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향과전망 90호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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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2014년 봄호


편집자의 글

그간 한국은 두 차례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를 실현하는 등 민주 주의 공고화의 성공사례로 널리 인식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한 국 민주주의가 안녕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높아지고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가 치열하게 논의된 직접적인 계기는 2012년 대선에 국정원 등 국 가기관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는가 하는 문제를 둘러싼 공방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심화 확장시키지 못하고 있는 데는 야권이나 시 민사회에서도 함께 성찰해야 할 부분도 있다. 그간의 민주주의 논의는 절차적 문제에만 관심이 집중되었고 전반적인 표현의 자유와 시민적 자유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대선에서 제기되었던 경제 민주화나 복지국가 이슈도 시민의 삶과 연결된 고리가 견고하지 못했 다. 대선 이후에도 국정원 댓글 문제로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지만 민주 주의와 민생 이슈의 분리라는 프레임이 작동하기도 했다. 자칫하면 민주주의가 왜소하고 절차적인 개념으로 축소될 위험에 놓여 있다. 시민의 삶과 민주주의가 분리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민주주 의의 위기가 아닌가 싶다. 이에 따라 󰡔동향과 전망󰡕 90호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중심으로 시민의 삶의 문제와 결합된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를 진단하고 그 원인 분석과 함께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유종성은 표현의 자유 후퇴가 광범한 시민적 자유의 후퇴로 이어지 면서 ‘자유민주주의’ 자체가 위기에 빠지고 있으며, 한국 민주주의가 ‘자유 없는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로 퇴행하고 있다는 문제의 식을 제기한다. 한국은 국가안보 논리와 명예훼손죄의 남용, 선거운동 과 인터넷에 대한 지나친 규제 등으로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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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대만보다 낮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보수세력은 ‘자유’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부정해 온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진보세력은 ‘자유주의(liberalism)’를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 또는 ‘신자유주 의(neo-liberalism)’와 혼동해 왔다는 것이다. 박동천은 명예훼손의 형사처벌이 위축효과를 초래하여 표현의 자 유를 제한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국의 법원과 검찰 조건에서는 명예훼손의 형사처벌은 자본과 권력의 부당한 명예까지 지켜주는 대가 로 시민들 사이의 건강한 비판과 이견을 압살할 위험이 아주 크다고 본 다. 따라서 당사자주의 재판의 형식을 통해 세밀하고 정합적인 법리가 개발되고 보호되어야 할 가치가 있는 명예를 더욱 잘 보호할 수 있다고 본다. 이어서 유엔 인권이사회의 권고대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를 형 법에서 삭제하고, 민법 764조를 보다 상세하게 규정할 것을 제안한다. 한국의 인터넷 자유에 대한 국제적 평가는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 다. 박경신은 인터넷 규제를 정당화해 온 담론의 기초가 된 ‘과잉불법 성’론은 한국 특유의 명예훼손 관련 형법체계에 기인하는 것임을 밝힌 다. 인터넷 규제의 사례로 인터넷 실명제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 정요구제도를 검토하면서, 이들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국가가 국 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때 해당 국민에게 의견을 사전 에 들어야 한다는 기본원리를 잠식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서복경은 표현과 결사의 자유의 맥락에서 정당설립의 자유를 제한 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정당법의 기원을 추적하고 민주화 이후에도 지 구당 폐지 등 정당활동의 자유가 더욱 제한되어 온 과정과 원인을 밝히 고 있다. 이러한 정당법이 군국주의 하 일본 선거법제의 틀을 모방한 규제 위주의 현행 공직선거법과 함께 제한경쟁체제를 제도화한 것임을 규명한다. 국가가 법으로 정치결사를 허가하고 해산시킬 수 있는 체제, 정당조직의 형태와 규모까지 규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체제에서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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른 시민적 결사들도 국가에 의한 관리와 규제의 대상이라는 점을 주장 하고 있다. 이번 호에는 일반 연구논문들도 민주주의의 심화와 확장을 위한 다 른 여러 가지 과제들을 논의하고 있다. 우선 교육 문제와 관련된 논의 가 있다. 정대화는 사학 비리를 중심으로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 하였다. 사학의 비민주성과 사학 비리의 쟁점이 후퇴하고 있는 상황에 서 사학 문제의 근본적 개선책으로 사학을 사유재산으로 간주하는 관 점에서 벗어나 국가 공교육을 담당하는 공공기관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일영은 ‘혁신가 경제학’이라는 새로 운 개념을 제안하고 그 교육과정의 요소들에 대해 고찰했다. 여기서 주 장하는 ‘혁신가 경제학’ 교육은 새로운 민주적 발전모델의 주체를 발견 하고 육성하려는 것, 경제학 교육에서 다원주의를 실천하는 방안을 마 련하려는 것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이어서 민주주의 실천의 주체로서의 협동조합 문제도 다루고 있다. 이종현은 성공 사례라 할 수 있는 로치데일 협동조합과 몬드라곤 협동 조합의 초기 조건을 살펴보고 가능한 한 이들의 기본적인 공통점을 추 출하여 한국의 협동조합에 대한 논의를 구체적으로 진전시키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 장종익은 가장 먼저 발전해 온 유럽 소비자협동조합 의 역사적 진화과정을 분석했다. 프랑스와 영국 소비자협동조합의 실 패·쇠퇴 요인과 노르웨이와 이탈리아 소비자협동조합의 성공요인을 비교 분석하였다. 노동시장과 복지제도에 관한 실증분석 논문도 게재하였다. 김종 성·이병훈은 부모의 사회계층에 따라 자녀의 노동시장 성과가 실제로 다르게 나타나는지 살펴보고, 부모의 사회계층에 따른 자녀의 노동시 장 성과 결정요인을 규명하였다. 김윤태·서재욱은 한국의 복지국가 의 특성이 복지태도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서 다양한 계급적,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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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사회학적 변수에 따라 발생하는 국민연금, 고용보험, 건강보험, 공공 부조, 아동가족 지원 등에 대한 제도별 선호의 차이를 분석했다.

2014년 1월 󰡔동향과 전망󰡕 편집위원장 이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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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3

편집자의 글

특집 •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 9

한국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 : ‘자유민주주의’의 위기 유종성

45

명예훼손과 표현의 자유 박동천

79

인터넷과 표현의 자유 규제 : 익명성 규제와 전파성 규제를 중심으로 박경신

120

한국 정치결사 제한체제의 역사적 기원 서복경

연구논문 153

사학 민주화와 사학개혁의 과제 정대화

193

‘혁신가 경제학’을 위한 교육과정 : 개념과 사례 이일영


229

협동조합 발전의 초기 조건에 대한 연구 : 영국의 로치데일과 스페인의 몬드라곤을 중심으로 이종현

262

전후 유럽 소비자협동조합의 진화에 관한 연구 :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을 중심으로 장종익

296

부모의 사회계층이 자녀의 노동시장 성과에 미치는 효과 김종성·이병훈

331

한국의 복지태도와 복지제도 : 개별 복지제도에 대한 경제활동인구의 태도 김윤태·서재욱


특집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 특 집

한국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

‘자유민주주의’의 위기* 1)2)

유종성** 샌디에고 캘리포니아대학교 환태평양연구 국제관계대학원 조교수

한국은 경제성장뿐 아니라 민주화도 성공적으로 이룩한 모범사례로서 국제적인 찬사를 받아 왔다. 특히 새뮤얼 헌팅턴의 “두 차례 정권교체” 라는 시험을 통과함으로써 민주주의 공고화의 과제를 달성한 것으로 널리 간주되어 왔다(Huntington, 1991: 266).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했던 지난 5년간과 연이은 박근혜 대통령의 보수정권 하에서 민주 주의 후퇴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이러한 우 려는 민주주의와 언론자유, 표현의 자유 등을 평가하는 여러 국제기구 들이 발표하는 지표와 보고서에 의해 객관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언론자유를 포함한 표현의 자유는 ‘자유’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기초 이며 가장 보호받아야 할 기본권으로 인정되고 있다. 또한 언론자유는 부패통제에 중요한 역할을 함을 여러 실증적인 연구가 입증하고 있다 (You, 2014). 더구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은 결사 및 집회의 자유 등 관련되는 시민적 자유도 침해하기가 쉽다. 이렇게 되면 선거와 의회제도 등 형식적인 민주적 제도는 유지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자유

