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시선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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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子詩選 주자 시선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은 인류의 유산으로 남을 만한 작품만을 선정합니다. 오랜 시간 그 작품을 연구한 전문가가 정확한 번역, 전문적인 해설, 풍부한 작가 소개, 친절한 주석을 제공하는 고급 시 선집입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朱子詩選 주자 시선 주희(朱熹) 지음 심우영 옮김

대한민국,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4


편집자 일러두기 ∙ 이 책은 ≪무이산지(武夷山志)≫[청(淸) 동천공(董天工) 편 (編), 팡즈(方志)출판사, 2007]에 수록되어 있는 주자의 시 총 23 편 45수를 실었습니다. ∙ 수록 작품의 순서는 ≪무이산지≫를 그대로 따랐습니다. ∙ 주석과 해제는 모두 옮긴이가 붙인 것입니다. ∙ 괄호 안의 말과 바깥 말의 독음이 다를 때, 괄호가 중복될 때에 는 [ ]를 사용했습니다. ∙ 옛날 지명은 한국 발음으로 표기하고 현대 지명은 중국 발음으 로 표기했습니다. ∙ 외래어 표기는 현행 한글어문규정의 외래어표기법을 따랐습 니다. ∙ 이 책은 2009년 정부재원(교육인적자원부 학술조성사업비)으 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습니다.(KRF-2009-362B00002)


차례

구곡도가(九曲櫂歌) 10수··············3 서시 ·····················9 일곡 ····················11 이곡 ····················14 삼곡 ····················16 사곡 ····················18 오곡 ····················20 육곡 ····················22 칠곡 ····················24 팔곡 ····················26 구곡 ····················28 추진정 ·····················30 충우관 ·····················32 방지 ······················35 청허당(일명 무이정사 관묘당에서 묵다)

······39

제1수 ····················39 제2수 ····················41


오공제 시의 각운자를 써서 짓다 ··········42 천주봉 ·····················46 승진관 ·····················48 승진동 ·····················50 선학암 ·····················52 대소장봉 ····················54 무이정사 잡영(武夷精舍雜詠) 12수·········56 무이정사를 여러 가지로 읊고 서문을 아우름 ···56 정사·····················61 인지당····················63 은구실····················65 지숙료····················67 석문오····················69 관선재····················71 한서관····················73 만대정····················75 철적정····················77 낚시터····················79 차 끓이는 부엌 ················81 고깃배····················83 오공제 <정사> 시의 각운자를 쓰다 ········85


무이정사를 둘러보다 ···············87 대은병(일명 무이산에서 유람하다 요초 줍기를 서로 기약하 면서, 운자를 나누어 집어 요 자를 얻었다) ······91 앙고당에서 유공보를 추모하며 ···········95 영봉(일명 무이산을 지나며 짓다) ··········97 악경을 위해 곡을 하다···············99 도수갱에서 짓다·················102 종정인 중기와 태사인 경인과 함께 산을 유람하는데, 문숙과 무실 또한 이르러 기뻐하다 ············105 앞의 각운자를 써서 중기와 이별하다········110 유자징이 멀리서 양구를 보냈는데, 또한 인을 품고 의를 돕 는 말이 있었다. 두 수의 절구를 지어 사례하며, 천 리 먼 곳 에 하찮은 것을 보낸다 ··············115 산을 나와 도중에 즉석에서 시를 짓다 ·······118

해설 ······················121 지은이에 대해··················126 옮긴이에 대해··················150



