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정균 사선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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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정균 사선


01. 보살만(菩薩蠻)

병풍에 그려진 작은 산에는 금빛 반짝이고, 흐트러진 머리는 눈같이 희고 향기로운 뺨을 덮고 있네. 느지막이 일어나 눈썹을 그리고 화장을 하고 천천히 머리를 빗네.

꽃을 거울에 이리저리 비춰보니 꽃과 얼굴이 서로 잘도 어울리네. 새로 지은 비단 저고리에는 쌍쌍이 금빛 자고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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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小山 重叠金明滅, 鬢雲 欲度香腮 雪. 懶起畵蛾眉, 弄妝 梳洗遲.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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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照花前後鏡, 花面交相映. 新帖 繡羅襦, 雙雙金鷓鴣.

해설

온정균은 모두 14편의 <보살만>을 지었는데 여성의 생활을 주로 묘사해 전체적으로 여리면서 농염하고 화려한 특색이 있 다. 특히 이 사는 그중 가장 유명한데, 여성의 외모와 그녀의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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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를 섬세하고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이른 아침 창가의 햇빛은 침상 곁의 병풍을 비추어 빛나고, 아직 도 잠에서 덜 깬 듯한 여인이 있다. 그녀는 하나도 급할 것이 없 다는 듯 천천히 화장을 하고 머리를 빗으니 이는 누구를 위하여 화장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녀는 머리에 천천히 꽃을 꽂고 거울로 이리저리 비추어 보면서 자신을 들여다본다. 옷을 입다가 문득 보니 저고리에 자고새 한 쌍이 수놓아져 있다. 쌍 으로 다니는 자고새와는 달리 여인이 지금 외로운 처지에 있음 을 대조시키고 있다. 이 사는 겉으로는 심리 묘사를 전혀 하지 않으면서도 몇몇 장면을 통해 여인의 나른한 외로움을 짐작하 게 하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1) 小山(소산): 작은 산. 여기서는 침상 근처에 두는 첩첩이 접히고 펴지 는 병풍을 이른 것이다. 병풍이 접혀 구불구불한 것이 마치 작은 산과 같 아 보임을 말했다. 이에 대해서는 몇 가지 다른 견해가 있다. 하나는, 눈 썹 모양이 산과 같다는 것이다. 당대 여성들이 눈썹을 그리는 양식 중 ‘소 산미(小山眉)’라는 것이 있고, 뒤의 구에 여인의 외모를 묘사하고 있으므 로 여인의 눈썹을 지칭한다고 보는 견해다. 다른 하나는, 여성의 머리에 꽂는 빗으로 보기도 한다. 머리 위에 꽂힌 빗이 반짝거리는 모양을 쓴 것 이라는 견해다. 필자는 온정균의 다른 사에서도 비슷한 표현이 나오는 경 우를 참고해 머리맡에 놓인 병풍이 산과 같아 보이는 것으로 해석했다. 2) 鬢雲(빈운): 구름같이 검은 여성의 머리. 3) 腮(시): 뺨. 4) 帖(첩): 붙이다. ‘첩(貼)’과 같음. 비단을 도안대로 잘라 옷감에 붙이거 나 금박을 만들어 옷에 장식하는 것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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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襦(유): 짧은 저고리. 6) 鷓鴣(자고): 자고새. 여기서는 저고리에 수놓아진 자고새 도안을 가리 킨다. 항상 쌍으로 짝지어 다녀 원앙과 함께 금실 좋은 부부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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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보살만(菩薩蠻)

수정 주렴 속 수정 베개 따뜻한 향기는 원앙금침에서 꿈결을 인도하네. 강가의 버들가지는 연기처럼 뿌옇고 기러기는 새벽달 걸린 하늘로 날아가네.

옷은 흰색에 인승은 들쭉날쭉 잘려 있고 두 귀밑머리에 꽂은 꽃 옥비녀 꽂은 머리에서 살랑살랑하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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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精 簾裏頗黎 枕, 暖香惹夢鴛鴦錦. 江上柳如煙, 雁飛殘 月天.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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藕絲 秋色 淺, 人勝 參差 剪. 雙鬢隔香紅, 玉釵 頭上 8)

風.

