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나, 너, 우리의 꿈
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2014 월드프렌즈 NGO봉사단
2014 월드프렌즈
꿈꾸는청년봉사단
NGO봉사단
활동보고집
나, 너, 우리의 꿈
너, 우리의 꿈
2014 월드프렌즈 NGO봉사단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나, 너, 우리의 꿈
목차
contents
1. 꿈봉, 시작 ● 꿈꾸는청년봉사단 소개 .....................................................................10 ● 발간사 .....................................................................................................11 ● 꿈봉 단원 소개......................................................................................12 ● 국내교육.................................................................................................15
2. 꿈봉, 꿈꾸다 ● 파견국 적응기 ......................................................................................23 ● 파견단체별 프로그램 .........................................................................35 ● 탐방 공모전 프로그램 ........................................................................75 ● 프로젝트 공모전 프로그램 ...............................................................89 ● 현지에서 바라본 꿈봉 ........................................................................103
3. 꿈봉, 날다 ● 6개월 간의 꿈 ......................................................................................117 ● 귀국환영회 ............................................................................................165 ● 앞으로의 꿈봉에게 말한다 ...............................................................169
chapter.
꿈봉, 시작
꿈꾸는청년봉사단은 대한민국 청년들이 개발도상국에 파견되어 6개월간 현지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지구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통해 꿈을 꾸는 세계시민으로 성장하는 프로그램입니다.
● 꿈꾸는청년봉사단 소개 ● 발간사 ● 꿈봉 단원 소개 ● 국내교육
1. 꿈봉, 시작
꿈꾸는청년봉사단 소개
발간사
꿈꾸는청년봉사단(이하 ‘꿈봉’ )은 대한민국 청년들이 개발도상국에 파견되어 6개월간 현지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
안녕하십니까,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 회장 문영기입니다.
며 지구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통해 꿈을 꾸는 세계시민으로 성장하는 프로
2013년 29명의 꿈꾸는청년봉사단 1기에 이어 2014년 꿈꾸는청년봉사단 2기 단원 14명이 활동을 무사히 마치
그램입니다. 만 16세~만 23세의 대학생이 아닌 청년에게 새로운 경험의 장을 마련해줌으로써 타문화에 대한 이해
고 건강하게 귀국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한국을 벗어나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다른 환경
를 돕고, 이를 통해 자기 성찰과 진로 탐색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본 프로그램은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 한
에 적응하고 활동하면서 삶을 성찰하고 미래를 고민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인 만큼, 성공적으로 활동을 마치고 귀국
국국제협력단(KOICA), 국제개발NGO 3개 기관이 협력하는 ‘월드프렌즈 NGO봉사단’ 사업의 하나로, 2013년도에
한 우리 젊은 단원들이 더욱 반갑고 고맙습니다.
29명의 꿈봉 1기를 5개국에 파견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꿈봉 2기는 2개국, 3개 단체(생명누리, 캠프, 한국YMCA 전국연맹),
4개의 사업장에서 14명의 단원이 교육, 농림수산 분야로 파견되어 개발도상국 지역사회의 발전에 기여하
1기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꿈, 고백> 발간에 이어, 2기 꿈꾸는청년봉사단의 값진 경험이 <나, 너, 우리 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이 보고집은 14명의 꿈봉 단원들이 6개월 동안 필리핀, 네팔 현지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새롭게 시도하고,
였습니다.
나누고, 공감하고, 공유해서 이루어 낸 수많은 활동들을 담고 있습니다. 지구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스스로 과제를 만들고 이를 실행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한걸음씩 청년 단원들의 커가는 모습이 담겨있어 참으로 흐뭇하고 대견합 니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라 끊임없이 문제에 부딪히지만 자신이 무엇인가 해낼 수 있는 자신감으로 하나씩 해결 해 나가는 14명의 소중한 경험과 과정은 단원들이 만들어 낸 활동 결과물 이상의 감동을 줍니다. 모쪼록, 이 보고집 이 꿈꾸는청년봉사단에 대한 여러분의 이해를 돕고, 좀 더 큰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안내하는 좋은 책이 되기 를 바랍니다. 꿈꾸는청년봉사단의 파트너가 되어준 생명누리, 캠프, 한국YMCA전국연맹의 든든한 지원에 감사 드리며, 현지 에서 부모의 마음으로 꿈꾸는청년봉사단을 이끌어주신 지부장님들과 현지직원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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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청춘, 꿈꾸는 청년들에게 가장 큰 감사와 격려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모집/선발
교육
파견 및 활동
모니터링
사후관리
(14년 7~8월)
(14년 9~10월)
(14년 10월 ~ 15년 4월)
(파견이후 ~6개월)
(15년 5월~)
파견 NGO
KCOC 교육
●사업설명회
●봉사단 자질함양
●수요조사
●국제 개발 이해
설문평가
출국 및 활동
●파견분야별
또 다른 시작을 위해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단원대상 평가
업무 수행
●서류접수(단체)
●안전교육
●비상연락망 구축
●단체심사
●봉사단 실무 이해
●업무보고서 제출 ●특별프로그램 진행
●파견단체 선발
파견단원
귀국모임
꿈꾸는청년봉사단이 앞으로 더 의미 있는 사업으로 발전해 나가기를 바라며, 꿈꾸는청년봉사단원의 꿈을 위한
파견 NGO교육 (국내 및 현지 교육)
파견지원
현장평가
●단원모집 공고
●단체별 사업이해
●왕복항공권
●지원서 접수(단원)
●파견사업장 이해
●생활비 및 주거비
●단원 심사/면접
●현지어 교육
●보험 및 의료
●파견단원 선발
●안전교육
●건강검진 / 예방접종
후속 프로그램
●국별 진행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
●정착비, 교육비 등
10
회장 문영기
11
1. 꿈봉, 시작
꿈봉 단원 소개
[생명누리]
[생명누리]
[캠프]
[캠프]
[캠프]
[캠프]
[캠프]
강나희 (20세)
박나영 (20세)
김규원 (19세)
전동훈 (20세)
정의석 (21세)
김보미 (멘토/25세)
복원용(멘토/33세)
동그란 얼굴, 짧은
나영이라는 이름보다는
평화와 민주주의를
타워빌의 농부,
음악을 좋아하고 새로운
어느 곳에 가든지
법학과 NGO를 공부하고,
곱슬머리, 고전부터
빡나라고 불리는 것을
사랑하는 똘똘이 스머프
화덕 만들기 장인.
것에 흥미를 많이 느끼는
한국요리를 만들어 낼 수
합창과 힙합을 좋아하며,
현대문학까지 거의 모든
좋아한다. 네팔에서 6개월
국제개발협력에
정의석
있는 요리하는 영양사
함께하는 공동체를 꿈꾸는
장르의 소설을 좋아하며
만에 오니 한국말도 영어도
흥미가 생긴 꾸야 단
택견이 특기인 소녀
네팔어도 안되는 국적불명
몽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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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20살이 되었다.
[캠프]
[캠프]
[캠프]
[한국YMCA전국연맹]
[한국YMCA전국연맹]
[한국YMCA전국연맹]
[한국YMCA전국연맹]
김다미 (20세)
이은서 (19세)
장희제 (21세)
경근혜 (21세)
신종민 (20세)
임이경 (멘토 /25세)
박재성 (20세)
공연기획을 좋아하고,
기타치는 것을 좋아하는
타워빌 도서관의 인형극
하늘 하늘 기타치는
무지개빛 산파블로 시티의
마음껏 울고 웃던
필리핀의 스타일을
먹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 사회적 경제를 공부
담당. 웃음이 매력적인
스포츠녀 근혜
시크남 종민
금니 매력 임이경
주름잡았던
순수소녀
하고 싶은 학생
타워빌 어린이들의 대통령
12
귀여운 사과머리 재성
13
국내교육
2014 월드프렌즈 NGO ‘꿈꾸는청년봉사단’ KCOC 국내교육 1주
분류 날짜 주제
시작 시간
22일 (월)
23일 (화)
자기이해 , 관심형성
-
2주
24일 (수)
25일 (목)
26일 (금)
29일 (월)
세계시민, 성감수성
세계시민, 재능발견
봉사단 이해
세계시민, 소통
-
-
산행,희망(4:00)
-
-
-
이동(8:30)
빈곤 (KCOC개발강사-
성공의 기억을 디자인하라.
안전관리 체계
조현민)
(청람 M&C
월드프랜즈 꿈꾸는청년 봉사단 활동지침 안내
-
30일 (화)
1일 (수)
국제개발이해, 활동지침 나의기대 기관별 교육
2일 (목)
3일 (금)
보건안전
파견
(F&C 컨설팅 - 조경 외 2명)
10:00
접수
10:30
O.T
관계형성
세계다양성
아동, 인권
(놀이문화연구소
(KCOC개발강사
(KCOC개발강사
- 허재승 외3명)
- 어용주)
-박은혜)
단원의 하루 선배와의 시간
-정구영)
국제봉사 활동의 마음가짐 (활동가-김재령)
(KCOC-문영선)
12:00
점심식사
13:00
자기이해
13:30
(놀이문화연구소 - 허재승 외3명)
14:30
15:00
점심식사
점심식사
귀가 관계형성
환경
재능
퇴소
(놀이문화연구소
(KCOC개발강사
(액션러닝코리아
(예방접종)
- 허재승 외3명)
-성은경)
-김주현)
현지인과의 관계맺기 & 소통
성공의 기억을 디자인하라.
(활동가-김재령)
-정구영)
쉬는 시간
기관별 교육 (기관)
(청람 M&C
응급 처치 (광나루 안전체험관)
쉬는 시간
재난체험 (광나루 안전체험관)
15:30
자기이해 (놀이문화연구소
관계형성 (놀이문화연구소
- 허재승 외3명)
- 허재승 외3명)
17:30 19:00
성감수성
재능
(탁틴내일-이현숙)
(액션러닝코리아 -김주현)
현지인과의 관계맺기 & 소통
국제개발의 이해 (바보의 나눔
(활동가-김재령)
-민경일)
기관별 프로젝트
나의 건강지키기
저녘식사 오늘과 내일이야기
오늘과 내일이야기
조별 프로젝트
기관별 교육
기관별 프로젝트
(순천향병원 -유병욱)
(액션러닝코리아 -김주현)
오늘과내일 이야기
이동
(기관)
저녁식사
1.조별 프로젝트 2. 멘토교육
20:30 ~ 21:00
파견식
오늘과내일 이야기
오늘과 내일 이야기
오늘과 내일 이야기
오늘과내일 이야기
꿈봉의 밤
운 프로그램이었다.
: Do No Harm!
2주차 때는 1주차와는 다른 즐거운 분위기로 시작했다. 2주차 프로그램 중 종이 축구공을 만들며 아동인권에 대 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린아이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인권을 무시당하며 일한다는 것이 정말로 마
[국내교육 에세이/캠프/필리핀]
음 아팠다. 우리 몸 지키기 수업을 들으면서는 ‘아프지 말아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또한 풀어져 있는 우리 태도를 보고 호통 치신 유병욱 선생님께 잘 다녀온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안전체험관
교육이라고 했을 때 솔직하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은서 (19)
에 갔을 때도 비슷한 점을 느꼈다. 김재령 선생님의 강의가 기억에 남았는데 내가 다시 한 번 정신을 차리게 해준 강 의는 ‘Do NO Harm’ 이었다. 내가 올바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 가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수업이었다. 그리
언어, 특히 영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 마지막 날 들은 김재령 강사님의 수업도 내가 어느 누구에게 구속되지 않고 항상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
난 영어에 자신이 없어서 걱정을 많이 했다.
셔서 아주 중요한 것을 배웠다고 느꼈고 이것이야말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이루고 내가 배워 올 자세라고 생각했
하지만 그곳에서 배운 것은 영어가 아닌 인권, 건강, 서로간의 이해, 안전이었다.
다. 마지막 날 밤 멋지게 파티를 하고 편지도 열심히 썼다. 우리 팀에게는 대충 써서 좀 미안했지만 앞으로 같이 지내 면서 잘할 것이니 괜찮을 것이다. 내년 5월에 모두가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승이 과장님께서 원하신 대로 존중받고 사랑받는 멋진 만남이었다. 또한 이 만남이 6개월을 지낼 때 도움이 될 것 같아 매우 만족스럽다.
교육을 갔다 온지도 벌써 꽤 지났다. 나는 어떤 일을 앞두고 항상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면서 그것보다는 덜했다
➊
는 위안으로 지내기에 이번에도 최대한 긴장하고 조용히 2주를 보내려 생각하고 있었다. 그나마 위안이었던 것은 내가 파견되는 단체의 소속 인원이 많았다는 점. 그것을 믿고 출발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지금까지 갔 던 모든 캠프 중 가장 이상적인 캠프였다. 교육이라고 했을 때 솔직하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언어, 특히 영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영어에 자신이 없
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어서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배운 것은 영어가 아닌 인권, 건강, 서로간의 이해, 안전이었다. 그곳에서의 첫 프로그램은 놀이문화 프로그램이었다. 가장 인상 깊게 남았던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보통 이러한 캠프를 할 때 OT 느낌으로 놀이 프로그램을 하기는 했지만 이틀을 내리 놀이 프로그램만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 고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긴장했던 것 같다. 하지만 놀이문화 프로
➋
그램으로 서로간의 긴장은 사라졌고 이것은 다음 프로그램이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되어서 ‘참 중 요한 프로그램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놀이 프로그램을 마치고 나서 배움의 시간들이 이어졌다. 우리가 평소 학교 에서 배우던 대안적인 교육 느낌 덕분에 편안하게 할 수 있었다. 수업을 하면서 ‘난 정말 행복한 아이구나’ 라는 생각 이 많이 들었다. 단지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배고프지 않을 수 있고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이렇게 자유롭게 교육받을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고 행복한 일이었다. 매사에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가난한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첫주 프로그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새벽 등산이었다. 우리의 협동력과 목표 의식을 향상시키기 위해 준비 한 프로그램이었지만 반갑지는 않았다. 전날 빨리 자서 다행히 많이 졸리지는 않았지만 몸은 정말 피곤했고 정신을
16
➊ 국내교육 - 산 정상에서 ➋ 국내교육을 마치며
17
1. 꿈봉, 시작
차리기 위해 아무나 잡고 이야기를 했다. 날씨가 흐려서 일출을 보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올라갔기에 나름 만족스러
파견국에서 지켜야 할 자세
chapter.
꿈봉, 꿈꾸다
필리핀 캠프에서 텃밭 가꾸기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배운 점은 책임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 앞으로 저희가 각자 무슨 일을 하면서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각자 시작한 일에는 저희가 텃밭 프로젝트에서 한 것처럼 함부로 포기하지 말고 끝가지 책임을 진다는 마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 파견국 적응기 ● 파견단체별 프로그램 ● 탐방 공모전 프로그램 ● 프로젝트 공모전 프로그램 ● 현지에서 바라본 꿈봉
파견국 적응기
●
네팔 일상 9가지 이야기
●
필리핀, 그 참을 수 없는 무더움
●
필리핀 생활 적응기
2. 꿈봉, 꿈꾸다
네팔 일상 9가지 이야기 [파견국 적응기/생명누리/ 네팔]
박나영 (20)
바글룽 사람들은 다올라기리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겠지? 태어났을 때부터 보면서 살아왔을 테니까. 우리가 이렇게 감탄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웃길까?
모든 것이 신기했다. 처음 네팔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일주일간은 입에서 ‘우와~!’ 하는 감탄사를 달고 다녔다. 네팔 공항에 도착해서 작은 버스 터미널처럼 지어진 공항을 보며 ‘우와~!’ , 너무 낡아서 문도 안 닫힐 것 같은 택시를 보고 ‘우와~!’ , 날리는 먼지 때문에 차도가 황토색으로 보이는 카트만두 거리를 보고 ‘우와~!’ , 또 바글룽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낡은 다리 를 보고, 심지어는 길가에 쓰레기를 버리고 침을 뱉는 네팔인의 모습을 보고도 감탄이 나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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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할 수 없지만 말이다. 처음 일주일간은 네팔의 모든 것들이 재미있고 신기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차가 달리는 도로에 앉아있는 소를 보고도 놀라지 않게 되어 버렸다. 이제는 아무리 신기해도 ‘네팔이니까.’ 라는 생각으 로 무엇이든 받아들인다.
바글룽 한국에서 상상했던 바글룽은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큰 슈퍼도 없고 작은 구멍가게 2개 정도만 있는 모습, 거리에 는 차도 잘 다니지 않고 네팔 사람들이 조용히 농사를 짓고 있는 풍경을 그리며 왔었다. 전기가 없어 밤이 되면 수많 은 별이 반짝이는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 하지만 바글룽에 도착해 보니 이.럴.수.가. 바글룽은 내 생각보다 큰 마을이 었다. 작은 구멍가게는 셀 수 없이 많았고 큰 슈퍼는 2개나 있었다. 큰 트럭이나 차도 많이 다녀 시장에서는 먼지가 풀풀 풍기고, 학교는 바글룽 시내에만 대여섯 개 있었다. 레스토랑도 많았고 특히 ‘아시안 푸드’ 라는 음식점은 네팔
숙소에서 바라본 다울라기리 1)
의 수도 카트만두에 있는 레스토랑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맛있었다. 조용한 밤을 상상했던 것과 다르게 오리, 닭, 개,
1)
고양이, 염소 등 다양한 동물들이 같이 살고 있어, 새벽 5시 닭이 우는 소리에 잠이 깰 때도 있었다. 하지만 밤하늘을
24
다울라기리 산(Mt.Dhaulagiri, 8,167m)은 네팔 북중앙에 위치한, 세계 제7봉이다. 산스크리트어로 ‘하얀 산’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출처: 위키백과)
25
로컬버스
데 하늘을 보니 별이 쏟아질 것처럼 많았다.
바글룽에서는 다른 지역을 갈 때는 포카라를 지나서 이동했는데 보통 로컬버스를 이용했다. 네팔 로컬버스의 외
바글룽은 내 생각보다 낯설지 않은 곳이었다. 입에 맞지 않는 향신료에 적응할 필요도 없었고, 생필품이 없어 불 편한 생활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좀 아쉽기도 했다.
부는 정말 화려하다. 알록달록한 페인트를 칠하고 꽃도 꽂아 놓고 화려한 장식도 달아놓는다. 분명 낡은 버스 같은 데 전혀 낡은 티가 나지 않는다. 로컬버스를 탈 때는 네팔 현지인들과 같이 타게 된다. 버스 운행 중에는 귀가 아플 정도로 네팔 노래를 크게 튼다.
물과 전기
노래 대부분은 인도나 네팔 영화 OST인데 네팔 특유에 ‘둥 두둥 둥’ 하는 박자가 꼭 들어간다. 또 제대로 포장된 길
네팔에 오기 전, 한국에서 꿈봉 선배 단원과 이야기를 나눌 때 물과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생활하기 힘들 것
이 많지 않다 보니 운행 중에 차가 많이 흔들리는데 진동 때문에 창문이 저절로 열리기도 한다. 가끔 동물들이 버스
이라는 말을 들었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아, 네팔에 가면 세수도 하기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에 마음의 준비를 단
를 탈 경우도 있다. 뒤에서 닭이 울어도, 버스 트렁크에서 염소가 나와도, 천장에서 염소 오줌이 떨어져도 전혀 놀랄
단히 하고 왔다. 하지만 직접 경험한 바글룽은 하루에 정전이 4~5시간, 절수도 5~6시간 정도만(?) 됐다. 사실 한국
필요가 없다. 네팔에서는 자연스러운 모습일 뿐이니까. 로컬버스는 ‘네팔이니까.’ 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하게 만드
이었으면 ‘뭐 이런 동네가 다 있어!’ 라며 화를 냈겠지만 최악에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여 모든 것을 포기한 나에게는
는 곳 중 하나다.
바글룽은 천국 같이 느껴졌다. 사실 바글룽은 카트만두보다 전기 공급이 원활하고 물도 깨끗해 살기 좋은 곳이다. 나에게 바글룽은 네팔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동네라고 기억될 것이다.
시선집중 바글룽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없다 보니 외국인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네팔인이 많다. 네팔에는 티베트에서 내려
새 베개를 사고……
온 사람들도 많아 언뜻 보면 한국 사람과 구별하기 참 힘든데도 외국인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본다. 바글룽 거리에
네팔은 포장된 길이 드물기 때문에 먼지가 많이 날린다. 바글룽 시장 역시 차가 지나가면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나서면 동네 아이들이 ‘Hi~ Korean.’ 라며 인사를 한다. 어떤 아이는 ‘I love you.’ 라며 적극적으로 다가오기도 했
먼지가 많이 날렸다.
지만, 먼저 인사를 하면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도 있었다. 길거리에서 눈이 마주치면 시선을 떼지 않고 계속 쳐다보
어느 날 마스크를 쓰고 시장을 걷고 있는데 적당한 높이의 베개가 가게 앞에 쌓여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가장 마 음에 드는 베개를 골라 구입하고 행복한 기분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네팔에서는 이불이나 베개를 살 경우 먼 지를 잘 털고 써야 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복도로 나와 예쁜 새 베개를 기둥에 ‘팡’ 하고 내리쳤는데 그동안 베개에
는 사람도 제법 있었고, 외국인이 신기한 듯 장난을 걸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주목을 받는 것이 처음에는 재 미있고 신기한 경험으로 느껴졌지만, 나중에는 부담스러워져 네팔인과 눈을 마주치는 것을 피하기도 했다. ➊
가득 묻어 있던 먼지들이 폭탄처럼 떨어져 나와 깜짝 놀랐다. 정말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결국 그 베개에 머리를 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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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자고 싶은 생각이 없어져 돌아오는 날까지 방석으로 썼다.
코리안 호!(한국입니다!) 네팔어 수업을 한지 한 달 정도 되어 이제 조금씩 네팔어를 할 수 있게 된 어느 날, 혼자 길을 걷고 있었다. 나를 쳐 다보던 네팔인이 나에게 일본어로 ‘곤니찌와.’ 하고 인사하는 것이었다. 한국인으로서 약간 기분이 상했던 나는 네 팔어로 ‘재팬 처이너!(일본 없어요!)’ 라고 대답했다. 말실수였다. 말하는 순간 ‘아차’ 싶었지만 그 네팔인은 알아듣 지 못한 듯 보였다. 내가 다시 ‘재팬 호이너.(일본 아니에요.)’ 라고 중얼거리듯 작게 말하자 그제야 알아듣고 피식 웃
➋
는데 민망한 기분에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졌다. 그때부터 ‘호이너’ 와 ‘처이너’ 를 잘 구별해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호이너’ 라는 부정어를 일본이나 중국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쓰는 경우가 가장 많았던 것 같다. 바 글룽 근처에 관광도시인 포카라나 수도 카트만두를 갈 때는 중국인이라는 오해를 많이 받았는데 꼭 순서가 있었다.
‘차이나 호이너.(중국 아니에요.)’ 다음으로 ‘재팬 호이너.(일본 아니에요.)’ 라는 말을 많이 했다. 심지어는 그렇게 대 답해도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네팔 사람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도 있었다. 한국인으로서 정말 섭섭해지는 ➊ 고장난버스
순간이다.
➋ 네팔아이들의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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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꿈봉, 꿈꾸다
수놓은 별들은 한국에서 상상했던 그대로였다. 밤에 정전이 되는 바람에 복도 세면대에서 촛불을 켜고 양치를 했는
네팔에서 가장 깊게 인연을 맺은 네팔인 대부분은 홀리차일드스쿨에서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다. 홀리차일드스 쿨에서 나희는 1, 2, 3, 4학년 아이들과 놀이수업을, 나(나영)는 유치부 2반과 1, 2학년 아이들과 미술수업을 했다. 가
필리핀, 그 참을 수 없는 무더움
2. 꿈봉, 꿈꾸다
홀리차일드스쿨 아이들과의 수업
[파견국 적응기/캠프/필리핀]
장 특이했던 점은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가끔 영상을 보여줄 때가 있는데, 영상에서 노래가 나오면 아이들이 일 어서서 춤을 춘다는 것이다. 의자 위에 올라가 엉덩이를 씰룩거리면 자리에 앉으라고 엄하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수업을 들어갈 때마다 나희가 가르쳐준 ‘반갑습니다.’ 라는 말을 어설프게 발음하며 악수를 청하는 아이들이 참 좋았다. 어느 날 시장에서 장을 보고 있는데 나희와 내가 가르치는 홀리차일드스쿨 학생들 한 무리가 우르르 달려왔 다. 멀리서 우리를 보고 달려와 반갑게 인사하는 아이들을 보니 참 귀엽고 뿌듯했다. 아이들은 언제나 우리를 얼마 나 좋아하는지 순수하게 표현해주었다. 그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다.
시큼한 국물이 왜 인기가 많은 건지 이해가
김보미 (멘토/25)
가지 않았다. 하지만 두 번째 먹고 나서는 이 시큼한 맛에 매료되었고, 이제는 감기 기운만 있으면 시니강이 생각이 날 정도로
다울라기리
즐겨 먹는 음식이 되었다
바글룽에서는 네팔의 최고봉이자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높은 히말라야 다울라기리가 참 잘 보인다. 집을 나서는 길에서도 크게 보일 정도다. 처음 바글룽에 도착했을 땐 집을 나서자마자 보이는 다울라기리에 감탄했다. 옥상에 올 라가면 더 자세히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렇게 볼 때마다 감탄을 하면서 “바글룽 사람들은 다올라기리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겠지? 태어났을 때부터 보면서 살아왔을 테니까. 우리가 이렇게 감탄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웃길까?” 라고 나희와 얘기하며 낄낄거리기도 했다.
교통수단
그렇게 바글룽에 온 지 한 달이 지나자, 다울라기리는 우리에게 특별한 풍경이 아니게 되었다. 그저 당연한 모습, 익
필리핀에는 독특한 교통수단이 있다. 바로 지프니와 트라이시클! 지프니는 원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군
숙한 풍경의 일부일 뿐이었다. 가끔 맑고 선명한 하늘 아래 펼쳐진 다울라기리를 보고도 ‘아, 잘 보이네.’ 하고 생각만
이 필리핀에 남겨두고 떠난 군용 지프(Jeep) 수백 대를 필리핀 사람들이 단순하게 개조한 것을 말한다. 그러나 오늘
할 뿐 더 이상 사진을 찍거나 감탄하지도 않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다울라기리와 작별을 해야 하는데
날의 지프니는 필리핀 내에 독립적인 지프니 개조·생산 공장을 따로 갖추고 있어, 다양한 트럭을 개조해 다양한 색
‘한국에 가면 눈 덮인 히말라야 다울라기리를 당연하게 생각했던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깔과 모양으로 생산하는 개성 있는 차를 말한다. 지프니는 주로 미니버스 크기만 한데 적게는 16명, 많게는 54명까 지 태울 수 있다. 지프니는 사람들이 많이 탈 수 있기에 정원을 초과하는 경우가 많다. 노선은 운전석 앞 차창이나 차
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옆면에 쓰여 있는데 보통 운행노선의 지역 중에서 세 군데만 표시되어 있다. 버스와 비슷하지만 지프니는 정류장이 따로 없고 아무 곳에서나 타고 내릴 수 있다. 기본요금은 8페소부터 시작하며, 거리에 따라 요금이 추가된다. 내릴 곳에 다다르면 “빠라 뽀.2)”라고 말한다. 지프니는 매우 소란스럽고, 대기 오염의 주범이기도한 교통수단이다. 필리핀의 또 다른 대표적인 교통수단은 트라이시클이다. 트라이시클은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 삼륜 자동차 인데, 캠프 센터가 언덕 위에 있기 때문에 도로 골목에서 올라올 때는 트라이시클을 이용했다. 오르막길을 올라올 때는 10페소, 내려갈 때는 8페소를 기본요금으로 지불한다. 트라이시클은 오토바이를 개조했기 때문에 빠르지만, 때론 오르막길을 올라가지 못해 중간에 내려서 걸어 올라가거나 오토바이를 밀어서 올라간 적도 있다. 우리가 이곳에서 사용하는 대표적인 교통수단인 지프니와 트라이시클. 처음에는 어디에서 타야하는지도 모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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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갈로그어로 ‘세워주세요’ 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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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꿈봉, 꿈꾸다
고, 내릴 곳을 알아서 살펴야하기에 긴장도 했지만, 이제는 ‘바얀 3)’ ,’ 바얀 다우 4)’ , ‘소쿨릿뽀5)’ ,’ 빠라뽀’ 등. 따갈로 그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어 어려움이 없다.
음식 필리핀 음식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시니강과 아도보다. 시니강이란 시큼한 국물을 이용한 요리다. 시니강의 국물을 내는 파우더를 구입할 수 있는데, 그 국물에 고기나 채소, 해산물을 넣어 요리하거나 국물만 먹기도 한다. 필리핀에 가면 시니강은 꼭 먹어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맛이 너무 궁금했다. 한국 음식점에서 장국이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것처럼 시니강 국물이 제공이 되는 망 인 앗살이라는 음식점이 있었다. 그 음식점에서 우리는 시니강의 맛을 기대하며 먹어보았다가 모두 실망했다. 이 시큼 한 국물이 왜 인기가 많은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두 번째 먹고 나서는 이 시큼한 맛에 매료되었고, 이제는 감기 기운만 있으면 시니강이 생각이 날 정도로 즐겨 먹는 음식이 되었다. 한편, 아도보란 간장에 졸인 장조림 같은 음식이다. 돼지고기에서 기름이 많은 부분이나 닭고기 등 다양한 재료 를 사용해 만든다. 아보도는 장조림보다 짜고 신맛이 나지만, 우리에게 장조림이 생각날 만큼 익숙한 음식이기에 부 담 없이 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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➊
➊ 필리핀의 음식
3)
따갈로그어로 ‘여기요’ 라는 뜻이다. 돈을 지불할 때 쓴다.
4)
다우는 다른 사람의 말을 전할 때 쓰는 표현이다. ‘여기래요’ 라는 뜻.
5)
‘거스름돈 주세요’ 라는 뜻이다. 지프니에서는 얘기하지 않으면 잔돈을 주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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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꿈봉, 꿈꾸다
➊ 필리핀의 아이들
필리핀 생활 적응기
➊
[파견국 적응기/한국YMCA전국연맹/필리핀]
경근혜 (21)
어느 곳에 가든지 그곳에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곳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앞집, 뒷집, 옆집 모두 다 내 이웃!
재는 편하게 안부를 묻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손을 빌릴 수 있는 관계인 것인데, ‘이웃’ 의 개념이 점
내가 필리핀 사람들을 보고 가장 놀랐던 것은 옆집, 앞집, 뒷집 등 자기가 사는 집 골목의 모든 이웃들과 인사를
차 사라지고 있던 한국과는 다른 필리핀의 모습을 보니 정말 놀라웠다.
하고 다 잘 아는 사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집과 집 사이가 굉장히 가깝고(벽과 벽 사이에 틈이 없다), 한 골목에 가족들이 모여 사는 경우도 있어서 서로를 모르려고 해도 모를 수 없는 구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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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이웃과 인사를 하기는커녕 옆집에 사는지도 몰랐는데, 이곳에서는 매일 아침마다 길을 걸으면 이웃
아이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겠어! 배우자, 따갈로그! 내가 필리핀에서 가장 난감했던 것은 음식도, 사는 곳도, 생활방식도 아닌 바로 ‘언어’ 였다.
과 인사를 주고받고 안부를 묻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 보였다. 우리 활동장과 집이 그리 멀지 않아 항상 걸어 다녔는
현지어를 못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영어도 구사하지 못하는 내가 편하게 생활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영어를
데 우리 역시 집에 가는 내내 “마간당 우마가 뽀~6),마간당 부하이~7)” 등의 인사를 건넸고, 가끔 가다 길에 서서 이
전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도 정말 간신히 하는 정도였고,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알아듣기 위
웃들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때로는 거의 붙잡히다시피하여 한 시간이 넘게 길에서 수다를 떨기도 했
해선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했다. 나뿐만 아니라 팀원들 중에도 영어를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멘토의
다). 오며가며 인사하다보니 좀 더 친밀한 사이가 되는 이웃들이 생겼는데, 우리는 동네에서 ‘따따이’ 라고 불리는 이
영어 실력 또한 소통이 원활하거나 통역이 가능한 수준이 아니어서 소통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느꼈다. 처음에는 영
웃과 친해지게 되었다. 그렇게 인사하던 사이에서 어느새 간식시간에도 동참하게 되었고, 그렇게 한두 번 어울리다
어를 하는 것이 마냥 무섭고 어색했기 때문에, 현지인과 단둘이 있는 상황을 되도록 피했고 웬만하면 입을 열지 않
보니 정식으로 초대받아 저녁식사를 함께하기도 했다.
았다. 하지만 내가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필리핀에서 6개월을 지내는 동안 영어를 조금씩 사용하다보
한국에서도 마을 만들기 활동을 하거나 동네 사람들과 뭔가를 해보려고 할 때도 먼저 동네 사람들을 알아가고,
니 자연스럽게 늘기 시작했다.
내가 알게 된 사람들끼리 서로 이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그런 노력이 필요 없었다. 이미 서로
그러나 더 어려운 것은 영어가 아니라 필리핀 현지어인 ‘따갈로그어’ 였다. 따갈로그어를 난생 처음 들어보는 데
를 잘 알고 있었고, 동네 사람들을 모아 뭔가를 추진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이웃’ 이라는 존
다, 영어와는 다른 문법 체계와 생소한 단어들 때문에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따갈로 그어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바로 ‘아이들’ 때문이었다.
6)
Magandang Umaga Po. 필리핀 아침인사. 따갈로그어로 ‘좋은 아침입니다.’ 라는 뜻이다.
7)
Magandang Buhay. 역시 아침인사. ‘좋은 하루 되세요’ 라는 뜻이다.
아이들과의 첫 만남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우리가 따갈로그어를 못하는 것을 알고 우리에게 나쁜 말 을 하거나, 무시하는 행동을 했다. 며칠 동안 그런 취급(?)을 받다 보니 ‘이렇게 아무 반격도 못하고 있는 것은 억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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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배운 문장이 “그렇게 말하지마. 날 존중해줘.”였다. 아이들에게 무시 당하지 않기 위해, 아이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무엇보다 아이들 앞에만 서면 벙어리가 되는 답답한 생활에서 벗 어나기 위해서 열심히 따갈로그어를 배웠다.
파견단체별 프로그램
●
'달려라! 맨발의 아이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는 무엇을 배웠나
사실 아이들과는 손짓, 발짓만 가지고도 충분히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역시 현지어를 배우고 나니 아이들과 정말 많이 가까워질 수 있었고, 현지인들에게도 더 많은 사랑과 정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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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껏 만든 아트워크 ●
짜거나, 시거나, 달거나
구슬땀으로 한 땀 한 땀
텃밭 프로젝트: 자급자족을 해보자!