주자 시선



구곡도가(九曲櫂歌) 10수

해제

이 시의 원제(原題)는 ‘순희 갑진년(1184) 2월에 정사에서 한가 롭게 지내다가 놀이 삼아 <구곡도가> 10수를 지어 함께 놀러 온 자들에게 주고 서로 더불어 한번 웃었다(淳熙甲辰仲春, 精 舍閑居, 戱作武夷櫂歌十首, 呈諸同遊相與一笑)’인데,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자구는 ‘희작(戱作)’이다. 이것은 ‘놀이 삼아 짓 다’ 혹은 ‘장난삼아 짓다’로 직역할 수 있다. 이는 자기 작품에 대 한 겸양일 수도 있지만, ‘일소(一笑)’라는 표현과 연결해 보면, 산수자락(山水自樂)의 가벼운 마음으로 솟구치는 시흥(詩興) 을 유희적 입장에서 형상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시는 일곡에서 구곡으로 물을 거슬러 배를 타고 올라가며 지은 것인데, 굽이마다 산수의 공간 대비를 통해 가장 특색 있는 풍경을 직관적으로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신화 전설이나 인문 경관을 더해 자연에 대한 탐미와 한가로운 서정을 표현했다. 특 히 시인의 축적된 미적 경험과 풍부한 시적 재능으로 자연스러 우면서도 간략한 언어를 통해 ‘시중유화(詩中有畵)’의 예술적 기법을 극대화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고려 말에 우리나라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 <무 이도가>는 조선 중엽인 16세기 들어 선비들 사이에 회자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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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재해석이 가해진다.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 1560)를 시작으로 포저(蒲渚) 조익(趙翼, 1579∼1655)을 포함 하는 하서파는 ‘탁물우의(托物寓意: 사물에 기탁해 뜻을 담음)’ 에 의한 ‘입도차제(入道次第: 도학의 진입 순서)’의 ‘조도시(造 道詩)’, 즉 도학의 성취 단계를 노래한 시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

한다. 다시 말해, 성리학의 오묘한 이치를 깨우치기 위한 도학 (道學)의 과정을 그린 성스러운 시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고봉 (高峯)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은 ‘재도(載道)’의 도구로 만 해석한 하서의 견해를 강력하게 반박하면서

내 견해로는 주자의 <무이도가>는 인물기흥(因物起 興)1)한 것으로, 가슴속의 흥취를 뜻에 담아 말로 표현한

것이다. 진실로 청고화후(淸高和厚)2)하고 충담쇄락(沖 澹灑落)3)해 욕기(浴沂)4)의 기상처럼 쾌활하니, 어찌 구

곡도가 중에 입도차제(入道次第)를 숨겨서 암암리에 미 의(微意)5)의 이치를 담았겠느냐?

1) 인물기흥(因物起興): 사물로 인해 흥이 생기다. 2) 청고화후(淸高和厚): 맑고 고결하며 온화하고 돈후해, 시를 짓는 데 기묘 한 표현보다는 마음에서 우러난 정취가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3) 충담쇄락(沖澹灑落): 담백하고 깨끗하다. 4) 욕기(浴沂): 기수에서 목욕함. 공자가 몇몇 제자에게 각자가 가진 뜻을 말 해 보라고 하자, 증석(曾晳)이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 올라가 바 람을 쐬고 노래하며 돌아오겠다고 대답한 고사에서 유래했다. 즉, 명리를 잊고 유유자적함을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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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말했다. ‘인물기흥’에 의한 순수한 산수시로 보아야 한 다는 것이다. 즉, 산수 자연을 대하면서 흥취가 일어 그것을 시 로 옮겼을 뿐이라는 얘기다. ‘청고화후’와 ‘충담쇄락’을 이 시의 의경으로 보았으며, 명리를 잊고 유유자적을 추구했던 공자와 증자의 대화 고사를 인용해 상쾌하기까지 한데, 입도차제와 같 은 의미를 일부러 숨겨 은밀하게 포장을 해 놓을 리는 없다는 것 이다. 이에 대해 퇴계 선생(1501∼1570)은 ‘입도차제’의 관점에 서 본다면 도학의 입장을 완전히 무시할 순 없지만, 이 시는 어 디까지나 사물에서 얻은 흥취를 형상화한 것이 맞는다고 보았 다. 고봉처럼 강력한 반박은 아니지만 역시 ‘인물기흥’ 편에 섰 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조선이 국시로 성리학을 채택해 사상적 기반으로 삼 고, 성리학이 난숙기에 접어든 16세기 중엽 사림파가 득세하면 서 성리학적 이념으로 조선을 개혁하고 오로지 성리학적 시각 으로 문학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성리학을 집대성 한 주자를 숭상함은 물론, ‘문이재도(文以載道)’와 ‘음영성정 (吟詠性情)’의 관점에서 시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 로 그들은 <구곡도가>를 주자가 ‘음풍영월(吟風詠月)’하며 놀이 삼아 지은 시라고는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서 김인후를 시작으로 도학적 차원의 시로 재해석하면서, 시

