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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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지 고전천줄 0191

Dracula 드라큘라

브램 스토커(Bram Stoker) 지음 김종갑 옮김

대한민국, 서울, 지만지, 2008


≪드라큘라≫는 조너선 하커의 5월 1일자 일기로 시작된다. 변호사 피 터 호킨스의 서기인 조너선 하커는 드라큘라 백작의 저택 구매 건을 처 리하기 위해 런던을 떠나 트란실바니아로 향한다. 동유럽에서도 가장 미개하고 황량하며 외진 트란실바니아의 한 성에 살고 있던 드라큘라 백작이 문명화된 대도시 런던으로 진출하기 위해서 카팩스에 저택을 사야 했다. 성으로 향하는 길에서 하커는 미신에 젖은 무지몽매한 주민 들을 만나고, 늑대가 울부짖는 황야도 지난다. 드디어 5월 5일 드라큘 라 백작의 성에 도착한다.

5월 5일 조너선 하커의 일기 커다란 문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문틈을 통해서 문 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불빛을 볼 수 있었다. 쇠사슬이 덜컥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거대한 빗장이 젖혀지면서 절거덕거 리는 소리가 났다. 오래 사용하지 않았던 자물쇠에 힘을 줘 서 열었기 때문인지 귀에 거슬리는 날카로운 소음이 나더 니, 거대한 문이 활짝 열렸다. 문 안에 키가 큰 노인이 서 있었다. 길고 허연 턱수염을 남겨놓고 깔끔하게 면도를 한 노인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은으로 된 골동품 램프 가 들려 있었는데, 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램프의 불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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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면서 땅바닥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우아한 동작으로 나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하면서, 낯선 어조지만 유창한 영어로 말을 건넸다. “우리 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자유롭고 편하게 들어오 세요.” 그는 나를 반기기 위해서 앞으로 걸어 나오지는 않았다. 환대했던 몸짓은 사라지고, 돌로 굳어진 듯이 석상처럼 꼼짝 하지 않고서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내가 문지방을 넘는 순간에서야 다급하게 앞으로 나와서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 했다. 나의 손을 잡는 힘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에 나는 몸을 움츠렸다. 그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살아 있는 사람 의 손이 아니라 시체처럼 느껴졌다. 다시 그가 입을 열었다. “방문을 환영합니다. 자유롭게 들어와서 무사하게 떠나 길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이 가져온 행복을 조금이나마 남 겨놓길 바랍니다.” 나는 그가 드라큘라 백작이 맞는지 신분을 확인하기 위 해 질문을 던졌다. “드라큘라 백작님?” 그가 우아하게 머리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내가 드라큘라입니다. 하커 씨를 환영합니다. 밤공기가 차가우니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음식과 휴식이 필요하겠 26


지요?”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벽의 선반에 램프를 올려놓더니, 나 의 짐을 손에 들고 내가 만류하기도 전에 안으로 옮겨놓았 다. 뒤늦게 만류하는 나를 향해 그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하커 씨는 나의 손님이니까요. 밤늦은 시 간이라서 시중을 들 하인이 없습니다. 내가 하커 씨를 안내 하겠습니다.” 그를 따라 불이 환하게 켜진 방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기 분이 좋아졌다. 식탁에는 저녁이 마련되어 있었으며, 거대 한 벽난로에는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백작은 내 짐을 바닥에 내려놓고 문을 잠그더니, 방을 가 로질러 가선 또 다른 문을 열었다. 램프 하나가 불을 밝히는 팔각형의 방으로, 창문도 없는 듯이 보였다. 방을 가로질러 간 그는 또 하나의 문을 열고는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손님 을 환대할 준비가 갖춰진 방이었다. 벽난로에서 소리 없이 타오르는 불길로 훈훈해진 방에는 멋진 조명을 갖춘 커다란 침대가 있었다. 황송하게도 백작이 모든 짐들을 방안으로 가져왔다. 문을 닫고 물러나면서 한 마디 남겼다. “하커 씨는 오랜 여행 후인지라 몸단장을 하면서 피로를 풀어야 할 것입니다. 필요한 게 모두 갖춰져 있습니다. 준비 가 되면 식당으로 내려와서 식사하시지요.” 27


불빛과 따스함뿐만 아니라 백작의 정중한 환대를 받고 나니 지금까지 품었던 의심과 두려움이 일시에 사라져버렸 다. 이렇게 평소의 나 자신으로 돌아오니 속이 쓰릴 정도로 배가 고팠다. 몸단장을 재빨리 끝낸 다음 식당으로 갔다. 식사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벽에 몸을 기대고 벽난로 한쪽에 서 있던 백작이 우아한 손짓으로 나를 식탁으로 안 내했다. “앉아서 드시지요. 내가 함께 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섭섭 하지는 않겠지요? 저는 이미 모든 식사를 끝냈습니다. 저녁 식사는 하지 않습니다.” 나는 호킨스 씨가 맡긴 봉인된 편지를 그에게 건넸다. 편 지를 뜯은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읽더니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나에게 다시 편지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음식 그 릇의 뚜껑을 열어주었다. 훌륭하게 구워진 닭 요리였다. 나 는 치즈와 와인을 곁들여서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식사 를 하는 동안 백작은 여행에 대해서 여러 질문을 던졌다. 식사를 마친 다음, 나는 벽난로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백작이 권한 시가를 느긋하게 피우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 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면서 양해를 구했다. 이제 나는 여 유를 가지고 백작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는 매우 독특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28


