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완희 시선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은 인류의 유산으로 남을 만한 작품만을 선정합니다. 오랜 시간 그 작품을 연구한 전문가가 정확한 번역, 전문적인 해설, 풍부한 작가 소개, 친절한 주석을 제공하는 고급 시 선집입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유완희 시선 유완희 지음 강정구 엮음
대한민국,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4
편집자 일러두기 ∙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 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 이로 추천했습니다. ∙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 석을 덧붙였습니다. ∙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습니 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 했습니다. ∙ 각 작품의 마지막에 출전을 밝혔습니다. ∙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 잡았습니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습니다. ∙ 주석은 현대에는 쓰지 않는 생소한 단어, 현대의 독자들이 쉽게 뜻을 알기 어려운 한자어, 원전의 글씨가 잘 안 보여 엮은이가 추 정한 글자, 사투리, 토속어, 북한어 등 설명이 필요한 경우에 달았 습니다.
차례
거지 ·······················3 女職工 ······················5 犧牲者 ······················7
아오의 무덤에···················9 刹那 ······················10 享樂市場 ····················11
나의 要求 ····················13 나의 行進曲 ···················15 街頭의 宣言 ···················17 民衆의 行列 ···················19
오즉 前進하라! ··················21 어둠에 흘으는 소리 ················26 봄비 ······················28 가을 ······················29 바람 ······················30 春咏 ······················32
봄의 서울 밤 ···················33
다리 우에서 ···················34 獨訴 ······················35 斷腸 ······················38
1929年 ·····················40 봄은 왓다 ····················45 無聲泣 ·····················46
우리들의 詩 ···················48 太陽으로 가는 무리················51 太陽으로 가는 무리(續) ··············55
새해를 마즈며 ··················59 生命에 바치는 노래················61 山上에 서서 ···················71
내ᄉ가에 앉어 ··················73 靑春譜 ·····················75
다시 맞는 이날 ··················77 잊지 못할 이날 ··················79 해설 ······················81 지은이에 대해 ··················91 엮은이에 대해 ··················93
유완희 시선
거지
네 이름은 거지다 네 血管에 피를 돌리기 爲하야 무리들의 먹고 남저지1)를 비는 거지다.
네가 거리에 나안저 푼돈을 빈 지 이미 十 年이나 되엇다 그래도 지칠 줄을 모르느냐 -아이고 지긋지긋하게도.
무엇? 그놈을 보고 돈을 달라고 그놈의 피닥지를 보아라 행여나 주게 생겻나.
압다
1) 남저지: ‘남은 것’, ‘나머지’의 방언.
3
어케 처먹엇는지 창얼이 다 들렷고나 -눈이 다 붉어지고 숨은 허덕대고-
별수 업다 인제는 별수 업다. 차라리 監獄에나 갈 道理를 하야라 -네 子息을 爲하야 그럴듯한 罪를 짓고…
그것이 오히려 좀 더 젊쟌코 편안한 길인가 한다 거리에 나안저 푼돈을 비는 이보다는…
≪시대일보(時代日報)≫, 1925. 11. 30
4
女職工
봄은 되얏다면서도 아즉도 겨울과 작별을 짓지 못한 채 -낡은 민족의 잠들어 잇는 저자 우예 새벽을 알리는 工場의 첫 고동 소리가 그래도 세차게 검푸른 한울을 치바드며 三十萬 백성의 귓겻에 울어 나기 시작할
목도2) 메다 치여 죽은 남편의 상식3) 상을 밋처 치지도 못하고 그대로 달려온 애젊은 안악네의 갓븐 숨소리야말로…
惡魔의 굴속 가튼 作業物 안에서
무릅을 굽힌 채 고개 한 번 돌니지 못하고 열두 時間이란 그동안을 보내는 것만 하야도-오히려 진저리 나거든
2) 목도: 두 사람 이상이 짝이 되어, 무거운 물건이나 돌덩이를 얽어맨 밧 줄에 몽둥이를 꿰어 어깨에 메고 나르는 일. 3) 상식(上食): 상가(喪家)에서 아침저녁으로 궤연 앞에 올리는 음식.
