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칭자 드미트리
나오는 사람들
참칭자 드미트리 슈이스키1) 게오르기: 갈리치야2) 왕자 크세니야: 슈이스키의 딸 파르멘: 드미트리의 친구 친위대장
1) 대귀족 슈이스키는 ‘동란의 시기’에 보리스 고두노프가 죽자 가짜 드미트리 를 축출하고 황제로 선출되었다. 두 번째 참칭자가 나타나면서 슈이스키 공 역시 타도되었다. 슈이스키 공 가문은 ‘동란의 시기’에 보야린[(Боярин, 복수형 보야르(Бояр)]들 가운데 특별히 중요한 명문 가문이었다. 이 가문 은 군사·행정적 재능을 지닌 훌륭한 인재들을 계속해서 배출해 왔다. 2) 갈리치야(Галиция, 우크라이나어로는 갈리치나, 폴란드어로는 갈리치아, 독일어로는 갈리치엔)는 지금의 폴란드 남동부에서 서우크라이나에 이르 는 지역을 가리키는 역사적 명칭이다. 남북으로 300킬로미터, 동서로 700 킬로미터에 이른다.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리보프, 이바노프란코프스크, 체르노폴 여러 주를 비롯해, 폴란드 남동부 15주가 여기에 포함된다. 18세 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는 폴란드 영토였으나, 현재는 폴란드령과 우크라이나령으로 분할되었다. 옛날부터 흑해 연안에서 발트 해에 이르는 통상로였다. 상인들의 원격지 무역과 이민족의 폴란드 침입 경로로 이용되 었다. 중심 도시로는 크라쿠프, 리보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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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야린3)과 그 밖의 사람들
크렘린 황궁에서 막이 열린다.
3) 키예프 루스 시대 이래로 대표적인 귀족 계층은 보야린(Боярин)과 드보랴 닌(Дворянин)이다. 보야린(대귀족, 또는 구귀족)은 러시아 명문 대귀족으 로, 대지주를 일컫는다. 주로 세습 토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혈통 귀족이었 다. 보야린은 보야린 두마(Дума, 국민의회)에 출석하고 입법과 정책 결정 에 관여했다. 표트르 1세의 개혁으로 보야린이라는 칭호는 나중에 사라졌 다. 드보랴닌(궁정 귀족)은 키예프 루스 시대 이래로 공후의 궁정에서 봉사 하며 생겨 난 봉직 계층이며, 혈통 귀족과는 구분되었다. 작위는 없으나 인 두세와 병역이 면제되었고, 농노 소유권을 부여받는 등 실질적인 특권을 누렸다. 15∼16세기경부터 모스크바 대공에게 봉사하는 소(小)영주층인 드보랴닌 계층이 중앙집권 국가 발전의 지주로 등장했다. 18세기에는 표트 르 1세 개혁으로 관등표에 정해진 일정한 관직에 있으면 누구나 드보랴닌 이 될 수 있었다. 따라서 보야린 계층은 드보랴닌 계층에 자연스럽게 흡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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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막
제1장 드미트리와 파르멘
파르멘 소인이 황제 폐하의 진실한 친구가 되는 것을 허락
해 주소서! 저는 30일 내내 폐하의 탄식 소리만을 들었고 폐하께서 황제 자리 때문에 늘 괴로워하는 것을 보 았습니다. 어떤 재앙이 드미트리 황제 폐하를 기다리고 있습니 까? 어떤 슬픔이 폐하의 행복을 방해합니까? 아니면, 폐하는 더 이상 제위에 만족하지 않으십니 까? 폐하께서는 한때 불행했지만, 이제 모두 지난 일입 니다. 그리고 하늘은 고두노프4)가 찬탈했던 것들을 되돌
4) 이반 4세에게는 세 아들 이반(Иван), 표도르(Фёдор), 드미트리(Димитрий)가 있었다. 큰아들 이반이 죽자 둘째 아들 표도르가 황제가 되었다. 표도 르가 몽골－타타르의 후예인 보리스 고두노프(Борис Ф. Годунов)의 누이 동생 이리나 표도로브나(Ирина Фёдоровна)와 결혼하면서 보리스 고두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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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 주었습니다. 하늘은 그에게 폐하의 관을 열도록 허락하지 않았습 니다. 운명은 흉악한 죽음의 고비로부터 폐하를 구했습니 다. 진실이 폐하로 하여금 아버님의 황제 자리를 물려받 게 했습니다. 도대체 운명이 폐하에게 어떤 슬픔을 주었습니까? 드미트리 내 마음속엔 사악한 복수의 여신이 흥분해 소리치
