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不語 자불어
<지식을만드는지식 천줄읽기>는 오리지널 고전에 대한 통찰의 책읽 기입니다. 전문가가 원전에서 핵심 내용만 뽑아내는 발췌 방식입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천줄읽기
子不語 자불어 원매(袁枚) 지음 박정숙 옮김
대한민국,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5
편집자 일러두기 ∙ 이 책은 1993년 장쑤구지출판사(江蘇古籍出版社)에서 출판한 ≪원매 전집(袁枚全集)≫에 수록된 ≪자불어≫와 ≪속자불어≫ 를 저본으로 삼아 번역했습니다. ∙ ≪자불어≫ 24권과 ≪속자불어(續子不語)≫ 10권 중 50편의 이야기를 골라 전문을 옮겼습니다. ∙ 주석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옮긴이가 덧붙인 것입니다. ∙ 독자의 편의를 위해 번역문과 원문을 나란히 실었습니다. ∙ 괄호 안의 말과 바깥 말의 독음이 다를 때, 괄호가 중복될 때에 도 [ ]를 사용했습니다. ∙ 외래어 표기는 현행 한글어문규정의 외래어표기법을 따랐습니 다.
차례
해설 ······················ix 지은이에 대해 ··················xvi
1. 진우량의 묘를 무너뜨리다(毁陳友諒廟) ······3 2. 동현이 신이 되다(董賢爲神) ···········7 3. 성황이 대신해 아내를 훈계하다(城隍替人訓妻) ··13 4. 시체가 돌아다니며 원망을 호소하다(尸行訴寃) ··18 5. 악인이 자라로 환생하다(惡人轉世爲鱉)······22 6. 성황이 귀신을 죽여 또다시 귀신이 되지 않도록 하다(城 隍殺鬼不許爲聻) ·················25
7. 큰 복은 흠향하지 않는다(大福未享) ·······32 8. 오삼복(吳三復) ················36 9. 남산의 단단한 돌(南山頑石) ···········40 10. 농서의 성황신은 미소년이다(隴西城隍神是美少年) 48 11. 성황신이 술을 탐닉하다(城隍神酗酒) ······51 12. 구 수재(裘秀才) ···············56
13. 우루무치 성황(烏魯木齊城隍) ·········60 14. 관찰사 장소의가 계림의 성황신이 되다(張少儀觀察爲 桂林城隍神) ···················63
15. 흉악한 신이 형틀에 채워지다(煞神受枷) ·····67 16. 성황이 발가벗고 옷을 찾다(城隍赤身求衣) ····70 17. 포주의 염효(蒲州鹽梟) ············72 18. 관우 신이 소송 사건을 판결하다(關神斷獄) ···75 19. 귀신이 사람을 기만해 큰 난리를 일으키다(鬼神欺人以 應劫數) ·····················78
20. 석인이 돈내기하다(石人賭錢) ·········80 21. 영벽현의 여인이 시체를 빌려 영혼이 돌아오다(靈璧女 借尸還魂) ····················82
22. 우두대왕(牛頭大王) ··············84 23. ≪동의보감≫에는 여우를 다스리는 방법이 있다(≪東 醫寶鑑≫有法治狐)················86
24. 여몽이 얼굴에 분칠하다(呂蒙塗臉) ·······89 25. 정세구(鄭細九) ················92 26. 앵교(鶯嬌) ··················94 27. 압폐(鴨嬖) ··················96 28. 쥐가 임서중을 물어뜯다(鼠嚙林西仲) ······98 29. 여우의 시(狐詩) ···············100
