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모노가타리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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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勢物語 이세 모노가타리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은 인류의 유산으로 남을 만한 작품만을 선정합니다. 오랜 시간 그 작품을 연구한 전문가가 정확한 번역, 전문적인 해설, 풍부한 작가 소개, 친절한 주석을 제공하는 고급 시선집입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伊勢物語 이세 모노가타리 작자 미상 민병훈 옮김

대한민국,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4


편집자 일러두기 ∙ 이 책은 일본 쇼가쿠칸(小学館)의 <신편 일본 고전 문학 전집 (新編日本古典文学全集)> 제12권 ≪이세 모노가타리(伊勢物 語)≫를 원전으로 삼아 옮긴 것입니다.

∙ 인명, 지명 등의 고유명사는 일본어 발음에 따랐으며, 관직명은 한국어의 한자 독음에 따라 표기했습니다. ∙ 작품 중에서 특히 중요하게 취급되는 단에는 해제를 달았습니 다. 모리모토 시게루(森下茂)의 ≪이세 모노가타리 전석(伊勢物 語全釈)≫과 아베 도시코(阿部俊子)의 ≪이세 모노가타리 전역

주(伊勢物語全訳注)≫를 참고했습니다. ∙ 주석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옮긴이가 붙인 것입니다. ∙ 일본의 전통시인 와카(和歌)는 5 7 5 7 7 음수를 지켜 번역했습 니다. 번역이 난해한 와카는 풀어서 주석으로 달았습니다. ∙ 외래어 표기는 현행 한글어문규정의 외래어표기법에 따랐습니 다.


차례

제1단 관례(初冠) ·················3 제2단 서경(西の京) ················6 제3단 히지키모(ひじき藻) ·············7 제4단 서편 건물(西の対)

·············9

제5단 관문지기(関守)···············12 제6단 아쿠타가와 강(芥河) ············14 제7단 돌아가는 파도(かへる浪) ··········17 제8단 아사마 봉우리(浅間の嶽) ··········18 제9단 아즈마 하향길(東下り) ···········19 제10단 논 위의 기러기(たのむの雁) ········25 제11단 하늘을 떠가는 달(空ゆく月) ········28 제12단 도둑(盗人) ················29 제13단 무사시 등자(武蔵鐙) ············31 제14단 망할 닭(くたかけ)·············34 제15단 시노부 산(しのぶ山)············37 제16단 기노 아리쓰네(紀有常)

··········38

제17단 방문 뜸한 사람(年にまれなる人) ······42


제18단 흰 국화(白菊) ···············44 제19단 저 구름처럼(天雲のよそ)··········46 제20단 단풍잎(楓のもみじ) ············48 제21단 서로 다른 세상(おのが世々) ········50 제22단 천 일 밤을 하룻밤이라(千夜を一夜) ·····54 제23단 우물 벽(筒井筒) ··············56 제24단 아즈사 활(あづさ弓)············61 제25단 만나지 못하고 자는 밤(あはで寝る夜) ····64 제26단 중국 배(もろこし船) ···········66 제27단 대야에 비친 모습(たらいの影) ·······67 제28단 만나기 어려워졌나(あふごかたみ) ·····69 제29단 벚꽃 하연(花の賀) ·············70 제30단 아주 뜸하게 만났던 여자(はつかなりける女) ·71 제31단 좋습니다, 풀잎처럼(よしや草葉よ) ·····72 제32단 베실 꾸리(倭文のをだまき) ········73 제33단 물가 후미진 곳(こもり江) ·········74 제34단 마음을 열지 않는 냉담한 여자(つれなかりける人) ························76 제35단 거품 엮은 끈(あわ緒) ···········77 제36단 칡덩굴(玉かづら) ·············78 제37단 허리끈(下紐) ···············79


제38단 사랑이라고 하는(恋といふ)·········81 제39단 미나모토노 이타루(源至) ··········82 제40단 사랑에 목숨을 건(すける物思い) ······86 제41단 자초(紫) ·················89 제42단 어떤 이의 길(たが通ひ路) ·········91 제43단 소문만 성한(名のみ立つ)··········93 제44단 전별식(馬のはなむけ) ···········95 제45단 가는 반딧불(行く蛍) ············97 제46단 사이좋은 친구(うるわしき友) ·······100 제47단 당신 부르는(大幣の) ···········102 제48단 나를 기다리는 곳(人待たむ里) ·······104 제49단 젊디젊어서(うら若み) ··········105 제50단 동그란 계란(鳥の子) ···········107 제51단 국화(菊)·················110 제52단 창포를 베며(あやめ刈り) ·········111 제53단 만나기 힘든 여자(逢いがたき女)······112 제54단 냉담한 여자(つれなかりける女) ······113 제55단 당신의 말(言の葉) ············114 제56단 풀로 엮은 초막(草の庵) ··········115 제57단 사랑에 지친(恋ひわびぬ) ·········116 제58단 황폐해진 처소(荒れたる宿) ········117