해설

이 사는 섬세한 언어로 여성의 생활환경을 묘사해 여성미를 부 각시키고 있다. 상편의 1·2구는 여인이 잠든 실내를, 3·4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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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실외 풍경을 묘사했다. 그 풍경이 이별할 때의 풍경인지, 떠 난 임을 그리는 정의 기탁인지, 여인의 심경을 표현한 풍경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이 모든 것으로 해석이 가능한 함축적인 표현 이기도 하다. 하편에서는 여인의 옷과 장식, 머리와 걸을 때마 다 흔들리는 장신구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그에 따른 인상과 느 낌을 전했다. 여성의 미묘한 심리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대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함축미를 더했다.

1) 水精(수정): 수정(水晶). 2) 頗黎(파려): 파리(玻璃). 천연 수정. 3) 藕絲(우사): 연실. 여기서는 연실의 색인 흰색 옷을 이른다. 4) 秋色(추색): 가을에 어울리는 색. 예로부터 오색(五色)과 오행(五行) 을 사시(四時)에 대입해 가을은 금(金)에 해당하며 해당 색은 흰색이라 했다. 어떤 학자는 오행과 상관없이 가을에 쉽게 볼 수 있는 색으로 풀어 황색과 녹색 사이의 색이라 했다. 이 사에서는 의상의 색이므로 둘 다 통 한다고 할 수 있는데, 필자는 흰색으로 보았다. 5) 人勝(인승): 화승(花勝), 춘승(春勝)이라고도 하며 여자들이 머리에 꽂는 장식품이다. 6) 參差(참치): 나란하지 않은 모양. 여기서는 인승의 모양이 일정치 않 음을 의미한다. 7) 玉釵(옥채): 옥으로 만든 비녀. 8) 頭上風(두상풍): 머리에 바람이 인다. 머리 장식이 걸음을 옮길 때마 다 흔들거림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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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보살만(菩薩蠻)

이마의 노란 분 지워졌는데 비단창 너머로 어제 화장 지우지 못한 이 미소를 거둔다. 함께 모란을 볼 수 있었던 그때 잠시 왔다 다시 가버렸기 때문.

비취로 상감한 금비녀는 두 고로 되어 있고 비녀 위로는 나비 한 쌍이 춤을 춘다. 이내 마음 누가 알까 달 밝은 밤 가지에 꽃 만발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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蕊黃 無限 當山額, 來還別離.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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宿妝 隱笑 紗窗隔. 相見牡丹時, 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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翠釵 金作股 釵上蝶雙舞. 心事竟誰知, 月明花滿枝.

해설

모란이 피었을 때 찾아온 임은 금방 다시 떠나버려, 여인은 화장 을 새로 하는 것도 잊고 미소도 잃어버렸다. 그녀의 외로운 마 음은 쌍을 이루는 비녀의 고나 나비들 때문에 더욱 부각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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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마음 누가 알까라며 ’ 스스로 동정하고 탄식하며 원망하고 있다. 마지막 구는 경치 묘사로 맺고 있는데, 여인의 한탄과 달 밝은 밤 만발한 꽃 경치 사이에 무한한 고독과 슬픔이 함축되어 있다. ‘꽃과 같이 아름다운 것도 한때, 시간은 금방 흘러버릴 것 을, 무정한 임은 그것도 모른 채 그냥 떠나버리고 말았구나라는 ’ 구구절절한 사연이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1) 蕊黃(예황): 액황(額黃). 육조 시기부터 당대까지 여성들이 화장할 때 노란 분을 이마에 뿌리거나 발랐는데 그 색이 꽃술과 같이 노래서 예황이 라 했다. 2) 無限(무한): 한계가 모호하다. 여기서는 이마의 노란색이 점점 옅어지 는 것을 이른다. 3) 山額(산액): 이마. 이마가 불룩 솟아나와 있어서 이렇게 이른다. 4) 宿妝(숙장): 어젯밤의 화장. 5) 隱笑(은소): 미소를 거두다. 6) 翠釵(취채): 비취로 상감한 비녀. 7) 金作股(금작고): 두 고로 만들어진 금비녀. 두 고로 된 비녀와 한 쌍의 나비 장식은 여성이 짝이 없이 외로움에 처해 있음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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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보살만(菩薩蠻)

비췻빛 금빛 깃털의 자원앙 한 쌍 푸른 봄 못에 유영하니 물결이 잔잔히 인다. 연못가 해당화 비 갠 후 온 가지에 붉은 꽃이 가득하다.

