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명 작품집
<질소비료공장>, 조선일보, 1932. 5. 29
질소비료공장(窒素肥料工場)
“아직 이십 분이나! …제ᐨ기 시간도 안 간다.” 문호는 소옴가티 피곤한 육신을 기지게 퍼면서 중얼거 렸다. 아츰 일곱 시부터 오후 다섯 시지 쉴 새 업시 급속도로 돌아가는 분리긔(分離機)에서 흘러내리는 하얀 사탕가루 가튼 유안(硫安)5)을 도록코6)에 밧아서 ‘엣도레쓰’7)에 운반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엇다. 이 층에서 각금 낙수물가티 러지는 유산8)은 문호(문 호 아니다)의 작업복을 버리집가티 구멍을 내어주엇다. 그리고 유안 결정(結晶)이 마치 얼음이 얼어부튼 듯이 들어 부터서 걸을 때마다 와사삭와사삭 쓰리웟다. 개신발(지 다비)9)은 몃칠 안 신어서 기우는 부분마다 칼로 어인
5) 유안(硫安): 황산암모늄. 암모늄 이온의 황산염. 황산(黃酸)과 암모니아를 반응시켜 만든 흰 결정으로, 물에 잘 녹으며, 질소 비료로 쓰인다. 6) 도록코: 일본어 ‘도롯코(トロッコ, truck)’에서 온 말. 손으로 미는 조그만 궤도(軌道) 화차. 광차(鑛車). 7) 엣도레쓰: 일본어 ‘엔도레스(エンドレス)’의 오기. 여기서 ‘엔도레스’는 무 한궤도(無限軌道)를 뜻한다. 8) 유산(硫酸): 황산. 무색무취의 끈끈한 불휘발성 액체. 강한 산성으로, 금과 백금을 제외한 대부분의 금속을 녹인다. 유기물을 분해하고, 물에 섞으면 많은 열을 내면서 습기를 빨아들인다. 여러 가지 약품을 만드는 기초 원료로서 화학 공업에 널리 쓴다. 9) 개신발: 짜개신발. 엄지발가락과 나머지 발가락이 따로 들어가도록 앞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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듯이 싹싹 어젓다. 그러나 유산과 유안이 무든 데는 씨츨 수가 업섯다. 씨츠면 몬직몬직 다 녹아 지는 닭이다. 그러나 손이나 얼골에 무든 유산은 멧 번이고 수도에 달 여가서 씻지 안으면 안 된다. 유일한 재산인 육신을 ‘구’ 낼 수는 업스니. 그러나 그는 불행히 요전번에 이 층을 올여다보다가 위 로부터 러지는 유안 결정이 눈에 들어가서 그 부터 눈 이 텁텁하게 잘 보이지 안앗다. 시력이 대번에 십 도나 낫바 젓다는 말과 안경을 쓰라는 의사의 말을 들엇스나 문호는 그대로 참고 잇섯다. “벌어먹자면 할 수 업는 일이지.” 하고 문호는 생각하엿슬 이다. 질소비료 공장이 처음 H라는 조고만 이 어촌에 터를 닥 글 부터 문호는 직공으로 들어가 잇섯다. 그런 관계로 지 금은 삭전이 만은 편이엿스나 그러나 일급 팔십오 전이 라는 돈으로는 다섯 식구를 살리고 나면 그밧게 병이라든가 다른 용에는 갈라부칠 여유가 업섯다. 고된 로동과 이 공장의 특수한 공긔는 발서 문호의 가슴 속 어느 부분을 파먹기 시작한 지가 오래다. 그러나 약을 먹
분이 나누어진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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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수는 업섯다. 약을 먹을 수 업는 대신에 한달이면 닷새는 쉬어야 하엿다. “이십 분이면 아직 몃 도록코냐?” 그는 자긔의 흐린 눈을 부비며 한 번 시계를 처다보앗 다. “가기는 가는 심이냐? 대관절.” “이 사람아 시게가 구멍이… 구가 나겟네.” 농담 조하하는 용수가 그의 억개를 탁 친다. “참 정말 시간도 안 가네.” 그는 다시 도록코를 밀기 시작하엿다. “니 가면 니 신단지야” “오래가면 뭘 하나?” “죽으면 뭘 하나? 한한는 다 잇는 거야.” “암 살구야 볼 일이지.” 하고 도록코를 밀고 오든 상호가 별안간 말을 던진다. “미래는 ××10)의 것이닛가.” “요건 아직 파랑파랑한 닛가 큰소리를 탕탕 치는구나. 요 녀석 대감 나이나 돼봐라.” 문호의 말을 바다치며 용수가 상호에게 “이 사람 저 녕감한테 연설을 좀 해주게. 오백 년 자든 잠
