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자유 투쟁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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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자유 투쟁 레베카 매키넌 지음 김양욱 · 최형우 옮김

대한민국,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13


01 동의와 주권

1984년 1월 22일 슈퍼볼 선데이, 애플은 지금까지 회자되는 유명한 광 고를 내보냈다. 민머리에 회색 점프수트(낙하복) 차림을 한 사람들이 잿빛 극장을 가득 채우고 앉아 멍하니 커다란 스크린을 바라본다. 스크 린에서 전체주의자 ‘빅 브라더’가 다음과 같이 읊조린다. “하나의 의지, 하나의 결의, 하나의 목적을 갖고 있는,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다. 적들 은 쉴 새 없이 말하게 되고, 우리는 혼란에 빠진 그들을 매장할 것이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그가 말하자 눈부시게 하얀 러닝셔츠와 밝은 오렌지색 핫팬츠를 입은 금발의 젊은 여자 선수가 큰 망치를 들고 중앙 통로를 통해 극장 안으로 달려온다. 그녀가 망치를 스크린에 던지자 스 크린은 폭발한다. 어둠 속에서 외침이 들린다. “1월 24일, 애플컴퓨터 가 매킨토시를 출시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왜 1984년이 소설 󰡔1984󰡕와 다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20년 이상이 흐른 지금 그 메시지는 여전히 강렬하게 남아 있다. 용감한 사람들의 손에 놓인 혁신적인 기술이 우리를 폭군으로부터 자 유롭게 할 것이다. 애플은 2004년 1월 맥월드 엑스포에서 1984년 광고 를 업데이트해서 큰 망치를 휘두르는 선수에게 아이팟과 이어폰을 착 용시키기도 했다. 2011년 튀니지혁명 이전에 아스트루발이라는 필명으로 알려진 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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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지 변호사이자 인권 운동가인 리아드 게르팔리는 몇 달 동안 비디오 공유 사이트인 데일리 모션에 광고를 합성해 업로드하면서, 튀니지 대 통령 벤 알리를 광고 화면 속의 ‘빅 브라더’로 대체했다. 그 선수가 망치 를 스크린에 던진 후 스크린은 하얗게 페이드 아웃되고 한 튀니지 소녀 가 눈을 감는 장면으로 넘어간다. 소녀가 마치 악몽에서 깬 것처럼 눈 을 뜨자 비디오는 끝이 난다. 게르팔리 비디오는 2002년 시작된 튀니지 시민운동 단체의 광범위 한 디지털 시민운동 캠페인의 일환이었는데, 이는 유튜브나 페이스북, 트위터가 세상에 나오기 전의 일이었다. 그들의 전략은 영리한 반정부 선전 활동으로 정부의 지속적인 선전 선동 흐름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응해 튀니지 정부는 아랍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검열 체계 를 발전시켰다. 튀니지인들의 디지털 권리를 조직적이고 빈번하게 침 해하는 것은 검열만이 아니었는데, 튀니지 디지털 감시 체계는 이집트 보다 구석구석 잘 갖춰져 있었다. 친정부 성향의 해커들이 공격적인 ‘서 비스 공격 거부’ 서비스 차단으로 반체제 사람들의 웹사이트를 공격했 다. 사무실과 가정에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 산하의 기업들은 네트워크를 거치는 모든 정보들을 추적하고 걸러내기 위해 ‘심층패킷 검사’라는 기술을 사용했다. 정부가 고용한 인터넷 고수들이 활동가들 의 컴퓨터를 해킹해서 정보를 훔치고, 가로챘으며, 심지어 비밀번호를 도용해 활동가들의 페이스북 계정을 차지하고, 이메일 정보를 바꿔 버 렸다. 혁명 후에 일부 반체제 인사와 정부 비판자들이 튀니지 정부 인수 위원회에 들어갔는데, 그중에는 벤 알리 정권 최후 몇 주 동안 디지털 시민운동으로 감옥에 갇혀 있었던 반체제 블로거 슬림 아마모우도 있 었다. 여기에서 자유 튀니지의 정보 네트워크가 어떤 형태를 갖춰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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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지 열띤 논쟁이 있었고, 새로운 정부가 수립된 후 일주일도 지나지 않 아 튀니지 국무 장관 사미 자오위는 품위를 해치거나 법 위반 요소나 분 란을 선동하는 웹사이트들을 정부가 폐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튀니 지 자유 언론 운동의 맹렬한 반발에 맞서 그는 트위터에 다음과 같이 응 수했다. “당신들이 틀렸다! 선진국들조차 자유를 위해 테러리스트의 사 이트를 차단하고 있다.” 5개월 후 튀니지 정부는 선동적이고 모욕적인 표현에 우려를 표명하며 다수의 페이스북 페이지와 그룹 다수를 폐쇄 했다. 아마모우는 좌절 속에 인수위원회에서 사퇴했다. 게르팔리는 그 의 사퇴에 대해 ‘세상 만물이 전에는 모두 단순했다. 한 쪽에서 좋은 사 람이면, 다른 쪽에서는 악당이 되었다. 오늘날에는 세상 모든 일이 더 미묘해졌다’1 라는 철학적인 코멘트를 남겼다. 냉전이 시작될 무렵, 조지 오웰은 중앙집권화된 권력, 이상주의적 사상 그리고 전자 미디어와 결합한 현대 산업 국가가 전체주의로 흐를 수 있음을 경고하며 󰡔1984󰡕를 출간했다. 인터넷 시대에서 자유를 위한 투 쟁은 20세기 이념 투쟁과는 너무 다르게 형성되고 있다. 오늘의 투쟁은 민주 대 독재,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 혹은 이념들 사이의 선명한 경쟁이 아니다. 새롭게, 서로 교차하는 권력관계는 인간 사회를 디지털 차원으 로 이끌고 있다. 인터넷은 정치적으로 경쟁하는 공간이고 정부와 시민 그리고 기업 사이의 새롭고 불안정한 권력관계를 구성한다. 자유와 통제 를 둘러싼 오늘날 전투는 동시다발적으로 민주 정부와 독재 정부, 경제 적, 이념적, 문화적 전선을 넘어 급속히 번지고 있다. 모바일, 네트워크, 정보통신 서비스 영역과 함께 애플, 구글, 페이 스북, 트위터 같은 기업들이 만든 인터넷 플랫폼과 서비스는 시민들에 게 권력을 부여했다. 우리 자신과 더불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부 의 행동은 인터넷 플랫폼과 서비스를 통해 우리가 정부에 도전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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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부여했지만, 인터넷은 정부 자체에도 그런 능력을 부여했다. 갈 수록 경찰, 군사, 정보기관이 인터넷의 속성을 이해하고 있으며, 컴퓨 터 공학 졸업자들을 채용할 가치를 깨닫고 있다. 독재 정부에서 민주 정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부가 그들의 권익을 위해서 어떻게 기술을 활용해야 하는지 빠르게 학습하고 있다. 애플의 드라마틱한 1984년 슈퍼볼 광고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충 성심과 이익은 사실상 분리되었다. 한편으로 고객이며 사용자들인, 정 치적 의미에서 시민들의 신뢰는 사업상 장기적 이익을 위해 활용되었 지만, 시민들 스스로도 신뢰와 가치의 범주에서 빈번히 갈등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기업들이 수익성 높은 시장에 접근하고, 이윤이 남는 사업을 하기 위해선 정부의 승인과 지원이 중요한 요인이며, 정부 또한 중요한 고객이다. 이상적인 세계에서 국가는 시민의 이익을 위해 서 봉사하며 그들의 권리가 보호될 수 있음을 확신시킨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이런 경우가 있다고 여길 만큼 우리는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 정치적 관점에서 봤을 때도, 확실히 독재 정부에서는 그럴 리가 없겠지 만, 민주 정부라고 해도 언제나 시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아 니다. 당면한 문제는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 이메일 서비스, 모바일, 에 스엔에스들이 상당히 교묘하고 빈번하게 의견을 주장하고 조직하는 우 리의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방식으로 누 군가가 정보에 접근하고 의사소통 수단을 조종한다면, 기업과 정부의 거래 관계가 불투명하다면, 권력의 속성을 이해하고 책임 권력을 세우 려는 우리의 역량은 조지 오웰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 미묘한 방 법으로 손상받을 것이다. 인터넷 시대에 진정한 시민 중심 사회-기술과 정부가 시민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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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봉사하는 세상-에서 가장 장기적 위협은 조지 오웰의 󰡔1984󰡕보다 는 조작된 안전, 오락, 물질적 풍족함을 위해 우리가 자발적이고 열정 적으로 복종하게 되는 앨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의 세상에 더 가 까워 보인다. 이러한 암울한 운명을 피하려면 정치적 혁신이 기술 혁신 을 따라잡아야 할 것이다.

