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킨스 시선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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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ected Poems of Gerard Manley Hopkins 홉킨스 시선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은 인류의 유산으로 남을 만한 작품만을 선정합니다. 오랜 시간 그 작품을 연구한 전문가가 정확한 번역, 전문적인 해설, 풍부한 작가 소개, 친절한 주석을 제공하는 고급 시선집입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Selected Poems of Gerard Manley Hopkins 홉킨스 시선 제라드 홉킨스(Gerard M. Hopkins) 지음 김영남 옮김

대한민국,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4


편집자 일러두기 ∙ 이 책은 가드너(W. H. Gardner)와 매켄지(N. H. MacKenzie)가 편집하고 옥스퍼드대학교 출판부(Oxford University Press)에서 출간한 ≪제라드 맨리 홉킨스 시집(The Poems of Gerard Manley Hopkins)≫(1967)을 원본으로 했으며, 캐서린 필립스(Catherine Phillips)가 편집하고 같은 출판부에서 출간한 ≪제라드 맨리 홉킨 스(Gerard Manley Hopkins)≫(1986)를 참고했습니다. ∙ 본문의 시행은 모두 원전을 그대로 따른 것입니다. 단, 원문의 시행이 길어 지면의 너비 관계로 하나의 행이 부득이하게 나뉘는 경우에는 다음 행으로 넘겼습니다. ∙ 본문의 숫자는 시행의 수를 표시한 것으로 원전을 따랐습니다. ∙ 제목이 없는 시는 관례에 따라 시의 첫 행 또는 그 일부를 작은 따옴표로 묶어 제목을 대신했습니다. ∙ 각 시의 하단에는 시의 집필 시기와 장소를 표시했으며 정확한 정보에 논란이 있는 경우는 생략했습니다. ∙ 본문의 주석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옮긴이가 추가한 것이 며 비평적 관점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 종교 용어는 저자가 가톨릭 사제였던 점을 고려해 현행 가톨릭 교회에서 사용되는 표기법을 따랐고, 성서 인용은 한국 천주교 주 교회의가 발행한 ≪성경≫(2005)을 따랐습니다. ∙ 외래어 표기는 현행 한글어문규정의 외래어표기법을 따랐습니 다.


차례

1. 초기 시: 1864∼1876 하늘나라 항구···················3 부활절 영성체···················4 도시의 연금사···················6 ‘내 기도는 놋쇠 하늘에 부딪쳐’ ···········9 ‘나로 하여금 당신을 맴도는 새 같게 하소서’ ·····11 중간의 집 ····················13 나이팅게일 ···················16 완벽의 옷 ····················20 논둠 ······················23 부활절 ·····················27 아드 마리암 ···················29 로사 미스티카 ··················32

2. 웨일스의 성 보노 대학 시기: 1877 헌시(로버트 브리지스) ··············39 도이칠란트 호의 난파 ···············41


은경축일 ····················70 펜마인 풀 ····················72 하느님의 장엄 ··················76 별이 빛나는 밤 ··················78 봄 ·······················80 엘루이 강 계곡에서 ················82 바다와 종달새 ··················84 황조롱이 ····················86 알록달록한 아름다움 ···············88 수확의 환호성 ··················89 새장에 갇힌 종달새 ················91 집 밖의 등불 ···················93

3. 더비셔, 옥스퍼드, 리버풀, 스토니허스트 시기: 1878∼1882 유리디시 호의 침몰 ················97 5월의 마니피카트 ················106 빈지의 미루나무들················110 던스 스코터스의 옥스퍼드 ············112 헨리 퍼셀····················114 집 안의 촛불 ··················117


잘생긴 심성···················119 나팔수의 첫 영성체 ···············121 아침, 점심, 그리고 저녁의 희생 ··········126 안드로메다 ···················128 평화 ······················130 결혼 행진곡을 들으며 ··············132 필릭스 랜들···················134 형제 ······················137 봄과 가을····················140 인버스네이드 ··················142 ‘물총새들이 불이 붙고’ ··············144 리블스데일 ···················146 납 메아리와 금 메아리 ··············148 우리가 숨 쉬는 공기 같은 복되신 동정녀 ······153

