와 수의사란 꿈을 이룰수 있 게되여 아주 뿌듯하였습니다. 데니 서는 “중요한건 인종이나 국적、 나이나 학벌이 아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개개인의 노력 이 중요하다.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지는 스스로가 결정하여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되였습니다. 우리 모두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행동을 해야 합니다. 앞으로도 저는 계속하여 환경을 위하여 노력하겠습니다.


그리웠던 한국땅

<최우수상> 경북도지사상 심양시 혼남신구 조선족학교 초등 4학년 선우 지원

나는 중국 심양시 조선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심양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한국식 아파트고 내가 사는 지역 또한 한국기업이 많은 지역이라 우리 아파트에는 한국분들도 많이 살고 있다. 나는 늘 한국애들과 휩쓸려 놀곤 한다. 우리는 모이기만 하면 국적의 계선이 없이 축구도 차고 꼬치고기도 구워서 나누어 먹군 한다. 그러나 그들과 모여 놀때마다 나에게도 고민거리가 생기 군 한다. 한국애들은 한국말을 술술 해내는데 나는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말문이 막힐때가 많았다. 학 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는데 어머니의 말씀 “우리 아들도 한국에 가서 몇 년 살 면 한국말을 배우지 않아도 잘할수 있을거야.”라고 하시는 것이였다. 정말 언어는 환경이 중요한 것 인가하고 고민을 하다가도 대신 나는 중국말을 더 잘한다는 리유로 자신을 소화시키군 한다. 다른 친 구들은 부모들의 한국돈벌이로 한국에 잘 나간다는데 나는 엄마 아빠가 다 공무원이다보니 한국에 갈 기회가 다른 친구에 비해 많이 적은것이다. 그럴때 마다 항상 엄마 아빠가 공무원이라고 어깨를 어쓱 거리던 나도 섭섭할때가 많아 우리는 한국에 갈수 없는가고 엄마 아빠를 졸랐다. 작년 여름방학 심양한국학교의 조직으로 나는 행운스럽게도 한국 땅을 밟아보게 되였다. 24시간 배를 타고 갔는데 배우에서 지루할뿐 마음이 들떠 조금도 휴식을 취하지는 못했다. 배에서 내릴 때 는 온몸이 나른하고 조금도 맥이 없었다. 부두에서 한국 땅이 어떻게 다른가 뚫어지게 지켜보았는데 별로 다른 점이 없었다. 공작인원들과의 수속처리과정에서야 나는 한국분들의 언어에서 친절한감 을 느끼게 되였고 타향을 밟았다는 느낌이 없을 정도로 마음이 따뜻했다. 나는 해관에서 나오자마자 두 팔을 벌리고 “후”하며 깊은 숨을 들이켰다. 바다바람이 불어오는데 따뜻하고 상쾌한 기분 심양의 기후와는 판다를 정도였다. 하늘은 더푸르러 보이고 공기는 더 상쾌해 보인다. 한국땅을 밟은 나 엮시 기분이 상쾌해졌다. 배우에서의 피로도 저리가라였다. 3일간의 한국생활에서 나는 기사 아저씨의 친절함, 가이드 누나의 붙임성 가는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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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의 조선어문시간에만 볼수 있었던 한글, 밑반찬이 따라가는 한국 전통음식, 우리 조선족을 상 징하는 곳곳을 잊을수 없었다. 더 아쉬운것은 한국으로 돈벌이 나간 외삼촌이 특히 2일 청가를 맡고 나에게 다니지 못한 한국구경을 시켜주겠다고 했는데 일정관계로 더 남아있지 못한것이다. 한국에서 돌아온 후 나는 한 달이나 엄마 아빠에게 기회가 되면 또 보내달라고 졸랐다. 또한 외삼 촌이 보내준 한국 물품을 친구들한테 자랑하면서 한국갔다온 자랑을 늘어놓았다. 언제야 또 한국 땅 을 밟을 수 있을가? 그리운 한국땅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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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고 있는 민족의 뿌리-우리말

<최우수상> 경북도지사상 길림시 조선족 중학교 중등 2학년 문 예 영

백여년전, 우리 조상님들은 망국노의 설음을 한고 허기진 배를 달래며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아리 랑고개에 깊숙이 남겨진 우리 조선민족의 발자국, 오늘도 그 눈물겨운 이야기는 우리들의 가슴을 세 차게 흔들어줍니다. 살길을 찾아 헤메이던, 지극히도 가련하고 불쌍했던 조선민족이건만 그들이 지 켜낸것은 진정 우리 민족에게만 속하는 우리의 말과 우리의 글이였습니다. 그를 토대로 중국땅에 뿌 리를 박았지만 오늘날은 그 민족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현실에 우리 후대들의 마음속에는 아픈 상처가 남겨졌습니다. 200만인구의 소수민족–조선족이지만 우리들의 말과 우리들의 글을 가르치는 조선족학교의 존재 만으로도 저는 항상 벅차있었습니다. 그 존재로 하여 우리말은 천대만대 이어져 나갈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으니깐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저는 산재지구의 조선족중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였습니다. 글쎄 교과서가 온통 중국어로 되여있는게 아니겠습니까?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교실로 들어선 저는 또 한번 놀랐습니다. 온 과당을 중국어로 강의하시는 선생님, 대화를 중국어로만 하는 친구들, 기가 막힌것은 우리 말로 대화도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전학온 첫날은 저한테 있어서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독특한 언어가 바로 우리 말입니다. 그토록 자랑스럽던 우리 말이 이 못난 후대들때문에 점차 빛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훈민정음의 창제자이신 세종대왕의 후예로서 자기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에 정척해서 다른 나라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것도 서러운데 자기들의 언어도 제대로 지킬수 없게 되였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비참합니다. 조선족학교를 다니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마음속 한구석의 허전함은 감출수가 없습니다. 이런 우리들이 조선민족의 후대라고 떳떳이 말할수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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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목청껏 웨치고싶습니다. 우리 말을, 우리 글을 아껴야 한다고. 사랑해야 한다고. 흔들리고 있는 민족의 뿌리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민족의 넋을 이어가야 한다고! 과연 저의 웨침이 200만 조선족들의 심금을 울릴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저는 웨치고싶습니다. 아름다운 우리 말, 위대한 우리 말을 지키고 빛내여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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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어머니-지구를 살리자

<최우수상> 경북도지사상 할빈시 조선족 제1중학교 중등 2학년 김 천 룡

드넓은 우주에는 많은 행성들이 떠돈다. 그 행성중에서 특별히 아름다운 행성이 있다. 푸른 옷을 입 고 새하얀 비단옷을 걸쳤다. 이 행성은 자원이 풍부하고 자연풍경이 아름다우며 해양 또한 넓다. 이 행성은 60억이나 넘는 인류를 품고 있다. 이는 바로 우리의 어머니–지구이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이 지구는 정말로 안전할까요? 희망적인지, 락관적인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구는 영원히 안전할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뉴스에서 지진으로 무너진 빌딩을 보거나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화산 분화 등을 보고서는 슬며시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2011년 3월 일본에서 지진과 쓰나미,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등이 잇달아 터지자 대부분 사람들 이 불안에 떨었고 지구가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구상에 지금껏 볼수 없었던 거대한 지진이나 화산이 일어나 지구 한쪽이 뚝 떨어져 나가는 건 아닐까?’ ‘지구가 더 이상 숨을 쉬지 못하고 죽은 땅이 되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이런 공상과 같은 수많은 상 상과 불안증으로 걱정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는 화산 분화, 지진, 전염병, 화 재, 태풍, 토네이도와 같은 재해 사고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과학이 발달하고 국가가 미리 미리 대비를 한다지만 재해 사고는 해마다 더 거대해지고 빈번해지고 있다는게 놀라울뿐이다. 그렇게도 아름답던 우리 어머니, 지구는 현재 너무 파괴되여 볼품이 없게 되였다. 하지만 더 기가 막힌것은 우리 어머니를 이렇게 만든 죄수는 다름아닌 그의 자식–인류들이다. 어리석은 인류는 생태 환경을 파괴하고 맹목적으로 어머니의 모든것을 가져간다. 지구는 지금도 열이 펄펄 끓고 있고 곳곳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 공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으로 공기가 더러워지고 기름과 세제가 섞인 더러운 물이 흘러서 강이나 바다가 더러워지고 쓰레기가 점 점 쌓여서 땅이 더러워졌다. 무분별한 개발에 일회용품 사용과 대기오염으로 지구가 아프다. 하루에 버려지는 음식물들의 량도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많은 량이 버려지고 있다. 세계 여러 환경단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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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병들어가고 있다고 그렇게 외칠 때 우리들이 그 심각성을 깨닫고 우리 자연의 훼손을 막았어 야 했는데 우리들은 자연은 자연적으로 치유된다는 착각을 하고 살았던것 같다. 알다싶이 현재 우리 어머니–지구는 병들어가고 있다.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4계절이 뚜렷한 우리 나라가 계절구 분이 잘 되지 않고 일회용품과 일회용기저귀와 비닐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는 과연 이렇게 우리의 어머니–지구를 잃어서야 되겠는가? 어머니는 살릴 방도는 없겠는가? 물론 있을 것이다. 우선 생태계가 파괴되는것은 막아야 한다. 지구 온난화, 이는 얼마나 엄중한 문제인가, 귀여운 바다사자, 바다코끼리, 펭긴 등이 점점 량극에서 소실되고 있는 것을 막아야 한다. 우리의 어머니–지구를 살리려면 분류배출과 재활용을 통해서 쓰레기를 줄여야 하고 가까운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야 할것이다. 앞으로는 우리가 날마다 쓰는 에너지를 태양, 바람, 파도에서 얻을 거다. 이러한 에너지는 환경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량이 줄지도 않아 얼마든지 쓸수 있다. 쓰레기의 양 이 세계에서 우리가 일등이다. 깨끗한 환경에서 살려면 분류해서 버리고 재활용을 하고 음식도 먹을 만큼 차리고 남기지 말아야 할것이다. 무엇보다 환경을 위해서는 서로 도와야 한다. 환경, 에너지 고갈, 대체 에너지, 식량 문제 등 모든 것이 어렵게 느껴지지만 어쩌면 실천하지 않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남의 일로 치부하거나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을 버리고 좀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동참할 필요가 있다. 지구를 살리기 위한 방법들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작은것 하나라도 실천하는 생활이 환경을 변화시 킨다. 안쓰는 코드는 뽑아놓는다거나 수입품에 의존하는 소비 생활을 줄이고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 는 것 등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요즘은 일회용컵, 나무젓가락, 일회용접시 등은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비닐제품, 우유곽, 종이류 등 철저히 분리수거를 하고 있다. 지구를 살리기 위해 우리 청소 년들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일까? 알다싶이 나무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방출시킬수 있다. 우리 같이 나무를 많이 심자! 그 나무들이 수림이 될수 있게! 수토류실을 방지할수 있게! 우리 같이 길가의 쓰레기를 줏자! 우리의 지구–우리 어머니의 모습이 예뻐지도록! 지금부터 어머 님께 자식된 도리를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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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이의 바램

<최우수상> 경북도지사상 오상시 조선족 중학교 중등 2학년 박 지 연

일요일이여서 단짝인 민영이가 우리집으로 놀러왔다. 그래서 우리둘은 컴퓨터를 한참 놀다가 서로 리모컨을 앗아쥐면서 여러채널을 분주히 돌리면서 볼만한 텔레비전 프로를 찾고 있는데 마침 중앙뉴 스프로에 남북한 이산가족상봉의 장면이 나와 우리는 거기에다 체널을 고정시키고 같이 화면을 주시 해보았다. 백발의 사람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오열을 터뜨리는 장면에서 내 눈시울도 민영이의 눈시 울도 그냥 따라서 붉어져갔다. 피는 물보다 진하여서일가 다른 내용이 바뀌여져도 우리 둘은 관계치 않고 누가 먼저라 할새가 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저렇게 년세 많은분들인데 그리웠던 형제자매들을 다시 한번 만날 기회가 더는 없겠지?" "저렇게 백발의 분들인데 가망있겠나?" "새파란 젊은 나이에 갈라져서 지금 로인이 다 되여서 만난 그 기분이란 어떨가? 한번이라도 만났 으니 평생의 원이나마 껐겠지?" "그러게, 하지만 이제 또 인차 이별을 해야 하니 그 기분 또한 참담하지 않을가? " "그러게말이야, 얼마나 반가웁고 또 얼마나 애절했을가?" "저분들은 말이야, 살아생전에 언제인가는 꼭 만날날이 있을거라 하는 희망의 줄을 끊지 않고 꿋꿋 이 살아오셨겠지?" "그랬었겠지. 얼마나 기다렸던 시간들이였을가? 드디여 만나보았으니…" "왜 남북한에서는 서로 자유로이 왕래를 못하게 하지? 우리 중국에서도 이젠 한국나들이가 훨씬 편해졌는데도 말이야." "그러니깐,. 한민족끼리 왜서이지? 형제자매 부모자식들이 저렇게 생리별을 당하니 말이야…" "우리가 정치에 대해서 뭘 알겠냐만, 아무튼 이해할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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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민영이는 제법 어른이라도 된듯 혀까지 끌끌 차면서 국가 민족하면서 큼직하고 굵직한 이야 기들을 쉴새없이 주고받았다. 하지만 어른들의 세상을, 아니 정치같은것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우리 에게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냥 물음표만 많아지고 커져갈 뿐, 어떠한 답안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민영이가 머리를 돌려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러다가 문득 민영이가 머리를 돌려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지연아, 넌 우습게 여길지도 모르지만 난 말이야 언제부터인지 이런 화면이 늘 머리속에 떠오르 는거야. 엄마 아빠와 같이 음식점에 가서 맛나게 오손도손 저녁식사를 하는 장면을. 남북한 이상가족 들은 저렇게나마 만날날이라도 있는거잖아, 그렇지만 오래전에 이혼한 우리 엄마 아빠는 나와 같이 음식점에 가줄 희망은 완전 제로인거야. 하지만 왜 이런 생각이 자꾸 갈마드는지 모르겠어, 저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떠오를때마다 정말 속이 상하고 슬퍼지기만 해. 그래서 이런 허황한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이 저절로 지지리 싫어지고 미워져, 넌 멍청해 하면서 나절로 욕까지 하고 그런단다.…”. 갑자기 화제를 바꾸며 하는 민영이의 점점 풀이 죽어 하는 말에 나는 뭐라고 해야 할 말을 찾지 못 해 갈팡질팡했다. 더우기 그의 얼굴에 그늘이 짙어져 가서 나는 마치 나한테 무슨 책임이 있기라도 한 듯 불안해지기까지 했다. 민영이는 그런 애였다. 겉으로 보면 그냥 밝아보이고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 이지만 마음속어딘가에는 언제나 그늘이 져있는 애여서 금세까지 기분이 좋다가도 혼자 우울의 늪에 서 방황할때가 많았다. 그러기에 단짝인 나도 때로는 말을 주의하고 가려서 해야 했다. 더우기 그애 앞에서 엄마와의 재밋는 이야기는 근본 입밖에 낼수가 없었다. 수업시간에도 멍하니 자기생각에 잠겨 있을때가 많아서 선생님들이 김민영 하고 이름부르며 주의를 주면 그는 화들짝 놀라하거나 무안해하 거나 혹은 무표정하고 덤덤해 하고 그랬다. 소학교4학년때 전학하여 온 민영이와 나는 초중에 올라 와서도 한반에 다니고 있는 딱친구인데 지금까지 난 그애의 엄마를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민영이가 보여주어서 그애 엄마의 사진을 보았는데 미인은 아니지만 어딘가 꽤나 매력적이고 호감이 가는 얼굴이였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해서 그는 아빠와 같이 지내게 되였는데 아빠가 한국으로 나가는 바람에 할머니가 계시는 우리학교로 전학하게 되였다는것을 후에야 알게 되였다. 그리고 할머니와 고모는 민영이가 엄마와 전화련락하는것조차 감시해서 처음엔 엄마의 전화을 더러 받았더랬는데 지금은 그 련락마저 끊겼다는것, 그리고 엄마가 떠나간 후 지금까지 한 번도 엄마를 본적이 없다고 민영이가 말해서 알았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학교 등교길에서 나를 기다리던 민영이가 전에없이 환한 얼굴로 이야기주머니 를 풀었다. “지연아, 나 말이야, 어제 저녁에 이상한 전화 받았다! 나의 어머니라고 하는 분한테서 전화가 왔지 뭐야. 나도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 같아서 서먹해지기만 하였어. 하지만 웬지 인차 정이가. 아마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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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서이겠지! 나한테 말도 다정하게 하고 하구. 아무튼 기분이 그냥 둥둥 떴지뭐야. 가슴이 설레인다는 말을 나는 이제야 알 것 같아! 그래서 어제 저녁내내 기분 좋았어, 오늘도 물론 너무 좋구” “정말이야? 듣다 좋은 소식이네 그래 언제 너 보러 온대? 왜 여태 연락을 하지 않았대? 엄마가 많이 보구싶지 ?.”나도 덩달아 기뻐서 민영이에게 련주포를 들이대며 즐거운 물음들을 쏟아냈다. “연계를 하고싶었대, 그런데 할머니나 고모가 전화번호를 다 바꾸고 그랬지, 그리고 나 여기로 오 고해서. 여태 한국에서 일하고 있었대. 지금 중국 청도에 왔는데 래일이면 우리 여기로 나보러 온다고 그래. 난 정말 꿈인지 진실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 그의 눈빛에서나 목소리에서 어머니를 보고싶어하는 갈망과 기쁨이 그득 흘러넘치고 있었다. 8년 동안 보지 못했던 엄마를 보게 된다는 흥분에 민영이는 완전히 들떠있었다. 마음속으로만 그리워했던 엄마, 목소리마저 알아듣지 못하는 엄마, 밤마다 얼굴을 그려봤다는 엄마, 일곱살때 갈라져서 8년만 에야 본다는 엄마, 그런 엄마가 얼마나 보고싶었을가 한통의 전화로 정이가고 마음의 흐뭇하고 부풀 어오르니 어른들이 소위 말하는 천륜이라는게 따로 있는가부다 하는 생각까지 저절로 생겨졌다. 민영 이는 엄마를 만난 이후로 정말 많이 명랑해지고 밝아져있어 나까지도 어깨가 으쓱 올라가는것 같았다. 물론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더 진해져있었지만 전의 그런 그리움하고는 질적으로 다른것이였었다. “넌 남북한이 통일되리라 믿니?” 민영이가 갑자기 다짜고짜로 나에게 묻는 것이였다. 꼭 나의 대 답을 듣고야 말겠다는 의지까지 넣어서. “글쎄다.여태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생각해보아도 모르겠지만, 선생님이 그랬잖아, 지구상 에서 한 개 민족이 두개나라로 갈라진 건 우리조선민족밖에 없다구. 남북한에서 열심히 노력들 하고 있다니 언제인가는 통일되겠지!” “그렇지? 저렇게들 애간장이 타고 눈물이 바다를 이루는데 꼭 통일되여야만 해. 갈라져서 그리워 하고 있고, 생리별을 당한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게 인지상정이지. 하지만 남북한은 언젠가는 꼭 통일되겠지만, 우리부모님들의 재결합은 우리 할머니의 말을 빈다면 그야말로 물건너간거야. 그러 니 나의 그 꿈은 그냥 하나의 반짝이는 비누거품일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하지만 지금 나의 바램은 엄마나 아빠가 다 행복했으면 좋겠어. 어느 누구는 잘살고 어느 누구는 힘들게 살고 그렇게 말고 다 들 행복하게 여유롭게 잘 살고 건강하면 하는 것을 비는 밖에 더 무리한 욕심을 더 부리지 않을거야!” 그의 목소리 어딘가에 떨림이 섞여있었다. 텔레비전 화면을 다시 응시하고 있었지만 그의 눈동자 에는 우수의 그림자도 조금 비쳐져있고 행복의 그림자도 내비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갈증 같은 것도 얼른거리고 있어 좀체로 분간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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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수라 불리는 나, 준서

<우수상> 화성시장상 St Matthew's Primary School 초등 6학년 김 준 서

내 이름은 김준서이다. 나는 지금 10살이고 영국 리즈시에 있는 기독교 학교인 St Mathew Primary School 6학년에 다니고 있다. 우리 가족은 1년반전 아빠의 일로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이곳도 내가 태어난 스웨덴의 스톡홀름처럼 조용하고 아름다운 도시이다. 내가 태어났을때 할아버지 께서는 스웨덴의 한자어인 ‘서전’에서 상서로운 ‘서’자를 사용하여 스웨덴에서 태어난 훌륭한 사람이란 뜻으로 준서라고 이름 지어 주셨다고 한다. 나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났고 총 9년동안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에서 살았다. 여러번의 유 치원과 학교를 옮겼다녔고 현재 4개 언어를 말할 수 있다. 북유럽에서는 내 이름을 준서가 아닌 욘수 라고 불렀다. 대부분의 유럽에서는 영어의 J를 Y로 발음하는 사실을 알기도 전인 아기때부터 자연스 럽게 나는 욘수라고 불려졌다. 물론 우리집이나 한글학교에서는 준서라고 부르지만 평소 유치원이나 학교에 다닐때 내 이름은 욘수 였다. 나는 욘수라는 이름이 싫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이름이 하나 이지만 나는 항상 두개의 이 름을 가질수 있기 때문이다. 이름도 두개이고 사용하는 말도 두개였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이 항상 나 를 부러워 했고 좋아해주는 친구가 많았다. 내 친구들은 대부분 금발머리에 파랗거나 초록눈을 가진 친구들이다. 나보다 키도 크고 힘도 쎄 보인다. 나는 아빠의 일로 여러번 이사를 해야했고 (스웨덴-덴마크-핀란드-영국) 항상 새로운 친구를 사 귀었고 새로운 언어를 계속 배워야 했다. 6살때 덴마트에 갔을때 덴마크말을 알아듣고 스웨덴말로 말하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한 유치원 친구가 나무 막대기로 내 얼굴을 찌른적이 있다. 그래서 6일동 안 병원에 입원했는데 같은 병실에 있던 덴마크 친구랑 친해져서 말을 금방 배울수 있엇다. 그 이후로 나는 어느 나라에 가던지 말을 빨리 배우려고 노력했고 그래서 지금은 4개나라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스웨덴에서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영국에 와서는 5학년으로 전학을 하게 되었다. 처음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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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을 입게되어 신기했지만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였고 백년도 넘은 학교이지만 한번도 한국학생이 없었기 때문에 아침마다 학교갈때 걱정이 많았다. 하루는 노르웨이에 있는 초등학교의 교장선생님이 우리학교에 방문하셨는데 담임선생님께서 우리반에 스웨덴에서 온 학생이 있다고 소개시켜주셨고, 나는 스웨덴말로 노르웨이 교장선생님과 이야기를 하였는데 우리반 친구들은 내가 스웨덴어를 잘 하 는것이 신기했는지 박수를 쳐 주었다. 그 이후로 친구들은 나에게 관심을 지게 되었고 J발음을 ‘ㅈ’으 로 하는 영국에서는 나를 준수라 부르게 되었다 1년반이 지난 지금은 영어로 수업하고 친구들과 대화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고, 6학년 반장을 하게 되었다. 지난 추수감사절에는 학교에서 하는 예배 시간에 한국학생 처음으로 전교생 대표 기도를 하 게 되었다. 담임 선생님과 다른반 선생님들께서 발음이 정확하고 목소리가 좋다고 칭찬해 주셨다. 최 근에 본 SATs 시험에서는 전교에서 수학성적이 가장 좋아서 선생님들이 많이 칭찬해 주셨고 친구들 도 부러워 하였다. 처음에 걱정을 많이 했지만 이제는 영국에서 학교생활이 너무 재미있고, 친구들이 많이 생겼고, 중학교에 가서 새로운 선생님들과 친구들을 만나는것이 기대된다. 나는 유럽에서 태어나 여러 나라를 이사했지만 아빠는 항상 한국말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다 른 나라로 이사할때마다 한국학교에 다녔고 집에서도 꼭 한국말을 사용했다. 어렸을때는 왜 한국말을 배우는지 잘 몰랐는데 이제는 친구들이 한국말을 잘 하는 나를 보면서 많이 부러워 한다. 영국학교에 서 디스코 파티때 강남스타일 노래가 나왔는데 친구들이 한국 노래라고 해서 놀랐고, 내가 조금 이해 한다고 해서 더 놀랬다. 한국말을 계속해서 배운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국 에 가서 더 많이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영국에 계속 살 수 있을지 아니면 다른 나라로 또 이사를 하게될지 잘 모르겠지만 이제는 다 르게 불려지는 내 이름이 이상하지 않다. 왜냐면 나라마다 사람마다 다르게 발음할 수 있다는것을 알 았기 때문이다. 우리 아빠도 내 친구 이름을 이상하게 발음한다. 이제는 지구속에 다른 나라와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것을 알았고, 서로다른 생각과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것을 배웠다. 다른 나라로 가게 된다면 어떤 이름으로 불려질지 궁금하지만 그래도 내 이름은 김 준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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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우수상> 화성시장상 Westbourne Primary School 초등 5학년 한 서 영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우리 학교에서 다른 아시아 나라의 문화와 옷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어볼 수 있는 아시안 이브닝 이라는 행사가 열렸다. 내가 다니는 영국 학교에는 인도, 스리랑카, 모리셔스, 한국, 중국같이 아시아 에서 온 아이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에는 한국 가족이 네 가족 밖에 없지만 코리안 클럽이 있다. 그래서 수요일에 영국 친구들과 한글도 배우고 태권도, 사물놀이, 부채 만들기도 했고 한국 음 식도 만들어 보는 시간이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 선생님들이 우리 학교를 보러 여러번 왔었기 때문에 그때마다 나는 한국에서 온 선생님들에게 학교를 구경시켜 주며 통역도 해주었다. 그래서 우리 학교 에선 한국을 모르는 아이가 없다. “어머 이 음식은 어느 나라 것이니?” 나는 한국 음식이라며 그리고 나도 한국 사람이라고 자랑스럽 게 말했다. 그리고 잡채에 대해 설명도 해주고 스시가 아니라 김밥이라고 알려 주었다. 코리안클럽 선 생님이 아시안 이브닝에 한복도 가지고 와서 친구들이 입어볼 수 있게 도와 주었다. 친구들이 너무 이 쁘다고 좋아했다. 확실히 다른 어떤 나라보다 한국 것이 최고로 빛났다. 그러나 한복과 잡채를 설명해 주고 있었지만 가장 기다리는 것이 한 개 남아 있었다. 바로 아리랑 노래에 맞추어 만든 부채춤이었다. 처음 선생님께서 여러 나라의 전통춤도 준비하라고 하자마자 나 와 동생과 엄마는 함께 부채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당연히 1등 2등 3등은 없을 거라고 하 셨지만 나는 잘하고 싶어서 열심히 연습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어떤 춤이 가장 멋있었는지 수다를 떨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 연습을 했다. 부채를 한번에 쫙 펴야 하는데 부채가 커서 자꾸 떨어뜨렸고 예쁘게 꽃을 만들어야 하는데 엄마랑 나랑 동생이랑 키가 다 달라서 동그란 모양을 만들 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아빠가 동영상을 찍어주었는데 나의 로봇같은 표정을 보자 울고 싶었다.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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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얼마 안남았는데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매일 매일 연습하자 훨씬 좋아졌다. 드디어 기다렸던 우리 순서가 되자 가슴이 미친듯이 두근거렸다. 두근 두근 두근…무대 밑에서 아이들이 모두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리랑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나는 꿈을 꾸는 것처럼 춤에 빠져버렸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우리 셋이서 부채로 파도도 만들고, 나비도 만들고, 꽃도 만들었다. 예쁜 분홍색 부채가 날아다닐 때마다 사람들이 박수를 쳐줬다. 연습을 할 때는 진짜 길었던 것 같았던 춤이 금새 끝나버려서 너무 슬펐다. 절을 하며 부채춤을 끝내자마자 음악이 강남스타일로 바 뀌고 우리 학교에 다니는 한국 남자 아이들이 모두 무대로 올라와 함께 춤을 췄다. 춤이 끝나자 시간이 멈춘듯이 아무 소리가 없다가 갑자기 누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귀가 깨질 것처럼 박수가 터졌다. 우리가 성공했다. 다음날 학교에 가니 선생님과 친구들이 모두 너무 멋있었다고 말해주었고 조회 시간에 우리의 모 습도 보여주었다. 나와 내 동생은 하루종일 너무 신이 났고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 너무 자랑 스러웠다. 나는 어릴 때 항상 내가 영국에서 태어났으니 영국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크면서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 너무 좋다. 토요일 아침 일찍 가는 한국 학교도 너무 힘들었지만 이렇게 한글도 배 우고, 합창반에서 한국 노래도 배우고, 소고춤도 배우고, 5학년 때는 사물놀이도 배우고 점점 재미있 어진다. 지난 주에는 한국 학교에서 선생님께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라는 속담을 배웠다. 내가 만약에 한국 학교가 힘들다고 다니지 않으면 겉모습은 한국 사람이지만 진짜 한국 사람이 되지 못할 것이다. 나는 해리포터를 쓴 조앤롤링처럼 아주 재미있는 책을 쓰는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다. 그리고 한글을 열심히 공부해서 한글로도 재미있는 책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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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그립니다

<우수상> 화성시장상 천교령 조선족학교 초등 5학년 최 홍 철

어머니없이 아버지와 함께 한시간도 벌써 5년철이 됩니다. 어머니는 나를 학교에 입학시키고 몇달 도 되지 않아 울며겨자먹기로 웬 낯모를 아저씨를 따라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어느날 밤이였습니다. 대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려왔습니다. 아버지는 부랴부랴 옷을 걸치고 누구신가고 묻자 파출소에서 호구조사를 한다고 했습니다. 집에 키가 훤칠한 아저씨 세 분이 들어섰습니다. 그러더니 호구부를 보자고 했습니다. 찬찬히 훑어보시던 아저씨는 어머니더러 옷을 입으라고 재촉했습니다. 이렇게 어머니는 한마디 부탁도 남기시지 못하고 우리곁을 떠나가셨습 니다. 내가 아버지팔에 동동 매달려 어머니를 찾자 며칠만 있으면 돌아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 만 한달 일년 이년 오년이나 지난 지금도 어머니소식 감감합니다. 점점 철이들면서 나는 어머니께서 북조선에서 가만히 건너왔다가 아버지를 만나 생활하시다가 호구조사에서 발각되여 다시 북조선에 건너갔다는것만 대충 알게 되였습니다. 어머니가 없는 빈자리는 너무나 컸습니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밥 짓고 내가 학교에 간 다음 일밭으로 나가셨습니다. 토요일 일요일저녁이면 내가 벗어놓은 옷들을 깨끗이 빨아주고 목욕도 시켜주었습니다. 어머니몫까지 다하시는 아버지를 보면 불쌍하고 가엾어보였습니다. 나는 오늘도 빨리 커서 아버지를 도와줄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생각을 가져봅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이 들면 어머니를 꼭 찾아 우리집에 모셔와서 아버지 어머니 나 세식구 오손도손 재미나게 살고싶습니다. 아버지꼐서는 묵묵하 앉아 담배를 즐겨 피우시는데 술과는 인연이 없는것 같습니다. 가끔 명절때 친척들이 모여앉으면 할수없이 술 둬잔 기울이는데 얼굴이 새빨갛습니다. 친척들이 남자 혼자서 아 이를 키우느라 힘드는데 새엄마를 맞아들여라면 버럭 화를 내시며 “애 엄마 언제라도 돌아올지 모르 는데 무슨소리하는가”하며 버럭 화를 냅니다. 아버지 성난 모습에 나는 두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속으 로는 그래도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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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어머니는 나를 1학년에 입학시키고 서로 번갈아가며 데려오고 데려갔습니다. 학부모회의 때도 다른집들은 한분만 참가했지만 우리 집만은 례외였습니다. 꼭꼭 두분이 참석하셔서 마지막까지 남아서 내 정황을 상세히 묻고 선생님을 도와 반청소도 깨끗이 해주었습니다. 어머니는 구지욕이 강했습니다. 중국어를 모르는 어머니셨기에 저녁이면 나더러 학교에서 배운 병음을 읽게 하면서 기억하시군 했습니다. 아버지는 이러는 어머니를 대견해하시며 “당신 아들과 한반 다니면서 배우면 어떻겠소.?” 하고 우스개소리를 하면 어머니는 “그럼 나도 홍철이처럼 래일부터 학교에 다니겠어요.”라고 받아넘겼습니다. 어머나는 인사성도 매우 밝았습니다. 집에 색다른 음식이 생기면 꼭꼭 할머니집에 나를 앞세우고 갖다드렸고 선생님들이 언제 시간이 있어 들에 다니겠느냐며 가을달래를 캐서는 비닐봉지에 꼭 넣어 학교가는 내 책가방에 넣어주면서 선생님께 드려라고 부탁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집을 떠나신후 아버지는 말문이 무거워졌습니다. 학교에서 내가 100점 맞은 시험지를 들고 와서 아버지께 보이면 “자만하자말고 계속 잘해야 한다.”한마디면 끝납니다. 그리고 하시던 일 만 수걱수걱 하십니다. 아버지마음을 리해하면 리해할수록 어머니가 더 보고싶고 그립습니다. 정말 한바탕 소리내서 울고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생각하면 안타깝고 쓸쓸해서 입을 악물고 참습니다. 어데선가 어머니도 아버지와 나를 애타게 기다릴것만 같아 마음이 아파납니다. 나는 이 사회를 원망합니다. 살길 찾아 온 사람들이 가정을 이루고 재미있게 살고 있는데 왜서 모질게 억지로 데리고 간단말입니까? 무슨 정책인지 정책도 사람이 만드는것인데 고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는 우리 어머니가 너무나 보고싶습니다. 다른 애들처럼 어머니라고 소리높이 불러보고 싶습니다. 전화로 목소리라도 들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이 세월이 너무나 무정합니다. 나는 오늘도 래일도 어머니를 그리고 또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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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친구

<우수상> 화성시장상 장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초등 5학년 장 철 진

2014년 1월 10일에 외할머니와 희성이가 한국으로 갔다. 한집식구가 모여서 살겠다고 영영 떠났다. 희성이와 나는 원래 한 학급에서 공부하였다. 희성이는 나보다 한달 먼저 태여난 외삼촌의 아들이 다. 그래서 나는 희성이를 형님이라 불러야 했다. 형님은 수업시간에 손장난을 잘 친다. 그래서 숙제 가 뭔지 모를 때가 많았다. 그럴때마다 “철진아, 오늘 숙제는?”라고 묻군 하였다. 처음에는 잘 알려줬 지만 매일 물으니 나도 짜증이 날 때가 많았다. 형님은 어려서부터 한국에 오래 있었고 또 방학만하면 한국에 가기에 우리말을 아주 잘 했다. 나는 형님하고 같이 놀면서 우리말을 많이 배웠다. 내가 말을 장소에 맞지 않게 하면“그렇게 말하면 례절이 없어.”하면서 배워주군 하였다. 형님은 매번 한국에서 올때면 나에게 한국놀이감이나 책을 선물로 주 었다. 나는 형님이 준 놀이감을 가지고 놀고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반급에서 친구들과 모순이 생길때면 형님은 나와 한편이 되어주었다. 그럴때마다 나는 형님이 있어 어깨가 으쓱 올라가군 하였다. 그리고 반장, 대대장을 선거할때에도 형님은 꼭 나에게 투표해주 었다. 형님말로는 “철진이가 내 동생인데 철진이를 선거안하면 내가 멍청이지.”였다. 형님과 외할머니는 중국에서 살았고 할아버지, 외삼촌, 외숙모는 한국에서 살았다. 그러다보니 형님의 공부는 우리 학교 교원인 엄마가 책임지게 되었다. 매일 하학하면 형님과 나는 엄마의 학급 에 가서 숙제를 하였다. 다른 선생님들은 퇴근종소리가 울리면 집으로 돌아가지만 엄마는 퇴근하지 못하고 형님의 숙제를 검사하고 틀린 문제를 고치게끔 하였다. 모르는 문제를 알때까지 가르쳐주시고 형님의 글씨체, 자세 등에 대해 엄격히 요구하셨다. 그러다가 말을 듣지 않고 말썽을 부리면 형님은 엄마한테 혼난다. 그래서 형님은 엄마를 따르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매일 저녁다섯시쯤이면 우리 가 배고파한다고 간식을 챙겨주군 하였다. 빵이나 과자같은 것을… 간식도 항상 형님에게 먼저 주고 형님에게 큰 것으로 골라주고… 그래서 공부도 그닥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빠가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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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를 마중오면 형님을 집까지 데려다주군 하였다. 엄마는 이 일을 한두달도 아니고 5년을 해왔었다. 엄마는 어떤 때 형님을 “큰아들”이라고 불렀다. 그럴때마다 형님은 빙그레 웃기만 하였지만 나는 엄마 를 잃어버리듯한 느낌이 들었다. 엄마가 도와주어서인지 형님의 공부성적은 줄곧 우수하였다. 이렇게 5년이나 나를 동무해주던 형제친구인 희성이가 한국으로 가니 난 뭔가 잃어버린듯한 생각 에 마음이 허전할 때가 많았다. 이젠 하학하면 집에 와서 혼자서 숙제를 하고 숙제할 때도 “철진아, 오늘 숙제는?”, “철진아, 만년필?…” 하며 나를 못살게 굴던 형님이 오늘도 그리워진다. 엄마도 “희성 이가 곁에 있을 때는 귀찮았는데 지금은 보고싶다.”며 버릇처럼 외우군 한다. 지금은 형님이 보고싶을때마다 인터넷에서 만나 이야기하군한다. 그래도 함께 지지고볶던 그때가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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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사랑

<우수상> 화성시장상 천교령 조선족학교 초등 6학년 황 진

아빠, 엄마 품을 떠나 외할머니 집에와 공부한지도 어언간 3년철이 됩니다. 외할머니는 올해 62세지만 년세에 비해 퍽 젊어보입니다. 한번씩 학부모회의에 참석하시러 올 때 면 앞머리를 가리마 내서 곱게 빗어 넘기도 핑크색핸드빽을 오른손에 걸고 우아한 옷차림으로 교실 에 들어서는데 교실이 다 환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야, 연지할머니 너무 젊어보인다.” “연지할머니 신사같다.” 친구들은 두 눈이 휘둥그래서 쑥덕쑥덕거리며 나만 쳐다봅니다. 이러는 친구들앞에서 나는 일부러 어깨를 으쓱거리며 큰 소리로 ‘’할머니 여기 내 자리입니다. 어서 앉으십시오.” “그래, 그래, 알았다.” 할머니는 점잖게 내 자리에 앉습니다.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엄마는 내가 돌이 지나자 할머니 집에 보내고 아빠와 함께 저 멀리 돈벌려 가셨답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엄마 목소리를 듣지 못했고 얼굴 한번 보지못했습니다. 아빠는 주 말마다 전화로 내 정황을 묻고 명절이면 옷도 가끔 보내시고 맛있는 구운김도 부쳐보내오군 합니다. 외할머니는 내 마음속의 영원한 태양이고 빛입니다. 가끔 할머니께서 집을 비우면 집안은 썰렁하 고 스산한데 나는 문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눈이 빠지게 할머니를 기다립니다. 학교에서 운동회를 열 때 친구들이 부모등에 업혀 뛰는것을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길고 짧은것은 대보 아야한다며 나를 둘쳐업고 달리기도 하는데 꼴찌는 면할뿐만아니라 학용품도 수두룩이 탑니다. 몸이 아파 자리에 드러누우면 추울세라 더울세라 이불깃을 여며주고 어렸을적 내가 어리광부렸던 이야기 를 재미나게 들려주기도 합니다. 할머니는 부지런하고 깨끗한 분이십니다. 8월26일은 우리학교 개학첫날이였습니다. 할머니는 학 교에 오셨다가 수도칸에 흙물이 튕겨 얼룩진것을 보시고 가루비누를 문질러가면서 깨끗이 닦아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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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할머니. 그만 놔두십시오.” “무슨 소리냐. 개학첫날부터 깨끗한 환경에서 공부하면 더 잘된다.” 할머니는 앉았다 섰다하시며 부지런히 손을 놀렸습니다. 이마에서는 구슬같은 땀방울이 뚝뚝 떨 어졌습니다. “할머니 누구도 닦지 않는것을 할머니께서 왜 닦으십니까?” “그렇다고 그대로 뇌두겠니. 보기 구차하게.” 할머니는 옹근 두시간이나 품을 들여 유리는 알른알른하게 콩크리트바닥은 매끄매끌하게 닦아놓았 습니다. 세면실에 들어왔던 다른반 친구들도 입을 딱 벌렸습니다. 할머니는 이처럼 더러운것을 보면 참지 못하고 두 팔소매를 걷고 나서기에 우리 이웃들은 할머니를 보배할머니로 청합니다. 할머니는 책임감이 강한 분이십니다. 전번학기 현에서 조직한 2중언어 경연에서 저는 현 1등의 영예를 안아왔습니다. 그때 마침 반주임선생님께서 한주일동안 회의하러 가셨기에 선생님께서는 할머니께 나를 부탁하셨습니다. 하여 할머니는 나의 지도교원이 되였습니다. 처음에 잘 외우지 못 하자 같이 읽으면서 한구절 한구절 할머니따라 읽게 하였고 아침저녁 짬만 있으면 집에서 큰 소리로 읽게 하면서 련습시켰습니다. 이야기 내용을 다 외우고 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행동을 하니 외웠던 대사가 깜박깜박 잊어지군 했습니다. 내가 속상해서 울먹울먹해하자 할머니는 머리를 쓰다 듬으시며 “괜찮다. 사람은 무슨일에서나 단술에 배불리려 하면 옳지 못하다.”고 격려해주셨습니다. 행동을 하며 내용을 줄줄 외우자 얼굴표정이 밝지 못하다며 거울앞에서 련습시키기도 했습니다. 드디여 경연날자가 돌아왔습니다. 할머니는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풍성한 밥상을 차려주었습니다. 나도 여느때와 달리 부랴부랴 세수하고 밥상에 마주앉았습니다. “밥을 든든히 먹어야 차멀미를 하지 않는다.” 할머니 말씀이 옳았습니다. 1시간이나 달리는 뻐스 에서 한번도 속이 울렁거리지 않았습니다. 경연무대에 올라서서도 훈련을 잘 받아서그런지 몇십쌍의 눈길이 나한테 쏠렸지만 나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조선말로 이야기가 끝나자 한어말 이야기가 시작되 였습니다. 갑자기 대화부분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으면 우물쭈물하지 말고 대담하게 아래내용을 이야기해라.” 할머니말씀이 귀전에 울렸습니다. 나는 침착하게 아래내용을 이야기 했습니다. 장내에서는 우렁찬 박수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98.77점이란 평심결과가 발표되였습니다. 할머나는 나를 얼싸안아주었습니다. 나의 마음은 고무풍선마냥 둥둥 떠올랐습니다. 야속한 세월속에서 내 눈에 비친 할머니의 기력은 점점 못해지는것 같습니다. 허리는 작년보다 더 구부정해진것 같고 머리는 더 희끗희끗 해진것 같습니다. 내가 만약 마술사라면 장생불로약을 만들 어 할머니께서 영원히 젊고 영원히 예쁘게 영원히 건강하게 살게 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할머니 오래오래 복 많이 받으며 살아가시길 이 손녀는 두손 모아 기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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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그리는 마음

<우수상> 숙명여대 총장상 천교령 조선족학교 초등 6학년 구 애 화

아버지는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한국으로 떠나셨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언제 돌아옵니 까?”고 내가 물으면 어머니는 서글픈 표정으로 “하늘에 비행기가 뜰 때 아버지가 돌아온단다.”라고 말씀하시군 했습니다. 어렸을적 어머니 말을 곧이 들은 나는 놀다가도 하늘에서 우르릉 소리가 나면 손채양을 하고 비행기가 날아오는가 주시해보았습니다. 하지만 비행기가 날아올적도 있었지만 아버 지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점점 나이 들면서 어머니께서 나를 속였다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나와 어머니는 외할머니집과 이웃으로 살고 있습니다. 외할머나는 가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 불쌍한것아, 언제 애비 사랑 받아보겠니?”하며 주절주절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앞섶에 챙겨와서 주기도 합니다. 어머니께서 일밭에 나가셨다 저녁늦게 돌아오면 가마목에 밥을 챙겨 놓고 나와 함께 어머니를 기다려주기도 합니다. 요즘들어 어머니는 항상 수심에 잠깁니다. “어머니, 휴식하면서 일하세요. 어디 편찮으십니까?” “아니다.” “왜서 아버지께서는 전화마저 오지 않습니까?” “아마 일이 바쁘신모양이다.” 짤막하게 말씀하시는 어머니를 쳐다보니 불쌍한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 한사람만 믿고 가정을 굳 게 지켜가는 어머니, 아버지 전화한통에도 그렇게 기뻐하시고 그렇게 감격하시는 어머니마음을 아버 지는 이렇게도 몰라줄가? 나의 마음은 납덩이처럼 무거워집니다. 드디여 어느날 갑자기, “따르릉…” 전화벨이 귀맛좋게 울렸습니다. 틀림없는 아버지 전화였습니다. 어머니는 넘어질듯 달려가 전화기를 귀에 댔습니다. 나도 뒤질세라 어머니 얼굴에 나의 얼굴을 바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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댔습니다. “여보, 왜 이렇게 소식이 없었어요.” “응…” 말을 더듬는 아버지 웅글진 목소리입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빨리 말씀해봐요.” “ 회사에서 봉금을 주지 못해 이번달에도…” 말문을 채 끝맸지도 못하시고 먼저 저쪽에서 핸드폰을 놓습니다. 전화기를 맥없이 내려놓는 어머니 두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가랑가랑 맺혔습니다. 아버지가 너무나 원망스럽습니다. 이번달까지 이핑계 저핑계 대면서 3달이나 일전 한푼 보내주시 지 않았습니다. 돈을 제때에 보내주시지 못하면 전화라도 자주 하시면서 어머니와 나의 마음을 풀어 주던지 돈을 벌지 못하면 돌아라도 오던지 참 답답합니다. 점점 희미해지는 아버지 모습, 자나깨나 아버지를 그리는 나와 어머니 마음을 하늘이나 알아줄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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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뚝뚝한” 아버지

<우수상> 단국대 총장상 천교령 조선족학교 초등 4학년 박 철

나의 아버지는 엄숙하고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계시기에 나는 아버지를 그닥 즐겨 따르지 않는편입 니다. 다른 애들이 아버지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것을 보면 의문이 듭니다. 내가 소학교 5학년일 때 일입니다. 잠결에 몸이 우수수 떨려 자리에서 일어나 “어머니 왜 이렇게 춥습니까?”라고 어머니를 부르자 어머니는 놀라시며 무슨일인가 물었습니다. 어머나는 이마를 짚어 본다 더운 물을 떠온다하며 분주히 돌아쳤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체온을 재시더니 약 한알을 주면 서 “이 약 먹고 계속 낫지 않으면 래일 아침 병원으로 가보자꾸나.”하시고는 어머니를 호들갑을 떤다 고 핀잔주시더니 다시 자리에 누웠습니다. 어머니는 근심어린 표정으로 나를 한참이나 지켜보시다가 내가 눈을 감자 자리에 드는것이였습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것같아 의문스럽기만 했습니다. 과연 이튿날 아버지말씀처럼 춥지도 않고 밥도 맛있었습니다.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아버지는 대나무처럼 곧고 강의한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라면서 할아버지를 많이 흠모하셨답니다. 할아버지께서 돈벌러 다니셨을 때 아버지는 가정의 중임을 혼자서 떠메고 할머니를 도우셨는데 어느날 갑자기 막내동생이 토하면서 열이 날 때 두말없이 등에 둘쳐업고 병원으로 줄달음쳐가더랍니다. 할머니께서 병원에 도착하니 의사는 조금만 늦었어도 큰 일 친다면서 아버지를 어른스럽다고 칭찬하시더랍니다. 학창시절에도 공부를 잘해 반에서 반장임무를 맡고 모든일에 발벗고 나서더랍니다. 어느 친구가 밥을 먹지 못했다며 집에 데려와 자기 밥 그릇의 밥을 덜어주고 학용품도 아껴쓰다가는 자기보다 더 없는 애한테 주기도 하고 몸이 불편한 친구를 도와 직일당번도 서주고 여러면에서 모법을 보여주었답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앞에서는 칭찬하시지 않고 뒤에서는 싱글벙글 하셨답니다. 아마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많이 닮으신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늘 나에게 바른 생각, 바른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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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번 학교에서 대청소를 하게 되였습니다. 나는 비록 반에서 반급위원이였지만 어지러운 일에 선뜻 나서는 편이 아니였습니다.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며 어느 일이 쉬울가 살피였습니다. 철민이는 물을 길어오고 경철이는 유리 닦고 민수는 바닥을 쓸고 나만은 일감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쓰레기통도 깨끗이 씻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멍하니 할일 없이 서있던 나는 할수없이 수도칸에 갔습니다. 오래동안 쓰레기를 담았던 통이라 냄새가 지독했습니다. 나는 코를 막고 먼저 쓰레기를 던지고 다음 물을 넣고 비자루로 빙빙 돌아가며 문질렀습니다. 나중에 다시 손걸레로 반 들반들하게 닦아냈습니다. 학부모회의에 참석하시고 돌아오신 아버지께서는 “사람은 무슨일에서나 꾀를 부리지 말고 착실하게 해야 하느니라”고 말씀하시면서 회의에서 선생님이 나를 칭찬하시더라며 만면에 웃음을 띄우셨습니다. 사실 아버지는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속은 정이 찰찰 차넘치는 자상하고 자애로운 아버지라는것 을 나는 재삼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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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와 현실

<우수상> 단국대 총장상 천교령 조선족학교 초등 6학년 권 혁

세월이 류수라고 6년동안의 소학교생활이 바야흐로 끝나게 됩니다. 졸업을 앞두고 나는 중학교에 갈 생각과 더불어 아름다운 미래에 대하여 꿈꾸어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가 나에게 “학생의 장래는 어디에 있는가?”고 묻는다면 나는 “나의 장래는 지금에 있다!” 고 우렁차게 대답할것입니다. 옛날에 다음과 같은 우스운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두사람이 한창 한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장차 난 땅 천무를 마련해가지고 몽땅 벼를 심을테요.” 다른 한사람은 그 말을 받아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장차 난 오리 천마리를 길러 네 밭의 벼를 몽땅 먹어버리게 할테요.” 화가 치민 첫번째 사람은 두번째 사람의 멱살을 거머쥐고 법관을 찾아가 따지려고 하였습니다. 때마침 한 수재가 찾아왔습니다. 두 사람은 수재더러 시비를 갈라달라고 하였습니다. 수재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이 땅을 마련하여 벼를 심고 또 당신이 오리를 키우며 또 나는 과거시험에 급제하여 현령으로 된 다음 다시 봅시다.” 그렇습니다. 미래를 공상하는것은 쓸모없는것일뿐더러 우리는 미래를 똑똑히 알아낼수 없는것입 니다. 어둠속에 장벽이 가로놓여있고 그 앞에 다가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런 장벽이 있는지 없는지 알길이 없는것입니다. 이처럼 미래를 파악하지 못한다고 할때 우리는 현실을 파악하여야 하지 않겠 습니까?” 에디슨의 실험실에서 한 학생이 장차 자기는 어떠어떠하게 하련다고 청산류수처럼 열변을 토하였 습니다. 그 말을 묵묵히 듣고난 에디슨은 한마디밖에 말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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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학생은 지금으로부터 시작해보시오﹗” 인생이 드넓은 옥토라고 할 때 현실의 분투는 쟁기인것입니다. 이 옥토에서 풍만한 열매를 따내려 고 한다면 이 쟁기로 부지런히 일하고 또 일하여야 할것입니다. 왜냐하면 현실의 분투가 없다면 미래 의 풍작이 이루어질수 없기때문입니다. 당신의 시간은 하루? 한달? 일년? 10년? 20년? 아니면 50년입니까? 아니, 아닙니다. 당신은 그저 순간밖에 가지고있지 못합니다. 그 시각이 바로 현실인것입니다. 현실이 없이 어찌 미래를 동경할수 있으며 현실이 없이 어찌 미래의 풍작을 기대할수 있겠습니까? 현실을 틀어쥐였다면 장래도 틀어쥐게 됩니다. 현실을 틀어쥐여야만 우리의 장래에 성공이 있게 되 는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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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빚기

<우수상> 단국대 총장상 서탑 조선족 소학교 초등 6학년 명 옥 윤

명절이나 대사때면 우리 집에서는 흔히 송편을 빚어 먹는다. 하얗고 녹진녹진하면서 구수한 팥속 이 들어있는 송편은 생각만 해도 군침이 흐를 정도다. 할아버지 팔순 생신을 앞두고 어머님이 송편을 만든다기에 나도 집적 송편을 빚어 보고 싶어 손씻 고 나섰다. 눈같이 새하얗고 반지르르한 쌀가루 반죽에 구수한 냄새가 솔솔 풍기는 팥속. 재료는 생각보다 간 단하였다. 나는 어머님이 송편을 빚는것을 자세히 관찰하고는 속으로 “어, 별거 아니네” 생각하고는 나도 도 전하였다. 우선 반죽을 한주먹 떼여 두 손바닥에 얹어놓고 원구모양으로 돌돌 굴린다음 중간을 꾹꾹 눌러 움푹 들어가게 하였다. 다음 팥속을 듬뿍 넣고 아가리를 꼭꼭 문질렀다. 쪽배모양을 내기 위하 여 한참을랑 쭈멀락 쪼몰락거렸다. 어머님은 나의 작품을 보시더니 싱글벙글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우리 윤이 큰일이구나! ”나는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여자는 송편을 예쁘게 빚어야만 멋진 신랑을 만나는데 만든 떡을 보니 못생긴 신랑한테 시집가게 될것 같다. 이걸 어쩌지? ” “에잉~” 나는 피식 웃었다. 아무렇지도 않은것 같이 지나가려 했는데 막상 그 말을 듣고나니 가슴이 왠지 콩닥거려나고 신경이 쓰이여 저도모르게 송편을 이쁘게 만들려고 무척 애를 썼다. 그렇지만 결코 생각대로 쉽지 않았다. (어머님 말씀이 농담이겠지… 아니, 어쩜 맞을지도 몰라. 분명 잘났고 멋있는 우리 아빠를 만난건 사실이지...)생각하면서 나는 하나같이 똑같게 만든 송편과 부지런하고 고운 어머님의 얼굴을 번갈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어쩌면 겉은 하얗고 깔끔하며 속은 구수하면서도 따뜻한 송편과 우리 엄마가 어딘가 닮은데가 있 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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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우수상> 단국대 총장상 천교령 조선족학교 초등 6학년 박 연 미

4월 20일 오전 8시 2분, 또 한차례의 대재난이 사천성의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5년 만에 또 다시 찾아온 불청객이였다. 실종된 아이를 찾아헤매는 어머니의 부르짖음, 부모를 잃은 아기의 울부짖음, 페허로 뒤덮인 야안 시의 황량함에 모두의 가슴은 찢어지는것만 같았다. 너무나 잔인한 광경에 텔레비죤을 끄고 눈을 감고 귀를 막아보았지만 막으면 막을수록 아기의 울음소리가 더욱 생생하게 귀가에 메아리쳤다. 방송도 컴퓨터도 온통 사천성에 대한 애도의 물결로 처넘쳤다. 지진의 급습과 더불어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우수한 사람들과 사연들이 빗발치고 있다. 한 로쇠한 어머니가 자신의 늦둥이 아들을 구하려고 200여근이 넘는 강철을 들어제끼고 아들을 무 사히 구해냈다. 왜소한 몸집의 나약한 녀자에임도 불구하고 오직 아들에 대한 사랑의 힘으로 들어낸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녀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사천성의 한 녀기자가 자신의 결혼식을 준비하다 말고 웨딩드레스를 입은채 긴급뉴스를 전하기 위해 사건현장에 직접 달려갔다고 한다. 직업에 대한 열정과 사랄으로, 무작정 웨딩드레스를 입고 뉴스를 전하는 그녀의 사진이 전해지자 사람들은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눈 신부”라고 불렀다. 한 4살나는 어린 소녀가 지진으로 인해 많은 부상자들이 병원에 붐비는것을 보고 교통사고로 잃은 다리의 고통도 잊고 병실을 비워주었다고 한다. 의사의 만류에 그는 “아저씨, 저는 괜찮아요.”라는 한 마디를 했다고 한다. 붕대를 감고 환하게 웃는 소녀의 사진은 모나리자의 미소보다도 더욱 아름답고 매력적이였다. 수많은 사건에서 엿볼수 있는 그것은 사랑, 바로 애정이 안니가 싶다. 아들을 사랑하는 힘으로 직업 에 대한 사랑으로,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로 그들은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는것이다. 사랑—가장 아름답고 따스한것이 아닌가 싶다 사랑이 있기에 서로 더불어 살아가고 서로 의지하고 서로 아끼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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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 한국사랑

