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특집인티 7 한국전쟁과 한국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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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한국시


어느 날 나는 江으로 갔다. 江에는 爆彈에 맞아 물속에 뛰어든 아주 낭자한 아이들의 주검이 이리저리 떠가고 있 었다.

물살이 어울리면 그들도 한데 어울리고 물살이 갈라지 면 그들도 다른 물살을 타고 저만침 갈라져 갔다. 나는 그 때가 八月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나무에선 樹脂가 흐르고 火藥에 쓰러진 雜草들 이 소리를 치며 옆으로 자랐다. 불붙는 地帶가 하늘로 부 우옇게 맞서는 西쪽 江畔에는 구리빛처럼 氣盡한 女人들 이 수없이 달려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가리울 길 없는 衣裳들을 날리며 한결같이 피 묻은 손을 들어

‘야오−’ ‘야오−’

높은 餘韻 속에 합하여 사라져 가는 저들의 이름을 내


가 듣는 것이었다. 神이 차지할 마지막 自由에 스쳐 나리 는 軟粉紅 길을 눈 감고 내가 그리는 것이었다.

‘야오−’ ‘야오−’

이제는 아주 보이지 않게 떠나간 하직을 차라리 우는 것이 아니라, 먼 나라 紅寶色 그물 속으로 생생한 고기와 같이 찾아가는 하많은 저들의 希望을 불러 보는 것이었 다. 목소리 메인 空間의 말할 수 없는 鼓動에 사로잡혀 나 도 몇 번이나 아름다운 歡呼에 손을 저었다.

銀비 내리는 구름 속까지 江은 구비쳐 내리기만 하고

노을에서는 바닷녘에 가지런히 당도하여 돌아 부르는 아 이들의 고운 목청이 이제는 다시 물살을 타고 저만침 울려 오는 것이었다. 산란한 곡조로 그 소리는 바람 속에서도 연연히 들리었 다. ≪초판본 고석규 시선≫, 고석규 지음, 하상일 엮음, 21∼22쪽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나는 광주 山谷에 헤매다가 문득 혼자 죽어 넘어진 국군을 만났다.)

산 옆 외따른 골짝이에 혼자 누어 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지김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식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


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내 손에는 범치 못할 총자루, 내 머리엔 깨지지 않을 철 모가 씨워져 원수와 싸우기에 한 번도 비겁하지 않았노라. 그보다도 내 핏속엔 더 강한 대한의 혼이 소리쳐 나는 달리였노라. 山과 골짝이, 무덤 위와 가시 숲을 이순신같이, 나폴레온같이, 씨자같이, 조국의 위험을 막기 위해 밤낮으로 앞으로 앞으로 진 격! 진격! 원수를 밀어 가며 싸왔노라. 나는 더 가고 싶었노라. 저 원수의 하늘까지 밀어서 밀어서 폭풍우같이 모쓰크바 크레므린 탑까지 밀어 가고 싶었노라.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少女도 있었노라. 내 청춘은 봉오리 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날르는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나는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어라. 나는 그래서 더 용감히 싸왔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아무도 나의 주검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숨지어 너머진 내 얼굴의 땀방울을 지나가는 미풍이 이처럼 다정하게 씻어 주고 저 하늘의 푸른 별들이 밤새 내 외롬을 위안해 주지 않 는가?

나는 조국의 군복을 입은 채 골짝이 풀숲에 유쾌히 쉬노라. 이제 나는 잠시 피곤한 몸을 쉬이고 저 하늘에 날르는 바람을 마시게 되었노라. 나는 자랑스런 내 어머니 조국을 위해 싸웠고 내 조국을 위해 또한 영광스리 숨지었노니 여기 내 몸 누은 곳 이름 모를 골짝이에 밤이슬 나리는 풀숲에 나는 아무도 모르게 우는 나이팅켈의 영원한 짝이 되었노라.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 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고 저 가볍게 날르는 봄 나라 새여 혹시 네가 날르는 어느 창가에서 내 사랑하는 少女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 거룩한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일러 다고.

조국이여! 동포여! 내 사랑하는 少女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간다. 내가 못 이룬 소원, 물리치지 못한 원수, 나를 위해 내 청춘을 위해 물리쳐 다오.

물러감은 비겁하다. 항복보다 노예보다 비겁하다. 둘러싼 군사가 다- 물러가도 대한민국 국군아! 너만 은 이 땅에서 싸와야 이긴다. 이 땅에서 죽어야 산다. 한번 버린 조국은 다시 오지 않으리라. 다시 오지 않으 리라.