거대기업 권력 2011년 4월 페이스북의 팔로 알토 본부에서 열린 타운 홀 미팅에서 버 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소셜 네트워크의 정치적 파워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2

역사적으로 시민들이 현실에 참여하고 정보화했을 때 건강한 민주주 의와 훌륭한 정치가 가능했습니다. 페이스북이 우리에게 확신을 주는 것은 절대로 일방적 소통 방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는 것에 덧붙여 여러분이 다시 의견을 말할 수 있으므로 우 리가 서로 대화하고 토론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타운 홀 미팅을 사랑합니다. 저는 이런 구성 형식과 페이스북 같은 회 사가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대화를 가능케 하는 이상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에 관심 있는 시민에게 이는 매우 흥미로운 언급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 발짝 물러나 좀 더 넓게 생각하면, 정치 활동과 정책 지지를 위해 대통령이 신뢰하고 있는 페이스북이 미국 민주주의를 위한 궁극 적 수단인지는 불분명하다. 미국의 민주주의 발전과 보다 책임 있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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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를 만드는 데 총합적으로 이익이 될까? 혹 정치인과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 사이의 상호 의존 관계가 좀 더 미묘한 대중 담론의 조작을 이끌 어 내지 않을까? 한편, 글로벌 이익을 추구하는 다른 큰 조직처럼 페이스북도 잠재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워싱턴과 다른 나라 수도의 사람들에게 영향 력을 행사하고 우호적인 친구들을 만드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2010년과 2011년, 페이스북은 워싱턴 주재 정책팀을 보강했다. 이들은 회사 이익에 위배된다고 여겨지는 규제에 대한 로비뿐 아니라 정치인 들의 지역구 유권자와 의사소통, 선거 운동의 핵심 수단으로 페이스북 을 통합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2011년 5월, 페이스북은 세계 주요 국가의 수도에 특사를 파견한다고 밝혔다. 이는 선거구와 행정 기관의 유력 인사와 정책 결정자에게 페이스북 사용을 장려하고 입법 활동과 규제 문제를 모니터하기 위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2011년 중반, 6억 명에 달하는 이용자들이 가입한 페이스북은 대다수 국가의 국민들보다 많은 수의 이용자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페이스북이 그러한 준 외교기구에 속하는 첫 번째 기업은 아니었다. 2005년 이후로 구글은 내 부적으로 외무 장관, 대사와 같은 직책으로 행정과 외교 분야의 관록 있 는 관료들을 임원 직급으로 채용하고 있다. 새로운 디지털 거대 권력들은 기존 국가 권력과 충돌하기 시작했 다. 잘 알려진 예는 구글과 중국 정부의 충돌이다.3 2010년 3월, 구글은 구글차이나의 검열을 중단한 채, 중국 컴퓨터 서버로부터 몇 달 전 시작 된 구글 지메일 서비스에 대한 지속적인 공격에 대응하며 중국 본토에 서 철수했다. 중국 정부는 그런 공격의 연관성이나 사전 교감에 대해 발뺌했으나, 보안 전문가들과 서방 외교관들은 믿기 어려울 정도의 정 교한 군사 정보 수준임을 알아챘다. 플러스 지메일은 중국 반체제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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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과 활동가들의 이메일 서비스가 되었고, 사업가, 컴퓨터 프로그래머, 교수 그리고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서비스가 되었다. 검열과 철수 에 대한 구글의 공개적인 저항에 대응해서 중국의 관영 신문인 ≪인민일 보≫는 사설에서 구글을 “미국의 인터넷 헤게모니를 수행하는 꼭두각시”라고 비난했다. 구글 관계자들 말대로 구글이 중국의 검열 명령과 법을 준수하지 않았다면 속이 후련했겠지만, 중국에서의 사업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 다. 구글은 검색과 관련된 사업 부문 외에 안드로이드 모바일 운영 시스 템 개발과 지원, 광고 판매, 플러스 리서치와 차세대 상품 개발로 사업권 을 재취득해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구글이 중국 사업을 유지하는 이유는 중국 고객들이 사업상 필요 나 비즈니스 혁신을 위해 구글 상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과 관계 가 있었다. 2010년 1/4분기 동안 중국에서 구글의 운명이 불확실할 때, 베이징과 상하이 시민들은 마치 가족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처럼 구글 건물 밖에 꽃을 가져다 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채팅방과 소셜 네트워크에 댓글을 남겼고,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거나 전 세계 최 신 과학 기술 정보들을 연구하면서 구글에 접속하지 않고는 불가능하 다고 기자들에게까지 말했다. 중국 내 외국인 사업가들과 투자자들의 구글에 대한 강한 의존과, 중국의 지식인, 전문가, 도시민 집단-특히 기술 과학 공동체 사이에서-이 가진 구글에 대한 호감은 그해에 중국 정부가 구글의 모든 서비스(지메일, 구글독스, 구글스콜라, 구글리더) 를 중단시키지 못한 가장 큰 이유였다. 일부 영향력 있는 중국 경제계 거물들은 구글에 대한 지나친 금지 명령이 단순히 중국 산업의 이익에만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면서 비판 했다. 경제계의 거물이며 중국 최초 브로드밴드 기업인 차이나 넷콤 설 립자 에드워드 톈은 사적인 자리에서 강하게 이런 견해를 표현하며,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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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강연에서도 “우리가 구글과 같은 거대 기업을 보유했을 때, 과연 우 리가 그 기술을 거부할 수 있을까?”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한 세 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중 하나인 구글을 때리는 것은 글로벌 시장 에서 경쟁하고 혁신해야 하는 중국 기업의 잠재력에 심각한 손상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인 블로거 마이클 안티는 그 당시 나에게 “구 글은 중국에서 미국보다 훨씬 인기가 많다”라며 냉소적인 언급을 했다. 어떤 중국인도 그들이 미국 주민이나 주주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구글 에는 많은 중국 주민들이 있다. 그들은 사실상 구글 서비스에 많은 부 분을 의존하는 사람들의 글로벌 공동체, 구글 제국(구글덤)의 디지털 거주자인 셈이다. 2010년 후반,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과 제러드 코헨-구글의 새 로운 정책 싱크탱크를 운영하기 위해 2010년 여름 미국 국무부 정책 보 좌관 자리를 막 떠났다-은 디지털로 연결된 세상에 관한 그들의 지정 학적 비전을 요약한 글을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했다.4 그들은 “민 주 정부는 변화를 꾀하는 민간과 공익 분야의 권한을 존중하고 동참해 야 할 의무를 지닌다”고 논술했으며, 인터넷 기업이 시민들에게 가져다 준 큰 가치를 억압하지 않도록 인터넷 기업에 대한 지나친 규제를 경고 했다. 많은 기업들 가운데 구글과 페이스북은 그들의 상품과 서비스로 새롭고 글로벌하게 연결된 공론의 장을 만들었던 단 두 개의 기업이었 고, 그러한 공론의 장은 민간 영역에서 크게 형성, 창조, 소유, 운영되고 있다. 현재 디지털 플랫폼, 서비스 그리고 장치들은 시민과 국가의 관 계를 포함하는 모든 종류의 인간관계를 연결하고 있다. 이러한 영역을 통제하고 형성하려는 투쟁은 전 세계에서 거세지고 있으며, 따라서 이 러한 투쟁은 이해관계 정도가 심해질수록 더욱 확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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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적이고 활기찬 민간 영역 비즈니스가 없었다면, 인터넷은 소 외되고, 억압받고, 불만이 팽배한 사람들에게 권한을 부여했던 것 같은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고, 현재의 모습과도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성공적인 비즈니스에는 민간 시민들이 기업을 세우고, 돈을 빌 리고 투자를 유치하고, 현실과 가상의 양 영역에서 그들의 발명과 재산 의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규제와 법적인 환경이 필요하다. 좀 더 제 한적인 규제, 사업, 정치 환경이 존재하는 다른 국가들이 아닌, 미국 사 업가들이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아마존을 창업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은 인터넷, 통신 기업들이 일반 시민들 의 일상 속에 너무나 많은 권한을 불투명하고 공공의 이익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행사하는 것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일례로, 독일과 한국 시민들은 길거리나 지역 인근의 모습을 아주 세세하게 보여 주는 구글 의 스트리트 뷰가 사생활을 침해한 것에 크게 분노했다. 2011년 4월, 연 구원들은 애플의 아이폰이 사용자의 세세한 위치 정보를 기록, 저장하 고 있다고 밝혔는데, 대부분 아이폰 사용자가 모르는 사이에 진행되었 던 일이다(애플은 나중에 이것을 아이폰 운영 소프트웨어의 버그였다 고 해명하고 오류를 수정했다). 넓은 범위의 개인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 필 수이고, 대부분의 이용자가 그러한 방법을 원한다고 기업들이 항변하 고 있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기업들이 대부분 시민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시민들이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게 된다면-의 정 도를 훨씬 뛰어넘는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엘리 페리저는 그의 저서 󰡔필터 버블󰡕에서 검색 엔진과 소셜 네트워크가 인터넷에서 우리가 검색하고 서로 소통하는 행위를 광고주의 이익을 위해 극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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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정치·경제적 선택을 위해 필요한 다양 한 범위의 뉴스와 견해를 얻는 것을 최소화시킨다고 비판했다.5 󰡔구글 의 배신󰡕에서 시바 바이디야나단은 특히 구글이 그가 명명한 기술제일 주의의 새로운 사상을 상징한다고 경고했는데, 이는 구글 서비스를 이 용하는 사람들이 기술에 맹목적 믿음을 갖도록 위험스럽게 부추기는 것이었다.6 바이디야나단은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우 리 삶에 영향에 미치는 기업 내부의 결정과 비상식적인 행위, 그리고 새 로운 기술에 대한 우리의 흥분이 우리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위 험을 감수하도록 만든다고 비판한다. 