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론주의개요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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Πυρρώνειοι ὑποτυπώσεις 피론주의 개요


제1권


1. 철학자들의 근본적인 차이에 관하여 [1] 어떤 대상을 탐구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연스럽게 따 라오는 귀결은 발견에 성공하거나, 아니면 발견을 부인하고 인식의 불가능성(ἀκαταληψί​́α)을 인정하거나, 아니면 탐구를 계속 진행하거나다. [2] 아마도 이런 이유로, 철학적 탐구 대 상들의 경우에 있어서도, 어떤 사람들은 진리(τὸ ἀληθὲς)를 발견했다고 주장하고, 다른 사람들은 이것이 인식 가능하지 않다고 선언하는 반면, 계속 탐구를 진행하는 사람들도 있 다. [3] 그중 스스로 진리를 발견했다고 여기는 자들은 특히 ‘독단주의자들(δογματικοί)’이라고 일컬어진다. 가령 아리 스토텔레스나 에피쿠로스의 추종자들, 스토아 학파, 그리 고 다른 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한편 클레이토마코스와 카 르네아데스 그리고 다른 아카데미아 철학자들은 진리의 인 식 불가능성에 대해 주장했던 반면, 회의주의자들은 탐구 를 계속 진행한다. [4] 이렇게 볼 때, 철학의 가장 근본적인 종류는 셋−즉 독단주의 철학과 아카데미아 철학 그리고 회의주의 철학−이라고 간주됨이 마땅하다. 이들 중 다른 두 학파1)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기술하는 것이 적절할

1) 즉 독단주의와 아카데미아 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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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반면 지금부터 우리는 회의주의의 길에 대해서 개 략적으로 말할 것이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것들 중 어떤 것 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 대상이 어떤 경우든지 우리가 말하 는 바 그대로다’고 단언하지 않으며, 오히려 우리는 각각의 논의 대상에 대해서 그것이 현재 우리에게 어떻게 보이는 가에 입각해서(κατὰ τὸ νῦν φαινό​́μενον) 단순히 연대기적 으로 보고한다(ἱστορικῶς ἀπαγγέ​́λλομεν)는 점을 미리 지적 해 둔다.

2. 회의주의의 논의들에 관하여 [5] 회의주의 철학의 논의 중 어떤 것은 일반적인 논의 (καθό​́λ ου λό​́γ ος)라고 명명되는 한편, 다른 것은 개별적인 (εἰδικό​́ς) 논의라고 불린다. 일반적인 논의란 아래와 같은 것 들을 논의함으로써 회의주의의 특성을 드러내주는 논의다. 회의주의의 의미는 무엇인가? 회의주의의 원칙들은 무엇 이며, 그 논의들은 어떠한 것들인가? 회의주의의 행동기준은 무엇이며, 그 목표는 무엇인가? 판단유보를 뒷받침하는 논변 들은 어떠한 것들이며, 우리는 회의주의적 언표들(ἀποφά​́σ εις) 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회의주의는 그와 동시에 활동 22


하고 있는 다른 철학들로부터 어떻게 구별되는가?2) [6] 한편 개별적인 논의란 (다른 철학자들에 의해) 철학 이라고 명명되는 것의 각 부분들에 대해 우리가 반론을 제 기하는 논의다. 그러면 먼저 회의주의의 길의 여러 명칭들 부터 소개하기 시작해서, (회의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 에 착수해 보겠다.

3. 회의주의의 명칭들에 관하여 [7] 회의주의의 길(σκεπτικὴ ἀγωγή)은 탐구의 길(ζητητικὴ ἀγωγή)이라고도 명명되는데, 탐구하고 연구하는 회의주의 의 활동 때문에 얻게 된 명칭이다. 또한 회의주의의 길은 판 단유보의 길(ἐφεκτική)이라고도 불리는데, 탐구한 후 연구 자(σκεπτό​́μενον)3)에게 생겨나는 느낌(πά​́θος)으로 인해 이

