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어필 연간보고서
공익법센터 어필이 2012년에 첫 돌을 맞았습니다. 옛 어른들이 생존에 대한 두려움으로 1년을 기다렸다가 반가움으로 첫 돌을 맞이한 것처럼, 어필도 1주년 기념 행사를 하면서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 살이 된 어필은 구조를 튼튼히 했습니다. 법인허가를 받았고, 인사동에 사무실을 얻었으며, 2명의 변호사를 새로 영입하였습니다. 그리고 돌잡이를 하듯이 어떤 일에 중점을 두고 일을 할지 정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취약한 그룹인 난민과 인신매매 피해자, 무국적자, 구금된 이주자와 해외한국기업인권침해 피해자들을 위해 소송, 연구와 입법활동, 연대와 홍보, 국제인권메커니즘을 활용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어필은 일을 하면서 난민을 비롯한 취약한 외국인들이 살아온 드라마와 같은 이 야기에 매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더 나은 이야기를 살면 좋겠다는 마음 으로 일을 했습니다.
에티오피아 아마르 이야기 아마르는 에티오피아에서 17년 동안 경찰관으로 근무하였습니다. 반듯한 제복이 멋지다는 생각에 경찰관이 되었던 그 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집권여당(EPRDF)은 2005년 총선에서 패배하자 선거무효를 선언하며 야당을 탄압 하였고, 반대하는 시위자들을 향해 실탄까지 발포하면서 무자비하게 진압하였습니다. 야당 당원으로서 시위대의 주장 에 공감하던 아마르에게도 당시 시위자들을 향해 발포하고 그들을 구금, 고문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지만, 그는 그 명령 에 따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수배된 사람들의 도주를 돕거나, 수감된 사람들에게 음식을 몰래 가져다 주고, 그들이 구 금된 장소를 가족과 언론에 알려주었습니다. 이러한 행동 때문에 아마르는 의심을 받고 감금되어 고문을 당하며 조사를 받았지만, 자백하면 죽임을 당할 것을 알았기에 야당 당원이라는 것을 끝까지 밝히지 않아 다행히 목숨을 부지하고 경 찰로 복직되었습니다. 석방 이후에도 지속적인 감시 속에 죽음의 위협에 시달렸던 아마르는 과거 에티오피아 왕의 특 수부대원으로 한국전쟁 참전 유공자셨던 아버지 덕분으로 우연히 2009년 한국에서 열렸던 세계 경찰 컨퍼런스에 초대 되었고 좀처럼 외국으로 탈출할 기회를 얻기 어려웠던 그는 한국에 입국한 뒤 어필의 도움으로 난민신청을 하여 2년 만 에 난민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2012 연간보고서를 보시면 우리를 사로잡은 그들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이 더 나은 이야기를 살도록 하기 위한 어필의 활동과 열매는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연간보고서의 행간에서는 볼 수 있지만,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더 나은 이야기를 살게 하는 것을 통해, 정작 더 나은 이야기를 살게 된 것은 우리들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으 로 하여금 더 나은 이야기를 살게 하는 것을 통해 우리가 더 나은 이야기를 살게 되는 이 신기한 여행에 어필과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를 드립니다.
난민
박해 때문에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난민신청을 하지만, 그 중에서 변호 사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아주 소수입니다. 어필은 이들이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난민 신청을 지원하고, 난민 인정 절차가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모니터링을 하였습니다. 또 난민 인정 절차를 거치고도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소송을 대리하거나 소송을 중개했습니다. 어필이 2012년 한 구체적인 일들은 이런 것들입니다. 스리랑카 난민의 소송 대리, 나이지리아 난민의 소송 대리(난민 인정), 라이베리아인의 난민 신청 지원(난민 인정), 콩고 출신 난민의 신청과 소송 지원, 쿠르드인의 난민 신청 지원, 우즈벡 난민의 강제송환에 대해 국가 인권위원회에 진정, 강제송환된 우즈벡 난민의 부인을 수사과정에서 조력, 소말리아 난민의 공항에서의 난민 신청과 입국 지원, 이집트 난민의 공항에서의 난민신청 지원, 카메룬 난민 소송 대리, 난민신청 후 구금된 이란인의 난민 신청 지원, 기니인의 난민 신청 지원, 에티오피아 난민 항소심 소송 지원(난민인정), 중국 난 민 소송 중개(승소), 방글라데시 난민 소송 중개, 코트디부아르 난민 소송 중개, 파키스탄 난민 소송 중개, 라이베리아 난민 소송 중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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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2012년 말까지 인정한 난민의 총 숫자. 같은 기간 한국에서 난민을 신청한 사람들의 숫자는 5056명. 난민인정율은 약 10%미만에 불과.
라이베리아 미리암 이야기 미리암은 라이베리아 내전 당시 정부군 으로 부터 박해를 받고 남편과 헤어져 코트디브아르를 거쳐 가나로 피난을 갔 습니다. 다행히도 어느 가나 목사님의 호의로 위험한 난민 캠프 바깥에서 지 낼 수 있었습니다. 미리암이 가나에 온 지 5년쯤 되던 어느 날 난민캠프에 있 는 라이베리아 사람이 찾아와서 “난민 캠프 안의 커뮤니케이션 센터에 한국에 서 너를 찾는 전화가 왔는데, 그 사람이 전화번호를 남겨놓았다”라고 했습니 다. 미리암은 내전 당시 헤어진 남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몰랐지만, 한국에 서 전화가 왔다는 말에 남편임을 직감 할 수 있었습니다.
