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이름따라: 명동20년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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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그리운 이름 따라

−명동 20년 이봉구 지음 강정구 엮음

대한민국,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4


오랑캐꽃과 남궁연(南宮蓮)

젊은 여배우 남궁연(南宮蓮)은 숨 가쁜 무대생활 속에서 남 몰래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그리 예쁜 얼굴은 아니나 어 딘가 남방의 애수가 서린 듯한 눈동자와 쾌활하고도 정열적 인 몸가짐이 누구에게도 정이 들게 하였다. 무대에서 벗어나면 거침없이 명동 거리 다방을 드나들었 다. 놀기를 좋아하고 ‘프시킨’의 시를 줄줄 외우기도 하는 문 학소녀적인 교양이 있어 자리가 어울리었다. 그 무렵 그러니까 일천구백사십육년 봄부터 사십구년 겨 울까지의 명동 거리는 낭만이 넘쳐흘렀다. ‘에덴’ 다방에 이어서 손소희(孫素熙) 전숙히(田淑禧) 유 부용(劉芙蓉) 세 여인이 ‘마돈나’라는 다방을 내어 이채를 띠 었다. 이 다방엔 김동리(金東里) 조연현(趙演鉉) 김송(金 松)을 비롯한 문협(文協) 사람들이 모였고 중국에서 돌아온 김광주(金光洲) 그리고 밤낮 취해 있는 듯한 이용악(李庸 岳)의 사나운 얼굴이 자주 나타났다. 곱슬머리 올백 흑테 안경 아무렇게나 걸친 양복 차림에서 고독한 방랑인(放浪人)의 인상을 갖게 하였다. 고향이 함경 북도 경성(鏡城)이라던가, 그래서인지 이용악의 몸에선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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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北方)의 냄새가 진하게 풍기었다. 정신과 생활이 그대로 어름 속에 꽃이 피고 지는 북쪽이었다. 일정 때 이용악의 생활은 참담한 방랑이요 고독한 탈출의 연속이었다. 어느 때는 최재서(崔載瑞)가 하던 인문사(人文 社)에서 일을 보며 사무실 걸상 위에서 잠을 자고 먹다가 이 것도 지탕할 수 없어 고향으로 숨을 돌리려 달려간 고향이었 으나 그곳에선 경찰서 유치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시찰인(要視察人)의 예비검속에 걸리어 그 속에서 해 방을 맞이해 서울로 뛰어 올라온 것이다. 지독한 고생살이로 청춘을 보냈으면서도 이용악에겐 방랑의 애수와 낭만이 풍 기었다. 술이 취하면 억센 함경도 사투리로 곧잘 <분수령 (分水嶺)> <낡은 집> <오랑캐꽃>의 자기 시를 무아경 에 읊조리는 것이었다.

북쪽은 고향 그 북쪽은 여인이 팔려 간 나라 머언 산맥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 다시 풀릴 때 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 마음은 눈 감을 줄 모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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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을 읊으고 나서 다시 그는 <오랑캐꽃>을 애 수 서린 얼굴로 대폿집에서 흥얼거렸다.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닷집도 버리고 강 건너로 쫓겨 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 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 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년이 몇백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독 가마도 털 메투리5)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해빛을 막아 줄께 울어보렴, 목노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그러나 <북쪽>의 <오랑캐꽃>을 노래하던 이용악도 오장환의 뒤를 이어 명동 거리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어느 때 어느새 사라져 갔는지 그의 단골 대폿집 주인도 괫 심하고도 섭섭하다는 표정이었다.

