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렉트라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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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렉트라



나오는 사람들

늙은 하인: 오레스테스를 어린 시절부터 보살핀 하인 오레스테스: 미케네의 전왕 아가멤논의 아들 엘렉트라: 아가멤논의 딸 코러스: 미케네 여인들 크리소테미스: 엘렉트라의 여동생 클리타임네스트라: 아가멤논의 미망인, 아이기스토스의 아내 아이기스토스: 미케네의 왕위를 찬탈한 왕 필라데스: 오레스테스와 같이 등장하나 무언의 배역

장소: 미케네 궁전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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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막1)

1) 서막(序幕) 또는 프롤로그(Prologue)는 현대극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부분 으로 여러 가지 상황이 관객들에게 알려지는 단계다.



(오레스테스와 노인, 그리고 필라데스 등장)

늙은 하인 트로이에서 그리스 대군을 이끌던

아가멤논 왕의 아들이여, 오랫동안 보길 원하시던 것들을 이제 직접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르고스 들판이 우리 앞에 있고, 쇠파리가 이오2)를 못살게 굴던 작은 숲이 여기 있습니다. 이쪽은 늑대를 죽인 신으로부터 이름을 따온 시장이며,3) 저기 왼쪽에는

2) 이오는 강의 신 이나코스와 멜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며 아르고스를 건 설한 포로네우스의 자매다. 제우스는 이오를 유혹해 검은 구름으로 주위를 덮은 뒤 관계를 맺고는 헤라의 눈을 속이기 위해 그녀를 암소로 변신시켰다. 헤라는 제우스가 바람을 피운 것을 눈치챘으나 모른 척하고 암소를 선물로 달라고 했다. 제우스는 헤라의 요구를 거절하면 더 의심을 살 것 같아 암소 를 건네주었고, 헤라는 100개의 눈을 가진 거인 아르고스에게 암소를 감시 하도록 맡겼다. 그러나 제우스는 이오를 찾아오기 위해 헤르메스를 보냈다. 헤르메스는 여러 가지 이야기와 피리 소리로 아르고스가 100개의 눈을 모 두 감고 잠들게 한 뒤 칼로 목을 베어 버렸다. 이에 헤라는 아르고스의 머리 에서 눈을 빼내 공작의 깃털 장식으로 삼고, 무지개를 보내 이오를 쫓게 하 는 한편 쇠파리로 하여금 암소가 된 이오를 쫓아다니며 괴롭히게 했다. 3) “늑대를 죽인 신”이란 아폴론을 뜻한다. 신화에서 아폴론 신은 늑대로부터 양 떼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늑대를 죽인 신으로부터 그 이름을 따온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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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 여신의 그 유명한 신전이 있습니다. 우리가 도착한 이곳에는 황금이 많이 나는 미케네4)가 보이고, 피로 물든 죽음의 집 펠롭스5) 님의 저택이 보입니다.

그 옛날 도련님 부친께서 살해되었을 때, 도련님의 누이로부터 제가 도련님을 넘겨받아 그 집으로부터 빠져나왔지요. 그리고 도련님을 안전하게 피신시켰어요. 그때부터 멋진 남아가 된 지금까지 바로 제가 도련님을 길렀답니다.

장”이란 ‘리키아’ 시장을 말하는데, 아폴론 신의 별칭이 ‘리케이오스’였기 때문이다. 4) 미케네는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 동북쪽에 있던 고대 성채 도시다. 미 케네 문명의 중심지로 BC 1400∼BC 1200년경에 번영을 누렸으나 발칸 반 도를 남하해 온 도리스인에 의해 멸망했다. 전설에 따르면 미케네는 트로 이 원정의 총수로 출전한 아가멤논과 그의 아버지 아트레우스가 지배했다. 5) 펠롭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 신의 손자다. 아버지인 탄탈로스가 신을 기만한 죄와 자신을 도와 피사의 왕 오이노마오스를 죽인 미르틸로스를 배 신하고 죽게 한 죄로 저주를 받았다. 그로 인해 펠롭스의 자손은 대대로 불 행하게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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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아버님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지금까지 말입니다. 그러니 오레스테스 도련님, 그리고 도련님의 절친한 친구인 필라데스 님, 이제 앞으로 뭘 할지 급히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별이 반짝이는 어두운 밤, 이미 사라졌고, 낮의 밝은 햇빛, 새벽잠 깨우는 새들을 일깨워 제각기 노래 부르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집에서 사람이 나오기 전에 계획을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이 바로 행동하기 딱 좋은 시간입니다. 오레스테스 친애하는 할아범, 잘 알고 있소.

