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BORA
PROJECT BORA * painting
허윤정
* painting
김예림
* coffee
홍지용
* ceramic
서병주
* painting and photography
조기석
* photography
김봄
* hiphop
이기현
* coloum
하윤정
* novel
김종민
* project GipTe * Absolute Beauty
김정은. 고일환 김건, 김봄, 노정호, 박수열, 신은비, 이지혜, 정보라
만든 사람 - DIRECTOR 정보라(Bora Jeong) amzbyra@gmail.com PHOTOGRAPHER 김봄 (Bom Kim) kimbom2525@naver.com EDITOR 정보라 (Bora Jeong) 투자자 정일기 박순필 김 정은 김현아 최성민 피드백 언제나 환영합니다. 프 로젝트 보라를 보시고 느끼신 점등을 보내주세요. 또 프로젝트 보라를 같이 만들고 싶다면 좋은 설렘 을 갖고 저희에게 연락주세요. 또 인터뷰받고 싶은 분들도 연락주세요. 그리고 프로젝트 보라에 나오 신 분들에 대한 궁금증이 있으시면 연락주세요.재 정적 지원을 하고싶은 분들도 연락주세요.
art - painting
YoonJeong Hu
허윤정 (YoonJeong Hu) 그림은 언제부터 그렸어?
그런거없어. 어느 순간을 딱 짚어서 말하기 보다는, 나는 그림을 계속 그려왔어. 그림 그리는 것을 다른 것보다 좋아했고
주변에서도 내 그림을 좋아해주었고. 그런 질문은 밥 언제부터 먹었어? 라는 질문과 같아. (언짢아하는 윤정)
또 욕심같은 것도 많았어. 나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을 보면 '왜 저 사람이 나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리지?' 이런 생각 도들고. 그림에 대해선 알 수 없는 경쟁심 같은 것이 많이 들곤했지. 요즘 하는 생각들
과도기에 빠진건가? 아무튼 요즘의 나는 나를 위로하는 그림을 그리고있어. 미술로 자위를 한다고 해야하나?
그림은 항상 내가 하고있던 것이라 안하고 있으면 불안하거든. 남들은 자위하는 그림은 하지말라고 말하지만 어쩔 수 없
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렇다고 하염없이 자위하는 것은 아니야.
처음은 다 자위로 시작하고 거기에서 살이붙고, 그것을 시대에 결부지어서 결국은 우리가 얘기하는 작품이라는 것이 나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
YoonJeong Hu 사실 어디서부터 과도기에 빠졌나 생각해봤어. 다행히 이유 하나는 찾았어.
나의 작업물의 운명이 불쌍할 때가 많아. 이게 그냥 내 작업실에 있는게 아쉬워. 분명 모든것에는 길던 짧던 유통기한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래서 내 작업물들이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자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있어. 친구들에게 작업물들을 주는 것이 단순해
보여도 이것들이 곧 내가 하려고자 하는 말들이라고 생각해. 너가 작품으로 하고싶은 말이 무엇인데?
나는 작업을 시작하려고 할 때 내 얘기를 말하고 싶어해. 그렇다고해서 끝도 내 얘기로만 끝나는 것은 아니야.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끝나게 되더라고. 사회에 기여가 되거나, 이 작업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가 하고싶은 말들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는 매개체가 돼지.
그렇다고해서 내가 꼭 뭔가를 말해야겠다는 의식이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으로 우리의 공감대를 지지해주기도 하지.
'ㅋ'이란작품도. 그냥 'ㅋ'하면 웃기지만. 옛날사람들 과 우리시대의 사람들이 보는 시각이 다르잖아.
일흔살 할아버지들이 느끼는 'ㅋ'이나, 삼각김밥이랑 우리 세대가 느끼는 'ㅋ'이랑 삼각김밥은 시선이 다르 잖아.
우리 시대가 느낄 수 있는것을 우리의 삶을 잘 반영한 거라고 생각해
일흔살 할아버지가 'ㅋ'보고 웃으시진 않을거아니야. 그냥 자음 'ㅋ' 일뿐이지.
일단 기본적으로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장치로
부터 시작했어.
'ㅋ'가 무엇이냐면 각각의 시대가 바라보는 이미지를 말한거야. 해석해본다면 시대마다의 시선이 바뀐다는 것이지. 구지 내가 ㅋ을 왜 만들었냐보다는 그냥 그 자체만으로 이유가 된다고생각해. 뜨거운 밥 타령도 내가 하고픈 말을 설명 해줄 수 있는 작품이야. 찬밥신세가되어 꿍해있는 사람과 뒤쳐지고 소외된사람들 보고 찬밥신세라고 하잖아. 누구나 사람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장소, 시간, 시대에서 도태될 때가 있고...
찬밥의 반댓말은 뜨거운 밥이니까 그럴 때 내 '뜨거운 밥'이라는 작품들을 통해서 용기를 주고싶었어.
사실 그 찬밥이 나거든. 내가 어딘가에 잘 못어울리고 떠다니던 적이 있었어. 그렇다고 꼭 내 자신을 신세한탄 하는 작품
만은 아니야. 이런 과정을 통해 나로부터 시작해서 모두에게 어우를수 있는 어찌보면 평화적인 작품을 하고싶은 내 열망 이기도 하지.
YoonJeong Ha
' 쥬스여신'에 대해 작품 설명을 부탁해.
처음엔 '어떤 루트를 걸쳐서, 어떤 친구를 만들고 싶나?'
처음에는 자발적으로 생각하는것과 비자발적으로 생각하
라는 것에서 시작했어. 그래서 일상적인 친구들보다 비일
는것에대해 생각을 해봤어. 들뢰즈라는 철학가가 있는데
상적인(생산적인) 친구를 구하는 의미로. 그래서 내가 필
그 사람이 주장한것 중에 '비자발적으로 생각하라!' 라고
요할때, 나의 필요에 의해서 만난다는 것을 아주 기본으로
말한 것이 있어.
잡고, 조건과 항목에 의해 구인하는 형태로 방향을 정했지.
그가 예를 들기로 생각을 거미처럼 하라는거야. 거미는 먹
잡지편집의 컨셉은 전단지가 아닌 옛날 느낌의 '찌라시'
이를 직접 잡으러가지않고 거미줄을 쳐놓고 먹이를 기다리
로 정했어. 내가 사람을 구인하고 또 공고하는 형태로 가니
잖아. 먹이를 찾으러가는 것을 자발적인 자세라고보면 거
까 한장한장 찌라시 느낌으로 편집하다가도 기사같은 내용
미줄에 먹이가 걸리는 것을 비자발적인 것이라고 보는거
물은 찌라시보단 정리된 식으로 갔거든. 그런 점이 조금은
야.
아쉬웠어. 물론 주 컨셉에 벗어나게 비효과적으로 작업을 완성한건 아니지만, 조금의 오차라고 할까?
들뢰즈는 그런 자세를 취했을때 더 폭 넓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단순히 예를 들어 말 한 것이지.
요즘 관심있는 것은?
들뢰즈는 비자발적으로 생각하는것에대해 구분을 해놓은
요즘 최고의 관심사는 아무래도 나의 작업자료가 되어주는
것이지.
'망가(만화)'야. 망가는 인체의 구체적인 면들을 축소시켜 서 굉장히 정확하게 표현하면서도, 그걸 또 자제시켜 보여
어느날 내가 뭔가를 생각을하고있었는데 실수로 쥬스를
줘. 그렇게 단순화 시킨 형태가 너무 이쁜 것 같아.
엎질렀어. 엎지르고나서 별생각이 다드는거야. 원래 생각 하고있던 생각을 망쳐서 짜증나기도하고, 별의 별 생각을
작업할 때 민감한 환경있어?
다 했는데. 내가 그 때 생각한 것들이 비자발적인 생각이라
나는 작업할 때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공책과 펜만있으
고 느꼇지.