* 이 논문은 Haggard & You(2013)에서 상당부분 그 내용을 원용하였다. ** jsyou@ucsd.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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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를 실질적으로 부정하는 ‘자유 없는 민주 주의(illiberal democracy)’ 또는 형식적인 ‘선거 민주주의(electoral democracy)’로 후퇴할 수 있다(Diamond, 2008: 21∼26; Linz & Stepan, 1996; Zakaria, 1997). 최근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진보적인 정치세력과 지식인들은 ‘자유 민주주의’ 또는 절차적 민주주의는 더 이상 이슈가 안 된다고 보고 사회 경제적 민주주의 또는 ‘경제 민주화’를 최우선적인 과제로 내세워 왔다. 2012년 국회의원 총선거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민주당과 문재인 후 보는 표현의 자유 후퇴를 쟁점화하지 않았으며 여야간에 경제 민주화 를 경쟁적으로 주장하였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이후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시민적 자유의 침해 및 민주주의의 후퇴가 최대의 정치 적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한국의 민주주의 공고화에 찬사를 보냈던 외국인들에게는 물론이고 한국인 자신들도 예측하지 못 했던 사태의 전개라고 할 수 있다. 본고의 목적은 한국의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 후퇴 현실에 대한 진단과 아울러 그 원인을 성찰해 보고자 하는 데 있다. 첫 번째 질문은 표현의 자유 후퇴가 한국의 특수한 현실에서 불가피한 부분적인 현상 에 불과하며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적 후퇴는 아니라고 보아야 할지, 아 니면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적 가치를 훼손하여 한국이 ‘자유 없는’(또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 퇴행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것인지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첫 장에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민적 자 유, 표현의 자유 등의 개념과 측정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하고, 다음 절 에서는 한국에 대한 여러 국제기구들의 평가지표를 비교해 보면서 표 현의 자유와 관련된 한국의 중요 이슈들을 점검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필자는 한국이 표현의 자유의 부분적 후퇴 수준을 넘어서서 자유 없는 민주주의로 퇴행하는 위기에 처해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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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질문은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 등 시민적 자유가 낮은 수준 을 보이고 후퇴해 온 원인을 밝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본고는 문화적, 역사적, 정치적 요인 등을 성찰해 볼 것이다. 이를 통해, 권위주의적 유 교문화와 냉전반공체제의 유산이 정치제도 및 정치세력의 이념지향 등 과 맞물려 비자유주의적 또는 반자유주의적 흐름이 지속되어 왔음을 보여줄 것이다. 특히, 최근 표현의 자유 후퇴에 직접적인 책임은 보수 정권에 있지만, 자유주의를 경시, 폄하하고 일정하게 비자유주의적, 반 자유주의적 정책을 취해 온 진보세력과 진보정권에도 책임이 공유됨을 보여준다. 결론에서는 표현의 자유 증진과 ‘자유’ 민주주의 공고화를 위 한 과제를 간략하게 제시하고자 한다.

1. 자유민주주의 개념과 시민적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자유 등의 측정 오늘날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란 곧 자유민주주의로 인식되고 있다. 그 러나 자유민주주의란 개념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합성어로서, 이론 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항상 결합되는 것은 아니 었다. 자유주의는 국가권력의 횡포 등으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므로 권력의 분산을 통한 견제와 균형, 법치 주의 등을 요청하게 된다. 민주주의는 정부 구성을 주기적이고 경쟁적 인 자유선거를 통해 함으로써 인민이 지배하는 정치체제를 의미한다. 서구의 역사에서는 시민계급이 절대왕정으로부터 시민적 자유를 확보 해나가는 자유주의 전통을 확립한 이후에 점차 선거권을 확대하여 보 통선거에 이름으로써 자유민주주의를 확립하게 된 반면, 많은 신생민 주주의 국가들은 보통선거권 등 민주주의 제도를 받아들였지만 선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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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해 집권한 권력자가 절대권력을 행사함으로써 권력분립, 법치주의 등이 무시되고 표현과 결사의 자유 등 시민적 자유를 억압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자유 없는 민주주의’ 또는 ‘선거민주주의’라고 칭한다(박 승우, 2009; Diamond, 2008; Linz & Stepan, 1996; Zakaria, 1997). 이와 관련하여 지적할 것은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이 자유주의와 자 유민주주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해다(박동천, 2010; 박찬표, 2008; 정 태욱, 2006; 최장집, 2011; 최태욱, 2011; Choi, 2009). 즉, 자유주의 (liberalism)를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 또는 시장만능주의의 신 자유주의 경제정책(neo-liberalism)과 구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21세기 자유주의의 가장 대표적 사상가라고 할 수 있는 존 롤스 의 정의론에서 보듯이 자유주의는 정치적 자유의 평등뿐만 아니라 사 회경제적 불평등의 완화와 기회의 균등을 대단히 중시하고 있다 (Rawls, 1971). 미국에서 리버럴(liberal)은 진보주의자로서 신자유주 의 내지 시장만능주의를 옹호하는 보수주의자(conservative)에 맞서서 진보적인 사회경제정책을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벨 경제 학상 수상자로서 진보적 사회경제정책을 옹호하는 칼럼니스트로 유명 한 폴 크루그만의 저서(2007) 󰡔진보주의자의 양심(The Conscience of a Liberal)󰡕을 들 수 있는데, 여기서 liberal을 진보주의자로 번역하는 것 은 자유주의가 곧 진보주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한국에서는 자유민주주의 대표적인 형태인 대의민주주의 (representative democracy)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참여민주주의 (participatory democracy)와 정치적 자유를 넘어서서 사회경제적 민주 화를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를 자유민주주의와 대 립되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는 참여민주 주의와 사회민주주의로의 심화를 위한 전제조건이며, 자유민주주의 없이 참여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Rueschemeyer, Stephe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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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hens, 1992). 서구의 자유주의가 초기에는 소수의 부르주아지에게만 향유되었던 것이 사실이나, 자유주의를 배격하면서 인민민주주의를 표방 한 공산주의 체제들이 결국 전체주의로 귀결된 반면, 사회민주주의는 자유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서 사회적 시민권(social citizenship)을 실현시킨 것 이다. 이상의 개념적 논의를 바탕으로 본고는 민주주의 평가지표로서 널 리 사용되는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의 정치적 권리(political rights)와 시민적 자유(civil liberties), 그리고 시민적 자유의 세부 지표 들 중에 표현과 신앙의 자유(freedom of expression and belief)와 언론 자유(freedom of the press) 등의 지표를 사용하고자 한다. 프리덤 하 우스는 1972년부터 각국의 정치적 권리와 시민적 자유를 각각 7 등급 으로 평가해서 발표하고 있는데, 정치적 권리는 선거과정, 정치적 다원 주의와 참여, 정부의 기능 등 3개 항목을 토대로 하며, 시민적 자유는 표현과 신앙의 자유, 결사의 자유권, 법치주의, 개인의 자율성과 권리 등 4개 항목을 토대로 한다. 즉, 정치적 권리는 대체로 민주주의를 측정 하는 지표이고 시민적 자유는 자유주의를 측정하는 지표라고 할 수 있 다. 그리고 정치적 권리와 시민적 자유의 평균등급이 1∼2.5 사이면 ‘자 유’ 국가로, 3∼5 사이면 ‘부분자유’ 국가로, 5.5∼7 사이면 ‘부자유’ 국 가로 분류된다. 프리덤 하우스는 또 ‘선거민주주의’ 국가들을 지정해 발 표하는데, ‘정치적 권리’의 3개 항목에 대해서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면 ‘시민적 자유’의 수준을 불문하고 선거민주주의로 인정한다(Freedom House, 2013a).1) 프리덤 하우스는 정치적 권리의 3개 항목 및 시민적 자유의 4개 항 목별 점수도 공개하고 있다. 여기에는 표현과 신앙의 자유도 포함되는 데, 이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언론매체와 다른 형태의 문화적 표현의 자 유, 종교기관과 공동체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신앙을 표현할 자유,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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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자유와 정치적 세뇌로부터 자유로운 교육제도, 공개적이고 자유 로운 개인들 간의 토론의 허용 등 4개의 세부질문을 토대로 평가한다. 또한 표현의 자유의 중요한 부분인 “언론 자유(freedom of the press)” 에 대한 평가지표를 보다 세부적으로 마련하여 각국의 언론자유 지수 와 순위 등을 매년 발표하고 있다. 언론자유 지수는 법적 환경(30%), 정 치적 환경(40%), 경제적 환경(30%)의 세 가지 언론환경에 대한 평가를 합산하여 만들어진다(Freedom House, 2013b). 각국의 선거민주주의 및 자유민주주의의 수준, 그리고 언론자유와 표현의 자유의 수준을 평가함에 있어 프리덤 하우스의 평가지표는 상 당한 유용성을 가진다. 물론 민주주의나 언론자유와 같은 개념들을 객 관적인 수치로 정확히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서, 평가자의 주관 적 편향과 착오 및 현지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의 부족 등에 의한 오차 가 상당히 발생하며, 평가항목과 세부질문들의 변화로 시계열적인 비 교에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2) 이에 더해 프리덤 하우스 의 지표가 보수적, 냉전적, 또는 신자유주의적인 이념적 편향성을 노정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Bollen & Paxton, 2000; Giannon, 2010; Scoble & Wiseberg, 1981). 그러나 가스틸은 일반적으로 그러한 비판 은 평가지수들에 대한 자세한 검토에 기초하기보다는 프리덤 하우스라 는 기관에 대한 선입견에 기인한 것이라며 이념적 편향을 부인하였고 (Gastil, 1990), 전체적으로 볼 때 지표의 객관성과 신뢰성이 중대하게 손상될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3) 결론적으로 프리덤 하우스 지표가 가지는 장단점들을 고려하면서 다른 국제기관의 평가와 국내 자료들을 종합해서 분석하면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의 현황을 점검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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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유 없는 민주주의’로의 퇴행?

