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학소설선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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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現代)의 야(野)



第1章 破片으로 덮인 軌道를 따라 묵묵히 걸음을 옮겨 놓고 있는 隊列에서 벗어나 玄宇는 하늘이 거기에 훌렁 내려앉은 것 처럼 烏有13)로 화해 버린 잿더미 위를 찾아 들어갔다. 군데군데, 타고 허물어지고 쓰러지다가 간신히 均衡을 잡고 서 있는 壁이 푸른 七月의 하늘에 서운한 윤곽을 드러 내고 있는 風景이 異邦의 땅에 들어선 것 같지만 廢墟는 비 교적 閑散한 감을 주었다. 어저께의 爆擊이 그만큼 철저하 였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전찻길 건너편은 길가가 되는 바람벽에 금이 서고 지붕이 허물어져 내린 것 이 가끔 눈에 뛸 뿐 그런대로 고스란히 原形을 유지하고 있 는데 이쪽은 아득하게 텅 비어서 저 끝 鐵路 뚝이 엉성하게 배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過去形처럼 멋적다. 얼마나 많은 ‘現在’가 이 안에서 발버둥치다가 훑여 나간 것인가. 그는 戰爭이라는 것을 이제 보는 듯했다. 그들 一行은 네 사람에 들것[擔架]이 하나씩 차려져서 멀리 南山을 돌아 여기까지 끌려오는 사이에 脈盡이 되어,

13) 오유(烏有): 어찌 있겠느냐는 뜻으로, 있던 사물이 없게 되는 것을 이 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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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덜거리던 기력도 없이 되었던 터이지만, 코를 찌르는 괴 상한 냄새에 새삼스럽게 이제부터 해야 할 ‘民主事業’이라 는 것을 생각하고 울상을 짓는데 유독 玄宇만은 들것을 옆 사람에게 부탁하고 이렇게 屍體를 찾아보는 일에 나선 것 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그를, 아마 아는 사람의 시체라도 찾아보는 것쯤으로 생각하였겠지만 그는 文學靑年이다. 기왕 이런 일에 걸려든 바엔 後日을 위하여 폭격에 죽은 시 체의 모양도 봐 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들도 그를 모르고 그도 그들을 모른다. 그는 아버지의 고집에 따라 訃告를 돌리러 다니다가 南大門 근처에서 동 무에게 걸린 것이다. 어머니의 訃告다. 수개월 전부터 시름 시름 병석에 누워 있었던 그의 어머니는, 대학을 다니는 작 은아들이 義勇軍에 끌려간 것을 恨하다가 그만 세상을 떠 났었다. 모든 일이 빨갱이 놈들 때문이라고 원한이 골수에 맺힌 아버지가 葬禮式을 평상시와 같이 格式대로 치르겠 다고 나섰을 때 이웃 어른들은 그러지 않아도 전에 地主를 했다고 주목하고 있는데 그러면 재미없을 것이라고 말렸지 만 기어이 活版所에 가서 부고를 찍어 돌리게 했고 玄宇도 자기가 아니면 돌릴 수 없는 몇 장을 골라 들고 집을 나섰던 것이다. 처음 걸렸을 때 애원도 해보고 뿌리쳐 보기도 했으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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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 걸 만들어 가지고 다니면 누가 속을 줄 아느냐라는 것이 고 지금 洛東江에서는 英勇한 인민의 아들딸들이 새빨간 鮮血을 흘리고 있는데 그따위 늙은이가 하나둘 죽었다고 神聖한 民主事業을 사보타지14)하겠느냐라는 것이었다. 도망치면 住所도 알았으니 아주 의용군으로 끌어가겠다고 하면서 부고를 갈기갈기 찢어 버린 것이다. 민주사업이란 폭격에 죽은 시체를 치우는 일이었다. 그는 도망칠 수도 있 었지만 한두 시간이면 끝난다 했고 또 자기가 없어졌을 때 의 남은 세 사람의 형편을 생각하고 여기까지 따라온 것이 었다. 첫 번째로 발견한 시체는 까맣게 타 죽은 中年이었다. 개가 그렇게 타 죽은 것인 줄 알았다. 분명히 어른인데 꼬리 가 없을 뿐 四肢를 갖고 거기에 쪼그라들어 굴러 있는 모양 도 모양이려니와 부피는 개만 했다. 直立의 意味. 사람이 네 발로 기어 다닌다면 그저 개만 한 動物. 소나 말은 이에 비하면 의젓한 편이고 볼품이 있다 할 것이다. 사람이란 한 번 죽어서 넘어지면 형편이 없다. 지난날이 호기스러웠던 것만큼 末路가 哀傷的이다. 14) 사보타지: 사보타주(sabotage). 노동 쟁의 행위의 하나로, 노동자들 이 기업주 등의 자본가에게 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계나 시설 등 을 고의적으로 훼손시키며 파업·투쟁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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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시체를 찾아 발을 떼어 놓다가 그는 낯익은 것 같은 空間知覺을 느끼고 멈칫했다. 