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하시선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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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하 시선


서경에서 정지상의 운을 차하다

바쁜 피리 재촉하는 술잔 이별의 시름 많아 마셔도 취하지 않으니 노래조차 이룰 수 없네. 하늘이 이 강물을 서쪽으로 흘러내리게 했으니 정다운 임 위해 동으로 거슬러 흐르게 할 수 없구나.

西京1次鄭知常2韻 急管催觴離思多 不成沈醉3不成歌 天生江水西流去4 不爲情人東倒波5 <申紫霞·一>

해 설

≪경수당집≫에는수록되지않고 ≪신자하시집≫ 권1에제1수 로 연조 미상(年條未詳)이란 주와 함께 수록된 작품이다. ≪경 수당집≫이 편년체인데 미상이라 한 것은 선시(選詩) 과정에 서 김택영의 예사롭지 않은 회억, 이른바 자하의 분고(焚稿) 중 김택영의 기억에 남은 작품일 것으로 유추된다. 정지상의 시 <송인(送人)>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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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멎은 긴 둑 풀빛은 다복한데 슬픈 노래 남포에서 임을 보낸다. 대동강 푸른 물 언제나 마를 건가 이별의 눈물 해마다 창파에 보태지니. 雨歇長堤草色多 送君南浦動悲歌 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 <三韓詩龜鑑·中>

물론 시화에 자주 오르내렸다. 최자(崔滋)는 경책(警策)이라 했는가 하면, 김택영은 비록 아름답기는 하나 허실상배(虛實相 配)와는 거리가 먼 한낱 염정(豔情)에 흘렀다 했다. 그럼에도

널리 애송된 까닭은 시(詩)·소(騷) 이래 전별 터의 대명사인 ‘남포(南浦)’와 두시(杜詩) <봉기고상시(奉寄高常侍)>의 ‘첨 금수파(添錦水波)’의 용사에 있다 하겠다. 이후 정지상의 <송인>은 왕유의 전별가 <송원이사안서(送 元二使安西)>

위성의 아침 비 티끌조차 말끔히 씻어 객사의 휘휘 늘어진 버들 더욱 상큼한데 그대여, 한 잔 술 더 권하는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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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녘 양관을 벗어나면 뉘 있어 권하리. 渭城朝雨浥輕塵 客舍靑靑柳色新 勸君更進一杯酒 西出陽關無故人 가 양관삼첩(陽關三疊)의 칭예와 함께 숱한 전별 자리를 독차 지했듯이, 해동삼첩(海東三疊)으로 성가를 누려온 탓에 숱한 차운(次韻)이 있어 왔다.

1.

서경(西京): 평양. 이십일도(二十一都) 중 가장 서쪽에 위치한 도읍지.

동경(東京) ↔ 서경(西京). 유득공의 <이십일도 회고시(二十一 都懷古 詩)>를 참조할 것. 2.

정지상(鄭知常): 고려 중기의 문신.

3.

침취(沈醉): 술에 몹시 취함. 이취(泥醉).

4.

서류거(西流去): 대동강은 평남 동백(東白)·소백산(小白山)에서 발

원하여 진남포를 거쳐 서해로 흘러드는 강이다. 우리나라의 강물은 모두 서해로 흘러든다. 고로 ‘만절동류(萬折東流)’는 중국식 문자이지 우리의 문자일 수 없다. 5.

동도파(東倒波): 동으로 물길을 돌리다. 동으로 흐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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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판 추사 김정희에게 부탁하다 신미년에

좋은 세상에 큰소리치며 정당한 소리를 펴내니 두루 모아 비평한 것은 깊은 뜻이 있다. 내 지금 영웅호걸 논평하는 것도 게을러져 푸른 매화주 먹으며 후생에게 부탁하노라.

