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장군전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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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장군전


큰 뜻을 품은 임경업이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가다

화설1) 대명2) 숭정3) 말에 조선국 충청도 충주 달천4) 땅에 한 사람이 있으니, 성은 임이요 이름은 경업이라. 어려서부 터 학업에 힘쓰더니 일찍 부친을 여의고 자모5)를 지효(至 孝)로 섬기고 형제 우애하며 농업에 힘쓰니 종족6) 향당7)이

칭찬하더라. 경업의 위인이 관후(寬厚)하여 사람을 사랑하고 매양 이 르되, “남자가 세상에 나매 마땅히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

1) 화설(話說): 고전소설에서 이야기를 시작할 때 쓰는 말. 2) 대명(大明): 중국 명나라가 자기 나라를 스스로 높여 이르던 말. 3) 숭정(崇禎): 중국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의종(毅宗) 때의연호(1628∼1644). 명나라가 망한 뒤에도 조선은 청나라 연호를 쓰기 싫어 이 연호를 사용했음. 4) 달천(達川):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 부근에서 발원하여 괴산군을 지나 충 주시 서쪽에서남한강에 합류되는 하천. 남한강 수계의 최남부에있는 지류. 5) 자모(慈母): 자식에 대한 사랑이 깊다는 뜻으로 ‘어머니를 ’ 이르는 말. 6) 종족(宗族): 성(姓)과 본(本)이 같은 겨레붙이. 7) 향당(鄕黨): 자기가 태어났거나 사는 시골 마을. 또는 그 마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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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을 섬겨 이름을 죽백8)에 드리울지니,9) 어찌 초목(草 木)같이 썩으리오?”

하더라. 이러구러 십여 세 되매 밤이면 병서(兵書)를 읽고, 낮이 면 무예와 말달리기를 일삼더니, 무오년에 이르러 나이 십 팔 세라. 과거 기별을 듣고 경사10)에 올라와 무과 장원하여 즉시 전옥11) 주부12)를 출륙13)하니, 어사14)하신 계화15) 청 삼16)에 안마추종17)을 거느려 대로(大路) 상으로 행하니, 도

8) 죽백(竹帛): 서적(書籍). 특히 역사를 기록한 책을 이르는 말. 종이가 발명 되기 전에 대쪽이나 헝겊에 글을 써서 기록한 데서 생긴 말. 9) 드리울지니: 이름이나 공적 따위를 널리 전하여 후세에 자취를 남길지니. 10) 경사(京師): 한 나라의 중앙정부가 있는 곳. 여기에서는 ‘서울을 ’ 가리킴. 11) 전옥(典獄): 전옥서(典獄署). 조선시대에 죄수를 관장하던 관서. 서울 중 부 서린방(瑞麟坊: 현재 종로구 세종로 1가 부근) 의금부 옆에 있었음. 태조 가 조선을 건국하고 관제를 정할 때 고려의 전옥서를 답습하여 관원을 정했 음. 죄수를 관장하는 곳으로 오늘의 교도소와 같으며, 그 상부 기관인 형조 는 매월 월령낭관을 교대로 파견하여 날마다 전옥서에 수감되어 있는 죄수 를 살펴보았음. 12) 주부(主簿): 종6품의 실무 벼슬. 13) 출륙(出六): 조선시대에 참하(參下)에서 육품으로 승급하던 일. 14) 어사(御賜): 임금이 내려줌. 15) 계화(桂花): 계수나무 꽃. 16) 청삼(靑衫): 관원이 조정에 나아가 하례할 때 입던 예복인 조복(朝服)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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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道路) 관광자18)가 그 위풍(威風)을 칭찬 않을 이가 없더 라. 삼일(三日) 유가19)를 마친 뒤에 조정의 말미20)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가 모친을 뵈오니, 모친이 옛일을 추감21)하여 일희일비(一喜一悲)하더라. 경업이 인리22) 친척을 모아 즐

