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중세극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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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중세극



I. 유럽 중세극 기원



인간의 삶을 표현하는 창조물은 어떠한 것이든 원시시대부 터 삶의 단면에서 출발해 나름의 특징을 갖고 서서히 발달 해 특정한 형태를 갖추고 격식을 구비해 이론화했으며 명칭 도 부여받았다. 그리고 문명이라면 모두 음악이나 미술, 문 학, 무용과 종교를 어떠한 형태로든 갖고 있었고, 연극은 글 과 시각예술, 대사와 행위, 이야기와 장면이 어우러진 종합 예술로 이 모든 것에서 탄생했다. 따라서 연극의 기원에 대 해 논할 때면 여전히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제기되고 검토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연구들에 따르 면 보편적으로 종교적인 표현 형태에서 극이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신 중심 사회이자 교회가 사람들을 장악했 던 중세 시대에 예배의식극에서 탄생한 것으로 보는 이론이 지지를 얻는다. 종교적인 표현 형태는 중세 이전인 고대 그리스나 로마 시대에도 있었다. 당시에도 신에게 감사를 드리는, 오늘날 예배와 같은 제사 의식이 있었다. 매년 봄이나 가을, 파종기 나 추수기에 디오니소스 신에게 감사를 올리는 제사 의식이 있었는데, 그러한 의식에서 신의 행적을 말과 행동으로 표 현한 것을 극의 효시로 본다면 중세극의 기원을 예배극에서 찾는 게 설득력 있어 보인다. 특히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공 식적인 예배 행사는 로마식 건축과 장식, 그리고 음악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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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러져 무척 아름답게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그러한 사실이 무대라는 공간과 다양한 무대장치를 필요로 하는 연극적 요 소에 상당히 부합하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 고대의 신 대신 예수를 앉히고, 그를 찬양하고 기리며 그에게 일어났던 일 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제사 의식이 바뀌었기 때문에 중세극 은 예배 의식과 밀접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중세 예배 의식이 극으로 발전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4 세기경부터 순례자들이 부활절 3일 근행을 드리기 위해 예 루살렘을 방문하던 일을 이야기로 옮겨 보여 준 뒤로 예수 의 수난과 죽음을 생생하게 알리기 위한 노력이 일어났던 것에서 찾고 있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10세기에 들어 사제들이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극적으로 각색하려는 뜻 을 갖게 되었고, 미사에 참석하는 사람들까지 이에 동참하 려는 마음이 일어났다. 그 결과 예배 의식을 현실감 있게 만 들려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즉, 교회 내에서 연극을 다시 살리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는 이론이다. 여기서 고대 그리스 극이나 기독교 이전 로마 극이 중세 극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중세 극에서 고전극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대체로 받아들이고 있는 이론은 이렇다. 야만족, 즉 게 르만족이 406년 겨울, 라인 강을 건넜던 이후부터 사람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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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가 바뀌어 고전극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는 것이다. 그 러니까 고전극이 사양길로 접어든 시점을 기독교가 로마제 국 공식 종교가 되기 훨씬 전부터로 보고 있다. 교회 때문에 고전극이 사라진 게 아니라는 말이다. 유럽에서 고전극이 사라지자 곧이어 외설적이며 퇴폐 적인 흉내극이나 어릿광대극이 그 자리를 대신했고, 로마제 국이 붕괴된 이후에도 어릿광대들의 광대짓이나 팬터마임 또는 패러디나 풍자와 춤, 곡예 등이 극을 대신하게 되었다. 9세기 비텔리우스라는 광대에게 묘비를 세워 줬다는 기록 은 당시 이런 극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하게 해 준다. 묘비는 그가 1인 다역의 연기를 위해 목 소리를 바꾸고 가면을 사용했으며 분장을 했다고 전한다. 7 세기에는 산 발레리오 델 비에르소라는 사람이 살았다는 기 록이 있고, 8세기에는 알쿠이노라는 광대가 있었다는 기록 도 있다. 교회는 그러한 극을 9세기 이후부터 드러내 놓고 좋지 못한 것으로 공격했는데, 그 이유는 교회가 죄악시하 던 성(性)과 관련한 내용이나 교회 또는 성직자들에 대한 풍 자 때문이었다. 10세기 말부터 고대 로마의 베르길리우스1)

