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버빌가의 테스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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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s of the d’Urbervilles 더버빌가의 테스


제1부 처녀

테스의 아버지 잭 더비필드는 말럿 마을에 사는 가난한 행상이자 소작 농이다. 그는 어느 날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목사로부 터 자신이 명문가인 더버빌(d’Urbervilles)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말럿 마을에서는 오랜 전통인 여자들만의 축제가 한창인데, 테스는 작약 꽃처럼 붉은 입술이 눈에 띄는 아름다운 18세의 처녀다. 외지의 남자 세 명이 지나가다가 여자들만 춤추고 있는 이 광경을 목격 한다. 그들 중 한 젊은이가 테스가 아닌 다른 여자와 춤을 춘 뒤 테스를 아쉽게 뒤돌아보고 사라진다. 잭은 다시 술집으로 가서 도가 넘게 술을 마시고 다음 날 새벽 일어나지 못한다.

더비필드 집안의 식구들이 모두 잠든 것은 11시였다. 토 요일 장이 시작되기 전에 캐스터브리지의 소매상들에게 벌 통을 갖다 주려면 아무리 늦어도 다음 날 새벽 2시에는 벌통 을 가지고 출발해야만 했다. 거기까지 가는 길은 20에서 30 마일가량의 험한 길이라서 짐마차가 아주 느리게 움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새벽 1시 반에 더비필드 부인이 테 스가 어린 남동생들과 여동생들을 모두 데리고 자는 큰 방 으로 들어왔다. “아빤 못 가실 것 같아.” 어머니가 맏딸에게 일렀고 맏딸 19


은 어머니의 손이 문에 닿았을 때 이미 그 큰 눈을 뜨고 있 었다. 테스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아직 그녀는 꿈과 어 머니가 일러준 말 사이를 오가는 몽롱한 상태에 있었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가야 해요.” 그녀가 대답했다. “벌집 은 벌써 시기가 늦었어요. 올해 분봉은 곧장 끝날 거니까요. 다음 주 장까지 그대로 두었다 가져가면 찾는 사람도 없을 거고 우리 손에 그대로 남게 될 거예요.” 더비필드 부인은 이런 위급 사태를 감당할 수 없는 듯 보 였다. “젊은이 한 사람이 가면 안 될까? 어제 너랑 춤추려고 안달이던 젊은이들 중 한 사람이면 어떨까!” 부인이 즉시 이 런 제안을 던졌다. “아, 안 돼요. 절대로 그렇게 안 할 거예요!” 테스가 단호 하게 선언했다. “사람들이 모두 사정을 알게 되면 얼마나 창피한 일이에요. 에이브러햄이 같이 가준다면 제가 가겠 어요.” (…) 그들은 두꺼운 갈색 지붕 아래 말없이 잠들어 있는 스투 어캐슬이라는 작은 읍을 지나 더 높은 지대에 다다랐다. 그 들의 왼쪽에는 더 높이, 벌바로 또는 빌바로라고 불리는, 남 부 웨섹스에서 거의 제일 높은 고지가 진흙 웅덩이에 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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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여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거기서부터 멀리까지 길게 뻗 은 길이 평평하게 펼쳐져 있었다. 두 남매는 마차 앞에 앉아 있었고 에이브러햄은 점점 명상에 잠기게 되었다. “테스 누나.” 그는 침묵 끝에 이야기를 막 시작하는 듯 말 을 붙였다. “왜, 에이브러햄?” “우리 집이 좋은 가문이 된 게 기쁘지 않아?” “별로 기쁘지 않아.” “그렇지만 누나가 신사랑 결혼하게 되면 좋아하겠지?” “뭐라고?” 테스는 얼굴을 치켜들며 대꾸했다. “굉장한 친척이 누나가 신사랑 결혼하게 도와줄 거야.” “내가? 우리 굉장한 친척? 우린 그런 친척 없어.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한 거야?” “아버질 모시러 롤리버 술집에 갔을 때 엄마 아빠가 그렇 게 이야기하는 걸 들었어. 트랜트리지에 우리 일가가 되는 돈 많은 부인이 산대. 엄마가 그러는데 누나가 그 귀부인하 고 친척이라고 말하면 누나를 신사랑 결혼시켜 줄 거래.” 테스는 갑자기 조용해져서 생각에 잠긴 듯 침묵에 빠져 들었다. 에이브러햄은 계속 이야기를 했다. 듣는 이를 대상 으로 하기보다는 말하는 재미로 이야길 했고, 그래서 누나 가 정신을 딴 데 팔고 있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 애는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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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에 기대앉아서 얼굴을 하늘로 향한 채 별들을 관찰했다. 