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순간_맛보기

Page 1

영화적 순간


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급변하는 커뮤니케이션 환경 속에서 새로운 지식에 대한 욕구가 높 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추어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주 제를 10개 항목으로 묶어서 달걀 꾸러미처럼 엮었습니다. 사회의 변 화를 빠르게 알기 원하는 대중과 시대에 앞선 지식을 단시간에 알고 자 하는 연구자, 실무자,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편집자 일러두기 ∙ 이 책은 󰡔현대 영화의 은밀한 매력󰡕(최인규, 2012)에서 다뤘던 내 용을 미장센적인 측면에 좀 더 초점을 맞춰 수정 · 보완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 영화에 나오는 인물과 배우를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표기했습니다. 예) 이단 헌트[톰 크루즈(Tom Cruise)] ∙ 외래어 표기는 현행 한글어문규정의 외래어표기법을 따랐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영화적 순간 최인규

대한민국,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4


영화적 순간

지은이 최인규 펴낸이 박영률 초판 1쇄 펴낸날 2014년 4월 15일 커뮤니케이션북스(주) 출판등록 2007년 8월 17일 제313-2007-000166호 121-869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571-17 청원빌딩 3층 전화 (02) 7474 001, 팩스 (02) 736 5047 commbooks@eeel.net www.commbooks.com CommunicationBooks, Inc. 3F Cheongwon Bldg., 571-17 Yeonnam-dong Mapo-gu, Seoul 121-869, Korea phone 82 2 7474 001, fax 82 2 736 5047 이 책은 커뮤니케이션북스(주)가 저작권자와 계약해 발행했습니다. 본사의 서면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이 책의 내용을 이용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최인규, 2014 ISBN 979-11-304-0181-2 책값은 뒤표지에 있습니다.


타이틀 시퀀스

타이틀 시퀀스, 좋은 영화란 무엇인가? “훌륭한 장면이 세 장면 들어 있고, 잘못된 장면은 하나도 없는 영화” -하워드 혹스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Roger Ebert)의 󰡔위대한 영화 (Great Movies)󰡕에서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대를 대표하 는 감독 하워드 혹스(Howard Hawks)는 ‘좋은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스카페이스(Scarface)>, <빅 슬립 (The Big Sleep)>,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Gentlemen Prefer Blondes)> 등 손꼽히는 미국 영화를 연출한, 누아 르(noir)와 스크루볼 코미디(screwball comedy) 장르에 탁월했던 하워드 혹스의 말은 ‘좋은 영화’에 관한 일종의 기준을 제공해 준다. 그러면 과연 내가 생각하는 좋은 영 화는 무엇일까? 영화 수업을 진행하면서 늘 마주하는 질 문이다. 학기가 끝날 때가 되면 학생들은 어떤 잣대와 근 거로 수많은 영화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는지를 질문한다.

v


학기 내내 장르와 시대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영화를 소개 하면서 ‘걸작! 마스터피스!’를 입에 달고 강의를 하지만 정 작 좋은 영화의 기준을 한마디로 요약하기란 쉽지 않다. 하워드 혹스의 말대로 “훌륭한 장면이 세 장면 있는 영화” 라는 표현은 너무 개인적이고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반전 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릴러, 카메라워크가 탁월한 SF, 감 동이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멜로드라마, 삶을 변화시키는 교훈적인 드라마 등 다 좋은 영화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좋은 영화의 예도 고도의 주관적인 판단과 개인의 취향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 ‘좋은 영화’라는 명제를 좀 더 객관화 할 수 있는 항목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고민 끝에 좋은 영 화의 기준을 다음 세 가지 항목으로 요약해 보았다. 첫째는 ‘소통할 수 있는가’다. 영화도 하나의 미디어라 는 점에서 창작자와 관객의 커뮤니케이션은 필수 요소일 것이다. 소통하지 못한다면 관객이 발을 디딘 현실 세계 와 영화가 만들어 내는 재현의 세계는 분리된 채 어떠한 감흥도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다. 둘째는 ‘동시대를 반영하는가’다. 이 문제는 앞 항목인 소통과 많은 연관성을 지닌다. 영화가 현실 세계의 이슈 를 진정성 있게 담아낼 때 창작 주체와 관객의 소통 정도 는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화가 현실과 동떨어진 세

