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암문집_맛보기

Page 1

靜庵文集 정암 문집


<지식을만드는지식 문집>은 인류의 유산으로 남을 만한 작품만을 선정합니다. 오랜 시간 그 작품을 연구한 전문가가 정확한 번역, 전문적인 해설, 풍부한 작가 소개, 친절한 주석을 제공하는 고급 문집입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문집

靜庵文集 정암 문집 왕궈웨이(王國維) 지음 류창교 옮김

대한민국,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4


편집자 일러두기 ∙ 이 작품은 ≪왕궈웨이 유서(王國維遺書)≫(上海古籍出版社, 1983, 第一版, 16冊, 上海書店出版社, 1996, 第二次 印刷, 10冊) 에 수록된 ≪정암 문집(靜庵文集)≫(第三冊, pp. 331∼552)을 저본으로 옮긴 것입니다. ∙ 이 책은 한국어로는 처음 출간됩니다. ∙ 이 책의 주석은 모두 옮긴이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단 것입 니다. 지은이의 원주는 본문 옆에 작은 글씨로 표시했습니다. ∙ 원문은 독자에게 필요하다고 판단한 부분만 주석으로 처리했습 니다. ∙ 원전에 나타난 일부 오류와 오기는 그대로 옮기고 문제점은 주 석에서 설명했습니다. ∙ 모든 문단은 원전을 따랐으며 인용문도 원전과 동일하게 표시 했습니다. ∙ 고대의 중국 인명이나 지명은 한자 독음으로, 현대의 인명과 지 명은 중국어 발음으로 표기했습니다. ∙괄호 안의 말과 바깥 말의 독음이 다를 때, 괄호가 중복될 때에는 [ ]를 사용했습니다. ∙ 외래어 표기는 현행 한글어문규정의 외래어표기법을 따랐습니 다.


차례

자서(自序) ····················3 1. 인성을 논함(論性) ···············5 2. 이치에 대한 풀이(釋理)·············39 3. 쇼펜하우어의 철학과 교육학설(叔本華之哲學及其教育 學說)

·····················74

4. 홍루몽 평론(紅樓夢評論) ···········116 5. 쇼펜하우어와 니체(叔本華與尼采) ·······184 6. 현 왕조의 한학파 대진, 완원 두 사람의 철학 학설(國朝漢 學派戴阮二家之哲學說) ·············215 7. 쇼펜하우어 유전설 후기(書叔本華遺傳說後) ··240 부록: 쇼펜하우어의 유전설(附: 叔本華氏之遺傳說) ·259 8. 최근 몇 년의 학술계를 논함(論近年之學術界) ··284 9. 새로운 학술 용어의 수입에 대해 논함(論新學語之輸入) ························298 10. 철학자와 예술가의 천직을 논함(論哲學家與美術家之 天職) ·····················309 11. 교육우감 4칙(教育偶感 四則) ·········316


12. 대중 교육주의를 논하다(論平凡之教育主義) ··329

해설 ······················335 지은이에 대해··················341 지은이 연보···················384 옮긴이에 대해··················388


정암 문집



자서(自序)

나의 철학 연구는 신축년(辛丑年)1)과 임인년(壬寅年)2) 사 이에 시작되었다. 계묘년(癸卯年)3) 봄에야 비로소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을 읽었는데,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걸 괴로워하며 거의 반쯤 읽다가 그만두었다. 이어서 쇼펜하우 어의 책을 읽었는데 그것을 몹시 좋아했다. 계묘년 여름부 터 갑신년(甲辰年)4) 겨울에 이르기까지는 모두 쇼펜하우어 의 책과 동반자가 되었던 시절이었다. 그중에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쇼펜하우어의 지식론이었는데, 그것을 통해 칸 트의 설을 엿볼 수 있었다. 그의 인생 철학관은 관찰이 정예 롭고 의론이 예리해 즐겁고 개운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나 중에 점차 그것에 모순된 곳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작년 여름에 지은 <홍루몽 평론>은 그 입론(立論)이 비록 전적으로 쇼펜하우어의 입장에 있지만 제4장에서 이미 커

1) 1901년. 2) 1902년. 3) 1903년. 4) 1904년.