보라! 폭풍이 온다. 대한민국이여! 이리와 사자 떼가 江과 山을 넘는다. 네 사랑하는 兄과 아우는 서백리아1) 먼 길에 유랑을 떠 난다. 운명이라 이 슬픔을 모른 체하려는가? 아니다. 운명이 아니다. 아니 운명이라도 좋다. 우리는 운명보다는 강하다. 강하다. 이 원수의 운명을 파괘하라. 내 친구여! 그 억센 팔다리, 그 붉은 단군의 피와 혼, 싸울 곳에 주저 말고 죽을 곳에 죽어서 숨지려는 조국의 생명을 불러이르켜라. 조국을 위해선 이 몸이 숨길 무덤도 내 시체를 담을 적은 관도 사양하노라. 오래지 않아 거친 바람이 내 몸을 쓸어 가고 저 땅의 벌레들이 내 몸을 즐겨 뜯어 가도 나는 즐거이 이들과 함께 벗이 되어 행복해질 조국을 기다리며 이 골짝이 내 나라 땅에 한 줌 흙이 되기 소원이노라.

1) 서백리아: ‘시베리아’의 음역어.


산 옆 외따른 골짝이에 혼자 누은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지김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식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초판본 모윤숙 시선≫, 모윤숙 지음, 김진희 엮음, 55∼60쪽


休戰線

山과 山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

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동 같은 火山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姿勢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風景. 아름다운 風土는 이 미 高句麗 같은 정신도 新羅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 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意味는 여기에 있었던가.

모든 流血은 꿈같이 가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廣場.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체 休息인가 야 위어 가는 이야기뿐인가.

언제 한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이 여. 너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 번 겪으라는가 아무런 罪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山과 山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

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동 같은 火山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姿勢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초판본 박봉우 시선≫, 박봉우 지음, 이성천 엮음, 12∼13쪽


高地가 바로 저긴데

苦難의 운명을 지고 歷史의 능선을 타고

이 밤도 허우적거리며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高地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

넘어지고 깨어지고라도 한 조각 心臟만 남거들랑 부둥켜안고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새는 날 피 속에 웃는 모습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초판본 이은상 시선≫, 이은상 지음, 정훈 엮음, 97쪽


할머니 꽃씨를 받으시다

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 防空壕 위에

어쩌다 된 채송화 꽃씨를 받으신다.

壕 안에는

아예 들어오시덜 않고 말이 수째2) 적어지신 할머니는 그저 노여우시다.

-진작 죽었더라면 이런 꼴 저런 꼴 다 보지 않았으련만…

글쎄 할머니,

2) 수째: 숫제.


그걸 어쩌란 말씀이서요. 수째 말이 적어지신 할머니의 노여움을 풀 수는 없었다.

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 인제 地球가 깨어져 없어진대도 할머니는 역시 살아 계시는 동안은 그 작은 꽃씨를 털으시리라. ≪초판본 박남수 시선≫, 박남수 지음, 이형권 엮음, 40∼41쪽


들꽃과 같이 —長箭3)에서

惡夢이었던듯

어젯밤 戰鬪가 걷혀 간 자리에 쓰러져 남은 敵의 젊은 屍體 하나 호젓하기 차라리 한 떨기 들꽃 같아.

외곬으로 외곬으로 짐승처럼 너를 쫓아 드디어 이 門으로 몰아다 넣은 것. 그 악착스런 삶의 暴風이 스쳐 간 이제 이렇게 누운 자리가 얼마나 安息하랴.

이제는 귀도 열렸으리. 영혼의 귀 열렸기에 渺漠히 영원으로 울림 하는 東海의 푸른 구빗물 소리도 은은히 들리리.

3) 장전: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읍.


≪초판본 유치환 시선≫, 유치환 지음, 배호남 엮음, 60쪽


多富院에서

한 달 籠城 끝에 나와 보는 多富院4)은 얇은 가을 구름이 산마루에 뿌려져 있다

彼我 攻防의 砲火가

한 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

아아 多富院은 이렇게도 大邱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었고나

조그만 마을 하나를 自由의 國土 안에 살리기 위해서는

한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거니

4) 다부원(多富院): 경상북도 칠곡군의 다부리를 말한다. 조선시대 한양 을 드나드는 관원을 위해 원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거상들이 몰려들면 서 부자가 많은 곳이라 해서 다부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6.25 전쟁 당시 최대의 격전지였다.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 이 荒廢한 風景이 무엇 때문의 犧牲인가를…

고개 들어 하늘에 외치던 그 姿勢대로 머리만 남아 있는 軍馬의 屍體

스스로의 뉘우침에 흐느껴 우는 듯 길옆에 쓰러진 傀儡軍 戰士

일찌기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움직이던 生靈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바람에 오히려 간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多富院

진실로 運命의 말미암음이 없고 그것을 또한 믿을 수가 없다면 이 가련한 주검에 무슨 安息이 있느냐


살아서 다시 보는 多富院은 죽은 者도 산 者도 다 함께 安住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초판본 조지훈 시선≫, 조지훈 지음, 오형엽 엮음, 77∼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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