미리암은 곧장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 고, 알 수 없는 한국어 때문에 한 동안 의 사소통에 문제를 겪다가, 마침내 자신을 찾고 있는 남편과 극적으로 통화가 되 었습니다. 미리암은 남편이 있는 한국에 오기 위해 변장을 한 채 다시 배를 타고 라이베리아에 가서 여권을 만들었고, 어 렵사리 한국으로 와서 공항에서 공항에 서 난민신청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공 항에서 난민신청을 받아주지 않아 강제 송환에 당할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난민지원단체 피난처와 어필 변 호사의 개입으로 결국 한국에 입국하여 남편과 재회하였고, 2012년 2월 24일 한국에 온지 2년 만에 어필의 지원으로 난민 인정을 받았습니다!
난민
취약한 난민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서 어필은 난민 소송 이외에 유엔 인권메커니즘을 이용하
소말리아 이삭 이야기
는 등 다양하고 창조적인 방법들을 동원했습니다. 개별적인 사건의 해결에서 얻은 통찰이 제도적 인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애를 썼습니다. 이를 위해 혼자서 일할 뿐 아니라 다른 단체와 적극적으 로 연대하기도 했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당국을 설득하기도 하고 다투기도 했지만, 교육 등 인 식 제고 활동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하였습니다. 2012년 어필이 한 구체적인 활동을 소개합니다. 강제송환된 우즈베키스탄 난민을 위해 유엔강제/비자발적 실종 워킹 그룹에 진정,“난민법 제정의 의미와 향
“난 늘 죽음의 그날 아래에서 살았어요.”이삭은 소말리아의 소수민족 출신으로, 현재 만 16세의 미성년자입니다. 이삭의 아버지는 2008년 운영하던 가게에 폭탄 이 날라 와서 사망하였고, 어머니는 전쟁을 피하여 도망을 한 후 실종되었습니다. 그 이후 이삭은 고아로 길거리에서 구두닦이를 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 습니다. 소말리아에서 노예부족 출신이라고 주류 종족으로 부터 늘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살아왔던 그는 자신을 평화로운 곳으로 데리고 가주겠다는 브로커의 말을 믿고 소말리아를 떠났습니다.
후 과제”라는 주제로 복지동향에 논문 게재, 한국의 난민법에 대해 Fahamu Refugee Legal Aid Newsletter 에 게재, 대한국제법학회가 주최한‘난민과 탈북자 문제의 국제법적 고찰’토론회에 참여, 난민지원네트워 크에서 난민법시행령 NGO안 작성을 위한 T/F 조직 및 연구,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하는 난민법 토론회 참 여, 황우여 의원실이 주최한‘바람직한 난민법 시행’과 관련한 토론회 참여, 제4회 아시아태평양난민인권회 의(APCRR4) 참여, 우즈벡 난민 강제송환에 대한 항의 공동성명 발표, UNHCR NGO 컨설테이션(제네바) 참 석, 성균관대 인권 포럼‘난민지원과 변호사의 역할’강의, 대법원 사법제도비교연구회에서“난민법에 관한 연구”로 발제.
15,000,000
2012년 초 전세계 난민의 숫자. 외국으로 미처 피신하지 못한 국내 실향민까지 모두 합치면 42,000,000명.
그러나 브로커는 이삭을 한국의 인천공항에 홀로 남겨두고 떠났고, 공항 직원 등 에 발견된 이삭은 난민신청의사를 밝혔지만 여권 미소지로 출국대기실로 이송이 되어 강제송환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이삭은 출국대기실에서 하루 세끼 치킨버거 만을 먹으면서 소말리아로 돌아가게 될까 봐 4주간을 두려움에 떨면서 지냈습니 다. 어필은 이삭이 공항에서 강제송환 위기에 놓였을 때에 개입하여 입국할 수 있 도록 조력 한 후, 난민신청을 지원하였습니다. 이삭은 동반자 없이 입국한 최초의 미성년 (unaccompanied minor) 난민 신청자로 한국에서 홀로 살아가는 것은 만만 치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소말리아의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멋진 꿈을 가진 이삭을 어필은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구금된 이주자
나이지리아 토마스 이야기 2012년 2월 9일 토마스는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나이지리아로 돌아갈 경우 박해를 받을 위험이 있다는 것을 인정받아 승소하였 습니다. 당시 토마스는 1년 8개월 동안 화성 외국인 보호소에 구금 이 된 상태였기 때문에 승소소식에 더 기뻐했습니다.
근대법이 우리에게 준 혜택 가운데 중요한 것 하나가 바로 법원의 개입 없이 신체의 자유를 함부 로 제한할 수 없다는 원칙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원칙은 한국에 사는 외국인에게는 적용되지 않 습니다.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외국인은 외국인보호소라고 불리우는 구금장소에 정기적인 사법 심사 없이 무기한 구금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필은 외국인보호소에서 고통 받고 있는 장기구 금자들을 지원할 뿐 아니라 이와 관련된 야만적인 제도가 개선되도록 연구 및 기획소송을 진행했 으며, 국제사회에도 이와 관련한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어필이 2012년 이와 관련해서 한 구체 적인 일들은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강제 송환 된 후 태국 공항에서 장기구금된 에티오피아 난민 현지 방문과 인터뷰 그리고 국가인권위에 진정, 장기구금된 난민 석방을 위한 대응(보호일시해제신청, 보호이의신청, 법무부에 민원제기, 유엔 자의적구금 워킹 그룹에 urgent action 제기, 행정소송, 관련 규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과 위헌소원, 온라인 서 명운동), 스리랑카 난민을 위한 보호일시해제 신청, 조선족 산재 피해자의 보호일시 해제위해 의견서 제출, 소말리아 난민의 구금해제를 위한 인신보호법상 구제청구, 국가 인권위원회 외국인 보호소 정기 실태 조사 참여, 국가 인권위원회 주최 구금에 대한 대안 (Alternatives to Detention) 토론회에서 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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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기 피구금자인 이란 출신 난민신청자가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었던 일수.
