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기호학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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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미디어 기호학 백선기

대한민국,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5


미디어 기호학

지은이 백선기 펴낸이 박영률 초판 1쇄 펴낸날 2015년 2월 28일 커뮤니케이션북스(주) 출판 등록 2007년 8월 17일 제313-2007-000166호 121-869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46 3층 전화(02) 7474 001, 팩스(02) 736 5047 commbooks@eeel.net www.commbooks.com CommunicationBooks Inc. 121-869 3rd F, 46 Worldcup north road Mapo-gu, Seoul, Korea phone 82 2 7474 001, fax 82 2 736 5047 이 책은 커뮤니케이션북스(주)가 저작권자와 계약해 발행했습니다. 본사의 서면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이 책의 내용을 이용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백선기, 2015 ISBN 979-11-304-3608-1 04300 책값은 뒤표지에 있습니다.


미디어 기호학이란 무엇인가

미디어 기호학이란 여러 가지 다양한 미디어 현상들을 기 호학의 개념과 방법론으로 해석하여 의미를 도출하는 새 로운 학문이다.

미디어학이란 미디어학이란 미디어에서 다루는 모든 현상에 주목하는 학문적 영역이다. 신문, 방송, 인터넷 매체의 보도를 다루 는 저널리즘으로부터 드라마, 영화, 광고, 연극과 대중음 악에 주목하는 대중문화 현상들을 포함해 인간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을 기울이는 인간 커뮤니케이션과, 다양한 문화와 인종들의 문화 현상에 초점을 두는 문화 커 뮤니케이션, 문화연구 등의 영역을 망라하고 있다. 미디어학은 근본적으로 미국과 유럽의 두 학문적 흐름 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미국의 학문 체계를 근간으로 하면 서 세부적인 학문 영역들을 구분하고 있다. 미국의 학문적 분류는 커뮤니케이션 현상의 대표적인 모델인 송신자→ 채널(미디어)→메시지→수신자(수용자)를 근간으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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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그러면서 송신자와 수신자 사이의 관계와 영향을 가늠하는 피드백(feedback)과 효과의 영역이 매개되어 있다. 이런 커뮤니케이션 모델을 근간으로 하여 송신자론, 미디어론, 메시지론, 수용자론, 효과론으로 구분하여 체 계화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학문적 영역들 가운데 가장 취약한 영역이 ‘메시지론’이다. 커뮤니케이션 현상 가운데 미디어 콘텐츠 를 다루는 영역이 가장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미디 어학은 커뮤니케이션의 이동과 과정에 주목하면서 정작 메시지 내용에는 상대적으로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더욱 이 콘텐츠에 드러난 것이 내용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는 미국의 사회적 전통은 내용 이면이나 심층에 자리 잡고 있 는 보다 근원의 잠재적이고 내재된 의미를 파악하는 데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미국 미디어학의 전통은 커뮤니케이션의 이동이나 과 정에 주목하면서 발전해 왔다. 이는 미디어학의 초기에 클 로드 엘우드 섀넌(Claude Elwood Shannon)과 워런 위버 (Warren Weaver) 같은 기계공학과 수학자들이 참여하면 서 생성된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현상이 왜 발생하는가 하는 관심은 커뮤니케이션의 이동이라는 관 심으로 귀착되고, 무엇이 이동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은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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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이전 법칙같이 뜨거운 온도가 찬 곳으로 이동하면 서 전체를 뜨겁게 달구는 현상과 은유적으로 유사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커뮤니케이션의 수학적 이 론을 생성하면서 커뮤니케이션 이동 현상이 과학적 체계 에서 전개되고 있음을 규명하게 된다. 이러한 기계공학과 수학적인 커뮤니케이션 모델은 대 니얼 벌로(Daniel Berlo)와 윌버 슈람(Wilbur Schramm) 같은 인문학자들을 만나게 되면서 인간들 사이의 커뮤니 케이션 개념을 생성하면서 발전하게 된다. 커뮤니케이션 에서 이동 현상은 같은 상황이긴 하지만 인간 사이에서 커 뮤니케이션되는 주요 요소는 ‘열에너지’가 아니라 ‘정보’가 된다. 여기서 정보라는 개념은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동이라는 현상은 불확실성이 높 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움직이면서 발생하게 된다. 