5
징글징글한 監督 놈의 음침한 눈짓이라니… 그래도 그놈의 을 바더야 한다는 이놈의 世上-
오오 祖上이여! 남의 남편이여! 왜 당신은 이놈의 世上을 그대로 두고 가셧습닛가? -안해를 말리고 자식을 애태우는…
≪개벽(開闢)≫, 1926. 4
6
犧牲者
저녁볏이 건너ᄉ山을 기여올을 남편은 憤怒에 질닌 얼골로 ˙ ˙ 들과 함 동네 작인 작대를 을고 南 마을로 달려가드니
밤은 三更이나 지나서 달빗조차 낡어 가는 이 한밤에 屍體로 變하야 집으로 도라온다
눈도 감지 못한 채 들거지에 언쳐서-
그러면 앗가 막 설거지를 맛치고 날 아닌 총소리가 련겁허 뒤ᄉ山을 울니더니 그것이 내 남편의 靈魂을 모셔 가는 애닯은 永訣 초혼 소래이던가 보다
오냐 이놈! 한 개의 탄자로서 내 남편을 밧궈 간 원수 놈- 아모련들 가슴의 매듭이 풀닐 줄 아느냐!?
7
내 목숨이 世上에 멈으러 잇는 동안은-
≪개벽≫, 1926. 4
8
아오의 무덤에
아오여! 아오의 魂魄이여! 兄은 방금 이 을 버리고 가려 한다
한 아버지가 주추지 노아 준 이 이 터의 이 집을 버리고 가려 한다 千 里나 萬 里나 정처도 업는 곳으로-
그래도 그대는 白骨이나마 祖上의 친 터를 베고 잇건만…
≪개벽≫, 1926. 4
9
刹那
刹那의 목숨을 살리라
-刹那와 刹那를 넘어가는 瞬間의 苦痛은 생각지 말고-
오즉 刹那에 살리기를 힘쓰라! 그러면 자연 現實의 참 ‘삶’을 엇게 되리니… ≪개벽≫, 1926. 4
10
享樂市場
너르나 너른 대청 안에는 초저녁부터 실어다 노흔 ○○4)의 商品이 벌서 三百도 넘어 山가티 싸엿다 밧게는 自動車 馬車가 장을 서고-
高帽, 燕尾服, 칠피5) 구두
금비녀, 玉반지, 綾羅 자락 보라- 엘마나 갑나가는 물건인가를… ˙ ˙ ˙ 6)로 消毒하고 이것이 모다 삼판주 춤으로 陳列한 물건이다 그리고 우슴으로 팔랴는 것이라
未久에 모혀들
4) ○○: 이 표기는 원문을 따랐다. 5) 칠피(漆皮): 옻칠을 한 가죽. 6) 삼판주: 샴페인(champagne).
11
누덕이 걸친 손- 굼주려 우는 손… 三千 名도 더 넘을 그 손들에게…
≪개벽≫, 1926. 4
12
나의 要求
거울에 빗최는 나의 얼골 나의 눈 엇더케도 무섭게 얆이인 것이냐
보드랍게도 살 잇든 나의 은 어느 놈이 다 할터 갓느냐? 그리고 나의 눈의 潤光은…
할처진 - 패인 눈자위 거긔에는 다만 가득한 毒과 어둠이 슬리어 잇슬 름이다 묵어운 輪廓에 씨히어… × 나는 지금 기름을 要求한다 셋 치 둑게의 지른 기름을… 그늘에서 길려 난 돼지 무리의 살 기름을…
다만 그것이다! 나의 과 나의 눈이 요구하는 것은
13
그리고 나의 마음이 요구하는 것은… 다만 그것이다! 기름! 기름! 돼지의 기름! × 地平線을 넘어오는 바람의
“리듬”! 거긔에 흐르는 수 몰을 羅列의 발자욱 소리… 노래하자! 그 “리듬”을 아서- 해는 새 빗을 보내지 안는가? 地球에- 온 宇宙에-
오! 이날의 詩人이여! 우리는 새 世紀의 노래를 보내자! 새로운 햇빗 알에에 서서… 오! 새로운 宇宙는 그곳에 創造되리라
≪조선일보(朝鮮日報)≫, 1927. 10. 25
14
나의 行進曲
타는 가슴! 불붓는 심사! 그것은 民衆의 압흐로 民衆의 압흐로 굿세게 나가기를 要求한다
소리치는 나의 音聲-音聲의 波動 그것은 멀리 더 멀리 民衆의 가슴을 코 民衆의 마음 을 이고 나간다 누가 나의 압흘 막느냐? 나의 나가는 압흘 나는 民衆의 압헤 서서 民衆과 함 나가랴는 사람이 다 나의 든 “랏쉬”7)는 나의 든 붓자루는 民衆을 그리고 民衆을 놀애하랴는 道具다
-온− 街頭의 看板이 되고 “라”8)가 되어… 나는 지금 지극한 衝動에 눌리고 잇다 灼熱된 나의 感情 그것은 어지는 닙과 가티 그가티
허무히 슬어지지는 아니하리라
7) 랏쉬: 브러시(brush). 솔. 8) 라: 삐라(Pira). 전단(傳單).