그런데 그러한 기쁨도 잠시, 법무부는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보호소에서 풀어줄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살인 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은 사람도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면 바로 풀려나는데, 토마스는 형법이 아니라 겨우 출입국관리법이라는 행정 규범을 위반하여 구금이 되었고, 난민 소송에서 승소판결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구금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어필 에서는 토마스가 구금에서 풀려나실 수 있도록 백방으 노력 - 온 라인 서명운동, 언론홍보, 보호이의신청, 보호이의신청기각에 대 한 취소소송, 보호일시해제 신청과 더불어 유엔 자의적 구금 워킹 그룹에 urgent action 제기 -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토마스는 2012년 5월 9일, 보호해제를 받아 구금에서 풀려나게 되었습니 다! 이후 토마스는 항소심에서도 승소하였고, 결국 난민인정을 받 아 한국에서 안전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무국적자
난민은 출신국으로 부터 보호를 받기는 커녕 오히려 박해를 받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난민은 사실상(de facto) 무국적자입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한국에서 태어난 난민과 난민신청 자의 자녀의 무국적 문제입니다. 난민들은 자신들의 대사관에 갈 수도 없는 처지인데다, 한국에서는 외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동의 출생등록을 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 실상 무국적자 이외에 법률상(de jure) 무국적자도 있습니다. 어떤 관련 국적법에 따르더라도 국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한국은 무국적자 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하고도 수십년 동안 이 들을 보호하기 위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필은 2012년 인권정례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와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 한국의 사실상/법 률상 무국적자에 대한 실태를 보고하여 유의미한 권고를 이끌어낸 바 있습니다. 특히 2012년 10월에 진 행된 UPR 한국정부 2차 심의를 준비하기 위해 참여연대, 민변과 함께 53개 인권단체를 조정하는 사무국 역할을 하였고 제네바에 가서 각국 대표단을 상대로 심의를 위한 로비 활동 등을 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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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무국적자 지위협약에 비준한 년도. 그 이후 50년이 지났어도 무국적자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가 부재함.
콩고 마르끄와 장 이야기 마르끄와 장의 엄마와 아빠는 콩고 사람입니다. 그러나 마르끄와 장은 불 어나 스와힐리보다 한국말을 더 잘합니다. 정치적인 박해 때문에 엄마, 아빠가 한국에서 난민인정절차를 밟던 중에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올해 7살이 된 마르끄는 얼마전 초등학교에 겨우 들어갔습니다. 겨우 들어갔 다고 말하는 이유는 출생등록증이 없다는 이유로 집 근처에 있는 초등 학교가 마르끄의 입학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마르끄는 여러 학교를 찾 아다니다가 조금 멀리 떨어진 학교에 어렵게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갔던 학교의 가을 소풍에 마르끄는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소풍을 가 기 전에 반드시 보험을 들어야 하는데, 출생등록증은 물론이고 외국인등 록증도 없는 마르끄는 보험을 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출생등록이 없어서 생기는 어려움은 아직 학교를 안 다니는 장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장은 아파도 보건소를 갈 수 없고 비싼 돈을 내고 의료보험도 안되는 병 원에 가야 합니다. 자신의 사진이 붙어있는 아이디 카드 한장 없는 장과 마르끄는 한국에서 존재하지 않는 사람 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한국이 가 입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체약국 내의 모든 아동에게 출생등록을 하도록 하고 있는데, 언제쯤 장과 마르끄는 자신의 신분증을 가질 수 있을까요?
인신매매 피해자
‘인신매매’하면 봉고차로 사람을 납치하는 장면이 떠오를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이 서명한 유 엔 인신매매방지 의정서에 따르면, 인신매매란 물리적인 힘을 쓰지 않고도 상대의 취약한 지위를 이용하여 착취를 목적으로, 피해자를 이동시키는 것과 관련된 일련의 행위를 뜻합니다. 이 정의 에 따르면 한국으로 이주 해온 많은 외국인들이 “인신매매 피해자”가 되지만, 인신매매자가 처
인도네시아 수리토 이야기 수리토는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형제들과 함께 인도네시아의 떼갈에서 배를 탔습니다. 2011년, 대만 원양어선을 타보았던 경험을 살려 한국 원양어 선을 타기 위해 고향을 떠났지만, 원양어선에서의 삶은 너무나도 힘겨웠습니 다. 이틀 동안 잠을 자지 못한 채로 근무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 너무 피곤해서 졸기라도 하는 경우에는 한국인 선원들로부터 폭행을 당하기가 일수였습니다. 모욕적인 언행은 기본이었고, 때로는 성추행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엄청난 노동강도에도 불구하고 식사가 제 때에 지급이 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때로 는 한국인 선원들이 먹다 남은 새우 머리가 지급되기도 하였습니다. 히터가 잘 작동하지 않는 밤에는 따뜻한 고향 생각이 더욱 사무쳤습니다. 그렇지만 수리 토는 원양어선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원양어선을 타기 전에 인력 업체에 고가의 담보를 제공했는데, 원양어선을 떠날 경우 제공한 담보를 되돌 려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온갖 인권 침해를 당해도 그곳을 떠날 수 없었던 수리토는 강제노동과 인신매매의 피해자 입니다. 왜냐하면 고가의 담보 때문 에 배에서 온갖 인권침해를 당해도 벗어날 수 없이 계속 노동 착취를 당해야 하 기 때문입니다. 어필은 이러한 상황을 미국무부에 알려 매년 발행되는 전세계 인신매매 보고서에 반영이 되도록 하였으며국제민주연대, 공감, 희망법 등과 함께 해양경찰청에 원양어선의 선주와 이들을 폭행한 한국인 선원들에 대한 형사고발을 대리했습니다.