제59단 히가시야마 산(東山) ···········120 제60단 귤꽃(花橘)················122 제61단 소메카와 강(染河) ············124 제62단 꽃잎 떨어진 가지(こけるから)

······126

제63단 늙은 여자의 머리(つくも髪) ········128 제64단 구슬 발(玉簾) ··············132 제65단 아리와라씨 남자(在原なりける男) ·····134 제66단 미쓰 해변(みつの浦) ···········141 제67단 눈꽃 피어 있는 숲(花の林)·········143 제68단 스미요시 해변(住吉の浜) ·········144 제69단 사냥의 명을 받은 칙사(狩の使)·······146 제70단 어부의 낚싯배(海人のつり舟) ·······152 제71단 신의 담장(神のいがき) ··········153 제72단 오요도의 소나무(大淀の松) ········155 제73단 달 속의 계수나무(月のうちの桂)······156 제74단 첩첩 산(重なる山) ············157 제75단 청각채(海松)···············158 제76단 오시오 산(小塩の山) ···········161 제77단 봄과의 이별(春の別れ) ··········163 제78단 야마시나의 친왕(山科の宮) ········166 제79단 천 길 나무 그늘(千ひろあるかげ) ·····169


제80단 쇠락한 집안(おとろえた家) ········171 제81단 소금가마(塩竈)··············172 제82단 나기사노인(渚の院) ···········174 제83단 오노(小野)················180 제84단 피할 수 없는 이별(さらぬ別れ) ······182 제85단 그치지 않는 눈(目離れせぬ) ········185 제86단 나름대로 살면서(おのがさまざま) ·····187 제87단 누노비키 폭포(布引の滝) ·········188 제88단 달도 찬미 안 해요(月をもめでじ) ·····193 제89단 헛소문(なき名) ·············194 제90단 벚나무 꽃(桜花) ·············195 제91단 아쉬워해도(惜しめども) ·········196 제92단 발판 없는 작은 배(棚なし小舟) ······197 제93단 차이 나는 신분(たかきいやしき)······198 제94단 단풍도 꽃도(紅葉も花も) ·········199 제95단 견우성(ひこ星) ·············201 제96단 아마노사카테(天の逆手) ·········202 제97단 마흔 살을 축하하는 연회(四十の賀) ····205 제98단 세공한 매화 나뭇가지(梅の造り枝) ·····206 제99단 활 경기의 날(ひをりの日) ·········207 제100단 망우초(忘れ草) ·············209


제101단 기이한 등나무 꽃(あやしき藤の花) ····211 제102단 속세의 번잡함(世のうきこと) ······214 제103단 함께 잔 밤(寝ぬる夜) ··········215 제104단 가모노마쓰리(賀茂の祭) ·········216 제105단 하얀 이슬(白露) ·············218 제106단 다쓰타 강(龍田河) ············219 제107단 처지를 아는 비(身をしる雨) ·······220 제108단 파도에 젖는 바위(浪こす岩) ·······224 제109단 사람이 먼저 덧없이(人こそあだに) ····226 제110단 혼을 묶어(魂結び) ············227 제111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まだ見ぬ人)····228 제112단 스마의 어부(須磨のあま) ········231 제113단 짧은 마음(短き心) ············232 제114단 세리가와 강으로의 행차(芹河行幸) ····233 제115단 미야코시마(みやこしま) ·········235 제116단 오래된 가옥(はまびさし) ········236 제117단 스미요시로의 행차(住吉行幸)·······238 제118단 잊지 않았다는 말(たえぬ心) ·······240 제119단 추억거리(形見) ·············241 제120단 쓰쿠마 마쓰리(筑摩の祭)·········242 제121단 우메쓰보(梅壷) ·············243


제122단 이데의 고운 물(井出の玉水) ·······245 제123단 메추라기(うづら) ············246 제124단 나와 같은 마음의 사람(われとひとしき) ··248 제125단 결국에 가는 길(つひにゆく道) ······249

부록−≪이세 모노가타리(伊勢物語)≫를 통해서 본 고대 의 관동(關東)··················251

해설 ······················281 옮긴이에 대해··················289



이세 모노가타리



제1단 관례(初冠)

옛날, 한 남자가 관례(初冠)1)를 올리고 나서 옛 도읍인 나라 (奈良)의 가스가(春日) 마을에 영지가 있어 매사냥을 나갔 다. 그런데 그 마을에는 무척 젊고 아름다운 자매가 살고 있 었다. 이 남자는 그 모습을 엿보고 말았다. 뜻밖에도 그녀들 은 쇠락한 옛 도읍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젊고 매 력적이었기 때문에 남자는 그만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다. 그래서 입고 있던 사냥복의 옷자락을 잘라 거기에 노래를 적어 보냈다. 그 남자는 나무줄기가 엉킨 것 같은 모양의 시 노부모지 무늬(信夫捩摺)2)의 사냥 옷을 입고 있었다.