5) 털 메투리: 털 미투리. ‘메투리’는 ‘미투리’의 방언(강원, 경상, 함경, 황 해)으로 삼이나 노 따위로 짚신처럼 삼은 신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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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에 이어 ‘남강’ ‘미네르바’ ‘오아시스’ ‘고향’ ‘코롬 방’이 문을 열었고 ‘에덴’과 나란히 지금은 방송 드라마를 쓰 고 있는 김광조(金光祚) 젊은 부부가 ‘라아뿌룸’이라는 다방 을 내어 이 집엔 이계원(李啓元) 윤길구(尹吉九) 이진섭(李 眞燮) 강문수(姜文秀)를 비롯한 방송국 친구들이 모여들었 고 부산(釜山) 피난 시절에 남포동 ‘스타 ― ’ 다방에서 약을 먹고 자살한 시인 전봉래(全鳳來)가 살다싶이 하고 있었다. 이 여러 다방에 남궁연은 서슴지 않고 드나들며 떠들었고 어느 땐 돈을 보이며 ‘동순루’ 배갈집에서 술자리를 베풀어 기분을 내었다. 거리에 쏟아져 나온 양담배 가운데 ‘모리스’를 좋아하여 술만 취하면 마구 피워 버리었다. 박인환(朴寅煥)이하고는 친구가 되어 돌아다녔다. 이러한 남궁연의 사랑 때문에 고민 하고 있다는 소문이 거리에 퍼졌다. 박인환과는 우정(友情) 관계이지만 이번 상대자는 극장 주변에 살고 있는 처자가 있 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처자가 있는 사람과의 사랑은 남궁연에게도 어찌할 길이 없는 수난이었다. 시공관(지금의 국립극장)을 비롯해 부민관(府民舘 ― 지금의 국회의사당) 수도(首都)극장의 무대 위에서 좋은 연 기를 보여 주는 반면에 처자가 있는 사람과의 얽힌 사랑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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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에 남궁연은 술을 마시면 곧잘 자기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러다가도 “에잇 나만 그런가, 김양춘(金陽春)이는 처자 있는 이서 향(李曙鄕)과 심영(沈影) 두 사람 속에 끼어 사랑 때문에 고 생을 하고 있는데.” 스스로 자기를 위로하는 남궁연이었다. 남궁연의 말대로 그 무렵 김양춘을 사이에 놓고 이서향과 심영의 삼각관계는 극장 주변에 큰 화제가 되어 있었다. 충무로 삼가에 있는 김양춘의 집을 이서향은 심각한 얼굴 로 그 바쁜 시간에도 매일같이 찾아갔고 그런가 하면 심영 역시 김양춘을 만나러 갔다. 이 두 사람이 다 처자가 있는 사람들인데 비상한 관심을 갖게 했고,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두 사람을 똑같 은 위치에서 대하고 있는 김양춘의 자세가 주목을 끌었다. 시공관 앞은 연극을 보러 오는 수많은 사람들로 물결쳤 다. 이 앞을 극단 ‘아랑(阿娘)’의 뒤를 이어 ‘낙랑극회(樂浪 劇會)’ 민중극장(民衆劇場)을 비롯한 여러 극단의 주역(主 役)급 일류 배우들이 지나다니고 있기 때문에 구경꾼으로 늘 붐비었다. 연출가(演出家) 안영일(安英一) 이서향(李曙鄕) 박춘 명(朴春明) 허집(許執)을 비롯해 어느 때는 중국옷 차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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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이 앞을 지나는 황철(黃澈) 그리고 심영 김선영(金鮮英) 이재현(李載玄) 박창환(朴昌煥) 문정복(文貞福) 이 속에 남궁연도 한몫 끼는 얼굴이었다. 남궁연은 연극을 하면서 문학을 좋아하는 여인이었다. 이것은 그의 친구 박인환에게서 받은 영향이라고 남들은 말 할 때 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헤어질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현 상태를 그대로 지속해 나 갈 수도 없는 딱한 환경에서 또 무대에 나서야만 하는 그의 생활은 곧잘 술 푸념에서 숨을 돌릴 수 있었던 모양이다. ‘피엑스’ 주변에 우굴거리는 아이들을 찾아가 껌도 사 오 고 향내 진한 양주도 사 들고 와서 맛을 보자고 하다가도 “다음 공연 때문에 몸을 아껴야지 그렇지요? 그렇지 않다 면 속상하는데 한잔 마시고.” 가부간의 의사를 물으면 “물론 그렇지 않지, 물으나 마나야!” 어느 때고 반대편에 나서는 사람뿐이었다. “그래 마시고 보자, 마시고 그 힘으로 멋진 연기를 보여 야지.” 기분을 내다가도 “취해 있는 동안은 잊을 수 있지만 이거 참 큰일 났어.” 시름에 잠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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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처자 있는 사람과의 사랑, 즉 내 신세 때문이야.” “웬만하면 끊어 버리지.” “그럴 수도 없고.” “그러면 윤심덕(尹心悳)이처럼 정사(情死)를 해 버리든 지.” “죽을 수도 없고.” “이거 뭐 이토록 시시해. 그럼 죽기가 싫거던 안기영(安 基永) 김현순(金顯順)이처럼 어디로 멀리 달아나 버리든지.” “달아날 형편도 못 되고.” “아니 이거 정말 꼴불견인데, 못나 빠진 꼴 보기 싫다. 집 어치워라.” 앞에서 소리를 치자 “그래 당신들 말대로 남궁연은 시시한 여자다. 집어치우 자, 끊지도 못하고 죽지도 못하고 도망도 못 치는 이 바보, 내 마음을 아는 바카스여! 대답을 하라.” 무대 연기 이상으로 열을 띤 목소리로 조니·워카 병을 높이 쳐들어 흔들다가 남궁연은 자기 먼저 두 잔을 단숨에 마시고 나서 “시시한 여자 얘기는 집어치우고 우리 그날의 팔·일오 로 돌아가자. 저희 마음대로 삼팔선을 그어서 국토를 양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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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 놓고 이제 미소공위(美蘇共委)란 무슨 수작이냐. 고하 (古下) 선생은 해방된 조국 땅에서 동족의 손에 쓰러지고 이 거 안 되겠어. 우리 팔·일오 그날의 감격으로 돌아가자.” 무대 위의 연기가 무색할 정도로 취해 붉게 타는 얼굴로 소리를 치는 게 아닌가. “아니 갑자기 정치 연설을 하나?” “연극배우는 정치를 알아서 안 되나. 