별들은 이 두 작은 인간들과 무관하게 고요히 거리를 둔 채 새까만 하늘에서 드높이, 또 차갑게 맥이 뛰고 있었다. (…) “별들도 그들의 세계가 있다고 했지, 테스 누나?” “그래.” “우리같이?” “잘 모르지만 그럴 거야. 별들은 때론 우리 집 사과나무 에 열린 사과들이랑 비슷해 보여. 어떤 것들은 멋있고 싱싱 한데 어떤 것들은 벌레가 먹었지.” “우린 어디 사는 거야? 멋있는 쪽이야, 벌레 먹은 쪽이 야?” “벌레 먹은 거지.” “싱싱한 게 그렇게 많은데 그렇지 않은 데 걸렸으니 참 운도 없어!” “그렇지.” “진짜로 그런 거야, 테스 누나?” 에이브러햄이 이런 희귀 한 사실을 알게 된 걸 되짚어보고 감명받은 표정으로 테스 에게 몸을 돌리며 말했다. “우리가 싱싱한 별에 걸렸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랬더라면 아빤 지금같이 기침하면서 휘청거리며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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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지도 않을 테고 장에 못 갈 만큼 취하시지도 않았겠지. 어머닌 아무리 해대도 끝나지 않을 빨래를 하시지 않아도 되었겠지.” “그리고 누나는 벌써 부잣집 귀부인으로 태어나서, 부자 가 되기 위해 신사랑 결혼해야 할 필요도 없겠지?” “오, 에이비, 그 이야긴 더 이상 하지 마!” 가는 도중에 테스 남매는 계속 가난한 집에 태어난 자신들의 불운한 운 명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마차에서 잠이 든다. 충격에 놀라 깨어보니 자 신들의 짐마차가 우편 마차와 충돌해 생계 수단인 말 프린스가 죽어 있 는 것을 발견한다. 집안 형편은 점점 나빠지는데 말까지 죽게 만들었으 니 자책감 때문에라도 테스는 부자 친척을 찾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어머니는 아직 어린 테스가 성숙해 보이도록 치장을 시켜 보낸다.

주홍빛 벽돌집이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처마 끝까지 울 창하게 상록수가 덮여 있었다. 테스는 이 집이 본 저택인 줄 알았는데 두려운 맘으로 옆문으로 들어가 마찻길이 구부러 지는 곳까지 이르자 그제야 저택이 본 모습을 드러내었다. 저택은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정말로 새 집이었고 문지기 집의 상록수와 썩 좋은 대조를 이루는 짙은 붉은빛이었다. 주변의 옅은 빛을 배경으로 활짝 핀 제라늄같이 서 있는 이 집 한 귀퉁이 뒤편 멀리, 체이스 숲의 부드러운 담청 빛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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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이 펼쳐져 있었다. ‘체이스 숲은 ’ 정말 유서 깊은 삼림지대 로서 영국에서 아주 태곳적부터 존재해 온 숲 가운데 몇 군 데 남지 않은 곳이었다. 이 숲에선 드루이드교도들이 숭배 했던 겨우살이를 오래된 참나무에서 아직 찾아볼 수 있었 고, 사람의 손으로 심은 것이 아닌 듯한 엄청나게 큰 주목들 이 활을 만들기 위해 가지를 자르던 때와 마찬가지로 자라 고 있었다. 이러한 오래된 숲의 경치는 ‘슬로프 저택에서 ’ 볼 수 있긴 했지만 이 영지 경계선 바로 바깥에 있었다. 이 아늑한 저택 안에 있는 모든 것이 환하고 풍성하며 잘 가꾸어져 있었다. 몇 에이커나 되는 온실이 경사지를 따라 발치의 관목 숲까지 뻗어 있었다. 모든 것이 돈처럼 보였다. 마치 조폐국에서 금방 찍어낸 새 화폐처럼 보였다. 오스트 리아산 소나무와 상록 참나무로 일부가 가려진 마구간은 모 든 최신식 설비를 다 갖추고 있었으며 교회의 별관만큼 위 엄 있어 보였다. 넓게 펼쳐진 잔디밭 위에는 장식용 천막을 쳐놓았는데 그 문은 그녀 쪽을 향해 나 있었다. 순진한 테스는 반쯤 놀란 태도로 자갈길 끝자락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자신이 어디 있는지 알아차리 기도 전에 여기까지 발길이 닿은 것이었다. 이제 모든 게 자 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우리 집안은 오래된 가 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집은 모든 게 새것이잖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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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순진하게 혼잣말을 했다. 