본 적이 있은 것 같다. 그러나 무엇을? 무엇을 보고 나는 그것을 언제 본 적이 있은 것 같고, 거기서 鄕愁 같은 것까지 느꼈는가… 그는 그 방향을 더듬어 보았다. 五○메타쯤 떨어진 곳에 끝이 뜯겨 나간 뻘건 벽돌 굴뚝 이, 저편 폭격을 면한 언덕배기의 집집을 背景으로 하여 서 있는 것이 보였고 거기서 七, 八 메타 南으로 떨어진 곳에 서 있는 老松 잔가지는 타 버렸는지 밋밋하지만 굴뚝 쪽으 로 거의 水平으로 굽어졌다가 다시 위로 고추서 오른 그 雙 기억(ᆨ) 字形… 거기에 시선이 얽혀들자 그는 거의 소리 를 지를 번했다. 아 ― 나는 왜 이제껏 여기라는 것을 생각지 못하고 있었 던가!… 그것은 玄宇네 옛집이었다. 옛집도 三 年 전까지 살고 있었던 옛집이다. 삼 년이 그렇게 긴 세월이었던가… 그는 망연자실해져 서 자기 자신이 믿어지지 않았다. 三 年이 긴 것이 아니었다. 전쟁이 斷絶이다. 그 그림자 는 無意識의 世界에까지 스며들어서 過去와의 사이에 帳 幕을 쳐 놨고 아까 눈앞에 전개된 廢墟를 바라보았을 때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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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텅 비어 나간 空間이 주는 엄청난 重量感은 그의 意 識 下에서 혹은 머리를 들려고 했을지 모를 回想에의 속삭 임을 그만 문질러 버렸는지도 모른다. 玄宇는 밀려 오르는 그리움을 안고 그리로 가 보았다. 야트막한 돌대문은 이럭저럭 그대로 서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民族 叛逆者라는 이름은 면했으나 土地 改革 바람에 ‘돌대문 집’이라고 불리던 이 洋屋을 내놓고 南 山 너머 현재의 대문만 멋없이 높은 낡은 朝鮮式 집으로 이 사할 때까지 그는 여기서 자랐고, 그의 浪漫과 휴매니티랄 까 그런 것은 學校나 거리에서보다 이 돌대문 안에서 피어 났던 것이다. 산산히 부서져 버린 搖籃… 들어서면서 보니 모두가 거멓게 그슬렸을 뿐 탄 흔적 같 지 않는 것을 보니 이 집은 直擊彈을 맞고 간단히 終末을 고했던 것 같다. 어머니의 장례식이 내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응접실이 던 모퉁이를 돌아 마당으로 가 보았다. 넓은 마당에서 그래도 옛날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은 소 나무뿐이었다. 한구석을 높직하게 차지하고 있는 동산은 斜面이 푹 패어 나갔고 그 흙에 덮여 그 아래 半島 모양의 못은 흔적도 없이 되었다. 고려시대의 유물이라고 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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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 石燈은 각(脚)이 나서 꽃밭 속에 뿔뿔이 딩굴어 있었고 花草들은 꽃봉오리를 맺은 채 벽돌 무더기에 깔려 그슬리 다가 꺼무스름하게 숨을 거두고 있었다. 꺼무스름하게는 玄宇의 마음 한구석도 그렇게 비어 갔 고, 허전하게 비어 가는 거기에 설음이 고이는 아픔을 느꼈 다. 그 설음은 어머니를 여읜 슬픔과 程度는 달라도 빛갈은 같은 것 같았다. 그 體溫을 안고, 원두며 파며 오이 따위의 채소밭이었던 뒷마당 쪽으로 다리를 옮겨 놓다가 그는 우뚝 멈추었다. 굴 뚝 아래에 女子의 시체가 굴러 있었다. 뒷걸음치다가 그는 눈을 크게 떠 가지고 한두 걸음 다가 들었다. 갈비뼈 아래 되는 데가 손바닥만큼 벌려 있다기보다 뭉 쳐진 구더기로 꽉 막혔다. 뚫고 나온 것인가. 퉁퉁 부운 그 뱃속은 그런 구더기로 꽉 찼는지도 모른다. 數十 마리가 곰실곰실 순간도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는, 運動이라기보다 舞踊, 구더기들은 거기서 대낮의 舞踊에 흥겨운 것이었다. 그는 눈알이 아물아물해지고 머릿속이 뗑했다. 한쪽 팔 은 어깨쭉지에서 살점과 함께 뜯겨 나갔고, 뜯겨 나간 팔의 끝에 달려 있는 다섯 개의 손가락은 파란 빛갈의 빗[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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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싸쥐고 있었다. 그리고 그 팔은 말라 들고 있지만, 지각 없이 헤벌어진 어깨쭉지는 피와 곱이 엉켜 누르스름한 빛을 발하면서 상기도 空氣를 빨아들이느라고 축축한 아픔 속 에 있었다. 부어서 둥그맣게 번들번들해진 얼굴에 시선을 가져갔다 가 그는 그만 자기 입에 손을 가져갔다. 여자의 반쯤 열린 두 입술 사이로 열심히 기어 나오고 있는 그 두 마리는 구더 기였다! 