이거 왜 이래, 어떻 게 무관심할 수 있나, 나라가 있고서 연극이지.” “동감이요. 정치에 참여는 삼가야겠지만, 정치에 무관심 할 순 없지. 항상 올바른 비판의 양식(良識)은 지니고 있어 야지, 그런 의미에서 한잔.” 술잔을 남궁연 앞에 내어밀어 술을 청하는 다방 손님이 있었다. “누구세요?” “동무는 아니고 동지올시다.” “동지!” “연극을 좋아하는 동지라는 뜻 나는 좌익(左翼)도 아니고 우익(右翼)도 아니요. 중간(中間)이올시다.” “중간이 있을 수 있어요. 어느 쪽이든 분명해야지요. 약 해 빠진 기회주의자는 필요 없어요.” “그러면 궁연 씨는 어느 쪽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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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좌익은 아니예요.” 쏘아붙이고 나서 일행 세 명과 더불어 ‘미네르바’ 다방에 서 거리로 나왔다. 거리에 나선 남궁연은 “우리 ‘오아시스’로 갑시다.” 서늘하게 꾸며 논 다방 ‘오아시스’로 가자는 것이다. “위스키 마시고 ‘오아시스’라!” “속을 식혀야지, ‘오아시스’는 찬 커피 맛이 그만이예요.” 일행은 남궁연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팔·일오 기념 경축 전후라 거리에는 전에 없이 사람들이 들끓었다. 미군(美軍)들 틈에 흑인(黑人) 병사가 끼어 검은 피부색에 힌 잇빨로 거리의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이 뒤를 따르는 꼬마와 장사치들로 번잡했다. “담배 사세요.” “꽃 사세요.” 양담배 장수 꽃 장수가 명동 거리에서 행인 앞으로 다방 으로 술집으로 스며들었다. “아줌마, 꽃 하나 팔아 주세요.” “꽃?” “네, 저는 아줌마가 제일 좋아요.” “얘가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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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정말이예요.” “어디가 좋으냐?” “다 좋아요.” “얘가 보통 단수가 아닌데.” “장삿속이 아니고 진정이예요.” “진정이다. 이거 큰일 났구나.” “기분이 좋지 않으시면 오늘은 그만두시고 다음날 팔아 주세요.” “기분! 기왕이면 오늘 팔아 주지.” 꽃다발을 사들고 돌아서는데 “그 꽃은 아줌마 애인에게 드리세요.” 소녀의 깜찍한 인삿말에 남궁연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자 “아줌마 같은 분에게 애인이 없을라구요.” 소녀는 미소를 지으며 달아나 버렸다. “나도 저 애한테 정이 들었어.” 매일같이 만나게 되는 꽃 장수의 말 한마디가 이토록 정 이 들게 하는 시절이었다. 꽃을 들고 ‘오아시스’로 들어서자 “오늘은 무슨 일이 생길 모양이군.” 차를 마시고 있던 극단 친구 하나가 농을 걸자 “생긴 일도 걱정인데 또 무슨 일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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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 일이라니.” “모르고 물으시는 거예요?” “내가 어떻게 알아, 궁연 씨 ‘스캔달’을.” “정말 놀리시는군요.” 앉지도 않고 남궁연은 ‘오아시스’를 나와 버렸다. 떳떳치 못한 애정 관계 때문에 이런 놀림감이 되는구나 하는 데서 불쾌하고도 서글픈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뒤를 따르던 일행도 행동 통일이나 한 것처럼 거리로 나 왔다. 공연이 없는 날은 으례 명동 거리로 나오는 남궁연, 이 소 문을 듣고 정부(情夫)의 본부인이 명동 거리에 나타났다.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남편을 찾아보고 또 남편의 정부(情 婦)인 남궁연을 만나 톡톡히 따져 보려는 데서였다. “나타났다는데!” “누가?” “무서운 사람.” “무서운 사람이라니.” “그 사람의 부인 말이야.” 박인환은 남궁연을 위해 신경을 쓰고 있었다. 기분이 맞 는 남궁연이 애정 문제 때문에 시달리고 있는 게 가엽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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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날 것 없어, 궁연 씨가 강탈한 게 아니고 저쪽에서 온 것이니까?” “누가 겁난대, 여자끼리 만나면 이야기가 통하겠지.” “통하는 길은 헤어지는 길밖엔.” 젊은 총각인 박인환은 아직까지 사랑의 가시밭길을 모르 고 있었다. 만나 보고 그 부인에게서 불쾌감을 느끼는 날은 음악이고 뭐고 모두가 귀찮은 남궁연에겐 독한 술 몇 잔이 그대로 마 음의 벗이 되어 주었다. 어느 날 밤 남궁연의 마음을 달래는 술자리가 ‘동순루’에 서 벌어졌다. 박인환을 비롯해 몇 사람이 모였다. “오늘 밤은 한번 멋지게 놉시다.” 남궁연이 기분을 내었다. “자금이 딸리는데.” “술값 걱정은 마세요. 이 집은 내가 얼마든지 통하는 집이 니까.”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 요전 날 밤같이.” “요전 날 밤이라니.” “김동리(金東里) 씨의 <황토기(黃土記)> 출판 기념회 날 밤, 끝난 뒤 우리가 따로 이 집에서 놀잖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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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 그날 밤.” 그날 밤은 유쾌하고도 즐거운 밤이었다. 그 밤을 생각하고 남궁연은 각자 주량대로 마시고 놀자는 것이었다. 창밖엔 소리 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가 오잖아, 됐어, 오늘 밤 기분은.” 이 바람에 술잔이 빨리 돌았고 제일 먼저 취해 버린 남궁 연이 또 “그날의 팔·일오 그 감격으로 돌아가자.” 연설인지 대사(臺詞)인지 낭독인지 분별할 수 없는 소리 가 떨려 나왔다. “정치적 아지·프로는 집어치웁시다.” “무식하면 침묵이 제일. 이것은 김기림(金起林)의 시 <우리들의 팔월로 돌아가자>예요.” “음, 김기림 씨의 시!” 김기림을 좋아하는 박인환이 눈을 번쩍이며 귀를 기울 였다.