그녀는 ‘일가 찾기라는 ’ 어 머니의 계획에 쉽게 따르지 않고 집 가까운 데서 도움을 청 해봤으면 좋았을 걸 하고 생각했다. 실상 앨릭의 집인 스토크 더버빌 집안은 영국 북부 지방에서 상업으로 돈을 모아 남부 지방에 와서 명문으로 자리 잡고자 더버빌 가문의 이름 을 대영박물관에서 찾아 덧붙인 것이었다. 이러한 실상에 대해 테스와 테스의 부모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테스는 수영하는 사람이 물에 뛰어들려고 할 때처럼 물 러나야 할지 계속 나가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망설이며 서 있었다. 그때 천막의 검은 삼각형 문에서 사람이 하나 나 왔다. 그 사람은 키가 큰 젊은 남자였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 었다. 그의 얼굴빛은 거무튀튀했고 입술은 붉고 부드러웠지만 두텁고 흉한 윤곽을 지니고 있었다. 나이는 스물서넛 이상 들어 보이지 않았지만 입술 위로 잘 손질한 검은 콧수염이 있었으며 양쪽 수염 끝은 구부러져 올라가 있었다. 그의 몸 윤곽 전체에 어딘지 야만스러운 분위기가 풍겼지만 신사처 럼 보이는 얼굴과 과감하게 굴리는 눈에는 야릇한 힘이 깃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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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아들인 앨릭 더버빌은 다분히 난봉꾼 같아 보이는 인물로 테스의 외모에 끌려 그녀의 말을 들어주고 접대한다. 그다지 내키지 않았지만 테스는 그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것임을 밝힌 후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테스는 가능하면 이 방문을 간단히 끝내고 싶었지만 이 청년은 자신의 청을 따르도록 고집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 를 따라다니기로 했다. 그는 잔디밭, 화단과 여러 온실로 안 내했고 과수원과 과채류를 키우는 온실로 데리고 갔다. 온 실에서 그는 딸기를 좋아하느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네.” 테스가 대답했다. “딸기 철이 되면요.” “여긴 벌써 익었는걸.” 더버빌은 그녀를 위해 여러 종의 딸기를 따기 시작했고 허리를 구부린 채로 딸기를 그녀에게 건넸다. 그는 이내 영국 여왕이라는 특별히 좋은 품종을 고 르더니 일어서서 줄기째로 그녀의 입에 갖다 대었다. “아니에요. 됐어요!” 그녀가 그의 손과 자신의 입술 사이 에 손가락을 넣어 딸기를 밀어내며 재빨리 말했다. “제 손으 로 먹겠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가 고집을 피웠고 그녀는 좀 난처 한 기분으로 입을 벌려서 딸기를 받아먹었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막연하게 배회하며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테스는 더버빌이 주는 건 무엇이든 반은 즐겁고 반 은 내키지 않는 태도로 받아먹었다. 더 이상 딸기를 먹지 못 26


하게 되자 그는 그녀의 작은 바구니에 딸기를 채워주었다. 그런 후 둘은 장미 나무 주변을 지났다. 거기서 그는 장미 송이들을 따서 그녀 가슴에 꽂도록 했다. 그녀는 마치 꿈꾸 는 사람처럼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녀가 더 이상 장미 송이들을 꽂을 수 없게 되자 그는 직접 한두 송이 꽃봉오리 를 그녀의 모자에 꽂아주었다. 그리고 맘껏 자선이라도 베 풀듯 바구니 가득 꽃을 담아주었다. 마침내 그는 시계를 보 고서 말했다. “뭘 좀 먹고 나면 떠날 시간에 맞출 수 있겠네 요. 섀스턴행 마차를 타려면요. 와봐요. 먹을 게 뭐가 있나 봅시다.” 더버빌은 그녀를 다시 잔디밭으로 데려가 천막 안에 남 겨두었다. 그러곤 곧장 가볍게 요기할 수 있는 점심 바구니 를 가지고 나타나 그녀 앞에 손수 내려놓았다. 이 신사는 이 즐거운 단둘만의 자리를 하인들에게 방해받고 싶지 않은 것 이 분명했다. “담배 피워도 괜찮겠소?” “아, 네. 괜찮고말고요.” 그는 천막 안에 자욱이 퍼져나가는 담배 연기 사이로 그 녀가 별 생각 없이 귀엽게 음식을 먹고 있는 걸 바라보았다. 테스는 순진하게 자기 가슴에 꽂힌 장미를 내려다보면서 마 약과도 같은 푸른 담배 연기 뒤에 자신의 인생 드라마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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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 재난이 ’ 숨어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그 재난은 그녀의 젊은 시절이라는 스펙트럼 안에 핏빛 광선으로 뚜렷 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지금 불리하게 작용하는 특 성으로 말미암아 앨릭 더버빌의 시선은 그녀에게서 떨어지 지 않았다. 