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향 시선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은 인류의 유산으로 남을 만한 작품만을 선정합니다. 오랜 시간 그 작품을 연구한 전문가가 정확한 번역, 전문적인 해설, 풍부한 작가 소개, 친절한 주석을 제공하는 고급 시 선집입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조향 시선 조향 지음 권경아 엮음
대한민국,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4
편집자 일러두기 ∙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 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 이로 추천했습니다. ∙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 석을 덧붙였습니다. ∙ 이 책은 ≪조향 전집≫(열음사, 1994), ≪현대국문학수(現代國 文學粹)≫(행문사, 1948), 개정증보판 ≪현대국문학수(現代國 文學粹)≫(자유장, 1952), ≪대학국어 현대문학(大學國語 現代 文學)≫(자유장, 1958), ≪한국 전후 문제 시집(韓國戰後問題詩 集)≫(신구문화사, 1961), 그 외 시인이 작품을 발표한 잡지나 신
문을 저본으로 삼았습니다. ∙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습니 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 했습니다. ∙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 잡았습니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습니다. ∙ 주석은 현대에는 쓰지 않는 생소한 단어, 현대의 독자들이 쉽게 뜻을 알기 어려운 한자어, 원전의 글씨가 잘 안 보여 엮은이가 추 정한 글자, 사투리, 토속어, 북한어 등 설명이 필요한 경우에 달았 습니다.
차례
初夜 ·······················3
EPISODE ·····················5 조개 ·······················6 오늘에 부르는 너의 이름은 ·············8 體操 ······················11 花粉의 거리 ···················13
한가위 ·····················16 가을과 少女의 노래················18 大淵里 抒情 ···················20
BON VOYAGE! ·················24 1950년대의 斜面 ·················28 Normandy 航路 前夜 ···············32 不毛의 에레지 ··················36
바다의 層階 ···················38 透明한 午後 ···················40
SARA DE ESPERA(抄)···············43 검은 DRAMA···················55
어느 날의 MENU ·················57 어느 날의 地球의 밤 ···············59 왼편에서 나타난 회색의 사나이···········61 秋風感別曲 ···················64
검은 神話 ····················66 綠色의 地層 ···················69
푸르른 영원 ···················71 綠色 倚子가 앉아 있는 베란다에서 ·········74 文明의 荒蕪地 ··················77
Salomé의 달밤 ··················80 永訣 ······················83
그날의 蜃氣樓 ··················86 검은 SERIES ···················89 검은 전설 ····················93 植物의 章(抄) ··················95
장미와 수녀의 오브제 ···············97 ‘쥬노’의 독백 ··················100 물구나무선 세모꼴의 抒情 ············102 검은 Cantata ··················104 밤 ·······················107 죄 ·······················108
ESQUISSE ···················110 砂丘의 古典 ··················114
코스모스가 있는 층계 ··············116 붉은 달이 걸려 있는 風景畫············119 聖바오로 病院의… ···············123
검은 否定의 arabesque··············126 검은 ceremony ·················128 낡은 쇼우 무대에 ················130 하얀 傳說들···················131 地球 慰靈塔 위에… ···············133 處處春芳動 ···················135
칸나가 불을 켜 들면 ···············138 太陽의 經水·끈끈이주걱·搔爬手術 ·······140
쥐꼬리망치科에 속하는 詩 ············145 一同用 辨證法 모퉁이에서 ············147
디멘쉬어 프리콕스의 푸르른 算數 ·········148 詩篇들은 옴니버스를 타고 ············153
운동학적 처녀성…················157 木曜日의 하얀 肋骨 ···············158
해설 ······················165 지은이에 대해··················185 엮은이에 대해··················188
조향 시선
初夜
일즉이 汚辱을 배우지 못한 박달나무 處女林이래도 좃켓소!
한 자옥 드러놋키도 못 미처 지 스집고 净潔한 薰香에 마음 되려 하잔홀 적이 두려워-.
쌍 燭臺 는 불빛! 둘리운 屛風엔 鴛鴦 한 쌍이 미럽게 헤이고 속삭이고-.
댕그렁! 밤이 기피 가도 벽만이 그러케 행결 정다윗든지 新婦는 純朴을 안고 그만 面壁
-마치 한 개 白膏 女像! 鴛鴦衾枕이 하마트면 울엇슬걸 新郞의 서투른 손이나마
3
고즈넉이 쓰다듬엇기에-.
≪매일신보(每日申報)≫, 1940
4
EPISODE
열 오른 눈초리, 하잔한 입모습으로 소년은 가만히 총 을 겨누었다. 소녀의 손바닥이 나비처럼 총 끝에 와서 사뿐 앉는다. 이윽고 총 끝에선 파아란 연기가 몰씬 올랐다. 뚫린 손바닥의 구멍으로 소녀는 바다를 내다보았다.
-아이! 어쩜 바다가 이렇게 똥구랗니?
놀란 갈매기들은 황토 산타바기에다 연달아 머릴 처박 곤 하얗게 화석이 되어 갔다.