특 집

1) 표현의 자유의 후퇴: 언론 ‘자유’ 국가에서 언론 ‘부분자유’ 국가로 프리덤 하우스에 따르면 2012년 현재 세계 195개 정체(181개 국가와 14개 영토) 중에서 약 46 퍼센트에 해당하는 90개국이 ‘자유’ 국가로 분 류되고 있으며, 58개국이 ‘부분자유’ 국가로, 그리고 47개국이 ‘부자유’ 국가로 분류되었다. 그리고, ‘선거민주주의’ 국가는 118개국으로서 자 유국가 90개국 외에 부분자유국가 중 28개국이 포함되었다. ‘자유’ 국 가로 분류되는 90개국이 모두 자유민주주의의 기준을 어느 정도 충족 한다고 볼 수도 있으나, 보다 엄격한 기준으로 정치적 권리와 시민적 자 유 모두 1등급으로 분류된 국가의 수는 47개국으로서 전체 조사대상국 의 24 퍼센트에 해당한다. 한국은 정치적 권리 1등급, 시민적 자유 2등 급, 평균 1.5 등급으로서 광의의 ‘자유’ 국가에는 포함되나, 보다 엄격한 기준의 자유민주주의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4) 이는 한국이 선거민주 주의에서 이룩한 진전만큼 시민적 자유 측면에서 발전을 이루지 못했 음을 보여준다(Freedom House, 2013a).5) 다음으로 언론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프리덤 하우스 등의 평가 를 보면 한국의 자유화 수준은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나며 특히 이명박 정 권 하에서 심각한 후퇴를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프리덤 하우스의 ‘표현과 신앙의 자유’ 평가에서 한국은 16점 만점에 14점을 기록하고 있 는데, 조사대상 195개국 중 35 퍼센트에 해당하는 68개국이 16점(34개 국) 또는 15점(34개국)을 기록하고 있는 것에 비추어 한국은 표현의 자 유 수준이 높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앞에서 소개한 프리덤 하우스의 언론자유 지수는 100점(완전 부자 유)에서 0점(완전 자유)으로 점수가 낮을수록 언론자유가 높은 것을 나 타내는데, 0∼30점은 ‘언론자유’ 국가, 31∼60점은 ‘언론 부분자유’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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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61-100점은 ‘언론 부자유’ 국가로 분류된다. 한국은 2012년 언론자 유지수가 31점으로 ‘언론 부분자유’ 국가로 분류되고 있으며, 조사대상 197개국 중 64위를 차지하고 있다. 대만과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시민적 자유에서 2등급을 받고 있지만, 언론자유지수는 한국보다 우위 에 있어 ‘언론자유’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대만은 26점으로 47위, 일본 은 24점으로 40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민주화 이행 이후 1988년부 터 2009년까지는 ‘언론자유’ 국가에 속했으나, 2010년부터 ‘언론 부분 자유’ 국가로 강등되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Freedom House, 2011∼ 2013b). 프리덤 하우스뿐만 아니라 UN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의 한국 보 고서(UN 2011)를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들이 한국의 언론자유 내지 표 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지적하는 중요한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다.

2) 국가안보를 이유로 한 표현의 자유 제한 프리덤 하우스의 언론자유 보고서는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국가보안법의 적용을 확대하여 온라인상의 내용 검열을 강화하고 북한 으로부터의 뉴스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는 것을 언론자유 침해의 중요 한 문제로 들고 있다. 한국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친북적인 내용을 이 유로 차단한 웹사이트와 소셜 미디어 계정 수가 2009년 10개에서 2011 년에는 304개까지 증가했다가 2012년에 267개로 약간 감소했으며, 북 한을 찬양하거나 미국과 한국정부를 비난함으로써 국가안보를 위협한 다는 이유로 2009년에는 14,430개의 웹 포스트가 경찰에 의해 삭제되 었고 그 숫자가 2011년에는 67,000개로 늘었다가 2012년에 12,921개 로 줄어들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의 남용사례로서 24세의 사진작가인 박정근이 북한정부의 트위터 계정에서 온 메시지를 리트윗 하였다고 하여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된 사례를 들고 있다. 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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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북한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가지고 풍자적인 의도로 한 행위였음에 도 검찰은 박씨의 의도와 상관없이 북한의 선전을 유포하는 도구로 그 의 트위터 계정이 사용되었으므로 유죄라고 주장하였고, 법원은 그에 게 징역 10월에 집행을 유예하는 선고를 내렸다(Freedom House, 2010 ∼13b). 국가보안법, 특히 제7조의 고무찬양죄의 남용에 따른 표현의 자유 와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국제 인권단체는 물론 미국 국무성 의 인권보고서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이루어진 바 있으 며,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의 한국 보고서(UN 2011)와 여러 국 제적인 언론단체, 인권단체 등에서도 빠짐없이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 지고 있다. 특히 2012년 국제사면위원회가 발표한 한국의 국가보안법 에 대한 장문의 보고서는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 국가보안법의 남용 으로 표현의 자유뿐 아니라 관련된 학문, 결사, 여행의 자유 등을 부당 하게 제한, 억압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 다(Amnesty International, 2012).

