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자앙 시선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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陳子昻 詩選 진자앙 시선


흘러간 옛일에 대한 추모


백제성에서 옛일을 회상하며 달 지고 푸른 강 어스름 낄 때 노를 멈추고 풍토와 인정을 묻는다. 백제성에서 파자국247)을 내려다보니 대 위에는 한왕의 궁전248)이 사라졌다. 황량한 땅은 주 왕실의 교외249)였고 깊은 산엔 우임금의 공이 남아 있다. 바위가 걸려 있는 푸른 절벽 깎아지르고 지형이 험해도 푸른 물 흘러내린다. 오래된 나무는 구름 가까이 닿아 있고 돌아가는 돛배는 운무 속에 출몰한다. 여행길250)은 가도 가도 끝이 없으니 나그네 사념 또한 언제나 끝나리.251)

247) 파자국(巴子國)은 주(周)나라의 제후국으로, 지금의 쓰촨성 동부 일대에 있었는데, 그 땅이 동쪽으로 어복(魚復: 백제성)에 이르렀다. 248) 원문의 ‘한왕궁(漢王宮)’으로, 영안궁(永安宮)을 가리킨다. 삼국시대 촉 한(蜀漢)의 유비(劉備)가 이곳에서 죽었다. 옛터는 지금의 쓰촨성 펑제현(奉 節縣)에 있다.

249) 원문의 ‘주전(周甸)’으로, 주 왕실의 교외 들판을 말한다. 여기서는 주나 라의 관할 지역이라는 뜻이다. 250) 원문의 ‘천도(川途)’로, ‘여로(旅路)’, 즉 여행길을 의미한다. 251) 원문의 ‘좌(坐)’로, 여기서는 ‘정(正)’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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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帝城懷古 月落滄江晩 停橈問土風 城臨巴子國 臺沒漢王宮 荒服仍周甸 深山尙禹功 巖懸靑壁斷 地險碧流通 古木生雲際 歸帆出霧中 川途去無限 客思坐何窮

해설

이 시 역시 조로 원년(679) 진자앙이 고향 촉 땅을 떠나 장안으 로 가던 도중에 지은 것이다. 백제성(옛터가 지금의 쓰촨성 펑 제현 동쪽 백제산 위에 있음)은 중국의 역사에서 유서 깊은 곳 으로, 시인은 이곳에 올라 주변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묘 사하고 그 옛날의 파국과 삼협의 물길을 튼 우임금과 삼국을 쟁 패했던 유비를 회고하고 마지막에서 여로의 감개를 토로했다. 전체적으로 장법(章法)이 정연하고 대장(對仗)이 엄정해 일찍 이 방회가 ‘당인 율시의 조종(唐人律詩之祖)’이라고 치켜세웠 다(≪영규율수≫ 권3). 164


연나라 소왕252) 남쪽으로 내려가 갈석관253)에 올라 멀리 소왕의 황금대254)를 바라본다. 언덕이 모두 교목으로 뒤덮였으니 연나라 소왕은 지금 어디 있는가? 패권에의 웅도255)는 과거지사가 되어256) 슬피 말을 몰아 군영으로 돌아간다. 燕昭王 南登碣石館 遙望黃金臺

252) 원문의 ‘연소왕(燕昭王)’. 춘추시대 연나라 군주로 이름은 ‘평(平)’이다. 재위 기간 중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인재를 모아 연나라를 중흥시켰다. 253) 갈석관(碣石館)은 갈석궁(碣石宮)으로, 옛터는 지금의 베이징성 남서쪽 에 있다. ≪사기≫ <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에 의하면 추연(鄒衍) 이 연나라에 도착했을 때 소왕이 그를 위해 갈석궁을 짓고는 학생처럼 그곳에 서 추연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254) 황금대(黃金臺)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소왕이 천하의 현사를 모집하기 위해 곽외(郭隗)의 계책을 받아들여 높은 누대를 짓고 그 위에 현사에 대한 사 례금으로 천금을 쌓아놓았다고 하여 황금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옛터 는 지금의 허베이성 이현(易縣) 남동쪽에 있다. 255) 원문의 ‘패도(覇圖)’로, 패권을 차지하려는 웅도(雄圖)를 말한다. 256) 원문의 ‘이의(已矣)’로, 다 끝나고 말았다는 의미다. 즉 절망을 표시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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丘陵盡喬木 昭王安在哉 覇圖悵已矣 驅馬復歸來