vi


계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의 문제를 핍진성 있 게 제시할 때 좀 더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미디어가 되 는 것이다. 마지막은 ‘영화적 순간이 존재하는가’다. 시네마틱 모 멘트(cinematic moment)! 가장 영화다운 순간, 즉 영화만 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순간이 있느냐 하는 문제다. 이미지 와 사운드로 대표되는 영화 고유의 언어가 시의적절하게 구사되어 영화적 힘을 느끼게 만드는 그런 순간이 좋은 영 화에는 어김없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기준들 은 일반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작품에서 일관되게 나타 나는 요소라는 점에서 좋은 영화의 본질을 밝히는 데 유용 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소통 모든 미디어가 마찬가지이겠지만 영화도 소통이 가장 중 요하다. 관객과 창작자가 영화가 상영되는 2시간 내내 대 화를 나눌 수 있다면, 그 영화는 분명 대중 영화의 목적인 봉합을 성취했다고 볼 수 있다. 봉합이란 현실 세계와 영화 세계의 거리를 지워 버림으로써 관객을 영화 세계의 일원 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관객은 주인공에게 자신을 투사하 고 동일시하며 결국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예

vii


를 들어 우리가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을 보며 이단 헌트[톰 크루즈(Tom Cruise)]의 일거수일투족 을 주목하면서 그의 궤적을 쫓는다면 강력한 봉합이 이루 어졌다고 볼 수 있다. 영화적 재미란 바로 소통에 따른 봉 합의 정도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방식과 수준의 소통이냐는 것이다. 여기에 딜레마가 존재 한다. 극영화는 다큐멘터리나 뉴스, 토론 프로가 아니다. 이러한 미디어가 직설적이고 빠른 소통을 이루어 낼진 몰 라도 거기엔 어떤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소통이 부재한다. 영화에는 창작자의 특정 의도가 반영된 ‘예술적 소통’이 필 요하다. 금세기 최고 흥행작 <아바타(Avatar)>를 살펴보자! 영화 는 SF 장르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제임스 캐머런(James Cameron)은 이 판타지에 서부극의 포뮬러(formula, 장르 에 따른 특정 이야기 공식)를 녹여 놓았다. 결국 지구인은 구대륙의 유럽인이고, 판도라 행성의 나비족은 아메리칸 인디언으로 등치시킬 수 있다. ‘나비’라는 어원도 나바호 인디언에서 왔음을 알 수 있고, 나비족이 타고 하늘을 나는 ‘이크란’은 서부극의 야생마와 유사성을 갖고 있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미국 건국신화의 허구성, 즉 이를 기초로 만들 어진 가장 미국적인 장르인 서부극(western)의 구조를 빌