4. 더블린 시기: 1885∼1889 시빌의 잎에서 받은 암시 ·············163 사람의 아름다움은 무엇을 위해 있나········166 ‘군인’······················168 ‘부육(腐肉)의 위안’ ···············170 ‘최악은 없다’ ··················172


‘이방인’·····················174 ‘나는 잠 못 이루며 느끼노라’ ···········176 ‘인내’······················178 ‘내 마음’ ····················180 톰의 화관····················182 농부 해리····················184 저 자연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불이며 부활의 위안 ··186 성 알폰소 로드리게스 ··············190 ‘주님, 당신은 정말 옳으십니다’ ··········192 ‘목자의 이마’ ··················194 R. B.에게····················196

해설 ······················199 지은이에 대해··················216 옮긴이에 대해··················223


은경축일 1876년 7월 28일 착좌 25주년을 맞으신 슈루즈베리의 첫 주교 제임스 님께 바칩니다72)

비록 높이 매달린 종들이나 요란스러운 떠버리 나팔들이 소리쳐 맞지는 않으나73)− 소리가 무엇인가? 자연의 순환으로 은경축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다섯하고도 스무 해가 흘렀구나 여태껏 닫혀 있던 성스러운 샘물이 태양을 향해 솟구치며 은빛 환희를 뿌린 이래로.74)

72) 제임스 브라운은 1851년 7월 27일 슈루즈베리 교구의 주교로 임명 되어 북웨일스, 슈롭셔, 체셔 등지를 관할했다. 이 시는 그가 1876 년 7월 성 보노 대학을 방문했을 때 홉킨스가 그에게 헌정한 것이 다. 73) 빅토리아 시대에는 가톨릭교회의 주교 행차에 종을 울려 환영을 표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74) 1850~1851년에 가톨릭 교구가 부활했을 때 가톨릭에 대한 탄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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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잠들게 되어도, 슈루즈베리에선 다른 사람들이 많은 축일들을 기념하겠으나 당신의 이 축일만이 그곳의 진정한, 오로지 이것만이 그곳의 은빛 환희가 되리라.

당신의 풍요한 삶이 적이 지나 버린 것을 오늘 우리는 슬퍼할 필요가 없으니 노고는 당신의 머리 위에 오직 환희의 은빛을 뿌려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벨벳 같은 계곡들이 환영의 세찬 종소리를 울려야 했을 그곳을 대신해, 웨일스여 한 편의 시를 종으로 삼아서 은빛 환희를 울릴지어다.

(1876)

로 오랫동안 닫혀 있던 영적 샘물이 햇빛에 비치는 은빛 소나기처 럼 내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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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마인 풀75) −여관 방명록에 부쳐

판매대나 법정이나 학교를 멀리 떠나 휴식을 갈망하는, 즐거움을 찾는 이들이여 바로 이곳 펜마인 풀이 아니라면 오, 어디에서 당신의 휴가를 멋있게 지낼까?

등산을 하려는가? 보트 놀이를 하려는가?− 이곳엔 온갖 운동 장비와 기구가 마련되어 있으니 오라, 케이더 절벽76)에 단장을 꽂아 보라

75) 1876년 8월 성 보노 대학의 신학생들은 매년 2주간의 휴가를 웨일 스의 모다치(Mawddach) 강어귀에 있는 바머스(Barmouth)에서 보냈다. 학생들은 강어귀에서 조류를 타고 강의 일부를 이룬 아름 다운 초호(礁湖) 펜마인 풀(Penmaen Pool)까지 올라갔다가 조지 3 세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한 뒤 썰물을 타고 다시 바 머스로 돌아왔다고 한다. 펜마인 풀 일대는 사방이 국립공원으로 아름다운 산과 호수가 있어 오늘날도 웨일스의 대표적인 관광 및 스포츠 휴양지로 유명하다. 76) 펜마인 호의 남쪽으로는 케이더 이드리스(Cadair Idris) 화산이 있 는데, 웨일스어로 ‘거인의 의자’란 뜻이며 세 봉우리가 솟아 있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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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 펜마인 풀에서 뱃놀이를 즐겨 보라.

