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딸들_맛보기

Page 1

알렉상드르 뒤마에게1)

1) <알렉상드르 뒤마에게(A Alexandre Dumas)>(1853)는 1854년 ≪불의 딸들≫의 서문으로 삽입된 것이다. 이 글은 1844년 3월 10일 ≪라르티스트 (L’Artiste)≫에 발표된 <비극 소설(Roman tragique)>의 서문을 약간 수 정하여 그대로 되살려 놓은 것이다. 알렉상드르 뒤마가 1853년 12월 10일 ≪총사(Le Mouquetaire)≫에 발표한 <내 독자와의 한담(Causerie avec mes lecteurs)>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네르발이 <몽상의 시(Les Chimères)>를 ≪불의 딸들≫ 속에 넣고, 뒤마에 대한 답신을 그 서문으로 채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마치 ≪로렐라이(Lorely)≫ 의 서문을 쥘 자냉에게, 또한 ≪멋쟁이 보헤미안(La Boême galante)≫을 아르센 우세에게 헌정했듯이 ≪불의 딸들≫을 알렉상드르 뒤마에게 헌정 한 것이다. 네르발은 1853년 11월 30일 인쇄소 감독 아벨에게 보낸 짤막한 편지에서 “…‘서문’은 이러한 추억들에 대한 열쇠와 관계를 제공할 것입니다”라고 밝 히고 있듯이, 뒤마에 대한 답신 겸 서문이 된 이 텍스트는 1853년에 겪은 시 인의 정신병 발작에 대한 일종의 변명과 그것이 정신병이 아니라 문학적 상상력의 한 표현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상상해 낸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한 예로 이 ‘편지-서문’을 제시하고, 그 증거 로 ≪불의 딸들≫에 실린 작품들을 제시한 것이다. 더욱이 이 편지-서문은 1854∼1855년 네르발의 마지막 작품인 ≪오렐리아(Aurélia)≫까지 예고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오렐리아(Aurélia)≫의 정식 제목은 ‘Aurélia ou Le Rêve et la vie(오렐리아 또는 꿈과 삶)’인데 흔히 예의 약칭으 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친애하는 선생, ≪로렐라이≫를 쥘 자냉에게 헌정했던 것 처럼2) 이 책을 당신에게 바칩니다. 나는 그에게 지금 당신 에게 하는 것과 꼭 같은 명목으로 사의를 표해야 했습니다. 몇 년 전, 사람들은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는 나 의 전기를 썼던 것입니다. 며칠 전, 사람들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당신은 아주 매혹적인 글 가운데 몇 행을 내 영혼의 묘비명에 할애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상속재산 을 미리 당겨 받은 것과 같은 영광입니다. 어찌 감히 내 생전 에 이런 눈부신 화관들을 머리에 얹겠습니까? 나는 겸손한 태도를 보여야 하겠지요. 그러니 내 유해에 바친 그토록 많 은 찬사 중에서 많은 부분을 거두어 달라고 대중에게 빌어 야 하겠습니다. 내가 아스톨프의 본을 따서 그 유리병의 어 렴풋한 내용물을 찾아 달까지 갔었고,3) 그래서 희망하는 바

2) 1841년 2월 24일 네르발은 ‘강경증 쇠약’ 또는 ‘실어증’이라는 병명으로 마 담 생 마르셀 요양원에 입원했다. 쥘 자냉은 그 당시 네르발이 사망한 것으 로 오인하여 상당히 긴 추도사를 바친 바 있었다. 네르발은 1852년 6월 21일 에 발표된 ≪로렐라이≫의 서문 <쥘 자냉에게(A Jules Janin)>에서 빈정 거리는 투로 글을 썼던 사실을 여기서 상기하고 있다. 3) 아리오스토(Ariosto)의 ≪분노한 롤랑(Roland furieux)≫(1516, 1532)에 등장하는 기사들 중의 한 명인 아스톨프를 언급하고 있다. 이 작품은 46편 의 노래로 된 희극적 영웅 서사시로서 사라센의 왕 아그라망과 사를마뉴의 싸움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싸움보다는 기사들의 사랑과 대결, 환상 적인 장면 등이 더 부각된 작품이다. 네르발이 상기하는 부분은 아스톨프가

3


와 같이 내 사고를 일상적인 위치로 되돌려 놓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 나는 더 이상 이포그리프를 타고 있지 않으 며, 인간들이 보기에 흔히 이성이라고 부르는 것을 되찾았 으니 잘 생각해 봅시다. 다음은 지난 12월 10일, 나에 관해 당신이 썼던 글의 일 부입니다.