기업의 지정학적 권력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커져 왔는데, 이는 단지 인터넷 관련 기업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하버드대학교 조지프 나 이 교수는 󰡔미래 권력󰡕7에서 아이비엠과 같이 전체 일자리의 단지 1/4 정도만 미국 내에서 운영되며, 매출의 2/3 이상을 그들의 본거지인 미 국 밖에서 거둬들이는 거대 기업이 등장하게 되면서, 기존의 국가 권력 은 새롭게 떠오르는 민간 부문의 힘에 의해 움츠러들고 있다고 언급한 다.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 집단 100개 가운데 대략 절반 정도가 기업이 다. 만약 월마트가 국가라면 지디피 면에서 노르웨이, 베네수엘라, 아 랍에미리트에 앞서 세계 25위 경제 강국이다. 다른 부류의 초국가적인 기구들도 국가 권력에 도전하고 있다. 국 제연합,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과 같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설립된 국 제기구들은 세계의 역학 구도가 점점 많은 요인들에 좌지우지되자, 민 족 국가를 그들의 구성 원리로 활용하고 있다.8 다각적이해관계자책임 경영회의와 세계경제포럼과 같이 새롭게 설립된 기구들은 국가, 엔지 오, 기업들이 동등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공동의 참여자로서 어느 한 영 역의 정당성과 능력을 넘어 글로벌 위기의 해결을 전제로 만남을 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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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정부들이 금융과 무역, 외 교 정책 목표의 다양성을 형성하기 위해 다국적 기업들과 협의하는 것 은 현재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인권 감시, 글로벌워치, 옥스팜, 그린 피스 같은 국제 엔지오기구들이 영향력 있는 민주주의 국가들에 압력 을 행사하는 것뿐 아니라 정부들 스스로도 이러한 기구들과 조율의 필 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심지어 인권과 개발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방 안을 제시하고 있다. 기업과 엔지오들은 지금 기후 변화 문제부터 인터 넷 거버넌스의 곤란한 문제들까지 국제연합기구 회의에서 그들의 이익 과 당위성을 알리기 위해 로비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인터넷 관련 기업들은 제품을 만들고 파는 것뿐 아니라 시민들이 점점 더 의존하고 있는 디지털 공간을 제공하고 형성하기 때문에 더욱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이런 영향력 때문에 세계의 모든 정부들이 엄 격하게 기업들을 통제하려 한다. 권력 역학의 극적인 변화 속에서, 시 민의 이익에 봉사하고, 권리를 보호하는 민주 정치체제의 본래 목적을 되새기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적법성 정치와 지정학의 주요 조직 단위로서 민족 국가의 개념과 ‘통치 받는 자 들의 동의’에 뿌리를 둔 민족 국가 통치의 확장된 관념은 엄밀히 말해 20세기 후반까지 전 세계적인 규모로 확산되지 못했다. 800년 전 다수 영국 귀족들은 왕의 무소불위 권력이 더 이상 그들의 권익을 지켜주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귀족들은 그들이 보유하고 있 는 경제, 군사적 권력을 자각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처음으로 주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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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법성의 현대적 개념이 싹트게 됐다. 1215년 러니미드 들판에서 자의 적인 감금과 재산의 징발, 그들 권리에 대한 무분별한 침해에 염증을 느 낀 영국 귀족들은 존 왕을 압박해서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에 서명하 게 했다. 이 위대한 헌장은 왕조차도 법의 테두리에 속해야 함을 인정 함과 동시에 법적 권리와 정치적 주권에 관한 강렬한 일련의 개념들을 촉발시켰다. 주권의 적법성은 왕의 절대적 권위와 압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 며, 심지어 왕조차도 법에 순종해야 한다는 관념을 숭배했던 고대 그리 스 이후에 마그나 카르타는 서구 세계에서 그러한 이념을 실현한 첫 번 째 시도였다. 귀족들은 혁명가는커녕 인기 영합주의자도 아니었지만 -그들의 목적은 엘리트 지배 계층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었다-그럼 에도 불구하고 마그나 카르타는 국민에 대한 법의 통치를 근거로 한 현 대 민족 국가의 개념을 세운 기초 작업이었다.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에 의해 유럽에서 현대 국가의 주권이 형성 되기까지 4세기 이상이 걸렸다. 홉스에서 로크, 루소에 이르는 정치 사 상가들은 ‘통치 받는 자들의 동의’라는 개념을 확대 발전시켰다. 1647 년 영국 혁명 기간 동안 스스로 ‘수평파’라 부르는 평민들의 초라한 단 체가 ‘모든 시민들은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갖는다’고 주장한 권리장전 을 내놓았다. 여기에는 모든 법은 빈부귀천을 떠나 모든 사람들을 동등 하게 존중해야 하며, 의회는 국민 생활의 안락함과 안전을 명백하게 해 칠 수 있는 법을 제정하면 안 된다는 내용을 담았다. 수평파들은 템스 강변의 퍼트니교회에서 찰스 1세에 대항해서 동 맹자들과 회의를 했다. 실제 평민들이 주권과 동의에 대한 정치적 담론 을 영국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표현으로 자유롭게 토론했다. 비록 실패 로 끝났지만, 그들의 사상은 결국엔 미국 독립선언과 미국 권리장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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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영향을 주었고, 영국 현대 의회주의의 시금석이 됐다. 마그나 카르 타는 현대 헌법의 시조이고, 수평파는 전 세계적인 인권 투쟁과 민주주 의 운동의 선조다. 이상 사회를 만들려는 시민들의 분투가 결코 멈추지 않게 되면서, 수평파들은 오늘날 민주주의에서 시민의 자유를 위한 현 대적 투쟁의 선구자가 되었다. 인터넷은 시민들이 민주적 통치를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엄 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고, 활동가들이 불의를 고발하거나 심지어 독 재자를 타도할 때도 상당히 효과적인 수단임을 입증하고 있다. 인터넷 이 주권과 동의의 문제를 다루는 대중 담론을 위한 글로벌 플랫폼을 제 공하지만, 그러한 개념들은 디지털 코먼스 내부에서 이의가 제기되고 있고 심지어 위태한 상태에 놓이기도 한다. 2009년 인터넷 석학 마뉴엘 카스텔은 󰡔커뮤니케이션 파워󰡕9에서 지난 10년 동안 전 세계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사회 운동의 성과와 인터 넷으로 무장한 시민운동에 대해 기술하면서, 반체제 조직들이 많은 국 가의 정치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아울러 다음과 같은 경고도 남기고 있다. “디지털로 무장한 시민들이 어쩌면 중요한 승리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승리는 필연적으로 영구 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네트워크 사회에서 권력을 움켜쥔 자는 상업적, 정치적 네트워크 안에서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막기 위해 사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카스텔의 경고를 잘 새겨들어야 한다. 인터넷이 성장하고 우리의 삶과 점점 얽히면서,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유지하기 위해 시민 들은 점점 인터넷에 의존하고 있다. 이 의존에서 문제점은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권력 작용은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아직 디지털 영역에서 권 력 작용은 명확한 이해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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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쟁점은, 권력은 누군가 감시하지 않을 때, 항상 권력을 사용할 기회를 가진 사람 혹은 조직이 남용한다는 것이다. 베스트팔렌 조약1)이 작성된 후 300년이 넘게 흐르고, 세계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가 세워진 지 200년이 훌쩍 넘으면서, 우리는 국가 권력이 어떻게 사용되 고, 헌법과 선거, 법, 국제 조약에 의해 어떻게 제한되는지 이성적으로 이해하게 됐다. 그러나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초국가적인 디지털 플랫폼과 조직들 이 어떻게 권력을 차지하고 사용하는지-권력이 누구에게 돌아가며, 그들이 과연 책임질 만한 사람들인지,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선행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권력을 제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많은 인터넷 통신 기업은 시민들이 정부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도록 강력한 플랫폼을 만들었다. 그러나 범세계적으로 연결된 공간 으로 기업의 존재 가치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기업의 권력을 제한할 수 있는 명확한 모델은 아직 없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흥분 속에서, 시민으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기 본 전제는 정부와 시장을 점유한 힘 있는 기업, 그리고 다양한 이익 집 단은 권력을 잡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해 디지털 네트워크를 사용할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 존재하는 조직과 메 커니즘이 범세계적으로 연결된 디지털 네트워크 속에서 권력 남용을 적절하게 제한하지 못한다면 정치 혁신이 반드시 기술 혁신을 따라잡 아야 한다.