5) 미의(微意): 속마음 깊숙이에만 있고 겉으로 뚜렷이 드러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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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전체를 그들이 거의 지배하다시피 했다. 이러한 ‘구곡(九曲) 사상’은 폭넓게 전승되어 수세기 동안 조선 선비들의 시 의식에 굳건히 자리 잡는다. 한편 주자의 시에 특히 관심이 많았던 정조(1752∼1800)도 이에 대한 견해를 밝힌 적이 있는데, 입도차제의 해석이 천착과 견강부회를 면치 못한다는 유태좌(柳台佐)의 주장에 대해

네가 말한 ‘평이한 곳을 굳이 고원하게 볼 필요가 없고, 무 심히 지은 것을 무슨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 다’는 것이 매우 옳고 매우 옳다. 어찌 유독 시를 해석함에 만 그러하겠는가? 경(經)을 참고함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라고 수긍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체용과 현미의 묘리를 체험하고 싶으면 <무이도가>를 보면 된다(欲驗其體用顯微 之妙, 則覽乎櫂歌)”라고 해, 인물기흥에 의한 산수시이긴 하지

만 성리학적 수양론과도 관련해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 시 말해, ‘사물’에 뜻을 담은 탁물우의(托物寓意)가 아니라 ‘흥 취’에 뜻을 담은 탁흥우의(托興寓意)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해석이 다양하게 나오다 보니, 주자의 시작 의도가 진정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 면 중국에서는 과연 어떻게 해석할까? 중국에서는 예전부터 무이구곡은 무이군(武夷君)6)의 전설 이 있고 도교 신선이 거주하는 곳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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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서시(序詩)에 ‘선령(仙靈)’을 등장시킨 것이다. 그리고 제1 곡에는 무이군의 전설을, 제2곡에는 옥녀봉의 전설을, 제3곡에 는 가학선관의 전설을, 제4곡에는 전설 속의 금계(金鷄)를 등장 시켰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신선이 사는 산수 자연의 아름다 움을 간결하면서 집약적으로 묘사했다. 그리하여 ‘입도차제’의 도학적 해석은 시도도 되지 않았고, 단순히 신선이 거주할 만한 아름다운 산수 자연에 인문학적 상상력을 첨가한 것이라 여겼 다. 다시 말해, 산수시로서만 이해할 뿐 이면에 깊은 속뜻이 있 다고 보지는 않았다. 대부분 ‘주자’를 ‘주희’라고 부르며 그를 성 인화(聖人化)하지 않는 것도 이와 관련해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인식이 주자의 본의(本意), 즉 모티프와 설사 다르다 할 지라도, 중국 산수시 전공자로서 순수 산수시라는 중국인들의 전통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 책의 저술 동기와 목적에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도가(櫂歌)’의 ‘도(櫂)’는 ‘도(棹: 배의 노)’와 같은 의 미이며, ‘노를 저으며 부르는 노래’, 즉 ‘뱃노래’라고 할 수 있다. ‘도가’는 주자에서 비롯했다. ‘구곡도가’는 ‘무이도가’ 혹은 ‘무이 구곡도가’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수많은 <구곡도

6) 무이군(武夷君): 무이왕(武夷王) 혹은 무이현도진군(武夷顯道眞軍)이라 부른다. 무이산의 산신으로 향토신이다. 일설에는 무이군은 신선인데 무 이산에서 도를 닦다가 천제(天帝)의 명을 받아 여러 신선들을 통솔 관리했 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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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 구분하기 위해 <무이도가>라는 말을 주로 사용한다. 또한 구곡계(九曲溪)는 무이산맥의 주봉인 황강산(黃崗山) 서남쪽에서 발원해 50킬로미터를 지나면 무이산 풍경구 안에 있는 성촌(星村)을 지나게 되는데, 이곳에서 구곡부터 차례로 전개되어 일곡 근처인 무이궁 앞까지 약 10킬로미터 정도가 된 다. 우리나라에도 ‘구곡’이라는 명칭을 가진 계곡이 150여 곳에 이르며, 그중에서도 조선 시대 영남학파의 본거지인 경상북도 에만 43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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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

무이산 산 위에는 신선이 있고 산 아래 찬 물결은 굽이굽이 맑네. 그중에 절경을 알고자 하니 뱃노래 두세 마디 한가롭게 들리는구나.