1) 베르길리우스(Vergilius, BC 70∼BC 19): 고대 로마 시인이다. 로마 건국 과 사명을 노래한 민족 서사시 <아이네이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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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호라티우스,2) 11세기에는 테렌티우스,3) 13세기에는 루 카누스4)와 세네카5) 등이 다시 거론되었으나 상연하지는 않 았고 독해 수준에 머물렀으므로 극으로써 사람들 욕망을 부 추기지는 못했다.6) 이러한 상황에서 중세 종교 행사는 다양한 볼거리를 제 공하는 구경거리였고, 성례전과 예배 의식에는 연극화할 수 있는 요소들이 상당히 많았으므로 이러한 요소들이 극으로 발전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듯하다. 특히 미사 때 주 고받는 회답송이나 노래로 오가는 대사는 연극의 필수 조건 중 하나인 대화로 되어 있다. 이 대화에서 9세기 초에 ‘트로 포스’가 탄생했다. 트로포스는 전달하고자 하는 성서의 내

2) 호라티우스(Horatius, BC 65∼BC 8): 고대 로마 시인이다. 풍자시와 서정 시로 명성을 얻어 아우구스투스의 총애를 받았다. 3) 테렌시우스(Terentius, BC 185?∼BC 159?): 고대 로마 희극 작가이자 시인 이다. 북아프리카 출신 노예였는데 그의 재능에 감복한 주인이 그를 교육 하고 해방시켰다. <안드로스에서 온 처녀> 외에 희극 5편이 전한다. 4) 루카누스(Lucanus, 39∼65): 스페인 태생 로마 시인이다. 세네카의 조카로 네로의 총애를 받았는데 피소의 음모에 가담했다가 자살했다. 5) 세네카(Seneca, BC 4∼AD 65): 스페인 태생의 고대 로마 철학자이자 극작 가다. 스토아학파 철학자로 네로의 스승이 되었지만 뒤에 반역 혐의를 받 고 자살했다. 6) 고메스 모레노, 앙헬(Gomez Moreno, Angel) ed., ≪로마 문화권에서의 카스티야 중세극(El teatro medieval castellano en su marco romá​́nico≫ (Taurus,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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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중 핵심 부분을 미사 중에 부르는 ‘할렐루야(hallelujah)’ 노래에서 마지막 음인 ‘야’를 길게 늘여 부르듯 주고받던 간 단한 텍스트다. ‘트로포스’에는 행위로 보여 줄 수 있는 내용 은 많지 않았고, 줄거리가 극히 짧아서 현대극 개념으로 생 각했을 때 부족한 면이 많다. 하지만 대화로 이루어진 데다 미사를 보러 온 청중인 관객이 있고, 제단 앞이라는 무대가 있으므로 원시 단계의 극으로서 기본 조건은 모두 갖추었다 고 볼 수 있다. 중세극이 교회에서 탄생했다고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무 엇보다 중세 문화가 기독교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었으며 교회를 통해 국민들의 교육과 믿음 신장이 이루어졌기 때문 이다. 기독교 세계관이 확립되고 기독교를 중심으로 중세 사회가 구축되면서 성당이 많이 세워진 뒤부터 현세에서 믿 음을 키우기 위한 행위가 전개되었고, 이 행위에서 미사가 그 중심을 이루었다. 사실 예술사를 살펴보면 극이 대중을 교육하는 데 가장 알맞은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중세에는 ‘트로포스’가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기록 되어 있는데, 이는 보관된 트로포스의 수나 다양함에서 알 수 있다. 처음에는 미사에 사용하던 트로포스가 이후 크리 스마스 예배 의식에 도입되었다. 더 나아가 합창단 밖으로 나오면서 극 중 인물이 등장하고 상연할 공간을 가진 더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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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한 극 형태로 발전했다. 이렇게 중세극의 효시로 보고 있는 트로포스는 “누구를 찾느뇨(Quem Quaritis)?”라는, 예수의 부활을 알리는 천사 와 세 명의 마리아가 만나서 나누는 대화로 시작했다. 이 트 로포스를 처음 만든 사람은 9세기경 쥐미에주7)의 사제이며, 그는 앞서 말했듯이 ‘할렐루야’ 마지막 음에 맞춰 대사를 주 고받았다. 이후 840년에서 912년 사이 스위스 장크트갈렌 수도원8)에서 이런 형태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보존되 어 온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은 920년에서 933년 사이에 작성 된 “누구를 찾느뇨?”가 극 형태로 발전된 <묘지 방문 (Visitatio Sepulchri)> 텍스트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여! 묘지에서 누구를 찾느 뇨?