1) 개신교와 카톨릭의 갈등으로 독일(신성로마제국)에서 일어난 30년전쟁(1618~1648)

을 종결하기 위한 평화 조약. 이 조약으로 중부 유럽에 국가 주권 개념의 새로운 질서가 자리 잡았다. 즉 개신교 국가들의 생존 기틀이 마련되었고, 프로이센 왕국이 역사에 등 장했다-역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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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결코 점잖게 요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발전하지 않았 다. 현실 세계에서 민주주의를 건설하고 지키는 일은 끊임없는 투쟁으 로 남아 있다. 온라인에서 서로 연결된 사람들(네티즌)의 동의에 기반 을 둔 인권 보호와 정부, 기업 양쪽의 권력 남용을 제한할 수 있는, 범세 계적으로 연결된 디지털 세상을 위한 거버넌스 구조를 계획하고 실행 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방향의 첫 단계는 정부와 기업 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힘 있 는 세력, 즉 디지털 코먼스2)를 인정하고 보호하고 육성하는 것이다.

2) 디지털 저작물을 호스팅하는 저장소의 개념으로 버클리전자출판이 협회, 대학, 연구

소, 공공 도서관의 연구 자료들을 공유하면서 시작되었다. 인터넷의 개방과 공유라는 이 념 아래 개인과 단체의 디지털 콘텐트를 자유롭게 공유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형태다. 위키피디아는 디지털 코먼스의 가장 대표적인 산물이다-역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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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디지털 코먼스의 등장

