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셜보병전투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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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antry in Battle 마셜 보병 전투


서문

이 책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소부대 전투 사례가 제시하는 전술을 다루고 있다. 평상시 전술 교육에서 다루는 내용을 전투 실상과 비교함으로써 평시 교육의 실효성을 검증한다. 평상시 전술 교육을 우수하게 이수한 장교들도 도상(圖 上)에서 습득한 전술 지식과 전투 실상의 차이로 인해 당황

하고 혼란에 빠지곤 한다. 그것은 우리 육군이 추구하는 평 상시 전술 훈련이 이론에 치우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 다. 다시 말해, 일반적으로 우리 육군병과학교에서 전술 교 육을 할 때, 모든 하부 조직의 훈련 상태 및 전투력은 양호하 며 병사들의 전투 기술은 우수하고, 보급 지원 체계 및 통신 지원은 정상적으로 운용되며 모든 명령은 적시에 하달되어 집행된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전에서는 전투에 영향을 주는 필요조건들이 대 부분 결여되기 쉽다. 실전을 체험한 베테랑들은 이러한 전 장의 악조건이 정상이라 생각하며 열악한 실전 상황 때문에 심리적인 마비 현상을 보이지 않는다. 전투를 경험한 군인 은 외형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난관이 앞에 있다고 하더라도,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전투 장비가 불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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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거나 마모되었다고 하더라도,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뿐 아니라 임무를 수행하는 방법을 안다. 평상시 훈련만 받은 장교들에게 전투를 경험한 베테랑들의 관점을 전수하고자 책을 쓰기로 했다. 독자들은 다양한 전투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전쟁의 실상 과 또한 적을 눈앞에 둔 극도로 위험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일에 친숙해질 것이다. 여기에 소개한 사 례들은 주로 미 육군의 전투 경험이며 미 육군보병학교에 소장되어 있는 개인 경험 자료집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러 나 다른 나라의 육군 전투 사례도 육군의 전사 자료를 보충 하는 차원에서 활용했다. 소부대 보병 전술에 영향을 주는 제반 원칙을 완성하거 나 또 다른 추상적 이론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 중 요한 교훈을 충분히 발전시키고 구체화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보병 대령 조지 마셜(George C. Mars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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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1934년 5월 1일

≪마셜 보병 전투≫는 조지 마셜 대령의 감수로 미 육군보 병학교 전사(戰史) 출판부에서 편찬했다. 에드윈 하딩 (Edwin F. Harding) 소령이 편찬을 기획했으며 원고 준비 및 편집을 감독했다. 리처드 틴달(Richard G. Tindall) 소령 이 대부분 장의 초고를 작성했다. 존 앤드루스(John A. Andrews) 대위, 로버트 챈스(Robert H. Chance) 대위, C. 래넘(C. T. Lanham) 대위가 주무장교의 연구 및 지도를 도 왔으며 각 장의 일부분을 작성했다. 러셀 레이놀즈(Russel B. Reynolds) 대위는 기관총 운용에 관한 장의 초고를 작성 했다. 래넘 대위는 초고를 수정·편집했다.