10) ××: 검열로 삭제된 부분으로 짐작됨. 이하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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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게… ‘만국로동자’ 군(君) 철의 식(式)으로….” 그들은 ‘만국로동자여 ××하자’ 하는 말을 잘 하는 철호 를 호ㅅ자를 여버리고 그저 철이라고 불럿다. “쉬ᐨ” 하고 문호는 그 근방을 휘둘러보앗다. 요행 감독은 보이 지 안앗다. “야! 미역국 먹을 소리 마라.” “미역국 맛다나 참 이사람 자네 옥가미상11)… 이번은 쌍 둥이같이 안해 배가 남산이데그려.” “그리기에말야. 좀 조둥아리들을 가만이 가지고 잇스란 말이야. 남지 걸리게 말고… 밧는소는 씩 하지 안코도 밧 는다네… 왜 친목회 사건을 못 보나? 툭하면 등걸음12)(미역 국)일세.” 기실 글자만 듸려다보아도 한참 무슨 생각을 하고 잇서 도 요놈 수상하고나 하고 회사 ××실로 불러듸리는 판이다. 일터를 찻는 로동자가 알감자가티 되려 밀리는 맛에 이전에 이삼 전식 올려주든 승급(昇級)도 그만 먹고 부릴 생각 만 하는 판이다. 11) 옥가미상: 일본어 ‘오카미산(おかみさん)’. ‘오카미’는 (요정이나 여관 등 의) 여주인을 뜻한다. 여기에서는 ‘부인’, ‘아내’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12) 등걸음: 뒤로 걷는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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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기에 말일세. 불리지 안토록 하잔 말이야 피차….” “흥! 요전 친목회 일만 보게. 그리고 철호 일만 보게. 일러바치는 놈이 잇는데야 엇지나.” “아니 철호가 엇잿나?” “철호도 미안미안하데.” 하고 문호가 말을 이으랴다가 “쉬… 왓다”. 사 년이나 공장에서 눈치코치를 치루어난 문호는 두 사 람에게 눈짓을 하고 아니 멎은 채 살가티 도록코를 재빠르 게 밀었다. 우슬 모르는 감독이 우줄우줄 걸어오고 잇다. 쇠 썩는 냄새 급도로 도라가는 긔계에서 타는 기름 냄새 거미줄 가튼 물색 칠한 파이프 13)으로 씨ᐨ씨ᐨ 하며 슴새 여 나오는 암모니아 내가 서루 얼키여 마스크를 쓴 그들의 코를 잔침질한다. 눈독도 그리고 식욕지를 아서 가는 고약한 냄새다. 만 아니라 얼골이 노ᐨ래지고 기침을 컥컥 하게 된다. 게다가 콘크리ᐨ트 벽과 바닥이 흔들리는 요란한 모ᐨ터ᐨ와 푸로워ᐨ(送風機) 벨트의 소리에 신경은 극도로 과민해지고 가슴은 빈 구역이 치민다. 나이 먹고 공장에 잇슨 지 오랜 문호는 늘 숨이 차고 선
13) : 짬. 두 물체가 마주하고 있는 틈. 또는 한 물체가 터지거나 갈라져 생긴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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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흘럿다. 컹 하고 기침을 하면 가슴은 구새 먹은14) 나무가 티 펑 소리가 나고 르륵 압흔 긔운이 흘은다. 그러나 감독! 미역국… 이런 생각이 나서 그는 기침을 누르고 은 흐르 는 대로 내버려 두엇다. “위ᐨㄱ.” 싸이렌이 목메인 소리를 엇다. 점심시간이다. “후ᐨ” 하며 문호는 도록코를 내노코 기게 에 박아 두엇든 넉 마에 손을 씻고 식당으로 들어갓다.
2 식당에 들어서보니 게시판에는 다음과 가튼 게시가 씨여 잇다.
금일 점심 후 제품 창고에서 유안 대 유산 발레ᐨ15) 시합이
14) 구새 먹은: ‘구새(가) 먹다’는 ‘살아 있는 나무의 속이 오래되어 저절로 썩어 구멍이 뚫리다’라는 뜻이다. 15) 발레ᐨ: 일본어 ‘바레보루(バレ―ボ―ル, volleyball)’. 배구(排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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