7) 쥐미에주(Jumièges):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지방, 센마리팀 주에 있는 센 강 우안의 마을이다. 654년에 성 필리베르투스가 수도원을 창건했으나 9세 기에 파괴된 뒤 10세기에 재건되었다. 8) 장크트갈렌 수도원(Abbey of St. Gall): 612년 수도사 갈렌이 지은 작은 관 청에서 출발해 8세기에 창설되었다. 문학과 과학 지식이 집결한 학문의 총 본산으로 중세 유럽에 명성을 떨쳤다. 역사적 의미, 중세 수도원을 대표하 는 장려한 건축물, 도서관에 남아 있는 중요한 문헌과 미술품, 9세기에 그 려진 건축 설계도 등 다양한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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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

오, 천사들이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 중이오.

응답

그는 여기 계시지 않소. 그는 말씀하신 대로 다 시 살아나셨소. 가서 그가 어떻게 부활하셨는지 알리시오. 할레루야, 신이 부활하셨소. 오늘 아 침 신의 아들 그리스도, 힘센 사자가 부활하셨 소.9)

영국에서 부활절 일요 미사에 이루어진 이 트로포스 공 연 방법은 이렇다. 흰 제의를 입고 손에 깃털을 든 수사가 천 사로 분장하고, 마리아로 분장한 세 사람이 손에 약을 들고 무언가를 찾기 위해 천사에게 다가간다. 그때 천사가 ‘누구

9)원문은 다음과 같다. Psallite regi magno, deuicto mortis imperio! Quem queritis in sepulchro, o Christicole? Responsio: Ihesum Nazarenum crucifixum, o celicole. Responsio: Non est hic, surrexit sicut ipse dixit; ite, nunciate quia surrexit. Alleluia, resurrexit Dominus, hodie resurrexit leo fortis, Christus, filius Dei; Deo gratias, dicite eia! 알바레스 페이테로, 아나 마리아(Ana M.a Alvarez Pellitero) ed., ≪중세 극(Teatro Medieval)≫(Espasa Calpe, 1990), 13쪽. 더 많은 정보를 원하면 칼 영(Karl Young)의 ≪중세 교회 드라마 I(The Drama of the Medieval Church≫(Clarendon press, 1976) 210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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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찾느뇨?’ 하고 묻고 거기에 답이 따르는 방식으로 전개되 었다. 11세기 리모주 사본(寫本)10)에는 미사 전에 목자로 분장 한 사제들과 마리아, 아기 예수의 출현을 알리는 천사의 대 화극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밖에도 독일이나 이탈리아에서 그 흔적이 발견되고 있는데, 복음서에 나오는 인물들로 분장한 사제들이 대중 앞에서 대화로 복음의 내용 을 알렸다. 이렇게 미사의 일부로 미사 전이나 중간에 상연하던 ‘트 로포스’가 발전해 <묘지 방문> 외에 크리스마스를 테마 로 한 좀 더 복잡한 극 형태가 등장하는데, 바로 목자들이 탄 생한 예수를 찾는 <목자들의 일(Officium Pastorum)>이 다. 보통 중세극을 분류할 때 크게 종교극과 비종교극으로 나누고, 종교극은 다시 예배의식극과 신성극으로 나눈다. <묘지 방문>과 <목자들의 일>, 동방박사들의 베들레 헴 여행을 그린 <별의 행렬(Ordo Stellae)>은 예배의식극