2007년 9월 어느 토요일 아침, 대부분 30대 이하인 100여 명이 중국 이 공계 명문 대학인 칭화대학교 강당에 워드캠프라는 일일 회합을 위해 모여들고 있었다. 여기에 모인 대다수 사람들은 스물네 살의 대학 중퇴 자인 텍사스 출신 매트 멀렌웨그를 만나러 온 것이었다. 2003년 멀렌웨그는 ‘워드프레스’라 불리는 공개 소스 블로그 소프 트웨어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기업에서 제공하는 상업적인 블로그 소 프트웨어와는 달리, 워드프레스는 소프트웨어 코드를 수정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기술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든지 환영했다. 그 런 방법으로 사람들은 원 개발자도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그들의 구체 적 필요에 맞는 워드프레스를 만들어 갈 수 있었다. 무료 소프트웨어는 빠르게 그 특성과 기능을 전파시키는 개발자들의 글로벌 공동체를 형 성했고, 그로 인해 다양한 범위의 온라인 퍼블리싱(게시) 목적으로 사 용할 수 있었다.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워드프레스는 글로벌보이스에 서부터 케냐의 시민 미디어 사이트 ‘우샤이디’, 일부 아랍 블로그 공동 체 사이트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웹사이트에 활력을 주었으며, 중국의 진보적인 블로거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워드프레스의 열성 팬이며, 베이징에서 열린 워드캠프 회합에서 멀렌웨그와 사진 찍기를 원했던 스물여덟 살의 저우 슈궝은 전직 야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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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에서 졸라라는 필명을 쓰는 블로거로 변신했다. 저우 슈궝은 시민 기자로서 중국을 여행하면서 중국의 인터넷 실상에 관한 논쟁적인 글 을 썼다. 2006년 충칭의 한 커플과 지역 부동산 개발업자 사이에서 일 어난 극적인 대치에 관한 그의 기사는 그를 일약 스타 블로거로 만들었 지만, 중국 내 미디어 보도 금지 규정을 어기게 된다. 2007년 중국 당국 은 동북 지역의 시위를 은폐하려는 의도로 그를 감금하고 그를 고향 창 샤로 돌려보냈다. 2008년 그는 쓰촨에 지진이 일어났을 때 상황을 기록 하고자 현장을 방문했고, 그 이후 방문한 구이저우 지방의 웽안에서는 지역 당 간부와 그 친척들의 권력 남용에 분노한 시민들의 폭동을 접할 수 있었다. 그는 올림픽이 열리는 베이징으로 가려 했으나 공안 당국은 그를 고향에 묶어두었다. 그러나 저우는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그의 정 신적 지주인 멀렌웨그를 만나기 위해 베이징에 갔다. 별다른 온라인 게시 수단이 없던 졸라(저우 슈궝)는 워드프레스에 그의 블로그를 운영했다. 중국 블로거 2억 명 가운데 대다수는 중국 기 업들의 호스팅 서비스를 이용했다. 블로그의 기술적 문제에 관한 걱정 을 더는 대가로 중국 호스팅 업체들은 이용자들의 온라인 업로드를 통 제할 수 있었고, 중국 당국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엄격하게 검열 했다. 졸라는 일부 이런 서비스 플랫폼에 블로깅하려 했지만, 그의 글 은 삭제되었다. 이후 그는 중국 호스팅 업체로부터 서버를 임대해, 당 국의 통제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하며 워드프레스를 이용해서 블로그를 시작했다. 그러나 공안 당국으로부터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에 대한 검열을 요구 받은 중국 일부 웹 호스팅 업체들은 그의 사이트를 폐쇄했 다. 결국 졸라는 워드프레스 블로그를 사용하기 위해서 해외 웹 호스팅 서버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졸라는 돈이 거의 없었기에, 그를 도와주 는 사람들로부터 무료 호스팅 서비스를 제공받았다. 워드프레스도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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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 소프트웨어이기에 졸라는 특별한 기술적 특성을 지닌 워드프레스의 글로벌 개발자 공동체 회원들에게 도움을 받아 블로그를 꾸밀 수 있었 다. 이로 인해 그의 독자들이 안전하게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었고, 익 명으로 댓글을 남길 수도 있었다. 워드프레스와 이를 이용하고 발전시켰던 블로거의 공동체는 나눔 경제 혹은 디지털 코먼스로 알려진 커다란 현상의 일부분이었다. 인터 넷은 혁명적이고 파괴적이기에 이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인터넷에 서 시민의 힘을 확신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강력한 디지털 코먼스는 결코 기업과 국가의 권력에 압도되지 않는다. 1800년대 초반 미국이 여전히 새로운 정치적 실험을 하고 있을 때,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그의 저명한 책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실용적 민주주의를 위한 중요한 요소로 활기찬 시민 사회의 존재를 꼽았다. 그 는 공동체 삶에서 시민들의 활기찬 참여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사회 의 모든 계층과 직업을 망라한 시민들이 공동체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에 단호히 맞서며, 모든 사람의 삶의 향상과 문제 해결을 위해 조직을 만들고 아이디어를 공유 한다고 서술했다. 디지털 코먼스는 토크빌이 언급한 시민사회처럼 가상적 공간에서 의 동일체인데, 그 안에서 시민들은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권리를 보 호받기 위해 지지를 결집한다. 기본적인 기술 표준과 무료 공개 소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의 집합과 더불어 다양한 범위의 디지털 제작물을 포함한 디지털 코먼스는 이상적으로 정부와 민간의 양 영역에서 긍정 적이고 공생적인 관계로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이 권력을 남용하게 될 때, 코먼스는 균형자 역할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시민들 은 그들의 의견을 표현하고 조직을 결성하는 데 필요한 공간을 개척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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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고, 그들의 권익 또한 보호받는다.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의 요차이 벤클러 교수는 󰡔네트워크의 부󰡕1 에서 인터넷을 개인과 비독점적인 방식의 느슨한 정보 생산의 연합 그 리고 코먼스에 기반을 둔 정보 생산의 인큐베이터와 생산품으로 묘사 했다. 거대한 상업적 가치와 정치적 파워를 지닌 코먼스의 성과가 없었 다면 인터넷이나 월드와이드웹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질적 장 벽과 설립 비용이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에 디지털 코먼스는 저작물을 자유롭게 공유하기 원했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디지털 미디어 콘 텐트와 소프트웨어, 기술 혁신에 힘입어 끊임없이 성장하는 거대한 우 주가 되고 있다.