면 신경쓰이는 것들은 없어.
그러고나서 그때의 생각을 내가 자발적으로 생각했을때
보통 나의 친구들은 사람들간의 관계에서 크게 민감하더
그걸 쏟으며, 원래 생각을 망치면서 다른 생각이 들고, 또
라고. 물론 나도 사람들을 좋아하긴 하지만 맺고 끊는것은
복잡한생각이 들었잖아. 쏟아진 쥬스한테 고마웠어.
확실한 편이야. 잘 싸우고 잘 끊고 살지. 이런면에선 쿨하
그때 쥬스가 쏟아졌을때 내 생각이 터지는, 흘리는 그런걸
려고 노력해.
표현하고싶었어. 내 생각들. 싫어하는 인간상있어? '쥬스가 쏟아졌을때 온갖 새로운 생각들, 혼란스러운 생각 들을, 활동적인 생각들을 표현하고싶었어.'
나한테 피해를 갈만한 행동을 한다거나, 생각없이 자기것 은 열심히 안하고 남의 것만 궁금해하는 애들 딱질색야. 좋아하는 인간상은 딱히 없는데 내가 존경 할수있는 사람
최근에 작업한게 뭐야?
을 좋아해.
최근 작업물은 '우리동네 친구만들기'라는 잡지형식의 개 인 발행물이야.
처음보는 사람들에게 작품을 평가받는 것은 어때?
어느날 카페에 혼자 앉아있다가 '아, 친구 만들고 싶다'라
평가 받고싶어. 난 누가 내것을보고 아무 이야기라도 해
는 생각을 했어. 내가 보기와는 다르게 친구가 많이 없거
줬 으면 좋겠어. 그냥 넘어가는게 싫어. 사람들의 생각을
든. 그래서 페이스북에 '친구 구합니다'라고 쓰고있었어.
이끌 수 있을만큼의 임팩트가 있어야한다고봐.
근데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흘려보내기엔 너무 아쉬운거야. 그래서 작업을 해보기로 마음 먹었어.
내것도 그랬으면 좋겠고. 그냥 넘길 수 있는 작품이 아니 였으면 좋겠어.
'동네친구 만들기' 개인 발행물. 2011
라면과 삼각김밥. watercolor. 2008
ěŒ€. watercolors. 2010
쥬스여신, watercolor. 2010
art - painting
YeaLim Kim
김예림 ( YeaLim Kim)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 한 것은 언제야?
동양화로 그리며 다양한 재료를 쓰려고해요.
고 엄마랑 같이 피아노도 치고, 그래도 혼자 그림그리는 것
해서 색있는 금박 종이들도 작품재료 중 하나예요.
어렸을 때는 이것저것 배우잖아요. 그래서 발레도 배워보 을 더 좋아해서 계속 그린 것 같아요.
근데 제가 굉장히 컬러풀 한 것이나 반짝반짝한 것도 좋아
너의 그림들이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다가가길 원해? 어떤 식으로 그려?
그림이라는 것은 저에게 안정감을 줘요. 겉으로는 안그래
처음에는 잡지에 있는 화보나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
보이는데 안에 있는 느낌이 그림으로 그릴 때 어쩔 수 없이
고… 재미있더라구요.
예를 들면 내가 힘들었던 것을 표현하려고 했는데 그림을
들을 제 방식대로 따라 그렸어요. 재료도 다양하게 써보
그러다가 동양화에 매료됬는데… 일반적으로 서양미술은
재료자체가 원색적이기도하고 눈에 확띄면서 강하잖아요.
근데 동양화는 분위기부터 다른 것 같아요. 은은하면서 더 애틋하다고 해야하나?
나오는 것 같아요.
그릴 당시에 내 마음이 너무 행복하면 그 행복이 그대로 표 현되는 것 같아요.
사실 그리움이라는 작품도 밝은 분위기로 그리고 싶어서
색도 밝은 컬러위주로 사용해 화려한 느낌으로 그릴려고 했어요.
YeaLim Kim 그런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저를 보던 동생이 저보고 우울하냐 고 물어보는 거예요. 그 때 깨달았어요. 제 안에있는 감정이 그대로 그림으로 표현된다는 것을… 그래 서 이제는 제 감정을 솔직히 말하는 그림을 그리려 해요.
주변사람들한테 영향 많이 받아? 내 주변인들에게 잘해주고는 싶어요. 그렇다고 내 주변인들이 나한테 잘하길 바라는 것은 아니예요. 사실 저는 제 모든 것들을 의지할만한 깊은 친구는 아직 없어
내가 살다보면 어느 순간은 힘든일들이 있을 수도 있고, 상처를
요. 각각의 외모가 다른 만큼, 성격도 서로의 이해관계도 가치
받을 수도 있지만 좋은일도 있을 수도 있으니까
관도 다르니까요. 만약에 내가 우울하다고 그걸 다 표현하면 상
앞으로 살아가야하는 길이 힘들어도 포기를 망각하고 희망을
대방도 우울해지잖아요. 그렇다고해서 내 감정이 바뀌는 것도
가지고 살자.
아니고, 결국 내 스스로가 치유해야할 것이니까요.
희망이라는 단어를 듣기만해도 마음이 설레요.
앞으론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어? 앞으로는 더 좋은 사람들과 함께 같이 발전해가는 환경속에서
우리의 감정을 일반화해서 같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내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저의 열정을 더 북돋아 줄 수 있는.. 물
가 모네의 작품을 보며 위로받았듯이 위로해줄 수 있는 친구같
론 제 스스로 많이 보고, 느끼고 하면서 열심히 작업할 것입니
은 작품 더 나아가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림들을 그리고 싶어요.
다. 요즘은 도자기에도 관심이 많아서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도자기에 접목해서 재미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그리움. oriental dyes on korean paper. 2012
food - coffee
홍지용(JiYong Hong) 바리스타라는 직업을 가진 당신이 얻고 잃는 것은? 커피라는 매개로 다양한 사람과 친해 질 수 있는 기회가 많다.철학과 교수서부터 사기꾼까지. 일반적으로 어떤 사
커피를 그만 두고 싶었던 순간. 사실 '커피'때문에 관두고 싶었던 적은 없지만 '일'때문에 관두고 싶었던 적은 있다.
람과 친해지고 싶을 때 뭣도 아닌 상태에서 다가가면 내가
전에 일했던 커피숍에서는 하루 근무시간이 12시간에서
이상한 사람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않은가? 그러나 카페에
14시간. 휴일은 한달에 하루,이틀. 이렇다보니 이 때는 몸
서 일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휴식공간에서 일하는 것이라서
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다. 또 직원으로 일하하는
편안한 상태의 사람들과 자연스레 친해지는 경우가 많다.
데 있어서 경력이 있어도 페이에도 한도가 있다.
반면에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는 있지만 일부로 날
당신에게 자극을 준 사람.
찾아오지 않는 이상 원래 알고지냈던 사람들과는 자연스레
그 역시 커피일을 하는 친구였다. 내가 일하던 카페에 실
인간관계가 좁아진다. 휴일의 개념이 다른 사람들과는 많
습생으로 들어오게 되어 만났다.그 친구는 쉬는 날에도 항
이 다르기 때문인 것도 있다. 아무래도 서비스업이기 때문
상 집에서 로스팅도하고 커피 테스팅하러 다니고...
에 내가 일하는 시간은 남들이 쉬는 시간이기도 하니까. 또 일하는 시간이 직장인들처럼 아침에 출근했다 저녁에 퇴근하는 것이 아닌, 꽤 시간이 프리타임이기 때문에 바이 오리듬이 바뀐다. 단적인 예로는 헬스도 못다닌다.