재판 1938년 9월 1일

≪마셜 보병 전투≫의 재판은 단순히 반복 출판한 것이 아 니다. 초판의 전체적인 내용을 광범위하게 수정·보완했 다. 많은 장을 완전히 다시 작성했으며, 상당수 전술 교리를 재정의했고, 초판에서 미흡했던 요도들도 기술하사관 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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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 브라운(William H. Brown)이 보완했다. 이 작업은 에드 윈 하딩 중령에게 자문을 받아 C. 래넘 대위가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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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원칙 전술 상황은 원칙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무한정으로 변화하는 전투 환경과 조건들은 절대적으로 똑 같은 상황을 두 번 이상 재현하지 않기 때문에 전쟁술은 전 쟁 원칙과 관련이 없다. 임무, 지형, 기상, 배치, 무기, 사기, 보급, 상대적 전투력은 가변 요소로서 이 요소들의 변화는 항상 새로운 전술 상황을 조성한다. 그러므로 전투에서 발 생하는 각 상황은 독특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상황논리에 부합하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따라서 훌륭한 전술가가 되려고 하는 지휘관은 우선 전 승(戰勝)이라는 명제 아래 전술 이론가들이 제시하는 전쟁 공식에 현혹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전쟁술을 완성하려면 전술 상황의 본질에 접근해서 결정적인 요소를 식별하고, 이러한 요소에 대해 자신의 전술 방책을 적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능력은 천부적인 것이 아닐뿐더러 하룻밤 사이에 체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몇 년에 걸친 노력의 과 정에서 얻어진다. 모든 유형의 전술 문제를 해결하는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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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쾌하고 정확한 결심을 수립하기 위한 집요한 연습, 당면 한 문제에 집중하는 습관, 정신적 유연성은 전쟁술을 성공 적으로 숙달·완성하려고 하는 군사학도에게 요구되는 불 가결한 요소들이다. 다른 사람이 전술 상황 속에서 취했던 조치만을 맹목적 으로 암기해 적용하려고 하는 지휘관은 이미 파멸의 길에 발을 들여놓은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사례 1] 1918년 8월 초순, 독일군은 벨(Vesle) 강 쪽으로 철수하고 있었다. 그달 3일, 제42사단과 교체된 제4사단은 진격하고 있었다. 전진하는 제4사단 예하 제39보병연대는 2개 대대 를 전위로 해 접적행군 대형으로 진출했다. 부대의 접적행 군은 하루 종일 계속되었지만 적의 저항보다는 울창한 숲으 로 인해 지체되었다. 그날 오후 늦게 이 부대는 적의 저항을 받았으나 물리쳤 고, 적은 퇴각했다. 부대가 받은 명령은 전위를 운용하는 종 대대형을 편성하고 추격 작전을 실시하는 한편 벨 강을 도 하해 북쪽 경사지에 교두보를 구축하라는 것이었다. 제39보병연대(1개 대대 결)는 제7여단의 전위 부대로 지 정되었다. 몇 시간 행군한 뒤, 대형은 적의 포격을 받아 밤 새도록 이동하지 못하고 정지해 있었다. 새벽녘에 행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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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강

생티보

8월 3일 전선

m

셰리샤르트뢰브

[사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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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했으나 계획된 행군로가 적의 포탄에 피격되자 전위 부 대는 다른 도로를 택해 행군을 감행했다. 이로 인해 일부 혼란이 야기되었으며 제2대대와 제3대 대가 뒤섞였다. H중대가 전위를, F, K, L중대는 지원을 담당 하고, I, M중대와 기관총중대, E, G중대, 예비중대 순으로 대열을 재편해 행군을 재개했다. 8월 4일 오전, 행군 대열은 셰리샤르트뢰브(ChéryChartreuve)와 생티보(St. Thibaut)를 연결하는 도로를 따라 벨 강에 접근했다. 도로는 생티보로부터 약 2km 남쪽에서 강 북쪽 감제(瞰制)고지와 거의 직각을 이루며 매우 깊은 협 로를 지나고 있었는데, 1km의 협로를 지나면 북쪽으로 생 티보 일대 작은 마을을 완만하게 휘감고 있는 넓은 개활지 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 마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북쪽 감 제고지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는 개활지를 지나야 했다. 적 보병과 접촉은 없었다. H중대는 2열 종대로 적의 저 항을 받지 않고 생티보에 접근, 오전 8시에 마을에 들어갔 다. 이 무렵, 분대 종대대형으로 행군하던 지원 부대 일부는 협로를 이미 벗어난 상태였다. H중대가 마을을 수색하고 벨 강에 놓인 교량에 거의 다 다랐을 무렵, 북쪽 감제고지에 있던 독일군이 갑자기 기관 총과 포병 화력을 전위 부대와 지원 부대에 퍼부어 사상자 를 다수 발생시켜 지원 부대를 막대한 혼란에 빠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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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보병연대 기관총중대장 맨턴 에디(Manton S. Eddy) 소령의 개인 경험 자료에서 인용.