viii


려와 새로운 서부극을 만들었다. 백인과 인디언의 대결 구 도를 바탕으로 선과 악을 구분했던 이전 서부극의 도식적 인 구조를 해체하고, <아바타>를 통해서 수정주의적인 관 점을 취하고 있다. 또한 제임스 캐머런은 서부 시대뿐만 아 니라 더 나아가 베트남전, 걸프전, 이라크전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전쟁 역사를 통해 미국 제국주의를 풍자하고 성찰 하고 있다. 이렇듯 <아바타>는 풍부한 상징과 알레고리로 관객과 소통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을 풍자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알렉산더 페인 (Alexander Payne) 감독의 데뷔작 <일렉션(Election)>도 이러한 관점에서 눈여겨볼 만한 영화다. 영화는 미국 네브 라스카주 오마하를 배경으로 고등학교 회장 선거를 소재 로 삼고 있다. 하이틴(high-teen) 무비처럼 전개되던 <일 렉션>은 선생 짐[매튜 브로데릭(Matthew Broderick)]이 회장 선거에 나선, 자신이 싫어하는 트레이시[리즈 위더스 푼(Reese Witherspoon)]를 떨어트리기 위해 음모를 꾸미 고 선거 결과를 조작하면서 정치 풍자 영화로 장르를 선회 한다. 결국 <일렉션>은 선거라는 소재와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선생 짐, 출세 지향적인 학생 트레이시 등의 캐릭터를 알레고리화하여 당시 대통 령 선거를 앞두고 이전투구 양상을 보이던 워싱턴 정가에

ix


대한 통렬한 비판을 내재하고 있다. 즉, <일렉션>의 소통 은 바로 영화의 외피가 아닌 영화가 풍자하고 있는 내재된 메시지를 읽어 낼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결국 영화에서 소통이란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표현을 바 탕으로 창작자가 관객에게 대화를 걸어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너무 직접적이고 쉽지도, 그렇다고 너무 난해하 지도 않은 수준의 소통이 영화에서 요구되는 것이다.

동시대성 영화는 현실을 담아내는 거울이다. 영화에는 현실에서 우 리가 늘 마주치는 고민과 문제가 생생하게 표현되어야한 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동시대성이란 관객을 영화의 세계 로 안내하는 초대장과 다름없다. 리얼리즘 전통이 강한 한국 영화는 이러한 부분을 특히 중요하게 여긴다. <트와 일라잇(Twilight)> 시리즈나 <토르(Thor)>, <엔더스 게임 (Ender’s Game)>같은 할리우드 영화처럼 온전히 판타지 와 엔터테인먼트 요소만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한국 시장 에서는 드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들 할리우드 영화 들은 판타지 소설, 그래픽 노블, 게임 등을 바탕으로 영화 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만들어지고 있다. 현실 이슈보다는 영화적 스펙터클에 더 치중하고 있는 것이다.

x


한국 영화는 이러한 할리우드의 트렌드와 궤를 달리한 다. 최근 한국 영화 흥행작들을 분석해 보면 대부분 동시 대 관객들의 관심사와 사회 현실이 녹아 있다. 남한과 북 한이 극단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을 다룬 <베를린>, 조선 시대 계급 문제와 당파 싸움을 다룬 <관상>, 집을 가 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문제를 빈부격차 관점에서 다룬 <숨바꼭질>, 젊어서는 혁명을 꿈꿨지만 부패한 괴물이 되 어 버린 아버지 세대를 폭파해 버리는 아들 세대의 살부 의식을 다룬 <화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보여 준 <설국열 차>, 역행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통찰이 담긴 <변호인>, 지난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그려낸 <수상한 그녀>, 4·3제주항쟁을 배경으로 이데올 로기에 의한 희생의 역사를 다룬 <지슬> 등이 그러한 영 화들이다.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녹록지 않은 시대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반영되었다는 것 이다.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것 을 꺼리지 않았고, 오히려 사회적 이슈가 적절히 영화 속 에서 표현될 때 반응하고 열광했다. 영화를 거울삼아 들 여다봤고, 그 거울을 통해 바로 지금의 자신과 우리, 그리 고 사회를 발견했을 때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이다. 결국 시대와 호흡하는 영화, 동시대성이 묻어나는 영화가 바로

xi


좋은 영화라는 방증인 것이다.

