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e Entstehung der Hermeneutik 해석학의 탄생
제 1부 해석학의 탄생 및 보론( 補論)
1. 해석학의 탄생
1) 해석학이란 무엇인가? 나는 이전의 논문에서 예술, 특히 시를 통해 창조되는 인간 세계의 개성화 문제를 언급하였다. 이제 우리는 개별 인간 의 학문적 인식에 대한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즉 개별적인 인간 존재를 학문적으로 담아낼 위대한 형식에 관하여 묻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학문적 인식은 가능한가? 그리고 그러 한 인식에 도달하기 위하여 우리는 어떤 수단을 가지고 있 는가? 이것은 대단한 의미를 지니는 물음이 아닐 수 없다. 인간 의 행위는 항상 타인의 이해를 전제로 한다. 인간 행복의 대 부분은 낯선 영혼 상태를 추체험하는 데서 나온다. 문헌학 과 역사학은 모두 개별적인 것에 대한 추체험을 객관성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전제 조건을 기반으로 삼고 있 다. 이러한 전제 조건을 기반으로 삼고 있는 역사의식은 현 대인으로 하여금 인류의 모든 과거를 자기 안에서 현재화할 수 있게 해준다. 그는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의 모든 제약을 넘어 과거 문화를 볼 수 있다. 그러한 통찰력을 자기 내면 속 으로 끌어들여 마술을 부리게 되며, 이때 무한한 기쁨이 샘 솟는다. 체계적인 정신과학이 개별적인 것의 객관적 파악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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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부터 일반적인 법칙과 포괄적인 연관 관계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이해와 해석 과정 또한 체계적인 정신과학의 기초로 남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학문의 확실성은, 역사가 그렇 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별적인 것의 이해를 보편타당 한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이제 우리는 정신과학의 문턱에서 모든 자연 인식과 정신과학을 구별하는 데서 파생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정신과학 또한 무엇보다도 자연 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 다. 정신과학의 대상은 감각 안에 주어진 현상이나 의식 내 부의 실재(實在)를 단순히 반영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것은 내적으로 체험된 연관의 형태로 내적 사실 그 자체 안 에 직접적으로 녹아들어 있다. 이러한 실재가 내적 경험 안 에 직접적으로 주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객관적으 로 파악하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 어려움을 여기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내 자신의 고유 한 상태를 간직하고 있는 내적 경험을 그 자체로서 내 자신 의 고유한 개성으로 의식할 수는 없다. 내 자신을 타자와 비 교할 때 비로소 개별적인 것을 내 안에서 경험하게 된다. 내 자신의 현존과 다른 모습을 타인에게서 의식하게 되는 것이 다. 괴테는 인간의 모든 경험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경험을 하 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으며, 인간 능력의 정도, 본질, 한계 에 관한 통찰이 갈수록 불완전하다고 본 점에서 매우 정당 하다. 하지만 낯선 현존재는 우선 감각적 사실, 즉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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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나는 몸짓, 음성, 행위로만 주어져 있다. 개별적 기호는 감각으로 받아들인 것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내적인 것을 보완한다. 