[토의] 이것은 부대 이동 중에 입은 처절한 피해 속에서 발휘한 부 대 지휘 사례를 잘 보여 주는 완벽한 예다. 전위 부대의 희 생을 자세히 관찰하기 바란다. 그들이 협로를 빠져나오기 전까지, 지형은 그들을 적의 지상관측으로부터 보호했다. 협로의 보호를 벗어나자마자 부대는 북쪽에 있는 감제고 지군에게 직접 관측되었다. 적 포병은 이 고지 일대에서 포 격을 실시했다. 그러나 몇 분 전부터 시작된 적의 포격 속에 서도, 전위 부대는 2열 종대대형을 유지하고 지원 부대는 분 대 종대대형을 유지하면서 협로 밖으로 과감히 기동했다. 에디 소령은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이상적인 상황이 눈앞 에 펼쳐졌으니 독일군 포병과 관측수 둘 다 기뻐했을 것이 다”라고 언급했다. 왜 이러한 사태가 발생했는가? 그것은 미군의 훈련 체계가 마치 바꾸기 힘든 관습처럼 전위 부대 는 2열 종대, 지원 부대는 분대 대형으로 이동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일 수 있다. 이 훈련 체계는 전위 부대를 편성하 도록 되어 있었는데, 당장 적의 공격을 받지 않았던 미군은 훈련 교범에 제시된 원안대로 대형을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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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부대는 개활지에서 전투를 치른 경험은 전혀 없 었으며, 견고한 진지의 적에 대한 공격 작전을 실시한 경험 만 한 번 있었다. 또한 제2대대와 제3대대를 혼합 편성한 것 도 지휘 체계를 확립하는 데 어려움을 야기했다. 그렇기는 해도 상식적으로는 적을 앞에 둔 상황에서 그러한 자살행위 와도 같은 이동대형은 비난을 받는다.

[사례 2] 1918년 10월 14일, 미 제77사단은 생쥐뱅(St. Juvin) 근처 에르(Aire) 강 북쪽에 있는 독일군을 공격했다. 이 일대 적 진지는 매우 견고하게 구축되어 있었으며, 특히 남쪽의 공 격에 잘 대비할 수 있었다. 사단장은 독일군이 생쥐뱅 및 에르 강 남쪽에 탄막사격 과 방어 사격을 실시할 것으로 확신하고, 1개 보병연대로 하 여금 남쪽에서 적 정면에 대해 양동(陽動)을 실시하게 하면 서, 목표상의 마을을 동쪽 및 남동쪽에서 포위해 점령하고 자 했다. 그는 부대들이 어둠을 틈타 적에게 관측되지 않고 에르 강을 도하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 작전은 우측의 제 82사단 책임 지역 내로 기동을 실시해야 달성할 수 있었는 데, 제82사단 입장에서는 제77사단의 기동이 별다른 영향 을 주지 않았다. 따라서 제77사단에는 우익 부대로 하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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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뱅

에르 강

공격 방향

제306보병연대 후방 지원 부대가 뒤늦게 실시한 이동

마르크

사단 사령부에서 지시한 주력 지향 방향 yd

[사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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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사단 지역 내에서 기동해 동남쪽으로부터 생쥐뱅을 공 격하라는 작전 명령이 하달되었다. 그러나 이 기동 개념은 예하 부대에 하달된 작전 명령에 포함되지 않아, 예하 부대들은 남쪽으로 우회하지 않고 사 단장이 가장 꺼렸던 기동 방향인 생쥐뱅 정면으로 직접 공 격했다. 사단장이 생쥐뱅 동쪽으로 투입되기를 바랐던 제 306보병연대 제1대대는 수심이 깊어 걸어서는 건널 수 없었 던 에르 강을 도하한 뒤 남쪽으로 우회해 목표를 공격했다. 에르 강 북쪽 경사지에서 날아오는 적군의 탄막사격과 무서 운 기관총 사격은 공격 부대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해 공격 이 중지되었다. 전황이 이러하자 사단장은 정오경에 상황을 심각하게 재분석하고 다른 조치를 고려했다. 바로 이 시점에 제306보병연대장은 정면 공격 형태로 목 표 직전방으로 공격을 계속한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정면 공격의 실패를 경험한 뒤, 연대장은 독단으 로 연대 후방에 있던 가용 작전 요소로 하여금 마르크 (Marcq) 동쪽 에르 강을 도하한 뒤 생쥐뱅 동쪽으로 측방 기 동을 실시하게 했다. 이 기동은 마침내 성공해서, 목표 일대 마을과 적 진지를 점령하고 적군 540명을 생포했다.