멀리 저것은 무엇인가?−어렴풋 희끗한 디피스.77) 둔덕 같은 세 봉우리로 이루어진 거인의 의자, 백발의 술친구가 디피스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사발 같은 펜마인 풀을 둘로 나누고 있구나.

그리고 눈에 비치는 모든 경치는 자연의 다스림에 물결이 잠잠해지면 솔직한, 요정 같은 펜마인 풀에서 거꾸로 뒤집혀서 물결을 타고 간다.

그리고 북두칠성, 그 경이로운 일곱, 그리고 양털 세계 같은 양떼구름들, 그들 모두 하늘 높이서 환하게 빛나지만 펜마인 풀에서 떨리며 더욱 환하게 빛난다.

모다치 강, 얼마나 경쾌하게 흐르는가!

특징이다. 77) 디피스(Dyphwys)는 펜마인 풀 북쪽에 있는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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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르는 조수에 밀려 숨이 막힐지라도. 그리고 수생 욋가지들 무성한 미로 같은 모래톱들은 썰물 때 펜마인 풀을 지나온 강물을 숨어 기다린다.

그러나 잿빛 소나기 몰려오고 돌풍이 서늘한, 폭풍 몰아치는 날씨엔 무엇을 볼 것인가?− 아하, 펜마인 풀의 수면에 수를 놓고 함께 고리를 만드는 빗방울 파문들이 있다.

정월이나 황량한 성탄절의 따분하기 그지없는 겨울날일지라도 털옷 같은 눈은 한 겹 한 겹 덮으면서 어둑어둑한 펜마인 풀에 쌓여 오른다.

그리고 혹시 이곳에서 꼼짝없이 발이 묶이면 당신은 망중한을 만끽하고 또한 (누가 이를 마다할 것인가?) 펜마인 풀에서 노에 달라붙는 금빛 포말 같은 맥주를 즐기게 되리라.

그러니 판매대나 법정이나 학교를 멀리 떠나 평화나 즐거움을 갈망하는 이는 누구든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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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얼마간 당신의 시간과 돈을 쓰면서 맛볼지어다, 펜마인 풀의 접대를.

(187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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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장엄

세상은 하느님의 장엄으로 충전되어 있다. 그것은 흔들린 금박에서 쏟아지는 빛처럼78) 불꽃을 발 하리라. 그것은 눌리어 스며 나는 기름처럼 모여서 커진다. 그런데 어찌 사람들은 그분의 권능에 무심한가? 세대를 이어서 짓밟고, 짓밟고, 짓밟아 왔구나. 모두가 생업으로 시들고, 노역으로 흐려지고 더럽혀져 인간의 때를 입고 인간의 냄새를 피우는구나. 토양은 이제 헐벗고, 발은 신에 싸여 느낄 수가 없구나.

그런데 이러함에도 자연은 결코 다함이 없구나. 만물 깊은 곳에 가장 소중한 신선함이 살아 있구나. 비록 마지막 빛들이 검은 서쪽 너머 가 버렸어도 오, 아침은 동편 갈색 언저리에서 솟아오르나니,− 성령께서 이 구부러진 세상을 따뜻한 가슴으로

78) 홉킨스는 브리지스에게 “금박은 어슷하게 보면 흐릿하지만 흔들렸 을 땐 번갯불 같은 환한 섬광들이 쏟아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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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 찬란한 날개로 품고 계시기 때문이다.

(187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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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

별들을 보라! 보라, 하늘을 올려다보라! 오, 공중에 앉아 있는 모든 불 사람들을 보라! 환한 도시들, 그곳에 있는 둥근 성채들! 희미한 숲 속 깊은 곳의 금강석 동굴들! 요정들의 눈! 금이, 수금(水金)79)이 깔린 잿빛의 차가운 잔디밭들! 바람을 맞는 백양나무! 섬광에 타는 공기 미루나무들! 농가에서 깜짝 놀라 떠오르는 눈송이 같은 비둘기 떼!− 아 놀라워라! 모두가 사야 할 것이다, 모두가 경품이로다.

그러면 사라! 입찰하라!−무엇으로?−기도, 인내, 보시, 서약으로. 보라, 보라. 5월 꽃무리가 과수원 가지들에 맺힌 듯하다! 보라! 3월의 꽃이 노란 분칠을 한 버들강아지에 맺힌 듯 하다! 실로 이것들이 곳간이요, 그 안에 낟가리를 담고 있다.