가스가노의 연보랏빛 색깔로 물들인 옷에 흔들리는 내 마음 그 끝을 모릅니다3)

1) 관례: 남자가 성인이 되는 날, 머리를 잘라 올리고 처음으로 관을 쓰는 의식 을 말한다. 성인식은 지금과 달리 대체로 12세에서 16세에 하는 것이 일반 적이었으며 신분이 귀할수록 그 시기가 빨랐다. 2) 시노부모지 무늬(信夫捩摺): 미치노쿠 지방(陸奥の国) 시노부 군(信夫郡) 에서 산출한 넉줄고사리의 줄기와 잎에서 추출한 색소를 천에 문질러 만든 무늬로, 엉킨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3) “가스가노의 싱싱한 자초처럼 젊고 아름다운 그대들을 보니 내 마음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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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日野の 若むらさきの すりごろも

しのぶの乱れ かぎりしられず

라고 곧바로 읊어 보낸 것이다. 남자는 옛 도읍에서 뜻밖에 젊고 매력적인 자매를 엿보고 흔들리는 마음이, 자신이 입 고 있던 옷의 무늬와 닮았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낀 것일까. 이 노래는,

미치노쿠의 시노부모지 무늬 누구 때문에 흔들리는 걸까요 당신 탓 아닙니까4) みちのくの しのぶもぢずり たれゆゑに 乱れそめにし われならなくに

라는 노래의 취향을 답습하고 있다.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열정적이고 세련된 행동을 한 것이다.

시노부모지 무늬처럼 한없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4) “미치노쿠의 시노부모지 무늬처럼 나의 마음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누구 때문에 흔들리는 걸까요? 그대 외에 다른 누군가로 인해 흔들리는 것이 아 닙니다. 바로 당신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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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교토의 젊은 귀족이 옛 도읍인 나라(奈良)를 찾은 것은 헤이안 천도(794) 이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무렵이다. 따라서 가 스가노는 이름 없는 시골 마을이라고는 볼 수 없으며, 적막이 흘 러도 우아한 기운이 감도는 곳이다. 그 가스가노에 막 성인식을 올린 사냥복 차림의 젊고 멋진 귀공자가 방문한다. 계절은 봄이 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거기서 뜻밖에 젊고 매력적인 자매 를 보고 마음이 흔들린다. 영지라고 하는 편안함도 있어 일순간 에 연심이 불타오른다. 유행하는 무늬의 사냥복 옷자락을 아깝 게 여기지 않고 잘라 ‘흔들리는 내 마음 그 끝을 모릅니다’라고 노래를 읊어 보내는 부분에서 젊은 남자의 열정과 재기가 느껴 진다. 따뜻함과 세련됨 속에 젊고 싱싱한 청춘이 약동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을 주제로 한 우타모노가타리(歌物語)5)의 첫 단 에 잘 어울리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5) 우타모노가타리(歌物語): 와카(노래)를 중심으로 한 짧은 설화적 소설로, 이것을 모아 엮어 놓은 것을 말하기도 한다. ≪이세 모노가타리≫ 외에 ≪야마토 모노가타리≫와 ≪헤이추 모노가타리≫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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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단 서경(西の京)

옛날, 한 남자가 있었다. 옛 도읍인 나라를 떠나 천도한 이 마을에 아직 인가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때였는데, 도성 안 서쪽에 한 여자가 살고 있었다. 그 여자는 세간의 보통 여 자들보다 용모가 뛰어났다. 게다가 용모보다 마음이 더 아 름다웠다. 남자가 없는 몸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랜 시간 그 여자와 친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온 그 순진 한 남자는 무슨 생각이 든 것일까. 때는 3월 1일, 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날 여자에게 노래를 읊어 보냈다.

깨어 있지도 자지도 않고 밤을 지새우고는 봄비를 바라보며 하루를 보냅니다6) おきもせず 寝もせで夜を 明かしては 春のものとて ながめくらしつ

6) “지난밤은 깨어 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밤을 지새우고는 다시 긴 봄비를 바라보며 시름에 젖어 하루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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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단 히지키모(ひじき藻)

옛날, 한 남자가 있었다. 마음에 두고 있던 여자에게 ‘히지키 모7)’라고 하는 해초를 보낼 때 함께 노래를 읊어 더했다.