−제77사단장 로버트 알렉산더(Robert Alexander) 소장의 ≪세계대전의 추억(Memories of the World War)≫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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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의] 알렉산더 장군은 최초에 시도한 공격이 정면 공격이었을 뿐 이라고 강조했다. 이 공격은 실패했다. 제306보병연대장이 독단으로 에르 강을 도하해 적 진지의 측방을 공격할 때까 지 작전은 성공하지 못했다. 사단장은 “모든 경우에 탄막사격을 실시하고 탄막 엄호 아래 적진으로 곧바로 공격해 가는 참호전 교리의 영향을 받은 잘못된 전투 수행 개념”이 부하들의 마음을 분명 바람 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유도했다고 술회했다. 세계대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과거 전투에서 효과적이었 던 방법을 또 다른 전투 상황에 적용하려고 했던 다양한 노 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사례 3] 1918년 11월 2일, 미 제2사단 예하 제9보병연대는 바용빌에 슈네리(Bayonville-et-Chennery) 남서쪽에서 사단의 예비 로 대기하고 있었다. 11월 1일 개시한 미군의 공격이 상당 한 성과를 거두어, 독일군은 다소 사기가 떨어진 듯했다. 11월 2일 오후, 제3여단 예하 제9보병연대와 제23보병연 대는 병행해 진출하되, 20시에 전선(前線)을 통과하고 야음 을 이용해서 누아르(Nouart)와 포세(Fossé)를 잇는 도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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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몽

라튈르리 농장

벨발 숲

라포르주 농장

벨발

포세

누아르

11월 2일

20:00시 전선

바용빌에슈네리

[사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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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


로 북쪽의 고지 일대로 전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 후 두 연대는 그 일대에서 진지를 편성하고 적극적인 추격 작전을 펼치도록 되어 있었다. 제9연대는 제1대대, 제2대대 순서로 2열 종대를 유지하 면서 바용빌에슈네리와 누아르를 잇는 도로를 따라 전선으 로 이동하고, 그 후에는 제4여단의 통제를 받았다. 연대는 제 5해병연대의 전위가 있는 쪽으로 기동하다가 해병 전위 요 원들로부터 적군이 아직 바로 앞에 있는 전선을 점령하고 있 다는 정보를 입수했는데, 이 정보는 곧 사실로 확인되었다. A중대는 첨병 중대로서 연대를 선도했고 정찰 요원을 몇 명 선발해 행군 대열 약 100m 전방에서 운용했다. 연대는 길게 굽은 도로를 따라 전방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행군 대 열의 전방 부대가 굽어지는 부분을 지나다가 7∼8명으로 편성된 적 전위 부대와 조우했다. 그들을 신속히 사살 또는 생포한 연대는 계속해서 전방으로 기동했다. 이때 전방 부 대는 소대 규모의 병력을 전위로 배치해 엄호하게 했으며, 첨병 중대로부터 엄호 병력을 일부 지원받아 측위로 운용하 고 있었다. 이때부터 서쪽에서 적의 강력한 사격을 받았다. 연대 행군 대열은 A중대가 전개하는 동안 순식간에 엄폐 하고 적에 대응해 기동한 뒤 적을 격퇴했다. 이때 시각은 이 미 자정을 넘어섰고 목표는 바로 가까이에 있었다. 그에 따 라 연대는 05시까지 휴식을 취한 뒤 매우 짧은 거리를 이동 13