3


다란 의문을 제기했다. 쇼펜하우어의 설의 절반은 그의 주 관적 기질에서 나왔으며 객관적 지식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이 의견은 <쇼펜하우어와 니체(叔本華及 尼采)>5)라는 글 속에서 비로소 거침없이 드러냈다. 올해

봄에 다시 되돌아가 칸트의 책을 읽었다. 지금 이후로 장차 몇 년 동안은 칸트 연구에 힘쓰려고 한다. 훗날 조금이라도 나아가는 바가 있어 앞의 설을 취해서 그것을 읽는다면 또 한 한 즐거움일 것이다. 그리하여 여러 잡문을 아울러 간행 해 요 2, 3년간 사상의 옛 자취를 남기고자 할 뿐이다.

광서 31년6) 가을 8월 하이닝(海寧) 왕궈웨이(王國維) 자서

5) 이 글에서 왕궈웨이는 <숙본화급니채(叔本華及尼采)>라고 적고 있는데, 이 제목은 해당 글에서는 <숙본화여니채(叔本華與尼采)> 라고 적고 있다. 급(及)과 여(與)는 모두 “∼와, 과”의 의미로 차이가 없다. 6) 1905년.

4


1. 인성을 논함(論性)7)

해제

이 글은 서양 철학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중국 전통 철학의 주 요 개념 중 하나인 ‘성(性)’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왕궈 웨이는 칸트 철학의 지식론에 입각해 성선설과 성악설의 모순 을 비평하고 성이라는 것은 우리의 지식을 초월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인성은 우리의 지식을 초월하므로 인성을 논하 는 자는 공상의 영역으로 치닫지 않으면 그 형세가 어쩔 수 없이 경험에서 추론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경험에서 말하는 인성 은 인성의 본연의 모습이 아니며 만약 경험에서 인성을 본성으 로 여긴다면 반드시 선악 이원론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고 했다. 왕궈웨이는 요순(堯舜)으로부터 공자(孔子), 고자(告子), 맹자 (孟子), 순자(荀子), 동중서(董仲舒), 북송의 주돈이(周敦頤),

7) 원문에는 인성과 관련해 ‘성(性)’, ‘인성(人性)’, ‘정(情)’이라는 세 가 지 표현이 나오는데, 이 글에서 ‘성(性)’은 우리말로 성품 혹은 타고 난 사람의 천성 등을 의미한다. 그런데 문맥에 따라서는 본성, 인성, 성이라는 표현이 각각 더 자연스러운 경우가 있어서 본고에서는 ‘성 (性)’을 본성, 인성, 성으로 번역했고, 독자의 혼란을 막기 위해 괄호 로 [性]이라는 표기를 병기했다. 원문의 ‘인성(人性)’은 ‘인성’으로 번 역했다. 원문의 ‘정(情)’은 그대로 ‘정’으로 번역했다.

5


장횡거(張橫渠), 정호(程顥), 정이(程頤), 남송의 주희(朱熹), 육구연(陸九淵) 그리고 명대의 왕양명(王陽明)에 이르기까지 그 모순점을 밝혀내고 인성에 대한 모든 논쟁을 무익한 공담이 라고 했다. 칸트의 지식론에 입각해 왕궈웨이는 인성은 알 수 없는 영역 이라고 결론을 내렸는데, 성에 대한 이론적 분석과 전통 인성론 에 대한 대담한 질의는 새로운 철학적 시야를 드러내고 있다.