<우수상> 단국대 총장상 Newington 초등학교 초등 6학년 변 예 원

다양한 민족이 모여 함께 사는 세상 다양한 모습의 얼굴로 만나 마음을 이해하며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는 하나된 세상 나는 호주사람 나의 부모님은 한국에서 온 사람 나는 밖에서 쓰는 말은 영어 집 안에서 쓴느 말은 한국어 호주에서 태어난 우리에게 한국사람이라고 하네 한국의 민속의상은 한복 한국의 음식은 김치 한국인의 피부색은 갈한국에서는 어른께는 존댓말 친구나 나이 어린애한테 반말 호주에서는 어른께 반말 그리고 친구나 어린애한테도 반말 이제는 한국 사람이 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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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어서 돌아오세요

<우수상> 단국대 총장상 천교령 조선족학교 초등 6학년 박 춘 영

“어머니…” 딸애의 부름소리를 듣고 계시나요? 빚재촉에 시달리다못해 시름시름 앓는 아버지와 저를 버리고 어데론가 떠나가신 어머니, 어머니는 우리를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저는 어머니품이 그 얼마나 그리 운지 몰라요. 다른 동무들은 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아기자기 재미나게 살지만 우리는 왜 갈라져 살아야 하나요? 돈, 돈이 무엇이길래 어머니는 우리를 버리고 어데로 가셨는지요? 어머니가 우리곁을 떠나신지도 어언간 3년이 다 되는군요. 하지만 어머닌 편지 한장 보내주지 않고 전화 한통 해주지 않는군요. 시름시름 앓던 아버지는 어머니께서 떠나가신 그날부터 몸져누웠 기에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은 모두 저한테 맡겨졌지요. 처음으로 처음으로가 얼마나 많은지 미처 헤 아릴수 없었어요. 한낱 소학생에게 이처럼 많은 일들을 밀어맡기고 어머니는 말없이 어데론가 떠났 군요. 채소를 썰다가 손가락을 베기도 하고 따가운 솥에 손을 데우기도 하고 채를 볶다가 기름방울에 얼굴을 데우고 죽을 쑨다는게 솥밑에 까맣게 태워붙이기도 했어요. 아버지는 탄내나는 죽을 드시면 서도 잘했다고 머리를 끄덕이셨어요. 이럴때마다 저는 아버지가 더 불쌍하고 가엾어보였어요. 저는 속으로 자신을 저주하면서 꼭 아버지께 맛나는 음식을 대접시키려고 다지고 또 다지였어요. 노력은 헛되지 않았어요. 학교종합실천과에서 “감자볶음채”를 정한시간내에 제일 먼저 제일 맛나게 만들어 학년조에서 일등의 영예를 따냈어요. 영예증서를 받던날, 아버지와 저는 서로 부둥켜안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몰라요. 매일 저녁이면 아버지와 저는 전화통옆을 떠나지 않았어요. 혹시 어머니께서 전화오지 않을가 눈이 까매기다려요. 하지만 어머니는… 어머니를 이처럼 애타게 기다리면서도 저는 학업을 한시각도 잊은적이 없었어요. 집에 돌아가면 해야 할 일이 많기때문에 학교에서 수업시간이면 정신을 가다듬어 선생님의 강의를 귀담아들었고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면 그것을 풀기전에는 절대 그만 두지 않았어요. 아버지께서 심장병이 발작할때면 장밤 뜬 눈으로 아버지를 지켜주기도 했어요. 이때 만약 어머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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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계셨더라면…… 이런 간고한 생활속에서도 나는 학기마다 “삼호학생” “꼬마수리개” 영예를 안아왔 어요. 나는 이 기쁨을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나누고 싶었어요. 하지만 어머니가 없는 이 시각 저는 또 습관적으로 어머니 사진을 하염없이 드려다보았어요. 뜨거운 눈물이 저도모르게 두볼따라 줄줄 흘러 내렸어요. 저는 흐느끼면서 어머니 노래를 불렀어요. “세상에선 엄마가 좋아 엄마있는 아이는 보배같지요. 엄마 품에 안기면 행복 끝없어요. 세상에서 엄마가 좋아 엄마없는 아이는 풀과 같지요…” 어머니 이 딸의 자랑찬 모습을 보고싶지 않은가요? 아버지의 몸 형편을 알고 싶지 않으신가요? 저도 인젠 컸으니 어머니와 함께 손을 맞출수 있어요. 우리 함께 돈을 벌어 빚을 물고 아버지 병을 고쳐드 리자요. 예, 어머니 어서 돌아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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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짝꿍 이비(Evie)

<우수상> 단국대 총장상 St Matthew's Primary School 초등 2학년 김 한 서

나는 영국 리즈시에 있는 St Mathew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는 김 한서 이다. 내 짝꿍의 이름 은 이비(Evie)이다. 우리는 1학년때부터 같은반이고 매일매일 내 옆에 앉는다. 이비는 얼굴이 정말 하 얗고, 머리는 곱슬머리이고, 얼굴에 주근깨가 많이 있다. 나는 이비의 머리 색깔이 단풍처럼 이쁘다. 내 짝꿍 이비는 수학을 정말 잘하고 책을 많이 읽는다. 운동도 잘하고 힘도 세서 나를 업고 다닐때 도 있다. 그리고 우리반에서 인기도 제일 많다. 하지만 이비는 매일 내 옆에 앉고 나를 많이 도와준다. 내가 영어를 못했을때 이비가 조금씩 도와주었다. 우리는 매일 점심도 같이 먹는다. 내가 음식을 먹다가 남기면 이비는 음식을 남기면 안된다고 말한다. 이비는 착하고 무엇이든 잘하는 똑똑한 친구이다. 하지만 받아쓰기는 내가 이비보다 잘한다. 1학년 때는 이비가 나보다 작았는데 2학년때는 이비가 나보다 커졌다. 아마도 내가 우유를 많이 안마셔서 그런거 같다. 내일부터는 이비랑 우유를 다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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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격의 나무

<우수상> 단국대 총장상 천교령 조선족학교 초등 6학년 리 춘 길

나의 마음속에는 감격의 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이 나무가 푸르싱싱하게 자랄수 있는것은 선생님이 정성 스레 키워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소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줄곧 고모집에 있게 되였고 반주임은 허옥준 선생님이셨습니다. 선생님은 나에게 감격을 준 고마운 분이십니다. 교사절이 다가오니 선생님사랑에 더욱 목이 멥니다. 선생님은 언제 한 번 낯을 찡그리지 않았고 언제나 자애롭게 언제나 상냥하게 나를 타일러주고 차근차근 가르쳐주었습니다. 나도 한때는 전자유희청에 다니면서 방황한적이 있었습니다. 성적이 락하산을 탔고 친구들과 언성을 높였 고 제때에 집에 들어 가지 않았습니다. 전자유희청에서 저를 발견한 선생님은 저의 손목을 잡아끌었습니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여기서 만나다니” 나는 선생님께서 되게 혼낼줄로만 알았습니다. “누구나 사춘기를 넘을 때는 하지 않던 일들을 하기 마련이다. 선생님은 네가 제꺽 제 궤도에 들어설수 있다고 믿는다. 선생님과 약속.”나는 마지못해 선생님과 깍지걸이를 했습니다. 하지만 방과후 시간만 되면 눈이 자연히 그 쪽 골목으로 눈길이 갔고 책을 펼쳐들어도 온통 전자유희 생각뿐이였습니다. 자신을 억제할수 없었던 나는 또 넘지 말아야 할 문턱을 넘었습니다. 고모는 락루하시면서 한국에 가서 일하는 어머니한테 미안하다고 하셨 습니다. 그 이튿날부터 나는 할수없이 선생님집에서 생활하게 되였습니다. 아침 학교에 출근할 때면 같이 출근하 고 저녁이면 같이 퇴근하고 저녁밥을 먹고는 같이 책상에 마주앉았습니다. 모르는 문제가 꼬리에 꼬라를 물 었습니다. 기초지식이 엉망이였습니다. 선생님은 교과서를 펼치고 례제부터 가르쳐주고 문제를 풀게 하였습 니다. 나절로 문제를 맞게 풀면 선생님은 “춘길이 머리는 참 총명하다. 이 정도로 계속 하면 기말시험에 우수 한 성적을 꼭 안아올수 있다.”고 신심을 북돋우어주었습니다. 선생님의 감독밑에서 학습에 점점 취미를 붙이 게 되면서 저녁 밥만 먹으면 자연히 책상앞에 마주 앉게 되였습니다. 차츰차츰 선생님이 곁에 계시지않아도 나절로 숙제를 할수 있었고 선생님께서 내주신 복습문제도 제법 풀수 있게 되였습니다. 학교에 가서도 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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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기면서 자연히 손을 들고 발표하는 차수도 점점 늘어갔습니다. 고모가 선생님 두손을 꼭 잡고 고맙다고 연신 허리굽혀 인사드리자 선생님은 응당한 일을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말시험을 며칠 앞둔 어느날이였습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니 목이 아프고 머리가 천근무게나 되는듯 했습니다. “빨리 몸 온도를 체크해라. 얼굴색이 까맣다.” 선생님은 놀라시며 체온계를 넘겨주었습니다. 아니나다를 가 38도를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화뜰 놀라시며 빨리 병원에 가보자고 재촉했습니다. 의사는 요즘 감기가 심하다면서 약으로는 잘 치료될것같지 않으니 점적주사를 맞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말시험이 눈 앞인데 나는 속이 바질바질 탔습니다. 나의 마음을 꿰뚫어보신 선생님은 “시름놓고 주사를 맞아요. 학교에 서 복습한 내용은 집에 돌아와서 보충수업을 하면 될수 있어요.” 선생님께서 위안해주니 다소 위안이 되였 습니다. 선생님은 온 종일 애들과 씨름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나를 가르치랴 집일을 하시느라 팽이 돌듯 분 주히 돌아쳤습니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선생님께서 이끌어준 덕분에 나는 주렁진 열매를 안아왔습니다. 학기초에 35등자리에서 기말시험에 10등으로 껑충 뛰여올랐습니다. 선생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였습 니다. 선생님은 축하한다면서 나에게 탁상등도 선물로 사주었습니다. 순간 너무도 감격되여 눈물이 두볼타 고 주르륵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남자대장부는 강해야 합니다. 엎어졌던 자리에서 다시 일어날수 있어야 하고 무슨일에서나 최고를 위해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선생님의 의미심장한 말씀을 나는 마음속 깊이깊이 아로새겼습니다. 새학기부터 허옥준선생님은 다른반을 맡게 되였습니다. 하지만 내가 계속 선생님집에 있겠다고 우겨서 지금도 선생님께 애를 먹이고 있습니다. 얼굴에 항상 웃음을 짓고 이것저것 정성스레 돌봐주시는 선생님은 마치 자애로운 어머니같습니다. 초중에 입학하여서도 천교령학교에서 다니게 된다면 나는 계속 선생님 집 에 있겠다고 말할 예산입니다. 자애로운 선생님의 사랑을 함뿍 먹고 내 마음속의 감격의 나무는 오늘도 우쩍우쩍 자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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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와 나

<우수상> 단국대 총장상 시드니 천주교 한글학교 초등 6학년 이 지 나

아침과 밤처럼 다른 한국어와 영어 물과 불처럼 다른 한국어와 나

영어는 쉽지만, 왜 한국어는 어려울까? 이유를 알고싶다 호주에서 태어나서 어려울까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안해서 어려울까

연필과 지우개처럼 다른 한국어와 영어 평화와 전쟁처럼 다른 한국어와 나

부모님은 젓가락과 비빔밥 나는 포크와 피쉬앤 칩스 한국에서 자란 부모님은 호주에서 자란 나를 한국말로 사랑해 준다

가족처럼 같은 한국어와 영어 사랑처럼 녹아 든 한국어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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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할머니도 있어요

<우수상> 단국대 총장상 장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초등 1학년 김 소 혜

“엄마 운이네 집에 어제 산타할머니가 다녀가셨대요. 장갑을 선물로 주셨대요. 우리 집에는 언제 오시나요?” “ 혹시 오늘 오시려나?” “산타 할머니도 정말 계세요? 그럼 우리 집에는 누가 오실가요?” “글쎄?” 하학하여 집에 돌아온 나는 엄마 뒤를 따라 다니면서 쉴새없이 물었어요. 온 저녁 산타할아버지와 그 선물 생각이 머리에서 맴 돌았어요. 저녁밥을 먹은후 엄마는 종이로 산 타할아버지를 만들겠냐고 물었어요. 날 친구해주는 엄마가 너무 좋았어요. 빨간종이로 산타할아버 지 옷이며 모자, 신을 접고 얼굴의 흰 수염은 흰 종이로 오려 붙였어요. 엄마가 만든 수염은 길죽했는 데 저는 일부러 돌돌 말았다가 펴서 꼬불랑수염을 해서 붙였어요. 그리고 산타할아버지께 뾰족구두 를 만들어 신겼어요. 허리띠는 노랑색으로 예쁘게 붙여주구요. 그리고 가방에서 사탕도 꺼내서 손에 놓아드렸어요. 다 만들었는데 산타할아버지는 아직도 오시지 않았어요 “근데 엄마, 우리가 여기로 이사 와서 산타할아버지께서 내가 여기에 있는줄 모르시면 어떡하죠?” 엄마는 웃는 얼굴로 나를 보면서 말씀했어요. “아실거야, 착한 우리 소혜가 어디 있는지는 꼭 아실거야.” “엄마, 산타 할아버지는 우리 집에 어떻게 들어와요. 키도 없고 문도 창문도 다 잠겼는데..” “ 소혜가 본 책에서는 어떻게 오신댔어?” “그런데 우리 집에는 굴뚝도 없잖아요. 수도물처럼 수도관따라 들어오는걸가? 아니면 하수도구멍 으로? 아니면 벽뚫고 들어오시는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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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들 따라 눈이 그냥 내려오는것이였어요. 엄마가 빨리 자라고 하실때마다 눈을 더 똑바로 떴어요. “아니예요. 엄마 전 꼭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릴거예요. 어떻게 생긴 분이신지 모자를 벗기고 보고 싶 어요. 얼굴에 난 수염을 당겨도 보고 싶어요.히히~~” 옆에서 책을 보고 계시던 아빠가 웃으시며 말씀했어요. “허허허…산타할아버지가 일찍 오시기는 해야겠다. 우리 공주가 저렇게 기다리는데…” 기다리다가 기다리다가 소르르 잠들어 버렸어요…. 이튿날 아침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객실에서 침실에서 두리번두리번…나의 선물을 찾았어요. 그러다가 반짝 눈에 띄였어요. “야호! 나에게도 선물 주셨어요. 엄마, 아빠!” 나는 예쁘게 포장한 선물꾸러미를 뜯어보았어요. 내가 좋아하는 쵸코레트랑 과자랑 책이랑… 그리 고 어제 내가 만든 산타할아버지와 빨간 종이가 나왔어요. 저번처럼 또 나에게 메모를 남긴거죠 “소혜가 만든 산타할아버지가 넘 맘에 들어. 특히 뾰족구두와 꼬불수염이 참 좋았어. 사탕도 참 달 고 맛있었어. 고마워~~ 지난 1년동안 착하게 잘 커주는것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었단다. 소혜는 짱이 야! 래년에도 착한 애가 될거지! - 소혜를 사랑하는 산타할아버지,산타할머니가” 너무 좋아서 이 메모를 높은 소리로 읽고 또 읽었어요. “우와, 우리 공주 너무 부럽구나!” 아빠, 엄마도 밝게 웃으셨어요 “우리 집에는 두 분다 오신거구나, 야호! 내가 짱이라 했어요. 래년에는 꼭 만나서 감사하다고 말 해야지.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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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뽀뽀 가족

<우수상> 아주대 총장상 장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초등 1학년 김 경 운

우리 집엔 엄마, 아빠, 나 셋이 살고 있습니다. 엄마랑 아빠는 둘 다 학교 선생님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는 나한테 뽀뽀를 해줍니다. “아들 사랑해. 엄만 네가 있어서 행복하단다.” 엄마의 뽀뽀로 하루가 시작됩니다. “운이 아빠 사랑해. 당신이 있어서 행복해요.” 엄마는 아빠도 뽀뽀해줍니다. 처음엔 엄마가 아빠를 뽀뽀해주는 것이 싫었습니다. 나한테만 해주면 좋겠 는데 엄마는 우리는 가족이니까 나보고도 아빠한테 뽀뽀를 해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난 싫었지만 아빠 한테도 뽀뽀를 했습니다. “경운아 여기 봐봐.” 또 엄마가 부릅니다. 보나마나 아빠랑 안고있을건데. 엄만 애교가 넘쳐나서 탈입니다. 쩍하면 아빠보고 안아달라고 합니다. 아빠는 힘장사여서 엄마와 나를 동시에 번쩍 안아 올립니다. 아빠가 안아주면 너무 좋 습니다. 엄마가 뽀뽀해줘도 좋습니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매일 매일 뽀뽀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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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후의 나

<우수상> 아주대 총장상 장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초등 5학년 황 재 우

오늘 저녁 나는 침대에서 누워서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 20년후면 나는 어떻게 될가 ? 그러면서 꿈 나라에 빠져들었다 . 문득 깨여나 보니 텔레비전도 책상도 시계도 벽도 모두 유리로 변하였다 .나는 그만 깜짝 놀랐다. 갑자기 우아한 할머니 한분이 나에게 다가왔다 .눈에 익어보이면서도 낯설어보이는분이였다. “누구세요 ?”라고 내가 묻자 그분은 웃으시면서 “너의 어머니다”라고 대답하시는것이였다. “우리 어머닌 이렇게 늙지 않았어요 !” 그러다가 문뜩 생각났다. 내 나이 33살이였던것이다. 이때 벽에 걸려 있던 자동안내기가 입을 열었다. “황박사님, 과학빌딩으로 출근해야지요.” 종이장처럼 가볍지만 포근한 옷을 갈아입은 나는 거리에서 날수 있는 비행자동차를 타고 사무실이 있는 과학빌딩으로 갔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젊은 비서가 나를 보고 오늘이 로보트실험을 완성하는 날이라고 알려주었다. 여러 조수들과 함께 실험실에 도착하니 크고작은 로보트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조립이 끝나고 푸른 색단추를 누르자 어른키만한 로보트는 잽싸게 밥을 짓기 시작했다. 그 솜씨는 료리사들도 울고갈 지 경이였다. “재우야 ,아침밥을 먹고 학교로 가야지 .” 라는 어머니의 부름소리에 나는 꿈속에서 깨여났다. 너무 나 실망한 나머지 어머니보고 좀 있다 깨워주실것이지 하면서 불평까지 부렸다. 그러면서도 한편 웃 음집이 흔들흔들했다. 20년후면 나는 어엿한 젊은이가 되겠지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하여 위대한 과학자로 되는 꿈이 생 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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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돗개

<우수상> 아주대 총장상 매하소학교 초등5학년 최 지 혁

오늘 나는 학교도서실에서 우연히 진돗개가 옛주인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읽게 되였다. 대뜸 머리 속에는 영원히 잊을수 없는 지난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1학년때 일이다. 나와 외할머니는 엄마의 요청으로 한국에 가게 되였다. 손꼽아 기다리던 아들을 만난 엄마는 나를 금이야 옥이야 하며 갈수 있는 명승지를 모두 구경시켰다. 갓 의엿한 학생으로 된 선물이라고 하셨다. 그날도 유람로선에 따라 놀이공원과 자연불고기집에 갔다. 먼저 놀이공원에 가서 중국에서 놀아보 지 못했던몫까지 실컷 놀고 길거리에서 파는 30센치가량 되는 장난감 칼도 하나 샀다. 그리고는 한 국에서 유명하기로 이름난 자연불고기집에 가서 식사를 하였다. 숯불로 구운 불고기라 입에서 살살 녹는것이 참으로 맛있었다. 정말 소문그대로다. 나는 배터지도록 먹고 써비스로 올라오는 수박까지 도 정신없이 먹어댔다. 워낙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나라 먹자마자 나가 놀고싶어 엄마한테 칭얼 대자 엄마는 나의 청을 들어주셨다. 신바람이 난 나는 방금 산 칼을 차고 까불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이 자연불고기집은 주위 환경을 매우 예쁘게 꾸며놓았다. 가산도 있고 폭포도 있으며 오솔길도 예 쁘게 포석해놓았다. 나는 마치 손오공이 수렴동에 온듯 하였다. 끼가 많기로 귀여움을 받던 나는 칼을 빼들고 “하-하-”소리까지 내면서 손오공흉내를 내기 시작하였다. “웡웡–웡웡–” 갑자기 난데없는 개짖는 소리가 났다. 깜짝 놀란 나는 그만 그 자리에 못박힌듯 서버렸다. 살며시 돌아다보니 갈색털에 뾰족한 귀, 꼬리는 왼쪽으로 말린 커다란 개였다. 쇠사슬로 매여놓은 개였지만 너무도 무섭게 짖는 바 람에 나는 화가 났다. 그리고 이상했다. 그래서 발을 탁 구르며 소리쳤다. “왜 나만 보고 짖는거야, 정신이 나갔어? 칫!” 그리고는 곁에서 돌멩이 하나를 주어 던졌다. 그러자 그 개는 길길이 날뛰며 나에게 덮쳐들었다. 비록 쇠사슬로 매여놓았지만 몸부림치며 덮쳐드는 바람에 나는 뒤걸음을 쳤다. 나는 간담이 서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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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면서 식은땀이 쫙 났다.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제격이라고 순순히 지날갈 내가 아니였다. 이번에 는 돌멩이를 한주먹 움켜쥐고 눈을 감고 마구 던졌다. 던질수록 개는 더욱 미친듯 하였다. 그런데 별 안간 “깽—”하는 소리가 나더니 사위가 쥐죽은듯 조용해졌다. 살그머니 눈을 뜨고보니 그 개는 코피 가 난채 쓰러져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겁이 더럭 난 나는 슬그머니 집안으로 들어갔다. 창백해 진 나의 얼굴을 본 엄마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그저 도리질을 하였다. 그리고는 의 기소침하여 한쪽 구석에서 놀았다. 영문을 모르는 엄마는 더는 묻지 않고 계속 외할머니와 이야기장 단에 도끼자루 썩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 개가 나에게 맞아 죽을 줄은 정말 몰랐다. 주인의 말에 의하면 개 먹이를 주러 갔다가 그 사태를 발견하고 급히 동물병원에 갔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려 허사였다고 하였다. 개는 사람의 눈보 다 코가 더 중요하다고 하면서 주인은 못내 슬퍼하였다. 주인의 자초지종을 듣고나서야 그 개는 진돗 개인데 일정한 훈련을 거쳐 길이 들어 총이나 흉기같은것을 감시하는 특종의 개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내가 그 놀이감 칼을 가지고 놀았기때문에 그 진돗개가 나에게만 죽기내기로 덮쳐들었던것이였다. “참, 아깝고 불쌍한 개였다.” (만약 내가 돌멩이질을 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내가 솔직했더라면…) 나는 후회막급이였다. 그러나 세상에는 후회하는 약은 없었다. 결국 나는 내가 한짓을 이실직고 하 였고 뼈저리게 잘못을 뉘우쳤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엄마는 나 대신 주인께 손이야 발이야 빌 었고 외할머니도 빌었다. 나중에 한화 50만원을 배상하고서야 겨우 그 일을 모면할수가 있었다. 비록 5년이란 시간이 흘러갔지만 그 일은 아직도 내 기억에 새록새록하다. 천지분간 못하고 사고뭉 치였던 나는 지금 학급에서 학습위원으로 성장되지 않았는가! 그렇다 그 일은 항상 나를 착한 사람이 되도록 등을 밀어줄것이며 내 인생에서 옳바른 길을 걷게 하는 디딤돌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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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친구들이여!

<우수상> 백석대 총장상 할빈시 동력 조선족 소학교 초등 6학년 강 지 모

친구라는 말보다 더 아름다운 말은 없다. 우정보다 더 소중한것도 없다. 서로 리해해주고 웃어주며 같이 진보하는 고마운 학급 친구들이 있어서 나는 너무너무 행복하다. 지난 학기에 있은 일이다. 화요일 체육시간에 선생님께서는 5월 23일에 춘계운동회를 진행하니 오늘 수업시간부터 집체종목인 다리 묶고 달리기 련습을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영광스럽게도 선수로 뽑히게 되였다. 우리는 10명씩 한팀이 되여 련습을 하였다. 처음에 체육 선생님의 구령에 맞추어 천천히 걷기 시작하였다. 어떤 친구들은 왼발을 먼저 내밀고 어떤 친구들은 오른발을 먼저 내밀어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너무도 웃겼다. 한참 련습하니 제법 빨리 걸을수 있었다. 우리는 속도를 내보려다 그만 넘어지고말았다. “야, 강동하! 너 앞에서 왜 그렇게 빨리 뛰나?” 맨뒤에 선 정규가 소리치며 원망하였다. “너가 발이 안맞잖아, 너나 잘해.” “중간에 누구야, 구령을 큰소리로 불러야지 잘 안들리잖아.” 친구들이 서로 원망하며 빈둥거렸다. 나는 당황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였다. 이때 체육선생님 이 다가와서 말씀하셨다. “다리 묶고 달리기는 무엇보다 팀워크가 중요하단다. 10명이 힘을 합쳐 1인이 되여 움직여야 한단다. 알겠나?” “네.” (우리들은 단결이 부족해. 이러다가 시합에서 지고말거야.) 우리는 풀이 죽었다. 누구도 말이 없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우리를 데리고 2반의 친구들이 련습하는것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서로 호흡이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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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단결하여 날개라도 돋친듯 달렸다. (와, 2반 정말 잘 달린다. 우리가 따라잡을수 있을까?) 그 다음날 체육시간이였다. 우리는 먼저 “왼발, 오른발.” 구호를 부르면서 제자리에서 호흡을 맞추 었다. 두 손을 앞에 선 친구의 어깨에 얹고 다같이 큰소리로 구호를 부르면서 열심히 련습하였다. 이 렇게 했더니 동작이 일치하고 속도도 빨라졌다. 옆에서 지켜보시던 체육선생님께서 전보다 진보가 많 다고 칭찬하셨다. 선생님의 말씀에 우리는 자신심이 불붙듯하였다. 하늘을 치솟는 쵸몰랑마봉 꼭대기에도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 박아놓은 기발이 나붓기고있지 않는 가? 나는 믿는다. 우리 6학년1반 친구들이 자신의 노력으로 꼭 성공할수 있다는것을. 드디여 우리가 손꼽아 기다리던 운동회가 성황리에 막을 올렸다. 구름한점없이 맑고 푸른 하늘에 채색기가 나붓기고 우리들은 씩씩한 기상과 모습으로 필승의 념원을 보여주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우리들의 옷깃을 스치며 응원해주는듯 하였다. (얘들아, 련습한만큼 잘해보자. 1반 화이팅!) “준비, 땅!” 체육선생님의 구령소리와 함께 시합이 시작되였다. “하나, 둘. 하나, 둘~~” 구호소리에 발을 맞추어 열사람이 한마음으로 힘껏 앞으로 달렸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고 끝내 우리가 이겼다. 친구들은 너무 좋아 퐁퐁 뛰며 승리의 기쁨을 나누었다. 아무리 어려운 곤난이라도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정신만 있다면 반드시 승리할수 있지 않는가? 서로 단결하며 전심전력으로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우리 학급 친구들이 너무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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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랑

<우수상> 백석대 총장상 매하소학교 초등 5학년 고 휘 연

나는 겨울이든 여름이든 방학만 하면 한국으로 날아간다. 엄마, 아빠가 그곳에서 사업하기때문이다. 올 여름방학에도 례외가 아니였다. 한국에 도착한 그 이튿날이였다. “따르릉–따르릉–” 아침부터 전화벨이 울렸다. 회사에 출근하시는 아빠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 엄마는 아빠와 한참 동안 통화하시더니 나를 보고 말했다. “연아, 다음주 우리 바다가 구경간다!” “야! 신난다.” 나는 날듯이 기뻤다. 손꼽아 기다리던 날이 드디여 돌아왔다. 나는 미리 준비해둔 수영복이며 물안경이며 큐브가 들어 있는 즈크 배낭을 메고 흥얼흥얼 코노래까지 부르며 승용차에 올랐다. 한국은 우리 나라보다 공기가 훨씬 좋았다. 스쳐지나는 꽃과 나무들도 나를 반겨주는듯하였다. 승용차가 약 2시간 달려서야 바다가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수영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았다. 나는 얼른 수영복을 갈아입고 만단의 준비를 끝내고 바다로 뛰여들어갔다. 엄마도 나의 뒤를 따랐다. 나는 먼저 큐브에 의지하여 헤염치기도 하고 누워있기도 하면서 재롱을 피웠다. 나중에 엄마와 나는 공을 던지며 놀았다. 한창 재미나게 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집채같은 파도가 밀려왔다. 그 바람에 사람들은 여기저기 흩어졌다. 나도 파도에 뒤덮어쓰이였고 바다물도 몇 모금 꼴깍꼴깍 들 이키였다. 엄마도 잃었다. 울쌍이 된 나는 어쩔바를 몰랐다. 다리에 맥이 쫙 풀려 헤염치기조차 어려 웠다. 당금 기절할것 같았다. 이때였다. “연아— 연아—” 어디선가 다급히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나는 쪽으로 헤염쳐갔다. 엄마였다. 엄마는 나를 얼싸 그러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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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휴— 얼마나 걱정했는데…!” 엄마는 그냥 나를 다독여주었다. 나는 엄마의 따뜻한 품속을 느꼈다. 어느새 아빠도 옆에 와 계셨다. 엄마의 눈가에 맺친것은 눈물인지 바다물인지 분간할수 없었지만 분명 울고계셨다. 아빠도 놀라서 “어디 다친데는 없어? 빨리 바다가로 나가자!” 하며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날저녁 우리는 오붓이 모여앉아 바다가에서 불을 피워놓고 고기를 구워먹으며 하루의 피곤을 풀 었다. 맛있는 고기도 입안에서 살살 녹았고 놀랐던 내 마음도 가뭇없이 사라졌다. (아, 그리웠던 부모님의 사랑,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랑 그 사랑은 나를 죽음앞에서도 두려움 을 잊게 하는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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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바꾸고 싶어요

<우수상> 백석대 총장상 매하구시 조선족 실험소학교 초등 5학년 김 해 욱

“할머니, 난 엄마를 바꾸고싶어요.” “엉? 얘가 무슨 말을 하니? 말은 함부로 하는것이 아니야.” 지금도 나는 그때 내가 할머니께 철없이 말한것이 너무나 어처구니 없었고 한평생 어머니께 용서 못할 죄를 지었기에 때때로 후회하고있다. 그것은 내가 7살때 일이다. 하루는 학교에서 돌아오니 어머니가 빨리 숙제를 하라는것이였다. 저녁에 외가집에 새외숙모가 오기에 외가집에 간다는것이다. 외가집으로 가는 나의 마음은 마냥 즐거웠다. 오늘 또 외할머니의 맛나는 음식을 먹을수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신났다. 어느새 택시는 외가집문앞에 도착하였다. 새외숙모를 보는 순간 나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우리 새외숙모가 너무 예뻤기때문이였다. 사과알처럼 동그란 얼굴, 버들잎처럼 예쁜 눈섭아래 별처럼 반짝이는 두눈, 웃을 때면 박씨같은 이 발을 드러내며 량볼에 볼우물까지 패이였으며 량어깨에 내리드리운 노란 파마머리는.너무 멋스러웠다. 그리고 개미처럼 날씬한 허리에 단풍잎처럼 빨간 원피스를 입어 정말 하늘의 선녀를 방불케 하였다. 저녁에 우리 친척들은 모두 식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었다. 역시 외할머니의 훌륭한 옛 솜씨였다. 그러나 오늘따라 밥맛은 별로였다. 나는 어머니옆에 앉은 새외숙모와 어머니를 번갈아 보게 되였다. 우리 어머니는 얼굴이 왜 저렇게 가무잡잡할가? 왜 저렇게 뚱뚱할가? 나에게도 새외숙모처럼 예쁜 엄 마가 있으면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워할가? 어느덧 밤이 깊었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길에 어머니는 나보고 오늘 왜 기분이 없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지어 나의 손을 잡는 어머니의 손까지 뿌리쳤다. 그날 밤, 나는 잠자리에 누웠지만 시종 외숙모의 그 아름다운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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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에서까지도 외숙모의 손을 잡고 어깨를 으쓱이며 친구들앞을 지나 교문에 들어섰다. 그런데 내가 3학년때 아버지가 한국에서 다쳤다기에 어머니가 한국에 갔다. 어머니가 떠난후 나는 70넘은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게 되였다. 날마다 다른 친구들이 어머니와 함께 손잡고 가는 뒤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 오시는 어머니, 추우면 추울세라 따뜻한 옷을 가지고 오시는 어머니, 열이 오를 때 나를 업고 뛰는 어머니… 갈수록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다. 그래서 저녁이면 나는 어머니의 사진을 몰래 훔쳐보군 하였다. 우리 엄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리러왔고 늦게까지 밤대거리를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맛나는 음식을 만들 었으며 비록 아버지가 한국에서 돈을 벌고 있지만 혼자서 허약한 신체로 아글타글 농사일을 하느라 해볕에 그을었으니 어찌 얼굴이 검지 않겠어요. 나는 정말 이 세상에 후회약이 있기를 바랐다. 당시 어머니께서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는가? 자기에 게 유일한 생명을 주고 길러주신 어머니가 싫다니? 그때 그 일이 언제나 나의 마음에 걸렸고 가슴을 아프게 허비였다. 그때마다 나는 어머니의 사진 에 얼굴을 비비기도 하고 뽀뽀까지 하면서 어머니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지금쯤 우리 엄마는 무엇을 하고있는지? 항상 이 불효한 자식을 생각하고있겠지. 죄송해요, 어머니. 나는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이뻐요. 어머니,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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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우수상> 백석대 총장상 장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초등 2학년 김 승 준

우리 집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누나, 나 이렇게 여섯식구가 오손도손 살아가는 가정이얘요. 엄마말에 의하면 누나는 어렸을 때 동생을 낳아달라고 자꾸 엄마, 아빠를 졸랐대요. 그래서 내가 이 세상에 태여난거래요. 나보다 13살이나 이상인 누난 나를 많이많이 사랑해주었어요. 2년전에 누나 가 북경사범대학으로 떠나자 나는 방학을 손꼽아 기다리군 했어요. 드디여 누나가 돌아오는 날이 되였어요. 나는 집에서 누나마중을 간 엄마, 아빠를 눈이 빠지게 기 다렸어요. 한참후 복도에서 누나말소리가 들리자 나는 나는듯이 달려가 문을 와락 열고 큰소리로 “누나! 누나!” 하고 불렀어요. 누나도 너무 좋아 나를 안고 빙빙 돌았어요. 나는 누나목을 꼭 끌어안고 누나얼굴에 뽀뽀를 해댔어요. “장난꾸러기, 징그럽게 노네.” 누나말에 온집식솔들은 하하 웃었어요. 그 날 저녁부터 나는 누나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응석도 부리고 놀이도 같이 했어요. 저녁에도 누나 곁에 누워 누나보고 재워달라고 졸랐어요. 누나는 맛있는 음식도 잘 해주었어요. 볼이 미여지게 먹는 나보고 “요 꿀꿀이, 먹는 모양도 이렇게 귀여워.” 하면서 꼭 안아주군 했어요. 엄마가 나보고 큰소리로 말하면 누난 꼭 나의 편이 되여주곤 해서 엄마도 투항했다고 했어요. 공부 도 차근차근 배워주어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엄마, 아빠도 웃으시면 서 질투난다고 했죠. 나는 이런 누나가 있어 너무너무 행복해요. 그래서 누나와 함께 거리로 나갈때면 “저의 누나거든 요.” 라고 자랑해서 사람들을 웃기기도 했어요. 난 이담 커서 누나를 보호할거얘요. 누나 사랑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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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대회

<우수상> 한국문구유통업협동조합 이사장상 천교령 조선족학교 초등 3학년 박 혜 진

지난 9월 12일 우리 학교 가울 운동대회날이였다. 우리 3학년의 달리기경기가 시작되였다. 네명씩 한조가 되여 뛰였는데 처음에 나는 앞에서 뛰였지 만 점점 몸이 무거워지면서 나중에 꼴찌를 하고 말았다. 종점에서 응원하시던 선생님께서 “괜찮다. 다음해 운동대회에서 잘하면 된다.”하시면서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렇지만 부끄러워 고개룰 쳐들수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여서 식사를 할 때 나는 일부러 배가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고기를 몇점만 먹었다. “얘, 오늘 웬 일이니?” “어머니, 왜 자꾸 맛있는 고기만 해줍니까? 달리기만 하면 반에서 꼴등이니, 창피해서 얼굴을 못들 고 다니겠습니다.” 괜히 어머니께 투정을 부렸다. 우리 어머니는 결혼한지 4년만에 나를 보았다고 하신다. 온갖 정성을 다 들여서 얻은 귀한 아이라고 늘 그러신다. 어머니는 어머니 몸은 돌보시지 않으시고 항상 집에서 내가 먹을 간식을 준비해놓는다. 하여 들어오면서 먹고 나가면서 먹고 하다나니 오늘 이 모양이다. 나는 1학년부터 운동대회날 달리기만 하면 꼴찌를 못 면해봤다. 달리기라면 겁도 많이 난다. 지금 정도면 초중, 고중에가서도 영락없는 - 생각할수록 속상하다. “무슨일이나 마음먹기 나름이다”고 선생님께서 늘 말씀하신다. 지금부터는 모든 음식을 조금씩 먹고 살까기운동을 해서 래년 4학년 가을운동대회에서는 3등에 목표를 두고 체육운동을 즐겨 하겠다. 6학년 졸업할 때는 꼭 1등의 영예를 안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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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의 아들이 되였어요

<우수상> 한국문구유통업협동조합 이사장상 장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4학년 함 상 규

저는 연길에서 2학년까지 공부하다가 장춘 이모네 집으로 공부하로 온 함상규입니다. 아빠, 엄마는 “중국어를 잘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초등학교 선생님인 이모네 댁에 공부하러 보내려고 하셨다. 사실 아빠가 나한테 장춘에 가서 공부하는게 어떠냐고 물어보셨을 때 처음엔 망설 였습니다. 하지만 내 의견은 무시당하고 난 이모네 집에 오게 되였습니다. 아빠, 엄마, 형아와 떨어져 서 살아야 하고 친구들과도 헤어지는게 싫었는데. 처음에 장춘에 왔을때 집생각이 나서 잠들기가 어려웠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아서 밥을 남길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모부, 이모, 누나가 잘해주어서 그나마 참을만 하였습니다. 특히 이모랑 엄마 는 일란성 쌍둥이여서 그냥 엄마곁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또 선생님들도 저를 이모의 아들이라고 불러주시는데 그때마다 전 진짜 이모의 아들이 된 것 같습 니다. 하지만 제일 견디기 어려운것은 중국어를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고 중국말을 할줄 모르기때문에 다른 애들과 어울려 놀수가 없었습니다. 수업시간에는 선생님의 강의를 알아듣지 못하고 한자를 몰라 막막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정성어린 지도와 나의 피나는 노력으로 이제는 중국아이와 다름없 이 중국말도 술술 잘하고 한자도 많이 알아서 중국어로 혼자서 일기, 작문까지 쓸수 있게 되였습니다. 홀로 장춘에 보낸후 아빠, 엄마는 어린 나를 보내놓고 적응할수 있나 걱정이 되여 마음고생이 심하 셨다고 합니다. 반면 나는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씩씩하게 잘 적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친척들 은 비록 나이가 어리지만 객지생활에 잘 적응하는 나를 보고 엄청 대견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 니다. 그럴때면 나도 자신감이 올라갑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게 되였습니다. 아빠, 엄마는 나를 성공시키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법니다. 아빠, 엄마는 묵묵히 지지해주고 응원해 줍니다. 때문에 나는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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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은 나라와 나라사이를 날아다니는 세계형인재로 되는것입니다. 나의 꿈을 위해 부지런히 공부하여 꼭 성공할것입니다. 우리 가족을 위해 열심히 하고 꼭 부모님께 효도할것입니다. 나는 지금은 우리 가족과 떨어져사는게 좀 힘들더라도 나의 꿈이 이루어질때까지 열심히 공부하여 성공하겠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가족과 상봉하기 위해 견지하며 앞으로 나아갈겁니다. 나는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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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행복 쭈욱 이어가요

<우수상> 한국문구공업협동조합 이사장상 장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초등 6학년 박 흠 미

엄마, 아빠, 오빠, 나 넷이서 오순도순 살고있는 우리 집 매일매일 행복이 넘쳐납니다. 엄마는 심리상담사, 요리사입니다. 나한테 오빠한테 심지어 아빠한테 무슨 일이 있을 때면 엄마는 신기하게도 눈치 채시고는 해결방법을 찾아주십니다. 하루종일 기분이 꿀꿀하다가도 엄마랑 얘기하고 나면 모든 고민 시원히 털어버릴수 있습니다. 엄마는 또 영양만점 요리사입니다. 매일 아침 주방에서 풍겨오는 향긋한 냄새에 끌려 침대에서 일어나군 합니다. 엄마의 손을 거치면 무어나 별미로 탈바꿈합 니다. 엄마가 차린 밥상에서 우리 식구는 단란히 모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군 합니다. 아빠는 자상하고 유머적입니다. 나는 매일 아빠의 퇴근시간에 맞춰 숨을 죽이고 숨어있습니다. 그럼 아빠는 짐짓 모르쇠를 대고 나랑 숨바곡질을 놀아주십니다. 아빠와의 숨바곡질은 하루중 제일 기대되는 순간입니다. 아빠도 엄마 못지 않은 요리사입니다. 엄마가 몸이 불편하시거나 외출 하시면 아빠가 솜씨를 펼칩니다. 식재료 장만부터 손수 하십니다. 아빠가 한 밥은 꿀맛입니다. 아빠는 우리 들의 수호천사입니다. 나를 즐겁게 해주시고 스트레스도 해소해주시고 이런 아빠가 나의 아빠여서 난 너무 행복하답니다. 오빠도 내 행복의 원천입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오빠가 너무 동생 타령을 해대서 나를 낳아주셨 답니다. 오빠가 동생타령을 안했더라면 난 아마 이 세상에 태여나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러니 오빠는 내 생명의 은인인 셈입니다. 명절 때마다 가족의 생일 때마다 오빠는 꼭 이벤트를 준비합니다. 번마다 양식이 새로워서 은근히 기대됩니다. 당연히 오빠는 무조건 내 편입니다. 나랑 나이터울이 커도 데리 고 잘 놀아주는 오빠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나도 엄마, 아빠, 오빠의 행복의 원천이 되고있습니다. 매번 시험에서 일등을 하였을 때 엄마 아빠 의 얼굴엔 뿌듯한 미소가 피여오릅니다. 내가 3종언어 시합에서 일등을 따냈을 때, 피아노 10급 증서를 따냈을 때, 아나운서처럼 무대에서 멋지네 사회를 했을 때 엄마 아빤 내가 있어서 행복했을 것입니다. 엄마, 아빠, 오빠, 나 넷이여서 행복한 우리 집 이 행복 쭈욱 이어질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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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우수상> 한국문구공업협동조합 이사장상 천교령 조선족학교 초등 4학년 리 용 군

올해 추석에도 누나와 나는 어김없이 아버지묘소에 찾아갔었다. 이름모를 풀들이 키돋움을 하며 빽빽이 자리틀고 있었다. 한참을 올리훑고 내리훑어서야 겨우 찾을수 있었다. 누나는 부랴부랴 벌초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2년전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홀몸으로 나와 누나를 돌보시다가 말이다. 어머니가 집을 가 출한후 아버지는 술에 더 집착했었다. 내가 학교에 입학하게 되자 아버지는 나를 30리 떨어진 지금의 학교에 보냈고 이웃의 소개로 남의 집에 숙사를 정하였다. 누나는 돈벌이 하러 연길로 가고 말이다. 주말에 집에 들어서면 집안은 스산하고 썰렁했는데 숙사집보다 포근한감이 없었다. 천만다행 아버 지 품속에서 꿈을 꾸며 자는것이 달콤했다. 이른 아침이면 아버지는 일찌기 일어나셔서 앞강에 가서 물고기를 잡았다. 밸을 따서 탕을 끓여주는데 구수한 향이 온 집안에 가득찼고 그 맛은 별맛이였다. 월요일 아침이면 이것저것 가방에 챙겨주시고 숙사집 아지미말씀 잘 듣고 공부잘해라고 부탁하시며 정거장까지 바래다주군 하셨다. 눈시선에서 차가 멀어질 때까지 오래도록 손 흔들며 서계시기도 하셨다. 병마에 오래 시달린 아버지는 2년전 끝내 버텨내지 못했고 돌아갈 때는 이웃들에서 지켜주었다. 아 버지는 불쌍한 분이시다. 돌전에 어머니를 잃고 홀아버지와 남동생 둘과 사시다 아버지마저 일찍 돌아 가시고 가장으로 남동생들을 보살펴주었다. 설상가상 고령인 할머니까지 얹혀살게 되다나니 아버지 고생은 한입으로 다 말할수 없었다. 치매에 시달린 할머니는 아버지를 돕는다는것이 자꾸 물건을 잃 어버리고 옷을 거꾸로 입고 신을 바꿔 신고 다녀 아버지를 많이 속태웠다. 하지만 아버지는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았고 일과 동무하셨다. 몸과 마음이 지칠때로 지친 아버지셨기에 더는 지탱하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생각하면 어머니마음도 리해할만하다. 가정을 이루어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었지만 빚 에 시달리고 올망졸망한 자식들에 앓는 할머니까지 얼마나 속이 타다못해 재가 되였으면 어린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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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 몰래 집을 나가셨을가? 누나는 인젠 서른살에 가까워 온다. 하지만 부모들이 곁에 계시지 않고 나까지 그림자가 되여 따 라다니니 큰 방해가 되는것같다. 이제 바늘귀만큼 철이 드니 누나가 가엾어보인다. 나는 하루빨리 커 서 누나를 돕고 싶다.. 누나의 부름소리에 나는 사색에서 깨여났다. 오늘도 나는 공부를 더 잘해 누나의 근심을 덜어줄것 을 아버지와 약속하며 부지런히 벌초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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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흉 보면 안돼

<우수상> 한국문구공업협동조합 이사장상 장춘시 록원구 조선족 소학교 초등 6학년 전 아 연

주위를 둘러보면 한글을 배우기 싫어하는 애들 투성이 이다. 하지만 내 친구는 아니다. 그는 텔레 비도 한국 드라마를 보고 책도 한글로 된걸 읽고 말도 우리 말만 한다. 또 가족만큼이나 소중한 나랑 둘도 없는 친한 친구이다. 남들이 우릴 보고 쌍둥이라고 할 정도로 우리는 친하게 보낸다. 함께 숙제를 하고 놀고 고민을 들 어주고 기쁨을 함께 나누고. 그는 길고 검은 머리카락에 하얀 피부, 초롱초롱한 눈에 깜찍한 코, 작은 입 아주 예쁘게 생겼다. 제일 신기한 것은 그의 귀다. 앞뒤로 움직일수 있다. 키는 별로 크지 않고 아주 약하다. 바람만 불면 훌 날아갈것만 같다. 예쁜 얼굴만큼이나 마음씨도 착하다. 그는 공부를 잘 한다. 특히 한글 공부. 선생님도 가끔 그한테 단어의 번역을 물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한테도 나쁜 버릇이 있는데 바로 남의 흉을 보는 것이다. 그가 남의 흉을 볼 때면 난 짐짓 먼곳을 보면서 딴청을 부린다. 하지만 나를 믿고 나한테만 말하기 때문에 남들은 이것을 전혀 모른다. 내가 그러면 안돼하면 그는 화를 낸다. 이전에 이 일 때문에 사이가 안좋았던 적도 있다. 하지만 얼마 안가 다시 화해하고 친해졌다. 그도 남의 흉을 보는일이 적어졌다. 친구야 넌 우리 말 달인이잖아. 남의 흉을 보는 일은 너랑 어울리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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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누고 싶어요

<우수상> 수원시장상 장춘시 조선족 중학교 중등 3학년 최 은 주

어느덧 14년이라는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습니다. 철부지였던 저도 이렇게 컸습니다. 하 지만 그 사이에 어머니의 얼굴에는 주름살이 많아졌고 흰 머리카락도 생기게 되였습니다. 어머니는 나때문에 하루하루 늙어가고계십니다. 그래서 나는 늘 어머니의 주름살과 흰머리를 훔칠수 있는 도적 이였으면… 라는 생각을 합니다. 매일 자식만을 생각하고 념려하고 근심하고 걱정하면서 힘들게 일하고계시는 어머니… 제가 어머 닌 오늘 무슨 고민거린 없느냐고 물어보면 어머니는 항상 없다고만 하십니다. 그리고는 오늘 당신이 재미있었던 일만 나하고 이야기하십니다. 어머니는 고민이 있으셔도 종래로 나한테 말하지 않고 혼 자서만 해결하려고 하십니다. 저는 저의 모든걸 어머니와 함께 나누는데… 어머니니는 왜… 어머니 의 고민을 나와 함께 나누는것도 좋은 일일텐데… 나는 어머니의 고민을 조금이라도 함께 나누고싶 습니다. 멀리 떨어져있어서 일에 지친 어머니의 허리 한번 주물러드리지 못하는 이 현실 안타깝습 니다. 그래도 전화로 “수고하셨어요”, “사랑해요”라고 말 한마디라도 해서 하루종일 지친 어머니를 웃게 해드리고싶습니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은 어머니의 청춘을 빼앗아가고 어머니의 어깨의 짐은 점점 무거워져가고 만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짐을 감당하기엔 제가 아직 너무 어리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공부를 열 심히 해서 이다음 커서 효도드려야 할것입니다. 하지만 저도 이만큼 컸는데 어머니의 고민은 같이 나 눌수 있을것 같습니다. 항상 마음속에다 두지만 말고 고민을 얼마간이라도 이 딸과 함께 나누세요. 고 민을 같이 나눌수 있다는것도 행복이니까요… 어머니, 저도 이젠 컸어요. 이젠 고민을 나와 함께 나눠요. 나도 어머니와 고민이든 행복이든 함 께 나누고싶어요. 왜냐 하면 뭐든지 어머니와 함께 할수 있다는것이 저한테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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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럽다, 우리말이여

<우수상> 수원시장상 영구시 조선족학교 중등 3학년 황 은 정

매 사람마다 자신이 자랑스러워하는것이 있을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것들을 자랑스럽게 여길까? 보통 남들에게 없는 희귀하고 귀중한 물건이나 남들보다 뛰여난 특점. 긍지감이 생기는것들 을 자랑스럽게 여길것이다. 나에게도 이 조건에 부합되며 자랑스럽게 여기는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 로 우리말이다. 우리말은 세종대왕이 백성들을 위해 만들어낸 글자인데 탄생한 리유부터 존경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가? 임금의 권위가 높은데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한자를 쓰기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언어를 창조 해냈다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것이다. 우리말은 또 글중에서 유일하게 세계유네스코기록유산에 지정되어 있는 글로써 세계 통용어인 영 어보다 세계적으로 먼저 인정받은것이며 다른 언어처럼 누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불분명한것 이 아니라 출처가 명확한 언어인것이다. 우리말은 간단하지만 과학적이다. 왜냐하면 우리말은 소리글자이며 음소글자이기때문이다. 더 상 세하게 말하자면 글자는 소리글자와 뜻글자로 나누어져있는데 뜻글자의 대표적인 례로 하자면 한자 인것이다. 뜻글자는 글자만보고 뜻을 알수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획수가 늘어나서 쓰기가 어렵기에 많이 쇠퇴하였다. 요즘엔 당시의 번자체대신 다른 간자체를 쓰는것에서 볼수있다. 하지만 우리말은 옛적부터 이 도리를 깨닫고 만들어낸것인데 시대적흐름으로 봐서 당시엔 대단한 일인것이다. 또 소리 글자에는 음운글자와 음소글자가 있는데 음운글자라면 일본어가 있다. 하지만 음운글자는 우리말기준에서 말하자면 모음과 자음이 붙어서 떼어질수없게 만든것인데 이렇게되면 글자수가 많게 된다. 하지만 우리말은 음소글자로써 만약에 “ㄱ”자음과 “ㅏ”모음이 붙어서 한 글자를 형성할수 있을 뿐더러 똑같은 모음에 다른 자모로 다른 글자로 만들수있기에 아주 편리하다. 우리말은 구성이 또 확실하다. 예전에는 초, 중, 종성의 구분이 없었지만 현대에 들어와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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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의 초중종체계를 가지고있는것인데 이것 또한 아주 대단한 일이다. 우리말은 이렇듯 다른언어에게 없는 특점, 다른언어보다 뛰어난 장점이 많기에 나는 우리민족, 우 리말에 긍지감을 느끼고 우리말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요즘에 와서 여러가지 외래어를 쓰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우리는 응당 좋은 우리말, 정확한 우리말을 사용하도록 노력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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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후의 나

<우수상> 화성시장상 집안시 조선족학교 중등 3학년 림 계 염

나는 자습시간에 숙제를 다 하고 여유만 있으면 창밖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굴리기 좋아합니다. 이후 난 어떤 일을 할가, 어떤 사람이 될가 하고 이런 생각을 제일 많이 한것 같습니다. 오늘은 오후부터 비가 봄비가 보슬보슬, 밤자습시간이 되자 더 크게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봄에는 졸리고 가을에는 곤하다는 로인들이 말이 신통하게 느껴집니다. 잠깐 눈을 붙여 볼까? … 지금 나는 35살, 나는 나의 직업도 있고 돈도 얼마금 저금하였으며 내가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리혼 하고 혼자서 온갖 고생을 하며 나를 키우신 엄마도 돌봐드릴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10년이나 회사에 다니면서 마음 한구석이 자꾸 무거워집니다. 특히 저번 주일에 고향에 돌아갔을 때 혼자서 사시는 장할아버지, 안할머니, 박할아버지 … 열이 넘는 로인들이 지팽이를 짚고 마을어구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더 아파 지고 무거워졌습니다. 내가 어릴 때 엄마 혼자서 막벌이하여 나를 힘들게 키우는것을 보고 밭에서 파 랑 무우랑 흙이 묻은채로 싱싱한것을 들고 우리 집에 찾아오던 고마운 분들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자 식이 먼데 있거나 사고로 세상을 떴거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혼자서 사시는 로인들의 눈길이 왜서인 지 자꾸만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생각하다가 단연히 사직하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올랐습니다. 돌아가는 길에서도 많은 거지 로인들이 아직도 채 녹지 않은 차디찬 땅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손을 내밀고 구걸하는것을 보 았습니다. 그 모습들을 보며 나의 마음은 다시 한번 구겨지는것 같았습니다. 집에 들어서니 엄마가 놀라 출근시간에 웬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의 대답을 듣고 엄마 는 펄쩍 뛰였습니다. “뭐라구? 양로원을 꾸리겠다구? 절대 안되! 너 돈이 어디 있어? 그리구 양로원을 꾸리는것이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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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 장난인줄 아니?” “엄마, 길가에서 구걸하는 로인들이 불쌍하지 않아요? 그보다도 우리 집이 어려울 때 도와주셨던 장할아버지, 안할머니들이 불쌍하지 않아요? 병이 나두 병원에 호송할 사람이 없고 돌봐드릴 자식두 없고… 엄마는 내가 있잖아요. 언젠가 엄마는 늙어두 제가 있어도 그 노인들은 누구도 돌봐줄 사람이 없잖아요. 제가 어려서부터 양로원을 꾸리는것이 꿈이라는걸 엄마는 알잖아요!” “그래두 안되!” 엄마는 이 한마디 말만 하고는 엄마 방으로 휭하니 들어갔습니다. 나는 엄마가 이렇게 나한테 찬 물을 끼얹을줄 몰랐습니다. 엄마가 내가 다른 여자애들처럼 평범하게 그러나 편안하게 살것을 누구 보다 바라는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그래두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그래서 난 옆집에 사는 장할아버지 네 집에 찾아갔습니다. 어둑컴컴한 방안에서 불도 켜지 않은채 할아버지는 저녁을 잡수시다 나를 보 더니 불을 켰습니다. “염이구나. 어서 들어와.” 이미 지은지 아마 20년은 더 될 집은 벽이 이미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부억에는 나무가지, 종이조 박, 비닐박막… 그런데다 퀴퀴한 냄새까지 났습니다. 이발이 떨어진 그릇안에는 죽인지 국인지 알아 볼수 없는 음식이 반그릇 남아있었습니다. 젊어서는 마을의 촌장으로 마을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 신 아주 떳떳한 대장부였는데…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 길로 돌아서 나오며 나는 마음 먹 었습니다. (엄마가 아무리 동의하지 않아도 양로원을 꼭 꾸릴거야. 아들을 잃은 장할아버지를 위해, 아내를 잃은 리할아버지를 위해, 자식이 먼 광주에 있는 안할머니는 위해, 그리고 의지가지 없는 거 지로인들을 위해…) 나는 나의 10동안 모은 돈에다 친구한테 빌린 돈을 합쳐 원래 마을에 비여있던 학교에다 양로원을 꾸렸습니다. 매 방마다 온돌방으로 고치고 벽을 새로 회칠하고 지붕도 새 기와를 얹고 벽도 보온층으 로 하였습니다. 비록 개인집과는 비길수 없지만 깨끗하고 아담하게 그리고 로인들이 활동할수 있도록 도서실, 장기실, 운동실 등 활동실까지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장할아버지, 리할아버지, 안할머니 등 노인들을 모셔왔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집”이라고 이름을 달았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양로원에 찾아오는 로인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부담도 더 많아졌고 힘도 더 들었습니다. 그러나 노인들의 즐거운 웃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얼굴에 핀 행복한 웃음을 볼 때마다 나는 힘이 솟았습니다. 그러나 반년이 지나 내가 마련한 돈은 거의 다 거덜이 나고 한달밖에 견지할수 없게 되였습니다. 나는 걱정이 나서 밤에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날로 초췌해지는 나를 보고 벌써 와서 일을 도와주던 엄마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대학교때 딱친구로 지내던 친구한테서 갑자기 전화가 오지 않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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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까! 대학동창들이 모여서 나의 “사랑의 집”을 위해 장기적으로 지원을 해주겠다는것이였습니다. 전화를 받고 나는 날듯이 기뻤습니다. 원래 내가 회사를 그만두어 연락이 되지 않아 엄마한테 전화 했다가 엄마한테서 나의 정황을 알고 친구들이 서로서로 소식을 전하고 선뜻 도와나선것이였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나의 동창으로 무어진 팀이 찾아와서 집도 손질해주고 마당에 꽃밭도 꾸려주고 로인들의 병도 봐주고 옷도 빨아주었습니다. 그래서 양로원이 전보다 더 따뜻해졌고 할아버지, 할머 니들의 웃음소리도 더 커졌습니다. “염이야, 우리 단체 사진 찍자.” 친구의 말에 너무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웃기만 하던 나는 로 인들을 위해 사진 찍어드리려고 맴돌아쳤습니다.... “딩동! 딩동!” 핸드폰의 메시지 소리에 와뜰 놀란 나는 책상에서 머리를 들었습니다. (원래는 꿈이였구나.) “염이야, 잘 있니? 엄마 걱정 말고 몸 조심하고 공부에나 열심해. 우리 딸 후에 꼭 훌륭한 사람 될 거야. 사랑해.” 한국에 계시는 엄마가 보낸 메시지였습니다. 고중에 가면 비용이 많이 든다고 작년까지도 나의 곁 을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다고 한국으로 돈벌이를 떠난 사랑하는 엄마입니다. 엄마와 나한테는 아직 아빠트는커녕 단층집이라는 집도 없습니다. 뿐만아니라 돈도 없습니다. 그래도 나는 장래에 양로원을 꾸리고싶습니다. 엄마가 동의하지 않아도, 가족이 동의하지 않아도 이 꿈을 현실로 만들려고 합니다. 이 꿈을 몇번이나 포기하려 하였지만 길에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 는 로인들을 볼 때마다 아무데나 누워 밤을 새는 로인들을 볼 때마다, 고향에서 외롭게 혼자서 만년 을 보내는 장할아버지, 안할머니 등 로인들을 볼 때마다 이 마음이 더 굳어집니다. 양로원이 많아지면 길가에서 거지로인들이 적어지고 고독한 로인들이 집에서 조용히 돌아가셔도 누구도 모르는 가슴 아픈 일도 적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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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골든벨’에 참가하고...