그 어 떤 곳이라도 불확실성이 높은 곳은 그것을 해소하는 지점 으로 이동하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엄청난 재난이나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언론 보도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 재난이나 사건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며,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신문을 찾거나 TV 방송 보도를 보게 되는 것이 다.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해소하는 것 에 주목하게 되고 그러한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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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의 주목은 일어나지 않게 된다. 여기서 커뮤니케 이션 현상이 정지되는 지점이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지점 이다. 이러한 현상을 ‘평형 이론(equibrium theory)’으로 설명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의 이동에 대한 관심은 1970년대 중대한 위기를 맞게 된다. 1970년대 미국의 미디어학은 기존의 학문적 경향으로는 더 이상 새로운 현상들에 주목하거나 새로운 해석들을 내어 놓을 수 없게 되면서 학문적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따라서 유럽이나 여러 대륙에서 전개되는 미디어 연구의 방향이나 이론들에 주목하면서 전반적인 학문적 개혁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이를 ‘학문의 소용돌 이(ferment in the field)’ 현상이라고 지칭한다. 그리하여 미국의 전통적인 학문적 흐름에 유럽의 학문적 경향이 유 입되면서 새로운 복합적이고 융합적인 학문적 경향이 생 성된다. 다양하고 새로운 유럽 학자의 견해들이 소개되고 그들의 이론이나 시각들이 대대적으로 유입된 것이다. 영 국의 정치경제학과 문화연구, 프랑스의 기호학과 구조주 의, 이탈리아의 헤게모니론, 독일의 비판적 문화 이론과 이데올로기론 등이 유입되면서 미국 학자들의 주요 관심 이 이동이나 과정에 중점을 둔 커뮤니케이션 현상으로부 터 상호 이해와 의미에 중점을 둔 커뮤니케이션 현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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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가게 된다. 주요 관심사의 이동은 커뮤니케이션 현상이 단순히 무 엇을 이동시키거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인 간이 살아가는 기본적인 전제 조건이라는 보다 근원적인 시각으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인간은 커뮤니케이션 없이 는 살아갈 수 없으며, 커뮤니케이션이란 인간이 인간으로 서 살아가게 되는 근본적 전제조건이 된다. 이는 커뮤니 케이션이란 인간들 사이에 의미의 소통과 공유이며, 이러 한 의미의 공유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음을 시사한다. 의미의 공유는 어떻게 발생할까? 의미를 공유하기 위해 서는 인간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언어, 표상, 부호, 지 표, 상징 등의 기호 체계를 공동으로 습득해야 하고, 이들 기호 체계가 생성하는 의미 체계를 공동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기호학이란 바로 이 같은 기호 체계와 의미 체계의 관계에 주목하는 학문이 기호학이다.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에 의해서 생성된 기호학은 기호의 구성 요소와 근본 구조를 근간으로 하여 의미가 만들어짐을 전제로 한 다. 사물이나 대상을 지시하는 기표(signifier)와 기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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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의해 형성되는 의미, 이른바 기 의(signified)와의 상관성을 통해 세상의 모든 사물과 대 상의 의미화 과정(signification)을 추구하고 있다. 사물이나 대상을 지칭하는 것은 기호의 가장 근원적인 기능인데, 이는 사물과 또 다른 사물을 구별하기 위해 만 들어진다. 이를 기표라고 칭하게 되는데 모든 사물에 이 름을 붙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또 다른 사물에 이름을 붙이게 되면 두 사물 사이 에 구별이 생겨나고 사물 각각의 존재 의미가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사과와 배가 있을 때, 각각 ‘사과’와 ‘배’로 명명 되면서 두 가지 과일에 각각의 특성을 근거로 한 의미가 생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표는 아직 기호로서 완전한 상태가 아 니며, 이들 기표를 인지하고 인식하며 습득하는 사람의 관 여를 필요로 하게 된다. 사람이 사과를 ‘사과’라는 기표로 부르고 ‘배’와 구별하면서 실제로 사과를 시식하게 되면 사과는 그 사람에게 특정한 의미로 다가오게 된다. 