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개론_맛보기

Page 1

언어학 개론


말이란?

1. 말의 정의 언어학이란, 언어 즉 말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다. 그 러면 말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상식적으로 말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말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 므로 여러 언어학자들은 모두 말이란 무엇인지를 정의해 보 려 했는데, 여기에서는 스터트번트(E. H. Sturtevant)가 내 린 말의 정의를 통해서, 말과 인간의 사회생활과의 관계, 그 리고 말 자체의 성격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자. 그는 말을 정의하기를, “말이란, 그 사회집단의 구성원이 서로 협동하고 상호 작용을 하는 자의적(恣意的)인 음성적 기호의 조직이다”라고 하였다(A language is a system of arbitrary vocal symbols by which members of a social group cooperate and interact. Sturtevant, E. H. (1947), An Introduction to Linguistic Science, New Haven, p. 2). 인류가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특질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나, 그중에 가장 중요한 특질이며 특권은, 인류는 서로 25


협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는, 다른 동물, 특히 개미 나 벌의 사회에서도 상당히 조직적인 협동이 존재한다는 것 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협동 방식은 매우 간단하고 단 순한 것이어서, 도저히 인류의 협동 방식에 비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그들의 협동은 본능적이고 물질적인 방식에 의 하는 도리밖에 없다. 이를테면 개미는 그들의 촉각을 맞댐으 로 일정한 상호 작용을 하게 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이에 비 해서 인류의 협동은 매우 복잡한 일을 이루어낼 수 있다. 인류는 상호 협동으로, 일개인으로서는 도저히 이루어 내지 못할 일을 이루어낼 수 있다. 이를테면 성곽을 쌓아 올 린다든지, 피라미드와 같은 거창한 것을 만드는 데에는 많 은 사람의 동시적 협동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 식은, 개미의 협동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못 된다. 개미가 협동해서 무거운 물건을 나르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러한 동시적 협동 이외에, 말하자면 계기적인 협동이 가능하다. 즉 인류는, 한 사람이 습득한 기술이나 경 험을, 다른 사람에게 전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다른 동물은 몇 세대가 경과되더라도 일정한 기술의 한계를 넘어 서기는 매우 어렵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 이것은 한 개체 가 습득한 기술이나 경험을, 다른 개체에게, 또는 다음 세대 에게 전수하는 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는, 한 26


개인이 습득한 기술이나 경험을 다른 개인에게, 또는 다음 세대에게 전수할 수 있는 힘을 가졌기 때문에, 다른 개인이 나 다음 세대는, 앞 사람이 경험한 일을 토대로 해서, 여기에 새로운 기술이나 경험을 더 쌓아 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술이나 경험을 전수할 수 있는 것은, 오 로지 인간은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에게 말할 수 있 는 천부적 자질이 부여되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지식의 교 환·전수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고, 따라서 오늘날과 같 은, 다른 동물 사회에서 도저히 볼 수 없는, 고도로 발달된 인류의 문화 체계는 성취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인간 은 말을 통해서 상호 작용을 할 수 있게 되고 협동을 하게 된 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근본은, 말할 수 있는 천 부적 자질로서 동시적 협동이 가능한 이외에, 계기적 협동 이 가능하게 된 데 있다.

2. 언어기호의 성격 앞에 소개한 말의 정의에서, 말은 ‘자의적인 음성적 기호의 조직’이라 하였다. 여기서 기호란 무엇이며, 음성적 기호는 무엇을 가리키며, 그것이 자의적이란 것은 무슨 뜻이며, 또 한 조직이란 것은 어떤 뜻인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27


1) 내용과 형식 기호란 것은 반드시 일정한 내면적인 내용과 외면적인 형식 을 갖추고 있다. 산에 봉홧불이 올랐다. 연기가 보인다. 이 때 연기는 형식이다. 우리의 시각으로 감지할 수 있는 것이 다. 이것이 단순한 연기에 지나지 않을 때는 기호가 되지 못 한다. 봉홧불은, 이것이 오르게 되면, 전쟁이 났다는 것으로 미리 약속되어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전쟁이 났다는 것은 봉 홧불이라는 형식으로 이해되는 내용이다. 기호의 외면적인 형식이 인간의 ‘말소리’로 나타난 것이 바로 음성적 기호이다. 구조주의 언어학의 창시자 소쉬르 (Ferdinand de Saussure, 1857∼1913)는, 말의 형식을 시니 피앙(signifiant)이라 하고, 내용을 시니피에(signifié)라 하였 다(Saussure, Ferdinand de (1916), Cours de linguistique

générale, p. 99). 쉽게 말하자면, 말은 소리와 그 소리를 통 해 표시되는 뜻으로 성립되는 것인데, 이 소리의 면을 시니 피앙이라 부르고, 뜻의 면을 시니피에라 부르는 것이다.