사랑한다면야 덩굴 우거진 집도 괜찮습니다 소매를 겹쳐 깔고 잘 수 있을 테니까8) 思ひあらば むぐらの宿に 寝もしなむ

ひじきものには 袖をしつつも

니조 황후(二条の后)9)가 아직 미카도10)를 시중들기 전,

7) 히지키모(ひじき藻): 녹미채. 톳. 여기서는 ‘히지키모(ひじきも)’에 ‘까는 물건’이라는 의미의 ‘시쿠모노(しくもの)’를 중첩시켜 음의 유사점을 이용 한 수사법을 사용했다. 8) “애정이 있다면 덩굴풀 우거진 초라한 집에서 함께 잠을 자도 좋습니다. 소 매를 이불로 하는 일이 있어도.” ‘소매를 겹쳐 깔다’라는 표현은 남녀가 잠 자리를 함께했다는 의미로 사용하는데, 소매가 넓은 의복을 여러 겹 겹쳐 입어 이것을 이불 대용으로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9) 니조 황후(二条の后): 후지와라노 나가라(藤原長良)의 둘째 딸인 다카이 코(高子)를 가리킨다. 866년 25세에 세이와(清和) 천황의 여어(女御)가 되 어 2년 후 사다아키라(貞明) 황자를 낳아 877년에는 중궁이 되었다. ≪이 세 모노가타리≫의 주인공이라고 일컬어지는 나리하라(業平)보다 17세 연하로, 다카이코가 입궁하기 이전에 나리히라와 연인 관계였다고 알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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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신분으로 계실 때의 일이다.

있으나 그 진위는 알 수 없다. 니조 황후라고 부른 것은 다카이코의 저택을 니조인(二条院)이라고 칭한 데서 유래한다. 10) 미카도(帝): 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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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단 서편 건물(西の対)

옛날, 도성 동쪽의 고조(五条)11)에 태후12) 마마의 저택이 있었는데, 그 저택의 서편 건물에 한 여자가 기거하고 있었 다. 당시, 그 여자를 마음에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도 마음 깊이 사랑해 찾아오는 남자가 있었다. 그런데 5월 10일경 여자가 다른 곳으로 자취를 감춰 버렸다. 있는 곳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보통 사람이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 었기 때문에 남자는 어찌할 바를 몰라 우울한 마음으로 지 내고 있었다. 이듬해 정월 매화가 한창인 무렵, 남자는 지난 해 이맘때를 그리워하며 그 여자네 집으로 외출해, 매화를 서서도 보고 앉아서도 봤지만, 작년에 봤던 그 느낌하고는 전혀 달랐다. 남자는 눈물을 흘리며 달이 서쪽으로 기울 때 까지 낡은 널마루에 누워 있다가 작년 일을 생각하며 노래 를 불렀다.

달도 바뀌고 봄도 또한 예전과 같지 않구나

11) 고조(五条): 교토 시 중앙부의 동서로 난 거리. 12) 태후: 니조 황후의 고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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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몸 하나만은 원래 그대로인데13) 月やあらぬ 春やむかしの 春ならぬ

わが身ひとつは もとの身にして

남자는 이렇게 읊고는 어슴푸레 날이 샐 무렵 울면서 돌 아갔다.

해제

‘달도 바뀌고’의 노래는 ≪고금 와카집(古今和歌集)≫(905)에 아리와라노 나리히라(在原業平, 825∼880)의 작품으로 실려 있다. 노래의 배경을 기록한 내용도 ≪이세 모노가타리≫와 거 의 유사하다. 그러나 유심히 살펴보면 ≪고금 와카집≫에는 없 고 ≪이세 모노가타리≫에만 있는 내용이 있는데, 남자의 동작 이나 심정을 나타내는 표현들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세 모 노가타리≫는 남자의 입장에서 한층 더 ‘모노가타리적’으로 표 현하려고 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고금 와카집≫ 은 ≪이세 모노가타리≫의 지문을 간결하게 축약하고 있으나 ‘5월 10일경’의 ‘매화가 한창인 무렵’, ‘달이 서쪽으로 기울 때까

13) “달은 옛날의 그 달이 아니고 봄도 옛날 그 봄이 아니다. 이내 몸 하나만이 옛날 그대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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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낡은 널마루에 누워’, ‘작년 일을 생각’한다는 표현 등은 연 인을 추억하는 장면으로, 지극히 서정적이고 깊은 애수와 정취 가 감돌고 있으며 노래의 배경으로 잘 정돈되어 있는 느낌이다. 와카의 작자인 나리히라는 예로부터 ≪이세 모노가타리≫의 주인공이라고 일컬어진다. 모노가타리 안에는 그의 와카가 다 수 포함되어 있으며, 풍류인 나리히라를 연상하게 하는 인물이 여러 단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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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단 관문지기(関守)

옛날,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교토의 동쪽 고조(五条) 부근 에 사는 여자에게 아주 은밀히 다니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곤란한 곳이기 때문에 문으로도 들어가지 못하고 아이들이 넘나들어 무너진 담으로 드나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저택은 사람들의 방문이 잦은 곳은 아니지만 남자의 출 입이 빈번해 저택의 주인이 그 사실을 듣고 남자가 드나드 는 장소에 매일 밤 파수꾼을 세워 지키게 했다. 그 때문에 남 자는 여자를 만나러 가 보지만 만나지 못하고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연고로 남자는 다음과 같이 읊어 보냈 다.