지금 우리가 한 사물에 대해 비록 상호 반대되는 의론이지 만 모두 그것을 주장함에 이유가 있고, 그것을 말함에 일리 가 있을 수 있다면 그 사물은 절대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2 더하기 2는 4다”, “두 점 사이에는 하나의 직선만 그을 수 있다”는 누구를 막론하고 아직까지 그것을 반대할 수 있는 자는 없다. 인과의 변천, 질량의 불변은 어떤 사람 이든 아직까지 그것에 반대할 수 있는 자는 없다. 수학과 물 리학이 가장 확실한 지식이 되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 아 니겠는가? 지금 맹자가 사람의 본성[性]은 선하다고 말하고, 순자가 사람의 본성[性]은 악하다고 말하는데, 두 가지 모두 상호 반대되는 설이다. 그런데 모두 그것을 주장함에 이유 가 있고, 그것을 말함에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성

6


에 대해서 진실로 알 수 없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로다! 공자 가 인성[性]과 운명[命]에 대해서 드물게 말한 까닭은 진실로 이유가 없는 게 아니로다! 인성론 가운데 반대의 학설을 수 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학설 속에서도 자기모 순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맹자가 말했다. “사람의 본성[性] 은 착하니, 그 풀어진 마음[放心]을 잡는 데 있을 뿐이다.”8) 그런데 그로 하여금 그 마음을 풀어 버리게 하는 자는 누구 인가? 순자는 말했다. “사람의 본성[性]은 악하고, 그 착한 것은 인위다.”9) 그런데 인위로 할 수 있는 까닭은 무엇 때문 인가? 칸트는 “도덕은 인간의 마음에 대한 최상의 명령이다” 라고 말했는데, 어째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근본이 악하다는 설이 생겨났는가? 쇼펜하우어는 “우리의 근본은 생활의 욕 망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소위 생활의 욕망을 거절하는 것은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가? 동서고금의 인성론은 자기 모순에 빠지지 않은 것이 없다. 가령 본성[性]이라는 것이 숫자와 공간의 성질이 그러한 것처럼 우리가 그것을 앎이 확실하고 또한 그것을 말하는 것이 똑같다면 우리가 인성을 논할 권리가 있다고 거침없이 솔직히 말해도 괜찮다. 시험

8) “人之性善, 在求其放心而耳.” 9) “人之性惡, 其善者僞(人爲)也.”

7


삼아 물어보자. 우리가 과연 이런 권리가 있는가, 없는가? 지금 인성을 논하는 자의 반대 모순이 이와 같다면 본성[性] 이라는 것은 진실로 우리의 지식을 뛰어넘는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으로는 하나는 선천적 지식10) 이고, 하나는 후천적 지식11)이다. 선천적 지식은 공간과 시 간의 형식 및 오성(悟性)의 범주처럼 경험할 필요 없이 생 겨나 경험이 그것을 경유함으로써 성립되는 것으로 칸트의 지식론이 나온 뒤부터 오늘날 거의 정론이 되었다. 후천적 지식은 바로 경험이 나를 가르치는 것으로 무릇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이것이다. 양자의 지식은 모두 확실성이 있는데 다만 전자는 보편성과 필연성이 있고, 후자는 그렇 지 않다. 그러나 그 확실함은 다를 게 없다. 지금 시험 삼아 묻겠는데 본성[性]이라는 것을 과연 선천적으로 아는가? 아 니면 후천적으로 아는가? 선천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지식 의 형식이며 지식의 재질에는 미치지 못하는데 본성[性]은 진실로 지식의 한 재질이다. 만약 후천적으로 그것을 안다 면 아는 것은 또한 본성[性]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경

10) 선험적 지식. 11) 경험적 지식.