2) 자의성 그런데, 이 음성적 기호는 자의적이다. 자의적이란, 음성적 기호의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의 사이에는 아무런 필연적인 28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人]이라는 개념을 /sa:ram/이란 소리로써 표시한 다. (앞으로 개념은 [ ] 안에 한자로 표시하고 소리는 / / 안 에 표시하기로 하겠다.) 그런데 이 [人]이라는 개념을 나타내 는 데는 반드시 /sa:ram/이라는 소리이어야 한다는 필연성 은 없다. 다른 시니피앙으로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 증거 로는, [人]이란 시니피에는, 중국어에서는 /rən/, 일본어에서 는 /hito/, 몽골어에서는 /χün/, 만주어에서는 /niyalma/, 터 키어에서는 /adam/, 영어에서는 /mæn/, 불어에서는 /ɔm/, 독어에서는 /man/으로 실로 여러 가지 시니피앙으로 불리 게 되면서도, 모두 우리말의 /sa:ram/ 못지않게, 다 [人]이란 시니피에를 잘 표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사실로 본다면 [人]−/sa:ram/의 관계나, [人]− /hito/ 또는 [人]−/man/의 관계나 하등 필연적인 것이 아님 을 알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人]이란 시니피에는, /sa:ram/ 이란 시니피앙의 연결이어야만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니피앙의 연결로도 충분히 잘 표시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관계를 자의성이라 한다. 언어기호의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관계가 자의적이란 사실에 대해 또 다른 방면으로 증명하는 것도 가능하다. 즉 언어기호의 양면이 필연적이라면, 언어의 변화는 거의 없 어야 할 것이다. [秋]를 표시하는 15세기 우리말인 //이, 29


[秋]를 표시할 수 있는 필연적인 시니피앙이라 할 것 같으면, 이것이 현대에 와서 /가을/로 변화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과 /가을/은 첫 자음과 끝 자음만 같고, 다른 소리는 모 두 바뀌었다. 그것은 바로 언어기호가 자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성적 기호는 완전히 자의적인 것만이 아니다. 우리가 닭의 울음소리를 /꼬끼오/로 표현하고, 바람이 /솔 솔/ 분다 할 때는, 이 말들은 그 내용을 거의 그대로 재현한 것이 된다. 이러한 기호의 시니피에−시니피앙의 관계는 매우 밀접해서, 닭의 울음소리는 /꼬끼오/ 아닌 무슨 다른 소리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이와 같이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의 관계가 거의 필연적인 것으로 느껴지는 말을 상 징어라 한다. 상징어와 같이, 그 양면이 거의 필연적인 것으로 느껴지 는 기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음성적 기호를 자의 적이라고 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첫째, 엄밀히 따져 말한다면, 이러한 상징어라 할지라도, 그 시니피앙은 그것이 표현하려는 소리 바로 그대로는 아니 다. 그러므로 언어에 따라서 그 시니피앙도 완전히 꼭 같지 는 않다. 우리말에서 닭은 /꼬끼오/라 우는데, 영어에서 닭 은 cock-a-doodle-doo라고 울며, 불어에서 닭은 cocorico 라 울고, 일본어에서 닭은 kokekko, 독어에서 닭은 kikeriki 라 운다. 이로써 우리는, 상징어라 할지라도 그 시니피앙− 30


시니피에의 관계가 완전히 필연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둘째, 이러한 상징어는 그 수에 있어서 그리 많지 못하 다. 따라서 상징어는 언어기호의 중심적 부분을 차지할 수 는 없다. 상징어에서 시니피에−시니피앙의 관계가 어느 정도 필연적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언어기호는 전체적으로 볼 때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음성적 기호의 거의 대부 분은 역시 자의성을 띠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우리 인류가 사용하는 음성적 기호는 그 특색 으로서 자의성을 띠고 있다고 할 만한 것이다.