<우수상> 숙명여대 총장상 Colegio Rumo 중등 3학년 신 영 서

2월 15일, 저는 ‘통일 골든벨’에 참가했습니다. 그 날은 아주 운이 없는 날이었습니다. 대회를 하는 장소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와있었습니다. 그걸 보니 긴장이 저절로 되었습니다. 응원 하는 사람들은 모두 뒤로 가고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만 칠판을 가지고 앉았습니다. 그렇게 긴장해 서 앉아 있는데, 이게 웬일! 제가 모르는 문제가 나온 것입니다. 첫 문제부터 틀리다니! 정말 창피하 고 속상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부터 제가 잘 아는 문제만 계속 나왔습니다. 그래서 더 속상했습니다. 속상해도 패자 부활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기다린 후 드디어 다시 기회가 왔습니다. 그 때는 처음 문제를 풀 때보다 긴장이 두 배는 더 된 것 같습니다. ‘모르는 문제가 또 나오면 어떻게 하지?’ 가슴이 조마조마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는 문제가 나와서 결승전까지 함께 할 수 있게 되었 습니다. 열심히 문제를 풀어가고 있을 때, 긴장이 풀어졌는지 저는 어이없는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인터넷 소프트웨어’라고 써야 하는 것을 ‘컴퓨터 소프트웨어’라고 써버린 것입니다. 아, 지금 생각해 도 너무 아쉽습니다. 이 ‘통일 골든벨’은 엄마가 말해주셔서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엄마가 신문을 들고 오시면서 ‘통일 골든벨’이 쓰여진 면을 보여주셨습니다. ‘통일 골든벨’이 뭔지 모르는 제게 이게 어떤 대회인지 설 명도 해주셨습니다. 학교 공부도 많은데, 또 뭘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럽고 싫어서 처음에는 별로 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그래도 엄마가 문제를 다운 받아 한 번 해보자고 자꾸 하시니까 할 수 없이 문제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도 억지로 하니까 엄마가 상금이 있다는 걸 알려주시면서 그 상금 을 타면 제게 다 준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갖고 싶던 스케이 트가 있어서 그 돈을 꼭 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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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새롭게 알게 되는 내용이 많아 재미있어졌습니다. 이때까지 저는 일본이 한국에 침략을 했다는 것과 북한과 남한이 전쟁을 했다는 것만 알았지 그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고 있 었습니다. 이 대회에 대한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 저는 6·25 전쟁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북한 사람 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공부하면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빅토리아 호 이야기였습니다. 빅토리아 호는 짐을 실어 나르는 배였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나서 사람들이 피란을 가야 하니까 그 배의 선장이 배에 실린 짐을 모두 바다에 버리고 사람들을 태웠다고 했습니다. 짐을 모두 버리는 결정을 한 것도 대단했지만, 14,000명 이나 되는 사람을 태웠다는 것에 많이 놀랐습니다. 그렇게 빅토리아 호에 대한 공부를 하고 그 이름을 단단히 외우면서 그 일을 잊혀질 뻔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토요일, 엄마를 따라 도서관에 갔습니다. 엄마는 책 보는 걸 좋아하셔서 도서관에 자주 가시는 데 그 곳에서 한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저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 다가 할아버지가 보신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게 바로 그 ‘빅토리아 호’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다니 정말 신기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빅토리아 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14,000명을 배에 실은 그 배는 3 일만에 거제도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이 5명의 아기가 태어났답니다. 추운 겨울에 적들 의 공격을 피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을 태워 바다를 건널 수 있었을까요? 게다가 그 배는 짐 을 나르기 위한 배니까 먹을 것도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한 사람도 죽지 않고 무사히 거제 도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이게 기적이라고 했답니다. 그 날이 바로 12월 25일이었답니다. 크리스마 스의 기적입니다. 그 뒤 이 배의 선장은 이런 일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배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살린 배로 기네스북에 올랐답니다. 대회를 통해 그런 이야기를 알게 된 것도 좋았고, 할아버지와 신기한 만남을 가진 것도 인상적이 어서 ‘통일 골든벨’하면 빅토리아 호가 생각납니다. 엄마 말씀대로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정말 큰 걸 놓칠 뻔 했습니다. 이렇게 공부를 하고 알게 된 것이 많지만, 결국 저는 대회에서 1등을 하지 못했습니다. 1등을 한 언 니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문제가 나오기도 전에 답을 척척 써냈습니다. 그 언니를 보니 저도 다음 대 회에는 더 열심히 공부해서 그렇게 멋있게 답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답을 외워서 쓰는 것보다 도 저는 더 멋진 것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통일 골든벨’이라는 대회 덕에 많은 걸 알게 되었고 좋은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대회를 만들어주신 어른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일을 시작 으로 우리나라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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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 말의 힘

<우수상> 숙명여대 총장상 장춘시 조선족 중학교 중등 3학년 김 동 우

적지 않은 사람들은 “한마디 말이 무슨 힘을 가질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하고있습니다. 그것은 그 들이 평소에 말 한마디가 도대체 어떤 결과를 조성할수 있는가를 주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한마디의 말은 무궁무진한 힘을 가지고있습니다. 말은 힘이 있습니다. 말 한 마디로 절망하며 죽음을 택하는 사람도 있고 말 한 마디로 희망을 얻고 생명을 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심코 던진 비난의 말 한마디가 마음에 큰 상처를 줄수도 있고 격려의 말 한마디가 하루를 기쁘게 할수도 있습니다. 짧은 말 한 마디가 긴 인생을 만들고 말 한 마디에 마음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친구에게 한 “잘했다”, “너무나도 좋은 성적을 따냈구나, 축하해.”등 축복의 말 한마디가 상대에게 용기를 주고 신심을 주어 무한한 행복을 느끼게 합니다. “수고했어요”라는 말 한마디가 마음속의 피 곤함을 깨끗이 씻어주고 “고마워요”라는 말 한마디가 가슴속에 무한한 감동을 주게 되며 “괜찮아요” 라는 말 한마디가 마음속의 무거운 부담을 덜어주기도 합니다. 좋은 말 한마디는 엄동설한에도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지만 악한 말 한마디는 삼복염천에도 가슴에 얼음이 떨어지게 할수도 있습니다. 하기에 우리는 말을 조심스럽게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 으면 무심결에 많은 사람을 상하게도 할수가 있습니다. 친구가 자기의 노력을 통해 좋은 성적을 따냈는데도 그것에 질투가 나서 자기의 노력이 아니고 다 른 당당치 못한 수단으로 높은 성적을 따냈다고 “흥, 그게 뭐 다 제 노력이겠나?”라고 헐뜯는것과 같은 말은 무형의 칼이 되여 상대의 가슴을 깊이 찌르기도 합니다. 작은 말 한마디도 조심해서 해야 합니다. 남의 아픈 곳을 말하면서 그 말에서 기쁨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되는것입니다. 조롱이나 무례함이 섞인 말, 책임을 질수 없는 말들을 삼가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말을 자꾸 하면 실패만 되풀이됩것니다. 한마디의 말은 이렇듯 큰 힘을 가지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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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말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삶의 힘을 돋구어주는 그런 말을 나눈다면 우리의 삶은 보다 풍요 롭고 행복해질것입니다. 마음에 상처가 되는 거칠고 부정적인 말보다는 지혜롭고 덕이 되는 향기로 운 말로, 곱고 아름다운 말로 우리의 삶에 희망을 심어주며 따뜻한 우리 사회를 만들어가는것이 무엇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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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상처

<우수상> 숙명여대 총장상 벌리현 조선족 중학교 중등 3학년 김 선 미

우리집에 들어서면 벽 한면을 거의 다 차지한 커다란 가족사진이 제일 먼저 나를 반긴다. 태여나서 부터 애지중지 나를 키워주신 우리 외할머니, 인자하신 외할아버지, 나를 무척 사랑해주던 이모, 이 목구비 번듯한 아빠, 배우처럼 예쁜 엄마, 그 가운데 자리를 차지한 나, 그리고 귀염둥이 나의 남동 생, 아 얼마나화목한 모습인가! 하지만 지금 그 사진을 보고있는 나의 마음은 한없이 쓰라리고 아파 났다. 태여나서 단 한번도 헤여진적 없었던 우리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그리고 이모 모두가 한국으 로 떠나게 되였던것이다. 이웃들은 이모가 한국에 시집가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한국에 가서 돈을 벌어오면 우리가 부자 로 될 것이라고 다들 부러워하였다. 하지만 이모와 외할머니,외할아버지께서 한국으로 떠난 뒤의 우 리집은 이웃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날마다 화약냄새 풍기는 전쟁터처럼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맛있는 반찬이 입맛을 돋구지 못했고 아빠, 엄마앞에서 사랑받고 재롱부리며 자라야 할 우리가 엄마, 아빠의 싸움질에 눈치만 보면서 하루 하루를 보내야했다. 그것은 어느 때부터인지 엄마는 외출이 잦 아졌고 때로는 술에 푹 절어서 들어온다거나 때로는 외박을 할 때도 있었고 우리들에 대한 관심도, 아빠의 존재가치도 망각한채 방탕하게 변해갔다. 귀신한테 홀린 사람처럼 도무지 집에 붙어있지 않 았다. 하여 아빠의 잔소리가 늘어났고 어처구니없는 엄마의 변명소리가 역증이 날 정도로 싫어졌다. 속담에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엄마 아빠의 싸움에 나는 밥도 제대로 못먹고 학교가기가 일 쑤였다. 그러던 어느날 하학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집안으로부터 세살난 남동생의 자지러진 울음소리 와 아빠의 호통소리, 엄마의 비명소리가 마구 귀청을 아프게 때렸다. 단숨에 달려들어가보니 집안은 온통 수라장이 되였다. 바닥에 나뒹구는 밥상이며 반찬그릇들, 깨여진 가족사진이며, 지전분히 널린 음식들이 차마 눈뜨고 볼수없는 광경이였다. 기승을 부리던 아빠와 엄마의 고함소리가 나의 출현으 로 즘즉해졌다. 나는 너무도 마음이 아파 울면서 집안을 수습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싸움은 하루 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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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니였다.나는 그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너무너무 그리웠고 어서 돌아오기만 손꼽아 기다렸다. 어느 날 하학하고 집에 들어서보니 집안이 너무나 조용했다. 이상해서 살펴보니 아빠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어디로 가셨을까?하루가 지나고 이틀이지나도 아빠는 그냥 돌아오지 않았다. 후에야 아빠가 청도로 떠났다는것을 알았다. 아마도 집에 아무런 미련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 느날 엄마는 친구와 함께 어디론가 다녀오시더니 나에게 아주 예쁜 머리삔과 신발, 그리고 내가 그 렇게도 사입고 싶어했던 옷들을 사다주셨다. 나는 이제부터 엄마의 사랑을 받는구나 싶어서 매우 기 뻤다. 비록 아빠가 없어 서운했지만…… 그런데 비둘기 마음이 콩밭에 있다고 엄마의 마음속에 숨은 생각을 열살 어린 내가 어찌 알았으랴?며칠이 지나지 않아 엄마는 두말 없이 짐을 싸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느냐고 물어도 알려주지도 않고 무작정 기차역으로 우리 오누이를 데리고 떠났다. 물어도 대답하지 않는 엄마의 뒤꽁무니를 우리 오누이는 종종걸음으로 따르기만 하였다. 가목사에서 청도를 향해 달리는 기차안에서 한참만에야 엄마는 입을 열었다. “너희둘은 이제부터 청도에 가서 아빠와 살아라.”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아버지한테로 가는것임을 알았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한편 한국으로 떠나가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그리고 이모가 원망스럽기도 하였다. 청도까지 서른세 시간을 달리는 동안 내 마음은 내내 불안하였고 아버지를 만나는것도 반갑지 않았다. 이렇게 엄마는 우리를 아버지한테 데려다주고는 종적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엄마는 종시 우리앞 에 나타나지 않았고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편지 한통, 전화 한통 없이 감감 무소식이였다. 한편 한국으로 떠나가셨던 우리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모든것을 포기하고 나간지 얼마 안되여 귀국하셨다. 아버지가 우리 두 오누이를 제대로 돌볼 수 없었기 때문이였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나와 내동생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품에서 자랐다. 시간은 흘러흘러 나도 이젠 초중학 생이 되였고 내동생도 소학교에 다니건만 우리 엄마는 아직도 종무소식이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 서는 자신의 두 딸을 키우시느라 수고하셨는데 로년에는 쉬지도 못하고 우리 외손자, 외손녀 둘을 키 우시는라 고생이 막심하다. 또 마음인들 얼마나 아프시랴?우리가 언제 커서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그 은혜를 다 보답할수 있을는지?가슴아픈 동년, 추억의 동년이 마음의 상처를 치료받을수 있는 명 약은 오직 세월뿐이다.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오직 지나간 가슴아픈 추억은 잊어버리고 보람찬 새 삶 이 손저어 부르는 래일을 향하여 줄기차게 달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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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조선말로 대화할수 있어요

<우수상> 숙명여대 총장상 벌리현 조선족 중학교 중등 1학년 배 효 영

나의 아빠는 조선분이시고 엄마는 한족분이시다. 내가 태여나서 얼마 안되여 아버지는 한국으로 가 셨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품에서 자랐다. 그러나보니 나는 어릴때 조선말을 거의 한줄 몰랐다. 유치원 도 한족 유치원에서 다녔다. 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자 아버지는 내가 조선족이기에 견결히 조선족학 교를 다녀야한다고 고집 하였다. 그래서 나는 조선말 한마디도 할줄 모르면서 소학교 1학년에 입학하 게 되였다. 생소한 환경과 언어는 나를 힘들게 하였다. 내가 조선말을 할수 있는 시간은 학교에서 뿐 이였다. 그런데 학교에서도 친구들은 대부분 평시에 한어로 교류하고 상과시간에만 조선말을 하였다. 원래 조선말을 할줄도 모르고 알아듣지도 못하는데다 집에 가면 어머니와 또 한어로 교류하다보니 나의 조선말수준은 제고되기가 매우 어려웠다. 내가 한족말만 하니 친구들은 내가 한족인줄로 알고있었다. 그래서 내가 어쩌다 조선말을 하는데 그것도 혀꼬부러진 소리가 많아 골려줄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소학교 3학년까지 조선말을 별로 하 지 않았다. 조선어과문을 읽을줄도 알고 쓸줄도 알지만 그 뜻을 3분의 1이나 리해했으면 괜찮은편이 였다. 때로는 나도 조선말을 하고 싶어서 조선말로 입을 떼기는 하는데 두마디를 못 초과하고 한어가 불쑥불쑥 튀여나오는것이였다. 이런 조건과 환경에서 조선말을 잘하고싶은 욕망을 실현한다는것은 참말로 쉬운 일이 아니였다. 내가 4학년때 아버지는 한국에서 나에게 핸드폰을 사다주셨다. 그때부터 나는 한국에 계시는 아버 지와 자주 전화를 할수 있었다. 아버지는 나의 전화를 받을때 곁에 고모부가 계시면 전화기를 고모부 에게 잘 넘겨주시곤 하였다. 고모부는 한어말을 한마디도 할줄 모르는 한국인이였다. 그때 고모부네 는 아이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를 특별히 귀여워하셨다. 아버지가 전화를 고모부에게 바꿔 주시면 고모부는 “우리 효영이 잘 크지, 어디 고모부에게 인사해봐.”하며 친절하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때 까지 나는 전화에서 조선말로 별로 대화를 나눠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한다는 말이 “안녕하세요.”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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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뿐이였다. 고모부가 무슨 말씀을 해도 다 “예”로만 대답했다. “효영이 바보야, 왜 ‘예’ 밖에 할줄 모르지? 다른 말은 할줄 몰라?” 고모부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씀하셨다. 이 말을 듣자 나는 조선말 을 할 용기가 더 나지 않았다. 4학년이나 되는 애가 조선말을 한다는것이 틀린 말만 한다고 고무부가 웃으실것 같아서 창피한 생각이 들어 그저 수화기를 들고 낑낑 갑자르기만 했다. 이마에는 어느새 진 땀이 송골송골 돋는것이였다. 내가 별로 말을 하지 않자 고모부는 전화기를 아버지에게 돌려드렸다. 전화기 저쪽켠에서 아버지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진짜 바보야? 이젠 3년이나 조선학교를 다녔다는 애가 예라는 말밖에 할줄 모르니?” 나는 기여드는 목소리로 “틀리게 말할가봐 겁나요.”라고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틀린다고 하지 않으면 조선말수준이 어떻게 제고되니. 겁나 하지 말고 자꾸 말해. 이젠 아빠와 전화할때도 조선말로 해와 돼. 한어로 하면 아예 전화를 안 받을거야.” 나는 말없이 아버지의 꾸중을 듣고만 있었다. “이렇게 대충 배우려고 학교다녀? 학교는 놀려고 가는거야?” 아버지의 말씀이 거칠어지자 나는 억 울함을 참을수 없어 눈물이 났다. 조선말을 할줄도 모르는 나를 한족학교에 보낼거지 조선학교에 보 내서 나만 힘들게하는가고. 나는 조선말때문에 힘들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소학교 2학년때의 어느 일요일이였다. 우리 몇몇 개구쟁이 친구들은 학교에 모여서 학교건물 옥상 에 올라가보자고 했다. 평일에는 선생님의 눈이 무서워 못올라갔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안전을 고 려하여 절대 옥상에 못오르게 하였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언젠가 한번 꼭 올라가보려고 별렀었다. 우 리가 막 건물동쪽에 있는 층계로 옥상에 오르려고 할때 선생님 한분이 오셨다. 선생님을 보자 우리 모두는 무서워서 떨었다. 한 친구가 당황한김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 옥상에 올라가려하지 않았습 니다.” 그리고는 급기야 줄행랑을 놓았다. 이젠 괜찮다고 생각되자 내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왜 그 렇게 말해? 그러면 우리가 응... 응…그거…”그러다가는 끝내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러자 내 입을 올 려다보던 애들이 와 웃음을 터뜨리며 “응…그거…그거 어쨋단 말이야. 말할줄도 모르는 주제에”하며 나를 “되놈 같은게”하고 놀려주는것이였다. 나는 성이 나서 씩씩댔지만 아래말을 잇을수 없었다. 그 때 내가 하고싶었던말은 “이렇게 말하면 선생임께 우리가 옥상에 올라가려했다는것을 일러 바치는격 이 되지 않아?”였다. 한어로 말하면 네글자 “뿌따쯔쪼우”데. 그때 나는 조선말이 정말로 거치장스럽 게 느껴졌다. 조선어는 한어에 비해 글자 익히기는 쉬웠다. 자음과 모음 40자를 익히고 받침소리를 읽을줄 알면 되니깐. 하지만 나는 늘 ‘ㄷ, ㅂ, ㅅ, ㅈ, ㅊ, ㅌ, ㅎ, ㅍ’ 등 받침들의 발음소리가 모두 같아서 단어를 쓸 때 분별히 잘 안돼서 무척 힘들었다. 그러나 많이 읽고 쓰니깐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괜찮아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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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문 선생님은 내가 발음은 아직도 좀 차하지만 문장리해라든가 글짓기에서 다른 애들보다 조 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 말에 나는 매우 큰 신심을 얻었다. 아버지가 그러셨잖은가? 겁 나하지 말고 틀려도 많이 말하라구. 나는 지금 조선어를 즐겨배우고 있다. 조선글로 된 잡지책도 주문 해보고있고 도서실에서 조선말로 된 서적들도 빌려보군 한다. 나는 조선글에 애착을 느끼기 시작했고 조선글을 사랑하기 시작한것 같다. 나는 늘 거울속의 나를 보면서 잘 안되는 말들을 다시 곱씹어보군 한다. 학교에서 나는 기본적인 대화는 조선말로 하려고 애쓰고있다. 나는 이제 여름방학이면 아버지에게로 놀러도 가겠다. 그때 가면 고모부와 꼭 한국말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대화를 나눌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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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벤터의 깨달음

<우수상> 숙명여대 총장상 영구시 조선족중학교 중등 3학년 신 림 향

층층히 접힌 뽀얀 구름사이로 비쳐오는 햇빛을 따라 내려다보면 고요히 잠든 라벤터가 펼쳐져있을 겁니다. 그들은 꿈을 꾸고 있습니다. 미풍이 일었습니다. 풍차들이 나란히 회전하고 허수아비의 옷자락이 나붓깁니다. 구름들도 다시 정 처를 찾아 서서히 몸을 옮기기 시작합니다. 모든것이 미풍에 따라 미세한 반응을 보이는 와중에 유독 변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려 애쓰는것이 있었습니다. 해빛이였습니다. 일편단심 라벤터를 향하여 빛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라벤터의 무정은 어디까지 갈지. 미풍에 깨여난 라벤터는 하느작거 리며 자기놀음에 정신을 팔아 해빛을 아는체만체 했습니다. 그의 무정에도 불구하고 해빛은 계속 라 벤테에게 뿌려지고 즐겁게 웃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행복의 미소를 몰래몰래 짓군합니다. 대낮이 였습니다. 해빛은 아주 강하게 라벤터를 비추고있습니다. 그러나 라벤터는 그 빛이 너무나 짜증나게 싫었답니다. 마지막 한오리의 서광이 지고 라벤터는 행복한 래일을 기다리며 노그라진 몸을 달랬습니다. 다음날 아침이였습니다. 풍차는 미친듯이 돌고 허수아비는 술독에 빠진 귀신처럼 야단댔습니다. 하늘엔 검게 깔려있는 먹장구름에 생기라곤 보일 기미가 없었습니다. 이때 강렬히 전해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불안해서 어쩔바를 모르는 떨림소리, 해를 애타게 부르는 구걸의 소리, 라벤터의 마음소 리였습니다. 라벤터는 그제야 알것같았습니다. 해빛이 없는 나날은 이런 공포였다는것을. 비가 세차게 내렸습 니다. 공포는 한층 더 쌓였습니다. 라벤터는 확신했습니다. 자신의 행복속에 해빛이 없으면 안되는 것을. 비물에 젖어서 나약해진 몸안에서 강렬한 부름소리가 폭풍우를 뚫고 구름층을 꿰뚫었습니다. 바야흐로 해빛이 자자해지는 폭풍우소리와 함께 나타났습니다. 여전히 부드럽고 따뜻한 그 빛에 폭 풍우에 입은 라벤터의 상처가 아물러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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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기본상 없어진 라벤터는 웃었습니다. 아픈 상처를 다듬어준 해빛이 있기에 그는 행복했기 때문입니다. 해도 의연히 그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니, 이번엔 더 찬란했습니다. 자신덕분 에 웃는 라벤터가 있기에.. 라벤터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행복은 사실 아주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부모가 항상 우리곁에 있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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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차례의 려행”

<우수상> 숙명여대 총장상 길림시 조선족 중학교 중등 3학년 동 우 선

지금은 22세기, 나는 지구와 고별하였다. - 21세기의 근심걱정과도 고별하였다. 2150년 3월 27일, 달나라에서 나는 인터넷을 통해 지구의 소식을 받았다. 지구가 어제밤 달나라에 구원을 요청한것이다. 이 소식을 본 나는 급히 우주비행선에 앉아 지구로 돌아왔다. 지구어린이는 나를 보자마자 억울함 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달나라누나, 이전에 사람들은 신근하게 로동하고 나무도 심고 록화도 잘 하였지요. 하여 시내물은 은색의 비단처럼 대지를 덮었고 새들은 자유자재로 즐겁게 노래하며 춤을 추었지요. 그때 우리 지구는 정말로 화목하고 아름다왔지요. 그러나 이것은 이미 지난 추억으로 되였어요. 지금 사람들은 경제발전 을 중시하지만 환경을 보호하지 않지요. 경제란 물체가 그들의 두눈을 흐리게 하였지요. 공장의 연기, 차량들의 배기물들은 나의 건강에 큰 영향을 주었지요. 사람들은 나의 인내심을 알고 더욱 제멋대로 하 고 있지요. 나무를 람벌하여 나의 예쁜 치마를 추악하게 만들었고 쓰레기를 강물, 바다에 던져 내 몸속 의 깨끗한 피를 검은 색으로 변하게 하였으며 어떤 때는 고약한 냄새까지 풍기지요. 며칠전 나는 밥도 먹기싫고 머리가 아프고 힘이 없어 우주병원을 찾아갔지요. 신체검사결과에 백혈구가 많다고 썼지요. 지금 나는 나의 힘으로는 더 견디여낼수가 없어 달나라에 요청을 하는거예요.” 그의 말을 들은 나는 가방에서 “만능성장액체”와 “만능부활물”을 꺼내여 지구에 뿌리였다. 5분이 지 나자 죽은 동식물들은 활기를 띠며 생기를 회복하였다. 그러자 지구에 있는 사람들도 자기의 잘못을 뉘 우치고 나무를 심기 시작하는것이였다. 50일이 지났다. 지구상의 공기가 더욱 신선해지고 지구피부는 초록색의 빛을 반짝반짝 내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더는 자기들의 리익만을 생각하지 않고 환경보호 에 일떠섰다. 나는 달나라로 돌아가기전 마지막 한가지 부탁을 남기고싶다. “우리들은 지난날의 교훈을 잊지 말고 귀여운 지구를 아끼고 보호하며 다같이 지구보호에 힘쓰길 바 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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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다리를 건너며

<우수상> 숙명여대 총장상 시드니 한인 천주교 한글학교 중등 2학년 변 승 원

통일의 다리를 건너며, 어깨동무를 하는 우리들의 환한 미소를 보았지

성큼 다가온 하나된 통일의 꿈을 꾸며, 세계만큼 넓은 우리들의 마음을 보았지

금강산에 함께 소풍을 가는 모습을 그리며, 더 이상의 미움은 사라져 버렸지

통일의 다리를 건너며, 서로를 사랑하고 배려해주는 따뜻한 모습을 보았지

우리 나라가 하나가 되어 세계 최강의 모습으로, 남북 통일의 진정한 의미를 찾은 우리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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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후의 나의 모습

<우수상> 백석대 총장상 영구시 조선족 중학교 중등 2학년 김 수 연

20년후의 나의 모습은 어떤것일가? 저 멀리 달나라로 날아가는 우주비행사? 아름다운 동화로 어 린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가? 무대우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멋진 가수? 학생들에게 글을 열심히 가 르쳐주는 령혼의 공정사 선생님? 아니, 다 아니다. 20년후의 나의 모습은 아픔의 고통속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의사일것이다. 하얀 가운을 입고 청진기를 목에 건 의학박사인 나는 첫 환자로 먼저 나를 위해 이국타향에서 힘들 게 돈을 버시는 허리 아픈 우리 어머니를 치료해드릴것이다. 그리고 십몇년동안 고생스레 나를 키워 주시고 글귀를 가르쳐주신 할머니, 할머니의 아픈 다리를 고쳐드릴것이다. 비록 이것은 순수한 나의 바램일 뿐이지만 꼭 나의 20년후의 진실된 모습일것이다. 그리고 제일로 중요한것은 20년후에 나는 아마존, 아프리카의 병마에 시달리는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일생을 바칠거라는것이다. 특히 암말기의 시한부들에게 생의 희망을 줄수 있도록 부단히 효과 적인 치료방법과 약물을 연구할것이다. 20년후의 나는 고명한 의술뿐만 아니라 고상한 의덕을 가진 “의사”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는 의사 가 되있을것이다. 자신의 안위보다 다른 사람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고 오직 그들이 필요한 곳에는 내 가 어디에 있든 무조건 달려갈것이다. 참 보람찬 인생일것 같다. 그 보람찬 인생의 어엿한 주인공이 되기 위해 난 오늘도 시간과 달리기 시합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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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으로 태어나 행복한 나

<우수상> 백석대 총장상 교토 국제중학교 중등 3학년 백 현 인

제 부모님은 모두 한국인이고, 저는 재일한국인 4세입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는 근처에 있는 학 교에 다녔고, 중학교 때부터 지금 다니는 민족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민족학교에 다니려고 생각한 계기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우리 외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가 옛날에 다니던 학교였기 때문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어릴 때부터 자신이 재일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모국인 한국에 갔을 때, 마음속 깊이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 때부 터 자신의 나라의 말인 한국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하니까 지금까지와는 달리 저와 같은 국적의 친구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왠지 자신 의 존재감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일본이름으로 다녔지만, 중학교에서는 한 국이름으로 다니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이 자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초등학교 때 한국인이라고 해 서 특별히 왕따는 없었지만, 한국인이라는 것이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중학교에서는 자신 스 스로에게 긍지를 느끼고, 부끄러움 같은 것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무용 동아리에서 상모나 무용을 하 고 있을 때나, 중학생 모두가 풍물을 하고 있을 때나, 전통놀이를 하고 있을 때나, 그리고 우리말을 배 우고 있을 때나, 그 시간은 나에게 있어서는 아주 행복한 시간입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주신 부모님, 친구, 선생님 등 여러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한국인으로 태어나길 잘했다 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을 알리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에서 앞으로도 더욱더 무용 연습을 하려고 합니다. 무용은 공연이 많아 여러 곳에서 활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 한국무용을 모르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한국을 더 알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마음은 크지만, 어 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조금씩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한반도 통일,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좋아져서, 양국 모두 서로를 더욱 이해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모국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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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수상> 백암재단 이사장상 영구시 조선족 중학교 중등 2학년 박 미 연

어느 하루 영어과외하러 학원에 갔는데 교실에 누구도 없었다. 벽옆자리에 자리를 잡은 나는 심심풀 이로 벽에 우리말로 “영어”라고 써놓았다. 무심코 저지른 “잘못”을 인식했을 때는 이미 벽에 “영어”라 는 두글자가 버젓이 자리를 잡은 뒤였다. 이미 엎지른 물이라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책을 펼쳐들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날이였다. 그날도 일찍 학원에 도착해 내 ”보금자리”로 향한 나는 문득 새하 얀 벽우에서 “개미떼”를 발견하였다. 그건 다름아닌 전에 내가 적었던 “영어”라는 두글자아래 새로 나타 난 글줄이였다. 첫번째 줄에는 “안녕해세요”라는 조선글이 비뚤비뚤, 하지만 또박또박 씌여져있고 두번 째 줄에는 “저는 한족입니다. 조선말을 사용하는 당신과 친구를 사귀고 싶습니다”라고 영어로 씌여져있 었다. 첨에는 “하”를 “해”로 잘못 쓴것이 웃겨서 그냥 피식 웃었지만 그뒤의 글줄을 보고 내맘속에는 뿌 듯함이 샘솟았다. 우리 말과 우리 민족에 대해서 호기심을 품은 그 한족학생에게서 나는 우리말과 우리 민족이 “인기”를 실감햇고 비록 “안녕하세요”가 아닌 “안녕해세요”지만 그의 진정이 내 마음속에 와닿았다. “안녕하세요”는 비록 짧은 한마디 말에 불과하지만 그속에는 우리 민족의 례의바른 품덕과 우리 말의 부드러운 운률이 슴배여있다. 우리 말은 자세히 음미해봐야 더 맛나고 오래 사용해봐야 더 아름다운 신 비한 마력을 지녔다. 중국에 사는 조선민족으로서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너는 우리보다 한가지 언어를 더 알아서 참 좋 겠다.” 그때마다 나는 우리 말과 우리 민족이 더 자랑스럽고 우리 말을 더 열심히 배워야겠다는 열정이 불끈불끈 솟구친다. 평생을 배워도 못다 배운다는 한자보다, 웃으며 들어갔다 울며 나온다는 영어보다, 세상의 아름다운 소리를 그대로 재현시킬수 있는, 백성에 대한 세종대왕님의 애틋한 사랑이 슴배여있는 우리민족의 언 어–조선어를 나는 더더욱 사랑한다. 사랑해요, 우리 말 우리 민족! 빛낼거예요, 우리 말과 우리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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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을 사랑하고 빛내여 가자

<우수상> 백암재단 이사장상 길림시 조선족 중학교 중등 3학년 김 춘 란

조선말은 세상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우수한 언어의 하나입니다. 세상에서 우리 말처럼 단어와 표 현이 풍부한 다른 언어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조선말은 오랜 세월동안 우리 선조들이 대를 이어 목숨 으로 지켜오면서 보태고 다듬어서 우리에게 물려준 거룩한 창조물입니다. 다정다감한 문인들의 붓끝 에서 하나 또 하나의 격정으로 차넘치는 주옥같은 글로 되여 우리들의 마음을 깊이깊이 울려주기도 합니다. 중국이라는 넓은 땅우에서 우리는 더욱더 조선민족의 문화 즉 조선말을 계승하고 빛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화는 삶의 다양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삶의 안내자의 역할을 합니다. 문 학에는 인간의 삶이 담겨있고 희로애락이 담겨있으며 인생의 가치와 꿈이 담겨있습니다. 생활속에서 든 허구속에서든 조선말을 하는것을 통하여 감동과 깨달음을 얻을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우리는 시야가 넓어지고 사상이 풍부해지면서 점차 외국어를 배우고 한족말을 하 는 중에서 우리 말을 잊어버리고 생략하게 됩니다. 신세대의 청소년으로서 우리의 민족어를 하지 않 고 한어를 하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접촉하기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일상생활에 제일 간단한 어휘 만 알뿐 옛으로 이어받은 많은 정화는 이미 어디론가 점점 사라져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지 금의 사전은 종류가 다양하고 딱딱하며 고루한 이미지를 벗었기에 많은 경우엔 자전을 찾아 답안을 구하곤 합니다. 그리고 세대의 발전으로 하여 많은 새로운 전자용품이 출현하면서 우리는 편리를 위 하여 말을 하지 않고 문자를 보내기 좋아합니다. 지금 많은 서적속에서 우리 말을 대체하는 중국어, 외국어를 보면 어떤 심정입니까? 안타깝지 않습니까? 매일매일 말을 하면서 언젠가 우리의 입에서 도 사라지는 조선말, 막상 그런 경우가 일어날 때면 우리 조선민족의 문화는 누구가 이어받고 우리 말을 계승할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우리말 자체를 사랑하고 아직 이런 문화를 이어받고 보존해야 조선민족이 더욱 왕성해질수 있습니다. 선조가 피로 보존해낸 우리 말은 우리의 손에서 끊어질수는 없는것입니다. 우리말은 나름대로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언어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조선말학습을 잘하여 우리 말을 더욱 아름답게 빛내여 갑시다! 제 5회 지구촌 청소년 한글사랑 글짓기 대회 수상작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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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 말의 힘

<우수상> 한국문구유통업협동조합 이사장상 장춘시 조선족 중학교 중등 3학년 윤 려 홍

소학교 6학년때의 일이였습니다. 8살부터 피아노 배운 나는 드디여 9급을 따낼수 있는 기회가 생 겼습니다. 만약 베토벤의 유명한 작품을 류창하게 감정있게 칠수 있으면 9급자격을 줄수있습니다. 피아노는 모두 10급으로 나누어졌습니다. 10급을 따낸 사람은 피아노선생님으로 될수있도 9급에 들어간 학생은 제일 우수하다고 할수있습니다. 하지만 그 곡은 16장의 악보로 이루어졌습니다. 칠때 속도 필요하 고 정확성도 필요하기에 난도가 있는것이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난도를 고려하지않고 하겠다고 그 기회를 나한테 주라고 선생님한테 부탁했습니다. 나는 련습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6시간씩 한달이나 련습했습니다. 류창하게 칠수있었습니다. 하지마 감정을 살리지 못하였습니다.선생님이 나보고 이후에 기회 많으니깐 다음번엔 참가하라고 이 번에 들어가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지말라고 얘기했습니다.감정은 련습하고 생길수 없는것이였습니다. 바로 그때 아빠의 말씀 한마디가 나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아직 포기할때가 아니야.” 아빠는 평시에 아주 엄격한 사람이였습니다. 말수도 상당히 적었습니다.그 말을 들은후 나는 정신 을 차리고 감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베토벤이 어떤 배경에서 작곡을 했는지 그때 뭘 생각했는 지...일일이 알아보았습니다. 끝내 그 감정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피아노 9급을 따냈습니다. 만약 그때 아빠의 그 말 한마디가 없었더라면 나 포기할지도 몰랐습니다. 그 한마디는 나에게 용기 와 힘 그리고 신심을 주었습니다. 비록 아빠는 내 곁에 없지만 그 말은 여전히 날 격려해줍니다. 힘들 때 슬플때 실패할때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 말 한마디-아직 포기할때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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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가고 싶다

<우수상> 이찬열 국회의원상 무순시 조선족 제1중학교 고등 3학년 렴 지 혜

그리운 그곳을 돌아본다. 가까운듯 먼 그대를 그리우면 그리운데로, 그냥 그 마음을 가만히 내버려 둔다. 내가 붙잡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둬도 마음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마당에 있는 나무를 보듯, 강가 에 앉아 흐르는 강물 바라보듯, 내것이라는 생각이나 집착없이 그냥 툭 놓고 그 느낌을 그저 바라본다. 그리운 그곳에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있다. 헐벗은 영혼들도 귀의할 안식이 있는듯 상처뿐인 삶들도 돌아가 잠들고픈 그리운 집이 있는것이다. 그렇다, 그대가 바로 그토록 바래왔고 기다린 나의 고향이다. 험난하고 간고했던 력사의 동굴속을 헤메노라면 우리가 갈라지고 이별해야만 했었던 그 시절은 아픔 과 상처투성일뿐이였다. 하나의 전일체였던 우리민족이 어느새 이웃나라 땅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지 만 긴긴 세월 받았던 고통들은 누군들 리해할수 있을까말이다. 모든 추억들은 저마다 향기처럼 퍼져 우리의 마음속에서 이리저리 쏘아다닌다. 그러면 울적한 마음을 지체할수 없어 소리없이 그대를 불러 보기도 한다. 마음은 안타깝지만 지금으로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더욱 그대와의 거리가 멀게만 느껴지게 한다. 우리의 조상들은 본시 하나의 땅덩어리에서 자라 화목하고도 단란하 게 모여살았다 한다. 그렇게 그들은 많은 지혜와 아름다운것들을 물려주셨건만 시대의 변천이 이토록 무정하게 서로를 갈라놓게 했다. 전쟁이란 시련이 신성했었던 그대를 두조각으로 나누었고 우리민족은 가난의 허덕임속에 강을 건너 남의 곳에 의지해야만 했던 가슴아픔 사실인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그대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터전과 삶을 맞이하였지만 그대를 향한 사랑은 언제나 마음 한구석 그곳에 자리잡고 다시금 그리운 그곳을 바라다본다. 그럭저럭 삶이라고 살아오는 지금이지만 고향을 향한 애틋한 감정이 우리민족을 서럽게 만든다. 마땅히 속할 곳이 애매한 우리로써 그대의 품은 따뜻한 어머니마냥 그립기 그지없다. 고향을 에워싼 산천,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의 소리, 대지의 따뜻함마저 느껴지는 우리는 다시금 아름다운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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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 완전체를 꿈꾸고 있다는것이다. 오랫동안 만나지 않아도 따뜻한 느낌으로 남아있는 그대, 말하지 않아도 언제나 "걋 속삭임으로 머무는 그대,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늘 생각나는 그대, 나의 고향 그대에게 가고싶다. 우연히 매체에 서 이산가족상봉의 기사를 보기도 하고 그들의 눈물에 내 가슴까지 저려오는 벅찬 가슴에 그대를 향 한 마음은 더욱더 커져만 간다. 서로 다른곳일지라해도, 남의 땅에 뿌리를 내렸을지라도 여전히 그대 는 그대이기에 그리운 맘을 멈출길이 없다. 가시덤불 추억속을 맘으로 걷는 아픔, 그리워 목이 쉬도 록 눈물로 부르는 사랑, 이러한 진정한 사랑이 언젠가는 하나의 꿈으로 이루게 할수 있을거라 믿으며 소리없이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적이 없고 비바람이 몰아친다하여 그대를 잊어본적 또한 없다. 서로 다른곳일지라도 유일한 희망을 품으며 오늘도 그곳을 돌아보며 웃어본다. 웃음속 깊이 파고흐르는 강물이 먼 시간을 쫓아 흘러간다. 불에 덴 상처같은 추억 역시 안개꽃으로 흐트러져 우리를 깨운다. 서로가 선택한 길인만큼 서로에 대한 원망대신 그리움만 잔뜩 남겨졌다. 쓸 쓸했던 과거에도, 얼마간 시간이 지난 앞으로도 고향인 그대를 품고 언제나 그대에게 한걸음 달려가 안길 준비를 하고 있겠다. 나보다 그대를 먼저 사랑하겠고 살아감속에 아픔을 묻어둔채 그대에게 가 고픈 그 느낌을 두고 그저 바라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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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의 향기

<우수상> 이찬열 국회의원상 길림성 연변 제1중학교 고등 1학년 최 영 준

향기라고 하면 대부분의 여성들의 경우 세련된 향기의 듄, 성숙한 분위기의 향 알뤼르, 대분분 남 성들의 경우 랑만적이고 고급적인 분위기 캘로클라인, 신선하고 상콤한 향 던힐 등 많고 많은 향수들 을 떠올릴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향기보다는 그 어떤 단어로도 간단명료하게 형용할수 없는 당 신의 향기를 떠올리게 됩니다. 고풍스럽고 부드러우며 친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당신의 향기를. 당신의 향기에는 편안함이 있습니다. 자음 19개와 모음 21개로 이루어진 당신은 누구나 쉽게 다가 갈수 있는 편안함을 가졌습니다. 그리하여 소심하고 겁이 많던 나였지만 8살때부터 거리감없이 부담 없이 당신을 만나고 알아가게 되였습니다. 당신을 만나면서 매일 집에서 조용히 장난감을 만지며 혼 자 놀던 내가, 내가 사는 동네가 세상 전부일줄만 알던 내가, 세상과 대화알줄 아는, 책속에서 다채로 운 인생을 체험할줄 아는 남자애로 커갈수 있었습니다. 해면이 천천히 물을 흡수하듯 나는 천천히 당 신의 향기에 취했고 당신은 내 동년의 뜨락 맑은 하늘에 칠색무지개를 걸어주었습니다. 당신의 향기에는 꿈과 희망과 자신이 깃들어있습니다. 누군가의 관심을 끌지고 못하고 관심을 받 지도 못하던 내가, 교실의 조용한 구석자리만 지키오던 내가 문학가적 기질이 있는 남자애라는 선생 님의 칭찬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꿈이라는 토양에 씨앗이 생겼습니다. 나는 오랜 시간 터넬속을 거닐 다가 해빛찬란한 대자연속으로 돌아온듯 했습니다. 그 꿈만도 가슴벅찼는데 당신은 나에게 꿈, 희망 과 자신감이란 비상의 무기까지 선물해주었습니다. 김소월, 최서해, 리기영 등 문학거인들의 창작과 정과 글들은 나에게 더없는 용기와 희망을 주었고 나만의 향기를 갖는 지름길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 삶에서 당신이 없는 나날을 상상할수가 없습니다. 당신의 향기는 내 령혼에 가 장 필요한 비타민이였던것 같습니다. 중국땅에서 살면 그래도 한어를 잘해야 된다는 인식에 우리 민 족 스스로가 당신의 향기를 멀리하는 이 시점에서 내가 당신한테 해드릴수 있는것이 바로 내 학습생 활에서 최선을 다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학습생활을 바탕으로 당신의 향기를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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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에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세상의 그 어느 문자보다 과학적이고 간편하여 누구나 쉽게 받아드릴수 있는 편안한 당신임을 알리고 싶습니다. 가장 많은 소리를 낼수 있는 당신임을 전하겠습니다. 당신이 지닌 깊은 뜻을 전하겠습니다. 당신을 만나면 이 세상을 만난것과 같다고 전하겠습니다. 당신의 향기가 있었기에 오늘날 내 삶의 향기가 단일하지 않고 풍요롭게 기품있지 않을가 싶습니다. 세상의 그 어느 향기와도 비교할수 없는 가장 값진 기여의 건너편까지 스며들수 있는 향기, 바로 당신 의 향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600여만명의 우리 민족의 목소리가 될수 있고 생각이 될 수 있고 지혜가 될수 있는 당신의 향기가 오래오래 널리널리 퍼지기를 기원합니다. 나는 마음껏 우리말과 우리글로 나의 인생을 엮어가고 있습니다. 지구촌 어디에서나 우리 말과 글 이 퍼지고 또 뿌리박고 있다는 것이 우리 민족의 자랑이고 영광이 아니겠습니까? 훈민정음이여, 어느 새 내 몸속에 깊이깊이 배여있는 당신의 향기, 이제 나는 이 향기를 내 발이 닿는 곳곳에 뿌리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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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보호, 사랑

<우수상> 연세대 자원봉사센터장상 심양시 제21중학교 고등 2학년 김 경 종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유행어를 많이 쓴다. 예를 들면 “쩐다.”, “대박이다.”등을 인터넷에서나 텔 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러한 유행어를 아무렇지 않게 쓰 며,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이 단어들이 표준어라고도 생각한다. 나도 이러한 유행어들을 일상생활에 서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우리 한글 속에는 깊은 뜻과 역사가 담겨져 있다. 이런 유행어들은 아이들 의 말장난과 같다. 하지만 사람들은 한글의 중요성을 뉘우치지 못하고 어른이나 청소년 할 것 없이 마구잡이식으로 우리말을 남용하고 있다. 이런 유행어를 사용하므로서 우리 아름다운 한글이 파괴되 어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다시 한글의 위대한 역사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한글은 조선조 제4대왕인(1443년) 세 종대왕과 집현전학자들이 만들었다. 한글의 처음 이름은 ‘훈민정음’이다. 훈민정음의 뜻은 “백성을 가 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세종대왕께서는 당시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 고 싶은 것이 있어도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백성들이 쉽게 배우고, 쉽게 사용할 수 있도 록 새로운 28자의 글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것 만이 우리나라 한글의 독창성과 과학적인 것을 나타낸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세 계 여러 나라와 달리 알파벳이나 한자등 이웃한 선진국의 문자를 빌려다가 자기 나라에 맞게 고친 것 이 아니라, 발음기관 천지인의 모양을 본떠 독창적으로 만든 문자이다. 예를 들어 자음은 발음기관을 본떠 만들었기 때문에 글자의 모양만 보고서도 그 글자의 소리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기본 글자에 획을 더하여 같은 계열의 문자를 파생해 내는 방법은 몹시 과학적임으로 어떠한 나라도 따라 모방하 거나 배우지 못할 것이다. 한글이 얼마나 우수한지는 한자나 영어와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가 있다. 한자와 비교할 경우, 한 자는 문자 하나하나가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 상형문자이기 때문에 수 많은 문자의 모양과 의미를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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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야 한다. 이곳 중국에서 기본적으로 일상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중국글자, 약 3천자좌우 정도의 문자를 외워야 한다고 한다. 반면, 한글은 소리를 나타내는 문자인 표음문자이기 때문에 24개의 문 자만 익히면 그것을 조합하여 수 없이 많은 낱말을 만들 수 있다. 그럼 영어와 비교할 때는 어떨까? 영어의 A에는 9가지의 소리가 있고 F에는 11가지의 소리를 갖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한글은 하나의 문자로 하나의 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어렵거나 헷갈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 한글의 우수성요, 으뜸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말에도 많이 사용되지 않는 단어들이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외래어도 많이 사용 되고 있는 편이다. 예를 간단하게 들면 우리는 전자 박스라고 부르지 않고 티비나 텔레비전이라고 얘기들 한다. 그래서 외래어가 우리말의 일부에서는 꼭 필요로 쓰이는 경우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외래어를 사용하되, 우리 글과 말의 우수성과 편리성을 우리가 잊지서는 안 된다. 우리글과 말은 사용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에 한글의 중요성을 늘 뉘우치면서 우리 말을 사랑해야 한다. 만약에 우리 나라 한글이 말살되고 파괴된다면은 어떤 일들이 발생하게 될까? 만일 한글이 파괴된다면우리는 언어 조차도 없는 나라에 슬픔으로 살 것이며, 이뿐만 아니라 우리의 문화.역사.사회.경제등 부분에 서 많은 어려움이 올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나라에 대한 자부심 조차도 없어질 것이다. 우리는 마치 길바닥에 돌아다니는도 둑 고양이 같이 방황하며 우리들의 정체성을 점점 잃어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우리나라의 우수한 한글을 보호하고 사랑해 나가야 하는 것이며, 한글에 대한 중 요성을 깊이 깨달으며 살아가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들 스스로가 우리 글과 말을 보호할 때, 우리의 자신도 보호를 받을 수가 있고, 나라도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말을 보호 해 나갈 방법은 참으로 많다. 무수하게 들어 오는 외래어나 우리가 만들어 내는 유행어들을 조금씩 줄 여 나가며, 올바르고 정확한 한글을 사용해 나갈 때에 우리글은 보호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우리나 라 한글에 대한 오래된 역사를 인식해야 하고 우리가 한국인임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무엇보 다도 중요한 것은 한글을 사랑해야 하고 아름답게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껏 우리가 사용하고 있 는 잘못 된 글자며 말을 고쳐 나갈때 우리 말이 세계속에 우뚝 서는 것이며, 나라 사랑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할 수 없어, 고칠 수 없어라는 인식을 버리고 위.아래가 함께 노력하며 우리글과 말을 사용해야 한다. 먼저 무수히 떠도는 은어들이며, 철자법 없는 바보스런 글들부터 우리가 솔선해서 고쳐 나가야 하며,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정확한 한글을 가르칠 때 우리의 글과 말은 아름다운 단어가 될 것이며, 우리도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린이들은 우리의 미래이며 희망이다. 우리 가 잘 못된 것을 보이면 그들은 그대로 답습하기 때문에 모범이 되는 행동과 말이 중요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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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 때문에 어른들이 모범이 되어 올바른 우리말 표기와 말을 사용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우리 한글은 우리나라의 문화를 대표하고 우리의 위대한 역사의 뜻이 담긴 문자이다. 나랏말씀이 어려워서 쉽게 만들어 놓은 글들을 우리가 파괴하면 그것은 바로 우리 세대들이 역사를 파멸하는 것 과도 같기 때문에 반드시 한글 보호는 지켜져야 한다. 마구잡이 식으로 사용되고 있는 현실이 너무도 안탑깝고 새롭게 만들어 가는 역사가 아니고 거꾸로 역사를 먹칠하게 하는 우리 세대가 나쁜 습관으 로 성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성를 해야 할 시기인 듯 싶다. 하룻 밤을 자고 일어나면 우리들 생활 속에, 새로운문화 속에 반드시 존재하는 우리들의 그릇된 말들이 우후죽순처럼 인터넷과 각종 매체를 통해서 접하게 된다. 왜일까? 이렇게 터무니 없는 글과 말들이 내가 사용 못 하면은 바보가 되고 왕따 되는 시대이며, 내가 느끼는 기분이다. 아니, 나만이 느끼는 것이 아니고 주위 모든 친구들이 느끼면 서 살고 있는 것이다. 요즘 우리는 표현이 서툰 말을 해도 이해하는 우리들은 어떤 세대일까? 우리가 일구어 가는 미래는 어떤 것일까? 우리는 강 건너 불난 집에 멍하니 쳐다보면서 살아가야 하는 그런 세대는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말 사랑과 글을 올바르게 배우고 사용해야 하며, 우 리 국민 모두는 올바른 글자 표기와 언어를 사용해야 할 때임을 인식해야 한다. 내가 스스로 솔선수범 하여 바른 표기의 우리말을 사용할 때 조금씩 우리글과 말이 올바른 길로 성숙되어 가리라고 믿는다. 지금까지 나는 우리말 사랑을 어떻게 해야하는 고민 속에서 이 글들을 적어 보았다. 정말 바르게 고 치며 생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새삼 느낀다. 우리 속담에 “세 살적 버릇이 여든 간다” 는 말이 있다. 지금부터 고쳐지지 않고 어리숙한 말과 행동으로 우리들 학창시절을 보낸다면은 속담이 말해 주듯이 우리는 영원히 비트러지고, 왜곡 된 언어와 말 속에서 우리의 아름다운 글을 잊고 잘못 표기된 말이 옳음 같이 생활하기가 쉽다. 그래서 “늦음이 시작”이라고 하듯 지금부터 바르게 우리 글을 사용해야 한다. 반드시 우리말을 사랑하고 보호해야 함은 당연히 우리가 실천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며,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키려 하고 사용할 때, 우리의 마음도 아름답게 되고 우리 사회도 명랑한 밝음이 넘치는 귀 아프지 않는 사회로 변모하리라보며, 세종대왕님이 만들어 놓은 고귀한 우리 글 유산을 우리가 스스 로 지킴으로써우리 하나하나의 개개인도 한글사랑 지킴이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제부터 우리 모두는 나쁜 언행 습관을 버리고, 수 많은 은어 사용 억제를 통하여 한글사랑 지 킴이로 모두가 동참. 변모하고, 대한민국의 하나된 국민으로서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를 이어받아, 한글 사랑이 곧 나라 사랑임을 간직하며 나아갈 때, 나와 우리 모두는 우리가 꿈꾸는 아름다운 나라 건설의 일등 국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랑하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의 국민이며, 우리말 사랑과 보호에 앞장서는 멋진 학생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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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입니까? 확실해요?