Jiyong Hong 그 친구가 없었다면 내가 아는 것에 안주했을 텐데 그를 만나서 자극을 많이 받았다. 커피에 관련된 맛과 과정에있어서 항상 '왜'라는 생각을
얼굴들을 하고있다. 웃고있는 사람들도있고 울고있는사람 도있고 싸우고있는 사람도있고, 혼자 쉬고있는 사람도 있 다. 이것보다 더 다양한 얼굴을 가진 여러사람들이있다.이
하게됐다. 예를 들면 '이 커피의 맛은 시다.' 라고 생각했
사람들 모두 행복해지려고 사는 것 아니겠는가?
을 때 '왜 이 커피 맛은 시어요?' 라는 질문에 답할줄 알아
사람들이 내가 내린 커피를 먹으며 앞으로도 행복하고 커
야한다. 그런 것에 대해서 공부하는 방법을 많이 깨우쳤다.
피를 먹는 순간이라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직업병이 있나?
자신의 삶에 대한 철학.
동네 카페는 가기 힘들다. 다들 아시는 분들이니까 혼자
나는 항상 내 자신에게 질문한다. 질문을하지 않으면 내가
쉴려고해도 커피얘기로 빠질 때가 많다. 그래서 왠만하면
왜 사는지에 대해 잊어버릴것같아서이다. 넌행복한가? 넌
교외 카페로 나간다. 커피숍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커피머
커피를 좋아하는가? 너가 계획한 인생과 커피 잘 지키고있
신을 체크한다. 맛은 물어볼 필요도 없다.
는가? 게을러져서 남들에게 뒤쳐지고 있진 않은가? 등의 질문을 한다.
쉬는 시간에는 무얼 하는가? 베란다에 누워서 햇빛보는 것도 좋아하고 카페에가서 책 읽는 것도 좋아한다.
앞으로 커피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해줄 말. 요즘은 전문적으로 커피일을 가르쳐주는 곳이 곳곳에 생 기고있다. 사실 전문적으로 가르친다는 것은 웃긴 말인것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사람들은 책을 읽으면서 다른 삶을 겪어 볼 수 있다고 한 다. 아마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책을 읽는 것과 같은 의미 일 수도 있다.
같다. 커피를 배우고자 한다면 먼저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색깔이란 커피 맛의 기준을 만들라는 말이다. 가르
커피로 사람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나?
치는 사람들의 기준에 맞추지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의
커피숍에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각자 사연이 다른
맛의 기준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위치한 그의 카페 '브로어스
art - ceramic
BeongJoo Seo
서병주 도예가의 사진은 모두 작가에게서 발췌됨
서병주 도예가 (Ceramist BeongJu Seo)
어
린 시절부터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던 반면에 늘 무언가를 상상하고 그것을 그린다거나 실물로 만드는 일은 평생에 걸쳐 좋아했던 것이 분명하다. 가르치는 일을 생계수단의 한 방편으로만 생각하면 학
생들이 가르치는 사람으로부터 지식 이상의 소중한 것을 받을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어린 학생들의 미래에 영 향을 주는 역할은 보람을 주기도 하지만 그것도 가르치는 사람의 인생관과 경험, 세상을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각이 온전하게 갖추어졌을 때의 이야기다. 지식이 풍부하고 경험이 많아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불완전하다면 학생에게도 그 불완전함이 그대로 전달된다.
BeongJoo Seo
"난 지난 10년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나 자신의 역할에 대해 꾸준히 반문해 보았다." 난 지난 10년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나 자신의 역할에 대해 꾸준히 반문해 보았다. 지금 나의 역할이 우리 학생들에게 얼마나 효과적이며 동시에 나 자신의 인생에 만족을 주고 있는가 하는 점을. 회의적인 시절도 많았다. 때로는 학생들의 태도에 문제가 있기도 했지만 나 자신에서 비롯된 문제도 있었다. 그리고 깨 달았다. 교육은 성패는 선생과 학생의 공동의 노력으로만 성취된다는 것을. 그것은 일종의 Team work 같은 것이기도 하다. 바로 그 점이 나를 힘들게 했다. 반면에 독립된 예술가로서 산다는 것은 자신의 역할에만 충실하면 된다는 점에서 더 단순한 삶이다. 나는 이 점이 좋다. 일이 잘되건 잘 못되건 어쨌든 모든 책임은 나 자신에게만 돌리면 되니까. 차라리 그게 속이 편하 다. 조직 속에서 다른 구성원들과 호흡을 맞춰가며, 그것도 변화하는 세상의 압력을 받아가면서 일한다는 것은 교육자 로서의 덕목과는 별개의 또 다른 능력을 요구한다. (때로는 경영자적 태도가, 때로는 정치적인 제스츄어가, 때로는 이기 적인 인간으로서의 냉정함이) 이 모든 것이 세상 적응하는 이치인가 싶긴 하지만 난 그것을 감당하면서 여생을 살기엔 강하지 않다. 나의 적응능력은 그런 방면으로는 세월이 지나도 그다지 발달하지 않는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자신을 이리도 잘 파악하 고 있을까? 차라리 이런 주제파악 능력이 나를 보호한다고 생각한다. 내 분수를 아니까 말이다.
Salt Spring Island, Canada에 위치한 서병주 도예가의 작업실
Farewell, my renaissance. ceramic. 1999
sky weavers. ceramic. 1999
BeongJoo Seo 작품 'Farewell, my renaissance' 대해... 이 작품의 복선적 의미, 즉 과거의 지나간 르네상스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동시에 누구에게나 전성기가 있게 마련인데 모 두다 세월 앞에서는 무력하게 잊혀져 가는 모습들이 마치 과거의 르네상스처럼, 그리고 꽃들처럼 삶과 문화가 그렇게 화 려하게 피어났다가 다시 사라져가는 걸 보며 느끼게 된 허무감을 표현했다. 하지만 최근엔 새로운 생각을 이 작품에 보태 기로 했다. 스티브 잡스가 남긴 말 중에 “만일 당신이 상당히 괜찮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면 그 일에 깊이 빠져들 가치가 있다. 하지만 결국엔 그것을 버리고 또 다른 것을 찾아 떠날 줄 알아야 한다” 흔히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늘 깨어있으라는 충고 의 또 다른 표현일까? 5년 단위로 과거의 작품 스타일과 이별을 고하는 것도 능력만 뒷받침 된다면 흥미진진한 인생의 재미가 아닐 수 없다. 어쨌든 난 말(馬)에 한동안 집착했던 것에서 홀연히 걸어 나왔고, 좀 다른 이야기지만 한국사회에서는 르네상스적인 직 업으로 여기는 대학교수자리에도 이별을 고하고 나왔으니 말(言)이 씨가 되었는지 작품에서 의도했던 대로 인생이 흘러 가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 복선적인 의미로서 르네상스에 안녕을 고함으로써 <발전적인 해체>를 시도할 수 있다고 생각 한다. 13년 전에 만든 작품 제목을 새삼 요즘 다시 생각해보니 지금이야말로 나의 르네상스에 이별을 고할 때라고 생각 된다. 또 다른 르네상스를 만들기 위해서...
영감을 얻는 것이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는 누구라도 영감을 얻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준비라 함은 늘 작품에 대한 한 가지 생각. 집요할 만큼의 생각. 간절히 얻고자 하고 또 더 나아지길 원하는 강한 욕구. 방해받지 않는 삶의 패턴.. 이런 것들로 자신이 무장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구 만날 거 다 만나고, TV 볼 거 다 보고, 경조사 챙기고, 날마다 끝없이 피어오르는 핑계들을 이런 저런 이유로 다 받 아주고 남은 한 줌의 걸레 조각 같은 시간에 작품을 할애한다는 건 완전히 도둑놈 심보다. 이런 사람들은 결국 남의 것 그 냥 쓰윽 베껴다 쓰는 길을 선택한다. 나는 경험적으로 생각해볼 때 밤낮없이 작품제작에 관련된 일들에만 몰두한다하더라도 최소한 한 달은 지나야 비로소 억 지가 아닌 자연스러운 영감에 이끌린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영감’에 대해선 나도 감히 이렇다할 정의를 함부로 내리는 것에 대해 신중하고 싶다. 왜냐하면 영감이라고 하는 것은 하늘에서 우연히 만원짜리 한 장이 내 발 밑에 줍기 편하도록 떨어지는 종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필연의 결과라 생각한다. 필연이라 함은 오래도록 누적된 관심과, 지식과 열정이 한데 융합하여 어느 시점에 이 르면 우리의 머리속에서 바깥으로 튀어 나오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늘게 흘러내린 물이 큰 양 동이에 오래도록 끊이지 않고 계속 채워만 준다면 결국은 양동이 밖으로 넘쳐흐르듯, 바로 그렇게 넘쳐서 흐르는 한 방울 의 물도 사실은 양동이 전체를 가득 채운 많은 물들이 없었다면 결코 양동이 밖으로 나올 수 없지 않을까.