3) 명예훼손죄 남용에 의한 표현의 자유 침해 다음으로 프리덤 하우스와 유엔 표현의자유 특별보고관이 주목하는 이 슈는 한국에서 명예훼손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들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에 관한 MBC의 <PD 수첩> 방영 과 관련하여 2009년 6월 네 명의 프로듀서와 한 명의 작가가 검찰에 의 해 기소되어 징역 5년의 구형까지 받았다가 법원에 의해 무죄 선고를 받은 일과 정봉주 전 민주당 국회의원이 2007년 대통령선거시에 당시 이명박 후보에 대해 주가조작사건과 관련하여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 로 징역 1년을 복역한 사례 등을 언론자유 침해의 대표적 사례로 제시 하고 있다(Freedom House, 2011-13b; UN, 2011). 오늘날 서구의 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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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명예훼손을 형사처벌하는 조항이 완전 삭 제되었거나 사실상 사문화한 경우가 많으며, 공적 인물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허위임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명예훼손을 한 경우가 아니면 민사적인 책임도 묻지 않는 추세다. 여러 국제기구들과 인권단체들이 명예훼손의 비형사범죄화 캠페인을 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서는 오히 려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을 지속적으로 강화 확대해 오고 있는 실 정이다(강양구, 2013; 박경신, 2008; 손태규, 2012; 유승희, 2013). 검찰연감에 발표되는 국가보안법 및 명예훼손 혐의 연도별 기소인 원수의 변화추이를 살펴보면 최근 10여 년 간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의 최대문제는 국가보안법보다도 명예훼손의 형사처벌 남용에 있다는 것 을 보여준다(Haggard & You, 2013). 국가보안법 위반 연도별 기소인 원수는 민주화 이행 이후 노태우 정부하에서는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김영삼 정부하에서 증가추세를 보이다가 1998년 김대중 정부 의 출범 이래로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를 보인다. 김영삼 정부 마지막 해인 1997년 609명에서 김대중 정부 마지막 해인 2002년에는 153명으 로,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에는 34명까지 기소인원수가 내려 갔다가, 이명박 정부 출범 이래 다시 상승하여 2011년에는 91명으로 증 가한 것을 볼 수 있다. 반면, 명예훼손 관련 기소인원수는 1997년 992 명에서 2002년에는 2,412명으로, 2007년에는 4,940명으로, 그리고 2011년에는 다시 10,314명으로 급증을 거듭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주목 할 사실은 명예훼손 관련 기소인원의 급격한 증가가 김대중 정부에서 부터 시작하여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진보와 보수정권을 가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증가해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명예훼손에 대한 검찰의 법집행에 대해서 보수, 진보정권을 막론하고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는 점이다. 노태우 정권 하에서 곽병찬 한겨레신문 기자 등이 노대통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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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비자금 관련 기사를 썼다가 명예훼손죄로 기소되었던 일, 김영 삼 정권하에서 권영해 국방장관과 김광일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중앙 일보 및 시사저널 기자들을 상대로 명예훼손죄로 고소하여 기자들이 구속되거나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던 일, 그리고 김대중 정권하에서는 김대통령을 용공 좌경 및 근거 없는 부패혐의 등으로 비난한 것에 대해 한국논단 이도형 등에 대해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내린 것, 노무현 정권 하에서 문재인 비서실장이 월간중앙 윤길주 기자가 자신의 명예를 훼 손했다고 고소하여 유죄선고를 받았다가 대법원에서 파기되어 무죄를 받은 일 등을 이러한 사례로 들 수 있다(손태규, 2012). 명예훼손죄와 허위사실공표죄 등이 정치적으로 남용되어 정부 정 책에 대한 비판과 정부 발표에 대한 합리적 의심까지 사법처리의 대상 으로 삼는 사례가 급증한 것은 이명박 정권출범 이래, 특히 미국산 쇠고 기 수입개방과 관련한 대규모의 촛불 시위 이후 앞서 거론한 <PD 수 첩> 사건에서와 같이 비판세력에 대한 당국의 억압적인 대응에서부터 본격화되었다(Freedom House, 2010∼13b; UN, 2011). 미네르바 사 건에서는 인터넷상에서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행한 정부의 경제정책 에 대한 비판에 다소의 오류가 있다고 하여 전기통신법상의 허위사실 공표죄로 기소하여 결국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긴 했지만, 당사자뿐 만 아니라 많은 네티즌들에게 심각한 위축효과를 초래하였다. 또한 천 안함 사건 이후 정부의 발표에 대해 의문과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에 게 명예훼손은 효과적인 제어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더구나 한국에서 는 허위가 아닌 사실을 적시하여도 명예훼손죄나 모욕죄 등으로 처벌 할 수 있으며, 검찰은 네티즌들에게 진실한 사실을 적시해도 타인의 명 예를 훼손하면 엄격한 법집행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하며, 실제로 단순 리트윗 한 번 한 것에 대해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로 기소를 하고 유죄판결을 내리기도 한다(박수진 등, 2012). 가령 김문수 서울시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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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의 경우 2012년 국회의원 선거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경쟁후 보를 풍자적으로 비판한 제3자의 트윗 메시지를 단순 리트윗한 데 대해 허위사실 공표죄로 1심에서 벌금 5백만 원을 선고받았다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사례도 있다. 명예훼손 소송에 따른 언론자유 침해에 대해 한국의 언론이 보인 행태도 특이하다. 보수언론이나 진보언론이나 언론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에는 힘을 합하는 것이 정상적이라 할 것이나, 우리 언론은 오 히려 정 반대되는 행태를 보여 왔다. 보수언론이 진보정권에 의해 명예 훼손 혐의로 사법처리를 당할 때 진보언론은 대체로 침묵하였고, 진보 언론이 보수정권에 의해 명예훼손 형사소송을 당할 때 보수언론은 강 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령 보수언론은 <PD 수첩> 사 건에서 제작진을 형사처벌하지 않는다고 재판부를 비난하였다.

4) 선거운동의 자유에 대한 광범한 제한 앞서 정봉주 전 국회의원과 김문수 서울시의원의 경우에서 보듯이 한 국에서 명예훼손이 특히 가혹하고 정치편향적으로 적용되는 게 선거공 간이다. 상대 후보자에 대한 명예훼손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죄와 후보자 비방죄로 가혹한 형사처벌에 처할 수 있는데, 특히 진실된 사실을 적시해도 공익 목적을 입증하지 못하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 는 후보자 비방죄는 OECD 국가 중 한국만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법 이다.6) 특히 지난 18대 대통령선거기간 중 박근혜 후보나 박정희 전 대 통령, 박지만 등 후보 가족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인터넷에 올린 많은 사람들이 무차별 기소를 당하였고 심지어 구속되는 경우도 있었다(표 현의자유 공대위, 2013). 이와 관련하여 최근 김어준, 주진우 기자와 안도현 시인 등이 국민 참여재판을 통해 배심원들로부터 무죄평결을 받은 데 대해 보수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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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는 배심원들이 지역적 배경에 따라 정치적 성향에 따른 판단을 한 다면서 정치적인 사건에 국민참여재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폈 고 진보언론에서는 국민참여재판을 옹호한 바가 있다. 그런데 보수와 진보 언론을 막론하고 간과한 문제는 이같이 정치적인 사건을 가지고 형사재판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점이다. 앞서 김문수 서울시의 원 사건의 경우는 국민참여재판이 아닌 법관들에 의한 재판이었지만 1심 재판부와 2심 재판부는 완전히 상반되는 판단을 하였다. 사실 미국 에서도 선거시기 후보자에 대한 허위사실 명예훼손에 대해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진위 여부를 판 단하는 일을 검찰과 법원에 맡길 때 발생할 수 있는 정치적 편견의 문제 인데(Day, 2009), 한국에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유럽안보협력기구(Organization for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 내 민주적 제도와 인권을 위한 사무소(Office for Democratic Institutions and Human Rights)에서 펴낸 선거법 검토 지침서를 보면 “후보자를 비방하거나 (허위사실의 공표로)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에 대해 형사처벌을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며, 국제연합(UN), 유럽안보 협력기구(OSCE), 미주기구(OAS) 등 국제기구 대표들이 모든 명예훼손 의 비형사범죄화를 촉구한 것을 인용하고 있다(OSCE 2013, 45). 선거 시기 후보자에 대한 허위사실공표 등에 대해서도 명예훼손의 비형사범 죄화라는 맥락에서 보고 있으며, 선거시기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요소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역대 공직선거시 한국의 검 찰이 선거사범 단속을 해온 실적을 보면 소위 ‘흑색선전’을 엄단한다는 미명하에 허위사실공표죄와 후보자비방죄를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 는 경향이 점차 강화되어 왔으며, 여당 후보를 비판한 사람들이 주된 타 깃이 되어 왔다(Haggard & You, 2013). 다음으로 검찰의 역대 선거사범 단속실적을 보면 소위 ‘불법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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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범의 비중이 작지 않은데, 이는 선진민주국가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 는 사전선거운동 금지 및 처벌조항 때문이다. 국회의원 선거기간을 14 일, 대통령 선거기간을 23일이라는 짧은 기간으로 정해 놓고 그 전에 선거운동을 하면 형사처벌을 가하는 한국의 선거법은 일본의 법제를 모방한 것이지만 일본보다도 더 엄격하게 법이 적용되고 있다(송석윤, 2005). 한국의 선거법은 선거운동 기간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선거운동 의 방법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규제를 가하고 있는데, 이처럼 선거운동 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기성정당과 현역 정 치인들에게 커다란 기득권을 부여하고 신생정당과 도전자들에게는 큰 불이익을 주는 것이 된다. 또한, 선거를 앞둔 시기에 4대강 사업이나 무 상급식 등 주요한 선거이슈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찬반 운동조차 금지 하고, 유명인사가 투표일에 투표독려를 하는 것까지 금지하는 것은 일 반 유권자들과 시민단체들의 알 권리와 정치적 표현의 자유까지 심각 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5) 인터넷 표현의 자유의 제한 앞서 국가보안법이 친북적인 내용에 대한 검열과 삭제, 차단조치등을 통해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데 사용된 것을 지적한 바와 같이 명예훼손과 허위사실공표죄 역시 인터넷상 정부와 고위공직자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는 편리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기존 형법상의 명예 훼손죄에 덧붙여 2000년에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가 신설되었 으며,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국가안보, 명예훼손, 음란물, 도박 등에 관 련되는 불법정보의 유통을 감시하고 제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광범위한 규제권한을 행사하는데, 위원들의 임 명과정에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정치 적으로 편향되기 쉬운 상황이다(UN,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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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인터넷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큰 논란이 된 이슈로 인 터넷 실명제를 들 수 있다. 인터넷 실명제는 익명 표현의 자유를 침해 하고 위축효과를 초래할 뿐 아니라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개인신상정보 의 노출위험을 증가시키는 문제점을 안고 있어 네티즌들의 반발이 컸 고 국가인권위위원회가 공식적으로 반대의견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부터 선거법과 정보통신망법등을 통해 도입, 실시되었다. 정보 통신망법상 실명제에 대해서는 2012년 8월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이 났으나, 공직선거법상의 실명제는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제한과 규제장 치의 도입 및 무차별적인 차단, 삭제조치 등과 많은 네티즌들에 대한 검 찰의 조사와 기소 및 형사재판 등으로 인해 여러 국제기구들의 한국의 인터넷 자유에 대한 평가는 매우 비판적이다. 프리덤 하우스는 2011년 부터 전년도 인터넷 자유에 대한 보고서를 별도로 발표하고 있는데, 한 국은 3년 연속해서 ‘부분자유’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한국의 인터넷 자 유지수(0은 완전 자유, 100은 완전 부자유를 나타냄)는 2010년에 32점 에서 2011년에 34점으로 더 나빠졌다가 2012년에는 32점으로 약간 회 복을 했는데, 이는 헌법재판소의 인터넷 사전선거운동 허용(2011년 12 월)과 정보통신망법상의 인터넷 실명제 무효화 결정(2012년 8월) 등을 반영한다(Freedom House, 2013c). 그럼에도 한국의 점수는 브라질 (32)과 같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아시아에서도 일본(22)은 물론 필리핀(25)보다도 훨씬 뒤지고 있고, 아프리카의 남아프리카(26), 케냐 (28), 나이지리아(31)보다도 뒤떨어지는 점수를 보이고 있다. 국경없는 기자들이 펴낸 󰡔인터넷의 적󰡕이라는 보고서에서도 한국은 ‘인터넷 감 시국’이라는 불명예 칭호를 받았다(Reporters without Borders, 2012). 오픈넷 이니셔티브에 의하면 한국은 갈등과 안보 영역에서 중국과 함 께 가장 심한 통제를 하는 나라다(OpenNet Initiative, 2012). 인터넷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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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활성화된 나라임을 자랑하는 한국이 인터넷 통제가 심한 나라로 비판받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6) 정부의 방송 통신에 대한 통제 프리덤 하우스와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을 비롯한 여러 국제기 구의 보고서들은 한국에서 언론자유에 대한 제약이 언론매체, 특히 방 송과 통신에 대한 정부의 통제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점에 심각한 우려 를 표명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측근인 최시중을 방송 통신위원회 위원장에 임명함으로써 이를 통해 KBS, MBC, YTN 등 경 영진 인사에 개입하였고, 편집권 독립과 언론자유를 지키기 위해 투쟁 한 많은 언론인들은 해고 등 징계를 당하였다. KBS, MBC 등 공영방송 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한국에서 방송통신위원회가 실질적으로 대통령 의 영향력하에 놓여 있는 현재의 구조(5명의 위원 중 위원장을 포함한 2명을 대통령이 임명, 나머지 3명은 국회에서 선임)는 근본적으로 정치 적 중립성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며, 박근혜 대통령도 친박계의 핵심 인물인 이경재 전의원을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함으로써 사실상 방송 통신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하에서 언론관련 입법 중 가장 큰 쟁점이 되었던 것은 종합편성 케이블 TV 채널의 도입에 대한 것이었다. 여당이 일방적인 ‘날치기’로 통과시킨 개정 신문법과 방송법은 재벌과 신문사의 투자를 허용함으로써 소위 ‘조중동’으로 불리는 3개 보수 일간지에 종편 방송 의 겸영을 허용함으로써 언론시장의 과점과 보수언론 지배체제를 강화 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았는데, 예상대로 이명박 정권은 이러한 우려를 현실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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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언론자유 지수의 추이 특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이명박 정권 출범 이래, 특히 2008년의 촛불시