序詩 武夷山上有仙靈 山下寒流曲曲淸 欲識個中奇絶處 櫂歌閒聽兩三聲

해제

이 시는 무이도가의 서시(序詩)에 해당한다. 무이산의 위와 아 래를 언급함으로써 무이산 전경을 대상으로 했고, 산 위에는 신 선을 아래에는 물길을 지목함으로써 신선 세계가 존재하는 수 려한 명산임을 알렸다. 신선이 사는 산수 자연은 깊고 울창해 신비스러운 장소임이 틀림없으니, 이러한 물리적 공간에 절경 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유람코자 마음먹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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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어부가 부르는 몇 마디 뱃노래 소리가 한가롭게 들린 다. 원문에 등장하는 ‘선령(仙靈)’은 ‘신선(神仙)’과 같은 말이나, 혹자는 ‘선’은 도교의 ‘신선’으로, ‘영’은 토속 신앙과 관련지어 ‘산신령’으로 보아, ‘무이군’이라고 하는 견해도 있다. 또한 ‘한류 (寒流)’라고 한 것은 산속의 개울물이 차갑지 않은 경우가 별로 없지만, 시작(詩作) 시기가 음력 2월이라 더욱더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곡곡(曲曲)’은 앞으로 전개될 아홉 굽이를 암시한다. 이렇게 해서 ‘기절처(奇絶處: 절경)’를 향한 시인의 이동이 시작 되는데, ‘도가(櫂歌: 뱃노래)’의 등장은 계곡 유람이며, 무릉도 원과 같은 이상향을 찾아가는 것임을 알려 준다. 뱃노래를 ‘양 삼(兩三: 두세 마디)’으로 제한한 것은, 절경을 찾고자 하는 욕 망이 깊어지매 언뜻 들리는 뱃노래가 반가웠기 때문이다. 순간 적으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閒)’은 전 체적인 분위기를 압축해 묘사한 것이지, 시인이 뱃노래 두세 마 디를 한가롭게 듣고 있음을 반드시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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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곡7)

일곡에서 냇가의 낚싯배에 오르니 만정봉 그림자가 청천8)에 잠겼네. 무지개다리9) 한 번 끊어지더니 소식 없고

7) 일곡으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대왕봉[일명 위왕봉(魏王峰)]을 만나는데, 해 발 530여 미터로 왕처럼 위엄이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또한 마치 하 늘 기둥처럼 솟았다고 해서 ‘천주봉(天柱峰)’이라 부르기도 한다. 대왕봉 북쪽으로 만정봉이 가로놓여 있는데, 그리 높지는 않지만 봉우리 정상이 평탄하고 큰 바위가 있어 마치 ‘향정(香鼎: 향을 피우는 쇠솥)’ 같은 형상이 다. 또한 높이 솟은 붉은 벼랑에는 푸른 소나무가 떨기로 나 있어 푸른 병풍 모양을 하고 있다. ‘연선단(宴仙壇)’이라고도 부르는데, ‘신선들이 잔치를 베푸는 뜰’이라는 의미다. 8) 청천(晴川): 일곡 입구의 시내 이름. 9) 무지개다리: 전설에 따르면, 진시황 2년 8월 15일에 무이군이 황태모(皇太 姥)와 위왕(魏王) 자건(子騫) 등 열세 선인들과 함께 연회를 베풀며 동네

사람 2000명을 초대했다. 동네 사람들이 공중에 걸린 홍교(虹橋: 무지개다 리)를 타고 봉우리 정상으로 올라와 보니, 거기는 넓고 평평한 곳으로 만정 (幔亭: 장막으로 만든 정자)이 있고 채옥(綵屋: 채색 비단으로 엮은 방)이 수백 칸이나 되었다. 연회를 마친 뒤 동네 사람들이 내려오자 갑자기 비바 람이 몰아쳐 홍교는 끊어져 없어지고 푸른 산만 우뚝 보일 뿐이었다. 이에 산 아래에 사당을 짓고 ‘동정(同亭)’이라 이름 붙였다[송 축목(祝穆), <무 이산기(武夷山記)>]. 진시황 시절 무이군이 만정봉에서 동네 사람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동네 사람들은 돌아와 산자락에다 사당을 지어 제사를 모시고는 ‘동정’이라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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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학천봉은 푸른 안개에 갇혔도다.