BeongJoo Seo
"내가 내 자신 공화국의 왕이 되어 (약간 자기도취적인)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결정하 고 바꿀 수 있는 그런 삶에 딱 들어맞는 유형중 하나가 바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타인과의 관계, 조직 속에서의 역할과 책임.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된 지금 내 삶, 아니 이곳 자체의 삶은 지극히 단 순하다. 반면에 도시의 삶은 친구를 만나고, 인터넷하고, 쇼핑하고, 버스타고, 지하철타고 매일같이 어딘가로 이동하면서 소모되 는 그 많은 시간들... 그러다보면 창작의 뇌는 점점 부식되어간다. 그리고 남들과 똑같이 되어간다. 본인들은 못 느끼겠지 만. 난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없이도 위대한 창작의 업적을 성취했던 과거 예술가들의 근본적인 에너지를 오히려 더 믿는다.2011년은 내게 가장 소중하고 특 별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왜냐하면 내 인생에 누군가를 가르치는 마지막 시기이기 때문이다.마치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 람이 세상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학생들과의 깊은 교감은 매우 강력한 힘을 주었다. 아마도 그것 이 교육이라는 직업의 본질적 기쁨이 아닌가 싶다.
난 그저 이 마지막 시기를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시간을 학생들과 함께 보내고 싶었다. 확실히 주는 만큼 오는 건 맞다. 모
든 학생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적어도 과거 어느 때보다도 많은 학생들이 마음을 열었고 난 학생들을 비로소 머리와 가슴 으로 알게 되었다.
BeongJoo Seo 이런 놀라운 감흥을 매우 짧게 느끼고 떠나는 것이 참 아쉽웠다. 교수직은 교수직일 뿐 나에겐 그것이 교직과 예술직의
어정쩡한 변종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결국은 완벽한 가르침의 길도, 완벽한 창작의 길도 성취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누군가는 양 쪽을 모두 잘 할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다) 그래도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을 난 실행 에 옮겼다.인생에 자주 그럴 기회는 없지만 그거 꽤 짜릿한 일이다.
이제 선로위에 오랜 동안 방치되어 녹슬어 가고 있던 창작이라는 이름의 기관차에 시동을 다시 걸고 천천히 움직이는 그
런 기분이다. 선로가 끝나는 그 지점까지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기차가 더 녹슬기 전에 부지런히 달려야겠다는 생각뿐이 다. 이제 내가 기관사가 되었으니 내 맘대로 달리는 거다.
"자신들의 모든 편의와 이익만을 위해 은퇴하는 그 날까지 제자 들을 착취에 가깝도록 부려먹으셨다." 우울한 이야기라서 별로 하고 싶진 않다. 부정적인 기억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숨길 생각도 없다. 나의 지도교
수들은 딱 한 분만 빼고 내게 미친 영향이 한마디로 없다. 아예 제자들 미래엔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 당시엔 많은 대학 들이 그런 걸 당연시 여겼다)
오로지 자신들의 모든 편의와 이익만을 위해 은퇴하는 그 날까지 제자들을 착취에 가깝도록 부려먹으셨다. 그 착취에 순
응한 후배들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왜? 그들도 결국은 바라는게 있었던 거지. 결국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관계가
부패로 가는 지름길이니까. 이런 악순환은 결코 끊어질 수가 없다. 더욱이 예술한다는 사람들이 이렇게 정치적으로만 머
리가 발달해서야 무슨 좋은 작품이 그 쓰레기통에서 나오겠는가? 결과적으로 타락한 교수와 이에 침묵으로 순응하는 제 자는 교육의 본질을 오염시키는 공범관계이다.
나의 지도교수들이(절대 스승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내게 미친 영향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내가 교수가 되면 절대 저
러지 말아야지’ 하는 강한 반발심을 심어줬으니까.
누구나 다 아는 진실은 여기에 있다. 강의시간 외에 남아도는 그 많은 개인적 시간들. 이런 시간을 강의준비와 학생을 위
해 쓰면 좋으련만 실제로 그런 사람은 손에 꼽는다. 대부분은 딴 짓거리들 하는데 혈안이니까. 나의 지도교수들 처럼...조
직 속에서 일하지만 간섭이 거의 없어서 자유로운 프리랜서 같은 생활이 주는 안락함. 일하는 시간에 비해 넘치는 연봉. 정신 나간 짓만 안하면 65세까지 주구장창 버틸 수 있는 과도한 신분보장 체제. 주변으로부터 항상 받는 과잉 대접과 존 경. 등등 자격에 비해 너무도 과도한 프리미엄이 교수직 하나에 걸려있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들 교수가 되려고 저 난리들인 것이다.
그나마 나는 대학교수직 마지막 해에 마치 이별을 의식하듯 발휘했던 노력으로 학생들과 대학에 진 빚의 많은 부분을 갚
은 듯한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재직 10년에 대하여서도 한결같은 그런 마음과 자세로 보은하지 못한 감이 들어 그게 참 아쉽고 미안하다. 어쨌든 나는 떠난다. 그동안 대학으로부터, 그리고 학생들로부터 받은 넘치도록 과분한 대접에 감사하며 이제 다른 인생을 찾아 떠난다.
GiSeok Cho
art - painting and photography
조기석 (GiSeok Cho) 자신에 대해 인지하고 직접적으로 개인 작업활동에 뛰어든
로 인해, 타인에게 비추는 얼굴과 원래 자신만의 얼굴을 가
건 언제인가?
지고 살아간 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2011년도, 내가 20살일 때 다양한 작업들을 하면
가면서의 안 좋은 일들로 인해 성격을 의도적으로 고쳤고,
아직 내 자신을 인지했다고 생각은 안한다.
서 나,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등 나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계속 생각하면서 작업을 하고있다.
나 또한 어렸을 때의 반 아이들로부터의 소외된 경험, 커
그 모습으로 지금 살고 있다.
남들도 그러한 면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고 보아왔다. 그
러한 이중적인 모습들을 표현하려 한 작업이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엘로퀀스라는 잡지의 에디터겸 디자이너로 일을 하고 있
고, 따로 개인작업을 하고있다.
페이크 포트레잇 작업을 설명해달라.
사람의 이중적인 모습을 표현하고자 하는 작업이다.
살아가면서 각자의 어떤 경험 후에 혹은 각자만의 환경으
여러 번의 사진 작업을 통해 배운 것은? 미숙했던 점은? 앞으 론 어떤점을 개선시켜야할까?
사진 작업도 그림 그리는 것과 똑같다고 느꼈다.
장인 정신을 발휘하고 노력, 열정을 쏟은 만큼 사진이 더
욱 매력적으로 관객들의 눈에 보이게 된다.
GiSeok Cho 나는 해보고 싶은 마음이 앞서 생각과 준비를 덜하고 작업
을 진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 결과물은 보통 내 눈에 차지않았다.
그래서 작업을 하면서 작업에 대한 더 많은 생각과 더 많
은 준비 과정을 가지고 있다.