고 있네. 사악한 영혼에게는 안정도 없는 법이지. 파르멘 폐하께서는 자주 야만적인 폭력과 만행으로
백성들을 괴롭히고 러시아를 황폐하게 만들었습니 다. 난폭한 폭군으로서 끝없는 유혈 행위로
프는 어리고 병약한 황제 표도르의 처남이 되었다. 그는 처남 대신 섭정을 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표도르가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죽 자, 모스크바인들은 황후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녀에게 오빠 보리스 고 두노프의 도움을 받아 모스크바를 통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리나 는 단호히 통치를 거부했다. 그녀는 궁전을 떠나 노보데비치 수도원으로 가서 알렉산드라라는 이름으로 머리를 깎았다. 1598년 2월 국민회의(Земс -кий собор)는 보리스 고두노프를 황제(Царь)로 선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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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없는 백성들을 추방하고 처형했습니다. 조국에 대한 폐하의 불타는 분노로 이 아름다운 도시5)는 보야린들의 감옥이 되었습니 다. 조국의 자식들은 하나같이 행복을 갈구하고 오직 폴란드인만이 폐하의 건강을 위합니다. 이곳에서 그리스정교의 법은 완전히 타락했습니다. 러시아 황제이신 폐하께서는 우리를 로마 교황에게 예속시키려 합니다. 만약 자연이 폐하를 재앙으로 이끌어 간다면 그 마음으로 이겨 내시고 백성들의 아버지가 되십시 오! 드미트리 난 로마 교황 클레멘트6)에게 복종을 맹세했고,
폴란드인들은 내게 도움을 주었다. 러시아는 신성한 교황에게 복종하고 싶지 않겠지.7) 하지만 러시아가 나의 은총을 받을 대상은 아니야. 파르멘 저는 모든 인간이 형제라고 생각합니다.
5) 모스크바를 말한다. 6) 클레멘트(Clement) 8세를 말한다. 7) 러시아는 정교회 국가인 반면에 폴란드는 가톨릭 국가다. 두 나라는 서로 적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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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이비 설교사들은 위선적인 신성함으로 대가를 챙기고, 이득을 얻기 위해 그들이 꾸민 이야기를 사방으로 퍼뜨렸습니다. 하지만 우리 목사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방탕함에 빠져도 그들은 자신의 운명에 감사해야 합 니다. 영국과 네덜란드는 이미 이 짐을 벗어던졌고, 독일의 절반도 그러합니다. 이제 곧 전 유럽이 예전 공포로부터 벗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죽을 운명인 보통 사람들과 구별하고 자신을 신이라고 부르는 지금의 로마 왕자도 왕좌에서 물러날 것입니다. 드미트리 파르멘, 그에 대해 불손한 말은 그만하게.
황제들도 왕자들도 이 빛나는 거성8)을 숭배하네! 파르멘 모두가 그를 성심성의껏 섬기지는 않고
거짓으로 그에게 아첨합니다. 세상의 심판관도, 신도, 황제도 아니고 오직 전 세계의 교황9)일 뿐입니다. 8) 원문인 “스베틸로(светило)”는 “천체, 거성, 대가”를 뜻하는 말로 여기서는 ‘교황’을 말한다. 9) 원문인 “파트리아르흐(патриарх)”는 “가장, 족장, 교황”을 일컫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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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교황은 모든 인간을 인간이라 인정하지 않고 그는 오직 지혜로운 사람만이 신을 이해한다고 생각 합니다. 드미트리 자네는 궤변으로 말을 낭비하고 있네.
천국에 가고 싶다면, 굳이 철학자인 척할 것 없네! 총명은 달콤하지만, 결국 멸망으로 이끈다네. 파르멘 어떻게 지혜가 신에게 거슬리는 것이 될 수 있습니까?