10) 리모주(Limoges) 사본: 프랑스 리모주의 생 마르샬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 는 양피지에 쓴 악보다. 사본은 원래 손으로 베낀 원고의 개념이며 음악학 에서는 음악 작품이 기록되기 시작한 9세기부터 15세기까지 중세에 성립 된 수사(手寫) 악보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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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별의 행렬>은 <목자들의 일>에 등장하는 목자 들이 아기 예수에게 선물을 드리는 성경 내용을 작품에 끌 어들였다. 이 예배의식극이 점차 처음과 다른 형태를 취하 면서 예배와는 관계없이 종교적 특성을 지닌 극으로 발전하 는데 이것을 신성극이라고 한다. 이 부류에 속하는 극으로 유대인과 이교도인, 아리아인들에게 기독교 교리를 깨우쳐 주기 위해 그리스도 신성의 증인으로 구약에 나오는 인물들 인 이사야,11) 예레미야,12) 다니엘,13) 다윗, 모세 등과 고전 신화에서 세상의 종말을 예언한 여자 예언가인 시빌라 에리 트레아가 사제로 분장해서 열을 지어 등장하는 <예언자들 의 행렬(Ordo Prophetarum)>이 있다. 이렇게 시작한 것들이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 동방박사 참배 등을 내용으로 한 극으로 발전

11) 이사야(Isaiah): 기원전 8세기 무렵 유대의 선지자다. 메시아가 동정녀에 게서 탄생하리라는 것을 예언했고 점차 증가되는 아시리아의 위협 속에 구세(救世)의 가르침을 설파했다. 12) 예레미야(Jeremiah, 생몰년 미상): 고대 이스라엘 최후의 예언자다. 기원 전 7세기 후반에서 기원전 6세기 초에 걸쳐 유대 왕국에서 활약했다. 신을 거역하는 유대인들의 죄를 예리하게 비판하고, 예루살렘의 파괴와 유대 민족이 겪게 될 고난을 예언했다. 13) 다니엘(Daniel): 구약 성경 다니엘서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예언자다. 경 건함과 지혜로움으로 유명하다. 바빌로니아의 포로가 되었으나 이교의 박해와 싸워 유대의 종교적 전통을 잘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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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교회에서 상연됐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생활과 관련 한 여러 가지 극들이 같이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불어나는 수요와 대중의 호기심을 교회가 모두 수용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교회 밖 광장으로 무대를 옮겨 가게 되 었다. 이렇게 되면서 연극 주체도 사제에서 일반인으로 바 뀌었다. 극의 주제는 여전히 종교적인 것이었으나 좀 더 흥 미로운 내용을 가미해 나갔다. 내용뿐만 아니라 무대장치나 의상도 다양해지면서 연극 에 대한 관중의 욕구와 흥미를 충족해 주었다. 언어 역시 예 배당에서 사용하던 라틴어 대신 대중 언어로 바뀌었다. 가 장 흥미로웠던 테마는 예수 생애에 관한 것으로, 그중에서 도 예수 탄생과 부활이 주를 이룬다. 다시 말해 예배의식극 인 <묘지 방문>과 <목자들의 일>, <별의 행렬>이 그 리스도 탄생과 부활을 소재로 한 세 가지 시리즈로 상연되 면서 일반 극의 시작을 알렸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중세 연극의 기원이 교회 예배의식극에 있다는 이 론에 누구나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반대하는 이들 이 주장하는 중세극 기원은 다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또는 행해지던 민속 축제에서 중세극이 시작되었다는 주장이다. 그 근거로 축제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즐기기 마련이고, 이들 앞에는 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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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할 수 있는 표현 양식, 즉 축제에 어울리는 춤이나 노래, 신을 찬양하는 기념식 같은 것이 열렸으리라는 것이다. 고 대 그리스 극이 그러한 의식에서 발전한 것이며 그 이래로 2 천 년 유럽 연극이 거기에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 또한 상당히 설득력 있어 보인다. 다만 종교극과는 다르게 축제 라는 성격상 보관되어 온 텍스트가 없기 때문에 단지 연대 기나 역사서, 또는 왕의 법령에 기록된 내용으로밖에 알 수 없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일단은 중세극 기원으로는 보류 해 놓고 있는 실정이다. 