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r Cherubinische Wandersmann 방랑하는 천사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은 인류의 유산으로 남을 만한 작품만을 선정합니다. 오랜 시간 그 작품을 연구한 전문가가 정확한 번역, 전문적인 해설, 풍부한 작가 소개, 친절한 주석을 제공하는 고급 시선집입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Der Cherubinische Wandersmann 방랑하는 천사 안겔루스 질레지우스(Angelus Silesius) 지음 조원규 옮김
대한민국,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5
편집자 일러두기 ∙ 이 책은 ≪Angelus Silesius, Cherubinischer Wandersmann≫ (Kritische Ausgabe, Reclam Verlag, 1986)을 저본으로 삼아 번역했 습니다. ∙ 본문의 각주는 저본과 ≪Angelus Silesius, Textauswahl und Kommentar≫(Gerhard Wehr, marix Verlag 2011), ≪Angelus Silesius, The Cherubinic Wanderer≫(Maria Shrady, Josef Schmid, Paulist Press, 1986)를 참고해 옮긴이가 작성한 것입니다. 독일어사 전은 ≪Deutsches Wörterbuch von Jacob und Wilhelm Grimm≫ (16 Bde. in 32 Teilbänden. Leipzig 1854∼1961. Online-Version 24. 02. 2014)을 참고했습니다. ∙ 각주의 성서 인용은 개역개정판(대한성서공회)을 기준으로 했 습니다. ∙ 외래어 표기는 현행 한글어문규정의 외래어표기법을 따랐습니 다.
차례
헌사 ·······················3 1부 ·······················5 2부 ······················109 3부 ······················201 4부 ······················297 5부 ······················381 6부 ······················509
해설 ······················609 지은이에 대해··················637 작품 연보····················643 옮긴이에 대해··················644
방랑하는 천사 또는 신적 평온을 위한 격언시 1675
인간은 신을 우러러보고 짐승은 땅덩어리를 내려다보니 이로써 각자가 어떤 존재인가를 누구나 알 수 있음이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린도후서 3:18
헌사
영원한 지혜이신 신께, 천사와 모든 영혼들이 무한한 경이를 느끼며 바라보는 흠 없는 거울이시며 이 세상에 오는 모든 인간을 비춰 주는 빛이시며 모든 지혜의 마르지 않는 샘이며 가장 깊은 근원이신 그분께 다시금 써서 바치노니, 이것은 커다란 대양에서 은혜로이 흘러나온 작은 몇 방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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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을 바라보려는 끊임없는 갈망을 담아
매 순간 쇠멸하는 자
요한네스 안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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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1. 순수한 것이 오래간다 정금(正金)처럼 순수하고 바위처럼 굳세며 수정처럼 그대의 심혼은 맑아야 하네.
2. 영원한 안식처 누군가는 제 장례식을 걱정하다 위풍당당한 묘로 벌레 먹은 자루1)를 덮겠지만, 나는 근심치 않네, 영원토록 쉴 내 묘혈과 관, 나의 반석은 예수의 가슴속에 있으니.
3. 오직 신만이 나를 충족하시리 물러가라, 세라핌 천사여, 그대는 나를 위로치 못하니 가라, 물러가라, 모든 천사들이여, 그대들 광채와 함께. 나는 이제 그대들을 원치 않노라, 다만 적나라한 신의
1) 루터는 덧없이 소멸하는 육신을 ‘벌레 먹은 자루’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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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바닷속으로 나를 던져 넣으려 할 뿐이니.
4. 온전히 신과 같아야 합니다 주님, 제게는 충분치가 않습니다, 천사처럼 당신을 섬기 고 당신 앞에서 푸르게 신들처럼 온전해진다 해도, 제 영혼에는 너무 미흡하고 저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당신을 제대로 섬기려는 자, 그는 신성한 것 이상이어야 합니다.
5. 자신이 무엇인지 모른다 내가 무엇인지 나는 모릅니다. 내가 아는 것이 나는 아닙니다. 세상 속 무엇인가 하면, 또한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작은 점이면서 하나의 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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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신처럼 되어야 한다 내가 나의 첫 시작과 마지막을 발견하려면 내 안에서 신을, 신 안에서 나를 찾아야 하네. 그리고 신처럼 되어야 하리. 그림자 가운데서 그림자가, 말 가운데서 말이, 신 안에서 신이어야만 하네.