영원한 지혜로 가득 찬 신이 우주를 창조하셨고 그분은 죽어 있는 것들에게 생명과 이성을 주셨습니 다. 보이는 모든 것 속에서 우리는 이해하기 힘든 그분의 총명을 봅니다. 아니면 신의 지혜를 칭송하면서, 우리 자신의 지혜는 경멸해야 합니까? 드미트리 우리는 신의 총명에 도달할 수 없네. 파르멘 로마 교황 클레멘트 또한 그것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것에 도달하기엔 우리의 이성은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피조물의 세계에선 신의 행동이 어떤 것인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는 교황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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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에게 조금만 더 지력이 있다면, 로마 교황이 알 수 있는 만큼 우리도 알 수 있을 것입 니다. 드미트리 자네는 그런 불손한 말 때문에 영원히 고통받을 것
이네. 욕망과 굶주림, 애수와 불타는 강이 있는 곳에서, 영혼의 고통과 치료할 수 없는 상처가 있는 곳에서. 파르멘 폐하께서 방법을 바꾸지 않는다면,
폐하 또한 그곳에서 발견될 것입니다. 드미트리 난 알고 있다네, 내가 수많은 잔인한 악행의 목격
자라는 것을 내가 이 세상에 파렴치한 행위를 범한 피조물이라는 것을. 파르멘 그렇다면 그러한 사악한 행위로부터 벗어나셔야 합
니다. 드미트리 내게 나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러시아의 명예와 영웅적인 업적들은 어둠 속으로 하 강할 것이네. 내 군인들은 로마 교황을 조상들의 아버지로 받아들 일 것이네. 그를 위해서 나는 무기로 교회를 정복할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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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황제가 바라는 것이라면 황제에겐 쉬운 일이 지! 파르멘 폐하, 폐하께서는 지금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를 항해하고 계신 것과 다름없습니다. 폐하께서는 모스크바와 러시아인들에게 슬픔을 가 져다주시며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길로 가고 계십니다. 폐하의 왕좌가 주춤거리고, 머리에서 왕관이 떨어집 니다. 드미트리 나는 왕좌에 앉아 러시아인들을 멸시하며
폭군 정치를 펼치고 있네. 과연 나를 내쫓으려 하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백성들의 나라에서 왕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이곳을 통치하며 러시아인들을 추방하거나 처형하고, 죽음으로 내모는 것에 쾌락을 느끼네. 새 조국의 후손은 폴란드인들이 될 것이네. 러시아인들을 폴란드인들 손에 넘길 것이네. 만약 성공한다면 그때 나는 황제로서 위대함과 위안을 느낄 것이네. 내가 그토록 원했던 포획물도 얻을 것이네. 동지여, 하지만 만약 내가 실패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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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드미트리에게는 어떤 마음의 평화도 오지 않을 것이네. 오, 나는 양심으로 많은 고통을 감수하고 있지. 하지만 크세니야에 대한 사랑 또한 나의 고통이지. 파르멘 폐하께는 황후가 계시고, 크세니야는 약혼자가 있습
니다…. 드미트리 파르멘, 나는 자네를 진정한 벗으로서 존경하네.
솔직히 말하겠네. 나는 혼담을 파할 수 있네. 그리고 독약이 내 아내를 영원히 어둠 속으로 보낼 것이네. 파르멘 공포가 나를 사로잡는구나…. 드미트리 자네의 공포는 쓸데없는 것이지. 파르멘 그런 일을 생각하는 것조차 혐오스럽습니다. 드미트리 난 공포에 익숙해져 있네. 악이 내 친구네.
사악이라는 길은 내 영혼을 피로 긴장시켰네. 파르멘 황후는 폐하께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드미트리 황제 앞에서 진리는 침묵을 지켜야 하지.