또 다른 이유는 광대들인 ‘미모스(Mimos)’의 존재다. 미 모스가 고대 고전극과 중세극 사이의 긴 공백기를 메워 주 었다는 사실과 극이 교회를 떠나 속세로 옮아갈 때 극 발전 에 주체가 된 이들이 오늘날 팬터마임과 같은 형태로 종교 적인 내용이나 대중적인 이야기를 극화할 수 있었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극이 스토리텔링에 대한 인간의 흥미, 유 희 본능과 모방 심리 때문에 탄생한 것이라고 본다면 이 모 든 일을 행한 이들이 바로 광대들이다. 다시 말해 중세극을 발전시킨 주역은 광대로, 그들의 공연을 중세극 기원으로 보는 것이다. 셋째는 ‘대화체 서정시’의 존재다. ‘트로포스’가 대화로 이루어진 점 때문에 극으로서 가능성을 부여받았다면,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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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체 서정시’ 역시 대화로 이루어진 데다가 행위로 형상화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므로 중세극 기원으로 볼 수 있다는 이론이다. 마지막으로 중세극이 예배 의식에서 출발하지 않았다고 보는 이론은 교회가 극을 싫어했다는 데 기반을 두고 있다. 고대 로마극을 비도덕적이라고 축출하고 배척했던 이들이 바로 초기 교회 지도자들이었다는 점과, 교회 종사자들에게 연극을 용납하지 않았다는 왕의 연대기 내용이 그 근거로 인용되고 있음을 볼 때, 연극이 교회 안에서, 그것도 예배 의 식에서 생겨났다는 주장은 부정되고 만다. 그러나 마지막 주장에 대해서는 어느 나라에서나 극이 교회와 성직자들을 풍자하기 시작했을 때와 상업성을 전제로 했을 때는 교회 종사자들이 대중 앞에서 연극을 상연하지 못하게 했다는 점 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주장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다다른 다. 연극은 종교 행사나 민간 축제 형태의 가무 또는 의식에 서 생성되었다. 원시 시대에 죽은 영혼을 기리거나 수확기 에 수확물을 제단에 올려놓고 제사를 지내고 가무를 했던 의식이 고대 그리스 시대로 넘어가서도 자신들이 숭배한 신 들에게 드리는 제사나 신의 날을 기리는 축제로 반복되었 고, 중세에도 마찬가지로 그 시대에 지배적이었던 종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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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에 의해 연극이 시작될 수 있었을 것이다. 공연 장소로 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 제단이었을 수도 있고 시장 거리나 광장이었을 수도 있다. 극을 주도했던 이들은, 교회 라면 사제들이었을 것이고 거리였다면 광대들이나 떠돌이 가수였을 것이다. 관객이 늘어나고 대중의 요구가 늘어남에 따라 무대는 성당 제단에서 시장이나 광장으로 옮겨졌을 것 이고, 당연히 사제의 손을 떠나 광대의 업으로 발전해 나갔 을 것이다. 또는 반대로 거리의 극을 사제들이 보고 교회에 서 상연할 극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중세극의 기원은 종교극과 비종교극 두 가지 모두에서 찾을 수 있다. 예배 의식에서 기원을 찾을 경우 거기서 유래한 극은 종교 극 성격으로 발전해 나갔고, 민속 축제나 놀이, 무언극 등에 서 유래한 극은 속세극, 다시 말해 비종교극으로 발전해 나 갔을 것이다. 훗날 중세 종교극은 사도들의 생애와 순교에 관한 이야 기를 다룬 ‘기적극’과 인간의 창조와 타락, 예수 탄생과 고난, 부활 등을 주제로 한 ‘신비극’, 기독교 속성을 논의하는 ‘도 덕극’으로 다양하게 변해 갔다. 이들 중 ‘도덕극’은 ‘기적극’ 과 ‘신비극’보다 훨씬 늦은 1400년경에 나온 것으로, 추상적 인 개념들이 의인화해 인물로 등장한다. 이렇게 추상적인 성격의 등장인물에게 생명을 부여해 무대에 올린 이유는 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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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연의 궁극적인 목표를 즐기는 가운데 성서 내용이나 교리 를 깨닫도록 하는 데 두었기 때문이다. 