메쓱메쓱한 悲哀를 토하면서 그는 발길을 돌이켜 도망 칠 듯 꽃밭을 건너 무너진 담 밖으로 뛰어나갔다. “시체는 안 봐두 좋다!” 콘크리트와 타다 남은 기둥 따위가 밭을 이루고 있는 위 를 껑충껑충, 저 아래를 느릿느릿 멀어져 가고 있는 一行을 찾아 뛰어가면서 그는 이렇게 悲鳴을 흘리는 것이었다. 뛰 면서 시체를 만날까 봐 그것만이 무서웠다. 전에는 장독대였으리라 싶은 곳에 뛰어올라 섰다가 그 는 옛집을 돌아다보았다. “저기다 다시 집을 짓지 말라. 꽃을 심지 말라. 말뚝으로 둘러놓고 碑를 세워라. 그리고 거기다 ‘古蹟’이라고 새겨 놔 라.” 돌아서서 앞으로 펄떡 뛰었다가 그만 아찔해져서 엎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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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질 번했다. 남의 시체 위를 넘어 뛸 것이었다. 오목한 곳 에 낭자하게 허뜨러져 있는 殘骸. 그는 뒷걸음치면서 저 멀 리를 더듬어 보았다. 늑대가 어디로 잠입해 와서 이렇게 널 어놓았는가 해서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거기에 數百 數千 마리의 구더기가 몰켜서 와글와글 合唱처럼 끓고 있는 것 을 발견했을 때 그는 구역이 나는 憤怒로 몸이 떨렸다. 폭탄 을 던져 그 버러지들을 몰살해 버리고만 싶었다. 골목길을 찾아내어 큰길 쪽으로 헐덕이면서 玄宇는 설 음과 憤함과 구역질과 그리고 幻滅로 온몸이 느른해졌다. 그는 그 굴뚝 옆에 넘어져 있는 시체의 여자를 안다. 올 해 스물한 살이나 두 살이 되는 그 집 大學 다니는 딸이다. 서너 달 전 극장에서 만났다. 氣品은 좀 없으나 팽팽한 앞가 슴이나 미끈하게 뻗어 오른 두 다리에는 處女의 密度가 숨 쉬고 있었다. 그랬는데 지금은 구더기의 밥상이 되어 있다. “사람이란 죽으면 구더기의 밥이 되는 것이다!” 몸이 근 질근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다른 동물이 썩는 것을 못 보았다고 했다. 다른 동물의 시체가 구더기를 위한 舞踊과 合唱의 동산이 된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人間은 生만 나가 버리면 썩는다. 生이란 그저 防腐劑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러면 生이라는 防腐 劑가 나가 버렸을 때 내내 靈魂에 몰켜들어 춤을 추고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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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를 구더기는 무엇인가… 전찻길로 거의 나간 곳에서 비교적 깨끗한 시체를 만났 다. 발치 쪽을 멀리 돌아 서너 걸음 옮겼다가 그는 역시 또 未練스럽게 돌아섰다. 자기와 같은 나이 또래의 靑年이었 고 頭蓋骨이 곱게 벗겨져서 누르스름한 腦髓가 밖으로 흘 러나왔었다. 靈魂의 座다. 그는 거기에 떨어져 있는 못 같 은 것을 주어 그 끝으로 말랑말랑한 腦膜을 찔러 보았다. 瞬 間 그는 온몸에 전기가 찔려 드는 것 같은 충격을 받고 펄쩍 뛰었다. 맹견에게 쫓긴 도둑처럼 그는 세상없이 도망쳐서, 一行 이 묵묵히 행진을 잇고 있는 隊列 속에 깊숙히 숨어 들어가 서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았다. 땅만 보고 걸었다. 시체가 어디로 비쳐 들까 봐 땅만 보 고 걸었다. 땅만 보고 걸어가면서 그는 머리가 얼떨떨해지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 앞으로 내디디는 발인데 그것이 땅에 묻혀 뒤로 흘러가고 몸은 앞으로 엎더지고 싶은 것이다. 몸이 무 거운 것이다. 원래 두 다리로 몸을 지탱하려고 한 것이 無理 였다. 그는 툭 엎더져서 네 발로 기고만 싶은 것이다. 아 ― 네 발로 기어 다닐 수 있다면 나는 모든 일이 얼마 나 安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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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좀 봐요.” 옆 사람이 팔굽을 툭 친다. 머리를 들었다가 玄宇는 처음엔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몰 라 그저 풍성하고 윤기 있는 거구나 싶었다가, 그것이 무엇 인지를 알자 ‘어구’ 하고 그 자리에 물러앉으면서 땅을 짚었 다. 옆 사람들이 웃으면서 일으켜 세워 줄 때까지 그는 일어 날 줄 몰랐다. 그것은 타 죽은 시체의 산이었다. 지붕을 했던 양철이라 든지 가마니 따위로 대강은 가리어 놓았지만 百 具 가까운 시체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말쑥한 것들이다. 찌꺼기는 現場에 그대로 내버려 두고 반반한 것만 골라다가 거기에 축적해 놓은 것이다. 