수놓인 저고리로 보조개를 가리고 무성한 풀잎에 나비가 붙어 난다. 푸른 창살 사이로 온갖 화초 대했는데 옥문관 소식은 드물기만 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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翠翹 金縷 雙鸂鶒, 水紋細起春池碧. 池上海棠梨, 雨晴 紅滿枝.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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繡衫遮笑靨, 煙草粘飛蝶. 靑瑣 對芳菲, 玉關 音信稀.

해설

이 사는 규중의 젊은 여인이 창가에서 봄날의 화초를 보며 홀연 변방에 있는 임의 소식이 뜸한 것을 떠올리는 내용이다. 상편의 봄 풍경은 푸른 창살 사이로 보이는 정경으로, 활기 있고 아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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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 화자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떠올리게 한다. 수놓인 저고리를 입고 수줍게 웃는 이 여인은 한 쌍의 자원앙, 나비가 풀잎에 날 아 앉는 모습을 보고는 떠나간 임을 생각하지만, 임은 멀리 수자 리 떠났고 소식조차 잘 전하지 않으니 아쉬움만 더하다.

1) 翠翹(취교): 비취색의 깃털. 2) 金縷(금루): 금색의 깃털. 여기서는 금색과 녹색이 섞인 깃털을 말한다. 3) 鸂鶒(계칙): 자원앙. 원앙보다 크고 자줏빛이 도는 물새로, 짝을 이루 어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4) 海棠梨(해당리): 해홍(海紅), 감당(甘棠)이라고도 한다. 2월에 붉은 꽃이 피고 8월에 열매가 익는다. 5) 靨(엽): 보조개. 6) 靑瑣(청쇄): 꽃무늬가 연쇄적으로 조각되어 푸른 칠을 한 창문. 7) 芳菲(방비): 봄의 화초와 수목. 8) 玉關(옥관): 옥문관. 여기서는 변새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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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보살만(菩薩蠻)

한 무더기의 살구꽃 이슬을 머금은 채 향기롭고 두둑 위의 초록 버드나무에는 이별 잦아라. 몽롱한 달빛 아래 등불을 켜두었는데 깨어나니 새벽 꾀꼬리 소리 들린다.

옥 고리로 비취 휘장을 젖혀두자 화장 지워지고 어제 그려둔 눈썹도 흐려진 것 보인다. 한바탕 봄꿈에 임에 대한 마음 사무쳤는데 거울 속 비친 귀밑머리는 가볍기만 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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杏花 含露團香雪, 綠楊陌上多離別. 燈在月朧明, 覺來聞 曉鶯.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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玉鉤 褰翠幕, 妝淺舊眉薄. 春夢正關情, 鏡中蟬鬢 輕.

해설

이 사는 이별한 여성이 아침에 일어나 듣고 본 것을 묘사하고 있 다. 첫 두 구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데, 꿈에서 본 장면인지, 잠에 서 깨어 본 봄 풍경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꿈에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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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으로 보았다. 살구꽃 피고 버드나무 푸른 봄날에 헤어지는 꿈을 꾼 여성이 깨고 보니 등불이 켜 있다. 아마도 밤새 잠이 들 지 않아 등불을 켜두었는데 설핏 잠이 든 모양이다. 휘장을 젖 히자 화장도 엉망이고 머리도 헝클어져 있는 자신이 보인다. 밖 은 꾀꼬리 우는 생기 넘치는 봄이고 자신도 거울을 보면서 단장 을 하려고 해보지만, 설핏 꾼 봄꿈에 마음이 더욱 아프다.

1) 杏花(행화): 살구꽃. 4월에 꽃이 핀다. 꽃이 필 때에는 붉은색이 도는 흰색인데, 꽃이 질 무렵에는 순백색이 된다. 2) 團香雪(단향설): 한 무더기의 향기로운 눈. 여기서는 활짝 핀 후 곧 떨 어지려는 살구꽃을 말한다. 여러 꽃이 둥글게 뭉쳐 있기 때문에 ‘단(團)’ 으로 표현했다. 3) 玉鉤(옥구): 옥으로 만든 발고리. 4) 關情(관정): 정에 사무치다. 5) 蟬鬢(선빈): 매미 모양의 귀밑머리. 옛날 여성들의 머리 모양의 일종. 두 귀밑머리가 얇은 것이 마치 매미 날개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 서 귀밑머리가 가볍다고 한 것은 간밤에 꾼 꿈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음 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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