진리가 아니라 내가 황제라네. 군주의 권력이 법이고, 법의 명령은 황제의 욕망이 라네. 그러한 유희를 무시하는 군주는 노예일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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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에서 규칙이란 자유를 방해할 뿐이지. 만일 어느 시대에 그러한 황제가 있었다면 그 황제 또한 종속된 인간이었을 것이네. 그는 백성들을 위해 쓸데없이 노력했을 것이고, 백성처럼 진리로 재판을 받았을 것이네. 파르멘 (떨어져서)
황후를 야만적인 행위로부터 보호해야만 한다. (드미트리에게) 폐하는 자신을 지옥에 빠뜨리고 계십니다. 드미트리 오, 클레멘트! 만약 내가 천국에 간다면,
지옥의 고통은 누구를 위한 것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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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드미트리, 파르멘, 그리고 친위대장
친위대장 위대하신 폐하, 민중이 바람을 만난 물결처럼,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처럼 격정적으로 날뛰고 있습 니다. 몇몇 사람들은 작정을 하고 황제를 공공연히 반대합 니다. 그들은 왕권을 탐내고 있습니다. 드미트리 그들이 광장에서 어떤 해악을 끼치는가?
내가 곧 그 경멸스러운 인간들의 헛소리를 멈추게 하겠다. 친위대장 폐하, 제가 어찌 감히 들은 것들을
반복해 말할 수 있겠습니까? 드미트리 말해 보게!
러시아인들을 진정시킬 방법을 난 알고 있지. 친위대장 그들은 우글리치10)에서 황제의 아들이
10) 우글리치(Углич)는 러시아 서부 야로슬라블 주(州)의 볼가 강변에 위치 한 작은 고대 도시다. 1591년 이반 4세의 아들 드미트리가 살해된 장소로 유명하다. 16세기 동안 번영했으나 그 뒤 쇠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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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살해되었다고 말합니다. 폐하가 나타났는데도, 그들은 폐하가 황제의 진짜 아들이 아니라고 말합니 다. 백성들은 폐하를 오트레피예프11)로 부른다고 합니 다. 그들이 말하는 드미트리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한때 수도사였던 폐하께서 수도원을 도망 나와 폴란드 땅에서 은신처를 찾았다고 합니다. 폴란드에서 폐하는 약혼녀와 그녀의 아버지를 속였 고, 기교와 교활함으로 왕권을 잡는 데 두려워하지 않았 습니다. 폴란드의 그림자가 지금 왕좌로 드리워지고 있고, 폐하는 교회에 로마법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무모하고 대담한 폐하는 모스크바와 러시아의 적, 즉 백성의 살인자라고 말합니다. 드미트리 믿을 만한 폴란드 호위병을 두 배로 늘리고
11) 그리고리 오트리피예프(Григорий Отрепьев)는 가짜 드미트리 1세로 1605∼1606년에 모스크바 공국 황제를 지냈다. 그는 ‘동란의 시기’에 나 타난 첫 참칭자(僭稱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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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나를 화나게 하지 마라! 이 괴물 같은 인간들로부터 나온 배반의 소리를 더 이상 들을 힘이 없네. 내 앞에 당장 슈이스키와 그자의 딸을 데려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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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드미트리와 파르멘
파르멘 운명의 판결로 폐하께서 왕좌에 올랐을 때
우리에겐 가문보다 황제가 필요했습니다. 만약 폐하가 그런 사악한 마음으로 통치하지 않았다 면, 폐하가 드미트리가 아니라 해도 백성들에겐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 것입니다. 드미트리 슈이스키가 반란을 꾸미고 있다.
그자의 얼굴에서 그것을 보았다. ` 적대자를 친구로 바꾸지 못한다면, 그때 대지는 그자의 시체를 삼켜 버릴 것이고, 나는 그자와 그자의 딸 크세니야의 관 뚜껑을 열어 버릴 것이네. 파르멘 그 말씀에 피가 멈추는 것 같습니다.
그녀에 대한 폐하의 사랑은 들어 본 적 없는 사랑입 니다. 드미트리 가장 숭고한 사랑이 되돌아오지 않고
보답 없이 다 버려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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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랑은 가장 잔인한 복수로 변할 것이네. 공주가 이 공포를 웃어넘긴다면 우리는 만개한 장미가 시들어 먼지가 되는 것을 볼 것이네. 그녀가 고집스럽게 군주의 열정을 거절한다면 황제의 권위와 권력에 반항하는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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