작업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나의 사진작업중 제일 중요한 것이 '바디페인팅'이다보니 그것에 관한 것들이다. 처음엔 모델들도 재미있게 페인팅 을 받다가 시간이 점점지나고 페인팅되는 면적이 많아질 수록 힘들어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또 작업을 끝내고 페인 팅을 씻을 샤워공간이 없어 애를 먹은적도 한 두번이 아니 다. 당신이 생각하는 라이벌이있나? 특별히 누군가를 라이벌로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내 또 래의 사람들이 멋지게 이뤄놓은 작업물을 보면 긴장감이 생긴다.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도 같다.
사람들이 너에게 큰 의미가 있나? 에디터로서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폭이 넓어졌다. 아무래도 내 나이때 만나기 힘든 작가들을 만나며 새로운 영감과 경의로움을 느낄 수 있다. 반면 개인적으로 나의 사람들에 관계에 있어서 과도기를 겪고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또래친구들보다 일찍 일을 시 작해서 시간적인 여유도 없을뿐더러 친구들과의 공감대도 점점 사라졌다. 따라서 원래 있던 인간관계에 더 심혈을 기 울이진 못한다. 또 시간이 여유롭지 않아서 일상적인 일들보다는 아무래 도 나의 개인작업을 진행하기 위해서 만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아진다. 물론 나에게 개인작업이라는 것이 일을 마치 고 갖는 나의 자유시간이기도 하고, 나만의 시간이기 때문 에 그 때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당연한지도 모르지만 웬지 그들에게 미안함이 있다.
Fake Portrait. photography. 2010
GiSeok Cho
지친 삶에 너에게 가장 힘이 되는 것은?
내게 힘이 되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잡지 마감이 끝나면 진행될 개인작업에 관한 생각이고 두 번째는 힘내라는
친구들의 진심 어린말이다.
나에게 쉬는 시간이란 없다. 계속 작업을 한다. 친구들이 이런 나를 보고는 일벌레라고 놀리기도 한다. 하지만 가만히있는
다고해서 쉬는 것 같지도 않고… 그냥 그림그리는게 가장 편한 일 같다.
또 요즘에는 개인작업에 대한 강박관념 같은 것이 생겨서 계속 머리를 돌리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한마디로 나는 쉬어도 쉴 수가 없다. 단편적인 예를 들자면 영화를 볼 때에도 일부로 심도깊고 교훈을 주려는 영화를 찾아
서보게 된다.
물론 이러한 내 강박관념이 나에게 큰 발전을 줄 수도 있겠지만 정신적으로 힘들때가 많다.
지금 행복한가?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이란?
행복은 무언가를 꼭 하고있어야, 또 결과가있어야 중요한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어떤 일을 했을때 행복하느냐가 중
요한 것 같다. 난 지금 내가 하고있는 것에서 행복을 찾기로 했다. 20대 때 이루고 싶은 것들이 있나?
당장은 내가 만든 패턴들을 이용해서 특이한 디자인의 옷을 만들어 팔고싶고, 20대때는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 할 수 있는
아트 디렉터가 되고싶다.
당신의 현재 좋아하는 음악과 영화는?
딱히 정해진 장르는 없다. 힙합, 락, 일렉트로닉등 가릴 것 없이 내 귀에 맞는 것들로 듣는다.
레이디 가가에 요즘은 푹 빠져있다.
가장 감명깊게 봤던 영화는 키아누리브스와 알파치노가 주연한 DEVIL'S ADVOCATE 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사랑과 야망에 관한 내용이다. 나의 경험을 떠올리며 감정 이입하면서 본 영화.
digital. 2011
photography
Bom Kim
김봄(Bom Kim) 사진에 매력을 느끼게 된 이유는 뭐야?
사진 어렸을 때부터 찍었어?
로 찍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면 그림과는 달리 사진은 단시
라를 잃어버린 적이 있어서.
미술공부를 그만두고나서 취미로 사진을 찍게 됐어. 취미
간에 완벽히 재현해주잖아. 짧은 시간안에 사실적으로 기 록하는 것만큼은 미술이 따라갈 수가 없는거잖아. 그게 너 무 좋았어.
미술은 그리는 자체에서 주관적 되잖아. 반면 사진은 한
아니. 아빠가 나한테 카메라를 안맡겼어. 내가 한 번 카메
처음으로 내가 카메라를 산게 중학생때였어. 인터넷에서
로모카메라를 샀어.
그땐 필름포맷이 뭔지도 모르고, 중형필름이 뭔지도 모르
피사체를 두고 같은 조건에서 누군가가 찍더라도 똑같잖
고.. 아마 내가 그 때 중형필름이 인화하기도 번거롭고 비
만. 나는 사진이 객관적이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매력이
고, 거리도 찍고, 내 눈이 닿는데로 찍었지.
아. 물론 이것들이 그림이나 사진의 각각의 장단점이겠지 좋아.
싼 줄 알았다면 안샀을거야. 여튼 그 필름으로 친구들도 찍 아직까지도 현상은 안했어. 120짜리 현상하는데도 별로
없고… 번거롭고… 그래서 지금까지 필름이 그냥 감겨있 어. 거기에 아마 나의 중학교 때의 얼굴도 있고, 그때 집도 있고. 현상은 나중에 해보려고.
Bom Kim 이번 작업에 대해서 설명해줘.
모델이 떨어질까봐 너무 무서운거야. 나는 티를 내서도 안
촬영하면서 다녔던 곳이 임대로 넘어가있고, 주인도 없고,
장에서 제일 중요시해야되는건 '안전'이라는 것을…
이번 내 사진작업의 모티브는 어린시절의 기억이야.
방치되고, 비어있는 곳이었어. 그런 곳에 가면 나의 어렸을 때 기억이 나.
되잖아. 손이 덜덜덜 떨면서... 그 때 깨달았어. 내가 촬영
아, 그리고 촬영 전에 모델에게 맛있는 음식을 주는 것도
중요해!
나의 부모님은 항상 바쁘셨고, 나에겐 형제자매도 없고해
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 외로운 시간에도 내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네게 어떤 의미니?
가능하잖아. 벽과 천장. 빛에 비춰 보이는 먼지들까지… 벽
볼 수 있다는거. 초록동색이라는 말과는 다른 것 같아.
니었던것이지. 빛에서부터 위로를 받으면서 안정된거야.
아. 이 사람이랑 있을때는 내가 이런 말도 하는구나, 이런
오기를 바라고 변화가 있길 기다리잖아. 그런 감정이나 기
이 든다고하면 '나는 이런 사람과는 맞지 않구나.' 아니면
본 것은 빛이었어. 왜냐면 공간에서는 빛이있어야 구별이
지 바래고. 그러니까 알고보니 내가 그 공간에서 혼자가 아 그리고 누구나 그렇듯이 혼자 있는 공간에 있으면, 누군가 억들을 사진으로 표현해봤어.
사실 이번 작업의 주제가 내가 혼자있던 유년시절을 말하
기 때문에 주위에서 걱정들을 많이했어. 우리 엄마는 굉장 히 가슴아파했 .
이번 작품을 통해서 나를 표현하는 것도 있었지만 사람들
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것도 있었어. 내가 그 유년시절의 기 억을 소재로 쓸만큼, 지금의 나는 많이 강해졌고, 나는 그 것에 대해 괜찮다고.
또 그것들로 인해 밤에 혼자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
고 사진도 찍을 수 있다는거에 고마움을 느낀다고. 작업하 면서 치유가 많이 됐어.
작업 후에 느낀 점이 있다면?
촬영을 해나가면서 힘든 점이 많았어. 이 작업물이 오로지
나를 위한 작업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고 결과가 나와야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상 당했어. 모든 사람들의 고민일거라고 생각해.
그래도 좀 더 내 것을 나답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고집부
려야할거같아.
또 사람들과 같이 작업하면서 재미있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어. 물론 모델 기용에 있어서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어. 아는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거든.