7. 신도 넘어서 가야 한다 내 머물 곳은 어디인가, 나도 없고 그대도 없는 그곳은? 내가 가야 할 마지막 종착지는 어디인가, 아무것도 없는 그곳은? 그러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나는 신을 넘어서 사막으로 가야 한다.
8. 내가 없으면 신도 살지 못합니다 나는 압니다, 내가 없다면 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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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현재를 살아가실 수 없음을. 내가 무(無)가 되어 버리면 신도 영(靈)을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9. 나는 신에게서, 신은 내게서 얻습니다 신은 그토록 복되시고 요구함 없이 살아가시니 그분이 나를 받아들인 것처럼 나는 그분을 받아들였습니 다.
10. 나는 신과 같고 신은 나와 같습니다 나는 신처럼 커다랗고 신은 나처럼 작습니다. 나를 넘어 그분이 계실 수 없고 그보다 아래에 내가 있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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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신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신이 있습니다 신은 내 안의 불이시고 나는 그분 안의 빛이니, 우리는 지극히 서로 닮지 않았는지요?
12. 자신을 내바쳐야 한다 장소와 시간을 뛰어넘어 마음을 진동시킬 때, 사람이여, 그대는 영원 속에 모든 순간 존재하리라.
13. 인간이 영원이다 시간을 떠나면, 나 자신이 영원이다. 신 안에서 나와 내 안에서 신을 하나가 되도록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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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신처럼 풍요로운 그리스도인 나는 신처럼 풍요롭다네. 내가 분명 그분과 작은 먼지만큼도 닮지 않은 점이 없으니.
15. 남김없이 신을 사람들이 신에 관해 하는 말, 그것은 내게 충분치 않다. 남김없이 신성을 아는 것, 그것이 나의 생, 나의 빛.2)
2) 원문에서 ‘∼에 대해, ∼에 관해’라는 뜻의 두 전치사 ‘von’과 ‘über’를 대비해, 대상과 동등한 평면상의 경험과 앎을 “von”으로, 위에서 내 려다본 듯 남김없이 파악하는 앎을 “über”로 접근했다. 신을 내려다 본 듯 남김없이 안다는 것은 신앙적, 신학적으로 무리한 표현과 생각 이지만, 저자는 이를 통해 그토록 신성의 본질을 앙망하는 자신의 열 정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저자의 다른 시에서도 ‘über’는 ‘더없이 잘 알게 된다’는 맥락에서 사용되곤 한다. 역자의 번역에서는 “내려다본 듯 신에 관해”라는 제목과 본문 중의 표현을 ‘남김없이 신을 (아는 일)’로 의역했다. 참고로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은 1925년에 쓴 <신에 관해 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라는 글에서 신에 관해(über) 말한다는 생각의 모순−왜냐하면 인간 은 “모든 것을 규정하는” 신의 외부에서 신을 대상화하는 존재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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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사랑이 신을 신이 나에게 자신을 알려 주려 하지 않으실 때 나는 오직 사랑으로 그분을 강제해야 하리.
17. 그리스도인은 신의 자식 나 역시 신의 자손이니 그분 곁에 앉네. 나를 보면 그분의 영혼과 육신과 피를 알 수 있다네.
가 없기에−을 지적한 바 있다. 의역한 시의 원문을 붙여 둔다. 15. Die über−GOttheit. Was man von GOtt gesagt / das gnüget mir noch nicht: Die über-GOttheit ist mein Leben und mein Lie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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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신이 하시듯 나도 그렇게 하네 신은 자신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고 나는 나보다 신을 사랑하네. 신이 자신을 내게 주시는 만큼 나도 자신을 그분께 드리네.
19. 복된 침묵 얼마나 복된가, 의지도 앎도 필요치 않은 이는! (내 말을 잘 이해하시길) 신은 칭찬도 상도 주지 않으시네.
20. 영원한 기쁨이 그대에게 있다 사람이여, 지복은 스스로 얻을 수 있으니 그것에 자신을 던지고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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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신은 그대가 바랄 때 오신다 신께서 누구에게 무엇을 주시는 게 아니다. 그분은 모든 이에게 열려 계시니, 그대가 바라기만 하면, 그분은 온전히 그대의 것이리.