2) 실제로 앞으로의 논의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3) σκέ​́πτεσθαι는 본래 ‘주의 깊게 보다’, ‘관찰하다’, ‘조사하다’, ‘숙고하다’ 등을 뜻한다. 하지만 섹스투스는 σκεπτικό​́ς를 ‘회의주의자’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 다. 섹스투스에 따르면, 독단주의자는 탐구가 아직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진리 를 발견했다고 강변하면서 탐구를 중단한 반면, 회의주의자는 탐구를 계속 진 행한다. 따라서 회의주의자만이 진정한 탐구자라고 불릴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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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 명칭을 얻게 되었다. 한편 회의주의의 길은 아포리아의 길(ἀπορητική)이라고 불리는데, 이런 명칭을 얻게 된 이유 는, 혹자가 말하듯이, 회의주의가 모든 일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탐구하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긍정해야 할지 부정해야 할지에 관해 어찌할 바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의주 의는 피론주의(Πυρρώ​́νειος)라고도 불리는데, 그 이유는 우 리가 보기에 피론이 그 이전의 어떤 사람보다도 더 활발하 고 명백하게 회의주의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4. 회의주의란 무엇인가 [8] 회의주의란 어떤 방식으로든 보이는 것들(φαινό​́μενα: 현상들)과 사유되는 것들(νοού​́μ ενα)을 대립시키는 능력 (δύ​́ναμις)이며, 서로 대립되는 사태들이나 진술들이 힘에 있어서 평형을 이루므로(διὰ τὴν ἰσοσθέ​́νειαν), 우리는 이러 한 능력으로 인해서 우선 판단유보(ἐποχή)에 이르게 되며, 그 후에 마음의 평안(ἀταραξί​́α)에 이르게 된다. [9] 우리는 여기서 ‘능력(δύ​́ναμις)’이라는 말을 현묘한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어떠어떠한 것을 할 수 있음’이라는 뜻 으로 사용한다. 또한 우리는 여기서 ‘ 보이는 것들 24


(φαινό​́μενα)’을 ‘감각 가능한 것들(αἰσθητά)’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사유되는 것들과 서로 대조 되고 있다. 한편 ‘어떤 방식으로든(καθ’ οἱονδή​́ποτε τρό​́πον)’ 은 ‘능력’을 수식할 수도 있고−그렇게 함으로써 ‘능력’이라 는 낱말을 우리가 앞서 말한 것처럼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받아들인다는 점을 보이기 위해서−, 아니면 ‘보이는 것들 과 생각되는 것들을 대립시키는’을 수식할 수도 있다. 왜냐 하면 우리는 보이는 것들(즉 현상들)을 보이는 것들에 대립 시키거나 생각되는 것들을 생각되는 것들에 대립시키며 혹 은 교차해서 대립시킴으로써, 다양한 방식으로 대상들을 대립시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종류의 대립이 포괄되도록 하기 위해서, ‘어떤 방식으로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혹은 ‘어떤 방식으로든’은 ‘보이는 것들과 사유되는 것들’과 어울릴 수도 있다. 이로써 우리는 어떻게 해서 보이는 것들이 보이며 어떻게 해서 사유되는 것들이 사유되는지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가 이 런 말들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점을 보이고자 한다. [10] 또한 우리는 ‘대립되는 진술들’이라는 용어를 반드시 ‘긍정’ 또는 ‘부정’을 가리키는 말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 라, 단순히 ‘서로 상충하는 진술들’이라는 말 대신 사용한 다. 그리고 ‘힘에 있어서의 평형(ἰσοσθέ​́νεια)’은 믿을 만함과 25


믿을 수 없음과 관련해서 동일함을 뜻한다. 즉 상충하는 진 술들 가운데 어떤 것도 다른 진술보다 더 믿을 만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한편 ‘판단유보(ἐποχή)’는 사고 (διά​́νοια)의 정지이며, 이 때문에 우리는 어떤 것도 거부하 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마음의 평안(ἀταρ αξί​́α)’은 마음에 동요가 없는 상태 혹은 고요한 상태다. 마음 의 평안이 어떻게 판단유보와 더불어 생겨나는가 하는 물 음에 대해서, 우리는 회의주의의 목표를 논의할 때4) 그 답 변을 제안하겠다.

5. 회의주의자에 관하여 [11] 피론주의 철학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이미 회의주의의 길의 의미를 설명할 때 은연중에 정의되었다. 왜냐하면 그 는 앞서 언급된 능력들을 소유하고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4) ≪피론주의 개요≫(이하 PH.) I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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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회의주의의 원칙들에 관하여 [12] 우리는 회의주의의 길을 발생시킨 인과적 연원(ἀρχὴ αἰτιώ​́δης)5)이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하는 소망이라고 주장 한다.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 사물들의 불규칙성 때문에 혼란을 느껴서, 도대체 사물들 중 어떤 것에 더 동의해야 할 지 의문을 품고, 사물들에 있어서 진리가 무엇이며 거짓이 무엇인지 탐구하게 된 경우가 있다. 이들은 이 문제를 해결 함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 만 회의주의를 구성하는 주된 원칙(ἀρχή)은 ‘모든 논의 (λό​́γος)에 대해 그것과 (가치가) 동일한 논의가 대립된다 (ἀντικεῖσθαι)’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러한 원칙으로 인해서 독단적 믿음에 대한 중단에 도달하게 된다고 생각하 기 때문이다.