이 도덕극에서 가장 많이 다룬 소재는 죽음이다. 1495년경에 나온 작자 미상의 <만인(Everyman)>이 대표작으로, 죽음이라는 가장 엄숙 한 진실 앞에서 인간의 향배를 관찰해 보게 한다. 죽음의 부 름을 받게 된 인간이 갖고 있는 자비나 지식, 힘이나 감각, 또는 우정이나 혈연, 재산에게 무덤까지만 동행해 줄 것을 청하지만 모두 거절한다. 단지 ‘선함’만이 응낙해 심판 때 인 간을 변호해 준다. 그리고 신 앞에 선 인간은 생전 잘못을 뉘 우치고 용서를 받는다. 이렇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요소들 을 의인화해 우의적으로 표현하며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는 인간은 누구나 죽기 마련이고,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므로 잘 죽으려면 살아 있을 때 선행하라는 것이다. 유럽에서 탄생한 죽음을 소재로 한 이런 부류의 작품들은 메시지가 거의 동일하다. 그런데 1520년 스페인어판 <죽 음의 춤(Danza de la Muerte)>은 “잘 살라는” 메시지와 함 께 스페인적인 것이 더 들어가 있다. 이 작품은 당시 사회 각 계층에 속한 인간을 등장시켜 죽음 앞에 선 그들의 행동을 통해 사회상을 알리는 비평서이자, 예외 없는 죽음 앞에 하 나님을 향한 종교적 열의를 촉구하는 신앙서 역할을 했다. 관객이 죽음의 부름에서 어떠한 교훈을 얻게 한다거나,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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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신이 인간 누구에게나 요구하는 명제를 놓고 신과 인간 의 향배를 가장 명백하고도 엄숙하게 관찰하도록 만들어 어 떠한 종교관에 입각해 살아야 하는지를 관객이 알게 하는 것이다.14) 세속극인 비종교극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종교 행사와 관련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전자는 교회 안에서 이루어진 축제고, 후자는 대중 민간 축제로 교회 밖 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종교 행사와 관련한 것 중에서 승려

14) 1520년 스페인어판 <죽음의 춤>은 마지막 두 연으로 전체 성격을 알 수 있다. 추기경, 왕, 젊은이 등을 모두 죽음의 춤으로 부르고 난 뒤 나머지 사 람들을 일일이 열거하며 부를 수가 없어서, 마지막에서 두 번째 연인 78연 은 부제가 “죽음이 호명하지 않은 자들에게 말하는 바”다. 여기에 속하는 8개 행의 내용이다. “이 자리에서 내가 호명하지 않은/ 어떠한 조건에 있 는 자이든, 어떠한 신분의 자이든, 어떠한 법에 의거해서 사는 자이든 간 에/ 슬픔에 젖어 빨리 오라고 명하노라/ 아무런 변명도 하지 말고 내 춤으 로 들어오라고 말이다/ 나에겐 결코 예외란 없는 법/ 어떻게 피해 보고자 꾀를 쓰고 부탁을 해 봐도 소용없는 법/ 선하게 산 자는 영원한 영광을 얻 을 것이며/ 악하게 산 자는 고통받을 것이니라.” 마지막 연 부제는 “죽어 야 할 자들이 말하다”이다. 이어지는 8개 행의 내용이다. “이렇게 우리는 별수 없이/ 반드시 죽어야 하는 운명이니/ 정결한 마음으로 모두/ 하나님 만을 섬기는 데 힘을 씁시다/ 그건 그분은 세상의 시작이요 중간이며 끝이 시니/ 그분 뜻대로 살아야 안락을 얻을 것이니 말이오/ 비록 죽음이 자신 의 가혹한 춤으로/ 우리를 불시에 집어넣는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알바 레스 페이테로(Alvares Pellitero), 아나 마리아(Ana Maria) ed., ≪중세극 (Teatro medie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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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 주축이 되어 일반인들을 이끌고 연출해 교회 밖에서 공연한 것으로는 12세기 말부터 기록되어 온, 크리스마스나 새해를 기리는 <광인들의 축제>와 <당나귀 축제>가 있다. <광인들의 축제>는 독일에서 기원한 중세 오락물 이다. 성직자들이 광인들 중에서 주교와 교황을 뽑아 그 역 할을 맡은 사람들의 얼굴에 술 찌꺼기를 바르기도 했다. 