해설

이 시는 다음에 나오는 <악생(樂生)>, <연태자(燕太子)> 와 함께 <계구남고증노거사장용칠수(薊丘覽古贈盧居士藏用 七首)>에 속해 있다. 만세통천 2년(697)에 무유의가 거란 정벌

을 위해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갔는데, 그때 진자앙이 막료를 맡았다. 그런데 선봉군이 대패하자 진자앙은 누차 계책을 올리 고 선봉을 맡겠다고 요청했지만 뜻밖에도 무유의의 반감을 사서 강직당하고 말았다. 그는 울분을 달래려고 말을 몰고 계성(薊 城)을 나가서 고대 연나라의 유적을 돌아보고 이 7수의 시를 썼

다. 그중 <연소왕(燕昭王)>은 소왕이 현자를 구하기 위해 노 력을 기울였던 유적으로 유명한 갈석관과 황금대를 내세워 현명 한 군주에 대한 흠모의 마음을 표현했는데, 이는 사실상 무씨 정 권에 대한 불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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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생257) 인자한 정치258)는 이미 사라지고 나라들은 다투어 탐욕을 위해 군대를 일으켰다.259) 악생은 얼마나 감격했던가! 의분에 차서260) 제나라 성을 함락시켰다. 제나라 멸망의 대업261)이 결국 중도에 꺾였으니262) 그가 남긴 한탄을 아형263)에게 부친다.

257) 악생(樂生)은 전국시대 연나라의 명장 악의다. 연나라 소왕 때 그는 연 (燕)·조(趙)·한(韓)·위(魏)·초(楚) 5국의 군대를 통솔하고 제나라를 공 격해 70여 성을 빼앗는 혁혁한 전과를 올려 창국군(昌國君)에 봉해졌지만 소 왕이 죽은 뒤 혜왕(惠王)은 제나라의 이간책에 걸려 악의의 병권을 빼앗아 그 는 할 수 없이 조(趙)나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258) 원문의 ‘왕도(王道)’로, 왕도 정치를 뜻한다. 유가(儒家)가 주장하는 인정 (仁政)을 말한다. 259) 원문의 ‘탐병(貪兵)’으로, 다른 나라의 토지와 재산을 탈취하기 위해 군대 를 일으킨다는 의미다. 260) 원문의 ‘장의(仗義)’로, 의분에 차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261) 원문의 ‘웅도(雄圖)’로, 제나라 멸망의 대업을 말한다. 262) 원문의 ‘중요(中夭)’로, 도중에 실패한다는 의미다. 263) 아형(阿衡)은 상(商)나라 탕(湯)왕의 재상을 지낸 이윤(伊尹)의 이름. 이 윤은 원래 노예였는데, 탕왕의 신임을 얻어 그를 도와 걸(桀)왕의 하(夏)나라 를 멸망시켰다. 그 후 이윤은 태갑(太甲)을 보좌해 즉위케 했지만 그가 포악해 정치를 어지럽히자 할 수 없이 그를 동궁(桐宮)에 유폐시키고 섭정을 했다. 3 년 뒤 태갑이 잘못을 뉘우치자 그에게 정권을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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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生 王道已淪昧 戰國競貪兵 樂生何感激 仗義下齊城 雄圖竟中夭 遺歎寄阿衡