<우수상> 연세대 자원봉사센터장상 연변 제1중학교 고등 1학년 박 미 경

지구촌에서 살고있는 아주 작디작은 내가 바라본 세상과 “너”는 아주 실망적이였었습니다.그리고 그 “너”에는 나 자신도 포함되여있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나”에게 외쳐봅니다.우리가 살고있는 지구 촌에게 최선을 다했나요? 정말 이 모든게 최선입니까? 확실합니끼? 지구촌의 뒤바뀐 주인이 되여버린 내가 이곳의 생태계를 위해 최선을 다했나요? 지구촌의 주인은 나와너 인류뿐만이 아니라 모든 지구, 생물체, 자연환경도 주인입니다. 하지만 인 류 인식이 부족함으로 인해 지구촌의 본 주인인 지구가 아파하고 있습니다. “나”는 알고있었을가요? “내”가 환경오염, 생태계파괴의 주범이였다는 사실을 뿐만아니라 “나”때문에 많은 동물들이 멸종되여 가고 있고 희귀동물로 변해가고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공장의 매연,자동차의 매연, 스프레이로 대 기오염이 조성되고 매일 아침 쓰는 샴푸, 린스가 하수구로 내려가서 해양오염을 조성하고 대기오염 으로 인해 온도가 점점 높아지고 가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가스로 인해 오존총이 점점 파괴되면서 지 구온난화가 발생합니다. 또 그로 인해 빙하가 녹아서 남극에 사는 펭귄, 북극곰, 북극고래가 멸종위 기에 처해있다고합니다. 지구가 아파서 요즘들어 부쩍 이상해진 날을 당신은 느끼지 못했나요? 때에 맞지않게 눈이 온다던지 비가 온다던지 황사바람이 분다던지 세계적으로 지진이나 쓰나미같은 자연 재해로 인해 인명피해사건이 얼마나 많은지. 이 모든 사실들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를 향해 외칩 니다. 우리를 향해 눈물흘립니다. 가슴에 손을얹고 물어보세요.나는 한번이라도 이들의 외침에 귀 기 울여본적이 있는지요? 한번이라도 자가용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배기가스 배출량을 감소하려 했 는지요? 에어콘, 냉장고와 같은 프레온 가스를 배출하는 전자용품의 사용을 줄여봤는지요? 아마 나 와 너의 대답은 대부분 “아니요”일것입니다. 보세요, 당신은 한번도 지구촌을 위해 지구를 위해 최선 을 다하지않았습니다. 과연 정말 “내”가 이 지구촌의 주인이였을가요? 피 한방울 흘려도 눈물 흘리는 나입니다. 하물며 지구는 온몸이 멍들고있습니다. “내”가 살려면 자연이 먼저 살아야 합니다. 피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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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의 가장 아랫부분의 생태계가 살아야 가장 꼭대기에 있는 놈들도 살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주인인 지구촌 위에 살고 있는 작은 생물체에 불과하니 제발 내가 주인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버리고 진정한 주인에게 다시 “집”을 되찾아줍시다. “괴물”이 주인으로 되어 가고 있는 “나”에게 다시한번 묻습니다. “최선을 다할 준비가 되었습니가? 활실해요?” 지구촌의 평화를 외치면서 전쟁을 하는 나는 최선을 다했나요? 예로부터 우리는 평화를 소리 높이 외치면서 한편으로는 평화의 정반대인 전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평화를 위함이라고 위장하고 말했지요. 지오프리블레이니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전쟁은 더러운 침략행위일뿐”이라고 말한적이있습니다. 미국이 국제사회에 이라크 침공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한 거짓말은 이라크 평화를 위함이였습니다. 하지만 실체를 보면 아라크 침공으로 인한 주민의 사망자는 12만명이 넘습니다. 제1차세계대전, 제2차세계대전 모두 세계인민의 평화를 위함이고 둘러 대면서 정작 평화를 지키기는커녕 수억명의 인민이 전사하였습니다.이 두 사실이 우의 지프리블레이 니의 말을 너무나도 잘 설명해주고있지않습니까! 전쟁을 해서 “내”가 바랬던건 아마 그많은 사람들 의 목숨보다 더 “중요”했을 “나”의 명예와 권리였을것입니다. 이 가장 악렬한 행위를 저지시키기 위해 그리고 전쟁방지와 평화유지를 위해 1945년1월24일 유엔이라는 국제기구가 성립되였고 세계는 점 차적으로 세계다극화와 정치세계화의 추세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최선을 다했다 고 생각하십니까? 정작 평화와 전쟁은 우리 곁에 있습니다. 평화는 영지와 신념의 다툼이 있을지라도 현명하게 화해하고 타인의 불행위에 자신의 행복을 쌓지않고 기쁨도 괴로움도 모두가 서로 나누는 것입니다. 권력자를 오만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도 평화의 싸움이고 어떤 폭력도 결코 응납하지 않는 것도 평화의 싸움입니다.가족안에서 서로를 사랑하는것부터 시작하는것이 평화입니다. 우리에게 가 장 가까이 있는 사람 즉 가족안에 있는이를 사랑해야합니다. 사랑은 우리가 필요한 이들을 향해서 펼 쳐져야합니다. 멀리있는 이를 사랑하기는 쉽지만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밥 한끼 제공하기는 쉽지만 우리 집안에서 누군가가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며 외롭고 힘들때 그를 위로하는것은 어렵습니다.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익숙해져서 소홀함이되 였을때 우리는 “내전”이 있게됩니다. 그러나 이 “전쟁”을 알아차리고 또 평화의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사람은 몇없을겁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정작 곁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눈치채지도 못하면서 자신 의 곁에 소중한 사람의 마음이 병들어가는것도 모르면서 누구를 관심하고 누구를 보살핀다는말입니 까? 과연 그 행동들이 정말 내가 할수있는 최선이였습니까?확실합니까?아니잖아요.주위사람 한분한 분 소홀히 여기지않고 아끼면서 진정 평화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평화를 위해 내가 진정 무엇을 할수 있는지 잘 생각해보세요. 누구를 위해 사는지 무엇을 위해 가는지 모르는 나에게,머리는 차가워지고 가슴은 더욱 뜨거워지는 나에게, 평화를 위장한 전쟁속에서 사는 나에게 다시한번 묻습니다. “평화를 바라나요? 그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했나요? 지금부터라도 최선을 다할건가요?” 시계태엽이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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듯 끝은 정해져있고 이 물음의 답 또한 정해져있습니다. 지구촌이 스마트화가 되여가고있는 세상을 바라보며 나는 최선을 다했나요? 현대화발전에 따라 얇아지고 있는 전자기구와 맞물어 사람들사이의 인정, 사랑, 믿음 등도 같이 옅 어지지만 인간들사이의 무형의 “벽”은 날따라 두터워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을 보다 편리하고 윤 택하게 만들어주는 다양한 스마트 기기들, 이러한 스마트 기기들이 발달함에 따라 사용인구 또한 급 증하며 이러한 세상속에서 나는 “편리함”속에서 건강을 잃고 사랑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 은가요?일부에서는 “스마트의 페해”라고 이야기를 할정도로 스마트의 악영향도 날따라 커지고 있습 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어폰을 이용하던 나는 그것이 오히려 내 귀에 피해가 간다는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고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이용하던 엘레베이터,택시등이 내 가 이 세상과 함께 “호흡”할수 있는 시간도 함께 단축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눈치채지못하고 있었습 니다.우리는 분명 애초에 이 지구촌을 더 번영하고 아름답게 하기 위해 스마트기계라는 도구를 발명 한것이였을것입니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마트기계가 우리의 도구가 아닌 우리가 스마트기계 의 “노예”가 되여가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느끼지 못하였습니까?사람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하루 1억개가 넘는 문장을 만들면서 글을 집필하는 “작가”가 되여가고 있습니다.이런 스마트폰이 손에서 떨어지면 잠시도 살수없게 되였고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여버렸습니다,마침내 “스마트”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대화를 밀어내고 눈빛교환을 밀어내고 진실한 교감을 외면하도록 만들었습니다.사람보 다 손에든 장치를 더욱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잠깐만 눈을 적셔도 눈이 부신줄 모르고 두 눈 이 “멀어질때”까지 자꾸 원하게 되었습니다. 만남의 순간에도 얼굴을 들여다보지않습니다. 자연스레 사랑하는 사람과의 거리가 멀어지고 우리의 감정도 무뎌져가고 진정 사랑이 무엇인지 그리고 소중함 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할 겨를조차없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퇴보와 사람인식의 퇴보가 한꺼번에 이루어질가 심히 우려됩니다. 이런 지구촌속에서 생활하고있는 나는 뭘하고 있었을가요? 하루종일 그깟 손바닥만한크기의 스마트기기들의 유혹 하나를 못뿌리치고 너와 나의 거리가 한걸음 한걸음 멀 어지게하였고 스마트화세상속에서 정작 나는 스마타화의 “노예”가 되여버렸고 지구촌이 아닌 스마트 세상에 살고있었습니다. 내가 이런 스마트세상을 바라보면서 한 최선은 그저 그 세상에 동참할뿐이였 습니다. 한번도 최선을 다하여 이 세상을 진정 지구촌을 위하고 나를 위한 세상이 되기위해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화려한 것일수록 가시가 많습니다.상처만되는 위험한 그의 “매력”에 계속 빠질건가요? 이제 제 자신에게 외칩니다.(스마트화세상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확실한 답이 나오는 진정한 스마 트 지구촌속의 나를 위하여말입니다.) 지구촌이 불공평으로 뒤덮일동안 나는 최선을 다했나요? 노예주의사회때부터 이미 인류는 계급이 존재하였고 불공평이 존재하여왔습니다. 어떤이들은 이 모든것이 태여날때부터 정해져있고 자신이 받아들여야할 운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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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정말 그렇다고 생각합니까?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별의별 일을 다 저지르는데 누군가는 죄를 짓고 형무소를 가기가 무서워 자살을 하면 죄값을 받았다고 욕을 먹고 누군가는 죄를 짓고 형무소를 가기 가 싫어 자살을 하고도 위대한 지도자로 둔갑하는 지구촌입니다. 그리고 누구는 힘들게 노력해도 재 능이 뛰여난 자가 아주 조금 노력해도 이기지 못하는 이것이 불공평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어떤 의미 로 말하면 세상은 원래 불공평합니다. 누구는 부모가 돈이 많고 누구는 똑똑하고 누구는 외모가 뛰여 나며 누구는 키가 크고 등등 이런 부분들을 사회에 불만을 갖이려고 한다면 태여나는 순간 그냥 접싯 물에 코박고 죽어야합니다.세상에는 태생적으로 불공평한것들이 수도없이 많기때문입니다. 그러나 공편한 단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시간입니다. 부자집 아들에게도 하루 24시간이 주어지고 노숙자에게도 하루 24시간이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이미 불공평한 것들에 연연하기보다 불공평한것 들을 최대한 활용해야 당신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불공평하고 계급이 자리잡은것이 당연한 것이 되여 늘 불공평하다고 한탄하지만은 않으셨나요?손을 더 뻗어도 온힘을 다해 뻗어도 닿지 않는 다고 그대로 포기해버리지는 않으셨나요? 공평한것을 최대한 활용해서 내가 경쟁력있는 부분을 밀고 나가야한다고 생각해본적은 있나요? 24시간이 모자라다고 느껴질만큼 무언가에 몰두하여 노력하여 본적은 있나요? “미쳤다”라는 말을 들어볼만큼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 그것만을 위해 산적은 있나요? 세상에는 나보다 날고 뛰는 사람들이 널렸습니다. 그러나 내가 잘할수 있는 부분,경쟁력있는 부분과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이 결합된다면 당신은 최소한 그분야에서 보통이상의 능력을 갖추게 될것입 니다. 나보다 적게 노력해서 잘된 사람을 부러워하지마십시오. 나와 같은 노력으로 잘된 사람을 보고 박탈감을 느끼는 행위는 자기 학대 수준밖에 안됩니다. 노력의 정도와 결과물까지 공평하지는 않습니 다. 나는 내가 투자한 시간과 내 능력치의 결과물만 내면 되는것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두배 노 력해야 같은 결과물을 낸다면 세배 네배 노력을 해서 더 좋은 결과물을 내면 되는것입니다. 지금부터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을 활용해서 나의 가치를 되찾아야 되지않을가요? 불공평한 사회에 서 더이상 불공평한 노력으로 승부하려 하지말고 최선을 다합시다. 확실해진 계급층이 나타나는 지구 촌과 그속의 나로 다시 태여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이말이 알람시계처럼 우리를 깊은 악몽속에서 깨우고있습니다. 비록 지금 까지는 지구촌, 그 우에 있는 나는 초라한 작디작은 생물입니다. 자기를 과대평가하고 자신의 리익을 위해서 남을 해치는 그래서 더 작아보이는 나입니다. 언제나 불평불만속에서 찌그러져있는 늘 거짓말 로 자기를 위장하고 그 뒤에 숨어버리는 나입니다.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 저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구촌우의 나와 그리고 나를 든든히 옹호해주는 이 지구촌이 서로 어울려 아름다운 동반자가 되는 그날을 위해. 확실합니다. 그날이 꼭 올것이라는것을. 다시한번 자기 자신한테 묻습니다. “최선입니 까? 확실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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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질 욕망 그리고 그 끝 - 20년후의 내 모습을 그리며

<우수상> 연세대 자원봉사센터장상 심양시 조선족 제1중학교 고등 3학년 박 건

가진 게 너무 많아서 마음이 무겁다. 혹시나 잃지 않을가 하는 생각에 늘 조마조마해 하고 있다. 그 래서 많이 힘들다. 하지만 아직 채워지지 못한 그 무엇에 대해 소유욕을 불태우며 난 다시 갈구하며 얻으려 애쓴다. 힘겨워하며 오늘도 그렇게 전전긍긍 소유욕에 불타고있다. 버거운 욕망을 소유한 나, 형편에 뛰여넘는 사치를 갈망하는 나, 아직 소유하지 못한 것에 대해 너 무나도 큰 기대가 있는 나, 그래서 내 마음은 항상 바쁘다. 쉴새 없이 내 마음은 신경쓰고 있다. 이미 소유한 것에 대해 걱정하고 아직 내것이 아닌 것에 갈망하고 갖은 수를 써 얻으려 하기에 분망하다. 그래서 20년후의 내 모습은 무소유의 행복을 누리는 자의 태연자약한 모습이였으면 좋겠다. 나는 어릴적부터 욕망이 극히 강했던것 같다. 내 손에 들어온건 그 무엇이건 절대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지 않았고 애지중지 간직했다. 약간의 기스가 난 장난감에도 예민하게 반응했고 어떻게 해야 그것을 새것처럼 만들수있을가 집착해가면서 신경을 쏟아부었다. 그래서 그런지 매사에 신경쓰는게 버릇처럼 되고 말았다. 세살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어느덧 꽃같은 열여덟이 된 나, 하지만 여전히 내 마음은 바쁘다. 이것저것에 신경 쓰기에 바쁘다. 최신상 휴대전화기를 가지려고 온갖 수를 써서 부모님의 "환심"을 샀고 거기에 성공하여 휴대전화 구입에 성공했다. 그토록 소유하고 싶었던 것이였기에 그무엇 보다 도 즐거워했다. 그럼에도 며칠 지나지 않아 친구들과 뛰놀던 ‘전쟁’속에서 내 휴대전화는 결국 ‘희생품’이 되고 말 았다. 처첨하게 부서진 휴대전화의 스크린은 마치 그 당시 내 기분을 표현해낸듯 싶었다. 그렇게 며칠동안 우울해하며 어떻게 부모님께 해석해야 할지, 어떻게 다시 손을 내밀어야 할지 난 그만 고민 속에 갇히고 말았다. 결국 내 욕망때문에 난 내가 좋아하는것을 소유할수 있었지만 반면에 불필요한 얽매임에 시달리고말게 된 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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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욕망이 절정에 달했던것 같다. 가지고 싶으면 무엇이든 가지려고 아득바득 신경써 가며 얻 으려 전심전력을 다했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못해 늘 불평을 달고 살았다. 친구들은 비싼 신발에 비 싼 브랜드 옷에 최신상 휴대전화을 들고 다니는데 왜 난 부모님께 사정사정해야 겨우, 힘들게 한두가 지 가질수있는건지? 심지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게 된 엄마가 원망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비싼 입원비에 비싼 약 값에 비싼 검사비용때문에 내가 사고 싶은, 내가 먹고싶은, 내가 입고싶은 옷을 살수없게 된다는 생각 에 더우기 짜증이 났다. 엄마는 왜 아프냐고 소리도 질러봤다. 그렇게 내 버거운 욕망은 점점 날 타락에로 몰아갔다. 인간으로서 하면 안될 불효까지 범해가며… 소리없이 우셨던 엄마의 모습이 아직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그때 난 왜 그랬을가? 지금 천번이고 만번이고 엄마께 용서를 구하고 싶다. 그리고 20년 후의 내 모습은 “욕망”이 전부 부 모님에 대한 걱정과 사랑으로 가득하길 희망한다. 부족함이 많은 인간이기에 더 바라고 더 갖기를 원하는 내 욕망의 그 한계가 어딘지? 끝이 없는것 같다. 무엇이든 소유하려 하고 또 그래야 마음이 후련했었던 나. 어느 무엇을 절실히 원하다 끝내 갖게 되여 만족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이미 가지게 된 물건에 대해 우려심 역시 날 힘들게 만든다. 그리고 아직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천방백계로 가지기 애쓰느라 힘들 어 하며 심지어 부모님께 무례를 범하기까지… 버거운 욕망은 결국 내 자신만을 힘들게 할뿐이다. 그 래서 20년후의 내 모습은 무소유의 행복을 누리는 자의 태연자약한 모습이였으면 좋겠다. 소유욕에 연연해 하지 않고 아무것도 갖지 않았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무소유의 기 쁨을 누리고 싶다. 20년 후, 더이상 ‘욕망’이란 존재에 얽매여 있지 않고 하나하나 버려가는 집념없는 내 모습이 기대된다. 얼마나 성공되였나? 얼마나 높은 사회적지위에 있는가? 얼마나 많은 자산이 있 나… 하기보다는 무소유의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였으면 좋겠다. 내 자신의 인간 가치를 결정하는것은 내가 얼마나 높은 사회적 지위에 있는가 또는 얼마나 많은 자 산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내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하느냐이기에… 그래서 마음을 비울줄 아 는, 이미 가진것에 대해 얽매이지 않고 아직 얻지 못한 것에 대해 집착하지 않으며 얻기 위해 신경 쓰 지 않는 그저 무소유의 무심을 가진 그런 나 ― 나는 20년후의 내 모습을 그려 본다.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인생사를 바라보며 가지지 못해 아쉬웠던 것들이 사실은 그토록 원했던것이 아님을 알게 된 20년후, 내 머리 속엔 더이상 잡다한 생각들이 없고 무소유속에서 진정 행복을 느끼 는 그런 내 모습을 희망해보며 또한 기대해본다. 그렇게 하나하나 버려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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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린다.

<우수상> 연세대 자원봉사센터장상 무순시 조선족 제1중학교 고등 2학년 최 미 향

하늘이 한없이 맑고 실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꽃향기가 은은하게 퍼지는 또 하나의 따스한 봄이 다가왔다. 그러나 내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눈이 쌓여있었다. ‘이별’이라는 아이가 나의 마음을 꽁꽁 얼려놓았다. 중국땅에서 가진게 없이 살아가기 힘들어 아빠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한국으로 돈벌이를 하러 떠나셨다. 아빠와 이별한지도 어언간 17년이 되어간다. 내 기억속의 아빠는 달마다 두둑한 생활비를 꼬 박꼬박 보내주시는 모범적인 아빠였다. 나는 아빠가 한국에서 손쉽게 돈을 벌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리하여 갖고 싶은것이 있으면 무턱대고 사달라고 졸라댔다. 17년동안 항상 다른 친구들보다 더 좋은 것을 누리며 살았다. 옷이든 신발이든 내 몸에는 늘 명품이 걸려있었고 핸드폰도 항상 최신기종이였다. 물질적으로 늘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으니 아빠와의 추억은 그리 중요치 않았다. 몇년만에 집으로 돌아 오실 때에도 가방안에 들어있는 선물이 더 반가웠다. 재작년 여름방학 때아빠는 연차를 내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오랜만이라 어색했다. 하지만 아빠 가방 속에 들어있는 옷과 신발들에 매혹되여 이내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나를 보고도 아빠는 마냥 행복해 하셨다. 아빠는 이번처럼 집에 오래동안 머물수 있는 기회가 없다며 가족여행을 가자고 조심스럽게 입 을 열었다. 찌는듯한 더위가 한창이라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다음날 온가족이 단동으로 여행을 떠났다. 아침 일찍 기차에 올라탄 나는 만사가 귀찮기만 했다. 기분이 들뜬 아빠가 자꾸 말을 걸자 나는 두귀에 이어폰을 꽂고 잠을 청했다. 한참을 지나자 감미롭게 들려오는 노래소리와 함께 엄마, 아빠의 목소리 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여보, 힘들지 않았어요? 먼곳에서 집식구들 먹여살리느라 애 썼어요.” 엄마는 아빠의 손을 꼭 잡고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아빠는 미소를 지으면 서 연신 괜찮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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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엄마, 아빠 너무 오글거려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 아빠를 놀렸다. 그때는 어려서 그것이 닭살 돋는 이야기로만 느껴졌 던 것이다. 우리의 여행은 이틀만에 끝이 났다. 누군가에게는 친구들과 같이 간 것보다 재미없는 여행, 누군가 에게는 처음으로 가족들과 같이 떠나는 가슴 벅찬 여행으로 각자의 추억속에 새겨졌다. 이토록 철부지인 내가 이번 겨울방학에야 “아빠”라는 단어의 무게감을 느꼈다. 민족의 대명절 설날을 같이 쇠기 위해 우리 식구는 한국에 있는 아빠집으로 모였다. 여행이후로 처음 보는 아빠의 모습은 많이 달랐다. 흰머리카락이 머리를 덮었고 밭고랑같은 주름이 얼굴에 깊숙히 파고 들었다. 이런 아빠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날 밤 우연히 듣게 된 엄마, 아빠의 대화는 더구나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여보, 요즘은 많이 힘들어. 회사에 일이 적은데다 잔업도 할 수 없어서 수입이 많이 줄었어. 회사에서도 온갖 스트레스를 받고 말이야. 그래도 지금 여보랑 애들이 옆에 있어줘서 참 다행이야. 이번 설날은 외롭지 않겠다.” 우리에게 보여주던 모습과는 달리 많이 지친, 많이 약해진 아빠였다. 아빠의 한숨소리에 땅이 꺼질 것만 같았다. “여보, 힘내요! 딸들도 요즘은 철이 들었는지 공부도 열심히 하고 뭐 사달라고 보채지도 않아요. 돈 많이 벌어오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부담감 좀 덜어요. 여태까지 너무 힘들게 살았어요.” 엄마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나는 눈물범벅이되였다. 한결같이 강하시던 아빠가 얼마 나 힘들었을가? 자신의 고단함을, 외로움을 깡그리 지운채 “가정”이라는 이름을 위해 혼자 참아내고 혼자 버텨냈다. 억누르고 억눌렀던 고단함이, 외로움이 한번씩 기승을 부리는 날이면 아빠는 혼자서 술 잔을 기울이지 않았을가? 그러다가는 가족을 그리는 마음까지도 꾹꾹 눌러버리지는 않았을런지? 천만 가지 생각이 얽히면서 나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동안 아빠의 고단함을 꼬물만치도 이해하지 못한 내가 한없이 미워났다. 좋아하는 옷과 신발을 사달라고 조르지나 말았을걸, 아빠랑 같이 있을수 있는 시간만이라도 좀 더 기쁘게 해드릴걸… 내 자신을 향한 원망이 커질수록 눈물은 파도같이 밀려왔다. 아빠는 항상 우리의 버팀목이였다. 이제는 우리도 아빠의 작은 버팀목이 되련다. 식구는 이런것 같다. 모든 것을 함께 겪지는 못하더라도 기쁠 때 공유할 수 있는, 힘들 때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존재인것 같다. 아빠에 대한 그리움은 파도같이 내 얼어붙은 마음에 밀려왔다 밀려간다. 서로서로를 위해주고 서로 서로의 버팀목이 되여주는 따뜻한 기류가 흐르는 봄이 되기를 바랄뿐이다. 따스한 햇살속에 아빠와 손 잡고 여행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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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원

<우수상> 연세대 자원봉사센터장상 선양 한국국제학교 고등 1학년 손 석 중

우리나라는 현재 남북이 갈라져있다. 우리는 그중에 남북에 살고 있는데 남북에서 사는 삶은 복잡하 고 바쁜 생활을 하게 된다.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게되고, 정신없이 자신의 일들을 하게 되면 자연스레 통일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우리나라가 전쟁을 아직 끝내지 않고 휴전중이 라는 것을 자연스레 잊게되 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의 통일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옛날에 일제감정기가 지나고 약해질데로 약해진 우리나라를 소련과 미국이 신탁통치를 했는데 소련 은 자연스레 북한을, 미국은 남한을 통치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북한은 자연스레 소련처럼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 나라는 미국의 과학 문물과 여러 서양 문물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되어 이렇게 잘 사는 나라가 되게 되었다. 물런 미국이 도움을 주긴 했지만 우리 나라사람들도 우리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우리는 현제 거의 60년 정도 남북이 갈라졌다. 그러다보니 남한과 북한의 경제 성장이 차이가 나기 시작하였다. 남한은 과학기술과 여러 가지 반도체 자동차 등의 기술로 많이 발전을 하게 되었지만 북한은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가난한사람들은 굶어죽어가고, 권력을 쥔 사람들 은 먹고 놀기에 바빠 경제가 하락한 상태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남한은 잘사는 나라가, 북한은 못 사는 나라가 되기에 이르렀다. 우리가 생각해 보아도 웃기기 그지없다. 같은 나라인데, 이렇게 달라 질 수 있는지, 우리나라 말고 독일도 우리나라처럼 남북이 갈라졌었다. 하지만 독일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통일에 이르기 까지 했다. 특히 베를린장벽을 부수고 사람들이 서로 얼싸안으면서 환호를 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워 보였다. 이러한 장면을 보니 우리나라가 3.8선을 넘고 서로 얼싸안는 모습이 떠올랐다. 다른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냥 북한하고 남한하고 손잡고서 통일하자고 하면 통일이 되는게 아닌가? 그냥 확 통일 한다고 하지~’ 하지만 이렇게 무턱대로 통일을 하다간 대한민국에는 큰 문제가 닥치게 될 것이다. 나는 통일을 하게 될 때의 문제점과 고쳐야 할 점을 쓰도록 하겠다. 첫째, 북한과 남한은 언어적 차이가 있다. 60년이 지난 이 세월동안 북한과 우리나라는 새로운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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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만들게 되면서 언어적으로 차이가 나게 되었다. 예를 들면 마네킹-몸틀, 만화-이야기 그림, 문장글토막, 배낭-멜가방 등의 언어차이가 많이 난다. 나도 한번 인터넷에서 북한말이 궁금하여서 찾아 보 았는데 너무 많아서 다 볼수가 없을 정도 였었다. 우리가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언어적 차이를 극복하 여야 한다. 그리고 남한 국기와 북한 국기마저 다르기 때문에 대한민국이란 국기도 바꿔버려야 할지 도 모르며 또 북한은 인민공화국이라 부르고 남한은 대한민국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대한민국이란 만 도 바꿔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이 되기 전에 이러한 문제들을 잘 고려하여서 말들을 바꾸던지 서로의 문화를 체험을 해보면서 배워보는 시간을 가지게 하는 등의 방법 을 써보는것도 좋을 것 같다. 둘째, 남한과 북한의 경제적 차이로 인해 문제가 된다. 내가 위에서 말했듯이 남한과 북한의 경제적 으로 차이가 꽤 난다고 하였다. 그런데 만약 무턱대고 통일을 하게 된다면, 북한사람들은 가난해서 직업을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고, 남한 사람들은 굶어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로 인해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 상황이 일어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세금을 많이 올리게 되면 사람들의 불평은 늘어만 갈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은 남한과 북한이 서로 경제 협력을 잘 이루어 여러 정보를 주고 받으며 북한의 경제도 높이고 동시에 우리나라 경제도 높여주면 좋을 것 같다. 단지 이렇게 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셋째, 남한과 북한의 과학적 기술이 차이가 난다. 경제적 차이가 나면서 또 과학적 기술에도 차이가 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많은 과학기술이 발전되었지만. 북한은 외국으로부터 오는 문물들을 거의 통 제하기 때문에 과학기술이 현제 많이 발전되지 못한 상태이다. 그러므로 남한과 북한이 서로 과학적 기술을 주고받으면서 북한이 다른나라로부터 여러 과학기술과 문물들을 들여와서 연구하다 보면 남한 과 과하걱 기술이 거의 비슷해 질수 있을것이라고 나는 생각을 한다. 나는 이렇게 우리가 통일을 하려 할때 고쳐야할 문제점들을 3가지를 내세웠다. 하지만 우리는 이 3가지 말고도 문제점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 많다. 이렇게 문제점들을 해결 하는데에는 많은 예산과 인력, 그 리고 시간이 필요 할 것이다. 하지만 통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해 보아라. 이산가족들의 슬픔 을... 지금도 이산가족인 사람들의 심정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원통할 것인가? 자신의 가족들중 누군 가가 이북에 있으면 얼마나 그립고 걱정일 될것 인가? 소식조차 모른체로 살아가는 슬픔을 생각해 보면 꼭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북한에는 유명한 금강산과 좋은 자연 관광지들이 많이 있다. 만약 통일이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금강산을 관광하고 외국 사람들도 관광을 하게 되는 좋은 관광지 가 될수 있을것 이다. 난 생각한다. 축구 경기를 할때 남한VS북한 이 경기를 하고 있을때 실로 할말을 잃게 된다. 같은 나라 사람들이 서로 경쟁자로 보고, 서로 다른 나라로 보고 경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 면... 또 나도 모르게 북한이 지라고 말하며 남한을 응원하고 있는 것을 보면, 속상하고 부끄러울 따름 이다. 나는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서 우리나라 온 국민들이 손을 잡고 애국가를 부르는 날이 왔으면 좋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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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을 소중히 여기자!

<우수상> 동국대 총장상 길림성 연변 제1중학교 고등 1학년 리 현 미

이번 글짓기공모대회 요강을 읽어보고 한 가지 느낀바가 있었다. 대회목적도 지구촌 한글의 우수 성을 알리는 것이고 이름 하여 “우리글사랑” 글짓기대회이지만, 요강에는 의외의 단어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외래어이다. 외래어 사용이 많지는 않았지만 쓰임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아마도 우리 조선민족의 아름다운 순 우리말을 놔두고 외래어가 너무 대중화된 듯싶었다. 어디서든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외래어... 그리고 그 속에서 묻히고 있는 우리 민족 고유의 언어인 순우리말, 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순하고 고운 우리말은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선조들은 조선시대 이전까지도 한자를 사용했다. 하지만 우리말을 한자로 옮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한자는 복잡 하고 이해하기가 어려워 양반들은 쉬이 한자를 깨칠 수 있었어도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 백성들이 한 자를 배우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하여 한글을 몰라 법전을 읽을 수 없어 자기가 지은 죄도 모르 고 감옥에 갇혀 죄인으로 된 무고한 백성들이 비일비재하였다. 이에 백성들을 아끼던 세종대왕은 백 성들이 글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어, 1443년에 많은 학자들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모든 백성이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훈민정음” (訓民正音)을 만드셨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 른 소리라는 그 뜻으로부터도 만들어진 “훈민정음”, “훈민정음”을 통해 세종대왕이 백성을 얼마나 아 끼고 백성의 고통을 얼마나 헤아리시고자 노력하셨는지 알 수 있다. 이런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글은 그 우수성 또한 매우 높다. 제일 큰 한글의 우수성은 바로 배 우기 쉽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저자인 다이아몬드 교수가 말하기를 “한글은 표음문자하 고 표의문자의 장점만 합쳐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또한 놀라운 사실은 모음과 자음이 각각 모양이 달라 1000분의 1초 만에 모음인지 자음인지 식별가능하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시간이 흘러 지남에 따라 발전함과 동시에 변화를 거친다고 하지만 인류가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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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었고 또는 인류가 현재까지도 사용하고 있는 여러 민족의 언어 중에서도 우리의 한글은 그 유래와 과정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하나의 자랑스러운 언어에 속한다. 하지만 우리의 주변에는 이런 깊은 역 사적 사연을 가지고 있고 우수성도 뛰어난 순우리말을 놔두고 외래어는 물론이고 신조어도 아주 많 이 사용되고 있다. 아무 뜻도 없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생겨난 신조어들이 인터넷에 자리 잡고 있고, 신문잡지를 포함해 방송에서도 외래어는 수도 없이 나오고 있다. 이는 우리가 함께 걱정하고 한번 심 사숙고해야 할 문제이다. 얼마 전, 시골에서 오랜만에 할아버지가 내려오셨다. 저녁 식사 후 온가족이 단란히 모여앉아 텔레 비죤을 시청하고 있었다. 한국방송을 시청하던 중, 할아버지께서는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가 족은 모두 할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 심기가 불편하신 것 같아서였다. “장인어른, 무슨 일 있으세요? 아까부터 안색이 안 좋아 보입니다.” 아버지께서도 걱정되신 모양 이었다. “자네는 저 방송에서 나오고 있는 말들이 모두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가? 이 늙은이는 하나도 못 알 아듣겠네...” 우리가족은 모두 할 말을 잃어 아무말씀도 드릴수가 없었다. 말씀을 하시면서 어색한 미소를 짓는 할아버지가 그토록 씁쓸해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조선족이다. 우리들은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민족들과 똑같은 한글을 사용하고 있다. 지금 내 나이 또래 아이들은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민족들만큼이나 외래어사 용이 자유롭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들은 외래어에 아주 익숙하지 못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외래어들은 뜻도 모르는 것이 많다. 우리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세대가 유행에 따라가지 못하고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근본을 모르고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우리이다. 그렇다고 우리 조선족들은 순 우리말만 사용하고 있는가? 아니다. 한국에서 생활하 고 있는 민족이 외래어가 자유로운 것처럼 중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조선민족은 한자어를 자주 쓴다. 그러니 순우리말이 자취를 감출 가 더욱더 우려되는 것이다. 선임들이 우리에게 언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우리의 말, 우리의 글인 “한글”을 선사해주었 으면 우리는 응당 그것을 계승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민족의 고유의 유산을 지키는 것만큼 자랑차고 보람 있는 일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래서 우리가족은 자아부터 반성하고 시작하자는 의미에서 매주 일요일 하루 동안은 집에서 우리말만 사용하기 체험을 하고 있다. 규칙은 아주 간단하 다. 외래어나 신조어나 한자어를 사용했을 시 벌칙으로 사용한 외래어, 신조어 및 한자어에 해당되 는 한글을 10번 쓰기이다.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경각심을 가지고 신경을 쓰다 보니 외래어, 신조어 등 사용이 적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간당 사용하는 외래어나 신조어 단어가 많아지고 이로 인 해 10번 쓰기조차 귀찮아지면서 아예 대화가 적어지는 상황까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우리 집은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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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모두 말이 많은 편이여서 가족이 함께 있으면 수다와 웃음이 끊이지를 않는데… 아차,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무엇인가를 뒤늦게 심각하게 깨닫게 되였다. 바로 외래어와 신조어가 너무도 많이, 그리 고 너무도 광범위하게 우리의 일상 속에 침투되어 있다 보니 아차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외래어 때문에 벌칙을 면하고자 대화를 적게 하게 되는 것이었다. 체험이 끝나고 나면 우리 앞에 수북이 쌓인 벌칙으로 쓴 종이장들...우리 가족은 모두 반성의 표정과 피곤한 얼굴로 씁쓸히 마주보며 긴 한숨을 쉬곤 한다. 체험 횟수가 늘어날수록 한글의 소중함을 더 깊게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는 결코 우리 가족만의 체험으로 각성할 문제가 아니라는 게 참 안타깝다. 물론 외래어나 한자어들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반대한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사회적 발전과 국제적 교류에 따라 이젠 외래어가 일상용어로 된듯해 우려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백의민족, 우리 만의 특색을 가지고 있는 조선족이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민족임을 망각하고 순우리말보다 외래 어들을 더 사용하는 것 같아, 곱고 순한 우리말 우리글이 묻히지 않을까 그것이 우려스러울 뿐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외래어 때문에 몇 번이고 글을 수정하였다. 외래어사용이 나쁘지 않다. 쓰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의 곱디고운 순우리말이 사라지지 않게 우리말로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우리말, 우리글을 사용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자그마한 바램이다. 우리 의 백의민족이 “아리랑” 선율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함을 느끼는 것처럼 우리 고유의 순수한 우리말로 마음을 전달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말이 잊히지 않게, 우리글이 사라지지 않게 우리세대가 한 번 더 고민하고 노력해야 될 시점이 오지 않았나 싶다. 유명한 글귀처럼...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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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앞에 난 돛대이여라!

<우수상> 동국대 총장상 심양시 조선족 제1중학교 고등 1학년 윤 춘 홍

민화방초 우거지고 천지만홍으로 수놓은 산들의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들이 고요한 수면에 그모습 그대로 어려있다. 자연의 신성함이 그대로 슴배인듯… 강따라 얼마나 나아갔을가, 한 배사공이 여인을 태운 나룻배를 젖고 있다. 여인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단아하게 나룻배에 몸을 싯고 있었다. 가볍게 땅을 스치는 치마자락과 반달모양의 고운 소매 자락, 길고 곡선의 미가 한껏 풍기는 한복의 모습이 하늘을 가르며 이 바다를 아름답게 물들여 놓았다.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서일가, 싸늘한 기운이 감돌던 하늘에는 따뜻한 해살이 구름층을 뚫고 나와 여인의 머리결을 비스듬히 비쳐준다. 한복의 미가 하늘을 감동시켰나보다. 햇살을 머금고 나룻배는 여전히 나아가고 있다. 어디선가 저리 풍당, 요리 풍당하는 물살을 튕기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온다. 귀를 쫑긋 세우고 보니 바다물속에서 물고기떼들이 수면우로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아마도 어떤 향기로운 냄새가 그들의 후각을 자극시켰나보다. 나룻배에는 여인이 가져온 몇 개의 항아리단지가 있었다. 그속에는 된장이며 고추장이며 김치가 들어있었다. 메주를 쑤어서 빚어낸 발효식품 된장의 구수한 향기와 매콤달콤함으로 입맛을 사로잡는 발효식품의 자랑인 김치의 톡쏘는 냄새가 저 멀리 바다를 건너서 물고기떼들의 후각까지 사로잡았던것이다. 바다와 바다를 건너 오로지 냄새에 빠져 따라온 물고기떼들이 쓸쓸한 여인을 동반한다. 어느새 붉은 태양이 서산마루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 저 산마루에 걸린 아름다운 노을빛에 의하여 여인은 절로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리랑, 아리랑……” 여인의 달콤한 목소리와 구성진 민요에 물 고기떼들은 더더욱 야단법석이였고 어느새 새무리들도 여인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저 멀리 있 던 새들도 구성진 민요에 귀가 솔깃하여 발걸음을 옮겼던것같다. 새들의 환상적인 하모니반주와 여인 의 구성진 민요자락은 하나의 멋진 화음으로 되여 음악회를 방불케 한다 배는 여직 물길을 헤가르고 있다. 이젠 달님이 여인에게 빛이 되여준다. 밤은 저물었지만 여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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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는 많은 동반자가 뒤따른다. 그들이 반한것은 여인의 멋이였다. 그것은 바로 우리 민족의 상징이 였다. 바다는 서로 이어져있다. 바다는 나라와 나라, 이 세계를 일관시켜주고 있다. 이 세계를 깨우고 잠재우는 해와 달, 하늘과 바다의 주인인 새와 물고기, 이들은 이 세상의 주인공, 전세계를 포함하고 있다. 우리민족의 자랑스럽고 멋스러움이 빠져버린것이다. 어느순간부터 , 세계는 우리를 주목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세찬 파도가 우리를 위협하 고있다. 우리의 나룻배가 흔들린다. 저 멀리 동해바다 외로운 섬 오늘도 거센바람 불어오겠지 조그만 얼굴로 바람 맞으니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물살을 헤가르다보니 저앞에 아름답고 황홀한 섬하나가 그들의 발목을 잡는다.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에 외로운 섬하나, 새들의 고향이다. 자연의 본모습이 어우러져있는 한반도의 섬이다. 바로 우리의 섬 독도이다. 황홀함에 슴배일려는 찰나 거센 파도가. 세차게 몰려온다. 파도가 운다. 독도가 울고있다. 나룻배는 거센 물결에 흔들리고 있다. 중심을 잃고있다. 더이상 가까이 다가갈수 없게 흔들리고 만다. 적막과 어두운 구름이 이 섬을 덮치고 있다 외계세력이 독도를 품으려한다. 우리의 품에서 꿈과 희망을 앗아가려하고있다. 독도, 그 아름다운 섬, 철새들과 자연이 유구한 력사와 더불어 지키던 우리민족의 섬. 그들은 우리 민족의 력사도 검은 그림자로 뒤엎으려한다. 우리의 민족, 그 누가 흔들어도 선조의 지혜와 한마음 한뜻으로 굳게 단합된 위대한 한백성의 나라이다.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 독도는 우리네 땅이리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모진 비바람이 몰아쳐도 세찬 파도가 몰려와도 돛대는 의연히 나룻배를 지킨다. 모진 환경속에 파도에 휘말려들어가는 나룻배를 일쿼세운다 .바람을 헤가르며 나룻배를 지킨다. 묵묵히 선자리의 중심을 지킨다. 배사공은 더 높이 돛을 띄운다. 더 힘차게 노를 젖는다. 이 캄캄한 어둠을 박차고 빛을 찾아 나선다. 망망한 대해에 유일하게 빛이 되여주는 등대를 찾아 길을 나간다. 금강산 맑은 물은 동해로 흐르고 설악산 맑은 물도 동해가는데 우리네 마음들은 어디로 가는가 언제쯤 우리는 하나가될가 저앞에 펼쳐진 등대를 찾아 떠나는 길, 우리민족의 념원이 물든 길, 우리 민족이 가는 길, 등대는 이 바다의 적막을 빛추어줄것이다 .한반도의 섬, 독도를 빛추어줄것이다. 우리의 민족의 앞날도 함께 빛추어줄것이다. 우리민족은 이 길을 따라 나아가 더 밝은 세상을 빛내는 등대가 될것이다. 그대 앞에 난 돛대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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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그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동해바다 푸른 물결 힘차게 가르련다. 더 높이 돛을 올려 우리민 족이 나아가는 길을 지키고 함께 할련다.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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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은 아프다.

<우수상> 백석대 총장상 무순시 조선족 제1중학교 고등 2학년 유 정 민

“이별”이란 서로 갈리어 떨어진다는 뜻이다. 검색창에 “이별”을 써넣으면 연관검색어에 “이별 극복 법”이란것이 뜰 만큼 이별은 사람들을 아프게 한다. 한 가정의 파탄으로 말미암아 뭇사람의 가슴은 찢 어진다. 한 나라가 해체되면 그 아픔은 더할나위 없을 것이다. 오늘도 티비에는 이산가족상봉에 관한 소식들로 떠들썩하다. 60여년의 오랜 기다림 끝에 서로의 안부를 물을수 있는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폭설과의 사투를 벌이며 금강산까지 찾아간 사람들은 대 부분이 팔순을 넘긴 어르신이였다. 이산가족들이 차차 나이가 들어가면서 해마다 4천여명의 어르신 들이 통일의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난다고 한다. 64년동안 생이별을 겪었던 91세 할아버지가 “죽어도 금강산에서 죽겠다”며 구급차에 몸을 싣는 장면을 보자 옆에 계시던 할머니께서는 더이상 참지 못하 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추억에 젖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식구가 많아 한끼 식사조차도 버거웠을만큼 가난에 찌들어 살던 시절이였건만 그래도 함께라서 행복했다고 하신다. 사소한 일 하 나에 울고 웃었던 순수했던 그 때 그 시절 조선이라는 고향땅에서 오붓하게 살았다고 하신다. 하늘에 서 오손도손 잘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는지 샘이 났는지 붉은 해가 세수하던 파란바다를 검게 물들였 다. 구름과 비바람이 오가던 하얀 하늘이 회색빛으로 돌변하여 우리 민족을 찾아온 어둠을 그대로 두 었다. 때아닌 전쟁이 터진 것이다. 전쟁은 참으로 잔혹하다. 삶의 터전이 파괴되자 가족들은 살길 찾 아 뿔뿔이 흩어졌다. 지금쯤 다른 가족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할머니는 또다시 눈물을 훔친다. 사실 배고픔에 추위에 시달리지 않고 행복에 겨워 자란 나로서는 할머니의 감정을 다는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은 나도 지금 생이별을 하고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경제적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다 엄마는 할수 없이 두살밖에 안되는 나를 할머니께 맡겨놓고 한국행 을 택했다. 17살이 되도록 엄마와 함께한 시간은 기껏해야 2년 남짓하다. 기억속에 나는 늘 혼자였다. 주위 짝꿍들에게도 나는 “엄마없는 아이”, “할머니와 살고 있는 아이”라고 인식이 되였다. 나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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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없었다. 나는 늘 혼자였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에서 엄마와 찍은 사진을 가져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그러자 몇몇 학생들이 폭소를 터뜨리며 “선생님, 엄마 없는 사람은 어떡해요?”라며 나를 가리키고는 대놓고 비웃어댔다. 선 생님은 이내 당황한 기색을 하였다. 선생님께서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변했다. 연민의 눈빛이 첨가되 어 있었다. “난 엄마 있는데, 나도 엄마가 있다고!” 아무리 울부짖어도 돌아오는건 애들의 야유와 불심뿐이였다. 나는 기필코 엄마와 찍은 사진을 애 들에게 보여주겠다고 사진첩을 샅샅이 뒤졌다. 온 저녁을 뒤져서야 끝끝내 사진 한장을 찾아냈다. 엄 마랑 같이 꼬깔모자를 쓰고 생일을 쇠고 있는 사진이였다. 이 사진을 애들에게 보이고 나서야 내 울분 이 사그라졌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슬픔이 둥지를 틀었다. 14살 사춘기에 나도 엄마가 있다고 증명한 사진은 가소롭게도 8년전 내가 6살 생일 때 찍은 것이였다. 그렇게 몇년이 흘러 “엄마”라는 단어의 뜻이 희미해질 무렵, 나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엄마와 둘만 의 시간을 가지게 되였다. 세월의 탓일가? 엄마와 난 참 어색했다. 침묵의 연속이였다. 곁에 있어도 거리가 느껴졌다. 솔직히 엄마는 내게 있어서 엄마라고 불러야만 하는 낯선 아줌마에 불과했다. 엄마 가 그리운 감정보다 원망의 마음이 앞선지라 하루가 멀다하고 엄마한테 화를 내기만 했다. 이런 나를 보고 엄마는 또 마음 아파했다. 철이 들어서야 엄마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도 나 자 신의 상처만 고집했던 것 같다. 엄마는 아는 사람없는 타지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가? 외로웠을가? 외국인이라고 교포라고 온갖 비웃음과 구박을 당했던 엄마를 상상하노라면 가슴 한구석이 아려온다. 이 모든걸 참아내고 꿋꿋이 살다가도 떼어놓고 온 자식을 생각하노라면 또 얼마나 아팠을가? 엄마는 항상 힘들지 않다며, 괜찮다며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속에는 인생의 고달픔이 묻어있다. 엄마가 그 누구보다 힘들다는것을 나는 잘 안다. 이별은 아픈것이다. 나는 그 누구보다 그 감정에 익숙하다. 하지만 사람은 평생 아플 수 없다. 서로 의 이해심으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따뜻한 정으로 이별을 포근히 감싸줄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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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에 흩어져 사는 친구들

<우수상> 백석대 총장상 Colegio Rumo 고등 1학년 신 영 림

한국, 하면 여행이 떠오른다. 여행은 다른 곳에 가서 새로운 일을 경험하는 것이다. 여러 곳에 여행 을 다녀봤지만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한국이다. 왜냐하면 한국이 가장 멀고, 추억이 많기 때 문이다. 한국에는 세 번 정도 여행을 다녀왔는데, 이번에 다녀온 한국은 좀 더 특별했다. 이번 여행은 재외동포 재단에서 주최한 모국 연수에 참가하기 위한 것이었다. 재외동포 재단에서 세계 여러 나라에 살고 있는 한국 아이들을 불러 한국에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연수를 가기 전에는 마음이 너무 복잡했다. ‘다른 나라 애들이랑 친해질 수 있을까?’ ‘만약에 의사소통이 안 되면 어떡하지?’ ‘안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 보니 간다고 한 것이 후회되기까지 했다. 그래도 해 보고 후회 하는 것이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나을 거서 같아서 다녀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첫 날 모였을 때에는 서먹서먹해서 서로 눈도 마주치기가 어색했지만 같이 게임을 하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점점 친해져서 나중에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놀게 되었다. 다음 날, 우리는 군산으로 가서 갯벌 체험을 했다. 갯벌 체험을 한다고 했을 때는 신이 났는데, 갯벌 에서 입을 만한 옷이 없어 걱정이었다. 하지만 리더 언니가 티셔츠를 빌려줘서 괜찮았다. 갯벌에서 미국에서 온 지혜, 한국에 사는 유진이와 조개를 찾으면서 하얗던 옷이 까맣게 물들 때까 지 놀았다. 얼마나 잘 놀았던지 저녁에 보니 햇볕에 얼굴이 너무 타서 촌스러워 보일 정도였다. 갯벌 에서 노는 건 재미있었는데,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싫었다. 진흙에서 발을 빼기 힘들어서 신고 갔던 슬리퍼의 끈이 끊어졌다. 그래서 남은 연수 기간 동안 운동화만 신게 되었다. 갯벌에서 나와 씻고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친구들이 내게 눈이 이상하다고 하면서 거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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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줬다. 거울 속의 나는 한쪽 눈이 부어있었다. 리더 언니한테 얘기했더니 언니가 알레르기일 수도 있다고 하면서 병원에 가자고 했다. 나는 워낙 눈이 자주 붓고 뭐가 잘 나서 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언니가 신경써주는 게 왠지 싫지 않았다. 병원에 가니 주민등록 번호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브라질에서 간 것이라 여권을 보여줘야 했는 데, 내 여권으로 서류를 작성하던 간호사가 말했다. “지금 출국중이라고 써 있는데요.” 이게 무슨 말인가. 나는 분명 한국에 있는데 어째서 출국 중일까? 그럼 내가 지금 불법으로 있는 건 가? 이게 무슨 문제가 되어서 연수도 못 받고 쫓겨나는 걸까? 나는 점점 불안해지고 걱정이 되었다. 복잡해진 상황이 너무 싫었다. 차라리 병원에 가자고 할 때 갈 필요가 없다고 강하게 주장할 걸 하고 후회가 되었다. 그래도 결국 잘 해결 되어 다시 친구들이 있 는 곳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는 다래끼 때문에 몇일 동안 약을 먹어야 했다. 지금도 눈에 다래끼가 자주 나는데 그럴 때마다 그 때 벌어진 병원 소동이 떠오른다. 만난 지 얼마 나 됐다고 그 언니가 나를 위해 그렇게 해 줬을까? 누군가 나를 그렇게 걱정하고 챙겨준다는 것이 정 말 고마웠다. 다시 친구들이 있는 곳에 와서 조별로 요리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우리 조는 김밥을 만들어야 했다. 만들 때는 정말 쉬워보였다. 그런데 직접 하니까 생각보다 잘 안 돼서 다 터진 김밥을 먹어야 했다. 김밥 말고도 김치볶음밥, 삼겹살, 두부전이 있었다. 우리는 그 밥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친구들과 직접 해서 나눠 먹는 밥이 꿀맛이었다. 갯벌 체험을 한 뒤 군산 학교로 갔는데 거기에서 나하고 한 살 차이 나는 언니를 만났다. 그 언니는 첫 인상이 참 괜찮았다. 그래서 같이 얘기를 나눴는데 리더 언니가 와서, “와, 너희들 친해졌나보다. 이따가 홈스테이 짝 결정할 건데 내가 너희들 같이 넣어줄게.” 하고 갔다. 그 때 나는 그 언니랑 몇 마디 나눠본 게 전부라서 홈스테이는 다른 친구들과 가고 싶었다. 그런데 어영부영 대답을 하지 못해 결국 그 언니네 집으로 가게 되었다. 나는 홈스테이는 처음 해봤다. 홈스테이 가족들은 어떨까 하고 기대도 되었고, 한편으론 친구 지혜 가 계속 신경 쓰였다. 홈스테이 하게 된 언니와 지혜는 서로 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거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달랬다. 집에 처음 들어가는데 집이 정말 좁았다. 그래도 잠만 자고 밖에 나가서 구경도 하고 놀거라고 기 대해서 별로 실망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언니가 학원에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한국 학원이 어떤지 겪어봐야 한다나... 할 수 없이 따라 갔는데 언니 친구가 우리를 보고 브라질이랑 미국에서 왔 다고 싸이 춤을 보여줬다. 솔직히 연수가서 맨날 그 노래만 틀어서 지겨웠다. 그래도 우리를 위해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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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해줬다니까 박수를 쳤다. 학원에 다녀와서 아주머니께서 한국엔 야식이 최고라면서 치킨을 시켜주셨다. 한국 치킨은 정말 맛있었는데 지혜가 그걸 먹고 배탈이 나서 고생을 많이 했다.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많이 아팠다. 지혜와 언니는 끝까지 친해지지 않았다. 상황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해졌다. 언니는 지혜를 무시하고 계속 차별했다. 나는 중간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언니의 행동은 갈수록 심해져서 둘째 날 밤에는 언니 혼자 방에서 자고 우리는 거실에서 자게 했다. 그래서 나는 언니에게 많이 실망 했다. 언니는 내 앞에서만 지혜한테 잘해주고 뒤돌아서서는 나쁜 말을 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지혜에 게 정말 미안했다. 리더 언니가 홈스테이 짝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내 생각을 분명하게 말했어야 했는 데, 그렇지 못하는 바람에 지혜까지 고생시키고 나도 중간에서 마음 고생을 해야 했다. 내 실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국연수는 딱 일주일이었는데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서 로 말도 하지 못했던 아이들과 친해져서 헤어질 때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 헤어질 때는 섭 섭해서 카톡 아이디도 주고 받고 서로 꼭 연락하자고 약속했다. 각자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처음엔 문 자를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서로 생활하기에 바빠 연락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각자 학교를 다 녀야 하고 내가 시간이 될 때 다른 친구들은 새벽이거나 학교에 간 시간이라 연락을 할 수 없게 된 것 이다. 이제 연락도 잘 하지 못하지만 그 때 찍었던 사진을 보면 그 친구들과 함께 보낸 일들이 떠오른 다. 이제 중국, 미국.. 나라 이름만 들어도 그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한국 아이들을 만나게 되어 기쁘다. 그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될 날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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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딴 수박은 달지않다