에 받쳐 입던 옷. 남색 바탕에 검은 빛깔로 가를 꾸미고 큰 소매를 달았음. 17) 안마추종(鞍馬騶從): 안장을 갖춘 말과 윗사람을 따라다니는 종. 18) 관광자(觀光者): 구경하는 사람. 19) 유가(遊街): 조선시대에 문과·무과의 최종 합격자들이 했던 시가행진. 대개 합격자 발표를 한 뒤 3일 동안 했음. 합격자들은 왕과 문무백관이 참 석한 가운데 근정전에서 창방의(唱榜儀)라는 의식을 치른 뒤, 의정부나 예 조에서 행하는 축하연인 은영연(恩榮宴)을 받음. 은영연이 끝난 다음 날에 는 문무급제자들이 모두 문과 장원급제자의 집에 모였다가 함께 대궐에 나 아가 왕에게 사은례(謝恩禮)를 드림. 다음 날에는 급제자가 함께 무과 장원 급제자의 집에 모였다가 함께 문묘(文廟)에 나아가 알성례를 치렀음. 친 척·친지를 불러 잔치를 여는 문희연(聞喜宴), 선배의 집을 찾아다니며 감 사를 드리는 회문연(回門宴), 자기를 뽑아준 시관을 초대하여 은문연(恩門 宴)을 열기도 했음. 대과·소과를 막론하고 새로 급제한 사람에게는 3∼5

일 동안 유가가 허락되었음. 이것은 일종의 시가행진으로 말을 타고 어사화 를 꽂은 급제자들이 천동(天童)을 앞세워 길을 가는데, 이때 악대가 음악을 연주하고 광대가 춤을 추며 재인(才人)이 잡희(雜戱)를 부렸음. 20) 말미: 일정한 직업이나 일 따위에 매인 사람이 다른 일로 말미암아 얻는 겨 를. 휴가. 21) 추감(追感): 추억하여 느낌. 22) 인리(隣里): 이웃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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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후에 모친께 하직하고 직사23)에 나아갔더니, 삼 년 만에 백마강 만호를 하여 임소(任所)에 도임(到任)한 후로 백성 을 사랑하여 농업을 권하며 무예를 가르치니 이로부터 백마 강 선치(善治)하는 소문이 조정에 미치었더라. 차시(此時) 우의정 원두표24)가 탑전25)에 주 왈,26) “신이 듣자온즉 천마산성은 방어(防禦) 중지27)라. 성 첩28)이 퇴락29)하여 형용(形容)이 없다 하오니 재조30) 있는 사람을 보내어 수보31)함이 마땅할까 하나이다.” 상(上)이 왈(曰),

23) 직사(職司): 직무에 따라 책임지고 맡아서 하는 사무. 24) 원두표(元斗杓): 1593(선조 26년)∼1664(현종 5년).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자건(子建), 호는 탄수(灘叟)·탄옹(灘翁). 첨지 중추부사 송수(松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수군절도사 호(豪)이며, 아 버지는 지중추부사 유남(裕男)이다. 박지계(朴知誡)의 문인임. 25) 탑전(榻前): 왕의 자리 앞. 26) 주 왈(奏曰): 아뢰어 말함. 27) 중지(重地): 매우 중요한 땅. 28) 성첩(城堞): 성가퀴. 성 위에 낮게 쌓은 담. 여기에 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 하거나 공격하거나 함. 29) 퇴락(頹落): 낡아서 무너지고 떨어짐. 30) 재조: ‘재주의 ’ 원래 말. 31) 수보(修補): 허름한 데를 고치고 덜 갖춘 곳을 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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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을 경이 천거하라.” 우의정이 다시 주(奏)하되, “백마강 만호 임경업이 족히 그 소임을 당하리로소이다.” 상이 즉시 경업으로 천마산성 중군32)을 제수(除授)하시 니, 경업이 유지33)를 받잡고 진졸34)을 호궤35)할새, 모든 토 졸36)이 각각 주찬37)을 갖추어 드리는지라. 경업이 친히 잔을 잡고 왈, “내 너희에게 은혜 끼친 바 없거늘, 너희 등이 나를 이같 이 위로하니 내 한잔 술로 정을 표하노라.” 하고 잔을 들어 권하니, 모든 진졸이 잔을 받고 사례 왈, “소졸38) 등이 부모 같은 장수를 일조(一朝)에 원별(遠 別)을 당하오니 적자39)가 자모를 잃음과 같소이다.” 32) 중군(中軍): 조선시대에 각 군영(軍營)에서 대장이나 절도사, 통제사 등의 밑에서 군대를 통할하던 장수. 33) 유지(有旨): 조선시대 승정원의 담당 승지를 통하여 명령을 받는 이에게 전달되는 왕명서(王命書). 34) 진졸(鎭卒): 각 진영(鎭營)에 속한 병졸. 35) 호궤(犒饋): 군사들에게 음식을 주어 위로함. 36) 토졸(土卒): 토박이 병졸. 37) 주찬(酒饌): 술과 안주. 38) 소졸(小卒): 병졸이 상관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말. 39) 적자(赤子): 갓난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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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멀리 나와 하직하더라. 경업이 경성에 올라와 이조판서를 보건대, 판서 왈, “그대의 아름다운 말이 조정에 들리매, 내 우상40)과 의논 하여 탑전에 아뢴 바라.” 하거늘 경업이 배사41) 왈, “소인 같은 용재42)를 나라에 천거(薦擧)하여 높은 벼슬 을 하게 하시니 황감무지43)하여이다.” 하고 인하여 입궐 사은(謝恩)한 후에 우의정을 보건대, 우 상 왈, “들은즉 그대 재조가 만호에 오래 둠이 아까운 고로 조정 에 천거한 바니 바삐 내려가 성역(城役)을 사속히44) 성공하 라.” 하거늘 경업이 배사 왈, “소인 같은 인사(人士)로 중임을 능히 감당치 못할까 하 나이다.”

