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향인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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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향인(原鄕人)



1 어렸을 때, 나의 인종학 제1과에 등록된 이는 민난인(閩南 人)이다. 그 사람은 우리 부친의 사업상의 친구였다. 대략

내가 서너 살 즈음에, 그가 자주 우리 집에 와서 점심을 먹은 뒤에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때로는 계속 머물면 서 다음 날이 되어서야 가기도 했다. 그 사람은 키가 매우 크 고 아주 잘 웃는 편이었다. 우리 집에서 머물 때면, 그다음 날 떠날 때 반드시 나와 둘째 형에게 1자오8) 또는 2자오의 돈을 주곤 했다. 그는 대체로 좋은 사람이었다. 나는 차차 나이가 들어 가면서 그제야 적지 않은 민난인이 우리 마을 에 와서 장사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항상 그 들에게서 절인 생선, 베 또는 실타래를 사셨다. 이때 나는 민난어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인종학의 두 번째 인종은 일본인이다. 그들은 항상 제복 을 입고, 모자를 쓰고, 허리에 긴 칼을 차고, 코 아래에는 짧 은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며 위풍당당하게 다녔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사방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으며 사람들은 그들을 멀리 피했다. “일본인이 왔다! 일본인이 왔다!”

8) 자오(角): 중국 돈 위안(元)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화폐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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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들은 이렇게 우는 아이를 달랬다. 그러면 아이들 은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일본인은 사람을 잘 때린다고 하던 데, 그가 아마 울고 있는 아이를 데려갔기 때문일 것이다!

2 막 여섯 살이 지난 어느 날, 할머니께서 나에게 마을에 오신 선생님 한 분이 원향인(原鄕人)9)이라고 말씀하셨고, 아버 지는 나를 그 댁으로 보내 공부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 원향 선생님은 나에게 매우 의외의 느낌을 주었다. 그는 비록 몸 이 비쩍 마르고, 누런 낯빛에, 등이 좀 굽기는 했지만, 그 밖 에는 우리들과 무슨 다른 점이 있는지 분간해 낼 수 없었기 9) 원향인: “원향”은 ‘고향’으로 해석될 수 있는 단어지만, 대만 사람들에게 있 어 “원향”이라는 말은 좀 더 다층적인 의미를 가진다. “원(原)”은 ‘근원’, ‘원류’, ‘본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대만 사람들이 중국 대륙에 대해 가지고 있 는 혈연적․문화적 유대감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글자이기도 하다. 다른 한 편으로 “원향”과 “원향인”에는 대만 사람들의 대륙에 대한 유대감과 자부심뿐 만 아니라 ‘실망’과 ‘경멸’이라는 정반대되는 정서가 혼재되어 있기도 하다. 그 리움 때문에 “원향”을 찾아가지만, 직접 체험해 본 “원향”은 자신들이 꿈꾸던 곳이 아니라는 안타까움도 담겨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륙 중국”, “중국인”과 같은 물리적인 의미뿐 아니라 “머나먼 고향 땅”, “잃어버린 고향(그래서 더욱 그립고 애틋하게 느껴지는 고향)”, “고향을 멀리 떠난 사람들” 등 정서적인 의 미로 확장해서 읽을 수 있는 단어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원향”과 “원향인”을 원어 그대로 두었음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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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이었다. 민난인과 일본인은 정말이지 좀 달랐다. 그들 과 우리들은 정말이지 달랐다. 학교를 파하고 돌아와서 나 는 곧장 할머니께 이 일에 대해 말씀드렸다. 할머니는 다 듣 고 나서 웃으면서, 우리들도 원래는 원향 사람이며, 우리들 은 원향에서 이곳으로 이사 온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사실은 내 예상을 크게 벗어나는 것이었다. 나는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럼, 우리 아빠도 이사 온 거예요?” 나는 잠깐 멈칫했다 가 할머니에게 물었다. “아니란다! 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란다.” 할머니께 서 말씀하셨다. “왜 이사 온 거예요?” “이 할미도 잘 모르겠구나.” 할머니는 한탄하시며, “아마 그곳에서 사람이 살아갈 수 없어서였겠지”라고 대답하셨다. “할머니.” 나는 잠깐 생각을 하고 나서 다시 말했다. “원 향은 어디에 있어요? 아주 멀어요?” “서쪽에 있지. 아주아주 멀단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 어서, 여기로 올 때 배를 타야 한단다.” 원향, 바다, 배! 이것은 정말이지 일종의 거대한 학문이 었다. 나는 입을 딱 벌리고 말문이 막혀서 또 멍하니 있었다. 할머니는 예전에 나에게 이러한 사실들을 가르쳐 주신 적이 없었다. 27