남들 모르게 드나들던 길목의 관문지기는 매일매일 밤마다 잠들어 줄 수 없나14) 人しれぬ わが通い路の 関守は

よひよひごとに うちも寝ななむ

14) “다른 사람들 모르게 숨죽여 다니는 그 길목의 경비는 매일 밤마다 잠들어 주지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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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를 보고 여자는 무척 가슴 아팠다. 그리하여 주인 은 이를 가엾게 여겨 남자가 다니는 것을 허락한 것이다. 실제로는 니조 황후(二条の后)가 아직 보통 신분이었을 때 남자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다니고 있었는데 세간 에 소문이 돌자 황후의 형제들이 그 사실을 알고는 파수꾼 을 세워 단단히 지키게 하신 것이라고 하더라.

해제

4단의 인물과 동일한 여성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전개 상황으 로 보면 5단의 내용이 시기적으로 이전의 일이 된다. 여자가 태 후에 의해 접근할 수 없는 곳(궁궐)으로 자취를 감춰 버리기 전 의 일이다. 남자가 여자를 만나기 위해 몰래 드나드는 것을 안 태후가 세간의 이목을 꺼려 길목을 막고 파수꾼을 두어 지키게 하자 낙담한 남자가 노래를 읊고 돌아간다. 그것을 안 여자가 심히 가슴 아파하자 고조의 태후가 남자를 허락했다는 내용이 다. ‘사람 눈을 피해 몰래 다니고’의 아래 부분은 후주(後注)라 해서 이후에 다른 사람이 붙인 것으로 보는데, 그렇게 보면 시간 적 모순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야기의 배열과 각 이야 기의 독립성, 그리고 이야기의 주인공이 순정 넘치는 인물이라 는 점이 ≪이세 모노가타리≫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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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단 아쿠타가와 강(芥河)

옛날, 한 남자가 있었다. 이 남자에게는 여러 해 동안 마음 에 두고 구혼한 여자가 있었는데, 자신의 신분으로는 도저 히 얻기 힘든 여자였기 때문에 결국 훔쳐 내기에 이르렀다. 남자는 기회를 틈타 무척 어두운 밤에 여자를 훔쳐 내어 도 망친 것이다. 남자가 여자를 데리고 아쿠타가와(芥河)라고 하는 강에 다다랐을 때, 여자가 어둠 속에서 빛나는 이슬을 보고 “저것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지만 남자는 정신이 없 어 대답하는 것도 잊고 있었다. 갈 길은 멀지만 밤도 깊은 데 다가 번개도 격렬하게 치고 비도 심하게 내리므로, 남자는 도깨비가 있는 곳인지도 모르고 황폐한 곳간에 여자를 안쪽 으로 밀어 넣고는 활과 전통을 메고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어서 밤이 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곳간 안에 있던 도깨비가 여자를 한입에 삼켜 버렸다. 여자가 “아 아” 하고 소리쳤지만 번개 치는 소리에 남자는 듣지 못했다. 이윽고 날이 새어 남자가 곳간 안으로 들어가 보니 데리고 온 여자가 없다. 발을 구르며 울어 보지만 아무런 보람이 없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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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흰 구슬은 무엇이오 여자가 물어봤을 때 이슬이라 답하고 사라져 버릴 것을15) 白玉か 何ぞと人の 問ひし時

つゆとこたへて 消えなましものを

이것은 이후의 니조 황후(二条の后)가 사촌인 여어(女 御)16)를 시중들듯이 지내고 계실 때의 일로, 그 자태가 매

우 아름다워 한 남자가 약탈해 도망가는 것을 오라버니인 호리카와 대신(堀河の大臣)과 장남 구니쓰네 대납언(太郎 国経の大納言)이 뒤쫓아 가 구한 일에서 연유한다. 대신과

대납언이 아직 낮은 관직으로 궁에 입궐할 때 심히 우는 여 자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뒤쫓아 가 가로막고 되찾아 오신 것이다. 그것을 이렇게 도깨비라고 말한 것이다. 황후도 아 직 무척 젊고 보통 신분으로 계실 때의 일이라고 하더라.