8


험으로 아는 본성[性]은 유전과 외부의 영향을 받는 것이 적 지 않아서 본성[性]의 본래 면목이 아님이 진실로 이미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단언컨대 본성[性]이라는 것은 우리의 지식을 뛰어넘는다. 인성(人性)이 우리의 지식을 뛰어넘음이 이와 같아서 인 성을 논하려는 자는 공상(空想)의 영역을 달리는 게 아니라 면 형세는 어쩔 수 없이 경험으로부터 그것을 추론한다. 경 험에서 말하는 성[性]은 진실로 성[性]의 근본이 아니다. 그 러나 만일 경험에서의 성[性]을 잡고서 본성[性]이라고 여긴 다면 반드시 먼저 선악 이원론이 일어난다. 왜냐하면 선악 의 상호 대립은 우리의 경험에서의 사실이며, 상반되는 사 실이지 상대적인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적인 사실 은 예를 들면 추위와 더위, 두껍고 얇음 등이 그렇다. 크게 더우면 덥다고 하고, 조금 더우면 춥다고 한다. 크게 두꺼우 면 두껍다 하고, 약간 두꺼우면 얇다고 말한다. 선악은 그렇 지 않다. 크게 선하면 선하다고 하는데, 조금 선한 것이 악 은 아니다. 크게 악하면 악하다고 하는데 조금 악한 것은 또 한 선은 아니다. 또한 적극적인 사실이지 소극적인 사실이 아니다.12) 빛이 있으면 밝다고 하고, 빛이 없으면 어둡다고

12) 적극적 사실은 구체적인 물질 형태가 존재하는 것으로 직접적으로

9


한다. 있음이 있으면 있다고 하고, 있음이 없으면 없다고 말 한다. 선악은 그렇지 않다. 선함이 있으면 선하다고 말하는 데, 선함이 없어도 아직 악은 아니다. 악함이 있으면 악하다 고 말하는데, 악함이 없어도 아직 선은 아니다. 오직 그것은 반대의 사실이 되기 때문에 선악 양자는 한 설을 통해 그것 을 밝힐 수 없고, 오직 그것은 적극적인 사실이기 때문에 그 중 하나를 들어 나머지 것을 버릴 수는 없다. 그래서 경험으 로 논점을 밝히면 선악 이원론의 사타구니 아래에서 맴돌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지식은 반드시 설명의 통일을 추구하므로 결코 이 선악 이원론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 래서 성선론, 성악론 및 초월적 일원론즉, 인성은 선함도 없고 선하지 않음도 없다는 설과 선할 수도 있고 선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설

이 연달아 일어났다. 경험에 입각해서 인성을 말하면 논하 는 것이 진짜 본성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모순에 이르지는 않는다. 경험을 초월해서 그 통일된 설명을 구한다면 반대 되는 설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그 하나를 주장할 수 있지만

시공간에 자리매김할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이다. 소극적 사실은 적 극적 사실과 상대되는 개념으로 “허무”한 상태로 존재하는 것으로 시공간 속에 자리매김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이다. 소극적 사실은 물질적 형태가 없어서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감지될 수 없고 오직 사유 인식을 통한다.

10


자기모순에 이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경험을 초월함 으로써 우리가 진실로 언론의 자유는 있지만 경험에서의 사 실을 설명하려고 할 때는 또 부득불 그 설을 앞뒤로 그럴듯 하게 둘러맞추면서 다시 이원론으로 돌아가게 되기 때문이 다. 그래서 고금에 본성을 말한 자들의 자기모순은 필연적 이치다. 이제 옛사람의 인성론을 약술해 그 모순을 폭로하 니 세상 학자들은 일람해 보라. 우리나라에서 인성을 언급한 것은 오래되었다. 요임금 이 순임금에게 명했다. “사람의 마음은 오직 위태롭고, 도의 마음은 오직 미묘하다.”13) 중훼(仲虺)14)가 탕(湯) 임금에 게 고했다. “오직 하늘이 백성을 낳아 욕망은 있고 주인이 없으면 곧 어지러워지고, 오직 하늘이 총명한 자를 낳아 시 대가 다스려진다.”15) <탕고(湯誥)>16)에서 말했다. “오직

13) “人心唯危, 道心唯微.” 14) 은(殷)나라 탕왕(湯王)의 신하로 좌상(左相)을 지냈다. ≪서경(書 經)≫에 <중훼지고(仲虺之誥)> 편이 있는데, 이 고(誥)에서 탕