영화적 순간 미국인들이 자주 쓰는 표현 중 ‘코닥 모멘트(Kodak moment)’라는 표현이 있다. 사진으로 찍어서 기념으로 남겨야 할 때를 말한다. 결혼식, 졸업식이면 어김없이 이 표현은 회자된다. 삶에서 기억으로 생생하게 남아 있는 순간이 코닥 모멘트라면 영화에선 ‘영화적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크리닝이 끝나고도 오랫동안 뇌리에 남는 그 순간, 하나의 영화가 하나의 장면으로 수렴되는 바로 그 순간이 영화적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과 마 찬가지로 영화 역사와 궤를 같이했던 코닥은 이미 아날로 그 시대의 퇴물이 되어 버렸지만, 코닥 모멘트는 디지털로 그 옷을 갈아입고 영화적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이 순간을 고대하며 극장을 찾고,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순 간을 손꼽아 기다린다. 또한 그 영화적 순간은 평생 우리 의 기억 속에 남아 영화의 얼굴로 기억된다. 과연 어떤 순간이 우리의 뇌리에 남는 것일까? 같은 영 화를 봤다고 하더라도 관객들마다 모두 다르다. 영화적 체험이란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같은 영화를 본 다고 할지라도 저마다 다른 답을 내놓을 것이다. 선택지

xii


가 많은 답을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영화적 순간 이란 말 그대로 ‘영화적인 순간’이 아닐까? 여타 매체와 다 른 영화 고유의 비전을 보여 주는 순간이 아닐까? 같은 아파트에 사는 기혼 남녀가 맞바람을 피운다는 TV 막장 드라마 같은 진부한 내러티브이지만 금세기 최고의 멜로드라마로 평가받는 왕자웨이(王家卫)의 <화양연화 (花樣年華)>, 꿈의 세계를 스펙터클하게 펼쳐 보여 영화 적 상상력의 극치를 보여준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의 <인셉션(Inception)>, 불협화음의 음향 효과를 통해 새로운 사운드 미학을 선보인 폴 토마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의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 등이 바로 영화적 순간으로 가득 차 있는 작품이 아닐까? 전혀 장르나 내러티브 면에서 상이한 이들 작품 은 영화라는 매체의 특징인 영화 언어의 구사가 탁월했다 는 점에서 ‘영화적’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영화적 순간이 란 같은 내용이라 할지라도 감독이 창의력을 발휘하여 새 로운 영상 언어로 재해석하느냐, 아니면 상상력을 기초로 전혀 새로운 스토리와 스펙터클을 창조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좋은 영화의 마지막 조건으로 꼽았던 ‘영

xiii


화적 순간이 존재하는가’에 관해 심도 있게 논의해 보고자 한다. 첫째, 둘째 조건이 영화의 내러티브와 주제적인 측 면이라면, 마지막 조건은 영화의 고유한 속성인 영상 언어 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타 미디어나 예술과 는 다른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숏, 신, 시퀀스로 이어지는 시각 구조 속에 이미지와 사운드가 적절한 균형과 조화를 이룰 때 영화적 순간은 도래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 영화적 순간의 비밀을 밝히는 한편, 영 화 매체의 본질을 규명해 보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영화 적 순간을 창조하는 핵심 요소들을 10가지로 세분해 보았 다. 여기에는 리듬, 컬러, 카메라워크 등과 같은 현대 영화 의 미장센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항목들이 포함되었다. 또한 이러한 10가지 개념이 어떻게 영화적 순간을 창출하 는 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되는지 논의해 보고자 한다. 10가지 요소는 다음과 같다. 리듬, 컬러, 카메라워크, 내러 티브 구조, 시간, 공간, 사이즈, 판타지, 사운드, 캐릭터 등 이다.

xiv


참고문헌 로저 에버트 지음, 최보은 옮김(2003). 󰡔위대한 영화󰡕. 을유문화사. 스테판 샤프 지음, 이용관 옮김(1991). 󰡔영화 구조의 미학󰡕. 영화언어. 이용관 · 김지석(1992). 󰡔할리우드󰡕. 제3문학사. 최인규(2012). 󰡔현대영화의 은밀한 매력󰡕. 교보문고.

xv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