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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 이론


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급변하는 커뮤니케이션 환경 속에서 커뮤니케이션 지식에 대한 욕구 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주제를 10개 항목으로 묶어서 달걀 꾸러미처럼 엮었습니다.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지식을 쉽게 알고자 하는 대중이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지식을 단시간에 알고자 하는 연구자, 실무자,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일러두기 ∙ 이 책의 일부 내용은 아래 문헌의 일부분을 발췌·보완한 것입니다. 4. 문화 인터페이스와 5. 원격현전은 이재현(2004). 󰡔멀티미디어 와 디지털 세계󰡕.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8. 멀티플랫포밍은 이 재현(2006). “모바일 미디어와 모바일 콘텐츠: 멀티플랫포밍 이 론의 구성과 적용”. 󰡔방송문화연구󰡕, 18권 2호, 285∼317; 9. 시 간 재할당은 이재현(2005). “인터넷, 전통적 미디어, 그리고 생활 시간 패턴: 시간 재할당 가설의 제안”. 󰡔한국언론학보󰡕, 49권 2 호, 224∼254. ∙ 외래어 표기는 현행 한글어문규정의 외래어표기법을 따랐습니다. ∙ 이 책에 실린 삽화는 이근명 화백이 그렸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해총서

뉴미디어 이론 이재현

대한민국,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3


뉴미디어 이론

지은이 이재현 펴낸이 박영률 초판 1쇄 펴낸날 2013년 2월 25일 커뮤니케이션북스(주) 출판등록 2007년 8월 17일 제313-2007-000166호 121-869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571-17 청원빌딩 3층 전화 (02) 7474 001, 팩스 (02) 736 5047 commbooks@commbooks.com www.commbooks.com CommunicationBooks, Inc. 3F Cheongwon Bldg., 571-17 Yeonnam-dong Mapo-gu, Seoul 121-869, Korea phone 82 2 7474 001, fax 82 2 736 5047 이 책은 커뮤니케이션북스(주)가 저작권자와 계약해 발행했습니다. 본사의 서면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이 책의 내용을 이용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이재현, 2013 ISBN 978-89-6680-847-2 책값은 뒤표지에 있습니다.


인간 확장을 실현하는 뉴미디어 세계

매클루언 󰡔미디어의 이해󰡕 50년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이 1964년 󰡔미디어의 이해(Understanding Media)󰡕를 출간한 지 올해로 거의 50년이 되었다. 매클루언이 이 책에서, 아니 그의 전 저작 에서 던진 질문은 “미디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매 클루언(McLuhan, 1964/2011)은 󰡔미디어의 이해󰡕 서문에 서 미디어 발전과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지난 3000년 동안 세분화와 기계화의 기술을 통한 외파 끝 에 서구 세계는 내파(imploding)하고 있다. 기계 시대 동 안 우리는 인간의 신체를 공간적으로 확장해 왔다. 전기 기술 시대에 접어든 지 1세기가 지난 지금, 다른 행성은 차 치하고 최소한 우리가 사는 지구라는 행성에서는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소멸시키며 우리의 중추신경체계 자체를 전 지구적인 것으로 확장하고 있다. 매우 빨리 인간 확장 (extensions of man)의 최종 국면, 즉 인간 의식을 기술적 으로 시뮬레이션하는 단계에 접어든 셈이다(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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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점에서, 현재의 미디어 발전 단계를 규정하는 것 이라고 읽더라도 매클루언의 이런 언명은 크게 틀리지 않 은 것 같다. 최소한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인 50년 전과 다 양한 미디어가 일상화된 지금을 비교하면 미디어 환경은 크게 달라졌지만, 그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다 면 미디어 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 사진, 축음기, 영화, 타 자기 등이 등장한 19세기 이후 두 번째 미디어 폭발 시대 라 할 수 있는 지금 현 상황에서 ‘미디어란 무엇인가?’ 이 책은 “뉴미디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매 클루언에 답을 하고자 한다.

뉴미디어의 ‘새로움’: 연속과 단절 뉴미디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모색하기에 앞서 뉴미디어에서 ‘새로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 한 답을 제시해야 할 것 같다. 일반적인 용법에서도 그렇 지만, 새로움이란 상대적인 의미를 갖는다. 시대에 따라 새로움이 새롭게 규정되듯이, 사회에 따라 새로움은 달라 진다. 즉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새로운’ 미디어는 다르 다. 이런 점에서 매클루언 시대의 새로운 미디어인 전기 미디어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미디어가 아니다. 새로움 이라는 특수성에 주목하는 이런 입장을 ‘상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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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ism)’라 부를 수 있다면, ‘겉으로 보기에’ 새로운 것 같지만 공통적인 속성이 관통하고 있다고 보는 ‘보편주의 (universalism)’ 입장도 가능하다. 이런 극단적인 양 입장 중에서 스티븐 홀츠만(Steven Holtzman, 1997/2002)은 상대주의적 입장을 대변한다. 그는 하나의 미디어가 다른 미디어를 차용하는 “재목적화 (repurposing)”가 뉴미디어의 초기 발전 단계에서는 일정 한 역할을 하지만 종국에는 새로운 ‘미학’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재목적화는 친근하지 않은 영역에 안전히 발을 디딜 수 있 게 해주는 과도기적 단계다. 그러나 그것은 디지털 세계의 완전히 새로운 차원들을 발견하게 될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래된 표현 세계를 뛰어넘어 완전히 새로운 표현 세계를 발견해 내야 한다. 도로 표지판과 마찬가지로 재목 적화는 심대한 변화가 지금 일어나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 시일 뿐이다(p. 19).

이와 달리 제이 데이비드 볼터와 리처드 그루신(Jay David Bolter & Richard Grusin, 1999/2006)은 홀츠만과 같은 상대주의적 입장을 강하게 비판하며 뉴미디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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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은 없다고 단언한다.

새로운 미디어에서 새로운 것은 기존 미디어를 개조하는 독특한 방식, 그리고 기존 미디어가 새로운 미디어의 도전 에 대응하여 스스로를 개조하는 방식에 있다(15쪽). … 디 지털 미디어에서 새로운 것은 텔레비전, 영화, 사진, 그리 고 회화를 재매개하는 독특한 전략들에 있다. 재매개 (remediation)로서 재목적화는 ‘디지털 세계에 독특한’ 것 이면서 동시에 그러한 독특함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이 기도 하다(60∼61쪽).

뉴미디어에서 ‘새로움’에 대한 입장은 역사서술에서 해 묵은 논쟁의 주제인 연속론과 단절론의 또 다른 표현이다. 프랭크 웹스터(Frank Webster, 1995)는 정보사회를 보는 거시적 사회이론들을 연속론과 단절론으로 구분한 바 있 는데, 새로운 ‘미학’의 출현을 확신하는 홀츠만이 단절론 을 대변한다면, 뉴미디어에서 새로움은 없다고 단정하는 볼터와 그루신은 연속론을 대변하는 셈이다. 매클루언은 기술결정론(technological determinism)의 ‘혐의’를 받고 있다는 점(Williams, 1975)에서 다분히 상대 주의적, 단절론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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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 구성에서 연속론과 단절론, 상대주의와 보편주의, 양자를 모두 극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는 해도 현재의 뉴미디어는 과거의 미디어와 구별되는 특 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공통적인 속성 또한 갖고 있는 것 이 사실이다. 이 책은 해묵은 논쟁을 뒤로한 채 간단치 않 지만 양자 사이에서 뉴미디어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찾는 제3의 길을 모색하면서 “뉴미디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려고 한다.

뉴미디어의 인터페이스: 매클루언의 후예 뉴미디어를 이해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단순히 기술적, 산업적 관점에서 관 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론적 접근으로까지 나아가는 것 이 필수적이다. 이런 점에서 볼터와 그루신(Bolter & Grusin, 1999/2006)의 󰡔재매개󰡕와 마노비치(Manovich, 2001)의 󰡔뉴미디어의 언어󰡕는, 저자의 관점을 떠나, 뉴미 디어 이론서로서는 ‘현대적 고전’이라 할 정도로 뛰어난 통찰을 보여 주고 있다. 매클루언의 후예라 부를 수 있는 이들에 주목하는 것은 이들이 매클루언의 주장을 계승했 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매클루언이 던진 ‘미디어란 무엇인 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뉴미디어에 대한 통찰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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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책이 2000년을 전후한 시 점에 출간되었기에 첨단 뉴미디어, 달리 표현하면 “새로 운 뉴미디어(new new media)”(Levinson, 2009)를 다루 고 있지는 못하지만, 뉴미디어의 인터페이스에 대한 이론 적 성찰을 위한 출발점으로는 충분한 것 같다. 먼저 볼터와 그루신(Bolter & Grusin, 1999/2006)은 뉴 미디어든 올드미디어든 미디어는 “재매개(remediation)” 의 미디어로 간주한다. 이들에 따르면, 재매개는 하나의 미 디어가 다른 미디어의 인터페이스, 표상(representation), 사회적 인식과 위상을 차용(borrowing)하고 나아가 개선 (improvement)하는 미디어 논리(media logic)라고 정의 한다.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극단적으로 이들은 뉴미 디어에서 ‘새로움’이란 없고 새로움이 있다면 다른 미디어 를 재매개하는 양식에 있다고 주장한다. 본문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재매개는 두 가지 하위 논리에 따라 ‘계보’를 구성하는데, 그 하나는 ‘투명성의 비 매개(transparent immediacy)’ 논리이고 다른 하나는 ‘하 이퍼매개(hypermediacy)’ 논리다. 가상현실, 디지털 그래 픽 등의 뉴미디어는 르네상스 사실주의 회화, 사진 등을 재매개해 투명성의 재매개 계보를 구성하며, 다중적 윈도, 사진 몽타주, 멀티미디어 CD-ROM 등은 중세 제단화,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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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장, 17세기 네덜란드 회화 등의 전통을 따라 하이퍼매 개의 계보를 구성한다. 미디어를 재매개로 간주하는 볼터와 그루신의 미디어 이론은 (뉴)미디어를 이해하는 데 주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먼저 하나의 미디어가 다른 미디어와 맺는 관계를 계보적으로 읽어낼 수 있게 해준다. 보다 직설적으로 표 현하면, 하나의 미디어를 재매개의 관계 측면에서 보면 그 미디어 속에 ‘들어 있는 다른 미디어들’을 볼 수 있다. 둘째 로 재매개 이론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연속론적 역사관 을 갖는다. 이런 점에서 재매개 이론은 뉴미디어가 디지 털 시대의 고유한 산물이라는 이른바 ‘테크놀로지 혁명 담 론’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될 수 있다. 셋째로 재매개 이론 은 보다 구체적인 수준에서 인터페이스에 대한 이해를 더 해준다. 이런 이해는 다른 미디어의 인터페이스 요소들을 읽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인터페이스의 구상과 설계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한편 마노비치(Manovich, 2001)는 뉴미디어의 언어 즉 양식과 관습이 어떠한가에 초점을 맞춰, 단적으로 표현하 면 뉴미디어의 언어는 20세기 미디어인 영화언어를 구현 하고 있으며, 과거 아방가르드적 실험이 뉴미디어의 보편 적 언어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뉴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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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가 보여 주는 새로운 양식을 인터페이스, 조작, 환각, 형 식 등의 측면에서 진단하고 있는데, 일차적으로 주목할 만 한 것은 이 책의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문화 인터페이 스(cultural interfaces)’에 대한 논의다. 마노비치는 디지 털 미디어가 전통적인 미디어와 마찬가지로 문화적 산물 과 문화적 형식을 접하게 해주는 또 다른 통로, 즉 인터페 이스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인쇄물이나 영화와 같은 기존 미디어의 인터페이스를 차용하고 있다고 본다. 결국 문화 인터페이스는 인쇄물 양식, 영화 양식, 그리고 컴퓨터 고유의 범용 HCI(Human-Computer Interface) 양 식이 결합되는 혼종적(hybrid) 언어를 만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볼터과 그루신, 그리고 마노비치의 논의에서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뉴미디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인터페이스 측면에서 구하는 주요한 계기를 제 공해 주고 있다. 이 책 3장과 4장에서 각각 재매개와 문화 인터페이스에 대한 이들의 이론을 소개하고 그 의미를 논 의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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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와 인간 경험 미디어는 이용자와 직접적인 접점인 인터페이스를 매개 로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런 점에서 미디어를 인터 페이스에 국한하여 이해하려는 시도, 특히 ‘기술 중심적 접근’으로는 미디어에 대한 올바른 통찰을 얻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기술 중심적 접근은 미디어를 가능케 해준 기 술적 요소들을 중심으로 미디어를 정의하는데, 공학적 정 의는 그 대표적인 예다. 예를 들어, 멀티미디어는 “텍스트, 음성, 음악, 비디오, 그래픽, 기타 다른 형태의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사용함으 로써, 커뮤니케이션 장치로서 컴퓨터의 역할이 증대되도 록 한 것”(Dillon & Leonard, 1998, p. 187)으로 정의된다. 또 다른 예로, 가상현실은 “이용자가 현실과 같은 3차원 상황 속에서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투구형 고글 (head-mounted goggle)과 망으로 연결된 의상을 통해 경 험하게 되는 전자적인 환경 시뮬레이션”(Coates, 1992)으 로 정의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기술 중심적 정의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는 필수적인 테크놀로지의 존재 여부다. 조너선 스토이어 (Jonathan Steuer, 1992)에 따르면, 기술 중심적 정의는 가 상현실과 같은 미디어를 보는 뚜렷한 개념적 분석 단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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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있지 못하다. 즉, 미디어마다 각기 다르게 제공하 는, 현전감(presence)과 같은 경험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 는 이론적 차원들을 포함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기술 중심적 접근에 대한 대안으로 경험 중심적 정의는 미 디어의 기술적 요소들보다는 미디어 이용 내지 미디어와 상 호작용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이른바 ‘미디어 경험(media experience)’을 강조한다. 미디어 경험은 용어가 함축하는 바와 같이 다양하게 이해될 수 있지만, 이 책의 본문에서 다 루고 있는 원격현전(telepresence), 현실 조작 장치(reality manipulator)로서 미디어, 미디어 레이어(media layer), 신체 규율 장치(body-disciplining apparatus)로서 미디어 등은 미디어 경험을 드러내는 주요한 개념으로 간주될 수 있다. 먼저 원격현전은 인터넷이나 가상현실과 같은 미디어 테크놀로지에 의해 가능해진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겪는 경험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 로 원격현전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에 의해 어떤 환경 속에 실재하고 있음을 경험하게 되는 것”, 즉 환경에 대한 매개된 지각(mediated perception)이라 할 수 있다(Steuer, 1992, pp. 75∼76). 원격현전 개념은 컴퓨터 매개 커뮤니 케이션(Computer-Mediated Communication) 연구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졌는데, SNS와 같은 CMC 서비스에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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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자는 오프라인에서와 같이 사교적 풍부함이나 실재감 을 느끼고 사회적 행위자를 만나는 등 원격현전을 경험하 게 된다는 것이다(이재현, 2004, 376∼378쪽). 두 번째 미디어 경험의 개념은 현실 조작 장치로서 미디 어다. 굳이 현상학적인 구성주의적 접근(constructivism) 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전통적인 미디어든 새로운 미디어 든 미디어는 현실(reality)을 구성하여 제공한다. 중요한 점은 미디어가 구성한 현실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가 수용 과정에서 미디어의 구성된 현실을 새롭게 ‘재구성(reconstruction)’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모든 미디어가 현실 조작 장치인 것은 분명하지만, 뉴미디어는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현실 구성의 새로운 계 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이 책의 본문에서도 논의하고 있 지만, 현실 구성에서 뉴미디어의 독특함은 최근 스마트 폰의 증강 현실(augmented reality) 앱이나 위치기반 서 비스(location-based service) 앱에서 보듯, 물리적 현실 (physical reality)과 정보적 가상성(informational virtuality) 을 결합해 일종의 “혼성 현실(hybrid reality)” 또는 “혼합 현 실(mixed reality)”을 제공한다는 데 있다. 세 번째 미디어 경험 개념은 미디어 레이어로서, 이것 은 미디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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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저자가 특유하게 개념화한 용어다. 미디어 컨버전스 이전의 전통적 미디어에 대해서 미디어란 무엇인가에 대 한 답은 명확했다. 그러나 기술적 컨버전스로 하나의 콘 텐츠가 여러 플랫폼에 걸쳐, 그리고 다양한 단말기를 통해 제공되면서 하나의 콘텐츠를 보는 경우의 수는 무수히 많 아졌고, 이에 따라 미디어의 개념은 매우 모호해지는 상황 에 이르렀다. 이 책은 미디어가 콘텐츠, 콘텐츠의 패키 징, 플랫폼, 물리적 네트워크, 그리고 이용자 단말기 등 다섯 가지 차원에 각기 속하는 요소들이 결합되는 것으 로 이해하고, 이런 결합이 기술적인 계기가 아닌 경험의 계기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간주한다. 예를 들어, 하 나의 지상파 프로그램이라는 콘텐츠는 주문형 비디오 (Video-On-Demand, VOD) 방식으로 패키징되어 디지털 케이블이라는 플랫폼을 거쳐 유선이라는 물리적 전송 네 트워크를 통해 가정용 텔레비전 수상기라는 이용자 단말 기를 거쳐 시청할 수 있다. 이런 경우 말고도 매우 많은 시 청의 경우(instances)가 있을 수 있다. 결국 미디어란 기술 적 요소들의 결합이 아니라 이용이라는 미디어 경험을 통 해 형성되는 그 무엇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미디어는 신체규율이라는 미디어 경험을 통해 규정될 수도 있다. 미디어는 인터페이스와 접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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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을 통해 신체를 규율한다. 이는 인터 페이스가 특정한 상호작용 방식을 유도하는 어포던스 (affordances)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마우스를 통한 상호작용는 키보드만을 의존하던 상호작용과는 다 른 어포던스를 제공하며, 인터넷 기능이 없던 텔레비전 수 상기는 키보드처럼 마우스를 사용하여 컴퓨터의 인터넷 기능을 사용하는 스마트TV와는 다른 상호작용, 즉 신체와 감각기관의 관여를 요구한다. 이와 같이 미디어가 신체기 관과 감각기관의 특정한 움직임과 관여를 요구한다는 점 에서 미디어는 신체규율 장치로 간주할 수 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미디어는 단순히 인터페이스 양 식에만 초점을 맞추는 기술 중심적 관점으로 정의되기보 다는 미디어, 특히 인터페이스와 상호작용이라는 경험의 계기에 주목하는 경험 중심적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 다. 이 책이 재매개와 문화 인터페이스와 같은 인터페이스 측면에 주목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다섯 가지 개념을 토대 로 미디어 경험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가 바로 그것에 있다.