30. 왜인이 아래 구멍으로 약을 복용하다(倭人以下窺服藥) ························102 31. 태국의 당나귀 아내(暹羅妻驢)·········103 32. 반고의 발자취(盤古脚迹) ···········104 33. 그림을 훔치다(偸畵) ·············105 34. 인면두(人面豆) ···············107 35. 금아돈(金娥墩) ···············108 36. 천비신(天妃神) ···············110 37. 만년송(萬年松) ···············113 38. 팽조가 상여에 들리다(彭祖擧柩)········114 39. 개가 통판을 쫓아내다(犬逐通判)········116 40. 녹랑과 홍낭(綠郞紅娘) ············118 41. 맥(貘) ···················120 42. 노파가 이리로 변하다(老嫗變狼)········121 43. 학귀(瘧鬼) ·················123 44. 염색 가게의 방망이(染坊椎) ··········125 45. 바다 승려(海和尙) ··············128 46. 산 승려(山和尙) ···············130 47. 13마리 고양이가 같은 날 순절하다(十三猫同日殉節) ························132 48. 강시는 밤에 살지고 낮에는 야위다(僵尸夜肥晝瘦) 133
49. 하늘에 배가 지나가다(天上過船)········134 50. 파리가 사람의 병을 치료하다(蒼蠅替人治病) ··135
옮긴이에 대해··················137
3. 성황이 대신해 아내를 훈계하다(城隍替人訓妻)
항주(杭州)37) 망선교(望仙橋)의 주생(周生)은 유학을 업으 로 살았다. 부인이 흉악해 자주 그 시어머니를 증오했다. 매 해 명절이 다가오면 삼베 옷을 입고 당(堂)에서 시어머니에 게 절하며 죽기를 바라고 저주했다. 주씨는 효성스러우나 나약해 아내를 저지할 수 없었기에 그저 날마다 상소를 갖 추어 성황신에게 기도하며 아내를 사형에 처해 어머니가 편 안하기를 기원했다. 상소문을 아홉 차례 태웠지만 응답하지 않자 더욱 분노해 이르기를 성황신이 영험하지 않다고 책망 했다. 이날 저녁 꿈에 한 졸병이 와서는 ‘성황이 너를 부른다’고 말했다. 주생이 따라가서 묘에 들어가 꿇어앉았다. 성황이 말했다. “네 아내의 거역하는 꼬락서니를 내가 어찌 모르겠는가? 다만 너의 운명을 조사하니 오직 처가 하나고 후처가 없는 데, 다행히 자식은 둘이다. 너는 효자인데 어찌 후사가 없을 수 있겠는가? 이에 잠시 네 부인을 용서한 것인데, 너는 어
37) 항주(杭州): 지금의 중국 저장성 항저우(杭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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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 두려워하는 것인가!” 이에 주씨가 말했다. “부인의 악함이 이와 같은데 어머니는 어찌하란 말입니 까? 게다가 저와 부인은 부부의 정이 이미 끊어졌는데 어찌 또 후사가 있겠습니까?” 성황이 물었다. “너는 앞서 어떻게 결혼했는가?” 주생이 대답했다. “범씨(范氏)와 진씨(陳氏)가 중매를 했습니다.” 이에 두 사람을 잡아 이르게 해서 책망하며 성황이 말했 다. “저 아녀자가 선하지 못한데 네가 중매를 해서 효자에게 시집을 보냈으니, 재해가 모두 너로 인함이다.” 그러고는 곤장을 치라고 소리쳤다. 두 사람은 불복하며 말했다. “저는 무죄입니다. 여자는 규중에 살기 때문에 그녀가 현명한지 어떤지 저희들은 알 방법이 없습니다.” 주생 또한 벌을 면해 줄 것을 대신 기원하며 아뢰었다. “두 사람은 좋은 뜻에서 중매를 한 것에 불과하고, 중매 채를 탐해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니 어찌 죄가 있겠습니까. 저의 얕은 소견으로는, 부인들은 비록 흉악해도 귀신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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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워해 불경을 읽으며 부처에게 숭배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 다. 