어느 나라에 가든지 음식은 가리지 않고 맛있게 잘 먹었던 나였기에 이번 여정에서도 음식에 대해선 큰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배신’ 이라 부를 만한 필리핀 음식이 꽤 있었다. 정말 보기에 먹음직스럽게 생겨서 ‘맛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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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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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가야 도서관인형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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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덕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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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궁포 초등학교
하고 한 숟갈 듬뿍 떠서 입에 넣으면 맛은 딱 세 가지 중 하나였다. 너무 짜거나, 너무 달거나, 너무 시거나. 음식을 차려준 사람의 성의와 음식을 버려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먹으려고 노력했지만 필리핀 음식에 적 응하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몇 개월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음식들도 있었다. 또 단순히 입에 맞지 않아 안 먹는 것이 아니라, 기름진 음식이나 밀가루 음식이 많다 보니 몸에 탈이 나서 못 먹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변비, 여드름, 배탈, 생리통 등으로 고생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던 나였는데, 필리핀에서 한 달 정도 생 활하고 나니 앞에서 말한 모든 병을 앓고 있었다. 심지어는 변비와 설사가 극심해 병원에 가기도 했다. 유학이나 어 학연수를 떠난 사람들이 음식이 맞지 않아 힘들다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그저 투정이나 어리광인 줄 알았는데, 타 국에서 사는 데 있어 ‘음식’ 은 정말 중요한 요소였다. 음식 하나로 그날 기분이 좌지우지될 때도 많았다. 그래도 우리 팀원 모두가 좋아하는 음식이 있었는데 ‘마미’ 라는 국수와 ‘메누도’ 라는 고기볶음(?) 요리였다. 입에 맞는 음식을 찾아낸 우리는 3일 연속으로 마미만 먹기도 했고, 메누도가 나오는 날에는 과식을 하곤 했다. 적응기라고 하니 뭔가 거창해 보이기도 하고 힘들었던 점만 나열해놓은 것 같지만, 그래도 내가 가장 많이 느낀
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것은 ‘필리핀도 결국 사람 사는 곳’ 이라는 것이다. 한국과 생활패턴이 다르고, 음식이 다르고, 문화와 언어 등 모든 것이 생소하고 달랐지만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다 ‘거기서 거기’ 였다. ‘적응’ 이라는 거창한 말이 필요 없다는 뜻이다. 어느 곳에 가든지 그곳에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곳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➊, ➋ 필리핀에서 한국요리하기 (불고기와 김밥) ➊
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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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 프로그램 ● 꿈봉단원을 위한 산파블로 YMCA 교육 프로그램
➊ 신발 나누어주기
➊
진행하면서 나는 무엇을 배웠나 [파견단체별 프로그램/생명누리/네팔]
강나희 (20)
봉사와 사랑은 참 닮았다. 누군가를 처음부터 오랜 시간 동안 지켜보는 것, 그에게 내가 어떻게 비춰질지, 나는 그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 그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함께 행복해 할 수 있을지 하나하나 고민해야 한다고 느꼈다.
네팔 바글룽에 도착한 지 한 달이 조금 안 되었을 때, 본부에서 일하고 있던 (1기 꿈봉이기도 한) 석규 오빠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았다. 내용인즉, 원래 생명누리 인도 지부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던 해피빈 후원 프로젝트를 네팔 바
신발 주문을 받은 후, 일일이 사이즈를 재어 아이들 발 치수와 맞춰본 뒤에 각 학년별 교실로 찾아가 신발을 나누
글룽 지부에서 진행해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도착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프로젝트를 받은
어주고 사진도 함께 찍었다. 신발 주문을 할 때 샤히 선생님이 잘 말씀해주신 덕분에 양말도 함께 나누어줄 수 있었
우리는 당황했다.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도 몰랐고, 이달 안으로 끝내주면 좋겠다는 말에는 슬쩍 겁도 났다.
다. 우리들은 아이들이 이미 학교 구두를 신고 있는데 새로운 구두를 또 나눠준다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아이들은
프로젝트의 이름은 ‘달려라! 맨발의 아이들’ . 신발이 없는 아이들에게 신발을 신겨주고 마음껏 달리게 해주자는 취지로 기획된 프로젝트였다. 석규 오빠가 귀띔해준 몇 가지 힌트를 참고하면서 우리는 샤히 지부장님께 부탁해 인 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어 손발(?)로 만든 수제 현수막 완성!
그러거나 말거나 기쁜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난 후로는 나도 아이들 앞에서 부정적인 표정을 짓지 않기로 했 다. 아이들이 좋아한다면 그걸로 됐다는 마음이 들었다.
근 마을 학교를 대상으로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우리가 곧 교육을 하게 될 홀리차일드스쿨을
우왕좌왕하며 진행하느라 실수도 많았고 샤히 선생님께도 너무 많은 부탁을 드렸다. 일정이 지연되기도 했고, 여
제외한 다른 곳은 몇 시간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그리고 그럴 경우 우리가 신발들을 직접 다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러가지 계산 착오도 있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 기쁘고 행복하다기보다는, ‘드디어 끝났다…….’ 라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는 정말 필요한 이들에게 신발을 나눠주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의문이 들었고, 예상치 못한 상황
마음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프로젝트를 통해 조금이나마 ‘봉사’ 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서 참
에서 시작하게 된 프로젝트라 마음은 더욱 심란했다. 여러 의논 끝에 현실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프로
좋았다. 연말 당시 시행했던 서면 인터뷰에서 ‘자원봉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는 질문을 받고 내 마음을 정리
젝트를 진행해야 끝까지 잘 마무리할 수 있겠다는 결론이 나왔고, 프로젝트의 최종 대상을 홀리차일드스쿨의 1~6
해 보았었다. 그때 쓴 글을 조금 옮겨 본다.
학년으로 정했다. 홀리차일드스쿨은 네팔에서 있었던 10년간의 내전으로 인해 가족이나 집을 잃은 아이들을 위해
20년 전에 세워진 학교다. 사립이지만 다른 학교에 비해 학비가 싸고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많이 다니고 있다. 대상이 정해지자 우리는 현수막을 제작해야 했다. 주문을 할까 고민하던 차에 우리가 아이들과 함께 직접 현수막
“‘봉사라 하면 주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받는 게 훨씬 많다.’ 는 말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곳 에서 여러 자원 봉사자들과 같이 지내면서 제가 배운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라.’ 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돕고 싶다면 내 마음뿐 아니라 실력과 노력, 그리고 충분한 고민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구상 끝에, 발도장을 배경으로 제목을 크게 쓰자는 의견이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관찰’ 입니다. 내가 돕고 싶은 곳에 애정을 가지고, 그곳에 정말 무엇이 필요한지 들
나왔다. 커다란 도화지를 현수막처럼 길게 이어 붙이고, 1학년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 열심히 발도장을 찍었다. 그 뒤
여다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동화책과 그림책이 필요한 아이에게 도서관을 지어준답시고 어려운 책들만 가득 꽂아
엔 한글과 네팔어로 프로젝트 제목과 일시, 장소를 썼다. 생명누리와 해피빈, 컨선 네팔의 로고도 오려 붙이니 드디
놓는 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뭔가를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앞설 때, 진정 그를 위하는 게 무엇인지 한 번 더 생각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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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맨발의 아이들' 프로젝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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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 할 것 같습니다.”
구슬땀으로 한 땀 한 땀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 되어 생각해보는 것. 그가 미처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게 도와주는 것. 이건 마치 누군 가를 사랑하는 일과 같다는 생각이 얼핏 스쳐갔다. 말하기는 쉬워도 쉽게 깨닫지 못하는 이러한 점을 실천하기까지
정성껏 만든 아트워크
걸리는 시간을 생각해 보면, 봉사와 사랑은 참 닮았다. 누군가를 처음부터 오랜 시간 동안 지켜보는 것, 그에게 내가 어떻게 비춰질지, 나는 그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 그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하면
[파견단체별 프로그램/캠프/필리핀]
함께 행복해 할 수 있을지 하나하나 고민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럴 때 비로소 기획부터 실행, 마무리까지의 모든 과 정이 조금의 아쉬움은 있을지언정 후회 없는 프로젝트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해외 봉사의 경우 더 많은 고민과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이러한 마음가짐은 어떠한 기획에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 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난생처음 맡은 해외 봉사 프로젝트를 통해 내가 느꼈던 모든 감정과 생각을 한국까지 소
전동훈 (20)
도움이 없었더라면 더 힘들고 더 오랜 시간에 걸려서 아트워크를 마쳤을 것
중히 가져가고 싶다. 마지막으로 많이 모자라고 어설픈 진행에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도와주신 수언 선생님과 샤히
같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지부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드리고 싶고, 앞으로 캠프에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건물을 보면서 아트워크의 이 벽을 좋아했으면 좋겠습니다.
필리핀에 도착한 저희는 아트워크라는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트워크는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콘크리트가 그 대로 드러나 있는 건물 벽 외관을 부서진 타일 조각으로 꾸미는 작업을 말합니다. 저희는 현지에 파견된 두 달여 동 안, 하루 일과 8시간 중 약 4시간을 아트워크 작업에 힘을 쏟았습니다. 아트워크를 시작하기 전에는 최대한 편한 복장으로 입고 KCOC에서 지원해 준 모자를 꼭 쓰고 나갔습니다. 필리 핀 날씨는 너무 더워서 모자를 쓰지 않을 수 없을뿐더러, 혹 모자 없이 작업을 하면 목 뒷부분이 검게 그을 릴 정도였
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➊ 홀리차일드스쿨 ‘달려라 맨발의 아이들’
습니다. 타일을 옮길 때는 한 번에 많이 옮기기 위해서 주변의 나무판자를 모아 타일들을 쌓은 후, 다 같이 판자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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께 들고 날랐습니다. 타일을 색깔별로 골라서 주울 때도 있었지만 색깔이 그렇게 다양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아무 색이나 골라서 갈 때도 많았습니다. 타일을 다 주워오면 다음 순서로 시멘트를 가지고 옵니다. 캠프 창고에 쌓여 있 는 시멘트 포대를 가지고 와야 했는데, 시멘트가 생각보다 훨씬 더 무거워서 두 명 이상이 함께 들지 않으면 들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캠프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혼자서도 거뜬히 들고 가거나 머리 위에 올려서 가시는 모습을 볼 때 면, 저분들은 어쩌면 저렇게 힘이 센지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시멘트 가루를 가지고 오면 넓은 바닥이나 나무판자 에 시멘트를 붓고 가운데에 물을 부울 수 있는 모양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 작업을 할 때면 마치 백두산 천 지나 화산이 떠올랐습니다. 시멘트 작업을 할 때는 이 과정이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작업이 잘못되면 시멘트 와 물이 잘 섞이지 않아 물 따로 시멘트 따로가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화구 같은 모양을 만들고 그곳에 물을 부어 시멘트를 섞으면, 물이 다른 쪽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시멘트 안에 고여 시멘트와 물을 섞기가 쉬워집니 다. 시멘트를 섞을 때는 삽을 이용했는데 저희가 가지고 있는 삽은 농사를 할 때 사용하던 모종삽이라 시멘트를 아 주 소량씩 섞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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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꿈봉, 꿈꾸다
아트워크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시멘트를 반죽하는 비율입니다. 시멘트 농도가 너무 묽으면 마르고 난 뒤에 쉽게 떨어지고, 시멘트 농도가 너무 되면 잘 붙지 않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묽게 잘 발리면 잘 붙을 줄 알았는데 시 멘트가 굳으면서 타일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마무리 작업에서는 천으로 타일을 닦을 때마다 마치 비가 오듯 떨어지 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뒤로는 시멘트 농도를 매우 신경 쓰면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또 시멘 트 농도뿐만 아니라 타일을 붙이는 작업도 중요했습니다. 처음에는 타일을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대충 붙였더니, 밑 에서 일하는 단원들 머리 위로 타일이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때부터는 시멘트 반죽 위에 타일을 꾹꾹 눌러가면서 신중하게 붙여 나갔습니다. 타일 붙이는 작업을 할 때에는 키 큰 단원들은 위쪽을 붙이고 그렇지 않은 단원들은 아래쪽을 붙였습니다. 나중 에는 책상을 동원해서 붙이는 작업을 했는데 책상을 놓은 땅이 울퉁불퉁해서 위험하기도 했습니다. 타일을 다 붙이 고 마무리 작업으로 당일 붙인 타일들을 천으로 깨끗이 닦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천에 물을 묻히고 닦았 는데 주변에 시멘트가 물 묻힌 천에 닿아서 타일을 닦아도 시멘트가 묻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 뒤로는 천에 물 을 적시지 않고 닦거나 그냥 장갑으로 타일을 비비면서 타일을 깨끗이 하는 마무리 작업을 했습니다. 저희는 약 2달 동안 아트워크를 진행하면서 가장 효율적인 인원 배치를 구상했습니다. 3명이 시멘트를 섞고 타 일에 발라주면 다른 2명이 그 타일을 벽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배달을 해주고, 나머지 3명이 그 타일을 받아 벽에 붙 이는 작업을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시멘트 작업에 3명이 달라붙자 시멘트 반죽이 계속 나오게 되어 끊임없이 타일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트워크를 하다보면 오전 10시와 오후 3시에 쉬는 시간 종이 울립니다. 저희는 그 시간
➊ 시멘트 반죽
➋
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➊
➋ 타일 붙이기
훈련센터 타일링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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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프로젝트 : 자급자족을 해보자!
2. 꿈봉, 꿈꾸다
에 다 같이 캠프 봉제센터 안에 있는 작은 매점을 이용해서 음료수를 마시면서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곤 했습니다. 저희가 열심히 아트워크 작업을 한 결과로 캠프 안에 있는 봉제센터 연습실 건물에 외벽을 모두 아트워크로 완성시 켰습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왼쪽에는 영어로 ‘DREAM’ 이라고 적혀 있고 그 옆에는 필리핀어로 꿈이라는
[파견단체별 프로그램/캠프]
뜻인 ‘PANGARAP’ 이 적혀있습니다. 처음에는 ‘이 벽을 언제 다 할 수 있을까?’ , ‘과연 우리가 가기 전에는 이 아트워 크 작업을 마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일을 했는데 실제로 다 완성된 모습을 보니 정말 뿌듯하였습니다. 저희가 아트워크를 시작할 때 캠프의 많은 노동자분들이 시멘트 반죽하는 방법도 알려주시고 나르는 것도 도와 주셨습니다. 심지어 저희가 더울까봐 천막까지 쳐주시는 분들을 보면서 굉장히 감사하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마 그 분들 도움이 없었더라면 더 힘들고 더 오랜 시간에 걸려서 아트워크를 마쳤을 것 같습니다. 그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 앞으로 캠프에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건물을 보면서 아트워크의 이 벽을 좋아
전동훈 (20)
각자 시작한 일에는 저희가 텃밭 프로젝트에서 한 것처럼 함부로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책임을 진다는
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➊ 완성된 타일링과 단원들
저희 꿈꾸는청년봉사단은 지난 6개월 동안 필리핀 캠프 사업장 안에서 작은 텃밭을 만들었습니다. 텃밭에 규모
➊
는 엄청 크지는 않지만 농사에 ‘농‘자도 모르는 저희들에게는 나름 큰 텃밭이었습니다. 저희가 작은 텃밭을 만들게 된 이유는 캠프 사업장 안에 놀고 있는 땅들이 많이 있었고 자급자족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도 있었 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큰 이유는 예전에 국내 교육과 면접당시 저에게 필리핀에 가면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지 에 대한 질문에 “작은 텃밭에 채소들을 키우고 싶어요.”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이 부풀려져서 대표님 귀에 들어가게 되었고 저희가 현지에 도착을 했을 때 저희는 이미 텃밭을 가꾸는 프로젝트가 확정인 분위기가 되었습니 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다. 그렇게 저희는 자연스럽게 텃밭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텃밭 프로젝트가 시작이 되고 저희는 현지 직원인 그라시아와 텃밭에 어떤 작물을 심을지에 대한 회의를 했습니 다. 텃밭에 어떤 작물을 심을 지에 대한 회의를 하면서 작물 선정기준은 일단 우리가 먹고 싶은 작물인지, 그 작물들 이 이곳에서 잘 자라날 수 있는지 마지막으로 우리가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수확을 할 수 있는지였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6가지의 채소를 결정했습니다. 처음에 심은 작물들은 토마토, 고구마, 청경채, 상추, 오크라, 카사바였습니 다. 오크라와 카사바는 현지에서 많이 키우지만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작물들이었습니다. 그 외 채소들은 한국에서 도 흔히 볼 수 있고 저희들이 한 번씩은 키워본 작물들이었습니다. 채소종류를 정한 뒤에는 저희는 다 같이 캠프 주 변을 돌아다니면서 어느 장소에 텃밭을 만들면 좋을지 회의를 하였습니다. 텃밭으로 만들기 적합한 땅은 일단 물을 주기 편한 장소여야 되었고 땅이 넓어야 되고 마지막으로 저희 숙소랑 가까운 곳을 찾았습니다. 그 결과 저희는 그 조건에 가장 맞는 땅을 찾았고 그곳에 텃밭 만들기를 시작했습니다. 땅을 정한 뒤에 저희는 캠프 안에 있는 창고에 농기구들을 빌리러 갔습니다. 삽과 여러 가지 농기구가 있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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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꿈봉, 꿈꾸다
기대하고 갔지만 저희에 기대와는 다르게 농사 때 쓸 만한 장비들이 없었습니다. 결국 저희는 곡괭이랑 삽을 빌리고 저희가 구한 모종삽들을 가지고 텃밭을 만들 땅으로 갔습니다. 모든 단원들이 농사를 많이 지어본 적이 없어서 저희 는 그냥 한국에서 본 것처럼 이랑과 고랑을 만들기 위해서 땅을 뒤집는 작업을 했습니다. 땅이 경사진 곳이어서 나 중에 물길을 생각해 경사가 진 쪽으로 길게 땅을 뒤집는 작업을 했습니다. 캠프 창고에서 가지고 온 삽이 시멘트를 섞을 때 편리한 삽이어서 삽은 거의 사용하지 못하고 순서를 정해서 곡괭이로만 땅을 뒤집는 작업을 했습니다. 땅을 다 뒤집고 난 뒤에는 모두 같이 잡초를 뽑는 작업을 했습니다. 오랜 시간 방치되었던 땅이어서 그런지 정말 많은 풀 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 풀들을 다 뽑은 뒤에는 작은 모종삽과 망치를 빌려서 흙을 부수는 작업을 했습니다. 오 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흙들은 정말 돌처럼 딱딱해져 있어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흙을 어느 정도 다진 뒤에는 곡 괭이로 두둑을 만드는 작업을 했습니다. 단원 8명이서 모두 힘을 합쳐서 하루에 4시간 동안 텃밭 만드는 작업을 하 니 두둑 4개와 작은 정사각형 모양 두 개의 텃밭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두둑을 쌓아 올린 뒤에는 이제 농작물들을 심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고민이 되는 점이 있었습니다. 다른 작물들과는 다르게 청경채와 상추 같은 경우에는 더운 지역에서 잘 자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 니다. 그래서 저희가 생각한 것은 모종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모종을 만들기 위해서 익팅 베이커리 센터에 서 쓰다가 남은 캔이 많다는 소식을 듣고 그 캔을 받아서 모종을 만들 틀로 사용했습니다. 구멍을 뚫은 캔에 흙을 담 고 그 안에 청경채와 상추씨앗을 심고 나니 꽤 괜찮아 보이는 모종 보관함이 되었습니다. 반면 모종이 필요 없는 토 마토, 오크라, 고구마, 카사바는 직접 땅에다가 심었습니다. 카사바와 고구마 같은 경우에는 뿌리 작물이여서 땅을
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➊
➋
➊ 땅 뒤집는 모습
텃밭을 가꾸기 위해 땅을 뒤집는 모습
➋ 땅 완성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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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이 너무 많이 자란 경우 바람이 제대로 통하지 않아 병해충에 걸리는 것을 예방 할 수 있는 관리법인데 토마토와
그래도 다 같이 열심히 정성을 들여서 카사바와 고구마를 심었습니다. 오크라와 토마토는 대부분 채소들을 심듯이
오크라 같은 작물은 옆으로 굉장히 많은 가지들이 생기는 작물들이어서 가지치기를 꼭 해주었습니다. 이 정도만 하
구멍을 파고 씨앗을 넣었는데 씨앗을 적게 넣으면 싹이 자라지 못하고 죽을 것 같아서 한 구멍에 많은 씨앗을 심어
면 저희는 농작물 관리하는 일이 끝이 난줄 알았는데 2월 달에 필리핀에서 농사 관련 석사를 마치시고 한국에서 농
서 넣었습니다.
사를 짓고 계시는 김희정 선생님께서 오셔서 많은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캠프에 놀고 있는 지푸라기를 이용해서 농
6개의 작물들을 심은 뒤에는 본격적으로 농작물 관리를 시작했습니다. 아침 텃밭 가꾸는 시간에 다 같이 물을 주
작물 주변에 깔아 놓으면 물을 줬을 때 지푸라기가 수분을 가지고 있어서 작물에 수분이 더 보존이 잘되고 지푸라기
고 잡초를 뽑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8명 단원이 2인 1조로 나누어서 저녁 먹기 전에 물을 주었습니다. 물을 줄
를 깔아 놓으면 주변에 잡초들이 햇빛을 보지 못해서 저절로 자라지 않는 다는 것을 알려주셔서 그 뒤에는 지푸라기
때는 수돗물로 주기보다는 캠프에 모아둔 빗물로 주어서 자원을 절약 하였습니다. 하지만 빗물로 주다 보니 수압이
를 작물 주위에 깔아주는 작업도 했습니다. 이러한 관리 덕분에 저희는 다양한 작물들을 모두 건강히 잘 키울 수 있
약해서 물을 주는데 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오전에 물을 주는 일은 크게 어려움이 없었지만 저녁이 되면 모
었습니다.
기들이 하도 물어서 물을 주는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저희는 하루에 두 번씩 물을 주고 텃밭을 열심히 관리
저희가 텃밭 가꾸기를 다 성공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6가지 작물을 심고 다 성공 시킨 뒤에 2가지 새로운 작물을
를 했습니다. 물을 주는 것 말고도 저희는 EM을 만들어서 텃밭을 관리하는데 사용했습니다. EM은 효모, 유산균, 광
시도를 했었습니다. 바로 깻잎과 시금치입니다. 하지만 두 작물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물을 주
합성균등 유용미생물들이 서로 공생하는 미생물제제인데 효과가 좋아서 굉장히 다양한 용도로 사용을 할 수 있습
는 것을 잘 하지 못해서였습니다. 깻잎과 시금치를 심은 시기에 프로젝트들이 많아지는 바람에 저녁에 물을 주는 것
니다. 대표님께서 한국에서 가져오신 EM원액이 있어서 그 원액을 가지고 농사할 때 사용 할 수 있는 EM을 만들었
을 자주 까먹어서 결국 깻잎과 시금치는 잘 키우지 못하고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실패를 하고나니 작물들에게 미안
습니다. EM을 사용 할 때에는 물에 1000배가량 희석하여 텃밭에 물을 줄 때 함께 농작물들에게 주었습니다.
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텃밭에 물을 주다 보면 밭이 경사져 있어서 물살에 흙들이 많이 쓸려 나갔습니다. 가장 많이 보수가 필요했던 작
저희가 관리를 소홀이 한 탓에 소중한 생명들이 죽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필리핀 캠프에서 텃밭 가꾸기
물은 토마토였는데 보수를 하고 난 뒤에는 줄기가 굉장히 굵어진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오크라와
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배운 점은 책임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식물은 그저 움직이지 못하고 말을 하지 못할 뿐 인간
토마토 가지치기를 하였습니다. 가지치기를 하는 이유는 영양분을 분산시키는 것을 막아서 작물이 더 튼튼해지고
과 다르지 않은 같은 생명입니다. 그렇기에 저희가 흙에 씨앗을 심는 순간부터 저희는 함부로 포기 하지 않고 그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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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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➋
➊ 모종을 만드는 모습
➌ EM 만드는 모습
➋ 완성된 모종
➍ 텃밭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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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꿈봉, 꿈꾸다
판 뒤에 줄기를 땅에다 박는 형식으로 심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심으면 과연 자랄까라는 의구심이 들긴 했지만
2. 꿈봉, 꿈꾸다
물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씨앗을 뿌릴 수 있도록 끝가지 책임을 지고 관리를 해줘야 됩니다. 물을 주고 가지치기 를 해주고 흙을 보수해주고 지지대를 세워주고 EM 을 뿌려주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관리를 해주고 관심을 가져 주지 않으면 저희가 열심히 키운 작물들이 시들어 가는 건 한 순간 이었습니다. 이런 관리와 관심을 주지 않을 것이면 함부로 씨앗을 땅에 심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텃밭 가꾸기 프로젝 트를 하면서 책임지지 못할 일은 함부로 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저희가 각자 무슨 일을 하면서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각자 시작한 일에는 저희가 텃밭 프로젝트에서 한 것처럼 함부로 포기하지 말 고 끝가지 책임을 진다는 마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함께 열심히 땀 흘리고 농사를 한 꿈꾸는청년봉사단원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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➊ 6개월 동안 수확물,
텃밭에 물주는 모습
수확한 식물로 만든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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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꿈봉, 꿈꾸다
봉제센터 [파견단체별 프로그램/캠프/필리핀]
어머님들이 자신들이 만든 옷을 입고 직접
김규원 (19)
복원용 (멘토/33)
패션쇼에 선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가 감동을 받기도 했다. (…)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머님들과 함께 봉제센터에서 일을 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타워빌 소개 필리핀은 태풍, 해일 등 자연재해 등으로 이주민이 많이 발생하는 데다, 정부의 도시화 정책 등으로 많은 사람들 이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이주민 지역에서 생활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 필리핀 불라칸주 산호세 델몬테 시에 위치한 타워빌도 이런 이유로 이주민이 된 이들이 모여 사는 지역 중 한 곳이다. 타워빌은 메트로 마닐라에서 북동쪽으로 40㎞정도 떨어져 있으며, 6천 가구의 5만여 명이 살고 있다. 이러한 타워빌에 위치한 익팅 봉제센터는
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캠프의 지원으로 설립되었으며 이주민 지역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캠프가 타워빌에서 봉 제센터를 열게 된 건 이 지역에 필요한 것을 확인하기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덕분이었다. 처음 타워빌이 만들어졌 을 때만 해도 전기나 물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상황이었고, 이주민들이 생계를 유지할 직업을 구할 수 있는 환경 도 아니었다. 여러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사단은 타워빌에 가장 시급한 것이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이라고 판단했 고, 그 결과 봉제센터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필리핀은 유니폼 문화가 굉장히 발달한 나라다. 초, 중, 고등학생뿐만 아니라 대학생들도 유니폼을 입고, 직장에서 도 대부분 유니폼을 입는다. 그렇기 때문에 봉제 관련 일거리가 많고, 지속 가능한 일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워빌 봉제센터는 2011년 7월 15일, 지금은 구(舊) 봉제센터가 있던 4B 구역에서 시작되었다. 구 봉제센터는 정부에서 무 상으로 대여해 주었는데 내년이면 반납해야 하는 상황이라, 지금은 원단 등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고 있다. 2014년
5구역 입구의 땅을 매입해서 완성한 새 봉제센터 부지에는 봉제센터뿐만 아니라, 게스트하우스와 봉제훈련센터도 개별 건물로 들어서 있다. 우리가 필리핀에 도착한 2014년 10월 20일만 해도 게스트하우스는 한창 공사 중이었고 구 봉제센터
페인트가 채 마르기도 전에 짐을 풀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완공되어 타워빌 5구역 입구에 멋지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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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제센터 프로젝트 참여
익팅은 Ignite(불을 붙이다)라는 영어단어를 변형한 이름으로, 타워빌의 변화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하고자 하는 익
꿈봉은 필리핀에 파견되어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알아야 할 여러 가지 교육을 마친 뒤, 본격적으로 캠프 프로젝
팅의 비전이 잘 담겨 있다. 익팅의 비전은 모두의 삶 전반에 영향을 주기 위해, 지역사회를 스스로 조직, 양육, 개발
트에 참여할 수 있었다. 8명의 꿈봉 단원들은 각자의 특색에 맞춰 참여하고 싶은 캠프 프로젝트에 동참하게 되었
하여 건설적이고 튼튼한 사회적 기업으로서 많은 이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것이다. 또한 미션은 조직의 모든 구성원
다. 나와 복원용 멘토님은 4개의 캠프 프로젝트 파트 중 봉제센터에 참여하게 되었다. 꿈봉 단원들이 파견된 때는
들에게 협동심을 심어주고,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익팅은 단지 타워빌이라는 이주민 지역에 일자리를
2014년 10월이다. 꿈봉 단원들은 구 봉제센터가 있을 때나 현재의 봉제센터가 개관식을 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고,
제공하기 위해서만 설립된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지역사회의 전반적인 환경을 개선
12월에 2014년을 마무리하는 어머니들의 패션쇼를 지켜볼 수 있었다. 꿈봉 단원들이 패션쇼 축하 공연을 했는데
하기 위해 노력하는 공동체로서 만들어졌으며 지금도 그런 방향성을 가지고 성장해가고 있다.
다행히 어머니들 역시 좋아해 주셨다. 사실 어머님들이 자신들이 만든 옷을 입고 직접 패션쇼에 선다는 것이 쉽지
익팅에는 지역사회의 기본적 필요와 집합적인 꿈들을 대변하는 12가지 아이콘이 존재한다. 6개의 기본적 필요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가 감동을 받기도 했다. 자신이 직접 만든 옷을 입고 모델이 된다
는 깨끗한 물, 균형 잡힌 식단, 교육, 깨끗한 환경, 보건의료, 안전한 집이다. 6가지의 집합적인 꿈은 사회적 기업으로
는 것은 애정과 자부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머님들과 함께 봉제센
서의 성공, 지역사회 구성원들 간의 끈끈한 관계, 지역사회를 이끄는 강인한 리더십,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과의 파
터에서 일을 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트너십, 여성의 권리와 목소리를 더욱 강화하는 양성 평등, 하나님의 사랑 안에 함께하는 공동체이다.
봉제센터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맡은 역할은 비전트립이다. 그중에서도 비전트립의 티셔츠 주문을 받는 것과 비
캠프가 익팅이 시작하고 발전하는 데 많은 역할을 한 건 맞지만, 캠프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익팅 스스
전트립을 가기 전에 진행하는 타워빌 워크숍의 준비를 맡게 되었다. 한국에서 온 비전트립 사람들이 타워빌 워크숍
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기업으로 시작하고 협동조합으로 전환할 때, 개념을
을 통해 대략적으로 봉제센터가 어떻게 이루어졌고, 어떤 일을 하는지 알게 하기 위해서 동영상을 만들기로 했다.
이해하고 궁금한 것들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을 여러 워크숍을 통해 갖는다. 그럼으로써 구성원 전체가 동의
일주일에 2번 캠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하루는 영상 작업을 준비하고 하루는 어머님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그리고 익팅 구성원들은 스스로 조직의 대표를 선출하고 생산,
다. 이곳에 있으면서 정말 누누이 듣던 이야기지만, 결국에는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던 점 중 하나가 누구
마케팅, 품질점검 등의 모든 업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든지 봉제센터 내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나이들8) 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나이들의 삶을
➊ 새로 완공된 타워빌 봉제센터 ➌
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➊
➋
➋ 익팅로고 ➌ 익팅의 12가지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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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이(Nanay)는 따갈로그어로 ‘어머니’ 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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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꿈봉, 꿈꾸다
타워빌 봉제센터에는 70여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봉제센터는 익팅이라는 사회적 기업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대한 간략적인 소개와 봉제센터 소개, 그리고 어머님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비전트립을 진행하는 데 있
한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도 일주일에 한 번은 나나이들 옆에 앉아 트리밍(실밥 자르기)을 하게 되었다. 막
어서 봉제센터는 빠질 수 없는 요소 중 하나다.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타워빌 주민들을 만날 기회가 있긴 하지만, 어
상 해보니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어머님들이 옆에서 빠른 속도로 실밥을 따고 계셨기 때
머님들 개인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갖기에는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님들의 사연과 익팅 봉제
문에 그 속도에 비슷하게라도 맞추기 위해 손놀림을 빨리 해야 했고, 실밥이 작고 많다 보니 집중력도 많이 필요했
센터를 어머님들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 가는 이야기들을 자세히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매우 귀중했다. 타워빌 워크숍
다. 처음 하루 이틀 정도는 말도 안 하고 정말 일만 한 것 같다. 그 후에야 뭐가 중요한지를 깨닫고, 어머님들과 이야
은 비전트립이 한국으로 돌아가기 바로 전에 진행되었다. 5개 팀의 워크숍을 진행할 때마다 다른 느낌을 받았는데,
기를 하게 되었다. 어떤 이야기를 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어머님들이 먼저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셔서 많은 대화
두세 번 워크숍을 진행하게 되면서 주변을 조금 둘러볼 여유도 가지게 되었다. 마음이 급해서 프로그램에만 신경을
를 나눌 수 있었다. 확실히 봉제센터에서 일한다는 것은 어머님들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많이 느끼게
쓰던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특히 사회를 보는 것도 어머님 한 분이 하시고, 간단한 게임 진행, 익팅 소개,
되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야기까지 어머님들이 스스로 준비하고 발표하시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생전 자신의
타워빌 워크숍을 준비하면서 영상을 만들기 위해 어머님들을 인터뷰했던 적이 있다. 사실 타워빌에 대한 이야기 는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어머님들 한 분 한 분이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셨는지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어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분들이 20~30명 정도 되는 외국인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긴장도 많이 하셨지만, 그럼에도 모든 워크숍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머님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타워빌로 이주하게 된 과정과, 익팅에서 일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는지 듣는 시
한편, 워크숍을 진행할 때마다 발표를 하는 어머님들과 게임을 진행하는 사람들은 계속 다 바뀌게 된다. 하는 사람
간을 가질 수 있었다. 사실 인터뷰를 하기 전까지는 익팅에서 어머님들에게 일자리를 주었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
만 계속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번갈아가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다.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어머님들이 남이 해주는 것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모든 것을 열심히
매번 다른 어머님들이 진행을 맡은 덕분에 정말 많은 분들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었던
만들어가고 계신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것이 내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 아닌가 싶다.
것 같다. 물론 매번 통역을 다르게 해야 했기에 통역자였던 복원용 멘토님이 많이 고생하셨을 것으로 생각한다.