그러 면서 동시에 배를 시식하게 되고 그 맛의 차이를 구별하게 되면, 사과와 배는 특정의 사람에게 기표로서 구별되면서 동시에 맛으로도 구별되게 된다. 이 같은 의미를 기의라 고 부르게 되는데, 기표가 기의와 결합되면서 비로소 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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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생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성된 기호는 자연과 인간을 이어 주는 매개가 되며 다양한 의미를 표출하게 된다. 문제는 대상이나 사 물을 지칭하는 기표의 수는 제한되어 있고, 그러한 기표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경우의 수는 많아진다는 데 있다. 제 한된 기표들을 여러 가지 다양한 상황에서 여러 사람들이 사용하다 보니 특정 기표의 의미가 다양하고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하나의 기표가 다양한 상황과 맥락에서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어느 기 표가 어느 상황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집 중되게 된다. 기표 사용자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는 것 이 중요한 과제가 된 것이다. 기호학은 바로 이 같은 복잡한 상황에서 기표의 의미, 이른바 기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추론하는 능력을 지니 고 있다. 사람들은 기호를 사용할 때 본연의 의미는 깊은 심층 구조에 놓아 둔 상태로 표면적으로는 다소 다른 의미 로 모호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민감한 사안이 나 쟁점이 되는 사안일 경우 더욱더 모호하게 사용한다. 표면적으로 표출된 의미와 실제로 내재된 의미와는 서로 다른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근원적인 기의가 다층적 단계라는 구조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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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이 겉으로 드러난 단계에서 기호의 사용과 그것이 본연적으로 의미하는 바를 찾아내는 것은 많은 기호학자 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루 이 옐름슬레우(Louis Hjelmslev),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Claude Lévi-Strauss), A. J. 그레마스(Algirdas-Julien Greimas) 등의 학자들이 다양한 이론과 시각을 제기하면 서 복잡하고 중층적인 의미 구조와 내면에 숨겨진 심층 의 미를 찾아내는 데 기여했다. 이들 가운데 바르트는 소쉬 르의 언어에 치중한 기호학의 영역을 신화라는 요소를 가 미하면서 독특하게 해석하여 신화기호학을 생성했다. 언어가 특정 의미를 표출하는 과정을 ‘1차적 의미 단계’ 라고 하고, 그러한 의미 단계가 사회적 표현과 내용이라는 개념으로 전이되게 되면 사회적 의미를 생성하는 ‘2차적 의미 단계’라고 부른다. 1차적 의미 단계에서는 언어 사용 에 따른 1차적 지시 단계의 의미가 발생하지만, 이것이 사 회나 문화적인 상황에서 사용되는 경우 전혀 다른 사회적 이고 문화적인 함축 의미를 생성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아 버지라는 기호는 한 집안의 가장이며 경제적 책임을 지는 존재로 의미되어 왔다. 그런데 1997년 우리 사회에서 IMF 경제 위기를 거치면서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버지가 많아지면서 아버지의 의미는 무능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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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로 전이되게 되었다. 이렇듯이 사회적 상황이 바뀌면 특정 기호의 기존 의미는 바뀌면서 새로운 의미가 자리 잡 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을 바르트는 ‘신화’라는 현상으로 설 명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받아들이는 보편적 가치관은 그 사회에서 오랫동안 알게 모르게 전해내려 온 신화적 이야기와 신화의 중심인물들의 행적에 내재한 잠 재적인 가치관과 유사하다. 그 사회의 기원 신화나 전설 적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지속적으로 전해지고, 그들 의 이야기들이 새로운 형태와 내용을 추가하면서 끊임없 이 재생산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해진다. 현재도 여전 히 특정의 이야기가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고 용인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이야깃거리가 아니라 그 사회의 근간을 떠 받치고 있는 보편적 가치관의 재현이 된다. 이같이 신화라는 개념을 매개 요소로 하여 사회적 변화 를 감지했고, 사회적 변화에 따른 기호의 사회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의 신화의 개념은 문화인 류학자인 레비-스트로스의 개념을 활용한 것이며, 옐름슬 레우의 형태와 내용이라는 개념을 추가로 적용한 것이다. 