오직 성황신께서 아내를 불러 그녀에게 겁을 주시거나 공손하지 못한 것을 고쳐 효성스럽게 해 주시길 바라오니, 사건을 아직 결정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에 성황이 말했다. “옳도다. 너희들은 모두 선한 부류이기에 좋은 얼굴로 대했으나, 부인은 흉악하기에 내가 모습을 바꾸지 않으면 위엄을 보여 주기에 부족할 것이니 너희는 두려워 말라.” 남색 얼굴의 귀신에게 명해 큰 열쇠를 들고 그 처를 감금 하게 하고, 옷소매로 얼굴을 가리더니 순식간에 얼굴색을 쪽빛으로 바꾸고 붉은 머리에 눈을 부릅떴다. 또 양옆의 칼 집을 든 병졸을 불러들였는데 모두 사납고 흉악했으며, 기 름·쇠사슬·고기 맷돌을 뜰 앞에 줄지어 놓았다. 잠시 뒤 귀신이 부인을 끌고 오니, 부인이 두려워하며 계단 앞에 꿇 어앉았다. 성황이 사나운 소리로 그 죄상을 들어 말하며 장 부를 가져와 보여 주고서는 야차(夜叉)38)에게 끌고 가 피부 를 벗겨 기름 솥에 담그라고 명령했다. 부인이 애원하며 죄 를 사죄하고 이후에는 감히 흉악하게 굴지 않겠다고 빌었 다. 주씨와 두 중매자가 그녀를 대신해 용서해 줄 것을 청하
38) 야차(夜叉): 험악하게 생긴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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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성황이 말했다. “네 효성스런 남편을 생각해 잠시 너를 용서하니, 또다시 죄를 범하면 이와 같은 형벌이 있을 것이다.” 이에 각기 풀려나 돌아갔다. 다음 날 부부는 이 꿈이 모 두 같았음을 알아차렸다. 부인은 이로부터 그 시어머니에 게 잘 대했고, 훗날 과연 두 아들을 낳았다.
杭州望仙橋周生, 業儒. 婦凶悍, 數忤其姑. 每歲逢佳節, 着 麻衣39)拜姑於堂, 詛其死也. 周孝而懦, 不能制妻, 惟日具 疏禱城隍神, 願殛40)婦以安母. 章凡九焚, 不應, 乃更爲忿 語, 責神無靈. 是夕, 夢一卒來曰: “城隍召汝.” 周隨往, 入跪廟中. 城隍曰: “爾婦忤逆狀, 吾豈不知? 但査汝命只一妻, 無繼妻, 恰有子 二人. 爾孝子, 胡可無後? 故暫寬汝婦, 汝何嘵嘵!” 周曰: “婦惡如是, 奈堂上何? 且某與婦恩義旣絶, 又安得有嗣?” 城隍曰: “爾昔何媒?” 曰: “范, 陳二姓.” 乃命拘二人至, 責曰: “某女不良, 而汝爲媒, 嫁於孝子, 害皆由汝.” 呼杖之. 二人 不服, 曰: “某無罪. 女處閨中, 其賢否某等無由知.” 周亦代 爲祈免, 曰: “二人不過要好作媒, 非貪媒錢作誑語者, 與伊
39) 마의(麻衣): 삼베옷. 40) 극(殛): 사형에 처하다. 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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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罪? 據某愚見, 婦人雖悍, 未有不畏鬼神念經拜佛者, 但 求城隍神呼婦至, 示之懲警, 或得改逆爲孝, 事未可定.” 城隍曰: “甚是. 但爾輩皆善類, 故以好面目相向; 婦凶悍, 非吾變相, 不足示威, 爾輩無恐.” 命藍面鬼持大鎖往擒其 妻, 而以袍袖拂面, 頃刻變成靑靛色, 朱髮睜眼; 召兩旁兵 卒執刀鋸者, 皆猙獰凶猛, 油鐺肉磨41), 置列庭下. 須臾42), 鬼牽婦至, 觳觫跪階前. 城隍厲聲數其罪狀, 取登注冊示之, 命夜叉拉下剝皮放油鍋中. 婦哀號伏罪, 請後不敢. 周及兩 媒代爲之請. 城隍曰: “念汝夫孝, 姑宥43)汝再犯者有如此 刑!” 乃各放歸. 次日, 夫婦證此夢皆同. 婦自此善視其姑, 後果生二子.