개정증보판 ≪현대국문학수(現代國文學粹)≫, 자유장(自由莊), 1952
5
조개 朴生光 氏 畫 <조개>에 題함
내 귀는 조개껍질인가 바다소리만 그리워라 -JEAN COCTEAU, <귀>
그믐 새한 밤하늘에 달 차라리 파아랗게 질리는 꿈이다
어린 양 떼처럼 어디로들 몰려갔느냐 별 별 푸른 별들아 하늘의 목동의 군호 소리도 없는데…
밤 새해질수록에 하얘만 지는 바다 모랫벌 뱅뱅 인 螺旋 주류에 앵 우는 바람이 그리워 허울 좋게 소라는 누었다
6
조개도 불퉁이도 아가미 벌려 밤을 마시고 바닷지렁이 길게 늘어져 있네
한 오리 불어 넘는 로망(ROMAN)의 바람도 없이 바다의 어린 겨레는 칠 같은 밤에 차겁다 한사ᄒ고 외롭다 자꾸만 멀어지는 바다 우짖음 싸아늘히 회도는 鄕愁야!
流星이려거든 동으로 흘러라
밤이 한 고개 넘어 騷然한 새벽엔 굵은 행동의 곡선 다시는 늘이어라 바다는 짙푸른 생명의 영원에도 닫는다
(4281년 정월, 晋州 茶房 “晝廊”에서) ≪영남문학(嶺南文學)≫, 1948
7
오늘에 부르는 너의 이름은 -回想의 노래
˙ ˙ 3層 유리창에 삘딩 비구름 이겨 붙인 무거운 하늘이 내려앉으면 ˙ ˙ 위를 비둘기 떼 훝어져 날고 멀리 도옴 ˙ ˙ ˙ ˙. 낯설은 東京의 황혼은 회색 파노라마 이윽고는 황홀한 異域의 밤이 켜진다.
밤마다 듣는 빗소리 초록 초로록 다시 내일에 겪어얄 내 헌 구두의 눅눅한 촉감만 슬퍼! 주판알 몇 개나 튀기면 내 고향까지의 里程이냐? 꿈처럼 먼 곳에 가난한 짓밟힌 祖國이 산다. 기약은 무너진 돌담장이다.
5월. 바다와 태양이 그림책인 양 눈부시던 朝鮮 海峽 東海 道線 차창에 장다리꽃 노오랗게 흩어져
너는 남고 나만 혼자 먼 異域으로 가던 날
8
그래도 우리는 ‘희망’이란 두 글자를 그리는 어루만졌 더니라 ˙ ˙ ˙ ˙ 의 嘖水처럼 화려해얄 청춘이 한낮 로오타리 버려진 기약으로 소리 없이 무너지던 날 어슬막엔 니코라이의 종소리도 葬送의 가락 되어 가슴을랑 고이 수놓았고 ˙ ˙ ˙ ˙ 祖國도 사랑도 잃어버린 젊은 에뜨랑제 나는 일학년처럼 슬픔만 열심히 읽었더니라.
龜浦랑, …三浪津…
그래 너는 京釜線 막차 창에 기대어 팔려 가는 염소처럼 순히 갔느냐? 새는 날엔 이미 서울이 너의 현실이었더냐? 사랑도 맹세도 팽개쳐 버린 그날의 垠아!
이제 묶었던 쇠사슬 끊어 버리고 벅찬 祖國의 아침은 소연하건만 몇 산줄기 강 마을 지나 38선 그 너머에서 너는 외로우냐? 행복의 지도 그리는 女人이냐?
9
아아. 흘러간 일곱 해! 오늘에 부르는 네 이름은 아지랑이 꿈처럼 아물아물 하라는 것. ˙ ˙ 의 흩어진 쪼각이다. 낡아 버린 필름
4281. 1. 26 ≪영남문학≫, 1948. 10
10
體操 -어느 女學校에서
오후 한시 종이처럼 하얀 햇볕 아래 체조가 활짝 핀다. 信號旗 모양 가벼이 움직이는
체조 선생님의 두 팔 그 뒤엔 짙푸른 하늘이 바싹 다가선다.
까만 부루우라로 발끈 자른 눈[雪]빛 토실한 허벅지 허벅지 허벅지 허벅지…! 오 수많은 허벅지들이 비둘기 떼인 양 파다기는 마당
부챗살 모양으로 벌려지는 체조 위로 수렛살처럼 펼쳐지는 그림자 위로 구름이 흐른다. 비행기가 으르렁거린다. 잠자리가 짓궂은 線을 풀어 놓는다.
11
만지면, 樹液처럼 향긋한 젊음이 터져 나올 소녀 소녀 소녀
소녀…! 아 소녀들의 청춘의 噴水여.