그리고 내가 촬영하러 다니는 곳들이 꽤 위험한 장소였거
든. 한 번은 공사가 덜 된체 방치된 건물에서 촬영을 했는
데. 모델이 난간에 앉아있는 것을 내가 찍고있었어. 그런데
조금 이기적인 생각이기도 한데,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건 끼리끼리 만나는 것은 아니잖
생각도 하는구나… 만약 내가 누군가를 만났을 때 거부감
어떤 사람을 내가 너무 좋아하게 된다고하면 '내가 이렇게 사람을 좋아 할 수도 있구나.' 라는생각도하니까.
결국에 좀 이기적인 것같애. 물론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
하지만 그 관계 속에서 나를 알아간다는 것을 인지한다는 게…음…
다음에 작업하고 싶은 주제가 있어?
예전에 나의 지인에게 '지금 제일 관심있는게 뭐예요?'라 고 물어봤는데 그 언니의 대답은 '인간관계' 였어.
혼자사는 세상이 아니니까 관계라는 것에서도 벗어날 수
가 없잖아.
내가 어느 장소엘 가던 생각하는 것은 내 주변사람들이었
어. 심지어 내가 마음에 드는 작품을 볼때도 그 작가의 생
각이 궁금해지잖아. 그 작가에 대해 알아가고싶은 생각도 인간관계중에 한 단계이니까.
물론 인간관계에 대해 정의를 내려 작업한다기보다는 일
단은 내 주변에서부터의 인간관계를 표현해보고싶어. 앞으로 너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뭐야?
나는 기술적인면이나 테크닉면은 둘째치고 힘 있는 것을
하고싶어. 그렇다고해서 어떤 유명의류회사 광고처럼 사회
적인 파장을 원하는게 아니고, 그저 내 사진을 볼 소소하고 도 큰 사람들에게.
내 작품으로 하여금 그들이 생각하게끔 하고싶어. 언제 또 인터뷰 요청이 들어올 것 같아?
앞으로도 내가 좋은 기회를 만들어서 이렇게 사람들과 생
각을 공유할 수 있도록 인터뷰를 많이하게되면 좋겠어. 첫 인터뷰라 얼굴이 달아오르기도 했지만 재미있었어.
music - hiphop
GiHyun Lee
이기현 (GiHyun Lee) 이번 공연은 다른 사람과 그룹을 만들어 공연햇는데 솔로와 다른점은?
팀으로 하긴 처음이긴한데, 전에도 솔로를 한다고해도 콜라보레이션식으로 많이했어. 직접적인 솔로는 한 무대 밖에 되
지 않았지.
팀 작업과 솔로가 다른 점은 곡을 쓰기가 더 수월하다는 점이야. 아무래도 솔로는 훅도 내가 ,들고 브릿지도 인트로도 나
혼자 다 짜야되고 비트 선정도 내가해야되고... 근데 팀으로하면은 같이 어느정도 맞추고, 아무래도 할 양이 적어지고 하 니까 편하긴 하지만.
솔로로 공연할때가 더 재미있는 것 같아. 물론 훅, 브릿지, 인트로도 다 내가 짜야되고 비트선정도 혼자선 쉽지 않지만
힘든만큼 보람있지.
첫 번째 공연은 어땠어?
첫번째공연때 아무래도 제일 열심히하고 긴장했던 공연이었어. 처음하는거니까 진짜 떨렸어.
사실 연습할 곳도 없어서 홍대 근처에 아무도 안오는 놀이터에 가서 연습했지.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목이 막 타들어갔
어. 지금보다도 더 실력이없었으니까. 근데 그 안에서 진짜 열심히했어.
근데 아쉬운점이 하나 있다면, 다른 친구들의 공연을 못본거야. 내가 내 공연을 끝내고 바로 공연장을 나왔거든.
GiHyun Lee
첫 번째 공연보다 많이 나아졌어? 점점 공연을 진행 할 수록 관객호응도 좋아지고 관객들도 더 늘어나. 내가 작업한 노래나 가사들도 다 만족스럽고.
공연 중간 중간마다 내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니까. 공연경험, 처음 경험하는 인간관계들.. 그 경험들을 살려 내 솔로곡을
쓸 때 수정의 수정을 거듭해서 만족스러운 가사를 쓸 수 있었지. 사람과의 만남에서 제일 중요시 생각하는것은?
사람과의 만남에있어서의 행동같은 것들. 그 이상은 잘 모르겠어. 아무래도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사는거니까. 또 사람은 둔해야 된다고 생각해. 내가 남들한테 어떻게 행동하고, 남들이 나한테서 어떤걸 느껴가는가에 대해서는 예민
해야하는데 남들이 나한테 행동한 것을 판단하고 결론짓고해서는 안되는 것 같아. 사람을 만나는것은 어떤의미인가. 기회와 기쁨.
사람들을 만나면 그 사람들이 아는 전문 분야를 내가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고 그런부문만이 아니고 다양한 그들만의
(정신)세계를 느낄 수 있어.
또 그것들은 내 삶을 즐겁게 만들기 때문에 기쁨이라고도 볼 수 있지. 스스로에게 부족한점은?
평소에 진지한 면이 부족해. 다 장난스러운것 같아. 진지한 모습을 내가 못견뎌하는 것 같아. 심리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기분이라고 할까나…
말하다보니 분명 언젠가 진지한 얘기를 했을 때에 상처를 받은 것 같아.
친구들과도 진지한 모습을 보이기엔 엿부족이고. 심지어 부모님한테까지도.
반면 혼자 있을 때는 진지해져. 밖에 나가서 노래 들으면서 산책도 하고. 요즘엔 이소라 앨범을 듣고 있지.
너가 하고있는 작업, 공연들이 너의 꿈에 있어서 어떤 의미야? 내 꿈에 있어서 이제 겨우 시작이라고 생각해. 상투적인 얘기로 들리겠지만. 앞으로 더 좋아졌으면 하는 것들은? 더 다양한 경험으로 신선한 가사를 쓰고싶고
또 내가 정말 느끼고 말하고 싶은 것을 숨기지 않고 진솔하게 노래에 담고싶어 항상 겸손하고.
column
YoonJeong Ha
문학, 그 쓸쓸함에 대하여 하윤정 (YoonJeong Ha) 여기 기이한 한 무리가 있다. 이들은 자주 상념에 젖어있다. 언어의 틀을 깨부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하고, 끊임
없이 사유와 철학을 쏟아내기도 한다. 게다가 이들은 서로를 비판하면서도 감싸준다. 각양각색의 목표를 향해 내달리 는 이들의 종착역은 하나다. 더 나은 이야기. 글을 위해서라면 밤을 꼴딱 새도 좋은, 이들은 그런 바보 같은 사람들이 다.
글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권위적인 것이다. 가공된 세계다.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지만, 문학은 고통으로 귀결된
다. 작가는 창조주이며, 동시에 고통 받는 자다.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글은 세상의 부조리에 적응하지 못
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개 부조리한 현실을 발견하면, 외면한다. 이는 사회 속에서 튕겨 나가 고 싶지 않은 우리 욕망의 부산물이다.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는 이들에게 대한
민국은 냉정한 국가다. 치열한 고민 끝에 나온 글은
각종 매체나 인터넷, 스마트폰 사이로 사라진다. 치 밀하게 꾸려진 활자의 세계는 대개 빛을 보지 못하거 나 심연 속으로 사라지기 일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고통 끝에 오는 짧은 카타르시스를 잊지 못해 계속해서 글을 써내려나간다. 이는 마치 나쁜 남자의 마력에 허우적대는 여자와 닮아있다.
요즘 대한민국 각지에서는 스토리텔링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지방, 건물, 운송수단에 이르기까지 모 두 스토리텔링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글을 쓰는 입
장에서 스토리텔링이 마냥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방 대한 공모전이 정말 일시적인 유행처럼 보이기 때문 이다.
얼마 전, 한 카페에서 충격적인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평생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 는 말에 한 사람이 대답했다.