41) 유당육마(油鐺肉磨): 기름·쇠사슬·고기 맷돌. 42) 수유(須臾): 잠시. 43) 유(宥): 용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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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농서의 성황신은 미소년이다(隴西城隍神是美 少年)
강희(康熙) 연간 농서(隴西)94) 성황의 소상은 검은 얼굴에 수염이 있어 모습이 자못 위엄스러웠는데, 갑자기 건륭(乾 隆) 연간에 소상이 미소년으로 바뀌었다. 혹자가 암자의 스
님에게 물으니 스님이 말했다. “장로에게 들으니, 옹정(雍正) 7년 사(謝)××가 나이 스 물이 되어 그 스승을 따라 사묘에서 공부를 했다. 밤에 선생 이 외출하자, 사씨는 달구경을 하며 시를 읊조리다가 어떤 한 사람이 기도하는 것을 보고서는 신상(神像) 뒤에 숨어 엿보았다. 그 기도를 들으니, ‘오늘 밤에 물건을 훔치게 되 면 반드시 세 가지 제물을 가져와서 바치겠습니다’라고 했 다. 이에 비로소 도둑임을 알았다. 마음속으로 ‘신은 총명하 고 정직한 사람인데 어찌 제물에 마음이 동할 것인가’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도둑이 도리어 와서는 다시 소원을 빌었 다. 문하생은 마음이 크게 불편해 문장을 지어 그 신을 책망
94) 농서(隴西): 지금의 간쑤성(甘肅省) 동남부 지역. 농산(隴山) 서쪽 부근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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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신이 밤에 그의 스승의 꿈에 나타나 장차 문하생에게 재앙이 내릴 것이라고 했다. 스승이 잠에서 깨어나 문하생 에게 물으니, 문하생은 변명을 하며 잡아뗐다. 스승이 분노 해 그 상자를 수색하자 마침내 신을 책망하는 원고가 있으 므로 화를 내며 불살랐다. 이날 밤 신이 비틀거리며 뛰어와 서는 ‘내가 네 제자가 신명에 불경스러움을 말하고 벌을 내 리고자 한 것은 다만 그를 겁주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네가 그의 원고를 불살라 행로신(行路神)에 의해 동악(東岳)95) 에게 상주되는 바람에 지금 곧 나를 관직에서 면하고 심문 하고자 한다. 한편으로 이 성황 자리를 상제에게 상주해 너 의 제자로 보충하고자 한다’고 말하고는 울먹이며 물러났 다. 사흘도 되지 않아 소년이 죽었다. 사묘 중의 사람들이 말소리를 듣고서 새 성황이 도착했다고 말했다. 뒤를 이은 소상은 검은 수염의 모습에서 미소년으로 바뀌었다.”
康熙間, 隴西城隍塑黑面而髥者, 貌頗威嚴, 忽於乾隆間改 塑像爲美少年. 或問庵僧, 僧曰: “聞之長老云: 雍正七年, 有謝某者, 年甫二十, 從其師在廟讀書. 夜間先生出外, 謝
95) 동악(東岳): 동악대제(東岳大帝). 즉, 태산신(泰山神)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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步月吟詩, 見一人來禱, 乃隱於神後伺96)之. 聞其祝曰: ‘今 夜若偸物有獲, 必具三牲來獻.’ 方知是賊也. 心疑神乃聰明 正直之人, 豈可以牲牢97)動乎? 次日, 賊竟來還願. 生大不 平, 作文責之. 神夜托夢於其師, 將降生禍. 師醒後問生, 生 抵賴. 師怒, 搜其篋, 竟有責神之稿, 怒而焚之. 是夜, 神踉 蹌98)而至, 曰: ‘我來告你弟子不敬神明, 將降以禍, 原不過 嚇嚇他. 你竟將他文稿燒化, 被行路神上奏東岳, 登時將我 革職99)拿問100), 一面將此城隍之位奏明上帝, 卽將汝弟子 補缺矣.’ 唏噓101)而退. 未三日, 少年卒. 廟中人聞呼騶聲, 云是新城隍到任. 嗣後塑像者易黑鬍之貌爲美少年.