一曲 一曲溪邊上釣船 幔亭峰影蘸晴川 虹橋一斷無消息 萬壑千巖鎖翠煙

해제

시인은 구곡 유람을 위해 드디어 배에 올랐다. 요즘처럼 유람객 을 태우고 오르내리는 죽벌(竹筏)이 아니고 그냥 낚싯배다. 일 곡의 대표적인 봉우리는 대왕봉인데, 문득 만정봉이 등장한 것 은 무이구곡에 얽힌 전설을 얘기하기 위함이다. 곧이어 ‘홍교 (虹橋)’로 시작하는 제3구는 만정봉의 전설을 압축한 전고(典 故)다. 주자가 시작 단계인 일곡의 시에다 이렇게 선인들의 전

설을 넣은 것은 유람 목적이 신선 세계를 찾는 것이라는 암묵적 의미가 깔려 있다. 그리고 거기서 무이산 풍경을 올려다보고는, 푸른 안개에 갇힌 만학천봉이라 했다. 다시 말해 수많은 골짜기 와 봉우리를 가진 무이산이 푸른 안개에 가려 신비스런 신선 세

액을 걸었는데, 이는 만정에서 잔치를 함께했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명 장 구(張榘), <중건회진관기(重建會眞觀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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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로 보인다는 의미다. 그런데 조선 시대 사림파들은 주자가 선 계를 찾아 나선다는 사실 자체를 수용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홍 교를 도학(道學)으로 여겨, 도학이 끊어진 지 이미 오래라 도학 을 간직한 무이산을 찾아 나선 것이라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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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곡10)

이곡에 우뚝 솟은 옥녀봉11)은 꽃 꽂고 물가에 임했으니 누굴 위한 단장인가? 도인은 더 이상 양대12)의 꿈 꾸지 않고 흥겨워 앞산으로 들어가니 푸름이 몇 겹이로다.

10) 이곡에는 무이산에서 가장 수려한 옥녀봉이 있다. 먼 곳을 바라보는 소녀 의 형상으로, 마치 옥석으로 조각한 듯하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옥녀봉 아래에는 목향담(沐香潭)이 있고, 왼쪽에는 면경대(面鏡臺)가 있다. 11) 옥녀봉: 옥황상제의 딸인 옥녀가 아버지 몰래 무이구곡에 내려왔다가 경 치에 심취해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다 대왕과 만나 인간 세계에 살게 되었 는데, 이를 본 철판도인(鐵板道人)이 옥황상제에게 고했다. 이에 옥황상 제는 진노해 철판도인에게 그녀를 데려오라 명했으나, 철판도인은 옥녀 의 뜻을 도저히 꺾을 수가 없었다. 철판도인은 하는 수 없이 마법으로 옥 녀와 대왕을 바위로 만들어 양쪽에 세우고, 그 사이에 병풍바위[철판장 (鐵板障)]를 두어 서로 보지 못하게 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관세음보살 이 옥녀봉 맞은편에 면경대를 두어 서로 얼굴이라도 비춰 보게 했다. 12) 양대(陽臺): 초(楚)나라 회왕(懷王)이 일찍이 고당(高唐)에서 노닐다 꿈 속에서 한 여자를 만나 정분을 나누었다. 여자가 이르기를 “저는 무산(巫 山)의 양지에 살며 아침에는 구름이 되었다가 저녁에는 비가 되며 언제나

양대 아래에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것은 송옥(宋玉)의 <고당부(高唐 賦)>에 나오는 얘기로 ‘운우지정(雲雨之情)’이라 일컫는다. 이후 남녀가

밀회하는 장소를 ‘양대’라 통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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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曲 二曲亭亭玉女峰 揷花臨水爲誰容 道人不作陽臺夢 興入前山翠幾重

해제

이 시 역시 전설과 고사(故事)를 제재로 한 작품이다. 초목이 자 란 옥녀봉은 꽃을 꽂은 여인의 모습으로, 마치 대왕을 기다리며 치장한 옥녀의 모습 같다. 전설로 전해지는 아름답고 슬픈 옥녀 봉의 사랑 이야기가 전반부에 도입되었다. 그런데 이런 시상(詩 想)이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갑자기 ‘도인(道人)’으로 전이되었