모두가 뜨거운 물에 삶아 낸 것처럼 벌 겋게 딩딩 부운 것이 이만하면 돼지나 소에 비해 그다지 손 색이 없다 할 것이다. 屠殺場 생각이 났지만 이 나라에 저렇게 한 번에 大量으 로 도살해 내는 도살장이 있는지 없는지 그는 모른다. “冒瀆이다!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모독해서 좋은가. 차 라리 그대로 내버려 두어서 구더기의 밥이 되게 하는 것이 人間的이다!” 거기서 三○메타쯤 가서 대열은 멎었다. 내무서가 된 경찰서 앞에는 먼저 도착한 ‘민주 봉사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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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모두들 번들번들 허탈해져서 서로 얼굴을 보려고 하지 않는 침묵의 群像들. 불평ᐨ불만은 아 까 벌써 返納하고 지금은 자기가 그 피둥피둥하고 벌건 시 체 무더기 속에 끼어 있는 것이 아니고, 옷을 입고 손발을 자유자재로 운동시키고 있는 산 사람 쪽에 屬해 있다는 것 이 千萬多幸으로 그저 고맙고 대견스럽지만 그렇다고 그 것을 거죽에 나타내는 것도 體面 문제고 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당연한 일인 것처럼 해 보이고 싶어 하고 있는 表情들… 그 表情들은 말한다. “나는 저 시체의 편인가? 저 시체를 저렇게 죽게 한 敵의 편인가? 自由다, 正義다, 平等 이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은 나는 살아 있는 편에 位置하고 있다는 것이다.” 區域을 할당받고 있는 동안, 홀로 街路樹 아래에 오무 리고 앉아서 玄宇는 平和가 그리운 것이다. 人間은 살아 있는 동안만 人間이다. 살아 있다는 것, 이 것이 人間의 알파요 오메가다. 모든 것은 그 안에서의 일이 다. 自由도 正義도 저 여름의 太陽 光線을 받으면서 바람 에 흔들리는 푸라타나스의 한 잎 이파리보다도 價値가 없 는 것이다. 누가 그 허수아비들에게 그렇듯 엄청난 權能을 부여했는가… 부−ᄋ 부−ᄋ 공기가 떨리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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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였다. 대여섯 마리가 떼를 지어 더덕더덕 얼굴에만 붙어 앉으려고 한다. 주먹만 한 것이 어느 결에 얼굴 아무 데나 앉아선 물어뜯는다. 시체에서 끓고 있던 구더기 생각 이 번쩍 든다. 찰싹하는 소리와 함께 한 마리가 땅에 죽어서 떨어진다. 그 시체를 보면서 자기는 戰爭을 했다는 것을 생 각한다. 나머지 파리 떼들은 보복전이라도 감행하듯 새삼 스럽게 달겨든다. 그는 얼굴을 파리 떼에게 내맡기었다. 간지럽고 아프고 무엇보다 구역이 나는 것을 참고 그들의 自由에 맡겼다. 입 술에 앉는 敵도 있다. 그는 입을 열어 주었다. 쫓아 버리고 싶은 것을 참자니 머릿속이 비어지면서 자 기가 자기 아닌 것으로 변해지는 것 같다. 간지러운 것도 아 픈 것도 구역이 나는 것도 남을 위해서 간지러워하고 아파 하고 토하고 싶어 하고 있는 것 같다. ‘物’이 되어 가는 것 같 다. 그렇지만 저기 하늘이 높고 구름이 흐르고 있는 것처럼 여기 나무 그늘에 平和가 있다. 그의 平和는 주위의 소란으로 깨어졌다. 츄럭과, 마찬가 지로 낡아 빠진 起重機車가 ‘屍山’ 옆에 와 멎어서 덜커덕 덜커덕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번들번들한 群衆의 表情 에도 抗議가 새겨졌다. 아무렇기로 이것은 너무하다. 커다 란 아가리를 끝에 달고 있는 기중기로 시체를 찝어 올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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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럭에 싣자는 것이다. 한 번에 서너 명씩 물린다. 그 作業에 人間的인 餘白이 조금 남아 있다면 그것은 한 번 물어서 조금 들었다가 잘 물 렸는지 어떤지를 알려고 흔들어 보는 일이다. 그래서 無事 하면 거뜬하게 하늘 높이 들어 올린다. 시체를 귀를 맞추어 서 잘 쌓아놓아서인지 그렇지 않으면 技術이 능해서인지 작업은 大過 없이 진척되어 간다. 그러던 것이 한쪽 다리만이 찝혀서 건들건들 하늘로 올 라간 한 시체는 자기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거꾸로 떨어지다가 츄럭 모서리에 축 하고 부딪쳤는데 한쪽 다리는 그대로 하늘에 남겨 있었다. 군중들 사이에서 悲鳴이 물결을 이루었다. 玄宇는 魄 散15)이 되어 도망친다는 것이 경찰서 구내로 뛰어 들어가 서 쓰레기통 그늘에 가 숨었다. 그 머리 위에서 유리창이 매 운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중지…? 왜?” “아무리 시체라두 저건 너무합니다!” “적의 시체래두…” “뭐라구요? 적의 폭격에 죽은 인민을 적이라구요?”

