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 사람, 마주보기
하림 서울사옥 건축설계 맡은 美 벡 그룹
‘릭 델 몬트’ 최고 디자인책임자 • ‘제이 정’ 부책임자 세계 건축인들이 우리나라로 몰려오고 있다. 지난 3월 세상을 떠난 자하 하디드(동대문디자인플라자 설계자)를 비롯해 톰 메인 (세종 M브리지 설계자) 등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계의 거물급 인사들이 과거 한국을 찾기도 했다. 이들의 방한 이유는 무엇일 까? 발주처가 해외설계사의 브랜드를 선호하는 까닭도 있지만, 공급자의 입장에서 이유를 생각해보자. 그들은 한국 건축설계 시 장이 매력적이라면서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벡 그룹(The Beck Group)도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 벡 그룹이 설계한 대기업 하림의 서울 본사 사옥이 다음달 준공을 앞둔 가운데, 막바지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 해서다. 벡 그룹의 릭 델 몬트(Rick del Monte) 최고디자인책임자와 한국인 제이 정(Jay Chung) 부책임자를 만나 외국인의 눈으 로 본 한국 건축 시장의 매력과 한계를 들어봤다. 2016년 7월 26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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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건축주들은 늘 ‘새로움•랜드마크’ 추구… 매력 넘치는 파트너죠 한국에 온 이유는. 제이 정= 하림 서울 사옥의 디자인이 원하는 대로 잘 나왔는지 체크하기 위해서다. 지난 24일 하림 사옥 의 입면에 설치된 조명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웰 라이 트(Well Light)사의 담당자 제이슨 길(Jason Gill)과 최 종 테스트를 했다. 이 밖에 우리가 설계한 오피스 타워 와 하림 닭공장의 방문자 센터가 익산에서 공사 중이 다. 우리가 한국에서 일한 지는 2003년부터니까 총 13 년째다. 한국은 우리에게 유일한 아시아 시장이다. 유일하다는 것은 특별하다. 한국 건축설계 시장은 어떤가. 릭 델 몬트= 한국은 세계 건축업체에 매력적인 시장 이다. 이유를 꼽자면 법적, 경제적으로 일하기 쉬워서다. 무엇보다 안전한 환경이 가장 마음에 든다. 누군가 “브 라질에서 일할래?”라고 물어온다면 단언컨대 “아니오” 를 외칠거다. 브라질은 법적, 경제적으로 건축설계업을 뒷받침해주지 못한다. 반면 한국 건축주들은 안전하고 적정한 페이를 보장한다. 건축주는 벡 그룹의 전문가를 활용할 수 있고, 브랜드 이미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 특히 언제나 한국 건축주들은 늘 ‘새로움, 랜드마크’ 를 추구하기 때문에 건축인들에게는 즐거운 일이다. 일 례로 “내가 한국에서 이런 건축물을 설계했어”라며 미 국 건축인들에게 소개하면 하나같이 “와우(wow)”, 감 탄사를 연발한다. 프로젝트가 흥미롭기 때문이다(웃 음). 반면 미국 건축주들은 그렇지 않다. 한국 건축주 이 외의 다른 나라 건축주들은 굉장히 오래되고 철 지난 건축물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육면체로 된 건축물 말 이다. 전 세계 건축인들이 한국 건축물에 관심을 보이 는 이유도 이러한 부분이고, 한국 건축주들한테 고마 워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한국 시장에 정착했는지. 릭 델 몬트= 찾아가서 문을 두드린다고 덜컥 건축설 계 용역을 맡겨줄 리 없다. 우리는 관계에 집중한다. 일