<우수상> 경상북도 청소년수련원 원장상 길림시 조선족중학교 고등 2학년 민 준 혁

나는 중학교 2학년때 조련을 했었다. 그때에는 사랑이 뭔지 모르는 나이였지만 유독 한 녀자아이 가 무지무지 나의 눈에 띄는것이였다. 그후에는 나는 마치 무슨 병을 앓은것처럼 수업할때도 자꾸 그 녀자아이만 쳐다보았고 하학한 후에도 머리속에는 그 녀자아이의 단정한 모습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 러자 나는 그 녀자아이에게 고백을 하고싶었다. 나는 우리가 마치 타이타닉속의 로즈와 잭이 될수있 다고 생각했었다. 비록 첫번째 고백은 실패했지만 나는 내가 꼭 그 녀자아이와 사귈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에게 불행이 닥쳤다. 발없는 말이 천리간다고 학급의 반장인 내가 한 녀학생을 사모한다는 소식은 인츰 전교에 퍼졌다. 학교의 많은 사람들이 알고 그 여자아이도 나를 피하자 그때 나는 나의 행동이 무모한 집착이라는것을 알게되였다. 정신차리고나니 나의 성적은 이미 학년17등으로 일락천 장했다. 학년에서 성적이 상위에 속했던 내가 성적이 떨어지자 담임선생님이 하루가 멀다하게 나를 찾아 타 일렀고 부모들도 다짐을 강요하였다. 나는 매일마다 고뇌에 잠겼다. 나는 처음으로 느껴보는 “사랑” 을 이렇게 선선히 끝내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와 또 한번 나의 사랑때문에 싸웠다. 그런데 나는 한가지 사실을 알고있었다. 내가 수선 잘 해야 할것은 공부라는 것을,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어머니는 울면서 나에게 어머니의 고생을 모르냐고 물었다. 그 순간 나는 나의 가슴을 칼로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어머니의 마음을 알수있었다. 그때부터 모든 정신을 꼭 공부에 집중하자는 결심을 했다. 얼마지나지 않아 나의 공부성적은 또 다시 오르기 시작하였는데 기말에 끝 내 학년2등의 영광을 지니게 됐다. 생각해보면 사람이 살다보면 시기에 맞게 집착해야 할 일이 있다. 그래야 성공의 열매를 맞볼수있다. 우리나라의 저명한 피아니스트 랑랑이 좋은 례다. 그는 어릴때 자기가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배우는 도중에 몇번 포기하려고 했지만 끝내 그 집착으로 지금의 그를 창조해내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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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가? 만약 랑랑이 아무리 음악천부를 갖고 태여났다고 하더라도 음악에 집착하지 않고 중도이페했 다면 국제 피아니스트 콩클 무대에서 1등의 영광을 지닐수 있었겠는가? 만약 그가 적중한 배움의 시 기를 놓쳤다면 1등의 보좌에 오를수있었을가? 어릴때 무엇을 배우지 않으면 나중에 어른이 되여 배우고자하면 가배의 노력이 수요되고 때론 늦게 된다. 때 맞는 집착은 사람의 꿈을 이루게 하지만 때맞지 않는 집착은 사람의 꿈을 망가버린다. 집착은 빌 게이츠같은 세계갑부를 만들수 있으며 쉐익스피어 같은 일대문호도 만들수 있고 잡스와 같은 신화도 창조할수있다. 나는 지금부터 곁눈을 팔지 말고 수선 나의 지금의 임무인 학업부터 잘 챙겨야 겠다. 그때 가서 마 음 놓고 그 녀자친구를 찾아가겠다. 지금 학업을 잘하여나가면 그땐 아름다운 미래가 나를 기다릴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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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매력

<우수상> 경상북도 청소년수련원 원장상 길림시 조선족중학교 고등 2학년 리 자 룡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생기와 활기로 넘치는 매력적인 계절이다.예로부터 봄은 뭇사람들이 찬미하 고 노래해오는 대상이였다.그러나 나는 봄의 진정한 매력이 그의 아름다운 경치에 있는것이 아니라 봄이 우리에게 무엇을 암시하고 계시주며 깊은 뜻을 의미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 보라,그 땅속에서 뾰족뾰족 고개를 내미는 새싹들은 우리에게 지금부터 새 시작이라는걸 알려 주고 그 앙상한 나무가지가 다시 파란 싹을 움틔우는건 우리에게 꿈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를 막론하고 모두 좌절과 곤경에 처할 때가 있다.만약 초심을 버리지 않 고 꿈을 향해 최선을 다해 용왕매진한다면 기필코 자기의 바라는 목적에 도달할수 있다. 마치 겨울추 위에 앙상하였던 나무가 봄을 맞아 다시 파란 싹을 틔우며 소생하는것과 같다. 이들이 이렇게 회생의 봄을 맞을수 있는 원인은 초심을 잃지 않고 바른 길을 선택한데 있다. 봄의 매력은 엄동설한을 견뎌낸 인고에 있고 미래에 대한 동경과 끈끈한 기다림에 있다. 봄이 오면 농민들은 땅을 갈고 파종을 하느라고 분망하게 보낸다. 그러나 이 과정은 아주 번잡하다. 그들은 선종한후 파종하고 먼저 모를 정성들여 키우는 한편 땅을 갈고 또 물을 댄 다음 써레질하고 잘 자라난 모를 논에 심는다.모를 다 심었다하여 일이 끝나는것은 아니다.김도 매 줘야 하고 시간간격을 두고 비료도 재때에 줘야만 모가 우썩우썩 잘 자랄수 있는것이다. 비록 이 모든 과정은 몹시 수고스럽 지만 오직 이런 과정들을 거쳐야만 가을철에 이르러서 좋은 수확을 거둘수 있는것이다. 그때가 되면 농민들이 전에 흘린 땀방울과 겪은 고생들은 모두 호함진 낟알로 변하게 된다.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의 공부도 자연의 섭리와 류사한데가 많다. 자신의 꿈을 위해서라면 모름지 기 구슬땀을 휘뿌려야 한다. 기회는 언제나 준비하는자에게 속한다고 감나무아래 누워서 홍시떨어지 기를 기다려서는 되지 않는다. 매화의 향기는 한기를 맞아서이고 칼의 예리함은 숫돌에 연마한데 있다고 하였거늘 젊어서 고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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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으면 어떻게 소년의 꿈을 이룩할수 있으랴. 꽃샘추위는 천지의 례물이요, 초년고생은 은을 주 고도 못산다고 하였다. 아, 봄! 봄은 그야말로 활기로 넘치는 계절이여, 우리에게 계시 남겨주는 뜻깊은 계절이네. 그래서 봄은 그토록 매력적인 존재인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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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함과 고마움

<우수상> 백암재단 이사장상 요녕성 무순시 조선족 제1중학교 고등 1학년 윤 동 매

16살, 이 길고 지루한 세월을 보내면서 나는 가시밭길에 맞닥뜨린적도 있고 부지기수한 억울함도 당해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애기풀마냥 해살의 양육하에 봄여름가을겨울을 겪고있다. 이 시기에 계속 내옆에서 도움의 손길을 보내준 사람은 바로 나의 언니였다 언니,친근하고도 왠지 모르게 포근함이 느껴지는 호칭이다. 어려서부터 계속 언니와 같이 자란탓 에 나한테 있어서 언니는 여지껏 나에게 막대한 관심과 보살핌을 준 햇살같은 존재이다. 나는 이런 언 니가 내 곁을 동반해주고 있다는게 고맙고 미안할따름이다. 8살 차이나는 언니와 나는 어려서부터 그림자처럼 떨어질줄 모르는 사이였다. 어디를 가든 나는 찰 떡파이처럼 찰싹 붙어다니군 하였다. 하여 밥먹을 때나,잘 때나,지어는 화장실에 갈 때도 나는 언니의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 다녔다. 이런 내가 귀찮고 짜증날법도 한데 언니는 싫은 내색안하고 내가 원하 는건 다 들어주었다. 매번 내가 숙제를 할 때마다 과일이랑 가지고 들어와서 나의 숙제를 봐주군 했고 할머니 몰래 할아버지께 애교를 떨어서 집근처에 있는 양꼬치를 먹고는 집에 가선 또 할머니의 꾸지 람을 들을까봐 억지로 밥을 먹군 하였다. 철이 점점 들고 나서는 나에게도 속상하고 말못할 고민들이 생겼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언니랑 다 털어놓은 후에는 기분이 번개가 요동치던데로부터 갑자기 눈부 신 해빛이 쪼이는 맑은 날씨로 체인지 되였다. 어릴때부터 부모님이랑 떨어져 생활하는 나한테는 언 니는 엄마와도 같은 지어는 엄마보다 더 소중한 존재로 되여버린겄이였다. 그 어느 누구에게나 리별은 찾아 온다고 했다. 나와 언니에게도 이시간이 다가온것이였다. 대학 진로를 위해 언니는 대련으로 가야 한것이다. 그 순간 난 눈앞이 어두컴컴해지고 하늘이 무너지는것 만 같았다. 나의 햇살은 이렇게 날 버리고 떠나는 걸까? 하지만 이기적으로 언니를 말릴수는 없었다. 그저 섭섭함을 달래면서 언니를 보내 줘야만 했다. 눈물은 줄 끊어진 진주알 마냥 내 눈앞을 가리웠다. 나는 하느님이 원망스럽기만 했다.순간 예전의 추억들이 떠오르면서 다시는 언니랑 매일 같이 있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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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는 생각에 나의 눈물샘은 그칠줄 모르게 터져 보는이도 안쓰럽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자 나도 지쳤는지 그만 곯아 떨어졌다. 그후로 난 긴 시간동안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언니랑 영상통화 할때마다 난 울컥하는 맘에 또 눈물이 자동으로 먼저 언니를 반기는것이였다. 그래 도 다행인건 나의 학업에 열중해야 하다 보니까 지금은 그렇게 까지 서럽지는 않았다. 아마도 어른들 말씀처러 시간이 모들걸 해결해줄수 있는게 아니었을까…… 중학교 3학년방학때, 언니가 나의 력사복습시험지를 부주이로 쓰레기와 같이 버렸던것이다. 예민 한 시기라 나는 그만 언니한테 언성을 높이고 도와주지 못할망정 방해하지말라고 과하게 말했다. 옆 방에서 듣고 계시던 할머니께서 오시더니 나의 등판을 철썩 대리시는 것이였다. 그리고는 아무말 없이 나를 데리시고 방으로 가시는 것이였다. 한참후 방에서 나온 나는 참 내가 죄인처럼 느껴졌다. 내가 태어나옴과 동시에 불행은 언니와 손을 잡게 되였다. 돌이 지난후 부모님은 나를 할머니댁에 맡겨두시고 한국으로 떠나가 버렸다 하여 같이 살고 있던 언니랑 지내게 되였다. 내가 오는 바람에 언 니는 소학교 2학년때부터 홀로 상하교를 해야 했고 과외수업도 혼자서 다녀야 하였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손잡고 다니면서 먹고싶은것도 사가지고 하교하는데 언니는 그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얼마 나 부러워했고 나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겨울에는 해가 일찍 저물어 할머니는 언니가 걱정이 되여 이웃 집오빠한테 택시요금을 줄테니 저녘에 언니를 데리러 가라고 부탁하였다. 하지만 부탁한후 2주일이 지난뒤 언니는 울면서 다시는 그 오빠랑 안다니겠다고 한것이다. 자초지종을 듣고나니 그 오빠는 할머니께서 주신 택시요금으로 먹을것을 사서 먹고는 언니를 데리고 엄동설한에 그 먼길을 걸오왔던 것이였다. 할머니한테서 이 이야기를 들은순 가 난 단 한마디도 튀어 나오지 않았다. 흘러나오는 훌 쩍임을 자제하기 위해 입을 막은 손이 사시나무마냥 부들부들 떨리며 슬픔에 힘겨워 했고 가슴이 먹 먹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방금전 언니하테 했던 말에 대해 깊은 후회감을 느끼며 부르튼 입술을 치아로 쎄게 깨물며 자책했다. 얼마나 속으로 수천번 수만번 힘들다고 외치고 나를 원망했을까. 나는 어려서부터 다양한 레슨반에 다녔는데 언니는 나 때문에 배우고 싶은것도 배우지도 못했다. 그저 속 으로 속상했을 뿐이다. 언니는 또 5학년때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아버지는 계속 한국에 있어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느낀적이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언니는 충분히 막막하고 힘게워 했을건데 나까지 더하는 바람에 불행은 설상가상이였다. 나는 아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왜 자신의 쌓인 스트레스를 언니한테 풀었을까 자책하고 또 자책하였다. 그동안 누구한테나 아무런 투정없이 내가 성질을 부리든 말든 언 니한테 애꿎은 장난을 하여도 언니는 늘 나를 때리지도 미워서 욕하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천사가 따 로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싶다.이런 언니한테 나는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그날 오후 나는 보라색 히아신스꽃과 마이쮸한세트를 언니의 책상우에 놓아두었다. 꽃을 본 언니 는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면서 내게 “괜찮아”라고 했다. 언니가 옛날에 나한테 했던것처럼 나도 꽃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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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안함이 담긴 히아신스꽃을 언니에게 준겄이다 언니. 그동안 언니의 쌓이고 쌓인 힘겨운 고충도 몰라주고 투정만 부리고 욕심만 부린건 진짜 미안 해. 그냥 철없던 시절에 했던 행동들이라 생각하고 서운한건 용서해주고 잊어줘. 비록 지금은 자주 만 날순 없지만 이제라도 내가 못해준거 내가 잘못한것에 대해 조금씩 조금씩 보상해줄께. 언니 앞으로 도 내가 심한 장난쳐도 불만있어도 싸우지 말고 잘 지내자. 언니 미안했어 그리고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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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대한민국에게

<우수상> 수원시장상 St Joachim’s Primary School 초등 4학년 김 재 은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사람이지만 호주에서 살고 있는 11살 김재은이라고 합니다. 누군가가 지나가며 한국이라고 말하면 제일 먼저 머릿속에 생각나는 단어는 ‘슬픔’과 ‘기쁨’ 입니다. ‘슬픔’이란 단어가 생각이 나는 건 일본의 지배아래에 있었었고 큰 전쟁을 치르고 지금은 남북으로 갈라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엄마에게서 들었고 또 책과 뉴스를 통해서 듣고 한글학교에서도 배웠습니다. 호주에서 살면서 학교 친구들이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가끔 물어봅니다. “너는 북한에서 왔니? 남한에서 왔니?” 라고 말입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가슴이 아픕니다. 6.25 전쟁 때문에 아직도 우리나라는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고 서로 만나지 못하고 가슴 아픈 상처가 되어 지도에 금이 그어져 있습니다. 북한 어린이들이 노래 부르는 것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는데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하였으면 웃는 모습도 노래 부르는 모습도 즐거워 보이지 않고 오히려 가슴 아팠습니다. 아직도 북한은 가난하고 자 유가 없고 힘들게 산다고 하는데 도와주고 싶어도 쉽게 도와주지 못하는 현실이 더 슬픔으로 다가왔 습니다. 그리고 왜 우리나라가 일본 지배 밑에 있었으며 자주독립을 위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싸웠는지 삼일절에 대해서 한글학교에서 배워서 잘 알게 되었습니다. 유관순, 안중근, 김구, 고종황 제 등 위대한 사람들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픈 역사이지만 끝까지 나라를 위해 싸우는 모습은 한 사람을 위한 일이 아니고 한국인 모두를 위한 일이기에 자랑스러웠습니다. ‘기쁨’이란 단어가 생각이 나는 건 통일의 기회가 있고 이제는 일본 밑에 있지 않고 훌륭한 사람이 많아서 우리나라를 아름답게 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이유 는 저는 호주에 살고 있지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사람이고 한국에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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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처음에 통일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엄마가 우리나라가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라고 하였고 같 은 나라인데 전쟁을 하고 아직도 화해하지 못하고 싸우는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나라가 통일이 되어야 사랑과 평화가 생기고 더 행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은 작은 나라이지만 지금은 아주 많이 발전하여 한국노래도 한국제품도 인기가 좋고 한국 사 람은 열심히 노력하고 어딜 가나 한국음식은 있습니다. 한국노래가 나오면 저도 모르게 기쁘고 올림 픽에서 금메달 따면 정말 기쁘고 좋습니다. 우리나라가 전쟁과 가난 또 식민지 아래 있었지만 다른 나라보다 훌륭한 사람들이 많았기에 지금 이렇게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어리지만 나중에 커서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가르쳐주고 알려주고 싶 습니다. 그러려면 제가 한글 공부도 많이 하고 역사도 배우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 나중에 꼭 한국을 위해 일할 것입니다. 특히 통일된 한국을 위해 열심히 영어를 배우고 우리 나라가 잘 살아야 북한을 도와주고 통일할 수 있기 때문에 기술 발전을 위해 공부할 것입니다. 나라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내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생각해야 나라가 발전하고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대한민국은 작지만 가장 크고 빛나는 이름이고 자랑스러운 한글과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예의 바른 한국사람은 제가 호주에서 살아가는 데 큰 기쁨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한글공부를 어려서 부터 쉬지 않고 해왔고 학교에서도 호주 아이들과 함께 열심히 공부합니다. 우리 부모님과 주위 어른 들은 서로 열심히 도우며 밤낮으로 일하시며 살아갑니다. 제가 이 곳 호주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것 도 부모님이 열심히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더욱 잘 살고 자랑스러웠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호주에 살고 있는 저에게 큰 기쁨입니다. 저도 한국에게 기쁨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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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저 편의 나의 친구들

<우수상> 동국대 총장상 하노이 국제학교 초등 4학년 김 도 연

며칠 전 나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아주 충격적인 얘기와 장면들을 보았다. 한 시간 동안 부모님과 시청한 프로그램은 '희망로드 대장정 ‘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아주 열악한 나 라 이야기였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지구 반대편에 이런 나라가 있다는 사실에 너무 놀랬다. TV 에 선 밥을 못 먹어 얼굴에 노마 병이라는 이상한 병들이 생겨 얼굴이 너무 무섭게 변한 아이들이 많았 다. 밥을 먹었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영양실조라는 병으로 사망을 했다. 죽 같은 것을 다섯 식구 가 하루 식사로 먹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그냥 한편의 이야기로 잊혀 지지 않는 것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좋은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주재원이신 아버지를 따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살고 있다. 여기 와서 보니 한국보다 못 사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내가 한국에서 살고 있었다면 가족, 친구들만 생각하는 평범한 초등학생 이었을 텐데 지금 한국을 벗어나 한국보다 경제성장이 늦은 베트남에 있으니 나를 지나치는 사람들이 나 이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 살아가는 아이들을 볼 때 마다 나는 그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라는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할 때가 많다. 비록 나는 아직 어려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쉽게 찾지는 못하겠지만 내가 지금 꿈을 키워 나간다면 어른이 되었을 때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내가 만약 이런 방송을 보지 않고 이런 곳에 살아 보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상상해 보지 않았 을 것이고 그런 아이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고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 몰랐을 거다. 맨 처음에는 기부란 뜻을 잘 몰라서 부모님의 설명을 들으며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 ‘기부란 자선, 공공사업에 보조 또는 원조할 목적으로 재물을 거저 내어 주는 것을 의미 한다’라고 되어 있었다. 내가 지금 돈을 벌수 없어서 재물은 없지만, 내가 어른이 되어 돈을 벌수 있을 때 까지 부모님의 도 움을 받을 수 밖 에 없다. 그러나 지금 내가 최선을 다해 내 꿈을 키워나간다면 그들을 도울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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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분명 올 것이다. 지금의 내 꿈은 국제 변호사이다. 지금은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단 한명만의 친 구를 돕고 있지만 , 내가 커서 수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도록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고, 그런 사람들 이 더 이상 없는 세상을 만들 것이다. 베트남에서 고아원을 방문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 없이 살아가는 것이 불쌍하 였고, 나와 모습이 다르고 손과 발이 이상하여서 무섭고 이런 곳에 가기 싫었는데 지금은 그 아이들 이 귀엽다. 나는 꼭 커서 아프고 엄마, 아빠 없이 살아가는 고아들을 도울 것이다. 만약 다음에 고아원을 갈 때 나는 색종이를 준비해 갈 것이다. 안 쓰는 물건들도 미리 챙겨가서 동생들에게 종이접기를 가르쳐 주 도록 용기 내어 볼 거다. 나는 지금 내 또래 아이를 돕고 있다. 내동생과 나는 두 명을 돕는데 우리 또래라고 하셨다. 매달 적 은 돈을 기부 하지만 그 돈이 그 아이들에게는 한 달 끼니를 해결 할 수 있는 돈이라고 하니 다행스럽다. 작지만 공부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젠 그 친구들과 편지로 소통을 하고 있다. 그 친구는 내가 알려준 한국이야기에 관심을 가져 나는 한국에 대해 더 알려줄 것이다. 언젠가 그 친구와 서로 만날 날이 있 을 것 이다. 그때까지 서로 씩씩하고 건강 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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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한다.

<우수상> 숙명여대 총장상 선양 한국국제학교 초등 4학년 박 이 현

나는 추석에 단동에서 시원하게 달리는 모터보트를 타고 압록강 근처의 북한을 살펴본 적이 있다. 그곳에는 어떻게 쓰이는 시멘트벽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높은 벽이 있었다. 그리고 갈라지고 부서 진 곳도 매우 많았다. 한국 전쟁’(6.25 전쟁)때 썼던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북한도 추석이어서 그런 지 어떤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끌고 손자와 강가에 나와서 한가롭게 쉬는 모습이 매우 보기가 좋았다. 그때 손자의 표정은 1년에 한번 나온 것 같이 밝았다. 그래서 난 생각보다 북한이 평화롭지도 않고 그렇게 못살고 힘든 나라는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군인이 큰 바가지에 그릇을 잔뜩 가져와 압록강에 씻는 모습을 보고 매우 실망하였다. 그리고 한 아주머니도 큰 바가지에 빨래할 것을 듬뿍 가져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원래 내가 생각한 것처럼 북한이 살기가 힘들구나 하고 다시 생각 하였다.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나와서 돌멩이를 던지고 노는 모습을 보니 너무 귀 여웠다. 그래서 난 나쁘게 생각한 것은 아예 까먹어 버리고 난 내가 어릴 때 놀던 모습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밤에 북한을 보니 저게 다 강인지 육지인지 분간하기가 매우 힘들 정도로 어두 캄캄하고 빛 하나 없었다. 왠지 불빛들이 중국으로 다 건너온 것 같았다. 하지만 북한과 한국이 통일이 된다면 북한도 중국처럼 환해질 수 있다. 그리고 압록강에서 빨래하던 아주머니는 집에서 세탁기를 돌려 더 깨끗한 옷을 입을 수 있게 되고 그릇을 닦던 군인도 더 이상 강변에 나오지 않아도 깨끗한 수돗물로 반질반질하게 그릇을 닦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이제껏 듣기만 해도 북한을 부러 워할 정도로 가고 싶던 금강산을 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북한과 이제 다시 전쟁이 안 일어나는 것이 분명해지기 때문에 군인의 특수복을 만들 돈으로 아이들의 공부에 더 보탤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북한 아이들은 김정일과 김일성의 초상화를 닦지 않아도 되고, 그 시간에 독서를 할 수 있다. 그리고 흑백 교과서 대신 컬러 교과서를 받을 수 있게 되어 더 흥미롭게 공부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재미있는 한국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봐도 감옥에 가지 않고 자유자재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위험하게 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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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을 갖고 놀지 않고도 다른 놀이들을 찾아 신나게 놀 수 있게 된다. 통일이 되어서 이렇게 된다면 나 더 바랄 것이 없이 좋을 것 같다. 사실 북한 아이들의 생활은 <평양 프로젝트>라는 책과 <북한 아이들의 생활>이라는 책에서 보고 알 았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내용은 북한에선 한국 프로그램을 보면 평생 감옥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너무 놀라웠다. 왜냐하면 난 어느 나라에서건 어떤 TV 프로그램도 다 자유자재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통일이 왜 돼야 하는지 다시 알게 되었다. 하지만 통일이 되면 걸리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대통령이 두 명이 되는 것이다. 남, 북의 대통 령이 서로 대통령이 되겠다고 싸우면 다시 갈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잘 이겨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민족은 일본에게 36년 이라는 긴 시간동안 지배를 당했지만 끝도 없이 독립 운동을 펼치며 무슨 일이든 잘 이겨내던 자랑스러운 민족이기 때문이다. 늦더라도 꼭 통일이 되어서 우리나라가 큰 나라가 되면 좋겠다. 그리고 통일이 돼서 북한 아이들이 더 아름답고 깨끗한 환경에서 우리와 함께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통일은 우리나라의 미 래와 북한 어린이들의 미래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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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웃 세계인

<우수상> 숙명여대 총장상 SIS Hanoi 초등 4학년 김 지 우

나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나는 한국에서 한번도 살아 본적이 없다. 나는 태어 나자마자 아빠의 주재원발령으로 중국상해로 가서 9년을 살다 지난해에 베트남 하노이로 이사했다. 여태껏 해외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나에게 우리나라란 한국뿐 아니라 중국, 베트남 등 다른 나라들 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말레이시아 항공이 베트남 영공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까지도 수많은 나라들이 땀을 흘 리며 찾고 있다. 나에게는 이 사건이 아주 크게 느껴진다. 너무 슬프고 무섭고 그 사람들이 불쌍하다. 만약 그 베이징으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 나의 친구나 가족이 타고 있었으면 어땠을까? 아마도 매우 슬 프고 비참했을 것이다. 며칠 전에 우리 아빠도 말레이시아에 출장을 가셨었는데 그 실종기와 똑 같은 항로로 돌아오셨다. 나는 그날 저녁에 기도를 하고 또 했다. 나는 매일 저녁 한국 뉴스를 본다. 하지만 한국뉴스에서는 이번 사건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반면 세계 여러(BBC, CNN등) 언론들은 이 사건을 아주 중요하게 보도한다. 그만큼 해외의 관심사와 국내 의 관심사가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됐다. 나에게 해외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이 작게 느껴지지 않고 모두 나의 이웃, 친구가 겪는 일처럼 느껴지다. 나는 지구촌 수억 명중 한 명이다. 나는 보통 한국아이들과 달리, 태어난 이후로 줄곧 해외에 나와 살고 있다. 하지만 슬픔과 기쁨은 한국인과 똑같이 느낀다. 김연아 선수가 올림픽에 출전했을 때나 박 지성 선수가 해외에서 축구경기를 할 때 나는 열심히 응원하고 꼭 이기기를 바란다. 이건 내가 한국인 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나는 한국인이지만 세계인 모두가 내 친구 이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씩 미래에 나는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고 세계 여러 나라사람들과 함께 세계인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우주선을 공동으로 개발한다거나 유엔 같은 단체 에서 일하며 한국인이지만 국적을 마다한 코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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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내 친구

<우수상> 백석대 총장상 하노이 한국국제학교 초등 3학년 이 민 영

안녕, 친구야? 나는 이민영이라고 해. 나는 베트남 하노이에 살고 있단다. 이곳은 달콤한 망고가 가득하고, 바나나가 쑥쑥 자라는 과일의 천국이란다.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니 과일도 잘 자라고 꽃들도 늘 알록달록 예쁘게 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는 한국이랑 달리 여기 하노이는 더운 날씨가 계속된단다. 비가 많이 오기도하고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도 해. 한국에는 겨울에 눈이 펑펑 쏟아지지만 여기 하노이는 눈이 오지 않아. 내가 네 살 때 눈사람을 만들어본 이후로 한 번도 눈을 보지 못해서 그리워. 그래서 한국에서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을 하고 싶어. 난 맛있는 쌀국수 ‘퍼’랑 ‘분짜’라고 하는 베트남 음식을 좋아해. ‘퍼’는 한국의 잔치국수랑 비슷해. ‘분짜’는 새콤 달콤 소스에 쌀국수 면을 담그듯 찍어먹고 불고기 같은 고기도 함께 나오는데 아주 맛 있어. 베트남에 놀러 오면 같이 먹자. 나는 한국학교에 다녀. 외국까지 가서 왜 한국학교에 다니냐구? 나는 한국 사람이니까. 당연히 한국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베트남에 살지만 아직 베트남어를 잘 못해. 내 친구 중 베트남 아이가 있는데 한국학교를 다녀. 엄마, 아빠 중 한 분이 베트남 사람이 아니라 두 분이 모두 베트남 사람이야. 그런데 이 친구는 한 국이 너무 좋아서, 한국을 배우고 싶어서 우리 학교에 다니는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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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신기했는데 이렇게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게 너무 뿌 듯해. 대화가 잘 안돼서 불편했는데 지금은 하하 호호 신나게 지내고 있단다. 친구가 ‘신짜오’하면 나는 ‘안녕’하고 모르는 말을 서로서로 가르쳐 주기도 한단다. 친구가 한국말도 열심히 배우고 한국 공부도 열심히 하는 걸 보니, 나도 베트남어를 열심히 해야겠 다는 생각이 들어. 요즘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해. 한국 노래도 좋아하고, 한국 방송을 즐겨보는 것 같아. 한국에도 요즘 이곳 베트남 모습이 자주 나 오는 걸보니 한국과 베트남이 마치 친구 같아. 친구는 사이좋게 지내는 거지. 내가 힘들 때 친구가 도와주고, 친구가 아플 때는 내가 도와주는 것처럼 한국과 베트남도 서로 도 와주고 친하게 지내는 좋은 친구 같아. 우리 서로서로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하노이에 사는 민영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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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원 통일

<우수상> 백암재단 이사장상 청도 국기외국어학교 초등 3학년 최 효 정

안녕하세요? 저는 3학년 1반 최효정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의 부모님과 가족이 서로 만날 수 없는 곳에 떨어져 살고 있다면 마음이 어떨까요? 저는 슬프고, 그립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저는 무섭고,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남한과 북한은 분단되어 있기 때문에 가족을 못 만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이산가족들 중에는 늙을 때까지 부모님과 가족을 못 만나고 죽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말 가까운 곳에 있어도 연락도 못하고, 만나지 못한다는 건 슬프고 속상한 일입니다. 그래서 남한과 북한이 통일을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이 되면 북한과 남한이 서로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말을 했는지 이야기 할 수도 있습니다. 또 이산가족들이 서로 만나 여러 곳으로 여행을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남한과 북한은 서로 같은 한글을 쓰지만 남한에 있는 부산, 제주도처럼 사투리 같은 북한말 을 써서 서로 못 알아들어서 불편하고 답답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남한과 북한이 통일이 되면 좋 은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겠지만 저는 꼭 통일이 되어서 모 두가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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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보숭이와 아이스크림의 차이

<우수상> 수원시장상 선양 한국국제학교 중등 2학년 박 고 은

만약 한국에서 ‘통일’이라는 주제로 북한에 대해생각을 한다면 조금 멀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선양에 살고 있는 나는 쉽게 겪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에도 두 북한 가족이 살고 있고 매일 아침 북한여자들은 분홍색 잠바를 입고 ‘평양관’이라는 음식점으 로 일하러 간다. 2007년 매우 더운 어느 날, 우리 집 장난꾸러기가 태어나기 몇 일전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서 오 셨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평양관’이라는 음식점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었다. 이제 막 1학년이었던 나는 내가 알던 한국말과는 조금 다른 억양으로 이야기를 해서 낯설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었다.“안녕하십네 까!”라고 말하는 여자 직원의 말을 따라 하기도 하고 음식이 너무 짜다고 큰 소리로 이야기도 했었다. 시간이 지나고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참 특별한 경험이였다. “우리는 지금 집나간 형제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작년 사회선생님께서 통일에 대해서 말씀하시며 선택이 아닌 의무라고 하셨다. 나도 통일은 해야 한다고 생각 한다.물질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북한과 남한은 원래 하나의 나라였고 같이 있어야 더 빛난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이산가족상봉에 서 80대 할아버지께서 60년 만에 동생을 재회하고 우는 모습은 정말 슬펐다.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 을 남한에 두고 60년 동안 북한에서 살고 있다면 혹은 동생이 북한에 내가 남한에 있다면 미운 정 고운 정으로 인해 추억들이 너무 떠오를 것 같다. 이산가족의 헤어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자 애써 울지 않 으려고, 좋고 행복했던 만남으로 기억하기 위해 노래도 부르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기위해 버스가 갈 때 까지 손을 흔든 것도 마음이 찡하였지만 너무나 간절히 바라고 바래서 만났는데 할 이야기가 없 어서 서먹 서먹한 것이 더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생에서 아직도 떨어져있는 가족을 만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다는 것도 애석했다. 북한과 교류가 있는 중국에서 살고 있는 나는 가끔 울컥할 때가 있다. “백두산”한반도의 기가 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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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는 산을 중국은 ‘장백산’이라고 바꾸어 부르고 있고, 남·북한에서도 마시지 못하는 백두산 물은 중 국의 가게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또한 왜 남한과 북한 사이의 일에 대해 이야기 할 때도 중국과 미국 의 도움을 받으며 회담을 해야 할까. 이승만과 김일성의 다른 주장과 생각으로 시작된 남한과 북한은 지금까지 휴전선을 두고 있는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뿐만 아니라 문화와 사고방식도 조금씩 달라져 가 고 있다. 또한 독일과는 다르게 주변에 강대국이 있고 중국, 러시아, 미국 등의 나라들은 남한과 북한 의 통일에 대해 긍정적인 측면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통일을 한다면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이 며 세금도 더 많이 내야하고 범죄율도 높아질 것 이라고 한다. 여러 단점이 있는 반면, 통일을 한다면 오히려 경제 상황에 도움을 줄 수 도 있다. 지금 현재 전쟁 상태인 나라에서는 국방비가 엄청나게 많이 소모가 된다. 하지만 남북통일이 된다면 그 국방비로 나 가는 돈이 경제발전에 쓰일 수 있으며 북한의 값싼 노동력과 북한의 지하자원, 그리고 남한의 발전된 기술과 자본을 합친다면 경제가 발전 할 수 있다. 그리고 북한의 관광지도 개방이 되기 때문에 도움이 될것이다. 둘째로 세계와 더 쉽게 교류할 수 있다. 철도를 건설한다면 한반도는 태평양, 중국, 시베리 아, 유럽으로 이어지는 세계 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할 수 있다. 북쪽이 막혀 있기 때문에 우리의 해외 수출은 항상 해상을 통해야 한다. 해상을 통해 부산항에서 유럽까지 가는 데는 한 달 정도가 걸리는데 만약 통일이 되어 북한 지역을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게 되면 시베리아를 통과하는 철도로 더 빠르게 교류하고 수송비도 절감된다. 또한 열차를 타고 유럽까지 기차여행을 쉽게 할 수 있다. 셋째로는 인력이 늘어날 것이다. 통일을 한다면 새로운 일자리들이 많이 생긴다. 현재의 일자리가 주로 한국 안에 집중되어있는데 통일이 되면 북한 지역으로 일자리가 확대된다. 특히 아직 개발이 제 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북한지역의 개발을 위해서는 인력이 많이 필요 할 것이다. 그리고 통일로 대륙과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외국 취업 기회도 지금보다 훨씬 넓어지고, 한국어사용지역도 지금보다 훨씬 넓어질 것이다. 네 번째, 군사력이 더 강해진다. 북한이 가난하지만 그들의 군사력은 무시 할 수 없다. 북한이 가지 고 있는 미사일이나 핵폭탄 같은 것이 남북통일이 된다면 그것은 군사력을 한층 높여주는 이유가 된다. 다섯 번째, 지하자원이 생길 수 있다. 통일을 하면 북의 철광석, 우라늄 등 지하자원들을 채취해 쓸 수 있어 더 이상 외국지하자원을 비싼 돈으로 사지 않아도 된다. 여섯 번째, 민족적 의의를 만들 수 있다. 단군 이래 한 민족인 북한과 남한은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 한반도를 소련과 미국이 나누었지만 한 민족이라는 동질성을 깨트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독 립을 하고 진정한 독립국가로 세상에 우뚝 서려면 통일은 꼭 필요하다. 통일을 하지 않고 계속 이 상태로 유지가 된다면 남한과 북한은 더 다른 문화가 생길 것이다. 작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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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국어선생님께서 순우리말을 배우기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북한 단어를 내면화 시킨 적이 있었는 데 뭔가 어투나 느낌이 많이 달랐고 외래어는 하나도 없었다. 정보와 통신의 발달로 글로벌화 되가는 지구는 눈 깜짝할 사이에 변화해 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는 외래어도 급증하고 있고 유행도 자꾸 변하며 삼성과 애플의 똑똑전화기는 가장 많은 변화를 주고 있다. 북한도 조금씩 변해가 고 있지만 아직은 폐쇠적이기 때문에 변화가 둔한 편이다. 또한 통일에 대해 40대 이후엔 찬성이지만 10, 20, 30대는 반대의 의견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통일에 대한 느낌이나 의무감이 줄어 통일하기가 점점 힘들어 질 것이다. 통일을 한다면 ‘휴전’이라는 전쟁의 불안감에 있지 않아도 되고, 훼손된 민족정체성을 회복 할 수 있 으며 통일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다양한 편익을 누릴 수가 있다. 남북 구성원 모두에게 자유와 인권 과 행복한 삶을 보장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통일이 꼭 필요 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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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울 그 곳

<우수상> 수원시장상 Beijing City International School(BCIS) 중등 3학년 강 소 이

벌써 몇 년이나 지났는가. 그 날의 태양은 구름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흐리다고 표 현하기에도 애매한 그런 날씨였다. 하지만 태양이 보이지 않음에도 마치 태양이 자신의 존재감을 잊지 말아 달라는 듯 기승을 부려 결국 내 등에는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가족과 함께 4박 5일의 지친 여행 일정을 소화해야 했던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는데다, 그리 원하지도 않는 여행을 온 탓에 짜증을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것도 중국의 길림성 여행이라니. 파리의 에펠탑도 아니고 미국의 자유여신상이라면 모를까 친구들에게 자랑하기도 애매한 그런 길림성 여행이었다. 버스를 타고 달리기를 수 시간. 도착한 곳은 고작 북한과 중국의 국경이라는 압록강(鴨綠江)이었다. 한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중국과 북한이라. 그 때에 난 이미 그런 것 따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미 온몸이 축 늘어져 아무 의욕도 없었고 눈꺼풀은 감기기 일보 직전이었다. 불평 한마디 할 기운조차 남지 않아 아무 생각 없이 엄마가 건네 주셨던 구명조끼를 입고는 터덜터덜 걸어가 보트 의 빈자리에 털썩 앉아버렸다. 잠시 보트에 앉아 눈이나 붙이려고 하던 순간 보트가 출발했고, 깜짝 놀란 나는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라 사이의 강이면 뭔가 다를 것이 있나 싶어 둘러보았 지만 내가 지금까지 강을 유람하며 본 여느 풍경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내가 지금껏 보아왔던 어느 풍광보다 덜 아름다웠던 같다. 내가 주변을 둘러보던 사이, 보트는 점점 속력을 내어 어느새 중국보다 북한 땅에 가까운 거리에 도달해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모든 것에 시큰둥해 하며 금방이라도 잠이 들것 같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눈이 반쯤 감겼을 때 쯤, 나는 건너편 땅에서 웬 아저씨가 지나 가는 것을 보았다. 저 땅이 중국 땅일 것이라 생각한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그냥 넘겨버렸다. 그 순간, 내가 분명 중국 땅에서 북한 땅 쪽으로 보트를 타고 왔다는 사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에 스치며 떠올랐고,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질렀다. “저, 저기! 북한 땅에 사람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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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초 전까지만 해도 분명 꿈나라로 갈 것 같던 사람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말까지 더듬으며 소리를 지르니, 같이 여행을 와 같은 보트에 타고 있던 한국인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게다가 보트 안에는 마치 개미새끼 한 마리 없는 것같이 조용했으니, 어색한 내 목소리만 메아리처럼 울려 퍼져 나갔다. 나의 검지는 어느새 북한 땅에 아저씨가 있었던 곳을 가리키고 있었고, 그때 비로소 멋쩍음을 느낀 나는 어색하게 내 손을 내리고 목을 가다듬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괜히 그 곳을 지나가던 아저씨를 원망하였다. 서서히 고개를 들던 나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북한 땅을 향해 손 인사를 하는 것을 보았다. 나의 시선을 다시 북한 땅으로 옮겨보 니, 내가 보았던 그 아저씨와 다른 아줌마 아저씨들 몇 명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멍하니 넋이 나간 표정으로 북쪽을 응시하다가, 나도 모르게 그들을 향해 덩달아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난 내가 당연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 을 향하고 있는 나의 손에서 어색함 따윈 찾아 볼 수도 없었으며,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모두들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 얼굴이 아주 조그마한 점처럼 보일 정도로 거리도 사실은 아주 멀었지만, 그 사람들은 우리 동네에 살던, 자주 인사하고 지내던 친절한 이웃사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느새 보트에 있던 모든 한국인들은 다 함께 일어나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고, 북한에 있던 또 다른 사람들도 합세해 함께 손을 흔들었다. 목에는 수건과 같은 것을 두르고 있는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왠지 모를 친근함을 느꼈고 그들이 우리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였다. 넋 놓고 북한의 있는 사람들과 손짓을 하던 나는 중국인 보트 운전자가 갑작스레 큰 소리를 내는 바람에 정신을 차리었다. 이곳에 머무를 시간이 끝났다며 이제는 중국 땅으로 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재촉하는 중국인이 괜히 미워졌다. 처음 압록강이라는 곳에 와 보트를 채 30분도 타지 않았지만, 마치 그 곳에 오랫동안 산 느낌이었다. 나와 같은 언어로 말하고 쓰며, 같은 문화로 생활하는 나와 같은 민족이 저 건너편에 산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고 새로워서, 지금 내가 정말로 저들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믿기 어려워서, 조금만 더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이렇게 그냥 가기엔 너무나 아깝고, 놓쳐버리기엔 너무나 소중한 추억거리가 될 것이기에 눈으로 전경을 훑어보며 내 눈에 보이는 모습, 귓가에 들리는 소리 하나 하나 다 담아두었다. 하지만 보트는 점점 중국 땅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분명 처음 북쪽으로 강을 가로지를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중국으로 돌아오는 보트에서 생생 하게 느껴졌다. 올 때와 갈 때의 느낌이, 그리도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니, 그리도 다르게 보일 수 있 다니. 보트가 지나가며 갈라놓았던 그 바람. 그 때의 그 느낌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 바람은 정말 묘 한 것이어서, 더운 바람도, 그렇다고 딱히 선선한 바람도 아니게 만감이 교차하게 만드는 것이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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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의 내 기분을 표현해 주는 듯 했다. 압록강이 영롱한 빛과 함께 울렁거리며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는 나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슬퍼해 주었고, 압록강이 흐르던 그 길을 따라 내 마음도 함 께 흘러가는 듯하였다. 보트에서 내린 나는 중국 땅에 서서, 저 멀리 보이는 북한 땅을 보았다. 오랫동안,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도록,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되도록이면 모든 풍경을 다 담고 싶었다. 그러다 중국에서 북한 땅을 바라보는 것이, 한국에서 북한 땅을 바라보는 것보다 더 쉬운 것 같다 는 생각을 하고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문득, 북한에서 보는 우리, 나의 모습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올라왔다.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볼 까. 한국인으로써 사실 압록강은 우리나라의 역사가 많이 담긴 땅인데 왜 우리는 중국 땅에서 북한을 마주보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북한 사람들이 손을 흔들던 그 자리에 내가 서 보았으면. 압록강은 마 치 내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물결을 따라 유유히 흘러갔다. 나의 새로운 소망하나를 담은 채, 푸르 른 하늘을 배경으로 바람과 함께 흘러갔다. 손 인사 하는데 정신이 팔려, 보트를 타며 사진 한 장 남겨오지 못하였지만, 나에겐 그 장면 하나하 나가 사진으로 찍은 것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되어있다. 그 후로부터 지금까지 꽃이 피고 지기를 여러 번, 나무에 새순이 돋고 낙엽이 떨어지기 또한 수 없이 반복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 날을 쉬이 내 머 릿속에서 지울 수 없다. 그 날의 날씨를, 공기를, 나를 향해 손을 흔들던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일렁거리던 압록강의 물결을. 그 때 그 모습은 내 마음 속 깊숙한 곳에 박혀 영원히 밖으로 나오지 않을 듯하다. 나는 그 때의 굳은 다짐 또한 기억한다. 다시 반드시 돌아오리라는 압록강과의 약속. 다시 압록강을 왔을 때에 내가 서 있었었던 자리가 아닌, 건너편의 자리에 서 있을 것이라는 것을. 그 때에는 내가 그 곳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기를, 내가 기억하고 있는 압록강에서의 감정과 다른, 또 다른 벅차오름을 느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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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우수상> 동국대 총장상 선양 국제학교 중등 1학년 류 승 이

이산가족은 의도하지 않은 이유로 인해 흩어짐으로써 만날 수 없게 된 가족을 뜻한다. 가족의 구성 원이 이산되는 이유로는 자연적 이유와 인위적 이유가 있다. 자연적 이유로는 지진이나 홍수 등 자연 재해가 있고 인위적 이유로는 정치적 불안정 혹은 국제적 무력 충돌 등이 있다. 가족 구성원이 이산 되는 데 자연적 이유와 인위적 이유를 제외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바로 전쟁이다. 전쟁 때문에 가 족들과 떨어지게 된 사람 또는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전쟁 희생자라고 한다. 나는 이산가족의 개념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으나 이산가족들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었다. 이산가족 하면 울며 서로를 부둥켜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생각날 뿐 나는 그들이 왜 그토록 우는 건지 왜 헤 어져야만 했는지 찾아본 적도 궁금해 해 본 적도 없었다. 우리나라에 자신이 원하지 않은 이유로 이별 을 해야만 했던 가족들이 몇 명이나 되는 지 혈육의 생사여부도 모르고 있던 가족들이 어떻게 만나게 되는 지, 나는 이산가족에 대해 조사를 해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무지했구나. 우리나라의 이산가족들은 대부분 전쟁 희생자들이다.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많은 이산 가족들이 생겨났다. 나는 전쟁 희생자라는 단어를 처음 보았을 때 어디인가 어색함을 느꼈다. 왜 전쟁 피해자가 아닌 전쟁 희생자인 걸까? 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헤어지게 된 것이라면 희생한 것이 아니라 피해를 입은 것이 아닐까? 나는 희생과 피해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기 전까지는 전쟁 피해자와 전쟁 희생자의 차이를 알아내지 못했다. 사전으로 뜻을 찾아본 후에야 깨달은 건 이산가족들은 전쟁으로 인 하여 손해를 입은 것이 아닌 국민들과 전쟁의 목적을 위해 빼앗긴 것이다. 전쟁 후 하나의 땅을 가른 선을 보며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얼마나 슬퍼했을까. 가슴이 찢어졌겠지.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교통비 금강산 호텔 체재비 식사비를 포함한 기본 경비는 모두 남한 정부가 지원하는데도 북한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에 비협조적이다. 이산가족들은 몇 십 년 인생을 다 바쳐 그 리워해온 가족들과 동침을 하지 못 한다. 북측에서 동의하지 않은 탓이다. 이번 두 번째 이산가족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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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 정례화 제의도 거절한 건 북한이다. 북한 정부는 피눈물을 흘리며 혈육과 생이별을 해야 하는 사람 들을 존중해 주지 않고 있을뿐더러 그들의 몇 십 년간의 사무치는 그리움을 무시하고 있다. 정례화란 규칙적이지 않았던 일을 규칙적으로 바꾸는 것을 뜻한다. 고로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는 규칙적이지 않았던 상봉을 규칙적으로 실행한다는 뜻이다. 이는 이산가족 상봉 때마다 기약 없는 제회를 약속해야만 했던 이산가족들에게 희망이며 빛이다. 하지만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두 번이나 거절했다.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더 이상의 제의는 없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렇다면 이제 이산가족들은 누구에게 기대를 걸어야 할 것인가? 만약 이산가족들이 기다릴 시간이 충분히 있고 ‘언젠간 다시 또 만날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버틸 수 있는 상황이라면 지금 당장 정례화는 필요치 않다. 빠른 시일 내에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가 필요 한 이유는 이산가족 고령화가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적십자사 조사에 따르면 이산가족들 중 80세가 넘는 어르신들은 50%가 넘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들은 더 이상 다음 만남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살아 생 전 가족의 얼굴을 보았던 시간보다 못 보았던 시간이 더 길었을 이산가족들에 게 마냥 기다리라는 말은 그들을 지치게 만들 뿐이다. 2014년 2월 20일에 이루어진 이산가족 상봉에 60년간 딸을 그리워했던 이영실 할머니는 상봉 중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다. 이유는 고령화로 인한 뇌 활동 둔화 탓에 표정 근육도 둔화되었기 때문이라 고 조용진 미술해부학 박사는 말했다. 2000년 이산가족 상봉 때와는 상반된 결과였다. 그때는 모두들 감정을 숨길 수 없는 아이 마냥 울고 웃었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며 쌓인 것은 그리움뿐만이 아닌 그 들의 나이다. 그들의 생에 마지막 순간마저도 그리움에 휩싸인 채로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산가 족들은 이미 너무나도 오래 그리워했기 때문에. 글을 쓰면서 나는 엄마 아빠 혹은 언니 오빠와 떨어지게 된 나를 상상해보았다. 사실은 지금도 학업 상의 이유로 언니 오빠와 떨어져 있지만 이 시간이 오래 지속되고 생사 여부조차 알 수 없는 상황까지 치닫는다면 나는 어떨까? 상상속의 내 감정을 글로 표현해내야 하는데 마땅한 표현을 찾을 수가 없다. 나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니 상상하기도 싫은데 이산가족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나는 그들의 마음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평생 그들이 얼마나 그리워했을 것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산가족들의 편에 서서 그들과 함께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외치고 싶다. 내가 겪어보지 않았고 겪어보기 싫은 상황에 그들을 언제 까지나 혼자 두고 싶지 않다. 고령화가 되어가는 이즈음에 그들의 마지막은 둔화된 표정 근육 때문에 기쁨을 표현할 수 없어도 눈물을 흘릴 수는 없어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할아버지 할머니, 부디 이산가 족 상봉 정례화가 실행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꼭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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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무뎌지기 전에……

<우수상> 동국대 총장상 선양 한국국제학교 중등 2학년 장 서 희

2014년 2월 20일. 3년 4개월 만에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렸다. 60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의 이별. 그리고 너무나도 짧은 만남 또 다시 긴작별의 순간. 헤어짐 이 아쉬워 끝까지 손을 놓지 못하는 이산가족의 모습에서 그들의 아픔이 텔레비전을 보는 나에게까 지 전해져 왔다. 그들의 아픔의 크기를 알 수 없음에도 한쪽 가슴이 시려 오는 건 무슨 이유일까? 문득 몇 년 전 가 족들과 함께 했던 여행이 떠올랐다. 중국에 살고 있는 나는 몇 년 전 가족들과 함께 단동으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단동은 북한의 신의주와 맞닿아 있는 곳이다. 그래서 북한을 조금이라도 가까이 보 기위해 많은 한국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단동역에서 오른쪽 길을 따라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끊어진 철교가 눈에 들어온다. 한국전쟁 당시 중국의 개입을 막기 위해 서 미국이 파괴했던 철교이다. 끊어진 철교 옆으로 새로 만든 다리가 놓여 있는데 중국과 북한을 이어주는 다리이다. 우리를 이어주던 다리는 끊어지고 중국과 북한을 이어주는 다리만이 존재하는 현실그것이 바로 남북으로 나뉘어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한국인은 갈수 없고 중국인은 비자 여권 없이 갈수 있는 곳. 중국에서 바라본 압록강은 우리에게 많은 아픔이 있는 곳이다. 수많은 사연과 아픔을 묻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잔잔히 흐르는 저 강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난 이곳에 그들은 그곳에. 조금만 더 가면 닿을 수 있는데, 그곳은 어쩌다 이리 먼 곳이 되어버렸을까? 유람선을 타면 조금 더 가까이 북한을 볼 수 있다고 해서 탄 유람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까이 마 음속으로 빌었지만 다시 방향을 돌려야만 했다. 가슴 아프게도 그곳은 아직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는 곳이기에 유람선 위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을 흔드니 그들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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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긴 다리만큼 단절된 지금의 상황이 안타깝고 슬픈 건 나뿐만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순간 마음이 먹먹해져 왔다. 그 순간 언제쯤 저곳에 가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긴긴 이별을 해야 하 는 그 순간 이산가족들 역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죽기 전에 다 시 만날 수 있을까.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만 하는 그 마음을 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인 이유와 경제적 이익을 따지며 통일찬반에 대해 논한다 고 한다. 같은 민족이기에 합쳐야 된다가 아니라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통일이 되면 어떤 이익이 있는지 되 묻는다. 수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지금 우리는 전쟁 이 끝난 것이 아니라 휴전중이다 언제든 다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휴전중인 우 리나라는 국방비가 엄청나게 들어가고 있다. 통일이 된다면 국방비로 사용되는 돈이 경제발전에 쓰일 수 있으며 북한의 값싼 노동력과 북한의 지하자원. 그리고 남한의 발전된 기술과 자본이 합쳐진다면 세계가 놀랄만한 경제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다. 반대를 하는 입장도 있다. 남한과 북한은 경제적인 격차가 심하다. 이러한 경제적 격차를 극복하 기 위해서는 엄청난 예산이 들것이다. 그리고 남한은 민주주의 북한은 공산주의 이념의 차이가 있으 며 긴 시간동안 언어가 달라졌고 문화가 달라져 있다. 이것을 하나로 통합하는데 있어 큰 혼란이 일 어날 수 있다. 철없는 아이의 생각 같겠지만 난 왜 이런 이유가 필요한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찬반을 논하는 사 람이 잘못 되었다는 건 아니다. 저 이산가족의 눈물과 슬픔을 보고도 통일을 하는데 무슨 이유가 있어 야 하고 이익을 따져야 하는지. 그래야만 하는 현실이 가슴 아플 뿐이다. 분단이 단지 그들만의 아픔 으로 남는 건 아닐지 언제 또다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비극이 다시 일어나는 건 아닐지. 우리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임에도 불구하고 평상시에는 분단국가임을 그 누구도 의식하며 살지 않는다. 한국전쟁과 이산을 겪은 세대가 나이 들고 사라질수록 우리는 이 비극적인 분단문제를 더욱 더 의식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가끔 식 뉴스를 통해 알게 되는 연평도사건·북 미사일·천안함 침몰 사건 등 어떤 일들이 벌어질 때만 잠시 잠깐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수면위로 떠오르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수면 아래로 사라진다. 전쟁을 겪지 않고 그냥 수업 시간에 잠깐 배운 역사만으로 어찌 그 아픔을 알 수 있을까? 그렇게 전 쟁의 아픔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만 가고 있다. 아마도 더 많은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분단이나 통일 이라는 말과는 더욱더 무관하게 살아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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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것이다. 어쩌면 우린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며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리고 그 순간 잠깐 떠올릴 것이다. 전쟁의 상처도 이산의 상처도 분단의 상처도 이제는 치료되어야 하지 않을까? 치유되지 않은 채 그냥 무뎌져 가는 건 언제든 다시 아플 수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픔 이 무뎌지기 전에 너와 나가 아닌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하체뿐인 호랑이, 완전체는 어디에