벌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위 의정서를 이행하기 위한 제도가 미비되어 있기 때문 입니다. 2012년 어필에서는 아래와 같이 인신매매에 관한 실태와 법제도를 연구하고, 한국사회에 인신매매에 관한 인식제고 활동을 하고, 유엔 인신매매방지 의정서에 대한 이행입법이 마련될 수 있도록 노력 하였습니다. 살롱드어필에서 필리핀의 인신매매에 관한 전문가를 초청하여 세미나 개최, 인신매매에 관한 영상제작, 한국 형사정책연구원과 함께 인신매매에 관한 실태와 해외 입법례 연구보고서 발간, 필리핀의 인신매매 법안 입법과정 및 이행 현황 조사를 위한 현지 방문 조사, 인신매매에 관한 형법개정안에 대해 법무부에 의견제출, 미국무부에 한국의 인신매매 현황과 정책에 관한 보고서 제출, 강제이주와 인신매 매와 관련한 심포지움(대만)에서 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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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에 신설된 인신매매에 관한 법조항. 유엔인신매매 의정서상의 인신매매 정의에 미치지 못하는 조악한 수준으로 개정됨.
해외 한국 기업에 의한 인권침해 피해자
기업활동은 그 자체로 고용을 창출하는 등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하지만 다국 적기업의 힘은 점점 세지는 반면, 기업에 의한 인권침해를 모니터링하고 규율하는 제도는 걸음 마 단계입니다. 어필은 2012년 해외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국 기업에 의한 인권 침해에 대하 여 국제민주연대, 공감, 희망법, 좋은기업센터 등과 공동으로 대응하였습니다. 특별히 아래와 같 이 뉴질랜드 배타적 경제 수역에서 조업 중이던 한국 국적선에서 일어난 인도네시아 선원들에 대 한 인권침해와, 역시 한국기업이 연루된 우즈베키스탄의 목화밭에서의 아동강제노동에 집중하였 습니다.
우즈베키스탄 목화 이야기
오양 75호에서 일어난 인도네시아 선원들의 인권침해 구제를 위한 국가인권위 진정, 오양 75호에 고용된 인
매해 9월이 되면 우즈베키스탄의 아이들은 학교 대신 목화밭으로 등교(혹
도네시아 선원들에 대한 폭행, 성추행, 사문서위조 등 에 대한 고발, 위 고발 사건에 관한 불기소처분에 대해
은 출근)을 합니다. 우즈벡의 중요한 수출품인 목화 수확을 위해서 전국민
항고, 해외 한국 원양 어선의 인권침해 실태에 관한 연구, 국토해양부 주최 외국인 어선원의 임금에 관한 토
이 동원되는데, 아이들마저 학교대신 목화밭으로 보내지는 것입니다. 살
론회 참여, 우즈베키스탄 아동강제노동 및 한국 기업의 연루 실태에 대한 조사, 조폐공사에 우즈벡 아동강제
충제가 뿌려지는 목화밭에서 아이들은 아무런 장비도 없이 맨손으로 하
노동문제에 대한 질의서 송부, 대우인터내셔널과 포스코에 우즈벡 아동강제노동에 관한 질의서 송부, 우즈벡
루종일 10~50kg에 이르는 목화를 따도록 할당을 받습니다. 만약 할당량
아동강제노동에 연루된 조폐공사에 대한 국정감사 협력, 국회의원과 공동으로 우즈베키스탄 목화밭 아동강
을 채우지 못하거나 질이 안좋은 목화를 따는 경우에는 체벌을 받거나 낮
제노동과 관련한 세미나 주최, 해외한국기업대응(Korea-based Transnational Corporations Watch: KTNC
은 성적을 받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아동강제노동으로 수
Watch)과 연대, 워싱턴에서 열린 코튼 캠페인 연례 회의 참석, 코튼 캠페인 구성 단체들과 함께 유엔 및 각종
확된 목화를 한국의 공기업인 조폐공사에서 수입하여 우리가 매일 사용하
국제기구에 보고서 제출.
는 돈을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한국기업인 대우인터내셔널은 우 즈벡에 섬유공장 2개를 운영하며 아동강제노동으로 수확한 목화를 사용 하고 있습니다. 어필에서는 아동강제노동이 종식될 때까지 계속해서 캠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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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을 펼칠 예정입니다. Courtesy of Uzbek-German Forum for Human Rights
우즈베키스탄에서 아동강제노동으로 생산된 목화를 조폐공사가 지폐를 만들기 위해 2012년에 사들인 톤수.
