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환 동화선집
“
오로지 어린이를 잘 키우고 싶었던 서른셋의 짧고도 아까운 생애
”
49.7x34.7cm, charcoal on paper, 2013
인터넷에서 찾은 사진을 보고 그리다.
이상한 샘물
한없이
옛날 어느 산 밑에 아들도 딸도 없는 늙은이 내외가 살고 있었습니다. 철량*이 없어서 가난하기는 하였지만 영감 님이나 마나님이나 똑같이 마음이 착해서 남에게 폐를 끼 치거나 신세를 지지 아니하고 부즈런히 일을 하면서 살아 갔습니다. 그러나 그 이웃집에 마음 사납고 게으르고 욕 심만 많은 홀아비 한 영감이 있어서 날마다 낮잠만 자고 놀고 있으면서 마음 착한 내외를 꼬이거나 소겨서 음식은 음식대로 먹고 돈은 돈대로 소겨서 빼아서 가고 그리면서 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는 법 없이 매양 두 내외를 괴롭 게 굴고 흠담을 하고 돌아다니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것을 아는 동리 사람들은 “어떻게 욕심쟁이를 다시 잘 가 르켜서 다시 길렀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기 위** 늙은 사람을 어떻게 다시 길러 내거나 가르치는 수도 없고 아무래도 별수가 없었습니다. 참말 그 욕심쟁이 늙은이로 해서 착한 영감 내외는 아 무리 힘을 드려 일을 하고 애를 써서 벌어도 밑바닥 깨어 진 독에 물 길어 붓는 것 같아서 돈 한 푼 모이지 않고 단 하루도 편히 쉬일 수가 없었습니다.
* 철량: 쇠, 돈. 재산이라는 의미. ** 기위(旣爲):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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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꼬부라진 허리를 쉬염쉬염 쉬여 가면서 죽을 고생을 드려서 일은* 아침부터 밤 어둡기까지 산에 가서 나무를 모아다가 팔지 아니하면 그날 밥을 먹지 못하는 형편이였 습니다. 그러나 마음 착한 영감님은 조금도 이웃집 홀아비를 원 망하거나 미워하지는 아니하였고 다만 자기가 너무 늙어 서 마음대로 버리를 못하게 되는 것만 한탄하면서 “조금 만 더 젊었으면 좀 더 일을 많이 할 수가 있겠는데” 하면서 지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중에 하루는 참말로 뜻밖에 이상한 일 이 생겼습니다. 그날도 다른 날과 같이 일은 아침에 산속으로 나무하러 간 영감님이 저녁때가 되어 마나님이 저녁밥을 차려 놓고 기다려도 돌아오지 아니하였습니다. 웬일일까 웬일일까 하고 자주 산길을 내어다 보면서 기다려도 영감님은 오지 아니하였습니다. 벌써 밤이 되었는데 어째 아니 올까 어 째 아니 올까 하고 앉었다 섰다 하면서 갑갑히 기다려도 오지 아니하였습니다. 늙은이가 산중에서 혹시 다치지나
* 일은: 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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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하였을까 무슨 무서운 짐승에게 잡혀가지나 안 했나 하고 무서운 의심과 겁이 벌컥 나서 이웃집 욕심쟁이 늙은 이를 보고 암만해도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니 횃불을 들고 좀 찾아가 보아 달라 하니까 의리도 모르고 은혜도 모르는 욕심쟁이 늙은이는 “이 밤중에 누가 찾으러 간단 말이냐” 고 하면서 고개도 들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는 수 없이 마나님이 자기라도 찾으러 가야겠다고 짚 신을 신고 횃불을 켜 들고 문밖을 나섰습니다. 그러니까 그제야 나뭇짐을 지고 어슬렁어슬렁 컹컴한 산길로 영감 님이 오지 않습니까. 마나님은 어찌나 반가운지 후닥딱 뛰어가서 손목을 잡으면서 “아이그 어서 오시요. 어떻게 걱정을 하였는지 모르겠 소. 웨 이렇게 늦으셨소.” 하고 집으로 맞여들였습니다. 나뭇짐을 나려놓고 방에 들어온 후에야 영감님의 얼굴을 보고 마나님은 깜짝 놀래 였습니다. 이상도 하지요. 영감님의 얼굴은 주름살 하나 도 보이지 않고 수염도 없어지고 하얗게 시었던 머리도 새 까매지고 아조 스물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젊디젊은 새서 방으로 변해진 까닭이었습니다. “아이그 여보 어떻게 이렇게 젊어지셨소? 아주 새파란 젊은 사람이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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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하도 이상하고 신기하여서 물어보았습니다. 영 감님은 목소리까지 아주 젊은 소리로 “글쎄, 나도 이상하오? 