屬秋史1 金參判正喜 辛未 昭代舂容2播正聲 蒐羅3揚扢4有深情 吾今倦矣論英雋 煮酒靑梅5屬後生 <申紫霞·一>

해 설

작자 43세 때(순조 11, 1811)의 작이다. 이해 그는 10여 년 동안 한직에 머물다가 처음으로 내직으로 옮겨 정3품에 올랐다. 이 어 8월 진주겸주청사의 서장관이 되어 북경으로 가게 되었다. 이에 자하는 연행의 선험자인 추사와 사전 정보 차 다소간 수답 이 있었다. 추사는 <송자하입연 십수(送紫霞入燕十首)> 병 서에서 “훌륭한 경치와 구경거리가 천만 가지 중에 한 소재(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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齋) 노인을 보는 것만 같은 것이 없다고 한다. 옛날 게(偈)를 말

하는 자가 이르기를 ‘세계에 있는 것을 내가 모두 보았으나, 부 처만한 것이 없다고 ’ 했으니, 나는 당신의 이 걸음에 역시 그렇 게 말한다” 했다. 추사의 권유대로 당대의 석학 담계(覃溪, 蘇 齋) 옹방강(翁方綱)과의 만남은 적어도 자하에겐 가히 신천지

로의 개안이었다. 이른바 문명사적 대전환의 계기였으니, 그는 이제까지의 학당(學唐), 특히 학두(學杜)의 시고(詩稿)를 파기 하고 유소입두(由蘇入杜)로 변전함은 물론, 청조 학자 문사들 과의 폭넓은 교류를 맺게 된다.

1.

촉추사(屬秋史): 추사 김정희에게 부탁하다.

2.

용용(舂容): 큰소리치다. 서둘지 않고 천천히 하는 모양.

3.

수라(蒐羅): 두루 모으다.

4.

양흘(揚扢): 칭찬하다. 비평하다.

5.

자주청매(煮酒靑梅): 푸른 매실로 빚은 술. 조조(曹操)와 유비(劉備)

가 청매관(靑梅館)에서 함께 술 마실 때 조조가 뜬금없이 “천하에 영웅은 그대와 나 외에 또 누가 있는가”라고 유비의 의중을 떠보는 듯해, 놀란 유 비가 태연한 척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비유해 ‘너와 내가 제일이 다라는 ’ 뜻으로 쓰임. 조용지(曹用之)의 시에 ‘春風二十年前客 煮酒靑 梅也復生’이라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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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 자리에서 물러나 돌아오는 배에서 짓다

황제의 자리 후궁들은 구름 장막 깊은 곳에 있는데 몽고왕 패륵의 뱀을 그려 장식한 갖옷 푸르구나. 구산의 신선이 내려와 백운요를 부르는데 춤추는 대열은 나란히 창힐의 문자를 만드는구나. 봉관과 용생은 다락 위에서 불어대고 향 연기와 사람들의 모습은 가을을 모르는구나. 5시 30분쯤 신하들이 천자를 따라 나오니 일찌감치 물가에는 천자의 배 두둥실 떠 있다.

宴退回舟作 帝座宮嬪雲幕邃 蒙王貝勒1蟒裘翠 緱仙2下唱白雲謠3 舞隊聯成蒼頡4字 鳳管龍笙5樓上頭 香烟人氣不知秋 未初三刻侍臣出 蚤有洲邊黃屋舟6 <申紫霞·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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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설

청나라 궁궐에서의 사신연을 마치고 물러나오며 쓴 감회의 시 다. 이른바 조알지류(朝謁之類)인 가지(賈至)의 <조조대명궁 (早朝大明宮)> 및 그 화시인 왕유·잠삼·두보의 <화가지 사인 조조대명궁(和賈至舍人 早朝大明宮)>과 맥을 같이하 는 교린문학이다. 풍요롭고 웅장하며 고고하고 화려[豊雄高華] 함을 본령으로 하는 사장의 백미다. 1.

패륵(貝勒): 만주 말로 부장(部將)을 일컬음. 청나라에서는 만주·몽고

말로 작호를 사용했음. 군왕의 아래 직급. 다라패륵(多羅貝勒)의 준말. 2.

구선(緱仙): 구씨(緱氏) 산에 사는 신선.

3.

백운요(白雲謠): 곡조 이름. 주나라 목공(穆公)이 곤륜산에 이르러 서

왕모와 함께 술을 마실 때 서왕모가 지었다 함. 그 노래는 “‘흰 구름 하늘 에 있어 산모퉁이에서 나온다. 길은 멀고 산천은 한가롭다. 장차 그대 죽 지 않으면 다시 오겠는가?’하니, 천자가 답하기를 ‘나는 동쪽으로 돌아가 온 천하를 화평하게 다스려 만민을 화평하게 하고 다시 너를 보러 오리 라’(白雲在天山陵自出. 道理悠遠山川閒之將子無死尙 能復來. 天子 答之曰 予歸東土 和治諸夏 萬民平均 吾顧見汝)” 했다 한다. 4.