3) 구속성 그러나 언어기호가 자의적이라 해서, 누구나 이것을 제 마 음대로 고치거나, 없애거나, 새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 해서는 안 된다. 한 언어 사회에서 어떤 시니피에에 대해서 일정한 시니피앙을 맞붙여 놓아서, 그것이 그 언어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공감을 받고, 관습적으로 그 사회에서 쓰 이게 되면, 각 개인은 무조건 이에 순종하지 않으면 안 된 다. 한 사회에서 어떠한 시니피에와 어떠한 시니피앙의 맞 붙임 관계가 일단 성립되면, 이러한 관계는 그 사회 구성원 에게는 강력한 구속성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언어기호는 자의성과 구속성이라는 모순된 양면을 가진다. 31


4) 조직 한 가지 더 설명해 두어야 할 문제는, 언어란 언어기호의 조 직이란 점이다. 언어기호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 다. 그것은 공존하는 다른 기호와의 상호 관계에 의해서 그 가치를 발휘한다. 이러한 상호 관계에 의해서 하나의 조직 체를 형성한다. 이것은 흡사 각 개인이 모여서 하나의 사회 라는 조직체를 형성하고 있음과 같다. 그리고 이러한 기호가 몇이 모여서 일정한 의사소통을 하게 될 때 그 기호들의 배열 방법에는 또한 일정한 규칙이 있다. 이를테면 우리말의 ‘사람, 개, ᐨ가, ᐨ을, 문다’와 같은 기호는 제멋대로 배열되어서는 뜻을 이루지 못한다. 이것 들이 일정한 뜻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순서를 택하 지 않으면 안 된다. 언어는 이와 같이 언어기호의 일정한 조 직으로 성립된다.

3. 말의 개별성과 사회성 그런데 말이란 것은, 우리가 그것을 보는 각도에 따라, 그 모 습을 달리한다.

32


1) 말의 개별성 한 언어 사회 내부에서 쓰이고 있는 말은 결코 등질적인 것 이 아니다. 우선 각 지방에는 각각 방언이나 지방어가 있고 한 지방에 있어서도 계층, 직업에 따라 말씨가 또한 다른 경 우가 많다. 그러면 계층이나 직업이 같은 사람은 같은 말을 쓰고 있느냐 하면, 그것도 반드시 그러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 친하게 아는 사람끼리라면, 서로 얼굴을 맞 대지 않더라도, 그 소리만 듣고서도, 그 사람을 알아낼 수 있 다. 때에 따라서는 문장을 읽고, 그 작가를 짐작해 낼 수도 있다. 이것은 왜냐하면, 동일한 언어 사회, 동일한 지방에 살면서, 동일한 계층에 속하고, 동일한 직업을 가진 사람일 지라도, 각 개인이 쓰는 말은 반드시 꼭 같은 것이 아니기 때 문이다. 각 개인이 쓰는 말이 각각 조금씩 다른 것은, 개개인의 신체적 조건이 각각 어느 정도 다르다는 데에도 그 원인이 있지만(이를테면 억양과 강약, 그리고 모음 음색의 미세한 차이 같은 것이 그 원인으로 생각된다) 그보다도 더 근본적 이유는 인간의 내적 생활(인격, 심성, 사고방식)의 개인차에 의한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실제로 쓰고 있는 말이란 것은, 각 개 인에 따라 어느 정도의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인데, 33


한편 더 나아가서 생각하면, 한 개인이 쓰는 말도 때에 따라 서 조금씩 다르다. 이를테면 오늘 아침에 내가 A에게 한 인 사, “안녕하십니까?”란 말은, 내일 B에게 할 때 그대로 되풀 이될 수는 없다. 꼭 같은 억양, 꼭 같은 강약, 꼭 같은 음색, 꼭 같은 길이, 이러한 사실들은 그대로 재생되지는 않는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실제로 쓰고 있는 말은, 개 인에 따라 차이 나며, 같은 사람인 경우라도, 때에 따라 조금 씩 달라지는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말이란, 이렇게 개인적이며 순간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2) 말의 저장 말의 존재 조건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실제로 쓰이고 있 을 경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쓰이게 된 말만 이 말이 아니라, 우리는 보는 각도를 달리하면, 말이 존재하 는 데는 또 다른 곳이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말을 배우는 과정을 한번 생각해 보자. 어린아이 들은 주위의 말의 홍수 속에서 말을 배우게 된다. 그런데 이 말의 홍수는, 실제로 쓰인, 개인적이고 순간적인 말이 다. 그러나 아이들이 말을 배울 때에는, 이러한 각인각색의 순간적인 말을 그대로 흉내 내지는 못하며, 이러한 다양성 가운데서 일종의 균질화된 것을 배우게 된다. 34