우리 가문에 대한 그대의 변함없는 충정을… 당신은 훌륭한 늙은 준마와도 같소. 위급할 때도 그 기세가 흐트러지지 않고 귀를 바짝 세우는 준마 말이오. 당신은 전투의 선봉에 선 주인을 재촉하고 그의 기를 북돋아 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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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내가 하려는 일에 실수가 있거든 내 잘못을 고쳐 주시오.

내 아버님을 살해한 자들을 정죄해 철저하게 아버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 피토6)의 신전에 신탁을 들으러 갔을 때, 포이보스7) 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창이나 방패나 군대를 동원하지 말고, 홀로 가서 은밀히 제 손으로 원수를 갚으라.” 자 이제, 우리 함께 신탁을 들었소. 그러니 기회가 있으면 이 집에 들어가 모든 게 어찌 돌아가는지를 보고 우리에게 자세히 알려 주시오. 당신은 늙었고, 오랜 세월이 지났으니 그 어느 누구도 당신이 누군지 눈치채지 못할 거요. 또한 그렇게 백발이 되었으니 6) 피토는 델포이의 옛 이름이다. 7) 포이보스는 아폴론 신의 별칭이다. 그가 우라노스와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 난 빛의 여신 포이베로부터 델포이 신전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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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당신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오. 그러니 이렇게 말해요. 이 나라 사람이 아니고 포키스 사람인데, 파노테우스가 보내서 왔다고. 그 사람은 놈들과 가장 가까운 패거리니까요. 오레스테스에게 불의의 사고가 생겨 갑자기 죽어 버렸다고 말하세요. 그리고 거짓말이 아니라고 맹세하세요. 오레스테스가 피토에서 경기를 하다가 맹렬히 달리는 전차에서 굴러떨어져 죽어 버렸다고 알리세요. 이게 바로 당신이 해야 할 이야기요.

우선 포이보스의 분부대로 아버지의 무덤에 가서 제주를 올리고 길게 자란 머리털을 잘라 바칩시다. 그러고는 당신도 알다시피, 내가 저 덤불에 감춰 둔 청동 유골 항아리를 들고 여기 다시 되돌아오는 겁니다. 그러고는 불에 태워 재가 된 내 유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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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다고 거짓말을 하는 거요. 이렇게 해서 우린 놈들이 기뻐할 그럴듯한 소식을 전하는 거요. 그렇게 말하는 걸 왜 거리끼겠소? 말로는 죽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살아 있고 영예가 될 일인데… 말해서 이로운 것이라면 어떤 말인들 나쁠 게 뭣이 있겠소. 소문으로는 죽었다고 하고 살아서 다시 집에 돌아와, 그전보다 더 환영받고 존경받는 현자들을 나는 가끔 본 적이 있소. 내 경우도 마찬가지요. 나도 소문으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내 적들에게 마치 빛나는 별처럼 보였으면 좋겠소.

조국 땅이여, 그 땅의 신들이시여! 절 환영해 주시고 성공하고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저의 길을 축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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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께서 보내신 정의의 심판자로서 그리고 죄를 씻어 내 정화하려는 자로서 나, 오레스테스, 조상들 집에 왔답니다. 치욕스럽게 이 나라에서 쫓겨나지 않고 옛 재물로 다시 부유해지고 내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게 하소서!