모든 것, 즉 이러한 보완의 질료, 구 조, 가장 개별적인 특성들을 우리는 고유한 생동감으로부터 해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개별적으로 형성된 의식이 모방(Nachbildung)을 통하여 어떻게 낯설고 전혀 다른 성 질을 지닌 개성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가? 인식의 다 른 과제들 사이에서 언뜻 보기에 낯설게 나타나는 과정은 도대체 무엇인가? 외부에서 감각적으로 주어진 기호로부터 내적인 것을 인 식하는 과정을 우리는 이해라고 부른다. 이것은 언어적 표 현이며, 우리가 전적으로 필요로 하는 하나의 굳건한 심리 학 용어로서 이해는 이미 확실하게 표현된, 명확히 활용이 가능하도록 한계가 설정된 모든 표현을 모든 저술가들이 동 일하게 파악할 때만이 성립 가능하다. 자연의 이해는 하나 의 회화적(繪畵的) 표현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만 비본래적 의미에서 고유한 상태 파악을 이해라고 부른다. 물론 우리는 “내가 어떻게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나도 내 자신을 더 이상 이해할 수 없어”와 같이 말하기도 한 다. 이로써 내가 의도하고자 하는 바는 감각 세계로 떨어져 나온 내 존재의 표현은 낯선 것의 표현과 마찬가지로 나와 맞 서게 되어, 그 자체를 해석할 수 없거나, 다른 경우에는 타자 를 응시하는 것과 같은 상태로 빠지게 된다. 이런 이유로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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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는 이해를 감각적으로 주어진 기호로부터 그 표현이 곧 감 각적 기호인 심리적인 것을 인식하는 과정으로 본다. 이러한 이해는 어린아이의 옹알거림을 파악하는 것에서 부터 ‘햄릿’이나 ‘이성 비판’을 이해하는 데까지 이른다. 거 석들, 대리석, 음악적으로 채색된 음색, 몸짓, 단어, 문자, 행 위들, 경제 규정이나 헌법과 같은 다양한 형태로 인간의 정 신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며, 해석을 필요로 한다. 이해의 과정은, 그것이 인식 방법의 공통적인 조건과 수단을 통하 여 규정되는 한, 공통적인 특징을 갖는다. 이해의 과정은 이 러한 기본 원리 내에서 동일하다. 만일 내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이해하려고 한다면, 이 과정에서, 즉 그것도 동질의 통일적인 과정에서 행위, 회화, 그림과 문학 작품들의 해석 이 함께 작용한다. 이해는 다양한 수준을 보여준다. 이 수준은 우선 관심 여 하에 달려 있다. 관심이 한정되어 있으면, 이해 또한 한정되 기 마련이다. 얼마나 많은 논쟁을 우리는 참을성 없이 듣는 지 보자. 우리는 화자(話者)의 내적인 삶에 관심을 두지 않 고 논쟁에서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중요한 핵심만을 찾아낸 다. 그와 반대로 우리는 다른 경우에 얼굴 표정과 단어 하나 하나에 주목하면서 애써 화자(話者)의 내면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삶의 외화(外化)가 고정이 되어 우리가 언 제라도 다시 그곳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 때 우리가 기울인 주의는 예술적인 과정이 되어, 결국 그 안에서 통제 가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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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의 객관성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지속적으로 고정된 삶의 외화에 대한 예술적 이해를 우리는 해석 혹은 이해라 고 부른다. 이런 의미에서 그 대상이 건축물 혹은 회화인 해 석 기술이 존재하며, 볼프(Wolf)1)는 이미 고고학적 해석과 비판을 주장하였다. 벨커(Welcker)2)도 그러한 해석학에 동 의하였고, 프렐러(Preller)3)는 그러한 해석학을 실천에 옮 기고자 하였다. 그렇지만 프렐러는 말없는 작품의 해석은 어디서나 문헌의 설명에 의존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정신적 삶과 역사의 이해에서 문헌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해서는 언어 안에서만 오직 인간의 내면이 가장 안전하