96) 사(伺): 엿보다. 97) 생뢰(牲牢): 제물. 98) 양창(踉蹌): 비틀거리다. 99) 혁직(革職): 관직에서 파면하다. 100) 나문(拿問): 심문하다. 101) 희허(唏噓): 울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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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성황신이 술을 탐닉하다(城隍神酗酒)
항주(杭州) 심풍옥(沈豐玉)이 막부인 무강현(武康縣)에 갔 다. 마침 상사(上司)에 강호의 큰 도적을 체포하라는 공문 이 내려와 있는데, 도적의 이름은 심옥풍(沈玉豐)이었다. 막중의 동료 원(袁)××가 심씨에게 장난을 쳐, 붉은 먹으로 ‘심풍옥’이라고 이름을 바꿔 쓰고는 “지금 각처에서 너를 잡 고 있다”고 말했다. 심씨가 노해서 그것을 빼앗아 태웠다. 이날 밤, 심씨가 막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꿈에 귀역 (鬼役)이 갑자기 들어와서는 성황묘에 가두었다. 성황신이 높은 자리에 앉아 “이 살인마, 가증스러운 것!”이라고 꾸짖 어 말하고는 좌우에 명해 형벌을 내리라고 했다. 심씨가 급 히 항주의 수재이고 도적이 아니라고 변명하자, 성황신이 대노해 말했다. “음사(陰司)의 판례에 따라, 인간 세상에서 공문이 와 잡 아 온 사람은 우리 음사에서 협동해 거둔다. 지금 무강현의 문서가 눈앞에 있어 네가 도적이라고 하거늘 너는 망령되게 억지를 부리려고 하는가?” 심씨가 동료 원××가 나쁜 장난을 친 까닭이라고 자세 히 말했지만 신은 듣지 않고 큰 곤장을 가할 것을 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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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씨가 호통을 치며 억울함을 호소하자, 좌우의 귀졸이 몰 래 심씨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황신과 부인이 술을 마시고 취했으니, 너는 다른 아문 (衙門)에 가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게 좋겠다.” 심씨가 성황신의 얼굴이 붉고 눈이 흐릿한 것을 보고서 이미 만취했음을 깨닫고는 부득이 아픔을 참으며 곤장을 받 았다. 곤장이 끝나자, 귀차(鬼差)로 하여금 모처에 압송해 하옥하게 했다. 관성묘(關聖廟)를 지날 때 심씨가 크게 소리치며 억울 함을 부르짖으니, 관제(關帝)가 불러 들어오게 함에 억울한 자초지종을 호소했다. 관제가 노란 종이와 붉은 먹을 취해 판결을 내리며 말했다. “네 말투를 보니 실로 수재로구나. 성황신이 어찌 술을 탐닉해 형벌을 망령되이 내리는가? 응당 재판을 열어 치죄 해야 할 것이다. 원씨는 오랫동안 막중에 있으면서 인명으 로써 장난치니 마땅히 그 목숨을 뺏어야 한다. ××지현의 잘못된 시찰 또한 응당 죄가 있으나 현령이 다른 곳으로 나 간 것을 감안해 3개월의 감봉을 내린다. 심 수재는 음장(陰 杖)102)을 받아 오장(五臟)103)이 이미 상해 다시 살아날 기
102) 음장(陰杖): 음간의 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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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 없으니, 산서(山西) ×× 집안의 아들로 보내어 20세 에 진사가 되게 함으로써 금세(今世)의 원망을 보상할 것이 다.” 재판을 마치자 귀역이 황공해서 머리를 조아리며 흩어 졌다. 심씨는 꿈에서 깨어났는데 배가 아파 참을 수 없었다. 동 료를 불러 그 연고를 말하고서는 사흘 후에 죽었다. 원씨는 이 이야기를 듣고서 급히 관을 떠나 귀향했지만 얼마 후 피 를 토하고 사망했다. 성황묘의 신상이 무단히 스스로 엎어 졌다. 지현은 역마(驛馬)를 남용한 일로 인해 3개월의 감봉 이 내려졌다.