해 미리 지정해 둔 누아르와 포세를 잇는 선에서 전개했다. 이 선에서 공격을 개시해 새로운 목표를 별다른 저항 없 이 점령했다. 이후 다시 한 번 작전이 중지되었다. 비록 서 쪽 전선에서 독일군의 저항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었지만, 제9연대와 제23연대는 벨발(Belval) 숲 남쪽을 따라 발달한 구릉 전방에서 아주 단호한 저항이 준비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미군 포병 화력은 이 진지를 타격하는 데 운 용되었으며 공격 부대는 이곳을 점령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3여단의 작전 계획은 매우 특이했다. 제9연대와 제23 연대는 벨발 숲 일대를 통과하는 도로를 따라 행군하면서 독일군 진지를 돌파하고, 보몽(Beaumont) 남쪽 고지군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수령했다. 부대는 도로 양쪽으로 200m 거리를 유지하면서 탄막사격의 엄호를 받으며 기동했다. 제9연대는 16시 30분경 제3대대와 기관총중대를 전위로 하고, 제5기관총대대에서 1개 중대씩 차출해 예하 대대에 배속해서 제2대대, 제1대대 순서로 전방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곧 날이 어두워졌다. 전위의 선두 제대(梯隊)가 벨발 남쪽으로부터 200∼300m 떨어진 숲 외곽으로 접근하 자, 도로 양쪽에서 독일군이 기관총 사격을 가했다. 이는 좌 우로 급파한 정찰대가 곧 잠재웠다. 벨발 일대 도로는 바리 케이드로 차단되어 있었다. 연대는 바리케이드를 제거하고 2열 종대로 어둠 속에서 진흙탕을 밟으며 계속 이동했으나, 14


곧 비가 오기 시작했다. 부대는 이동하는 적 파견대를 차단하고 길을 확인하기 위해 이동 중에 자주 정지했다. 독일어를 할 줄 아는 병사 몇 명이 전위 부대 일대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다른 독 일군 부대와 예상하지 않은 접촉에 대비하기 위해 독일어로 대화하고 있었다. 그 독일군 부대들은 대부분 총 한 번 쏴 보 지 못하고 미군의 포로가 되었다. 라포르주(La Forge) 농장 바로 북쪽에서 미군 전위 부대 의 선도 중대가 방어 진지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던 독일군 파 견 부대를 기습했다. 여기서 독일군 60∼70명을 생포했다. 연대는 행군 대열을 유지한 채 기동을 계속해 독일의 치 중대(輜重隊) 숙영지를 기습하고 후방 지원 요원들을 생포 했다. 10시 45분에 미군 공격 부대는 숲 북단에 도착했다. 라튈르리(La Tuilerie) 농장에서 독일군 지뢰살포중대 소속 장교 및 병사들을 기습해 생포했다. 당시 독일군은 완벽한 방어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부대를 배치해 놓은 상태였 다. 독일군 포로의 증언이나 압수한 문서에 따르면, 그들은 이틀간 벨발 숲 남쪽 외곽에서 방어 진지를 유지하려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제9보병연대 기관총중대장이었던 로이 힐턴 (Roy C. Hilton) 대위의 개인 경험 자료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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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의] 위 사례에서 주목할 만한 전투 행동을 발견할 수 있다. 하룻 밤 사이에 1개 보병연대가 도로에서 종대대형을 유지하며 적 진지를 통해 8km를 행군한 사실이다! 여전히 진지전 교 리에 집착하던 제1차 세계대전의 양상으로 미루어 볼 때, 연대가 종대대형으로 공격하는 것이 매우 비상식적인 작전 으로 간주되는 분위기 속에서 달성한 이 전과는 매우 놀라 운 것이다. 연대의 작전 계획은 매우 획기적이었다. 진지전에 집착 하던 종전의 각종 비효과적인 전술 원칙의 관점에서 볼 때 그 계획은 모순이 많았다. 그러나 이 작전이 성공한 것은 바 로 이러한 모순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물론 이 작전을 칭송 하는 사람도 있고, 졸렬하며 매우 위험한 도박이라고 평가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전술 원칙을 다루는 교범이 어떻 게 평가하건 간에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미 군 지휘관이 독일군의 사기가 떨어졌고, 그들이 내부적으로 혼란한 상태에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기초한 미군의 작전은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어 그 유효성을 입증했다. 후 세의 전술 이론가들은 달성된 전과로 선대(先代)의 전투 행 위를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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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4] 1918년 10월 29일, 미 제61보병연대 제2대대는 앙동 (Andon) 하천 남쪽 방어 진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클레르 셴(Clairs-Chênes) 숲 북단에서부터 지표면은 엄폐물 없이, 앵크레빌(Aincreville)을 둘러 지나가는 작은 하천 방향으 로 완전한 내리막을 이루고 있었다. 독일군은 앵크레빌을 점령하고 있었으며 이 마을 전방 250m 지점에 반원형으로 기관총들을 배치해 놓았다. 또한 기관총 진지 전방 200m 부근에 포병 탄막사격을 가할 수 있 도록 준비하고 있었다. 미군은 앵크레빌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와 마차 소리도 들을 수 있었으나 적이 마을에 전투력을 어느 정도나 배치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독일군은 미군의 경미한 공격에도 민 감하게 반응해 탄막사격을 실시할 수 있는 신호 체계를 갖 추고 있었기 때문에 미군 정찰대는 매우 제한된 지역에서만 정찰할 수 있었다. 독일군의 신호는 녹색 오성신호탄이었으 며, 이 신호가 오르면 2분 내에 탄막사격을 실시했다. 제2대대장은 상급 부대로부터 앵크레빌을 점령하라는 명령이 내려올 것으로 예측하고 나름대로 상황을 판단했다. 대대원들은 매우 피곤한 상태였다. 지속된 장거리 행군 이 후 이 대대는 10월 12일부터 17일까지 작전을 수행했는데, 막대한 손실을 입었지만 달성한 전과가 미미했다. 이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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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크레빌