15) 백산(魄散): 혼비백산(魂飛魄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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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은, 저 들것을 들고 있는 저들도 말이오. 저건 인민 이 아니라 捕虜요!” “건 말이 안 됩니다!” “어느 쪽이 말이 안 돼! 어제 여기가 폭격당하고 있을 때 만 해도 저놈들이 어쩌던 놈인 줄 아오!” “…” “잘한다 잘한다, 박수 치며 춤추던 놈들이오! 폭격 소리 를 듣지 못하면 잠이 안 온다는 놈들이오!” “…” “그래 남한 동무는 그거 모른단 말이오?” “저들은 아직 진리를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에게 진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보여 주어야 할 것은 組織이오! 조직이 곧 眞理요. 알겠 오 남한 동무. 진리라는 것은 조직 밖에서 하는 잠꼬대란 말 이오.” “인민을 위한다는 진리두 말이오?” “나는 말이오, 예수쟁이를 잘 아는데 가장 모범적인 예수 쟁이란 神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 있다고 믿는 자들이거던 요. 이게 알짜 예수쟁이구 무서운 거거던, 왜냐하면 그들은 신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날은 절대로 없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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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오? 그들은 왼손이 하는 일을 바른손에 알리지 말 게 되어 있단 말이오. 빤히 쳐다보면서 입으론 거짓말 주고 받구 해두 좋단 말이오. 이것이 그들의 選民思想이라는 거 요.” “우리 쏘비에뜨도 敎會와 같단 말입니까!” “아−니, 남한 동무는 곡해를 잘하거던. 내가 언제 같다 고 했오. 전연 다르다구 했지…” “좀 더 이야기해 주십시오.” “왜.” “알고 싶습니다.” “그럼 敎養을 한 가지 더 가르쳐 주겠는데, 조직 속에서 는 알고 싶은 것은 알려 하지 말아야 하며, 알고 싶지 않는 것은 이것을 알도록 힘써야 하오.” “무슨 의밉니까?” “조직 속에는 意味는 없고 사실뿐이오. 무자비한 사실뿐 이오.” “…”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다섯 時 이십오 分까 지 저 시체를 치워 버리는 일이오. 무슨 수단 방법을 써서라 두 司令官 동무가 순시할 땐 땅 위에 있는 모든 시체는 땅속 에 들어가 있어야 하오! 이것이 지금의 至上命令이오.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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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五 分 늦으면 그만큼 우리 인민군이 美帝 및 그 앞재비 를 玄海灘에 쓸어 넣는 일이 五 分 늦어진단 말이오! 그만 큼 우리의 世界 征服두 五 分 늦어진단 말이오!” “정말 그게 가능할까요?” “釜山과 木浦에다 쏘련旗를 꽂아 놓으면, 제아무리 미 제인들 어쩔 재간이 없지. 그리되면 다음은 印度, 이란, 이 락. 위대한 레닝 동무가 뭬라구 했는지 아오? 빠리로 가는 길은 北京을 거친다구, 구라파가 제아무리 버텨두 우리 쏘 련 인민과 아세아 인민의 고함 소리를 당할 수는 없오! 五 年 안으로 全 유라시아 大陸은 우리 세상이 된단 말이오. 들어 보오. 유라시아 大帝國! 이 얼마나 통쾌한 일이오. 이 보다 더 굉장한 眞理가 어디 있겠오! 알겠오, 남한 동무. 저 것들은 그 眞理를 위한 肥料가 되는 것에 무한한 榮光을 느 껴서 마땅하단 말이오!” 쓰레기통 그늘에 웅크리고 앉아 玄宇는 북한 동무의 그 굉장한 眞理와 저 푸라타나스의 한 잎 잎사귀와 어느 쪽이 더 무거울까 하고 저울질해 보는 것이지만 알 수 없었다. 玄宇네 패가 맡게 된 구역은 철도 가아드를 조금 지나 오 른쪽으로 쑥 들어간 골목길이었다. 세 패가 한 組가 되어 들 어가는데 폭격당한 흔적이라고 없다. 이 골목에 시체가 셋 이 있다는 것이다. 넓직한 개천이 나왔다. 저 위에는 染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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工場이 있는지 불그스름한 물이 흐르고 있는 그 개천을 따 라 올라가면서 모두들 시체가 없어 주었으면 하지만 하나씩 찾아 들고 가지 않으면 집에 돌아갈 수 없게 되어 있으니 지 금 그들이 바라는 것은 되도록 깨끗한 시체를 당하는 일이 었다. 남쪽이 되는 개천 저쪽은 곧장 비탈진 언덕에 얄팍한 돌 을 수없이 얹어서 지붕을 삼은 게딱지같은 집이 빽빽하게 달라붙다시피 서 있고 그래도 그 사이로 누더기를 걸친 어 린것들이나마 얼빠진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가끔 눈 에 뜨이지만, 이쪽 콩크리트 담으로 한 채 한 채 둘리어 있 는 中産層 住宅街는 모두 피난 갔는지 괴괴한 것이 죽음의 마을 같았다. 개천이 굽이도는 모퉁이를 돌아 나아가려다가 그들은 일제히 발을 세웠다. 길가의 포푸라가 허리에서 끊어져 길 을 막으면서 개천에 머리를 박고 있는데 두 개의 시체가, 하 나는 개천에 피를 쏟고 떨어져 있는 지게군이고, 길 위에 엎 어져 있는 것은 여자였다. 