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편집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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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편집


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급변하는 커뮤니케이션 환경 속에서 새로운 지식에 대한 욕구가 높 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추어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주 제를 10개 항목으로 묶어서 달걀 꾸러미처럼 엮었습니다. 사회의 변 화를 빠르게 알기 원하는 대중과 시대에 앞선 지식을 단시간에 알고 자 하는 연구자, 실무자,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편집자 일러두기 ∙ 이 책은 영화 편집에 관심을 가진 분들을 위한 안내서입니다. 영화 편집의 기본 용어, 개념, 기법, 실무 등에 대해 개괄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영화의 미학적 측면이나 편집 소프트웨어 운용에 관한 내 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 외래어 표기는 현행 한글어문규정의 외래어표기법을 따랐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영화 편집 김진희

대한민국,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4


영화 편집

지은이 김진희 펴낸이 박영률 초판 1쇄 펴낸날 2014년 4월 15일 커뮤니케이션북스(주) 출판등록 2007년 8월 17일 제313-2007-000166호 121-869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571-17 청원빌딩 3층 전화(02) 7474 001, 팩스(02) 736 5047 commbooks@eeel.net www.commbooks.com CommunicationBooks, Inc. 3F Cheongwon Bldg., 571-17 Yeonnam-dong Mapo-gu, Seoul 121-869, Korea phone 82 2 7474 001, fax 82 2 736 5047 이 책은 커뮤니케이션북스(주)가 저작권자와 계약해 발행했습니다. 본사의 서면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이 책의 내용을 이용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김진희, 2014 ISBN 979-11-304-0143-0 책값은 뒤표지에 있습니다.


마술사가 보이지 않는 마술

편집이란 무엇인가 관객들은 영화가 만들어진 이야기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 도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세상에 빠 져든다. 등장인물의 감정을 함께 느끼며 울고 웃는다. 어 느 순간 관객은 영화와 하나가 된다. 자기도 모르게 영화 속으로 빠져들도록 관객을 매혹시키는 마술, 그것이 바로 영화 편집이다. 편집의 세계는 영화의 여러 영역 중 잘 알려지지 않은 분 야에 속한다. 편집의 미학적 측면은 완성된 작품을 통해 분 석할 수 있다. 하지만 편집 과정에서 편집자가 어떻게 영상 을 파악하고, 장면을 구상하며, 그 영화에 가장 적합한 리 듬을 어떻게 찾아내는지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영화 편 집󰡕에서는 그 장막을 걷고 영화 예술 고유의 창작 과정을 살펴본다. 대중에게 공개되는 영화의 길이는 보통 2시간 전후다. 그러나 실제로 촬영하는 분량은 그보다 훨씬 많다. 국내 상업 영화의 경우, 촬영본(촬영 분량)과 완성된 영화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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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이 대략 25대 1 정도다. 디지털 방식의 촬영이 보편화되 면서 촬영 분량이 크게 증가했다. 영상을 기록하는 매체 만을 놓고 보면, 필름에 비해 디지털 저장 방식이 상대적 으로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1979년 영화 <지옥의 묵시 록(Apocalypse Now)>은 필름으로 촬영한 영화인데도, 촬영된 분량이 완성본의 95배에 달했던 것으로 악명 높다. 촬영본과 완성본의 비율이 1대 1이 되지 않는 것은 삭제된 장면들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효 과적인 편집이 가능하도록 같은 내용을 다양한 앵글 (angle)에서, 또 같은 앵글을 반복해 촬영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페의 대화 장면을 떠올려 보자. 두 사람이 들어와서 의자에 앉고 이야기를 시작한 다. 대화는 점점 더 중요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우리는 그 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어느 한 사람에게 혹은 두 사람 모두에게 공감하게 된다. 이 장면을 설득력 있게 만 들기 위해 감독은 촬영 현장에서 수많은 스태프들의 도움 을 받으며 필요하다고 판단한 여러 숏(shot)들을 촬영할 것이다. 먼저 두 사람 모두를 한 프레임(frame)에서 보여 주는 숏이 있다. 두 사람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보이고 카 페 내부 인테리어도 잘 보인다. 두 사람의 허리까지만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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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에 잡혀서 테이블 위에 찻잔이나 꽃 장식이 좀 더 잘 보 이는 숏도 있다. 카페의 창밖에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두 사람을 보여 주는 숏도 있다. 두 사람을 각각 보여 주기 도 한다. 한 프레임에 한 인물만 담는 것이다. 인물의 몸 전체, 허리까지, 가슴까지, 얼굴만 보여 주는 숏들이 있다. 인물의 옆모습을 보여 주는 숏도 있고 45도 정도의 앞모습 을 보여 주는 숏도 있다. 찻잔을 잡고 있는 손, 테이블 위 의 꽃 장식, 구두 등을 따로 보여 주는 숏들은 아주 가까이 다가가 찍은 것이다. 또 계산대 주변에서 음료를 준비 중 인 바리스타를 보여 주는 숏도 있다. 예전에 보았던 영화에서 이와 비슷한 장면을 떠올려 보 자. 이러한 숏들이 조금씩 모여 대화 장면을 구성했다는 것이 어렴풋이 기억날 것이다. 영화의 장면은 여러 개의 숏으로 나누어서 촬영되고, 숏들을 다시 조합해 하나의 장 면으로 완성한다. 숏들을 조합하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완결된 이야기를 구성하는 과정을 편집이라고 한다. 편집에서는 맨 처음 어떤 숏으로 시작하고, 어느 지점에 서 다른 숏으로 바꿀 것인지를 결정한다. 편집자는 숏의 변 화를 통해 움직임을 더욱 역동적으로 만든다. 공간을 재구 성하고, 숏 하나로 공간을 바꾼다. 시간을 압축하고 확장하 고 생략한다. 그런데도 관객들은 숏이 바뀐다는 사실에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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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 주목하지 않는다. 영상과 사운드가 전하는 정보와 감정 을 따라가며 스크린 위에 펼쳐진 상황에 몰입한다.