그 불리한 특성이란 풍만한 외모와 성숙하게 자 란 몸매였는데 이 때문에 테스는 실제보다 더 성숙한 여자 로 보였다. 그녀는 어머니의 용모를 그대로 이어받았지만 어머니처럼 빼어난 아름다움은 모자란 편이었다. 그 때문 에 테스는 때때로 괴로워했으나 친구들 말로는 시간이 지나 면 그런 결함은 치유될 거라고 했다. 그녀는 재빨리 점심 식사를 끝냈다. “이제 집에 가야겠 어요” 하고 말하면서 일어섰다. “그런데 뭐라고 불러요?” 저택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마찻길을 따라 배웅하면서 그가 물었다. “말럿에선 테스 더비필드라고 불러요.” “그래, 가족이 말을 잃었다고 했소?” “제가 죽였어요!” 그녀가 대답했다. 프린스의 죽음에 대 해 상세히 이야기할 때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했다. “말 을 죽였는데 제가 아버질 위해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내가 뭔가 도와줄 수 없나 생각해 봐야겠소. 어머니가 당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 거요. 하지만 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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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버빌이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 말아요. 더비필 드면 됐어요. 두 성은 전혀 관계가 없으니까.” “저는 더 이상 바라지도 않아요.” 그녀는 약간 위엄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후, 테스는 닭을 돌보러 오라는 더버빌 부인의 편지를 받는다. 실은 앨릭이 테스의 미모에 끌려 자기 집 양계장에서 일하도록 조처를 한 것이다. 테스는 하는 수 없이 집안을 위해서 앨릭 의 집으로 떠난다. 가족들은 부디 부자 친척과 결혼해 자신들을 구제해 주기를 바라면서 테스를 배웅한다.

앨릭 더버빌은 그녀의 옆에 올라타 첫 번째 언덕의 능선 을 따라 빠르게 말을 몰았다. 그는 마차를 모는 동안 테스에 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테스의 짐을 실은 짐마차는 한참 뒤로 처지게 되었다. 계속 오르막길이어서 광대한 풍경이 그들 주변을 둘러싸고 펼쳐졌다. 그녀가 태어난 초록빛 계 곡이 보였고 트랜트리지를 처음으로 잠깐 찾아갔을 때 풍경 말고는 아는 것이라고는 없는 회색빛 시골 지역이 펼쳐져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달려서 경사지가 시작되는 지점에 도착했고, 거기서부터 1마일가량의 긴 일직선 내리막길이 펼쳐져 있었다. 테스는 천성이 용감한 편이었지만 아버지의 말을 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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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 사건 이래로 마차를 타면 몹시 겁을 집어먹었다. 그래 서 조금만 마차가 이상하게 움직여도 아주 놀랐다. 그녀는 자신을 데려가는 이 남자가 마차를 아무렇게나 모는 것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내려가 주시겠어요?” 그녀는 태연한 척하며 말 했다. 더버빌은 그녀를 돌아다보았다. 그는 크고 흰 앞니 끝으 로 시가를 물고 있었는데 그 입술에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아니, 테스.” 그는 시가 연기를 한두 번 내뿜고 나서 말했 다. “용감하고 씩씩한 처녀가 할 부탁 같진 않은데? 나는 늘 전속력으로 경사진 길을 달려요. 기분을 돋우는 데 그만한 것이 없지.” “그렇지만 지금 그러실 필요 없잖아요?” “아니.”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생각해야 될 게 둘 이란 말이오,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냐. 티브 생각도 해줘야 해요. 티브는 아주 고약한 성미를 가진 말이거든.” “누구요?” “이 암말 말이야. 이 말이 바로 조금 전에 날 사납게 돌아 봤는데 그걸 보지 못했소?” “겁주려 하지 마세요.” 