테크니컬 코먼스 수백만 프로그래머와 기술자들-상업적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 서 일하는 사람들과 공개 소스와 무료 소프트웨어를 보급하는 공동체 와 협업하는 사람들을 포함한-은 20억 명 이상이 이용하는 전 세계적 으로 연결되는 수단을 만들었다. 따라서 그러한 기술 표준은 인터넷과 월드와이드웹을 기반으로 디지털 코먼스의 핵심이 되며, 저작권이나 상표권도 없고 모두에게 무료로 공개된다. 인터넷 고유의 가치와 영향력은 전 세계적인 상호작용성과 탈 중 심주의에서 비롯된다. 모든 사람들이 네트워크에 참여할 수 있고, 어느 누구라도 어떤 종류의 접속 코드, 라이선스나 허가 없이 인터넷 위에 저 작물이나 서비스, 플랫폼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저작물을 통해 사업 을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비영리적인 방식으로 저작물을 공유해 자 유롭게 이용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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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술 규약은 다른 종류의 컴퓨터나 소프트웨어가 네트워크를 가로질러 서로 소통하게 했다. 그것이 바로 네트워크 전송 프로토콜이 다. 이러한 통신 규약은 다양한 연구소와 기업에서 일하는 기술자들이 개발했는데, 그들은 인터넷의 폭넓은 채택과 활용을 위해 통신 규약이 공개적으로 공유되는 것에 동의했다. 만약 그들이 그러한 발명을 특허 로 제한하고 네트워크 전송 프로토콜 표준을 컴퓨터나 소프트웨어, 네 트워크 장비 운영에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 라이선스 비용을 부과하며 판매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상상해 보라. 기술자들이 네트워크 전송 프로토콜을 디지털 코먼스의 일부분인 세상과 자유롭게 공유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인터넷의 모습은 달라졌을 것이다. 인터넷이 세상에 나온 후 20년 뒤에 발명된 월드와이드웹2도 유사 하게 디지털 코먼스에 빚을 지고 있다. 우리가 부르는 웹도 인터넷 익스 플로러와 사파리, 파이어폭스와 같은 웹브라우저를 통해 접속된 상호 연결된 웹사이트 공간이었다. 어디에서 만들어지고, 어떤 종류의 컴퓨 터 시스템이 호스팅 되는가에 관계없이 모든 웹사이트들은 에이치티엠 엘로 불리는 공통의 컴퓨터 언어로 어디에서든지 내용을 읽을 수 있게 됐다. 그 웹에서 오늘날 지구상 대다수 사람들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 다. 우리는 영국인 팀 버너스 리 경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는 1990년 스 위스에 있는 유럽원자력연구소 분자물리학 연구실에서 연구원들의 위 치 파악과 각자의 데이터 공유를 쉽게 하기 위해 월드와이드웹이라 불 리는 단순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버너스 리 경은 그가 만든 웹 어드레스 시스템과 에이치티엠엘 언어 사용에 요금을 부과하거나 특허 를 출원하려 하지 않고, 대신 그것들을 공공 도메인으로 풀어놓았다. 그 가 개발한 언어를 이용해 웹사이트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라이선스 비용 을 요구했다면 웹은 진정으로 월드와이드(세계적인)가 되지 못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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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비록 디지털 코먼스가 비상업적으로 개발된 기술과 통신 규약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구글 같은 인터넷 기업들은 시작 단계부터 디지털 코먼스와 중복되는 기능과 공생 관계를 갖고 있었다. 네트워크 기술자 와 컴퓨터 과학자들이 코먼스 활성화에 기여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이 런 비즈니스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시스코, 미국전신 전화회사, 인텔에서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에 이르기까지 대 부분 거대 인터넷 기업들은 공개 표준 기구들의 업무(국제인터넷표준 화기구), 월드와이드웹 컨소시엄과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 지역 인 터넷 레지스트리 같은 글로벌 어드레스와 도메인 주소 시스템을 유지 하는 데 필요한 조직의 운영에 참여와 지지를 보내고 있다. 지구상에서 거의 20억 명이 사용하고 있으며, 갈수록 복잡해지는 인터넷을 운영하 기 위해 이러한 기구들은 필수적인 표준을 유지, 개선하고, 기능을 추 가하는 일을 하지만, 이런 기구들을 운영하는 국가는 하나도 없다. 중국, 이란, 브라질과 일부 국가들은 이런 기구들과 운영 단체를 장 악하고자 국제연합에 로비했지만 미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이 반대 입장을 밝혔으며, 인권 단체들과 다수의 주요 서구 인터넷 기업들도 이 에 동참했다. 구글도 그 문제에 대해 특별히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전 세계 대다수 인터넷 사용자들은 점점 강도가 높아지는 인터넷 거버넌 스의 미래를 둘러싼 다툼과 미래의 정치적 자유와 연관된 지정학적 분 란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디지털 코먼스의 성장과 확산에서 핵심 요소인 무료 소프트웨어와 공개 소스 소프트웨어 공동체에서는 지금 디지털 코먼스를 기반으로 다량의 상업적, 비상업적 활동들이 이뤄지고 있다. 1989년 컴퓨터 과학 자 리처드 스톨만은 일반 공중 사용허가서를 만들었다.3 누구라도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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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으로 프로그램 복제물과 그 파생물을 이용한다는 전제 아래 지일 반 공중 사용허가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사용할 권한을 부여했고,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이 라이선스를 통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기 능 개선 작업을 하는 다른 개발자들과 컴퓨터 코드를 공유할 수 있게 됐 다. 프로그램의 수정과 향상을 위한 작업은 코먼스 몫으로 남겨졌다. 전 세계 개발자들이 신뢰하고 개선에 참여하는 리눅스 운영 시스 템의 핵심(커널)을 만든 핀란드 컴퓨터 과학자 리누스 토발즈는 지피엘 소프트웨어 라이선스를 세계 무대로 이끌었다. 2000년 아이비엠은 서 비스와 컨설팅 사업 주력 항목으로 리눅스를 채택했다. 2008년까지 전 세계 컴퓨터 서버의 60퍼센트는 리눅스 체제로 운영되었으며, 마이크 로소프트의 윈도 플랫폼이 40퍼센트를 차지했다.4 아파치라 불리는 공 개 소스 웹 서버 소프트웨어는 모든 상업적인 서버들을 제치며 다른 어 떤 서버보다 많이 사용되었다. 드루팔과 워드프레스 같은 개발자들의 글로벌 공동체가 개발한 공개 소스 웹사이트 디자인 관리 소프트웨어 는 수백만 소규모 기업의 웹사이트로 운영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백만 이 넘는 블로그와 비영리 웹사이트 운영에 사용되기도 했다. 인권 단체 들, 소규모 뉴스 미디어 회사, 미디어 공동체, 전 세계 활동가들이 공개 소스 소프트웨어의 열성 사용자다. 이집트와 튀니지 정부를 무너뜨리 는 데 일조했던 디지털 활동가들은 공개 소스 소프트웨어의 열성 사용 자였고, 어떤 경우에는 기여자가 되기도 했다. 공개 소스 소프트웨어가 원래부터 반기업적인 것은 아니었다. 몇 몇 공개 소스 프로젝트와 공동체는 각자 작업을 진행했고, 심지어 기업 들과 직접 경쟁하기도 했지만, 많은 작업들이 사업 성과를 위한 공생관 계 속에서 이루어졌다. 구글은 디지털 코먼스를 주로 이용하고 기여했 으며, 페이스북도 마찬가지였다. 구글이 개발한 안드로이드 모바일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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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시스템은 리눅스 기반 위에 운영되었고, 그 개방성은 안드로이드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빠르게 주도권을 장악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리눅스재단의 2010년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이래 약 6100명의 개인 개발자와 600개 기업들이 리눅스 커널에 기여해 왔다.5 2010년 12월, 로이터통신은 리눅스 코드 기반 개발에서 70퍼센트 이상의 기여는 “더 나은 소프트웨어 개발로 사업상 이익을 바라는 회사 로부터 대가를 지불 받는 개발자들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보도했다. 2009년 연설에서 리눅스재단의 이사인 짐 젬린은 지구상 모든 인터넷 사용자는 어떤 면에서 리눅스 사용자라고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왜냐 하면 오늘날 공개 소스 운영 시스템으로부터 혜택을 받거나 의존하지 않는 디지털 저작물이나 서비스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6

행동주의 튀니지와 이집트 정부를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디지털 활 동가들이 불쑥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페이스북 과 트위터가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부터 그들은 다양한 플랫폼, 서비스, 소프트웨어-기업들이 만든 것과 디지털 활동가 스스로 제작하거나 비 상업적으로 다른 이들이 제작한 것 포함-를 사용해서 상호 연결된 온 라인과 오프라인 운동을 시작했다. 그들 또한 디지털 코먼스의 공헌자 이자 수혜자가 되었다. 리아드 게르팔리와 슬림 아마모우, 이에 더하여 네덜란드로 망명했 던 튀니지 반체제 운동가 사미 벤 가르비아를 포함한 다수의 사람이 온라 인 행동주의를 시작한 것은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의 첫 번 째 프로젝트는 온라인 잡지를 발행하는 일이었다. 튀니지 내에서 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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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거나 정보를 확산하는 것을 금지 당한 튀니지 반체제 인사들과 활동 가들은 정보기술 분야의 비전문가들이지만 글을 온라인 매거진에 올리 고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곤 했다. 2004년 그들은 워드프레스를 사용해서 나와트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는데, 2010년 후반과 2011년의 ‘재스민혁 명’1) 기간에 행동주의의 정보 허브 역할로 그 성과를 인정받았다. 2004년 설립 후 5년 동안 튀니지 인권 상황에 관한 기사와 사진, 영상을 위한 허브로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인 나와트는 검열 정보와 검열과 감시를 피하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줌으로써 벤 알리 정권의 분 노를 자아냈다. 나와트 기사들은 크리에이티브 코먼스의 라이선스-일 반 공중 라이선스 공개 소스 소프트웨어 시스템에 영향 받은 좀 더 오픈 된 무료 저작권 시스템-로 온라인으로 출판(퍼블리싱) 되었다. 크리에 이티브 코먼스는 원 제작 소스로부터 인증을 받으면 무료 복제와 공유 가 가능한 시스템이다. 이러한 종류의 라이선스는 경제적 이익이 목적 이 아닌 사회단체나 활동가들이 좀 더 많은 지지자를 끌어 모으는 데 유 익하다. 크리에이티브 코먼스 라이선스는 가능하면 폭넓게 서로 의견을 공유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콘텐트의 사용과 관련해 사람들이 피소 당할 우려가 없도록 활동가들의 콘텐트를 복제하고 재인용하도록 권장 한다.7 실리콘 밸리와 그 외 지역에서 신생 기업들이 뉴미디어 도구를 개 발하게 되자, 나와트 팀은 그러한 미디어 도구에 빠르게 적응하며 그들 의 활동을 이어갔다. 예를 들면, 구글이 구글맵을 출시한 지 얼마 지나 지 않아 사미 벤 가르비아는 튀니지 교도소 지도를 만들어 얼마나 많은