22. 내맡김3) 그대가 내맡기는 만큼 신은 그대가 될 것이다. 더도 덜도 아닌 그만큼 신은 그대를 곤경에서 구할 것이 다.
3) 신비주의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주요한 개념 ‘겔라센하이트 (Gelassenheit)’를 문맥에 따라 ‘내맡김’, ‘초연함’, 때로는 ‘내려놓음’, ‘평정’ 등으로 번역했다. 국내 학계에서는 “내려놓음”이라는 뜻에서 방하(放下)로 번역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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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영적 마리아 내가 마리아가 되어 신을 잉태할 때 그분은 나를 영원토록 복되게 하리.
24. 아무것도 아니어야 하고 뜻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대가 아직 무엇이라면 무언가를 알며 사랑하고 또 증오한다면, 사람이여, 내 말을 믿으시게, 그대는 아직 짐을 벗지 못한 것이니.
25. 신은 붙잡을 수 없다 신은 순전한 무(無)여서, 지금 이곳4)에 닿지 않네. 신은 그대가 잡으려 할수록 그대에게서 멀어져 가리.
4) ‘지금 이곳’은 시간과 공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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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비밀스러운 죽음 죽음은 영광된 일, 강한 죽음일수록 그로부터 찬란한 생명이 선택될 터이니.
27. 죽음에서 삶을 만든다 지혜로운 자는 천 번을 죽어도 진리를 통해 천 번의 삶을 얻는다.
28. 가장 복된 죽음 영원한 선을 위해 영혼과 육신을 버리며 주님 안에서 죽는 것보다 복된 죽음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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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영원한 죽음 새로운 생명이 싹트지 않는 그런 죽음은 내 영혼이 모든 죽음들 중에서도 피해 달아나는 죽음.
30. 죽음이 아니다 나는 죽음을 믿지 않는다. 시시각각 죽어도 매번 나는 더 나은 삶을 발견했도다.
31. 거듭 죽는 일 나는 죽고 신을 살아갑니다. 신을 영원히 살려면 나 역시 영원히 그분을 위해 내 뜻을 포기해야 합니다.
32. 신은 죽어서 우리 안에 사십니다 죽고 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신이 내 안에서 죽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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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산다 함은 역시 그분께서 거듭 사신다는 것입니다.
33. 무엇도 죽음 없이는 살지 못하리 신조차 그대를 살고자 한다면 죽어야 하니, 어떻게 그대가 죽지 않고서 신의 삶을 살 수 있으랴?
34. 죽음이 그대를 신으로 만든다 그대가 죽고 신이 그대의 생명이 되면 비로소 그대는 드높은 신들의 반열에 들리.
35. 죽음이 최상의 것이다 말하노니, 죽음만이 나를 자유롭게 하니, 죽음이 뭇 사물들 가운데서 최상의 것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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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삶 없이는 죽음도 없다 죽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다른 삶일 뿐. 괴로움조차 죽음을 통해서 주어진 것이다.
37. 소란은 자신에게서 온다 무엇이 그대를 휘젓는 게 아니다. 그대 자신이 바퀴처럼 제 안에서 스스로 돌며 고요할 줄 모를 뿐.
38. 차별하지 않으면 평온하다 온갖 분별 없이 사물을 받아들이면 사랑이나 괴로움 가운데서 그대가 평온하다.
39. 불완전한 내맡김 지옥에서 지옥 없이는 살지 못하겠다는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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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가장 높은 분께 자신을 내맡기지 못한 것입니다.
40. 신은 스스로 뜻하는 대로의 존재다 신은 불가사의, 그 자신이 뜻하는 대로의 존재이고 그의 뜻은 잣대도 목표도 없는 존재 그 자체다.
41. 신은 스스로 다함을 알지 못하네 신은 무한히 높으심을 사람이여 믿으라, 망설임 없이. 영원토록 그분은 자신의 신성의 끝을 알지 못하시니.
42. 신은 무엇에 기초하는가? 신은 바탕 없이 서고 측량할 척도가 없음을 사람이여 깨달으라, 그대가 신과 함께하는 영혼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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