1) 볼프(Friedrich August Wolf, 1759∼1824): 독일 고대 문헌학자이자 고대 학자. 1783년 이후 할레 대학 철학 및 교육학 교수. 1807년 베를린 학술원 회원 으로 임명됨. 빌헬름 폰 훔볼트, 괴테, 실러로 특징지어지는 신인문주의의 정 신을 바탕으로 고대학 연구에 심혈을 기울임. 그에 따르면 학교 교육에서도 고 전 문헌학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해야 하며, 조화로운 인간 교육에서 필수적인 요소임을 역설함. 대표작으로는 ≪호머 연구(Prolegomena ad Homerum)≫ (1795)가 있음. 2) 벨커(Friedrich Gottlieb Welcker, 1784∼1868): 계몽기 독일의 문헌학자. 빌헬름 폰 훔볼트의 동학이자 친구로서 독일의 기센 대학에 고대 문헌학 세 미나를 창설하여 김나지움 교육의 핵심으로 삼게 한 인물임. 본(Bonn) 대학 의 도서관을 창설하였고, 대표작으로는 ≪그리스 신화 3권(Griechische
Götterlehre, 3 Bd.)≫(1857∼1862)이 있음. 3) 프렐러(Ludwig Preller, 1809∼1861): 독일의 고대 문헌학자이자 고대학 연 구가. 바이마르 도서관 창설에 기여하였으며, 고대사와 고전 고대학에 조예가 깊었던 인물로 ≪그리스 신화 2권(Griechische Mythologie. 2 Bd.)≫(1854) 과 ≪로마 신화(Römische Mythologie)≫(1858)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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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완전히 객관적으로 이해 가능한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 는 점에서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해 기술의 핵심은 문헌 속 에 포함된 인간 존재의 잔영(殘影)에 대한 해석과 이해이다. 해석, 그리고 해석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삶의 잔영을 비 판적으로 처리하는 문제는 문헌학의 출발점이었다. 문헌학 의 핵심은 개인적 기술과 문헌 속에 포함된 것을 다루는 능 수능란함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과 그 결과들의 연결 을 통해서만 비문(碑文)과 역사적으로 전승된 행위들의 또 다른 해석이 발전할 수 있다. 역사 안에서 행위하는 인간의 동인(動因)에 대하여 우리는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행위 하는 인간 자신은 자신에 대한 그릇된 빛을 널리 퍼뜨릴 수 있다. 하지만 위대한 시인이나 발명가의 작품, 종교적 천재 나 진실한 철학자의 작품은 항상 정신적 삶의 참된 표현일 가능성이 높다. 거짓으로 가득한 인간 사회에서 그러한 작 품은 항상 참이며, 그 어떤 다른 표현과도 달리 고정된 기호 그 자체만으로 완전하고, 객관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그 작 품은 한 시대의 다른 예술적 유품(遺品)과 동시대인들의 역 사적 행위에 대해 빛을 던져준다. 이해의 기술은, 실험에서의 자연 탐구 기술이 그랬던 것 처럼, 점진적이면서 규칙적으로, 그리고 서서히 발전을 거 듭해 왔다. 이해의 기술이 탄생하였고, 그 기술은 문헌학자 의 개인적이면서 천재적인 탁월성을 통해서 유지된다. 이해 의 기술은 자연히 먼저 해석의 거장이나 작품과의 개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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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촉으로부터 다른 것으로 전이된다. 하지만 그러한 기술은 규칙에 따라 실행된다. 이러한 규칙 덕분에 우리는 난점을 피할 수 있다. 그 규칙은 개인적 기술의 성과를 전승한 것이 다. 따라서 일찍이 해석의 기술로부터 규칙의 세목이 형성 되었다. 이러한 규칙에 대한 논쟁, 중요한 작품 해석에 대한 다양한 입장 간의 논쟁, 그러한 상황에서 규칙을 근거 지우 려는 요구로부터 해석학적 학문이 탄생하였다. 해석학은 문 서로 기록된 유품에 대한 해석의 기술이다. 이러한 해석학은 이해의 분석에서 보편타당한 해석 가능 성을 규정해 나감으로써 종국에는 아주 일반적인 문제의 해 결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러한 일반적인 문제가 부각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즉 내적인 경험의 분석과 함께 이해의 분석이 시작되며, 심리적 사실이 근원적으로 우리에게 존재 한다는 조건하에서 이 둘은 서로 정신과학에 대해 보편타당 한 인식의 가능성과 한계를 입증해 준다. 