그는 여러분이 생각하듯 매혹적이며 뛰어난 정신의 소 유자였습니다. 그에게 때때로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다행스럽게도 당사자나 친구들이 심히 우려할 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무슨 일이 몹시 그의 마 음을 사로잡고 있을 때, 상상력이라는 저 공상이 잠시 이 성을 쫓아내기도 하는데, 이성은 공상의 연인 격에 불과 한 것이지요. 그러면 꼭 카이로의 아편 흡연자나 알제의 해시시 중독자처럼 꿈과 환영으로 채워진 그 두뇌 안에

이성을 잃은 롤랑을 구해 내는 장면이다. 아스톨프는 성 요한의 도움을 받 아 이포그리프라는 하늘을 나는 말을 타고 달나라로 간다. 그는 그곳에서 지상에서 잊어버린 모든 것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유리병에 롤랑의 이성을 담아 온다. 지상으로 내려온 아스톨프는 롤랑에게 유리병에 있는 이 성을 들이마시게 하여 그의 이성을 되찾게 한다.

4


상상만이 전능하게 남아 있게 되고, 그래서 상상력이라 고 하는 이 방랑자는 불가능한 이론들 속으로, 실현 불가 능한 책들 속으로 그를 던져 넣습니다. 때로는 그가 동방 의 왕 솔로몬이 되어 정령들을 불러오는 증표를 다시 찾 아내기도 하고, 시바의 여왕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그 정령들의 날렵함과 권능에 대해, 이 여왕의 아름다움과 풍만함에 대해 그가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비 하면 요정 이야기나 ≪천일야화≫는 아무것도 아닙니 다. 그럴 때면 친구들은 정말 그를 동정해야 할지 아니면 부러워해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때로는 크리미아의 술 탄, 아비시니아의 백작, 이집트의 공작, 스미른4)의 남작 이기도 합니다. 또 어느 날 자신이 미쳤다는 생각을 하고 는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를 들려주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쾌활하고, 그가 거쳐 지나온 우여곡절이 얼마나 재미있던지 알렉산드리아에서 암몬5)에 이르는 불타는 듯한 길 위에 솟아 있는 것보다 더 그늘이 많고 시원한 오아시스들이 가득 찬 몽상과 환영의 고장으로 이끌어 가는 이 안내자를 따라 가고 싶어서 모두들 자기도 그렇

4) 스미른(Smyrne): 오늘날 이즈미르라 부르는 에게 해에 면한 터키의 항구 도 시. 5) 암몬(Ammon): 리비아 사막의 오아시스를 일컬음.

5


게 되고 싶어 할 정도였습니다. 또 어떤 때는 우수가 그 를 위한 시의 여신이 되는데, 그럴 때 할 수만 있다면 여 러분, 눈물을 참아 보세요. 베르테르도, 르네도, 앙토니6) 도 그보다 더 가슴 에는 탄식을,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오열을, 그보다 더 정다운 말을, 그보다 더 시적인 외침 을 토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7)

친애하는 뒤마, 당신이 앞서 말했던 그 현상을 설명해 보 도록 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자신을 상상의 인물들과 동일 시하지 않고서는 창작을 할 수 없는 이야기꾼들이 있습니 다. 우리의 오랜 친구 노디에가 어쩌다 자신이 혁명기에 단 두대에서 처형되는 불행을 겪었는가를 얼마나 확신을 갖고 이야기했는지를 아시죠. 그의 말에 설득된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게 그가 자신의 목을 다시 붙이게 되었을까 자문하게 됐지요….8)

6) 뒤마의 드라마 <앙토니(Antony)>(1831)의 주인공. 이 작품은 남편과 아 내와 그 연인이라는 삼각관계의 불행한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주인공 앙토니는 태생이 불분명한 사생아라는 굴레 때문에 사랑에서도 삶에서도 모두 버림받는 처절한 인간으로 그려져 있다. 7) 1853년 12월 10일 ≪총사≫에 실린 알렉상드르 뒤마의 글의 일부로, 네르 발은 테아트르 프랑세와 관련된 이 글의 앞부분을 생략하고 있다. 8) 샤를 노디에(Charles Nodier): 19세기 전반 프랑스의 소설가. 위고, 뮈세 등

6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