숏의 연결 감독은 촬영 전에 그 장면을 어떻게 찍을 것인지 여러 스 태프의 의견을 참고해 구상한다. 계획된 이미지들의 나열 을 그림으로 옮긴 것이 스토리보드(storyboard)다. 촬영 현장에서 어떠한 숏을 찍을 때, 스토리보드에 묘사된 분량 만큼만 찍는 경우는 드물다. 가령 카페로 들어온 두 사람 이 의자에 앉고 나면, 그다음에는 한 인물을 허리까지 보 여 주는 숏으로 넘어가기로 계획했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서 두 인물이 의자에 앉는 것까지만 촬영하지는 않는다. 두 인물이 대화를 하는 모습도 이어서 계속 촬영한다. 숏 이 바뀌는 지점이 편집 과정에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막상 화면을 붙여 보면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판단을 할 때가 많다. 앉고 나서 바로 숏이 바뀌는 것이 급하게 느껴 지고, 대신 서로 인사말을 주고받은 후 메뉴판을 쳐다볼 때 숏이 넘어가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하나의 숏을 한 번만 촬영하는 경우는 드물다. 문제가 있어서 다시 찍을 수도 있고, 감독이나 배우의 의사에 따 라 연기에 변화를 줄 수도 있다. 대형 폭발 장면처럼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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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준비하기가 어려운 경우에는 각기 다른 위치에서 여러 대의 카메라로 동시에 촬영을 한다. 편집에서는 현 장에서 시도한 다양한 숏들 중에서 장면에 가장 적합한 부 분들을 선택하고 연결한다. 숏을 일단 연결하고 나면, 편집자는 연결이 자연스러운 지 다시 확인한다. 숏이 바뀌는 지점 근처를 계속해서 다 시 보면서 약간씩 조정을 한다. 그 장면만 볼 때는 자연스 럽게 느껴졌던 편집이 앞뒤 다른 장면의 맥락에 따라 부자 연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영화를 처음부터 쭉 보면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컴퓨터 모니터로 볼 때와 대형 스크린에서 볼 때도 느낌이 달라진다. 모니 터에서 볼 때는 길게 느껴졌던 숏이, 스크린에서는 순간적 으로 지나간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 편집 실에는 큰 화면의 모니터가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데스 크톱의 모니터를 보며 편집을 진행하되, 일련의 장면들이 완성되면 큰 모니터로 확인해 본다. 편집은 끊임없이 수 정하는 과정이다. 세심하게 검토해서 선택하고 연결하지 만, 언제든 문제점이 느껴지거나 더 나은 대안이 생각나 면, 편집자는 수정을 거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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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구성 숏의 연결은 편집의 미시적 측면이다. 거시적 측면에서 보면 편집은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이다. 숏들을 연결하고 조정하는 것은 그 장면에서 진행되는 상황을 효 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장면들이 모여 한 편의 영화가 된다. 각 장면들은 인과 관계에 따라 설득력이 있 게 진행되면서 하나의 큰 이야기가 된다. 편집자는 각각 의 장면을 편집한 후, 장면들을 시나리오의 순서대로 연결 한다. 그러고 나서 이야기가 잘 이해되고 몰입이 되는지 전체적인 관점에서 영화의 흐름과 리듬을 확인하고 수정 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장면은 사라지기도 한다. 위치가 옮겨질 수도 있다. 그리고 옮겨진 위치의 전후 맥락에 따 라 다시 장면의 리듬을 조절한다. <잉글리쉬 페이션트(The English Patient)>(1996)는 2차 대전 종전 무렵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 간호사 하나가 심한 부상으로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한 남자(알마시)를 보살피는 이야기다. 알마시가 하나에게 들려주는 과거의 사랑 이야기가 영화의 중심을 이루지만, 현재의 하나가 폭 탄 해체 전문가인 킵을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도 함께 전개 된다. 영화의 종반부에서 하나는 킵과 아쉬운 작별을 하 고 돌아온다. 때마침 알마시가 하나에게 안락사를 부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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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하나는 약을 준비하며 눈물을 흘린다. 원래는 이 두 장 면 사이에 킵과 헤어지고 쓸쓸하게 돌아오는 하나의 장면 이 있었지만 최종 편집 과정에서 삭제되었다(Ondaatje, 2002). 하나의 상실감이 너무 절절히 느껴지면, 바로 뒤에 나오는 알마시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이 덜 부각되기 때문 이다. 때로는 보석 같은 장면도 전체 영화의 흐름을 위해 도려내게 된다. 영화의 제작 과정에서 이야기는 세 번 써진다. 작가에 의해 시나리오로 완성된 이야기는 감독에 의해 촬영 현장 에서 재탄생된다. 그 과정에서 대사가 바뀌거나 장면의 내용과 진행이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으로, 글로 표현한 이야기가 이미지와 사운드에 의해 다시 써진 다는 점에서 연출은 완전히 새로운 스토리텔링이다. 