위 이후로 언론자유 및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과 탄압이 증가해온 것 을 확인할 수 있다. 프리덤 하우스에 의하면, 한국은 노태우정권 이래 ‘언론자유’ 국가로 분류되어 오다가 이명박 정권 하에서 ‘언론 부분자유’ 국가로 하락하였다. 그런데, 한국의 언론자유지수의 세부적인 변화 추 이를 보면 김대중 노무현 정권 아래에서도 언론자유지수가 별로 좋은 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표 1>을 보면 한국의 언론자유지수 는 2001년에서 2009년까지 29점 내지 30점을 유지하여 간신히 언론자 유국 지위(0∼30점까지)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법적 정치적 경제적 환 경의 점수들을 보면 김대중 노무현 정권 하에서 경제적 환경은 16점 (2001년)에서 9점(2007년)으로 개선되었으나, 법적 환경은 3점(2001 년)에서 9점(2005년)으로 악화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하에서 는 정치적 환경의 악화가 두드러지게 보이고 있다. 언론의 경제적 환경에 대해 개선된 것으로 평가를 받은 주된 이유 는 언론기업들의 지배구조의 개선, 언론시장의 경쟁 활성화, 인터넷 접

<표 1> 한국의 언론자유지수와 언론환경별 지수의 추이, 2001∼2012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언론자유지수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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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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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환경 (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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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환경 (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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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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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

9

출처: Freedom House(2002∼2013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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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과 인터넷 언론의 확대 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법적 환 경 악화에는 명예훼손을 이유로 한 언론인과 비판세력에 대한 형사 및 민사소송을 매년 보고서에서 주요 이슈로 다룬 것으로 보아 명예훼손 죄의 남용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이고, 또한 인터넷 실명제의 도입 등 을 비롯한 인터넷 규제의 강화가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Haggard & You, 2013). 구체적으로 김대중 노무현 정권하에서 정부 최고위층 등 이 앞장선 명예훼손 형사소송 및 고액의 민사소송이 계속 증가했고, 자 유로운 선거운동을 제한하는 기존의 선거법 체계를 지속 내지 강화해 온 점, 지구당 폐지 등 정당활동의 자유까지 과도하게 제한하는 입법 등 을 통해서 표현의 자유를 후퇴시킨 측면이 있다. 특히 노무현 정부는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세계 유일무이한 3대 악법(인터넷 실명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인터넷 심의, 임시조치제도)”을 만들었 고, 이명박 정부 초기에 큰 논란이 되었던 ‘사이버 모욕죄’ 도입도 노무 현 정부에서 입안되었던 것이다(박경신, 2012). 또한, 노무현 정부 시 기 조중동에 의한 신문시장 독과점 규제 등 언론관계법 개정이 언론자 유 탄압이라는 보수언론의 반발 끝에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판결을 받은 것도 법적 환경 평가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8) 광범위한 시민적 자유의 제한과 법치주의의 후퇴 이명박 정부 하에서 시작된 표현의 자유의 후퇴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 후 중단, 개선되기는커녕 시민적 자유 전반의 후퇴로 이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장에 국민의 기본권 신장이라는 방향과는 거리가 먼 매우 보수적인 인물을 선택하고 방송통신위원장에 자신의 측근 정치인을 임명함으로써 표현의 자유의 신장과는 반대의 길을 걸 을 것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암시하였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은 철 저한 수사와 책임자 처벌 및 야당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재발방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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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련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정도였겠으나, 박근혜 정권은 국정원 사건 의 수사를 통해 정치검찰의 오명을 씻고자 했던 채동욱 검찰총장과 수 사팀에 압력을 가하고 경질하는 방향을 선택하였다. 양 건 감사원장의 사임에서 보듯이 임기가 보장된 독립기관장에게 압력을 행사해 물러나 게끔 한 것은 법치주의 경시와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교 조를 법외노조로 내몬 것은 결사의 자유와 노동권과 같은 기본권 존중 의 결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내란 음모 혐의에 대해 1심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정부가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을 청구한 것은 정치적 다원주의를 존중하지 않는 성향을 노 출하고 있다. 다수당의 날치기와 소수당의 물리적 저항이라는 악습을 끊기 위해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국회선진화법의 재개정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더니, 국회선진화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감사원장 임 명동의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한 것은 권력분립의 원칙을 무시하고 입법 부를 행정부의 시녀로 만들려는 시도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최근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박창신 신부에 대해 정부가 말꼬리 잡기 식의 ‘종북몰이’를 한 것은 표 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에 국가안보를 이용한 과거 군부독재정권의 구 습의 재현으로 비치고 있다. 2008년 촛불시위 이후 지나친 유언비어와 괴담의 확산으로 인한 사 회혼란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강화된 표현의 자유 제한은 이후 천암함 사건에 대한 의혹 제기를 안보논리와 ‘종북’ 프레임으로 억제하는 단계 를 거쳐서 최근에는 정권비판세력에 대해서까지 ‘종북’ 프레임을 활용 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시민적 자유 전반의 광범위한 후퇴로 발 전하고 있다. 나아가서 박근혜 정권은 정치적 다원주의, 권력분립, 법 치주의의 경시 및 훼손에까지 이르고 있어 ‘자유 없는 민주주의’로의 역 행을 급속하게 진행하고 있다. 또한, 국정원뿐만 아니라 군 사이버사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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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까지 조직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대통령선거에 대한 관권개입을 유야무야하는 데까지 이른다면 ‘선거민주주의’까지 부정하 는 길로 나아갈 것이라는 우려마저 품게 한다. 물론 한국이 1987년 이 전의 권위주의 체제, 나아가서 1970년대의 유신체제 수준으로까지 회 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그러나 ‘자유 없는 민주주의’로의 후 퇴는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현실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며, 지난 총선과 대선시에 최대의 정치적 이슈였던 경제민주주의 실현 못지않게 자유민주주의 실현의 과제가 박근혜 정권 내내 최대의 이슈 가 되지 않을까 전망된다.