≪대학국어(大學國語) 현대국문학수(現代國文學粹)≫, 행문사(行文社), 1952
12
花粉의 거리
하얀 횟가루 벽에 상냥히 바람 닿으면 넓직한 푸러터너쓰 잎새 그림자 아침을 뒤흔드는 새 나라의 거리
창장 걷어라! 진땀 흘리던 악마로운 밤은 갔다 드르르 밀어 올려 보렴! 빠금히 푸르른 바다가 뵈는 유리창이 아니냐
팔 부르걷고 해묵은 먼지 털자무나 새 나라의 아침, 의망의 꽃다발 나눠 놓은 거리마다 가뜬한 발부리들 소란히 오가는 거리마다 너도 웃고 나도 즐겁고 아아 인제는 굳세자고 손 잡고 맹세하자
누가 무에래도 우리사 슬픔만 외로움만 겪은 사람들 동아리 싸움을랑 기어이 몰아내자 꼭두각시 놀음에도 우리는 지쳤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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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모자라면 내 잇고 내 슬프걸랑 그대 나의 등어릴 두들겨라!
찌그러진 공장 다시는 이룩하여 보믜 난 기계마다 기름 치고 동력 넣어 너도 나도 한사ᄒ고 입고 싶구나 기름 밴 노동복이…
…그래 너는 색안경 붙이고 아세지렝을 다루어라 나는 철판 사뭇 늘여 내마 얼마나 벅차게 보람 있는 일일 게냐 겨레와 나라 위하여 힘껏 두드리는 햄머어 소리여!
굴그은 팔 까맣게 들어 올려 찜짝 잡아당기는 크레엥 웅성거리는 항구마다 우리 상품 실어 내는 뱃고동 소리 長廊처럼 늘어선 곳집에는
겨레들 풍성히 나눠 가질 물건 산떼미로 쌓아 올려라 인제는 우리도 굳세자고 목을 안고 기뻐하자!
그리하여 나만 가지려는 야심들 팽개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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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촐하고 부지런한 마음들랑 기르고 북돋우어 눈부시게 새로운 紳話, 東方의 門에 거룩히 새기자 아아 우리 모두 손잡고 輪舞할 꽃가루 펄펄 날리는 거 리여!
≪대학국어 현대국문학수≫, 행문사,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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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우리의 하얀 系譜를 자꾸만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 어 려언히 新羅야!
스란치맛자락1) 자르르 끌면서 노래 춤 온갖 희롱 꽃밭처럼 난만하여 팔월에도 가윗날 天下燈 달 아래 호사한 궁궐 촉촉이 젖어
밤새워 한밤을 꼬박 새워 가며 즐기던 會蘇 會蘇 그 哀雅하던 회소의 가락 그립치 않니?
…역사 흘러 여기 몇 백 천 구비 구비 돌아 이날 다시 한가윗날 우리 우리 겨레들 같이 즐기는 이날 옥아 막딸아 때때옷 채려입어라
1) 스란치맛자락: 스란치마의 자락. ‘스란치마’는 치맛단에 금박을 박아 선 을 두른 긴 치마로 폭이 넓고 입었을 때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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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엘 가자 北邙 외로운 등성이에도 풍성히 가위는 왔겠구나
여느 때엔 보리죽 한 그릇이 어려워도 이날만은야 하얀 햇쌀밥에 온마리 생선 굽고 나물 국 지짐 맛나게 장만하여 조상의 영혼 앞에 고소란이 바쳤다가 집안 이웃 동네 사람들과 나누어 즐기는 이 나라의 풍속 오 풍속이 아름다워라
밥상 모롱이 죄그만 공간을 차지하여 웅크리고 앉은 고양이 양양 맛나거라 삽살이 네 눈이 너희도 생선 한 동강 이밥 몇 술에 이 즐거운 날 이 땅에 태어난 삶을 같이 즐겨라 거룩한 평화론 겨레의 풍속에 이 커다란 풍년의 혜택에 함추룩이 젖어라 젖어라
≪대학국어 현대국문학수≫, 행문사,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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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과 少女의 노래 -Dessin 抄
˙ ˙ ˙에 하이얀 洋館 포오취 소박한 의자가 하나 앉아 있다.
少女는 의자 위에서 지치어 버려 ˙ ˙ 를 사린다 낙엽빛 팡세
나비처럼 가느닿게 숨 쉬는 슬픔과 함께…
바람이 오면 빨간 담장이 잎 잎새마디가 흐느낀다 ˙ ˙ ˙ ˙! 영혼들의 한숨의 코오러쓰 ˙ ˙ ˙ 에는 詩集의 쪽빛 타이틀 ˙ ˙ ˙ 가 뒤척이고, 化石이 된 뉴우드 ˙ ˙ ˙ ˙ 인양 사내는 해쓱한 테류우젼 ˙ ˙ ˙ 을 비꼬아 쥐면서 카아텐 납덩이로 가라앉은 바다의 빛을 햝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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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처럼 먼 기억의 스크링 그리워지는 황혼이 少女의 살결에 배어들 무렵
가을은 大理石의 체온을 기르고 있었다.
≪문예(文藝)≫ 제2권 제2호,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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