15) “‘저것은 흰 구슬입니까?’ 하고 그 사람이 물어봤을 때, ‘이슬입니다’ 대답 하고 그 이슬처럼 사라져 버리면 좋았을 것을.” 16) 여어(女御): 헤이안 시대, 중궁에 버금가는 후궁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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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도깨비 한입(鬼一口)’의 단으로 불리는 유명한 이야기다. 이 단 의 서술은 점층적으로 분위기를 고조하는 방식으로, 특히 도깨 비가 여자를 한입에 삼키는 부분에는 긴장감이 넘친다. 남자가 여자를 약탈해 아쿠타가와 강을 따라 도주하는데 갈 길은 멀고 밤도 깊었다. 게다가 번개도 격렬하게 치고 비도 심하게 내린 다. 아침이 되어 보니 폐허의 곳간 안에 있던 여자가 사라지고 없다. 남자는 발을 구르며 울지만 이미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 부분은 과거형으로 표현해야 맞겠지만 현재형으로 서술함으로 써 독자를 이야기 속 시점으로 안내해 긴장감을 고조한다. 뇌우가 치는 한밤중에 여자를 곳간 깊이 밀어 넣고 남자는 입구 에서 무장한 채 지키는 부분에는, 여자를 단순히 사랑의 대상을 넘어 소중한 보물처럼 여기는 남자의 기분이 드러난다. ‘이것은 이후의 니조 황후(二条の后)가’ 이하는 후주로 보이는데, 도깨 비가 삼켰다고 하는 황당무계한 이야기에 사실을 전제로 한 설 명을 가미해 소문에 대한 흥미를 더하고 있으며, 니조 황후와 남 자의 명예를 지키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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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단 돌아가는 파도(かへる浪)

옛날, 한 남자가 있었다. 교토에 사는 것이 곤란해져 동쪽 지방17)으로 갔는데, 이세(伊勢), 오와리(尾張)18)의 경계 부 근 해안을 걷고 있을 때, 파도가 더없이 하얗게 이는 것을 보 고,

이렇게 점점 멀어지는 교토가 눈에 선한데 부럽게도 혼자만 돌아가는 파돈가 いとどしく 過ぎゆく方の 恋しきに うらやましくも かへる浪かな

라고 읊는 것이었다.

17) 동쪽 지방: 본문에는 ‘아즈마(あずま)’로 되어 있고 한자로는 ‘東’으로 쓴 다. 교토를 기준으로 동쪽 지방을 가리키는데, 그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좁은 의미로는 간토(関東) 지방을 가리킨다. 18) 이세(伊勢), 오와리(尾張): 이세(伊勢)는 지금의 미에 현(三重県)의 대부 분을 가리키며, 오와리(尾張)는 지금의 아이치 현(愛知県) 서북부로 나고 야(名古屋)를 중심으로 하는 지방을 가리킨다. 본문에서는 그 경계지가 무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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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단 아사마 봉우리(浅間の嶽)

옛날, 한 남자가 있었다. 교토에 살기 힘들어진 것일까. 동 쪽 지방으로 가서 살 곳을 찾겠다해서 친구인 남자 한두 명 과 함께 길을 나섰다. 가는 도중 시나노 지방(信濃の国)의 아사마 봉우리(浅間の嶽)19)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 고 이렇게 읊었다.

시나노 지방 아사마 봉우리에 오르는 연기 원근 각지 사람들 신기하게 보겠지20) 信濃なる あさまのたけに 立つけぶり

をちこち人の 見やはとがめぬ

19) 시나노 지방(信濃の国)의 아사마 봉우리(浅間の嶽): 시나노 지방은 지금 의 나가노 현(長野県)을 가리키며 아사마 산(浅間山)은 나가노 현과 군마 현(群馬県)의 경계에 있는 활화산이다. 20) “시나노 지방의 아사마 봉우리에 피어오르는 연기는 여기저기 원근 각지 의 사람들이 보고 모두 신기하게 생각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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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단 아즈마 하향길(東下り)

옛날, 한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자기 자신을 세상에 쓸 모없는 사람이라고 단정 짓고는, ‘교토에서는 살지 않겠다, 동쪽에서 살 만한 곳을 찾겠다’ 해서 떠났다. 그는 이전부터 친구로 지내던 사람 한두 명과 함께 길을 나섰다. 길을 아는 사람도 없어서 이리저리 헤매며 갔다. 그렇게 가다가 미카 와 지방(三河の国)21)의 야쓰하시(八橋)라고 하는 곳에 이 르렀다. 그곳을 야쓰하시라고 부르는 이유는 물이 팔방으로 흘러 다리를 여덟 갈래로 걸어 놓았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말에서 내려 그 습지 한쪽의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주먹밥 을 먹었다. 그 습지에는 가키쓰바타(かきつばた, 제비붓꽃) 가 매우 운치 있게 피어 있었다. 그것을 보고 어느 사람이 “‘가키쓰바타(かきつばた)’라는 다섯 글자를 각 구의 머리에 두고 여정을 읊어라”라고 말하자 남자가 이렇게 읊었다.