<우수상> 동국대 총장상 선양 한국국제학교 중등 2학년 조 수 안

여러분은 우리나라를 어떤 형상으로 보십니까? 토끼, 호랑이 또 어떤 사람은 캥거루라고 하기도 합니다. 저는 우리나라를 앞발을 치켜든 호랑이로 봅니다. 앞발을 치켜들고 주위의 강대국들로부터 몸을 지키는 모습입니다. 어떤 형상인지 모를 만큼 컸던 우리 땅이 점점 작아져 호랑이로 변하더니 급 기야 상체와 하체로 나눠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호랑이의 허리에는 3.8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선이 생 겼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가 되었습니다. 한민족 이라고는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북한과 남한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북한은 조선민주주 의인민공화국 이라는 이름으로 핵을 앞세워 전 세계를 긴장시키고, 남한은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습니 다. 지금 두 나라는 많이 다른 모습이지만 우리는 하나일 때 가장 강합니다. 통일은 남한과 북한이 함 께 이루어 가야 하는 목표입니다. 저는 당연히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을 했을 때의 장점은 아주 많습니다. 첫째, 나라의 군사적 영토가 확보됩니다. 군사적 영토는 적군이 침입했을 때 그 공격에 방어할 수 있는 영토라고 합니다. 일단 땅이 넓으면 전쟁이 일어나도 피난 갈 곳이 생깁니다. 둘째, 우리나라의 높은 인구밀도가 감소됩니다. 우리나라는 방글라데시에 이어 인구밀도로는 세계 2위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사람은 많은데 땅이 좁아 건물을 높게 쌓아 올리고, 조그마한 동네에 사 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살고 있는 저급 주택지도 많습니다. 통일을 하면 땅이 넓어져 땅값이나 임대료 도 감소할 것입니다. 셋째, 엄청난 양의 자원과 생태계가 생깁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자원은 한정 되어 있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자원이 그리 많은 나라가 아닙니다. 자본주의는 자원을 바탕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자본 주의 국가인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더욱 자원이 중요합니다. 북한은 자원을 개발하는 기술은 저습하 지만, 풍부한 자원과 생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대부분의 명산들이 북한에 밀집되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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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마어마한 양의 생태계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앞으로는 자원이 있는 나라 가 살아남는다고 말합니다. 우리느니 통일을 함으로써 이 막대한 양의 얻을 수 있고, 여러 가지 개발 사업으로 우리나라의 70년대처럼 일자리가 생겨날 것입니다. 넷째, 국방비의 소모가 없어집니다. 현재 우리는 북한에 대한 국방비로 한해 최소 40조원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내는 세금의 대부분이 국방비로 쓰인다는 뜻입니다. 국방비라는 명목 하에 군 사비, 체제유지비, 외교비 등에서 많은 돈이 빠져나갑니다. 통일이 되면 금전적으로도 큰 이익이 있 습니다. 다섯째, 다른 국가들과의 무역에서 좀 더 편리해 집니다.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여 있고, 한 면 만이 육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에서 시작된 북한과의 냉전으로 인해 북한 해역을 밟 을 수 없어져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더 걸린 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통일을 통해 우리는 바다로의 무역과 육지로의 무역에 더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될 것입니다. 여섯째, 이산가족 문제가 해결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족들을 원하면 바로 볼 수 있지만, 이산가 족들은 서로의 생사도 모른 채 헤어져 살고 있습니다. 어렸던 소년, 소녀들이 이제는 늙어 고령의 나 이가 되었고,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몇 년을 기다려 극적으로 재회해 도, 만날 수 있는 시간은 겨우 사흘 남짓.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몰라 눈물만 납니다. 통일이 되 야 매일 들여다보던 사진대신 진짜 내 가족을 만나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일곱째, 인구가 7천만 명 이상으로 늘어나 경제규모가 커지고, 경제 활동이 더욱 왕성해 집니다. 우 리나라는 인구가 1억 명도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로 우리나라의 앞날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통일이 되면 인구가 이천만 명 이상 늘어나 앞으로의 경제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목숨을 걸고 탈북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북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가난에 허덕이다 굶어 죽고, 결핵이나 폐렴에 걸려 죽습니다. 이렇게 살다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지면 목숨을 걸고 두 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넘어와 다른 나라에 정착합니다. 우리나라에선 이들이 한국에 적응 할 수 있도 록 도와주고, 이들을 새터민 이라고 부릅니다. 중국에 살다 보면, 북한 사람들을 아주 쉽게 만날 수 있 습니다. 중국에는 북한 식당들이 많습니다. 그 곳에서는 고위 간부들의 딸들이 공연을 해 돈을 벌어 북한으로 보냅니다. 이들은 매일 똑 같은 옷을 입고, 똑 같은 화장을 하고, 다 함께 이동합니다. 개인 행동은 절대 용납 되지 않습니다. 이는 곳 탈북 행위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숨어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길거리의 노숙자들이나 고된 일을 하는 노동자들 중에는 북한사람들이 꽤 있습니 다. 중국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단동에 가면 북한 사람들을 보다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배를 타면 실제 북한 주민들이 사는 집도 보 이고 총을 멘 군인들도 보입니다. 생활하는 환경은 열악합니다. 단동은 북한과 거의 맞닿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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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탈북 하려다 걸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오래 전 아는 사람이 단동에 갔다가 끔찍한 장면을 보 았다고 했습니다. 탈북하다 걸린 한 남성의 쇄골에 구멍을 뚫어 쇠사슬로 묶어 끌고 갔다고 했습니다. 통일이 되면 이렇게 고통 받는 사람들도 없어질 것입니다. 물론 통일의 문제점도 있습니다. 남한 측의 경제적 부담과 희생, 문화적 이질감, 서로 다른 언어사 용, 남북간 극심한 소득차이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지만, 사마천이 쓴 ‘사기’에 따르면, 무식한 사 람은 100대의 이익을 보지 않고 현대의 이익만 살린다고 하였습니다. 통일은 어려움과 문제가 많습니 다. 하지만 현대의 어려움만 기피하는 것보다는 조금 힘들어도 힘을 합쳐 노력해 100대의 이익을 돌 보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적 통일을 이루는 것 입니다. 화해와 협력을 통해 민족 공동체를 형성하고 여러 방면의 교류와 화합을 통해 민족 전체의 복 지와 이익을 향상시켜 완전한 한민족 국가를 이뤄야 합니다. 다시는 한민족끼리 공격하는 천안함 사 태 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2014년 사라져가는 통일, 한민족 의식 속에서 이제는 다 함께 외 쳐야 합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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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에 대하여

<우수상> 동국대 총장상 선양 한국국제학교 중등 2학년 조 훈 희

북한과 남한은 현재 세계에서 유일한 독립국가다. 내가 지금 살고있는 중국 선양에도 북한과 관련 된 것들이 많이 있다. 한국의 차이나타운이 있듯이 중국에는 서탑이 있다. 서탑에는 한국 상점들을 비 롯해 몇몇 북한 식당들도 위치해 있다. 평양관, 모란관 같은 북한 식당에는 북한식 음식들을 비롯해 북한 사람들이 공연도 한다. 이러한 사람들을 북한에서 탈북 방지를 위해 파견한 고위급 정부인사들 의 자식들이란다. 그리고 그들은 단체지어 생활하고, 항상 같은 옷을 입고 같이 다닌다. 지금 내가 살 고있는 아파트 단지에도 북한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그렇다고 북한 사람들을 선양에서만 볼 수 있 는 것은 아니다. 나는 2년 전에 단동 여행을 가본 적이 있다. 단동은 북한과 아주 가까운 지역이다. 불과 다리 하나 만 건너면 바로 북한 땅이다. 나는 모터보트를 타고 중국 관광객들과 북한 땅을 볼수 있었다. 모터보 트를 타고 북한 가까이 가는 동안, 옆에있는 다리에서는 중국 차들이 전선을 싣고 북한 땅으로 이동 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 본 북한의 모습은 황량했다. 어떤 아저씨가 총을 옆에 둔 채로 강물에 옷을 씻고 있었고, 그 옆에는 허름한 오두막집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집 뒤에는 큰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그 건물 위에는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이라는 글자가 새겨져있었다. 옆에있던 배의 중국 관광객들 이 사진을 찍으려 하자 저 멀리서 북한 여군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총을 치켜들었다. 조금 더 이동하 니 북한 아이들이 보였다. 그 아이들은 잘 먹지 못해 아주 말라있었다. 모터보트 기사 아저씨가 담배 를 던져주고, 관광객들이 사탕을 던져주자, 그 아이들은 물건을 쥐고 쫓아오는 경찰들을 피해 풀숲에 숨는 모습이 불쌍해 보였다. 내가 최근에 본 사진에서 나는 북한이 얼마나 가난한 나라인지 알 수 있었다. 미국 인공위성이 찍 은 사진이었는데, 우리나라와 중국이 불빛으로 환한 반면에, 북한은 매우 깜깜했다. 북한 사람들이 얼 마나 어둡게 생활하는지 보여주는 사진이었다. 현재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자들도 그렇다.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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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거의 다 가난하게 생활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자들은 얼마나 많을까? 뉴스 기사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자들은 약 2만 6천명이라고 한다. 북한이 얼마나 살기 힘들었으면 목숨들 걸고 탈북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 다. 현재 북한의 GDP규모는 124억 달러, 1인당 GDP규모는 506 달러이다. 우리나라 제주도의 GDP 규모가 146억 달러, 1인당 GDP규모가 25051 달러에 비하면 엄청난 빈곤 국가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 라가 통일을 한다고 해도 손해를 볼 것만 같다. 하지만 예전에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예전에, 독일이라는 국가는 소련군이 진주해있던 동독과 서방 연합군이 있던 서독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1949년 분단이 공식화 되었다. 1950년 통일 제안이 무산된 이후로 양국은 점점 사이가 나빠 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1972년부터 1987년 까지 양국은 15년간 34차례의 회담을 가졌고, 과학, 기술, 문화, 환경 등의 협력체제를 구축했다. 그리고 민간인 교류가 계속 이어지기 시작했다. 1982년 서독의 총리가 동독을 방문하고, 1987년 동독의 공산당 서기장이 서독을 방문함으로써, 통일이 가까 워 오는 듯 했다. 그 후 서독이 계속해서 통일을 강조했고 동독을 지배하던 소련이 개방해서 다른 국 가들이 민주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동독도 똑같은 길을 걸어 자유선거를 실시하고, 서독도 그 동안 소련에게 경제협력을 약속받았다. 1990년에 동독, 서독과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이른바 2+4 회담 이 열렸다. 8월에 통일조약을 체결했고, 9월에 회담 승인을 받아 10월에 마침내 베를린 장벽을 무너 뜨리며 통일을 이루었다. 통일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사람은 통일을 하면 북한의 자원을 이용 해 경제 대국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통일을 하면 우리나라가 더 잘 살기 때문에 손해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우선, 통일을 하면 좋은 점은,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수치를 씻어낸다. 남한과 북한의 인구가 합쳐져 군사력이 상승하고, 그로 인해 일자리가 많아져 실업자가 줄어든다. 그 리고 이산가족이 더 이상 마음아파하지 않고 지속적 만남을 가질 수 있고, 서로의 문화가 융합되는 순 영향도 생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북한의 금강산 같은 관광 명소들을 자유방문, 관광 할 수 있고, 경 제가 융합되어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쏟아붓던 많은 국방비도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통일을 한다고 해서 이러한 좋은 영향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랜드 연구소에서 발표한 우리나라의 통일 예상 비용은 500억에서 1조 7천억 달러, 우리돈으로 56조에서 1995조 라는 천문학 적인 액수가 들어간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는 자연스레 돈이 없어져 그 돈을 충당하기 위해 세금을 더 많이 걷게 되어 우리나라 국민은 세금폭탄을 맞게 된다. 그리고 가난한 북한과 통일이 됨으로 인 해 한동안은 경제수준이 많이 하락할 것이다. 그리고 식량과 재산분배가 잘못된다면 식량고갈과 사 회적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다분하다. 그리고 다른 언어와 정치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고 빈 부격차가 심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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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나라가 더 빨리 통일 후에 경제 회복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내 생각엔 어렵 긴 하겠지만 가능한 방법이 있다고 본다. 북한은 오래 전부터, 핵을 개발해 왔다. 북한에게 핵은 자 기나라를 지키는 최고의 무기이자, 다른 나라가 북한에게 쉽게 도발을 못하게 하는 방어막같은 존재 다. 미국과 중국은 북한의 핵 포기를 지지하고 있고,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고 핵실험과 핵개발을 계속하고 있는 상태다. 결국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이유는 사회 속에서 자기나라를 지키려는 수단이 다. 만약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그 대신 사회에게 식량 원조를 받는다면 우리나라는 더 빨리 경제 성 장을 이룰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북한의 핵 포기를 지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조건을 받아들일 지는 의문이다. 그 리고 통일 시에 북한이 핵을 써서 우리나라는 무력으로 통일할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안된다. 현재 양 국은 긴장감으로 고조되고 있다. 몇일 전에 이산가족 상봉과 북한의 우호적 발언으로 통일이 가까워 오는 듯 했으나, 이산가족 상봉 도중에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여, 그동안의 우호적 발언이나 통일 제 안들이 그저 페이크였다는 예상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우리나라는 북한이 무슨 발언들을 하던간에 평화적 통일을 할 수 있는 방 안을 생각해 보고, 그 방안을 실행에 옮겨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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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우수상> 백석대 총장상 청도 국기외국어학교 중등 2학년 최 승 환

‘함께’라는 말은 참 좋다. 일단 ‘함께’라는 말의 뜻으로는 ‘한꺼번에 같이, 또는 서로 더불어.’가 있다. 지금부터 아래의 글에서 ‘함께’라는 단어를 보게 되면 ‘서로 더불어’라는 뜻을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내가 ‘함께’라는 단어를 말한 이유는 지금 우리나라가 세계와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지금의 대한민국을 한 단어로 표현하라 한다면, 난 서슴지 않고 ‘함께’라고 답할 것이다. 그렇 다면 지금부터 그 이유를 보러 가자. 우리나라는 지금 ‘함께’의 뜻과 걸맞게 세계와 더불어 문화를 발전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K-POP 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가요, 한국의 드라마, 그리고 자랑스러운 우리의 한글이 있다. 외국에서는 한국의 대중가요를 K-POP이라고 부른다. 2년 전 7월, YG소속사의 가수 싸이(PSY)가 ‘강남스타일’이라는 노래를 발표하고, 약 2개월 후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유투브 조회 수 2억 7000만 건을 넘기는 대기록을 세운다. 그 뒤로 수많은 전 세계의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알게 되거나 한국을 방문하는 등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많은 한국 가수들이 해외에 진출하고, K-POP이 라는 문화를 세계에 내놓으면서 세계는 함께 웃고 함께 즐겨가기 시작했다. K-POP이 전 세계와 세 계와 약간 고립돼있던 우리나라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해준 것이다. 또, 우리나라의 드라마가 있다. 우리나라의 드라마는 우리나라의 고유문화나 환경 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문화를 알고 느끼기에는 드라마만한 것이 없다. 비록 현대에는 찾아보기 힘든 문화지만, 조선시대의 우리나라의 문화를 담은 드라마 ‘대장금’은 전 세계 91개국 이상에 나라 들에 수출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가는 길마다 극중 대장금 역을 맡은 이영애의 사진이 걸린 나라가 있기도 하고, 심지어는 장금이의 삶을 살겠다며 집에서 한복을 입고 한국의 문화를 즐기는 아이도 있 었다. 드라마 하나가 이렇게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또, 얼마 전 끝을 맺은 드라마 ‘별 에서 온 그대’는 중국에 큰 인기를 끌며, 극중 전지현이 즐겨먹는 치맥(치킨과 맥주를 줄인 말) 문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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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퍼뜨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두 주인공이 다니는 곳마다 해외 관광객이 늘어났고, 한국의 관광 산업과 문화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글자 ‘한글’ 또한 해외에서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글은 1446년 10월 9일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의 훈민정음으로 세상에 나왔다. 훈민정음은 창제될 때 사람의 혀의 모양 과 소리를 본떠 만들어져서, 세상의 모든 소리를 글에 담을 수 있다. 훈민정음을 만드신 세종대왕님은 백성들이 어려운 한자를 배울 처지가 못돼 글자를 몰라 손해를 많이 보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훈민정 음을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의 양반들은 글을 쓸 줄 안다는 것을 특권으로 여겨 훈민정음 사용을 반대 했고, 훈민정음은 그렇게 묻혀 갔다. 그러다 1910년대 초, 주시경 선생을 비롯한 학자들이 훈민정음 을 좀 더 쓰기 편하게 바꾸고, 한글이란 새 이름을 붙였다. 그 후 한글은 널리 퍼져, 오늘날까지 이르 게 된 것이다. 한글은 모든 소리를 담을 수 있다는 우수성과 과학성을 지녀, 유네스코에도 등재되었 고, 인도네시아의 소수민족 찌아찌아족은 한글을 그들의 글자로 쓰기 시작하기도 하였다. 이런 우수 하고 배우기 쉬운 한글은 세계에도 진출해, 배우는 사람이 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지금 한국이 세계 에 함께하며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정말 큰 듯하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이런 우리나라의 문화에도 어두운 면이 있다. 우리나라의 가 수들은 너무 해외에만 진출하려 하여 노래 가사에 외국어를 많이 넣기도 한다. 물론 국민들도 그런 모 습을 일상생활에 적용해가고 적응하기 시작했다. 어디까지나 그냥 ‘함께’하려던 초반의 순수하고 정 직했던 모습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부모가 자식을 가르치려면 부모부터 솔선수범 해야 하듯이 우리나라 국민들부터 한글을 애용하고,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좋게 해야 하는데, 우리나 라 국민들의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어디를 가나 들리는 비속어 등의 욕설들, 대 중교통 등 공공장소에서 크게 말하거나 무례를 저지르는 사람들 등 ‘함께’ 잘 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 이 여기저기 보인다. 그 외에도, “한글이 이렇게 좋다.”, “한글은 우수하다.” 라고 말하지만 사실 본인 부터 한글을 잘 쓰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렇게 좋은 한글을, 다른 나라에 우수성을 알리고 인 정을 받으면서도, 정작 국민들은 잘 쓰지 않는다는 게 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것인가! 길거리의 간판 들만 해도 그렇다. 문화 사대주의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한글이나 한국어보다는 영어 등의 외국어 를 더 선호한다. 그리하여 거리에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간판들이 넘쳐나고, 충분히 한국어로 쉽게 표현할 수 있는 쉬운 단어들마저도 외국어로 쓰게 되고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10대나 20대의 사람 들은 SNS의 발달로 인해 심지어는 몇 글자 더 쓰는 것도 귀찮아한다. 세종대왕님이 묘를 박차고 나오 실 지경이다. 그리하여 정말 듣기가 거북할 정도로 이상하게 느껴지는 신조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 다. 그런 신조어들로 인해 10, 20대와 그 외의 연령대는 점점 멀어지고만 있다. 결국 ‘함께’ 웃고 즐기 며 사는 이상적인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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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나라를 지키고 한글을 지켜나가려고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예쁜 말 쓰기 운동, 순우리말 쓰기 운동 등 여러 가지 활동들을 이끌어 나가는 사람들이 아직은 많다 는 것이다. 그 외에도 ‘훈민정음 게임’이라는 아주 다가가기 쉬운 놀이가 있다. ‘훈민정음 게임’은 여럿이서 하는 놀이인데, 말 그대로 세종대왕님의 뜻을 담아 외래어, 외국어, 비 속어는 절대 쓰지 않고 오로지 우리말만 쓰는 놀이이다. 보통 이 게임을 하고 있는 상태로 다른 게임 을 한다. 예를 들면 끝말잇기 등의 게임을 하는 것이다.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언제나 입을 조심해 야 하고, 언제나 말을 할 때 이것저것 고려해서 말을 해야 한다. 만약 금지된 말을 쓰면 벌칙을 받기 때문이다. 이 ‘훈민정음 게임’을 하다보면 우리 주변에 외국어나 외래어가 정말 많다는 것을 새삼 느 끼게 된다. 이 ‘훈민정음 게임’은 비단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계속 말을 조심하다 보면 어느 정도의 ‘훈민정 음 효과’가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게임 도중에 정말 말해야 하는 외래어가 있다면, 말하려는 사람은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말을 찾으려고 온 힘을 다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느끼는 것이 있을 테고, 이 게임을 자주 하다보면 외래어 등의 말들도 사용빈도가 분명히 점차 줄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와 함께하며 세계화 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완전한 세계화의 첫 도약 은 우리나라 안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우리나라 안에서부터 라는 것은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 하나하 나의 행동을 뜻하는 것일 거다. 바다가 썩지 않는 이유는 0.3%의 염분 때문이라고 한다. 바다를 우리 나라와 세계로 놓았을 때, 우리는 바다의 염분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바다와 분리되어 둥둥 떠 있 는 기름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함께’ 누리고 ‘함께’ 좋으려면 우리 자신부터 시작해 나아가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모두 ‘함께’ 나라를 지키고 나라를 사랑하며 나라의 문화를 세상에 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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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의 평화통일

<우수상> 백암재단 이사장상 천진 한국국제학교 중등 3학년 윤 자 현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엔 분단국가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이 항상 따라다닙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입니다. 슬프게도 우리는 세계에서 같은 민족이 서로 총을 겨누는 유일한 분 단국가라는 것입니다. 남한과 북한은 6.25전쟁 이후 계속 대립상태로 지속되어 왔습니다. 관계가 진전 과 갈등이 번복되면서 언제 또 틀어질지 모르는 조마조마한 사이입니다. 한시라도 빨리 통일이 되었으 면 하는 저의 바람입니다. 많은 학생들, 특히 해외에 나와있는 청소년들은 통일을 왜 해야 하는지 또한 통일의 결과가 무엇인 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유 가운데 첫째는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하고 있는 소식이지요. 바로 이산가족들입니 다. 정확한 통계는 내릴 수 없지만, 그 수는 대략 15만 명 정도라고 합니다.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 고 서로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는 이산가족들, 남북이산 가족 상봉장면을 다들 보셨으리라고 생각합 니다. 소수의 결정이 친 가족을 떼어놓은 것처럼 그들은 원치 않은 분단을 통해 너무나도 큰 아픔을 안 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뜻을 저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재 한국은 국방비에 전체 세금의 10분의 1을 쓸 정도로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에 많은 노력과 비용이 낭비되고 있습니다. 만약 통일이 된다면, 우리는 그 비용을 더욱더 가치 있는 곳에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북한에는 아직 미개발된 지역들이 많습니다. 한국의 발달된 기술로 공간과 자원을 보 다 실용적이게 활용하며 경제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국제적으로 더 큰 영향력을 가지 게 될 것이며 국가의 안정성이 확립되어 더 나은 외교활동의 기회를 가져올 것입니다. 또한 북한 주민 을 위해서도 통일을 해야 합니다. 방송과 여러 매체를 통하여 북한주민들의 생활을 보고 들은 저는 일 을 열심히 해도 먹고 살기가 힘든 그들의 사회, 소수의 특정계층의 만족을 위해 고통 받는 그들을 보 며 안타깝고 마음이 아파옵니다 또한 우리는 단일민족입니다. 같은 핏줄의 사람들이 후손들의 의견차 이 때문에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대립하는 비극이 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입니까? 이런 문제를 해결하 기 위해서는 통일이 꼭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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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모든 문제가 그렇듯 통일을 통해 얻게 되는 것도 많지만 서로 나누어 잃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을 것 입니다. 먼저 통일이 된다면 북한과 남한 주민 사이의 빈부격차로 인해 통일이 된다 해도 민족적인 갈등과 함께 내부불화가 일어날수 있습니다. 빈부격차는 남한 주민들의 세금으로 채워지게 될 텐데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사람에겐 당장 이득이 되기 보단 실이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통일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북 한들의 상위 일부 특정계층입니다. 만약 통일이 된다면 자신들의 권력과 권한에 위협이 오겠지요. 설 사 통일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다시 북한과 남한을 분리시키려 하는 불순 대응도 생길 것이고 북한의 통일 반대 잔당이 어떻게 행동할지는 가히 위협적 일수 있습니다. 그리고 통일이 된 후 꽤 장기간 동안 사회는 불안정할 것입니다. 한나라가 통일한다는 것은 여러모 로 시간이 걸리고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혼란 틈에 돌발 사건 사고도 예상이 됩니다. 가장 좋은 예는 바로 독일입니다. 많은 시간이 흘러서 비로소 안정이 됐지만 그들도 통일을 이루는 것에 대하여 만은 노력과 희생이 있었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방법과 실상을 참고하여 우리의 통일을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럼 통일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제가 통일을 위해서 준비할 것은 아래와 같습니 다. 첫째, 저는 북한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갖고 북한을 알려고 노력하겠습니다. 해외에 나와있는 저, 저 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들이 통일에 대해 매우 둔감합니다. 통일이 되면 한 민족 한나라로 살게 될 것인 데 서로가 서로를 잘 알지 못한 다면 오해와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북한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는 민족의 동질성을 점차적으로 회복하는 준비단계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선 스 포츠교류, 문화적 교류 학술적 교류 등 민족간의 교류가 먼저입니다. 우리가 한 마음이 되어 세계무대 에서 국제적 문화포럼에도 단일팀으로 참여하고 작은 것 부 터 하나씩 한마음이 되고 스포츠에서 단일 팀 동시 참여 등으로 국제 무대에 먼저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군사적 외교적으로 우리 스스로 우리 나라를 지킬 수 있는 힘을 확보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통일이 된다면 더불어 주위국가의 상황을 주시 해야 합니다. 현재 남한과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 북한 과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 등 주변국가의 외교적 상황과 그들 국가의 득과 실에 연관을 지어서 국가 정 세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스위스가 중립국가로써 위치를 확고히 한 배경은 스스로 나라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책에서 보았습니다. 나라의 힘을 기르기 위해선 국민들 모두가 각자 자 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저는 학생으로써 그 본분인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게 우선입니다. 학생들은 미래의 희망입니다. 제게 주어진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학업에 열중하여 민족과 나라 에 힘이 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셋째, 우리의 마음가짐 또한 중요합니다. 우리가 우월의식을 가지지 않고 정말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아껴주며 그들의 모습을 받아 드리는 것이 통일을 준비하는 우리의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이상 제가 생각하는 우리 민족의 평화통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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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품은 우리

<우수상> 백암재단 이사장상 청도 국기외국어학교 중등 2학년 정 유 진

우리나라가 남쪽과 북쪽으로 나뉜지 어느덧 66년이 되었다. 1945년 광복 이후 소련과 미국이 우리나 라를 38도선으로 나누어 북쪽은 소련이 점령하고, 남쪽은 미국이 점령하게 되었다. 1948년에 남한에 대한민국 정부가 세워지면서 북한과는 다른 정부를 세우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미국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할 때, 북한은 힘을 키우고 있었다. 북한은 우리나라를 무력으로 통일하기 위해 군대를 만들었다. 그래서 북한은 1950년 6월 25일에 우리나라에 쳐들어왔다. 처음에는 밀렸으나 인천상륙작전으로 북 쪽으로 치고 나갔다. 3년후인 1953년에 휴전협정이 이루어졌다. 휴전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남북한이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6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전쟁의 위험에서 해방된다는 것이다. 무력으로 통일하기 위해서 북한이 언제 쳐들어올 지 모르기 때문이다. 무력으로 통일하게 되면 양쪽 다 멸망하게 된다. 두 번째는 경제가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는 외국에 의지해 경제를 유지하고 있다. 전 쟁 상태 이기 때문에 국방비가 많이 든다. 통일을 하면 국방비를 나라를 위해 쓸 수 있다. 그리고 북한 의 노동력과 남한의 기술을 합치면 경제가 좋아질 수 있다. 세 번째는 군대가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잘사는 나라는 아니어도 군대는 강하다. 북한 에는 미사일과 핵폭탄이 있기 때문에 강해질 수 있다. 네 번째는 하나의 민족을 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련 때문에 나뉘게 됐지만 하나의 민족인 것은 확 실하다. 다섯 번째는 북한사람들을 지켜야 한다. 북한사람들은 많이 못 먹고 있다. 통일해서 북한사람들이 남한에 와서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 그 중에 가장 큰 이유 6번째는 이산가족 문제이다. 남한과 북한에는 헤어진 가족이 많다. 최근에 노력 끝에 이산가족 상봉을 하게 되었다. 그 중에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가족도 있었다. 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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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바뀌어야 한다. 남한은 가족 상봉을 원하는데 북한은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통일을 하면 좋은 점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첫째, 이산가족이 사라지게 된다. 남북한에 있는 이산가족들은 통일이 되면 같이 살 수 있다. 둘째, 경제적으로 좋아진다. 우리나라는 작은 국토임에도 컴퓨터나 TV, 자동차가 좋다는 평을 받고 있다. 통일을 하게 되면, 북한사람들에게도 일자리가 생기고, 총 소득이 올라가면, 경제가 좋아진다. 그리고 북한사람들 이 세금을 내면, 우리나라가 더 좋게 될 수 있다.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때문 에 국방비에 들어가는 세금도 딴곳에서 쓸 수 있고, 일할 수 있는 일손도 는다. 셋째,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 남한선수들 말고도 북한에도 숨겨진 선수들이 많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을 모으면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넷째, 태평양, 중국, 시베리아, 유럽을 연결할 수 있는 철도를 만들 수 있다. 통일을 하면 남한사람 들도 북한에 가서 기차를 탈 수 있다. 우리나라는 북쪽이 막혀 있어서 바다를 이용해 무역을 하고 있 기 때문이다. 다섯째, 저출산 문제가 사라진다. 북한은 아이를 많이 낳기 때문에 아이들이 많아지고, 인구도 늘 어날 것이다. 여섯째, 문화가 새로워진다. 남한에도 문화재가 많지만 북한에도 있다. 남북한의 문화재를 연구하 고 보존할 수 있다. 일곱째, 정치가 좋아진다. 통일이 되면 한 정부내에서 민주당 공산당 등 여러 가지 기존의 대립된 당들이 서로 공존하는 가운데 참된 민주주의는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우리가 속한 민 주주의를 보호하고 공산주의에 대해 적절히 견제하면서 조금씩 트는 자세가 필요하다. 여덟째, 불안하지 않은 사회가 된다. 이산가족은 헤어져 있었던 시간에 비해 만나는 시간이 터무니 없이 짧아 큰 아쉬움을 갖고 헤어진다. 언제 또 만날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 기약 없는 헤어짐은 이산 가족에게 또 한번의 고통을 준다. 이산가족 1세대는 이제 세월이 많이 흘러 백발의 노인이 되었고 많 은 사람들은 그리움을 안고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 한번이라도 더 만남을 가져 안타까운 일이 줄어지 도록 해야 한다.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보자. 첫째, 통일은 우리가 만든다는 정신이 필요하다. 우리가 하기 싫어서 북한에게 미루면 북한도 하 지 않을 것이다. 둘째, 사랑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사랑은 받을 때보다 줄 때가 더 좋다고 한다. 우리가 북한사람들 을 사랑하면 통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문제 해결 능력이 필요하다. 통일문제 해결을 합리적으로 해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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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남의 말을 듣고, 생각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말만하고 북한의 말은 듣지 않으면, 통일 을 할 수 없을 것이다. 통일에 관해 해결 방안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다섯째, 국제 사회의 변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남북의 분단은 우리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관계있 는 나라들도 관련이 있다. 여섯째, 체력과 정신을 좋게 해야 한다. 요즘 아이들은 공부하느라 약해져 있다. 통일을 하기 위해 서는 청소년들이 커서 노력을 해야 하는데 약하면 할 수가 없다. 일곱째, 국가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한다. 나라가 힘이 있어야 우리도 힘이 있다. 여덟째, 사회질서를 잘 지켜야 한다. 통일된 나라에서 선전하기 위해서 능동적으로 사회질서를 지 켜야 한다. 우리는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와 통일을 하면 좋은 점, 통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아봤다. 빨리 통일해서 이산가족을 줄이고, 나라도 강해지고, 경제도 좋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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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망치한(脣亡齒寒)

<우수상> 이찬열 국회의원상 선양 한국국제학교 고등 2학년 신 동 화

1950년 6월 25일,우리 민족이 서로가 서로의 뼈를 깍아 내리고 살을 녹여 내렸던 그 날이 지난지 벌써 약 60년 이나 흘렀다.우리나라는 이제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가 되어버렸다. 아프리카나 서남 아시아 지역처럼 직접적인 혈투는 적지만 ‘차가운 정쟁’,즉 냉전 체재가 소련이 무너진 지 오래인 지금 까지, 남한과 북한의 중심의 휴전선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냉전 체재의 원인은 이념대립이다. 정보화, 세계화 시대인 오늘날 아직까지 큰 대립이 있는건 솔직 히 말인 안되는 일이다. 현재 완전한 공산주의 국가는 북한 밖에 없는것으로 알고있다. 북한은 또한 너무나도 폐쇄적이라 몇 십 년 동안 이미 세계 중심에서 신의도 잃고 고립된지 오래이다. 뉴스나 텔레 비전을 보면서 나는 ‘북한 지도층들은 어째서 그리 고집을 부려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려는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그냥 ‘통일’이라고 생각하면 베를린 장벽이 한 순간에 무너진 그 날처럼 한 순간 에 끝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게임 같은게 아니다. 사상 대립 자체가 날 카롭기도 하고, 전쟁이란게 너무 참혹하기에 남한 측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거 같다. 가끔 북한이 남한으로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뉴스를 보면 무섭기도 하다, 왜냐하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련지 또는 양쪽 관계가 더욱더 안좋아져 통일 하는일이 해결할수 없을 정도로 될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넋을 놓고 나날이 분열 되어가는 걸 보고만 있어서는 안된다. 벌써 60년이나 지나서 대부분의 이산가족들은 죽었고 그 후손들은 서로의 얼굴조차 모른다. 한달 전에 있었던 이산사족상봉행사는 내 머리속에서 잊혀지질 않는다. 요즈음 따라 통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던 지라 더욱더 주의 깊게 보았다. 버스 창문을 통해 손을 꼭잡고 놓지 않으려던 모습에 내 마음까지 짠해졌다.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몇 십 년 동안 만나지 못하는 슬픔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수 있을까? 여기서 더 비극적인 것은 혹시 지금 전쟁이 일어나서 남자들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게 된다면 우습게도 사촌이나 삼촌, 큰아버지에게 겨눌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알고 있 을가? 안다고 해서 그 상화을 막을수 있을가? 이 모든 것은 지도층의 잘못된 판단에 의해 생긴 국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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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불행이다. 나는 지도층들의 올바른 정치적 의식을 확실히 개선 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때까지 수많은 전쟁 이야기나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동족끼리 싸우는게 얼마나 어리석고 비참 한지 깨달았다. 그 전만 해도 내 가족이였는데 다른 나라의 침략과 간섭에 의헤 둘로 나뉘어져 결국 서로가 믿는 것조차 달라진 뒤, 서로를 죽이고 죽여야 하는 그런 어리석은 전쟁이 아직까지 계속 되 고 있다는 점에 울분을 토로한다. 현재 금강산 가는 길도 끊기고 북한이 우리 쪽 섬에 폭격을 가하지 않나, 점점 위화감이 조성되고 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때 마다 국민들은 불안으로 떨었다.그 공포심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 이다. 그 보다 더 공포스러운 건 지금 내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것이다. 그러니 전쟁을 피하고 평화롭게 통일을 하는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전쟁은 개개인의 이기심과 무지함, 다수의 집단주의와 폭력성 때문에 일어난다. 하지만 진심으로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북한 사람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 라고 차근차근 조금이라도 빨리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 가끔 통일이든 전쟁이든 나 몰라라 하는 사람 들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이다. 북한과 통일하면 우리가 손해가 아니냐는 사람들도 있다. 단기 간으로 우리가 확실히 손해일지는 몰라도 장기간으로 보는 평화와 안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 석과 같은 것이다. 북한은 지금 계속되는 고립으로 인해 경제적 사정이 말이 아니다. 저번에 뉴스에 북한 실새활용품 사정에 대해 들었는대 대부분이 중국의 원조물품들 뿐이고 주민들도 그것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고 먹 지 못헤서 빼빼 말라 아프리카의 아이들 같았다. 우리가 지원을 조금 하고 있지만 북한 지도층이 주 민들의 생활에 힘쓰지 않고 군사적인 용도로만 써서 형편이 더 어렵다. 그렇게 그들은 굶주리고 있는 것이다. 북한도 우리들의 동포다. 조상이 같은, 핏줄이 같이 내려온 가족이다. 하지만 휴전선으로 나 뉘어졌고 사상이 다르고 문화도 조금 다르다고 서로 친척 대하듯이 한다. 같은 동포지만 가까이 지낼 수 없는 것을 보면서 내가 현재 아무것도 도와줄수 없다는게 너무 답답하다. 나는 외교쪽으로 관심이 많고 나의 꿈 또한 외교관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커서 외교에 대한 일을 한다면 통일이라는 숙제 를 완성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싶다. 슬프고 서로 아파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숙제를 빨리 해결해 나갔으면 좋겠다. 분단, 그 슬픔과 고통의 반복되는 소용돌이는 증오만 낳을 뿐이고 그것은 아직까지 우리를 잠식시 키고 있다. 순망치한이라고 북한이 죽어 가면 같은 동포이자 남쪽에 자리 잡은 남한 또한 죽어 갈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 모두 통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지고 다 같이 노력해야만 한다. 통일이라는 말이 단지 스쳐지나 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통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줄 아는 날이 오면 그 보다 더 좋은 소식은 없을것이다. 분단의 아픔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수 없다. 우리나라가 남한, 북한으로 불리워 지는게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국가로 불리워지는 날을 나는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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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맹호의 심장

<우수상> 이찬열 국회의원상 청도 MTI 국제학교(ISQ) 고등 1학년 김 호 영

“날래 가라요!” 난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멀리서 갈색 옷을 입고 빨간 별 모자를 쓴 인민군 두 명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내 앞에 쓰러져 있던 아이의 땀 범벅이 된 두 손을 놓아 버렸다. 뒤돌아 도망 가려는 찰나,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 버렸다. 나의 두 눈이 내 앞에 쓰러져 있던 아이의 눈과 마주쳤기 때문이다. 비록 그 눈은 작고 힘이 없었지만 나에게 많은 것을 말해 주었다. 그 아이의 절망이 두 눈을 통해 눈물이 되어 흘려 내리고 있었다. “기다릴게.” 짧은 무언의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의 눈을 통해 그의 마음을 읽어 낼 수 있었다. 내 가슴 깊은 곳 어느 한 구석에서 뜨거운 무엇 인가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왔다. “날래 안 나가요!” 그제서야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순간 들고 있던 빵 조각을 떨어뜨렸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등 뒤에서 돌 부딪히는 듯한 둔탁 한 소리가 들렸고, 곧 내 눈은 흐려졌다. 몇 년 전, 나는 취미였던 사진찍기를 위하여 압록강 상단에 위치해 있는 백두산 천지에 간 적이 있 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두 발을 땅에 디디는 순간, 나의 마음은 형언할 수 없는 어떤 뭉클함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이 곳은 바로 우리 한민족이 고귀한 첫걸음을 내디뎠던 의미 깊은 땅이었기 때문이다. 이 넓고 넓은 만주 벌판에서 단군 할아버지는 우리 민족을 한반도라는 한 배에 싣고 역사의 길고 광대 한 순항을 위한 첫 돛을 올리셨다. 나는 이 여행이 내게 가져다 줄 수 있는 의미가 단순히 사진을 찍고 휴식을 하는 것 이상일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백두산 북쪽 비탈에 위치하고 있는 이도백하시에 들어서자 나의 생각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여 기저기에 한국어로 쓰여진 간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고 가는 곳마다 억양이 다른 한국어를 심 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 나는 실수로 북한 본토에 들어온 줄 알고 긴장했었다. 나중에 이곳이 조선족 마을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나의 생각이 정리되었다. 갑자기 기분이 묘해졌다. 조선족 분들은 조국 땅을 떠난 지가 오래되었고, 그로 인해 그들은 이미 새로운 삶의 방식에 맞춰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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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나와 같은 한민족이었을 뿐이었다. 내가 한눈에 그들 에게 동질감을 느꼈던 것처럼, 그들 역시 나와 같은 감정이 아니었을까!인간이 그어 놓은 국경은 때때 로 바뀌고 통치하는 정권 역시 바뀌어도, 우리 민족의 혼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미 현재 북 한 사람들은 남한 사람들과는 크게 다른 생활 환경에서 살고 있다. 특히 경제적, 정치적으로 남과 북 이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음으로 인해 서로에 대한 믿음과 관심이 많이 사그러들었다. 하지만 그들 은 여전히 우리의 형제이다. 한 거목의 가지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 있다고 하더라도 거목의 뿌 리까지 부인할 수 있으랴. 이렇게 볼 때, 우리 한민족은 같은 뿌리를 가진 튼튼한 거목으로 성장해 나 가야 할 것이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백두산 천지에 도착했다. 내 앞에 펼쳐진 황홀한 광경에 눈을 뗄 수 없었다. 백 두산 천지의 호수는 하늘의 태양이 마치 큰 거울을 비추듯 붉게 빛났고 시원한 바람이 저 북녘에서 불어왔다. 그토록 갈망했던 이곳에서 이 신비스런 광경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난 카메라 셔 터를 정신 없이 누르고 또 눌러댔다. 우리 한민족이 이런 고귀한 땅에서 시작을 했다고 생각하니 우 리 민족이 한없이 자랑스러웠다. 저 멀리 북녘의 땅이 보였고 죽기 전에 꼭 다시 저 땅을 밟아 보리 라 다짐했다. 천지를 구경하난 후 중–조 국경선이 위치하고 있는 압록강 일대로 발길을 돌렸다. 그 곳에는 중국 과 북한 사이를 가로지르는 압록강이 흐르고 있었고 이 길고 넓은 강을 관통하는 다리 하나가 있었다. 다리에 올라서자마자 다리의 정 중앙에 그려져 있던 빨간 선이 내 눈에 들어왔다. 곧 내 심장은 뛰기 시작했다. “저 선 너머가 내가 그토록 꿈에도 그리던 북한 땅이구나." 마음 같아서는 저만치 있는 표 지판들을 무시한 채 전속력으로 북한 땅을 향해 돌진하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두 눈을 감 아버렸다. 그 순간, 시원한 바람이 북한 너머에서 불어와 나의 뺨을 간질였다. 나는 이 바람이 나의 고 향인 제주도에서 불어와 아무렇게나 엉켜져 있는 민통선의 철조망을 지나 북측의 한반도를 쓸고 쓸 어서 나의 몸을 감싸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 눈을 감고 오천 년 금수강산의 한반도의 통일 을 기원해 보았다. 그러던 찰나, 난 신음 소리가 들려 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빨간 선에서 몇 미터 떨어진 다리의 북측에 한 아이가 허름한 옷을 입고 누워 있었다. “왜 이런 곳에서 아이 가 누워있지”라는 생각과 함께 막연하고 불길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 아이의 얼굴은 피멍이 들어 있었 고 다리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 넘치고 있었다. 아마 북측에서 도망을 치다가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지 고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인 듯 했다. 순간 코가 찡해지면서 나는 주머니에서 먹다 남은 빵을 꺼내 그 아 이에게 내밀었다. 아이는 처음에 나를 못 믿는 눈치더니 곧 빵을 받아 게걸스럽게 먹어대기 시작했다. 북에서 넘어올 때부터 긴 시간 동안 굶은 모양이었다. 그 아이의 다리에 난 상처를 보며 나는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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찡해졌다. 신나게 먹고 있는 아이의 얼굴이 곧 다시 흐려졌고 안쓰러운 눈으로 그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아이의 손을 따스하게 잡아주며 그에게 다시 빵 한 조각을 더 내밀어 보였다. 그 아이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의 눈을 통해 감사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나에게 그의 사정을 조그마한 눈을 통해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고달팠던 북한에서의 지난 삶,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사랑에 대한 말없는 감사…… “날래 가라요!”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멀리서 갈색 옷을 입고 빨간 별 모자를 쓴 인민군 두 명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나와 아이의 눈은 다시 마주쳤고 나는 그 순간 얼어 버렸다. 아이는 두 눈을 통해 최선을 다하여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 어준 나에게 진심을 담아 답례를 하고 있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에서 뛰쳐나왔다. 내 두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을 절대로, 절대로 잊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곳에 언젠가 꼭 다시 돌아오자고, 나중에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모습으로 돌아 와, 고통받는 그들을 위해 나의 평생을 다 바치자고. 그 날의 경험은 나의 생각에 큰 변화를 가져 왔다. 한 때, 우리 한반도 땅은 거대한 맹호였다. 맹호만이 가질 수 있고 또한 가지고 있는 ‘기’와 ‘혼’을 살려 동아시아, 아니 전세계를 향해 울부짖었었다. 만주의 허허벌판, 그리고 동북 아시아의 눈 덮인 땅은 맹호의 강렬하게 땅을 흔드는 고함에 녹아 내렸었다. 이 맹호의 용맹함은 지구 저편에도 알려져 천하를 떨게 한 적이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 맹호는 수백 차례의 전투에서 승리하였고 악랄한 이방 민족의 침략을 상처투성인 온 몸으로 막아 내었다. 오로지 한민족의 혼을 지키기 위함이었고, 이 맹호는 수천 년간 우리 한민족을 하나로 뭉쳐 싸우게 하고 단군 할아버지가 시작하신 우리 민족의 위대한 발걸음을 지켜내게 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이 맹호 의 허리는 두 동강이 나 버렸다. 허리가 잘리는 과정에서 차마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고통과 상처가 수반되었다. 수백만 명의 고귀한 생명들이 아무 이유 없이 잔인한 허리 가르기 싸움으로 죽어나갔다. 맹호는 이유도 모른 체 예전의 “기”와 “혼”을 잃어 버렸고, 한 때 아시아를 향해 부르짖었던 그 용맹함은 하루아침에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가장 슬픈 것은 현재 한민족이 과거의 화려했던 맹호의 심장 박동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용맹하게 불타던 맹호의 심장이 지금 다시 우리 를 향해 강렬하게 외치고 있다. “나는 다시 타고 싶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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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

<우수상> 이찬열 국회의원상 청도 국기외국어학교 고등 3학년 서 동 명

한가로운 어느 시골마을에 ‘남이’와 ‘북이’라는 아이가 살았습니다. 남이와 북이는 성격과 취향은 서로 달랐지만 서로를 이해해주었고, 어렸을 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그들은 매일 마을 앞에 언제 부터 심어져 있었는지도 모른 커다란 은행나무 밑에 누워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거나 나무위로 올라가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기도 하고, 가을이 되면 은행나무에서 은행을 따 주머니에 은행을 한가득 넣고 서로 주고받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시간은 흘러 남이와 북이가 성인이 되던 해였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남이와 북이는 봄바람에 실려 오는 은은한 꽃향기를 맡으며 은행나무 그늘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북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남이에게 말했습니다. “남아, 나는 이제 떠날 거야.” 남이는 북이의 말을 듣고 화들짝 놀라며 북이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갑자기 왜 떠나겠다는 거야?” 북이는 남이를 향해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20년 동안 이 마을에서 살면서 한 번도 마을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었잖아? 나그네들이 그러는데 바깥세상 은 정말 멋진 곳이래. 그래서 나도 떠날 거야. 너도 같이 떠날래?” 남이는 북이의 말을 듣고 깊은 생 각에 잠겼습니다. 남이는 오랜 시간동안 생각을 하고나서 북이에게 말했습니다. “그래, 같이 떠나자!” 다음날 아침, 남이와 북이는 작은 여행 가방만을 든 채 길을 떠났습니다. 날씨도 무척이나 좋고 화창한 봄 날씨였습니다. 몇 날 며칠을 걸으며 남이와 북이는 길옆의 나무그늘에서 쉬기도 하고,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먹기도 하며 즐겁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집에서 떠난 지 닷새째 날에 남이와 북 이 앞에 두 갈래 길이 나타났습니다. 그 두 갈래길 사이에서 남이와 북이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왼쪽 길은 자유롭고, 시민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민주주의 나라로 가는 길이었고, 오른쪽 길은 모두가 공평 하고 행복하게 사는, 한명의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는 사회주의 나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남이가 북 이에게 말했습니다. “왼쪽 길로 가자, 왼쪽이 좋아 보이는데?” 그러자 북이가 대답했습니다.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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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이 훨씬 좋아 보이는데 오른쪽 길로 가자” 화창했던 봄 날씨가 점점 흐려지고 있었습니다. “왼 쪽 길로 가자니까!” 남이의 언성이 높아졌습니다. “아니야! 오른쪽 길로 가자니까!” 북이의 언성도 덩 달아 높아 졌습니다. “ 남이와 북이는 씩씩거리며 서로를 노려봤습니다.”너 왜 이렇게 내 말을 안 듣 니? 넌 저번에도 그러더니 오늘도 이러는구나! “ 남이가 북이에게 소리쳤습니다.”내가 언제!! 그러는 너야말로 저번에도 내말 안 듣고 멋대로 하더니!! “ 남이가 소리를 지르자 북이도 남이에게 소리를 질 렀습니다.”됐어, 너하고 나는 안 맞는 것 같아 나는 여기서 헤어져야겠다. “남이가 북이에게 말했습니 다.” 그래! 나도 바라던 바야! 더 이상 너 같은 애하고는 같이 못 다니겠어! “ 그렇게 한참을 싸우던 남 이와 북이는 결국 서로 헤어지기로 하고 남이는 왼쪽 길로, 북이는 오른쪽 길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남이는 북이와 헤어진 뒤 민주주의 나라에 도착했습니다. 그 나라의 이름은 민국이었습니다. 백성 이 다스리는 나라라는 의미였습니다. 민국국민들은 친절하고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남이가 민국에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은 남이를 환영하며 매우 잘해주었습니다. 남이는 마치 자신의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남이가 그 나라에서 머문 지 한 달쯤 됐을 때, 남이는 깡통을 만드 는 공장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남이가 공장에 들어가자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자욱한 연기가 한치 앞도 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공장의 굴뚝에서는 연기가 끊임없이 나왔고, 공장 안에서는 커다 란 괴물 같은 기계들이 굉음을 내며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땀을 뻘뻘 흘 리며 기계 안으로 석탄을 집어넣고 있었습니다. 남이는 속으로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 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텐데……” 남이가 기계 속으로 석탄을 던져 넣고 있는 한 아저씨에게 물었 습니다. “아저씨, 아저씨는 왜 이 일을 하세요?” 그러자 아저씨는 석탄을 던져 넣는 것을 멈추고는 남 이에게 신경질 적으로 대답했습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 자식들은 굶어 죽게 돼! 그거 알 아? 세상은 돈이 전부라고! 돈이 없으면 세상은 살수 없어. 그렇기 때문에 나는 힘들더라도 이렇게 일 을 해야만 하는 거야.”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일을 하는 것 이었습니다. 남이는 아저씨의 말 을 듣고 커다란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남이는 겁에 질려 공장 밖으로 도망치듯 빠져나왔습니다. 북이는 남이와 헤어진 뒤 사회주의 나라에 도착했습니다. 그 나라의 이름은 대한이었습니다. 대한 국민들은 친절하지만 매우 엄격하고 냉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북이를 자신들의 집에서 머 물게 해주었지만 이내 북이에게 말했습니다. “이봐, 여기는 공평한 나라야, 모두가 똑같이 일하고, 똑 같이 돈을 받지. 그러니까 너도 이곳에서 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만 할 거야.” 북이는 다음날부터 일거리를 찾아 돌아다녔고 어느 유명한 신문사에 기사를 쓰는 기자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북이는 신문에 적을 내용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북이 는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이 커다란 잘못을 했지만 그 것을 감추려는 것을 보았습니다. 북이는 그 내용이 담긴 기사를 신문에 써서 온 나라 사람들이 알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뒤 무섭게 생긴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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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들이 북이의 집으로 들이닥쳐 북이를 포박하고 어디론가 끌고 갔습니다. 그곳은 감옥이었습니다. 북이를 어느 방에 가둬두고 군인 모자를 쓴 한 사람이 방으로 들어와서 북이에게 말했습니다. “이 나 라는 사회주의 나라야. 대통령께 실례되는 말을 쓰면 안 된다는 말이야!” 북이가 그 사람에게 말했습 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 권리가 있어요! 저는 기자로써 할 일을 한 것뿐이에요!” 북이의 말을 듣고 는 그 군인는 화난 얼굴로 북이에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싫으면 이 나라를 나가란 말이야!! 너같은 반 동분자는 이 나라에 필요 없어!!” 그렇게 말하고는 북이를 어두컴컴한 방속에 버려두고 가버렸습니다. 날이 어두워 졌을 때, 남이는 하염없이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터벅터벅……. 그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매마른 소리만이 들려왔습니다. 후드득……. 잔뜩 먹구름 낀 하늘이 비를 내릴 것 같더니 결국 굵은 빗방울을 떨어뜨렸습니다. 북이도 그 어두운 방안에 난 조그마한 철창으로 추적추적 내리는 밤비만을 보고 있었습니다. 남이가 비를 맞으며 걷고 있을 때 남이의 눈앞에 버려진 어린이 자동차 놀이기구가 보였습니다. “저 버려진 놀이기구처럼 나도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망가져 버린 것은 아닐 까……?” 남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북이가 철창으로 밤비를 보며 중얼거렸습니다. “남이와 함 께 하던 때가 그립다…….” 남이도 중얼거렸습니다. “북이와 함께 있던 그때가 그리워…….” 남이와 북이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 북이를 만나야해!” “여기서 죽을 수는 없어! 남이를 만나야겠어!” 남이와 북이는 서로 외쳤습니다. 떨어져 있지만 서로를 위하는 마음 은 통하고 있었습니다. 비가 더욱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남이는 북이와 헤어졌던 갈림길로 달려갔습니다. 거센 빗 방울이 남이의 얼굴을 때리고, 한치 앞도 안보이게 했지만 북이를 만나야만 한다는 생각이 그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북이는 자신이 가진 모든 돈을 내고 간신이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벌은 돈을 다 써버린 것쯤은 북이에게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북이는 남이와 헤어졌던 갈림 길로 달려갔습니다. “분명 남이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확신에 찬 목소리로 북이가 외쳤습니다. 비가 점점 잦아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이 개고 하늘에 무지개가 떴을 때, 남이와 북이는 서 로 헤어졌던 그 갈림길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남이와 북이는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격하게 끌어안 았습니다. 그리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어깨동무를 하고 다시 둘은 행복하게 살았던 그 마을 로 되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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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곡

<우수상> 이찬열 국회의원상 선양 한국국제학교 고등 2학년 정 상 윤

항상 세상의 관심을 받는 나라가 있다. 우리와 너무나도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 바로 북한이다. 오늘도 텔레비전에 북한의 미사일에 대한 뉴스 속보가 떴다. 이미 우리에게는 익숙한 장면이다. 게다가 최근에 “신이 보낸 사람”이라는 북한 지하교회들의 고통에 대한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서 ‘북한’이라는 존재는 잊혀질 수 없다. 이산가족, 탈북자, 공개처형 등등, 북한과 대한민국 사 이의 여러 관련된 주제들 중 제일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통일이다. 한국전쟁 이후 분단국 가라는 타이틀이 붙여진 너무나도 아픈 역사다.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우리는 통일 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했다. 나 또한 어려서부터 통일이라는 단어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 초등학교 시절 때 통일말하기 대회에 자주 나가기도 했고, 상도 받았었다. 이렇게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켜본 북한, 그리고 통일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긍정적이지 못했다. 어렸을 때의 기억으로는 난 항상 북한을 싫어 했다. 왜 그들은 그토록 고집을 부릴까? 이미 그들은 우리는 한때, 아니, 영원한 형제인데, 왜 그렇게 우리를 싫어할까? 그런 생각들을 하던 와중 설상가상으로 연평도 사건이 일어났다. 형제끼리 서로 공 격하는 우리 한반도의 모습이 너무나도 싫었다. 연평도 주민들의 모습을 보니 북한이 너무 원망스러 웠다. 김정일의 손에 놀아나는 북한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바보 같았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북한과 통 일은 점점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러다가 다시 한번 북한을 기억하게 되었다. 바로 2013년 12월에 장성택이 공개처형을 당했다. 또 다른 한 사람이 죽었다. 이것을 계기로 나는 북한에 대해 많은 조사를 해보았다. 북한의 현실을 실로 어마어마했다. 김정은이라는 새로운 지도자 역시 아버지를 이어 멍청한 정치를 하고 있었다. 내가 제일 관심을 가졌던 것은 북한의 잔인함이었다. 장성택 사형집행에도 북한의 잔인함이 그대로 보였다. 장성택 처형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장성택 사형은 총탄 90여발을 쏘는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시신은 형 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일부 참가자 중에는 졸도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참혹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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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북한의 사형 집행 방식은 상상을 초월한다. 인민무력부 김철 부부장은 김정일 사망 추모 행사 가 끝난 2012년 3월 애도 기간에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박격포로 처형당하기도 했다.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마치 공개적으로 살인마가 살인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의 고통은 훨씬 많다. 그 예로 탈북자를 들 수 있다. 얼마나 힘들었으 면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도망가려 했을까…… 나는 이런 북한사람들을 볼 때 마다 “질곡”이라는 단 어가 떠오른다. 질곡의 뜻이 무엇인가. 몹시 속박하여 자유를 가질 수 없는 고통의 상태를 비유적으 로 이르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북한사람들을 묘사하기에는 딱 적합한 단어다. 북한사람들이 바라는 것? 별거 없다. 그들은 단지 자유를 원한다. 우리가 욕심에 찌들어 끊임없이 뭔가를 구하고 또 구할 때, 저들은 그저 소박한 소원조차 못 이뤄서 죽음에 맞서 도망가려고 한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난 그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해진다. 그런데 이것뿐만이 아니다. 탈북자들이 남한에 와서 행복하다고 말 하는 사람들은 예상 외로 적을 것이다. 그것도 훨씬. 왜냐? 그 놈의 선입견 때문이다…… 인터넷에 이 런 고민들로 글을 올리는 탈북자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다. “북한에서 왔다고 너무 뭐라고 합니다. 그리 고 저 용기내서 말하려고 하지만 더욱 더 욕을 먹을거 같더라고요.. 남한사람들은 다 이러나요?” 인터 넷의 한 글에서 일부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이것이 탈북자의 입에서 나와야 할 말이란 말인가? 정말, 우리는 그들의 고뇌를 덜어주지는 못할 망정 또 다른 고통을 주고 있다. 그들의 입장을 잘 생각 해봐야 될 것이다. 끊임 없는 고통들……. 심지어 아픔들을 피해 최후의 수단을 써서 이곳으로 피해 왔는데, 이곳에서는 차별 받는 슬픔들을 겪어야 했던 그 사람들의 입장을.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 이 제 우리가 마지막으로 주목해 봐야 할 곳이 한군데 남아있다. 바로 북한 탈북자 수용소다. 이곳은 사 람이 짐승의 똥만도 못한 곳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온갖 고문이란 고문은 다 받고, 생선저장탱크를 청소한 물에 밥을 말아 먹는 곳이며 임산부를 강제유산 시키고, 또 낙태된 영아를 가축들에게 먹이로 주거나 또는 짓밟아 죽이는 잔인한 곳이다. 소똥에 소화되지 않고 나온 옥수수를, 그것도 몰래 먹다가 걸리면 구타 당할 정도이다. 이곳을 표현하자면 “차라리 나치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10배 낫고, 소련 굴라그가 100배 낫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나치와 소련의 잔혹함은 이미 세상에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들보다 더 잔인한 사람이 바로 북한 사람이다, 이 말이다. 이미 이걸로 다 설명 된다. 자세히 설명하기 거북할 정도로 그곳은 지상의 지옥이다. 이런 곳에서 살고 있다면 체념하더라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더 알고 싶다면 인터넷에 쳐보시길 바란다. 그렇다면 북한사람들의 질곡을 막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바로 ‘통일’이 유일한 답이다. 이것밖에 그 들의 고통, 그리고 우리 한반도의 영원한 숙제를 해결해줄 유일한 열쇠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영원히 제일 어려운 숙제로 남아있을 수도 있다. 김정은의 고집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 무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인터넷에 조사해보았다. 통일의 가능성에 대해서. 벌써부터 가능성을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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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은 무리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미 우리는 분단국가가 된지 60년이 넘었다. 지금부터라도 서 둘러야 할 것이다. 지금 북한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나중에 통일이 된 후의 상황들을 고려해봤을 때 북한의 하락세는 우리에게 희소식이 아니다. 그것들을 나중에 다 수습하려면 어쩌면 제2의 IMF 가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통일을 빨리 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요즘 남북 관계가 조금 개선되어가는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이산가족들은 다시 한번 그리운 가족들의 얼굴 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통일은 우리가 스스로 이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정도쯤은 모두가 알아야 할 사실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너무나도 국력이 약했다. 결국 다른 나라에 의지하 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로 이런 상태까지 오게 되었다. 애초에 나라가 분리된 것도, 한국전쟁이 일어 난 것도, 우리가 지금까지 통일이 되지 못했던 것도 다 우리가 자초한 일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 시 수습해야 한다. 몰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통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통일 이후의 모습을 상상해봐라. 알려진 바로는 북한의 현재 석유 매장량은 세계 3위이다. 엄청난 자원인 만큼 중국과 미국이 탐낼 만도 하다. 한국은? 그 작은 영토와 인구에도 불구하고 단기 간에 세계 경제 강국이 되었고, 여러 방면으로도 뛰어난 실력을 인정 받고 있다. 만약 북한과 남한이 합쳐진다면? 상상은 여러분에게 맡기겠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힘들 수도 있겠지만, 행복할 것이다. 북한사람들의 고통도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북한 사람들을 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들의 질곡이 어떻게 없어질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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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긍지