고, ‘운우지정’으로 회자되는 초 회왕과 무산 신녀(神女)의 사랑 이야기가 ‘양대’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옥녀봉의 전설 얘기가 무산의 신녀 고사로 바뀐 것이다. 즉, 요원한 전설에서 상대적 으로 가깝게 느껴지는 인간과 신녀의 고사를 끄집어내어 자신 이 들어갈 입지를 마련했다. 따라서 ‘양대’의 꿈이란 신녀를 만 나는 꿈이며, 그런 꿈을 꾸지 않는다고 한 것은 무이산의 선녀를 만날 일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이렇게 전개해 마지막 제4구에 시인의 감정을 드러내는데, 흥겨운 기분으로 앞산에 들어가 푸름을 만끽하겠노라고 했다. 이것은 산수 자연에 대한 몰입이며,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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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곡13)

삼곡에서 그대는 가학선을 보았는가? 노를 멈춘 지 몇 해인지 알 수가 없네. 상전벽해가 지금까지 여러 번 있었으니 물거품과 풍전등화가 어찌 가련치 않으리오.

三曲 三曲君看架壑船 不知停棹幾何年 桑田碧水今如許 泡沫風燈敢自憐

13) 삼곡에는 시내 남쪽으로 하늘 높이 솟은 험준한 암벽인 소장봉[小藏峰, 일 명 선반암(仙般巖)·선장암(仙場巖)]이 있다. 소장봉 동쪽 절벽 틈 사이 에 종횡으로 홍교판(虹橋板: 무지개다리 판)이 꽂혀 있고, 위에 두 개의 배가 놓여 있는데, 반은 틈새에 반은 허공에 걸려 있다. 이것이 소위 가학 선(架壑船)으로 배 모양의 관(棺)이다. 북쪽 절벽에는 석혈(石穴)이 있는 데, 13선인의 태골(蛻骨: 영혼이 승천한 후에 남는 해골)이 이곳에 있었다 고 한다. 이름은 비선대(飛仙臺)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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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시인은 절벽 틈 사이에 걸려 있는 가학선을 보고 인생무상을 느 꼈다. 가학선은 오래전에 죽은 사람의 시신을 안치한 관이고, 물거품이나 풍전등화는 곧 끝날 우리들의 운명이다. ‘상전벽해’ 는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는 뜻으로, 세상이 크게 바뀐 것이 벌써 몇 번인 것을 생각하면, 우리 인생은 찰나에 불과하니 가련할 따름이다. 여기서 ‘가학선’과 ‘상전벽해’의 조화가 시의 운치를 더욱 북돋우는데, 이것은 육지에 있는 ‘관(棺)’을 바다의 ‘선(船: 배)’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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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곡14)

사곡에 동서로 우뚝 솟은 두 암벽에는 바위꽃이 이슬에 젖어 푸른빛 늘어졌네. 금계 울음 그치니 아무도 보이지 않고 빈산엔 달이, 못엔 물만 가득하구나.

四曲 四曲東西兩石巖 巖花15)垂露碧㲯毿16) 金鷄叫罷無人見 月滿空山水滿潭

14) 사곡에는 동서로 큰 암벽 두 개가 있는데, 대장봉(大藏峰)과 선조대[仙釣 臺, 일명 조어대(釣魚臺)]다. 대장봉은 도교의 대장경을 숨겨 둔 곳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곳에는 동굴 두 개가 있는데, 벼가 자란다는 계과 암[鷄窠巖, 일명 계소암(鷄巢巖)]과 금닭이 살았다는 금계동(金鷄洞)이 다. 선조대는 신선이 낚시를 하던 곳이다. 그 아래에는 무이구곡에서 가 장 깊은 와룡담(臥龍潭)이 있다. 또한 대장봉 건너편에는 암벽에 석각된 시가 가득한 제시암(題詩巖)이 있다. 15) 암화(巖花): 바위에 핀 꽃. 16) 남삼(㲯毿): 털이 긴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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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주자는 꽤나 일찍 일곡을 출발했던 모양이다. 사곡을 지날 즈음 에도 해가 뜨지 않아 이슬이 남아 있었으니 말이다. 사곡에 들 어서자 큰 바위 두 개가 눈에 들어왔는데, 때는 봄기운이 완연한 음력 2월이라 암벽에 핀 꽃이 이슬에 젖어 푸른빛이 더욱더 늘 어진 것처럼 보였다. 두 큰 바위는 대장봉과 선조대인데, 대장 봉에는 금계가 살았던 금계동이 있다. 금계는 전설 속에 등장하 는 신령스런 닭으로, ≪신이경(神異經)≫에는 “무릇 부상산(扶 桑山)에 옥계(玉溪)가 있었는데, 옥계가 울면 금계가 울고, 금