들과 거리, 바다와 기업(企業)도 모두 다 바치어 새 나라 세워가리라 한낱 벌거숭이로 돌아가 이 나라 주춧돌 괴는 다만 조악 돌이고자 원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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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 우리들의 팔월로 돌아가자.

명예도 지위도 호사스런 살림 다 버리고 구름같이 휘날리는 조국의 깃발 아래 다만 헐벗고 정성스런 종이고자 맹세하던 오 ― 우리들의 팔월로 돌아가자.

어찌 닭 울기 전 세 번뿐이랴, 다섯 번, 일곱 번, 그를 모른다 하던 욕(辱)된 그날이 아파 땅에 쓸어져 얼굴 부비며 끓른 눈물 눈뿌리 태우던 우리 들의 팔월 오 ― 팔월로 돌아가자.

나의 창세기(創世記) 에워싸던 향(香)기로운 계절(季 節)로

썩은 연기 벽돌 더미 먼지 속에서 연꽃처럼 혼란히 피어나던 팔월 오 ― 우리들의 팔월로 돌아가자.

남궁연의 낭독이 끝나기가 무섭게 좌중은 일제히 “그렇다. 그날의 감격, 그 팔월로 돌아가자. 삼팔선은 무 엇이며 미소공위(美蘇共委)란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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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치며 술상을 뚜드렸다. 사실 날이 갈수록 팔·일오 감격은 사라지고 통일은 아득 한 채 정치적 혼돈 속에 희망보다 절망이 가슴을 누르던 시 기였다. 남궁연이 어떻게 이 시를 알고 있었는지 흐뭇한 일이었다. “나는 순수한 연극인으로서 무대에서 살다 죽을 각오니까.” 늘 입버릇처럼 이 말을 되풀이한 남궁연이 육·이오 이후 명동 거리에서 사라져 버렸고 구·이팔에도 그는 보이지가 않았다. “살아 있으면 안 나올 리가 있나, 죽었거나 넘어갔거나 했 기에 얼굴이 안 보이지.” 지난날 정든 거리의 꽃 장수까지 그를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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