그 역을 맡은 사람들이 우스꽝스러운 가면을 쓰거나 변장을 한 채 춤추고 외설적인 노래를 하면서 제단에 등장했다. 그러 면 보조 사제들이 그들이 앉아 있는 제단 앞에서 순대나 소 시지를 먹으며 카드와 주사위 놀이를 했다. 미사 집전에 사 용하는 향로에다 낡은 신발들을 넣어 그 냄새를 교황과 주 교가 맡게 하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오물로 가득한 수레에 그들을 싣고 길을 다녔는데, 수레에서 음탕하고 난잡한 행 위를 해 보이기도 했다. <당나귀 축제>는 프랑스에서 시 작한 것으로, 동쪽에서 왔다고 하는 주인공 당나귀 한 마리 가 교회 안으로 끌려들어 가자 합창단이 이를 둘러싸고 술 을 마시며 성가를 부른다. 교회에 들어갔다 나온 당나귀가 이제 기독교화해 다시 교회 앞마당을 지나 마을로 나와서는 밤을 새면서 그다음 날까지 노래와 춤을 즐긴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축제다. 12세기 말부터 파리에서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성자들의 날’을 기리기 위한 <아기 주교 축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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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유사한 이탈리아 <찬가>도 있다. 이 <찬가> 행사 는 황제 대관식 또는 새 교황을 선출할 때나 농민에게 가장 중요한 때인 봄이 올 때 이루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제 가 처음으로 미사를 드릴 때도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축제 를 열었다고 한다. 그러한 축제들은 교회 당국이 용인하지 않을 정도로 세속적이며 경박한 춤과 노래, 분장으로 이루 어지곤 했기 때문에 종교회의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 다. 하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교회 미사극이 본격적으로 대 중과 만나기 시작했다는 이론도 있다. 반면 속세극이지만 교회가 인정한 종교 축제로는 당연히 크리스마스를 기리는 춤이나 놀이, 상연물이 있다. 이 밖에 극의 특성을 가진 대중 축제로는 행렬과 카니 발15)이 있다. 이것은 사순절 바로 전에 체력을 길러 금식과 단식을 극복할 목적으로 많이 먹고 마시고 춤과 노래로 연 회를 벌이며 노는 것에서 시작했다. 1600년 이후로는 카니 발극이라는 이름으로 문학적인 형태를 갖추면서 해학을 중 요시하는 대중극으로 부상했다. 카니발과 연극의 연관성은 15세기 프랑스 카니발에서 바보를 등장시켰던 <짧은 풍자

15) 카니발(carnival): 사육제를 의미하는 카니발은 라틴어로 “carne-levare”, 즉 “육체를 버리다”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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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sottie)>에서 처음으로 찾을 수 있다. <짧은 풍자극> 은 ‘바보’라는 어원을 가진 ‘소트(sots)’에서 나온 것으로, 줄 거리 없이 당대 인물이나 사건을 익살스럽게 풀어 놓은 대 화체 이야기다. 물론 도덕적이었고, 교화를 목적으로 행해 졌다. 주인공을 바보로 설정한 이유는 이들이 어떠한 종류 의 말을 해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렬에 는 ‘종교 행렬’과 ‘축제 행렬’이 있다. ‘종교 행렬’은 교회 안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 보는 중요한 예배 의식과 같은 것이다. 14세기 탁발 수도회16)가 등장해 널리 퍼지면서 성스러운 내 용과 신앙의 신비로움을 일반인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이용했다. 탁발승들이 거리로 들고 나가 교회 밖에서 보여 준 다양한 성물들은 라틴어로 된 성서를 읽는 것보다 쉽게 눈으로 보고 즐기는 가운데 복음화하는 매체가 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성주간 행사가 있을 때마다 행해지는 ‘행렬’ 의식은 상당한 구경거리를 제공한다. ‘축제 행렬’은 카니발 행렬, 또는 고대 관습이나 계절 축제에서 하 던 의식이다. 