인터뷰를 진행하고 영상도 만들다 보니, 비전트립이 올 때가 되었다. 비전트립 팀과는 티셔츠 주문 이후에는 같
타워빌 워크숍에서는 어머니들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Q&A 시간도 있었다. 어머니들이 한국에 대해,
이 하는 활동이 없었고, 마지막에 타워빌 워크숍을 진행할 때 잠깐 만날 수 있었다. 타워빌 워크숍에서는 타워빌에
그리고 비전트립은 타워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물어보는 시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타워빌 주민들의 삶
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➊
➌
➋
➍
➊ 익팅 패션쇼 ➋ 봉제센터에서 일하는 어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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➌ 악팅 파우치 촬영 ➍ 익팅 워크샵
55
2. 꿈봉, 꿈꾸다
이해하려면 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고, 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 안으로 들어가야
2. 꿈봉, 꿈꾸다
에 관심을 가지며 대화를 나누었다.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팀도 있었고 소극적인 팀도 있었지만, 먼저 어머님들께 적
가야가야 도서관인형극
극적으로 다가간 팀들은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궁금증도 풀 수 있 어서 좋았다.
[파견단체별 프로그램/캠프/필리핀]
비전트립이 끝난 뒤 현재는 봉제센터의 파우치를 한국에서 어떻게 팔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어머님들의 사 연을 담은 파우치를 한국에 배송해서 팔 수 있도록 스토리 메이킹도 하고, 직접 모델이 되어서 사진도 찍었다. 봉제 센터에 속해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캠프 내에 있는 모든 한국 스텝들이 모여서 사진을 촬영했다. 자유로움, 친환경, 귀여움 등 총 12가지 콘셉트로 사진 촬영을 한 후에 캠프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주어서 아마 성공적으로 판매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속에서 더욱 열심히 홍보하여 봉제
정의석 (21)
도서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장희제 (21)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진귀한
센터의 제품이 많이 팔릴 수 있도록 끝까지 돕고 싶다.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즐거운 추억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가야가야 도서관은 Phase6에 위치해 있습니다. 두 달 동안의 언어교육과 아트워크를 마친 저와 의석이는 캠프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도서관 프로젝트에 참여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생각이 짧았습니다. 저희의 목표는 도서관을 홍보해 아이들 에게 책에 대한 흥미를 갖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도서관에 가서 보니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저희가 따갈로그어를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았 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따갈로그어로 된 책을 자연스럽게 읽어주기란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아이들은 저 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희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오히려 저희를 피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두 번째로 도서관에 방문을 했을 때는 ‘아이들과 어떻게 친해질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처음에는 게임을 하려고 했지만, 도서관에 서 게임을 한다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던 차에 종이접기와 스무고개, 한국의 민요인 아리랑을 함께 부르기로 했습니 다. 무작정 A4용지에 날짜, 시간과 우리가 하는 프로그램을 적고 게시판에 붙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잘못이었습니 다. 모든 조직에는 규칙이 있게 마련이고 캠프에서도 도서관을 담당하는 스태프에게 보고를 해야 했기에, 사전에 보 고하지 않고 게시한 포스터는 떼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제대로 된 절차를 밟은 후에 포스터를 예쁘게 프린트해서 게시판에 붙였습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희는 책을 읽는 도서관에서 노래를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결국 계획했던 프로그램은 도서관이 아닌 적정기술 센터 옆에 위치한 Study program(방과후 학교)에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을 대부분 어린아이들(5~8세)인데 Study program을 하는 아이들은 현지 고등학생 이었습니다. 그래도 계획했던 대로 진행했는데, 학생들도 재미가 있었는지 반응이 좋았고 게임에도 열심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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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회의를 거쳐 문제점을 찾아보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아이들이 지루해 한다는 점이
그러나 프로그램이 끝나고 캠프에 돌아와 회의한 결과, Study program 아이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 도 좋지만 저희가 참여하고 있는 캠프 사업은 도서관이기 때문에, 그 프로그램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무리를 해 야 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눈앞이 캄캄하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회의 중에 그라시아(꿈봉 현지 스태프)가 인형극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책 내용으로 인형
었는데,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 의논했습니다. 의논 후 인형극인만큼 인형을 제대로 만들어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 습니다. 인형을 만들 때 필요한 재료를 구입한 후 양말에 두꺼운 종이와 천을 덧대어 직접 인형을 만들었습니다.
2015년 2월 12일 세 번째 인형극의 주제는 <토끼와 거북이>였습니다. 비록 아이들은 19명이 참석했지만 반응은 그동안 진행했던 것 중 가장 좋았습니다.
극으로 하게 되면 확실히 책에 대한 흥미를 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인형극을 계획하고 포스터를 붙인 뒤
2015년 2월 26일, 네 번 인형극에서는 주제를 바꾸기보다는 지난번 극의 내용이 이어지도록 패러디로 꾸며 보
어떠한 방식으로 할 수 있을지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횟수는 주 2회로 계획했고 매주 목요일 오전, 오후에 한 차례씩
았습니다. <토끼와 거북이>는 거북이가 이기는 것으로 끝나지만 복수를 꿈꾸는 토끼의 뒷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하기로 했습니다.
지난번 인형극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서인지 이번에는 총 41명의 아이들이 참석했습니다.
2015년 1월 29일, 첫 인형극 주제는 <아기돼지 삼형제>였습니다. 아기돼지 삼형제의 주인공인 돼지와 늑대는
2015년 3월 5일, 다섯 번째 인형극에서는 우리가 평소 알고 있는 동화를 각색하여 만들었습니다. 본래 제목은
인형극을 할 때 종이접기를 하면서 함께 접어서 완성했습니다. 처음에 온 아이들은 총 29명이었는데, 아무래도 처
<두루미와 여우>이지만 각색을 통해 <얼룩말과 토끼>라는 제목으로 인형극을 만들어 공연했습니다. 단지 주인공
음이다 보니 많이 미숙하기도 했고 아이들도 즐거워한다기보다는 한국인이 와서 뭔가를 한다는 것에 신기해 한다
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용도 약간 바꾸었는데, 참석한 39명의 아이들이 모두 재미있어하고 좋아해 주어 성공적으
는 느낌을 더 받았습니다.
로 끝낼 수 있었습니다.
2015년 2월 5일, 두 번째 인형극을 기획할 때는 지난번보다 인형극 캐릭터에 좀 더 신경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
2015년 3월 12일, 여섯 번째 인형극은 <악어와 원숭이>를 <거북이와 토끼>로 바꾼 뒤 내용을 각색해 진행했습니다.
형극을 하기 전에 캐릭터를 직접 만들어서 극을 진행했습니다. 이날 주제는 <북풍과 해>였고 인형극을 관람한 아이
오전에는 ‘Gayagaya Camp Libro’ 에서 인형극을 진행했고 오후에는 ‘Pangarap Library’ 에서 인형극을 진행했
들은 총 21명이었습니다. 캐릭터 수준이 좀 더 높아졌고 사운드도 첨부했지만 움직임이 단순해서인지 아이들이 지
습니다. 오전에는 14명의 아이들이 왔고 오후에는 48명의 아이들이 왔는데, 그동안의 공연 중 가장 많은 아이들이
루해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와서 즐거워 했습니다.
➊ 도서관 종이접기 프로그램
➋ 공연 후 아이들과 ➋
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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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꿈봉, 꿈꾸다
여해 주었습니다.
2. 꿈봉, 꿈꾸다
2015년 3월 19일, 일곱 번째 인형극에서는 <사자와 은혜 갚은 쥐>를 공연했습니다. 오랜만에 기본적인 동화를
➋
이용했는데 총 49명의 아이들이 왔습니다. 이날은 연습을 많이 해 보지 못해서인지 아이들이 집중을 잘 하지 못했 던 것 같습니다. 평소에 하던 실력의 반도 못했던 것 같아 와준 아이들에게 미안했고 반성도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저희는 처음에 도서관 홍보를 목표로 잡았지만 정작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생각해 낸 아이디어가 ‘인 형극’ 이었습니다. 인형극을 하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많았지만 다행 히 성공적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도서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었 고 즐거운 추억도 만들 수 있었습니다.
➌
➊ 직접 만든 인형들 ➊
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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➋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➌ 스터디 프로그램 ➍ 인형극 ➎ 인형극을 관람 중인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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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꿈봉, 꿈꾸다
화덕 프로젝트 [파견단체별 프로그램/캠프/필리핀]
이은서 (19)
화덕을 새롭게 개발하는 것은
전동훈 (20)
한국에서는 해보지 못할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저희끼리 직접 생각하고 디자인해 만들 수 있어 더욱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화덕 프로젝트를 하게 된 계기 저희가 2개월간의 언어훈련 후 여러 가지 프로젝트 중에서 화덕 프로젝트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다음 세 가지 이 유 때문입니다. 첫째, 화덕 프로젝트는 한국에서는 쉽게 경험해 보지 못하는 새로운 기회이고 둘째, 화덕 제작을 도 움으로써 타워빌과 가야가야 지역 사람들에게 협동조합을 통한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고 셋째, 안전한 화덕을 저렴 한 가격에 판매한다는 아이디어에 흥미를 느껴서입니다. 또한 우리가 많이 방문한 적이 없는 가야가야에서 이 프로
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젝트가 진행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야가야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야가야 사업 설명 가야가야 화덕 프로젝트는 이 지역에 천식, 폐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비율이 높은 것이 발견되면서 시작되었 습니다. 기존에 진행되고 있던 가야가야의 메디컬 프로젝트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질병의 원인을 조사하던 중 가정 내의 화로 사용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가스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나무나 쓰레 기를 캔에 넣어 태우는 방식으로 불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연기가 많이 발생하고 화상의 위험에도 노출 되어 있었습니다. 캠프아시아에서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할 방안을 찾던 중 시중에서 화덕을 판매하는 것을 보게 되 었고, 화덕 사업을 구상하게 되면서 가야가야 화덕 프로젝트 사업이 착수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첫째, 가야가야 지역 사람들의 호흡기 질환 예방이고, 둘째는 기존에 있던 시카이 협동조합과 연관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화덕을 제작해 판매하는 방법을 생각했으나 빈민 지역 사람들에게는 화덕 가격이 저렴하 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가야가야 지역에서 지원이 필요한 50가구를 선정, 배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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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트립 화덕 프로젝트 참여
저희는 12월 15일 사업에 처음으로 참여해 주2회 월요일, 목요일마다 가야가야 화덕 프로젝트 사업장에서 프로
가야가야 화덕 프로젝트 도중 저희는 타워빌 캠프 사업장 안에서 실시한 ‘Love Stove’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
젝트를 진행하시는 분들을 도왔습니다. 저희가 한 일은 시멘트 만들어 붓기, 철근 자르기, 시멘트 부수기, 페인트 칠
었습니다. ‘Love Stove’ 프로젝트는 비젼트립 기간 동안 300개의 화덕을 만들어 타워빌 지역에 배포하는 것으로,
하기, 화덕에 들어갈 화로 만들기 등 용접을 제외한 모든 일이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작업은 화로를 만드는 것이
가야가야 사업장 화덕과는 달리 빠른 시간 안에 대량으로 생산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만들게 된
었습니다. 화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쇠 판을 선에 맞춰 망치로 정교하게 구부리고, 마지막에 구부린 쇠 판을 고정시
화덕은 가야가야 사업장에서 만드는 화덕의 절반 크기에 ‘Love Stove’ 라는 이름을 가진 화덕이었습니다. 처음에
켜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작은 실수라도 하면 쇠 판이 고정되지 않아 처음부터 다시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는 만드는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해 당황스러웠지만, 다른 분들이 만드는 것을 지켜보니 생각보다 구조나 작업
어쩌다가 저희가 실수를 하더라도 화덕 프로젝트를 진행하시는 꾸야 분들은 화를 내기는커녕 친절히 다시 가르쳐
과정이 간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Love Stove’ 는 먼저 캔을 반으로 자른 후 만들어져 있는 틀을 끼우고
주시고 도와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일하는 중간 중간 쉬는 시간에는 간단한 간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
시멘트를 부어 고정시키는 방식으로 제작됩니다. 간단한 방식 덕에 저희는 비전트립 분들과 꾸야 분들과 함께 일주
는데, 그 시간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약 4주간의 프로젝트를 마친 후에는 저희도 실수
일에 두 번씩 약 한 달 반 동안 하루 평균 30개의 ‘Love Stove’ 를 만들었습니다. 가장 많이 만들 때는 하루에 약50
없이 화덕을 직접 만드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많이 힘들 때도 있었지만 저희가 만든 화덕이 타워빌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타워빌 사업장은 가야가야 화덕 프로젝트 사업장과 달리 공간이 넓고 우리가 좀 더 중심이 되어 일할 수 있는 분 위기가 조성되었기 때문에, ‘Love stove’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다른 분들과 더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중 밴치라 는 형과는 서로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워졌습니다. 비전트립 기간이 끝나고 밴치 형은 교회를 만드는 일을 하 게 되어 저희랑 많이 만나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밴치 형과 같이 화덕을 만드는 시간은 저희에게 좋은 추억이 되었 습니다.
➊,➋ 화덕 제작 배우기 ➌,➍ 화덕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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➊
➋
➎
➎ Love Stove 프로젝트 ➏,➐ 화덕 만들기를 도와주는 밴치 형 ➌
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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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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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꿈봉, 꿈꾸다
가야가야 화덕 프로젝트 참여
줄이기 위해 화덕 안에 2차 연소를 위한 공기층을 만들고, 시멘트와 봉제센터에서 나오는 남는 천 조각들을 얻어서
비전트립 기간 중 한국에서 이호용 교수님께서 캠프를 방문하셨습니다. 이호용 교수님께서는 저희가 화덕 프로
섞기도 했습니다.
젝트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화덕의 기본 원리와 지금 타워빌에서 만들고 있는 화덕의 문제점을 말씀
디자인을 마친 후 본격적으로 화덕을 만들기 전에 2차 연소가 되는지 실험을 했습니다. 땅에 떨어져 있는 캔을 주
해주셨습니다. ‘Love Stove’ 나 가야가야 사업장에서 만들고 있는 화덕은 공기구멍이 잘 만들어지지 않아 원래 목
워서 작은 화덕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첫 번째에는 공기구멍을 작게 뚫어서 2차 연소가 일어나지 않았지만, 다시 구
적이었던 2차 연소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화덕에서 연기가 많이 발생해 호흡기 질환에 노출될 가능성
멍을 크게 뚫어서 실험해 보자, 2차 연소가 일어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자세히 보면 나무에 불이 붙은 것이 아니라
이 크고 화력도 약하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가야가야 사업장에서 만들고 있는 화덕은, 시멘트의 비
구멍에서 가스를 태우는 파란 불이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율이 높다 보니 무게가 너무 무거워 비효율적이고 사용하기 불편하다는 점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새로 만든 화덕과 기존 화덕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비교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우선 무게를 재어보았습니다. 아래
이호용 교수님의 지적을 듣고 나자, 저희는 화덕을 만들고는 있지만 정작 화덕의 기본 원리는 잘 모르고 있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새로 개발한 화덕의 무게는 19㎏으로, 기존의 화덕 35㎏보다 약 16㎏정도 가벼운 것을 알 수
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저희에게 원리를 알려주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새로운 화덕
있었습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스토브를 디자인할 때 공기층을 많이 확보해 그만큼 시멘트의 비율이 낮추고, 시
을 디자인해서 만들어 보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우리는 교수님의 제안에 흥미를 가지고 새로운 화덕을 디자인했습
멘트와 천을 섞어서 무게를 줄였습니다.
니다. 저희는 일단 기존 화덕으로 라면을 끓여 먹어보면서 기존 화덕의 문제점을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실험을 통해 발견한 기존 화덕의 문제점은 크게 3가지였습니다. 첫째, 2차 연소점이 없어 2차 연소가 되지 않고 무게가 매 우 무거워 사용하기 불편하다는 점. 둘째, 좁은 인구로 인해 장작이 들어갈 공간이 적어 불이 오래 타지 않다는 점. 셋째, 공기가 잘 들어가지 않아 1차 발화가 발생하기 어려워 불을 피우기가 불편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위의 문제점들 중 가장 큰 문제점은 2차 연소가 일어나지 않아 연기가 많이 나고 에너지가 비효율적으로 사용된
다음으로는 2차 연소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불을 피워보았습니다. 처음에는 2차 연소가 잘 되지 않는 것처럼 보 였지만, 시간이 흐르자 공기가 데워져서 2차 연소가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차 연소가 되는 것을 확인한 뒤 저희는 기존 화덕과의 성능 차이를 알아보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진행했습니 다. 첫 번째로는 같은 냄비에 물을 1L씩 넣고 어느 쪽이 먼저 끓는지 실험해 보았습니다. 총 4차례의 실험을 통해서 새로 만든 화덕이 기존 화덕보다 평균 3분 정도 빨리 끓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는 구조의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두고 스토브를 디자인해 보았습니다. 무게를
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➊
➌
➎
➋
실험
기존화덕
새로운화덕
차이
1번
8분56초
6분25초
2분 31초
2번
8분 30초
5분30초
3분
3번
6분50초
4분30초
2분20초
4번
10분30초
6분7초
4분23초
평균
8분 41초
5분 38초
3분 3초
➏
➐
➑
➒
➍
➎ 기존화덕과 새로운 화덕의 끓는 시간 차이 (물양 : 1ℓ)
➏ 두개의 캔을 합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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➊ 새로운 화덕의 원리
➐ 아랫부분에 공기구멍을 뚫는다.
➋ 이호용 교수님
➑ 윗부분을 시멘트로 막는다.
➌,➍ 기존 화덕의 연소실험
➒ 2차 연소가 되고 있는 모습
67
2. 꿈봉, 꿈꾸다
화덕 개발 (개발 과정, 실험 결과, 개발한 스토브와 기존 제품 비교 보완할 점)
니다. 우선 기존 화덕을 기준으로 크기를 재고, 시멘트의 양과 화로의 크기를 참고해 화덕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두 종류의 화덕을 같은 시간 동안 태웠을 때 기존 화덕보다 새롭게 만든 화덕의 위쪽 부분이 더 깨끗 한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점을 통해 새롭게 만든 화덕에서 나오는 재가 더 적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많은 물을 끓이면 더 많은 차이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번에는 물 10ℓ가 어느 화덕에서 먼저 끓는지 실험해 보 았습니다. 실험 결과 저희가 개발한 화덕에서 평균 48분 정도 물이 빨리 끓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기존 화
한편 보완해야 할 점도 있었습니다. 저희가 만든 화덕의 경우 만드는 과정이 복잡해 대량 생산하기가 힘들었습니 다. 따라서 저희가 만든 화덕을 참고해 대량 생산이 가능한 새로운 화덕을 개발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덕보다 저희가 개발한 화덕에서 나무가 훨씬 적게 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연기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저희가 지금까지 실험했을 때 기존 화덕의 연기 농도나 양이 새로운 화덕
화덕을 개발하면서 느낀 점
보다 짙고 많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지만, 확실한 정보를 얻기 위해 연기 실험도 함께 진행했습니다. 실내에서 실험을 하려 했지만 공간이 마땅치 않아 밖에서 실험을 진행 했습니다. 처음에는 비닐을 감싸 연기 농
고 디자인해 만들 수 있어 더욱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화덕 실험을 하면서 힘든 점도 많았습니다. 바람
도를 확인하려 했지만, 실험 도중 바람이 너무 강하게 불어 연기는 날아가고 비닐은 녹아버려 실험을 진행할 환경이
이 불어 연기도 많이 나고, 덥고, 화상도 입고, 수많은 대나무를 손으로 일일이 부셔가면서 장작도 만들고, 재료와 도
되지 않았습니다. 또 불을 피우고 그 위에 타일을 올려놓아 그을린 정도로 연기 양을 테스트하려 했지만, 화력이 강
구가 부족해 아쉽고 힘들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직접 만든 화덕으로 맛있는 음식을 해 먹을 때는 정말 재
해 타일이 그을려 버렸고 또 바람이 연기를 모두 날려서 비교하기가 불가능했습니다.
미있었고, 2차 연소 과정을 지켜보면서는 많은 것을 공부할 수 있어 특별한 경험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➊
실험
기존화덕
새로운화덕
차이
1번
1시간 53분
57분
56분
2번
1시간 26분
45분
41분
평균
1시간 39분
51분
48분
➋
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화덕을 새롭게 개발하는 것은 한국에서는 해보지 못할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저희끼리 직접 생각하
①
②
③
④
⑤
⑥
➌
➊ 기존화덕과 새로운 화덕의 끓는 시간 차이 ( 물양 : 10ℓ)
➋ 기존화덕 ➌ 새로운 화덕 (2차 연소 스토브)
68
꿈봉의 새로운 화덕 제작과정
① 공기층 확보를 위한 작업 → ② 공기층 확보를 위한 작업이 진행된 모습 → ③, ④ 무게를 줄이기 위하여 시멘트와 섞어 반죽하는 모습. → ⑤ 완성된 시멘트 벽 → ⑥ 구멍에서 2차연소가 되고 있는 것을 확인
69
2. 꿈봉, 꿈꾸다
2차 연소 실험에 성공한 뒤 가야가야 지역에서 받아 온 재료를 가지고 저희가 디자인한 화덕을 만들기 시작했습
바궁포 초등학교 급식 프로그램
➊
[파견단체별 프로그램/한국YMCA전국연맹/필리핀]
박재성 (20)
너무 즐거웠고, 피딩 프로그램이
➋
경근혜 (21)
식사만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소통을 하고, 교류를 하는 것임을 느끼게 된 첫 순간이었다.
➊ 급식 이후 아이들과 함께 놀이 프로그램
우리 팀이 수행했던 가장 큰 활동 중 하나는 산파블로 YMCA와 협력관계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실시한 피딩
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프로그램이었다. 피딩은 말 그대로 아이들에게 급식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를 생각해보면,
➋ 급식 프로그램
선생님들이 함께 진행해 주셨다. 분류를 하고 나니, 한 반에 10명 정도의 아이가 배식이 필요한 영양상태인 것으로 확인되었고, 전체 약 70명이 넘는 학생들이 대상자로 정해졌다.
학교에서 밥 먹는 것이 너무도 익숙한 일이었고, 요즘은 각 지역마다 무상으로 급식을 하는 곳도 생길 정도로 학교
배식을 시작하는 날, 우리는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그 상황에서 쓰일 수 있는 따갈로그어를 연습
에서 밥을 먹는 것은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하였다. 일반고등학교에서는 저녁까지 제공하였으니 학교는 학생의 배
해 갔다. ‘줄 서세요’ , ‘더 먹을래?’ ‘다음 학생’ , ‘밥 먹자’ , ‘이거 줄까?’ 등등. 어떻게든 아이들과 직접 얘기를 나누고
움의 공간 인 동시에 식사와 생활이 함께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싶어 열심히 단어와 문장을 입으로 중얼중얼 외었지만, 막상 아이들을 직접 만나니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그래서 처음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학교에서 밥을 제공하지 않는 필리핀의 시스템에 대해 조금 놀라긴 하였다.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마구 뛰쳐나오는 아이들을 통제하기도 쉽지 않았다.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었고, 아
학교에서 밥을 주지 않으면 어디서 밥을 먹는 것인지, 우리나라가 예전에 하던 것처럼 학생들이 각자 도시락을 싸오
이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대응을 하기도 어려웠다. 몰려오는 아이들의 속도에 맞춰서 음식을 준비하는 것
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활동을 시작하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상황을 알게 되었다.
도 익숙하지 않았다. 많이 고마웠던 것은 현지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해주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당황할 때마다 괜
우리가 피딩을 하게 될 바궁포 초등학교는 공립학교였다. 여기도 사립학교와 공립학교가 있고, 사립학교는 건물 이나 시설들이 공립학교보다 좋지만 좋은 만큼 학비가 비싸다. 반면 공립학교는 거의 무료이지만, 지원이 충분하지
찮다고 격려를 해주고, 우리 대신 능숙하게 진행해 주었다. 첫 배식을 마치고 우리는 활동에서 아쉬웠던 점과 좋았 던 점들을 얘기하며 서로 의견을 나누었고, 나온 의견들을 반영하여 피딩을 준비하였다.
않아 시설적인 부분이 많이 열악하다. 바궁포 초등학교는 다른 공립학교보다도 많이 열악한 상황이었다. 이곳에 오
피딩 활동을 지속적으로 진행하다보니 현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하면서의 장점과 단점이 좀 더 눈에 보이기 시
는 학생들은 대부분이 학교 근처 철길에 사는 아이들, 가난한 학생들이 많았다. 점심시간이 되면, 학생들은 길거리
작했다. 우선 장점은 진행이 원활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점은 음식만 주고 아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음식이나 학교 안 매점에서 과자 등 주전부리를 사먹고, 아니면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온다. 이것도 돈이 있어야 할 수
것과 너무 우리가 현지 자원봉사자들에게 의지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우리가 피딩 프로그램에 익숙해질 때쯤, 사
있는 일이다. 한창 성장기인 아이들이 군것질거리로 배를 채우거나, 굶으니 체격이 왜소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무총장님께서 현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우리끼리 한번 해보라고 제안을 하셨다. 우리끼리 잘 해낼 수
우리의 활동은 2014년 11월부터 2015년 3월까지 5개월 동안, 매주 목요일 8시~10시에 진행되었다. 11월에는
있을까 기대 반 두려움 반.
본격적인 배식을 하기 전 배식이 필요한 아이들을 분별하기 위한 신체검사 진행 및 참여 리스트 작성을 진행하였다.
우리끼리 갔던 첫날, 그날따라 선생님들은 반에 계시지 않았다. 선생님과 자원봉사자가 맡아 해주었던 일들까지
아이들의 영양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몸무게와 키를 재고, 영양상태에 따라 아이들을 분류하였다. 바궁포 초등학교
우리가 모두 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이 컸지만, 일단 부딪혀 보는 수밖에.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모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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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착한 학생들 덕분에 아이들 모으는 것에 성공을 하고 배식을 시작하였다. 말과 진행은 익숙하지 않지만, 어느덧 익숙한 얼굴들이 된 아이들, 그리고 몇 번의 경험으로 조금이나마 익숙해진 우리의 행동들로 생각보다 원활하게 피
2. 꿈봉, 꿈꾸다
일부터 시작했다. 스페인식 이름이라 익숙하지도 않고, 좋지 않는 인쇄상태로 이름을 알아보기가 힘들었지만, 다행
꿈봉단원을 위한 산파블로
YMCA 교육 프로그램
딩이 진행이 되었다. 그리고 피딩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자연스레, 아이들과 뛰어 놀기 시작하였다. 놀이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손과
[파견단체별 프로그램/한국YMCA전국연맹/필리핀]
발이 맞으면 어느새 친구가 될 수 있게 하는 효과적인 활동이었다. 아이들이 모이고, 웃음소리가 학교 밖으로 새어 나왔다. 땀범벅이 됐지만, 우리의 튼튼한 다리는 멈출 줄 모르고 뛰어 다녔다. 아이들과의 놀이는 수업이 시작이 되 서야 끝났다. 이날 우리는 피딩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온몸에 희열을 느꼈다. 너무 즐거웠고, 피딩 프로그램이 식사만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소통을 하고, 교류를 하는 것임을 느끼게 된 첫 순간이었다. 그 뒤로도 배식이 끝나면 아이들과 뛰어놀고, 필리핀 손놀이를 아이들한테 배워, 함께 하며 놀았다. 그러자 이제 식사가 끝날 무렵이 되면, 이미 아이들은 우리 가까이에서 어떻게 하면 놀래킬 수 있을까 기회를 엿보기까지 했다.
임이경 (멘토/25)
꿈봉으로 활동하는 것은, 나의 노력,
신종민 (20)
땀, 열정 등 현지에서 내가 나눌 수 있는 것들을 주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지인으로부터 수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였다.
한편으로는 놀이 프로그램을 짜와서 좀 더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한편으 로는 체계적인 것 보다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충분히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어서 더 즐거웠던 것 같다. 배식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으나 아이들과의 친밀감을 흠뻑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 필리핀 바궁포 초등 학교 아이들의 맑고 초롱초롱한 눈빛은 내내 마음 속에 담겨있을 것 같다. 산파블로 YMCA에서는 YMCA와 연결되어 있는 커뮤니티를 통해, 꿈꾸는청년봉사단원들이 배우고 싶은 것들 을 제안하고 이것을 함께 배울 수 있는 활동을 제공하고 있었다. 진행된 프로그램은 피아노, 기타와 같은 악기 배우기부터, 영어와 따갈로그어 같은 언어 배우기, 가라테 수업이 있었다. 필수적으로 참여하는 활동도 있었고,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해 참여할 수도 있었다. 우리 모두가 참여했던 것은 기타 수업과 언어 수업이었다. 필리핀 사람들은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 노래를 항상
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가까이 하는 것 같았다. 밤만 되면 노래방 기계 소리가 마을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아침부터 밤까지 동네 사람들이 가무를 즐기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현지인들과 조금이라도 더 친해지고 싶었던 우리는 필리핀 가요를 배우기로 하였고, 현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
➊
으로 한 곡, 두 곡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현지어가 아직 익숙하지 않았던 우리는 자원봉사자들이 발음을 불러 주면 소리나는 대로 한국어로 받아 적어 일단 노래를 외우고, 무슨 의미인지도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이해하였 다. 필리핀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어 좀 더 친근하게 현지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도 좋았지만, 노래를 배우면 서 자연스럽게 따갈로그어를 배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노래에 맞춰 기타 반주도 배웠는데, 그렇게 배웠던 첫 노래가 ‘Bahay kubo’ 였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아는 국민노래여서 우리에게는 어디서든 분위 기를 돋우고 친해질 수 있게 하는 하나의 큰 장기가 되기도 하였다. 하나씩 노래를 배우다보니 어느새 부를 수 있는 필리핀 노래가 5곡이 되었다. 이제는 필리핀 노래 좀 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듯! 언어 수업은 필리핀에서 생활하기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현지생활에서 따갈로그어만큼은 아니어도 유용 ➊ 급식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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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사용될 수 있는 언어가 영어였던 만큼, 우리에게 영어수업은 매우 중요한 시간이자 과정이었다. 영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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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 Chris는 모든 수업을 우리 눈높이에 맞게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셨다. 단어부터, 문장 만들기까지 인터뷰도 하며, 딱딱한 영어보다 일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표현들을 끊임없이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어느덧 어렵기만한 영 어가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하고, 마지막에는 우리가 느낀 점을 영어로 작문할 수도 있게 되었고 선생님이 다듬어 주신 원고로 카메라 앞에서 나의 느낌을 영어로 이야기 해보는 기회까지 갖게 되었다. 내가 영어로 나의 얘기를 할
탐방공모전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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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글룽을 벗어나 네팔의 변화와 문화를 확인하러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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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봉, 사회적기업과 국제기구를
수 있다니! 영어로 말하는 새로운 우리의 모습에 우리 자신이 한껏 자랑스러웠다.
만나다!
꿈봉으로 활동하는 것은, 나의 노력, 땀, 열정 등 현지에서 내가 나눌 수 있는 것들을 주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동 시에 현지인으로부터 수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였다.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게 해 준 산파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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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동성애를 이해하다!
로의 모든 분들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
타워빌 아이들의 꿈이 자라는 공간, 빵아랍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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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➊
➋
➌
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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➊ DLSP 문화 교류 프로그램(산파블로 학교) ➋ 산파블로시티 주요기관 둘러보기 ➌ 문화 배우기(기타수업) ➍ 태풍으로 무너진 지붕과 체육관 보수 작업 ➎ 필리핀 언어 배우기 (따갈로그, 영어 수업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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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으로 만드는 커피
[탐방 기획서/생명누리/네팔]
바글룽을 벗어나 네팔의 변화와
2. 꿈봉, 꿈꾸다
스무살에 네팔에서 꾸는 꿈
문화를 확인하러 떠나다! [탐방 에세이/생명누리/네팔]
한 명이 무릎을 꿇고 앉아서 아이들과 한 명 한 명 탐방팀명
강나희 (20)
스무살에 네팔에서 꾸는 꿈
인사를 나누고 식판을 손에 들려주었습니다. 팀원
강나희, 박나영, 이수언, K.B. SHAHI
기간
2015, 3, 2 - 5 (3박 4일)
대상 기관
1일 : 카트만두 밥퍼, 둘리켈병원 마을개발센터, 박터풀유적
낮은 자세로 아이들을 올려다본 게 처음인 것 같아서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2일 : 지구촌공생회, 공정무역 아싸커피, S.E.A Center
목적 및 기대효과
탐방의 최종 목적 봉사단원 : 네팔의 변화를 선도하는 다양한 국제협력 사업을 경험함으로써 국제협력의
저와 나영이는 지난 3월 3-4일 이틀간 카트만두의 타 NGO기관과 문화 유적지를 탐방하고 왔어요. 먼저 첫째 날
마인드 향상 현지스탭 : 카트만두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국제협력 사업을 체험함으로써 업무에 대한
탐방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첫째 날에는 보우더너트, NGO지구촌공생회, 아싸커피, S.E.A센터, 스워염부너트에 다녀왔답니다. 보우더너트
역량 강화
는 티베트 불교의 탑이 있는 곳인데요. 거대한 높이의 탑 밑에 경전이 쓰여 있는 마니차가 탑을 빙 둘러 달려 있고,
기대효과 현재 지역에서 진행하는 여성 직업 교육의 체계화 - 지역에서 추진하는 청소년센터에 대한 실제 모델 체험 - 커피공정무역 단체와의 만남을 통한 지역의 커피 협동조합 창립에 대한 기술지원 및 협조 방안 모색 - 꿈꾸는청년봉사단의 국제협력에 대한 의식 향상
주변에 사시는 티베트 불교 신자분들은 탑돌이를 하며 마니차를 돌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신다고 해요.
NGO지구촌공생회는 한국의 송월주 스님이 세운 불교계의 대표적인 NGO 단체인데요. 세계 여러 나라에 단체 가 있고 주로 교육 관련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카트만두 지부는 네팔 대표님이 운영하고 계십니다. 한국 봉사자들 도 여럿 있고, 도서관과 방과후교실, 한국어 교실, 재봉 교실, 컴퓨터 교실 등이 매우 잘 꾸려져 있었습니다. 특히 재
추진 경위 및 배경
현재 꿈봉이 활동하는 바굴룽은 카트만두와 멀리 떨어져 있어 새로운 국제협력에 대한 정보나 경 험이 부족한 상태임. 탐방 프로그램을 통해 국제협력을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에서 일어
➊
➋
나는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 방향에 대한 전반적인 대책을 모색하기 위해 다양한 단체를 방문할 계 획을 세우게 됨.