3. 표현의 자유 후퇴와 자유민주주의 위기의 원인 민주주의 공고화의 성공사례로 여겨졌던 한국이 언론자유를 비롯한 표 현의 자유의 지속적인 후퇴에 이어 시민적 자유 전반의 후퇴, 나아가서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로까지 나아가고 있는 것은 해외에서는 물론 국내 의 정치학자나 일반 시민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는 점에서 그 원 인을 규명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여기에는 이명박 정권하에서 이루 어진 표현의 자유의 후퇴, 박근혜 정권 들어서 이루어지고 있는 광범위 한 시민적 자유의 후퇴뿐만 아니라 김대중 노무현 정권 아래에서도 한 국의 언론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까지 포함 해서 깊이 있는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문화적인 요인, 냉전의 유산, 일 본 법제의 영향, 그리고 정치적인 요인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문화적 요인으로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유교문화의 영 향을 들 수 있다. 박종민과 신도철은 아시아 바로미터 서베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한국인들의 다수가 위계적-집단주의적 가치관, 개인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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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공동체를 우선하는 가치관, 그리고 정부와 인민의 관계를 부모 와 자녀의 관계와 같은 것으로 인식하는 유교주의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Park & Shin, 2006).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 하는 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먼 이러한 가치관이 연령이 높을수록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강하게 나타나고 있어 장차 시간이 감에 따라 약화될 것으로 전망할 수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정부가 큰 저항을 받지 않고 표 현의 자유와 시민적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적 토양 이 되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 대만 등이 정치적 권리에 비해 시민 적 자유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는 공통된 이유가 바로 이러한 유교 문화의 영향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자 유지수가 일본은 물론 대만보다도 나쁘고 인터넷 자유지수는 유교문화 와 관계가 없는 필리핀보다도 훨씬 못한 것을 유교문화로 설명할 수는 없다. 또한 정치적 권리 등급과 1인당 국민소득, 그리고 정치문화(세계 가치관 조사에서 강력한 지도자에 대한 지지 정도)를 가지고 언론자유 지수를 설명하는 회귀분석을 해본 결과 정치문화가 통계적으로 유의미 한 설명력을 가지긴 하지만 실제 설명력은 크지 않고, 또 이 모델을 사 용해서 각국의 언론자유지수 예측치를 낼 경우 일본 대만 등은 예측치 가 실제 지수와 거의 차이가 없지만 한국의 경우는 실제 지수가 예측치 보다 훨씬 나쁜 것으로 나온다(Haggard & You, 2013). 이는 한국의 열 악한 언론자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요인 이외의 다른 변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무엇보다도 역사적, 정치적 요인을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여러 학자들이 분단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형성된 냉전·반공체 제가 한국 사회 자유주의의 빈곤에 대해 미친 영향을 중요하게 거론한 바 있다(김일영, 2008; 문지영, 2007; 박동천, 2010; 박찬표, 2008; 정태 욱, 2006; 최장집, 2002, 2011; 최태욱, 2011; Choi, 2009). 특히 한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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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세력은 자유민주주의와 반공을 표방했는데, 실제로는 반공을 명분 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권위주의를 정당화하였으며, 민주화 이 후에는 한편으로는 자유주의를 신자유주의와 동일시하여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주장하는 진보세력을 반자유주의, 포퓰리즘, 또는 좌파 사회 주의라고 비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과의 화해를 추구하는 정권이 나 세력을 친북정권 내지 종북세력으로 비판하였다. 즉, 한국에서는 보 수 우익에 의해 자유주의가 반자유주의 실천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 용된 것이다(김동춘, 2001). 그런가 하면, 한국의 진보세력은 자유민주 주의를 내세우며 분단체제와 반공독재를 합리화한 보수세력에 대한 반 발 속에서 자유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적으로 인식하였고, 분단극 복을 위한 민족주의와 자본주의 모순 극복을 위한 사회주의 변혁논리 가 발전하였다. 민주화 이후에는 상당수 진보세력도 자유주의를 신자 유주의와 동일시하여 반자유주의 노선을 취하거나 자유민주주의와 대 비되는 개념으로서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오랜 냉전적 반공체제하에서 좌우파가 공히 민족주의, 국가주의, 집단주의 등 비자유적인 경향성을 유지해 왔다. 냉전의 유산이 한국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권위주의적, 반자유주의적 문화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이다. 그러나 독일이나 이웃의 대만과 비교해 보더라도 한국이 민주화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또한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했음에도 불구하고 냉전적 사고와 실천이 점차 약화되기는커 녕 최근 수년간 강화되고 있는 현실을 단지 냉전의 역사적 영향만 가지 고 설명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가령 대만에서는 2008년 헌법재판소 가 공산주의에 대한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제한하던 법에 대해 위헌판 정을 내린 후 두 개의 작은 공산주의 정당이 합법적으로 등록을 하였다. 대만의 헌법재판소는 공산주의나 국토의 분단을 옹호하는 단체를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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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결국 정부가 개인들의 발언 내용이 이에 해당하 는지 여부를 심사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 되어 안보 위험을 빙자한 표 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에 이르므로 위헌이라고 본 것이다(Haggard & You, 2013). 냉전시기에도 공산주의 정당이 허용되어 온 미국이나 일 본의 사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한국에서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보안법 개정 내지 폐지 추진이 실 패로 돌아간 데 이어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 친북적인 발언은 물 론 정부의 천안함 사건 발표에 대한 의문제기나 박창신 신부의 연평도 포격 관련 발언에 대해서 종북으로 몰아붙이고 통합진보당에 대해 정 당해산 청구에까지 이르고 있는 상황은 미국이나 일본은커녕 대만의 경우와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 한국의 역사적 경험을 보더라도 민주화 이행 이후 노태우 정부하에서 냉전적인 대북대결이 상당히 완 화되어 남북기본합의서의 체결과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 등이 이루어 진 것은 물론 헌법재판소의 국가보안법 찬양 고무조항에 대한 한정위 헌 판결로 부분적인 법 개정이 이루어졌던 사실과 김대중 노무현 정부 하에서 남북화해정책 추진과 함께 국가보안법 남용이 거의 사라졌던 사실 등은 냉전의 유산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며, 최근 이명박과 박근혜 보수정권하에서 안보 논리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무기로 되살아나 고 있는 것은 냉전의 유산에 더하여 정치적인 요인이 복합되어 작용하 는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이 점에서 필자는 세 가지 중요한 측면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한국의 안보환경, 특히 북한정권의 호전적 돌출적 행동에 따른 남북관계의 불안정성이 냉전체제를 겪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도, 특 히 이웃 나라 대만과 비교해서도 다르다는 점이다. 특히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으로 인한 국제적인 긴장, 계속되는 도발 과 남북간의 긴장조성 등 북한의 행위가 한국 내 보수세력의 불안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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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우고 보수정권이 이러한 안보 불안감을 극대화하고 정치적으로 이용 할 수 있는 소지를 마련해 준 것이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과 대북 화해정책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북한이 1987년 대선 전에 대한항공 폭 파사건을 일으킨 이후로는 적어도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그렇게 큰 긴 장을 조성하는 행위가 없었다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한 반면, 김영삼 대 통령이 초기 한완상 통일부총리를 통해 대북화해정책을 추구하다가 냉 전적 대결적 구도로 돌아선 데에는 북한의 제1차 핵위기가 주요한 원인 이 된 것이 사실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으로 2000년의 역사적 남북정상회담 이후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남북화해와 경제교류 등 이 일정한 진척을 보이긴 했지만, 노무현 정부하에서 당시 집권당이 국 가보안법 개폐를 적극 추진했음에도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의 집요한 저 항과 반대공세에 막혀 실패에 이른 데에는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적 행 위와 제2차 핵위기의 발생 등 북한변수를 무시할 수가 없다. 대만의 경 우는 중국이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북한처럼 위협적 행동을 취하지 않고 분리독립운동에 대한 적절한 수위의 견제로만 대 응해온 것이 한반도 상황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또,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냉전적 대응양태와 이를 빌미로 한 표현의 자유 제한이 계속 강화되어온 데에는 지속적인 북핵위기와 함께 천안함 사건(북한 의 소행 여부에 대해 의문이 해소되지는 않았지만)과 연평도 포격은 물 론 지난해 대선 직전 미사일 발사로부터 시작해서 핵무기 실험과 개성 공단폐쇄 및 전쟁위기 조성 등이 직접적인 원인 내지 빌미를 제공한 것 이 사실이다. 다음으로 북한의 행위 못지않게 한국 내의 정치행위자들, 특히 주 요 정당들과 정치세력들의 이념적 지향성과 행태도 고려할 필요가 있 다. 가령 한국에서 대만과 달리 보수세력이 안보를 무기로 한 시민적 자유의 제한을 적극적으로 행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정당들의 정치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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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대북, 대중정책의 연관성이 상당히 다르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 다. 한국에서는 보수정당이 반북, 반공을 강하게 내세우고 진보정당이 대북화해 노선을 취한 반면, 대만에서는 보수정당인 국민당이 대중 화 해노선을, 진보정당인 민진당이 중국으로부터의 독립노선을 취한 것이 다. 