일하는 사람들
좌측부터 김종철, 이일, 정신영, 김세진
상근변호사
협력변호사
김종철, 정신영, 김세진, 이일,
박상훈/변호사, 법무법인 한별 이명현/변호사, 법무법인 소명 김현영/변호사, 법률사무소 예손 최영휘/변호사
어진이(2011.9~2012.10)
고문 윤세리/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김한주/변호사, 동서파트너스
협력의사
이사
문지현/정신과 전문의, 미소의원
박종운/변호사, 무장애연대 이사장 이상민/변호사, 법무법인 소명 김남홍/변호사 우재욱/변호사, 법률사무소 링컨 김영환/변호사
자원봉사자
감사 최윤호/회계사, 우리회계법인 배정호/변호사, 법무법인 겸인
변진희, 유영학, 최고은, 정소정, 임현수, 이서린, 양소연, 이성은, 이정화, 김은정, 황신영, 고윤희, 김예림, 고재웅, 노을
인턴 후기 및 소감 사법연수원 자원봉사 (2012년 1월) 최 명구
박 노산
2.5기 인턴 (2012년 1월)
3기 인턴 (2012년 3월~8월)
사법연수원 자원봉사 (2012년 12월)
우 은정
공 수진
송 시은
강 태승
김 은총
공 점순
“어필식구들을 만날 생각에 미소 지으 며 출근하던 매일 아침이 떠오릅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좋은 사람들과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어 하루하루가 즐겁 고 행복했습니다. 마음을 살찌워준 우 리들의 수많은 간식들이 몸까지 살찌 우게 한 것은 조금 슬펐지만요^^; 어필 식구들과 나눈 웃음, 뜻 깊은 시간 절대 잊지 못할거예요. 소중한 인연에 감사 합니다. 난로가 없어도 따뜻한‘사람’들 의 공동체 어필! 사랑합니다.”
“어필은 내 삶의 자양분이다. 공부의 과정에서 나는 나만의 편안함을 챙기기 에 급급해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어 필에서의 소식은 내가 이 공부를 시작 하고자 했던 이유를 되돌아보게 해준 다. 세상을 행복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그런 공부. 물리적인 의미에서도 어필 은 내 삶(살)의 자양분이다. 지난 겨울 실무수습을 하며 먹었던 간식 때문에 급증한 몸무게는 아직 그대로라는 슬픈 소식이 전해져 온다. 어필의 인턴에서 후원자가 된 지금, 이번엔 내가 어필의 자양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이 세상에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 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 다. 저는 그러한 분들과 진정으로 친구 가 되고 싶은 송시은입니다. 이대로스 쿨에서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논리적으 로 사건을 해결하는 리걸마인드를 배웠 습니다. 그러나 의뢰인들의 문제를 근본 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성적인 접 근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의뢰인과 친구 맺기를 통하여 함께 동행하는 법을 어필 에서 배워나가고 있는 요즘이 저는 가장 행복합니다. ”
“무고하게 고난을 겪는 분들의 방패가 되고 싶은 강태승입니다. 서울대학교에 서 영문학, 철학, 그리고 미국학을 공부 하며 느낀 점은 바로 “검보다 방패가 더 중하다”는 진리였습니다. 강대한 힘 으로 크게 휘두르며 패도를 걷는 것은 물론 많은 사람들의 목표가 되기에 그 매력이 조금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지 만, 서로를 베어 넘기는 검과 검의 맞부 딪힘만으로 지켜낼 수 없는 분들과 그분 들을 위한 가치가 이 세상엔 분명히 존 재합니다. 그 슬플 정도로 가녀리면서도 아름다운 세계를 지키는 방패로 거듭나 기 위해,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언제나 웃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웃게 만들고 싶은 김은총입니다. 웃음은 자신 을 행복하게 만드는 동시에 주변의 사 람들에게도 그 에너지를 전하는 힘이 있 습니다. 어필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활짝 웃을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웃음으로 점 점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도 록 노력하겠습니다. 유쾌한 어필 식구들 과 행복한 바이러스를 널리 퍼뜨리는 데 함께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
“어필에서 보낸 2주간의 짧은 시간동 안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습니다. 무엇 보다 너무나 즐겁게 일하시는 변호사님 들과 인턴분들을 보면서, 무엇이 저들 을 즐겁게 하는지 궁금했고, 제가 지금 껏 무엇을 좇아 살아왔던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공익활동에 대해서 단순히 ‘희생’하는 것이라고만 생각 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런 활동들을 함으로 인해 얻는 유익이 더 크다는 것 도 느끼게 되었네요. 아직 어린(?) 어필 이지만 많은이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 는 단체로 하루하루 성장해 나가길 기 대합니다.”
(2012년 1월)
최 명구
“이 글을 쓰려니 문득 어필에서 공익 “난민이나 아동 인권에 대해서 무슨 진 에 헌신하는 분들 덕에 우리 사회의 인 지한 깨달음을 얻은 것은 아닌데 이상하 권 보장 수준이 높아지고 그 혜택을 저 게 마음이 따뜻하고 즐거웠습니다.” 도 누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 가 어필에서 잠시나마 일을 하고 느낀 것은 무척이나 자유롭고 화기애애하면 서도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넘친다는 것 이었습니다. 보통 법조계에 종사하는 사 람들과는 사뭇 다른 밝고 유쾌한 느낌 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야 말로 진정 다른 사람들을 돕고 사랑할 수 있 는 이들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부 디 어필이 오래오래 계속 돼서 어렵고 힘든 처지에 있는 난민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을 돕는 일을 계속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3.5기 인턴 (2012년 7, 8월) 김 유진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어필은 어떤 곳 인지 물어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 유쾌한 사람들에 의한, 긍정의 변화가 시작되는 곳”이라고 대답합니다. 사 회 약자의 편에 서서 목소리를 내는 일 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리적으 로도 심적으로도 그 길에는 수많은 난 관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필의 삼총사 변호사님들께서는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늘 희망을 발견하시곤 합니다. ‘가치를 향한 같이 걷기’에 법조인으로서의 첫걸음을 뗀 제가 어필 에 가장 감사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 이기도 합니다. 저는 어필의 삼총사 변 호사님들처럼 세상에 희망과 긍정의 에 너지를 나눠주는 법조인이 되고 싶습니 다. 어필, 사랑합니다.