미디어의 시공간성: 멀티플랫포밍과 시간 재할당 미디어 경험은 시간 및 공간이라는 조건 속에서 이루어 진다. 미디어의 시공간성은 다양한 측면에서 고찰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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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만, 이 책은 시공간의 여러 차원들 중에서 미디어 경 험에 제한하고자 한다. 미디어 경험은 시간적 행위이자 공간적 행위다. 즉, 미디어 경험은 특정 시간에 특정한 시간의 범위에서 이루어지며, 또한 특정한 장소에서 발 생한다. 이 책은 미디어 경험의 시공간성을 멀티플랫포밍 (multiplaforming)과 시간 재할당(time re-allocation)이 라는 두 개념을 가지고 이해하고자 한다. 멀티플랫포밍은 미디어 이용자 또는 미디어 콘텐츠가 동시적으로 또는 비동시적으로 여러 미디어 플랫폼을 넘 나드는 과정을 의미한다. 멀티플랫포밍이라는 관점에서 미디어 이용을 추적해 관찰하면, 미디어 이용자 또는 미디 어 콘텐츠를 시간적으로 그리고 공간적으로 매핑할 수 있 다. 이것은 미디어 컨버전스의 전형적인 현상으로 간주될 수 있다. 먼저 시간의 차원에서 미디어 이용은 시간의 진 행에 따른 미디어 이용의 흐름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다 른 한편으로 복수의 미디어가 특정한 시간에 중복되어 이 용되는 경우는 ‘시간의 심화’로 이해될 수도 있다. 공간 차 원에서 멀티플랫포밍은 미디어 이용이 이루어지는 특정 장소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가정, 직장, 이동 공간과 같은 거시적 차원에서 살펴볼 수도 있고, 인터넷 사이트를 이동할 때와 같이 가상공간 내 ‘장소’와 같은 미시적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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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살펴볼 수도 있다. 한편 시간 재할당은 하나의 새로운 미디어가 도입되었 을 때 이용자의 미디어 이용 패턴, 나아가 생활시간 패턴 이 재편된다고 보는 시각이다. 기존의 미디어 대체 가설 과 달리 시간 재할당 가설은 하나의 미디어가 야기하는 변 화를 미디어 영역 내에서만 고찰하는 ‘미디어 고립주의’에 서 벗어나 생활시간 전반으로 확대해 보아야 한다고 주장 한다. 예를 들어, 인터넷의 도입은 단순히 텔레비전과 같 은 기존 미디어 시간만을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수면, 학 습, 노동 등 미디어 영역을 넘어 생활시간 전반의 변화를 초래한다. 이와 같은 관점은 미디어 이용을 거시적 맥락과 연계하여 이해하고 논의할 수 있게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매클루언의 󰡔미디어의 이해󰡕가 출간된 지 50년을 앞둔 현 시점에서 뉴미디어란 무엇인가? 이 책이 제시하는 답 은 다음과 같다. 매클루언이 내세운 인간의 확장이란 정 의와 테트라드 모델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시대의 뉴미 디어는 기존의 양식이 혼종화된 재매개이며 재목적화다. 인터페이스와 소프트웨어는 문화적 산물이다. 우리는 뉴 미디어를 통해 혼성현실을 경험하고 원격현전한다. 우리 는 시공간을 멀티플랫포밍하며 미디어를, 콘텐트를 경험 한다. 여전히 미디어는 우리의 감각양식, 신체기관, 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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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을 훈육하는 장치다.

참고문헌 이재현(2004). 󰡔멀티미디어와 디지털 세계󰡕.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Bolter, J. D. & Grusin, R.(1999). Remediation: Understanding

New Media. Cambridge, MA: The MIT Press. 이재현(역) (2006). 󰡔재매개: 뉴미디어의 계보학󰡕.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Holtzman, S.(1997). Digital Mosaics: The Aesthetics of

Cyberspace. New York: Simon & Schuster. 이재현(역) (2002). 󰡔디지털 모자이크󰡕.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Levinson, P.(2009). New New Media. Boston, MA: Penguin Academics. Manovich, L.(2001). The Language of New Media. Cambridge, MA: The MIT Press. McLuhan, M.(1964). Understanding Media: The Extensions of

Man. Cambridge: The MIT Press. 김상호(역)(2011). 󰡔미디어의 이해: 인간의 확장󰡕.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McLuhan, M. & McLuhan, E.(1988). Laws of Media: The New

Science. Toronto: University of Toronto Press. McLuhan, M. & Powers, B. R.(1989). The Global Village:

Transformations in World Life and Media in the 21st Century. Oxford &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Webster, F.(1995). Theories of the Information Society. London & New York: Rout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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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인간 확장을 실현하는 뉴미디어 세계

01

인간의 확장

02

테트라드

03

재매개

04

문화 인터페이스

05

원격현전

06

현실 조작 장치

07

미디어 레이어

08

멀티플랫포밍

09

시간 재할당

10

신체 규율 장치

1 11

19 31

45 59 69 83 95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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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인간의 확장

마셜 매클루언에 따르면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다. 의복은 피부의 확장, 바퀴는 발의 확장, 책은 눈의 확장, 라디오는 귀의 확장, 전기회로는 중추신경 체계의 확장이 된다. 메시지나 정보의 전달 수단으로 보는 도구적 관점이나 문화의 공유 과정으로 보는 문화적 관점과 달리 매클루언은 미디어가 인간의 감각, 정신, 나아가 세계와 맺는 관계 모두에 전면적이고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본다. 미디어가 인간의 확장이라는 매클루언의 인식은 미디어 영향력의 원천이 ‘내용’이 아니라 미디어 자체에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미디어와 “인간의 확장”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은 그의 주저 󰡔미디어 의 이해󰡕(1964) 부제에서 밝혔듯이 미디어는 “인간의 확 장(extensions of man)”이라고 단언한다. 뉴미디어도 예 외는 아니다. 매클루언에 따르면, 󰡔미디어의 이해󰡕와 󰡔미디어가 메 시지다󰡕(1967)에서 예시하는 바와 같이, 의복은 피부의 확장, 바퀴는 발의 확장, 책은 눈의 확장, 라디오는 귀의 확장, 전기회로는 중추신경 체계의 확장이 된다. 이와 같 이 미디어를 인간의 감각기관이나 신체 기관의 확장이라 고 본다는 점에서, 매클루언의 미디어 개념은 우리가 상식 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즉, 메시 지나 정보의 전달 수단으로 보는 도구적 관점이나 문화의 공유 과정으로 보는 문화적 관점과 달리, 미디어가 인간의 감각, 정신, 나아가 세계와 맺는 관계 모두에 전면적이고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매클루언의 이런 주장은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 1975)의 혹평에서 보듯 많은 사람들로부터 기 술결정론(Technological Determinism)이란 비판을 받지 만, 그의 견해는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윌리엄 미첼(William Mitchell, 1995)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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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라고 단언한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 1911∼1980) ⓒ 커뮤니케이션북스

미디어와 인간(사이보그 시민)의 육체와 감각기관이 어떻 게 연관되는지 그리고 미디어가 각각 어떤 육체와 감각기 관의 확장이 되는지 예시하고 있다. 즉 컴퓨터 네트워크는 신경계에, 텔레비전은 눈에, 전화는 귀에, 가상현실 작동장 치(actuator)는 근육에, 원격조작장치(telemanipulator)는 손에, 그리고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은 뇌에 대응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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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와 감각 양식 기본적으로 매클루언은 미디어가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등 인간 감각기관의 확장이라고 본다는 점에서 우리의 미 디어 인식에 비해 확장되어 있는 듯하지만, 그것의 핵심은 미디어가 감각 양식의 변화를 초래한다는 데 있다. 매클루 언(1964)에 따르면, 인쇄술과 시각 사이의 관계에서 보듯, 특정한 감각기관에 소구하는 미디어가 지배하게 되면 그 감각기관이 다른 감각기관들에 비해 우위를 점하게 됨으로 써 감각기관들 사이의 불균형 또는 특정 감각기관의 ‘폐쇄’ 가 초래된다. 미디어와 인간 감각기관 사이의 관계는 매클 루언의 다음 설명에서 뚜렷이 드러난다(McLuhan, 1964).

테크놀로지에 의해 어떤 감각 혹은 기능이 확장되느냐에 따라 다른 감각의 ‘폐쇄(closure)’ 또는 다른 감각들 사이의 균형 회복을 명확히 예측할 수 있다. … 감각이나 색깔의 구성 요소들 사이의 비율은 무한히 달라질 수 있다. 하지 만, 예를 들어 소리가 강해지면 촉각, 미각, 시각도 즉각 영 향을 받는다. 문자문화적(literate)인, 또는 시각적 인간에 게 라디오는 부족적(部族的) 기억을 되살려 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고, 활동사진에 소리가 더해짐으로써 동작, 촉각성, 운동감각(kinesthesis)이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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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되었다. … 모든 발명과 테크놀로지는 그 어떤 것이든 우리 신체의 확장이거나 자기절단(self-amputation)이며, 그와 같은 확장은 다시금 다른 감각들이나 확장된 신체 기 관들에 대해 새로운 비율 또는 새로운 균형을 요구하게 된다.

최근의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 관점은 미디어와 감각 양식(sensory modalities) 사이의 관계를 유사하게 보는 또 다른 입장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 관점에 따르면, 인간은 미디어들을 각각 다른 방식으로, 즉 각기 다른 감 각기관을 사용해 지각한다. 인지과학자들은 이러한 각기 다른 지각 방식을 ”감각 양식”이라 부르는데(Chapman & Chapman, 2000), 인간은 텍스트를 읽을 때, 그림을 볼 때, 음악을 들을 때 감각 양식을 전환해 나간다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발전한 멀티미디어는 다양한 미디어 구성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미 디어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감각 양식을 요구한다.

미디어가 메시지다 미디어가 인간의 확장이라는 매클루언의 인식은 미디어 영향력의 원천이 ‘내용(contents)’이 아니라 미디어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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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즉 메시지는 미디어가 전 달하는 내용이 아니라 미디어라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내용이 개인적 으로 또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매클루언의 주장에 따르면 이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매클루언은 전깃불이나 열차를 예로 설명한다. 전깃불 은, 전구로 전달되는 신호와 같은 메시지가 아니라 전깃불 의 활용 자체가 미디어로서 전깃불이 갖는 중요한 측면이 라는 것이다. 이것의 실제적인 메시지는 인간들 사이의 교호와 행위의 형식을 확장하고 그 속도를 높여 준다는 데 있다. 전깃불은 밤과 낮, 집 안과 밖의 그 어떤 구분도 사 라지게 하며 그것을 중심으로 기존의 모든 형식들을 재편 한다. 예를 들어, 밤에도 스포츠 경기나 자동차 여행을 할 수 있으며 공장에는 창문도 필요 없고 기계를 오로지 시간 에 따라 밤낮 없이 가동할 수도 있다. 매클루언에게, 미디어나 테크놀로지의 실제 ‘메시지’는 그것이 무엇이든 인간 삶에 그것이 가져다준 범위, 속도, 양식의 변화 자체일 뿐 그 ‘내용’이 아니다.

미디어의 역사와 인간의 한계 극복 이런 인식은 미디어의 발전에 대한 그의 논리를 설명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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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대가 되기도 한다. 그는 구어 커뮤니케이션에서 문자 커뮤니케이션으로, 쓰기에서 인쇄로, 그리고 인쇄에서 전 기 미디어로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발전하며 네 가지의 각 기 다른 미디어 문화를 형성해 왔다고 본다. 첫째는 구어 커뮤니케이션이 지배하는 원시 문화이고, 둘째는 구어 커 뮤니케이션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표음문자와 육필이 지 배하는 문자 문화이고, 셋째는 대량생산과 기계적 글쓰기 를 핵심으로 하는 인쇄 문화이며, 마지막으로 라디오, 텔 레비전 등 전기 미디어의 문화다. 미디어가 인간의 확장이라는 주장을 달리 해석하면, 이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한계, 즉 시간적· 공간적 제한을 미디어가 극복해 준다는 것이기도 하다. 미디어의 발전은 바로 신체 기관의 확장으로 인간의 시공 간적 한계를 극복해 온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이재현, 2004). 수기(手記), 스피커, 전신,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 과 같은 미디어는 공간적 한계를 극복해 주는 미디어이고 점토판, 파피루스, 종이, 책, 녹음 테이프, CD, DVD와 같 은 미디어는 인간의 시간적 한계를 극복해 주는 미디어다. 인간은 이러한 미디어를 사용함으로써 인간의 육체가 가지 고 있는 한계 즉 감각기관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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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며 미디어의 메시지는 내용이 아 니라 미디어 자체라는 매클루언의 주장은 곧바로 많은 학 자들에게 기술결정론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비판론자 중 대표 학자는 바로 윌리엄스(1975)다. 매클루언은 미디어 의 중요성은 특정한 활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의 속도와 범위를 변화시키는 구조적인 측면에 있다고 주장 하지만, 윌리엄스에게 중요한 것은 그러한 테크놀로지의 개발 속도와 범위를 결정하는 특정한 사회집단, 즉 지배계 급의 힘이다(Lister et al., 2003). 윌리엄스가 보기에 매클 루언처럼 테크놀로지를 개발하게 된 배경, 테크놀로지를 형성한 사회적·문화적·경제적 요인들의 복합체, 테크 놀로지가 특정 목적을 위해 동원되는 방식 등을 고려하지 못하고, 테크놀로지가 단순히 인간의 감각·정신·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은 기술결정론적 사고 의 전형일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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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이재현(2004). 󰡔멀티미디어와 디지털 세계󰡕.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Chapman, N., & Chapman, J.(2000). Digital Multimedia. New York: John Wiley & Sons. Lister, M., Dovey, J., Giddings, S., Grant, I., & Kelly, K.(2003).

New Media: A Critical Introduction. London: Routledge. McLuhan, M.(1964). Understanding Media: The Extensions of

Man. Cambridge: The MIT Press. 김상호(역)(2011). 󰡔미디어의 이해: 인간의 확장󰡕.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Mitchell, W. J.(1995). City of Bits: Space, Place, and the Infobahn. Cambridge: The MIT Press. 이희재(역)(1999). 󰡔비트의 도시󰡕. 서울: 김영사. Williams, R.(1975). Television: Technology and Cultural Form. New York: Schocken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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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테트라드

“테트라드”는 사회에 대한 테크놀로지의 구조적 영향 내지 효과에 관한 마셜 매클루언의 이론적 모델이다. 모든 테크놀로지와 미디어는 네 개의 범주로 구분되는 테트라드 효과를 갖는다. 그 네 범주는 “고양”, “폐기”, “회복” 그리고 “반전”이다. 이 모델은 미디어를 포함해 모든 인공물이 갖는 “감춰진 효과”까지도 볼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미디어가 갖는 효과를 통시적, 공시적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개념의 등장 배경과 정의 “테트라드(Tetrad)”는 사회에 대한 테크놀로지의 구조적 영향 내지 효과에 관한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 의 이론적 모델이다. 그는 자신의 사후 아들 에릭 매클루 언(Eric McLuhan)이 출간한 책 󰡔미디어의 법칙(Laws of Media)󰡕(1988), 그리고 브루스 파워스(Bruce R. Powers) 가 공저 형식으로 출간한 또 다른 유고 󰡔지구촌(Global Village)󰡕(1989)에서 예시들과 더불어 이 모델을 제시하 고 있다. 두 책 모두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하고는 있지만, 󰡔미디어의 법칙󰡕이 그 바탕이 되는 언어학 개념들로 설명 하고 있다면, 󰡔지구촌󰡕은 특히 비디오 관련 테크놀로지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매클루언의 테트라드 모델은 기본적으로 모든 미디어 와 테크놀로지가 언어적 구조(linguistic structure)를 가지 고 있다고 본다. 미디어와 테크놀로지가 언어와 유사할 뿐만 아니라 인간이 감각을 통해 환경에 자신을 확장 (extend)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언어 그 자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McLuhan & Powers, 1989, p.x). 이런 점에서 “말(the word, logos)의 구조”를 테크놀 로지에 적용하면, 인간의 인공물이 사회에 미치는 동적이 고 구조적인 영향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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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1989)의 공저자 브루스 파워스(Bruce R. Powers, 1927∼ 2012) ⓒ 커뮤니케이션북스

면, 테트라드 모델은 주어진 미디어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회의 사회문화적 과정을 변화시키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미디어 효과(media effects)’에 관한 이론이다. 매클루언에 따르면, 모든 테크놀로지와 미디어는 네 개 의 범주로 구분되는 “테트라드 효과(a tetrad of effects)” 를 갖는다. 그 네 범주는 “고양(enhancement)”, “폐기 (obsolescence)”, “회복(retrieval)”, 그리고 “반전(reversal)” 이다. 이 네 범주는 각각의 미디어나 테크놀로지에 대해 던 질 네 가지 질문에 각각 대응한다(McLuhan &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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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이를 미디어에 적용해 다시 쓰면 다음과 같다. ∙ 미디어는 어떤 것을 확대시키고 고양시키는가? ∙ 미디어는 어떤 것을 약화시키거나 진부하게 만드는가? ∙ 미디어는 과거에 폐기되었던 어떤 것을 회복시키는가? ∙ 미디어는 잠재력의 한계에 도달했을 때 어떤 것으로 전환·반전되는가?

예를 들어, 컴퓨터는 이런 테트라드 모델에 따라 각각 네 가지 과정으로 설명될 수 있다(McLuhan & Powers, 1989). 즉 컴퓨터는 ① (고양) 계산을 광속의 수준으로 가 속화시킨다. ② (폐기) 기계식 처리를 약화시킨다. ③ (회 복) 숫자라는 계량적 힘을 회복시킨다. 그리고 ④ (반전) 동시적인 패턴 인식으로 전환된다. 이와 같이 변증법적인 테트라드 모델은 두 가지 측면에 서 의의를 갖는다(McLuhan & Powers, 1989). 그 하나는 미디어의 효과가 갖는 전경(figure)과 배경(ground)을 동 시에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이것은 미디어를 포함해 모 든 인공물이 갖는 “감춰진 효과(hidden effects)”까지도 볼 수 있게 해준다. 다른 하나는 테트라드 모델로 미디어가 갖는 효과를 통시적(diachronic), 공시적(synchronic) 차 원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먼저 테트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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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테트라드 구조 ① 고양 (전경)

④ 반전 (배경)

③ 회복 (전경)

② 폐기 (배경)

출처: 매클루언과 파워스(McLuhan & Powers, 1989), p.10.

효과는 통시적 차원에서, 고양에서 시작해 폐기에 도달하 는, 즉 A-B-D-C로 이어지는 역사적 과정 내지 발전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테트라드 효과는 공시적 차원에서 전 경과 배경, 전경과 전경, 또는 배경과 배경처럼 두 효과 사 이의 특정한 비율을 보이는 하나의 구성체로 이해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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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테트라드: 예시 매클루언은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포함해 수많은 사례들 로 테트라드 효과를 보여 주고 있다. 󰡔지구촌󰡕에 제시된 것만 45개에 달하는데 기계, 과학기술, 관념, 사회경제현 상, 사건 등이 망라되어 있다(McLuhan & Powers, 1989). 우리가 흔히 미디어라 부르는 것만 제시하면 시계, 거울, 인쇄물, 전신, 카메라, 전기 미디어, 마이크로폰, 라디오텔레비전, 복사기, 전화, 컴퓨터, 케이블TV, 위성, 글로벌 미디어 네트워킹 등이다. 흥미롭게도 비디오게임과 디지털 미디어 학자인 이언 보고스트(Ian Bogost, 2010)는 최근 폭발적으로 성장한 페이스북에 테트라드 모델을 적용해 그 효과를 설명하고 있다. <표 1>에서 보듯, 보고스트는 네 범주에 따라 페이 스북의 테트라드를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분석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페이스북과 같은 최신의 뉴미디어(new media, Levinson, 2009)를 매클루 언이 강조하는 관계적·계보적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하 는 것은 의미가 있다. 최근 페이스북을 포함해 뉴미디어 에 대한 사회적·학문적 담론이 사회적 상호작용의 속도 와 효율성, 마케팅 도구 활용 가능성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과 달리 이런 관점은 하나의 미디어가 발휘하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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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페이스북의 테트라드 고양

반전

전화번호부 자동응답기, 게시판 연감, 일기 즉각성, 현재성

캠퍼스 생활 청소년기 고등학교

회복

폐기

동네, 마을, 거리 모임, 대로, 음료수 가게, 상점 일기, 일지

재회 시간, 기억, 과거 비밀

출처: 보고스트(Bogost, 2010).