1) 2010년 12월, 23년간의 벤 알리 독재 정권의 부패에 항의해 튀니지에서 일어난 민주

주의 요구 시위. 튀니지 국화인 재스민에서 혁명 이름이 비롯됐다-역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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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범들이 튀니지 내에 수용되어 있는지를 극적이고 비주얼한 방법으 로 표현해 큰 관심을 모았다. 나와트의 많은 콘텐트가 유튜브, 플리커, 페이스북를 통해 재등록되고 트위터에서 활성화하고 있긴 하지만, 나 와트의 활동가들은 모든 콘텐트를 저장 관리하고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그들 소유의 플랫폼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찍이 깨닫고 있었다. 한 때 나와트의 유튜브 채널이 유튜브 관리자에 의해 막힌 적이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유튜브 내부의 누군가가 내부 고발 시스템을 통해 나와트의 콘텐트가 유튜브 이용 약관을 위배했다며 불만을 제기했기 때문이었다. 유사한 불만들이 페이스북 나와트 팀 회원들의 계정을 통 해 빈번하게 제기되었다. 페이스북 이용 약관은 실명 계정을 사용하도 록 했기에 튀니지 정치범 수용소에 갇히기를 바라지 않는, 필명을 선호 하는 튀니지 반체제 활동가들에게는 상당히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몇 년이 지난 후, 튀니지 활동가들은 아랍 세계의 블로거와 활동가 들과 끈끈한 유대를 맺게 되었다. 특히 이집트 출신 고학력 블로거들은 얼리어답터 공동체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2004년까지 이집트 블로거 들은 당국에 체포된 블로거들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무바라크 정권 의 공안 당국에 의한 충격적인 고문 행위도 수집하고 널리 알렸다. 많 은 블로거들이 길거리 시위뿐만 아니라 온라인에 글을 올려도 체포되 었다. 동료가 체포되었을 때 다른 블로거들은 이용 가능한 모든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현재 발생하는 사건들을 일반 대중에게 알렸고, 체포와 활동에 대한 정보를 아랍어 블로그로 확산시켰다. 온라인 사회 운동의 초창기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많은 활동가들 가운데 한 명인 알라 압드 엘‐파타는 2004년 같은 블로거인 그의 부인 과 함께 공개 소스 출판 소프트웨어인 드루팔을 사용해 이집트 정치 블 로거들의 글을 모은 웹사이트를 열었다. 그런 블로그 모음 웹사이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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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 사람들처럼 소셜 네트워크나 웹 저작 도구를 이용해 정치적 목 적을 달성하려는 사람들의 공동체 형성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2006년 즈음에 이집트의 젊은 인터넷 사용자들 가운데 비판적 다수가 페이스 북을 사용하고 있었다. 젊은 활동가 그룹들은 페이스북이 체포된 친구 들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는 효과적인 방법임은 물론, 길거리 시위를 조 직하는 데 유용한 수단임을 인지하고 있었는데, 그 이후의 사건은 역사 가 되었다. 2010년 칼레드 사이드라는 젊은 청년이 이집트 경찰에 의해 살해당한 후, 구글의 임원인 와엘 고님은 차명 아이디를 사용해 ‘우리는 칼레드 사이드다’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다. 그 페이지는 2010 년 고문을 반대하는 길거리 시위를 조직하는 데 허브 역할을 했고, 2011 년 1월 25일 카이로 타흐리르광장에서 첫 번째 시위를 조직했는데, 그 이후 사건들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2011년 아랍의 봄에 앞서 조직된 저항 운동은 인터넷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튀니지와 이집트의 독재자를 끌어내렸고, 주변 나라들의 저항 시위에도 큰 영감을 주었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블로거들은 범아 랍 블로거 콘퍼런스 두 개를 조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8년 결성된 아랍 컴퓨터 전문가 모임은 이 지역에서 공동으로 공개 소스 소 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 그룹과 웹 디 자이너 그룹이 함께했다. 그들이 공동 작업을 통해 수정, 보완, 변경한 공개 소스 소프트웨어는 매뉴얼과 소프트웨어 사용 환경(인터페이스) 을 아랍어로 번역해서 아랍어 권역의 사회 운동에 특히 유용하게 활용 되었다. 아랍의 정보통신 전문가들은 미국과 유럽, 아시아의 개발자 공 동체와도 유대를 맺었는데,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이런 유대 관계는 튀 니지와 이집트에서 정치적 긴장 관계가 생기면서 긍정적으로 활용되었 다. 이 지역의 웹사이트들이 저항 운동을 막으려는 정부에 해킹 당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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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되자, 활동가들은 반 검열과 익명성을 보장하는 공개 소스 소프트 웨어의 글로벌 개발자 공동체와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았다. 핵티비스 트라는 해커 활동가들의 국제 공동체는 즉각 도움을 주기도 했다. 나와트가 이전부터 전 세계 해커 활동가와 맺어 왔던 관계로 미뤄 볼 때, 나와트를 운영하는 튀니지 활동가들이 위키리크스를 통해 벤 알 리 정권과 관련한 미국 외교 전문을 입수한 것은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그들이 개설한 튀니리크스 웹사이트에 올린 폭로에는 벤 알리 정권을 부패하고 무능력하다고 여기는 미국 외교관들의 시각이 포함되었는데, 벤 알리 정권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에 호의적이었음은 굳이 밝히 지 않았다. 외교관, 인권 단체, 언론인들은 나와트와 튀니리크스가 확 산한 정보를 신뢰했는데, 그들은 뒤에 벤 알리 정권을 축출하는 데 튀니 지혁명(재스민혁명)이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8 정권의 실상이 공 개된 후 진실이 밝혀졌으며, 시디 부지드(튀니지의 도시)의 한 마을에 서 일어난 절망한 어느 채소 장수의 분신자살 사건이 알려지면서 거리 시위가 절정에 치달았다. 아랍 디지털 코먼스의 등장과, 폭넓은 글로벌 코먼스와 아랍 디지 털 코먼스의 자연스러운 유대 관계는 뉴욕대학교의 정보 사회 이론가 인 클레이 셔키가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코먼스를 이용하고 공헌하 는지를 묘사한 영향력 있는 책 두 권에 교과서적인 사례로 드러난다.9 그는 인터넷이 공공 의식을 가진 시민들로 하여금 원인을 한데 모으고 변화를 추진하는 것을 더욱 용이하게 만들었다고 논증하면서, 자원 봉 사자와 개인들이 공동 제작하는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를 이러 한 현상의 가장 최초의, 그리고 극적인 예의 하나로 들었다. 블로깅, 트 위팅, 팟캐스팅과 사진과 영상을 만들어 플리커나 유튜브에 올리는 것 도 거의 비용 없이 가능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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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사회적 생산물은 어느 한쪽의 정치적 영역이나 특별한 가 치 체계에 국한하지 않는다. 유튜브의 전염성 강한 가정용 영상물이 젊 은 사람들을 움직여 2008년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를 지지하는 선 거 유세에 자원 봉사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미 공화당이 이끈 티파 티2)에서도 유사한 방법과 활동으로 2010년 하원 선거에서 공화당이 승 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10 유출된 미국 외교 문서의 배포 논란으 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도 디지털 코 먼스의 일부분이다.