어디서 날아든 것인지 모서리가 날카로운 커다란 바윗덩어리가 네댓 그 근처에 굴러 있었 다. 옆 골목 안에는 조금 들어간 곳에 또 하나의 시체가, 이 것은 머리를 절구에 넣어서 찌어 논 것처럼 진창이 되었으 면서 담에 기대 좀 쉬었다 가자 하는 자세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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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 가운데서 그중 나이가 든 ‘조선 바지’가 여자의 시체 를 가서 발로 밀어 모로 해 보았다. 피 한 방울 묻은 것이 없 다. “숨을 거둔 것두 얼마 되지 않은가 베…” 현우와 같은 패인 조선 바지는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보 더니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혀를 찼다. “이렇게 깨끗이 죽을 게면 죽지 말지…” 玄宇는 슬금슬금 그들의 어깨 너머로 그 여자의 얼굴을 보고 있다가 생각난 것처럼 ‘아 ― ’ 하며 앞으로 나서는 것 이었다. “아는 사람이우?” “…” 머리를 흔들면서도 한참 보고 있으면 그 얼굴은 또 聖喜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조선 바지는 재빠르게 들것을 그 여자 시체의 옆으로 밀 어댔다. 그리하여 그 시체는 玄宇네가 나르게 되었다. “정신 내 가지구 들어 줘야지…” 그 말에 현우는 깨어난 것처럼 바로 옆이 되는 대문을 열 고 들어가서 시멘트 부대 같은 종이를 찾아 가지고 나왔다. 그것으로 여자의 얼굴을 가리어 놓고 발치 쪽을 들었다. 白蠟같이 희고 갸름한 얼굴… 그렇게 시체를 들고 H公園을 향하면서 그는 聖喜의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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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을 그려내 보려고 눈까지 감아 보는 것이지만 聖喜의 얼 굴 쪽이 이 女子의 얼굴 같아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聖喜 가 눈감으면 꼭 이 여자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 는 눈감은 聖喜를 본 적이 없다. 만난 것도 한 번뿐이었다. 帝政 때의 스승이었던 朴 敎授에게 그런 딸이 있을 줄 몰랐다. 고향 선배인 K 氏를 우연히 따라 德壽宮에서 열리 고 있는 무슨 古書展을 보러 갔다가 거기서 아버지와 같이 온 성희를 만났다. 오래간만에 만난 初老의 舊友 사이에는 쌓인 말이 많았고 자연히 두 男女는 그들을 噴水가의 벤치 에 남겨 놓고 말벗이 되었다. 古宮의 뜰을 거닐면서 그들은 급속도로 접근하는 듯했다. “아버지는 저를 부자집에 시집보내고 싶은 모양이에요. 입으로는 그렇다고 하시지 않지만 어디서 주서 온 사진 가 운데는 등신 같은 도령님은 있어두 가난한 사람은 한 사람 두 없잖아요.” “…” “선생님은 부자에요?” “아니, 지금은…” “전에는요?” “…” “한 번만 부자면 돼요. 전에두 부자가 아니구 지금두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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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구 이다음에두 그런 가망이 없구, 그런 남자 우선 멋이 없 잖어요.” “…” “저 좀 뻔뻔스럽죠? 그렇지만 과대평가해 주는 사람 앞 에서는 수집어할 줄 알아요.” “제가 어떻게 보기에…” “제 밑천을 다 들여다보구두 모른 척하구 계시죠.”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이 아니구…” “선생님의 어머님 훌륭한 분이시죠?” “어떻게 아십니까?” “다 아는 법이 있지요.” “제가 과장급 인물밖에 못 된다면 어머니는 국장급이랄 까. 지식은 저의 백분의 일도 못 될 것인데…” “부러워요.” “어머니, 남자, 여자, 이것이 인간의 序列이 아닐까요.” “선생님의 여성관이랄까 결혼관 같은 걸 소개해 봐요.” “제겐 별루…” “없어요? 그럼 선생님은 아무 여자와나 막 결혼허세요?” “막 한다는 건 아니지만 이렇다 하게 내놓구 말할 만 한…” “누군 이렇다 한 걸 가지구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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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다르지만 한 가지, 길 가다가 어떤 여자를 만 나면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여자와 결혼하면 나는 神이 될 것이라구 그렇게 생각될 때가 있읍니다.” “…” “아니 이건 그저 말해 본 것뿐입니다.” “선생님은 상당히 美人을 고르시는 모양이군요.” 세멘트 종이가 벗겨지며 땅에 떨어졌다. 바람이 이는 모 양이었다. 다른 세 사람은 그대로 땀을 흘리는 데에 바빴다. 땀을 흘리는 데에 바쁜 것은 현우가 더했다. 다리가 휘청휘 청 끊어지고만 싶고 팔이 빠지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장례 식이 내일이라는 것이 거짓말 같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 다는 것도 어쩌면 꿈속의 일인지도 모를 것 같았다. 