4기 인턴 (2012년 9월 ~ 2013년 2월) 최 지현
어떠한 이유로 타국에 오게 된 무국적 자,난민, 이주자들의 권리옹호를 위한 활동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잊혀진 침 묵의 투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소리 (Voice)는 누군가를 통해 지역사 회와 정부에 전해져야 합니다. 이 역할 을 맡고 있는 어필의 업무를 조금이나 마 배울 수 있었던 지난 여름의 소중한 경험은 한 개인이 어떤 사회에 속했고, 또 어떤 사회 구성원 (소수인종집단, 빈곤층, 장애인 등)으로서 살아가는지 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 할 권리가 있다는 저의 신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습니다. 앞으로 어필이 만들어갈 용기 있고 아름다운 소리들을 기대합니다.
사법연수원 실무수습 (2012년 8,9월 )
성 무현
진 유선
박 효주
권 민지
이 재윤
안 홍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가던 지난 여름, 어필 서의 인턴은 저의 고민을 해결해 줄 정 답이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 게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어필은 제 삶 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서 기꺼이 친구가 되어주는 어필.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힐링(healing)’ 이란, 바로 어필을 말 하는 것은 아닐런지요.
사회에서 칭하는“약자들”에 대해서 너 무나도 소중한 만남으로 여기는 진실된 모습. 그들에게 도움을 주지만 그저 ‘ 피해자’ 나 동정심을 유발하는‘약한 자 들’로 대상화시키지 않고 진정한‘친 구’로 대하는 그런 마음. 그런 마음이 인종차별적이고 배타적인 사회를 차차 변화시킬 수 있는 올바른 발걸음으로 이어질 것이라 새삼스레 느꼈다. 회의 감에 빠져들게 만드는 인권 상황과 무 관심한 한국 사회에서도 행복하게 일하 시는 변호사님들과 인턴분들이 너무나 도 존경스러웠고, 그들과 함께 일 하고, 팥빙수를 만들어 먹고, 이야기를 나누 면서 삶의 조각들을 나눌 수 있어서 행 복했다. 내가 어필에서 가져가는 것은 회의감이나 좌절이 아닌, ‘희망’이다. 어필 사랑해요!!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 면 반이 된다는 옛말을 어필에서 실제 로 경험하며 배워가고 있습니다. 소외 된 사람들의 삶의 무게를 나누며 그들 에게 때론 위로가 되어주고 때론 기쁨 이 되어주는 어필 식구분들의 따뜻함 과 풍성함 때문에 어필에서 마음의 살 이 포동포동 올라 참 행복한 요즘입니 다. 제가 받은 마음의 넉넉함을 다른 사 람들과 더 열심히 나누며 살아가고 싶 습니다.
평화를 위해 일하고 싶은 권민지입니 다. ‘평화’라는 말은 의외로 공격을 많이 받습니다. 너무 추상적인 말이기 도 하고, 누군가의 평화를 위해 누군가 는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게 되니까요. 하지만, 무엇인가 목표로 해야한다면 역시 ‘평화’로 하 고 싶습니다. 평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 포기해버리는 것 또한 평화를 여기 저기 장식품처럼 갖다붙이는 것 만큼 식상한 일이잖아요. 그럼 평화로 향하 는, 식상하지 않은 길을 즐겁게 상상해 보겠습니다. WORLD PEACE~
옛날 여행자들이 길을 잃었을 때 별을 보고 길을 찾아가던 것 처럼, 꿈도 마 찬가지로 헤매이고 있는 사람들의 이 정표가 되는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합 니다. 제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 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따라 어필에 온 것처럼, 길을 찾아 방문한 사람들에 게 꿈을 찾아줄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 고 싶습니다.
어필에서 일한 2달은 막연하게만 느껴 졌던 ‘공익’의 ‘공’에 대하여 더 욱 고민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법조인 으로서 고민을 하게 만드는 곳, 그 속에 서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곳, 어필은 참 좋은 곳이었고, 앞으로도 좋은 곳일 것 입니다.
프로보노 정신과 전문의 문지현 선생님 인터뷰
먼저 정신과를 택하신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문지현 선생님 : 수련의 시절에 한 젊은 여자 위암 환자 분을 보게 되었습니다. 암 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젊은 나이었고 어린 딸도 있는데 어쩌다 저런 병에 걸리시 게 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의사들이 그 분의 이야기 보다는 병에만 관심 을 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무게 중심을 환자의 삶에 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 니다. 정신과는 환자의‘ history ’ 를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어딘가 맺히거나 뒤틀려서 단절된 삶을 사시는 분들이,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점에서 저희 어필과도 많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저희들 역시 난민 분 M씨와 C씨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들의 ‘이야기’에 매료되어서 이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난민 분 문지현 선생님 : 이 분들이 대체 어떻게‘살아남으셨는지’가 감탄 할 수 밖에 없 들의 정신건강 상태는 어떻습니까?
난민들은 박해를 피해 본국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정신적 상처 를 많이 입게 되고,‘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 서 난민들에게 정신과 상담을 해 주실 의사 선생의 도움이 필 요한데요, 어필의 프로보노 정신과 전문의 문지현 선생님으로 부터 난민들의 정신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문지현 선생님 : 이렇게나 심각한 사람들이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오래 동 안 살았다는 것에 너무 놀랐습니다. 제가 진료를 맡았던 난민 분들이 겪는 충격은 제가 그 동안 치료해 왔던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C씨 와 M씨 모두 처음에는 심각한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으나 지금 C씨는 약을 줄이 기 시작했고, M씨는 치료를 마쳤습니다.