가라고로모22) 입고서 친숙해진 아내가 있어서 21) 미카와 지방(三河の国): 지금의 아이치 현(愛知県) 동부를 가리킨다. 22) 가라고로모(唐衣, 韓衣): 일반적으로 중국풍(唐) 의복이라고 일컫지만 원 래 ‘가라(韓)’는 한반도 남부에 있던 나라를 총칭하는 말로, 여기서는 소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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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멀리 떠나온 여행을 되돌아본다23) から衣 きつつなれにし つましあれば はるばるきぬる たびをしぞ思ふ

이 노래를 듣고 모든 사람이 주먹밥 위에 눈물을 떨어뜨 려 마른밥이 불어 버렸다. 일행은 여행을 계속해 스루가 지방(駿河の国)24)에 다다 랐다. 우쓰 산(宇津の山)에 도착해 보니 지금부터 자신들 이 헤치고 지나가야 할 길이 굉장히 좁은 데다가, 덩굴나무 와 단풍나무가 무성해 왠지 모르게 불안하고 터무니없는 일 을 당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던 차에 한 수행자를 만났다. “무슨 연유로 이런 길을 걷고 계신 것입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이전에 교토에서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 래서 교토에 계신 그분에게 전해 달라고 편지를 써서 맡겼 다.

가 넓고 옷자락이 복사뼈까지 내려오며 겉섶과 안자락을 깊이 여미어 입 는 옷을 가리킨다. 23) “교토에는 긴 세월 친숙하게 지내던 아내가 있어서, 아득히 멀리 이곳까지 떠나온 여행을 절절히 슬프게 생각한다.” 교토에 있는 아내가 그리워 눈 물을 흘린다는 내용이다. 24) 스루가 지방(駿河の国): 지금의 시즈오카 현(静岡県)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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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루가 지방 우쓰 산25)에 있지만 현실에서도 꿈에서도 당신을 만나지 못했어요 駿河なる うつの山辺の うつつにも 夢にも人に あはぬなりけり

후지산을 보니 오월 말이라고 하는데도 눈이 하얗게 내 려 쌓여 있다. 그것을 보고 노래를 읊었다.

시절을 잊은 산은 후지로구나 어느 때라고 어린 사슴의 등에 눈 내려 쌓이는가26) 時しらぬ 山は富士の嶺 いつとてか 鹿子まだらに 雪のふるらむ

그 산은 이 교토에 비유하자면 히에이 산(比叡山)27)을 스무 개 정도 겹쳐 쌓은 만큼의 크기로, 모양은 소금가마 같 25) 우쓰 산: 여기서 ‘우쓰(うつ)’는 ‘현실(うつつ)’이라는 의미로 사용했으며, 꿈을 뜻하는 유메(夢)라는 말과 대구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와카는 ‘현실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에 와 있지만 현실에서는 물론 꿈에서도 당신 을 만날 수 없습니다’라는 의미가 된다. 26) “계절을 잊은 산은 후지의 봉우리구나. 도대체 지금이 어느 때라 생각해 어린 사슴의 등에 또 눈이 내려 쌓이는 것일까.” 27) 히에이 산(比叡山): 교토 시 북동부와 시가 현(滋賀県)의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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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다. 계속해서 나아가니 무사시 지방(武蔵の国)28)과 시모우 사 지방(下総の国)29) 사이에 있는 무척 큰 강에 이르렀다. 그것을 스미다 강(隅田河)이라고 했다. 그 강가에 모여 앉 아 교토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으려니 ‘한없이 멀리도 왔구 나’라는 마음이 들어 슬퍼하고 있는데, 나룻배 사공이 “빨리 배에 타라. 날도 저문다”라고 재촉한다. 그래서 배에 올라 타 건너려고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왠지 괴로운 심정이 되 어 교토에 두고 온 사랑하는 여자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는 데, 그때 부리와 다리가 빨갛고 흰색 털을 가진 도요새 정도 크기의 새가 물 위에서 놀며 물고기를 잡아먹고 있었다. 교 토에는 없는 새라서 일행은 그 이름을 아무도 몰랐다. 그래 서 사공에게 물으니, “이것이 바로 미야코도리(都鳥)30)”라 고 말하는 것을 듣고,

28) 무사시 지방(武蔵の国): 지금의 도쿄 대부분과 사이타마 현(埼玉県)과 가 나가와 현(神奈川県) 일부를 포함한다. 29) 시모우사 지방(下総の国): 지금의 지바 현(千葉県) 북부와 이바라키 현 (茨城県) 일부를 포함한다. 30) 미야코도리(都鳥): 교토의 새라는 의미이지만, 교토 출신인 일행들조차 모르는 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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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불린다면 얘기를 들어 보자 미야코도리 사랑하는 사람은 잘 지내고 있는지31) 名にしおはば いざ言問はむ みやこどり

わが思ふ人は ありやなしやと

라고 읊으니 배 위의 일행은 모두 훌쩍이며 우는 것이었다.