자, 이제 내가 할 말은 다했소. 할아범, 이제 가서 맡은 일을 해 주시오. 우리 둘도 곧 가겠소. 정말 적절한 기회가 왔어. 인간만사의 위대한 감독인 기회가… 엘렉트라 (집 안에서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 아! 늙은 하인 도련님, 집 안에서 어떤 하녀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요. 오레스테스 불쌍한 엘렉트라가 아닐까요?

당신은 여기 머물러 그녀가 우는 소리를 듣기 원하시오? 늙은 하인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아폴론 신의 명을 시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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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아버님 묘소에 깨끗한 제주를 부어 드리고 우리의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승리할 수 있고 우리 계획이 완전히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퇴장)

(엘렉트라, 등장)

엘렉트라 오, 거룩한 빛이여!

그리고 대지를 떠도는 대기여! 어두운 밤, 사라질 때 그 얼마나 많이 들었던가? 한이 맺힌 내 노래와 가슴에 피가 맺히도록 내리치는 구슬픈 심장박동 소리를… 차디찬 나의 침상에서 그 얼마나 기나긴 밤을 지새웠던가? 비탄의 늪에 빠진 집에서 불행한 아버지 생각에 만가를 부르면서… 아버지를 죽게 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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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의 무시무시한 전쟁의 신이 아니라 내 어머니와, 그리고 한 침대에서 그녀와 놀아난 아이기스토스. 나무꾼이 박달나무를 찍듯이, 죽음의 기운이 서린 서슬 퍼런 도끼로 내 아버지의 머리를 갈라놓았어! 하지만 나 외에 그 어느 누구도 그분 죽음에 연민의 정을 보여 주지 않아. 잔인한 수법으로 인해 그렇게 불쌍하게 돌아가신 분인데!

하지만 반짝이는 별빛과 이 대낮의 빛을 볼 수 있는 한, 나는 계속 만가를 부르면서 슬픔의 탄식을 결코 멈추지 않을 거야. 내 아버지 소유였던 이 집의 문턱에 서서 세상 모든 이들이 다 듣도록 소리 높이 울어 댈 거야. 새끼를 물어 죽인 나이팅게일처럼…

하데스와 페르세포네8)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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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하시는 집인 명계(冥界)여! 저승길 안내하는 헤르메스여! 신성한 저주의 신이시여! 억울하게 죽은 모든 이를 굽어보시고 아내의 사랑을 도둑맞은 이들을 굽어보는 무시무시한 복수의 여신이시여, 모두들 이리 오셔서 살인자들에게 원수를 갚는 일과 제 아버지를 위한 복수를 도와주소서! 저를 도울 수 있게 제 동생을 돌려보내소서! 절 짓누르는 비애의 짐,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워 이제 더 이상 버틸 힘도 없습니다.

8) 하데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을 다스리는 신이다 . 지하의 부를 인간에게 가져다준다고 해서 플루톤[부자(富者)]이라고도 불렸다. 크로노스와 레아 의 아들이며 제우스, 포세이돈과는 형제간이다. 그가 지배하는 명계에는 스 틱스 강 또는 아케론 강이 있어 뱃사공 카론이 죽은 자들을 건네준다. 명계 의 입구에는 죽은 자들이 나가지 못하도록 케르베로스라는 개가 감시하고 있다. 페르세포네는 데메테르의 딸이자 하데스의 아내다. 하데스가 페르세 포네를 납치해 아내로 삼았는데, 그녀가 하데스와 함께 명계에 있는 동안에 는 겨울이 오고, 데메테르와 지상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봄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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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가9)

코러스(송가 1) 아, 독한 어머니의 불쌍한 딸,

왜 그렇게 끝없는 비탄에 빠져 애간장을 태우시나요? 사악한 어머니의 속임수에 빠져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가멤논을 위해선가요? 이런 기도를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일을 꾸몄던 사악한 자들은 모두 죽어 종말을 맞이하라! 엘렉트라 진실한 마음을 가진 여인들이여,