왕의 의도를 해석해 널리 알렸다. 15) “唯天生民, 有欲無主乃亂, 唯天生聰明時乂”(<仲虺之誥>). 16) ≪서경≫의 편명이다. 은나라 탕왕이 각 지방의 제후에게 주는 담 화문으로 하(夏)나라 걸왕(桀王)을 전복한 이치를 밝히고 있다. 하 늘은 선한 자에게 복을 주고, 황음무도한 자에게는 화를 주는 것이

11


황제께서 아래 백성에게 참마음을 내려 주셨으니, ‘항성(恒 性)’17)이 있으면 그 계획을 안무(按撫)18)할 수 있다.”19) 뒤

의 이 두 설만이 상호 설명을 가해서 홉스20)의 설과 부절을 맞춘 듯 꼭 들어맞지만 인성이 악해서 선하게 될 수 없다면 총명한 군주라 하더라도 그들을 다스릴 길이 없다. 그리고 총명한 군주도 하늘이 낳은 바다. 선한 ‘항성(恒性)’이 있다 면 어찌 군주가 그들을 안무하고 다스리는 것을 필요로 하 겠는가? 그러니 양자는 상호 미리 짐작하지 않으면 모두 자 신의 설을 주장할 수 없다. 또한 중훼는 탕임금에 대해 진실 로 소위 보고서 그것을 안 것이므로 그 설의 모순이 이와 같 아서는 안 된다. 두 알림[二誥]21)의 설은 한 면을 들어 다른 면을 버린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 후에 사람들 중 일원론을

기본 원칙이며, 하나라가 멸망한 까닭은 완전히 하늘이 재앙을 준 결과임을 밝히고 있다. 17) 늘 한결같은 성질, 항상성. 18) 백성의 사정을 살펴서 어루만져 위로함. 19) “惟皇上帝, 降衷于下民. 若有恒性, 克綏厥猶.” 20)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 영국의 철학자. 성악 설을 전제로 전제 군주제를 이상적인 국가 형태라고 생각했다. 21) 앞의 <중훼지고>와 <탕고>.

12


주장한 자가 있었다. ≪시경≫에서 말했다. “하늘이 만백 성을 낳아 만물이 있고 법칙이 있네, 백성이 타고난 천성을 지키고, 이 아름다운 덕을 좋아하네.”22) 유강공(劉康公)23) 이 말한 “백성이 천지의 가운데24)를 받아 태어났다”도 <탕 고>의 의미를 벗어나지 않는다. 공자에 이르러 비로소 초 월적 일원론을 앞장서 주장해서 “인성은 서로 가까운데, 익 힘이 서로 멀게 한다”25)라고 말했다. 또 “오직 상급의 지혜 로운 자[上知]26)와 하급의 어리석은 자가 이것을 바꾸지 않 는다”27)고 했는데, 이는 단지 경험에서 추론해 경험에서의 사실을 설명하므로 자연 모순되는 바가 없다. 고자(告子)28)는 공자의 인성론에 근거해서 말했다. “타

22) “天生蒸民, 有物有則. 民之秉彛, 好是懿德”(≪詩·大雅·烝民≫). 23) 이름은 계자(季子), 동주(東周) 제후국(諸侯國)인 유국(劉國)의 개 국 군주. 24) 天地之中. 25) “性相近也, 習相遠也.” 인성은 서로 비슷한데 습관이 서로 멀게 한 다는 뜻이다. 26) 지력이 비범한 사람으로 대개 성철(聖哲)을 가리킨다. 27) “唯上知與下愚不移”(≪論語·陽貨≫). 28) 중국 전국 시대 제(齊)나라의 사상가. 성은 고(告), 이름은 불해(不 害). 맹자(孟子, BC 372∼BC 289)와 같은 시대 사람이다. 인성(人