내용
1. 네팔의 빈민 지역에서 이들의 자립을 위한 협력사업 탐방 2. 현지 NGO 프로그램으로 청년 마을리더 양성 교육시스템 탐방 3. 바굴룽 사업의 모델이 될 수 있는 청소년 센터 방문 4. 공정무역에 대한 이해와 네팔의 현재 상황에 대한 이해 5. 디자인 등 상품의 다양화를 통해 산업을 혁신시키는 사업 탐방
➊ 보우더너트
6. 네팔의 문화유적 탐방
➋ 지구촌공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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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구경하는 내내 정말 놀랐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카트만두 밥퍼로 출발했습니다. 카트만두의 쓰레기 처리장에 있는 이곳은 아침 8시부터 인근 아이들을 대상으로 식사 배식을 하기 때문에 서둘러 가야 했어요. 그냥 밥만 퍼주면 되는 걸까 했는데, 이곳의 배식
아싸커피는 공정무역 커피를 파는 단체인데 한국인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날 대표님은 만나 뵙지 못하고 대신
방법은 조금 독특했어요. 앞에 계신 분들이 식판에 밥을 담아주시면, 한 명이 무릎을 꿇고 앉아서 아이들과 한 명 한
아싸카페에 다녀왔어요. 네팔은 고원지대가 많고 건기와 우기가 뚜렷해서 아라비카 커피가 자라는 데 최적의 조건
명 인사를 나누고 식판을 손에 들려주었습니다. 그렇게 낮은 자세로 아이들을 올려다본 게 처음인 것 같아서 정말
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지역에서 자란 아라비카 커피는 맛과 향이 풍부하다고 하네요.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음에는 S.E.A 센터에 갔습니다. 이 특이한 이름은 Social Enterprise Activation center의 약자라고 해요.
두 번째로 간 곳은 둘리켈 병원인데요. 이곳은 병원이자 훌륭한 마을개발센터로도 유명한 곳이에요. 이곳에서 저
이곳 역시 한국분이 만든 곳인데 카페 미티니와 미티니 숍, 디자인 학교 등의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인
희 지부장님이신 샤히 선생님께서 병원 관계자와 한참 동안 마을 개발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셨답니다. 병
만큼 주변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습니다. 건물 또한 정말 세련되고 멋있었습니다. 카페 메
원 시설이 정말 좋아서 깜짝 놀랐고, 한적하고 아늑한 분위기와 병동 뒤로 의과대학까지 있는 모습에 또 한 번 놀랐
뉴와 음료도 한국의 맛있는 카페에 온 것처럼 근사했답니다. 네팔인를 많이 고용해 일을 가르치고 전문성을 길러주
답니다. 진료비와 치료비도 정말 싸다고 하네요.
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박터푸르 더부르라는 고대 왕궁에 다녀왔습니다. 왕족들이 생활하던 궁전과 힌두 사원이 함께 있는
마지막 코스로 스워염부너트에 갔습니다. 보우더너트와 마찬가지로 이곳도 티베트 불교 사원입니다. 계단을 한
것이 신기했고, 건축물마다 새겨진 섬세한 조각들이 인상 깊었어요. 처마나 계단에 동물 형상이 조각된 걸 보며 한
참 올라가면 거대한 탑이 있고, 원숭이들이 무지 많았습니다! 몽키 템플이라고도 불린다는 스워염부너트는 곳곳에
국의 궁궐들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벌써 몇 백 년이 흘렀는데도, 우리나라와는 달리 보수된 것 없이 모든 게 옛날 그
서 원숭이들이 떼로 몰려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또 높은 데 있다 보니 탑까지 올라가면 카트만두 시내가 훤
대로라는 설명에 참 부럽기도 했습니다. 창덕궁, 경복궁과도 닮았구나 싶었는데 코뿔소 조각상이나 코끼리 조각상
히 내려다보입니다. 마침 해질녘이라 노을 지는 모습이 정말 예뻤어요. 조금 걸어 내려오면 거대한 불상도 볼 수 있
을 보며 새삼 이국적이란 생각도 들었답니다. 또 조금밖에 맛보지 못했지만, 그 유명한 박터풀 더히(일종의 요거트)
는데요. 힌두교와 만나서 부처님뿐만 아니라 시바신의 불상도 같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도 먹고 왔습니다.
둘째 날에는 카트만두 밥퍼, 둘리켈 병원(마을개발센터), 박터푸르에 다녀왔습니다.
바글룽에서 카트만두까지 가는 데만 꼬박 하루가 걸리는, 먼 길을 다녀온 나흘간의 탐방은 이렇게 마무리되었
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습니다. ➊
➋
➌
➍
➎
➊ 아싸커피앞에서 ➋ 스워염부너트 ➌ 둘리켈병원 ➍ 카트만두 밥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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➎ 박터푸르 더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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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꿈봉, 꿈꾸다
봉교실의 주요 상품이 주변의 공립학교 아이들을 위해 만든 교복이라는 게 인상 깊었어요. 건물 전체가 엄청 깔끔해
[탐방 기획서/캠프/필리핀]
꿈봉, 사회적기업과 국제기구를 만나다!
2. 꿈봉, 꿈꾸다
국제개발의 현장, 국제기구와 사회적기업 속으로!!
[탐방 에세이/캠프/필리핀]
복원용 (멘토/33)
한국의 많은 청년들이 이런 국제기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미래의 모습을 그려본다.
탐방팀명
국제개발의 현장, 국제기구와 사회적기업 속으로!!
팀원
멘토
복원용, 김보미, Ma. Gracia
단원
장희제, 정의석, 전동훈, 김다미, 김규원, 이은서
기간
2015년 2월 23일, 2015년 3월 2일
대상기관
GK Enchanted Farm, WHO
탐방 기획서를 써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을 때 우리는 모두 모여서 회의를 했다. ‘어떤 기관을 방문하면 우리 모두 만족하면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우리는 ‘필리핀에는 많은 국제기구가 있으니 그중 한 곳을 선정 하고, 필리핀 현지의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을 한 군데 방문하면 좋겠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선정한 곳 이 필리핀의 대표적 협동조합이자 사회적 기업인 GK Enchanted Farm과 국제기구인 WHO였다.
목적 및 기대효과
● 국제기구 탐방을 통해 봉사단원들의 진로 탐색을 도모 ● 현지의 성공적인 사회적 기업 모델을 견학함으로써 사회적 기업에 대한 이해도 제고
추진 경위 및 배경
● 필리핀 현지에 있는 캠프 사업장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특별히 가야가야 지역에서 진행되
의 약자이고 ‘다른 사람을 돕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름에 걸맞게 GK는 필리핀 전역에 빈곤층을 위한 집을 짓 고, 다양한 빈곤 퇴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가 필리핀에서 머물던 타워빌 지역에도 GK의 도움으로 집을 얻어
고 있는 지역주민들의 역량 강화를 통한 보건의료서비스의 중요성과 함께 지역개발에서 보건
생활하는 수혜자들이 많았고, GK가 운영하는 어린이집도 있었다. GK는 빈곤 퇴치를 위한 주요 사업으로 농업을 선
의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됨. 이러한 국제개발과 보건의료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이
정했는데, 이 사업장이 우리가 있던 타워빌과 같은 불라칸주에 위치하고 있었던 건 어쩌면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
WHO라고 생각되어, 마닐라 WHO서태평양지부를 방문해 앞으로의 사업과 진로 탐색에 도움
우리보다 먼저 GK Enchanted Farm을 다녀온 KCOC 봉사단원들과 엘리 팀장님의 경험담을 듣고 우리는 꼭 가서
을 받고자 함.
직접 경험해 보기로 결심했다.
● 필리핀의 대표적 비영리단체인 GK에서 운영하는 GK Enchanted Farm의 체험 프로그램을 통 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의식주 관련 사업들을 살펴봄으로써 앞으로의 사업과 진로 탐색하고 자 함.
내용
GK는 필리핀 최대의 협동조합이면서 여러 개의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기관이다. GK는 Gawad Kalinga
농장에는 입구부터 들어선 건물들로 압도된다. 이 건물은 현대자동차의 후원으로 친환경적인 디자인을 최대한 살려서 지은 건물이다. 이 건물 강당에서 GK 소개 영상을 볼 수 있었는데, GK는 필리핀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하 고 그들을 한 명도 남겨두지 않고 같이 가겠다는 모토를 가진 멋진 단체였다. GK Enchanted Farm에서는 대규모 농장 운영뿐 아니라 여러 가지를 운영하고 있었다. 농장에서 많이 재배하고 있는 작물들을 의인화한 인형들을 만드
1 월 : 탐방 계획서 작성 및 관련 기관 연락 2월 : 탐방 기관 조사 및 방문(WHO, 2/23)
는 봉제공장, 아프리카 지렁이를 이용해 천연 비료를 만드는 작업장, 농장에서 재배한 땅콩으로 만드는 땅콩잼 만들
3월 : 탐방 기관 조사 및 방문(GK Enchanted Farm, 3/2), 보고서 작성 및 제출
기 등 굉장히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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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꿈봉, 꿈꾸다
GK Enchanted Farm에서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느꼈다. 농장을 안내해준 가이드는 필리핀산이라고 하면 품질이 낮을 거라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필리핀산이 세계 최고의 품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사람들의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그 도전을 빈곤층 사람들과 함께해 나가는 모습이 많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두 번째로 방문한 기관은 ADB(아시아개발은행)이었다 9). 원래 계획은 WHO를 방문하는 것이었지만 우 리가 공식 요청서를 발송했음에도 된다, 안 된다 확답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다른 기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 이 흐르자 마음이 조급해진 우리는 국제기구이면서도 개발과 관련된 일을 하는 다른 기구를 찾기 시작했고, 마닐라 에 본부를 두고 있는 ADB가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ADB 방문에 앞서 개발은행이 하는 일을 조사하면서 질문할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올티가스 중심가에 위치한 ADB 건물은 우리 생각보다 화려했다. 우리가 지내는 캠프나 다른 NGO들의 상황에 익숙해져 있어서인지, ADB의 화려한 모습에 뭔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유 능한 인재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복지에 많은 신경을 써서 빈곤층을 위한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역 할도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ADB 직원의 안내에 따라 시설 내부를 둘러보았다. 자체 도서관과 개방적인 분위기의 사무실이 인상적이 었다. 특히 여러 나라에서 온 직원들을 위한 세계 각국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이 가장 부러웠다. 복도에 있는 많 은 전시품들도 눈에 띄었다. 우리가 방문했던 때는 세계 여성의 날 즈음이어서, 여성과 인권이라는 주제로 필리핀 학생들이 만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➊
➊ GK Enchanted Farm
9)
ADB는 1966년에 설립되었으며, 아시아와 태평양 인근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과 협력촉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총 67개 회원국이 있으며, 주요 활동으로
GK Enchanted Farm
는 회원국에 대한 대출, 기술원조, 빈곤현황 실태조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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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정부의 부패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어느 NGO 대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 대표에 따르면 각국 정부가 지원받는 금액을 어떻게 투명하게 쓰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어떤 국가는 전산화를 하지 않고 수기로 작업하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은 데이터를 제공하기도 한다고 한다. 투명성과 책무성을 확보하는 것은 수원국에 지 원되는 돈이 올바로 쓰이는지 확인하고, 빈곤으로 고통 받는 국민에게 제대로 쓰도록 하기 위함이다. 포럼이 끝난 후 ADB 직원 몇 명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ADB가 어떤 일을 하는지에 관한 영상과 ADB가 아 시아 청년들에 대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영상을 보았다. 미래를 선두하는 리더들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ADB에서 꿈꾸는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비전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한국의 많은 청년들이 이런 국제 기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미래의 모습을 그려본다.
➊, ➋ GK 의 인형과 다양한 제품들
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➌, ➍ ADB직원들과의 대화, 워크샵 ➊
➋
➌
➍
ADB 내부 전시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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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꿈봉, 꿈꾸다
시설을 다 둘러보고 나서는 마침 그날 ADB에서 진행하고 있던 정부의 부패 방지를 위한 투명성 포럼에 참석했
[탐방 기획서/한국YMCA전국연맹/필리핀]
2. 꿈봉, 꿈꾸다
필리핀 Dream Y팀
필리핀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동성애를 이해하다! [파견단체별 프로그램/캠프/필리핀]
박재성 (20)
다른 곳들을 둘러보고 느끼며 한 템포
경근혜 (21)
쉬었다가 다시 출발할 수 있게 해 주었던 탐방이었습니다. 탐방팀명
필리핀 Dream Y팀
팀원
임이경, 박재성, 경근혜, 신종민 외 현지 스텝 2명
대상기관
1. Rizal Shrine in Calamba Laguna 2. National Museum in Manila 3. The Love Yourself’ NGO in Manila 4. Clark Pampanga (Expo Filipino Nayong Filipino) 5. Coffee Market in Lipa city Batangas
목적 및 기대효과
필리핀 국립박물관 저희는 2월13일~15일 동안 탐방을 다녀왔습니다. 비자연장을 할 때 빼고 산파블로 안에서만 활동을 했던지라 산 파블로 외의 지역을 가보고 싶었는데, 이번 탐방을 계기로 그 소원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13일 당일에 비자를 연장
● 필리핀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특히 이 지역 출신인
한 후, 여러 곳을 다녔는데 그중에서도 국립박물관이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박물관 내부에는 매우 아름다운 작품
국민영웅 Rizal의 생애를 돌아보며 청년들을 이끌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들이 있었고, 어떤 작품은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로 멋있었습니다. 박물관의 규모도 굉장히 크고 웅장해서 전체를
Rizal의 정신을 배우고자 함.
다 구경하진 못했지만, 정말 좋은 경험이었고 필리핀의 문화와 정신을 접하는 매우 좋은 기회였습니다. 기회가 된다
● HIV/AIDS 글로벌 이슈를 지역의 문제로 가져와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면 다시 한 번 방문해서 여유를 갖고 충분히 작품들을 감상해보고 싶습니다.
지구시민으로 성장시킴. 추진 경위 및 배경
● 실존 인물에 대해 배우는 것에 대한 흥미, 특히 이 지역 출신의 국민영웅에 대한 관심으로 본
➊
탐방을 기획함 또한 지역 축제를 경험하면서 필리핀의 문화에 더 흥미를 가지고, 특히 과거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을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고자 함. 산파블로에는 제3의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고, HIV/AIDS문제도 여전히 사회 이슈인 바,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기 위해 관련 기관을 선정함.
내용
● 필리핀 국민 영웅 Rizal의 삶을 돌아보며 그 시대를 이해 ● 유물 및 시각적인 자료들을 둘러보며 필리핀의 역사를 이해. ● 현재 필리핀의 건축 문화 양식들을 느끼고, 지역 축제에 참여. ● 커피원두의 생산과정을 직접 체험
➊ 필리핀 국립박물관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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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센터 기관 방문 프로젝트로 사실은 지금 진행 중인 커뮤니티 카페 프로젝트와 관련된 기관들을 방문해 사례들을 찾아 보고 싶었지만, 필리핀에서는 커뮤니티 카페라는 개념을 찾기가 쉽지 않아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이전까지
프로젝트 공모전 프로그램
●
타워빌 아이들의 꿈이 자라는 공간, 빵아랍 도서관
우리가 느끼고 알고 있었던 필리핀과는 조금 다르고, 새로운 문화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곳들(HIV 센터, RIZAR 공원, 국립박물관, HOT AIR BALLOON 축제, NAYONG PILIPINO)을 다녀왔습니다. 개인적으론 HIV센터에 다녀왔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동성애나 성병에 대해서 한국에서는 한 번도 이야 기해본 적이 없었고, 그 분야에서 활동하거나 직접 겪어본 사람을 만나본 적도 없었습니다. ‘HIV’ 에 대해서 저희 팀 원 모두 너무나도 무지했던 터라 센터에서 모두가 “아하~”를 연발하며 이야기를 들었고 다들 열정적으로 질문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들 HIV 테스트를 받았고 모두 건강하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사실 3~4개월을 필리핀의 한 지역에서만 지낸다는 것에 조금 아쉬웠고 항상 다른 곳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 는데, 이번 탐방을 통해 그런 마음이 해소됐던 것 같습니다. 다른 곳들을 둘러보고 느끼며 한 템포 쉬었다가 다시 출 발할 수 있게 해 주었던 탐방이었습니다.
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남은 기간도 건강하고 재미나게 활동하며 한국에서 좋은 모습으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➊
➋
➌
➍
➌ ➎
➊, ➋, ➌ HIV센터 ➍, ➎ 마닐라 대성당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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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으로 만드는 커피
(마을 어린이도서관을 통한 빈곤아동 꿈 프로젝트)
[프로젝트 기획서/캠프/필리핀]
2. 꿈봉, 꿈꾸다
어린이 도서관을 통한 PANGARAP(꿈, 희망) 프로젝트
타워빌 아이들의 꿈이 자라는 공간, 빵아랍 도서관 [프로젝트 에세이/캠프/필리핀]
장희제 (21)
아이들이 이곳에서 책을 읽으며
김다미 (20)
더 큰 세상을 보고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도서관의 이름인 프로젝트명
어린이 도서관을 통한 PANGARAP(꿈, 희망) 프로젝트
Pangarap(꿈, 희망) Library처럼.
(마을 어린이도서관을 통한 빈곤아동 꿈 프로젝트)
국가 및 지역
국가 : 필리핀 (Philippine) 지역 : 필리핀 불라칸주 산호세델몬테시 타워빌, Manila 북동쪽 40㎞
목적 및 목표
● 아이들에게 책을 통해 더 큰 세상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함. ● 거리의 아동들을 위해 찾아가는 서비스인 이동도서관 운영.
참여자
필리핀에 도착하고 캠프 사업장을 둘러보는 시간이 있었다. 타워빌 지역과 가야가야라는 지역에 캠프 사업장이 있었는데, 가야가야에는 있고 타워빌에는 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도서관이었다. 우리들은 타워빌 지역에 살았기 때
● 매일 평균 20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도서관을 방문.
문에 평소 타워빌을 돌아다닐 때 길가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보았다. 그 아이들 대부분은 학교를 가지 않거나 가지
● 매주 2회 이동식 도서관을 운영해 더 많은 아이들이 책을 접할 수 있도록 함.
못하는 아이들이었는데, 생계를 위해 부모님의 일을 도와야 해서 공부에 관심이 있어도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지 못
● 파견단체 : 이철용 대표, Elizaga Mario(현지 디렉터), Manager Donna, Staff Ma. Gracia ● 협력기관 : 캠프 아시아, KCOC, 안양제일교회 Mission NGO ● 지역주민 : 필리핀 타워빌 1~5 구역 지역 빈곤아동 500명
하는 아이들이었다. 우리는 그런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특별 프로젝트 기획서를 열심 히 작성했다. 기획서라는 것을 처음 써 보았기 때문에 쉽지 않았지만, 각자가 맡은 부분에 최선을 다 하고 부족한 부 분은 서로 채워주면서 기획서를 완성했다. 그렇게 제출한 특별 프로그램 기획서가 통과되어 꿈봉만의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추진 경위 및 배경
● 타워빌 마을 어린이 도서관 운영 : 지역 빈곤아동의 꿈을 키워주기 위해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는
통과가 되고 나서부터 촉박한 일정 때문에 갑자기 바빠졌다. 책을 사서 비닐포장지로 튼튼하게 포장한 다음 분류
어린이도서관 운영. 다양한 분야의 영어서적과 타갈로그어 서적 배치. 정기적인 영화 상영 프로
해 라벨을 붙였다. 그리고 라벨의 정보를 하나하나 엑셀 파일로 정리했다. 우리는 처음에 책 1,000권을 소장한 도서
그램 진행. 구연동화와 같은 특별 프로그램 진행.
● 찾아가는 이동도서관 운영 : 거리의 아동들을 위해 트라이시클을 이용해 이동도서관을 운영함. 찾아가는 서비스를 통해 타워빌 마을 어린이도서관에 접근하기 어려운 아동들에게 독서교육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 미래의 꿈을 키우도록 함. 다양한 분야의 영어서적과 타갈로그어 서적 배치. 정기적인 영화상영 프로그램 진행. 다양한 문화공연과 같은 특별 프로그램 진행. 기대효과
● 타워빌 아이들의 책 접근성 향상(MDG2)
기간
● 2015년 1월 15일 ~ 3월 15일 (총 2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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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잡았는데 1,000권이 넘는 책을 포장하고 분류하자니 처음에는 체계가 잡히지 않아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점점 익숙해지면서 다들 각자의 역할을 찾았다. 그렇게 해서 지금은 약 1,080권을 소장하고 있다. 우리가 할 일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다른 지역 아이들을 위한 이동식 도서관을 만드는 또 다른 목표도 있었기에, 이를 위한 준비도 해야 했다. 아이들이 하루에 몇 명이나 왔는지 알 수 있게 방명록 책, 펜, 책을 담 을 상자, 아이들이 앉을 돗자리, 특별 활동을 위한 준비물 등을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했다. 드디어 도서관을 열 준비를 마치자, 우리의 꿈 도서관 개관식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아이들이 책에 흥미를 가 질 수 있도록 그림 그리기, 음악공연, 인형극 등 다양한 놀이문화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고픈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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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시키기 위해서 지역의 고등학생 봉사자들을 섭외해서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유니폼도 제작했다.
할 수 있는지 나누는 자리였다. 그렇기 때문에 객관적인 의견도 필요했다. 그래서 대표님과 현지 스태프 매니저를 초청했는데, 그때부터 우리들은 다들 긴장하기 시작했다. 필리핀에 온 이
개관식 당일, 우리의 예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왔다. 아이들과 어른들을 포함 총 170명 정도가 방문했는데, 분
후로 가장 집중하는 모습들을 보였다. 각자 파트를 나누어서 발표를 준비했다. 우선 오프닝과 목차와 우리가 도서관
주했지만 기분은 최고였다.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맛있는 간식도 먹으면서 도서관에 대한 설명도 했다. 도서관
프로젝트를 하게 된 동기는 동훈이가, 포스터를 붙일 자리와 모바일 도서관을 운영할 장소를 찾고 도서관을 위한 책
개관식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런데 개관식 이후 도서관을 운영한 첫날에 겨우10명 정도 밖에 오지 않아 약간 실
작업, 그리고 특별활동과 개관식은 희제 오빠가, 도서관의 목표와 우리가 달성한 결과는 은서가, 특별 프로그램에
망했다. 하지만 그날 왔던 아이들이 여기 저기 소문을 냈는지 점점 많이 오기 시작했다. 3월 초반인 최근에는 하루
대한 동기와 소개는 다미와 규원이가, 우리가 생각하는 강점과 약점 그리고 앞으로 해결할 점에 대한 발표는 의석
평균 방문자 수가 60~70명 정도다.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책도 읽고 게임도 하고, 영화 상영, 인형극 등 특별 프로
오빠가 했다. 다들 각자 맡은 발표를 위해서 대본도 열심히 쓰고 서로에게 물어보며 영어로 번역도 했다. 또한 회의
그램도 진행하면서 즐겁게 도서관을 운영했다.
를 하는 그 시간에 바로 옆에서 다른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큰 소리로 발표해야 했다. 발표 30분 전에는 리
이동식 도서관은 일주일에 2번씩 수요일에는 4구역, 금요일에는 1구역에서 운영했다. 이동식 도서관을 운영한 첫날에는 너무 많은 아이들이 와서 우리가 준비한 돗자리가 부족할 정도였다. ‘앞으로도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올 까?’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스피커로 음악을 틀면 그 소리를 듣고 오기도 하고, 한 아이가 여러 친구들을 데리고 오기도 했다. 이동식 도서관은 야외에서 운영하다 보니 책을 읽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아서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고 뛰어다니거나 책을 던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럴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재빨리 대처해서 아이들이 책 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허설을 하며 수정할 부분과 발표 자세에 대해서 서로에게 피드백을 해 주었다. 그렇게 리허설이 끝나고 3시가 되어 발표를 시작했다. 발표가 시작되자 다들 리허설보다 더 자신감 있는 큰 목소리로 발표했다. 그리고 질문에 대해서도 잘 대답했다. 그렇게 마무리 평가 회의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마무리 평가를 통해 우리는 해결해야 하는 문제점들을 조금 더 명확히 알게 되었다. 첫 번째는 꿈봉이 한국으로 돌아간 후 도서관을 운영할 봉사자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를 도와주던 봉사자들이 있었지만, 그 친구들은 올해 고등
도서관을 운영한 지 한 달이 흐르고, 우리가 프로젝트를 잘 이끌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꿈 도서관 마무리 평가 회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진학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도와줄 수 없었다. 두 번째는 앞으로 사용할 도서관 운영비
의를 가졌다. 우리의 활동을 정리, 보고하고 잘된 점과 아쉬운 점을 발표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아쉬운 점을 보완
가 없다는 것이다. 모바일 도서관의 경우, 나가고 올 때마다 책을 운반하는 비용이 발생하는데 우리 프로젝트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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➊ 갓 사온 따끈한 책 ➋ 포장과 라벨작업을 마친 책들
➌ 색칠 놀이를 위한 밑그림 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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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꿈봉, 꿈꾸다
를 채워줄 맛있는 간식도 준비했다. 간식을 준비하는 데는 봉제센터 어머니들의 도움이 정말 컸다. 그리고 도서관을
2. 꿈봉, 꿈꾸다
간이 정해져 있기에 프로젝트 종료 후에 사용할 재원이 없었다. 세 번째는 도서관 운영을 위한 안정적인 장소가 없 다는 것이다. 캠프 안에 있는 아웃도어 도서관은 행사가 있으면 문을 닫거나 아이들이 다른 곳에서 책을 읽게 해야 하는데,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이렇게 불규칙적으로 도서관을 연다면 아이들이 언제 열고 닫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도서관 이용에 차질이 생길 것이다. 이런 것들이 도서관을 지속 가능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이것들을 잘 해결한다면 도서관은 꿈봉이 없어도 잘 운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해결방안이 있을까?’ 에 대해서도 의견이 나왔다. 봉사자와 관련된 해결방안은 고등학생 봉사자 한 명이 일주일에 두 번씩 봉사를 할 경우, 총 5명 정 도만 있으면 된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되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봉사자들이 매일 있는 것이다. 아직 해결방안이 하나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찾고 싶다. 그래서 앞으로 더 많은 아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 그 아이들이 이곳에서 책을 읽으며 더 큰 세상을 보고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도서관의 이름인 Pangarap(꿈, 희망) Library처럼.
➊ 도서관 개관식 물풍선 게임 ➋ 도서관 개관식 단체사진 ➌ 이동식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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➍ 특별 프로그램 ➊
➋
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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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 도서관 홍보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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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으로 만드는 커피
[프로젝트 기획서/한국YMCA전국연맹/필리핀]
[프로젝트 에세이/한국YMCA전국연맹/필리핀]
2. 꿈봉, 꿈꾸다
청년 커뮤니티카페 만들기
임이경 (멘토/25)
나의 바람대로 커피숍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이 끝인 듯 달려왔지만 우리의 프로젝트는 오늘부터 프로젝트 명
청년 커뮤니티카페 만들기
국가 및 지역
국가 : 필리핀 (Philippine)
다시 시작인 것이다.
지역 : 산파블로 San Pablo city(마닐라에서 남동쪽 70㎞)
목적 및 목표
● 지역 청년들의 사회 참여를 독려 ● 커뮤니티 카페라는 새로운 문화공간에서 건전한 놀이문화를 체험 ● 청소년과 청년들의 공론의 장을 만들어 시민의식을 함양 ● 지역의 공정무역상품(또는 로컬푸드)을 홍보하고 의식 개선과 소득 창출을 통해 청년 역량을 강화해 지역 청년들이 교육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
참여자
원봉사자들과 마을 사람들이였다. 처음 YMCA에 왔을 때만 해도, 이렇게 친해질 줄 몰랐다. 내가 살아왔던 시간들
사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는 특별하지만, YMCA에서 지내는 친구들은 모두,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이야기들을 지니고 있었다. 엄마, 아빠가 일을 안 하시고, 매일 사행성 게임에 빠져, 대신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친구, 누나만 8
1. 바리스타교육 실시 및 카페 운영 지원 청년들에게 카페 운영을 위한 전문 기술교육 진행
명이고 집이 가난하지만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 YMCA의 바탕와이(YMCA에서 지내면서 자원 봉사하는 친구들)가
2. 공정무역 커피 이용 (로컬푸드 대체 가능) 공정무역 커피를 통한 지구시민으로 성장
된 친구,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할머니와 사는 친구, 가족문제 때문에 집에 가기 싫어하는 친구들... 대부분 참 밝고,
3. 소득창출 : 청년 커뮤니티 카페 바리스타교육을 받은 필리핀 청년들이 카페에 참여해 일자리
긍정적이지만, 가슴 한편으로는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고 얘기를 나눌 때면 참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막상 내
를 창출하고, 학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
4. 청소년 문화 프로그램 지원 지역 청년, 청소년들과 문화 교류 및 문화장터 등 다양한 활동
기대효과
사람들, 산파블로 사람들과, 가끔 방문하는 외국인들. 하지만, 6개월 동안 내게 특별히 힘이 됐던 사람들은 현지 자
을 얘기하면서, 나도 언니, 누나처럼 그 친구들의 얘기들을 들으면서, 서로의 삶들을 이해했다.
● 협력기관 : 산파블로YMCA ● 지역주민 : 산파블로 거주 청년(17~24세) 300여 명
추진 경위 및 배경
6개월 동안 활동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들을 만들어갔다. YMCA 현지 자원봉사자들, 인근 마을
● 10대 청소년들이 가지고 있는 바리스타 기술을 파견 지역에서 활용하여, 전문 기술을 시험하고 자신감을 가지도록 함
가 도와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다, 프로젝트로 커피숍을 만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청년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공부를 끝까지 마칠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것, 이것이 끝까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고 싶었 던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되었던 것 같다.
● 지역 청년들 중 일자리를 얻을 기회가 적은 청년들에게 직접 교육 봉사활동과 직업교육을 시켜
커피숍 공간 만들기
취업 기회 확대
● 새로운 문화공간의 역할을 함으로써 지역 청년, 청소년들이 건전한 놀이 문화와 문화를 교류하
가장 첫 번째 과제는 커피숍 공간과 설비를 갖추는 것이었다. 꿈봉 1기가 다녀간 그 자리, 햄버거 가게는 문이 닫 혀 있었고, 큰 태풍을 만나 도저히 운영할 수 없는 곳이 되어 있었다. 필리핀의 태풍과 지진은 무시할 수 없는 큰 자
는 장으로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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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아이스 메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망고나 바나나주스, 다양한
공간은 생각보다 까다로웠고, 작업대의 높이, 배수가 되어야하고, 전기도 들어와야 했다. 예산은 빠듯한데 안전문제
프라페와 아이스커피에 중점을 두었다. 하지만, 3월이 시작되도록 맛에 자신감이 없었다. 눈이 확 떠질 정도로 맛있
도 신경 써야 했다. 그렇게 고민을 계속하던 때에, 한국의 지역 YMCA 한 곳에서 커피머신을 기부하고 싶다고 연락
지가 않았다. 이곳에 있는 기존 커피숍과 차별성도 없었다. 그리고 산파블로에서 구할 수 있는 시럽이나 소스의 종
이 왔다. 정말 다행이었다. 커피머신에 들어갈 예산을 다른 필요한 곳에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류도 한계가 있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마닐라까지 갔으나 허탕을 치고 오는 것도 여러번이었다. 실망과 좌절
얼마 지나지 않아 에스프레소 머신이 도착하였다. 동시에 우리는 바리스타 교육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나씩 일
앞에 마지막 끄나풀을 잡는 심정으로, 한번 더 검색을 하였다. 그리고 우연히 나의 눈에 들어온 회사 한곳이 있었다.
이 진행이 되고, 우리는 예산 변경을 신청하였다. 건축 담당자 분과 여러번의 미팅 끝에 작지만, 튼튼한 YMCA 커피
우리는 바로 연락을 하였다. 그곳은 필리핀에서 유일하게 시럽을 수입해서 들여오는 회사였다. 바로 스케쥴을 잡고,
숍 시공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공과 동시에, 우리의 카페 만들기 프로젝트가 또 한 단계 앞으로 향해 달려갈
마닐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MUNTI LUPA에 가는 길에 올랐다. 가는 내내, 너무 설레였다. 우리 커피숍의 메뉴
수 있었다.
가 더 발전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으로 떨렸다. 그곳에 도착하고, 담당자분과 오랜 시간 미팅을 하였다. 우리가 만들
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고자 하는 커피숍을 설명하고 메뉴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피드백과 시럽을 활용해서 메뉴를 만드는 다양한 방법 현지인들의 입맛에 맞는 메뉴 개발
을 배웠다. 그리고 가장 깊은 환희를 줬던 순간은 담당자 분께서 우리의 커뮤니티 커피숍에 큰 영감을 받아, 메뉴 개
처음 우리는 메뉴 개발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에서 평소에 하던 레시피 그대로 따라하면 될 수 있을 것
발에 도움을 주겠다는 약속도 받아냈다. 항상 불가능하게만 느껴졌던 일들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사무총장님
같았다. 한국의 과일청도 시도해 보고 토마토주스, 호박라떼, 여러 가지 한국의 음료들을 만들었다. 우리가 평소에
과 함께 지프니를 타고 산파블로로 돌아오는 3시간이 넘는 시간 내내 가슴이 너무 벅차 올랐다. 꿈꾸는 순간들이 하
만들던 대로, 우리의 취향대로였다. 하지만, 현지 사람들의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맛이 있었던 메뉴들
나씩 이루어 질 때마다, 나의 노력들이 절대 헛수고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도 한국과는 다른 재료들로 만드니 맛이 달랐다. 과일청은 너무 더운 날씨 때문에 보관이 쉽지 않고, 따뜻한 음료는
그리고 또 하나, 미팅을 하기 전 간단한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들렀던 편의점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께서 하시던
1년 중 한 달 빼고는 사람들이 찾지 않았다. 특히 가게를 오픈을 할 4월 달이면, 여름이 시작이 되어 더운 날씨가 계
말씀이 떠올랐다. ‘너는 think, feel, act 하고 있냐’ 는 말씀. 내가 이렇게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생각하고, 마음속에서
속 될 것이었다. 메뉴를 개발할 때, 현지 날씨와 현지 사람들의 입맛과 가격이 중요하다는 점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간절하게 기도하고, 해야하는 분명한 이유를 되짚으며 그것을 해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였다는 것, 그것이 이
➊.
➋
➊ 커피숍 공사를 도와주는 고마운 마을 청년들 윗옷을 벗은 두 친구는 YMCA 자원 봉사자이고, 한명은 두 친구의
➋ 메뉴 개발 중 처음 시도 했던 메뉴, 과일청
친구이다. 흙을 퍼내어, 밑에 하수처리 시스템을 만들고 그 위에 다시 철골과 흙을 덮는다. 건물을 짓기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을 자원봉사자들의
쿠보에서 과일을 다듬고, 용량을 재면서 메모를 하는 모습이다. 이날 총
도움으로 완벽히 끝내었다.