취업을 하고 글은 취미로 써야지, 라는 말이었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얼이 빠질 얘기다. 그러면 이런 이야기는 들 은 적이 없느냐. 그건 또 아니다. 글 쓰는 것을 평생 직종으로 삼고 싶다고 했을 때, 열에 아홉은 듣는 얘기다. 이러한 소리를 들을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대로 현실과 타협할 것인가, 아니면, 내 소신대로 밀고 나갈 것인가. 참으 로 답을 내리기 어려운 딜레마다. 실상 답이 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하긴 인생에 답이 있다는 것조차 우스운 일이 기는 하다.
어쨌든 이 기이한 무리에 속한 사람들은 더 나은 세상을 원한다. 이웃나라 일본처럼 초고를 만 부 이상 찍어낼 수 있
는 것도 바라지 않고, 유럽에서처럼 글을 쓴다는 것을 우러러 보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평생 직업으로 글을 선 택할 수 있는 세상을 원하고, 억지로 취업전선에 나가야만 하는 세상이 타파되기를 바랄 뿐이다. 언젠가는 평생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는 말에 한 사람이 대답했으면 좋겠다.
김종민 (JongMin Kim)
무제 김종민 (JongMin Kim)/ 소설 왼손엔 맥주, 오른손엔 소시지. 좌청룡 우백호도 안 부러울 조합이 갖춰졌으니 이제 나갈 시간이다.
“봉구야!”
“왈! 왈왈왈왈!”
내가 부르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팔짝팔짝, 빙글빙글 하면서 온몸으로 대답하는 봉구. 기특한 놈. 날 그리 반겨주 는 것도 너뿐 이구나. 녀석을 고갯짓으로 불러 밖으로 나왔다. 놈이 좋다고 뛰어 다니는 사이, 문 앞에 있는 작은 돌 계단에 앉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친구를 만나려면 돈이 든다. 돈이 있어야만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매번 돈이 없다면 만나기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맥주를 혼자 마신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봉구와 마신다. 친구가 보고 싶을 땐 전화를 한 다. 그렇게 한다.
딸칵- 쏴아아아아-
저 멀리까지 가서 놀던 녀석이 맥주 따는 소리가 들리자, 귀를 쫑긋 세우고는 부리나케 달려온다. 무슨 개가 맥주 를 이리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봉구가 맥주를 먹게 된 건 나 때문이다. 예전에 밖에서 소주한잔 걸치고 여기서 맥주를 마신 적이 있었다. 그날 따라 혼자 먹는 맥주가 맛이 없었는데, 옆을 보니 평소 남은 밥을 주던 길 강아지가 보였다. 내가 불러 맥주를 주자 녀석은 할짝할짝 대더니 움찔 하며 맥주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좀 꾀를 썼 다. 내가 안주로 먹던 소시지를 맥주에 말아 줬다.
개도 취한다. 웃기지 않은가. 나 먹을 맥주도 없는지라 녀석에겐 소주한잔? 두잔 정도의 양밖에 주지 않았음에도 녀석은 이상하게 취해가지고는 방방 뛰면서 이리 가서 꿍!, 저리 가서 꿍! 요리조리 박더니 이내 쓰러졌다. 처음엔 얘가 죽었나 싶어 잽싸게 달려 갔지만 배를 볼록이며 자고 있었다. 참 웃기는 놈이다. 그날 이후 난 녀석을 집으로 들여와 씻겨주고 털도 손수 잘라줬다. 형제가 된 것이다. 이름이 봉구가 된 것도 그 날부터였다. 원래는 그냥 멍멍 이였다. 이름을 뭐로 지을까 고민하다 나와 녀석이 먹던 소시지 이름이 ‘봉’ 으로 끝나길래 봉구라고 불렀다.
맥주에 만 소시지를 맛있게 먹고 있는 봉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김종민(JongMin Kim) "봉구야. 맛있냐.” 대답도 없다. 아니 반응도 없다. “네 인생도 참 가련하구나. 길강아지가 된 것도 불쌍한데 밥도 매번 내가 먹다 남은 것밖에 못 주고 따뜻한 물로 목욕 한 번 못 시켜주는 날 만나 네가 고생이 많다.” 우적우적- 우걱우걱뭐 녀석한테 뭔가를 바란 건 아니었으니 괜찮다. 나도 맥주 한 모금 마시고, 소시지 한입을 베어 물었다. 크- 역시 이 맛 이다. “봉구야. 이제 그 고생도 다 끝이다. 형이 취직을 했다!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다 알 정도로 큰 회사는 아니지만, 그래 도 이제 먹고 살 수는 있을 것 같다. 세상사 어디 내 뜻대로 되는 게 있었냐. 내 나이 스물 아홉. 좀 늦었지만, 지금부터라 도 조금씩 아끼고 모아서 학자금 갚고, 결혼자금 모으면 어찌어찌 되지 않겠냐.” 먹다 말고 ‘으르르르-‘ 하며 날 보는 게 내 꺼는 없는 거냐고 따지는 것 같다. 이게 어딜 눈을 부라려? “아 물론 너도 이제 호강해야지. 밥도 좋은 사료 먹고 씻는 것도 강아지 전용으로 사서 씻자. 따뜻한 물로 샤워도하고, 언젠가는 예쁜 색시 하나 데려다 장가도 보내주마.”
역시 내 말을 알아 듣는 것 같다. 장가 보내준 다는 말에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왈왈 거리는 게. 응? 왈왈 거려? 빨리도 먹었네. 나도 얼마 남지 않은 맥주를 마저 비운 후, 손등으로 입술을 훔쳤다. “쓰읍- 짜시야! 일단 형이 먼저 가야지!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건데 어딜! 으르르거려도 소용없다.” 피식, 웃은 나는 녀석을 들어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그러니까 형 말 잘 들어라잉. 알겠냐?” ‘헥헥헥헥’ 거리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게 잘은 몰라도 뭔가 좋은 거라는 건 아는가 보다. “이놈아, 형님께서 물어보는데 대답을 해야지!” “아울-“ 고개를 바싹 세우며 늑대마냥 소리 내는 게 꽤나 귀엽다. “그게 아니야 대답할 땐 이렇게 하라고 고개는 더 바싹 세우고! 소리는 더 크게! 봐봐!” “아울-아울-아울-“ “아울-아울-아울-“ 내가 선창하자 녀석이 잽싸게 따라한다. 이렇게 몇 번 개소리를 내자 여기 저기 창문이 열리며 욕설이 들려온다. “야 이 개자식들아! 조용히 좀 못해!” “쫌! 조용히 좀 합시다!” 무섭다. 이제 들어가야 할 시간이다. 고개를 치켜 세우고 꼬리를 바싹 세운 봉구가 앞서서 걸어간다. 당당한 그 모습이 나보다 네가 낫다 싶어하는데, 녀석이 발로 문을 긁적이며 낑낑거리고 있다. 아이고 두야. 그럼 그렇지. “휴- 형이 간다 형이 가! 내가 간다!”
Project Gipte
고일환 (IlHWAN KO), 김정은(Jeong En Kim)
고일환 (IlHwan Ko), 김정은(Jeong En Kim) 프로젝트 깁테를 시작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자면 새로운 사람간의 '만남'이 주 목적이었다. 나의 요청으로 그 들은 처음 만나게 되었다. 내가 이 두 사람을 만나게한 이유는 간단하다. '상호작용' 고일환은 공대생으로 평소에 창작을 열망한다. 헌데 고일환은 항상 창작을 특별하게만 봐왔다. 반면에 김정은 은 일상이 창작이였다. 그녀의 방에는 그녀가 만든 장식물들, 그녀가 그린 그림들. 심지어 그녀가 만든 음식에도 그녀의 섬세하고 세심한 창작의 손길이 묻어나왔다. 난 그래서 이 둘이 굉장히 잘 맞을거라 확신했다. 내 예상대로 고일환과 김정은의 만남은 잘 들어맞았다. 그들에게 '사람과의 만남'이라는 주제를 던져주었고 곧 그들은 각자 자신들을 형상화했다. 두 작품 곧 한 작품처럼 연결된 것 처럼 그것을 통해 고일환과 김정은이 만나 듯 서로 다른 사람과 만남을 표현하려고했다.