이러한 것은 세속적인 연회 성격을 띤 소극 (farce)으로 발전해 나갔다.17) 소극을 뜻하는 ‘파스(farce)’ 16) 탁발 수도회(Ordines mendicantium): 청빈과 엄격한 규율을 신앙 이념으 로 삼아 13세기 이후 서유럽에서 널리 유행한 수도회다. 17) 박종제, ≪독일 문학개론≫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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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fars’는 닭이나 옷 속에 넣은 내용물을 뜻하고, 화장과 분장을 의미하던 ‘fart’는 속고 속이는 사람들의 대립된 세계 를 보여 준다. 이렇게 보면 종교극만 환영받은 게 아니고, 비종교극인 속세극도 무조건 배척되었다거나 예배 의식극만 교단의 유 일한 극물로 인정되었던 것은 아니었던 듯하다. <광인들 의 축제>나 <당나귀 축제>를 보면 희극성이 짙은 속세 극의 뿌리가 종교극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 밖에 비종교극 중에서 종교 행사와 관련 없는 극으로 서 가능성을 가진 것에는 왕실에서 행해졌던 놀이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모모(momo)’와, 처음에는 왕실 축제였으나 중세극 발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광대들이 주축이 되 어 극으로 발전시켜 나간 ‘막간극’이다. ‘모모’는 간단한 텍스트와 분장,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왕 실 놀이로, 다분히 연극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중세 연대기 에 보면 이런 유형의 놀이에 대한 언급이 많은데, 포르투갈 에서는 ‘모모(momo)’, 프랑스에서는 ‘모모스(momos)’ 또 는 ‘모메리에(momerie)’, 영국에서는 ‘머머리(mumery)’, 이 탈리아에서는 ‘모마리에(momarie)’로 소개되어 있다. 궁정 연회나 결혼식, 생일 또는 축하 모임에서 왕이나 귀족들이 행하던 놀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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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극(entremeses)’은 말 그대로 긴 연극에서 막과 막 사이에 공연했던 극이지만, 프랑스어 ‘앙트레메(entremes)’ 에서 어원을 살펴보면 이는 ‘앙트레’와 ‘메스’의 복합어로, 식 사에서 접시 또는 서비스라는 뜻으로 사용했는데, 훗날 만 찬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그런데 15세기 스페인 아라곤 왕국 궁정 축제에서는 무기 게임이나 시합, 또는 기마행렬 과 가면극, 팬터마임, 또는 극 장치를 두고 이 용어를 사용했 다. 극이란 의미를 갖게 된 것은 16세기 엔리케 데 비예나 (Enrique de Villena)라는 스페인 사람의 공이다. 이 극은 특히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독립된 극으로 크게 발전했는 데, 배우들은 직업 배우로서 전 지역을 순회하며 공연할 정 도였다. 물론 비종교적인 소재를 다루었다. 막간극을 연극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언급하는 이유는, 종교극이 대중 교육을 목적으로 상연된 데 반해 막간극은 신학문에 대한 관심과 익살 때문에 상당한 교육 수준을 갖 춘 이들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교육받은 지식인들이 축제를 열 때 자신들의 궁이나 살롱에서 여흥을 위해 막간 극을 공연하곤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막간극은 스페인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연극의 황금시대의 문을 열어 주었고, 중세극 전통 위에서 발전한 연극으로 평민부터 왕까지 모든 사람들이 즐겨 볼 수 있는 국민극 시대를 열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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