5) ἀρχή라는 말은 ‘시초’ 또는 ‘연원’이라는 의미도 가지지만, ‘원리’나 ‘원칙’을 뜻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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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회의주의자가 (독단적) 견해를 가지는가 [13] 회의주의자가 (독단적) 견해를 가지지 않는다고 우리가 주장할 때, 우리는 ‘견해 혹은 믿음(δό​́γμα)’이라는 말을, 어 떤 사람들이 말하듯이, ‘일반적으로 어떤 대상들을 용인함 (εὐ δοκεῖν)’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 면 감각표상에 따라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느낌6)에 대해서 는 회의주의자도 동의하기 때문이다. 가령 회의주의자는 그 가 뜨거워지거나 차가워졌을 때, “나는 뜨거워지지 않았다 고 생각한다” 혹은 “나는 차가워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회의주의자가 (독단적) 견해를 가 지지 않는다고 우리가 주장할 때, ‘(독단적) 견해’라는 말은, 어떤 이들이 주장하듯이, ‘불분명한 학문적 탐구의 대상에 대한 동의’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피론주의자는 불분명한 것에 대해서 결코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7) [14] 더구나

6) 혹은 강제되는 느낌. 7) 여기에서 섹스투스는 ‘견해 또는 믿음(dogma)’의 두 가지 의미를 구분하고 있다. 1. 감각 데이터에 대한 수동적인 용인. 2. 불분명한 원인에 대한 독단적 믿음. 섹스투스에 따르면, 회의주의자는 첫 번째 의미의 믿음은 거부하지 않는 다. 다시 말해 회의주의자도 자신에게 감각표상이 어떠어떠하게 보인다는 사 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독단주의자처럼 불분명한 외부 대상에서 감각의 원인을 찾아 헤매지 않는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분명한 것은 감각표상일 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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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주의자는 불분명한 대상들에 대해서 회의주의적 표현 법들−이를테면 ‘더 …하지 않는다(οὐ μᾶλλον)’나 ‘아무것 도 결정하지 않는다(οὐδὲν ὁρί​́ζω)’ 혹은 우리가 나중에8) 언 급하게 될 다른 표현들의 경우처럼−을 사용할 경우에도, 독단적 견해를 가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독단적 견해를 가 지는 사람은 그가 믿고 있다고 이야기되는 대상을 실제적인 것(ὑπά​́ρχον)으로 상정하기 때문이다. 반면 회의주의자는 자신의 표현이 반드시 실제와 일치한다고 간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거짓이다’라는 표현이나 ‘어떤 것도 참 이 아니다’라는 진술이 다른 모든 것과 더불어 그 문장 자신 도 거짓임을 말하듯이,9) ‘더 …하지 않는다(οὐ μᾶλλον)’라 는 표현 또한 다른 모든 진술과 마찬가지로 그 진술 자신도 다른 진술들보다 더 사실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으며, 이런 이유로 이 진술은 다른 진술들과 함께 자기 자 신의 진리 주장을 무효화하고 있다고 회의주의자는 추정하 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머지 회의주의적 표현법들에 대해서

므로, 불분명한 외부 대상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는 것이 회의주의 자의 입장이다. 8) PH. I 187∼208. 9) 즉 ‘모든 것은 거짓이다’는 주장은 자기 반박적이다. 왜냐하면 이 진술 자체 도 거짓임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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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같은 논의를 적용할 수 있다. [15] 따라서 만약, 독단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실제적 인 것으로 놓는 반면, 회의주의자는 자신의 진술이 암묵적 으로 그 스스로 진리성을 무효화하도록 자신의 의사를 표현 한다면, 회의주의자는 자기 의사를 표현함에 있어서 독단적 견해를 가지지 않는다고 말해질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점이다. 회의주의자는 회의주의적 표 현들을 진술함에 있어서, 자신에게 보이는 것(φαινό​́μενον) 을 기술하고, 독단적 믿음을 가지지 않고서(ἀδοξά​́στως) 자 신이 느끼는 바(πά​́θος)를 보고하며(ἀπαγγέ​́λει), 외부 대상에 관해서는 결코 확언하지 않는다.

8. 회의주의자가 학파(αἵρεσις)를 가지는가10) [16] “회의주의자가 학파를 가지는가?”라는 물음이 제기되 는 경우에도, 우리는 앞서와 동일한 태도를 취한다. 만약 ‘학 파’라는 말이 ‘서로 정합적인 동시에 현상들과도 일치하는 10) 피론주의는 철학 학파가 아니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Diogenes Laertius, Vitae philosophorum (이하 DL.) I 20과 Aristocles apud Eusebius,

Praeparatio evangelica XIV xviii 30 및 Clement, Stromata VIII iv 16.2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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