따라서 대만에서는 과거 권위주의 시절 반공을 내세웠던 국민당은 현실적으로 대중 화해와 경제교류 강화를 추진하였으므로 냉전적인 반 공논리를 동원하는 표현과 결사의 자유 제한의 필요성과 정당성이 사 라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만에는 친공산당 세력이 강력하게 활동한 일이 없고, 최근 등록된 두 개의 공산당도 상징적인 수준에 불과하지 한 국의 통합진보당처럼 의회에 진출하거나 나름대로 강력한 정치세력으 로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에 보수 기득권층에게 전혀 위협적인 존재가 못 되는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친북적 성향을 드러내 온 정치세력 이 나름대로 강력하게 유지되어 왔기 때문에 보수세력의 위기의식을 부풀리는 데 활용할 수 있는 거리를 제공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하에서 표현의 자유 신장에 기대만큼 성과를 내 지 못하고 부분적으로는 후퇴 평가까지 받은 것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 과 진보 시민세력의 ‘자유주의’에 대한 경시를 보여준다. 앞에서 본 바 와 같이 명예훼손 형사 및 민사소송의 남용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도 행해졌으며, 이것이 이후 보수정권들이 정부 정책과 여당 후보에 대 한 비판을 억제하기 위한 무기로 더욱 강력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 측면이 있다. 인터넷 표현의 자유, 선거운동과 정치자금 모 집 및 정당활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데 있어서는 주요 정당들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으며,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언론개혁에 대한 접근은 비자 유주의적인 측면을 강하게 노정하였다. 즉, 조중동과 같은 보수언론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거나 압력을 가하기 위해 국가의 공권력에 의지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시 언론사 세무조사는 조중동만 대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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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할 수가 없어 전체 언론사로 확대한 결과 오히려 군소 언론사가 더 큰 피해를 받는 아이러니컬한 현상을 초래했는가 하면, 노무현 정부시 신문시장 독과점 규제를 핵심으로 하는 언론개혁법은 헌법재판소의 위 헌판결로 언론자유 침해라는 비판만 받고 말았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가 정파적인 인사를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임 명하고 이에 따라 공영방송을 비롯한 방송의 공정성 문제가 중요한 문 제로 부각되고 있지만, 이러한 공영방송 체제를 유지시켜온 김대중 노 무현 정부의 책임도 있다. 지난 해 국회 방송공정성특위에서 야당은 방 송통신위원회에 특별다수의결제 도입을 주장했는데, 과거 집권시절에 자유주의적 의식이 충분히 있었더라면 그 때에 특별다수의결제와 같은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방송 프로그램 내용의 공정성을 심의하려 한 접근은 최 근 손석희의 뉴스 프로그램이 징계를 당한 사례에서 보듯이 역효과를 초래하고 있다. 과거 진보정권의 비자유주의적 접근이 결과적으로 보 수정권이 방송을 유효하게 통제할 수 있는 인프라를 깔아준 것이다. 다음으로 정치제도적인 측면이다. 한국의 1987년 헌법은 대통령에 게 지나칠 정도로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있고 입법부의 권한은 상대적 으로 약하다. 여소야대로 인한 분점정부시에는 상당한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지만, 집권당이 원내다수를 점할 경우에는 대통령의 독주를 막을 장치가 거의 없다. 특히 보수정당이 집권을 해서 원내 과반의석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반자유주의적 조치를 취해도 이를 견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 된다. 그나마 한국이 민주화 이행 이후 상당기간 어느 정도 자유화에 진전을 이룬 것은 여소야대 분점정부가 빈번하게 발생한 덕분이 크다. 그러나 권위주의적인 CEO 스타일에 익숙한 이명 박 대통령의 집권시절 내내 여당이 원내 다수를 차지하였고, 체질적으 로 권위주의적 성향이 강한 박근혜 대통령도 여당이 원내 다수를 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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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으로써 대통령의 독주와 권한남용을 견제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 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하에서 언론자유 등의 후퇴가 거침없이 이루어 진 데에는 대통령의 권한에 대한 견제장치가 거의 없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다만, 2012년 총선 전망이 불확실할 때의 여야 합의에 따라 개 정된 국회선진화법상의 필리버스터 조항을 야당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해 대통령의 반자유주의적 독주에 효과적인 견제를 행사할 수 있 느냐가 박근혜 정권하에서 더 이상의 시민적 자유의 후퇴를 막아내는 데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4. 결론 민주주의 공고화의 모델 케이스로 칭송받던 한국이 지난 수 년 동안 표 현의 자유의 후퇴에 이어 광범위한 시민적 자유의 제한과 함께 법치주 의와 권력분립의 원리가 훼손되는 등 급속하게 ‘자유 없는 민주주의’로 퇴행하고 있다. 특히 정치민주화는 다 이루어졌다고 생각한 국민들에 게 이에 더해 경제민주화를 하겠다고 공언하고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 이 취임한 이래 이러한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 민주화 이후, 특히 김대 중 정부 이래로 국가보안법에 의한 표현의 자유와 인권침해가 축소되 어온 반면 명예훼손죄의 남용과 지나친 규제 위주의 선거법과 인터넷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중요한 이슈로 새롭게 떠올랐으며, 이명박 정부 이래로 정부의 방송 장악이 주된 이슈로 추가된 데 이어 천안함 사 건 이후 국가안보를 내세운 표현의 자유와 시민적 자유의 제한이 점차 강화되어 오다가 최근에 올수록 종북 프레임에 의한 냉전적 반자유주 의가 되살아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앞장서서 종북적 발언에 대해서는 용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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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반자유주의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민주 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이념과 사상에 대한 표현의 자유까지 관용한다 는 점에서 공산주의에 우위를 가지는 것인데, 박근혜 정권의 이러한 접 근과 행태는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이름 아래 스스로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한국사회는 이미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확고한 우위를 확립한지 오래일 뿐 아니라 종북세력이 체제에 큰 위협 이 된다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국민들에 게 북한의 신문 방송 등을 자유롭게 접하게 하고 또 친북적인 의견의 표 현을 자유롭게 허용한다고 하여도 체제에 위협이 되기는커녕 자유민주 주의의 우위를 보다 확고하게 입증하는 것일 뿐 아니라, 종북세력은 오 히려 대다수 국민으로부터 고립되어 영향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 점에서 박근혜 정부와 보수세력은 한국의 표현의 자유 증진과 자유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국가보안법의 개폐, 특히 제7조의 고무찬양 조항의 폐지를 촉구해 온 국제기구들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성찰할 필 요가 있다. 국제사면위원회 등 인권단체는 물론이고 유엔 인권위원회 나 미국 국무성이 오랫동안 국가보안법의 문제를 지적해왔고, 프리덤 하우스 경우는 제2차 대전 이후 공산주의에 맞서 싸워온 단체로서 여러 학자들에 의해 보수적, 신자유주의적 편향이 있다고 비판을 받아온 단 체이지만 한국의 국가보안법과 안보를 빙자한 표현의 자유 제한에 심 각한 문제를 제기해 오고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민주당을 포함한 범진보세력도 자유주의 및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경시와 과거 진보정권 집권시 표현의 자유 신장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시킨 측면에 대한 자기성찰이 요구 된다. 특히 명예훼손죄의 남용, 사전선거운동 금지 등 선거운동과 정치 자금 모집에 대한 지나친 규제 등 현역 국회의원들의 기득권 방어논리 에는 보수정당과 차이 없이 반자유주의적인 입장을 취해온 점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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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반성이 필요하다. 언론개혁과 방송공정성에 대한 비자유주의적 접근이 보수정권의 방송 통제를 위한 인프라 구축이라는 결과를 가져 오고 만 것도 인식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 표현의 자유가 후퇴하는 가운데서도 민주당과 진 보정당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제대로 싸우지도 않았다. 유엔 표현의 자 유 특별보고관이 2011년 장문의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에 대해 강한 비 판을 하고 표현의 자유 증진을 위해 필요한 법제도 개선 권고안까지 제 시해 줬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부 여당은 물론 야당들도 별 관심을 기 울이지 않았다. 유엔 특별보고관은 보고서에서 명예훼손의 비형사범 죄화 및 공무원과 공공기관의 명예훼손 소송금지, 인터넷 실명제 폐지 와 검열 등의 남용을 방지하여 인터넷상 의사와 표현의 자유 보장, 선거 전 의사와 표현의 자유 보장, 집회신고제를 사실상의 허가제로 운영하 는 관행 중지, 국가보안법 제7조의 폐지 등 국가안보를 이유로 하는 의 사, 표현의 자유 제한 금지, 방송사 사장과 경영진의 독립성을 보장하 는 효과적인 임명 절차의 확보, 신문과 방송 부문의 교차소유와 언론재 벌의 형성 금지 등 언론매체의 독립성과 다양성 확보 실현 등 광범위한 개혁을 강력히 촉구하였다(UN, 2011). 이 모든 사안들은 당연히 진보세력이 중요한 어젠다로 삼고 추진해 야 했을 사안들임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국회에서나 선거공간에서 의제 화하지 않은 것은 물론 범진보 시민세력도 경제민주화에만 매달린 나 머지 이를 이슈화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진보학계나 시민 단체에서도 자유민주주의를 참여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와 대립되 거나 열등한 개념으로 잘 못 이해하고, 사회경제적 민주화만 이룩하면 된다는 착각에 빠졌던 경향, 과거 언론개혁을 진보정권의 공권력을 통 해 이루려고 했던 접근 등에 대해서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최근 최장집 등 여러 학자가 우리 사회에서 자유주의의 빈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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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서 민주주의 강화를 위해 자유주의 또는 ‘진보적 자유주의’가 필요하 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본다(박동천, 2010; 박찬표, 2008; 안병진, 2008; 정태욱, 2006; 최장집, 2002, 2011; 최태욱, 2011; Choi, 2009).7) 진보세력이 표현의 자유 등 자유민주주의 확립의 기본적 과제를 등 한시한 결과 이제 보수정권은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적 후퇴를 기도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를 경시하고 사회경제적 민주 화에만 몰두해 왔던 진보세력의 성찰과 함께 안보와 자유민주주의 수 호를 명분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부정하는 보수세력의 반성 이 요구된다. 국정원 등 대선개입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넘어서 서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가칭) ‘표현의 자유 입법 특별위원회’를 설치 하여 유엔 등이 권고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개혁 을 추진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13. 12. 04 접수/ 2013. 12. 23 심사/ 2014. 01. 03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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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특 집

