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 동화선집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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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불 켜는 집

넘실대는



일요일 아침 일요일인데도 영이는 일찍 깼습니다. ‘오늘은 일요일이니 늦잠을 좀 자도 괜찮겠지.’ 생각하고 아직 주무시는 엄마 방문을 똑똑 두드렸습니 다. “오냐, 영이냐? 벌써 일어났구나.” “엄마, 밥해 주세요.” “응? 좀 더 자지 않구서. 오늘은 일요일 아니니?” “네, 엄마. 하지만 오늘 친구들하고 어딜 가기로 약속했 어요.” “어딜?” 엄마는 계란빛 스웨터를 입으면서 방문을 열고 나오셨 습니다. “누구 생일이니?” “아뇨.” 영이가 도리질을 하였습니다. “그럼, 전람회?” “아니요.” “그렇담, 대관절 어딜 가기로 했다는 거냐?” 엄마는 궁금해서 자꾸만 재우쳐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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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금세 생각난 듯 “오라, 또 그 만화영환가 뭔가를 보러 우우 몰려갈 참이 구나.”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요.” “그런 게 아니라니?” 엄마는 영 갑갑해 못 견디겠는데 영이는 있는 대로 뜸 을 들였습니다. “저어-, 섬엘 다녀오려구요.” “서엄? 무슨 섬?” “네에, 마파람섬이라고 하는데요. 지난 토요일, 삽사 리 버스 회사 전무 아저씨한테서 예쁜 초대장을 받았어 요.” “어디 있는 섬이라던?” “우리나라에서 섬이 제일 많은 남쪽 다도해 중에서도 맨 아래 있대요.” “그렇게 먼 델 어떻게 오늘 갔다가 오늘 돌아올 수 있겠 니?” 엄마는 퍼뜩 걱정이 앞섰습니다. 영이가 계집애답지 않게 늘 모험을 좋아하여 전에도 동 네 꼬마들과 산에 갔다가 길을 잃고 밤중에 온 적이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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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입니다. 그때는 그래도 가까운 산이었기 망정이지, 오늘처럼 먼 데를 갔다가 만일 길을 잃는다면…. 엄마는 상상만 해도 아뜩했습니다. 고명딸은 기르면서 근심거리가 많이 생긴다던데 이만 큼 키우기도 얼마나 간을 졸였던가. 갑자기 눈앞에 어두운 문젯거리가 일어난 듯 엄마는 밥 지을 맘도 내키지 않는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습니 다. 그러자 영이가 안 되겠는지 방으로 들어가 서랍에서 종 이쪽지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엄마, 이 초대장을 보셔요.” 영이는 둘레가 나비 모양으로 된 노란 초대장을 엄마께 드렸습니다. 엄마는 영이가 보여 주는 초대장을 읽었습니다.

초대장

어린이 여러분께. 어린이 여러분 안녕! 저는 삽사리 버스 회사 전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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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 아니라 이번에 새로 들여온 초고속 삽사리 버스로 어 린이 여러분을 모시려 하오니 이때를 놓치지 말고 바람 한 번 쏘이시도록.

차비: 오는 걸로 때움. 모시고 갈 곳: 마파람섬 꽃불 켜는 집. 모이실 때: 다음 일요일 이른 아침(갈 곳이 조금 멀기 때문. 그러나 틀림없이 그날 돌아올 수 있음). 모이실 곳: 통나무 놀이터 앞. 삽사리 버스 회사 전무 올림.

“암튼 밥은 해 주마. 한데 영이야, 정말 오늘 꼭 돌아올 수 있겠니?” 엄마는 영이한테 다짐을 받아 둘 양으로 또 한 번 물었 습니다. “문제없어요. 엄마, 우리 모두 삽사리 회사 전무 아저씨 를 믿기로 했어요.” 영이는 오돌차게* 대답했습니다.

* 오돌차다: 허술한 데가 없이 매우 야무지고 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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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이네가 먼저 믿은 것은 삽사리 회사 전무가 아 니라 바람처럼 날아든 노란 초대장이었습니다. 그 초대장을 한 장씩 받았을 때, 아이들은 저마다 가슴 이 뛰었습니다. 아직 알 수는 없지만, 어떤 신비한 일이 눈앞에 벌어질 것 같은 예감으로 온통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습니다. “너, 이런 초대장 받았니?” 달수가 인호더러 물었습니다. “응, 너도 받았니?” 인호는 짝꿍 옥희한테 물었습니다. “응, 영이야, 넌?” 옥희는 뒷자리에 앉은 영이에게 물었습니다. “나도.” 영이는 콧소리가 조금 섞인 듯한 목소리로 대답하였습 니다. 사실 삽사리 버스 회사 전부의 초대장을 제일 먼저 받 은 아이가 바로 영이였으니까요. 초대장이 늘 받아 보던 생일 카드 같은 것과는 달라서 며칠 동안 혼자서 간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윽고 공부가 끝난 뒤, 아이들은 운동장에 모였습니다.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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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말까?” “글쎄, 한데 그 전무라는 분이 누굴까?” “혹, 우리를 나쁜 곳으로 데려가려는 게 아닐까?” 아이들은 서로 물어보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다가 영이 가 “얘들아, 초대장에 ‘꽃불 켜는 집’이랬지? 거긴 우리가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데 아니니? 그러니까 말이야, 한번 가 보는 게 어떠니?” 하고 말했습니다. 이에 다른 아이들도 “그래, 그리구 말이야, 초대장의 글씨도 참 예쁘지 않 니?” “그렇담, 그런 글을 써 보낸 전무 아저씨도 우릴 해칠 것 같진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도.” 하고 한마디씩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이들은 처음의 의심을 풀고, 노란 초대장과 초대장 속의 전무 아저씨를 믿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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