회적 효과를 공시적·통시적 맥락에서, 그리고 다른 미디 어와 관계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관점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나아가 기술 혁신이나 테크놀로지의 사회적 수용을 S자 곡선과 같은 채택자의 수적 증가 패턴으로 이해하려는 계량적 관 점을 극복 또는 보완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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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Bogost, I.(2010). Ian became a fan of Marshall McLuhan on Facebook and suggested you become a fan too. In D. E. Wittkower (Ed.). Facebook and Philosophy(pp.21∼32). Chicago: Open Court. Levinson, P.(2009). New New Media. Boston: Allyn & Bacon. McLuhan, M.(1964). Understanding Media: The Extensions of

Man. Cambridge: The MIT Press. McLuhan, M., & McLuhan, E.(1988). Laws of Media: The New

Science. Toronto: University of Toronto Press. McLunan, M., & Powers, B. R.(1989). The Gloval Village:

Transformations in World Life and Media in the 21st Century. Oxford &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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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재매개

“재매개”는, 미디어 이론가인 제이 데이비드 볼터와 리처드 그루신이 제시한 개념으로, 하나의 미디어가 다른 미디어의 표상 양식, 인터페이스, 사회적 인식이나 위상을 차용하거나 나아가 개선하는 미디어 논리다. 뉴미디어의 계보를 구성하는 세 가지 속성은 “투명성의 비매개”, “하이퍼매개” 그리고 좁은 의미의 “재매개”다. 볼터과 그루신은 비매개, 하이퍼매개, 재매개가 단순히 인터페이스나 표상 측면에서 드러나는 미학적 진리가 아니라 “특정한 시대에 나타난 특정한 집단의 관행”이라고 강조한다.


배경과 정의 “재매개(remediation)”는 하나의 미디어가 다른 미디어의 표상 양식(representation), 인터페이스, 사회적 인식이나 위상을 차용하거나 나아가 개선하는 미디어 논리다. 이 개념은 제이 데이비드 볼터와 리처드 그루신(Jay David Bolter & Richard Grusin, 1999/2006)이 같은 이름의 책에 서 통찰력 있게 구성해 제시한 개념이다. 이들이 책 서문 에서 밝힌 일화에 따르면, 이 용어는 1996년 5월 그루신이 자신의 연구실에서 샌드라 보댕(Sandra Beaudin)을 만나 이야기하면서 처음 고안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볼 터가 처음 고안해 그루신에게 알려 줬다고 한다. 기원이 야 어떻든 이 개념은 하나의 미디어가 고립되어 독립적으 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 등장한 미디어든 나중에 등장한 미디어든, 다른 미디어들과 계보적, 관계적 맥락 속에 있으며, 나아가 그 미디어가 존재하는 사회문화적 조 건들 속에 위치하고 있음을 명쾌하게 설명해 주는 미디어 이론의 용어다. 볼터와 그루신에 따르면, 뉴미디어의 계보를 구성하는 세 가지 속성은 “투명성의 비매개(transparent immediacy)”, “하이퍼매개(hypermediacy)” 그리고 좁은 의미의 “재매개” 다. 특히 앞의 두 속성을 볼터와 그루신은 재매개의 “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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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double logic)”라 부른다. 먼저 투명성의 비매개, 줄 여서 비매개는 “보는 자가 미디어(캔버스, 사진 필름, 영 화 등)의 존재를 잊고 자신이 표상 대상물의 존재 속에 있 다고 믿게 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시각적 표상 양식”으로 (Bolter & Grusin, 1999/2006), 그리고 하이퍼매개는 “보 는 자에게 미디어를 환기시켜 줄 목적으로 만들어진 시각 적 표상 양식”으로 정의된다. 여기서 비매개와 하이퍼매개라는 재매개의 이중 논리 는 하나의 미디어가 다른 미디어를 차용하고 개선할 때 그 관계를 맺어 주는 논리로서, 예를 들어 상세히 설명하겠지 만, 계보적으로 미디어들은 비매개의 논리에 따라 재매개 관계를 맺기도 하고, 하이퍼매개의 논리에 따라 그런 관계 를 맺기도 한다. 저자들이 명확하게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재매개의 이중 논리가 관계의 ‘내용’을 드러낸다면, 재매 개의 셋째 속성인, 좁은 의미의 재매개는 관계의 ‘형식’을 보여 준다. 이들에 따르면, 재매개는 “새로운 미디어가 앞 선 미디어 형식들을 개조하는 형식 논리(formal logic)”로 정의된다(Bolter & Grusin, 1999/2006).

재매개의 이중 논리 볼터와 그루신은 재매개의 이중 논리가 작동하는 방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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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사례로 설명하고 있다. 먼저 투명성의 비매개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이다. 이것은 미디어의 사라짐을 가장 잘 구현한 ‘몰입적 (immersive)’ 미디어 테크놀로지로 간주된다. 즉 가상현 실은 보는 자로 하여금 자신이 투구형 디스플레이(Headmounted Display, HMD)나 데이터 글러브(data glove)와 같은 컴퓨터 인터페이스를 착용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 리게 하고 그것이 제공하는 그래픽 이미지나 음향을 자신 의 지각 세계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투명성의 비매개 논리는 비몰입적인 디지털 그래픽, 즉 전통적인 컴퓨터, 영화 또는 텔레비전 화면에 투사되는 2 차원과 3차원 이미지들에서도 나타난다. 컴퓨터그래픽과 디지털 합성이 보편화된 할리우드 영화, 컴퓨터그래픽 (Computer Graphaic, CG)이 주요한 시각적 요소인 텔레 비전 광고,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데스크톱 컴퓨터의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raphical User Interface, GUI), 그리고 가장 사실적인 이미지와 컴퓨터 애니메이션 으로 구성되는 컴퓨터게임은 이를 확인시켜 주는 전형적 인 사례다. 투명성의 비매개라는 미디어 논리의 계보는 르네상스 의 원근법 회화(perspectival paintings)로까지 거슬러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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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간다. 그 이후 등장한 사진, 영화, 텔레비전, 컴퓨터그래 픽 등은 비매개 논리의 계보를 잇는 미디어들이다. 비매 개, 즉 미디어의 사라짐을 성취하는 방법은 르네상스 회화 가 개발한 원근법(perspective)과 지움(erasion), 사진이 보여 주는 자동성(automation) 그리고 컴퓨터게임과 같 은 디지털 테크놀로지에서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상호 작용성(interactivity) 등이다. 원근법, 특히 선형 원근법 (linear perspective)이 공간을 계량화해 우리에게 보이는 대로 대상물을 표상하고자 하는 방식이라면, 지움은 미디 어에 의한 매개나 붓 터치와 같은 행위 자체까지도 삭제하 는 것을 말한다. 사진은 바로 이런 과정마저도 물리화학 적 과정을 대체해 자동화한 것이다. 가상현실과 컴퓨터게 임은 미디어와 이용자 사이 상호작용성의 구현으로 투명 성의 비매개를 성취하고자 한다. 한편 하이퍼매개의 계보를 보여 주는 사례도 적지 않 다. 이 중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다중 윈도즈 (multiple windows)는 전형적인 예다. 이런 윈도 인터페 이스는 특정한 하나의 관점 아래 이들 공간들을 통합하려 하지 않으며, 그 대신 각각의 텍스트 윈도는 그 자신만의 언어적 관점을, 그리고 각각의 그래픽 윈도는 그 자신만의 영상적 관점을 규정한다. 웹사이트 자체도 하이퍼매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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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를 보여 주는 또 다른 사례다. 웹사이트들에는 선행 미디어의 전통을 계승하는 다양한 미디어 형식들, 즉 그래 픽, 디지털 사진, 애니메이션, 비디오 등이 뒤섞여 있다. 텔레비전 뉴스 프로그램에서는 다중적인 미디어 흐름, 화 면 분할, 그래픽과 텍스트의 혼합 등을 볼 수 있다. 이렇듯 하이퍼매개는 다양한 요소들의 결합이 보여 주는 다중성 과 이질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비매개와 마찬가지로 하이퍼매개도 오랜 역사를 가지 고 있다. 중세 채색서적(illuminated manuscripts), 르네 상스의 제단화(altarpiece), 17세기 네덜란드 회화, 바로크 장식장, 모더니스트 콜라주(collage)와 사진 몽타주는 하 이퍼매개의 논리를 보여 주는 역사적 사례들이다. 비매개 논리가 서구적 표상에서 특히 르네상스 이후 모더니즘의 출현까지 지배적이었다면, 하이퍼매개는 중요하기는 하 지만 2차적 위상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하이퍼매개가 때때로 비매개에 대한 욕망을 인정하기도 하고 동시에 공 격하기도 하면서 이 두 가지 논리는 공존해 왔다.

재매개 볼터와 그루신은 재매개의 형식 논리를 할리우드로 대표 되는 현대 오락 산업의 재목적화(repurposing) 즉,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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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미디어가 갖고 있는 속성을 취해 그것을 다른 미디어에 서 재사용하는 것”(Bolter & Grusin, 1999/2006)을 보다 구체적으로 네 가지 관습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재 매개는 “그 어떤 미디어의 경우도 ‘내용’은 항상 또 다른 미 디어가 된다”는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 1964) 의 주장을 계승하는 개념이다. 볼터와 그루신은 이런 관 습이 디지털 미디어의 독특한 특징이자 광범위하게 확산 된 관행이라 본다. 볼터와 그루신이 제시하는 재매개의 네 가지 관습은 기존 미디어의 위상에 따른 일종의 스펙트 럼을 보여 준다. 첫째 관습은 기존의 미디어가 뚜렷한 풍자나 비판 없이 디지털 형식 속에 조명되고 표상되는 경우다. 그 예로는 CD-ROM이나 DVD에 실린 그림 모음이나 문학 텍스트 모 임, 이용자가 그림이나 텍스트를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 웹 사이트 등을 들 수 있다. 이 경우 디지털 미디어는 자료들 에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일 뿐이지만 새로운 미디어 의 개입을 원천적으로 제거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투명 성은 여전히 그 목적이 된다. 둘째 관습은 하나의 미디어 내용을 새로운 미디어에 실 으면서 새로운 버전이라고 강조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 전자의 버전은 일종의 개선(improvement)으로 제시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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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새로운 것은 여전히 오래된 것의 입장에서 정당화되며 기존 미디어의 속성에 충실하고자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의 <엔카르타(Encarta)>나 그롤리어(Glolier)의 <전자백 과사전>과 같은 CD-ROM 백과사전이 대표적인 예다. 이 런 유형의 디지털 미디어는 기존 미디어의 차용이자 개선 이지만 첫째 경우처럼 투명하다기보다는 반투명하다. 셋째는 보다 공격적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기존 미디어 의 존재를 드러내고 이에 따라 다중성이나 하이퍼매개성을 유지하면서도 기존 미디어를 완전히 ‘개조(refashioning)’ 하려는 경우다. 이것은 특히 이머전시 브로드캐스트 네트 워크의 <텔레커뮤니케이션 붕괴>와 같은 CD-ROM에서 뚜렷이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일차적인 개조 대상이 되 는 미디어는 CD에 녹음된 음악과 무대 위의 실황 연주다. 이러한 공격적인 재매개 유형은 원천 미디어와 대상 미디 어 모두를 부각시킨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미디어가 기존 미디어를 완전히 흡 수해 재매개하는 경우다. 두 미디어 사이의 불연속성을 최소화할 수는 있지만, 새로운 미디어가 기존 미디어를 인 정하든 안 하든 기존 미디어에 의존하게 된다는 점에서 재 매개 행위 자체가 기존 미디어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이런 예로, <미스트(Myst)>나 <둠(Doom)>과 같은 컴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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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게임 장르는 영화를 재매개하며, 이런 점에서 이런 게임 들은 때로 ‘상호작용 영화(interactive film)’라 불리기도 한 다. 월드와이드웹은 텔레비전의 ‘모니터링’ 기능을 차용해 ‘현재 여기’에서 벌어지는 일을 실시간으로 제공하고자 한다. 볼터와 그루신은 이 네 가지 재매개 관습 외에 하나를 더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셋째 유형인 개조의 또 다른 경우다. 이것은 동일한 미디어 내에서 일어나는 개조로, 예를 들어, 영화 <이상한 나날들>이나 <현기증>에서처럼 한 영화가 이전의 다른 영화에서 한 부분을 차용하는 경 우, 또는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vet)의 <나의 작 업실>에서와 같이 하나의 그림이 다른 그림을 포함시켜 통합하는 경우다.

재매개의 특징 볼터와 그루신은 재매개 관습의 특징을 다시 세 가지로 나 누어 강조한다. 여기서 볼터와 그루신의 설명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Bolter & Grusin, 1999/2006).

∙ 재매개는 매개의 매개다. 각각의 매개 행위는 다른 매개 행위에 의존한다. 미디어는 지속적으로 서로에 대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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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기하고 서로를 재생산하고 서로를 대체하며, 이 과정 은 미디어의 절대적 구성 요소다. 미디어가 미디어로 기 능하려면 서로를 필요로 한다. ∙ 재매개는 매개와 실재의 분리 불가능성이다. 보들리야 르(Baudrillard)는 시뮬레이션과 시뮬라크라 개념으로 달리 말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매개는 그 자체로 실재적 이다. 그것은 우리의 매개 문화 속에서 (자율적 주체들 만큼은 아니지만) 인공물만큼이나 실재적이다. 재매개 의 순환 속에서 모든 미디어가 다른 미디어에 의존한다 는 사실에도 상관없이, 여전히 우리의 문화는 모든 미디 어가 실재적인 것을 재매개한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매개를 제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재적인 것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재매개는 개혁이다. 재매개의 목적은 다른 미디어를 개 조하거나 복구하는 것이다. 나아가 모든 매개가 실재적 이면서 동시에 실재적인 것의 매개이기 때문에 재매개 또한 실재를 개혁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볼터와 그루신이 강조하는 바는 비매개, 하이퍼매개, 재매개가 단순히 인터페이스나 표상 측면에 서 드러나는 미학적 진리가 아니라 “특정한 시대에 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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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특정한 집단의 관행”이라는 것이다(Bolter & Grusin, 1999/2006). 예를 들어, 비매개의 논리가 르네상스에서 시작해 현재까지 전개되고 있지만, 각각의 시대에 어떻게 나타났는가 하는 것은 서로 크게 다르며 이론가, 예술가, 설계자, 그리고 보는 이에게 각기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 런 점에서 볼터와 그루신은 자신들이 탐구하는 재매개 관 습은 20세기 말 북아메리카의 미디어들에서 볼 수 있는 것 들이라고 한정한다. 이런 점에서 재매개는 인터페이스이 자 표상 양식이면서 문화적 관습이나 경험이다.

참고문헌 Bolter, J. D., & Grusin, R.(1999). Remediation: Understanding

new media. Cambridge, MA: The MIT Press. 이재현(역) (2006). 󰡔재매개: 뉴미디어의 계보학󰡕.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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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문화 인터페이스

“문화 인터페이스”는 레프 마노비치가 제안한 개념으로, 인간-컴퓨터-문화를 매개하는 멀티미디어 인터페이스를 말한다. 문화 인터페이스는 범용 HCI 외에 기존의 친근한 문화적 형식의 요소들에 의존하게 되는데, 그중에서 대표적인 문화 형식이 인쇄물 양식과 영화 양식이다. 대부분 문화 인터페이스는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범용 HCI의 인터페이스 은유나 관습들을,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문화 형식들이 제공하고 있는 관습들을 적절하게 조합하는 혼종성을 보여 준다.


문화 인터페이스의 3가지 양식 최근 들어 웹사이트, CD-ROM이나 DVD 타이틀, 멀티미 디어 백과사전, 온라인 박물관이나 미술관, 온라인 잡지, 컴퓨터게임 등과 같은 멀티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문화 형 식들을 디지털 형태로 접하게 되는데, 이와 같은 인간-컴 퓨터-문화를 매개하는 멀티미디어 인터페이스를 “문화 인 터페이스(cultural interface)”라 부른다(Manovich, 2001). 문화 인터페이스는 범용 HCI(Human-Computer Interface) 외에 기존의 친근한 문화 형식 요소들에 의존하게 되는데, 그중에서 대표적인 문화 형식이 인쇄물(printed word)과 영화(cinema)다. 이렇게 본다면 문화 인터페이스에는 크 게 세 가지 양식이 있는 셈인데, 첫째는 인쇄물 양식, 둘째 는 영화 양식, 그리고 셋째는 범용 HCI 양식이다. 이 세 가 지 전통은 정보를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조직화해 사용 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각각 독특한 방식들을 보여 주 고 있다. 여기서는 레프 마노비치(Lev Manovich, 2001)의 논의를 중심으로, 뉴미디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대표적인 세 가지 문화 인터페이스 양식의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인쇄물 양식 1980년대 이후 PC와 워드프로세서가 보편화되면서 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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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는 대량으로 정보를 디지털화해 전달하는 최초의 문화 미디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디지털 미디어의 개념이 탄 생하던 1960년대에 이미 연구자들은 책, 백과사전, 기술 보고서나 논문, 공상물 등과 같은 인간의 저작물을 온라인 으로 제공하는 방안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텍스트는 컴퓨터 부문에서 가장 유력한 미디어 유형이 다. 텍스트는 다양한 미디어 유형들 중 하나이기는 하지 만, 3D 그래픽의 좌표값, 디지털 이미지의 픽셀값, HTML 페이지의 포맷 지정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다른 미디어들 을 표현하는 코드라는 점에서 컴퓨터 미디어의 메타언어 (metalanguage)이기도 하다. 텍스트는 명령어, 에러 메시 지, 대화박스 등에서 보듯 여전히 컴퓨터와 사용자 사이의 가장 대표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텍스트가 메타언어로 사용되면서 문화 인터 페이스는 텍스트의 정보 조직화 원리에 많은 부분을 의존 하게 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원리가 바로 페이지(page)다. 페이지는 일정한 양의 정보가 일정한 순서에 따라 배열된 직사각형의 표면으로 다른 페이지와도 독특한 관계를 맺 고 있다. 역사적으로 페이지는 기존의 기록 매체인 점토 판(clay tablet)이나 파피루스 두루마리(papyrus roll)가 합본(codex)으로 대체되던 기독교 문명 초기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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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는 친근한 문화 인터페이스인 ‘페이지 인터페이스’ 에 의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컴퓨터 기술을 동원해 페 이지 개념을 새롭게 확장해 나갔다. 1984년 애플은 매킨토 시에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즉 GUI(Graphical User Interface)를 도입하면서 중첩되는 윈도즈(overlapping windows)로 정보를 표현했는데 이는 여러 장의 페이지들 을 함께 제공하는 기존의 책과 유사한 것이었다. 또한 개 별 페이지들은 컴퓨터 스크린의 공간적 한계를 넘어서 스 크롤로 확장될 수 있었는데, 이것은 일종의 가상 페이지인 셈이다. 1987년 애플은 하이퍼카드라는 프로그램을 개발 했는데, 이것은 페이지 내에 멀티미디어 요소들을 포함시 킬 수 있도록 함은 물론 순서와 상관없이 페이지들 사이의 링크를 설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몇 년 후에 등장한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은 문서나 페이지들 사이의 링크를 단일한 컴퓨터 내에 국한하지 않고 네트워 크를 통해 다른 컴퓨터로까지 확장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와 같은 페이지 인터페이스의 변화는 페이지의 점진적 ‘가상화(virtualization)’ 과정이다. 이와 같은 페이지 개념 의 확장은 한편으로는 역설적이게도 고대 이집트나 그리 스 로마 시대의 파피루스 두루마리로 회귀한 것으로 간주 할 수 있다. 윈도나 웹 페이지 내에서 스크롤링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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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인 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행위보다는 오히려 두루 마리를 펼쳐 보는 것과 유사한 행위다. 그러나 최근의 인터페이스 변화는 문화 인터페이스로 서 위상을 갖고 있던 페이지 인터페이스의 근본적인 변혁 을 초래하고 있다. 우선 텍스트 중심의 위계구조가 변하 고 있다는 것이다. 웹이 보편화되던 1990년대 중반 이후 그래픽, 사진, 비디오, 사운드, 3D 등 다양한 멀티미디어 유형들이 웹 페이지 내에 포함되기 시작했지만, 그런 웹 페이지들은 여전히 텍스트에 다른 미디어 유형들이 종속 되어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페이지 개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VRML(Virtual Reality Markup Language)과 같은 새로운 저작 기술이 도입되면서 새로운 웹 페이지는 텍스트도 다른 미디어 유형들과 동등한 위상을 갖는 하나 의 거대한 3차원 공간으로 전환되어 가고 있다. 둘째는 정보 조직화의 선형성이 파괴되고 있다는 것이 다. 이것은 웹이나 하이퍼텍스트에서 볼 수 있는 문서들 사이의 하이퍼링크 구조 때문인데, 전통적인 책에서도 본 문과 각주 사이의 관계에서 보듯 하나의 텍스트와 다른 텍 스트 사이에 연계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본문을 선형 적으로 읽어 나가는 것이 주요한 독해 행위다. 그러나 이 와 달리 선형성이 파괴되면서 사용자는 정보의 그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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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든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동등한 위상을 갖는 다양한 미디어 유형들과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셋째는 일반적인 웹 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페이지 관 습을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시도가 제시되고 있다는 것이 다. I/O/D 집단이 만든 1997년의 웹 스토커(Web Stalker) 라는 웹 브라우저는 다른 브라우저처럼 페이지를 보여 주 는 것이 아니라 페이지들 사이의 하이퍼링크 네트워크 구 조를 맵과 같은 형태로 제시한다. 위즈니우스키(Maciej Wisniewski)가 개발한 1999년의 네토마트(Netomat)라는 브라우저 또한 페이지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검색된 페 이지들에 포함되어 있는 페이지 제목, 이미지, 오디오 등 과 같은 미디어 유형들을 화면에 떠다니듯 띄워 준다. 이 런 시도들은 페이지 은유를 거부하고 링크의 구조나 미디 어들의 흐름을 그래픽 형태로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이다.