13


고난 것을 성(性)이라고 하며, 성은 선함도 없고 선하지 않 음도 없다.”29) 또 말했다. “성은 여울물과 같아서 동쪽으로 물길을 터 주면 동쪽으로 흘러가고, 서쪽으로 물길을 터 주 면 서쪽으로 흘러간다.”30) 이 설은 비록 맹자에 의해 반박 을 받았지만 사실은 공자의 진의다. 소위 ‘여울물’이란 “인 성이 서로 가깝다”는 설이다. “동쪽으로 물길을 터 주면 동 쪽으로 흘러가고, 서쪽으로 물길을 터 주면 서쪽으로 흘러 간다”는 것은 “익힘이 서로 멀게 한다”는 설이다. 맹자가 비 록 그것을 공격해 성선설을 주장했지만 그 설은 관철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는 인성을 산의 나무에 비유해 이렇게 말 했다. “우산(牛山)의 나무가 일찍이 아름다웠는데… 이것 이 어찌 산의 본성[性]이겠는가?31)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어

性)에 관해 맹자와 논쟁을 벌여, “사람의 본성은 본래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며, 다만 교육하기 나름으로 그 어느 것으로도 될 수 있다” 고 주장했다. 맹자와 한 논의는 ≪맹자≫ <고자(告子)> 상편(上 篇)에 수록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서만 고자의 존재를 알 수 있을 뿐

이다. 29) “生之謂性, 性無善無不善也.” 30) “性猶湍水.” 사람의 본성(本性)은 여울물과 같다는 뜻으로, 여울물 이 동쪽으로도 서쪽으로도 흘러갈 수 있듯이, 천성적으로 착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고자(告子)의 설.

14


찌 인의의 마음이 없겠는가? 그가 그 양심을 놓는 까닭은 마 치 도끼가 나무를 찍어 내는 것과 같으니 아침마다 그 양심 을 베어 낸다면 아름답게 될 수 있겠는가? 사람에게 날마다 자라는 여명의 맑은 기운이 있다 하더라도 그 좋아하고 싫 어함이 다른 사람과 가까운 것은 거의 드물고, 그래서 낮에 저지른 행위가 그 맑은 기운을 속박해 그것이 없어지게 된 다. 속박이 반복되면 그 맑은 기운은 살아남기 힘들다. … 이것이 어찌 사람의 본래의 정(情)이겠는가?” 그렇다면 아 침마다 그것을 베는 것은 무엇인가? 소위 속박을 받아 없어 지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름 붙일 길이 없어 그것을 ‘욕 망[欲]’이라고 이름 붙였고, 그래서 “마음을 기르는 데 욕심 을 적게 하는 것보다 좋은 게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소 위 욕망이라는 것은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만약 본성[性]에 서부터 나온다면 어째서 본성[性]과 서로 모순되는가? 맹자 는 여기에서 작은 기관[小體]과 큰 기관[大體]으로 그것을 설명해 “시각과 청각 기관은 생각을 하지 않아 사물에 가리

31) 제(齊)나라의 우산(牛山)은 원래 초목이 무성하던 아름다운 산이었 지만 대국의 교외에 있어 사람들이 도끼로 벌목을 하면서 벌거숭이 산이 되었다. 그렇다고 그 산에 나무의 싹이 돋아나지 않는 것은 아 닌 것처럼 사람의 본성도 마음 속에 선한 싹이 있다고 맹자는 주장 한다.