戰爭이 일어났다는 것도. 그리고 이 女子가 죽었다는 것도… 玄宇는 그 여자의 눈이 가느다랗게 뜨여 있는 것을 발견 하고 이마의 땀이 한꺼번에 식어 들었다. 아까 땅에 쓰러져 있을 땐 분명히 감겨져 있었던 눈이다. 발치 쪽에서 봐서일 까… 그 눈이 자기를 찾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자기를 파묻어 버리러 간다고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애원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 서 그 눈은 聖喜가 그렇게 자기를 찾고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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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喜의 존재는 共産軍의 무시무시한 탱크를 보았을 때 부터 잊어버리고 있는 그였다. 그것은 이 땅에서 砲聲이 걷 힌 다음에 생각할 일이라고 마음이 제멋대로 規定해 놓아 서였는지도 모르지만 그는 아까 이 여인의 얼굴을 보았을 때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헤어질 때 그들은 다음 日曜日 지금, 성희 아버지가 기 다리고 있는 噴水가로 걸음을 옮겨 놓으려고 하는 이 자리 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었다. 事變이 일어나기 며칠 전이다. 그날 현우는 그 자리에 가서 서 있었다. 暗鬱한 공기는 거기에까지 스며들어 찾아드는 사람이라고 없었다. 그는 한 시간 동안 거기에 그렇게 서 있다가 자기 자신을 비웃기 보다 오지 못한 성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玄宇는 땀이 흘러들어 아린 눈을 깊게 떠 가지고 이 여자 가 성희가 아닐까, 시체로 변했다는 變化가 그것을 알아보 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닐까? 이렇게 되뇌어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자기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 것도 아니 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외로움과 서글픔이 밀려 올랐다. 그러다가 성희보다 이 女子를 더 사랑하고 있는 것 같은 자기를 발견하고 그는 愕然히16) 놀랐다. ‘이 여자가

16) 악연(愕然)히: 몹시 놀라 정신이 아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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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일어나면 나는 이 여자와 결혼하게 되어 있다!’ 公園에 이르니 여기저기서 같은 群像들이 할할거리면 서 모여들고 있었고 벌써 일을 끝내고 나무 그늘에 들어앉 아서 땀을 씻고 있는 사람도 많았다. 어디로 돌아왔는지 아 까 그 츄럭도 짐을 다 부려 버리고, 고장이 났는지 까스만 공연히 내뿜으면서 씩씩거리고 있었다. 이 일에는 하늘도 무심할 수 없었음인지 바람은 점점 세어 가고 아까까지만도 푸르고 푸르던 하늘에는 꺼먼 구름이 널리고 있었다. 玄宇는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目的 地点까지 아직도 七 八○메타나 거리가 있다는 것을 보다 팔과 다리를 몸에서 抛棄해 버렸다. 휘청거리는 다리도 내 다리가 아니요, 빠지 는 것 같은 팔도 내 팔이 아니다. 언덕진 곳에 너르닿게 움이 두 개가 패어 있고 각각 패말 이 세워져 있는데 ‘男’과 ‘女’ 그러나 처음에는 어쨌는지 모 르지만 그런 것을 가릴 것을 가릴 餘力을 그들은 갖지 못했 다. 아무 쪽이나 발길이 가까운 쪽에 가서 ‘하나’ ‘둘’ 했다가 ‘셋’으로 획 던져 버리면 그만이다. 거꾸로 떨어지든 떨어져 서 어디가 터지든 아랑곳없다. 이만큼 해 준 것도 고마운 일 이라는 것이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아 이제는 나를 살 려라 하게 되는 것이다. 왼쪽을 들었던 玄宇는 안쪽에 위치하게 되었다. 딴 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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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며 ‘하나’로 앞으로 둘로 뒤로 했다가 ‘셋!’ 하고 팽개치다 가 그는 그만 무덤 속을 봤다. 마구 처박힌 남녀노유의 寃鬼들! 소리 없는 阿鼻叫喚! 그는 그만 손을 놨다. 다른 세 사람이 그대로 들것을 쥔 채 도망치는 바람에 현우의 손에서 떠난 들것대는 그의 정 갱이를 빗나가면서 때렸다. 상반신이 앞으로 끼웃했다. 아무리 힘 한 방울 남은 것이 없기로 억지로 버티어 서자면 버티어 낼 수도 있을 것 같았 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하지 않았다. 왜? 그러는 것이 야박 하게 느껴져서라고나 할까. 그 女子의 시체가 阿鼻叫喚 속 으로 떨어지는 餘韻에 휩쓸려서라고나 할까. 하여간에 그 는 넘어지면서 무덤 속으로 떨어졌다. 