영화 양식 초창기에 인쇄물 전통이 문화 인터페이스를 지배했다면 이제 그 전통은 약화되고 새롭게 영화 양식의 역할이 증대 되고 있다. 이와 같이 인터페이스에서 문자적인 언어 양 식보다 영화적인 언어 양식을 선호하게 되는 것은 공간적 조직화 미디어인 텍스트보다는 시간적 조직화 미디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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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으로 정보를 조직화하려는 현대 문화의 경향을 반영 하는 것이다. 100여 년 전 영화가 탄생한 이후 세상을 보 는, 시간을 구조화하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그리고 하나 의 경험을 다른 경험과 연계시키는 영화 방식은 컴퓨터 사 용자가 문화 자료와 상호작용하는 기본 방식이 되어 왔다. 이와 같이 영화 양식이 문화 인터페이스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영화가 친근한 문화 형식이기 때문이다. 문화 인터페이스에 영향을 준 영화 양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움직이는 카메라 (mobile camera)’다. 이것은 원래 1980년대와 1990년대 컴퓨터 활용 디자인(computer-aided design, CAD), 비행 시뮬레이터, 디지털 영화 등을 위한 3D 그래픽 기술의 한 부분으로 개발된 것인데, 이제 윈도 스크롤, 자르고 붙이 기(cut & paste)와 같은 인터페이스 관습 못지않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즉 물리적 대상이나 현상의 시 뮬레이션, 통계 자료의 제시, 컴퓨터 네트워크의 구조 표 현 등 말 그대로 모든 대상과 경험을 줌, 틸트, 팬, 트랙, 달 리 등과 같은 영화 문법으로 ‘공간화(spatialization)’하기 에 이른 것이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그래픽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 중 하나인 파워애니메이터(power animator) 는 그 내용과 상관없이 모든 윈도에 달리, 트랙, 줌 버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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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하고 있는데, 심지어 텍스트 문서에 대해서도 마치 3 차원 모델이나 그래픽에서와 같이 달리나 팬이 가능하다. 이것은 카메라에 힘입은 페이지의 대체, 나아가 인쇄물 전 통에 대한 영화적 비전의 승리인 셈이다. 마노비치는 이 를 “구텐베르크 갤럭시가 뤼미에르 우주의 한 부분이 되 어 버렸다”고 표현한다(Maonvich, 2001). 문화 인터페이스에 영향을 미친 영화 양식의 또 다른 예는 ‘직사각형의 프레임 (rectangular framing)’을 통한 현실 표상이다. 원래 직사각형의 프레임은 서구 회화의 전통을 계승한 것인데, 르네상스 이후 특히 원근법을 개발 한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이래로 프레임은 세상을 보는 창문(window)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런 점에서 공간은 직사각형의 프레임 내 공간, 즉 ‘온스 크린 공간(onscreen space)’과 더욱 넓은 프레임 밖의 공 간으로 나뉜다. 이와 같이 회화나 사진이 직사각형의 프 레임으로 좀 더 넓은 공간의 한 부분을 표상하는 것과 마 찬가지로 HCI는 윈도를 통해 더욱 큰 문서의 한 부분을 보 여 준다. 그러나 양자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데, 회화나 사진의 프레임이 창작자에게 선택되면 영구히 고 정되는 반면, HCI의 프레임은 윈도 스크롤에서 보는 바와 같이 프레임의 ‘이동성(mobility)’에서 자유자재로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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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으로 이동하면서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컴퓨터의 문화 인터페이스에 영향을 준 영화 양식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즉 컴퓨터 윈도의 스크롤은 영화의 ‘키노 아이 (kino-eye)’인 셈이다. 상호작용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VRML 세계나 게임의 공간은 두 가지의 영화 양식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 다. 직사각형의 프레임 속에 구현된 이런 공간을 이동하 는 사용자에게 움직이는 가상의 카메라(virtual camera) 를 이용해 다양한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가상공간의 설계자는 건축가이자 촬영기사(cinematographer)인 셈 이다. VRML 브라우저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소프트웨 어는 사용자의 공간 내 움직임을 자동적으로 계산해 하나 의 관점에서 다른 관점으로 매끄럽게, 또는 점프컷으로 이 동하게 해준다. 특히 컴퓨터게임은 가장 역동적인 관점의 이동을 보여 준다. 이와 같은 특성은 1940년대 이후 컴퓨터 기술의 발전, 특 히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측면에서 자동화(automation) 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이런 기술 발전에 힘입어 컴퓨터 인 터페이스에는 영화 양식의 요소들이 단계적으로 도입되었 던 것이다. 첫째로 단일 시점의 원근법이, 둘째로 움직이 는 카메라와 직사각형의 윈도가, 셋째로 촬영과 편집 관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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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 최종적으로 캐릭터, 세트 디자인, 내러티브 구조 등 이 가상공간의 구성에 활용되었다. 이런 점에서 인쇄물을 누르고 가장 대표적인 문화 인터페이스가 된 영화는 이제 모든 문화 커뮤니케이션의 ‘툴박스(toolbox)’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영화적 양식을 거부하는 대안적인 프 로젝트들도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먼저 베를린의 ART+COM 집단의 요하임 사우터(Joachim Sauter)와 디 르크 뤼젠브링크(Dirk Lüsenbrink)는 <과거 사물의 비가 시적 형상(The Invisible Shape of Things Past)>이라는 프로젝트에서 베를린의 역사 자료를 독특한 인터페이스 로 보여 준다. 사용자는 베를린의 3차원 공간을 여행하며 길가에 있는 기다란 형상을 접하게 된다. ‘필름오브제 (filmobject)’라 불리는 이 형상들은 도시의 그 지점에서 촬영된 다큐멘터리 실사들인데, 각각의 실사들이 디지털 화되어 하나하나 중층적으로 쌓여 있다. 사용자는 표면부 터 하나하나의 프레임들을 클릭해 나가며 역사적 변천을 확인할 수 있는데, 하나씩 볼 때마다 그 형상은 점차 얇아 진다. 각각의 프레임은 마치 책의 페이지와 유사하고, 형 상은 한 권의 책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이 작업은 ‘시간의 공간화’인 것이다. 또 다른 예는 헝가리 왈리츠키(Tamás Waliczky)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들로, 그는 단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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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카메라를 통한 촬영과 편집 관습들을 거부하고 베를린 역 사를 ‘시간의 공간화’로 표현한 요하임 사우터(Joachim Sauter, 1959∼ ) ⓒ 커뮤니케이션북스

점의 원근법을 거부하고 적하(water drop) 원근법, 원통 (cylindrical) 원근법, 역(reverse) 원근법 등 독특한 원근법 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시도들은 영화적 양식의 보편화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문화 인터페이스의 새로운 변혁이다.

HCI HCI는 인쇄물 양식이나 영화 양식 못지않게 문화 인터페 이스의 주요한 양식들을 제공하고 있다. 1940년대부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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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해 1980년대 초반까지 실시간 무기 통제, 과학 시뮬레 이션, CAD, 사무실 작업 환경 제공 등의 목적에서 개발되 어 온 HCI는 이제 문화 자원을 제공하고 문화 경험을 가능 케 해주는 문화 인터페이스로 그 기능이 확대되고 있다. 문화 인터페이스로서 HCI는 두 가지 관습의 혼성체 (hybrid)라 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스크롤 가능한 윈도, 위 계적 메뉴 체계, 대화상자, 명령어 라인, 폴더와 파일 구 조, 휴지통 등과 같은 범용 HCI의 관습이고 다른 하나는 인쇄물이나 영화와 같은 전통적인 문화 형식들의 관습이 다. 이에 따라 문화 인터페이스로서 HCI에는 두 가지 관 습 사이의 긴장이 상존하는데,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나 타난다. 그 첫째는 통제(control)와 표상(representation) 사이 의 긴장이다. MacOS, 윈도즈, 유닉스 등과 같은 범용 HCI 의 관습들은 기본적으로 정보 제공, 복제, 이동, 디스플레 이 방식의 변경 등과 같은 구체적인 행위(action)나 조작 을 가능케 해주는 것이다. 이와 달리 인쇄물이나 영화의 관습들은 행위나 조작보다는 문화적 자원들에 대한 몰입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 스크린은 표 면적으로는 자동차나 비행기에서와 같은 계기판이 되기 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가상의 공간을 들여다보는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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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즉 몰입 환경이 되기도 한다. 둘째 측면은 표준화(standardization)와 독창성(originality) 사이의 긴장이다. 현대적인 HCI 설계의 가장 중요한 원칙 은 일관성인데, 이에 따라 메뉴, 아이콘, 대화상자 등과 같 은 인터페이스 요소들은 응용 프로그램 안에서는 물론이 고 다른 응용 프로그램과도 일관성을 갖추어야 한다. 이와 달리 문화 형식들은 다른 작품들과 구별되는 창의성을 강 조하게 된다. 이에 따라 문화 인터페이스는 이 두 가지 가 치들을 모두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추세와 달리, 전통적인 범용 HCI의 관습에만 의존하는 문화 인터페이스도 가능하다. 게랄드 반 데르 카프(Gerald Van Der Kaap)의 CD-ROM <블라인드롬 V.0.9>(1993)은 ‘블라인드 레터’라 불리는 폴더와 그 안의 텍스트 파일들로 구성되었는데, 사용자는 이미지 뒤에 숨 겨 있는 하이퍼링크나 3D 환경의 항해와 같은 별도의 인 터페이스 방식을 배우지 않고도 한 파일씩 읽어 나가면 된 다. 사용자는 간단한 마우스 클릭만으로 인터페이스 환경 에 주의가 분산되지 않은 채 전적으로 작품에만 몰입할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 CD-ROM은 새로운 문화 인터페이 스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대부분 문화 인터페이스는 한편으로는 전통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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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범용 HCI의 인터페이스 은유나 관습들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문화 형식들이 제공하는 관습들을 적 절하게 조합하게 된다. 통제나 조작의 수단으로 컴퓨터를 이용하는 것과 문화 형식 또는 커뮤니케이션 장치로서 컴 퓨터를 이용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 그러나 중요 한 것은 문화 인터페이스가 인쇄물이나 영화와 같은 전통 적인 문화 형식의 관습과 언어만을 모방하게 되면 자료의 표현과 조작, 상호작용성, 시뮬레이션 등과 같이 컴퓨터 가 제공하는 새로운 가능성은 활용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다. 문화 인터페이스는 책, 회화, 영화 등 기존의 문화 형 식들에 비하면 아직 초보 단계에 머물고 있으며, 따라서 어떠한 관습으로 정착할지 불확실하다. 그러나 현재 새로 운 문화적 메타언어가 등장하고 있고 이것이 인쇄물이나 영화 못지않게 앞으로 중요한 문화 인터페이스가 될 것이 라는 점은 분명하다.

참고문헌 이재현(2004). 󰡔멀티미디어와 디지털 세계󰡕.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Manovich, L.(2001). The Language of New Media. Cambridge, MA: The MIT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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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원격현전

원격현전은 “커뮤니케이션 매체에 의해 어떤 환경 속에 실재하고 있음을 경험하게 되는 것”, 즉 환경에 대한 매개된 지각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스토이어에 따르면, 기술적 차원에서 원격현전을 결정하는 요소는 “생동감”과 “상호작용성”으로 대별된다. 이용자 요인으로 대표적인 것은 이용자가 매개 환경 내지 테크놀로지와 맺는 관계, 즉 관여다.


원격현전의 개념 원래 현전(presence)은 “어떤 환경 속에서 느끼는 실재감 (sense of being)”을 뜻하는데, 이런 점에서 원격현전은 “커뮤니케이션 매체에 의해 어떤 환경 속에 실재하고 있 음을 경험하게 되는 것”, 즉 환경에 대한 매개된 지각 (mediated perception)이라 할 수 있다(Steuer, 1992). 현전은 원격귀인(distal attribution) 또는 외부지향 (externalization) 현상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데, 이것은 감각기관 자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외부 공간을 지각하고 자 하는 경향을 말한다. 매개되지 않은 환경에 있게 되면 주위의 물리적 환경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매 개된 환경과 매개되지 않은 환경, 두 가지가 동시에 주어 지게 될 경우 어떤 환경을 우선하는가가 문제가 된다. 조 너선 스토이어(Jonathan Steuer, 1992)에 따르면, 원격현 전은 바로 즉각적인 물리적 환경보다 매개된 환경 속에서 더 실재감을 느끼게 될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여기서 매 개된 환경은 비디오 카메라를 통해 보는 원거리의 공간과 같은 실재(real) 환경이 될 수도 있고, 컴퓨터로 만들어진, 실재하지 않는 가상세계(virtual world)가 될 수도 있다. 즉, 원격현전을 느끼게 하는 것은 실재 환경이 될 수도 시 뮬레이션된 환경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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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 원격현전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다. 원격현전의 개념은 다양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매 튜 롬바드와 테레사 디턴(Matthew Lombard & Teresa Ditton, 1997)은 현전의 개념을 여섯 가지로 유형화해 제 시하고 있는데 여기서 제시하는 현전의 개념은 엄밀하게 보면 원격현전을 말하는 것이다. 첫째는 사교적 풍부성(Social Richness)으로서 현전이 다. 조직 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 출발한 사교적 현전 이 론(Social Richness Theory)과 미디어 풍부성 이론(Media Richness Theory)에 따르면, 미디어를 통해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할 때 미디어별로 사교적이거나 따뜻하거나 친 밀하다고 느끼는 정도가 다른데, 이것은 면대면 커뮤니케 이션과 달리 CMC(computer-mediated communication) 와 같은 매개 커뮤니케이션의 경우 사교적 풍부함이 부족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사교적 풍부성으로 현전 개 념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는 친밀성(intimacy)과 즉각성 (비매개성, immediacy)이라 할 수 있다. 둘째는 현실감(realism)으로서 현전이다. 여기서 현실 감이란 미디어가 실재하는 대상, 사건, 사람 등을 실재하 는 것처럼 표상해 낼 수 있는가를 말한다. 이런 점에서 각 매체는 얼마만큼 현실감을 불러일으키는가에 따라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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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수 있다. 현실감은 사회적 현실감(social realism)과 지 각적 현실감(perceptual)으로 나눌 수 있는데, 여기서 사 회적 현실감은 매체가 묘사하는 내용이 실제로 발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고 지각적 현실감은 대상이나 사람이 얼 마나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가 하는 것이다. 후 자의 경우, 공상과학 영화에서와 같이 사회적 현실감은 떨 어지지만 지각적 현실감이 높을 수 있으며, 만화에서와 같 이 지각적 현실감은 떨어지지만 사회적 현실감은 높은 경 우도 가능하다. 셋째는 이전(transportation)으로서 현전이다. 매체는 이용자에게 다른 어떤 곳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 이전에는 세 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는데, 그 하 나는 “그곳에 있다(You are There)”로서, 가장 오래된 유 형의 현전이다. 다른 곳에 관한 이야기를 듣거나 책을 읽 을 때, 전화를 하거나 TV를 볼 때, 그리고 최근에는 가상 현실 기술을 이용해 원격작동(teleoperation)을 하거나 인 터넷을 통해 가상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방문할 때 마치 다 른 곳에 있는 것과 같은 실재감을 느끼게 된다. 또 다른 형 태는 “이곳에 있다(It is Here)”로서, 대상이나 사람이 다른 곳으로부터 매체 이용자의 환경 속으로 불려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TV나 비디오를 볼 때,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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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를 통해 전달된 상징적 메시지를 해독하려 하기보다는 마치 그것이 물리적인 사물처럼 직접적으로 반응하려고 한 다. 마지막 형태는 “우리가 함께 있다(We are Together)”로 서, 매체를 통해 다른 사람과 공간을 공유하는 것과 같은 느 낌을 받게 되는 경우다. 비디오 회의나 인터넷 채팅방이나 온라인 게임 그리고 최근의 가상현실 시스템은 이러한 실 재감을 느끼게 하는데, 이러한 공간 속에서 이용자들은 커 뮤니케이션과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넷째는 몰입(immersion)으로서 현전이다. 이는 매체에 의해 가상 환경 속에 빠져들어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으로, 지각적 몰입(perceptual immersion)과 심리적 몰 입(psychological immersion)의 두 가지를 포함한다. 지 각적 몰입은 가상 환경이 이용자의 감각 체계를 감싸 버리 는 정도를 말하는데, 최근의 가상현실 시스템은 입출력 장 치들을 이용해 이용자의 모든 감각기관을 대체해 물리적 인 환경을 완전히 차단하고자 한다. 심리적 몰입은 감각 기관을 에워싸는 기술적 장치가 없더라도 이용자가 스스 로 몰입적 실재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다. 이 두 가지 몰입 이 결합될 때 몰입의 정도는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다섯째는 매체 내 사회적 행위자(social actor within medium)로서 현전이다. 이는 매체 속의 인물이나 대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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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작용을 하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의 사교호작용(para-social interaction)의 대상이 되는 TV 속 의 캐릭터, 다마고치와 같은 컴퓨터 애완동물이나 사이버 가수와 같은 컴퓨터 캐릭터, 게임이나 채팅방의 아바타, 그리고 원격 교육 시스템의 안내자 등과 같은 가상 인물은 바로 이용자로 하여금 상호작용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는 대상이다. 이들 대상들과 상호작용을 할 때 이용자들은 실재감을 느끼게 된다. 마지막으로 매체가 사회적 행위자(medium as social actor)가 되는 경우다. 매체 내의 사회적 행위자에게 반응 하는 것이 아니라 매체 자체가 행위자처럼 이용자와 상호 작용하게 될 때 이용자는 현전감을 느끼게 된다. 최근 컴 퓨터 인터페이스의 발전은 인간-인간의 상호작용 단계에 서 벗어나 인간-컴퓨터 상호작용의 환경을 제공한다. 컴 퓨터 교육 프로그램이나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학습은 컴 퓨터가 마치 교사와 같이 학습을 안내하는 역할을 수행하 는데, 이는 컴퓨터가 마치 인간과 같이 사회·사교적 단서 들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원격현전의 결정 요인 인터넷을 포함해 기존 매체도 마찬가지지만, 정도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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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있을 뿐 원격현전은 다양한 요인들에 기대어 경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감각 자극들의 결합, 참여자들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방식, 그리고 환경을 경험하는 개인들의 특 성 등이 이에 포함될 수 있다(Steuer, 1992). 결국 원격현 전을 야기하는 요인은 대체로 기술적 요인과 이용자 요인 으로 대별될 수 있다. 스토이어(1992)는 기술적 차원에서 원격현전을 결정하는 차원을 “생동감(vividness)”과 “상호작용성(interactivity)”으 로 구분하고 있다. 이는 다시 각각 하위 요인들을 포함하 고 있는데 각 요인들은 매체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르다. <그림 2>는 원격현전의 결정 요인들을 하위 수준까지 그 림으로 나타낸 것인데, 생동감과 상호작용성이라는 기술 적 요인으로 야기되는 원격현전은 이용자, 즉 인간 경험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생동감은 “매개된 환 경이 제공하는 표상적 풍부함(representational richness)” 을 말하는데, 이는 감각 체계에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 즉 형식적 특성에 의해 규정된다. 생동감을 결정하는 두 가 지 주요한 요인은 폭(breadth)과 깊이(depth)다. 여기서 폭은 동시에 전달되는 감각 차원들의 수를, 깊이는 이러한 지각 채널들 각각이 갖고 있는 해상도(resolution)를 말한 다. 즉 더욱 많은 감각기관에 소구할수록, 그리고 그 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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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원격현전의 결정요인

출처: 스토이어(Steuer, 1992).