杭州沈豐玉, 就幕武康. 適104)上憲105)有公文飭捕106)江洋 大盜107), 盜名沈玉豐. 幕中同事袁某與沈戱, 以硃筆倒標 “沈豐玉”三字, 曰: “現在各處拿你.” 沈怒, 奪而焚之.
103) 오장(五臟): 다섯 가지 내장(內臟). 즉, 간장(肝臟), 폐장(肺臟), 심장(心臟), 비장(脾臟), 신장(腎臟)을 가리킨다. 104) 적(適): 때마침. 105) 상헌(上憲): 상사(上司). 106) 칙포(飭捕): 체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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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夜, 沈方就枕, 夢鬼役突入, 鎖至城隍廟中. 城隍神高坐, 喝曰: “汝殺人大盜, 可惡!” 呼左右行刑. 沈急辨是杭州秀 才, 非盜也. 神大怒曰: “陰司108)大例, 凡陽間109)公文到來, 所拿之人, 我陰司協同緝拿. 今武康縣文書現在, 指汝姓名 爲盜, 而汝妄想强賴耶?” 沈具道同事袁某惡謔之故. 神不 聽, 命加大杖. 沈號痛呼寃, 左右鬼卒私謂沈曰: “城隍神與 夫人飮酒醉矣, 汝只好到別衙門110)申寃.” 沈望見城隍神面 紅眼眯, 知已沉醉, 不得已忍痛受杖. 杖畢, 令鬼差押往某 處收獄. 路經關聖廟, 沈高聲叫屈, 帝君喚入, 面訊原委111). 帝君取 黃紙硃筆判曰: “看爾112)吐屬113), 實系114)秀才. 城隍神何 得酗酒115)妄刑? 應提參116)治罪. 袁某久在幕中, 以人命爲 兒戱, 宜奪其壽. 某知縣失察, 亦有應得之罪, 念其因公他
107) 강양대도(江洋大盜): 강호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강도. 108) 음사(陰司): 음간(陰間). 저승. 저세상. 109) 양간(陽間): 인간 세상. 110) 아문(衙門): 옛날 관청을 일컫던 말. 111) 면신원위(面訊原委): 억울한 자초지종을 호소하다. 112) 이(爾): 너. 113) 토속(吐屬): 말투. 114) 계(系): …이다. 115) 후주(酗酒): 술을 탐닉하다. 116) 제참(提參): 재판을 열다. 탄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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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 罰俸三月. 沈秀才受陰杖, 五臟已傷, 勢不能復活, 可送 往山西某家爲子, 年二十登進士, 以償今世之寃.” 判畢, 鬼 役惶恐, 叩頭而散. 沈夢醒, 覺腹內痛不可忍, 呼同事告以故, 三日後卒. 袁聞 之, 急辭館歸, 不久吐血而亡. 城隍廟塑像無故自仆. 知縣 因濫應驛馬事, 罰俸三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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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구 수재(裘秀才)
남창(南昌)117)의 수재 구(裘)××는 여름날 바람을 쐬고자 사공묘(社公廟)에서 나체로 누웠다가 집에 돌아가서 큰 병 이 났다. 그 아내가 토지신에게 죄를 지어 그렇다고 여기고 서 곧 술상을 마련하고 향지를 태워 수재를 위해 죄를 사과 하자 병이 과연 완쾌했다. 아내가 수재에게 명해 토지신에 게 감사하러 가라고 했으나 수재가 화를 내며 도리어 고소 장을 만들어 성황묘에 태워 바치고, 토지신이 그 술과 안주 를 탐하고 세력을 빙자해 요망하게 굴었다고 일러바쳤다. 고소장을 태우고서 열흘이 지났는데도 조용하자 수재가 더욱 화가 나 다시 재촉해 바치면서 성황신이 수하 관리가 제멋대로 뇌물을 수수하도록 내버려 두어 국전(國典)으로 배향하기 어렵다고 책망했다. 이날 밤 꿈에 성황묘 담장에 공문 한 장이 붙었다. “토지신이 사람들의 술상을 사기 치고 관리로서 지켜야 할 규칙을 어지럽히므로 파면한다. 구××는 귀신을 공경하 지 않고 쓸데없는 일까지 송사하기 좋아하므로 신건현(新
117) 남창(南昌): 지금의 장시성 중부 난창(南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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建縣)에 보내 30대의 곤장을 벌한다.”