해설

이 시는 전국시대의 명장 악의에 대해 읊은 것인데, 그의 일생에 걸친 성패를 개괄하고 군주와 신하가 서로 잘 만나야 함을 강조 했다. 연나라 소왕은 악의를 믿고 서로 협력해 제나라를 대파할 수 있었지만 연나라 혜왕은 반대로 악의를 시기해 제나라를 멸 망시키겠다는 웅도가 도중에 꺾이고 말았다. 여기서 시인은 악 의를 대신해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했지만 자신의 신세에 대한 한탄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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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나라 태자264) 진나라 왕이 날로 무도하니 태자의 원한 또한 깊어갔다. 전광265)이 의인이라는 말을 듣고는 천금을 주고 비수266)를 사들였다. 그의 일은 비록 성공하지 못했지만 천년토록 사람들을 상심케 한다. 燕太子 秦王日無道

264) 원문의 ‘연태자(燕太子)’로, 전국시대 연나라 태자 단(丹)을 가리킨다. 그 는 일찍이 진(秦)나라에 인질로 있었는데, 진왕(秦王)의 학대를 견딜 수 없어 연나라로 도망 왔다. 당시 진나라는 연나라를 공격하고 있었는데, 태자 단이 형가(荊軻)를 진나라로 보내 진왕을 암살하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진 나라가 이 일로 연나라에 대한 공세를 더욱 강화하니 연왕 희(喜)는 할 수 없이 태자 단을 참수해 진왕에게 사죄했다. 이 고사는 ≪사기≫ <연소공세가(燕 召公世家)>와 ≪사기≫ <자객열전(刺客列傳)>에 보인다.

265) 전광(田光)은 전국시대 연나라의 처사(處士). 태자 단이 태부(太傅) 국 무(鞫武)에게 진왕에 대한 복수를 상의하자 국무는 그에게 전광을 추천했다. 태자 단이 전광을 찾아가 계책을 묻자 전광은 형가를 추천했다. 태자가 전광에 게 비밀이 누설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당부하자 전광은 자살로써 태자를 안 심시켰다. 266) 여기서는 태자 단이 형가에게 주어 진왕의 암살에 사용한 비수를 가리 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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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子怨亦深 一聞田光義 匕首贈千金 其事雖不立 千載爲傷心

해설

이 시는 연나라 태자 단이 의사(義士)를 예우하자 목숨을 바쳐 그에 보답한 의리를 찬미한 것이다. 당시 진자앙은 측천무후의 당질 무유의의 핍박을 받고 있었으므로 이를 통해 무유의가 사 람을 쓸 줄 모른다는 것을 암시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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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의 누대267)에 올라 앞으로는 옛사람268)이 보이지 않고 뒤로는 올 사람269)이 보이지 않는다. 천지의 끝없는 영원함270)을 생각하니 홀로 슬픔에 젖어271) 눈물이 흐른다. 登幽州臺歌 前不見古人 後不見來者 念天地之悠悠 獨愴然而涕下

해설

이 시는 진자앙이 <계구남고 7수>를 읊은 후 감개에 북받쳐 뚝뚝 눈물을 흘리며 지은 것이라고 한다. 시인은 높다란 계북루

267) 원문의 ‘유주대(幽州臺)’로, 유주에 있는 계북루를 가리킨다. 268) 원문의 ‘고인(古人)’으로, 연나라 소왕이나 악의 장군과 같은 전대(前代) 의 명군현신(明君賢臣)을 가리킨다. 269) 원문의 ‘내자(來者)’로, 후세의 명군현신을 말한다. 270) 원문의 ‘유유(悠悠)’로, 무궁무진한 모양, 끝없는 모양을 의미한다. 271) 원문의 ‘창연(愴然)’으로, 슬퍼하는 모양, 비통한 모양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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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올라 멀리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끝없는 천지와 유한한 인생, 광활한 우주와 왜소한 인간이 함께 가슴에 떠오르며 깊은 감개 에 빠졌을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정치적 이상이 실현될 수 없 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때라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만나지 못한 고독감이 시인을 무섭게 엄습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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