테스는 목소리가 굳어지며 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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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놀라게 하지 않을게요. 이 세상에 이 말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나요. 아무나 이 말을 다룰 수 없 거든. 이 말을 다룰 힘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게 나 란 말이오.” (…) 마차는 내리막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말은 자기 의지인 지 모는 이의 의지인지(후자일 가능성이 더 높았지만) 모르 겠지만 무모하게 달려야 한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어 뒤 에서 그렇게 달리라고 지시할 필요가 없었다. (…) 바람은 테스의 하얀 모슬린 옷을 뚫고 그녀의 살까지 파 고들었으며 그녀의 새로 감은 머리칼은 뒤로 휘날렸다. 그 녀는 겁먹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다짐했는데도 어느새 고 삐를 잡고 있는 더버빌의 팔을 꼭 붙들었다. “팔을 건드리지 마! 그러다간 둘 다 내동댕이쳐지니까! 내 허릴 안아요!” 그녀는 그의 허리를 안았다. 그런 상태로 내리막길의 아 래까지 도달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무사히 내려왔네요, 당신이 어리 석은 짓을 했는데도!” 그녀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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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 쓸데없는 소리! 다 내가 침착했기 때문이오” 하고 더버빌이 말했다. “그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위험에서 벗어났다고 그렇게 인정머리 없이 내 허리에서 팔을 떼버릴 건 없잖소.” 그녀는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고 그의 허릴 안았던 것이 다. 그게 남자건 여자건, 막대기건 돌멩이건, 무의식적으로 그를 붙잡았던 것이다. 그녀는 평정을 되찾아 아무 대답 없 이 앉아 있었는데 다시 그들은 다른 경사진 길의 꼭대기 지 점에 도달했다. “자, 이제 다시 한 번!” 하고 더버빌이 말했다. “안 돼요. 안 돼요.” 테스가 말했다. “제발 좀 그만하세요. 제발.” “그렇지만 이 고장에서 제일 높은 데 올라왔으니 다시 내 려가야지.” 그가 대꾸했다. 그는 고삐를 느슨하게 풀었고 그들은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더버빌은 마차가 흔들리 는 사이 그의 얼굴을 돌리고는 장난치듯 말했다. “자, 좀 전 에 그랬듯이 이제 다시 내 허리를 안아요. 예쁜 아가씨.” “천만에요.” 테스는 그에게서 떨어질 수 있는 한까지 몸 을 버티면서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 앵두 같은 입술에 잠깐 만 키스하게 해줘, 테스. 아님 그 달아오른 볼에라도.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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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살살 달릴게. 맹세코 살살 달리겠소!” 테스는 너무 놀라서 더 멀리 뒤로 몸을 비켰다. 그러자 그는 말을 더 심하게 몰았고 그녀의 몸은 더 세게 흔들렸다. “다른 걸론 안 되나요?” 그녀는 절망에 빠져서 외쳤고 그 녀의 큰 눈은 야생동물의 눈처럼 그를 쏘아보았다. 어머니 가 이렇게 예쁘게 차려 입힌 것이 분명 이런 슬픈 결과를 위 한 것인 듯했다. “그거 말곤 어떤 것도 안 돼, 테스.” 그가 대답했다. “아, 나도 잘 모르겠어요. 상관 않겠어요.” 그녀는 비참 하게 숨을 헐떡였다. 그는 고삐를 당겼으며 마차의 속도가 느려지자 원했던 키스를 하려고 했다. 그때 자신이 겸손하게 굴복한 사실을 잊어버린 듯 그녀는 몸을 옆으로 돌렸다. 그는 두 팔로 고삐 를 잡고 있었기에 그녀의 이런 몸짓을 막을 힘이 없었다. “제기랄, 우리 둘 모가지를 다 부러뜨려 놓고 말 거야!” 변덕스런 욕정에 사로잡힌 더버빌이 욕설을 퍼부었다. “어 떻게 그런 식으로 약속을 깨는 거야? 이 어린 마녀 같으니라 고!” “좋아요” 하고 테스가 말했다. “그렇게 고집부리시니 가 만있겠어요. 그렇지만 친척이시라 저한테 친절하게 대해주 시고 보호해 주실 거라고 믿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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