나는 이제 해석학 역사에서 이러한 규칙이 어떻게 설정되 어 왔는지를 입증하고자 한다. 심오하고 보편타당한 이해의 욕구로부터 어떻게 문헌학적 탁월성이 생기게 되었는지, 또 이것으로부터 어떻게 하나의 목적 아래 규칙 부여, 규칙의 질서가 생겨났는지, 주어진 시대의 학문적 위치를 통하여 어떤 것이 더 잘 면밀히 규정될 수 있는지, 그리고 마지막으 로 이해의 분석에서 규칙 부여를 위한 안전한 출발점이 발 견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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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대 그리스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문헌학 시인의 기술적인 해석은 그리스 시대의 수업의 필요성에서 제기되었다. 호머와 다른 시인들에게 해석과 비판을 가하는 정신적으로 풍부한 놀이는 그리스 계몽기에는 그리스어가 통용되는 곳이면 어디서나 사랑을 받았다. 좀 더 굳건한 기 초가 세워진 것은 소피스트와 수사학교에서 이러한 해석이 수사학과 조우를 하면서부터이다. 왜냐하면 수사학 안에는, 말을 잘 구사하는 데 적용될, 문필가적 구상에 관한 더 일반 적인 가르침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분류학자이 며 유기적 세계, 국가, 문학적 저작의 분석가인 아리스토텔 레스(Aristoteles)는 자신의 수사학에서 문학적 작품 전체를 각각의 부분으로 쪼개고, 문체의 형식을 구분하고, 리듬, 종 합문, 은유의 작용을 인식하는 법을 가르쳤다. 알렉산더 (Alexander)를 위한 수사학에서는 더 용이하게 말의 작용 요소들에 관한 개념 규정들, 가령 범례, 생략된 삼단논법, 문 장, 역설, 은유, 반명제와 같은 규정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 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아주 명확하게 시의 본질이 나 목적 규정, 그 종류에서 도출될 수 있는 내적 및 외적 형 식과 그 작용 요소들을 시학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해의 기술과 규칙부여가 또 한번 중요한 도약을 한 것 은 알렉산드리아 문헌학을 통해서이다. 그리스의 문학적 유 산들이 도서관에 수집되었고, 서평이 생겨났다. 비판적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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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에 의한 기술 체계를 통하여 그리스 유산에 대한 비판적 작업의 결과가 기록되었다. 정본이 아닌 문헌들은 제외되었 고, 남아 있는 모든 서적의 실제 목록이 작성되었다. 엄밀한 언어 이해를 바탕으로 서평, 고도의 비판, 해석, 가치 규정의 기술로 정립된 문헌학이 이제 생겨나게 되었다. 문헌학은 그리스 정신의 최후이자 가장 고유한 창조물의 하나가 되었 다. 호머 이래 그리스 정신을 움직인 가장 강력한 동인(動 因)은 인간의 언어에 대한 즐거움이었다. 위대한 알렉산더 의 문헌학자들은 자신의 독창적 기술 안에 내재해 있는 규 칙들을 이미 의식하기 시작했다.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마찬 가지로 의식적으로 원칙에 따라 호머의 언어 사용을 규정하 고, 엄밀하면서도 포괄적으로 이를 규정하면서 그 바탕 위 에 설명과 텍스트 규칙을 설정하고자 하였다. 히파르크 (Hipparch)는 아라토(Arato) 현상에 대하여 원전을 제시하 고, 그것으로부터 시를 해석함으로써, 좀 더 의식적으로 문 학적-역사적 고찰을 함으로써 사물 해석학을 정립하였다. 헤시오도스(Hesiodos)4)의 전승된 시 가운데 가짜가 발견