수재가 깨어나 마음속으로 우물쭈물하며 자신은 곧 남 창현의 사람이어서 설령 체벌이 있더라도 신건 지방에 있지 않을 것이니 꿈은 필시 효험이 없을 것이라고 간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에 비가 내리고 번개가 토지묘를 쳤다. 수재는 마음이 우울해져 감히 문밖을 나가지 못했다. 한 달 남짓 후 강서(江西)의 순무(巡撫)118) 아 공(阿公)이 비로소 묘에 들어가 향을 올리는데, 원수가 도끼를 들고 이 마를 베었다. 여러 관리가 일제히 모여 흉범을 조사했다. 수 재가 기이한 일라고 여기고 급히 나가 탐문했다. 신건현의 현령(縣令)이 그 의아하게 여기는 표정을 보고 누구냐고 꾸 짖어 물었다. 수재가 말을 더듬으며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긴 적삼을 입고 허리띠도 두르지 않고 있었다. 현령이 화가 나서 길거리에서 30대의 곤장을 다 치고 나자, “나는 수재이 고, 또 구 사농(裘司農)의 본가(本家) 사람이다”라고 말했 다. 신건령 역시 크게 후회하고 풍성현(豐城縣)의 장교(掌 敎)로 추천했다.
118) 순무(巡撫): 명청 시기 각 지방의 군정(軍政)과 민정(民政)을 살 피는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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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昌裘秀才某, 夏日乘涼119), 裸臥社公廟120), 歸家大病. 其 妻以爲得罪社公, 即具酒食, 燒香紙, 爲秀才請罪, 病果愈. 妻命秀才往謝社公, 秀才怒, 反作牒呈燒向城隍廟, 告社公 詐渠酒食, 憑勢爲妖. 燒十日後寂然, 秀才更怒, 又燒催呈, 幷責城隍神縱121)屬員122)貪贓123), 難享血食. 是夜, 夢城隍 廟牆上貼一批條, 云: “社公詐人酒食, 有玷124)官箴125), 著 革職126). 裘某不敬鬼神, 多事好訟, 發新建縣責三十板.” 秀 才醒, 心懷狐疑127), 以爲己乃南昌縣人, 縱有責罰, 不得在 新建地方, 夢未必驗. 未幾天雨, 雷擊社公廟, 秀才心始憂之, 不敢出門. 月餘, 江 西巡撫阿公, 方入廟行香, 爲仇人持斧斫額. 衆官齊集, 查 拿凶人. 秀才以爲奇事, 急行觀探. 新建令見其神色128)詫
119) 승량(乘涼): 바람을 쐬다. 120) 사공묘(社公廟): 토지신(土地神)의 사당. 121) 종(縱): 내버려 두다. 122) 속원(屬員): 하급 관리. 123) 탐장(貪贓): 관리가 뇌물을 받는 것을 가리킨다. 124) 점(玷): 더럽히다. 어지럽히다. 125) 관잠(官箴): 관리로서 지켜야 할 규칙. 126) 혁직(革職): 파면하다. 면직하다. 127) 호의(狐疑): 우물쭈물하다. 128) 신색(神色): 얼굴에 나타난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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異129), 喝問何人. 秀才口吃吃130)不能道一字, 身著長衫, 又 無頂帶. 令怒, 當街責三十板畢, 始稱: “我是秀才, 且系裘 司農本家.” 令亦大悔, 爲薦131)豐城縣掌教.
129) 타이(詫異): 의아하게 여기다. 130) 구흘흘(口吃吃): 말을 더듬다. 131) 위천(爲薦): 추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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