년에 3∼4번 정도 한국을 방문한다. 그리고 건축주와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식사를 같이 한다. 한국에서 프로젝트는 철저히 ‘클라이언트 베이스(Client Base)’ 인 것이다. 익산 이리신광교회, 서울 사랑의교회, 포항 기쁨의교 회 등 교회 작품 다수가 클라이언트 베이스였고, 하림 의 서울 본사와 익산 하림공장의 시설물, 판교 NS홈쇼 핑 등도 마찬가지다. 첫 프로젝트인 익산 이리신광교회와는 인연이 매우 깊다. 2003년 이리신광교회 건축주가 직접 벡 그룹의 문을 두드렸다. 건축주는 미국의 교회를 모두 답사하고 나서 “벡 그룹이 설계한 교회가 마음에 든다”며 한국 에도 멋진 교회를 지어주길 부탁했다. 그때의 인연으로 한국에서 여러 교회 건축물을 설계할 수 있었다. 또 해당 국가에서 일하려면 그 나라의 사람과 음식, 문화를 사랑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의 포항, 부산, 전 주, 익산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건축 답사도 하고 맛있 는 음식도 먹었다. 한국 음식 중에 설렁탕을 가장 좋아 하는데 최근에는 샤브샤브도 맛있었다. 특히 지난 13 년 동안 서울은 놀라울 정도로 많이 변했다. 2003년에 는 차도 현재만큼 많지 않았고, 외국인도 별로 없었다. 당시 인천을 갔을 때 거리에서 외국인은 나 혼자였을 정도다. 지금은 어딜가나 외국인들도 많고 국제화됐다. 최근에는 강남 거리를 돌아다니며 재미있는 빌딩, 레 스토랑, 카페도 답사하고, 공공장소에서 응집된 에너지 를 내뿜는 젊은이들도 본다. 제이 정= 클라이언트 베이스를 더 설명하자면, 미국 과 한국에서 프로젝트 수행 과정이 다르다. 미국에서 는 최고 디자인책임자가 건축주와의 첫 미팅과 몇 번의 회의 때만 참석한다. 나머지 프로젝트 총괄 권한은 프 로젝트 팀에 맡긴다. 반면 한국에서는 최고 디자인책임 자가 3개월마다 한 번씩 찾아와서 프로젝트 논의를 지 속한다. 지난 3일 동안은 하림 서울 본사의 디테일 때 문에 하루 8시간씩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이것이 클 라이언트 베이스인 것이다.
Rick del Monte 릭 델 몬트
“美 BIM 적용 활발, 설계 초기부터 시공사 참여 조율하는데 韓 설계 다 마친뒤 시공사 선정… 시스템 차이 가장 힘들어”
Jay Chung 제이 정
설계 용역을 수주하고 나서 힘든 점은 없나. 릭 델 몬트= 미국과 한국의 건설산업 시스템의 차이가 가장 힘들다. 특히 빌딩정보모델링(BIM) 적용이다. 미국에서는 BIM 을 활용해 3D로 설계한다. 설계 초기 때부터 시공사가 참여해 가격 정보를 입력하고, 건축설계안을 조정해나간다. 때문에 시 간도 단축할 수 있고, 세세한 건축비용을 제시하면서 건축주가 원하는 예산 안에서 최대한 멋진 건축물을 설계할 수 있다. 설 계가 끝나면 BIM모델을 시공용으로 변환한다. 시공사가 시공 을 하는 동안에 애초 설계안으로 인해 비용이 과도하게 발생할 경우에는, 다시 조정을 하는 등 프로젝트의 전 과정에서 설계 사와 시공사 간의 조율이 이뤄진다. 이것이 미국에서 일고 있는 최근 건축설계 트렌드다. 반면 한국은 그렇지 않다. 설계사가 설계를 마치고 난 뒤에 야 시공사 선정이 이뤄진다. 시공사는 우리가 그린 건축설계 도면을 보고 “아니 이렇게 설계하면 시공비가 어마어마하게 나오잖아”라며 시공 과정에서 건축물을 마음대로 바꾸기 일 쑤다. 때문에 벨류 엔지니어링(VE)을 통해서 조율해 나가지만, 초기 설계에서 비용이 과도하게 나오는 것은 우리에게도 큰 리 스크다.
그리고 한국 설계사들은 BIM에 투자하려고 하지 않는다. BIM을 다루려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직원 교육이 필수다. 그만큼 BIM을 사용하는 인력은 최고급 인력이다. 우리 가 미국에서 고급 인력을 데려와서 3D 도면을 그리고 한국 설계 사에 이를 제시하면, 한국 설계사들은 다시 2D로 바꿔서 사용 한다. 기껏 투자했는데, 이런 경우에는 황당하다. 이 같은 상황은 시공사에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설비 등 협력업체들도 모두 BIM을 사용한다. 그래서 설계 도안을 넘겨도 시공사는 물론 하 위 공사도 BIM 기반의 시공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용이 최소화될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코디네이션이 잘 안 된다. 앞으로 계획은. 릭 델 몬트•제이 정= 한국에서 교회뿐만 아니라 복합건물, 오 피스, 상업건물 등으로 포지션을 넓혀갈 계획이다. 공공건축물 의 경우, 병원 등 헬스케어 시스템에 관심이 많다. 그렇다고 한 국만 집중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미국을 중심에 두 고 있다. 매출액의 평균 80%가 미국에서 발생하고 있다. 앞으 로도 한국 시장에서는 철저히 클라이언트 베이스로 활동할 계 획이다. 김현지기자 h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