그의 얼굴은 독수리 부리처럼 매우 강한 인상을 주었다. 그는 콧대가 높지만 살이 없는 코와 유난히 아치형에 가까 운 콧구멍, 우뚝 반구형으로 솟아오른 이마를 지녔고, 관자 놀이 주위를 제외하면 그의 머리는 매우 숱이 많았다. 덤불 같이 진하고 굵은 눈썹은 끝이 휘어질 정도로 무성하게 자 라서 코에 닿을 정도였다. 무성한 턱수염 밑으로 보이는 그 의 입술은 매우 단호하게 다물려 있었으며, 뾰족하고 하얀 이와 더불어서 잔인한 느낌을 주었다. 이가 밖으로 삐져나 온 새빨간 입술은 연로한 나이에도 그를 매우 정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그의 새하얀 귀는 끝이 날카로웠으며, 턱은 넓 으면서 강인했고, 볼은 얇지만 단호한 인상을 주었다. 전체 적 인상을 말하자면 그는 유난히 창백한 사람이었다. 벽난로 옆에 앉은 그가 무릎에 올려놓은 손, 특히 손등이 시야에 들어왔다. 언뜻 보기에 매우 희고 섬세한 손이었지 만 가까이서 자세히 살펴보니 폭이 넓고 매우 거칠었다. 그 리고 손가락은 동물 발톱처럼 휘어 있었다. 이상하게도 손 바닥 가운데 털이 나 있었고, 길고 깔끔한 손톱 끝이 뾰족했 다. 백작이 몸을 기울이면서 그의 손이 내 몸에 닿았을 때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의 구취가 심한 까닭인지, 아무리 애 를 써도 목으로 올라오는 욕지기를 억누를 길이 없었다. 나 의 그러한 감정을 눈치 챈 백작은 험상궂은 미소를 짓더니 29


뒤로 물러나 벽난로의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그가 웃는 바 람에 유난히 튀어나온 이가 더욱 길게 보였다. 우리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밖을 바라보니 희미하게 동이 트고 있 었다. 침실로 가서 잠을 잤지만 곧 잠에서 깨어났다. 다시 잠을 이룰 수 없어서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창문 옆에 면도용 거 울을 걸어놓고 면도를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어깨에 어떤 손길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말하는 백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방 전체 를 비춰주는 거울에서 그의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나 는 어안이 벙벙했다. 눈치 채지 못했지만 놀란 나머지 나는 면도칼에 살이 가볍게 베고 말았다. 백작의 인사에 대답한 나는 혹시 착각했는지 다시 확인하려고 거울을 또 들여다보 았다. 이번에는 착각이 있을 수 없었다. 백작은 고개를 돌리 면 어깨너머로 바로 볼 수 있는 장소에 있었다. 그런데도 거 울에는 그의 모습이 비치지 않다니! 방 전체가 거울 속에 담 겨 있었지만 나 자신을 제외한 어떤 사람의 모습도 거기에 는 없었다. 깜짝 놀랄 일이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이상한 일 들 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일이었다. 백작의 곁에서 느꼈던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그제야 나는 면도하면서 생긴 상처 에서 흐르는 피를 발견했다. 피가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 30


었다. 피를 훔칠 탈지면을 찾기 위해서 몸을 뒤로 돌리는 순 간 나를 바라보는 백작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의 눈 은 분노한 악마처럼 시뻘겋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가 내 목을 움켜쥐었다. 당황해서 급히 뒤로 물러 서는 바람에 그의 손은 내가 목에 걸고 있었던 십자가 달린 염주를 건드리게 되었다. 그러자 갑작스런 변화가 그에게 일어났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그의 얼굴에서 분노의 표 정이 사라졌다. “조심해요. 살을 베지 않도록 조심해요. 이 나라에서 살 을 베는 것은 특히나 위험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면 도용 거울을 손에 쥐었다. “거울은 불행을 가져오는 불길한 물건입니다. 인간의 허 영심이 만들어낸 값싼 엉터리 물건입니다. 없애버려야 해 요.” 그러더니 그는 무시무시한 손으로 무거운 창문을 열어젖 히고는 거울을 밖으로 내던져 버렸다. 떨어지면서 벽에 부 딪힌 거울은 산산조각으로 깨져버렸다. 그는 더는 아무 말 도 하지 않고 방에서 나가버렸다. 나로서는 이제 면도할 길 이 없었기 때문에 참으로 화가 나는 일이었다. 식당에 갔을 때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백 작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나 혼자서 식사를 했 31


다. 백작이 음료수를 마시거나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진짜 이상한 사람이 었다. 나는 아침 식사를 마친 후에 성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계단으로 올라가니 전망이 좋은 남향의 방이 있었다. 바깥 풍경이 참으로 장엄했다. 이제 보니 성은 까마득한 절벽의 가장자리에 세워져 있었다. 창에서 돌을 떨어뜨리면 어떤 것에도 부딪치지 않고 300미터 아래로 곧바로 떨어질 듯이 보였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푸른 나무의 바다였으며, 절 벽이 있는 곳만 텅 비어 있었다. 은빛 강물이 구불구불한 협 곡을 따라 숲 사이로 꼬불꼬불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기분이 아니었다. 성의 모든 방을 뒤지면서 발견한 사실인데, 모든 문들은 빗 장이 잠긴 채 굳게 닫혀 있었다. 성벽의 창문을 제외하면 밖 으로 나갈 출구가 없었다. 성은 감옥이고 나는 죄수였던 것이다.

드라큘라는 하커와 대화를 나누는 걸 통해서, 런던의 생활과 법률에 대 한 지식을 습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영국에서 그를 기다리는 약혼자 미나와 호킨스 씨에게 자신이 트란실바니아에 한 달 정도 더 체류할 것 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쓰도록 강요한다. 더불어 그의 방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잠을 자면 안 된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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