그제는 기급을 먹고 벌떡 일어섰으나 어디에 빠져든 발 목이 잘 뽑히지 않았다. 겨우 빼내서 돌아서려는데 위에서 떨어지는 시체가 그의 엉덩이를 떠받았다. 앞으로 넘어진 다는 것이 그는 그 여자의 시체에 가 엎어졌다. 다시 일어서 려는데 또 시체가 머리와 어깨에 떨어졌다. 그 시체를 밀어 내려는데 이번에는 허리에 떨어졌다. 위에서 ‘하나’ ‘둘’ ‘셋’을 한 그들이야, 전연 그를 못 본 것 은 아니겠지만, 산 사람이니까 제 발로 기어 나오리라 생각 했겠고 그렇다면 그 등신 같은 작자 때문에 구역질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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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一 秒라도 더 연장시킬 아량은 가질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벌써 저 아래로 도망쳐 가고 있었기 때문 이다. 다음 사람들은 무덤 속에 산 사람이 떨어져 있으리라 고는 생각할 수도 없었겠고 그런 꿈지럭거림쯤은 눈에 비쳐 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현우는 그런 가운데서 起動하는 것 을 잊었는지 했다. 한편 공원 입구까지 도망쳐 내려온 그의 패들은 겨드랑 이에 배인 땀을 훔치면서, 정말인지 거짓말인지 모르지만 喪制라고 자칭한 그 젊은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 젊은이는 좀체로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무덤 속에 떨어진 것쯤은 그들도 안다. 그러나 그는 살아 있는 인 간이다. 움이 어느 정도 찼는지 흙을 덮기 시작했는데도 그는 나 타나지 않았다. 거기 사람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무덤 속에 산 사람이 떨어져 있던 것 같다고 하는 사람은 있었으나, 거 기서 기어 나오는 것을 봤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런 일이란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입들을 저마 다 중얼거렸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제정신을 도로 찾았으 니 믿을 수 없는 일로 보는 것이지, 아무리 죽은 시체기로 사람을 개돼지 처박아 넣을 듯 처넣을 때의 그들의 머릿속 은 메케한 냄새로 꽉 차서 그 많은 시체 가운데 산 것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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쯤 끼어 있기로 무슨 대수랴 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런 일이 일어날 리 없다. 결국 그들은 ‘조선 바지’의 견해에 찬동하기로 했다. 그 젊은이가 정말 상제라면 그는 지금쯤 집을 향하여 달음박질 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를 속이고들 있는데 찦車가 달려오더니 쏜 살같이 무덤으로 까소린17) 냄새를 풍겼다. 조선 바지가 그것을 보자 손을 저으며 뒤를 좇았다. “대장 나으리, 할 말이 있오!” 모두들 그의 뒤를 따랐다. 찦車에서 뛰어내린 북한 동무는 삽질하는 사람들에게 빨리 서두르라고 고함을 질렀다. 군중들은 있는 입마다 그 무덤 속에 산 사람이 끼어들었 으니 도루 파 보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一笑에 붙였던 북한 동무도 그들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 었다. 그만큼 그들의 말과 얼굴에는 진실과 애원이 넘쳐흐 르고 있었다. “동무들의 말은 사실이라고 생각하오.” 그는 팔뚝시계를 쳐들고 시간을 본다.

17) 까소린: 가솔린(gaso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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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시간이 없오!” 군중들은 激憤했다. 북한 동무는 찦車에 뛰어 오르면서 권총을 빼 들었다. “동무들! 개인을 위해서 祖國의 時間을 늦출 수는 없오!” 하늘에 대고 한 방 쏘았다. 群衆들은 혼비백산이 되어 뿔뿔이 제 곬을 찾아 각각 달 아나 버리고, 구름 사이로 쏘아 나온 夕陽 속에 삽질하는 소 리만이 분주하였다. ‘그렇지만 時間이 없오.’ 玄宇가 그 무덤 속에 있어 이 말을 들었다면 억울해서 죽 을 것도 못 죽었을 것이다. 이튿날도 玄宇는 자기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 이튿날 도… 九·二八이 되어 聖喜가 그의 집에 찾아가 보았으나 거 기에 玄宇의 모습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一·四後退 후 누가 부산 埠頭에서 玄宇 같은 인물을 발견했기에 가까이 가 보았으나 아니더라는 것이다. 이리하여 여기 한 젊은이는 ‘時間’이 없기 때문에 그만 이 地上에서 抹殺되어 버리고 만 것이었다. (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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