나아가 신화가 표출하는 보편적 가치관은 사회적 신념을 의미하는 독사(doxa)라는 개념으로 발전하면서 결국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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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라는 개념으로 집약된다. 바르트의 신화기호학이 이데올로기를 발견하는 데 심 혈을 기울였다면, 그레마스는 텍스트 기호학을 만들면서 기호 작용을 넘어선 텍스트에 주목, 텍스트가 발생하는 심 층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소쉬르가 기호의 기 본적 구성 체계로 기표와 기의를 전제하면서 의미가 생성 된다고 했다면, 그레마스는 보다 확장된 텍스트라는 개념 을 만들고 이러한 텍스트를 만드는 서사 구조에 주목했다. 서사 구조란 이야기의 근간을 이루는 중심인물과 주변인 들 사이의 행적을 구조적이고 체계적으로 전개하는 것을 일컬으며, 모든 이야기들은 이 같은 서사 구조를 근간으로 이루어진다. 블라디미르 프로프(Vladimir Propp) 같이 이야기의 서 사 구조에 주목했던 학자들은 민담, 전설, 동화 같은 어떠 한 이야기들도 기본적으로 일정한 서사 구조를 근간으로 하며 주요 인물들 역시 일정한 관계 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레마스는 바로 이러한 서사성이 규칙적이고 체계 적인 구조를 지니게 되고, 이러한 구조에서 텍스트의 전체 의미를 체계적으로 생성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서사 구조 의 다양성을 담보하기 위해 소쉬르가 주장한 기호의 이중 구조(기표·기의)와 이항 대립적 관계를 벗어나서 다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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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와 중층적 관계(대립, 함유, 모순)를 주장한다. 이는 특정 기호가 대립 관계인 제한된 틀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대립·함유·모순이라는 관계 속에서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이러한 근본 관계는 이야기의 중심인물에 따른 목표와 주변 인물들의 다양한 관계 속에서 복합적으로 전개될 수 있게 만든다. 중심인 물들의 관계는 서로 연계되는 연접이나 떨어지게 되는 이 접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관계로 전개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계는 ‘연접(連接)’이며, 이들 사이에 불화와 반목이 전개되면서 결국에는 헤어지게 된 다면 ‘이접(離接)’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레마스가 전제하는 텍스트는 이같이 과학적이고 체 계적인 서사 구조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그 어떤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 이야기가 근간으로 하고 있 는 서사 구조를 파악하게 되면 텍스트가 의미하는 바를 파 악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복합적이고 다양한 의 미들 속에서 가장 심연에 숨겨져 있는 심층적인 의미를 파 악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디어 기호학의 탄생 기호학이 언어기호학에서 신화기호학을 거쳐 사회적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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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와 이데올로기를 파악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자 여러 가지 미디어 현상들에서 기호학의 개념과 기호학적 방법들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들 기호학의 활 용은 그동안 미디어학에서 소홀하거나 주목하지 않았던 미디어 콘텐츠의 심층 의미나 이데올로기를 찾아내는 데 뚜렷한 공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특히 언론 보도를 다루는 저널리즘 분야에서 기호학의 기여는 놀라울 정도로 컸다. 신문, 라디오, TV 등의 언론 매체들은 매일같이 다양한 사건과 사안을 다루고 있으며, 각각의 사건과 사안에 대해 특정 견해를 피력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같은 사안이라 하더라도 언론사의 특정 정책이나 방향, 이데올로기에 따라 서로 다르게 접근하고 해석된다. 모든 언론은 사실성, 공정성, 객관성, 균형성 등 언론 보도 원칙을 준수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것은 외 형상의 선언일 뿐이고 대부분의 경우는 언론사에 따라 서 로 다르게 보도한다. 이는 언론이 의도적으로 특정 방향 으로 기우는 것이 아니라 언론사의 언론인들이 사용하는 기호들의 범주와 차원 그리고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는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 신문인 ≪조선일보≫와 진보 신 문인 ≪한겨레신문≫을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특정 사건이나 사안에 대해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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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서로 다른 기호들을 사용하며, 서로 다른 범주로 구분 하고, 서로 다른 프레임으로 규정하고 인식한다. 