15


어지며 사물이 사물과 만나면 이끌 뿐이다. 마음의 기관은 생각을 하는데,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지 못한 다. 이것은 하늘이 나에게 부여한 것이다”라고 했다. 마음 을 하늘이 부여한 것이라고만 한다면 귀와 눈, 양자는 설마 하늘이 부여한 것이 아닌가?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했고 이 목의 욕망이 본성[性]에서 나왔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 의 미는 바로 이와 같으므로 맹자의 인성론이 이원론임은 의심 할 여지없이 분명하다. 순자에 이르러 맹자의 설에 반대해 성악설을 앞장서 주 장해 말했다. “예의와 법도는 성인의 인위에서 생겨나며, 본 디 사람의 본성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눈이 빛 깔을 좋아하고, 귀가 소리를 좋아하며, 입이 맛을 좋아하고, 마음이 이로움을 좋아하고, 신체와 살갗이 유쾌하고 편안 함을 좋아하니, 이 모두는 사람의 성정(性情)에서 생겨난 것이다. 느껴서 저절로 그러하니 일을 기다린 뒤에 그것을 생기게 하는 것이 아니다. 느끼는데 그럴 수 없어 반드시 일 을 기다린 뒤에야 그러한 것, 그것을 일컬어 인위[僞]에서 생겼다고 하며, 이는 본성[性]과 인위[僞]가 생겨나는 바가 서로 다르다는 증거다. 그러므로 성인이 본성을 교화해 인 위를 일으킨다.” 또 말했다. “옛날에 성인은 사람의 본성은 악하기 때문에 편파적이고 비정상적이며, 바르지 않고, 미

16


혹되고 흐트러져 다스려지지 않는다고 여겨서 군주의 권세 를 세워 임했고, 예의를 밝혀서 교화했으며, 법치를 일으켜 다스리고, 무거운 형벌로써 금하게 해, 천하로 하여금 모두 다스림에서 나와 선에서 합일하게 했다. 이것이 성왕의 다 스림이고 예의의 교화다. 지금 시험 삼아 임금의 권세를 없 애고, 예의의 교화를 없게 하며, 법치 정치를 없애고, 형벌 을 통한 금지를 없게 해, 천하 백성이 함께 어울리는 것을 보자. 이와 같다면 저 강자가 약자를 해해서 빼앗고, 다수가 소수를 해쳐 시끄럽게 해, 천하가 미혹되고 흐트러져 서로 망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본성은 악함이 분명하고, 그 선한 것은 인위다.”<성악편(性惡篇)> 우리가 더 나아가 그 설의 모순을 평가해 보면 가장 정도가 심한 것 이 사람과 성인을 구별해 둘로 보는 것이다. 저 성인은 사람 이 아니란 말인가? 보통 사람은 성인이 나와서 예의가 흥하 길 기다린 뒤에야 다스려지고 선에 합일한다면 저 최초의 성인은 곧 예의를 만드는 자로 또 어찌 기다리는 바이겠는 가? 그는 예가 일어나는 바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이 태 어나 욕망이 있는데, 욕망하나 얻지 못하면 추구함이 없을 수 없고, 추구하는 데 도량과 경계가 없다면 다투게 되고, 다투면 어지럽고, 어지러우면 궁하게 된다. 선왕께서는 그 어지러움을 싫어해서 예의를 만들어 그것을 나누고 사람의

17


욕망을 보살펴서, 그 욕구를 만족시켜 준다. 이것이 예가 일 어나는 바다.”<예론편(禮論篇)> 그렇다면 소위 예의라는 것 은 또한 욕망을 통해 변화 발전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어찌 하여 사람이 그 어지러움을 싫어해서 예의를 만들어 그것을 나누었다고 말하지 않고, 반드시 선왕이라고 말하는가? 그 는 예의 연원을 논할 때도 모순을 안고 말했다. “지금 사람 의 본성이 굶주리면 배부르고자 하고, 추우면 따뜻하고자 하며, 피로하면 쉬고자 하니, 이는 인지상정이다. 지금 사람 이 굶주린데 연장자를 보고서 감히 먼저 먹지 못하는 것은 양보하는 바가 있어서다. 피로한데도 감히 쉬려고 하지 않 는 것은 타인을 대신하는 바가 있어서다. 아들이 아버지에 게 양보하고, 동생이 형에게 양보하며, 아들이 아버지를 대 신하고, 동생이 형을 대신하니, 이 두 행위는 모두 본성에 반하고 정(情)에 위배된다.”<성악편(性惡篇)> 그런데 또 삼 년상이 정(情)에 맞는다고 여겨 다음과 같이 견해를 밝혔 다. “무릇 천지 사이에 태어난 것 중에는 혈기의 무리가 있 어 반드시 앎이 있고, 앎이 있는 무리는 자신의 부류를 사랑 하지 않음이 없다. 지금 저 큰 짐승이 그 무리와 짝을 잃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되돌아 물길 따라 내려가다 고향을 지나면 반드시 배회하게 되고, 울부짖고 머뭇거리고, 주저 한 뒤에야 그곳을 떠날 수 있다. 미물로는 제비와 참새조차