<우수상> 수원시장상 방콕 한국국제학교 (KISB) 고등 1학년 박 도 윤

낯설기만 했던 태국 땅에 발을 디딘지도 어언 3년째이다. 지난 3년 동안 태국 방방곡곡을 돌아다 니며 많은 경험들을 쌓지는 못했지만, 사소한 것들에 많은 것들을 느꼈었다. 그 사소한 것들이 쌓이 고 쌓여서 나의 성장에 큰 밑거름이 되었고, 또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지금 부터 역사책에 나오는 위인들처럼 거창한 긍지는 아니지만 열일곱 살 다운 나만의 긍지를 소개해보 도록 하겠다. 갓 초등학교를 졸업해 친구들, 친척들과 아쉬운 헤어짐을 하고 태국에 첫 발을 디딘 열네 살의 나는 새로운 것들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 설렘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져버렸다. 그런 나를 달래주기위해 우리 가족들은 장으로 보러가자고 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태국의 대형 마트에 갔다. 원체 물건들에 관심이 많고,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겉으로는 토라진 척을 하면서 꼼꼼히 대형 마트의 물건들을 관찰했다. 코를 찌르는 두리안 냄새에 탄식하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열대 과일들을 구경하며 꽤나 재밌게 구경하던 와중에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슈퍼주니어 향수였다. K-POP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었다. 과자 코너 쪽으로 가니 2PM이 광고하는 과자가 빽빽이 진열되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연 예인은 아니었지만 굉장히 반가웠고, 자랑스러웠다. 이 일을 계기로 태국에 대한 반감이 많이 줄었다. 또 최근에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다. 친구와의 약속 때문에 시내 한복판에 나와 있었는데 친구가 도착하지 않은 상황에서 핸드폰 요금이 다 달아버리는 사고가 생겼었다. 그래서 지나가던 태국인에게 핸드폰을 빌렸다. 무사히 친구와 통화를 마치고 핸드폰을 다시 건네주려고 하는데 그 태국인의 핸드폰 배경화면을 보게 되었다. 그 배경화면은 한국의 한 아이돌 사진이었다. 지금까지 여기가 태국인지 한국인지 헷갈릴 정도의 K-POP 열풍을 봐왔기에 그다지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배경화면에 있던 그 아이돌은 한국 학생들도 잘 모르는 무명이었다. 낯선 말로 노래를 하고 말을 하는 연예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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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까지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준다니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고 고마웠다. 속으로 작은 충격을 먹고 어안이 벙벙해있을 때 그 태국인도 내가 통화를 하면서 한국어를 한 것을 듣고 놀란 눈치였다. 고맙고 뿌듯한 마음에 뭐 줄 수 있는 게 없나 찾다가 손에 들고 있던 미개봉 버블티를 손에 쥐어주고 냅다 뛰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랬지 싶지만 그때의 심정을 생각하면 괜스레 뿌듯해진다. 어릴 때부터 피부가 안 좋았던 나는 최근에야 피부과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곳에서도 한국인으 로서의 긍지를 일깨워준 사건이 있었다. 내가 다니는 병원의 피부 관리사와 카운터들은 영어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의사소통에 있어서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던 중 피부과를 가는 날이 찾아와서 피부과에 갔다. 접수를 한 후에 진찰을 받고 평소와 같이 피부 관리를 받기위해 침대에 누웠는데 내 담당 피부 관리사가 나에게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줬다. 나도 인사를 한 후 피부 관리를 받았다. 피부 관리가 끝나고 짐을 챙겨서 집에 가려고 하는데 그 관리사 분께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 내시더니 나에게 건네셨다. 피부 관리 안내 책자 인가 싶어서 받았는데 한글 교재였다. 그 교재 중 한 페이지를 피시더니 나에게 보여주시며 이 글은 어떻게 읽는지 물어보셨다. 설명해드리고 난 후 왜 한 글을 배우려고 하시는 건지 짧은 영어로 여쭈어보았다. 그랬더니 “Korea is great and I like korean" 라고 답하셨다. 그 순간 또 나의 애국심이 하늘로 치솟아 그 날 이후 항상 피부 관리가 끝나면 한국어 과외를 해드린다. 열일곱 살 나이가 나이인지라 쇼핑을 하러 가면 제일 먼저 찾는 곳이 문구점이다. 사지는 않더라도 이것저것 구경하는 것을 좋아해서 자주 구경하곤 한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필요한 학용품을 사러 태 국의 대표적인 문구점에 들렀다. 기본적으로 필요한 노트, 펜, 샤프 등을 고르고 계산하고 집에 가서 영수증을 확인해 보았다. 영수증을 확인해 보니 심각하게 비싼 가격은 아니었지만 예상보다 비쌌다. 태국 물가가 만만치 않구나 생각하던 찰나 노트에 써진 ‘모닝 글로리’라는 로고를 발견했다. 모닝 글로 리는 내가 한국에 살 때 애용하던 한국의 학용품 브랜드 이름이다. 놀란 나는 노트 외에 내가 구매한 다른 것들도 확인해보았다. 다 한국 제품 이었다. 세심하게 고른 것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대로 집었 는데 한 제품도 빠지지 않고 전부 한국 제품이라니 놀라웠다. 그 후에 여러 문구점을 다녔는데 그 곳 말고 다른 문구점들에도 한국 제품이 많이 구비되어 있었다. 태국에서의 한국 제품은 수입 제품이라 서 꽤 비싸다. 그래서 다른 제품을 이용해봤지만 한국 제품의 질이 확연하게 좋았다. 우리나라의 학용 품이 다른 나라에서 인정받고 많이 쓰이는 것을 직접 보니 기분이 좋았다. 이와 유사한 경험이 한 가 지 더 있었다. 친구들과 놀러갈 때 자주 가는 곳은 쇼핑몰이다. 시원하고 여러 가지 가게들이 밀집해 있기 때문에 놀기에 아주 적합하다. 특히 태국은 쇼핑몰이 발달하여 수도 많은 편이다. 그 많은 쇼핑 몰 중 프롬퐁에 위치해있는 엠포리엄이라는 백화점이 있다. 엠포리엄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세계 각 국의 명품 브랜드관이 바로 시야에 잡히는 고급스러운 백화점이다. 그런 백화점에 달려있는 가장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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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는 자랑스럽게도 한국의 ‘삼성전자’ 제품이었다. 한국의 ‘삼성’, ‘LG’ 같은 브랜드의 제품은 타 지인 태국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엠포리엄처럼 곳곳에 걸려있는 경우도 많고, 전자제품 매장에 서도 많이 판매된다. 다른 외국 유명 브랜드의 모니터와 견주어 보아도 절대 뒤지지 않는 디스플레이 성능을 자랑한다. 어렸을 때 ‘금성 티비’를 보며 자라온지라 이러한 성장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금 성 티비’를 보던 시대가 그리 옛날도 아닌데 현재는 세계의 정상에 당당히 서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자랑스러울 따름이다. 앞으로 내가 전자기기 쪽 일에 종사할 것은 아니지만 ‘삼 성’처럼 나의 분야에서만큼은 당당히 1등을 거머쥐고, ‘금성-LG’처럼 끊임없는 발전을 이룩해낼 사람 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긍지는 절대 거창하지도, 그리 대단하지도 않다. 하지만 내가 직접 보고 스스로 느낀 것이라 는 것에 의의를 두어 굉장히 의미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자랑스럽고 기뻐하는 마음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서 나 또한 누군가에게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심어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 이 들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 모르겠지만 외국 생활을 하며 몸소 배운 이것들을 절대 잊지 않고 앞을 향해 나아간다면 역사책의 위인들을 넘어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열 일곱의 긍지, 열일곱의 꿈을 위해 오늘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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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와 K-POP, 그리고 나의 꿈

<우수상> 연세대 자원봉사센터장상 북경 한국국제학교 고등 3학년 조 예 경

며칠 전 우리 학교에 큰 사건이 일어났었다. 탤런트 송중기가 우리 학교에 왔기 때문이다. 육군교 향악단이 중국에서 연주회를 했는데 군복무 중인 송중기 일병이 사회를 맡았다. 그리고 우리 학교를 방문하여 ‘찾아가는 음악회’를 열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유명 연예인을 직접 눈으로 본다는 생각에 모두 흥분하였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아침에 등교할 때 보니 수십 명이나 되는 중국 팬들이 새벽 4시 반부터 학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들이 영화에서 봤던 ‘늑대소년’을 실제로 가까이서 한번 보기 위해서였다. 교장선생님께서는 중국사람들이 한국 연예인을 보겠다고 몇 시간을 서서 기다 리는 것이 안타까우셨는지 특별히 학교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관람하도록 허용하셨다. 중국 팬들은 미리 준비해 온 플랫카드를 들고 송중기가 나올 때마다 흔들어댔다. 나는 괜히 마음 속으로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사실 이런 한류의 인기를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자주 보아왔다. 어릴 때 중국 계림에서 살았는데 그때 아빠가 일하시는 호텔에 유명 연예인들이 자주 왔었다. 그때마다 호텔 바깥에는 팬들이 모여들고 중 국경찰은 질서를 유지시키기 위해 애를 썼다. 공연장에서도 늘 사람이 구름 떼처럼 모이고 엄청난 함 성을 질렀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그때가 중국에 막 한류 열풍이 불기 시작했던 때인 것 같다. 나 중에 북경으로 이사 온 뒤에도 한류에 대한 인기를 더 실감할 수 있었다. 한번은 천안문광장 옆에 있 는 인민대회당에서 ‘한중 우호의 밤’행사가 열렸는데, 그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열광했었는지 모른다. 아마도 강타, 동방신기 등이 출연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이런 한류 현상은 내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세계 여러 나라 에서 온 학생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내가 한국사람인 걸 알고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한국 드라마나 가 수 이야기를 꺼내면서 아는 체를 했다. 특히 멕시코 친구 Anna는 지드래곤의 노래를 정말 똑같이 잘 불렀다. 한글을 전혀 모르는데 어쩜 그렇게 발음이 정확한지 신기할 정도였다. 그리고 나만 보면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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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를 배우고 싶어해서 ‘이런 건 한국어로 어떻게 말하니?’하면서 자꾸 물어봤다. 물론 나는 그 때마다 잘 알려주었다. 또 홍콩 친구 Yumi는 한국 TV 프로그램‘우리 결혼했어요’와 ‘런닝맨’을 즐겨 보았다. 한국말을 몰라도 시청이 가능한 이유는 중국에는 무료로 한국의 모든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가 많기 때문이다. Yumi는 한국 TV는 너무 재미있다고 말하면서 매번 한두 마디씩 새로운 한 국 말을 배워서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또 그 때 한참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행할 때여서 공부하다 가도 지칠 때면 친구들끼리 모여 말춤을 추면서 즐거워했다. Anna나 Yumi 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과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해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한국어 선생님이 되었다. 그들은 나를 보면“Hi~”라는 인사 대신에 “안 녕~”이라 말했고, “고마워~”, “사랑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처음에 미국에 갈 때는 내가 동양인 이고 상대적으로 왜소해서 무시당하면 어떡하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건 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중국에서 내가 느꼈던 ‘한류’도 대단했지만, 미국에 오니‘K-POP’이 정말 예상 외로 인기가 많았다. 이러한 K-POP 인기는 나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세워 주었을 뿐 아니라 내가 힘들 때 크게 도 움을 주기도 했다. 미국 유학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2012년에 뉴욕에서 있었던‘K-POP 페스티 벌’이다. 그 때 나는 공부 스트레스 때문에 매우 답답하고 자신감이 떨어져 있었는데 그 콘서트를 보 면서 마음껏 소리 지르고 함께 즐기니 우울한 기분이 다 풀렸다. 마치 매일 치즈만 먹다가 신선한 김 치를 먹은 것처럼 그 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전에는 우리나라가 강대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중국에 살면 서 늘 중국의 큰 땅덩어리와 엄청난 인구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라를 강하게 만드는 것은 국토나 지하자원이 아니라 그 나라의 국민들이라고 생 각한다. 컴퓨터가 크다고 해서 반드시 실용성이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볍고 스마트해야 사용하 기에 더 좋다. 우리 나라의 국토나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재 강국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우리 각자의 우수성을 드러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 는 문화 강국, 스포츠 강국, 인터넷 강국이라고 불린다. 세계 곳곳에 한류와 K-Pop의 인기가 여전하 고, 김연아 선수가 피겨 여왕으로 군림하며, 양학선의 체조 기술이 신화를 낳고 있다. 인터넷 속도가 세계에서 제일 빠르고 삼성 스마트폰이 세계에서 제일 잘 팔리고 있으니 우리나라야 말로 진짜 강국 이 아니겠는가. 사실 우리나라가 강국이 되는 데는 한류가 크게 한 몫을 했다. 한류는 우리에게 많은 효과를 가져 다 주었다. 대장금이 유행했을 때 중국에서는 한국음식점들이 굉장히 장사가 잘 되었다. 우리 동네에 는 아예 ‘대장금’이라는 음식점도 생겼는데, 그 앞에는 대장금 분장을 한 이영애 사진이 크게 걸려 있 었다. 대장금 드라마는 한국 음식이 건강한 식단이라는 것을 세계 사람들에게 인식시켜 주는 좋은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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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되었다. 그래서 비빔밥, 김치 등이 세계적인 웰빙 푸드가 되었다. 또 최근에는 ‘별에서 온 그대’가 인기를 끌어서 주인공 천송이가 입었던 코트가 유행하고, 치맥(치킨과 맥주) 코너에 중국사람들이 엄 청 몰려든다고 한다. 이렇게 한류는 우리나라의 위상을 드높이고 톡톡한 경제효과를 가져다 준다. 그 러므로 앞으로도 우리는 이 한류를 이용해서 더 많은 것을 이루었으면 좋겠다. 한류는 어쩌면 지금 시 작 단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우리가 개척해야 할 것들이 많다. 이 일을 우리 지구촌 각 지역에서 자라고 있는 한인 청소년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한 국인의 정신과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의 문화 등을 제일 잘 알고 있으므로 누구보다도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 해외에 살고 있는 한인 청소년들이 자신의 이러한 유리한 점을 알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정체성을 잃고 한국인도 아니고 그 나라 사람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으로 사는 것 같다. 사실 나도 그랬었다. 한국인이지만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소외감 같은 것도 많이 느꼈다. 어렸을 때는 내가 한국사람인데 왜 이렇게 다른 나라에서 살아야 하나라고 생각하며 싫어했다. 그러 나 지금은 한국사람이면서 중국에 대해서도 잘 알고, 미국에서도 여러 나라 친구들과도 사귀면서 세 계화가 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나의 꿈은 세계적인 ‘주얼리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다.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반지, 목걸이 등을 만 들어서 세계에서 으뜸가는 패션 액세서리를 만들고 싶다. 사실 우리나라에 가면 액세서리들이 너무나 예뻐서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미국에 있었을 때 방학 때 한국에 다녀갔는데 그때 외국친구들이 한국에서 유행하는 귀걸이를 사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아직 이렇다 할 명품 브랜드를 갖고 있지 못하다. 해외에 나갔다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면세점에서 스와로브스키 같은 외 국 제품들을 사가지고 온다. 나는 내가 만든 패션 소품들이 세계의 명품으로 인정받고 싶다. 생일이나 기념일에 제일 받고 싶은 선물로 만들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한국의 미대에 들어가서 금속공예 를 전공하려고 한다.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밤 늦게까지 화실에 남아있다. 그리고 반 짝반짝 빛나는 나의 꿈을 디자인한다. 미래의 나를 위하여, 미래의 우리나라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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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글 사랑

<우수상> 연세대 자원봉사센터장상 선양 한국국제학교 고등 3학년 김 승 환

나는 평일에는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지만 토요일이 되면 선생님이 된다. 작년 부터 한글학교 도우미 선생님으로 초등학교 저학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한글학교에서 논술을 공부하고 있지만 봉사 활동으로 한 시간씩 틈을 내어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 치고 있다. 대부분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 한글을 쉽게 생각하는데 나의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진도를 나가기가 조금 어렵다. 내가 현재 생활하고 있는 곳은 중국 동북부의 중심 도시 심양 이다. 여기에는 부모님을 따라 어린 나이에 와서 중국 학교나 미국 국제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도 있고 중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여기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도 있다. 이런 여러 상황의 학생들이 모여 있고 전혀 다른 교육 제도 안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함께 있으니 한글 배 우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나의 학생들이 한글에 익숙한 아이들의 진도를 따라잡는 것을 힘들어할 지라도 나는 그 아이 들이 똑같이 노력하고 배우려고 하는 반짝이는 눈을 보고 놀랐다. 학생이 한 명일 때도 있고 두 명일 때도 있고 수업이 없는 날도 있는 도우미이지만 이 학생들 덕분에 나는 한글을 더 사랑하게 되었고 한 글을 보며 괜히 뿌듯해지는 즐거움을 맛보았다. 처음에는 가르치는 것이 그저 내가 알고 있는 한글에 대한 기초 지식을 전달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끝이 나는 줄 알았는데 막상 가르쳐 보니 그렇지 않았다. 가르친다고 생각하니 내가 아는 것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생각하고 내가 아는 것이 맞는 지 확인 하기 위해 더 깊게 공부해야 하는데 이 순간이 내가 놀라는 순간들이다. 마치 다이버가 깊고 넓은 바 다 한가운데로 들어가 해저 세계의 아름다움에 눈 뜨는 것처럼 한글을 들여다 볼 때 우연찮게 한글의 아름다움을 종종 발견하곤 한다. 한글의 모음은 기본적으로 세로줄과 가로줄을 긋고 점을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발음이 만들어지는 데 이것을 게임처럼 진행하면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면서 쉽게 익힌다. 자음이 좀 복잡하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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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음보다는 발음의 차이가 커서 헷갈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참 빨리 배운다. 자음과 모음이 확실해지 면 읽고 쓸 수 있어서 자신감이 금방 붙는다. 이래서 한글이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라고 하나보다. 그래 서 아이들이 기본 음을 배우면 아주 자신 있어 하지만 그 기쁨이 오래 가지는 않는다. 가장 큰 걸림돌 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정말 깨우치기 힘들어 하는 부분이다. 신나서 책을 읽다가 발음을 고쳐 주면 그대로 따라 읽는다. 그러다가 받아쓰기를 하면 그 때부터 괴롭다. 왜냐하면 받침 글자가 있는 단어들은 소리와 쓰는 글자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음운변동이 일어나는 발음규칙을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늘 한글을 보고 한국어를 말하 는 상황이 아닌 외국에서 그것도 학교에서는 전혀 다른 말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말이다. 발음이 달라 지는 것 때문에 이쯤에서 아이들이 한글을 어려워하기는 하지만, 이것은 사실 발음을 편하게 하기 위 해서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글자 그대로 읽으면 입을 많이 움직여야 해서 소리 내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게 해 주면 된다. 비슷하게 변하는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축구, 밥상, 책가방, 발가락 같은 단어를 읽 어보게 하고 어떻게 발음하는 것이 편한지 물어 보았다. 그렇게 자꾸 읽어 보게 하니까 재미있어 했다. 우리말이 한글이라서 정말 좋다. 배우기 쉽고 가르치기에 재미있는 글이다. 나의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도 쉽게 문자 생활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세종대왕의 깊 은 뜻을 알겠다. 내가 중국에 처음 왔을 때 중국 한자로 쓰인 영어 단어를 이해하지 못 해서 힘들었다. 그 중국어를 보면서 도저히 영어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巧克力(치아오커리)는 chocolate을 말하는 것인데 그 달콤한 초콜릿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싶었다. 그런데 한글로 쓴 글자는 발음이 영어와 비슷하니 고민스럽지 않다. 한글은 어느 음이든지 비슷하게 찾아 발음대로 쓸 수 있으 니 참 쉽다. 참 국제적인 글이다. 또 요즘 같은 스마트 시대에는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많이 보내게 되는데 한글은 타자를 치기가 쉽다. 중국에서는 웨이신을 사용하는데 중국어는 발음을 치고 그 발음에 해당하는 글자를 찾아서 넣어야 하 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고 귀찮다. 그래서 음성녹음을 많이 사용한다. 한글은 단지 몇 개의 키보드로 다 타자를 칠 수 있으니 정말 쉽고 빠르다. 또한, 한글 단어는 줄여 쓰고도 그 뜻을 알아보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아서 매우 경제적인 글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글이 오랜 세월 전해져 오는 한 글의 아름다운 전통을 헤쳐서는 안되겠지만 말이다. 그 옛날에 이렇게 모든 것이 빨라지는 세상이 되어 사용하기 간편한 언어가 필요하리라는 것을 생 각했다기보다는, 백성들을 사랑해서 조금이라도 더 쉽고 간편하게 글자를 배우게 하려는 세종대왕의 아름다운 마음이 역사를 통했다고 생각한다. 한글은 쉽게 배우는 용이함, 빨리 쓰는 편리함과 헷갈림 이 없는 체계성이 합쳐진 삼위일체다. 이런 훌륭한 글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중국에 서 살고 공부하고 있지만 한글이 있고 또 한글을 배울 수 있는 한글학교가 있어서 내가 한국 사람이라 는 것에 더욱 자신감을 느끼고 우리나라를 더욱 사랑하는 국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께 고개를 숙이며 우리의 글을 아껴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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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에서 듣는 강남스타일

<우수상> 연세대 자원봉사센터장상 Auckland International College 고등 3학년 오 현 경

제작년 뉴질랜드의 겨울, 강남스타일의 흥겨운 노래는 오클랜드 시내에 울려펴졌다. 나름 뉴질랜 드의 사회적 요충지라 할 수 있는 아오테로아 광장에서 한국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연주되고 있 었던 그 날은, 나에게 잊지못한 감동과 충격을 남겨주었다. 간간히 한국 포털사이트에 “해외 강남스 타일 대히트”와 같은 제목의 뉴스와 이 노래의 유튜브 조회수가 끊임없이 올라가는 건 봐왔어도, 내가 사는 이 곳에서, 이 나라사람들이 강남스타일을 부르고 춤추는건 나에게 꾀나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그것도 한두명이 아닌 몇십명, 거히 백명가까이 되는 인원이 뉴질랜드 밴드가 연주하는 강남스타일을 듣고 따라 부르면서, 싸이 특유의 말춤을 추고 있었다. 뉴질랜드에 이제 10년 가까히 살아왔던 나지 만, 이 나라에서 이렇게 크고 대중적이게 한국음악을 듣는 적은 처음이였다. 그 후로도 강남스타일의 인기는 더해갔고, 미국 대통령 후보였던 ‘밋 롬니’까지 강남스타일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미국 빌보드 2위까지 올라간 싸이의 엘범을 볼 수 있었다. 벌써 일년이 넘게 지나간 지금도 그때의 낯설음과 놀라움, 그리고 기차와 학교에서 듣을 수 있었던 강남스타일의 생생 함을 잊지 못한다. 그때까진 아무리 기사들이 해외에서 K-POP이 불었다고 했어도, 사실 뉴질랜드에 서 그 “열풍”은 잘 느낄 수 없었다. 길을 걷다가 한국노래를 들을 수 있는 경우는 내 기억엔 없었으며, 한국 친구들이 아니고선 외국 친구들과 K-POP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강남스타일은 백인얘들뿐 아닌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얘들과 같이 재미있게 K-POP 얘기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후에 강남스타일의 뮤직비디오와 춤은 하나의 대중 문화가 되어있었으며, 나이며 성별할것 없이 다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문화로 자리잡았다. 아직까지도 지나가는 뉴질랜드 시민 한명을 붙잡고 강남스타일을 아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안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런 사실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날 괜히 뿌듯하게 만든다. 내가 느끼는 자부 심과 자랑스러움은 나뿐 아니라, 해외에 사는 교민들이라면 다 느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 모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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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노래, 내 모국의 언어, 내 모국의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어 주는것은 참 행복한 일이지 않나 싶다. 특히나, 외국에 나와 사는 나에게는 같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과 공통적인 관심사에 대해 얘기하는 행 복을 많이 느껴보지 못했다. 인터넷과 교육의 발전으로 인해 다른 나라들끼과의 소통이 더욱 더 쉬워 졌다고는 하나 문화의 장벽은 아직도 굳게 서있었으며, 외국인들이 한국문화에 대해 거부감없이 다가 가기는 힘들어 했었다. 공통적인 관심사와 같이 얘기할 수 있는 주제는 한정되어 있었으며, 아무리 어 릴때 부터 같이 자라왔다 하더라도, 서로의 문화를 거리낌없이 받아드리기는 힘들어 했었다. 하지만 강남스타일과 같은 K-POP의 잇따른 히트와 한국드라마와 연예인의 외국 열풍은 외국인들이 한국 패션과 화장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줄 수 있는 계기가 돼어주었을 뿐 아니라 한국의 음식과, 역사, 그리고 언어과 같은 분야에도 관심을 돋구었다. 이는 내가 점심 도시락으로 싸오는 밥과 김치에 대한 경각심과 한국어에 대한 거부감을 오히려 색색의 음식에 대한 흥미로움과 매일 듣는 노래에 나오는 언어에 대한 친숙감으로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런 반응은 다른나라 아이들과도 더욱 친해질 수 있 는 계기를 만들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궁금해 하고, 더욱 잘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에서는 문화를 “생각과 행동 방식 중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배우고 전달받은 모든 것들. 의식주, 언어, 풍습, 종교, 학문, 예술, 제도 등을 모두 포함”하는 것들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나는 문화가 그저 각 나라의 생활양식이라기 보단, 한 사람의 믿음, 가치,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정체정을 만들 수 있는, 사람에게 없어서는 않 될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문 화정체감이 있고, 이 정체성에서 나오는 자신만의 생각과 행동이 있다. 태어나서 부터 무의식적으로 키워온 자신의 문화정체성이기 때문에, 다른 배경에서 자라온 사람들은 쉽게 이 문화의 장벽을 넘지 못 하는 것이고,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어 하는 것이다. 뉴질랜드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초등학교때 부터 자신의 문화정체성에 대해서 교육을 시키고, 다른 문화배경에서 자라온 아이들에 대 한 이해심을 기르도록 유도한다. 이런 교육을 정확히 9살때부터 가지각색들의 나라에서 온 아이들과 같이 받아온 나는 이 교육의 유익함을 알지만, 이런 교육의 한계성또한 알고 있다. 아무리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이해심과 배려심을 갖도록 유도를 하더라도, 문화는 쉽게 받아드리기 어려운 개념이다. 내 인생의 반 이상을 뉴질랜드에서 살았다지만, 아직도 뉴질랜드의 럭비나 파발로 바(계란 흰자로 만든 단 케이크)는 알긴해도 태권도나 된장찌게같에게 더 친근감을 느낀다. 아무리 내 친구가 맛잇게 양고기를 먹고 있어도, 내가 아직도 그 음식에 거부감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다. 내 친 구의 입장에서도, 내가 먹는 모든 한국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없을 순 없다. 하지만 이렇게 외국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선을 긋기 시작할 무렵 ‘강남스타일’은 나에게 새로운 시 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자연스럽게 강남스타일은 한국 문화로써가 아닌 대중 문화 로써 나와 내 친구들에게 다가왔고, 외국 친구들과 있을땐 은연중에 느낄 수 있었던 괴리감에서 벗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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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수 있었다. 하나의 나라가 갖고 있는 문화의 장벽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 나에게, 강남스타 일은 지구촌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설명해주었다. 한국의 pop은 더 이상 한국 문 화의 경계선 안에만 있는 노래가 아니라, 지구촌의 문화에 속해있는, 대중문화의 일부가 된 것이다. 한 인종의 사람들만이 즐길 수 밖에 없는 그런 문화가 아니라, 지구촌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 라도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된 것이다. 나에게 한국 문화의 발전은 한국의 경제적 도약보다 더 큰 것을 의미한다. 세계인이 즐겼던 ‘강남스 타일’,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기록된 ‘한국어’, 이제 어느 도시에 가도 찾을 수 있는 ‘불고기’는 한국문 화의 세계화뿐 아니라,나에게 한국인으로써의 문화적 정체성과 자랑스러움을 안겨준 너무 뜻깊은 것 들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싸이의 신곡과 전지현의 새로운 드라마에 충분히 많은 관심을 갖고 있지 만, 난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문화에 많은 관심을 갖길 소원한다. 분명 가까운 장래에는 세계인의 이목의 중심에 있는 자랑스러운 한국 문화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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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우수상> 연세대 자원봉사센터장상 방콕 한국국제학교 (KISB) 고등 2학년 이소희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과반수의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모국어를 배우고 사용하며 살아간다. 우리 역시 모국어인 한글을 배우며. 한글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살아간다. 한글은 조선시대 세종 28년에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반포되었다. 훈민정음이 반포되기 전, 조선은 한자의 음과 훈을 빌린 한문을 사용했다. 한문은 매우 복잡했기 때문에, 먹고 살기 바쁜 백성들 에게는 배우기 어려웠던 글자였다. 그렇다 보니 양반들만이 글자를 사용하게 되었다. 백성들은 글을 모르다 보니 억울한 일을 당해도 관청에 호소할 수도 없었고, 농사일에 관한 기록을 하지 못함을 물론 흔한 편지조차도 쓰지 못했다고 한다. 세종대왕은 이 사실을 알고 매우 안타깝게 여기셨다고 한다. 이때부터,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글자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세종대왕은 다 른 나라들의 글자들은 배우기 어렵다고 여기어 스스로 쉬운 글자를 만들기로 하셨다. 하지만 많은 양 반들과 학자들은 중국과 다른 문자를 만들어 사용 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오랑캐가 되는 것이라며 격 렬히 반대하였다. 학자들과 세종대왕의 의견 분쟁 속에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1446 년에 반포하였다. 훈민정음은 반포 후에도 양반들에게 지지를 얻지 못하였다. 양반들은 훈민정음을 언문 또는 반절 등의 이름으로 불렀는데, 이는 양반들이 쓰는 한문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낮추어 부른 이름이다. 그 렇기에 훈민정음은 조선시대 당시 여자들과 백성들만이 사용하는 글자였다. 시간이 흐른 후, 훈민정 음 사용이 금지되었던 역사적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연산군 때였다. 연산군 통치 시절, 연산군의 잘 못이 적힌 훈민정음으로 된 글이 발견되는 사건이 있었다. 연산군은 이에 분노해 글을 쓴 사람을 고발 하면 상금과 벼슬을 주겠다는 약속까지 했고, 그의 뜻대로 되지 않자 더욱 화가나“앞으로 언문을 가르 치지도 배우지도 말고, 배운 자는 쓰지 못하게 하라”라는 명령을 내리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안타깝게도, 훈민정음은 일제 강점기 시대가 시작될 때까지 조선의 국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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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받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 시대의 초기에는 일본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우리말을 쓸 수 있도록 허용해 주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일 뿐, 일제 강점기 시대의 중반기에 들어서면서, 일본 은 우리 민 족에게 내선일체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하면서 한글은 다시 묻혀졌다. 여기서 내선일체란 “일본과 조 선은 하나의 몸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일본은 우리 민족의 혼을 빼앗기 위해 학교에서 일본어 와 일본 역사를 가르치고,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개명하는 것을 강요하는 것을 물론, 중·일 전쟁 이후, 우리말 교육을 강제로 중단시키고, 우리말 사용을 금지시켰다. 이에 반발한 우리 민족들은 민 족의식의 성장과 더불어 우리 민족의 주체성을 살린 우리말로 글을 쓰자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때 부터 훈민정음을 국가의 글자로 받아드려, 국문이라고 불렀고, 한글 학자인 주시경 선생님은 1913년, 어린이 잡지에 글을 쓰면서, “한글”이라는 이름을 최초로 사용하여 지금의 훈민정음의 이름인 한글을 탄생시켰다. 또한, 주시경 선생님을 중심으로 세워진 조선어 학회 라는 단체가 있었는데, 이들은 일 제의 조선어 말살 정책에 맞서 한글을 지키고 연구하는데 앞장섰다고 한다. 이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 서도 한글을 연구했고, 마침내 1933년 10월 한글맞춤법통일안이 발표된다. 조선어 학회 사람들은 맞 춤법과 표기법을 우선으로 정비한 후, 우리말 사전 제작을 시도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1942년 조 판을 앞두고, 조선어학회사건이 터지면서 구성원 대다수가 검거되고 투옥되면서, 제작에 실패하고 만 다. 마침내 해방이 되자, 그들은 일제 말기 조선어 말살 정책으로 인해 중단되었던 국어 교육을 위해 교과서를 편찬하여 우리 말 되살리기를 위한 노력을 한다. 위와 같이 한글이 국문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으며, 어려움 또한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 른 지금, 하늘이 한글의 고생을 알아주기라도 한 듯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한글을 배우려고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영화나 드라마, 노래, 예능 등 영 상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한글을 배우거나, 학원, 학교, 유학을 통해 직접적으로 한글을 배우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외국인들이 한글을 배우기 위해 한국으로 유학을 와있다고 한다. 얼마 전, 뉴스에 서는 동아대학교에서 공부하는 베트남 유학생들이 올해 38명이며, 2년 사이에 한글을 공부하려는 유 학생이 8배 가량 늘어났다고 한다. 또한, 한글은 전 세계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대학교 교수이자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한글을 보고 예찬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20대로 돌아간다면, 첫 번째로 한글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만약 세계 언어 를 통합해야 한다면, 그것은 무조건 한글이어야 한다.”라고 주장을 했다고 한다.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를 포함한 전 세계의 저명한 학자들은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이고, 가장 단순한 글 자임과 더불어 가장 훌륭한 글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한글은 유엔에서 인정한 문화유산이며, 문맹자들에게 글을 깨우치게 해줄 수 있는 과학적인 문자로 공인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한글은 세계의 여러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태국 역시 한국어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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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태국에는 한국어 학원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여러 대학교에서는 한국어 학과 가 생기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한국어능력시험에 6만 7천 여명이 지원 했다고 한다. 또 가끔씩 있는 k-pop 팬들의 한국어 실력은 정말 완벽해 한국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더불어 여러 태국 제품, 간판 그리고 문신 속에 한국어가 유행이다. 이렇게 한글이 외국인들에게 사랑을 받는 반면, 한글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어 교육보다는 영어 교육을 우선시 한다. 해외 부모님들끼리의 대화를 듣다 보면, “국어 교육을 어 떻게 시키나?, 어느 학원이 국어를 더 잘 가르치나?”보단 “영어 교육은 어떻게 시키는지, 어느 학원, 어느 학교가 영어를 어떻게 가르치는지”라는 대화가 대부분이다. 또한 국어 성적보다는 영어 성적을 더 중요시 하며, 영어 교육을 위해 집에서 조차 영어를 사용하는 가정도 있다. 세계화가 되면서 영어 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국어보다 영어를 우선시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영어보단 한글 공부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오랫동안 외국에서 살면서 뛰어난 영어 실력임에도 불구하고 어 눌한 한국어 실력을 가진 한국 친구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런 친구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 한 국어 공부에 대한 나의 열정은 더욱 불탔다. 하지만 한국어에 대한 어눌함은 외국에서 사는 친구들에 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 사는 친구들 역시 한글에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 가끔씩 인터넷 을 보면, 맞춤법과 문법을 틀리게 쓰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언어가 아닌 영어는 문법 과 맞춤법에 맞추어 정확하게 쓰면서, 정작 한글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영어를 뒤로 제쳐 둔 채 한글 공부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빠르게 발전하는 글로벌 사회인 요즘 영어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현실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어 공부에 힘쓰는 시간만큼이라도 국어 공부에 시간을 투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류열풍으 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늘어나는 요즘, 우리의 언어에 대한 관심과 바른 상식을 갖고 있어야 하 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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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眼)

<우수상> 연세대 자원봉사센터장상 선양 한국국제학교 고등 3학년 정 한 솔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 서로를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다던데, 내 기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눈 이다. 무슨 말이고 하니, 나는 사람의 눈은 그 사람의 성격이나 내면을 반영한다고 믿는다. 마치 많은 선인들이 문장으로 남겼던 것처럼. 이 눈이라고 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다 각개의 특징이 있어서, 어떤 누군가의 눈은 동그라면서도 우 수에 가득 찬 반면, 또 누군가의 눈은 겨우 실 한 가닥만큼의 크기라도 기쁨이 흘러 넘친다. 그러나 후자와 같은 눈은 대개 흔하지가 않다. 나의 나이가 점점 많아 지고, 또 나 자신이 ‘어른’이란 두 글자 와 점점 가까워 짐에 따라 그것이 내 주위사람들의 것이든 아니면 거울 속 비춘 나 자신의 것이든 눈 들은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상을 봐오고 또 직접 경험해 오면서, 실제로 나 역시- 말은 죽어도 인정하지를 못 하지만- 어쩌면 이렇듯 사람들과 그들의 눈이 암담해지는 것 역시 시간에 따라 발생하는 지극히도 자연스런 삶의 일환이 아닐까 하는 회의가 들고는 했었다. 그래, 나는 자신이 굉장히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음에도, 그렇게 세상 물에 때 드는 사람들을, 나를 보며 내심 나약한 변명을 대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모두 어쩔 수 없는 일이야’라면서. 사실 처음부터 내가 이런 진실 아닌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이 오래도 록 믿어오던 신념이 부정을 당했을 땐 누구나 충격에 빠지기 마련이 아닌가? 나 같은 경우는, 겨우 친 구의 한 마디에 그런 딜레마에 빠졌었다. 중국에 십 여 년을 살아온 한국인 유학생으로서, 애국심을 가지고 있는 자신에 꽤나 대견함을 느끼며 별 이유도 없이 당연히 언젠가의 조국 통일을 소원하던 내 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웬일인지 ‘통일’이란 화제가 수업 시간의 주제로 떠올랐고, 옆에 있던 가장 친한 친구는 단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던 것이다. “왜 우리가 통일을 해야 해? 걔네 나라는 겁나게 못 살잖아.”라고. 나는 뭐 통일에 한 목숨 다 받쳐 야 한다는 강경파도 아닐 뿐더러 그저 어린 마음 어린 지성에 통일을 바란 아이였을 뿐이나, 친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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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교과서가 되었든 아니면 주위 어른들의 말이 되었든 여하튼 내가 접해온 의견들과는 너무도 다 른 것이었고, 따라서 내게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그때야 비로소 나는 모든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다 같은 시선으로 통일을 염원하는 것은 아니란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아니 차라리 다른 것이기만 해도 과연 내가 눈 안의 등불을 잃었을까, 무엇보다 ‘못 산다’라는 표현은 지나치게도 실질적인 단어였고 잔 인한 단어여서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순간뿐이었지만 그녀의 눈 속 존재했던 끝없는 어둠과 이기심을 잊지 못하게 한다. 그렇게 몇 년, 어두운 눈 빛들을 수 년간 지켜 봐 온 나의 남을 판단하는 한 기준, 즉 ‘좋은 눈빛의 기준’은 상당히도 낮아져 있었다. 도무지 밝고 빛나는 눈을 찾는 것은 무리수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 러나 그러기를 한참이 지나고, 스스로의 기준에 의심을 하고 고뇌하던 덕분인지 아니면 어리석은 나 를 딱히 여긴 하늘의 덕분인지 나에게도 자신의 눈을 ‘정화’할 만한 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학교의 수학여행. 한국에만 살았더라면 어쩌면 평생 동안 상상조차 못 했을 여행지가 나를 기다 리고 있었으니 그곳은 다름 아닌 백두산. 민족의 얼과 혼을 닮은 백두산이었다. 나는 여전히 학교의 일정표를 받아보던 순간을 기억하는데, 찰나지만 흰 종이 위 그 이름 세 글자를 보고 내 이미 흐려졌 던 눈에 조차 기대가 맺혔던 듯 하다. 예상대로 백두산을 향해 가는 길은 쉽지 만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단언컨대, 험난하고 험난했다. 그렇지만 그 험난한 여정 조차도 나에게는 색다른 도전으로 다가왔다. 1460 여 개의 계단, 파랗게 덮 인 언덕, 그리고 그 너머 장차 장엄함을 보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표지판들은 나를 설레게 했다. 체력 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던 나였지만 천 개가 넘는 계단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숨을 헐떡거렸다. 닿 을 듯 닿지 않는 신기루처럼, 저기 천지 역시 나에게서 도망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 도였다. 하지만 나는 이유 모를 열정에 이끌려 양 발을 차근히 내 디뎠고, 마침내 천지는 웅장한 자태 로 내 눈 앞에 자색을 드러냈다. ‘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치미는 외마디 감탄. 18살 내 인생 처음 본 백두산 그녀는 숨 막히는 아 름다움 그 자체였다. 저 멀리 북한 쪽 영역을 바라보면 호수와 하늘은 어느 새 그 경계를 잊고 살을 맞 대고 있었고, 살살 불어 오는 산들바람은 내 눈의 안개를 불어버렸다. 덕분에 내 눈엔 그새 그렁그렁 한 눈물이 맺히고 말았지만. 울타리에 막혀 더 이상 다가갈 수 없었지만 천지는 그 명성에 걸맞게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런 그의 앞에서 나의 눈은 어느새 흐린 편견과 이기심이란 덮개를 벗어 던진 채 진솔한 심정으로 주 위를 돌아볼 수 있었다. 나는 비로소 그런 현상이 나 홀로 겪는 것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주변 친구들 모두 들뜬 숙연함에 빠진 채로 그 어느 때보다 빛나는 눈을 하고 있었다. 마치 저기 저 천지가 우리 모 두의 눈망울을 씻어 정화시켜 준 듯 했다. 비로소 일깨워 준 듯 했다. 나는 다시금 저 너머 호수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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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사이 사라진 경계 쪽을 살펴 보았다. 맞닿은 모습이 한 없이 다정한 둘의 모습을 보며 실지로 땅을 맞대고도 인위의 장벽을 쌓아 서로를 갈라놓은 북한과 우리의 현황을 떠올랐다. 어쩌면 애초부터 경 제 상황 이라던지 그런 이유와 변명들은 무효했던 것인지 모른다. 우리는 처음부터 한 민족 한 핏줄에 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저 속세 안에서 우리 모두의 눈이 먼지를 쓰고 역사를 잊었을 뿐, 우리는 언제 나 항상 같은 사람들이었고, 단지 그것만으로도 통일의 염원은 이유를 가진다. 눈을 비비고 다시 천지를 본 나는 그 호수가 민족의 눈과도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어디보다 맑 고 깨끗하며, 우리 모두가 그를 통해 잊었던 진실을 기억하도록 해준, 눈과 같다고. 그렇게 천지를 등지고 오는 나의 눈엔 주위의 모두들도 더 이상 잿빛의 눈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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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사랑 대한민국 그리고 나의꿈

<우수상> 한양대 총장상 동경 한국학교 고등 1학년 이 지 우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알수없지만 분명 지금 내 가슴속엔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강한 애정이 있습니다. 제가 6년전 아버지의 사업차 일본으로 오지 않았다면 이처럼 대한민국이라는 내 나라에 대 한 그리움과 자부심을 갖을수 있었을지 스스로에게 의문이 생깁니다. 또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생활했어도 이렇게 대한민국을 소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할수 있었을지도 의문이 됩니다. 저는 일본에서 6년째 생활하고 있는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입니다. 한국의 고등학생들이라면 아무것에도 신경쓸 틈도없이 입시에 매달리고 있을 시기이지요. 일본에서 살고있는 저의 경우도 비 슷하기는 하지만 저는 늘 한국인이라는 것을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랜 역사적 배경 으로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과 우리나라는 제가 일본으로 온 후에도 끊임없이 좋고 나쁜시간을 반 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제가 일본으로 온 후 일본에서 한류붐이 크게 일어나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의 연예인에 호감을 갖게되었고 그때문인지 한국사람에게도 호의적이었습니다. 일본인들만 살고있는 도쿄 외곽에서 살 았던 저는 일본인학교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는데, 학교선생님이나 학부모님들도 한국의 연예 인에 관심을 보였고 한국의 많은 것에 호기심을 갖곤 했습니다. 심지어 저희 어머니가 어떤 화장품을 사용하는지, 한국의 남성들은 정말 그렇게 친절하고 자상한지 등등 정말로 많은 것을 물어왔습니다. 저는 뭐가 뭔지 몰랐지만 일본에 오기전에 가지고 있던 일본인에 대한 편견을 버리게 되었고, 한국 인에게 호감을 갖고 대해주는 일본인들 앞에서 한국인이라는 것이 마냥 자랑스러웠습니다. 일본인들은 마치 우리가 먹고 입고 사용하는 모든 것을 부러워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이 모든 배 경이 한국의 드라마였습니다. 드라마속에서 등장하는 연예인들에게 호감을 가지다보니 한국사람, 음 식, 화장품 등이 일본인의 눈에 부러움을 살만했기 때문인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저희 가족 모두의 행동도 조금 조심스러웠습니다. 우리가족은 평범한 한국인에 불과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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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드물었던 곳에서 살았던터라 우리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한국인의 대표모습으로 비춰지 기 때문에 모든 행동에 조심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즐거운 불편함이었습니다. 게다가 세계야구대회에서 우승을 하는데 이어 스포츠계에서 한국선수들이 줄이어 활약을 거둘때마 다 한국의 위상은 올라갔고 일본인들의 한국을 향한 동경도 커져갔습니다. 꽤 오랫동안 한류붐이 식 지않고 지속돼 동경 한국의 거리에는 일본인들로 넘쳐났습니다. 이때까지만해도 일본과 한국의 오랜 역사적 관계에 대한 생각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최근 일본 자민당의 아베가 수상이 되면서 한일관계에 적신호가 켜졌고, 매체를 통해 독도와 동해에 대한 내용이 자주 방송되며 한국이 막무가내의 행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도되면서 분위기기 심각해 져 갔습니다. 게다가 한국의 거리나 한국대사관, 일본내 한국학교에까지 과격한 일본인들이 찾아와 소란을 피우기도 했습니다. 물론 소수의 일본인들의 행동이었지만 이러한 일본사람들의 반응을 처음 느낀 저로서는 당황스러웠습니다. 일본방송의 개관적이지못한 방송되는 내용을 듣고보며 답답하고 화가나기도 했습니다. 특히 위안 부 할머니들과 안중근의사에 대한 일본정치인들의 안하무인의 발언을 들으며 화를 억누를수가 없었 습니다. 방송을 접하는 일본인 한면한명에게 사실을 설명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특별한 역사교육을 받은 사람도 아니지만 외국에서 살면서 우리나라와 일본의 역사적 배경이 왜곡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더욱 나라를 아끼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크 고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외국에서 살면서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쯤부터 였을까요? 제게는 큰 꿈이 생겼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입니다. 외국에서 살 다보니 우리나라를 좀더 정확하게 피력할수 있고 우리나라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나 라간의 외교가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불과 얼마전 우리대통령과 미국, 일본 대통령이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회의를 하는 장면을 뉴스 에서 본 기억이 떠오릅니다. 일본에서 그것을 시청하면서 뭉클해졌습니다. 세계의 열강 대통령과의 자리이었지만 기죽지않고 당당하게 우리의 의지를 표현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며 우리 청소년들도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앞으로는 더욱 세계열강과 당당할수 있도록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노 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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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는 저 혼자 사라지지 않는다.