처음에 산속에 가서 나무를 긁고 있노라니까 어데로서 왔는지 처음 보는 파아란 새가 후르 르 날러와서 내 머리 우의 나무에 앉더니 고은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어여쁜 소리로 재미있게 노 래를 하는지 나는 그만 그 새소리에 정신이 쏠려서 갈퀴를 손에 쥔 채로 가마안이 서서 그 소리를 듣고 있지 않았소. 그랬더니 잠간 있다가 그 파랑새는 노래를 뚝 끊지드니 후 르르 산속으로 날라갑디다그려. 그래 나는 하도 섭섭하여 서 한참이나 그대로 서서 귀를 기우리고 있노라니까, 저어 산속에서 그 새소리가 나길래 한 번 더 가깝게 가서 그 소 리를 들으려고 그 산속으로 가니까, 또 후르륵 하고 더 깊 이 날라가길래 그냥 따라서 작고 쫓아 들어갔었구려. 그 렇게 한참 가니까 생전에 가 보지 못하던 곳인데 거기 조 그만 나무가지에 새가 앉었습데다. 그래 거기까지 가 보 니까 그 나무 밑에 조끄만 웅뎅이가 있고 깨끗한 샘물이 졸졸졸 솟아서 가아뜩하게 고여 있는데 그것을 보니까, 별 안간에 어찌 목이 말른지 그냥 그 샘물을 손바닥으로 떠먹 어 보았더니 어떻게 그 물맛이 시원한지 좋오은 약주를 먹 는 것 같습디다. 그래서 나는 그만 파랑새니 무어니 다 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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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리고 다섯 번이나 그 샘물을 퍼먹었지, 그랬드니 속이 시원하면서 술 먹은 사람같이 마음이 상쾌한 중에 어떻게 그냥 잠이 들어서 한참 동안이나 자다가 밤이 되니까 어찌 추은지 추워서 잠이 깨어 가지고 지금 돌아오는 길이요.” 하고 태연스럽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아이고 그럼, 그 샘물이 필시 젊어지는 신령한 샘물이 든 것인가 보구려.” 하면서 로파도 기꺼워하였으나 큰일 난 것은 영감님이 너무 젊어지고 마나님은 그대로 있으니까 마치 영감님은 마나님의 아들같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래서는 아니 되 겠다고 이튿날 새벽에 일즉이 일어나서 젊은 영감님이 늙 은 마나님을 다리고 산속으로 샘물을 찾아가서 물을 떠먹 였습니다. 그래서 마나님도 스물둘이나 세 살쯤 되는 젊 은 새색씨가 되어 아조 기운차고 일 잘하는 젊은 내외가 되어 재미있게 살게 되었습니다. 게름뱅이 욕심쟁이 홀아비 늙은이가 그것을 보고 한시 잠시 참을 수가 없어서 착한 새 젊은이를 보고 그 샘물 있 는 곳을 아르켜 달라 하였습니다. 마음 착한 새 젊은이는 싫단 말 아니하고 길을 잘 아르켜 주었습니다. 욕심쟁이 는 부리낳게 한걸음에 갈 것같이 뛰어갔습니다. 욕심쟁이도 젊어져 가지고 돌아오려니 하고 두 내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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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를 아니하였습니다. 저녁때가 되고 해가 저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밤중이 되어 캉캄 하여졌어도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의 그 이튿날 새벽이 되 어도 돌아오지 아니하였습니다. 암만하여도 의심이 나서 새 젊은 내외는 아침에 일즉이 나서서 산속 샘물로 찾아왔습니다. 샘물 옆까지 와 보아 도 욕심쟁이는 보이지 아니하였습니다. “필경 늑대나 호랑이에게 물려 간 모양이로군.” 하고 탄식을 하면서 그 근처를 찾노라니까, 이것 보십 시요, 저쪽 바위틈에 크디큰 어른의 옷을 입은 갖난 어린 애가 누어서 “으앙 으앙.” 하고 울고 있지 않습니까. 웬일일까 하고 뛰어가 보니 까 옷은 분명히 욕심쟁이 늙은이가 입었던 옷인데 옷 속에 갖난애기가 으앙 으앙 울고 있는 고로, 그 욕심쟁이 늙은 이가 샘물을 퍼먹을 제도 너무 욕심을 부려서 한없이 많이 퍼먹고 젊다 젊다 못해서 아주 갖난애기가 된 것인 줄 알 았습니다. 그래서 새 젊은 내외는 깔깔깔 웃으면서 “우리 집에 어린애가 없어서 쓸쓸스러우니 우리가 갖다 가 길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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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갖난애기를 안고 나려왔습니다. 마음 착한 내외에게 다시 길리워 자라난 후에는 욕심도 없고 게을르지도 않은 좋은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1923 (≪소파 전집≫, 박문서관,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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