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라스불바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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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스 불바 (Тарас Бульба)



1 “아들아, 뒤로 돌아서 봐라! 참 우스꽝스러운 꼴을 하고 있 구나! 사제들이 입고 다니는 두루마기 같은 옷은 도대체 뭐 냐? 너희 학교에선 모두 이런 옷을 입고 있냐?” 늙은 불바는 이렇게 말하면서 키예프신학교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두 아 들을 맞이했다. 그의 두 아들은 말에서 내렸다. 두 청년 모두 기골은 장 대했지만, 갓 졸업한 신학생처럼 상대방을 힐끗힐끗 쳐다보 는 버릇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튼튼하고 건강해 보이는 얼 굴에는 한 번도 면도를 하지 않은 뽀얀 솜털이 덮여 있었다. 그들은 아버지의 반응에 다소 당황해하면서 시선을 땅에 떨 어뜨린 채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거기 좀 서 있어 봐라! 어디 한 번 자세히 보자꾸나.” 불 바는 두 아들을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말했다. “왜 이렇게 긴 스비트카1)를 입고 다니는 거냐! 촌스럽기 짝이 없구나! 이 런 스비트카는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거다. 너희 들 중에 누구든지 한 번 뛰어 봐라! 앞자락이 몸에 감겨 땅바 닥에 나자빠지는 꼴을 어디 한 번 보자꾸나.”

1) 스비트카: (지은이 주) 남부 러시아인들이 입는 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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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스 불바>에 수록된 삽화. 알렉산드르 게라시모프(Александр Герасимов, 1881~1963), 1952년 작.

“웃지 마세요. 아버지, 웃지 마시라고요!” 마침내 큰아들 이 말했다. “봐라, 너희들이 얼마나 호사스럽게 차려입고 있는지! 왜, 웃으면 안 되냐?” “예, 안 됩니다. 아무리 아버지라도 자꾸 웃으시면 한 방 먹이겠습니다!” “허, 이놈 봐라! 아비를 어떻게 하겠다고?…” 깜짝 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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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면서 타라스 불바가 말했다. “아무리 아버지라고 해도 저에게 모욕을 주면 쳐다보지 도 않고 존경하지도 않을 겁니다.” “네가 나하고 한판 겨뤄 보겠다는 거냐? 설마 주먹으로 하자는 것은 아니겠지?”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그럼, 주먹으로 하자!” 타라스 불바는 소매를 걷어붙이 고 말했다. “그래, 네 주먹맛이 어떤지 한 번 보자!” 그리고 이들 부자는 오랜만에 만나 인사를 하는 대신, 서 로 달려들었다 물러섰다 하면서 주먹으로 옆구리, 허리 그 리고 가슴을 쥐어박기 시작했다. “아이고, 저 얼빠진 사람들 좀 보게! 노인 양반이 돌았나! 아주 정신이 나갔나 봐!” 창백하고 선량한 얼굴에 몹시 여윈 어머니는 귀여운 두 아들을 얼싸안아 보지도 못한 채, 문지 방 옆에 서서 중얼거렸다. “일 년 이상이나 보지 못한 애들 이 돌아왔는데, 저 양반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주먹질을 하고 있담!” “됐다, 그 정도면 훌륭해!” 불바는 주먹질을 멈추고 말했 다. “아주 좋아!” 옷매무새를 고치면서 말했다. “그 정도라면 해 볼 필요도 없었는데! 훌륭한 카자크인이 될 거다! 건강해 졌구나! 자, 이제 인사를 나누자!” 아버지와 아들은 입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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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했다.2) “참 훌륭하다! 지금 나를 쥐어박은 것처럼 어떤 놈이든지 두들겨 패야 한다. 어떤 놈도 봐줄 필요가 없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네가 입고 있는 옷은 우스꽝스럽다. 옷 에 달려 있는 그 끈은 도대체 뭐냐? 그런데 이 멍청한 놈아, 너는 왜 두 팔을 축 늘어뜨리고 서 있냐?” 둘째 아들을 바라 보면서 그가 말했다. “그게 뭐냐? 개자식! 너는 왜 나를 두들 겨 패지 못하냐?”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작은아들을 껴안으면서 어머니가 말했다. “아들에게 자기 아버지를 때리라고 하다 니! 이제 충분해요! 어린것이 먼 길을 오느라고 피곤할 텐 데. (이 아이는 스무 살이 조금 넘었고, 키는 정확히 1사젠3) 이었다.) 휴식을 취하고 뭘 좀 먹여야 할 텐데, 저 양반은 작 은아들에게 싸움을 강요하고 있으니!” “음, 보아하니 넌 아무래도 쓸개 빠진 놈 같구나!” 불바가 말했다. “아들아, 네 어머니의 말은 듣지 마라. 네 어머니는 아무것도 모르는 단순한 여자야. 너희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너희들에게 필요한 것은 광활한 들판과 훌륭한 말이다. 그것이 너희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 칼을 2) 아버지와 아들은 입맞춤을 했다: 러시아인들은 반가운 사람과 만나서 인사 를 할 때 서로의 뺨에 입맞춤을 한다. 3) 사젠: 1사젠은 2.134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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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라? 이것이 바로 너희들의 어머니다! 너희들 머릿속에 들 어 있는 것들은 다 쓰레기다. 학교, 온갖 책, 철자 교본, 그리 고 철학. 그런 것들은 모두 쓸데없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것 들에 모조리 침을 뱉는다!…” 불바는 도저히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상스러운 말을 했다. “그런데 말이다. 너희들을 이번 주에 자포로제4)로 보내는 것이 좋겠다. 그곳에 진정한 학문 이 있다. 그곳에 너희들의 학교가 있다. 그곳에서만 산지식 을 배울 수 있다.” “그럼, 아이들이 겨우 일주일밖엔 집에 있지 못한다는 말 이에요?” 늙고 야윈 어머니가 너무나 애처로워 두 눈에 눈물 을 글썽이면서 말했다. “가엾은 것들! 그럼 아이들이 놀지도 못하고, 집에 익숙해질 시간도 없고, 게다가 내가 아이들을 실컷 볼 시간도 없을 게 아니에요!” “됐어. 그만 울부짖어, 할멈! 카자크인은 부녀자와 어울 려 지내는 사람이 아니야! 당신은 달걀을 품는 암탉처럼 아 이들을 치마 속에 감싸고 싶어 하겠지. 어서 가서 빨리 상이 나 차려. 팜푸쉬카5), 메도비크6), 마코브니크7) 그리고 푼지

4) 자포로제: 카자크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드네프르 강 하구에 위치한 소도시. 5) 팜푸쉬카: 둥근 빵. 6) 메도비크: 꿀과 생강을 넣고 구운 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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