의 해상도가 높을수록 생동감은 높아지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폭은 얼마나 다양한 감각기관에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인간이 갖고 있는 감각 체계는 균형감각, 청각, 촉각, 미각, 시각 등 다 섯 가지인데,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단일 감각기관에 소구 하는 형태로부터 다양한 감각기관에 소구하는 형태로 발 전되어 왔다. 인쇄물, 전화, 텔레비전, 영화 등과 같은 전 통적 매체는 시각이나 청각 채널에 주로 의존한다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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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폭이 상대적으로 좁다. 1962년 모턴 하일리그(Morton Heilig)가 개발한 센소라마(sensorama)라는 영화 장치나 테마파크의 놀이기구들은 그 폭이 넓은 편이며, 최근의 테 크놀로지들은 모든 감각기관의 입력을 동시에 중첩적으 로 제공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깊이는 감각기관 각각에 제공되는 감각 정보의 질 (quality) 또는 대역폭(bandwidth)에 따라 달라진다. 실재 세계에서 인간의 감각기관은 완전한 대역폭을 갖고 작동 하지만, 지금까지 개발된 매체의 경우는 대역폭에서 일정 한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청각은, 음성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최소한의 대역폭만을 사용하지만, CD는 상 대적으로 청각적 대역폭이 넓다. 서라운드(입체) 음향 시 스템이나 헤드폰 형태의 음향 시스템은 대역폭의 확대를 넘어 공간 환각(illusion of space)을 불러일으켜 현전감을 높여 주는 데 기여한다. 한편 시각은, 525라인 또는 625라 인 정도의 제한된 주사선을 갖는 일반 텔레비전과 달리 영 화는 상대적으로 대역폭이 넓다. HDTV와 같은 발전된 형 태의 영상 시스템이나 투구형 디스플레이(head-mounted display, HMD)와 같은 가상현실 시스템은 입체 영상을 통 해 현전감을 높여 준다. 한편, 현전감을 높여 주는 또 다른 차원인 상호작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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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매개된 환경의 형태와 내용을 이용자가 실시간으로 변 형시킬 수 있는 정도’를 말한다. 이는 매개된 환경과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 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전통 개념과는 다른 것이다. 이 런 의미에서 상호작용성을 높여 주는 주요 요인들은 속도 (speed), 범위(range) 그리고 매핑(mapping) 등 세 가지 를 들 수 있는데, 속도는 입력된 것이 매개 환경에 흡수되 는 빠르기를, 범위는 주어진 한 시점에 작용할 수 있는 가 능한 경우의 수를, 그리고 위치 지우기는 통제 내용을 매개 환경 속의 변화로 위치 지우는 시스템의 능력을 말한다. 먼저 속도, 즉 반응 시간은 상호작용 시스템을 특징짓 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영화, 책, 신문 등과 같은 전통 매 체는 상대적으로 상호작용의 속도가 느린데, 전통 매체 중 에서도 전화는 실시간으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최근 새로운 매체들은 상호작용성이 높은 편인데, 해상도는 낮 을지 모르지만 비디오게임, 컴퓨터 회의 시스템이나 채팅 그리고 최근의 고글과 데이터 장갑을 사용하는 가상현실 시스템은 상호작용의 속도가 매우 빠른 것들이다. 그다음으로 상호작용의 범위는 매개 환경이 변경할 수 있는 속성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 변화 의 양은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결정된다. 변경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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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미터의 수와 정도는 몇 가지 차원에 따라 살펴볼 수 있는데, 시간적 순서, 공간적 조직화, 강도(소리의 크기, 이미지의 밝기, 냄새의 강도 등), 주파수 특징(음색, 색상) 등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영상 시스템들을 시간 순서의 변화 정도에 따라 나열해 보면, 일반 지상파 텔레비전, 비 디오테이프, 상호작용적 레이저디스크, 컴퓨터 애니메이 션 등의 순이 된다. 마지막으로 상호작용성을 규정하는 매핑은 인간 행동 이 매개 환경 속의 움직임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나타내 는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인간 행동이 실제 기능과 완벽 하게 자의적으로 연관되기도 한다. 텔레비전 스피커 레버 를 좌우로 돌리는 것과 소리가 커지고 작아지는 것, 컴퓨 터 키보드에 자판을 두드리는 것과 실제 화면의 변화 등은 그런 예에 속한다. 한편 아케이드 게임의 오토바이 타기 나 컴퓨터 마우스 움직임은 인간 행동과 실제 기능 사이의 유사성이 매우 높은 예에 속한다. 인간의 자연스런 움직 임을 매개 환경 속에 위치 짓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은유’의 사용인데, 애플의 매킨토시 컴퓨터로부터 사용되 기 시작한 데스크톱 은유(desktop metaphor)는 통제하는 것과 통제되는 것을 매치시키는 대표적인 인터페이스의 예다. 최근의 가상현실 시스템들은 데이터 글러브,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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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기, 그리고 음성 인식 시스템을 사용해 인간 행동을 그대로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기술적 요인들은 서로 결합될 경우 상승작 용을 일으켜 보다 높은 현전감을 경험하게 한다. 그리고 하나의 요인이 강하면 다른 요인에도 상승작용을 일으키 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매체에 따 라 생동감과 상호작용성의 정도에 따라 현전감을 경험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른데, <그림 3>은 이 두 가지 차원으로 확인할 수 있는 매체적 특성을 나타낸 것이다. 한편 현전감을 경험하는 데 기여하는 요인은 매체가 갖는 기술적 측면 외에 이용자 측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런 요인들로는 가상 환경 속에 함께하는 행위자들의 수, 이용자의 환경 요인들, 개인 관심사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용자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은 이용자 가 매개 환경 내지 테크놀로지와 맺는 관계, 즉 관여 (engagement)다. 브랜다 로렐(Branda Laurel, 1991)에 따 르면, 이것은 일종의 정서 상태로 새뮤얼 콜러리지(Samuel T. Coleridge)가 말하는 “불신에 대한 자발적 중지(willing suspension of disbelief)”와 유사한 것이다(Laurel, 1991).

콜러리지는 바보라도 무대 위의 연극이 실제 삶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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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생동감과 상호작용성에 따른 매체별 분포

출처: 스토이어(Steuer, 1992).

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믿었다 … 콜러리지는 연극을 즐기 려면 그것이 ‘가장된 것’이라는 우리의 앎을 일시적으로 중 지(또는 약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우리 는 다른 정서적 반응을, 행위를 보는 데 따른 결과로 경험 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이를 하는 것이다. 콜러리지가 묘사 한 현상은 … 컴퓨터게임에서도 거의 동일하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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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이재현(2004). 󰡔멀티미디어와 디지털 세계󰡕.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Laurel, B.(1991). Computers as Theatre. Reading, MA: Addison-Wesley. Lombard, M., & Ditton, T.(1997). At the Heart of It All: The Concept of Telepresence. Journal of Computer-Mediated

Communication, 3(2). [Online] Available: http://www.ascusc.org/jcmc/vol3/issue2/lombard.html Steuer, J.(1992). Defining Virtual Reality: Dimensions Determining Telepresence. Journal of Communication,

42(4), 7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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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현실 조작 장치

뉴미디어는 우리 인간에게 ‘현실 조작 장치’이기도 하다. 뉴미디와 거의 동의어가 되어 버린 컴퓨터는 연산 장치에서 상징 조작 장치를 거쳐 현재와 같은 지각 처리 장치, 즉 현실 조작 장치로 변신해 왔다. 뉴미디어는 실재 환경과 가상 환경이 중층적으로 결합된 ‘혼합 현실’을 제공하며 우리의 ‘세계’를 구성해 내고 있다.


상징 조작 장치에서 현실 조작 장치로 뉴미디어는 현재 우리 인간에게 ‘현실 조작 장치(reality manipulator)’이기도 하다. 즉 미디어는 우리가 보는 현실 을 구성해 보여 주기에, 즉 우리의 즉각적인 현실이기에 우리의 현실 인식은 물론 일상적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 친다. 현실 조작 장치로서 뉴미디어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컴 퓨터가 어떻게 현실 조작 장치가 되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컴퓨터의 ‘변신’을 이야기하는 것은 현재의 뉴미디 어가 컴퓨터와 구별하기 어려운, 사실상 컴퓨팅 장치이기 때문이다. 제이 데이비드 볼터와 리처드 그루신(Jay David Bolter & Richard Grusin, 1999/2006)에 따르면, 컴 퓨터는 연산 장치(calculating engine)에서 상징 조작 장 치(symbolic manipulator)를 거쳐 현재와 같은 지각 처리 장치(processor of perceptions), 즉 현실 조작 장치로 변 신해 왔다. 볼터와 그루신은 그 변신 과정의 첫 단계인 연 산 장치에서 상징 조작 장치로의 발전을 다음과 같이 설명 한다(Bolter & Grusin, 1999/2006).

우리는 지난 50년 동안 디지털 컴퓨터가 이러한 ‘미디어화 (mediatization)’ 과정을 거쳐 왔음을 알게 되었다. 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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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 처리가 가능한 디지털 컴퓨터는 1940년대 연산 장치 (ENIAC, EDSAC 등)로 발명되었다. 1950년대까지 그 기계 는 대기업이나 기관의 재무관리와 회계에 활용되었다. 그 시기에 일부 제안자들은 컴퓨터를 새로운 글쓰기 테크놀 로지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것은 1950년 앨런 튜링 (Alan M. Turing)의 유명한 논문 “전산 기계와 지능”과 함 께 시작된 인공지능 운동의 메시지였다. 인공지능이 제공 한 중요한 문화적 공헌은 컴퓨터가 새로운 유형의 정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컴퓨터가 상징 조작 장치 이며 이에 따라 육필이나 인쇄와 같은 기존의 자의적인 상 징 조작의 테크놀로지를 재매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편 둘째 단계인 컴퓨터의 지각 처리 장치, 즉 현실 조 작 장치로의 발전을 볼터와 그루신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 다(Bolter & Grusin, 1999/2006).

디지털 혁명의 대명사는 이제 이전의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라는 약자에서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로 대체되었다. 인공지능이 컴퓨터를 상징의 조 작자로 간주하는 패러다임이었다면, 실제 가상현실 응용 체계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기는 하지만, 가상현실은 컴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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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를 그래픽 엔진으로 간주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인 공지능에 대한 밀레니엄 수사는, 1950년 앨런 튜링(Alan M. Turing)이 2000년에는 컴퓨터가 인간 지능에 완벽히 도달할 것이라고 예언한 때, 즉 디지털 컴퓨터가 등장한 직 후에 시작되었다. 현재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응용 체계들이 수없이 많고, 일부 컴퓨터 연구자들이 여전 히 이 패러다임에 집착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우리 문화 는 이제 그것에 대해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 대신, 머지 않아 우리가 투구형 디스플레이(Head-Mounted Display, HMD)를 쓰고 작업하고 오락을 즐기게 될 것이라는 무리 한 예측이 나오고 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인공지능이 컴퓨터를 단순한 합산 기계에서 상징 처리 기기로 개조했 다면, 가상현실은 현재 컴퓨터를 지각의 처리 기기로 개조 하고 있다.

이와 같이 현재 뉴미디어는 우리의 현실을 개조하고 있 다. 전통적인 미디어도 우리에게 ‘구성된 현실(constructed reality)’을 제공해 주지만, 뉴미디어는 근본적인 수준에서 우리의 현실을 새롭게 규정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뉴미디 어는 명실상부하게 ‘현실 조작 장치’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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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와 혼합 현실 뉴미디어가 구성해 보여 주는 전형적인 ‘현실’은 실재 환 경(real environment)과 가상 환경(virtual environment) 이 중층적으로 결합된 ‘혼합 현실(mixed reality)’을 제공 하고 있다. 첨단의 가상현실 장치가 보여 주는 현실 외에 혼합 현실은 일상적으로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요즘 스마트폰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증강 현실(augmented reality, AR) 앱(app, application)은 스마트폰의 카메라 렌 즈를 통해 투시되는 실재 세계와, 지하철 역이나 커피숍과 같은 실재 세계의 대상물에 대한 정보를 보여 주는 가상 세계를 중첩시켜 보여 준다. 혼합 현실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몇 이론가 들의 도움을 받아 인접 개념이나 유사 개념을 명확히 규정 할 필요가 있다(de Souza e Silva, 2006). 먼저 폴 밀그램 과 허먼 콜쿤(Paul Milgram & Herman Colquhoun Jr., 1999)은 증강 현실, 즉 AR 개념에 대한 용법을 소개하며 혼합 현실을 다른 개념과 구분하고자 한다. 이들에 따르 면, 증강 현실의 용법은 대체로 세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 전통적으로 증강 현실은 투구형 디스플레이(HMD) 등의 장치를 통해 이용자가 접하게 되는 ‘실재’ 세계와 그 래픽 데이터의 중첩이라고 규정되어 왔다. 둘째, 증강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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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실재 환경이 컴퓨터그래픽으로 구현되는 가상의 객 체들에 의해 증강(augment)되는 모든 경우라고 폭넓게 정의할 수도 있다. 실재 대상물을 찍은 사진에 컴퓨터가 만들어 낸 가상의 이미지(computer-generated images)가 중첩(superimpose)되는 경우가 그런 예 중 하나다. 셋째 로, 이런 용법을 더 확장해, 증강 현실은 실재 환경과 가상 환경이 혼합된 모든 경우를 지칭할 수도 있다. 밀그램과 콜쿤은 첫째와 둘째 용법은 증강 현실이라고 부르되, 셋째 용법의 증강 현실은 ‘혼합 현실’이라고 부르기를 제안한 다. 가장 포괄적인 정의인 셋째 용법을 따르면, 혼합 현실 은 증강 현실과, 이른바 ‘증강 가상(augmented virtuality, AV)’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이 되는 셈이다. 여기서 ‘실재’ 와 ‘가상’, 두 가지 환경 중 어느 것이 우선하느냐에 따라 실재가 우선할 경우는 증강 현실, 가상이 우선할 경우에는 증강 가상으로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 4>에서 보 듯, 개별적인 ‘혼합 현실 장치’는 명확히 이분법으로 이것 또는 저것으로 구분되는 것은 아니며 양 극단을 갖는 연속 체의 한 지점에 위치한다. 이렇게 정의될 경우, 뉴미디어 는 혼합 현실을 제공하는 현실 조작 장치라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한편 MIT 미디어랩의 히로시 이시(Hiroshi Ishii,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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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혼합 현실의 정의 혼합 현실(MR)

증강 가상(AV)

증강 현실(AR)

가상 환경 (VE)

실재 환경 (RE) 실재 가상(RV) 연속체 출처: 밀그램과 콜쿤(Milgram & Colquhoun, 1999).