습니다. 고통스러워하실 때마다“여러분은 용감하십니다!”라고 C씨에게 말씀드 리곤 했었습니다. 두 분을 처음 진료했을 때만 해도, 두 분 모두‘피해자’ 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본인들을 그 모든 역경을 이겨낸‘화이터’ 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C씨는 정말 선생님으로부터 치료를 받고 급진적인 변화가 생겼습니다. 앞에도 말씀드렸듯이 이전에는 자신이 희생자라는 생각이 많으셨는데, 이제는 살아남은 사람으로, 이겨낸 사람으로 자신을 인식하고 계십니다. 참으로 존경할 만한 전회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비참함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 나는 게 너무 아름답고 기적 같습니다. 환자 분들이 달라질 때, 개선될 때, 가장 보람찹니다.
2012년 재정보고
2012년 공익법센터 어필은 총 344명의 개인과 40개의 단체의 후원과 여러 프로젝트 기금(유엔난민 기구, 형사정책연구원, 인권재단, IVF비전 발전소)으로 운영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변화를 만들 어 내는 일에 어필과 계속 함께 해주세요!
수입
지출
수입 개인정기후원
금액(원) 76,483,733
지출
금액(원)
인건비
74,200,000
사업비
36,384,746
운영비
46,455,958
단체정기후원
34,140,000
비정기후원
38,868,120
UNHCR
12,821,000
프로젝트
26,992,900
사업준비금
50,000,000
전기이월액
21,037,178
차기이월액
3,302,227
합 계
210,342,931
합 계
210,342,931
개인
후원으로 운영되는 변호사 단체. 저희는 아직도 어리둥절하고 놀랍기만
석양 내리 쬐는 오후에 어필 사무실을 방문하신 어느 부인은 블라인드를
합니다. 특히 꾸준히 어필에 정기 후원해주시고, 어필의 필요에 민감하
선물로 주셨고, 전세계에서 찾아 온 난민과 일하면서도 사무실에 세계지
게 반응하시면서 아낌없이 무엇이든 주려고 하시는 분들을 떠올리면 더
도 한 장 없다는 것을 알고는 피터 지도를 제네바에서 공수해주신 분도
욱 그렇습니다. 법원에 제출하는 용지를 배달하러 오신 디자인 회사 사
계십니다. 그런데 물건이나 후원금 뿐 아니라 자신의 재능으로 어필을
장님은 저희가 하는 일을 듣고 평생 무상으로 용지를 공급해주시기로 했 도와주신 분들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함께한 정재영씨는 어필의 분위기 고, 소말리아 난민 소년의 딱한 사정을 전해 들은 아래층 치과 선생님은
에 딱 맞는 아름다운 디자인을 만들어 주고 계시고, 고재웅 감독님은 어
무료로 치료를 해주셨으며, 액정 나간 노트북을 간신히 쓰고 있는 어필
필을 위한 다양한 영상을 제작해 주셨습니다. 이 보고서에 실린 어필의
변호사를 보신 어떤 분은 노트북을 기증해 주셨습니다.
활동과 열매는 모두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후원자님 감사합니다!
강길호 강두원 강민기 강지성 강 현 강희주 강희철 고경민 고경환 고범석 고병용 고정항 고헌주 고환경 공수진 곽새롬 곽지영 구대은 구정일 국현정 권기정 권오재 권준경 권형필 김건호
단체
김나령 김남홍 김남훈 김노아 김다애 김 단 김대인 김덕현 김동국 김동현 김동훈 김두식 김명례 김미경 김민선 김민수 김범식 김병규 김병주 김부준 김북경 김상용 김상헌 김선화 김성욱 김성훈
김세진(1) 김세진(2) 김송이 김수경 김수정 김승곤 김승혜 김연우 김연희 김영란 김영랑 김영빈 김영수 김영환 김예원 김용비 김유진 김은영 김은총 김 인 김인범 김재문 김정현 김종규 김종철 김주영
김준영 김중희 김지선 김진하 김찬식 김철호 김하연 김한주 김현민 김현영 김현지 김혜연 김혜진 김혜진(1) 김혜진(2) 김혜현 김혜현(1) 김혜현(2) 김회순 김희순 나영신 나정은 노주희 도현석 도현식 류기인
문은현 문지환 문하운 박광흠 박노산 박래형 박명희 박민정 박상민 박상욱 박상훈 박성민 박수지 박수진 박영아 박영우 박인승 박재준 박재평 박종운 박진묵 박현욱 박현홍 박효선 방인성 배의철
배정호 배준성 배효진 백가윤 백현수 변신영 서광용 서성광 서지화 선아름 성지연 성지혜 소정섭 손리나 송문희 송미란 송시은 송윤정 송인호 송호성 신동철 신봉현 신수경 신수연 신아정 신연수
신영무 신유리 신인경 신지영 신진우 신현호 신혜성 신호니 신흥섭 아마누엘 안병훈 안복희 안주영 안지현 안태훈 안호제 양낙영 양세원 양세희 양승원 양영미 양영심 양유미 어규현 어영강 어진이
연소민 오민영 오신환 오욱환 오유진 오재욱 우재욱 우창록 원재민 유 욱 유일환 유 정 유지희 유현정 유혜정 윤보형 윤석희 윤세리 윤승현 윤여형 윤 영 윤영선 윤유중 윤혜원 윤호선 은미숙
이강연 이경호 이광하 이규성 이규채 이나영 이동원 이명현 이미현 이병주 이상민 이서영 이 석 이선경 이선규 이성관 이성우 이성은 이성훈 이세중 이소연 이수호 이승훈 이신애 이영수 이용우
이용지 이운경 이유리 이은실 이은지 이인섭 이인영 이 일 이정연 이정원 이종인 이종찬 이주언 이준범 이지영 이지은 이지혜 이진영 이창훈 이현진 이혜원 이호준 이홍구 이희봉 이희주 임민택
임윤형 임윤혜 임자헌 임종미 임진성 임천석 장성훈 장영석 장윤영 전 별 전영오 전해정 정다빈 정민용 정민희 정샛별 정선미 정성영 정소정 정순지 정시우 정영혜 정원일 정윤정 정은혜 정준우