6가지, 칼라만씨, 달란끼타, 생강, 그린망고, 사과, 포도 청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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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꿈봉, 꿈꾸다
연재해이고, 커피머신과 수많은 제품들이 보관되어야 할 곳이면 보안도 중요했다. 처음에는 간단해 보였던 커피숍
행복해야 옆사람이 행복하고, 내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야 마을도 행복하고, 마을이 행복해야 이 지구가 행복하다. 그리고 그 행복의 시작은 ‘나’ 이다. 하루하루 힘들었던 순간을 행복으로 바꾸는 한가지의 생각이다. 지구의 행복을
생각할 거리
위해 내가 우선 행복해지는 연습. 그리고 내가 행복한 순간은 나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꼭 누군가 함께 있을 때 행
산파블로에서 커피 프로젝트를 하는 건, 그냥 단순히 카페를 만드는 것 보다 더 신경 써야할 부분들이 더 많았다.
복하다는 것. 틀림없는 사실이다.
돈을 벌어야 하지만 상업적인 부분에 너무 치중을 하면 안되고, 마을 사람들과 커뮤니티 카페와의 연계성을 계속 찾
나는 지금 이글을 쓰고 동안에도 오늘 하루를 반성하였다. 내가 찡그린 표정과 내가 나의 이기심으로 현지 사람
아야 하며, 활동들을 만들어야 하며, 일하는 스탭들의 기술적인 부분들을 보완해야 했다. 끝없이 생각하고, 움직여
들에게 피해를 준 것은 아닐까. 오늘 하루는 행복했을까. 아니다. 나는 여전히 피해를 주고, 신경 쓰게 만들었다. 하
야 했다. 하루가 너무 부족해 아쉬웠고,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커피숍을 완성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
루하루 반성하고 나를 되돌아보며, 남은 몇 일, 이 끝없는 프로젝트를 위해 함께 하는 모두와 눈을 마주치며 우리의
다. 그래서 프로젝트가 끝나기 한달 전 부터는 커피숍의 가장 큰 부분인 시공 부분에 집중해야 했다. 정해진 날짜에
활동을 마무리 하고 싶다.
맞추기 위해,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를 외쳐대야 했었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지속성을 생각하면, 서두르는 것이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걸 느꼈다. 일하시는 분들과 자원봉사자들은 오늘 할 수 있는 일 범위 내에서 매일 최대
희망으로 만드는 커피
한 열심히 하였다. 그런데 우리의 오픈 날짜를 맞추기 위해 압박을 가하는 건 부당하다고 느껴졌다. 좀 더 완벽하고
끝이 보이지 않던 프로젝트가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매일매일 북적거리는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 커피숍의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커피숍을 위해서는 잠시 기다려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 같았다. 결국에는 우리는 떠
모습들이 갖춰져 갔다. 때 빼고, 광내고, 페인트 칠하고, 자갈도 깔고 작업실의 모든 도구들을 커피숍으로 옮기자, 바
나고, 현지 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가야 하니까 말이다. 나도 서두르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
로 메뉴를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정도 중요하고, 커피숍을 위해 일하는 동안은 내가 이곳에 와서 느끼는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이곳을 채워 넣고 싶 었다. 그래야 이곳을 떠올리며, 나도 행복하고,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할 테니까 말이다.
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내가 스리랑카에서 5개월 동안 봉사활동을 하며, 깨달은 생각을 여기서 나누고 싶다. 잠시 나도 잊었었다. 내가
➊
드디어 오픈식. 분주한 커피숍은 모두의 희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풍선도 불고, 노래도 틀었지만, 아직 나의 몸엔 긴장의 끈이 팽팽하게 가슴을 조였다. 시작하는 줄도 모르고 계속 이곳 저곳이 신경이 쓰였다. 노래가 나오고 우리 영어선생님의 인사를 시작으로 오픈식이 시작이 되었다. 모두 한마디씩 하고 그 동안 함께 했던 동료들이 나와 감사
➋
➊ 바리스타 양성과정 이론수업을 하는 모습
➋ 아이들과 함께 커피가루로 그림 그리는 시간
바리스타 양성과정 때 썼던 자료들은 , 한국의 커피 자료들과 해외
커피 가루를 뿌리기 전, 연필로 먼저 스케치를 한 후, 풀로 커피가루를 묻힐
자료들을 모두 영어로 번역, 정리 하였다. 직접 교육 내용에 맞추어
곳을 정해 칠하고, 커피 가루를 뿌린다. 지금은 연필을 깎아 아이들에게 주는
제작 하였고, 이해를 돕기 위해, 원두 샘플도 모아 수업을 하였다.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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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꿈봉, 꿈꾸다
렇게 큰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의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듣는 내내, 그동안의 과정이 떠올랐다. 만감이 교차하였다. 기쁜데, 한편으로는 모든 긴장 이 풀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났다. 함께했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떠오르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단지 우리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었던 2개월의 프로젝트, 한 잔의 커피가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희망이 되고, 마지 막엔 꿈이 되기를 프로젝트 내내 기도했었다. 그리고 나의 바람대로 커피숍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이 끝
현지에서 바라본 꿈봉
●
(생명누리 현지 지부장)
●
➊ 커뮤니티 카페 로고(cafe Rini) ➋, ➌ 카페리니 내부 ➍ 주민과 함께만드는 커뮤니티 공간 카페리니 ➋
➍
➌
Elizaga, Mario A. (CAMP Asia 현지 책임자)
인 듯 달려왔지만 우리의 프로젝트는 오늘부터 다시 시작인 것이다.
➊
K.B.Shahi
●
Norby (가야가야지역 매니저)
●
Maria Gracia P. (꿈봉 담당 현지 스탭)
꿈봉의 도움 덕분에 아이들이 매일 학교에 오는 것을 즐거워했습니다. (…)
(생명누리 현지 지부장)
우리는 언제나 꿈봉의 헌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현지에서 바라본 꿈봉/생명누리/네팔]
여러분 모두의 밝은 미래를 기원합니다.
KCOC
K.B.Shahi
안녕하세요? 지부장님.
꿈봉의 도움으로 아이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것들을
꿈봉이 처음 네팔 바글롱 지부로 파견된다는 이야기를 들
배울 수 있었습니다. 긍정적인 효과는 그런 새로운 노력들
으셨을 때 꿈봉에게 어떤 것을 기대하셨나요?
이 교육 시스템을 바꾸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K.B.Shahi
KCOC
네, 안녕하세요. 저희는 꿈봉이 정규 과정 외 활동를 하고 아 이들에게 새로운 것들을 가르치고 공부에 더 쉽게 접근하도
그럼 꿈봉이 개선해야 할 점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록 만들어줌으로써, 그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대했습 니다.
K.B.Shahi 꿈봉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많은 기여를 했 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현지 언어를
KCOC
더 많이 공부할 필요가 있고, 아이들에게 동기부여를 주는
네. 그러셨군요. 여러분들의 아주 큰 기대를 받으면서 꿈봉
방법을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 생활했겠네요. 그러면 6개월이 지난 지금 꿈봉이 보여준
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성과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를 하시나요?
KCOC 끝으로 꿈봉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K.B.Shahi 꿈봉이 참여한 작업들은 매우 좋은 성과가 있었습니다. 꿈봉 은 아이들이 공부를 쉽게 이해하고 즐겁게 배우도록 하기 위 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K.B.Shahi 꿈봉 단원들은 열심히 일했고 그들의 프로젝트를 최선을 다 해 마무리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기여에 매우 감사드립니
KCOC
다. 꿈봉의 도움 덕분에 아이들이 매일 학교에 오는 것을 즐
꿈봉의 역할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구체적인 사례가
리는 언제나 꿈봉의 헌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있나요?
의 밝은 미래를 기원합니다.
거워했습니다. 학부모님들도 또한 매우 감사해했습니다.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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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꿈봉, 꿈꾸다
K.B.Shahi
꿈봉이 지난 6개월 동안 필리핀 타워빌에서 진행한 모든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한국에 돌아갈 때,
(CAMP Asia 현지 책임자)
더 많은 한국 청년들이 꿈봉처럼 봉사활동에 [현지에서 바라본 꿈봉/캠프/필리핀]
참여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고 격려해주길 바랍니다.
KCOC
KCOC
안녕하세요? Elizaga 님.
꿈봉이 앞으로 다른 곳에서 활동을 하게 된다면 어떤 점을
꿈봉이 필리핀 캠프 사업장에 처음 온다는 얘기를 들으셨
개선해야 할까요?
을 때 어떤 것들을 기대하셨나요?
Elizaga Elizaga
프로젝트나 활동들을 너무 짧은 시간에 계획하는 것들은 지
꿈봉이 캠프에 왔을 때 저는, 그들이 그저 캠프 프로그램에
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지속
참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능성을 고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그들이 캠프 프로그램 이외에 지역을 도울 수 있는 많
‘마음속에 항상 끝을 생각하면서 시작하라.’ 는 말을 해 주고
은 프로젝트들을 시작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싶습니다.
나의 예상을 뛰어넘었습니다.
KCOC KCOC
끝으로 꿈봉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꿈봉이 그동안 정말 일을 잘했나 보네요! 그럼 6개월이 지난 지금 꿈봉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Elizaga 꿈봉이 지난 6개월 동안 필리핀 타워빌에서 진행한 모든 것 이 자랑스럽습니다.
Elizaga
한국에 돌아갈 때, 더 많은 한국 청년들이 꿈봉처럼 봉사활
지난 6개월 동안 꿈봉은 많은 것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그들은 농사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우리는 꿈봉이 직접 재배
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고 격려해주길 바랍 니다.
한 작물을 몇 가지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비전트립 때 분배 한 러브 스토브, 인형극, 도서관, 영화관람 등 작은 것 하나까 지 그들은 도움을 되었고 캠프 내에서 활동이나 이벤트가 있 을 때 언제나 도움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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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꿈봉, 꿈꾸다
Elizaga, Mario A.
꿈봉 자체의 프로젝트 때문에 원래 캠프에서 진행하던 프로그램에 대한 참여가 매우 제한적이었지만,
(캠프 가야가야지역 매니저)
꿈봉 프로젝트를 통해서 필리핀인들의 삶을 알아가는 [현지에서 바라본 꿈봉/캠프/필리핀]
그들을 칭찬하고 싶습니다.
KCOC
KCOC
안녕하세요? 매니저님.
꿈봉이 앞으로 다른 곳에서 활동을 하게 된다면 어떤 점을
매니저님은 꿈봉이 처음 필리핀 캠프 사업장에 처음 온다
개선해야 할까요?
는 얘기를 들으셨을 때 어떤 것들을 기대하셨나요?
Norby Norby
커뮤니티 멤버들 및 참가자와 협력할 때 준비 작업을 충분
저는 3가지에 대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커뮤니티의 멤버와
히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함께 살면서 필리핀의 빈곤 상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열정’ , 캠프 아시아의 프로그램에 철저히 준비해서 참여하 는 ‘참여’ , 그들의 열정을 배우면서 희망을 갖고 그들의 비 결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는 ‘반영’ 이 그 세 가지입니다.
KCOC 끝으로 꿈봉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KCOC
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그렇다면 6개월이 지난 지금 꿈봉의 성과를 평가한다면 어떠신가요?
Norby 너희의 경험이 너희의 삶을 인도하는 빛이 되기를 기도할게. 행운을 빌어!
Norby 꿈봉 자체의 프로젝트 때문에 원래 캠프에서 진행하던 프로 그램에 대한 참여가 매우 제한적이었지만, 꿈봉 프로젝트를 통해서 필리핀인들의 삶을 알아가는 그들을 칭찬하고 싶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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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꿈봉, 꿈꾸다
Norby
우리는 꿈봉이 발전하는 것을 보았어요.
(캠프 꿈봉 담당 현지 스탭)
꿈봉의 모든 멤버들은 그들의 일과 활동들을 하는 데 있어서 그들만의 방법들을 가지고 있었고,
[현지에서 바라본 꿈봉/캠프]
하나로 화합된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KCOC
KCOC
안녕하세요? Gracia 님.
꿈봉이 앞으로 다른 곳에서 활동을 하게 된다면 어떤 점을
선생님은 꿈봉이 처음 필리핀 캠프 사업장에 처음 온다는
개선해야 할까요?
얘기를 들으셨을 때 어떤 것들을 기대하셨나요?
Gracia Gracia
제 생각에는 밴드/저널의 멤버들과 마을 사람들, 익팅 어머
저는 꿈봉이 필리핀 이주민 지역의 청소년들의 상황과 문화
니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사교성 및 사회성을 발전시킬
를 알아가는 프로그램을 하는 것을 기대했고, 그들이 캠프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스태프를 도와 지역 청소년들을 조직하는 것을 기대했습니 다.
KCOC 끝으로 꿈봉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KCOC 그렇다면 6개월이 지난 지금 꿈봉의 성과를 평가한다면
2014 월드프렌즈 NGO 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어떠신가요?
Gracia 너희와 함께 했던 모든 것들에 감사해. 또한 나는 너희들로부 터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
Gracia 처음에는 꿈봉은 그들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조차도 쉽 지 않았어요. 우리는 많은 문제와 난관을 만났죠. 그러나 이 러한 문제들에 도전함으로써 우리의 약점을 인지하고 극복 할 수 있었어요. 덕분에 우리가 참여한 캠프 프로젝트와 특 별 프로젝트(꿈 도서관) 활동을 완료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우리는 꿈봉이 발전하는 것을 보았어요. 꿈봉의 모든 멤버들 은 그들의 일과 활동들을 하는 데 있어서 그들만의 방법들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로 화합된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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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꿈봉, 꿈꾸다
Maria Gracia P.
chapter.
꿈봉, 날다
상상 그 이하를 보게 될 것이다. 내가 네팔에 가기 전에 현지에 있었던 봉사단원이 해준 말이다. 무슨 준비를 하던 상상 그 이하일 것이고 그래서 상상 그 이상을 보고 올 것이다.
● 6개월 간의 꿈 ● 귀국환영회 ● 앞으로의 꿈봉에게 말한다
6개월 간의 꿈
●
열아홉, 스물 되다
- 네팔에서의 반 년 이야기 ●
아이들에게 배우다
●
필리핀에서 나를 찾다!
●
필리핀에서 아트워크를!
●
6개월, 나의 성장기
●
필리핀에서 아빠가 되다
●
꿈봉이 나에게 준 변화
●
6개월 간의 꿈
●
필리핀에서 모델이 되다!
●
필리핀, 국제개발, 꿈
●
필리핀에서의 6개월 생활 키워드: 나, 소통, 지구시민
●
필리핀, 오해와 화해의 배움터
●
인생의 터닝포인트, 꿈봉
●
다른 사람의 눈높이에서 함께 호흡하기
았다고 생각한다.
[6개월 간의 꿈/생명누리/네팔]
주시고, 옆 마을로 가는 구름다리와 사원에도 데려가주셨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본 다울라기리의 모습은 잊을
그 뒤로 얼마 동안의 탐색 기간이 주어졌다. 수언 선생님은 우릴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시면서 시내 구경도 시켜
수 없을 거다. 바글룽은 길에서도 히말라야 다울라기리가 보인다. 네팔에서는 눈이 내리는 높고 하얀 산을 ‘히말’ 이 라고 부른다. 다울라기리는 8,167m로, 서구에서는 에베레스트를 알기 전까지 다울라기리를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여겼다고 한다. 네팔에 오기 전부터 ‘숙소 옥상에서 설산이 보인다.’ 는 얘길 들어왔던 터라, 한동안은 옥상에 강나희 (20)
하루하루를 재미난 인생이라 여기는 스무 살로
만 가면 다울라기리를 보고 사진을 찍으며 참 신기해했다. 샤히 지부장님을 만나 주거 계약서를 쓰고 언어교육을 받으면서부터 우리의 생활은 또 조금 달라졌다. 일주일
살고 싶다. 힘들고 어려울 때라도, 나는 그 누구보다 살아 있음을 기뻐하는 사람이고 싶다.
에 세 번, 한 시간씩 네팔어를 배웠다. 학교에서의 봉사활동은 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니, 생각보다 조금 늦어 진 셈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생명누리 프로젝트인 ‘달려라! 맨발의 아이들’ 도 진행하고, 바글룽 코이카 단원들과
‘KOVIBA(Korea Volunteer In Baglung) 의료 캠프’ 도 함께 하고, 꿈봉 프로젝트 계획서를 쓰는 등 이런저런 할 일은 늘 있었다. 다만, 활동 기간의 반만 남겨놓고 지나온 3개월 동안 나는 대책 없는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네팔에서의 적응? 사람들과의 관계? 활동의 어려움? 나는 내가 네팔을 좋아하게 되리란 건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애초에 생명누리 공고를 보고 호감이 들었던 이유도 활동국이 네팔이었기 때문이었다. 또 사 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친절했고, 불편할 때도 그 사람의 장점을 보며 이해하려고 애썼다. 활동에 어려움을 느끼기에 는 내가 한 일이 너무 적게 느껴질 정도로 준비만 잔뜩 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정말 무엇이 문제였을까? 학교를 그만둬야지, 결심을 굳힌 참이었다. 어쩌면 우연이라고만은 믿을 수 없을 만큼 — 모든 게 준비되어 있었다 는 듯이 — 다음 일들이 펼쳐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나는 생명누리에 지원서를 쓰고, 합격 발표를 듣고, 신체검사를 받고, KCOC 교육까지 수료했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 출국 사흘 전이 이삿날이라, 이사한 뒤 이틀 만에 짐 을 쌌다. 밤늦게 쪽잠을 잤다가 몇 시간 만에 깨어 비행기를 타러 갔다.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현관을 나서면 서 엄마랑 할머니와 포옹하는 순간 왈칵 눈물이 터졌다. 이상하게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만 같았다. 아빠랑 둘이
2014 월드프렌즈 NGO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공항에 도착하니, 나영이와 유복임 선생님은 먼저 와 계셨다. 아빠랑 헤어질 땐 울지 말자고 꾹꾹 다짐하고, 손을 흔
➊
들었다. 나영이와 비행기에 나란히 앉아 갈 때, 네팔의 산들이 내려다보이기 전까지만 해도 사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 중에 들었지만, 나영이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네팔 카트만두 공항은 흡사 시외버스터미널 같았다. 복작복작하게 차 있는 사람들, 현지인들, 배낭객들, 트래킹을 하러 온 사람들. 그들이 만들어내는 소음과 냄새란……. 나는 크고 무 거운 트렁크 2개를 질질 끌며 우리를 마중 나오신 NGO봉사단원인 수언 선생님과 선미 언니를 찾았다. 우리는 곧바 로 서로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우리의 네팔 생활이 시작되었다. 카트만두 지부에서 이틀을 머문 뒤, 수언 선생님과 우리는 곧바로 바글룽으로 출발했다. 투어리스트 버스에, 택 시만 타고 가느라 이날은 알지 못했지만, 알고 보니 우린 엄청 호화판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바글룽에 도착하니 어 둑어둑했는데, 집집마다 알록달록한 전구가 달려 있었다. ‘띠알’ 이라는 빛의 축제 기간이라, 집들도 죄다 환하고 사 람들도 길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있었다.
➊ 홀리 차일드 스쿨 3학년
평소엔 별로 요란하지도 않고 시끄러울 일도 없는 동네가 그렇게 예뻐 보일 때 도착한 우리는 여러모로 운이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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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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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꿈봉, 날다
열아홉, 스물 되다 - 네팔에서의 반 년 이야기
는 걸. 친하게 지내던 이들에게 줄 선물도 챙겼지만, 그것만으로는 달래지지 않는 어떤 느낌이 있다는 걸 나는 너무
년 동안 잘해줄 수 없음을 뻔히 알면서도 암묵적으로 기다려달라고 했던 것, 그러면서도 제대로 된 설명이나 대화
늦게야 알았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소중한 사람들의 부재가 어떠한 느낌인지 조금 알 것만 같다. 나를 소중히 여기
없이 떠나온 것, 무엇보다 그동안 이러한 태도가 계속 이어졌던 게 문제였다. 힘들고 피하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과
는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함부로 대했는지, 어째서 그들에게 모든 아쉬움을 떠맡겼는지를. 내가 사람들에게 늘 얼
맞물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빤해 보이기만 하는 이 삶을 대체 왜 살지?’ 하는 마음이 점점 커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
마나 못되게 굴었는지 말이다.
는 정말 힘들었다. 여기서 반 년 지내다가 한국에 가면 또 이런저런 공부를 하다가, 몇 년 뒤엔 유학을 가거나, 또 그
네팔에서의 반년은 ‘처음 만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를 고민하게 했지만, 그보다는 ‘소중한 사람들을 어
뒤엔 뭔가 일자릴 찾거나 하겠지. 그렇고 그런 빤한 삶. 대체 무얼 더 알아야 하고, 난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 알 수가
떻게 대해야 하는가?’ 라는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다. 넌 그걸 거기 가서야 아느냐고 타박할 사람이
없었다.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여전히 내가 이곳에 와서 알게 된 모든 깨달음에 감사한다. 여기 와서야 어렵게 배운
제발 이런 무기력한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던 어느 날, 어떤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중학
것들이니까, 어렵게 얻은 만큼 더욱 오래가는 빛이길 바라면서 말이다. 아직도 낯선 이방인일 뿐인 내게 미소지어
생 시절부터 막연하게 동경했던 대학의 이름이었다. 그곳이 소개된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고 나서, ‘저기를 가지 않
주었던 이곳의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욱 오랜 시간 내 곁에 머무르며 나를 사랑해 주었던 모든 사람
으면 할머니가 되어서도 후회할 것’ 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마음이 스멀스멀 커지기 시작해서 나는 그에 따라 이런
들을 떠올려본다. 이때 내 안에 가득 차는 감정은 오직 고마움과 사랑, 그리고 늘 따라붙는 미안함이다. 이 미안한 마
저런 계획들을 짜보고, 한국에 돌아가면 하고 싶은 일 목록도 만들었다. 그 목록은 ‘올해 안에 책 100권 읽기’ , ‘택
음보다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커지도록, 더 많이 힘껏 사랑해야지.
견과 수영으로 체력 기르기’ , ‘영어로 <미국 민중사>읽고 토론하기’ , ‘장구 배우기’ , ‘검정고시 치기’ 였다. 이런저
한국에 돌아가면 이곳의 모든 걸 잊게 될까? 절대 그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곳에서 내가 깨달은
런 하고 싶은 일들이 생기고, 지금부터라도 할 수 있는 일들을 시작하니 하루하루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적어도
것들은 잊을 수 없을 거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경험은 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대학에 가겠다고 결심한 뒤 일
침대에 멍하니 누워 여기 왜 온 걸까 후회하는 시간은 사라졌달까. 대학에 가겠다는 결심을 내린 것만으로도 이곳
어난 변화다. 지금도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뒤바꾸어 놓는지에 대해 생각하면 놀랍기
에 온 게 뿌듯해졌다.
그지없다. 그렇기에 내게 일어난 이 놀라운 일에 감사한다. 내게 주어졌던 네팔에서의 반년에 감사한다. 다른 곳, 다
홀리차일드스쿨에서 1학년부터 4학년을 상대로 ‘놀이와 노래’ 수업을 시작하고부터는 수업 계획을 짜고 수업하 느라 딴 생각을 하는 시간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덩달아 마음도 점점 홀가분해져서 ‘이런들 저런들 하면 된다.’ 라고
른 때였더라면 달랐을 이 모든 일들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겪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내가 여전히 삶을 긍정하고, 세 상이 살 만한 곳이라 여기는 사람이라서 기쁘다. 나는 여전히 더욱 벅차고 기쁘게 살아가고 싶다. 그럴 것이다.
믿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가 놓아버리고 도망쳤던 내 삶으로도 다시 돌아가서 어그러진 것들을 바로잡을 수 있을
하루하루를 재미난 인생이라 여기는 스무 살로 살고 싶다. 힘들고 어려울 때라도, 나는 그 누구보다 살아 있음을
거라는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쩌면 여전히(아직 돌아가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무책임할지는 몰라도,
기뻐하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그럴 수 있음을 안다. 맘껏 춤추고 노래할 테다. 내 나이 올해로 스물이고, 앞으로 살
내가 가면 우린 다시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남자친구에게도 그렇게 말해두었는걸.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날이 이토록 많다는 이유만으로!
봉사활동을 했던 시간들보다 자꾸 다른 이야기를 쓰게 되는 걸 보면, 내게 가장 큰 깨달음을 준 것이 무엇보다 주
2014 월드프렌즈 NGO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변 사람들의 충고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나온 관계에서, 현재의 내 모습을 보는 이로서 그들이 내게 해 주었던 ➊
모든 충고는, 내가 보다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나를 이끌었다. 그리하여 나는 조금 더 용기를 가져도 괜찮다는, 더는 두려워말고 올바름을 따라가라는 그 말을 믿고 잊지 않으려 했다. 나 역시 더디고 멈추게 될지언정 물러나고 싶지는 않기에. 마지막 한 달을 남겨두었을 즈음 수언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들을 잘 생각해보고 다 하고 와라.’ 는 말씀을 남기고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몇 주가 더 지나서 내가 일기장에 옮겨 적은 생각들은 ‘다울라기리 그 리기’ , ‘알고 지냈던 사람들에게 편지 쓰기’ , ‘버쿤데 가기’ 등이었다. 해질녘에 동네를 한 번 더 산책하지 못한 게 아 쉽고, 3학년 쿠스부에게 작별인사를 못하고 온 게 미안하고, 끝내 안나푸르나에 가지 못한 게 아쉽지만, 그래도 후회 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웬만큼 한 것 같다. 결국 할 수 없어 미련이 남는 안나푸르나 트래킹과 패러글라이딩이 다음에 꼭 다시 네팔에 올 기회를 만들어줄 거라 믿으니까. 이쯤에서 네팔 사람들에 관해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나는 마지막 달까지만 해도 바글룽 사람들에게 정이 들 었는지 어땠는지 몰랐다. 정말 이상하게도, 마지막 주가 되어서야 알았다. 내가 많이 서운해 하고 섭섭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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➊ 안나푸르나랑 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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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꿈봉, 날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네팔에서 지내는 내내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내겐 가장 힘든 일이었다. 한국을 떠나 있는 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는 느낌이었다. 홀리차일드스쿨에서 미술수업을 하면서 나는 한국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아이들
[6개월 간의 꿈/생명누리/네팔]
과 함께 수업을 하면서 가르치는 것은 내가 아이들에게만이 아니라, 아이들 역시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고 내가 준 것 이상을 선물해 주기도 했다. 첫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아이들이 내 수업을 재미있어할지, 나를 잘 받아들여줄지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박나영 (20)
네팔의 모든 것이 좋은 것은 아니었고
수업을 진행하면서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모르는 단어를 천천히 알려주는 아이 들. 내가 서투른 네팔어로 설명하다 보니 소통이 어려울 때도 있었는데 내 말에 집중하며 차근차근 들어주려는 모
사실 힘든 점도 많이 있었다. (…)
습, 내가 몰랐던 순수함을 보여주는 아이들을 보며 혼자 감동하기도 했다.
그래도 내가 다시 네팔에 오고 싶다고 말한다면
수업 마지막 날, 수업을 진행하면서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했나보다.
분명 그 아이들의 순수한 눈빛 때문일 것이다.
처음에는 ‘언띰꺼차’ 라는 이야기를 아무리 해도 아쉬워하는 얼굴이 없어서 섭섭하게 느껴졌다. 마지막 인사를 마 치고 내가 돌아갈 시간이 되어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 너무 무심해 보이는 아이들이 차갑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 아이가 “다음에 봐요~.”라고 말했다. 같이 계셨던 선생님이 웃으시면서 “다음에는 오지 않아.” 하고 말하자 그때야 아쉬운 얼굴을 하는 것이다. 아마 아이들은 내가 방학이 지나면 다시 올 것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마지막에 당황하 고 아쉬워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더 애틋하게 느껴졌다. 내 짧은 네팔어가 너무도 아쉬워지는 상황이었다. 네팔의 모든 것이 좋은 것은 아니었고 사실 힘든 점도 많이 있었다. 길가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
홀리차일드스쿨 UKG반은 내가 가르치는 교실의 아이들 중에서도 어린 편인 6~7세가 모여 있는데도 유난히 침 착하고 말을 잘 듣는 반이었다. 그날은 아이들과 데칼코마니 수업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데칼코마니를 할 때 쓸 물
화라던가, 인터넷이 너무 느리다던가, 외국인이라고 신기하게 쳐다보며 장난을 치는 사람들 등……. 그래도 내가 다 시 네팔에 오고 싶다고 말한다면 분명 그 아이들의 순수한 눈빛 때문일 것이다.
감을 챙기면서 ‘아이들이 물감을 옷에 흘리지 않을까?’ 라는 걱정을 했다. 교실에 들어가자 아이들이 일어서서 큰소 리로 ‘나마스떼! 미스!’ 며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아이들에게 오늘 할 데칼코마니를 설명해 주었지만 말로 설명하기 에는 한계가 있다 보니, 아이들은 이해 못했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일단 종이
2014 월드프렌즈 NGO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와 물감을 나누어 주고 ‘멀라이 저스떼이 거르누스’ 하고 아이들이 나를 따라하도록 말하고, 종이를 접었다 편 다음 종이의 반쪽에만 물감을 뿌리게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이게 무엇인지 이해가 가지 않은 듯 보였다. 이제 마지막 단계인 종이를 접었다 펴기만 남겨둔 상황. 내가 물감이 뿌려진 종이를 반으로 접자 아이들이 나를 따라서 접었다. 내가 접힌 종이를 꾹꾹 눌러주고 두드리고 장난을 치자 아이들도 같이 재미있게 따라한다. 내가 ‘이제 종이 를 펴주세요.’ 하고 천천히 종이를 폈다. 아이들은 대칭으로 알록달록한 데칼코마니 무늬를 보더니 그 조그만 입에 서 “우와~” 하는 감탄이 나왔다. 재미있다는 듯, 신기하다는 듯, 경이롭다는 듯 자그만 눈을 빛내고 있었다. 아이들 이 자신들의 종이를 펴자 또 한 번 감탄 어린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예전에 미술치료 강의를 들을 때 강사님이 ‘데칼코마니를 할 때는 종이를 펴는 순간 감탄이 나와야 한다.’ 는 이야 기를 하신 적이 있다. 사실 그때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아이들과 수업을 하기 전에 나 혼자 데칼코마니를 할 때의 마지막 종이를 펴는 순간의 느낌은 그저 무덤덤했다. 감탄이 나오지도 않았고, 신기하지도, 재미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감탄하는 아이들과 함께 알록달록한 데칼코마니를 보자 무늬가 색다르게 보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투 박하게 뿌려져 있던 물감들이 잘 두드리고 문질러주자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대칭 무늬가 되는 것이 정말 신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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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꿈봉, 날다
느껴지면서, 나 스스로 생각하지 못한 무늬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잊어버렸던 아이들의 순수한
아이들에게 배우다
의 매연까지, 캠프 사업장으로 가는 길은 좁은 차와 불편한 교통사정 때문에 그리 쾌적하지는 않았지만, 처음 겪어 보는 것들로 인한 기분 좋은 긴장감이 내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사업장에 첫발을 내딛고 자리에 앉아 기다리는 동 안 아침 일찍 일어난 피곤함 때문에 다들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6개월 간의 꿈/캠프/필리핀]
10월 말에는 아직 타워빌 캠프 사업장 군데군데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입주하게 된 방 도 이제 막 공사를 마친 상황이었다. 우리가 새 집의 첫 입주자라는 점이 약간 기쁘면서도, 앞으로 180일을 지내야 할 공간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잘 해야겠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필 김규원 (19)
아이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리핀에 온 것은 아니었던 만큼, 어떤 일을 해도 기쁘게 할 자신이 있었다. 처음 타워빌에 와서 한 일은 벽에 타일 붙 이기와 농사였다. 비슷한 작업을 학교에서도 많이 했기에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학교에서 배운 일들을 써
다른 사람들이 내 경험에 관심을 가지고
먹을 수 있어서 나름 편하게 일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참 간사해서, 온 지 얼마 지나지 않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한다면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았을 때만 해도 어떤 일이든 감사한 마음으로 하겠다던 생각은 2개월이 지나면서 점차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불안감으로 번졌고, 불안감은 불만을 낳게 되었다. 아마도 반복되는 일상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필리핀까지 와 서 하는 일이 학교에서 하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은 농사와 아트워크뿐이라면 나는 도대체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 는가?’ 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하루하루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나도 아깝게만 느껴졌다. 사실 내가 스스로 충분히 해야 할 일들을 하면서 그 시간들을 더 가치 있게 보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들을 하지 않았던 것 이 큰 문제이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봤을 때 무엇보다 가장 부끄러웠던 것은 ‘나는 여기 봉사하러 왔는데 왜 여기서 이런 일을 하고 있지?’ 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국내에서 교육받을 당시 늘 들었던 주의해야 할 생각이었지만, 여
사실 이곳에서의 6개월은 너무나도 금방 지나가서 얼떨떨한 느낌이 크다. 현지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새로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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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들을 만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정든 사람들과 헤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만 느껴지기도 한다.
기 지내는 동안 타성에 젖어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에 잠길 때가 점점 많아졌다. 힘들어 하는 것을 겉으로 표현하는 성향이 아니기 때문에 속으로만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이 생각들이 알게 모르게 주변에도 영향을 끼친 것은 아
나는 꿈꾸는청년봉사단을 부모님을 통해 접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부모님이자 학교를 운영하는 선생님으로서
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럴 때마다 옆을 둘러보면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는 꿈봉들이 있었다. 다들 열심히 일하고 있
나와 은서에게 자신의 진로를 찾아 탐색하는 창업 과정을 추천하시며 한번 가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씀해 주셨
는데 나만 이런 쓸데없는 고민에 빠져 있을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어쩔 수 없이 열심히 일을 하게 됐다. 그랬더
다. 처음에는 다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10대의 마지막에 접어드는 나이에, 대한민국 청소년으로서 6개
니 신기하게도 잡생각들이 싹 사라졌다.
월간 해외에 나간다는 것은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곳에 오기로 결
이런 고민들을 하기는 했어도 실제로 일을 할 때는 굉장히 즐거웠던 기억이 많다. 40도가 넘는 엄청나게 더운 날
심한 이유는 다름 아닌 ‘꿈꾸는’ 이라는 말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학교에 다니면서 6년간 계속 해 오던 질문이 있었다.