4) 헤시오도스(Hesiodos, ?∼?):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 종교적, 교훈적, 실 용적인 특징의 ‘보이오티아파’ 서사시를 대표하며 호머와는 다른 특징을 보임. ≪노동과 나날≫은 목가적 서술이 뛰어난 작품으로 노동과 농경 기술의 신성함을 찬양한 노래임. 대표작으로 볼 수 있는 ≪신통기≫ 1022행은 천지 의 창조, 신들의 탄생을 매우 소박한 세계관에 입각하여 계통적으로 서술한 작 품으로 그의 독창적인 사색이 돋보이는 작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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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 호머의 서사시에는 많은 구절이 누락되어 있으며, <일리아드>의 마지막 노래와 <일리아드>의 마지막 바 로 앞부분과 <오디세이>의 가장 마지막 노래가 누락된 것 으로 판명되었다. 이러한 설명은 오직 유추의 원리를 탁월 하게 다룰 수 있는 능력에서 가능해진 것이다. 그와 동시에 그 원리에 따라 시의 언어 사용, 사고의 범위, 내적 통일성, 예술적 가치에 대한 규칙이 확립되었고, 그 원리와 모순되 는 부분은 제외되었다. 제노도토스(Zenodotos)5)와 아리스 타르코스(Aristarchos)6)의 경우 윤리적-예술적인 규칙 적 용은 분명 아테테센(Atethesen)의 다음과 같은 근거 설정 방식에서 나온 것이다: “어떤 것이 주님(신)의 무게에 걸맞 지 않게 보인다면(si, quid heroumvel deorum gravitatem minus decere videbatur).” 여기서 아리스타르코스는 상 당 부분 아리스토텔레스에 의존하고 있다. 해석의 올바른 방법에 대한 방법적 의식은 알렉산드리
5) 제노도토스(Zenodotos von Ephesos, BC 323?∼BC 260?): 그리스 시대의 문헌학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초대 관장을 역임하면서 고대 문헌의 수집 에 공헌함. 해석학적으로는 텍스트 비판의 창시자로 간주되며, 호머의 다양한 텍스트를 비판하고 호머에 관한 사전을 편찬하였음. 호머 외에도 그는 헤시오 도스, 핀다로스, 아나크레온의 시에 대한 작업을 하였음. 6)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os von Samothrake, BC 217∼BC 145): 그리스 의 유명한 문헌학자이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관장을 역임함. 주로 문법을 다 루면서 텍스트 비판을 하였음. 비판의 기준을 호머의 작품에서 찾았고, 나중에 아폴로도로스와 디오니시오스 등에 영향을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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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학파의 양피지 문헌학에 대한 대립을 통하여 더욱 강화 되었다. 세계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해석학적 입장들 간의 대립! 왜냐하면 기독신학 내부에서 그 대립은 새로운 양상 으로 나타났고, 시인과 종교 문필가에 대한 두 개의 커다란 역사적 견해가 그 대립으로 인해 생겨났기 때문이다. 말로 스(Mallos)의 크라테스(Krates)7)는 스토아학파로부터 삼단 논법의 해석 원리를 양피지 문헌학에 도입하였다. 이러한 해석 방법이 오랫동안 힘을 갖게 된 것은 종교적 원문과 널 리 울려 퍼진 세계관 사이의 모순을 바로잡을 수 있었기 때 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베다, 호머, 성서, 코란의 해석자 누 구에게나 이 해석 방법은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즉 한갓 쓸 모없는 기술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술이 된 것이 다. 이 방법의 기저에는 동시에 시적, 종교적 생산성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자리하고 있었다. 호머는 예언자이며, 호머 내 부의 깊은 통찰과 감각적으로 약간 거친 상념들 간의 모순 은 후자를 단지 시적 묘사 수단으로 파악할 때만이 설명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관계를 그림 내부에 들어 있는 기적(氣 的)인 의미를 의도적으로 보호하는 것으로 이해함으로써 삼단논법식의 해석이 생겨나게 되었다.
7) 크라테스(Krates von Mallos, BC 167∼BC 145):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기원 적 2세기경의 문법학자. 스토아학파의 대표자이기도 하였던 그는 언어의 문 법적 관점과 호머의 해석에서 아리스타르코스와는 다른 입장을 취하였음. 그 의 대표작은 호머 시에 대한 비판적 해석을 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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