는 데스크톱 컴퓨팅의 진화 방향을 두 가지로 예견한 바 있는데, 한 방향은 우리의 피부와 육체를 대신하는 방향이 고 다른 한 방향은 우리가 거주할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을 지향하는 것이다. 첫째 방향은 바로 우리가 ‘착용 컴퓨팅 (wearing computing)’이라 부르는 것이고, 둘째 방향은 ‘유비쿼터스 컴퓨팅(ubiquitous computing)’으로의 발전 이다. 이시의 연구팀이 지향하는 바는 디지털 정보를 감 각 가능한(tangible) 것으로 만듦으로써 사이버 스페이스 와 물리적 환경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 즉 물리적 세계 속에 가상공간의 ‘비물질적’ 정보 비트를 구현하는 것이 다. 결국 우리 용어로 표현하면 가상 환경과 실재 환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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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톱 컴퓨팅이 가상과 실재가 혼합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라 주장한 히로시 이시(Hiroshi Ishii, 1956∼ ) ⓒ 커뮤니케이션북스

중첩와 혼합을 지향하는 것이다. 레프 마노비치(Lev Manovich, 2003)는 이시의 연구에 의거해 1990년대가 가상에 대한 관심의 시대라면, 2000년 대는 다시 ‘실재’에 대한 관심의 시대라고 규정하며, 증강 현실이라는 용어에 착안해 새롭게 “증강 공간(augmented space)”라는 용어를 제안한다. 여기서 증강 공간은 현실 조작 장치로 발전한 뉴미디어가 구성해 제공하는 ‘현실’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마노비치는 이른바 ‘증강 공간’을 보여 주는 응용 사례 내지 테크놀로지를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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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첫째는 비디오 감시로서, 물리적 환경에서 데이터를 획득해 디지털 네트워크에 통 합시키는 것이다. 둘째는 셀 공간(cellspace)으로서, 처음 과는 반대로,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장치와 휴 대전화를 가지고 물리적 공간에 있는 모바일 이용자에게 데이터를 전송하는 경우다. 셋째는 공적 공간에 설치된 컴퓨터 모니터나 비디오 디스플레이 장치에서 보듯, 지나 가는 사람들에게 디지털 정보를 볼 수 있게 해주는 경우를 말한다. 이 세 가지 경우 모두 물리적 공간과 디지털 정보 의 결합을 보여 주는 혼합 현실이다. 마노비치는 첫째의 경우처럼 물리적 공간으로부터 데이터를 추출하든, 둘째 와 셋째 경우처럼 물리적 공간을 데이터를 통해 증강시키 든, 물리적 공간을 데이터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모든 경우 를 다 ‘증강 공간’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정보가 주로 사이버 스페이스에서만 흘렀다면, 이제는 물 리적 공간과 가상공간 사이를 넘나들며 흐르면서 양 공간 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바일 미디어를 포함해 현대의 뉴미디어라는 테크 놀로지가 수행하는 현실 조작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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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Bolter, J. D., & Grusin, R.(1999). Remediation: Understanding

new media. Cambridge, MA: The MIT Press. 이재현(역) (2006). 󰡔재매개: 뉴미디어의 계보학󰡕.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de Souza e Silva, A.(2006). From cyber to hybrid: Mobile technologies as interfaces of hybrid spaces. Space and

Culture, 9(3), 261∼278. Ishii, H.(1999). Tangible bits: Coupling physicality and virtuality through tangible user interfaces. In Y. Ohta & H. Tamura (Eds.), Mixed reality: Merging real and virtual worlds (pp.229∼246). New York: Springer. Manovich, L.(2003). The poetics of augmented space. In A. Everett & J. T. Caldwell (Eds.). New media: Theories and

practices of digitextuality(pp.75∼92). New York & London: Routledge. Milgram, P., & Colquhoun, H., Jr.(1999). A taxonomy of real and virtual world display integration. In Y. Ohta & H. Tamura (Eds.), Mixed reality: Merging real and virtual

worlds(pp.5∼28). New York: Spri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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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미디어 레이어

이용자는 미디어 이용이라는 구체적인 시공간적 계기에 각각의 레이어에 포함되어 있는 요소들 중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여기서는 다섯 가지 레이어별로 하나씩 총 다섯 가지 요소를 조합함으로써 자신의 구체적인 ‘미디어 이용 이벤트’를 구성해 낸다. 미디어는 결국 ‘미디어 이용 이벤트를 통해 형성되는 그 무엇’이다. 미디어 레이어는 ① 미디어 기기 ② 물리적 네트워크 ③ 미디어 플랫폼 ④ 콘텐트 패키징 ⑤ 단위 콘텐트 등 다섯 가지로 구성된다.


미디어 레이어와 정보구조 새롭게 미디어를 개념화하기 위해 레이어(layer)라는 지 질학적 은유(geological metaphor)를 활용하고자 한다. 레이어는 원래 단층(stratum)을 의미하는 구조적 개념으 로, 고고학자들이 오래된 그 무엇을 발견하기 위해 발굴하 는 지층(deposit)도 그런 의미다. 이 레이어 은유는 미디 어 분야에서도 활용되고 있는데, 기술 중심 은유와 규제 중심 은유가 대표적이다. 기술 중심 은유의 대표적인 예는 컴퓨터 구조(computer architecture)다. 컴퓨터의 전형적인 구조는 일련의 추상화 레이어들(abstraction layers), 즉 하드웨어, 펌웨어, 어셈 블러, 커널, 운영 체계, 그리고 애플리케이션 등으로 구성 된다. 객체 지향 설계에서 정보 시스템 구조 또한 하부구 조 레이어, 도메인 레이어, 애플리케이션 레이어, 사용자 인터페이스 레이어 등 4개 레이어로 구성된다. 한편 규제 중심 은유의 대표적인 보기는 아마도 법학자 요차이 벤클러(Yochai Benkler, 2000)의 레이어 구분일 것이다. 그는 디지털 네트워크가 크게 발전하면서 네트워 크가 이용자의 것인지 아니면 생산자의 것인지를 둘러싸 고 복잡한 양상이 전개되고 이에 따라 규제 차원에서 선택 의 여지가 넓어졌다고 본다. 그는 이런 선택이 정보 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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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레이어를 규제 중심 차원에서 분류한 요차이 벤클러(Yochai Benkler, 1964∼ ) ⓒ 커뮤니케이션북스

템의 모든 수준에서 주어질 수 있다고 보면서, 레이어라 부르는 각 수준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물리적 하 부구조(physical infrastructure) 레이어로 전신, 케이블, 무선주파수 스펙트럼 등을 말한다. 둘째는 논리적 하부구 조(logical infrastructure) 레이어로서, 소프트웨어가 해당 된다. 셋째는 콘텐트(content) 레이어다(p.562). 필자는 기술 중심적, 규제 중심적 접근을 넘어, 그리고 생산자와 이용자 관점을 모두 포괄해 컨버전스 시대, 나아 가 그 이전과 이후를 포괄하는 미디어 또는 그 현상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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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 중심적 레이어 은유’라 부를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제 안하고자 한다. 이는 결국 매클루언이 던진 질문, 즉 “미디 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미디어에 대한 경험 중심적 레이어 은유 미디어는 객관적으로 저편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용의 계기에 이용자에 의해 레이어별로 선택된 요소들 의 조합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필자가 제안 하는 미디어 개념은 다음 몇 가지 점에서 차별적이다. 첫째, 미디어는 이용의 맥락 또는 계기에서만 드러나는 것이지 항상 어떠한 모습으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객관적이 아니라 함은 이용의 맥락에 따 라 미디어의 개념이 달라진다는 의미다. 둘째, 미디어는 이용자에 의해 규정되고 형성되는 것이 지 미디어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인 기기나 콘텐트를 생 산하고 공급하는 자가 만들어서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넷째, 미디어는 단일한 층위 즉 레이어로 구성되는 것 이 아니라 다층적이고 다원적인 요소들로 조합, 구성되는 것이다. 이 점이 컨버전스 시대를 맞아 가장 뚜렷이 부각 되고 있는 특징이다. 다섯째로, 미디어는 결국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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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며 결과적인 것이 아니라 ‘과정적’이다. 미디어를 유 동적이고 과정적인 것으로 이해한다고 해서 미디어의 모 습을 실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결국 이 책이 제안하는 경험 중심적 접근에서 설정한 미디어를 구성하는 레이어는 다섯 가지다. 뒤에서 자세 히 기술하겠지만, ① 미디어 기기(media device) ② 물리 적 네트워크(physical network) ③ 미디어 플랫폼(media platform) ④ 콘텐트 패키징(packaging) ⑤ 단위 콘텐트 (unit content) 등이 그것이다. 각각의 레이어에는 여러 요 소들이 포함되는데, 이것은 한 가지 기준으로만 나눌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여러 방식으로 구체화되고 분류될 수 있다. 어느 기준을 따를 것인지는 이론적 관심과 실제적 필요에 따라 결정된다. 기술 중심적 접근이나 규제 중심적 접근과 비교해 경험 중심적 접근이 갖는 차별성은 이용의 계기에 이용자에 의 해 미디어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조합됨으로써 미디어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즉 이용자는 미디어 이용이라는 구체 적인 시공간적 계기에 각각의 레이어에 포함되어 있는 요 소들 중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여기서는 다섯 가지 레이어 별로 하나씩 총 다섯 가지 요소를 조합(combination)함으 로써 자신의 구체적인 ‘미디어 이용 이벤트(media 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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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nt)’를 구성해 낸다. 미디어는 결국 ‘미디어 이용 이벤 트를 통해 형성되는 그 무엇’이다. 미디어 이용 이벤트는 어떤 것인가? 우리의 언어적 관 습에서 보듯 이렇게 선택과 결합이라는 두 가지 배열 양식 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미디어 이용 이벤트의 경우에도 마 찬가지다. 앞에서 제시한 실례들 중에서 아이패드용 앱 TVing으로 어떤 텔레비전 드라마의 VOD 1회분을 와이파 이로 시청했다면, 이 미디어 이용 이벤트는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레이어, 즉 계열체에서 각각 선택된 다섯 가지 요소들의 통합체적 결합인 셈이다. 즉 레이어별로 ① 단 말기 레이어에서는 가정용 수상기나 스마트폰이 아닌 태 블릿PC가, ② 물리적 네트워크 레이어에서는 유선이 아 닌 무선통신 방식, 그중에서도 와이파이 통신 방식이, ③ 플랫폼 레이어에서는 지상파방송이나 케이블방송 플랫폼 이 아닌 인터넷 플랫폼이, ④ 콘텐트 패키징 레이어에서 는 선형 방식이 아닌 비선형 방식이, 마지막으로 ⑤ 단위 콘텐트 레이어에서는 신문 기사가 아닌 방송 프로그램, 특 히 드라마가 선택된 것이다. 뒷 부분에서 레이어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함께 미디어 이용 이벤트의 구체적인 경우 의 수를 제시할 것이다. 그래도 여기서 단언할 수 있는 것 은 ‘우리가 관찰하는 모든 미디어 이용 이벤트는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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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가지 계열체, 즉 레이어별로 선택된 요소들의 결합으 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위 콘텐트 다른 레이어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콘텐트를 어떤 기준에 따라 어떻게 구분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이론적으로도 실 제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문제다. 텍스트로도 불릴 수 있 는 콘텐트는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에 의해 매개되든 아니든, 인간이 수행하고 수행해 온 모든 커뮤니케이션의 외적 구현물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테크놀로지 발전은 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긴 해도 몇 가지 기 준은 설정할 수 있을 듯하다. 먼저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기준이라 할 수 있는 미디어 양식(medial modality)에 따라 구분이 가능한데, 이에 따라 ① 문자나 숫자로 표현되는 텍스트 ② 아날로 그든 디지털이든, 정지 이미지든 움직이는 이미지든 그림, 비디오, 사진, CG 등의 이미지 ③ 음성, 음악, 음향, 소음 등을 포함하는 사운드 ④ 텍스트, 이미지, 사운드 중 둘 이 상을 포함하는 멀티미디어 ⑤ 면대면 상호작용과 거의 유 사한 정보를 제공하는 경험 양식(experiential modality) 등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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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좀 더 실제적인 기준, 즉 콘텐트 생산자(content creator) 또는 정보원(source)에 따른 구분인데, 개인이 생 산한 것, 집단이 생산한 것, 기구가 생산한 것 등으로 구분 할 수 있다.

콘텐트 패키징 그다음 레이어는 하나의 단위 콘텐트를 다른 단위 콘텐트 들과 관련해 어떻게 조직화(organization)하고 패키징하 느냐 하는 것이다. 먼저 조직화 차원에서 단위 콘텐트는 ① 시간적(temporal) 조직화라는 관계적 맥락 속에 있는 콘텐트와 ② 공간적 (spatial) 조직화라는 관계적 맥락 속에 있는 콘텐트, 그리 고 ③ 복합적(hybrid) 조직화라는 관계적 맥락 속에 있는 콘텐트로 나눌 수 있다.

미디어 플랫폼 여기서는 이런 컴퓨팅 플랫폼(computing platform)의 개 념을 원용해 ‘미디어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설정하 고자 하는데, 여기서 미디어 플랫폼은 ‘콘텐트가 유통, 전 송될 수 있도록 콘텐트 수급과 패키징을 담당하는 운영 체 계’로 정의된다. 이런 점에서 미디어 플랫폼은 콘텐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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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인 전송 네트워크 사이에 위치해 양자를 매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미디어 플랫폼의 전통을 ① 방송 진화형 ② 전신전화 진화형 ③ 패키지 미디어 진화형 등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자 한다. 먼저 방송 진화형 플랫폼으로는 가장 오래된 지 상파방송, 그리고 다채널 방송을 가능케 한 케이블방송 (CATV), 위성방송이 포함된다. 그다음으로 전신전화 진 화형으로는 가장 오래된 우편, 전화와 같은 좁은 의미의 통신, 그리고 컨버전스의 대명사인 인터넷 등이 속한다. 마지막으로 콘텐트를 책, CD, DVD 등과 같은 패키지 미 디어에 담아 전달하는 패키지 미디어 진화형 플랫폼으로 는 영화 배급, 음반 배급, 그리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포 괄하는 출판 배급 등이 포함된다.

전송 네트워크 넷째 레이어인 전송 네트워크(delivery network)는 ‘콘텐 트 정보 또는 데이터를 공급자에게 받아 이용자에게 전달 해 주는 물리적 네트워크’를 지칭한다. 전송 네트워크는 전통적인 유통망에서 최신의 컴퓨터 네트워크까지 그 범 위가 아주 넓기 때문에 그것을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지 만, 현재 통용되는 몇 가지 기준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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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용도와 영역에 따른 구분으로, 일반적으로 ① 마이크로웨이브, 케이블, 위성 등을 포함하는 방송용 네 트워크 ② 공중 전화망, 컴퓨터 네트워크, 모바일 네트워 크 등을 포함하는 통신용 네트워크 ③ 그리고 일반 상품 이 전달되는 유통망(distribution network) 등 크게 세 가 지 유형으로 나뉜다. 여전히 방송과 통신이 구분되는 상 황에서는 이런 구분이 유효하지만, 점차 방송통신 융합이 고도화되는 상황에서는 장기적으로 이런 기준을 적용하 기는 힘들 것이다. 둘째는 전송 네트워크를 컴퓨터 네트워크(computer network)로 간주해 구분하는 것이다. 우편이나 직접 배달 시스템을 이용하는 유통망을 제외할 때, 최근의 모든 네트 워크는 컴퓨터 네트워크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데이터 통신 네트워크(data communication network) 로도 불리는 컴퓨터 네트워크는 데이터 전송에 활용되 는 통신 매체(communication medium), 전송 프로토콜 (communicatios protocol), 네트워크의 크기(scale), 네트 워크 구조(topology) 등 다양한 기준에 따라 분류할 수 있 다(Wikipedia, 2012). 전송 네트워크만을 살펴보면, ① 유선(wried) 테크놀 로지를 활용하는 네트워크와 ② 무선(wireless) 테크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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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를 활용하는 네트워크로 구분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 으로 전자에는 ① 트위스트 페어 케이블(twisted pair cable) ② 동축 케이블(coaxial cable) ③ 광섬유 케이블 (optical fiber cable) 등이, 후자에는 ① 지상파(terrestrial microwave) ② 통신위성(communications satellite) ③ 셀 룰러 시스템(cellular system) ④ 무선LAN(wireless local area network) ⑤ 적외선파(infrared communication) 등 이 커뮤니케이션 매체로 활용된다.

미디어 기기 미디어 기기(media device)는 미디어와 이용자의 접점을 이루기 때문에 다른 레이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월한 위 치를 점해 왔지만, 미디어 전체를 의미하는 것처럼 개념적 으로 혼란스러웠던 레이어이기도 하다. 범주 오류인 개념 적 혼란에서 벗어나려면 콘텐트나 서비스 또는 플랫폼과 이용자 기기(user appliance)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한 편 미디어 기기 자체도 컨버전스가 고도화되고 있기 때문 에 레이어 내에서 기기를 서로 구분하는 것 또한 간단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진화된 현 상태뿐만 아니라 미디어 기기의 ‘계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적으로 이런 미디어 계보(media genealogy)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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른 구분으로, 모두 열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즉 ① 책(두루마리, 코덱스 등), 잡지, 공책, 편지, 메모지 등을 포함하는 종이 미디어 ② 가정용, 모바일, 자동차용, 앰비 언트 등으로 구분되는 TV 수상기 ③ 가정용, 자동차용 등 의 라디오 수신기 ④ 데스크톱, 노트북, 넷북, PDA/PMP, 태블릿PC, 웨어러블(wearable) 등으로 구분되는 컴퓨터 ⑤ 유선전화, 공중전화, 피처폰, 스마트폰 등을 포함하는 전화기 ⑥ 회화용 캔버스, 카메라(아날로그, 디지털), 비 디오 카메라, 전자책 단말기 등을 포함하는 그림 미디어 (pictorial medium) ⑦ 가정용 오디오 시스템, 모바일 오 디오 플레이어(CD, 테이프, MP3플레이어), 자동차용 (CD, 테이프) 오디오, 녹음기 등을 포함하는 오디오 미디 어 ⑧ 재생 기기로 TV 수상기를 활용하는, 가정용 VCR, DVD 플레이어, PVR, DVR 등과 같은 비디오 플레이어 ⑨ 아케이드 게임 콘솔, 홈비디어 게임 콘솔, 핸드헬드 게임 콘솔과 같은 게임 기기 ⑩ 극장(영화, 연극), 공연장, 전시 장, 박물관, 노래방, 비디오방과 같은 공간 미디어(space medium) 등이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가 장 기본적인 미디어 기기 구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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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Benkler, Y.(2000). From consumers to users: Shifting the deeper structures of regulation toward sustainable commons and user access. Federal Communications Law Journal, 52(3), 561∼579. Wikipedia(2012). Computer Network. [Online] Available: http://en.wikipedia.org/wiki/Computer_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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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멀티플랫포밍

이용자는 대개 복수의 미디어로 구성되는 개인별 미디어 매트릭스를 가지고 있으며, 미디어 매트릭스를 구성하는 미디어들을 동시에, 또는 시차를 두고 넘나들며 이용하는 멀티플랫포밍 행위를 하게 된다. 이재현이 제안한 개념인 멀티플랫포밍 행위는, ① 미디어 차원에서는 “다중 미디어 매트릭스”의 구성 ② 시간 차원에서는 “시간의 심화”로 개념화된다.


이론적 가정 미디어 이용은 하나의 미디어 영역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 라 다른 미디어와 맺는 관계 속에서 복합적으로 전개된다. 구체적으로 이용자는 대개 복수의 미디어로 구성되는 개 인별 미디어 매트릭스(media matrix)를 가지고 있으며, 미 디어 매트릭스를 구성하는 미디어들을 동시에, 또는 시차를 두고 넘나들며 이용하는 멀티플랫포밍(multiplatforming) 행위를 하게 된다. 멀티플랫포밍 행위의 이론화에 앞서 그 기본 가정들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미디어 관계의 가정으로, 모바일 미디어를 비롯 해 하나의 미디어는 고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미디어와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제이 데이비드 볼터와 리처드 그루신(Jay David Bolter & Richard Grusin, 1999/2006)의 통찰력 있는 “재매개(remediation)” 개념은 이를 전제로 하는 것이며, 그 밖의 다수 연구자들이 미디어 관계의 가정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둘째는 미디어 접근성(accessibility)의 가정으로, 경제 적·문화적·기술적 능력에 따라 미디어 이용자 개인별 로 미디어에 대한 접근성 정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는 개인별로 불균등하게 분포되어 있으며, 개인에 따라 여러 미디어에 대해 정통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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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있고 특정 미디어에 대해서만 정통할 수도 있다. 셋째는 미디어 매트릭스의 가정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를 포함해 미디어 접근성 정도에 따라 미디어 이용자 개인 별로 각기 다른 미디어 매트릭스가 구성된다는 것이다. 미 디어 매트릭스는 상대적으로 복수의 미디어로 구성될 수도 있고 소수의 미디어로 구성될 수도 있다. 현 시점의 융합 환 경에서 미디어 매트릭스를 구성하는 중심적인 미디어 플랫 폼은 인터넷의 기반이 되는 PC, 최근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휴대전화로 대표되는 모바일 미디어, 20세기 중반 등장한 이후 지배적인 미디어 위상을 견지해 온 TV 등이 된다. 마지막으로 시간성(temporality)의 가정으로, 미디어 이용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전개된 다는 것이다(Caldwell, 2003; Jenkins, 2004 참조). 먼저 미디어 이용자 개인별로 특정 시점에 여러 미디어를 동시 에 이용할 수도 있고 하나의 미디어만을 이용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이용 흐름(use flow)”은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 1976)의 시간 개념을 원용해 표현하면, 미디어 이 용은 시간 축을 따라 복합시간적 이용(polychronic use)과 단일시간적 이용(monochrnic use)이 교차하며 진행된다. 이 같은 기본 가정들에 의거할 때, 멀티플랫포밍 행위 는 미디어 차원과 시간 차원 등 두 가지로 개념화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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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멀티플랫포밍: 이용자의 미디어 매트릭스와 이용 흐름 복수 미디어

단일 미디어

복합 시간적 이용

단일 시간적 이용

복합 시간성

단일 시간성 → 이용 흐름

다. 융합 환경에서 멀티플랫포밍 행위는 ① 미디어 차원에 서는 “다중 미디어 매트릭스(multiple-media matrix)”의 구 성으로 ② 시간 차원에서는 “시간의 심화(time-deepening)” 로 개념화할 수 있는데, 두 차원으로 구성되는 멀티플랫포 밍의 기본 패턴을 <그림 5>와 같이 나타낼 수 있다.