같은 사 건을 서로 다른 기호, 범주, 프레임으로 규정하고 인식하 게 되면 전혀 별개의 사건으로 해석되게 되며, 이는 사회 에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심각 한 갈등을 생성하는 부정적 측면도 야기한다. 그런데 이러한 언론 보도 내면에 숨겨져 있는 의미 구 조는 기존의 내용 분석이나 프레임 분석으로는 충분히 찾 아낼 수 없다. 기호와 텍스트의 의미 구조 심연에 자리 잡 고 있는 심층적이고 근원적인 의미는 기호학적 분석 방법 들로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찾아낼 수 있다. 기호의 통합 체 분석으로 보도의 연계성에 주목하고, 계열체 분석을 통 해 보도에서 드러나는 대립과 갈등의 주체들을 파악하며, 범주화 분석으로 사건과 사안을 어느 특정 시각으로 규정 하고 있는가를 파악하고, 전제 분석을 통해 그러한 사건과 사안을 바라보는 전제적 인식을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 어 2013년 겨울에 발생했던 코레일 철도 파업에 대한 우 리 언론의 보도 경향과 그에 따른 의미를 분석해 보면 명확 해진다. 무엇부터 중요하게 인식하고 보도를 시작하는지, 분규의 갈등 주체들이 누구인지, 분규를 어느 범주로 구분 하면서 보도하는지, 노사분규를 단순한 노사관계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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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볼 것인지, 아니면 사회를 뒤흔드는 기간산업의 문제로 인식하는지에 따라 아주 다르게 의미화됨을 알 수 있다.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광고 등의 대중문화 영역들 역시 기호학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특히 대중문화 영 역들에서는 일반 언어 이외에 영상 화면이 의미 생성에 관 여하게 되는데, 영상 화면의 숨은 의미를 찾아내는 데 기 호학적 분석 방법들이 절대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영화는 언어 표현과 영상 표현의 복합적 과정으로 전개되는데, 언 어 표현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도 기호학적 분석 방법들이 활용되고 있지만, 영상 표현의 의미 파악에는 더더욱 기호 학적 분석 방법들이 요긴하게 사용된다. 나아가 드라마, 다큐멘터리와 광고 역시 언어 표현과 영상 표현에서 다양 한 기호학적 분석 방법들이 동원되면서 이들 장르들이 내 면화하고 있는 심층 의미를 찾아낼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 기도 찾아내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새롭게 등장한 인터넷 미디어와 소셜 미디어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콘텐츠들에 대한 의미 파악 에도 기호학의 개념과 분석 방법들이 활용되고 있다. 인 터넷 미디어는 일반 미디어에서 다루지 않는 다양하면서 도 복합적인 콘텐츠들을 많이 생성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사회적 파장 역시 커지고 있다. 소셜 미디어 역시 처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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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사람들 사이에 사소한 일상사를 서로 나누는 가벼운 미 디어로 시작했다. 최근에서 국가의 재난이나 굵직한 사건 들에 신속하게 반응하면서 여론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 소셜 미디어 콘텐츠들 역시 기호학의 도움으 로 숨겨진 내면의 의미를 파악하고 있다. 이렇듯이 미디어 기호학은 미디어에서 전개되는 제반 콘텐츠들에 주목하면서 드러난 의미가 아닌 숨겨져 있거 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심층 의미를 찾아내고 있다. 미 디어의 사회적 역할이나 기능이 드러난 의미에 의해 강력 한 영향을 발휘하기보다는 드러나지 않은 의미에 의해 더 욱 강력한 영향을 발휘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디어 영 역들에서 생성되는 다양한 콘텐츠들의 숨은 의미를 찾아 내고, 그러한 숨은 의미를 떠받치고 있는 이데올로기를 찾 아내는 작업은 아주 시급하다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미디어 기호학의 학문적 생성은 시대적 과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미디어 기호학의 요체 를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이 책의 발간 의의는 크다고 하겠 다. 다양한 미디어 장르들에서 매일같이 생성되고 있는 콘텐츠들이 드러내고 있는 현시적 의미를 추종하기보다 는 내면에 숨겨져 있는 심층적 의미를 찾아내는 작업이 보 다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공유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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