씨임에도 불구하고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다들 묵묵히 일을 하는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다시 하라고 하면 정말 못
“넌 꿈이 뭐니?” 이 질문을 나 자신에게 할 때마다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얼버무릴 수는 더더욱 없었
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일하고 나서 마시는 음료수는 정말 시원했다. 지금은 아무리 맛있는 음료수를 마셔도 그때
다. 그 질문이 가지고 있는 무게가 나를 계속 누르고 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꿈꾸는’ 이라는 말이 가
그 맛이 나지 않는다. 타일 붙이는 일은 정말 너무 힘들었지만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좀 더 꿈봉만의 팀워크를 다지
슴에 확 와 닿았고, 어느새 나는 지원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렇게 우리는 ‘꿈’ 을 뜻하는 타갈로그어 ‘PANGARAP’ 과 영어 ‘DREAM’ 을 완성할 수 있
그리고 아주 다행스럽게도 캠프 꿈꾸는청년봉사단에 합격할 수 있었다. 사실 파견될 필리핀에 대해 어떤 이해가
었다. 아트워크가 끝났을 땐 정말 시원섭섭한 느낌이었다.
있던 것도 아니었고, 영어도 잘 못했기 때문에 더욱 한국에서의 교육을 열심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나이도 적고, 이렇
시간이 지난 후에는 캠프 사업에도 직접 참여하게 되었다. 겉에서만 보던 사업들, 특히 내가 직접 참여한 봉제센
다 할 특기도 없어서 자세히 듣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적어도 6개월이라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터는 안에서 보니 정말 다른 느낌이었다. 어머님들이 직접 일하시는 모습들, 그리고 이렇게 진행 되어가는 과정을
는 않았기에, 이 모든 교육이 나의 필리핀 현지 생활을 더 가치 있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으며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옆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았다. 그렇게 봉제센터의 일과가 시작되었다. 사실 봉제센터는 우리가 참여하는
필리핀에 올 때까지 참 많은 고민을 했다. 걱정도 많았고, 기대되는 부분들도 정말 많았다. 하지만 막상 이곳에 오
다른 캠프 사업에 비해 비교적 체계가 완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맡겨진 일은 다른 사업장들에 비하면 별로
고 나니 그런 고민들은 눈 녹듯 사라졌다. 처음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내가 필리핀에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일을 찾는 것, 그것이 나의 첫 번째 일이었던 것 같다. 그때 처음으로 캠프 현지 스태프인 레지가 시
있었다. 한국의 10월 말에는 느낄 수 없는 더위와 습함.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 거리를 가득 메운 지프니와 자동차들
킨 일은 마닐라·불라칸 지역에 있는 여러 봉제센터들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센터 찾는 일에 열중하고 있을 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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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꿈봉, 날다
필리핀에서 나를 찾다!
처음 왔으면 컴퓨터 앞에만 있지 말고, 어머님들 일을 도우면서 그분들과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라고 말씀하셨 다. 사실 그때는 귀담아 듣지 않고 ‘아, 다음에는 어머님들을 도우면서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 라는 생각으로 넘어갔 던 것이 지금은 많이 후회되는 것 중 하나다. 현지 스태프와의 많은 회의를 통해 나는 비전트립을 담당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한국 사람과 소통하기엔 같은 한 국인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비전트립 마지막에 항상 진행하는 워크숍이 있다. 타워빌과 어머님들을 이해하는 시간 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그 시간에 봉제센터를 소개하는 짧은 영상을 만드는 일을 맡게 되었다. 사실 영상을 만들 려고 할 때만 해도 정말 막막하게 느껴졌다. 영상을 제작할 수는 있지만, 뭔가를 잘 만들기에는 부족한 실력이었고 내 자신이 봉제센터를 잘 모르기에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영상을 만들기로 한 이후로 봉제센터에 대해 좀 더 잘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해 어머님들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생각해 보니 그전까지는 봉제센터를 이야기할 때 봉제 센터와 나나이들 이라고 뭉뚱그려서 이해했던 것 같았다. 특히 어머님들 각자의 이야기에는 그렇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어머님들의 삶을 듣다 보니 그분들의 삶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 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정말 그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많이 보였다. 개인적으로는 인터뷰를 진행했 던 것이 봉제센터에서 가장 좋았던 일이 아닌가 싶다. 봉제센터에서 여러 가지를 배울 때쯤 KCOC 프로젝트 기획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결 국 도서관을 테마로 기획서를 쓰기로 했다. 장소는 캠프의 트레이닝 센터로 정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못하게되었 다. 그래서 장소에 대해 정말 많은 고민을 하던 중 대표님께서 한마디 해 주셨다. “도대체 왜 굳이 도서관을 안에서 만 운영해야 하냐?” 이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그전에 이 프로젝트를 어머니께 말씀드렸을 때 야외에서 도 서관을 운영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말씀하신 기억이 났다. 마치 기획을 하는 사람들은 생각의 통일점이 있는 것 같았 다. 어쨌든 간단한 발상의 전환으로 우리는 트라이시클을 타고 찾아가는 모바일 도서관과 야외도서관 기획서를 쓰 게 되었다. 다행히 우리가 낸 기획안이 당선되어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프로젝트가 통과되고 캠프의 전 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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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들 앞에서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때 우리가 쓴 보고서의 목표 중에는 ‘지역사회와 캠프가 더 잘 소통할 수 있도록 한다.’ 라는 문장이 있었다. 이 사업을 진행한다면 그렇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대표님께서 우리에게
“캠프가 만약 사업을 한다면 같은 돈으로도 더 큰 영향을 얻을 수 있다. 이건 전적으로 꿈봉의 경험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캠프를 위한다’ 라는 말은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 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그 전까지는 조금 자만하고 있던 것도 사실이었는데 ,이 말을 듣고 개인적으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도서관 사업이 지금 볼 때 아이들도 매우 많이 오고, 대표님도 굉장히 좋아하고 계시지만, 그 당시에는 나를 신경 써주는 주변 사람들이 있기에 지금 꿈봉이 이렇게 잘 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사실 2달 정도까지는 하루하루 날짜를 세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날짜를 세지 않게 되었다. 바쁘게 살 다 보니 날짜를 셀 정신까지 없었던 것 같다. 특히 1월 중순부터 시작된 비전트립으로 우리의 생활 패턴도 바뀔 수밖 에 없었다. 저녁 시간도 맞추게 되고, 그분들이 밤늦게까지 기도하는 것 때문에 우리도 편히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래 서 사실 어느 정도 불만이 쌓여 있기도 했지만, 같이 지내는 동안 그분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타일링 작업
들으면서 우리의 생활을 조금 더 다듬을 수 있었던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 특히 내가 봉제센터를 맡게 되고 나서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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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꿈봉, 날다
님께서 갑자기 오셔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대표님은 컴퓨터로 봉제센터들을 찾아보고 있던 나에게 봉제센터에
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여러모로 느낀 점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도서관 사업을 하길 잘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고, 나 역시 그 사람들이 이런 봉제센터를 어떻게 생각할까 들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했다.’ 라는 것이었다. 예상 외로 정말 힘든 일이 많았고 개관을 하면 할 일이 줄어들 줄 알았던 예상을 저버리듯 정
타워빌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정말 많이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들의 삶을, 봉제센터에 오게 된 계기를,
말 많은 일에 휩싸여 살았지만, 아이들의 미소가 우리의 피로를 씻어주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아이들이 도서
앞으로의 계획을 듣는 그 시간은 봉제센터에서 일한다고 말하는 나에겐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사실 어머니
관에 있을 때 내부에 중요한 회의나 행사가 있으면 부득이하게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인데, 이럴 때마다 타워빌
들의 사연은 정말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평소에는 물어보긴 힘든 질문이었기 때문에 알 기회가 없었다. 또한 내
꿈 도서관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번 대표님과의 최종 회의에서 이 문제들을 거론했는데 대표님께서 긍
가 4개월간 있으면서 궁금하게 여겼던 것들을 비전트립 사람들과 Q&A 시간에 공유하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
정적인 반응을 보이셔서 어떻게든 잘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봉제센터에서 한 것은 많이 없지만 봉제센터 마케팅 팀의 일원으로써 봉제센터의 물건이
그럼에도 나에겐 한 가지 걱정이 더 남아 있다. 우리가 이곳에 있을 시간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우리도 그렇
많이 팔리는 모습을 볼 때 기뻤고, 티셔츠 프린팅을 대수롭지 않게 무시해 버리는 모습을 볼 때면 화가 났던 적도
고 캠프도 그렇고, 우리가 간 후에도 이 도서관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가야가야에서 도서관을
있었다. 참 많은 일이 있었지만, 5번 정도 타워빌 워크숍을 진행하는 것은 정말 재미있었고 보람찬 경험이었다.
운영하고 있는 스태프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한 가지 조언을 얻은 것은 우리가 떠난 이후에도 도서관이 잘 운영될 수
비전트립이 모두 끝날 즈음 설날을 맞게 되었다. 이곳에서 맞이하는 설날은 참 색달랐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도
있도록 자원봉사 시스템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이곳에 자주 놀러오는 친구들도 있고 우리와 동아리 활동을 하는 친
많이 생각나고, 작년 10월에 무심히 생각했던 ‘아, 내가 외국에서 설을 보내는구나!’ 라는 마음이 벌써 실제로 다가
구들 또 그들의 친구들도 있으니, 이들을 모아서 자신들이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공부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면 서
왔다는 게 놀랍기도 했다. 가족이 보고 싶어질 만한 시간이기도 했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 떡국을 끓이고, 마침 생신
로에게 좋은 경험이 되고 유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는 프로젝트가 끝나서 결과 보고서를 열심히 작성하고 있
을 맞이한 대표님과 맛있는 아침식사를 하며 한국에서처럼 식사를 한 덕분에 향수병이 많이 줄어들었던 것 같다. 사
지만 이 프로젝트가 끝난다고 해서 도서관이 끝나는 것이 아닌 만큼,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이 도서관이
실 한국에 없다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었지만, 설날에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을 보면 세뱃돈을 받지 못해 이러
잘 운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원봉사자들을 구하고, 그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도서관을 만들게
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되었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고, 운영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같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서 우리가 간 후에도 그
설날이 지나고 비전트립도 다 끝난 후 새로운 KCOC 일반단원들이 오게 되었다. 그 때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들이 도서관을 잘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남아 있다.
작년 KCOC 단원이 돌아갔는데,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는 다음 순서가 우리라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좋았다, 안 좋 았다.’ 라는 감정보다는 그냥 얼떨떨했다.
KCOC 프로젝트 외에 다른 기관을 방문하는 탐방 프로젝트도 계획해서 제출했다. 열심히 써서 제출한 덕분에 필 리핀의 협동조합으로서는 가장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WHO와 GK를 방문하게 되었다. 사실 가기로 했던 WHO와 일정 조절이나 방문 프로그램 문제들이 잘 해결되지 않아서 GK는 한 주 일찍 다녀오게 되었고, WHO는 끝내 연락 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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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주지 않아 ADB로 바꿔서 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회적 기업에도 관심이 매우 많았고, 이곳에 있으면서 흥 미를 가지게 된 국제개발과 관련된 기관을 방문하게 되어서 매우 좋았다. 탐방도 재미있었다. GK는 타워빌과 여러 모로 비슷한 부분이 많았지만 반대되는 상황들도 많아서 개인적으로 그런 점들을 비교하면서 보니 참 재미있었다.
ADB는 은행가답게 정말 돈이 많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ADB가 국제기구이고, 빈곤의 종식을 위해 일하지만 건물이 지나치게 화려한 것을 보고 약간 괴리감이 들기도 했다. 머릿속으로는 직원들의 복지가 좋고 건물도 멋있어 서 정말 취직하고 싶은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그런 것들을 감안 하더라도 ADB 탐방은 정말 만족스러웠다. 도서관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후로는 정말 많은 아이들이 찾아왔다. 매일 60여 명의 어린이들이 방문하는 것을 보고 이 지역에 도서관이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 한 것이 정말 뿌듯하게 느껴졌다. 도서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볼 때 입가에 절로 미소를 짓고 있는 나를 볼 수 있 었다. 아이들의 표정이 정말 밝아진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떠들고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아 도서관에서 저렇게 뛰면 안 되는데.’ 하다가도 ‘아이들이 얼마나 놀 곳이 없었으면 여기 와서 이렇게 놀고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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➊ 도서관 개관식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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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꿈봉, 날다
행했던 타워빌 워크숍 때의 느낌은 정말 좋았다. 실제로 그 사람들이 봉제센터의 어머니들을 만나는 시간은 그때가
고서의 양도 장난이 아니다. 농사부터 시작해서 아이들과의 동아리 활동, 솔라 프로젝트, 탐방 프로젝트, KCOC 타 워빌 꿈 도서관 프로젝트, 그리고 캠프 사업까지 우리가 한 것이 정말 많다. 사실 이 모든 것이 하나씩 끝나가고 있기
필리핀에서 아트워크를!
3. 꿈봉, 날다
이제 거의 모든 일이 끝나고 보고서를 써야 할 시간만 남았다.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한두 개가 아니었던 만큼 보
[6개월 간의 꿈/캠프/필리핀]
에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약간 시원섭섭한 기분도 느낀다.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하나하나 생길 때부터 이런 마 음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어서 그런지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러갔다. 지금 내가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이 신기 할 정도로 빠르게 흘러가서 아쉬운 점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많은 만큼 얻어가는 것도 많다고 생각한다. 고등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이렇게 오랫동안 타지에 나와 있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사실 이곳에서 내가 배운 것들, 또 내가 성장한 것들은 티가 잘 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걱정도 된다.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는 시험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성장한 것들을 어느 정도 확인해 볼 수 있지만, 내가 여기서 배운 것들은 표현하기 어려울 것 같
김다미 (20)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 필리핀 캠프에서의 생활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다. 말로도 힘든데 점수로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한때 그런 점 때문에 조급해 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눈에 보이는 성적에 갇혀 사는 아이들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난 자유롭게 살고 있고, 그로 인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 그리고 타워빌의 모습들. 한국에 돌아가면 비록 쓸모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분명 이곳에서의 생활이 앞으로 진로를 택하는 데 있어서 정말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 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돌아가면 당장은 학교로 복학하게 될 것 같다. 그 이후에는 내가 여기서 생각해 본 앞으로의 진로를 위해 노력하고,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는 아이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다른 사람들이 내 경험에 관심을 가지
필리핀에 오기 전 나의 삶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중학교3학년 때 학교를 나와 ‘공간 민들레’ 라는 대안학교에 들
고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한다면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캠프 꿈봉 3기에
어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
지원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나의 6개월의 일정 정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사회’ 라는 공간을 인턴십을 통해 미리 경험하면서, 나의 진로에 대한 감을 잡고 나만의 길로 잘 걸어가고 있었다. 적어도 2013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어디에 어떻게 발을 붙여야 할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3년 동안 집처럼 지내던 학교를 벗어나려니 두렵고 막막했다. 학교 안에서는 신뢰받는 멋진 선배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었지만, 밖에서는 그저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래도 우선 뭐라도 해 보자
2014 월드프렌즈 NGO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싶어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철학과 인문학 그리고 수학사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학교 내에 작은 스터디 그룹을 만 들었다. 학교에서 선생님을 구해 주었고 평소에 자주 보던 친구들을 중심으로 멤버도 꾸렸다. 그렇게 선생님과 함께 수업을 진행하며 나름 안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공부만 하다 보니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공연기획과 공 연을 좋아하는 나는 가만히 앉아 있기보다는 어딘가에 직접 가서 몸으로 느끼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을 때쯤, 길잡이10) 께서 필리핀에 가서 6개월 동안 봉사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해 보겠느냐고 추천을 해 주셨다. 그것이 꿈꾸는청년봉사단과의 첫 만남이다. 이름부터 마음에 들었다. ‘꿈꾸는’ , ‘청년’ , ‘봉사단’ . ‘꿈’ 을 꾸 고 있지만 구체적이지도, 확신을 갖고 있지도 않은 나에게 ‘청년’ 으로 살아갈 준비를 할 수 있는 안성맞춤인 프로그 램이었다. 더군다나 ‘봉사’ 라니! 중학교 때 ‘효행봉사단’ 활동을 하던 나에겐 정말이지 좋은 기회였다.
10) 공간 민들레 학교에서 쓰는 용어로 선생님, 멘토와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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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월드프렌즈 NGO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로 눈치를 채서 어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프로젝트 기획서를 쓰면서 실수도 많이 했지만 여러 번 쓰다
보를 받기 전까지 조마조마한 마음을 만나는 사람마다 표현하고 다녔다. 정말 가고 싶다고, 가서 열심히 활동할
보니 점점 늘어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이곳에 와서 남을 위한 ‘봉사’ 는 할 수 없지만, 나를 위해 경험하고 배우
수 있다고 말하고 다녀서인지 합격이 되고 나니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첫 캠프 꿈
는 것은 할 수 있다. 나를 위해 어떤 일을 할 때는,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
봉과 만났다. 그런데 약속 장소에 도착해 보니 보이는 건 남자들뿐이었다. 김보미 멘토님만 빼고 단원들 중에는 나
다. 이 생각은 나에게 ‘겸손’ 이라는 자세를 가져다 주었다. 그래서 나는 일을 할 때마다 겸손을 갖고 배움의 자세로
만 여자였던 것이다. 남자 6명에 여자 2명. 걱정이 되었지만 앞으로 6개월을 같이 살아갈 친구들이니 어떻게든 친
임하곤 한다.
해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교육을 시작했다. 캠프 자체 교육이 시작되고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두 명씩 짝을 지어
필리핀에 오기 전, 꿈꾸는청년봉사단에 합격하고 나서 나는 언어에 대한 걱정을 했다. 필리핀어인 따갈로그어는
미션을 수행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질문이 있었는데 그 질문이 끝난 후 우리는 계속 침묵을 지
아예 못하고 영어도 잘 못하기에 영어를 가장 못하는 사람이 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학교에서 스
키며 걷기만 했다. 그렇게 캠프 자체 교육은 아무런 친분도 쌓지 못한 채 끝이 났다. 국내 교육을 받으러 가는 날이
크립트 잉글리쉬라는 소모임을 만들어 친구들과 영어공부를 했지만, 그마저도 필리핀에 오기 몇 주 전이라 네 번밖
되자, 모두가 역에서 만났다. 캠프끼리도 아직 어색한데, 새로운 사람들이 더 많아져서 나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국
에 하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다른 단원들도 나와 실력이 비슷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언어에 대한 걱
내 교육 장소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는 누가 탔나 싶을 정도로 조용했다. 하지만 국내 교육의 첫 번째 프로그램이
정을 안고 필리핀으로 갔다. 다행히 우리가 사업장에 들어가기 전, 두 달간의 현지 적응 교육을 통해 따갈로그어와
시작되고 나서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 프로그램은 여러 가지 게임이었다. 팀을 이뤄 미션을 수행하는
영어를 가르쳐주는 수업이 있었다. 잔뜩 기대를 했지만 선생님은 필리핀 사람이었고 수업도 영어로 진행되었다. 우
게임, 두 명씩 짝을 지어 서로에 대해 질문하고 소개하는 게임 등 여러 게임이 준비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서로 어색
리는 영어로 따갈로그어를 배워야 했기 때문에 더욱 집중해서 들었다. 초반에는 귀에 들어오는 단어나 문장이 전혀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모두들 집중해서 재미있게 했다. 모두가 함께하는 게임을 할 때는 서로 넘어지면 잡아주는 신
없어서 멘토들이 계속 통역을 해 주었다. 하지만 노력한 결과 점점 알아들을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고 따갈로그어도
기한 광경도 펼쳐졌다. 그렇게 첫날, 우리는 모두 친해지게 되었다. 다음부터는 항상 어떤 활동을 하든지 서로를 챙
일상 속 대화를 통해 복습을 해서 5개월이 지난 지금은 현지 스태프들과 대화를 할 수 있고 따갈로그어로도 조금씩
겨주는 모습이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국내 교육을 받으면서 단원들과 급속도로 친해지고 나니 긴장감은 없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고 들뜬 마음만 남게 되었다. 그렇게 다들 신나 있을 때쯤 유병욱 의사 선생님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그분은 긴장감
최근 시작한 꿈 도서관 프로젝트를 통해서도 실력이 더 좋아지고 있다.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은 대부분이 영어를
이라곤 하나 없는 우리에게 쓴소리를 해 주셨다. 자신이 해외봉사를 가서 겪은 무서운 일들과, 그 일들이 남의 일이
못해서 따갈로그어로 대화를 해야 한다. 그래서 아이들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서 더 열심히 듣고 말하는 연습을 한
아닌 우리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말씀이었다. 우리가 가서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배우는 자세로
다. 가끔씩 영어를 잘하는 아이들이 오면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를 물어보면서 배우기도 한다.
가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우리의 자세는 그저 놀러가는 것으로밖에 보이질 않는다고 하셨다. 맞는 말이었다. 우리
필리핀에서 처음 해 보는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배우고 깨달은 점이 많았다. 필리핀에 온 첫날. 살
는 반성을 하고 더욱더 긴장해서 남은 국내 교육을 받았다. 교육 중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세계시민의 삶’ 을
면서 처음으로 찬물로 샤워를 했다. 너무 차가워서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것은 약과였다. 우리가 오고
살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봉사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국제개발과 지역개발처럼 깊은 수준까지 생각한 적
며칠 뒤, 에너지 포럼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왔는데 많은 사람이 한 번에 물을 써서 단수가 되었다. 그때 샤워를 하고
은 없었다. 그래서 내용 중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지만, 내가 이해한 것들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있었던 나는 갑자기 끊긴 물에 당황해 그대로 굳어 있었다. 조금 뒤, 물이 졸졸 나오자 그 물로 간신히 샤워를 끝낼
세계시민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일처럼 생각하고 함께 살아가는 자세를 가져야 한
수 있었다. 그 순간 찬물이라도 잘 나오는 것이 정말 감사했다. 그리고 며칠 뒤, 집단 이주민들이 사는 사와타라는 곳
다는 마음. 이렇게 국내 교육을 통해 세계시민의 자세를 갖게 되었다.
에 갔다. 그곳은 쓰레기 냄새가 심했고 쓰레기 때문에 강마저 검어져서 우리를 안내해주는 분이 저 강에 빠지면 정
국내 교육이 끝나고, 우리는 가족과 친구들을 불러 출정식을 했다. 그날 처음 대표님을 뵈었는데 그분은 우리가
말 큰일이 날 수도 있다고 했다. 아이들은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하고 샤워를 하지도 못해서 피부병에 걸리기도 했
항상 들어왔던 ‘장하다, 멋지다’ 등의 칭찬이 아닌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것’ 이라는
다. 사와타를 보고 돌아오면서 며칠 전에 내가 느꼈던 감사함을 더 깊게 느꼈다. 수도꼭지를 돌리면 물이 나오는 당
말씀을 해 주셨다. 처음에는 공감하지 못했다. 사실 그때까지는 다들 좋은 일을 하러 간다는 칭찬만 들어와서 겸손
연한 사실이 이곳에서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따뜻한 물 또한 이곳 사람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한국
이라고는 하나도 몰랐던 것 같다. 물론 언어 문제와 관계를 맺는 것의 걱정은 있겠지만 ‘봉사’ 를 하러 가는 것은 칭
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낭비해 왔던 내가 얼마나 창피하던지. 그러다 보니 다른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기 시작했
찬받을 만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필리핀에 와서 확 달라졌다. 대표님의 말씀을 뼈저리게 느끼게
다. 캠프 안에 있는 모든 건물은 설계를 할 때 에너지 절약을 감안하고 세운다. 더운 나라인 필리핀에서 선풍기를 덜
된 것이다. 필리핀에 도착해서 우리 매니저인 그라시아와 만났을 때 나는 그라시아의 영어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
쓰기 위해 바람의 방향을 따라 건물의 방향을 정하고, 햇빛이 강한 이 나라의 특성을 이용해서 낮에는 전등 대신 햇
다. 그 외에도 많은 것을 해내지 못했다. 나는 영어도 못하고 따갈로그어도 못하고 일처리도 제대로 못하고 눈치도
빛을 물이나 단열판에 반사시켜 내부를 밝게 하는 방법을 이용했다. 그래서 우리는 낮에는 전등을 켜지 않고도 밝은
없었다. 그렇게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자 무엇을 하든 배운다는 자세로 임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오히려 내
공간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그저 낮이고 밤이고 아무 때나 스위치를 켜는데, 이곳에서는 전기를 절약하
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조금씩 생겼다. 수업을 통해 언어를 배우다 보니 현지인들끼리 얘기를 해도 몇 개의 단어만으
기 위해 여러 가지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니. 하지만 이렇게 실천해도 행사가 있을 때는 가끔씩 정전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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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꿈봉, 날다
부모님과 상의를 하고 나서 꿈봉을 신청했다. 신청서를 작성하며 느꼈던 설렘이 아직까지 기억난다. 합격 통
꿈꾸는청년봉사단을 신청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대학과 현장 경험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공연기획에 관심 이 있던 터라 대학에 가서 더 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 관심이 생겼기 때문에 경험을 하면서 현장을 느
6개월, 나의 성장기
3. 꿈봉, 날다
그럴 때면 더욱더 절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6개월 간의 꿈/캠프/필리핀]
껴보고 싶었다. 또 공연기획 외에도 관심 있는 것은 많아서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꿈 꾸는청년봉사단에 합격했고 일단 그 고민은 접어두게 되었다. 필리핀에서는 몇 개월간 이곳에만 집중했다. 돌아가 서 무엇을 할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 봉사단의 이름과 목적에 맞게 꿈을 꾸고 찾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 결과 머리 가 더 복잡해 졌다. 이곳에서 ‘환경’ 에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물과 빛과 음식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된 나는 이 것들이 어떻게 생기고 폐기되는지 궁금해 졌다. 그 관심은 나의 일상생활에서도 나타나게 되었다. 내가 입고 먹고 쓰는 모든 것들 중 절반 정도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데도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이렇게 잘못된 일상을 살고 있 던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있을 때, KCOC 일반봉사단인 이경희 언니가 추천해준 <물건 이야기>라는 책을 읽게 되었
이은서 (19)
이곳에서 보낸 시간들이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고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느낀다.
다. 그 책에는 내가 알고 싶어 했던 것들, 즉 물건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떻게 쓰이고 어떻게 버려지는지, 그리고 버려진 뒤에는 어떻게 처리되는지와 그로 인해 우리가 사는 지구가 어떻게 잘못되어 가는지가 나와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완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소개돼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최종적으 로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정해졌다. 공연기획과 환경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이 두 가지에 대해서 공부하고 현장 경험도 쌓으며 나의 계획을 구체화할 생각이다. 물론 중간에 바뀔 수도 있겠지만 항상 캠프에서 느끼고 배운 것들을 잊지 않으며 살아갈 것이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 필리핀 캠프에서의 생활을 나는 잊지 못할
6개월의 기간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꿈봉 단원에 합류하기 전부터의 나를 생각해 보니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번 6개월간 무엇이 바뀌었고 앞으로의 진로를 찾았는가?’ 라는 주제로 글을 쓰도록 하겠다.
것이다.
꿈봉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여름방학 때였다. 후배들과 오랜만에 만나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선생님에 게서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이지?’ 하고 전화를 받은 나에게 선생님께서 6개월간 필리핀으로 봉사활동을 하러 가보 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하셨다. 당시에는 정보도 부족하고 당황스러운 마음이 커서 일단 생각해 보겠다고 대답하 고 전화를 끊었다. 통화가 끝난 후 후배들에게 상황 설명을 한 후 너희가 나 같은 경우라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어봤 2014 월드프렌즈 NGO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을 때 모두의 의견은 ‘6개월은 너무 길다.’ 는 반응이었다. 나도 ‘6개월은 무리다.’ 라고 생각은 했지만, 좀 더 많은 사 람들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과 상의해 보았다. 부모님은 정말 좋은 기회라는 의견이셨기 에, 나는 열심히 고민했다. 그 결과 다시없을 기회인 데다 내가 여행과 색다른 경험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는 점을 믿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선택을 내렸다. 그러나 지금은 멋모르고 내린 그때의 선택이 나에게는 정말 큰 성 장의 기회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기간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그 배움이란 내가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배운 것뿐 아니라 다른 꿈봉 단원들 과 생활하면서 배운 것, 내가 여가 시간을 사용하면서 배운 것, 어느 날 갑자기 자연스럽게 깨닫고 성장한 것 등 여러 방면에서 다가온 모든 것을 포함한다. 첫 번째로 크게 배운 것은 국내 교육 때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점이다. 내가 잘나서 먹을 걱정 과 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이런 좋은 기회를 얻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대한민국이라는 경제적으로 비교적 부 유한 나라에 태어난 것뿐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이런 점들은 그동안 많이 들어와서 머리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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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가짐을 토대로 현지 스태프들과 학생들을 만나면서 배우려는 태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주변 사람들과 한국에 있는 내 이웃들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기숙사에
두 번째로는 필리핀에서 여가시간을 보내는 동안, 내 시간을 어디에 얼마만큼 할애해야 나에게 효율적으로 사용
서 생활했고 공동 생활이나 새로운 생활에 익숙한 나였지만, 해외에서 6개월을 살다 보니 가끔 외로울 때도 있고 힘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현지 특성상 인터넷이 거의 되지 않아 여가시간에는 어쩔 수
들다는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꿈봉과 같이 생활하며 서로를 잘 챙겨주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았고
없이 인터넷 외의 다른 활동을 해야 한다. 나는 그 시간 동안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썼는데, 지금까지 보낸 여
함께 지내는 사람들에게 감사함과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또 한국에 있는 가족들, 친구들과 오랫동안 떨어져 지
가시간 중 가장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매일 약 6㎞를 뛰며 운동을 하면서 허약한 체질
내니 그 가족과 친구들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힘이 되어주는 사람인지를 배운 시간이었다.
이었지만 전보다 덜 아팠던 것 같다. 또 음식이 매우 기름졌기 때문에 건강을 위해서라도 운동을 하는 것이 중요했
이제 며칠 뒤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곳에서 배운 것과 생각한 것들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웠다. 여기서 확
던 것 같다. 지금은 조금 더 연습하여 나중에 마라톤 하프코스에 도전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여가시간에 책을 읽
실히 마음먹은 것은 ‘남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내가 마음먹은 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야겠다.’ 라는 점이다.
으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원래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지만, 최근에는 책 읽는 시간에
이곳에 오기 전부터 이런 마음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나의 진로나 계획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
여러 가지 다른 일을 하느라 책을 멀리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저녁시간에 책을 읽을 시간이 많아 다양한
다. 또 나 스스로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한국의 고3이라는 큰 부담감이 나도 모르게 나를 누르고
책을 읽었고, 그중에서 관심이 가는 분야를 찾을 수 있었다. 칼 폴라니와 다른 여러 경제학자들의 책을 읽으며 경제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공부를 할 것이고, 그에 맞춰 계획을 세울 것이다. 먼
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인문학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는 기존의 사고방식과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는 접
미래의 계획도 중요하지만 내가 후회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바로 맞서게 될 코앞의 미래부터 차근차근 살아가는
근법을 공부할 수 있었다. 또한 책을 읽고 글로 정리함으로써 확실하게 공부를 할 수 있었고 글 쓰는 기술도 많이 늘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단 한국에 돌아가면 국내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다. 현지 학생들과 이야
었다. 또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쓰는 습관을 들여 하루를 정리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주
기를 나누다보니 내가 한국에 살고 있지만 생각보다 더 한국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여행을 하기에
말 저녁에는 영화를 보았는데 영화를 통해서도 여러 가지 영감을 얻고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듯 여가시간을
는 지금이 가장 적합한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에는 학교 창업 과정을 끝까지 마치고 다른 대안학교를 다녔던
보내는 것이 배움과 새로움의 연속이 되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낳았다. 또 노래를 들을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여러 종
사람들이 해준 조언을 토대로 학교에 여러 가지 문화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류의 새로운 노래를 많이 찾아 들을 수 있었다. 이건 나중에 음악을 하고 싶은 나에게 정말 큰 자산이 될 것 같다.
2014 월드프렌즈 NGO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을 보며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고 정말 열심히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지금 계획 중인 앞으로의 진로는 그동안 해 오던 음악을 계속하는 것이다. 필리핀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음악들
세 번째는 나 자신을 좀 더 알게 되면서 마음이 많이 성장한 것을 느꼈다. 부정적인 마인드가 정말 많이 바뀌었고
과 내가 기존에 만들고 생각해 오던 것을 토대로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좋은 음악들을 만들어 보고 싶다. 또 한편
감정을 좀 더 잘 다스릴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생겼다. 예전에는 부정적인 결과가 나온다 싶으면 답을 찾기보다 포기
으로는 이곳에서 흥미를 가지게 된 경제와 사회학, 인문학과 인류학 공부를 계속 해 보고 싶다. 여러 가지 강의를 찾
하거나 불평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곳에서는 포기할 수 없고 어떻게든 완성해야 했기 때문에 다시 시도하는 끈기
아 듣고 책을 읽으며 공부할 계획이다. 앞에서 말한 마라톤을 해 보는 것도 여러 계획 중 하나다. 이곳에서 열심히 뛴
가 생겼다. 또 문제가 생겼을 때는 불평하지 않고 바로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머리를 굴려보는 시도를 하게 되었다.
결과를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한다. 이곳에서 알게 되었지만 정보를 얻기가 힘들어 읽지 못한 책이나
그 결과 좀 더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일머리와 끈기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KCOC 필리핀 코
글을 많이 찾아 읽을 생각이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책 읽는 습관과 글 쓰는 습관을 한국에 가서도 계속 단련하기 위
디네이터인 노영선 과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신을 자랑스러워
해 도서관을 많이 방문할 것이다. 영화도 내 생각보다 배울 것이 많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영화관
한다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이라는 점을 배웠기에, 나 자신을 좀 더 알아가고 장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을 자주 가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시간을 내서 다양한 영화를 볼 것이다. 일기 쓰는 습관도 멈추지 않고 꾸준히 써 나
배움이었다. 또 피딩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갈 생각이다. 일기를 쓰는 습관이 단순히 기록뿐만이 아니라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네 번째로 홈스테이를 하면서 방문했던 집의 학생에게 정말 많이 배웠다. 내가 방문했던 학생의 집은 다른 학생
이곳에서 보낸 시간들이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고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느낀다.