79) “수금(quickgold)”은 ‘액체 같은 금’이란 뜻으로 ‘수은(quicksilver)’ 을 변형한 홉킨스의 조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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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이 환한 이 울타리는 신랑 그리스도를 안전하게, 그리스도와 그 모친과 모든 그의 성인들을 감싸고 있 구나.

(1877.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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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봄처럼 아름다운 것이 있으랴− 잡초들은 길고 아름답고 무성하게 활처럼 뻗어 나오고, 지빠귀 알들은 흡사 작고 낮은 하늘만 같으며 나무를 울리는 지빠귀는 이토록 귀를 헹구고 쥐어짜니 그의 노랫소리를 듣노라면 번개를 맞은 듯하다. 반들거리는 배나무의 잎과 꽃들은 내리는 푸름에 몸을 비비니, 그 푸름이 일순간 천지에 가득하고 질주하는 양들 또한 아름답게 깡충깡충 뛰고 있다.

이 감로와 이 기쁨이 모두 무엇인가? 맨 처음 에덴동산에 있던 지상의 아름다움의 한 줄기−가지소서, 거두소서, 싫증 나기 전에,

주 그리스도님, 구름 덮이고 죄의 신맛이 나기 전에, 소녀와 소년의 순수한 마음과 5월의 날을, 무엇보다, 오 동정녀의 아기님, 당신의 선택이며 얻을 만한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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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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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루이 강80) 계곡에서

하느님도 아시듯 아무런 자격도 없는 나에게 모두들 잘 대해 주던 한 집이 기억난다. 어느 아름다운 숲에서 갓 꺾어 왔는지 들어설 때마다 위로의 향기가 풍겨 나왔다. 그 다정한 분위기가 이 친절한 사람들을 싸고 있음이 마치 어미 새 날개가 새알들을 품은 듯, 아니 온화한 밤이 봄의 새싹들을 감싼 듯했다. 아, 그것은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옳다고 느껴졌다.

아름다워라, 숲이며 강들, 목장과 산간 골짜기들, 이 웨일스 세계를 이루는 것들이 지닌 모든 공기들은. 오직 그곳에 머무는 이 사람만은 그렇지 못하구나.

사람들을 사랑하시며, 사려 깊게 저울질하시는 하느님,

80) 엘루이(Elwy) 강은 웨일스 북부에 있는 클루이드(Clwyd) 강의 지 류로서 1877년 당시 홉킨스가 신학 공부를 했던 성 보노 대학 아래 로 숲이 우거진 제방을 따라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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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하신 주인이시며, 자애로운 아버지이시니 오, 당신의 귀한 피조물을 부족한 곳에서 채우소서.

(1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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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종달새

너무나 오래도록 그칠 줄 모르는 두 가지 소음이 귀를 파고든다−오른편에선 해변을 향해 달려드는 파도, 밀려왔다 밀려가고, 나직이 잠잠하거나 세차게 포효하 면서 달이 차고 기우는 한 그곳에 출몰한다.

왼편에선 땅을 차고 높이 날아오르는 종달새 소리가 들 린다, 그의 빠르고 신선한, 되감긴 새 실타래 같은 악보가 돌돌 말려, 야생의 실감개에서 빙빙 돌면서, 음악을 퍼붓고 내던진다, 더는 쏟을 것도 쓸 것도 없을 때까지.

이 두 소리는 얼마나 이 얕고 약한 도시81)를 부끄럽게 하 는가!

81) “이 얕고 약한 도시”는 릴(Rhyl)에 있는 휴양지를 가리킨다. 시인은 자연의 두 소리를 이 해변 휴양 도시에서 들려오는 세속적 소음과 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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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우리의 더럽고 탁한 시간을 울려서 퍼뜨리니 순수하기 때문이다! 생명의 자랑이요 사랑받는 면류관 인 우리는 이제는 가 버린 한창때 지상의 활기와 매력을 상실했다. 우리의 형체와 일은 무너진다, 무너지며 인간의 최후인 먼지로 돌아간다, 인간의 처음인 진토가 되려고 빠르게 말라 간다.

(1877. 5, 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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