계가 울면 석계(石溪)가 울고, 석계가 울면 천하의 닭이 모두 다 울고 조수가 감응한다”라고 했다. 나중에는 새벽에 우는 수탉의 미칭으로 사용되었다. 금계를 등장시킨 것 역시 전설을 얘기하 는 것이고, 전설을 얘기하는 것은 무이산의 신비로움을 고조하 는 것이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이미 수탉이 운 새벽 시간이지 만 사람은 보이지 않고 빈산의 달과 못에 가득한 물만 보일 뿐이 다. 못은 신선이 낚싯대를 드리웠다는 와룡담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암벽 두 개와 그 위에 늘어진 푸른 꽃, 빈산의 달, 물 가득 한 못 등은 당시 그곳의 정경을 직관적으로 묘사한 것이지만, 금 계를 등장시키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 것은 무이산의 신 비로움과 경이로움을 행간에 깔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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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곡17)

오곡은 산 높고 구름 기운 깊은데 오랫동안 안개비에 평림도는 어둑하다. 숲 속에 나그네 있으나 알아보는 자 없고 어기여차 하는 소리에 만고심18)이 있노라.

五曲 五曲山高雲氣深 長時煙雨暗平林19) 林間有客無人識 欸乃聲中萬古心

17) 오곡에는 은병봉[隱屛峰, 일명 대은병(大隱屛)]이 계곡 북쪽에 위치하며, 그 아래에는 무이정사가 있다. ‘평림(平林)’은 무이정사로 들어가는 초입 의 지명이다. 산이 높고 구름이 많아 안개비가 자주 내린다. 은병봉은 높이 솟은 병풍 모양에다 언제나 구름에 가려져 있어 붙은 이름이다. 또한 맞은 편에서 보면 푸른 병풍 속에는 붉은 바위가, 그 뒤에는 운와(雲窩)와 천유 봉이, 그 안에는 동천(洞天)이 깊이 숨겨져 있어 붙였다고도 한다. 맞은편 으로 신선이 옷을 갈아입는다는 갱의대[更衣臺, 일명 문봉(文峰)]가 있고, 갱의대를 지나면 여우굴이라는 호리동(狐狸洞)이 있는데 명대 저명한 도 사의 도량(道場)이 있던 곳으로 ‘남명정(南溟靖)’이라고도 부른다. 18) 만고심(萬古心):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물욕 없는 고요한 마음. 19) 평림(平林): 평림도(平林渡), 즉 평림 나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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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오곡의 주위에는 은병봉을 위시해 그 옆에는 접순봉[接笋峰, 일 명 절순암(折笋巖), 또는 소은병]이 있고, 맞은편으로는 만대봉 [晩對峰, 구명 자석봉(紫石峰), 속명 미륵봉(彌勒峰)·문봉(文 峰)·천주봉(天柱峰)]이 있다. 그래서 산 높고 구름 깊어 오랫

동안 안개와 비가 머문다. 평림은 무이정사의 초입으로 주자가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곳이다. 무이정사에 머무는 주자에게는 현재 지음(知音)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다. 그래서 외로움을 느끼며 이따금 들리는 어부의 노 젓는 소리에 만고심이 깃든 것 처럼 여긴다. 한마디로 서경과 서정의 결구 형식을 지닌 산수시 의 전형이다. 그런데 산수시의 가치는 형사(形似)적 서경도 중 요하지만, 서경을 통한 감정의 동요가 어떻게 확산되는지가 매 우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작품의 키워드는 ‘만고심’ 이고, 또한 어부의 노 젓는 소리에 ‘만고심’을 대입했다는 사실 이 주목을 받는다. ‘만고심’은 오랫동안 간직한 마음을 의미하 는데, 그렇다면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그것은 자연 속의 물 욕 없는 고요한 마음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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