1) 박승우(2009)가 지적하고 있듯이, 프리덤 하우스의 선거민주주의 개념은 2008 년까지만 해도 선거과정에 직접 관련된 요소에만 국한했는데, 2009년부터 정치 적 참여/다원주의와 정부의 기능 항목을 추가하고 있다.

2) 언론자유 평가항목으로 2000년 이전에는 ‘억압적 행동들(repressive actions)’ 이라는 항목이 별도로 있었으나, 2001년부터는 과거 ‘억압적 행동들’에 포함되 었던 것들이 법적, 정치적, 경제적 환경에 통합되었다.

3) 프리덤 하우스의 홈페이지를 보면 이 기구가 2차대전시에는 자유민주주의의 적 으로서 파시즘에 대항하였고, 2차대전 이후에는 공산주의에 대항해 온 역사와 함께 1950년대 미국 내의 매카시즘(McCarthyism)에 대항해서도 싸웠다는 점 을 강조하고 있다. 4) 한국은 1987년의 민주화 이행 이후 정치적 권리 2등급, 시민적 자유 3등급, 평 균 2.5 등급으로서 광의의 ‘자유’ 국가로 인정받았으며, 이후 최초의 문민정부가 출범한 1993년부터 시민적 자유가 2등급으로 상승했고,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에 정치적 권리가 1등급으로 상승하여 지금까지 평균 1.5등급을 유지하 고 있다. 5) 2012년에 정치적 권리 1등급을 받은 59개국 중에서 47개국이 시민적 자유에서 도 1등급을 받았고 12개국만이 2등급을 받았는데, 한국은 일본, 대만, 몽고, 이 스라엘, 헝가리 등과 더불어 이 그룹에 속한다. 아시아 국가 중에는 정치적 권리 와 시민적 자유 둘 다 1등급을 받은 나라가 없고, 모두 시민적 자유 면에서 결핍 을 보이고 있다.

6)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유승희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의함. 7) 최장집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초판(2002)에서 자유주의와 공화주의를 한국민주주의 심화의 중요한 이념적 자원으로 제시하였다가 개정판(2005)에서 는 이를 삭제하였으나, 이후(진보적) 자유주의를 다시금 주창하였다(최장집, 2011; Choi,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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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강양구(2013). 인터뷰: 한국 ‘표현의 자유’ 고발한 유종성 교수, “광주 5.18 모욕, ‘명 예훼손죄’ 처벌에 반대합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31106 173616 김동춘(2001). 한국의 우익, 한국의 ‘자유주의자’: 상처받은 자유주의. 󰡔사회비평󰡕, 30호, 11∼27. 김일영(2008). 현대 한국에서 자유주의의 전개과정. 󰡔한국정치외교사논총󰡕, 29집 2호, 375∼413. 문지영(2007). 민주화 이후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의미와 과제. 󰡔사회과학연구󰡕, 15권

2호, 94∼129. 박경신(2008). 국제인권법상 표현의 자유 및 대한민국 법제의 평가. 󰡔홍익법학󰡕, 13권

3호, 87∼121. 박경신(2012). 진보는 표현의 자유와 충돌하는가: 자본주의 시장의 경쟁을 억제하는 사상의 자유시장. 홍세화 외, 󰡔지금 여기의 진보󰡕, 서울: 이음. 박동천(2010). 󰡔깨어있는 시민을 위한 정치학 특강󰡕. 서울: 모티브북. 박수진·박성철·노현웅·오승훈(2012). 󰡔리트윗의 자유를 허하라: 선거법은 어떻 게 우리를 범죄자로 만들었나?󰡕. 서울: 위즈덤하우스. 박승우(2009). 민주적 이행 이후 필리핀 민주주의의 성격과 한계. 󰡔동남아시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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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동향과 전망 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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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동향과 전망 90호


초록 특 집

한국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

‘자유민주주의’의 위기 유종성

‘민주주의 공고화’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진 한국이 이명박 정권 하에서 표현의 자유의 후퇴를 겪은 데 이어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시민적 자유 전반의 후퇴와 함 께 ‘자유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본고의 목적은 한국의 표현의 자 유와 민주주의 후퇴 현실에 대한 진단과 아울러 그 원인을 성찰해 보고자 하는 데 있다. 다수의 한국민이 권위주의적 유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냉전ㆍ 분단체제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보수세력은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도 실제 로는 안보와 반공을 이유로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권위주의를 정당화했다. 민주화 이후 진보세력과의 정치적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북한정권의 핵무 기 개발과 호전적 도발적 행동들이 보수세력에 의한 냉전적 반자유주의의 재활 용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또한 진보세력이 자유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경시 또 는 배척하는 경향을 가져온 것이 진보정권하에서도 언론개혁에 대한 비자유주 의적 접근과 함께 명예훼손죄의 남용, 인터넷 표현의 자유 제한, 선거운동 자유 의 제한 등을 지속, 강화해 온 바탕이 되었다. ‘자유 없는 민주주의’로의 퇴행을 막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를 경시, 폄하해 온 진보세력의 성찰과 자유민주주 의 수호를 명분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해 온 보수세력의 반성이 요구된다.

주제어 ∙ 한국, 자유민주주의, 자유 없는 민주주의, 자유주의, 표현의 자유, 시민 적 자유

한국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 43


Abstract

Korean Democracy and Freedom of Expression The Crisis of Liberal Democracy Jong-sung You

South Korea has been widely considered a “consolidated democracy”, but it has experienced deterioration in freedom of expression under Lee Myung-bak government and overall civil liberties under Park Geun-hye government, rendering its liberal democracy in serious jeopardy. This is explained partly by the prevalence of authoritarian Confucian values among many Koreans, but its explanatory power is limited. During the cold war era, the conservative ruling elite had effectively denied “liberal democracy” and justified its authoritarian rule in the name of anti-communism and national security, while officially proclaiming to advocate liberal democracy. After democratic transition, the conservatives have been increasingly reusing cold-war anti-liberalism in fierce political competition with the progressives, which has been justified by North Korean regime’s nuclear program and belligerent provocations. The progressives also have ignored or rejected liberalism and liberal democracy, which partly explains why the progressive governments adopted illiberal approach to media reform and continued and even intensified abuse of criminal defamation, restrictions on freedom of expression on the internet, and wide restrictions on election campaigning. In order to prevent South Korea from regressing toward a “illiberal democracy”, the progressives should reconsider the values of liberalism and liberal democracy, and the conservatives should reconsider their suppression of liberal democracy in the name of defending liberal democracy. Key words ∙ South Korea, liberal democracy, illiberal democracy, liberalism, freedom of expression, civil liber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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