고일환 (IlHWAN KO), 김정은(Jeong En Kim)
타임 스프링은 과거 속의 나자신을 말한다.그 기억의 터 널... 언제나 내 머리 속에서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을 상기 시킨다. 하늘 꼭대기까지 솟을 것 같은 줄자는 감정 기복이 심한 나를 설명한다. 또 복잡한 전선은 '나는 분명 복잡한 사 람'이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손전등 머리를 나의 눈으로 생각하고 달았는데 이것은 정 면에서는 벗어나게 우측을 바라보고있다. 이것을 설명하 자면 노홍철의 말을 인용해야겠다."고속도로는 분명 빠르 지만 사람들이 몰리면 가장 느린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난 골목길이나 새로운 길을 찾아 다니며 그 길이 지름길이 될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 전선들은 나는 분명 복잡한 사람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번 프로젝트로 나에 대해 긍정적인 모습을 발견해보았 다. 사람 사이의 관계, 소통이란 맥락으로 시작하는 것이 지만 '나'를 생각하는 진지한 시간이었다. 이기적으로 받 아들일지 모르지만 내가 성립이 되고, 내가 흔들리지 않아 야 쌍방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관계가 탄탄하고 길게 형성 될 수 있다. 받기만 하는 것도 나쁘지만, 나를 잊고 마냥 주기만해도 안된다. 이 프로젝트를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테지만 나 는 상관 없다. 나는 나의 소신이 있고 나의 생각을 자유롭 게 표출하면서 즐겁게 작업 할 수있었고, 스스로 만족한 결과를 얻어냈다. 이거면 충분하다. 나는 참 재미있게 즐 겼다.
고일환 (IlHWAN KO), 김정은(Jeong En Kim)
나는 이것들을 나의 얼굴화 시켜 표현했다. 일단 눈에 관해 설명하자면 별과 병뚜껑은 위치도, 모양도 기존의 평행이나 대칭에 맞지 않게 눈 한쪽한쪽의 형상도 다르고 비뚤게 붙여져있다. 그것은 평소 내가 처음에 사람들이나 사물들을 조금 은 비뚤게 보는 경향때문이다. 입 또한 전체적으로 크지만 말이 나 오는 구멍들은 작은데 그 이유는 평소엔 많은 의견이 있는 나지만 낯선사람들과 함께할 때는 목ㅅ리를 잘 내지못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또 머리 쪽에는 나의 많은 사고들을 엉성하게 표현했 는데 그것은 쓸모없는 생각을 하고있는 나를 표현한 것도 있지만 콘센트에 꽂으면 바로 번뜩이는 아이디어도 낼 수 있는 것을 표현 했다. 이번 작품 주제 자체가 사람들과의 만남이라는 너무 커다란 주제 를 다뤄서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그에 대한 의견을 어떻게 내야할 지도 몰랐지만 너무 친절하고 좋은사람인 김정은님이 있어서 생각 보다는 쉽게 작업을 해나갔던것 같다. 이렇게 새로운 사람과 만나 작업을 하는 과정이 내게는 너무 소중하고 값진 잊을수 없는 경험 이 되었다. 나를 반영시켜서 작품을만들었다는 작업과정도 너무 좋았고 좋은 사람들 만난 거에 대해서 너무 행운이고 축복이라고생각한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PHOTOGRAPHER 김봄 EDITOR 정보라 MODEL 김건. 신은비. 이지혜 ASSISTANT 노정호. 박수열
제가 이 잡지를 만들게 된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대학 졸업을 앞둔 학생인 제가 사회인이 되기 전에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렸
을때부터 꿈이었던 잡지 기자의 꿈을 프로젝트 보라로실행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커오면서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그들마다 가진 가치관, 커리어, 성품과 행동에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들을 만나며 저는 즐겁고 기쁘기도 했지만 가끔은 분노와 질투심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모든 작용들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재밌는 것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 보라는 '사람'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프로젝트 보라에는 인터뷰나 컬럼 등의 글들이 많이 있습니다. 글이 너무 많아 읽기 부담스럽지 않을까 고민도 했지
만 자세한 글로 사람들을 제대로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PROJECT BORA
더 이상 보기에 멋진 작품으로만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작품이 탄생하기까
지 작가자신의 깊은 생각과 철학이 담겨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인터뷰에 더 치중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잡지에서 제일 좋은 글을 뽑아보자면 제가 인터뷰한 글이 아닌, 서병주 도예가님의 글이었습니다. 그가
교직에 몸담고있을때의 철학과 작가로서 영감을 얻는 방법 그리고 제 가슴에 가장 와닿았던 서 도예가님의 학창시절 에 관한 글은 저의 학교생활을 되돌아보게 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잡아주는 글이었습니다. 아직 배우고있는 사람으로
서 꼭 읽어야 하는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연륜이 묻어나는 서병주 도예가님의 글은 제 잡지에 싣긴 아까울 정도였습 니다.
잡지하면서 제일 아쉬운 점이 여러가지 있지만 가장 아쉬운 점은 아무래도 내용에 치중하다보니 편집 디자인에 신경
을 많이 못쓴 부분이 아쉽습니다. 다음엔 공부도하고 더 준비해서 더 잘하고 싶을뿐입니다.
그리고 프로젝트 보라를 만들기까지 도움을 주신분들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먼저 프로젝트 보라의 공식 포토그래퍼 김봄님께 너무 감사합니다. 기사 하나하나의 사진마다 김봄님의 공이 고스란
히 느껴집니다. 작업하는 내내 함께했는데, 그러면서 많은걸 같이 경험하기도 했지만 또 그만큼 서로 서운한 점도 있 었습니다. 그것 들이 현재 저희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준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함께 달려와준 김봄님 감사합니다!
또 항상 기회를 제공해주시고 저를 항상 믿어주시는 사랑하는 부모님,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김정은님
감사드립다.
오랜만에 연락해서 하는 소리가 돈 얘기였는데도 흔쾌히 수락해준 최성민님, 그리고 좋은 작가를 소개시켜주고 촬영
때 도움을 준 노정호군, 항상 멋진모습을 보여주고 잡지 작업 내내 저의 멘토가 돼준 조기석님, 우리 잡지의 뮤즈가
되어준 신은비님과 김건님, 그리고 항상 제 곁에서 든든한 지원을해주고 심리적 안정을 가능케한 사랑하는 박수열님, 항상 응원해주고 새로운 생각의 가지를 넓혀준 이지혜님, 저에게 항상 칼같은 평가를 해주시고 안식의 장소를 만들어
준 지안의 이제훈 사장님, 아무것도 해드리는 것 없는데 신경써주시는 이성희님, 꼭 읽어야 될 진중한 글을 써주신 서 병주 도예가님.
인터뷰에 응해주신 홍지용님, 김예림님, 이기현님. 안타까운 이 시대의 문학세태를 반영하는 글을 써주고 항상 자신 을 채찍질하는 하윤정님, 시시콜콜한 얘기같지만 우리세대를 반영하는 재밌는 소설을 써준 김종민님, 아쉽게 참여는
못했지만 작업 전부터 많은 도움 주려던 홍정민님. 기술적으로 도움을 주고 응원해준 박희영님. 친구 하는 일이라고
금전적으로 쉽사리 도와준 김현아님, 재밌는 작업물 만들어주고 어렸을 때부터 나를 지지해준 고일환 작업기간내내 제게 힘이되준 김자경, 윤인혜, 이혜진, 하윤정,이예지 그리고 모든 나의 친구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말 다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