40) 우상(右相): 우의정. 41) 배사(拜謝): 절하며 감사함. 42) 용재(庸才): 평범하고 졸렬한 재주. 43) 황감무지(惶感無至): 황송하고 감격스럽기가 그지없음. 44) 사속히: 아주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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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인하여 하직하고, 천마산성에 도임한 후에 성첩을 돌 아보니 졸연히 수축(修築)하기 어려운지라. 즉시 장계(狀 啓)하여 장정군(壯丁軍)을 발(拔)하여 성역함을 청한대, 상

이 즉시 병조에 하교하사 건장한 군사를 택출(擇出)하여 보 내시니라. 이때 경업이 군사와 백성을 거느려 성역을 할새, 소를 잡 고 술을 빚어 매일 호궤(犒饋)하며 친히 잔을 권하여 왈, “내 나라 명(命)을 받자와 성역을 시작하니 너희는 힘을 다하여 부지런히 하라.” 하고 백마를 잡아 피를 마셔 맹세하고 다시 잔을 잡아 왈, “나는 여등(汝等)의 힘을 빌려 나라 은혜를 갚고자 하노 라.” 하고 춥고 더우며 괴롭고 기쁨을 극진히 염려하니, 모든 군 졸이 불승감격45)하여 제 일같이 진심(盡心)하는지라. 일일(一日)은 중군이 친히 돌을 지고 군사 중에 섞여 올 새, 역군(役軍) 등이 쉬거늘 중군 또한 쉬니 한 역군이 이르 되, “우리 그만 쉬고 어서 가자. 중군이 알새라.”

45) 불승감격(不勝感激): 감격을 이기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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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거늘 중군이 소(笑) 왈, “임 중군도 쉬니 관계하랴.” 하니 역군 등이 그 소리를 듣고 일시에 놀라 돌아보며 더욱 감격하여, “어서 가자. 바삐 가자.” 하거늘 중군이 그 말을 듣고, “더 쉬어가자.” 한즉 역군 등이 일시에 일어 가니라. 차후로 이렇듯 진심하 매 불일성지46)하여 일 년 만에 필역(畢役)하되, 한 곳도 허 수함이 없는지라. 군사를 호궤하고 상급(賞給)하여 이르되, “너희 힘을 입어 나랏일을 무사(無事) 필역하니 못내 기 꺼워하노라.” 하니 역군 등이 배사 왈, “소인 등이 부모 같은 장군님 덕택으로 일 명도 상한 군 사가 없사옵고, 또 상급이 후하시니 돌아가오나 그 은덕을 오매불망(寤寐不忘)이로소이다.” 하더라. 중군이 즉시 필역 장계를 올리니, 상이 장계를 보시 고 기특히 여기사 가자47)를 돋우시고 그 재조를 못내 칭찬

46) 불일성지(不日成之): 며칠 안 걸려서 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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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더라. 차시는 갑자년 팔월이라.

47) 가자(加資): 조선시대 관원들의 임기가 찼거나 근무 성적이 좋은 경우 품 계를 올려주던 일. 또는 그 올린 품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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