독일군 탄막사격 지역

앙동 하천

클레르셴 숲

라프 숲

고지

퓔티에르 숲 포레 숲

퀴넬 yd

[사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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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이후에도 대대는 사단 예비로서 며칠간 적 포격에 시 달렸으며, 또한 훈련이 부족한 보충병을 받아 10월 26일에 서 27일 사이 밤에 전선에 배치된 제3사단 예하 부대와 교대 했다. 대대장은 부하들의 상태를 고려할 때, 통상 취해 왔던 공 격 방법으로는 성공할 가능성이 없음을 간파했다. 또한 부 여된 작전 지역 내에는 엄폐물이 없었다. 미군 포병의 공격 준비 사격은 오히려 적군의 탄막사격 및 기관총 사격을 유 발할 것으로 판단했다. 대대장은 지쳐 있는 부하들이 개활 지에서 적 포화 및 기관총 사격을 무릅쓰고 진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한편 독일군도 똑같이 지쳐 있으 므로 자신의 공격 제대들이 독일군 진지 일대에 접근해 공 격 대기 지점을 점령할 수만 있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고 믿었다. 10월 29일 오후 예상했던 명령이 하달되었다. 명령의 골 자는 대대에서 장교 한 명과 병사 100명을 차출해 포병 공격 준비 사격 및 기관총 사격에 후속해 공격을 실시, 마을을 점 령하라는 것이다. 대대장은 즉각 대안을 제시해 상부의 승 인을 얻었다. 그 내용은 작전에 직접 참가하는 장교와 믿을 수 있는 부사관 4∼5명으로 특수 임무조를 편성해 작전 계 획을 수행하는 것이다. 다음 내용은 앵크레빌을 점령하기 위한 대대장의 작전 복안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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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0일 02시 30분, F중대 소속 R. 영(R. W. Young) 중위와 병사 100명은 기습을 감행해 앵크레빌을 점령한다. 공격은 준비 사격 없이 실시한다. 공격은 두 개 제대로 나누어 실시한다. 부사관들은 제2제대에 후속하며 모든 병 사들이 결정적인 돌격 전투 시점에 전방으로 충분히 기동했 는지 확인한다. 전방으로 진출할 시 기도비닉(企圖秘匿)의 유지가 필요하다. 대대장은 적 기관총 진지로부터 30m 이 내까지 적에게 발견되지 않고 기동할 수 있다고 믿었다. 적 기관총이 사격을 개시하면 공격 부대원들은 땅에 엎드려 엄 폐한다. 이때 영 중위는 적에게서 노획한 녹색 오성신호탄 발사기를 이용, 허위 신호탄을 발사해 독일군의 탄막사격을 유도한다. 작전에 참여한 모든 미군 병사들은 이 신호탄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영 중위는 중대원들이 이 신호탄을 보았다는 것을 확인 하자마자, “마을로 돌격하라!”고 소리쳐 명령을 하달한다. 이렇게 되면 병사들은 독일군 사격이 자신의 후방 일대에 집중되기 전에 새로이 전열을 가다듬을 여유도 없어, 목표 지역 마을로 신속히 전진하는 것 외에는 생존할 방법이 없 다고 생각할 것이다. 목표 지역 마을에 도달하면, 병사들은 가옥 및 지하실 등 에 엄폐하고 다음 날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소탕 작전을 실 시한다. 마을을 점령하면 다시 신호탄을 쏴 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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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선에 있던 부대는 마을 서쪽에 있는 통로에 기관총 사 격을 집중해 독일군의 탈출을 막고 이곳으로 독일군의 관심 을 돌린다. 탄막사격을 위한 신호는 다시 녹색 오성신호탄 을 이용한다. 이 계획은 매우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 미군은 독일군 기관총에 제지당할 때까지 어둠을 이용해 은밀히 기동했다. 그들은 독일군의 기관총이 배치된 선까지 근접했다. 계획된 대로 신호탄이 떠오르고 다음과 같은 구두 명령이 하달되었 다. “돌격하라! 지금이 유일한 기회다!” 병사들은 기관총 사 격을 무릅쓰고 질주해 작은 개울을 건너뛰고 마을로 진입해 집결, 가옥 및 지하실을 향해 기동했다. 미군의 피해는 한두 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영 중위는 다음날 아침, 마을 내부 소탕 작전을 지휘하다가 전사했다.