정철진 IVF 비전센터, 공감 정혜진(1) 국가인권위 이주인권팀, 정혜진(2) 기쁜소식교회 , 두레방 러빙핸즈, 조민정 민변, 법무법인 강호, 하전자 법무법인 광장, 법무법인 산지, 한서희 법무법인 온누리, 법무법인 정담 한정이 법무법인 천일, 법무법인 소명, 한창완 비단길 목장 사랑의교회 법조선교회, 함초롱 산돌교회 허성호 서울광염교회, 서울교회, 허재원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스파드오가 현지원 닉, 이주민과 함께, 일산은혜교회, 일 홍관표 타사피, 제자들 교회, 중앙보육교사 홍민정 교육원, 지산, 참여연대, 홍민호 충북대 로스쿨 CLF, 코쿤, 홍순혁 (재)한빛누리, 희망법 홍연경 기독법률가회 CLF, 홍정민 42기 사법연수원 신우회, 황미지 43기 사법연수원 신우회, 황보현 CLF 로스쿨 1기 공동체, 황재웅 황필규 David Lee Mundy LIPI Saw Jack Son 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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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를 작성하신 후, 스캔 혹은 사진을 찍으셔서 메일(give@apil.or.kr) 이나 팩스
역, 통역, 체력 등등)들을 언제든지 give@apil.or.kr로 알려주셔서 어필에 힘을 실
(02-3478-0527)로 보내주시면 매월 지정하신 날짜에 일정 금액이 CMS 자동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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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통해 기부됩니다. 비정기후원: 일시적으로 또는 비정기적으로도 기부하실 수 있습니다. 기부금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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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증이 필요하신 경우에는 국민은행 006001-04-263886 예금주 : (사)공익법센터
어필에서는 한 달 동안의 어필의 재미난 활동들이 담긴 뉴스레터와 기타 어필에
어필로 보내 주시면 됩니다.
서 주관하는 행사 안내 메일을 발송해드리고 있습니다. 홈페이지의 뉴스레터 구 독신청(www.apil.or.kr/1103)을 통해 어필이 들려드리는 이야기 속에 함께 동참
인턴으로 함께 이야기만들기 어필에서는 구성원들과 함께 웃고 땀 흘리며, 구성원과 인턴이 서로 배우며 이야 2
해주세요.
기를 만들어가는 인턴쉽 제도를 운영합니다. 매년 3월부터 8월, 9월부터 2월까
5 페이스북 페이지‘좋아요’버튼클릭으로 함께이야기 만들기
지 6개월 동안 함께 하는 장기인턴과, 매년 7~8월, 1~2월 2개월 동안 함께 하는
어필의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apilkorea 혹은 페이스북 검
단기인턴이 있습니다. 홈페이지(www.apil.or.kr)의 모집공고를 보시고 지원해주
색창에서 어필을 검색하세요!)와 페이지에 링크되는 각종 소식글들의 ‘좋아요’
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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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밝게 웃고 주변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마립씨 부부는 미얀마 소수 민족 출신 으로 한국으로 건너와 어필과의 만남을 통해 난민신청을 하셨습니다. 매번 어필 의 활동과 소식을 놓치지 않고 꼼꼼히 챙겨보신다는 마립씨. 어필이 드린 작은 도 움에 보답하고 싶으시다며 난민 최초로 어필의 정기후원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어필이 계속해서 어렵고 힘든 난민, 외국인들, 약한 사람들의 편에 서주었으면 좋 겠다고 웃으며 응원해주시는 이분들 처럼 후원자 여러분 모두는 어필의 가장 소 중하고 든든한 보물입니다.
콩고 마리 이야기 마리는 콩고에서 직장을 다니던 평범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콩고 정보국은 르완다 반군의 스파이로 마리를 지명하여 마리를 잡으러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이 때 마 리는 친구의 집으로 피신해 체포를 면했지만, 마리의 가족들이 해를 입었습니다. 마리는 우여곡절 끝에 콩고를 탈출하여 한국으로 왔지만, 한국에서 난민인정을 받는데 8년이나 걸렸습니다. 가장 큰 걸림돌 중에 하나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콩고에 서 벌어진 일과 관련해 언니가 보낸 이메일을 마리가 삭제해 버린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 다. 그런데 어필은 벨기에에서 난민으로 살고 있는 마리의 언니의 이메일 송신함에 마리 가 삭제한 이메일이 보존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어필은 법원에 그 편지를 제출했고 결국 마리는 난민인정을 받았습니다. 마리는 그 이후 에도 자신의 재주를 살려 디자인 작가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163번지 505호 (110-240) Tel) 02-3478-0529 Fax) 02-3478-0527 info@apil.or.kr/ www.apil.or.kr Photo by 노을, Calligraphy by 박진숙, Design by 정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