그다음 해 선생님이 바뀌었다. 듣자 하니 또 원향 사람이 었지만, 이전 선생님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 사람은 좀 뚱뚱 한 몸에, 붉고 윤기 나는 얼굴에, 눈은 생기 있었으며, 오른 쪽 뺨에는 크고 까만 사마귀가 있었고, 목소리는 크고 낭랑 했다. 이전 선생님과 비교해 볼 때, 이번 원향 선생님이 훨 씬 멋졌다. 다만 가래가 많이 끓어서 가래를 아무 데나 뱉는 다는 점이 좀 그랬다. 게다가 개고기 먹는 것을 좋아했는데, 특히 새끼 밴 개를 좋아했다. 당시 마을에서는 거의 집집마 다 개를 길렀기 때문에, 개고기를 먹으려고 하면 먹기가 매 우 손쉬웠다. 이 때문에 2년도 안 되어, 그의 몸은 더욱 살쪘 고 낯빛은 더욱 붉어졌지만, 가래는 더 많이 끓게 되었다. 그가 개를 잡는 솜씨는 매우 훌륭했다. 그가 왼손의 엄지 와 식지로 개의 목을 잡고서, 오른손에 칼을 들고 개의 목을 단칼에 내리치면, 개는 미친 듯이 컹컹거리며 땅바닥에서 몇 걸음 기다가 비틀거렸다. 그렇게 잇달아 세 마리를 잡았다. 그는 또 사람들에게 어떻게 개의 꼬리를 이용해 창자를 뒤 집는지 가르쳐 주었는데, 정말이지 더없이 훌륭하고 편리한 방법이었다. 그는 우리 마을에서 3년을 가르쳤는데, 나중에 목에 큰 종기가 나서 백방으로 치료했으나 효과가 없자 곧장 짐을 싸서 떠났다. 듣자 하니, 이후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죽었 고, 머리는 바다에 버려졌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 모두 그가 28


개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종기가 생긴 것이라고들 했다. 하지만 그는 가르치는 방법이 뛰어났고, 성실한 좋은 선생이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 모두 매우 안타깝게 생각 했다. 여덟 살에는 학교에 입학해 일본 책을 공부해야 했기 때 문에, 나는 다시는 시골 서당에서 공부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세 번째로 알게 된 원향 사람 역시, 개고기와는 끊 을 수 없는 인연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가 결코 외지인이 아니었다는 점인데, 내가 알기로는 오히려 예전부터 쭉 마을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었 다. 그에게는 아내가 있었는데, 부부 두 사람 모두 이미 나 이가 들었으며, 딸이 하나 있었다. 그는 눈이 좋지 않았고, 손발도 약간 떨었지만, 개를 때리기 시작할 때면 오히려 거 칠어지고 사나워졌다. 그가 개를 죽이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을 때, 애 어른 할 것 없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원을 그 리듯 그를 빙 둘러섰다. 그의 집 입구에는 목면 나무 한 그루 가 있었는데, 그는 자기 개를 나무 그루터기에 매어 두고, 두 손으로 아주 굵다란 나무 몽둥이를 휘두르기 시작하더니, 있는 힘껏 개의 몸을 향해 내리쳤다. 그는 시력이 좋지 않았 기 때문에, 그의 몽둥이는 개의 숨통을 빨리 끊어 버릴 수 있 는 급소를 번번이 빗나갔다.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쓸데없이 개의 고통만 심해졌다. 개는 밧줄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29


이리저리 날쌔게 피하며, 비틀거리고 발버둥치면서, 매우 처참하게 짖어 댔는데, 피가 개의 혀를 따라서 입 주위로 방 울져 떨어졌다. 온 마을의 개가 귀신 들린 것처럼 미친 듯 짖 어 대고 있었지만, 둘러서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은 오히 려 병풍처럼 조용하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둘째 형이 나에게 구역질하지 말라고 하면서 두 손을 몸 뒤로 숨기게 했다. 붉은 피와 미친 듯 짖어 대는 개 소리는, 때리는 자의 살 기를 더욱 자극해, 개에게 몽둥이가 내리꽂혔다. 퍽! 퍽! 갑 자기 개의 머리가 몽둥이에 붙더니, 확 튀어서 바닥에 떨어 졌고, 코와 눈에서 전부 피가 흘렀다. 개의 복부는 맹렬하게 들썩거렸고, 사지는 땅을 마구 긁어 댔다. 개는 버둥대며 간 신히 다시 일어섰다. 하지만 무정한 몽둥이가 다시 내리쳤다. 나는 둘째 형 곁에 바싹 붙어 있었다. 둘째 형은 한 손으 로 내 머리를 감싸 안고는 “무서워하지 마! 무서워하지 마!” 하고 나를 달랬다. 처절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지나간 뒤, 내 가 다시 눈을 뜨니, 그 가련한 동물은 피범벅 속에서 뻣뻣하 게 누워 있었다. 배의 기복은 더욱 빠르고 맹렬하게 들썩였 고, 사지는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둘째 형이 마침내 나를 데리고 그 자리를 떴다. 몇몇 어른들이 비스듬히 마주 보이는 곳, 시골 가게 앞의 돌담에 모여 앉아 이 일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다.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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