창힐(蒼頡): 창힐은 황제(皇帝)의 사관(史官)으로 새의 발자국을 보고

문자를 만들었다 한다. 본시에서는 춤추는 대열이 전자(篆字) 모양의 글 자를 이루며 잘도 춘다는 뜻. 5.

봉관용생(鳳管龍笙): 봉황을 새긴 피리와 용을 새긴 생황.

6.

황옥주(黃屋舟): 천자가 타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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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수부용각에서 계유년(1813)에

청수부용각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며 홀로 주화모록지란 연못에서 시를 읊었다. 이곳 생각만 해도 더위를 모르겠는데 사람으로 하여금 육조 때의 시를 기억케 하는구나. 새가 나니 한 점 머리만 푸르게 보이고 물고기 헤엄치니 일천 금빛이 흩어지네. 자그만 관청에 맑고 시원한 경지가 열렸으니 바람이 없는데 숲 그림자만 얼쑹덜쑹하구나.

[자주] ‘청수부용각은 ’ 곡산 관아의 원정이다. 이때 옹방강이 청수부용각 이란 편액을 써 부쳐와, 공이 이에 새겨 누정에 걸었다.

題淸水芙蓉閣1 癸酉 追凉淸水芙蓉閣 獨咏朱華2冒綠池 對此不知三伏熱3 令人却憶六朝4詩 禽飛一點翠光去 魚戱千頭金色披 小署自開明瑟境 無風林影碧參差5 <申紫霞·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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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註] 閣卽谷山6官府之園亭 時翁學承寄到淸水芙蓉閣扁 公乃 刻而揭亭

해 설

연행에서 돌아온 자하는 통정대부의 가자(加資)와 전결(田結) 및 노비를 하사받고 병조참의에 임명되었다가, 이듬해 곡산부 사로 전임되었다. 때에 전염병으로 피폐해진 고을을 구하고자 세금과 정역(征役)을 탕감해 줄 것을 탄원하는 등 선정을 베풀 었다. 1816년 과만(瓜滿)으로 승지가 되어 환조할 때까지 126 수의 시를 썼는데, 위 시는 바로 그 관아에 옹방강이 <청수부 용각(淸水芙蓉閣)>이란 편액을 써 부쳐와, 자하가 이를 새겨 걸고 쓴 시다. 1.

청수부용각(淸水芙蓉閣): 곡산 관아의 동산에 있던 누각.

2.

주화(朱華): ‘주화는 ’ 붉은 꽃. ≪문선≫ <조식(曹植)> 조에, “가을

난초가 넓은 들판을 덮고, 붉은 꽃이 푸른 연못을 덮었다(秋蘭被長坂 朱 華冒綠池)”라는 시구가 있다. 3.

삼복열(三伏熱): 삼복의 더위. 하지 후의 셋째 경일인 초복과 넷째 경

일인 중복 및 입추 후의 첫째 경일인 말복. 복은 금기복장(金氣伏藏), 곧 가을 기운인 쇠가 여름의 기운인 불을 무서워하여 엎드려 숨는다는 뜻. 4.

육조(六朝): 건업(建業)에 도읍한 여섯 나라. 곧 오(吳)·동진(東晋)·

송(宋)·제(齊)·양(梁)·진(陳). 이 시대를 육조시대라 한다. 5.

참차(參差): 들쭉날쭉하다. ≪시경≫ <주남>·<관저>에, “들쭉

날쭉한 마름풀을 왼쪽 오른쪽으로 찾도다. 요조숙녀를 자나 깨나 찾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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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도 찾을 수 없어 자나 깨나 생각하고 생각하여 한도 없는지라. 이리 뒤척 저리 뒤척(參差荇菜 左右流之 窈窕淑女 寤寐求之 求之不得 寤寐 思服 悠哉悠哉 輾轉 反側)” 참조. 6.

곡산(谷山): 황해도 곡산군. 고구려의 십곡성(十谷城)으로 진서·상

산이라고도 함. 조선조 태조 2년 현비 강씨(康氏)의 고을이므로 곡산으 로 고치고 부로 승격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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