현장 에서 촬영한 영상에는 시간과 움직임과 에너지의 흐름이 담긴다. 감독은 한 줄의 지문 혹은 대사를, 인물들의 행위 와 동선, 대사의 속도, 주변 공간 등을 이용해 묘사한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곳이 편집 실이다. 촬영 현장에서 연출을 통해 숏 안의 흐름을 다시 썼다면, 편집에서는 숏, 장면, 시퀀스(sequence)의 배치 와 리듬을 통해 전체 이야기의 흐름을 구성한다. 관객들 이 보게 될 이야기가 최종적으로 결정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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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편집 필름을 직접 편집하던 시절에는 숏의 연결과 수정을 오 늘날보다 신중하게 진행했다. 촬영 원본인 네거티브 (negative) 필름은 따로 보관하고, 그것을 현상한 포지티 브(positive) 필름을 직접 자르고 붙이며 편집을 진행했다. 필름을 계속해서 앞뒤로 돌리며 확인하고 자르고 붙이는 동안, 필름에는 스크래치가 생기고 숏의 연결 부위는 불안 정해질 수밖에 없었다. 잘라냈던 숏이나 몇 프레임을 다 시 찾아서 연결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렸다. 물론 그 시절 에도 수없이 편집을 수정했다. 다만 여러 번 고민하고 확 신이 섰을 때 실행에 옮겼다. 디지털 비선형 편집 시스템(digital non-linear editing system)이 일반화되면서 숏을 연결하고 수정하는 과정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월해졌다. 디지털 편 집 시스템이란 필름이 아닌 필름의 이미지와 정보를 변환 시킨 디지털 데이터 혹은 디지털 방식으로 촬영한 데이터 를 컴퓨터에 저장하고, 아비드(Avid)나 파이널 컷 프로 (Final Cut Pro) 등의 소프트웨어로 편집하는 것을 의미한 다. 비선형 편집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원하는 이미지나 편집할 부분에 즉각적이고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 이다. 필름 편집은 선형 편집 방식으로 원하는 지점에 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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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하려면 필름을 계속 감아야 한다. 디지털 편집에서는 마우스 클릭 한두 번으로 숏을 교체 하고 늘리고 줄일 수 있다. 편집자는 이미지를 감각적으 로 파악하고 즉각적으로 행위에 옮긴다. 숏을 붙이기 전에 고민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대개 숏을 붙이고 난 후 확인한 다. 편집 작업 자체는 수월해졌지만 편집 과정 전체가 수월 해진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손쉽게 수정할 수 있게 되면서 편집을 확정짓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오랜 고민 후 에 결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정과 번복이 계속되고, 나 중에는 편집에 대한 판단력이 모호해지기도 한다. 뿐만 아 니라 실제 편집 작업 전후에 필요한 디지털 데이터의 각종 변환 과정들 때문에 부가적인 작업 시간이 늘어났다. 디지 털은 발전된 기술이지만 보관력 자체만으로 볼 때는 필름 보다 손실의 위험이 더 크다. 그래서 디지털 편집을 할 때 는 백업 데이터 여러 개를 따로 보관하게 된다. <매그놀리아(Magnolia)>(1999), <브로크백 마운틴 (Brokeback Mountain)>(2005) 등을 편집한 딜런 티케노 (Dylan Tichenor)는 디지털 편집의 장단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디지털) 비선형 편집은 영화계와 영화인들 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매우 다양한 편집을 시도 하고 여러 가지 다른 편집본을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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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 그러한 자유로 인해 다른 기량이나 집중력을 놓칠 수 도 있다. 디지털 편집 방식은 깊게 생각하지 않게 만든다. 피상적인 생각만 하도록 부추긴다.”(Chang, 2012) 더 이상 필름으로 편집하는 영화는 없다. 필름 편집의 경험을 가진 편집자라면 누구나 필름 편집만이 가진 장점 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 역시 필름 편집 작업을 다시 선 택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고 해도 과거 방식으로 돌아가지 는 않을 것이다. 디지털 편집 시스템이 가진 작업의 효율 성과 표현력의 확장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세대는 필름 편집 과정의 사고방식, 감성, 리듬을 경험한 적이 없 기 때문에 디지털 편집이 가진 힘과 그림자를 명확하게 자 각하기 어렵다. 디지털 시대에 편집자는 빠른 작업 속도 때문에 편집에 대한 사색과 감상의 시간이 사라지지 않도 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더 신중하게 선택하고 때때로 키 보드로부터 떨어져 나와 여유를 가지고 영상을 보는 시간 을 가질 때, 더 좋은 작품이 나온다.