해제

유명한 ‘아즈마 하향길(東下り) 단’이다. 이 단은 ≪고금 와카 집≫의 ‘가라고로모’, ‘그리 불린다면’의 노래를 중심으로, ‘스루 가 지방’, ‘시절을 잊은’의 노래를 더해 구성하고 있으며, ≪고금 와카집≫에서는 가벼운 소요의 여행이었던 것을 피치 못할 사 정으로 도읍을 떠나는 내용으로 바꾸었다. 도읍에서 멀어지면 서 점차로 여정이 고조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고금 와카 집≫과 비교하면 지명을 소개하려는 의식이 강한 것이 특징이 다. ‘그곳을 야쓰하시라고 부르는 이유는 물이 팔방으로 흘러 다리를 여덟 갈래로 걸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 산은 이 교토에 비유하자면 히에이 산(比叡山)을 스무 개 정도 겹쳐 쌓은 만큼 의 크기로, 모양은 소금가마 같았다’, ‘그것을 스미다 강(隅田

31) 원문의 첫 구가 여섯 자로 되어 있어 한글도 여섯 자로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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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이라고 했다’ 등이 그것이다. 작자는 교토에 있으므로 교토

를 ‘이’, ‘이곳’ 등의 근칭으로 부르고 여행지를 ‘그’, ‘그곳’ 등의 대칭으로 부른다. 이러한 지명 설명은 독자인 교토인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며, 거기서 작자의 창작의식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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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단 논 위의 기러기(たのむの雁)

옛날, 한 남자가 무사시 지방까지 헤매며 걸어갔다. 그리고 그 지방에 사는 여자에게 구혼을 했다. 여자의 아버지는 다 른 사람과 결혼시키겠다고 말했지만 어머니는 고귀한 신분 의 남자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보통 신분 이고 어머니는 후지와라(藤原)씨32) 출신이었다. 그런 이유 로 가문이 좋은 사람에게 딸을 맡기려고 생각한 것이다. 그 래서 사위로 삼으려는 남자에게 어머니는 다음과 같은 노래 를 읊어 보냈다. 그 여자가 사는 곳은 이루마 군(入間郡) 미 요시노(三芳野)33) 마을이었다.

미요시노의 논 위의 기러기도 그저 오로지 당신 계신 쪽으로 간다 하여 웁니다34)

32) 후지와라(藤原)씨: 헤이안 시대 최고의 귀족으로, 도읍에서 떨어진 먼 지 방에서도 그 세력이 강성했음을 알 수 있다. 33) 이루마 군(入間郡) 미요시노(三芳野): 이루마 군은 사이타마 현(埼玉県) 에 위치한 곳으로 메이지 시대에 고마 군(高麗郡)이 편입되어 지금도 여 전히 같은 지명으로 불린다. 미요시노의 지명은 어디를 가리키는지 명확 하지는 않지만 당시 논이 넓게 분포되어 있던 곳으로 파악된다. 34) “미요시노의 논 위에 내려앉은 기러기도 새 쫓는 딸랑이 줄을 잡아당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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みよしのの たのむの雁も ひたぶるに 君が方にぞ よると鳴くなる

이 노래에 사위로 맞으려는 남자가 응답한 노래에는,

나의 곁으로 오고 싶어 운다는 미요시노의 기러기를 어떻게 잊을 수 있으리오 わが方に よると鳴くなる みよしのの たのむの雁を いつか忘れむ

라고 적혀 있었다. 교토를 떠나 먼 지방에 와서도 역시 남자 의 이런 행동은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해제

10단에서 15단까지는 이른바 ‘동국 이야기(東国物語)’라고 부 르는데, 이 단들은 지리적으로 볼 때 ‘아즈마 하향길’에 관련한 내용으로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 10단은 교토에서 온 남자와 무 사시 지방에 사는 여자의 이야기다. ‘후지와라씨 출신’인 여자

한쪽으로 몰려들어 소리를 높이는 것처럼, 내 딸도 오로지 당신을 사모해 당신 쪽으로 마음을 기울이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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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어머니가 사위로 귀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내용을 통해서 후지와라 씨가 다른 씨족을 제압해 귀족의 중심으로 권력을 확 립해 나가던 시기에 대한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지방관 이 되어 지방으로 내려간 중류 혹은 하류 귀족 중에는 지방에 정 착해 살면서도 과거의 꿈을 잊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 었던 사실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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