들의 집보다 가난해 보였다. 물은 밖에서 길어 와야 했고 형제들도 굉장히 많았으며 집도 많이 좁았다. 그러나 그 학
이곳에 올 수 있는 기회를 준 아힘나 평화학교의 선생님들과 KCOC와 CAMP에게 감사하고, 이 기회를 흔쾌히 허락
생은 우리에게 항상 쾌활하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자신의 일이 바쁠 텐데도 우리가 도움을 청할 때마다 거부하
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지 않고 도와주었다. 우리와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많이 보여주었다. 그 학생의 집에 방문했을 때 가족 모두 가 매우 친절하게 맞아주었고 나에게 신경을 많이 써 주었다. 그 학생은 공부하기 힘든 환경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 하고 미누얀 고등학교 전교생 대표인 데다 공부도 잘해 지금은 UP 11)에 합격했다고 한다. 나보다 어리지만 그 학생
11) University of Phillipine. 필리핀 국립대학으로 필리핀 내에서 가장 수재들이 모이는 필리핀의 서울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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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꿈봉, 날다
알고 있었지만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국내 교육을 통해 겸손하게 배운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마
은 좋았다. 기쁜 마음으로 캠프를 마치고 봉사활동을 가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과 목표를 세웠다. 한 달 뒤면 한국 을 떠나 타지에서 6개월을 산다는 생각이 그때는 참 길게 느껴졌는지, 친구들과 주변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러 돌아
[6개월 간의 꿈/캠프/필리핀]
다녔다. 고작 6개월밖에 안 되는데 엄청 오래 떨어져 있는 것처럼 대화를 나누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우습다. 다 들 가는 군대에 비하면 6개월이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니까. 며칠 뒤에 파견되기 전 2주간의 국내 교육이 있었다. 현 지에서의 안전수칙과 현지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나의 행동 하나하나를 어떻게 조심해야 하는지에 대
자신감을 가지고 한국에 가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장희제 (21)
그리고 언제 또 올지 모르는 타워빌이지만,
해 교육이 있었고, 국제개발과 빈곤에 대한 강의도 들었다. 교육 전에 많이 알아보기는 했지만 강의를 듣고 나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매일 강의만 들은 것은 아니다. 첫날에는 오리엔테이션과 재미있는 게임 도 하면서 즐겁게 놀기도 하고 열심히 강의도 들으며 지내고 보니 2주가 금방 지나갔다. 파견 때문이 아닌 정말 여
현지에 있는 아이들과 모든 사람들에게
러 가지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고, 귀국 후에 다시 국내 교육을 받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정말 시
내가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땐 또다시 친구들을 만나서 신나게 놀았다. 6년을 가는 것도 아니고 고작 6개월인데 왜 그렇 게 놀지 못해 안달이었던지 모르겠다. 신나게 놀다 보니 벌써 파견 3일 전이 되어 가족들과 친구들을 초대해 출정식 을 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파견되기 하루 전날, 교회에 가서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리고 와서, 다음 날 새벽까지 공항에 도착해야 되기 때문에 저녁 7시부터 잠을 청했다. 긴장한 탓인지 잠든 지 5시간 만에 눈이 떠졌다. 씻고 친구들을 만나 준비된 차를 타는데, 내가 친구들은 잘 둔 것 같아 뿌듯했다. 다음 날 학교에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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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도 있고 일이 늦게 끝나서 피곤한 친구들도 있었는데, 새벽부터 공항까지 배웅을 해 준다며 차를 준비해서 기
20살 8월, 수능 공부를 하면서 지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예전부터 공부머리는 없었고 한동안 공부도 안
다려준 친구들이 어찌나 고맙던지. 엄마는 다음 날 출근하셔야 하니 집에서 주무시라고 하고, 새벽 2시에 엄마의 기
하다가 하려니 머리통이 터질 것 같았다. 그날도 다를 것 없이 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중에 선생님께서 “필리핀으로
도를 받으며 공항으로 출발했다. 나는 친구들과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라 공항으로 가는 내내 차 안도 시끄러웠고
봉사활동을 가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한번 해볼래?”라며 물어보셨다. 나는 바로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해외 체류 경험
사람이 많다 보니까 놀러 가는 기분이 들었다. 가는 도중에 서울에 있는 친구 집에서 하루 묵은 동훈이도 태웠다. 이
이 한 번도 없었던 터라 쉽게 가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우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나의 생각을 설명하고 저녁에
날따라 비가 엄청 많이 오는 데다 시간도 이른 새벽이라 운전을 하는데 많이 힘이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약속 시간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사실 속으로는 ‘내가 도움을 받아야 할 상황에 누구를 도우러 가냐.’ 라는 생각도 했
인 6시보다 10분 일찍 도착했다. 친구들과 밥이라도 같이 먹고 보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촉박했고, 수속을
다.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고 국제개발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사이트도 들어가서 이것저것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사
밟다 보니 시간이 없어서 친구들에게 빵을 사주고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웃으면서 헤어졌다.
실 그렇게 정보를 찾아보기 전에 이미 가고 싶다는 마음을 굳힌 상태였던 것 같다. 필리핀은 영어를 사용하니 영어
엄마와 통화를 하고 이륙을 기다리는데 비행기를 처음 타는 것이라 모든 신기했다. 도착까지 4시간 정도 걸린다
실력도 많이 향상될 것이고 어린 나이에 해외에 오랫동안 머물러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그
니 한숨 자야겠다 생각하고 잠을 청하려 했으나 들뜬 기분에 잠이 오지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 기
당시에는 말을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내식이 나와서 먹었는데 너무 기대를 해서인지 생각보다 맛이 없었다. 밥을 먹고 잠을 자다가 눈을 떠 보니 어느 새
집에 가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엄마는 흔쾌히 승낙하셨지만 나는 아빠와 떨어져 사는 데다 집에는
필리핀에 도착했다. 필리핀이 더운 나라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숨이 턱 막히고 겨드랑이에 땀이
어린 남동생과 엄마와 누나만 있고 남자가 없어서 걱정이 많이 되었다. 엄마와 이야기가 끝나고 다음 날 학교에서
차기 시작했다. 그때는 왜 그랬을까, 덥다는 것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한국은 초가을이었고 필리핀은 30도가 넘
어떻게 지원을 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필요한 서류를 제출해서 1차 서류면접을 본 후 2차 면접을 보았다. 아
는 날씨여서 더 덥게 느껴진 건지도 모른다.
직 대학교도 못 갔고 중요한 면접이라고는 본 적이 없는 나였다. 면접을 보러 갔는데 생각보다 더 떨리고 면접을 보 는 사람도 많았다. 나름 준비했던 말들을 이야기하고 면접관이 물어보는 질문에 열심히 대답했다.
공항으로 나가니 차 한 대가 도착해 있었다. 꿈봉의 6개월치 짐과 대표님까지 총 9명이 트럭에 짐을 옮기고 차에 탑승했다. 마치 우리도 짐이 된 것처럼 구깃구깃 몸을 구겨서 겨우 차에 타는데 그때가 정말 힘들었던 것 같다. 원래
그러고 며칠이 지나 학교에서 캠프를 하고 있던 때, 엄 팀장님께 전화가 왔다. 나름 열심히 준비했던 터라 기대를
는 에어컨이 있는데 우리 짐으로 에어컨 입구를 막아버려서 더 더웠다. 길이 막혀서 80㎞밖에 되지 않는 거리를 2
하고 전화를 받았다. 팀장님의 목소리 톤이 조금 낮아서 ‘떨어졌나?’ 싶었는데, 낮은 목소리로 합격했다고 축하한
시간 30분이나 걸려서 캠프에 도착했는데, 그때까지도 더운 날씨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그때 짐을 내리고 우연히
다고 전해주셨다. 그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다음 일정에 대한 안내를 받은 후
하늘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이야!”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하늘이 엄청나게 예뻤다. 사실 이곳에서의 하늘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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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꿈봉, 날다
에 전화를 끊었다.(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원래 엄 팀장님은 보이시한 목소리를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어쨌든 기분
필리핀에서 아빠가 되다
가지고 인형을 만드는 과정이 어렵지 않아 보여 시도할 만했다. 아이들이 좋아한다면야 만드는 과정이 어렵더라도
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식사량이 매우 적었는데 필리핀에서 먹는 양이 3배는 늘었다. 내가 배정받은 숙소는 ‘게스
겁이 나지 않았다. 다음 날 재료를 사서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이것이 2번째 진화다.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지만
트하우스’ 였다. 아직 완공이 덜 된 상태여서인지 며칠 동안은 계속 방 안으로 시멘트와 모래, 먼지가 날아 들어왔다.
이번에도 역시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아이들이 즐거워할 모습을 생각하며 만드니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하루
하지만 창문을 닫으면 너무 더워 문을 닫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를 다 투자해 거북이, 토끼, 얼룩말, 사자를 만들었는데 너무나 귀여웠다. 한눈에 봐도 아이들이 엄청 좋아할 만한 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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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 와서 2개월까지는 언어교육과 아트워크(건물 벽에 깨진 타일을 붙여 꾸미는 작업)를 했다. 2일째인가
릭터였다.
아트워크를 하고 있는데 너무 더운 나머지 12월에 있을 휴가를 생각하면서 열심히 작업을 했다. 중간 중간 다 같이
이번에 할 인형극은 <토끼와 거북이>였다. 다들 알다시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거북이가 승리하는 이야기다. 손
음료수도 사 먹으며 아트워크를 하고, 따갈로그어도 열심히 배우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금방 2개월이 지나
에 인형을 끼고 해야 해서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목요일 아침 한 시간 정도 맹연습한 후에 가야가야로 출발했다. 충
가 버렸다. 원래 언어교육은 3개월 동안 진행하기로 했지만, 다들 너무 지치고 뭔가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언어교
분한 연습 덕분에 인형이 내 손 모양에 따라 잘 움직여서 일부러 과장하면서 인형극을 했다. 그랬더니 아이들의 웃
육을 2개월만 하고 캠프가 진행하는 사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음이 끊이질 않았다. 사실 필리핀에 오기 전에는 모르는 영어단어가 많았는데 인형극을 하면서 많이 배우게 되었다.
각자 파트를 나누는데 나는 예전부터 아이들을 좋아했던 터라 의석이와 함께 아이들이 있는 가야가야 도서관 사
가야가야 도서관은 캠프 사업이고 이제부터는 우리 꿈봉이 만든 '이동식 꿈 도서관'(PANGARAP Mobile
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참여한다고 하고 보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없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에
library)에 대해서 소개하겠다. PANGARAP은 타갈로그어로 꿈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동식이란, 도서관이 멀어
게 책을 읽어주고 간단한 게임을 하려고 했는데 막상 가서 보니 상황이 달랐다. 우리가 타갈로그어를 자연스럽게 읽
서 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지정된 시간에 지정된 장소로 가서 아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마
어주지 못해서인지 아이들이 의석이와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우리가 열심히 책을 읽는 아이들을 방해하고 있다
련하는 것이다. 8명이 머리를 맞대고 몇 개월에 걸쳐서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였다. KCOC에서 지원해 주는 프
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의석이와 상의한 끝에 A4 용지에 시간과 날짜를 적고 인형극
로젝트라 우리의 계획을 제출하고, 승인이 난 뒤 도서관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사실 나는 이동식 도서관
을 한다고 도서관 게시판에 붙여놓았는데, 그렇게 한 것이 잘못이었다. 캠프 조직은 현지 스태프들과 한국 스태프들
에 준비할 게 뭐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구입할 물건들을 체크해 보니 양이 어마어마했다.
로 구성되어 있고 담당 부서도 다 정해져 있어서,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담당자에게 보고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의석이
드디어 토요일에 열린 개관식. 다행히 아이들이 많이 왔다. 아이들에게 도서관에 대한 흥미를 심어주기 위해 여
와 나는 그 생각을 하지 않고 마음대로 게시물을 붙여버렸던 것이다. 결국 우리 게시물은 떼어야 했다. 그리고 이번
러 가지 프로그램을 준비했는데, 그 안에는 인형극도 포함되어 있었다. 계획했던 대로 개관식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
엔 제대로 담당하시는 분에게 설명하고 게시물도 예쁘게 프린트를 해서 게시판에 붙였다. 하지만 막상 인형극을 하
고, 월요일부터 정식으로 도서관을 열었다.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와서 책을 읽었고, 요즘도 꾸준히 많은 아이들
기로 하고 나니 주제도 떠오르지 않고 무엇으로 인형을 만들어야 할지도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 와서 책을 읽고 있으며 이동식 도서관을 나가도 하루에 30~40명의 아이들이 찾아온다. 아이들이 책을 읽으면서
‘시작하기 전에 아이들과 종이접기를 해서, 종이접기 한 것으로 인형극을 하자.’ 고 쉽게 생각했던 것이다.
꿈을 꾸며 더 넓은 세상을 경험했으면 좋겠다.
처음 인형극을 하는 날, 게시물 덕분인지 많은 아이들이 와서 기다려 주었다. ‘이렇게나 많은 아이들이 우리 인형
나는 필리핀에 와서 거의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말은 안 통해도 자기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아는 것일까?
극을 보기 위해 와주었구나.’ 하는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시작 전에 자기소개를 하고 준비한 대로 진행했다. 처음으
거리를 다니다 보면 아이들이 “진~”13) 하며 달려와서 품에 안긴다. 나도 그런 상황이 좋아 인사도 하고 안아주기도
로 만든 이야기는 <아기돼지 삼형제>인데 아이들이 너무나 잘 호응해 주어서 나름대로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 있었
하며 반갑게 대한다. 내가 한국에서도 아이들을 좋아하긴 했지만 아이들을 많이 접할 기회가 없어서 그랬는지, 이렇
다. 하지만 많은 아이들이 우리 인형극을 보러 왔는데, 우리의 준비가 너무 허술한 것 같아 깊게 반성했다. 일주일에
게까지 아이들을 좋아하는 줄 이번에 알았다. 초반에 언어교육 수업을 들을 때 더 열심히 공부했으면 아이들과 더
한 번씩 목요일마다 인형극을 했는데, 다음주 준비를 위해 그라시아12)와 회의를 했다. 그라시아와의 회의를 하다가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아이들과 오래 지내다 보면 나에게 까부는 아이, 무작정 와
삼성재단에서 지원금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인형극을 하는 데 필요한 물품을 사면 지원이 된다는
서 내 목을 잡고 안아달라며 조르는 아이, 그냥 인사만 하는 아이 등 많은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사실 나는 까부는
말이었다. 우리는 인형극을 준비하면서 두 번에 걸쳐 진화했는데, 이것이 첫 번째 진화였다. 우선 색지와 단단한 나
아이들을 보면 더 친근한 느낌을 받는다. 당시에는 얄밉다는 생각도 하지만 아이들과 헤어지고 나면 더 보고 싶다는
무젓가락을 산 다음, 스토리를 정하고 등장인물을 프린트한 후에 색지에 붙이고 마지막으로 나무젓가락을 붙이면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까부는 아이들이 더 눈에 띄기 때문인 것 같다.
완성이다. 사실 만드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색종이로 만든 캐릭터와는 다르게 멋있었다.
한국에 가면 수능 공부를 하면서 대학 입시를 준비할 예정인데, 공부를 하면서 내가 어렸을 때 다니던 유치원을
어느 날 회의를 하는 도중 그라시아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진짜 인형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해가 가
다니려고 한다. 유치원 원장선생님과 어렸을 때부터 자주 연락하면서 지냈는데, 며칠 전에 선생님과 통화를 하면서
지 않았다. 재료도 구할 수 없는데다 어떻게 만들자는 건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동영상을 보니 긴 양말을
아이들이 너무 좋으니 혹시 아이들이 노는 시간에 맞춰서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되겠냐고 여쭤 허락을 받은 것이다.
12) 그라시아는 꿈봉 담당 현지 스탭(Maria Gracia P.)
13) 장희제 단원이 필리핀 현지에서 쓰던 영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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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꿈봉, 날다
금까지도 볼 때마다 감탄한다. 힘들고 지칠 때 나를 보면서 마음을 달래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밥은 생각보다 맛있
3. 꿈봉, 날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돌보게 되면 우선 말이 잘 통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즐거울 것 같다.
꿈봉이 나에게 준 변화
필리핀에서 이런저런 많은 일들이 있었다. 힘든 일도 있고 기쁜 일도 있고 때로는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몇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을 보면 그 순간만은 그런 생각들이 없어지고 같이 놀기에 바빴다. 이제 얼마
[6개월 간의 꿈/캠프/필리핀]
후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아이들과 어떻게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할지도 고민이다. 필리핀에 와서 배운 것은 너무나 많다. 우선 필리핀 사람들은 느긋하다. 나는 성격이 급하지만 그렇다고 일 처리 를 정확하고 빨리 하는 편은 아니었다. 덕분에 6개월을 지내면서 급한 성격을 줄이게 되었다. 한국에서 목표했던 것 인데 이 목표는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필리핀 사람들은 친화력이 대단한 것 같다. 한국은 위아래 선이 분명 하게 그어져 있고 존칭을 확실히 해야 하는 반면, 필리핀은 존칭을 사용하는 것을 지주 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다 른 사람에게 자기 마음이나 상태를 잘 표현하는 것 같다. 파견되기 전과 같이 귀국하기 전에도 많은 계획을 세우고
NGO 활동가로 일하면서 어려운 지역을
전동훈(20)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공간으로 만드는 일이
준비하고 있는데 지금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넘쳐난다. 이 자신감을 가지고 한국에 가서 더 열심히 살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이라는
아야겠다. 그리고 언제 또 올지 모르는 타워빌이지만, 현지에 있는 아이들과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좋은 기억으로
생각이 들었다.
남았으면 좋겠다.
꿈꾸는청년봉사단에 파견되기 전의 삶은 그저 평범한 하루의 연속이었다. 나이가 들었으니 운전면허나 따야지
➊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하는 마음으로 면허 시험장에 가서 운전면허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데 고등학교 교장선생님께 전화 한 통이 왔다.
➊
교장선생님께서 나에게 “동훈아, 필리핀으로 6개월 동안 봉사활동 가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한번 가보지 않을래?” 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부모님과 잠시 이야기를 한 뒤에 바로 교장 선생님께 가고 싶다고 답장을 보냈다. 그 렇게 해서 꿈꾸는청년봉사단에 지원하게 되었고 서류전형과 면접을 통과하게 되어 꿈꾸는청년봉사단이 되었다. 큰 고민 없이 꿈꾸는청년봉사단에 지원할 수 있었던 이유는 파견국인 필리핀이 나에게 매우 친숙한 나라였기 때문이 2014 월드프렌즈 NGO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다. 초등학교 때 잠시 필리핀에서 학교를 다녔고 중학생이 되고 나서도 4개월간 필리핀에서 학교생활을 했다. 그래 서인지 한국을 제외하고 나에게 가장 친숙한 나라가 필리핀이었고, 6개월이라는 시간도 크게 부담되지는 않았다. 예전에 필리핀에 갔던 이유는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는데, 한국과 날씨, 사람, 언어만 다르고 주변 환경에는 크 게 다른 점이 없었기 때문에 언어 외에는 크게 배운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꿈봉에서 가는 지역은 같은 필리핀이 지만 내가 지냈던 필리핀과 거의 모든 것이 다른 환경이어서 좀 더 다른 측면에서 배울 점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진 국내 교육을 통해서 타워빌 지역이라는 곳을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고 여러 강사 선생님들의 강의 를 들으며 ‘예전에 필리핀에 가던 때와는 마음가짐부터 다르게 하고 가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국내 교육을 마치고 10월 20일, 드디어 필리핀 타워빌 지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우리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프로젝트를 하면서 생활하게 되었다. 처음 왔을 때는 시간이 빨리 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여러 가 지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간 것 같다. 필리핀에 6개월 동안 있으면서 나에게 크게 두 가지 변 화가 생겼는데 하나는 몸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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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몰라도 야구만큼은 하루 종일 해도 재미있었다. 부상으로 야구를 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몸이 나은 뒤로는 취
빨라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주가 지날 때마다 점점 체력이 좋아지고 몸도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실제로 달리기 를 시작한 뒤로 살이 엄청 빠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몸무게를 재보았더니 8㎏이나 빠져 있었다.
미로라도 야구를 계속 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야구의 특성상 축구나 농구 같은 운동과 다르게 달리기를 많이 하지
달리기를 할 때는 항상 노래를 들으면서 달렸다. 달리기를 할 때 심심하기도 했고 가장 큰 이유는 말을 하면서 달
않는다. 그러다보니 내가 운동을 정말 오랫동안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래달리기’ 를 하지 못했다. 쉽게 말하
리면 호흡하는 데 방해가 되어 훨씬 힘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계속 달리기를 하다 보니 같이 달리기를
면 체력이 정말 약했다. 그런데 타워빌 지역은 음식이 너무 기름졌고, 매일 더운 날씨에 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탄
하는 은서와 이야기를 하면서 달릴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되었다. 지금은 하루에 36바퀴를 달리고 있다. 7㎞가 넘
산음료를 많이 마셨기에, 이런 생활을 계속 하다가는 살이 엄청 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는 거리를 달리고 있는데 예전에 나를 생각하면 절대로 하지도 않을 뿐더러 할 수도 없는 거리를 매일 달리고 있는
내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날,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의 룸메이트인 은서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
것이다. 은서와 약속한 대로 정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달리지는 못했지만, 몸이 아플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빠
를 듣고 은서와 같이 밤마다 운동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캠프 안에는 딱히 운동할 만한 도구들이 없었다. 그래서 생
지지 않고 달리기를 하고 있다. 앞으로 40바퀴가 될 때까지 달릴 텐데 앞으로 내 몸에 어떤 큰 변화가 있을지 기대
각해낸 운동이 캠프 안에 있는 길을 달리는 것이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불안하기도 했다. 다른 운동은 몰라도 달
가 된다.
리기는 정말 자신이 없었고 매일 달리는 거리가 캠프 안에 있는 길을 왕복 20바퀴씩 달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20
나에게 생긴 두 번째 변화는 내가 생각하는 나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다.
바퀴면 대략 4㎞ 정도였는데 하루에 매일 4㎞를 뛰는 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 해 보는 일이었다. 그래도 ‘일단 해 보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야구를 하다가 다리와 허리를 심하게 다쳤다. 허리를 다쳐 일어날 수 없게 되어 병원에
자’ 하는 마음으로 첫날 달리기를 했다. 달리기를 해 보니 스스로 체력이 좋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달
서 계속 누워서 지내고 있었다. 병원에서 지내면서 몸이 좋아지면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리기를 해서인지 앞이 잘 안 보이는 것 같고 힘들어서 정신도 못 차렸다. 그래도 일단 시작했으니 매일매일 달리기
가졌고, 지금은 대체의학으로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꿈봉으로 타워빌 지역에서
를 했다. 처음에는 20바퀴를 뛰는 것이 목표였는데 한 주에 한 바퀴씩 늘리기로 해서 총 40바퀴가 될 때까지 달리
6개월을 지내면서 나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좀 바뀌게 되었다.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피딩, 저널, 도서관 프로
기를 했다.
젝트, 탐방 프로젝트, 화덕 프로젝트, 텃밭 만들기 프로젝트, 솔라 프로젝트 등 여러 프로젝트를 경험했다. 그중에서
신기하게도 매일매일 달리기를 하니 나름 뛸 만해지고, 시간을 재면서 달려보니 하루하루 우리의 달리기 속도가
도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해준 프로젝트는 솔라 프로젝트였다.
➌ 이호용 교수님과의 만남 ➋
➌
2014 월드프렌즈 NGO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➊
➊ 달리기 전 모습 ➋ 달리기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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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꿈봉, 날다
나는 야구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야구를 생각하고 야구하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다른
이용하면 많은 빈민촌 사람들이 질병을 예방할 수 있고 다른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 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이 호용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꼭 의학으로만 아픈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교수님
6개월 간의 꿈
3. 꿈봉, 날다
솔라 프로젝트를 하던 중 우리에게 태양열 온수기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신 이호용 교수님께서 ‘태양열 온수기를
[6개월 간의 꿈/캠프/필리핀]
말씀대로 따뜻한 물이 없어서 밤에 샤워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걸리는 질병은 태양열 온수기를 설치함으로써 예 방할 수 있고,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간단한 방법으로 물을 정화시키는 방법을 알려주면 많은 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우리가 했던 다른 프로젝트들을 통해서도 아픈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겠다는 점을 생각하게 되었다. 책을 읽을 수 없는 아이들에게 책을 접할 환경을 만들어 주면 정신 건강에 도움 이 되고, 화덕이 없는 가정에 화덕을 만들어주어 요리를 할 때 불로 잘 익혀서 먹거나 물도 끓여 마시는 등 따듯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다는 점도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대체의학을 공부해서 사람들을 도와주 는 것보다 NGO 활동가로 일하면서 어려운 지역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공간으로 만드는 일이 더 많은 사람들을
6개월은 나에게 하나의 성장판이 되었다.(…)
정의석 (21)
이곳에서 정말 많이 배워간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만났던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도울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의학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NGO 활동을 해서 마을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굳이 대체의학을 공부하 기보다 NGO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부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면 대체의학보다는 국제개발 NGO에 관심을 가지고 생활할 것 같다.
내가 처음 꿈봉에 지원할 때는 자의보다는 타의가 컸다. 그 당시 나는 광명 IDEC 자원봉사 준비와 앞으로의 계획 을 세운 상태였는데, 그때 부모님이 소개해주신 것이 꿈봉이었다. 좋은 기회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신도 별로 없었고 꿈봉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님의 계속된 설득과 고등학생 때 ‘이곳에서 한번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고 싶다.’ 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을 떠올리며 결국 지원하게 되었다. 솔직히 합격했을 때는 많 이 놀랐다. 면접 당시 나와 같이 면접을 본 사람들은 딱 봐도 준비를 많이 한 상태였고 ‘대단하다’ 는 생각을 했기 때 문이다. 그래서 솔직히 아직도 내가 어떻게 합격했는지 모르겠다. 2014 월드프렌즈 NGO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캠프에 도착했다. 처음에는 적응하면서 많이 놀라기도 하고 충격도 많이 받았다. 평소 봉사와 기부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일반적인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단지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훗날 캠프가 이곳에서 철수하 더라도 지역 주민들이 알아서 자급자족을 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이 매우 색달랐다. 생각도 못해본 방식이었다. 아마 이곳에 오지 못했더라면 이러한 시스템은 평생 알지도 못하고 생각조차 못하면서 지냈을 것 같다.
6개월을 생활하면서 나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소중함도 깨닫게 되었다. 예전에 나는 사람들과 헤어질 쉽게 서운 함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이상하게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떠나갈 때마다 서운함과 빈자리를 느끼게 되었다. 어떤 계기로 바뀌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평소 주변에서 많이 들었던 지적임에도 불구하고 고쳐지지 않았던 나의 한 부분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 것 같아 좋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같이 일해 나갔던 것이 좋은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난 솔직히 말해서 새로운 장소에 가거나 잘 모르는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한자리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여행을 가거나 새로운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라면 하지만 스스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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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되면서 미루다가 결국 흐지부지되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지내면서 이러한 성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생각해 보면 이곳에서 했던 일 중에서 내가 이전에 경험해 봤다고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도 없었다. 제일 처음 했던
필리핀에서 모델이 되다!
3. 꿈봉, 날다
려고 하지는 않는 편이었다. 예전에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돈을 모았는데 그때도 결국 이런저런 이유
[6개월 간의 꿈/캠프/필리핀]
아트워크부터 인형극까지 모든 것이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고 도전이었다. 하나하나 해 나가면서 성취감을 느끼 게 되었고 그러면서 내가 조금씩 달라진 것 같다. 아트워크를 할 때도 나는 계속 하던 일만 하려고 했고 새로운 일은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새로운 것을 하게 될 때 오히려 기대감을 갖는 것을 보니 확실히 좋은 방향으로 바 뀌게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캠프에서 지냈던 6개월은 나에게 하나의 성장판이 되었다. 힘든 점도 있었지만 그 일을 계기로 좀 더 발전하게 되 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얼마 안 있어 군대에 가게 되겠지만, 그 전에 다녀올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다. 좀 더
김보미(멘토/25)
이곳에서의 6개월이 정말 감사하다. 생각도, 성격도 많이 변화했다.
세상을 돌아보며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싶은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정말 많이 배워간다. 그렇기에 이곳
이 깨달음을 한국에 돌아가서도 잊어버리지 않고,
에서 만났던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매 순간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지난여름,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 캠프 페이스북에서 꿈꾸는청년봉사단 모집 공고가 올라온 것을 보게 되 었다. 나는 이미 안양제일교회 비전트립을 통해 캠프를 알고 있었고, 국내에서 짧은 기간 자원봉사를 하면서 모집 공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지원할 당시 대학원 입학을 결정한 상태였다. 대학원에 바로 입학할지 잠시 다녀올 지 고민하다가 지금이 아니면 이렇게 시간을 내어 다녀올 수 없을 것 같아 신청하게 되었다. 건강 문제 때문에도 고 민이 있었지만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오게 된 이곳 필리핀에서, 내가 살던 곳과는 다른, 비전트립에서 작게만 봤 던 그 모습을 더 크게 볼 수 있었다. 2014 월드프렌즈 NGO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6개월간 가장 많이 변화된 것은 이전보다 좀 더 감사하게 되었다는 점과, 쫓기듯 급하게 살던 삶에서 벗어나 여유 롭게 주변을 바라볼 수 있게 된 점이었다. 한국에서의 생활을 잠시 멈추고 이곳에 꿈봉 멘토로 오게 되면서, 염려되 는 일도 많았다. 한국에서의 일뿐 아니라 함께 온 팀원들과의 관계나 프로젝트 등, 여러 가지 일이 처음에는 부담으 로 다가왔다. 또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멘토라는 직책에 관해서도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이곳에 온 지 일주일 되던 날 한 꼬마친구가 찾아왔다. 지난 1월 비전트립을 통해 만나게 된 제리코였다. 제리코의 어머니가 익팅 봉제센터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내가 이곳에 온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제리 코와 언어소통은 잘 되지 않았지만, 그날 친구와 함께 이곳에 와서 우리가 아트워크를 하는 동안 곁에 있다가 집에 돌아갔는데, 10살 정도 되는 아이가 40분이나 걸려서 이곳까지 걸어왔다고 했다. 더운 날 고생해서 이곳까지 왔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정말 고맙고 감동적이었다. 아직 현지어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대화를 할 순 없었지만, 보디랭귀지로 대화를 나누면서 정말 이 땅에 다시 돌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전트립은 9일 동안 진행됐는 데, 그 짧은 기간에도 이렇게 나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음에 감사하면서 한편으로는 부담감도 들었다.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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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꿈봉, 날다
6개월간의 내 삶이 그저 흘러가는 것이 아닌 더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더 좋은 기억으로 남는 청년이 되고 싶었다. 그 날 그렇게 다짐한 후,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흘러갔다. 지난 6개월을 돌아보니, 이곳에서 나의 친화력과 암기력이 참으로 귀중하게 쓰였음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 특히 아이들의 이름을 외워 불러주고, 따갈로그어가 부족하지만 그래도 대화하려고 노력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 었다. 센터에서 일하시는 분들, 그분들의 자녀들, 동네 사람들, 꿈 도서관에 찾아오는 아이들 등 많은 이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 즐거웠다.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과 더 친해질 수 있었다. 가끔은 헷갈리고 어렵기도 했지만, 외울 때까지 물어보고 사진을 찍어 기억하면서 나는 한 명이라도 더 소중히 여기는 마음가짐을 갖 게 되었다. 어느덧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는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느낌이 든다. 대학원을 결정 해야 하고, 언니와 하던 사업도 이어서 다시 해야 한다.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이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곳에서 의 경험을 통해 공부에 대한 갈망이 더 커졌다는 점이다. 건강한 음식에 대해 공부하고 있던 나는 이곳에서 이들의 삶과 식습관을 본 뒤, 더욱 전문적으로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내 생각에 음식은 모든 병의 근원이기에, 건강 한 음식으로 건강을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건강과 식습관을 보면서 앞으로의 공부 방향을 결정할 수 있 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이곳에서의
6개월이 정말 감사하다. 생각도, 성격도 많이 변화했다. 이 깨달음을 한국에 돌아가서도 잊어버리지 않고, 매 순간
2014 월드프렌즈 NGO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➊
➋
➊ 필리핀의 아이들
제리코와 함께
➋ 마르셀라 교회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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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리고 역사포럼 사무실이 위치한 서대문에 캠프 사무실도 있어서, 역사포럼 사무실을 방문하면서 캠프 사무실
[6개월 간의 꿈/캠프/필리핀]
류가 활발하지 않았기에 필리핀에서 활동하는 NGO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다 대학원 수업 과제의 일환으
도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 역사NGO 세계대회 봉사자 티셔츠를 캠프 봉제센터에서 제작하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교
로 개발NGO 인터뷰를 위해 단체를 물색하던 중, 캠프 대표님이신 이철용 대표님께서 한국에 잠시 들어온다는 소식 을 접하고 바로 서대문 사무실로 달려갔다. 그렇게 처음 만난 이철용 대표님께 나는 매우 강한 인상을 받았다. 당시 에 했던 여러 가지 질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한국NGO이지만 한국 사무실은 최소한으로 운영하고 모든 복원용 (멘토 /33)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나의 가능성과, 세상을 조금
역량을 필리핀 현지에 집중하는 단체의 조직구조와, 현지인의 역량 강화를 1순위로 강조한다는 대표님의 말씀이었 다. 대표님을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해 발표를 진행하면서 어렴풋이 역량 강화를 위해 굉장히 노력하는 NGO라는 기
더 살 만한 곳으로 만들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억이 뇌리에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러다 대표님의 말씀을 실제로 확인하러 갈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인터뷰 때 하신
즐겁게 도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말씀들을 현지에 가서 현지 사람들을 직접 보며 확인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역량 강화가 강점 이라면 무엇보다 배울 점이 많은 곳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현지인 역랑 강화라는 부분은 개발에서 아무리 강조해 도 끝이 없지만, 어떤 식으로 역량 강화를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가장 많이 걱정되는 부분은 6명의 학생을 이끄는 멘토라는 자리의 부담감이었다. 단원들과의 나이도 적게 는 12살에서 많게는 14살까지 차이가 났기 때문에 나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내가 단원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멘토로서 자격이 있는가라는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대안학교 출신 친 구들이라는 것도 약간의 부담으로 다가왔다. 지극히 정규적인 교육만 받아오던 내가 나와는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꿈봉 지원할 때의 나
아이들과 공감할 수 있을지 우려스러웠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
꿈꾸는청년봉사단을 지원할 당시 나는 지난 2년 반 동안 몸담았던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
었다. 캠프 국내 워크숍, KCOC 국내 합숙 교육을 거치면서 단원들을 천천히 알아갈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었고, 우
고 있던 시기였다. NGO학·석사를 마치고 국제개발 현장에 직접 가보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고, 안정적이지는 않
리는 금방 친해졌다.