<우수상> 한양대 총장상 방콕 한국국제학교(KISB) 고등 2학년 김 래 효

1950년 6월 2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즉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여 6.25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을 통하여 어떤 이들은 전쟁이 조국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위하여 싸 우다 장렬히 전사하였고, 어떤이들은 같은말을 쓰는 동족이 쏘는 총과 폭탄에 맞아 죽었고, 또 어떤 이들은아무 죄 없이 가족들과 다시 만날 기약을 하지도 못한체로 생이별을 해야했으며, 어떤 이는 알 지도 못하는 나라에 와서 알지도 못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 쳐야했으며, 누군가는 전쟁으로 인한 가난때문에 죽었다. 또한 어떤 이들은 아무 이유도 없이 총탄에 맞아 목숨을 잃었으며, 누군가는 자신의 꿈을 가지고도 이루어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였을 것이다. 이처럼 수많은 사상자와 사람들의 마음속에 상처를 남기고 6.25전쟁은 ‘종전’이 아닌 ‘휴전’이라는 결 과로서 막을 내렸다. 이 전쟁을 통하여 남한이나 북한은 어떠한 이득을 얻었는가? 물론 실질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어 떠한 쪽의 국가에 이득이 남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난 남한과 북한 어느쪽도 어떠한 이득을 얻지 못 했다고 생각한다. 전쟁의 결과를 생각해보아라. 전쟁때문에 어떠한 사람들은 평생을 고향을 그리워하 며 살다가 죽었다. 어떤 사람은 가족들을 그리워하였지만 만날 수가 없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전쟁 으로 인해 평생을 불구로 살다가 죽었을것이다. 전쟁이 낳은 것이 무엇인가? 전쟁은 사람들에게 또한 우리 살고있는 이 땅 한반도에 상처만을 남겼을 뿐이다. 그리고 이 상처는 우리 땅 한반도에 3·8선 이라는 커다랗고 깊은 흉터를 만들었다. 남한과 북한은 이부끄럽고 흉측한 이 흉터를 기준으로 서로 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실제로 이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흉터를 제거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경제에 매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전쟁 이후로 매우 빠르게 진화했고, 어느 순간부터 세계 조선 기술의 순위를 1위부터 8위 까지 의 모든 자리를 차지하였고, 세계 반도체산업 2위, 세계 철강업 순위 1위, 세계 GDP순위 15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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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스마트폰산업 2위의 자리를 차지하는 등 여러가지 분야에서 얼마전까지 전쟁을 하던 나라라고 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만약 전쟁이 나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이 모든 것을 다 잃게 되는 것이다. 이로서 우리나라의 경제를 위해서도 우리는 이 흉물스러운 흉터를 빨 리 없애야한다. 또한 우리가 통일이 됨으로써 우리는 편익을 얻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통일시 남한과 북한의 경 제적능력 차이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한다. 물론 이 통일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통일 후에 얻게 될 편익은 잠재적 가치가 있기고 그 편익이 통일비용보다 더 큰 비용을 얻을 수 있기에 통 일을 하는 것이 국가의 경제에 더 이득이다. 이러한 이유들처럼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는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용맹스런 한반도의 호랑이 배에 있는 그 흉측한 흉터를 하루빨리 제거해야 한다. 미국, 베트남, 톡일, 예멘도 원래는 우리나라와 같은 분단국가였다. 그러나 이 나라들은 다함께 노력하여 이제 그 흉터를 제거해버렸다. 다른 나라들도 해냈는데 우리나라라고 하지 못할 것이 무엇인랴? 난 우리나라의 국민 들이 함께 노력하면 충분히 그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흉터를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어릴적 생긴 흉터는 시간이 지나고 자라면서도 여전히 그 자리게 계속 남는다. 흉터는 결코 저 혼 자 사라지는 법이 없다. 그렇다면 흉터를 없애는 방법이 완젼히 없다는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내가 알고있는 흉터를 없는 방법은 바로 흉터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는 것이다. 이 수술은 매우 아프 다고 한다. 또한 흉터가 크고 깊을 수록 시간도 오래걸리고 과정이 점점 더 복잡해진다. 또한 자신의 흉터를 관리하는 사람이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점점 더 귀찮아지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 나 이 수술이 완벽하게 끝난다 하더라도 아직 우리 인류의 기술로서는 흉터를 완벽하게 제거하는 것 이 아니라 흉터를 작게 만들거나 완화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있는 그 수치스럽고 부끄러 운 흉터도 다를 것이 없다. 우리는 그 흉측한 흉터를 제거하기 위하여 노력과 관심이라는 수술을 시행 하여야 한다. 우리는 이 크고 깊은 흉터를 완벽하게 제거해야만 한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른 다. 또한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지도 잘 모른다. 어떤 사람은 그들의 일생을 오직 이 크고 흉측한 흉터를 제거하는 데에만 사용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흉측한 흉터를 제거하는 수술에 넘쳐나 는 노력과 관심을 쏟는다고을 해도 이 흉터를 제거하는 수술이 성공하여 완벽하게 그 흉터가 사라질 지 아니면 실패하여 아무 일도 잃어나지 않을지 알 수가 없다. 또한 그 흉터를 제거하는 수술이 완벽 하게 이루어 진다고 하여도 그 크고 깊은 흉터가 어느정도까지 작아지고 완화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는 인류의 기술이 더 발전하여 보다 더 완벽하게 흉터를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나는 우리 민족의 더욱더 깊은 관심과 노력을 통하여 ‘분단’이라는 부 끄럽고 수치스러운 이 흉터를 완벽하게 제거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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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눈물을 기억 하는가

<우수상> 동국대 총장상 청도 국기외국어학교 고등 2학년 이 가 영

나는 처음에는 통일에 대해 그저 막연히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번 글짓기를 하기로 마음먹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과연 통일이 진정 필요 한지 안한지 이산가족이 그런 아픔을 견디며 지내야 하 는지 말이다. 어느덧 남과 북이 갈라진지 60여년이 흘렀다. 6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남과 북은 다른 점이 많아 진 것 같다. 며칠 전 칭다오지역에서 통일 골든벨 행사가 열렸었다. 그 준비를 하면서 인터넷에서 통 일에 관한 문제와 북한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게 되었다. 남한과 북한은 많이 달랐다. 김일성이나 김 정일 대통령의 생일도 공휴일이고, 그들의 사진이 집집마다 걸려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다. 또한 쓰는 단어도 많이 다르다고 한다. 한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안 타까웠다. 또한 목숨을 걸고 탈북 하는 사람들이 있다. 통일전망대에서 육안으로도 보이는 땅을 넘어 오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만약 탈북 한 것이 적발되면, 수용소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는 사람 이하의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강제노동을 하거나, 생체실험대상자로 이용된 다고 하니 정말 끔찍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탈북자는 점점 늘고 있다. 2012년 모 방송에서 북한 여군 출신 탈북자 이소연 씨가 방송에 나와 자신의 처참했던 북한생활과 탈북과정을 고백했다. 이소연 씨는 두만강을 건널 때 옷이 젖으면 안 되어서 속옷만 입고 건넜다며 돌 도 굉장히 미끄러워 바늘로 살을 긁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강을 건너도 중국이니 성공이 아니 었다고 전했다. 불행하게도, 탈북 후 들켜서 붙잡혔었다고 했다. 붙잡혔던 당시 다친 다리로 노동을 쉴 수 없었던 이야기를 전하며 엄마가 면회를 왔었는데, 자식이 다리를 끌며 일하는 모습을 보며 계속 우셨다고 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자신이 왜 탈북이라는 것을 해서 어머니를 고생시켜서 죄송했다 고 했다. 작업반장에게 밥을 해주며 딸을 부탁하는 엄마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며 눈물을 흘렸다. 밥 외에도 집에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을 다 아는데도 불구하고, 작업반장에게 담배와 신발을 갖다 바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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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을 보고 자신이 너무 불효자식이구나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자신의 부모뿐만 아니라 다른 부모 도 가끔 면회 오면 자식을 때리면서 운다고 한다. 진짜 북한에서의 삶은 짐승의 삶이라며 눈물을 흘 렸다. 이소연 씨 외에도 수많은 탈북자들 그리고 탈북 을 시도해 붙잡힌 사람들, 탈북을 하고 싶지만 못하는 사람들의 눈물, 그런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눈물, 우리는 그들의 눈물을 기억하고 있는 가. 며칠 전, <신이 보낸 사람> 이라는 영화를 봤다. 어렴풋이 느끼고 알고 있는 북한 인권 유린의 현실 을 종교적으로 다룬 영화였다.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국경지대에 위치한 두만강 주변에서 자행되고 있는 북한 주민의 실상, 인권 유린이 자행되고 있는 현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 한 남자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다며 김정일 장군이 종교의 자유를 지지한다며 거짓 증언을 하는 것을 보며 정말 양심도 없다고 느꼈다. 종교의 자유가 없 어 몇몇 주민들이 지하에서 비밀리에 예배를 드리며 신앙을 키워간다. 그리고 군인들이 축구를 하다가 공이 두만강 쪽으로 날라 갔다. 마침 거기에 지체장애인 사람이 있었는데 공을 갖고 오라고 명령한다. 그 사람은 공을 가지러 가다가 탈북 하는 것으로 의심받아 잡혀가서 폭행을 당하고 고문을 당한다. 정말 북한에는 최소한의 인권이 없고 약자들을 무차별하게 폭행한다. 더 잔인한 것은 그들은 그런 것 이 당연한 것이라 믿고 즐거워 한다는 것이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북한 인권 유린의 실제 영 상은 더 충격을 줬다. 입에 담을 수 도 없는 잔인한 고문과 공개 처형의 영상 이였다. 이런 북한의 현 실에 마냥 침묵하고 외면한다면 그들의 고통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정말 같은 하늘 아래 그리 멀 지 않은 곳 한반도라는 땅에서 우리의 동포들이 인간으로써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도 보장 받지 못 한 채 살아가는 모습은 정말 가슴 아프게 했다. 하루라도 빨리 인권 유린으로 고통 받는 북한 주민이 좀 더 나은 생활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사람들의 눈물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는 가. 매년 6월이면 우리는 종종 텔레비전에서 6.25로 인해 헤어졌던 가족을 찾는, 이산가족 상봉 하는 특집 프로그램을 많이 볼 수 있다. 작년에도 이런 프로가 있었다, 한 사람씩 나와 이야기를 했는데, 나 도 모르게 그들의 절실한 마음과 슬픔이 전해져 엄마와 함께 울면서 봤던 기억이 난다. 기다리던 엄마 가 끝끝내 오지 못해 몇 십 년이 지난 후에야 손 잡 을 수 있던 가슴 시린 사연들은 우리의 마음을 하 나로 모아주었다. 통일의 의지와 민족의 통합을 향한 마음으로. 어김없이 6월은 또 다시 찾아 올 것이다. 그때쯤 이면 가슴을 부여잡고 슬픔을 토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철조망 건너편 핏줄이 있는 분들이다. 그분들의 공허한 가슴을 채워줄 봄날은 언제쯤 올까? 사시사철 겨울인 그분들의 마음을 녹여줄 봄바람이 불어왔으면 좋겠다. 그분들의 안타까운 슬픈 눈물 을 우리는 진정 기억하고 있는 가. 통일이 이뤄진다면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많이 이익이 생길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방비는 30 조원이다. 만약 통일이 된다면, 국방비를 복지를 위해 쓰거나, 대학 등록금을 지원해 주는 등 여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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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용도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 우리는 자본이 있지만, 노동력이 부족한 상태이다. 하지 만 북한은 노동력이 충분함으로 함께 일하게 된다면 대한민국은 비약적인 도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리적 위치에서도 북한을 통해 수출을 하게 되면, 이동거리가 훨씬 짧아진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모 든 나라의 교통의 요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강점들에도 불구하고, 통일에 대한 관심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통일을 위해서는 현 재 악화 되어있는 남북 관계 회복이 우선이다. 예전에는 북한에게 쌀을 지원해주거나, 정주영 회장이 소 보내기 운동을 하였다. 하지만 요즘엔 북한에게 강경책을 사용하고 있어서 안타깝다. 예전에 그랬 던 것처럼 우리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어떨까. 6.25전쟁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호국보훈이란 나라를 아끼고 사랑하 자는 말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38도선 전역에 걸쳐 남침을 함으로서 우리민족 최대의 비극을 초래하였다. 세계의 자유와 평화에 중대한 도전이었던 6.25 전쟁은 3년간 계속되어 인 명과 재산에 많은 손실을 입혔다. 이 전쟁 중에 사상자는 약 150만 명에 달하였고 건물, 도로, 공장등 대부분의 시설이 파괴되었다. 그 후로 거의 오십년이 가까워오는 지금까지도 남한과 북한은 통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수많은 피를 흘린 6.25전쟁으로 인해 38선으로 그어버린 경계 선은 오늘날까지 지워지지 않고 있다. 이 전쟁을 하면서 나라를 위하여 전사하신 많은 분들의 눈물과 피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는 가. 통일에는 물론 장점도 많겠지만, 크고 작은 문제 및 장애물도 많다. 대표적으로는 언어, 사상, 분배 문제, 경제평등의 문제이다. 나는 이런 문제를 다 뛰어넘고 충분히 통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흔히 사람들은 남과 북의 사상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남과 북은 사상이 다르지는 않다. 왜냐 하면 북한도 이미 민주주의 국가로써 정식명칭으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또한 형식뿐이 지만 삼권분립을 해놓았으며 투표도 실시한다고 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공산주의라는 사상에 익숙해 져 있던 사람들이었던 것만큼 완벽한 민주주의화 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가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상대방을 배려한다면 충분히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우리나라의 지도층의 분배문제가 있다. 통일 국가가 된다면 새로운 국회의원들과 투표를 실시해야한다. 만약 통일이 되고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때 북한에서는 국회의원이 많이 선출된다면 북한에 관점을 비교적 많이 두게 될 것이고 한국에서 의원을 많이 배출하 면 우리가 조금 더 관점을 둘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서로서로 이해하는 마음이 절실히 필요 하다. 차원을 넘어서서 지역 간의 차이는 곧 나라의 경제력 저하를 낳는다는 점을 상기하고 여러 지역 에 두루두루 발전을 생각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경제평등 문제를 들 수 있다. 이는 지도층 문제와 비 슷한 문제로써 북한은 대체적으로 평양 쪽에 공업이 발달 되어있고 북쪽으로 갈수록 점점 약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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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한국은 수도권에 모든 것이 집합되어있고 대체적으로 북한에 비해 경제 발전이 잘 되어 있다. 그러므로 점점 우리만 경제가 치우치다가는 역시 지역 간의 격차가 벌어 질 것이니 북한의 특색을 잘 활용하여 경제적 발달을 꾀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북한북쪽의 개마고원은 우리나라의 지붕으로써 그 쪽에 펄프 공업을 활성화 시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처럼 여러 통일의 장애를 극복한 국가들이 있다. 예를 들어 분단국가였던 독일, 베트남, 예멘을 들 수 있다. 우리도 이들처럼 평화적으로 정부 정책에 대해 신뢰와 지원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민족의 내면적 통합이 필요하다. 통일을 장기적으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청소년인 우리의 역할도 중요하다. 하지만 요즘에는 통일에 부정적인 인식이 늘어나 통일이 된다면 우리가 북한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생각해볼 때 통일이 되면 이익이 훨씬 많다. 위에 말한 듯이 독일이 서로 다른 이 념과 경제상황이였음에도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글짓기를 하면서 내 생각들이 점점 긍정적으로 바뀌며 해가 지날수록 통일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통일에 대해 부정적으로 앞날만을 생각하며 통일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알고 있다. 물론 소수겠지만 그 사람들이 반성하여 하루빨리 통일의 중 요성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통일이 되면 우리는 물론 우리의 후손들까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남한과 북한은 서로 다른 이념 사이에서 한민족임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지 못했다. 앞으로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고 통일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야겠다. 하루빨리 휴전선이 없어져 남북 하나 되어 북녘 땅을 밟아볼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그 수많은 눈물과 애통을 기억하며 언제까지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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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차한 변명

<우수상> 동국대 총장상 선양 한국국제학교 고등 2학년 정 운 영

나는 북한의 대부분을 중국어로 된 중국 교과서로 먼저 배웠다. 여덟 살이 되기 전, 이미 중국으로 떠나온 나는 제 나이에 한국 초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고, 아홉 살이 되어서야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초등학교를 다녔지만 그것도 채 한 학기를 채우지 못했다. 그리 고 곧바로 중국으로 돌아와 현지의 초등학교를 다닌 나는, 국사시간에 북한에 대해 배우는 대신에 중 국사시간에 대만을 배웠고, 통일의 염원을 담은 포스터를 그리는 대신에 쉰여섯 개 소수민족의 화합 을 노래하는 시를 배웠다. 가끔씩이나마 한자로 쓰인 교과서에 북한이 등장할 때가 있었지만, 대게 중국이 항미원조 전쟁이 라고 부르는 한국전쟁에 관해서였다. 하지만 내가 북한을 알 기회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내가 거주하는 선양이라는 지역의 특성상, 탈 북 한 새터민이든, 합법적으로 중국에 진출한 북한에 근로자들이든, 얼굴을 마주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내가 가장 처음 접했던 북한 사람은, 모란관이라는 식당에 근무하고 있던 북한 아가씨들이었다. 그 녀들은 모두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색이 화려한 한복 혹은 라인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제복을 입 고, 상냥한 표정에 단아한 자태를 뽐냈다. 그리고 그녀들의 피부는 백옥처럼 하얗고, 연한 붉은색 입 술이 꼬리를 올릴 때마다 드러나는 새하얀 치아들은 눈이 부셨다. 하지만 그녀들의 아름다움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저녁이 되면, 그녀들은 무대에 나가 화려한 조 명을 받으며 끼를 펼쳤다. 목소리는 부드럽고 감미로웠으며, 춤사위는 보는 이의 입을 떡 벌어지게 했다. 아름다운 그녀들과 함께 있노라면, 북한사람들은 모두 천사와 같을 것만 싶었고, 북한은 그런 천사 들이 모여 사는 나라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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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의 이런 철없고 유치한 환상이 깨지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식당에 탈북자 한 명이 일을 하게 됐다. 소식을 듣고 호기심에 가득 차 식당 에 달려간 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검게 그을린 피부, 살쾡이처럼 찢어지고 날카로운 눈매, 입가에 남은 선명한 흉터, 그리고 그 동안 의 힘든 세월을 암시하듯 빼빼 마른 몸. 그 어느 것도 나로 하여금 그가 아리따운 모란관 아가씨들과 같은 나라에서 왔음을 믿게 할 수 없었다. 그는 묵묵히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숯에 불을 피우고 있었다. 나는 말이라도 한 마디 건네 보고 싶 었지만, 그의 무서운 외형과 풍기는 이질적인 분위기에 결국 말을 걸지 못하고, 문 뒤에 몸을 숨기고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하지만 첫 만남 이후로 그에게 말을 걸기까지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호기심이 겁을 훨씬 웃돌 나이었기에, 나는 결국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보였던 것처럼 투박했지 만, 보기와는 달리 순진한 사람이었다. 쏟아져 나오는 나의 질문에 그는 일일이 답을 해주었고, 나는 그를 통해 북한에서의 생활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도 눈이 내리는 겨울날이었을 거다. 외벌 외투만 입은 채 머리에 내리 앉은 눈 송이도, 얼굴을 묻은 숯검정도 개의치 않고 불씨를 죽이지 않으려 열을 올리던 그는 두터운 오리털 점 퍼를 입고 나온 나를 보자 눈보라에 가려 보이지도 않을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기가 김정일을 찾아가 통일을 하자고 꼭 말해 볼 테니, 앞으로 내가 크면 한국 대통령을 찾아가 통일하자고 꼭 말을 해보자고, 그래서 통일이 되면 나중에 꼭 한국에서 다시 보자고. 그 말을 끝으로, 나는 그를 다시 보지 못했다. 당시 그의 공허한 눈빛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의 의 미심장했던 말은 내 머릿속에서 거의 지워질 뻔했던 "통일"이라는 단어를 다시 수면 위로 이끌어냈다. 그 때로부터 시간이 흘러, 나는 중국학교에서 현지에 세워진 학구학교로 전학을 오게 됐다. 나는 한국 국민으로 산지 십오 년 만에 드디어 우리 민족의 역사를 우리 언어로 배울 수 있게 되었고, 거기 에는 당연 북한이 빠지지 않았다. 역사 속에서, 사회 속에서, 그들은 천의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외세의 침략을 굳건히 버텨낸 민족 의 방파제; 나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아버지의 심장에 총알을 박아 넣은 원수; 장난감 구석에서 엄 마의 소매를 붙잡고 늘어지며 때를 쓰는 아이마냥 핵실험을 빈번히 강행하는 "악의 축"....... 하지만 그 어떤 가면도, 가면 아래의 진정한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북한이라는 나라는, 알든 모 르든 간에, 베일의 쌓인 채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런데 앞으로 빠르게는 삼 년 뒤, 늦어도 내가 서른을 넘기기 전에, 나는 베일을 코앞에 두고 그들 을 마주 볼 기회가 생긴다. 완전 무장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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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가 없거나 아버지가 국회의원이 아닌 이상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갔다와야할 그 곳, 바로 군대. 우리는 그 곳에서 동포에게 겨눌 총을 다루는 법을 배울 것이고, 또 동포의 총탄이 내 뇌 속 깊숙이 박히지 않도록 머리에 맞지도 않을 두꺼운 철모를 눌러 쓴 채, "북괴군의 가슴에 총알 을 박자!", "능지처참 김정일, 김일성" 등의 구호를 외치며 삽질을 하게 것이다. 내가 군대를 가기 싫은 이유가 어디 하나 이거 하나 뿐일까? 하지만 남들이 나에게 군대를 가기 싫 은 이유를 물어오면, 나는 당당히 말한다, 동포의 가슴에 총을 겨누는 게 서럽고 한이 맺어 가기가 꺼 려진다고. 어쩌면 나는 나의 무책임함에 그럴싸한 변명을 늘어놓을 수 있게 하는 현 시국의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언제까지 이 적절한 변명을 써먹을 수 있는 걸까. 소위 ‘북괴군’의 총알에 심장이 관통되어 붉 은 피를 힘차게 내뿜으며 왜적보다는 동포의 손에 생을 마감하여 다행이라고 생각 될 쯤엔 이 빌어먹 을 변명을 더 이상 써먹지 못하게 될까? 이제야 눈 내리던 그날 서리 맺힌 그의 슬픈 눈빛이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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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번지의 소원

<우수상> 동국대 총장상 동경 한국학교 고등 1학년 고 은 비

지하철 안–피곤한 몸에 무거운 가방을 든 채 지하철 손잡이에 몸을 반쯤 맡기고 살짝 잠에 든 나 는 어떤 말소리에 깜짝 놀라 잠이 깼다. 여기는 동경 지하철 안. 하지만 내 귀에 들리는 소리는 일본 어도 한국어도 아닌 바로 북한 말이었다. 배우지 않은 언어이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 만날 일이 있 으리라 생각조차 못한 나라 사람들과, 정서가 다르다 못해 정 반대라고도 할 수 있는 사람들과 몇 미 터 남짓의 거리를 두고 서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일본에서 나는 북한 말을 가끔 듣는다.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집에서 학교 까지 가는 지하철에서 나는 조선학교 학생들을 가끔 본다. 그 아이들을 처음 봤을 때, 익숙하지 않은 억양에 놀랐다. 그리고 마치 일본에 있는 작은 북한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 아이들 은 미디어가 만든 나의 이미지 속의 북한 아이들과는 전혀 달랐다. 나와 비슷한 교복을 입고 생글생글 웃으며 즐겁게 이야기하는 그 아이들은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평범한 사춘기 여학생들이었다. 그 아 이들의 말을 듣다가 갑자기 나는 아버지께 들은 나의 돌아가신 친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625번지–이 곳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사셨던 곳이고 나의 아버지가 태어난 곳이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는 할아버지에 대해서 아는 것 이 별로 없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할아버지의 고향은 평양이었고 4형제의 맏이셨다고 한 다. 1950년, 뜻하지 않은 6.25전쟁이 일어나고 조선 전체가 혼란에 휩싸였을 때, 청년이었던 할아버 지는 1.4 후퇴 때 아군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 오셨다가 휴전이 되어 혼자 남한에 남으시게 되셨다고 한다. 그 후 할아버지는 남 북으로 갈라져버린 나라를 원망하며 곧 다시 가족을 만날 수 있으리라 기 대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셨다고 한다. 625번지, 그곳에서는 전쟁으로 가족을 잃거나 가족을 북한에 두 고 온 갈 곳 없는 사람들이 행여나 고향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하나 둘 모여들며 마을 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고향의 이야기로 밤을 지새우며 외로움을 술로 달래며 서로 위로하며 살아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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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한다. 수구지심이라고 사람도 나이가 들면 고향을 그리워한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할아버 지는 북쪽에 계시는 가족 분들을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리워 하셨다고 한다. 625번지의 사람들 은 같은 처지의 이웃들을 격려하며 곧 남북은 통일이 될 것이고 곧 가족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위로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굳게 믿고 실낱 같은 희망을 품으며 살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할아 버지는 결국 끝까지 가족 분들과 만나지 못하셨고 외롭고 텅 빈 마음을 달래시기 위해 드신 술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는 마음 한구석이 아파왔다. 할아버지와 가족들을 갈라 놓은 전쟁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6.25전쟁 때문에 할아버지는 가족들과 헤어졌고 30년간이나 부모와 형제의 생사도 모른 채 평생을 북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다 돌아가셨다. 사람들의 작은 가치관의 차이가 전쟁을 일으키고, 부모와 형제가 함께 사는 당연한 행복을 빼앗은 것이다. 얼마 전 인터넷으로 ‘이산가족 상봉’ 이라는 기사를 봤다. 불현듯, 내 속 어딘가에서 뜨거운 그무언 가가 꿈틀거림을 느꼈다. 사진 속의 그 사람들이 왜 세상을 다 가진듯한 웃음을 짓고 있는지, 왜 감격 에 겨워 서로의 얼굴을 맞대고 울고 있는지, 왜 수많은 네티즌들이 그들을 축복해 주는지 그 이유를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평생을 가족의 얼굴을 볼 수 있으리라는 확신 없는 확신을 가지고, 일반인들에게는 너무나 사소하고 당연한 일들을 평생의 가장 큰 소원이라고 바램이라고 말하 며 길고 긴 시간을 버텨왔음이 느껴졌다. 이산가족의 30%가 북한과 제일 가까운 경기도에 살고 계신 다는 사실은 얼마나 그들이 만남을 간절히 원하며 살아왔는지를 증명해 주는 것 같다. 조금이라도 가 족과 가까이 있고 싶은 그들의 마음, 통일이 되면 제일 먼저 고향에 달려가려는 그들의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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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나의 꿈

<우수상> 한림대 총장상 청도 국기외국어학교 고등 2학년 최 예 지

어렸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저 통일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점점 커가면서 통 일이란 문제가 그렇게 쉽고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통일에 대해 특별한 관심 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거의 모든 청소년들이 그랬듯이 통일이 되면 된 것이고, 아니면 아닌 것이었다. 북한이 우리나라에게 하는 말과 행동들을 듣고 보면서 북한이 너무 미웠다. 그리고 통일을 해 봤자 우리나라만 손해일 수도 있다 라는 소리를 듣고 통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내 꿈은 보육원을 차려서 버림 받은 아이들을 보살펴 주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좋아했고, 그냥 아이들을 보면 도움을 주고 싶고 보살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 꿈을 택하 게 되었고 난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연 100C를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어린 탈북자들을 집에서 보살펴주게 된 한 아저씨가 나와서 강연을 했다. 그 아저씨는 집에서 6명의 아이들을 보살펴 주고 있었다. 서로 너무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느껴져 감동이었다. 그 때 그 아저씨 에게서 빛이 나는 것 같았고, 너무 멋있어 보였다. 그 아저씨의 외모가 멋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 려 키가 조그맣고 통통했다. 하지만 너무 멋있었고,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그 때였던 것 같다 한국 아이들뿐만 아니라 북한 아이들도 얼마든지 보살펴줄 수 있는 보육원을 차려 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그렇게 내 꿈을 또 한 번 더 구체화 되었다는 것이 너무 뿌듯했다. 그날 이후로 북한에 대한 관심이 점점 많아졌다. 기사도 북한에 관한 기사가 내 눈에 더 띄었다. 사실 그런 기사를 보면 북한과 우리나라 사이의 안 좋은 일들이 더 많이 쓰여있다. 하지만 자꾸 눈이 가고, 더 알고 싶었다. 하루는 싸이 공유를 보다가 ‘북한에 기형아가 없는 이유’로 올라와 있는 캡쳐를 보게 되었다. 그냥 북한에 대한 내용이라면 무조건 들어가 보았던 나는 그 글 또한 바로 클릭해서 들 어가 보았다. 내용은 이러했다. 한 프로그램에 북한 의사가 나왔는데 북한에 기형아가 없는 이유는 기 형아라는 것을 알게 되는 즉시 신생아를 땅 속에 묻어버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그 말을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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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자기는 사실 아이를 나무 밑에 묻으면서 아무런 죄책감도 없었고, 오히려 당연하게 여겼는데 여기 와서 한국 사람들을 만나보니 그건 사람이 할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고, 그 행동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너무 틀린 것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녀가 말했다. 제발 도와달라고 북한 상황이 이렇다고 그렇게 죽어가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고. 마음이 아팠다. 그 아 이들이 무슨 죄일까, 그 부모들은 또 무슨 죄일까. 만약 그 아기들이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그렇게 나무 밑 차가운 곳에서 죽어갔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보호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더 간절히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의사가 이렇게 말했다 “통일이 언제 될지는 모르지만 우리 모두 정말 노력하길 바래요. 북한은 정말 살기 힘든 나라예요. 생각이 바뀌어야 해요. 도와주세요. 정말 무고한 아기들,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만약 내가 무언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 든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난 아직 어리고, 지금 당장은 내가 대통령이 아닌 이상 그 무엇도 할 수 없 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미래에 태어날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통 일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통일을 위해 나 같은 학 생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았다. 첫째, 통일은 내가 만든다는 주인 정신을 가져야 한다. 힘들고 귀찮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지 말고 내가 맡아서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하기 싫다고 다른 사람에게 미룬다면 그 사람 또한 좋 아할 리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현대인들의 문제점 중 하나는 ‘대중화’이다. 익명성 속에 자기 자 신을 숨긴 채 무책임하게 살아가려는 특징이 나타난다. 어려운 일도 해보려는 도전 정신과 의욕적인 청소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통일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주인으로서 ‘우리 문제’ 라는 인식을 갖 고 해결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남과 북의 모든 민족 구성원은 남의 문제가 아닌 우리 자신의 문제인 통일 문제에 보다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대부분 청소년의 공통적인 현상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부모님께, 선생님께, 친구에게, 다른 사람들의 도움에 기대려고 한다. 이는 자신감이 부족해서이다. 따라서 청소년들은 강한 의지력을 키워야 한다. 통일 문제도 우리 세대에 반 드시 이루겠다는 강인한 의지력을 갖는다면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성취될 것이다. 통일에 대한 강 한 의지는 어떠한 장애도 극복할 수 있다. 이는 통일을 원하건 원하진 않건 어차피 우리 민족 개개인 의 삶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는 자신의 큰 목소리보다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들을 수 있는 겸손한 태도와 마음의 여 유를 가져야 한다. 오만은 결코 겸손을 이길 수 없음을 명심하고, 자신감도 중요하지만 겸손한 태도 로 상대방의 말을 들어 줄 수 있는 겸허한 자세를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통일 문제에 있어서도 청 소년들은 경제력이나 국력이 앞선 우리 입장만 생각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북한의 입장도 고려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겸허한 자세로 남북 관계를 이해하여야 한다. 우리 자신만을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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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청소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남북이 통일을 위해 민족 구성원 모두가 열심 히 노력할 때 “통일은 나와 무관한 일이다.”, “통일이 되면 나에게 무슨 좋은 일이 생기나?”, “지금 이 대로가 더 좋다.”, ”통일이 되면 못 사는 북한 주민을 위해 세금을 한 푼이라도 더 내야 되는 것이 아 닌가?”, “통일에 대해 관심 없다.” 는 대답을 한 청소년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청소년이 되어 서는 안 된다. 사랑은 ‘주는 것보다 받을 때’ 행복할 수도 있지만 ‘받는 것보다 주는 것’ 에 대한 기쁨은 몇 배 더 크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부모님, 형제 자매, 친구, 주변의 이웃 등을 서로 사랑하고 아껴 줄 때 자신의 성장과 국가의 성장이 함께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북한 동포들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없이는 결코 통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서로에게 나누고 베풀고 아껴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현재 북한은 심각한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많은 어려움에 처해있다. 우리도 어려운 계층이 많지만 북한에는 단순히 어려운 계층을 넘어 생존까지 위협 받는 계층이 존재하고 있다. 생존 의 위기에 빠져 있는 북한 동포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참여하는 ‘나눔의 정신’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 나눔은 ‘물자의 나눔’으로 시작하지만, 저절로 ‘마음의 나눔’으로 연결 된다. 상대적으로 넉넉한 우리 들의 물자의 나눔은 북한 동포들에게 인도주의 정신에 따른 따뜻한 마음도 전달할 것이므로 결국에는 마음의 나눔으로 확산될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 이 물자가 화해의 비둘기 역할도 할 것이므로 마음 의 통일에도 기여할 것이다. 셋째, 우리가 하나된 민족 의식을 가지려면 ‘화해 의식’을 가져야 한다. 남북한은 아직 서로를 하나의 동포로 껴안으려는 의식이 부족하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 주민을 다른 민족이 아니라 동포라는 사실로 부터 출발하여 한반도 민족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화해 의식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 와 낯선 것들, 예를 들면, 피부나 언어, 관습 등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다름을 이해하고 포용할 줄 아 는 폭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우리는 선진 외국인에게는 무조건적인 동경을, 동남아나 아프리카 사람들을 멸시하는 사고방식을 은연중에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고에는 우리 마음 속에 차별 의식이 내재되어 있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 청소년들이 친구들을 왕따 시키는 것도 이러한 시각이 들어가 있 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 청소년들은 종종 나와 다르게 생각되고 이해가 안 되는 친구들을 왕따 시킨다. 단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왕따 당하는 친구의 고통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통일은 이질적으로 살 아 온 사람들이 같이 어울려 사는 것이다. 서로 다른 교과서로 공부하고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온 북 한의 아이들과 함께 사는 것이다. 이 ‘함께 살기’를 위해 우리 청소년 들은 ‘왕따 안 하기’ 부터 실천하 여 통일을 위해 다름을 이해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내가 이것들을 다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차근차근 해보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리 고 무슨 일이든 ‘나 혼자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가 아닌 ‘내가 시작을 하면 누구든 한 명쯤은 보고 따라 하지 않겠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내가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뛰어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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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나를 통해 통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모 든 것이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에 감사하다. 너무 큰 꿈일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육 원을 짓기 전에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고, 지은 그 날부터 길에서 돌아갈 곳 없이 굶으면서 서성이는 버려진 아이들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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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사랑이 곧 나라사랑

<우수상> 한림대 총장상 하노이 한국국제학교 고등 3학년 곽 정 현

내가 10년째 살고 있는 이 곳 베트남은 한류의 열풍이 대단하다. 한국 기업이 지은 아파트는 물론 한국의류며 학용품, 그리고 김치와 라면과 같은 음식에 이르기 까지 ‘made in Korea’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축구를 즐기는 베트남 아저씨라면 아시아를 대표하는 우리나라 박지성 선수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그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가 작년 보조교사로 봉사활동을 했던 ‘한국어학당’ 에는 한글을 배우려는 베트남 사람들로 항상 교실이 가득 찼었다. ‘한국어학당’은 우리 하노이한국국제학교의 선생님들께서 만드신 봉사단체로, 한국어 배우기를 열 망하는 베트남 사람들을 대상으로 만든 일종의 무료 ‘야학교실’과 같은 것이다. 나도 거기서 보조교사 로 봉사를 하면서 가끔은 직접 수업을 지도해보기도 했었는데, 얼마나 열심히 들으시던지 내가 더 긴장 할 정도였다. 매번 숙제도 빠짐없이 해오시고, 심지어는 수업이 끝나고 개인적으로 더 배우고 싶다며 조르시는 분들도 계셨다. 그 만큼 그들에게 있어 한국어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자 절실함이 되어있었다. 갈수록 뜨거워지는 그들의 ‘한국어’에 대한 열의를 보면서 나는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우리말의 소중함과 자부심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해외에 오래 거주하면서 한국어를 제대 로 못해도 당연한 것인 냥 대수롭지 않을 걸로 넘길 때가 많았다. 그 대수롭지 않음이 부끄러움으로, 그리고 우리 역사에 대한 무지가 수치심으로 느껴지면서, 나는 내가 오히려 진정한 한국인으로서 더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느껴졌다. 한때 나는 영어 계 국제학교를 다니면서 영어를 잘하는 것이 최고인줄 알았었다. 한국어는 몰라도 괜찮고 영어를 못하는 것은 창피하다고 생각해서 하루빨리 원어민처럼 영어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했 었다. 그러나 중학교 1학년 때 하노이한국국제학교로 전학을 왔었는데, 바로 며칠 뒤가 ‘개교기념일’ 이라 학교가 휴교를 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개교기념일’이란 말을 알아 듣지 못해 나는 부 모님께 학교를 쉬는 이유를 설명드리지 못했고, 부모님은 그 일로 적잖은 충격을 받으셨다. 또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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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 후 처음 접하는 ‘한국사’ 가 너무도 어렵고 생소해서 매번 인터넷을 뒤지며 검색을 해야했다. 지금 은 그때의 일들이 한때의 재미난 추억거리로 남을 만큼 많이 나아졌지만, 그 당시에는 참으로 심각했 던 일이였다. 한국인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나는 그 무엇보다 한국어를 잊지 않고 바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중 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어를 잊어버리면 그 나라를 잊어버리고, 언젠가는 정체성 마저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그 잔혹했던 일제치하에서 가장 먼저 일본이 한 일이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빼앗 는 일, 즉 한국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스스로가 한국어를 지키는데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며 오히려 각종 은어들로 혼란스럽게 까지 하고 있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 작은 나라가 아님이 피부로 느껴진다. 불과 60년 전만 하더라도 전쟁으로 인하 여 모든 것을 잃고 타국으로부터 원조를 받던 그 불쌍하고 조그마한 한국은 어느덧 타국에게 꿈과 희 망을 심어주는 거대국이 되었으며, 이 곳 베트남만 보더라도 한국의 수많은 기업들이 진출하여 그 눈 부신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나는 내가 한국인임이 진심으로 자랑스럽고, 오랜기간 동안 한국을 떠나 있는 ‘제외국민’이 아닌 참다운 ‘재외국민’의 모습으로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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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국가의 이미지와 문화전파의 ‘창’

<우수상> 경상북도 청소년수련원 원장상 청도 이화한국학교 고등 3학년 김 유 리

세계에 부는 한국의 바람을 ‘한류’라고 부른다. 현재 세계의 많은 국가에 한류가 불고 있지만 중국 에서 한류의 힘은 한국의 뉴스매체에서 소개하는 것보다 더 엄청났다. 한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은 2000년도라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한국의 드라마 ‘겨울연가’, ‘대장금’ 등 많은 드라마가 중국에서 유행을 하게 되면서 한류가 시작되었다. 〈겨울연가〉는 ‘배용준’이라는 한류 스타를 배출했고, 〈대장금〉은 ‘한국 음식’의 붐을 일으키며 ‘이영 애’를 한류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드라마 ‘겨울연가’를 본 중국 일본 사람들은 ‘겨울연가’의 촬영 지를 실제로 보기 위해 우리나라를 방문하곤 했다. 그리고 대장금에 나온 우리나라의 음식을 보고 인 터넷에 레시피를 찾아보고 만들어보는 등 한국의 음식도 아주 널리 퍼지게 되었다. 대장 금이 방영되 던 시절 중국 길거리에서 중국 전통의상 ‘치파오’가 아닌 우리의 ‘한복’을 입은 중국 젊은 남녀를 많이 볼 수 있었다. 한류 열풍은 결코 2000년대에 끝나지 않았다. 지금은 한류열풍이 더욱더 세졌다고 할 수 있다. 길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한국 가수 아이 돌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고, 여러 가게에는 한국 연예인의 포스터가 붙여져 있다. DVD가게에 들어가면 어김없이 한국영화, 한국드라마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또 요즘 청소년이 많이 보는 잡지에는 한국가수들의 사진이 더 많고 한국가수들에 관한 정보가 훨씬 많은걸 볼 수 있다. 예전 중국식당을 가면 중국어를 잘 하지 못해 주문을 잘못 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메뉴 판을 보면 중국어 옆에 한국어로 일일이 다 표시 되어있고, 심지어 한국어 를 할 줄 아는 종업원이 많아 졌기 때문이다. 요즘 중국에서는 한국어를 할 수 없다면 취업이 어렵다 는 말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어를 가르치는 어학원도 많이 생기고 있고 서점에 가보면 한국어에 관한 책도 아주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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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로컬학교 재학 시절 중국 연예인을 잘 알지 못해서 친구들과 이야깃거리가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한류열풍 때문에 친구들은 대부분 한국 가수 한국 드라마에 아주 많기 때문에 소통거리가 생긴 것이다. 친구들은 나에게 한국가수에 대해 많이 물어보기도 하고 많이 궁금해 한다. 어찌보면 ‘나’ 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중국 현지 친구들도 있을 정도였다. 친구들이 사용하는 학용품을 보면 한국 아이 돌 가수의 얼굴이 있는 공책 아이 돌의 포스터가 있다. 한번은 학교에 도시락을 싸 간적이 있다. 한국 김치가 맵고 음식이 입에 안 맞을 법도 한데 중국 친구 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다 잘 먹었다. 더욱이 한국 음식에 관해 질문을 하는 친구도 많았다. 친구들은 김밥에 들어간 단무지를 신기해했고, 맛살의 맛이 아주 특이하다고 평가했다. 중국에서 오래 생활한 어른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중국은 아주 많이 변했다고 한다. 어른들은 예전 중국은 한국 사람들이 살기 힘든 환경이었다고 한다. 한국 제품도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중국 대형마트에도 가보면 수입물건을 파는데 그중 한국식품이 제일 많고 종류도 다양 하다. 그리고 중국 사람들이 제일 많이 사가는 수입제품도 한국제품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 한국 슈퍼도 많이 생겼다. 그리고 물건도 아주 다양하다. 어린 아이들에게 필요한 한국 장난감 우유부터 시작해서 학용품 과자 아이스크림 등 아주 다양하다. 그리고 한국의 편의점처럼 떡 삼각 김밥도 종류 별로 있을 정도이다. 중국에서 생활하는 재외국민 가족이 점점 많아지면서 슈퍼나 마트에도 한국과 다르지 않게 떡국도 많고 설음식도 만들어 판다. 한국 식당에는 한국 사람이 아닌 중국 사람들로 북적 인다. 또 한국식당 은 약간의 고급스럽지만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인테리어 때문에 귀품 있는 손님 중국에서 사업하는 사람 등 많은 높은 사람들이 찾기도 한다. 한국인에 맞는 식당 한국인에 맞는 카페도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다. 또 중국음식도 이제 한국인을 고려해 많은 종류가 있다. 중국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도 점점 많아지면서 중국도 많이 변했다. 한류는 중국의 의류에도 아주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인터넷 쇼핑을 하다 보면 중국 사이트에도 한국 사이트에 있는 똑 같은 옷을 판매하기도 한다. 또 수많은 한류 팬들을 위해 연예인이 입었던 옷 신었 던 신발을 대신 구매해주기도 한다. 한국 화장품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 좋아하는 선물이다. 한국 화장품을 한번 사용해보면 절대 끊을 수 없다고 한다. 명동 같은 곳을 가면 중국 사람들이 확실히 많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옷 가게 식당 다 중국 사람들이 많지만 그 중 화장품가게는 중국 사람들로 가 득 차 있다. 중국 관광객이 많기 때문에 화장품가게 직원도 중국어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한번 화장품가게에 들어갔는데 직원이 나한테 중국어로 말을 걸어 왔다 그때 놀라기도 했지만 그만큼 중국 관광객이 많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알기 때문에 기쁘기도 했다. 명동 같은 경우는 중국 관광객의 필 수 코스이기 때문에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중국어를 들을 수 있고 심지어 길거리 음식을 파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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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씨 아주머니도 간단한 중국어는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에 한류의 색깔이 배어 들어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류는 중국인이 한국인에 대한, 아니 'KOREA'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예전의 중국은 한국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그냥 중국 옆에 있는 작은 나라일 뿐이다. 하지만 지 금은 다르다. 지금은 한국은 잘 사는 나라 세련된 나라 근사한 나라로 인식이 되어있다. 중국은 드라 마 영화의 장르가 그리 다양하지는 않다 대부분이 무협영화 사극 드라마이다. 하지만 한국은 장르가 매우 다양하고 판타지도 아주 많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대해서 중국 사람들이 매력을 느꼈을 것이라 고 생각이 된다. 대형마트를 가면 우리나라 기업 삼성 LG 많은 전자상품이 있는데 그 중 삼성은 아주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요즘 보면 삼성 핸드폰 삼성 노트북을 사용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삼성 핸드폰은 중국의 젊은 층이 받고 싶은 선물 중 하나라고 한다. 북경에는 빕스 파리바게트까지 있다. 물론 가격이 약간 비싸지만 중국사람들이 아주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말에는 예약은 필수이고 줄도 서야 한다. 중국에도 한류열풍이 부면서 경제가 더 활발해졌다. 중국과 한국이 지리적으로도 멀지 않고 서양 문명보다 유사한 부분이 많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 한국의 많은 대학에 서는 한류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전공도 생겼다. 그래서 중국으로 와서 공연을 하고 방송에 출연하 는 연예인도 많아졌다. 한류열풍이 거세지면서 많은 엔터테이먼트도 이제는 중국에도 엔터테이먼트 를 설립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요즘은 연예인도 성공하고 싶으면 먼저 중국인의 마음을 사로잡 아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한류는 더 이상 일부 연애인들의 인기와 경제적 이익 창출로 끝나지 않는다. 과거 영국에서는 미국 에 영국의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영국의 토종 새를 전략적으로 분양한 경험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세계화 시대에는 국가의 이미지와 문화가 국가의 경쟁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한류를 기 반으로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과 문화를 세계에 전파함으로서 세계의 중심국가로 자리 잡아야 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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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한국인이에요

<우수상> 경상북도 청소년수련원 원장상 동경 한국학교 고등 2학년 박 보 영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일본'이라 하면 ‘일제 강점기’ 혹은 ‘독도’를 떠올리며 부정적인 감정을 우선 갖게 되는 것이 일반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일본'이라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제2의 고 향’이라는 생각입니다. 제 생각에 몇몇 사람들은 놀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한테 당한 끔찍한 일들을 모르느냐고요? 아니요. 다 알고 있습니다. 아니면 ‘독도’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갈등을 모르는 것이 아니냐고요? 아니요. 그 문제도 뉴스에서 자주 봐서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들을 생각하면, 저도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일 본을 좋게만은 생각할 수는 없지요. 그래도 일본이 저의 '제2의 고향'인 것은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에게 ‘처음’이 되는 경험이 일본에 많이 있기 때문이지요. 저는 처음으로 살게 된 집, 처 음으로 추억을 만든 곳, 처음으로 친구를 사귄 곳이 일본입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배운 언어도 한국 어가 아닌 일본어였습니다. 어느 날 문득 눈을 떠보니 제 입에서 흘러나오는 언어는 일본어였습니다. 주변을 보니 모든 저의 또래 아이들, 심지어 어른들도 다 일본어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들리는 게 모두 일본어였습니다. 유 치원생 때였습니다. 저는 일본 유치원을 다녔습니다. 유일하게 한국어를 들을 수 있었던 공간은 우리 집이었습니다. 비록 조금이지만요. 제가 살던 동네는 한국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곳이어서, 유치원에 는 우리 가족 말고는 한국사람이 없었습니다. 솔직히 그 동네에서 한국사람을 본 기억이 없네요. 유 치원을 졸업할 때쯤, 부모님께서는 저를 지금 다니는 동경한국학교에 입학시키려고 이 동네 신주쿠 로 이사 왔습니다. 저는 이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일본 유치원에 다니고 있어서 항상 일본어로만 말을 했었습니다. 그 래도 엄마께서 제가 엄마를 ‘お母さん오카아상’이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하셔서 그나마 가족 호칭은 제 대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3년 다닌 유치원에서는 항상 일본전통이나 문화, 언어 등을 배웠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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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에 이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것이 색다르고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여러 가지를 배우다 보니 저는 저의 모국인 ‘한국’에 대해 서서히 알아가고 있었고, 한국어가 이렇게 많이 늘어 이제는 한국에 가도 친척들과 예전보다는 원활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주변에는 저처럼 일본 유치 원을 다녀, 일본어가 편한 친구들이 많아서 학교에서도 일본어를 많이 썼었습니다. 하지만 5학년 때, 저는 우연히 한국에서 전학 온 전학생 친구 옆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친구와 매우 친해져, 그 친구와 같이 다니면서 주변에 한국에서 전학 온 지 얼마 안 된 한국어 잘 하는 친구들이 많아져서 그 이후로 한국어를 많이 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일본어보다 한국 어가 더 편할 정도입니다. 제 주변에 환경이나 친구 덕분에 많이 변했고 한국을 예전보다 더 좋아하게 되었지만, 가장 큰 원인을 일본에 유행하기 시작한 한류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의 한류의 시작은 2002년에 일본에 방송된 드라마 ‘겨울연가’입니다. 제가 유치원생 때 방 송한 드라마죠. 아, 그때 제가 겨울연가에 OST 곡을 정말 좋아해서 자동차 안에서 항상 들었던 게 생 각나네요. 그 이후로 여러 한국 드라마를 즐겨보았습니다. 요즘은 TV에 정해진 시간에 예전에 한국 에 방송했던 드라마뿐만 아닌 최신에 한국에서 방송했던 드라마들을 다수 채널에서 방영하고 있습니 다. 그때까지 음악보다 한국 드라마를 즐겨보고 있었는데 5학년 때, K-POP을 만났습니다. 그때 한 창 BIGBANG에 ‘붉은 노을’ 등 여러 곡이 유행했었습니다. 5학년 때, 응원단을 하면서 쥬얼리에 ‘One more time’, BIGBANG의 ‘마지막 인사’, 그리고 5학년 전체가 공으로 하는 율동을 원더걸스에 ‘Tell Me’에 맞춰서 하면서 많은 K-POP 곡들을 만났습니다. K-POP덕분에 처음으로 춤이라는 것에 도전 을 해보고, 한국에서 노래방에 가서 처음으로 노래를 제대로 불러보고, 처음으로 춤과 노래를 좋아하 게 되었습니다. K-POP덕분에 많은 ‘처음’을 만났습니다. K-POP이라는 것을 몰랐었을 때, 저는 사 촌이나 친구들이 말하는 가수나 곡 이름을 말해도 잘 몰라서 대화를 원활하게 못 했으나, 지금은 이제 는 다 알아서 사촌이나 친구들과도 대화를 원활하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아빠께서는 한국에 출장을 다녀오시면 항상 K-POP 음반 앨범 1개 이상은 사서 오셨습니다. 요즘은 한국 아이돌 가수들이 일본에서 한국노래를 부를 뿐만 아니라 일본 노래로 편집해서 불 러 음반을 내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면서 일본 방송에도 자주 나오고, 일본에서 콘서트도 자주 합니다. 저도 종종 K-POP 가수들이 일본에서 하는 콘서트에 갑니다. 저는 일본에 살면서도 이렇게 K-POP 가수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게 정말 기뻤습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싫어했던 김치나 떡볶이 같은 매운 음식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 전에는 일본 라면을 많이 좋아했지만, 이제는 항상 한국에 신라면을 먹을 정도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부터 1년에 1번씩 여름방학 때마다 한국에 돌아갔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왠지 모르게 한국에 가는 것 을 무척 싫어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날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마 그때는 제가 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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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인 ‘한국’을 잘 몰라서 그랬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이 동네도 한국학교가 있어서 그런지, 한국사 람이 많이 살고 또한 한국 가게가 많아서 길을 걸을 때 꼭 한번씩 한국어가 들립니다. 특히 쇼쿠안도 오리나 오오쿠보인 경우, 한국 노래방이든 한국 식당, 한국 가게가 많아, 한국사람 외에 한류에 유행 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 곳을 방문하여 주말에는 항상 붐벼있습니다. 그리고 길거리에 한국 노래가 흘 러서 그 길거리를 걸으면 꼭 한국 홍대 앞 길을 걸어가는 듯한 기분입니다. 이렇게 주변에 한국문화가 많이 생기다 보니, 저 자신도 이렇게 변해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 니다. 그래도 이렇게 변한 제가 싫지도 않고, 오히려 일본에 오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라는 나라와 더 가까워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요즘은 그런 한국에서 대학생활을 보내보고 싶어서, 한국 대학에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직 한번도 한국에서 제대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생각만 해도 불안하기도 하고, 가슴 떨리기도 하지만, 나중에 한국에서의 생활이 너무 기대되기 때문 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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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내 고향은 한국이다

<우수상> 경상북도 청소년수련원 원장상 Grace International School 고등 2학년 윤 예 람

보통 사람들은 고향을 그리워 할때 번뜻 생각나는 곳이 있을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많은 곳에서 살 아보고, 모국이란 곳에서 거의 살아보지도 못했다면 생각이 다를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고향이 어디 냐고 물어볼때마다 가끔 어려움에 시달리게 된다. 내가 내 고향의 정체성을 몰라서 고민하는게 아니다. 사람마다 다른 그 질문의 정황을 몰라서 고민을 하게 되는것이다. 자기가 태어난곳이 고향이라면 내 고향은 필리핀이다. 자기가 제일 오랫동안 살아본 곳이 고향이라면, 내 고향은 아프가니스탄이다. 자기가 제일 편하다는 곳이라면, 내 고향은 태국이다. 하지만 이 모든 질문들을 제외하고 내려놓는 다 면, 내 마음속 뿌리 깊게 박혀있는 고향이란 곳은 따로 있다. 그 고향의 대한 느낌은 말로 완전히 표 현할수 없을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노력을 하면서 찾아보게 되면 언젠간 나도 모르게 내 고향에 대한 완전한 정체성을 찾을수 있을것 같다. 내가 여태까지 걸어온 길은 참 복잡한 길이 었다. 많은 일들이 일어낫고, 그 많은 일들 중에서 행복 했던 날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지금 뒤돌아 보면서 여태까지 있던 일들을 뒤집어 보면 그 많은 일들은 이유가 있어서 일어난 일들같다. 부모님이 외국에 나오셔서 그런지, 나는 한국에서 보통 학교를 다니 는 그런 보통인 학생들이 겪어보지 못한 일들도 많이 겪어 봤다. 그 많인 일들이 나에게 인상을 주었 고, 그 인상들로 인해 나는 추억을 쌓아 갔다. 그 많은 추억들이 시냇물처럼 하나의 추억의 바다가 되 어서 지금의 나를 빛어 주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국의 문화를 벗어나 다른 문화들을 외국에서 많이 접하게 되었다. 이 많은 문화를 접하면서 나에게는 미치는 외국인들의 영향이 생각보다 많이 보 이기 시작되었고, 그 미쳐진 영향이 문제를 접하는 나의 방식을 보통 한국에서 살고있는 아이들과의 방식으로 부터 많이 달라지게 하였다. 슬프게도, 이렇게 한국의 문화와 언어로 부터 점점 멀어지는 나 를 나혼자서도 느낄수 있다. 아무리 한국의 문화를 더 접하고, 언어를 더 배워볼려고 오두방정을 쳐 도, 피할수 없는 이 외국인들과의 삶의 영향을 난 계속 받고 있다. 이 속도로 계속 내 문화와 멀어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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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면 나도 어느순간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자리에 놓여 있을것 같아 무섭다. 하지만 내가 완전히 외국인이 되어가고 있는건 아니다. 어렸을때부터 한국인이란 정체성을 가르쳐주신 분들이 계시기 때 문이다. 한국어만 집중하셔서 가르쳐주신 어머니가 있으셨기 때문에, 집안과 밥상 앞에서는 한국어만 하기로 약속하게 하신 아버지가 있으셨기 때문에, 내 기억속 나란 아이는 한국인이다. 한국인으로 키 워주신 어머님과 아버님께 감사드린다. 지금의 나는 만족할수 있다. 내 자신을 보면서 만족할 수 있게 기회를 주신 분들은 부모님이다. 주변에 있는 한국인들 중에서 한국어를 잘 못하는 애들이 종종 있는 데, 그런 학생들을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오게 된다. 만약이라도 나의 부모 님께서 나에게 내 모국어를 집중해서 가르쳐 주시지 않으셨다면, 나도 영어 밖에 할줄 모르는 아이가 되었을게 뻔하다. 나에게는 그들이 제일 안타 깝다. 자기 자신의 모국 언어를 못하는 아이들도 마지막 에 돌아갈 곳은 모국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나는 태국에 있는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다. 실망스럽게도 우리학교에 다니는 한국인들의 이미 지는 그다지 좋지는 않다. 매너좋고 착한 한국인의 이미지는 어디로 갔는지, 남은것은 예의없고 자기 중심인 인간들이란 이미지 밖에 없다. 외국인들은 접근 하기 어려워진 우리 한국인들을 피하거나 욕 하고 다니기도 한다. 이런 한국인의 이미지와 외국인들의 인식을 지켜보면서 나는 한국인들과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더이상 한국인들과 어울리지 않았고, 일부러 피해 다니기도 하였다. 덕분에 외국인 들의 생각을 조금씩 조금씩 바꿔나가는것 같다.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늘 이런 소릴 듣게 된다, “넌 다 른 한국 애들관 다른 것 같네, 더 착하고 어른들을 공경하는것 같고,” 또, “한국이들은 거의다 싫은데 넌 괜찮다?”라는 소릴 들으면서 한편으론 기뻣지만 다른 한편으론 외로움과 민족에 대한 실망과 원 망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운좋게도 나와같이 한국인들에 대한 나쁜 고정 관념들을 고치려고 노력하 는 아이들이 몇몇 있어서 괜찮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거의 40% 채우는 우리 학교에서 나와 같은 아 이들은 0.1% 밖에 불구하다. 한번 좋은 일로 인해 한국인들의 이미지가 좋아지면, 누군가가 짠것처럼 한국인들의 이미지를 다시 땅바닦에 내리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과, 외국 으로 나온 부모에 대한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찬 아이들이 자기생각 밖에 안하는 모습때문에 한국인 들을 좋게 생각하기 어렵다. 이렇게 어렵게 하루하루를 지내지만 난 계속 노력할것이다. 한국인들의 이미지가 좋아질때까지 난 노력할것이다. 왜냐? 그건 내가 한국인으로써 느끼게 되는 민족성, 애국 심이 울어나오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한 나의 마음을 표현하자면, 고아와 같은 마음일 것 같다. 주변 의 소문과 한국인들에 대한 안좋은 고정관념을 느끼고, 그때마다 한국인들이 미워지고 내 자신이 싫 어 지지만, 어쩔수 없이 내 마음에 박힌 내 나라에 대한 사랑은 멈출수 없는 것이다. 마치 버려진 고 아처럼. 아무리 힘든 상황과, 부모를 원망할 일들이 있어도 마음속 한 구석에는 부모를 찾고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여전히 어딘가에 둥둥 떠다녀 있는 것처럼. 나는 한국인이고, 돌아갈곳은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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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없다. 이런 마음을 까먹지 않고 어딜가든, 미국으로 대학을 가든, 직업을 미국에서 얻든, 늘 한 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살것이다. 이 그리운 마음을 하루하루 키워 나가면서, 주위에 있는 한국인 들과 함께 나누며 우리의 정체성을 잃지 않게 도와주고 싶다. 더이상 워너비 외국인이 아니라, 자신 감 넘치는 한국인으로 살아가면서 이 차별이 심한 세상을 화이팅 넘치게 살아 가도록 노력할것이다. 나는 훌륭한 한국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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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우수상> 경상북도 청소년수련원 원장상 방콕 한국국제학교 고등 2학년 강 영 은

우선 우리말을 사랑하기에는 우리말이 무엇인지 어디서 왔는지 잘 알아야한다. 우리말은 ‘한국인이 이용하는 언어이고 형태상으로는 교착어이고, 계통적으로는 알타이 어족에 속한다. 한반도 전역 및 제주도를 위시한 한반도 주변의 섬에서 쓴다’라고 백과사전에 기재되어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언어는 다른 나라언어와는 달리언어생성 방법이 독창적이다. 다른 나라는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반영하면서 발 전했지만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언어를 독창적이게 개발하여 다른 나라언어보다 더 쉽고 빠르게 습 득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나라 어를 정확히 알아가면서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나라말 을 사랑하기에는 우리나라 어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야하고 우리말의 자긍심이 높아야한다. 하지만 요 즘에는 우리나라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다른 나라를 더 좋아하고 다른 나라의 언어를 더 좋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를 들어 요즘에는 영어가 중요하다고 어릴 때부터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영어 를 하는 것을 강요한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아직 우리말도 제대로 할 줄 모르고 원하지 도 않는 아이한태 영어를 배울 것을 강요한다. 심지어는 아이에게 영어가 더 중요하다고 영어를 구사 하는 나라에 가서 사는 경우가 많다. 물론 다른 나라에 가서 사는 것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나또한 다른 나라에서 공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 산다고 해서 우리말을 덜 중요시 하게 여기고 다른 나라 어를 중요시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영어를 강요받은 아이는 무엇을 배우겠 는가? 당연히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1순위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한 대학에서 실시한 <만약 다 시 태어난다면 어디서 태어날 것인가>라는 연구결과가 있었는데 대답을 한 60%가 영어를 구사하는 나라에서 태어날 것을 원했다. 이 안타까운 결과를 보면서 왜 이들이 영어를 구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길까? 생각해 봤는데 영어를 구사하는 미국이나 이런 나라는 우선 경제적으로도 순위가 높고 미국 이라고 말하면 모르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미국의 수도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이렇게 미국이 강력한 나라다 보니 강력한 나라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 것

제 5회 지구촌 청소년 한글사랑 글짓기 대회 수상작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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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발전해야 된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발전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 지 않는가. 그래서 우선은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우리나라 언어를 사랑하자 라는 근본적인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어를 사랑하면서 다른 나라 사람에게 우리나라 언어를 전 파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얼마 전에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대 택시기사 아저씨가 한국 어를 하면서 반갑게 맞아주시면서 한국어를 하시는데 정말 듣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아저씨 가 말을 하면서 발음을 잘못하면 제대로 알려주고 이러면서 우리나라 언어를 알려주는 것이 정말 기 분이 좋았다. 그래서 나는 이들도 이런 마음을 느끼면서 한국어를 사랑하라고 한국을 사랑하라고 말 해주고 싶고 당신은 어디나라 사람입니까 라고 누군가 물을 때 자랑스럽게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 라 는 것이 정말 기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고 알려주고 싶다.

제5회 한민족청소년 글짓기 대회수상작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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