멀티플랫포밍: 다중 미디어 매트릭스의 구성 여기서 이론화하려는 멀티플랫포밍 행위, 그리고 그 구성 개념들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아직 체계적으로 개념화 되지 못한 채 대개 현상에 대한 관찰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론화를 위해서는 플랫폼, 미디어 매트릭스, 플랫폼 이용 자 등 몇 가지 주요 개념들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먼저 플랫폼(platform) 또는 미디어 플랫폼은, 미디어 산업, 특히 콘텐츠 산업 부문에서 보편적으로 활용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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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하지만 미디어, 미디어 서비스, 미디어 플랫폼, PC 운영 체계(operating system, OS) 등 인접 개념이나 유사 용어들과 혼동해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일차적으 로 연상되는 컴퓨팅 용어로서 플랫폼과 개념 혼란을 피하 고 이 글에서 지칭하고자 하는 의미를 보다 적확하게 전달 하기 위해 미디어 플랫폼(media platform)이라는 용어를 쓰고자 한다. 여기서 미디어 플랫폼은 ‘콘텐츠 이용을 위 해 이용자가 접근, 활용하는 제도화된 미디어 형식’으로 정의하려고 한다. 이런 정의는 콘텐츠 이용의 직접적 관련성을 함축한다 는 점에서 일반적인 미디어 개념과 구별되며, 또한 미디어 를 통해 제공되는 다양한 서비스 내용, 즉 콘텐츠의 패키 지 개념인 미디어 서비스하고도 구별된다. 앞서 잠시 언 급한 바와 같이, 여러 수준에서 융합이 가속화되기 시작하 는 현재 미디어 환경에서 중심축이 되는 대표적인 미디어 플랫폼으로는 PC나 노트북, 모바일 미디어, TV 등 세 가 지를 들 수 있는데, 여기서는 이 세 가지 미디어를 다른 미 디어와 구분해 ‘중심적(central) 미디어 플랫폼’으로 부르 고자 한다. 이런 미디어 플랫폼들은 개개 이용자별로 다양하게 조 합되는데, 이런 미디어 조합을 이 글에서는 ‘미디어 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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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스(media matrix)’로 새롭게 개념화하고자 한다. 매트 릭스란 용어는 기존과는 다소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다. 영화 <매트릭스>로 일반 용어가 된 매트릭스란 개념은 원래 사이버펑크(cyberpunk)의 효시로 간주되는 윌리엄 깁슨 (William Gibson)의 장편소설 󰡔뉴로맨서(Neuromancer)󰡕 (1984)에서 처음 사용되었는데, 여기서 깁슨은 매트릭스를 “컴퓨터 네트워크,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데이터에 의해 구축되는 가상공간”이라고 지칭했다. 한편 매트릭스란 용 어는 원격 교육(distance learning)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차원에서 “미디어 선택 매트릭스(media selection matrix)” 라는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여기서 미디어 매트릭스 는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가용 수준(로-테크, 미디엄-테크, 하이-테크)에 따라 이용자가 선택, 이용할 수 있는 미디어 테크놀로지들의 범위를 지칭한다. 전자가 미디어가 구성 하는 “매개 공간(mediated space)”을 함축한다면, 후자는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범위와 관련된다. 이용자 입장에서 볼 때 소위 미디어 환경이라고 하면, 가용 미디어 범위 내에서 미디어를 통해 접근하는 매개 공 간을 의미한다고 할 때, 앞의 두 가지 기존 논점은 미디어 매트릭스를 규정하는 주요 요소가 될 수 있다. 이 같은 기 존 논의와 용법들을 고려해, 이 글에서는 미디어 매트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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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미디어 플랫폼으로 구성되는 이 용자 개인별 미디어 구성체, 그리고 그에 따라 구성되는 매개 공간’으로 정의할 수 있다. 미디어 매트릭스는 앞서 정의한 중심적 미디어 플랫폼 의 수에 따라 단일 미디어 매트릭스(single-media matrix) 와 다중 미디어 매트릭스(multiple-media matrix)로 구분 될 수 있다. 미디어 융합이 개시되는 현 시점에서 이 글이 주목하는 것은 여러 개의 중심적 미디어 플랫폼들로 구성 되는 다중 미디어 매트릭스다. 문제는 이용자별로 다중 미디어 매트릭스가 어떻게 구성되는가 하는 점이다. 일단 단순하게는 중심적 미디어 플랫폼의 수에 따라 이용자 유 형을 다시 세분할 수 있는데, 일원 미디어 매트릭스 이용 자(single-media matrix user), 이원 미디어 매트릭스 이용 자(dual-media matrix user), 삼원 미디어 매트릭스 이용 자(triple-media matrix user)가 그 유형들이다. 여기서 일 원 미디어 매트릭스 이용자는 중심적 미디어 플랫폼인 PC, 모바일 미디어, TV 중에서 하나의 미디어 플랫폼만을 이용하는 자를 말한다. 이원 미디어 매트릭스 이용자는 중심적 미디어 플랫폼들 중에서 두 가지, 즉 PC와 모바일 미디어, TV와 모바일 미디어, 그리고 PC와 TV를 이용하 는 자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삼원 미디어 매트릭스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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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PC, 모바일 미디어, TV 모두를 이용하는 자가 해당 된다. 이런 점에서 2개 이상의 미디어 플랫폼을 이용해 다 중 미디어 매트릭스를 구성하는 경우를 멀티플랫포밍 행 위라 할 수 있다.

멀티플랫포밍: 시간의 심화 그렇다면 시간 흐름에 따라 미디어 이용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앞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시간 흐름에 따라 특 정 시점에 여러 미디어를 동시에 이용할 수도 있고 하나의 미디어만을 이용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동, 가사, 휴식 등 다른 행동까지 포괄적으로 고려하면, 하나의 미디어 이 용은 관여 정도에 따라 일차적 행동(primary activity)이 되기도 하고 이차적 행동(secondary activity) 또는 “배 경 행동(background activity)”이 되기도 한다(Kubey & Csikszentmihalyi, 1990). 시간 흐름에 따른 미디어 이용 패턴은 시간 개념에 의 거해 더욱 체계적으로 개념화될 수 있다. 홀(1976)은 문화 권에 따라 행동의 시간적 조직화(temporal organization) 방식이 크게 다르다고 하면서, 행동의 조직화에 근간이 되 는 시간 개념을 “단일시간(monochronic time, M-time)” 과 “복합시간(polychronic time, P-time)” 등 두 가지로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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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한 바 있다. 일반적으로 전자는 엄격한 시간 스케줄에 의거해 하나의 행동을 하고 나서 다른 행동을 순차적으로 하며 시간의 엄격한 구분을 중시하는 경우다. 반면 후자 는 동시에 여러 행동을 수행하고 상대적으로 시간 스케줄 의 엄격성이나 계획성이 적은 경우다. 제니퍼 브라이스(Jennifer W. Bryce, 1987)는 이 같은 홀의 시간 개념을 TV 시청에 적용해 두 가지 이용 패턴을 도출했는데, 이는 멀티플랫포밍을 포함해 미디어 이용 일 반에도 적용할 수 있다. <표 2>에서 보듯, 그 하나는 “단일 시간적 이용(monochronic use)”이고 다른 하나는 “복합 시간적 이용(polychronic use)”이다. 전자는 한 시점에 하 나의 미디어만을 이용하고 다른 행동과 중첩되지 않는 경 우다. 이에 반해 후자는 동시에 여러 미디어를 이용하거 나 미디어를 이용하면서 다른 행동을 하는 경우다. 또한 전자가 미디어나 콘텐츠에 대한 높은 집중도를 보여 준다 면, 후자는 산발적 집중 행태를 보여 준다. 이와 같이 미디어 이용 패턴을 유형화하면서 주목할 점 은 앞서 미디어 차원에서 다중 미디어 매트릭스를 갖고 있 는 이용자의 경우에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특정 시점에는 단일 미디어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그림 5>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개별 이용자 측면에서 볼 때 단일시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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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2> 시간 개념과 미디어 이용 패턴 단일시간성

(1) 행동의 시간적 조직화

(2) 미디어 이용 패턴

복합시간성

행동의 선형적, 연속적 조직화

동시에 여러 행동 수행

계획성 강함

계획성 약함

시계와 달력 강조

시계와 달력 덜 강조

완결 지향적

과정 지향적

시간적 정확성 강조

사전 계획을 잘 못 지킴

계획적 미디어 이용

비계획적 미디어 이용

다른 미디어 이용이나 행동과 분리됨

다른 미디어 이용이나 행동과 중첩됨

독립적 행동으로서 미디어 이용

동시적 행동으로서 미디어 이용

미디어와 콘텐츠에 대한 높은 집중도

미디어나 콘텐츠에 대한 산발적 집중

이용과 복합시간적 이용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교차한다. 문제는 특정 시점에서 나타나는 복합시간적 이용이 갖는 의미다. 이를 여기서는 기존 논의(예를 들어, Scheuch, 1972)를 원용해 “시간의 심화(time-deepening)”로 규정 하고자 한다. 즉 특정 시점의 복합시간적 이용은 “시간 의 밀도 제고” 또는 “이중 시간의 창출”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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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uréguiberry, 2000). 복합시간적 이용과 관련해 한 가지 실제적인 문제는 동 시에 여러 미디어를 이용할 때 동시성(simultaneity)을 어 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는 인간이 동시 에 두 가지 행동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난해한 인식론적 고 찰을 수반하지만, 매우 실제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미디 어 이용과 관련된 자료를 제공할 미디어 행태 조사나 생활 시간 조사(time-use survey)의 경우에 복수의 행동을 인정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그러나 TV 시청, 라디오 청취, 인터넷 이용, 휴대전화 통화 등이 실제적으로 동시 에 가능하다는 점에서 복합시간적 미디어 이용을 분석할 때 동시성은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복합시간 미디어 이용에서 미디어 사이의 전환은 미디어 에 대한 주목(attention) 정도의 변화, 즉 일별(glance)과 응시(gaze)의 교차라는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수용, 고려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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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이재현(2006). 모바일 미디어와 모바일 콘텐츠: 멀티플랫포밍 이론의 구성과 적용. 󰡔방송문화연구󰡕, 18권 2호, 285∼317. Bolter, J. D., & Grusin, R.(1999). Remediation: Understanding

new media. Cambridge, MA: The MIT Press. 이재현(역) (2006). 󰡔재매개: 뉴미디어의 계보학󰡕.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Bryce, J. W.(1987). Family Time and Television Use. In Thomas R. L. (Ed.), Natural Audience: Qualitative Research of

Media Uses and Effects (pp.121∼138). Norwood: Ablex. Caldwell, J. T.(2003). Second-Shift Media Aesthetics: Programming, Interactivity, and User Flows. In Anna E., & John T. C. (Eds.), New Media: Theories and Practices of

Digitextuality(pp.127∼144). New York and London: Routledge. Hall, E. T.(1976). Beyond Culture. New York: Anchor Press. Jauréguiberry, F.(2000). Mobile Telecommunications and the Management of Time. Social Science Information, 39(2), 255∼268. originally Presented at the International Symposium on Speed and Social Life (Vitesse et vie sociale) Under Auspices of the Foundation Maison des Sciences de l’Homme, Paris, January 29∼30, 1998. Jenkins, H.(2004). The Cultural Logic of Media Convergence.

International Journal of Cultural Studies, 7(1), 33∼43. Kubey, R. & Csikszentmihalyi, M.(1990). Television and the

Quality of Life: How Viewing Shapes Everyday Experience. Hillsdale: Lawrence Erlbaum Associates. Scheuch, E. K.(1972). The Time-Budget Interview. In A. Szalai (Ed.), The Use of Time: Daily Activities of Urban and

Suburban Populations in Twelve Countries (pp.69∼87). The Hague: Mou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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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시간 재할당

“시간 재할당 가설”은 이재현이 제안한 개념으로서,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미디어가 도입되어 활용되면서 미디어 이용시간을 포함하는 생활시간 전반의 재할당 또는 재분배가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미디어의 도입에 따른 시간 분배 패턴의 변화를 탐색하고자 한다. 시간 재할당 가설은 기존의 미디어 대체 가설의 대안으로 간주된다.


선행 연구들 “시간 재할당 가설(Time Reallocation Hypothesis)”은 인 터넷과 같은 새로운 미디어의 도입이 미치는 영향을 기존 연구들과 같이 미디어 영역 내로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보 다 폭넓은 인간 행동 전반 차원에서 고찰해야 한다는 입장 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새로운 미디어 도입으로 생활시간 패턴 전반의 변화가 초래된다고 보는 것을 의미한다. 즉 새로운 미디어가 도입되어 활용되면서 미디어 이용 시간 을 포함하는 생활시간 전반의 재할당 또는 재분배가 이루 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같이 새로운 미디어의 도입에 따른 시간 분배 패턴의 변화에 대한 가정을 “시간 재할당 가설”이라 부르고자 한다. 이런 관점은, 다소 한계는 있지만 벤카테시(Venkatesh) 를 비롯한 학자들의 몇몇 선행 연구에서도 부분적으로 제시 된 바 있다. 먼저 일찍이 비탈라리 등(Vitalari, Venkatesh, & Gronhaug, 1985)은 가정에 컴퓨터가 도입되면서 야기된 시간 할당 패턴의 변화를 추적한 바 있다. 이들은 컴퓨터 사용을 통해 사회 행동을 재배열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바 로 ‘시간’이라고 보면서, 시간 재할당이라는 관점이 갖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용 가능한 전체 시간량 은 유한하기 때문에, 다양한 활동에 대한 시간 분배,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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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가 도입되면서 야기된 시간 할당 패턴의 변화를 연구한 초기 연구자 알라디 벤카테시(Alladi Venkatesh) ⓒ 커뮤니케이션북스

고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시간 할당에 미치는 영향은 가정 의 동학(動學), 그리고 일련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구비에 큰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시간 재 할당 패턴은 테크놀로지의 영향을 이해하는 핵심 개념으 로 간주된다. 이들에게 테크놀로지의 영향은 시간 의존적 (time-dependent)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확장된 시각에서 이들은 가정에 컴퓨터가 도입되 면서 텔레비전 시청, 가족의 여가, 수면, 혼자 시간 보내기 등과 같이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행동들에 분배되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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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줄어들었음을 밝힌 바 있다. 그렇지만 이 연구는 방법 론 측면에서 본격적인 생활시간 조사에 의해 전체 행동 자 료를 수집하지 않아 행동 패턴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 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 후 존 로빈슨 등(Robinson, Barth, & Kohut, 1997) 도 시간 차원에서 개인용 컴퓨터가 생활시간 패턴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한 바 있다. 이들은 시간이라는 변인이 갖는 의 미를 설명한 후, 기능적 등가 명제(functional equivalence thesis)에서 시간 대체의 관점과 기능적 대안의 관점을 결합 해, 새로운 미디어가 기능적으로 유사한 미디어의 시간을 대체하게 된다고 가정했다. 실제 연구 결과에서는 새로운 미디어와 기존 미디어 사이에 유의미한 관계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이 연구가 갖는 의미는 다른 기존 연구들처럼 피조사자가 자신의 행동 변화를 회상해 주관적으로 추정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본격적인 일기식 생활시간 조사는 아니더라도 소위 “시간측정 조사 방식(Time Mirror Survey)”에 의해 행동 단위별로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했 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라는 차원이 갖는 함 의에 대한 인식, 그리고 방법론적 진전이 있었다고 해도, 실제 연구 문제의 설정과 분석은 다시 미디어 영역 내로 국한하는 오류를 범해, 기존 연구와 같은 미디어 대체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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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 회귀하는 결과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의 연구는 오히려 국내에서 일부 진행되고 있 는데, 먼저 황용석(2004)은 생활시간 변화라는 측면에서 텔레비전과 인터넷 이용의 상호 관계를 탐구했다. 이 연 구는 기존 연구들과 달리 미디어 이용이 시간과 공간의 맥 락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식사, 휴식, 가사 노동, 미디어 이용 등 다양한 행동 패턴을 생활시간에 대 한 시간표 조사로 측정했다. 조사 결과, 텔레비전과 유의 미한 관계가 있는 변인이 연령, 식사, 휴식, 가사노동이라 는 것을 밝혀 냈고, 특히 인터넷과는 부적(否的)인 관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 텔레비전과 대체 관계를 입증했다. 그러나 이 연구는 새로운 시각으로의 전환, 그리고 광범위 한 조사 대상자의 선정과 방법론적 정교함을 갖추긴 했어 도, 생활시간 조사와 분석에서 행동분류를 체계적으로 적 용하지 않았고, 행동도 30분 단위로 기록하게 해 측정의 정확성이 다소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김병선(2004)은 새로운 미디어의 영향이 미디어 대체 보다는 기존의 생활시간 분배 방식의 변화, 즉 시간적 차 원의 대체라고 단언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인터 넷의 이용이 실질적으로 텔레비전 시청을 대체했는지 알 기 위해서는 일상생활 영역을 구분해 이용량의 변화를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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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보는 것이 더욱 더 적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 는 미디어, 웹 이용 시간, 수면, 여가 등 제한적인 생활시 간 조사만을 수행했다. 그런 의미에서 김병선은 이런 방 법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본격적인 일기식 생활시간 조사나 경험표본방식(experience sampling method, ESM) 으로 자료를 수집해 측정의 엄밀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 했다. 이같이 선행 연구들은 새로운 미디어의 도입이 갖는 의 미나 영향을 미디어 대체가 아니라 시간 재할당이라는 관 점에서 고찰해야 한다고 보는 점에서 이론적으로 진전된 인식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방법론 측면에서 생활시간 조사와 같이 측정의 엄밀성이 더 높고 미디어 행동 외에 행동 패턴 전반을 측정할 수 있는 방식을 도입했다는 점에 서 의의가 매우 크다. 그렇지만 앞서 지적한 것처럼 이론 과 방법론 측면에서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간 재할당 가설 시간 재할당 가설의 핵심은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테크놀 로지의 도입이 텔레비전과 같은 전통 미디어에 대해 미치 는 영향이나 의미를 생활시간 패턴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고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여기서는 시간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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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당 가설의 이론적 가정을 제시하기에 앞서 다음 두 가지 사항을 전제로 설정하고자 한다. 첫째로 시간은 테크놀로지의 사회적 영향을 보여 주는 중요한 지표(social indicator)라는 점이다. 대안적 관점에 서 제기하는 지표로서 시간은 기능적 대안의 관점에서 강조 하는 미디어 기능 개념과 대비된다. 로빈슨 등(Robinson, Barth, & Kohut, 1997)의 지적대로 시간이라는 변인이 갖 는 의미는 매우 크다. 이들에 따르면 시간이라는 변인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갖는다. 첫째, 시간은 보편적으로 인 정되는 측정 단위다. 둘째, 시간은 중요한 사회 자원이다. 셋째, 시간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평등하게 분배되어 있는 자원이다. 둘째로 테크놀로지의 영향은 시간 의존적인 ‘사회적 과 정(social process)’이라는 맥락 속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즉 테크놀로지는 개인의 행동에 대한 단기적·장기적 영 향, 사회적 가치 체계, 테크놀로지 설계자의 가치 체계 등 과 연관되는 사회적 과정으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테크놀로지의 영향을 사회적 맥락에서 인간 행동 전반의 측면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대안적 관점은 제한된 미디어 사이의 대체로 보는 협소한 기존 연구의 관점과 대비된다. 여기서는 이러한 전제에 기초해 인터넷, 전통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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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생활시간 패턴 사이의 관계를 시간 재할당이라는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가정한다. 이런 가정은 바로 앞에 서 소개한 몇몇 선행 연구들에서 시사받은 점을 정리한 것 이기도 하고, 본 연구에서 새로운 테크놀로지 도입의 의미 를 새롭게 이론화하면서 시론적으로 제안하는 것이기도 하다. <표 3>은 기능적 대안 관점에 기초한 기존 연구들의 미디어 대체 가설과 이 글에서 새롭게 제안하는 시간 재할 당 가설을 몇 가지 기준에 따라 비교한 것이다. 첫째로, 시간 재할당 가설은 시간의 제로섬(zero-sum) 원리에 기초한다. 이것은 시간이라는 자원의 유한성에 기 인하는 것으로서(Sahin & Robinson, 1981), 이에 인간은 제한된 시간 자원을 다양한 행동에 분배하게 되는데, 생물 학적 필요, 개인이나 사회의 가치 체계, 생활 관습 등에 따 라 각각의 행동에 시간을 불균등하게 분배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간의 제로섬 원리는 미디어 대체 가설의 상대적 불변 원리와 기본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나, 이를 시간 자 원이라는 측면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둘째로, 유한성에 기인하는 이런 시간의 제로섬 원리 때문에 사회적 환경의 변화나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도입 등과 같은 변화 요인이 발생해 특정 행동에 소비하는 시간 의 양이 늘어나면 불가피하게 다른 행동들에 투입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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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3> 미디어 대체 가설과 시간 재할당 가설의 비교 미디어 대체 가설