2014 월드프렌즈 NGO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더라도 정규적인 직장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던 터였다. 대학원 입학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을 들어온 목적은, NGO센터에서 일하고 싶은데 내가 아는 것이 별로 없으니 공부도 하고 인맥도 만들어보기 위함이었
필리핀에서의 나, 변화
다. 책, 논문 등을 통해 간접 경험을 많이 했지만 직접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
필리핀에 처음 도착했을 때, 캠프에는 대표님과 캠프 한국본부에서 파견한 엘리 팀장님, KCOC 일반봉사단원 3 명과 대학협력사업 2명까지 총 7명의 한국인이 있었다. 한신대에서 파견된 2명은 필리핀에서의 2년간의 생활이 끝 나가고 있었고, KCOC 일반봉사단원들도 3~4개월 정도 기간이 남은 상태로 충분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에 많은
‘개발 현장에 가보자.’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단원들이었다. 이것은 내가 앞으로의 진로를 탐색하고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될 터였다. 하지만 여자 친구와 결혼
우리가 머문 숙소는 아직 채 완공되지 않은 캠프 사업장 내 건물이었지만 내부에는 2층 침대 2개와 화장실, 샤워
을 준비하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기에 국제개발 현장과 한국에서의 직장 사이에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개발 현
실까지 갖춰져 생각보다 무척 아늑했다. 샤워실은 비록 찬물만 나왔지만 단수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전기가
장에 직접 갈 수 있는 길은 많이 있었지만 모두 1년 이상을 요구하고 있었고, 당시 나에게 1년은 너무 긴 시간이었다.
나갈 때도 없진 않았었지만 6개월 동안 그런 경우는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단원 중 동훈이는 혹시 비가 많이 오면
인생의 장기 계획을 혼자가 아닌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여자 친구와 함께 고민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나에게
물난리가 날 것을 대비해 수영복도 들고 왔다. 그만큼 우리가 생각했던 환경은 열악했지만 우려했던 것에 비하면 무
캠프에서 모집하던 꿈봉 멘토는 매우 적절한 기회였다. 6개월이라는 기간은 너무 짧지도 그렇다고 부담될 정도로
척 좋았기 때문에 적응하는 건 힘들지 않았다.
긴 시간도 아니라고 생각했고, 캠프 사업장에 직접 가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단원들이 합숙생활을 하는 데 익숙했지만, 나는 이런 장기 합숙이 처음이었던 터라 불편한 점이 많이
내가 캠프를 알게 된 건 2013년 제5회 역사NGO 세계대회를 준비하면서였다. 경희대 공공대학원에서 만난 남상
있었다. 단체 규정상 금연과 금주가 불가피했기에 6개월간 담배와 술을 끊어야 했다. 물론 파견되기 전에 공지를 받
만 처장님은 세계NGO역사포럼이라는 단체에서 일하고 계셨는데, 함께 대회를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나에게 주셨
아 알고 있었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덕분에 담배를 끊을 수 있게 되어 무척이나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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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꿈봉, 날다
필리핀, 국제개발, 꿈
앞으로의 나
우리는 기존 KCOC 일반봉사단원들이 하지 않는 활동을 실시했다. 인원이 8명이나 되다 보니 한 명 한 명을 세심
필리핀에서 새해를 맞으면서 2015년 목표를 세워봤다. 2015년은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들이 벌어질 해이기
하게 돌보고 관심을 가지기 힘든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매일 피드백을 가졌고, 멘토와 멘티 간 1대 1 면담도 실시했
도 했다. 결혼을 할 예정이고, 앞으로 일할 직장도 찾아야 한다. 필리핀에서의 6개월을 뒤로 하고 또다시 새로운 시
다. 데일리 피드백 시간에는 오늘 있었던 일들 중 기억에 남는 것이나 자신이 느낀 점들을 공유하고, 혹시 본인이 사
작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필리핀에서의 생활에 아쉬운 점들도 많이 있지만 이곳에서 내가 배운 변
과할 일이나 마음 상한 일이 있었으면 그런 것들도 8명이 공유했다. 이 시간을 만든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지난 6
화에 대한 믿음과 함께하는 공동체를 위한 진실된 마음은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에서나 삶에서 크나큰 자산이 될 거
개월간 우리의 생각, 일정 등을 낱낱이 기록하고 공유했다는 것 자체가 함께하는 공동체로서 매우 중요한 경험이기
라고 생각한다. 필리핀에서 맺은 인연이 나의 앞길에 많은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도 든다. 이철용 대표님과 양미강
도 했고, 시간이 흐른 뒤 우리의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는 데도 유용했기 때문이다. 데일리 피드백 시간이 8명 모
대표님, 엄연삼 팀장님과 진은지 팀장님, 우리보다 먼저 떠난 엘리 팀장님과 최선인, 김경희, 정진슬, 장예지 선생님,
두가 함께하는 시간이었다면 1대 1 면담 시간은 멘토와 멘티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이때는 멘토, 멘
3년째 캠프에서 봉사하는 존경스러운 조부영 선생님과 함께한 우리 단원 김보미, 장희제, 정의석, 전동훈, 김다미,
티 관계에서 벗어나 친한 형, 동생이라는 마음으로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
김규원, 이은서.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지만 남은 기간 캠프에서 열심히 봉사할 새로운 KCOC 봉사단인 이
을 많이 가졌다. 이 시간도 정말 소중했는데, 8명이 다함께 이야기할 때는 말하기 힘들었던 깊은 속마음을 나누면서
상영, 홍지영, 김한아 선생님. 그리고 캠프의 현지 스태프들과 타워빌 봉제센터에서 일하는 많은 어머니들, 항상 우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멘토와 멘티의 1대 1 면담만 진행했지만 종료 2개월 전부
리 식사를 챙겨주신 엠마 아주머니, 캠프에서 숙식하며 티셔츠 디자인과 여러 가지 많은 일을 담당해 준 딕, 24시간
터는 멘티와 멘티의 1대 1 면담시간도 만들었다. 그만큼 우리가 서로 대화하는 시간을 원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많이
우리를 지켜주던 알렉스와 가드 아저씨. 그리고 필리핀에서 만난 수많은 아이들과 인연들. 특별하지 않은 한국 사람
들었다.
과 특별하지 않은 필리핀 사람들이 만나 특별한 경험을 한 곳. 타워빌에서 보낸 꿈같은 시간들이 나에게는 너무 소
개인적으로 필리핀에서 얻은 2가지는 더 슬림해진 몸매와 기타 실력이다. 매일 일과가 끝난 후 저녁 시간에는 사
중한 자산이 될 것 같다.
업장 내에서 조깅을 한 덕분에 몸무게가 많이 줄었다. 중간에 너무 긴 크리스마스 연휴가 있어 방심하고 맛있는 음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이고 어떤 선택지가 내 앞에 놓여 있는지 생각
식을 많이 먹다 보니 다시 살이 조금 쪘지만, 그래도 처음에 왔을 때보다 몸무게를 많이 줄일 수 있어서 스스로 매우
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공부를 더 할 것인지, 좀 더 구체적인 분야를 정해 경력을 쌓을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경험
만족스럽다. 일과 후 남는 시간에는 은서에게 기타도 배웠다. 국내 합숙 교육 때부터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는데, 필
을 위해 도전할 것인지 아직은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나의 가능성과, 세상을 조금 더 살 만
리핀에 와서는 개인 기타를 구입해 본격적으로 연습을 시작했다. 꾸준히 연습한 결과 지금은 코드를 보고 어느 정도
한 곳으로 만들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즐겁게 도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30대 초반. 나의 삶에서 중요한 시기에 좋
연주를 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이렇게까지 꾸준히 운동과 기타 연습을 할 수 있었던 건 한신대에서 파견된
은 기회를 준 KCOC와 캠프에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최선인 선생님과 조부영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느낀 것이 많아서였다. 두 선생님께서 꿈봉으로 처음 파견되었을 때 본인들이 경험한 것들을 이야기 해 주셨다. 그때 가장 크게 와 닿았던 점은 이곳 타워빌이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2014 월드프렌즈 NGO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어머님들의 삶이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강한 믿음과 노력으로 필 리핀의 가난한 지역을 변화시키기 위해 힘쓰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고, 나도 어떤 것을 할 때 그런 강력한 동기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필리핀에서 경험한 것 중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건 6개월간 6명의 단원들의 멘토로 생활했다는 점이다. 이 경험은 여러 다양한 경험들과 함께 나를 좀 더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나의 큰 단점 중 하나가 인간관계를 두 루두루 맺는 데는 익숙하지만 깊은 관계를 맺는 걸 꺼린다는 점인데, 그런 점을 극복하기 위해 단원들과 자주 어울 렸고 많은 이야기를 공유했다. 그리고 단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멘토라는 이유로 나의 이야기가 일방적인 메 시지 전달이 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나의 이런 노력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점은 필 리핀에서의 6개월이 굉장히 즐거웠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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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꿈봉, 날다
사하게 생각한다. 아마 여자 친구도 이 부분을 가장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지니 굉장히 게을러졌고, 일해 오던 순서와 방식이 달라지자 당황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으며, 새로운 사람들 사 이에서는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굉장히 서툴렀다.
나, 소통, 지구시민
한국에선 어려움 없이 뭐든 척척 해냈던 내가 무능한 사람이 되는 것을 자꾸 확인하고, 한계를 발견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극복해내지 못했다. ‘내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래서야, 저래서야.’ 라며
[6개월 간의 꿈/한국YMCA전국연맹/필리핀]
핑계를 대고, 점점 변명이 많아지는 내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내가 참 찌질한 애라는 것을 확인해야 했다. 항상 나 자신에겐 한없이 관대하고, 내가 한 실수는 합리화했던 나태함과 자만심과 오만함을 끊임없이 깨부수었 경근혜 (21)
설령 이 활동이 실패한 활동이라고 해도
던 6개월이었다. 다른 누군가가 나를 질타하고 비난한 것이 아닌 나 스스로 내게 어떤 못난 모습이 있는지 발견하고 깨달을 수 있었던 이 시간들이 나에겐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 이 경험이 하나의 거름이 되어 내가 성장하는 데 기반이
소통의 과정: 나와의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되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6개월 동안 낯선 타지에서 지낼 때 나와 말이 통하는 친구들이 곁에 있다면 정말 많은 위로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와 함께 한 3명의 친구들과 신뢰 관계를 쌓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리가 서로 편해지기까지 왜 이 리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돌이켜 보면 항상 ‘대화’ 가 부족했던 것 같다. 자기의 생각과 고민, 감정들을 서로 솔직하 게 털어놓기보단 혼자 품고 있을 때가 많았고, 그러다 보니 많은 오해가 생겼고, 서로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분명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아주 가까이 있음에도 이 사람들은 그저 남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고,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굉장히 외로워, 자꾸만 한국에 있는 사람들을 찾게 되었다. 활동에 집중하기
이번 6개월 동안 나에게 가장 남는 키워드는 ‘나’ , ‘소통’ , ‘지구시민’ 이다. 6개월을 마무리하는 글을 쓰기 위해 일기장을 열어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이 3가지가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이고, 가장 많이 고민한 주제였다. 당시에는
지를 느끼고 생각할 시간이 다 날아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많이 힘들고 지쳤었는지 일기장에는 이 3가지 키워드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단어들과 회의감, 실망감 등을 내
이렇게 불편한 생활을 지속하던 중 문득 더 이상 관계로 고민하고, 남을 미워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
비치는 표현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단순히 마냥 힘들고, 싫기만 하지는 않았다. 나에게 필요한 고민
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모두 편안하고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해야 했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 외
이었고, 내 길의 거름이 되어줄 경험들이었다. 이 6개월이 나에게 ‘성공적’ 인 프로젝트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6개월이 거의 다 되어서야 우리는 서로 조금씩 대화하려고 애썼고, 이야기하는 만큼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
‘후회와 실패’ 만 남긴 활동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2014 월드프렌즈 NGO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보다 관계에, 그 사람에 더 집중하게 되었고, 유독 그 시간이 길었던 우리 팀의 경우, 관계 때문에 지지고 볶느라 현
야기하기 전에는 나와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이라고 여겼는데, 대화를 나누며 나와는 ‘다른 점’ 이라는 것을 알게 새로운 곳에서의 나: 끊임없이 한계를 발견하고, 찌질한 내 모습 확인하기.
되었다. 그러다보니 서로에 대해 조금씩 너그러워지고 덜 예민해지면서,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 ‘팀’ 이 되었
난 한국에서의 내가 참 좋고 만족스러웠다. 비록 어렸을 때부터 광명 YMCA, 볍씨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배
다. 내가 속해 있는 그룹이 평화롭지 않으면 내가 하는 활동 역시 평화롭지 않으며, 우리와 함께 지내는 현지인들과
우고, 경험하고, 살아왔지만 학교에서 배운 대로 난 나름 주체적으로, 생각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며, ‘내 삶의 주
도 평화롭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활동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함께 활동하게 될 친구들과의 관계 유지와
인은 나’ 라는 마인드로 15년을 살아왔다. 그런 나의 모습을 주변 사람들도 항상 대견하게 여기며 응원하고 지지해
소통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주었다. 필리핀에 오기 바로 전까지 난 이런 내 모습을 사랑했고, 내가 어디서 누구와 있든 상관없이 이런 모습이 내 장점으로 발휘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굳게 믿고 한국을 떠나 필리핀에서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일, 새로운 문
지구시민의 덕목: 공감, 모든 것을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
화를 만나게 되었다.
내가 이곳에서 생활하기 가장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공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그렇게 반짝이던 내가 필리핀에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는 참 쓸모없다.’ 였다. 이곳에서 나는
한국에서 비행기로 4시간 떨어진 이곳은 내가 살던 곳과는 다른 문화, 언어, 생활방식, 사회문제를 가지고 있
할 수 있는 게 없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별거 아닌 아이였다. 한국에서 내가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에게
었다. 그리고 난 이것들을 받아들이고 공감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3개월째 생활하던 도중 문득 ‘내가 하는 활동들이
익숙한 상황에서 벗어나자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했다. 곁에서 항상 잔소리를 해 주고 채찍질 해 주었던 멘토가 사라
다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 ‘내가 이걸 해서 뭐하나?’ 하는 회의감과 무기력함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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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꿈봉, 날다
필리핀에서의 6개월 생활 키워드 :
네를 돌아다니는 청년들을 보면서 ‘이게 다 나랑 무슨 상관일까? 내가 사는 곳도, 내가 앞으로 꾸준히 만날 사람들도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고민해 보니 ‘난 어차피 6개월 뒤에 떠날 사람인데.’ 라는 생
필리핀, 오해와 화해의 배움터
3. 꿈봉, 날다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이들, 경제적인 이유로 학교를 다닐 수 없는 내 또래 친구들, 하는 일 없이 동
[6개월 간의 꿈/한국YMCA전국연맹/필리핀]
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사는 곳이 아니고, 내 문제가 아니라고 느껴지는 순간 오로지 ‘남’ 을 위 해서 해 주어야 하는 활동이 되었다. 남을 위해 뭔가를 한다고 생각하니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국내 교육에서 ‘여러분이 거기서 뭔가를 해 준다는 생각은 버리세요!’ 라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 그 말에는
‘내가 거기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라는 뜻도 있겠지만 또 다른 의미로는 남에게 ‘해 주는 것’ 이 아닌 나의 일을 ‘하 는’ 태도로 살아가라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해가 쌓인 덕분에 오해를 푸는 방법을 알았고,
박재성 (20)
사이가 틀어진 덕분에 다시 친해지는 법도 배웠으니까.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라는 말이 있다.
이번 6개월이 내성적인 나를 조금은 외향적으로
나는 지금껏(한국에서)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는 말에는 공감하고 실천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곳
바꿔준 것 같다.
에서 난생처음 ‘지구적’ 으로 생각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깨달은 것일 뿐 내가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직은 내가 사는 ‘대한민국 경기도 광명’ 이라는 울타리가 내가 사는 곳의 전부이고, 나와 함께 시간 을 보낸 15년 지기 친구들, 또 광명에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아직은 ‘나’ 를 위한 활 동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물리적인 공간과 관계를 뛰어넘어 ‘지구적’ 으로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실 천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지구시민’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그렇게 나의 생각과 실천의 영역을 확장시켜 이번에 꿈꾸는청년봉사단에서 6개월간 활동하면서 여러 가지 일이 많이 있었다.
2014 월드프렌즈 NGO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나가는 것이 성장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번 6개월이 나에게 아주 성공적이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내가 여기서 뭘 얻었는지, 내가 성장하긴 했
첫 번째로는 나와 같은 단원으로 온 종민이라는 친구와 점점 사이가 나빠졌던 것이다. 종민이와 근혜 누나가 사
는지를 돌아보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마냥 6개월이 후회스럽고 실패작이라는 생각이 들
귀게 되면서 소외감을 느껴서인지 두 사람이 점점 밉게만 보였다. 멘토 이경 누나랑 얘기하면서 내 감정을 호소했지
기도 한다. 그래도 ‘도전한 뒤의 실패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을 두려워하라.’ 는 말이 있듯이 난 내가 안주하며
만 그러면서 상황이 점점 악화되었던 것 같다. 서로 싸우고, 꼴 보기조차 싫어하고, 미워하기만 하는 사이가 되는 게
살아온 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장을 위한 도전을 했고, 만약 내가 그곳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면 나의 멋진 모습만
싫었다. 그래서 내가 지나치게 오해한 것을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점차 종민이와의 관
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현실에 안주하며 살았을 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의 중요성을 훨씬 늦게 깨달았을 것
계가 개선되었다.
이고, ‘지구적’ 이라는 말의 뜻도 모른 채 살아갔을 것이다. 그래서 설령 이 활동이 실패한 활동이라고 해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 이 경험이 하나의 거름이 되어 내가 성장하는 데 기반이 되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두 번째로는 멘토 이경 누나와 사이가 안 좋아진 것이다. 필리핀 산파블로에 도착했을 때 처음 3개월은 적응 기 간이어서 그냥 물 흐르듯 3개월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 3개월을 시작하면서 특별 프로젝트 두 곳에 두 사람 다 신청 을 했다. 그 과정에서 이경 누나가 혼자 많은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지내는 동안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 은 것이다. 이경 누나의 태도가 뭔가 공격적이라고 느낀 나는 그 부분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이경 누나를 안 좋게만 봤 던 것 같다. 이렇게 또 한 번 오해를 함으로써 누나와 멀어졌지만 이번에는 이경 누나가 먼저 이야기를 하자며 자리 를 만든 덕분에 서로의 생각과 오해와 감정을 말할 수 있었다. 처음엔 별로 내키지 않았고 오해가 다 풀리지도 않았 지만 두 번째 모임에서 모든 오해가 풀린 것 같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YMCA 사무총장님과 사이가 틀어진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 다가올수록 조금씩 한국 음식이 그리워졌다. 그러다 보니 점차 외식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저녁을 조금 먹고 밥을 사먹으러 나갔다. 그때는 우리를 위해 밥을 해 주시니 예의상 조금만 먹고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는데, 외식을 하고 돌아오니 나에 게 화를 내셨다. 그때는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만든 밥이 맛이 없으면 밖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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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사과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 날 사무총장님이 나를 부르셨다. 나는 사무총장님이 왜 화를 내셨는지 알 수 있었으며 나도 왜 밥을 사 먹으러 갔는지 설명드리고 죄송하다고 했다. 내 설명을 듣고 다행히 화가 풀리신 것
인생의 터닝포인트, 꿈봉
3. 꿈봉, 날다
사 먹으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그날 충격에 빠져서 종일 멍했다. 사무총장님이 하신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고
[6개월 간의 꿈/한국YMCA전국연맹/필리핀]
같았다. 오해가 쌓이고 사이가 틀어진 것만 빼면, 필리핀에서 한 경험은 모두 좋았다. 아니, 오해가 쌓이고 사이가 틀어졌 던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오해가 쌓인 덕분에 오해를 푸는 방법을 알았고, 사이가 틀어진 덕분에 다시 친해지는 법 도 배웠으니까. 이번 6개월이 내성적인 나를 조금은 외향적으로 바꿔준 것 같다.
나는 항상 또래에 비해 성숙하다고 여겼던 점들이
신종민(20)
이곳에서 몇 번씩이나 깨지는 과정이 있었고, 그 과정을 통해 하나둘씩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어느덧 6개월이란 시간이 다 되어간다. 내가 필리핀에 온 첫 주, 둘째 주에 쓰던 일기가 생각난다. 그때는 시간이 참 느리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몇 주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게 낯설기도 하다.
19살 나이에 타지에서 여행도 아닌 봉사를 하겠다며 그저 외국이라는 기대감만 가지고 오게 된 필리핀. 낯선 언어, 낯선 문화, 낯선 생활방식을 경험하면서 느낀 것은 ‘내가 여기서 이들에게 봉사해줄 수 있는 것이 없구나.’ 였다. 오 히려 처음엔 내가 배울 게 더 많았다. 나와 같은 또래인 친구들이 가정에 안 좋은 일이 있으면서도 늘 웃어주고 먼저 2014 월드프렌즈 NGO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다가와주는 것을 보면서 초반엔 ‘내가 아직 많이 어리구나.’ 를 인지하곤 많이 부끄러웠다. 인간관계와 감정 조절에 미숙했던 한국에서의 생활방식을 여기서도 그대로 고집하려고 했던 것 같다. 기분이 상하면 ‘나 지금 엄청나게 기분 상했다.’ 는 것을 여지없이 드러내면서, 그런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 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처음으로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항상 또래에 비해 성숙하다고 여겼던 점들 이 이곳에서 몇 번씩이나 깨지는 과정이 있었고, 그 과정을 통해 하나둘씩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같이 갔던 단원들, KCOC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지내는 것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만은 않았다. 자는 시간만 빼고 하루 종일 붙어 다녀야 하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어디 풀 곳이 없고 속 편하게 얘기도 할 수 없어서 답답했다. ‘사람들과 이렇게 안 맞을 수도 있구나.’ 라는 걸 이곳에서 지내면서 느꼈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 꼭 배우고 싶은 것이 있었다. 인간관계와 감정 조절, 그리고 새로운 경험이었는데 다행히 이 3가지를 충분히 배웠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돌아가서 누군가가 ‘잘 다녀왔니?’ 라고 물어보면 자신 있게 잘 다녀 왔다고 대답할 수 있다. 20살에 이런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정말 좋다. 꿈봉은 내 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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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되짚어보면 내가 우리 팀원들에게 배운 부분도 많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들에 ‘왜?’ 라는 질문을 던져보 는 것, 바궁포 피딩날이 되면 나보다 열심히 아이들과 뛰어놀던 모습, 예전에는 투덜거리던 팀원들이 어느새 ‘같이
[6개월 간의 꿈/한국YMCA전국연맹/필리핀]
하자.’ 하면 열심히 도와주던 모습,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자연스레 편안한 관계로 발전하고, 아직은 서툴지만 열심 히 하는 모습들이 생각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듯이, 각자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런 능력들을 잘 눈여겨보 고, 재능을 발휘할 수 있게 옆에서 도와주고, 항상 든든한 편이 되어주어야 한다. 예전에는 멘토라는 역할이 부담스 임이경 (멘토/25)
웃는 날이 더 많아졌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럽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내가 이 팀의 멘토가 된 것이 운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나도 관계에 대한 부분과 잘 몰랐던 나의 모습들을 볼 수 있었고, 극복할 수 있었다.
날 동안 좀 더 즐겁게 주변 사람들과 더 많은 추억들을 남기고 가고 싶다.
YMCA로 가는 길 우리는 YMCA로 출근(?)할 때마다 바궁포 지역의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간다. 대문을 열면 앞집 개가 짖고, 매일 만나는 트라이시클 아저씨들이 멀리서 보이면 인사를 하고, 왼쪽으로 길을 꺾는다. 빵집 앞에서 크림이 들어간 모닝 빵을 사 한 입 물고 철도 길을 나선다. 아이들과 인사를 하다 보면 어느새 내 친구 야채가게 할아버지가 인사를 하신 다. 토마토 2개를 사며 오늘의 요리를 얘기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난다. ‘마훌리14)’ 를 외치며, 남은 길을 뛰어간다. 농구장에 도착하면 집들 사이로 난 조그만 길이 서서히 드러난다. 첫 번째 싸리싸리스토어15) 에 도착하면 산팔록(타 마린을 캔디처럼 만든 것)을 5개 사서, 하나는 그 자리에서 입으로 집어넣는다. 산팔록을 오물거리면서 마을 사람들
다가오는 필리핀의 여름만큼이나 나의 필리핀 생활은 참 뜨거웠던 것 같다. 열심히 일하고, 많이 싸우고, 많이 웃
과 아침 인사를 하는데, 가끔 기분이 좋을 때면 노래를 불러주는 집까지 쭉 통과한다. 아직도 헷갈리는 모퉁이에서
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특히, 얼마 전 사무총장님 품에 안겨서 펑펑 울었을 때는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계기가
오른쪽으로 꺾어서 직진해 가끔 밖에 나와 있는 부잣집 아저씨에게도 인사를 하면, YMCA에 도착한다. 이 길을 5개
되었다. 멘토이기 때문에 가져야 했던 부담감과 책임감이, 나를 짓누르면서도 지탱하게 했던 그 힘듦이 무너졌던 때
월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거의 매일 다녔다. 지금은 이렇게 기억에 선하지만, 한국에 가면 잊어버릴까 적어본다. 길
였다. 어른이고 싶었던 내가 멘토라는 옷을 입었을 때. 헐렁하던 옷을 점점 내 몸에 맞게 맞추고자 했던 나의 5개월
을 지날 때마다 한층 기분이 좋아지는 아침 출근 시간이다.
은, 학교에 다니면서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던 그 순간만큼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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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울고 웃는다. 혼자 일하기? 함께 일하기!
우리 집에 같이 사는 RR이란 친구가 있다. 동글동글 귀엽게 생긴 RR은 나의 따갈로그 개인 과외선생님이기도 하
한국에서는 팀 과제를 하거나 동아리를 이끌 때 항상 나만 의욕이 넘쳐서 열심히 하고, 하고 싶은 것이 많지만 팀
다. 나는 RR에게 따갈로그를 배우고 RR은 나에게 그림을 배운다. 얼마 전 RR의 졸업식이 있었다. RR은 우리와 같
원들이 따라주지 않아 결국 혼자 모든 걸 떠맡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가 해야 할 일’ 이 너무 많아서,
이 살게 되면서 반 친구들에게 한국인과 같이 산다고 자랑을 했는데, 아무도 그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그래서 RR은
나와 같이 일하게 되는 사람들은 항상 힘들어 했다. 여기서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다. 나는 이미 다른 프로그램을
내가 자신의 졸업식에 오면 친구들이 믿을 거라며, 졸업식에 참석해 달라고 부탁했고 나도 항상, 물론 당연히 가겠
통해서 주민들과 왜 소통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고, 주민들과 일하는 방법과 언어 면에서도 팀원들보다 앞서 있었다.
다고 했다. 졸업식이 다가와 며칠 전부터 선물을 준비하며 꼭 가겠다고 다짐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보고서와 며
그래서일까, 팀원들을 뒤에서 받쳐주는 대신 나 혼자 앞서 달려가곤 했다. 충분히 얘기를 나누면서 나의 이야기나
칠 전부터 아파온 몸 상태가 말썽인데다, 문화 프로그램 시간과 졸업식 시간이 겹쳐서 많은 고민을 했다. RR의 엄마
경험들을 풀어 놓고,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동기부여를 해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사실 나는 말로 동기부여를
인 띠따Lyn도 졸업식이 오래 걸리니 가지 말라고 하셔서 졸업식 후에 집에서 같이 축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
주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행동으로 먼저 보이려고 노력했다. 내가 먼저 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올 줄 알았기 때
만 YMCA에서 활동하는 도중에 계속 생각이 났다. 혹시 상처받으면 어쩌지? 매일 가겠다고 했는데. 이런 생각으로
문이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팀원들은 항상 제자리에 있었다. 처음 YMCA에서 멘토를 하다가 힘든 시기가 찾아왔을 때, 사무총장님이 말씀하신 내용이 생각난다. 청소년들의 눈높이를 우리의 눈높이까지 맞추라고 강요하면 안 되고, 우리의 눈높이를 청소년들한테 맞추면서 끌어가야 한다고 말이다. 이 말이 생각나는 지금,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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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마훌리는 따갈로그어로 ‘늦었어요’ 라는 뜻이다. 15) Sari-Sari는 따갈로그어로 ‘많다’ 는 뜻이고, Sari-Sari Store는 다양한 종류의 제품들을 파는 동네 구멍가게 같은 느낌의 가게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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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꿈봉, 날다
풀어졌다.
다른 사람의 눈높이에서 함께 호흡하기
마음이 너무 불편하고 미안했다. 그래서 이 미안하고 평소 고마웠던 마음을 편지로 썼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너무 무거웠고, 대문 앞에서도 들어가기에 망설여졌다. 무거운 마음으로 문을 열었는데, 마침 RR도 졸업식을 끝나고 막 집에 도착한 참이었었다. RR은 한참 동안 나를 껴안았다. 보고 싶었다고. 나는 너무 미안하다고 편지를 전해주었다. 편지를 읽은 RR은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흘렸다. 내가 졸업식 때 못 가서 그러냐고 했지만, 아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평소에는 철없는 아이로만 생각했는데 나 혼자 걱 정하고 불편했던 마음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머릿속에 오직 프로젝트만, 나만 생각하느라 내 주변을 생각한 적이 있 었나 돌아보게 되었다. 그 후로 조금씩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서 내 일에 대해서도 강약을 조절하게 되었다. 눈앞의 목표만 보였던 나에게도 주변이 보이길 시작했다. 아직도 커뮤니티 커피숍 성공을 위해 달려가지만, 웃는 날이 더
2014 월드프렌즈 NGO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많아졌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날 동안 좀 더 즐겁게 주변 사람들과 더 많은 추억들을 남기고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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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환영회
3. 꿈봉, 날다
귀국환영회 일시: 2015. 5. 12 - 13
장소: 도봉숲속마을
2014 꿈봉의 마지막 공식 모임이었지만 언젠가 다시 같은 길 위에서 만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아쉽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2015년 5월 12일에서 13일까지 양일간 도봉산 입구에 위치한 도봉숲속마을에서 2014 월드프렌즈 NGO봉 사단(꿈꾸는청년봉사단)의 귀국환영회가 진행되었습니다. 7개월 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들과 함께 진행한 귀국
2014 월드프렌즈 NGO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환영회는 1박2일 내내 즐겁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귀국환영회는 2014년 9월 진행된 국내교육 영상을 상영하는 것으로 시작해 ‘청소년과 놀이문화연구소’ 허재승 선생님과 함께 꿈봉을 통해 얻은 가치를 확인하는 시간, 또한 단원들이 각자 준비한 사진을 통해 서로의 활동 경험 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KCOC 교육에 빠질 수 없는 야식 또한 맛있는 통닭으로 준비되어 단원들의 탄성을 자아냈습니다. 둘째 날 아침 도봉숲속마을의 숲해설가분들과 함께한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과 숲의 고마 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자연과 공존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마지 막 프로그램으로는 국내교육 때 함께해주셨던 한국액션러닝센터의 김주현 선생님께서 단원들이 생각하는 미래와 그에 맞는 플랜을 코칭해주시면서 훈훈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네팔과 필리핀에서 각자 쌓은 경험들이 결코 작은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반 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더 성장했고, 더 영글었으며, 더 성숙했습니다. 또한 각자의 경험을 나누면서 공감도 하 고, 신기해하기도 했습니다. 2014 꿈봉의 마지막 공식 모임이었지만 언젠가 다시 같은 길 위에서 만날 것 같은 느낌 이 들어 아쉽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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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꿈봉에게 말한다
●
나에게 꿈봉이란
●
후배단원들에게 한마디
Q-1. 나에게 꿈봉이란? Q-2. 후배 단원들에게 한마디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꿈봉 2기 단원들에게
Q-1. 나에게 꿈봉이란?
자신에게 꿈봉이 가지는 의미와 앞으로 꿈을 이어나갈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후배단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지 물어보았습니다.
배울 수 있는 기회
Q-2. 후배 단원들에게 한마디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활동하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파이팅!
이은서
김규원
Q-1. 나에게 꿈봉이란? Q-1. 나에게 꿈봉이란?
내가 여러 가지 진로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
Q-2. 후배 단원들에게 한마디
Q-2. 후배 단원들에게 한마디
현지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노력하는 만큼 얻어갈 수 있습니다. 파이팅
좋은 친구를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장희제
강나희
2014 월드프렌즈 NGO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어주는 하나의 계기
Q-1. 나에게 꿈봉이란?
Q-1. 나에게 꿈봉이란?
나도 몰랐던 나를 알게 해주는 시간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아름다운 시간
Q-2. 후배 단원들에게 한마디
Q-2. 후배 단원들에게 한마디
말 잘 못한다고 겁먹지 말고,
매일 목표를 정하고,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세요.
현지 사람들과 자꾸 이야기하고 대화하다보면
그리고 자신감을 가지세요.
언어 실력도 늘고 친구도 생겨요.
여러분을 응원하는 2기가 있습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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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꿈봉, 날다
김다미
앞으로의 꿈봉에게 말한다
3. 꿈봉, 날다
복원용
멘토
전동훈
Q-1. 나에게 꿈봉이란?
Q-1. 나에게 꿈봉이란?
또 다른 학교?! 나의 부족함을 채우고
새로운 꿈을 갖게해준 고맙고 감사한 것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
Q-2. 후배 단원들에게 한마디
Q-2. 후배 단원들에게 한마디
건강 잘 챙기시고,
먼저 다가가는 적극적인 자세와 꾸준함이면
일을 할 때 항상 배운다는 마음으로
충분합니다.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끈끈해지는 과정. 그 뜨거웠던 우리들의 관계에 대하여.
Q-1. 나에게 꿈봉이란?
Q-2. 후배 단원들에게 한마디
꿈을 꾸는 공간
처지고 힘들고, 우울한 기분이 들때, 내가 여기에 온 이유를 생각하세요. 내가 이 프로그램에 지원한 이유를요.
아이들이 다가오기를 바라기보다
그리고 그 속에 답이 있어요. 자기를 동기부여 시킬 수 있는
먼저 다가가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한가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있어요!
박나영
김보미
멘토
2014 월드프렌즈 NGO봉사단 _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 나, 너, 우리의 꿈
Q-2. 후배 단원들에게 한마디
Q-1. 나에게 꿈봉이란? 내가 아직 한참 어리다는 것을
Q-1. 나에게 꿈봉이란? 귀중한 가족
Q-2. 후배 단원들에게 한마디
알려주는 선생님
Q-2. 후배 단원들에게 한마디 상상 그 이하를 보게 될 것이다. 네팔에 가기 전에
6개월은 짧지만 충분한 시간입니다.
현지에 있었던 봉사단원이 해준 말이다.
순간순간을 즐기고 기록하며 새로운
무슨 준비를 하던 상상 그 이하일 것이고 그래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보내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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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그 이상을 보고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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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경
멘토
정의석 Q-1. 나에게 꿈봉이란?
2014 월드프렌즈 NGO봉사단 꿈꾸는청년봉사단 활동보고집
발행
2015년 9월
발행처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
주소
서울시 마포구 대흥로 54 TAF빌딩 4층
전화
02. 2279. 1705
팩스
02. 2279. 1719
홈페이지
http : //ngokco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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