15
感情이 爆發되는 날
그날이 나의 가슴으로부터 나의 마음으로부터 잇기[苔] 가 살아지는 날이다 그리고 그들은 한 同志의 壯嚴한 禮式을 擧行하게 되 리라
≪조선일보≫, 1927. 11. 5
16
街頭의 宣言
거리! 憎惡에 타는 거리 憤激에 불붓는 거리 보라! 사랑하는 이여! 젊은이들이여! 검붉은 雰圍氣-굽이치는 물결
나오라! 詩人이여! 美術家-音樂家 거리로 나오라! 나와서 소리치라! 언제지나 搭 안의 올창이 되지 말고…
民衆-民衆-民衆
굿세게 나가라! 압흐로-압흐로- 都市의 民衆-鄕村의 民衆
“모−터−”의 音響을 좀 더 擴大하라! 大地의 呼吸을 좀 더 깁게 하라!
民衆-民衆의 前進-前進의 굿세임
우리는 그것을 讚美한다! 그것을 祝福한다! 그것은 人間으로서 참 “삶”에 돌아가랴는 强烈한 “리 듬”인 닭이다
17
누가 그것을 막느냐? 灼熱된 有機의 結合-民衆의 前 進-前進의 偉大한 힘을 天地를 휩쓰는 바람 여전히 民衆의 感情을 쇠북질하
는데…
≪조선일보≫, 1927. 11. 20
18
民衆의 行列
行列! 푸로레타리아의 行列! 家庭에서 田園에서 工場에서 學校에서 街頭로 街頭로 흗터저 나온다 營養에 주리여 蒼白한 얼골-그러나 熱에 인 거름
거리 그들은 그들의 노는 心臟의 鼓動을 듯는 듯하다
비웃느냐? ×××9) 무리들 -그늘에 자라날 享樂의 날이 아즉도 멀엇다고 그러나 그 거름거리를 보라! 大地를 울리고 新生으로 新生으로 다름질하는 그 거름거리를
그들은 인제는 너에의 覺醒을 더 바라지도 안는다 -赤道가 北으로 기울어지기를-事實 以外에 더 큰 일이 잇기를-바라지 안는다 다만 힘으로써 힘을 익이고 힘으로써 힘을 어드랴 할
9) ×××: 이 표기는 원문을 따랐다. 검열로 인해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
19
다름이다 그곳에 새롭은 世紀가 創造되고 ×××××××를 맛 볼 수 잇스리니-
빗켜라! ××들! 그들의 行列을 더럽히지 말라! 굿세게 前進하는 그들 의 압길을
行列! 푸로레타리아의 行列! 家庭에서 田園에서 工場에서 學校에서 街頭로 街頭로 흗터저 나온다
하날에는 눈보라 감돌아 올으고 에는 모진 바람 휩쓸 어 드는데 -돼지 무리 살가지10) 우슴 웃고…
≪조선일보≫, 1927. 12. 8
10) 살가지: ‘살쾡이’의 방언(경남, 전북, 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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