시간 재할당 가설

원리

󰡈 상대적 불변 원리

󰡈 시간의 유한성과 제로섬 원리

논거

󰡈 기능적 유사성에 따른 대체 또는 보완

󰡈 시간 재할당에 따른 생활시간 재편

측정

󰡈 이용 시간량ㆍ동기 및 기능에 대한 지각 󰡈 (대체로) 자기보고식 조사에 의한 측정

󰡈 이용 시간량과 행동별 시간 분포 󰡈 생활시간 조사에 의한 측정

특징

󰡈 미디어 영역 내에 국한됨 󰡈 미시적 수준의 설명력 제공

󰡈 전체 행동 영역을 포괄함 󰡈 거시적 수준의 설명력 제공

시간은 감소하거나 변화할 수밖에 없고, 이는 전반적인 생 활시간 패턴의 재편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도입으로 인터넷 이용이라는 새로운 행동이 출현하고 그 이용 시간이 늘어나면, 전통 미디어 이용과 같은 다른 행동의 시간에 영향을 미치게 된 다. 이런 점에서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도입에 따른 결과 는 근본적으로 기능적 대체라기보다는 시간의 재할당에 있다. 이를 행동의 시간적 조직화(temporal organization) 라 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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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로,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도입에 따른 시간의 재분 배는 생활시간 전반에 걸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점 은, 앞서 기존 연구의 한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미디어 나 여가 영역 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 터넷과 같은 새로운 미디어의 이용 증가는 텔레비전, 신 문, 라디오 등 전통적인 미디어의 시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수면·식사와 같은 생활 필수 행동, 일·가사 노동과 같은 노동 활동, 교제·취미·스포츠와 같은 여가 활동, 이동 등 다양한 활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 다. 미디어 대체 가설에 기초하는 기존 연구들에서 주장 하는 전통 미디어의 대체 또는 보완 현상은 전반적인 생활 시간 변화의 한 측면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시 각의 확대는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도입을 거시적, 사회적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 넷째로, 시간의 재할당은 분석 측면에서 특정 행동에 소비하는 시간량(amount)의 변화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두 가지 방법으로 가능한데, 하나는 통시적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공시적 방법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 도입 이전과 이후 다른 행동들의 시간량을 비교해 시간의 재할당을 추 적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터넷 이용자 집단과 비 이용자 집단을 구분해 집단 간 생활시간 패턴의 차이를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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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해 인터넷 이용이 시간의 재할당에 미치는 영향을 추정 할 수도 있다. 시계열 자료가 없거나 통시적 관찰이 불가 능할 경우 후자의 방법도 유력하게 사용될 수 있다.

참고문헌 김병선(2004). 재택 공간에서 미디어 대체 가능성의 재평가. 󰡔한국언론학보󰡕, 48권 2호, 400∼428. 이재현(2005). 인터넷, 전통적 미디어, 그리고 생활시간 패턴: 시간 재할당 가설의 제안. 󰡔한국언론학보󰡕, 49권 2호, 224∼254. 황용석(2004). 시간과 공간의 맥락에서 본 텔레비전과 인터넷 이용의 상호관계성 탐구. 󰡔방송연구󰡕, 59권, 309∼338. Robinson, J. P., Barth, K., & Kohut, A.(1997). Social impact research: Personal computer, mass media, and use of time.

Social Science Computer Review, 15(1), 65∼82. Sahin, H., & Robinson, J. P.(1981), Beyond the realm of necessity: Television and the colonization of leisure. Media, Culture

and Society, 3(1), 85∼95. Vitalari, N. P., Venkatesh, A., & Gronhaug, K.(1985). Computing in the home: Shifts in the time allocation patterns of households. Communications of the ACM, 28, 51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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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신체 규율 장치

미디어, 좀 더 정확하게 미디어 인터페이스는 신체와 미디어 사이의 상관체를 만들어 내는 과정인 상호 연관을 통해 인간의 신체를 규율하는 장치로 간주할 수 있다. 푸코의 규율 개념을 원용해 이재현이 제안한 이 개념은, 미디어-신체 사이의 상호 연관이 ① 신체 기관 ② 감각 양식 ③ 인지 과정 등 세 하위 차원에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미디어를 신체 규율 장치로 보는 관점은 기존의 다양한 관점들에 대한 대안으로 간주할 수 있다.


개념의 배경 미디어 인터페이스 영역에서 전개되는 재매개(remediation) 의 핵심 원리가 혼종화(hybridization)라면, 상호작용 영 역에서 전개되는 신체 규율의 핵심 원리는 이른바 상호 연 관(correlation)으로서, 이를 통해 인간(이용자)과 도구 (미디어) 사이에 독특한 관계, 즉 ‘상관체(correlative)’가 형성된다. 미디어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으로 여기서 는 미디어, 좀 더 정확하게 미디어 인터페이스가 이 같은 상관체를 만들어 내는 과정인 상호 연관으로 인간의 신체 를 규율하는 것으로 보고자 한다. 상호 연관의 개념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75/ 2003)가 󰡔감시와 처벌󰡕에서 순종적 신체를 만들기 위한 신 체와 도구 사이의 유기적 연결(body-object articulation) 을 설명하면서 제안한 데서 기원한다. 푸코에 따르면, 이 것은 두 단계를 거쳐 이루어진다. 첫 번째로 “신체에 대한 도구적 체계화(instrumental coding of the body)”가 필요 한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서로 대응시킬 신체와 도구, 계 열별로 요소들을 분해, 나열하는 것이다. 푸코는 “앞에총 자세” 훈련을 예로 들어 아래와 같이 도구적 체계화와 상 호 연관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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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와 처벌󰡕(1975)에서 신체와 도구 사이의 유기적 연결을 설명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 ⓒ 커뮤니케이션북스

즉, 움직여야 할 신체의 여러 요소(오른손, 왼손, 손의 여러 손가락, 무릎, 눈, 팔꿈치 등)의 계열과, 조작되는 객체의 여러 요소(총신, 가늠쇠 구멍, 공이치기, 나사못 등)의 계 열이 그것이다. 그다음에 이러한 체계화는 몇 가지 단순한 동작(누른다, 굽힌다)에 따라 이들 두 계열의 요소들을 상 호 관련시킨다.

이렇듯 도구적 체계화에 이어 신체와 도구, 두 계열의 요소들을 ‘상호 연관’시키는 것이 푸코가 파악하는 신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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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율의 두 번째 단계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단계로, 상 호 연관된 요소들이 차지하게 될 일정한 위치를 명시하는 규범 또는 교본이 만들어진다. 푸코(1973/2003)에 따르면, 신체에 대한 도구적 체계 화, 신체와 도구 사이의 상호 연관 그리고 규범 정립 등의 과정은 권력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다. 즉 신체 규율의 과 정은 장치(apparatus, dispositif)가 특정 목적에 맞도록 신 체를 만들어 나가는 권력 기제와 다름없다. 이런 점에서 푸코는 신체와 그것에 의해 조작되는 도구가 맞닿는 모든 면에 권력이 스며들어 양자를 묶어 놓는다고 말한다. 미 디어가 신체 규율 장치라는 관점과 관련해 중요한 점은 이 것의 결과로 “무기의 신체(body-weapon), 도구의 신체 (body-tool), 기계의 신체(body-machine)와 같은 복합체” 가 만들어진다는 것으로, 이것은 바로 앞서 여기서 제시한 상관체인 셈이다.

미디어-신체 상호 연관: 스마트TV의 사례 그렇다면 미디어는 신체와 어떻게 상호 연관되는가? 기본 적으로 푸코의 “도구-신체의 유기적 연결”, 즉 도구와 신체 사이의 상호 연관 개념에서 출발하되, 실제로 명확히 구별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석적 목적에서 미디어-신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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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 연관은 ① 신체 기관(the physical) ② 감각 양식(the sensory) ③ 인지 과정(the cognitive) 등 세 하위 차원으 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신체 기관 차원에서, 스마트TV의 상호 연관 방식 은 기본적으로 일반 도구 또는 여타 미디어와 마찬가지 특 성을 가진다. 이런 점에서 푸코(1973/2003)의 세 단계 과 정, 그중 특히 신체에 대한 도구적 체계화와 도구와 신체 라는 두 계열 요소들의 연관과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점은 앞서 푸코가 예시한 “앞에총 자세”와 후술할 “글쓰 기 모범”의 예에서 충분히 유추할 수 있겠지만, 그다음으 로는 TV와 컴퓨터를 이용할 때 우리가 갖는 자세의 차이 로 흔히 지적되는 ‘뒤로 기대고 보기(lean back)’와 ‘앞으 로 내밀고 보기(lean forward)’라는 비교에서도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TV와 (인터넷) 컴퓨터의 결합인 스마트TV를 이용하는 상황에서 시간 흐름에 따라, 더욱 정확하게는 TV 콘텐트를 ‘시청’할 때와 인터넷 컴퓨터를 ‘이용’할 때가 반복되면서, 우리 몸의 자세는 뒤로 기대기와 앞으로 내밀 기를 교대하는 이른바 ‘자세의 진동(oscillation of posture)’ 을 보이게 될 것이다. 감각 양식 차원에서 스마트TV의 상호 연관을 진단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그렇긴 해도 우리는 TV와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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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의 기본 인터페이스로부터 단초를 얻을 수 있다. TV의 인터페이스는 기본적으로 ‘눈의 인터페이스(optical interface)’로서, 청각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미각, 후 각은 말할 것도 없고 청각, 촉각 등도 최소한 시각보다 우 위에 있지 못하다. 주로 손과 리모컨(Remote Control Device, RCD)의 관계가 중심이 되는 촉각과 관련해 채널 이나 음량을 조절한 후에 촉각은 뒤로 물러난다. 이와 달 리, 인터넷 컴퓨터의 인터페이스는 기본적으로 ‘눈과 손의 인터페이스(optic-tactile interface)’로서, 여전히 시각이 중요하지만 손으로 상징되는 촉각의 위치와 역할은 절대 적이다. 나아가 손과 눈이 단순히 결합만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용의 계기에 절묘하게 조화되는 감각 양식, 즉 “촉각적 시 각(haptic vision)”의 감각 양식이 드러난다(Richardson & Wilken, 2009). TV와 인터넷 컴퓨터의 결합인 스마트TV 는 기본적으로 외양만 보면 인터넷 컴퓨터의 인터페이스, 더욱 정확하게는 ‘앱 미디어’의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 실제 이용 맥락에서는 TV 양식과 인터넷 컴퓨터 양식 중 어느 것을 이용하는가에 따라 요구되는 감각기관의 위상 과 그 결합 방식은 달라진다. 시각적으로 표현하면, 시각 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반면, 촉각의 위상은 양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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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 변환되어 스마트TV의 경우 컴퓨터보다는 낮지만 일 반 TV보다는 높다. 한편 인지 과정 차원의 상호 연관은 더 복잡하다. 그렇 지만 프리드리히 키틀러(Friedrich Kittler, 1986/1999)가 영화와 관련해 인지 과정과 영화 문법을 결합시켜 설명한 부분은 매우 시사적이다. 스마트TV에 대한 논의에 앞서, 이를 잠시 소개한다. 키틀러는 영화와 정신분석학의 관계 에 대한 휴고 뮌스터버그(Hugo Münsterberg)의 이론을 소개하며, “주의, 기억, 상상, 정서: 이것 모두 각각의 기술 상관체(technological correlative)를 갖고 있다”고 말한 다. 먼저 영화나 사진의 클로즈업(close-ups)은 단순히 주 의의 ‘객관화(objectivization)’가 아니다. 주의 그 자체가 장치(apparatus)의 인터페이스가 된다. 영화에서 컷백 (cutbacks)이나 플래시백(flashbacks)은 우리 기억 기능 의 객관화이며, 몽타주(montage)는 연상(association) 과 정의 원래 속도를 재생할 수 있기 때문에 상상의 장치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디어가 우리의 심리적·인지적 과정과 독립 해서 그 과정을 단순히 모방 또는 반영하는 극장과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고 보는 입장과 명백히 대립되는 것으로, 영화와 같은 미디어에서 사용되는 클로즈업, 플래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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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타주와 같은 기법들은 우리의 생리적 메커니즘과 결합 될 때만 특유의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키틀러는 “미디어가 뇌에서 벌어지는 데이터 흐름을 예시 해 준다”고 표현하는데, 미디어라는 외부적인 기술과 정 보처리라는 내적인 인지 과정의 결합 또는 ‘공모’가 바로 기술적 상관체다. 스마트TV에서 이 같은 기술적 상관체가 무엇인지를 밝 혀내기 위해서는 먼저 TV 양식과 인터넷 컴퓨터 양식, 각 각의 영역에서 뮌스터버그나 키틀러가 영화에 대해 분석 한 바와 같이 기술적 상관체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TV 양 식이 영화와 유사한 영상 문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키틀 러 등의 논의를 바로 원용할 수 있지만, 인터넷 컴퓨터의 경우에는 새로운 통찰이 요구된다. 이에, 앞서 제시한 인터넷 컴퓨터 양식 중 하나인 하이 퍼텍스트성(hypertextuality)은 논의의 출발이 될 수 있 을 듯하다. 하이퍼텍스트의 시조라 불리는 바네바 부시 (Vannevar Bush, 1945)는 일찍이 “우리가 생각하는 대 로(As we may think)”라는 글에서 인간 정신이 연상 (association)에 따라 움직인다고 보고 메멕스(Memex)라 는 장치를 구상했는데 이것이 바로 월드와이드웹의 먼 조 상이다. 1965년 더글라스 엥겔바트(Douglas C. Engelb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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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테드 넬슨(Ted Nelson)은 각기 다른 배경에서 하이퍼텍 스트 시스템을 실제로 구축하게 되는데, 공학자인 엥겔바 트는 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통제된 연상으로서 연계 (connection)”를, 그리고 대항문화적 성향을 갖고 있던 넬 슨은 창조성에 기여할 수 있는 “연상”을 구현하기 위한 장 치로 하이퍼텍스트를 이해하고 있어 서로 차이는 있지만, 하이퍼텍스트가 인간 정신 또는 지능(intellect)의 기술적 외화 또는 구현이라고 보는 점에서는 동일하다(이재현, 2004). 즉 연상이라는 인간 정신의 과정과 하이퍼텍스트 의 결합은 키틀러가 말하는 기술적 상관체인 것이다. 인터넷 컴퓨터가 거의 모든 콘텐트에서 구현하고 있는, 즉 모든 정보 조직화의 핵심 원리이자 구조인 하이퍼텍스 트성은 바로 스마트TV와 이용자의 상호 연관을 보여 주는 주요한 단면인 셈이다. 세부 내용은 앞으로 더 많은 연구 를 필요로 하지만, 분명한 것은 스마트TV가 신체 기관, 감 각 양식, 인지 과정 등의 차원에서 신체와 도구 사이의 상 호 연관을 구현해 기존 미디어에서도 드러나는 수많은 기 술적 상관체들을 통합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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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이재현(2004). 󰡔멀티미디어와 디지털 세계󰡕.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Bush, V.(1945). As We May Think. The Atlantic Monthly, 176(1), 101∼108. Foucault, M.(1975). Surveiller et punir: Naissance de la prison. Paris: Éditions Gallimard. 오생근(역)(2003). 󰡔감시와 처벌: 감옥의 역사󰡕. 서울: 나남. Kittler, F. A.(1999). Gramophone, Film, Typewriter(G. Winthrop-Young & M. Wautz, Trans.). Stanford, CA: Stanford University Press. originally published as Friedrich A. Kittler(1986). Grammophon Film Typewriter. Berlin: Brinkmann & Bose. Richardson, I., & Wilken, R.(2009). Haptic Vision, Footwork, Place-making: A Peripatetic Phenomenology of the Mobile Phone Pedestrian. Second Nature, 1(2),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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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다.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KBS와 충남대학교에 재직했으며, 한국언론학회 이사와 기획위원장 을 역임했다. 저서로 󰡔인터넷과 사이버사회󰡕(2000), 󰡔멀티미디어와 디지털 세계󰡕(2004), 󰡔모바일 미디어와 모바일 사회󰡕(2004) 등이 있 고, 역서로 󰡔재매개󰡕(2006), 󰡔뉴미디어 백과사전󰡕(2005), 󰡔디 지털 모자이크󰡕(2002), 󰡔인터넷 연구 방법󰡕(2000)이 있으며, 편저로 󰡔트위터란 무엇인가󰡕(2012), 󰡔컨버전스와 다중 미디 어 이용󰡕(2011), 󰡔인터넷과 온라인 게임󰡕(2001)이 있다. “트위터 네트워크의 정보전파 과정 분석”(2012), “글쓰기 공 간으로서의 SNS”(2012), “디지털 에크프라시스”(2009), “인 터넷, 전통적 미디어 그리고 생활시간 패턴”(2005)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인터넷, 모바일미디어 등의 디지털 미디어, 디지털 문화, 소프트웨어 연구 그리고 미디어 수용자 조사 분 석이 주요 연구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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