/ㄱ/ 소리를 배우는 경우 여러 가지 조금씩 다른 /ㄱ/ 소 리들을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소리에 공통된, 꼭 갖추지 않으면 안 될 조건만을 재생하기에 힘쓴다. 이리하여 머릿속에는 이러한 특색(꼭 있어야 될 조건)을 갖춘 소리가 기억되기에 이른다. 물론 이 경우에 하나하나의 소리가 따로따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단어를 기억하는 것과 함께 기억된다. 동시에 하나하나의 단어도 기억해 둔다. 그리고 단어의 배열 방법, 단어가 다른 단어와 맺는 관계에 대한 일정한 규칙도 기억해 둔다. 이와 같이 말은, 생활에서 실제 쓰일 때를 위하여 여러 가지 사실 을 기억해 두어야 한다. 따라서 말이란, 실제로 밖으로 표현된, 개인적이고 순간 적인 것을 통하여 머릿속에 저장되고, 다시 필요에 의해서 이것이 밖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것인데, 머릿속에 저장되 어 있는 말은, 실제의 말처럼 개인적·순간적 성격을 띠고 있지 않다. 소리로 본다면, 실제의 소리는 매우 다양한 것 이지만,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소리는 그리 다양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단어의 배열 방법도 한 언어 사회에 속하는 사람에게 모두 동일한 규칙이다. 따라서 머릿속에 저장되 어 있는 말은, 실제로 밖으로 표현된 말에 비하면, 아주 통 일적이고, 영속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의사 소통을 위해서 간직하고 있는 언어의 공통된 기준이다. 35


3) 랑그와 빠롤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말과, 실제로 밖으로 나타나게 된 말 과는 다른 점이 많다. 이를테면 /감기/의 두 /ㄱ/ 소리는, 우 리들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을 때는, 한 가지 소리로 알고 있 다. 그러나 실현된 소리로서는 같은 것은 아니다. 앞의 /ㄱ/ 소리는 성대의 떨림이 없는 무성음이며, 뒤의 /ㄱ/ 소리는 성대의 떨림이 있는 유성음이다. 말은 이와 같이 그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점이 있기 때문 에, 소쉬르는 말의 이 두 방면을 다른 말로 부르고 있다. 머 릿속에 기억되어 저장되어 있는 말을 랑그(langue), 그것 이 밖으로 실현된 말을 빠롤(parole)이라 한다. 원래 랑그가 머릿속에 저장되는 것은, 빠롤을 통해서이 다. 그러므로 발생적으로 본다면, 빠롤은 항상 랑그에 선행 하며, 랑그에서 일어나는 사실은 반드시 빠롤을 겪어야 한 다. 그래서 빠롤을 통해서 랑그가 성립되며, 랑그 없이 빠롤 은 있을 수 없다. 빠롤은 랑그를 모형으로 하는 행동에 지나 지 않기 때문이다. 소쉬르는 이 양자의 관계를 이렇게 표현 했다. “랑그는 빠롤의 도구요, 동시에 그 소산이다.” 그러므 로 어디까지나 이 둘은 한 가지 말의 두 면이지, 두 가지 별 개의 말은 아니다. 말을 랑그의 면으로 관찰하는 언어학이 성립된다면, 빠 36


롤의 면으로 보는 언어학도 성립될 것이다. 소쉬르는 전자 를 랑그의 언어학, 후자를 빠롤의 언어학으로 구별하였다.

4) 랑가주 랑그와 빠롤의 총체적인 현상을 랑가주(langage)라 한다. 랑가주는 우리가 빠롤의 홍수 속에서 랑그를 저장하고, 그 리고 랑그를 도구로 하여 빠롤화하는 언어활동을 가리킨다. 랑그

저장 랑 가 주

말 사용

빠롤

37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