권력 균형 디지털 코먼스가 아랍의 봄을 가져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불 구하고, 어떻게 아랍의 민주주의에 기여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명확 한 사실은 소프트웨어 코드나 기술적 인프라가 아랍 국가의 시민들과 새 정부-법, 헌법, 조직 기구, 정치적 프로세스와 함께-사이의 관계 를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의 로렌스 레식 교수는 10여 년 전 그의 독창 적인 책 󰡔사이버 공간의 법이론󰡕11에서 “소프트웨어 코드와 기술적인 표준은 법의 새로운 형태라는 실용적인 목적을 갖는데, 왜냐하면 그것 은 법과 같이 사람들의 행동 양식을 규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 영향은 거대했다. 인터넷 이전 시대 최소한 ‘통치 받는 자들의 동의’ 를 반영하는 민주주의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책임지는 정부의 최우선 2) 1773년 영국 정부의 지나친 세금 징수에 항의한 보스턴 차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시민

사회 운동. 오바마 행정부의 의료 개혁과 연방 지출 확대를 반대했다. 개인의 자유와 작 은 정부, 미국의 역사와 전통적 가치를 존중한다-역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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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는 권위와 국민의 복종을 이끌어 내는 공권력을 기반으로 현실 세 계의 국민들을 통치하는 법체계를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터 넷 시대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이어주고 관리하는 소프트웨어 코드 와 기술적 표준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다. 이런 식으로 시민들이 정보를 생성, 접근, 확산시키고 사상과 의견 을 표현하도록 하는 권한은 소프트웨어 코드를 작성하고, 인터넷과 통 신 하드웨어를 만들고, 상호 정보를 교환하는 네트워크를 개설하는 사 람들에게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기업 서비스 분야에 일하는 사람들이 나 코먼스에 일정 정도 공헌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권한은 지금 우선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디지털 코먼스의 공헌자와 관리자, 그리고 지지자로 활동하는 사 람들이 인터넷 시민 신분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일부는 이를 ‘네티즌 정 신’이라 부르기도 한다. 데이비드 볼리어는 󰡔바이러스성 소용돌이󰡕12를 통해 미국에서 디지털 코먼스의 성장을 기술하며, 디지털 코먼스를 만 들고 성장에 기여하는 사람들을 ‘커모너스’라 칭하면서 그들이 새로운 형태의 민주적 정치를 고안했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유럽의 많은 기술 전문가들은 현재 정부와 법이 기술 변화에 가망 없이 뒤처져 있기 때문 에, 새로이 등장한 디지털 코먼스는 태생적으로 현재 존재하는 의회 민 주주의보다 더욱 민주적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컴퓨터 프로그래머, 다 양한 범위의 얼리어답터, 해커, 폭넓은 정치, 경제적 의제를 가진 블로 거들이 진두지휘하는 디지털 시민 사회가 인터넷을 사용하는 전 세계 사람들의 권익에 반드시 봉사한다는 추론이 과연 논리적일까? 네트워 크의 미래를 결정하는 사람들이 가진 생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나 서는 것은 누구의 권리인가? 볼리어와 서구의 많은 기술 전문가들의 낙관주의에도 상관없이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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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가 일종의 근원적인 변신을 하지 않는다면, 전 세계 네티즌들이 자연 스럽게 힘을 모아 공공의 선과 온건하지만 대중적이지 않은 의견을 가 진 사람들과 힘없는 소수 집단의 권리를 위해 역할을 한다는 것은 상상 할 수 없을 것이다. 인터넷과 코먼스의 도움을 통해 다량의 범죄와 사 이버 전쟁 행위들이 저질러지고 있기에, 선과 악이 판명된 일반적 합의 뿐만 아니라 선한 행위에는 상을 주고 악한 행위에는 벌을 가하는 시스 템이 필요해지고 있다. 각기 개성이 다른 네티즌들은 각자의 정치적 충성심을 갖는다. 중 국, 이란, 러시아 그 밖의 많은 국가의 친정부적인 블로거와 해커들은 자부심을 갖고 정부의 가상 잠재적 적들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 여기에는 성전(지하드)을 지지하는 개발자들도 있고, 위키리크스와 관 계를 단절했던 기업들을 서비스 거부로 공격하고, 회원들의 마음에 들 지 않는 가치를 지닌 다른 웹사이트를 공격하는 국제 익명 해커 단체인 어나니머스 같은 자경 해커 단체도 있다. 많은 어나니머스 회원들은 스 스로를 사람들의 디지털 일상을 지배하는 불공정한 정부와 기업 권력 에 저항하는 자유의 투사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들이 선택한 저항의 형 태가 무고한 사람들-그들이 공격한 서비스의 이용자와 고객-에 피해 를 끼치고 있으며, 더 이성적이고 공정한 권력 구조의 설립이라는 장기 적 측면에서 봤을 때 건설적이지 못했다. 그들은 영국 내전 때 엘리트 정치 구조를 개혁하려고 싸운 수평파와 불공정한 통치 체제를 대체해 서 새로운 시스템을 세우려 했던 미국 독립혁명가들보다, 존 왕의 통치 실패에 대응해 의도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로빈 후드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소외 받고 정보화에 뒤처진 소수 계층의 권리와 무고한 시민들을 범죄로부터 보호한다는 당위성은 ‘통치 받는 자들의 동의’를 기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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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민주 정부가 사라지지 않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현실적이고 빈번한 지역적 요구를 지닌 평범한 사람들이 시민의 핵심을 이루는, 지정학적 경계에 기반을 둔 통치를 없애려는 생각은 어리석다. 동시에 다국적 기 업의 권력은 사람들을 쫓아내고 착취하는 한편, 수천만 명을 고용하고, 권한을 부여하면서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글로벌 사회의 핵심 두 기 둥인 정부와 기업에 관한 뉴스에 주의를 집중한다면, 누구라도 현실 세 상과 디지털 공간에서 권리를 보호받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누리는 이 익에서 홀로 소외되지는 않을 것이다. 특정 국가와 세계의 어느 지역, 그리고 전 세계 일부분으로서 시민 코먼스는 사이버 공간에서 정부와 기업 권력의 중요한 균형추가 된다. 시민 코먼스는 시민들에게 체제 고 발적이고, 비주류의 대화가 가능한, 비상업적이고, 안전하며 사적인 공 간을 만들 수 있는 공간과 수단, 공동체를 제공한다. 오늘날 그러한 코먼스의 존재와 중요성은 심지어 코먼스의 많은 기여자나 참여자 사이에서도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북미와 서유럽 민주주의에서조차도 코먼스의 창시자들과 지지 자들은 인터넷이 다방면으로 비즈니스와 보안 규약, 익숙해진 삶의 방 식을 위협한다고 여기는 영향력 있는 기업과 정부 기관, 이익 단체에 맞 서 법 제정을 위해, 그리고 법정에서 대 격전을 벌이고 있다. 민주주의 가 쇠퇴하고, 시민 권리를 보호하는 헌법적, 법적 장치가 부실해질 때 시민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코먼스는 사면초가에 몰릴 것이다. 쿠바와 북한 같은 낡은 독재 정부들이 현재 시행하는 것처럼 단순 히 시민들이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제한하기보다, 활발하게 정보를 조 작하는 기술을 배우고 있는 정부 가운데서 가장 극단에 위치한 것은 중 국이다. 탄탄하고, 생생하게 그리고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인터넷은 강 력한 정부와 활기찬 민간 부문이 민주주의, 책임 통치, 적법 절차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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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시민 권리의 의미 있는 보호 등이 결핍된 상황과 맞물려 탄생한 산물 이다. 중국은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권위주의 정부를 상징하며, 세계적 수준의 경제적·재정적인 영향력을 갖추기 위한 중요성뿐만 아니라 현 대적 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필요성 때문에 인터넷 연결을 수용하고 있 다. 동시에, 민간 부문의 직접적인 협조와 유착으로 중국 정부는 중국 의 디지털 코먼스를 공격하고 있으며, 냉소적인 조작으로 종속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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