보이지 않는 컷 오귀스트 로댕(François-Auguste-René Rodin)의 1904년 작품 ‘생각하는 사람(Le Penseur)’ 앞에서 사람들은 고뇌 에 빠진 한 남자를 본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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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지만, 그의 고민이 깊다는 것만큼은 너무도 분명하게 느 껴진다. 대학 시절 한 수업에서 로댕이 남자의 심각함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시도를 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은 적 이 있다. 남자의 어깨는 안으로 움츠려져 있고, 오른쪽 팔 꿈치는 가까운 오른쪽이 아닌 왼쪽 무릎에 닿아 있다. 그 로 인해 상체는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더 숙여진다. 왼팔 은 오른쪽 팔꿈치 외부를 감싼다. 무릎 사이에 위치한 왼 손은 안쪽으로 구부러져 있다. 턱을 괸 모습도 일반적인 경우처럼 손바닥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손등을 쓰고 있다. 턱을 괸 손등 너머의 손가락들은 몸 안쪽을 향한다. 발가 락들도 모두 힘주어 안으로 구부려져 있다. 그의 모든 신 체는 자신의 몸 중심으로, 안으로, 내부로 향하고 있다. 그 가 깊은 사색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바로 이처 럼 일관되게 내부로 향하는 방향성 때문이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은 작가의 구체적인 전략을 알 필요가 없다. 그러나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다르다. 자 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수용자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서는 구체적인 기법과 기술이 필요하다. 관객에게 영화의 감동을 전달해야 하는 편집자에게도 필요한 지식이 있다. 󰡔영화 편집󰡕은 편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내용을 개괄 적으로 다루고 있다. 숏, 편집의 기준, 편집의 발전,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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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과 불연속 편집, 관객의 시선, 시각적 논리, 반응 숏, 리듬, 편집 기법을 이해하면, 편집을 할 때 촬영본에서 무 엇을 보고 관객의 공감을 어떻게 끌어내어야 하는지를 알 게 된다. 마지막 장에서는 실제로 편집 작업이라는 것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고 편집자의 구체적인 역할이 무엇인지를 소개한다.