18


오히려 시끄럽게 우는 순간이 있고 난 뒤에야 그곳을 떠날 수 있다. 그러므로 혈기가 있는 무리 중에 사람보다 더 아는 것은 없으며, 그래서 사람이 어버이에 대해서는 죽음에 이 르러도 다함이 없다. 그래서 말했다. ‘희열을 느끼면 얼굴빛 이 광택이 나고, 우환에 빠지면 얼굴빛이 초췌하니, 이는 길 흉과 걱정, 기쁨의 감정이 안색에 나타난 것이다….’”<예론 편(禮論篇)>32)

이는 맹자가 말한 어린아이가 그 어버이를

사랑할 줄 모름이 없어서 평온함을 나타내는 것과 뭐가 다 른가?33) 소위 자연에서 느껴 사고를 겪지 않고도 그러한 것 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인성[性]에 반하고 감정[情]에 위 배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래서 순자의 성악 일원론 은 스스로 파멸시킨 것이다. 인성론은 오직 유교 철학 속에서 융성했으며 동시대 다 른 학파에는 없다. 간략하게 말한다면 노장(老莊)34)은 성 선설을 주장했기 때문에 자연을 숭상했고, 신불해(申不害) 와 한비자(韓非子)는 성악설을 주장했기 때문에 형벌과 논 리를 숭상했다. 그런데 이 여러 학파 중에는 결코 그것을 쟁

32) 원문에는 이론편(理論篇)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오기다. 33) “孩提之童, 無不知愛其親也”(≪孟子·盡心上≫). 34) 노자와 장자.

19


론하고 언급한 자가 없었다. 한대에 이르러 회남자(淮南子) 가 노자의 학설을 신봉해 성선설을 앞장서 주장해서 말했 다. “맑고 깨끗하고 담박하고 즐거움[淸淨恬愉]은 사람의 본성이다.”<인간훈(人閒訓)> 그래서 말했다. “배를 타고 의 심하는 자가 동서를 모르다가, 북두성과 북극성을 보면 깨 닫는다. 저 본성[性]은 또한 사람의 북두성과 북극성이다. 이로써 스스로를 드러냄이 있다면 사물의 정(情)을 잃지 않 고, 이로써 스스로 드러냄이 없다면 걸핏하면 미혹된다.”35) 또 말했다. “사람의 본성[性]은 사악함이 없는데, 오래도록 세속에 빠진다면 바뀌고, 바뀌어서 근본을 잊게 되어, 합해 져 본성처럼 된다. 그래서 해와 달은 밝고자 하지만 뜬구름 이 그것들을 덮고, 강과 물은 맑고자 하지만 모래와 돌이 그 것을 더럽히고, 인성(人性)은 곧고자 하는데 향락적인 욕구 가 그것을 해친다.”<제속훈(齊俗訓)> 그래서 회남자의 성선 론은 맹자와 마찬가지로 결국 파열되어 본성[性]과 욕망[欲] 이원론이 되었다. 동시대의 동중서(董仲舒)도 인성(人性)을 논해 말했다. “성(性)의 이름은 타고남[生]이 아닌가? 그 타고남[生]의 자

35) “夫性亦人之斗極也, 以有自見也, 則不失物之情; 無以自見. 則動 而惑營”(≪淮南子·齊俗訓≫).

20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