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쇼카 펠로우 이야기 The Story of Ashoka Fellow
장애인을 위한 사회는 있다. 에르제베트 세케레시 (헝가리, 1997년 펠로우 선정) #06
아쇼카 펠로우 이야기 The Story of Ashoka Fellow
태어난 지 3개월 된 티보르의 울음소리는 여느 아이와 조금 달랐습니다.
아쇼카 펠로우 이야기 The Story of Ashoka Fellow
아이의 어머니인 에르제베트 세케레시는 티보르를 병원에 데려갔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습니다.
아쇼카 펠로우 이야기 The Story of Ashoka Fellow
아이가 태어난 지 두 돌이 되어서야 소두증, 중증지체라는 걸 알게됐죠. 병원은 아이가 네 살을 넘기긴 힘들 거라고 했습니다.
아쇼카 펠로우 이야기 The Story of Ashoka Fellow
남편은 아이를 기관에 맡기자고 했지만, 당시 헝가리의 국영장애인 기관의 환경은 끔찍한 수준이었죠.
아쇼카 펠로우 이야기 The Story of Ashoka Fellow
한 명이 100명의 장애아동을 돌봐야 했던 간호사들은 이들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채 냉정하게 대했습니다.
아쇼카 펠로우 이야기 The Story of Ashoka Fellow
결국, 세케레시는 직접 장애인 시설을 설립하고자 장애아 부모와 경증장애인으로 구성된 조합을 결성합니다. 하지만, 당시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이 조합은 불법이었죠.
아쇼카 펠로우 이야기 The Story of Ashoka Fellow
세케레시의 끝없는 요청으로 조합은 3년 만에 합법화 됐고, 6년 뒤엔 정부의 지원으로 장애인의 일터와 장애인을 위한 소규모 주거시설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아쇼카 펠로우 이야기 The Story of Ashoka Fellow
조합에는 기존 시설에 오래 있어 사회성이 결여된 장애인과 수화를 모르는 청각장애인도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아쇼카 펠로우 이야기 The Story of Ashoka Fellow
세케레시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들이 스스로 해결하게 했습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진정제 투여는 정답이 아니었죠.
아쇼카 펠로우 이야기 The Story of Ashoka Fellow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는 구성원이 있다면, 다른 구성원들이 그와 소통을 거부하는 식이었죠. 스스로 사회성을 기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아쇼카 펠로우 이야기 The Story of Ashoka Fellow
또한, 기관 종사자도 충분한 공감능력을 갖춰야 했습니다. 세케레시는 이를 위해 3주간의 직업훈련 과정과 3개월간의 수습 기간을 두었죠.
아쇼카 펠로우 이야기 The Story of Ashoka Fellow
장애인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종사자를 줄이기 위한 노력과 장애인이 정말 원하는 도움을 제공한다는 소문에 대기자 수는 몇백 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아쇼카 펠로우 이야기 The Story of Ashoka Fellow
그 결과 헝가리 전역에 21개 센터로 구성된 조직망이 생겼고, 장애인에게 직업 교육, 고용기회, 보호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경증 장애인들은 조합 외부로 독립하기도 했습니다.
아쇼카 펠로우 이야기 The Story of Ashoka Fellow
현재 티보르는 매일 아침 혼자서 목욕을 하고 옷을 입은 뒤 작업장으로 출근하고 있습니다. 주말 저녁, 엄마를 도와 파슬리 줄기를 다듬기도 하고 말이죠.
출처
아쇼카 한국 korea.ashoka.org
사진 Phoebe (CC BY-NC 2.0) Tatiana Vdb (CC BY 2.0) takomabibelot (CC BY 2.0) Chris (CC BY-NC-SA 2.0) Alex Proimos (CC BY-NC 2.0) /flickr.com www.osszefogas-eea.hu
지난 35년간 아쇼카의 글로벌 선정 기준을 거쳐 선정된 3천 여명의 '아쇼카 펠로우'는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훌륭한 롤 모델입니다. 그들은 증명된 해결책을 바탕으로 모두가 체인지메이커인 세상을 위해 다양한 이들의 참여와 지원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The Story of Ashoka Fellow’는 베네핏과 아쇼카 한국이 공동 발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