보이지 않는 마술사 스크린에서 마지막 이미지가 사라지면 영화는 끝이 난다. 극장 내부의 작은 등이 켜지고 관객들은 자리를 뜬다. 사 람들에게 영화는 배우나 감독의 이름과 함께 기억된다. 그러나 사실 영화는 수많은 사람들의 예술적 안목과 기술, 그리고 열정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편집자도 그중 에 한 명이다. <졸업(The Graduate)>(1967), <악마의 씨(Rosemary’s Baby)>(1968), <차이나타운(Chinatown)>(1974) 등을 편 집한 샘 오스틴(Sam O’Steen)은 “내가 편집한 영화에서 내가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O’Steen, 2002). 관 객이 영화에서 편집자를 인식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 다. 사람들은 완성도 높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감독 을 언급한다. 멋진 풍광이나 박진감 넘치는 액션 장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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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며 촬영에 감탄하고, 감동적인 장면을 떠올리며 배우의 연기를 칭찬한다. 그러나 낱개의 멋진 영상들이 완성도 있게 느껴지도록 연결하고, 원석 같은 배우의 연기를 섬세 하게 다듬어 빛나게 한 작업이 바로 편집이다. 같은 재료 와 레시피를 가지고도 요리사에 따라 완전히 다른 요리가 만들어지듯이, 같은 촬영본으로도 편집에 따라 완전히 다 른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 편집 자체는 드러나거나 자각되는 것이 아니다. 편집은 영화 속에 녹아 있다. 때문에 그 일을 하는 편집자의 존재 도 드러나지 않는다. 좋은 영화는 좋은 편집이 아니라 좋 은 영화 그 자체로 기억된다. 가장 좋은 촬영본은 편집하기 좋은 촬영본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편집자가 촬영본을 잘 읽어 내는 역량을 가 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편집자는 촬영본에 흐르는 고유한 리듬에 자신의 몸의 리듬을 일치시키고자 애쓴다. 느린 호흡의 영화를 편집할 때는 평소에도 느린 음 악을 듣고, 빠른 호흡의 영화를 편집할 때는 편집에 앞서 스스로에게 활기를 불어넣으려고 노력한다. 편집자가 촬 영본의 리듬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을 해 체하고 다시 조합해야 하는 임무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촬 영본에는 감독의 의도가 들어 있다. 그 의도가 효과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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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지는 영화의 리듬을 만들어 내는 것이 좋은 편집이다. <와호장룡(臥虎藏龍)>(2000), <고스퍼드 파크(Gosford Park)>(2001), <색, 계(色, 戒)>(2007), <레이첼, 결혼하다 (Rachel Getting Married)>(2008) 등을 편집한 팀 스퀴어 스(Tim Squyres)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편집 자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 제다. 편집자의 스타일은 촬영본으로부터 비롯해야 한 다.”(Chang, 2012) 편집자는 촬영본에 따라, 즉 작품에 따라 매번 다른 스 타일의 편집을 한다. 편집자가 드러나지 않는 또 다른 이 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편집자는 숏의 리듬을 읽어내고 장면의 리듬을 만들고, 이를 모아 영화 전체의 리듬을 만 들어 낸다. 관객들은 편집자가 재창조한 리듬에 자신의 감각과 몸의 리듬을 일치시키고 영화 속 세상을 경험한다. 편집은 마술사가 보이지 않는 영화의 마술이다.

참고문헌 Chang, J.(2012). Film Craft: Editing. Waltham: Focal Press. O’Steen, S. & O’Steen, B.(2002). Cut to the Chase. Studio City: Michael Wiese Productions. Ondaatje, M.(2002). The Conversations: Walter Murch and the

Art of Editing Film by Michael Ondaatje. New York: Knop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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