제 고통과 근심을 위로하러 오셨군요.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들 하신 말을 잘 이해하고 있어요. 하나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련한 내 아버지를

9) 등장가 또는 파로도스(parodos)는 코러스가 등장해 오케스트라에 자리를 잡고 부르는 노래이며, 송가(頌歌)와 답송(答頌)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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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하는 걸 그만둘 수 없답니다. 모든 일에 친절을 베푸시어 고맙습니다. 하지만 제발 부탁입니다. 제가 애도하도록 이대로 그냥 두세요.

코러스(답송 1) 당신 뜻대로 슬퍼하고 빌어도

누구나 한 번 가면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늪에서 아버님을 다시 모셔 올 수는 없습니다.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슬픔에 빠져 마냥 슬퍼하기만 한다면, 어찌할 수 없는 슬픔 때문에 결국 당신 자신을 망치고 맙니다. 그건 단지 괴로움을 줄 뿐입니다. 왜 그런 고통을 자청하십니까? 엘렉트라 불쌍하게 죽은 부모를 잊는 사람은

정말 단순한 사람입니다. 제 심정은 지금 제우스의 전령 나이팅게일10)의 심정과 같아요.

10) 트라키아의 왕 테레우스는 프로크네의 남편이었는데, 처제인 필로멜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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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나 ‘이티스, 이티스’ 하면서 슬프게 울어 대는 나이팅게일의 심정과… 니오베11) 당신도 모든 고통을 견뎌 냈죠. 나는 당신을, 바위 무덤에 앉아 한없이 울어 대며 탄식하는 니오베 당신을 신으로 생각합니다.

코러스(송가 2) 아가씨, 당신만이

비탄의 짐을 진 게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피를 나눈 그 어느 가족보다도 유별나게 슬퍼하는 마음을 드러내는군요. 게 욕정을 품어 그녀를 겁탈하고 혀를 잘랐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프로크네 는 테레우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이티스를 죽인 뒤 그 살을 테레우스가 먹여 복수했다. 테레우스가 분노해 자매를 죽이려고 하자 제우스는 테레우 스를 매로 변하게 하고 프로크네는 나이팅게일, 필로멜라는 제비로 변신시 켰다고 한다. 11) 니오베는 테베의 왕 암피온의 아내로 일곱 명의 아들과 일곱 명의 딸을 낳 았다. 그녀는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어머니인 여신 레토에게 자신이 자 식이 많다는 걸 뽐냈는데, 이에 화가 난 레토는 아폴론에게는 니오베의 아 들들을, 아르테미스에게는 그녀의 딸들을 죽이도록 했다. 모든 자식을 잃 은 니오베는 비탄에 빠져 울다가 돌이 되었고, 그 돌에서 눈물이 계속 흘 러나왔다고 한다. 그리하여 니오베는 자식을 잃고 슬퍼하는 어머니의 상 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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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소테미스와 이피게네이아와 비교해도 오레스테스와 비교해도 유별납니다. 오레스테스의 귀환을 신께서 축원한다면, 슬픔 속에 은밀하게 성인으로 자란 그가 훌륭한 미케네 땅의 환영받는 왕자로 머지않아 이곳에 돌아오실 겁니다. 엘렉트라 난 끝없는 슬픔을 견디면서 기다렸어요.

시집도 못 가고 아기도 없이 하염없이 눈물 흘리며 기다렸지만 모두가 부질없는 짓이었어요. 동생은 당한 고통도 보고 들은 것도 모두 잊어버린 게 틀림없어요. 그에게서 뭔 소식이 왔나요? 또 실망스런 소식은 아닌가요? 그래요. 그는 늘 돌아오고 싶다고 하면서도 돌아오길 택하지 않았으니까요.

코러스(답송 2) 아가씨, 힘을 내세요.