−제61보병사단 제2대대장 알렉산더 스타크 (Alexander N. Stark) 소령의 개인 경험 자료에서 인용.

[토의] 분명히 이 작전 계획은 고정관념의 틀을 벗어나는 것이었 다. 적이 탄막사격을 계획하고 있는 소규모 작전 지역에 침 투해 적에게 이 지역에 대한 탄막사격을 요청하는 행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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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볼 수 있는 전술이 아니다. 자신의 부대에 대해 적이 기습하도록 허용하는 것 또한 매우 보기 드문 전투 수행 방 법이다. 그러나 대대장이 구상한 전술 방책은 작전 계획이 효과적으로 시행됨으로써 성공할 수 있었다. 화력을 지원받는 주간 돌격 작전으로도 이 마을을 점령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야간 공격으로 작 전을 수행하는 것이 교범의 원칙에 더욱 가까웠을 것이다. 반면, 이렇게 특이한 전술 상황에서 자신의 부하들에게 기 대할 수 있는 능력을 고려한 대대장의 상황 판단이 완전히 옳았다고 볼 수도 있다. 전투 결과에 따라 전투 방법의 타당 성이 결정된다.

[결론] 전장에서 직면하는 모든 상황에는 예외적인 전술 원칙이 적 용될 수 있다. 교범의 원칙과 방안은 상황에 맞지 않는 경우 가 허다하다. 맹목적으로 기존 관행에 충실함으로써 전투 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는 지휘관은 분명히 실망할 것이다. 전에 암기한 전술 원칙에 기초해 싸우려고 하며 표준 전술 답안을 암기해 상황에 적용하는 전투를 구상하는 자는 실전 에서 곤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초급 장교부터 장 군에 이르는 각급 제대의 모든 지휘관들에게 명쾌하고 논리 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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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전투 사례에 기초해 작성된 현학적 내용을 암기하는 것보다는 과거의 전투 상황을 정확히 분석해 결정적인 요소 를 파악함으로써, 다양한 전술 상황에서 단순하면서도 실 질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도록 하는 전술 훈련을 실시하는 것이 더욱 가치 있는 일이다. 다음은 프랑스 군단장이었던 코르도니에(Cordonnier) 대장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과거의 지휘관들이 부하들에게 하달했던 지침, 군사 교 육 기관의 교관이 강의한 내용, 전사와 전술 이론서에서 제시한 원칙 등을 아무리 변화시켜 적용한다고 하더라 도 적을 격멸하는 데 충분한 전투 모델을 제시하기에는 부족하다. 전술의 요체는 전쟁의 속성을 잘 아는 사람의 상황 판단 과 전술적 결심을 할 수 있는 기민한 사고력, 자신이 결 심한 내용을 추진할 수 있는 의지에 달려 있다. 추상적인 개념에 안주하는 자는 전술 공식에 빠질 가능 성이 다분해 사고력이 저하되어 적에게 먼저 타도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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