하늘에 계신 위대하신 제우스 신께서 인간만사를 널리 굽어보신답니다. 참을 수 없는 그 분노를 그분께 맡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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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하는 원수들로 인해 너무 안달하진 마십시오. 그렇다고 완전히 잊지는 마세요. 세월은 인자한 신이기 때문이랍니다. 포키스의 크리사 해변에서 소 떼를 기르며 사는 아가멤논의 아드님도 아케론의 강을 다스리시는 신께서도 결코 아가씨를 버리지 않을 겁니다. 엘렉트라 하지만 희망 없는 수많은 세월이

속절없이 흘렀습니다. 전 더 이상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부모 없는 어린 시절이 속절없이 지나갔고 사랑하는 남편 없이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비천한 이방인처럼 누더기를 걸치고 내 아버지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고 별 반찬 없는 밥상 앞에 서서 밥을 먹습니다.

코러스(송가 3) 트로이전쟁을 끝내고

아가멤논 그분께서 귀향하셨을 때 통곡 소리가 온 집 안에 가득했어요. 침상에 계신 아버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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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 도끼날이 떨어졌을 때, 비통한 소리가 울려 퍼졌어요. 계획은 교묘하게 꾸며지고 격정은 사람을 잡습니다. 계략을 꾸미는 사람과 격정 사이에서 무서운 형상이 태어납니다. 이런 일을 꾸민 자가 누구든, 신이든 사람이든 무섭기 그지없습니다. 엘렉트라 그날은 그 어느 날보다

적들이 설치던 끔찍한 날이었어요. 아, 밤이여, 입에 올리기도 두려운 잔치 자리의 무서운 짐이여! 아버님은 그 두 사람에게 무참히 살해되어 한 많은 세상을 떠나셨어요. 그들이 내 삶을 움켜쥐고 날 배반하고 내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 놓았어요. 올림포스의 위대한 신이시여, 이런 짓을 한 그들이 단단히 죗값을 치르도록 하소서! 이런 짓을 저지른 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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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누리지 못하도록 하소서!

코러스(답송 3) 너무 많은 얘기를 하지 않도록 조심해요.

어떤 행동들이 아가씨를 지금의 그런 고통으로 몰아넣었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하시는 겁니까? 부끄럽게도 당신은 스스로 불러들인 파멸에 몸을 맡기고 있어요. 당신의 음울한 영혼 속에선 싸움이 싸움을 낳고, 그로 인해, 당하지 않아도 될 고통을 스스로 불러들이고 있어요. 강한 자와 정면으로 붙으면 반드시 그런 갈등을 겪게 돼 있어요. 엘렉트라 공포에 사로잡혀

그리할 수밖에 없었어요. 저는 잘 알고 있어요. 제 기질을 잘 알고 있어요. 공포가 날 감싸고 있어서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이 격렬한 비탄의 외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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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어요. 다정한 여인들이여, 누구에게 들을 수 있을까요? 날 위로하는 적절한 말을 말입니다. 절 위로하시는 분들이여, 제발 나를 좀 내버려 두세요. 나의 병은 치유할 길 없고 내 슬픔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내가 부르는 수많은 만가도 내 슬픔과 괴로움을 다 말해 주진 못해요.

코러스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처럼

당신을 생각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제발 불행에 불행을 더 보태진 마십시오. 엘렉트라 하지만 제 불행에 어찌 끝이 있겠어요?

죽은 사람의 사인이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그 일을 잊는 게 어찌 명예로운 일이겠어요? 그럴 사람이 대체 어디 있겠어요? 그만두면 좋은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행동하고 싶지는 않아요. 아버지의 명예롭지 못한 죽음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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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게 애도하는 일을 그만두면서까지 편히 살고 싶지는 않아요. 만약 죽은 사람이 그 어느 것도 아닌 진토일 뿐이라서 불쌍하게 버려진 채 그 어느 누구도 돌보지 않는다면, 죽음을 죽음으로 되갚아 주지 않는다면, 수치를 알고 경건한 사람들은 모두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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