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클베리핀의 모험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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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 허클베리 핀의 모험


경고문

이 이야기의 동기를 찾으려는 자는 기소당할 것이다. 이 이야기의 교훈을 찾으려고 하는 자는 추방당할 것이다. 이 이야기의 구성을 찾으려는 자는 총살당할 것이다. −지은이의 명령에 따라 군사령관 G. G.−


≪톰 소여의 모험≫이라는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나에 대 해 잘 모른다. 그리 대수로운 일은 아니지만. 그 책은 마크 트웨인이라는 사람이 썼는데 대체로 진실을 말한다. 좀 부 풀려 이야기한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진실이다. 큰 상관은 없다. 나는 이제껏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 책은 이렇게 끝난다. 톰과 나는 강도들이 동굴 안에 숨겨두었던 돈을 찾아내어 큰 부자가 된다. 각각 거금 6000 달러씩 나눠 갖는데 전부 금화였다. 차곡차곡 쌓아놓고 보 면 엄청난 돈이었다. 새처 판사 나리는 그 돈을 대신 맡아서 이자를 받고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었다. 이자만도 1년 내내 날마다 1달러씩 굴러 들어와 그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더글러스 과수댁은 나를 양자로 삼고 ‘교양을 ’ 익 힐 거라고 했다. 이 아주머니가 어찌나 매사에 엄격하고 격 식을 따지는지 밤낮 집 안에서 지내는 게 갑갑해서 죽을 맛 이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면 나는 그 집에서 도망 나 왔다. 전에 입던 헌 누더기와 설탕을 담던 큰 드럼통으로 되 돌아가 다시 자유를 누렸다. 그러나 톰 소여가 끝내 나를 찾 아냈다. 갱단을 조직하는 중인데 만일 내가 과수댁 집에 돌 아가서 얌전히 굴면 이 갱단에 끼워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나는 다시 그 집으로 돌아왔다. 21


과수댁은 나를 보자 엉엉 울면서 불쌍한 길 잃은 어린 양 이라며 또 다른 여러 이름으로 나를 불렀다. 뭐 특별한 악의 가 있는 건 아니었다. 과수댁은 또다시 나에게 새 옷을 입혔 고, 나는 땀이 뻘뻘 나면서, 온몸이 꽉 조여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전에 하던 일이 다시 시작되었다. 저녁 식사 때 과수 댁이 종을 울리면 식탁으로 달려갔고, 식탁에 가서 곧장 밥 을 먹는 것이 아니라, 과수댁이 음식 앞에 머리를 숙이고 뭐 라 뭐라 중얼거리는 동안 가만히 기다려야 했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과수댁은 으레 성경책을 꺼내 들고 는 나에게 모세와 갈대 바구니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고, 나는 땀을 뻘뻘 흘려가며 그 사람에 관해 하나도 빼놓지 않 고 배워야만 했다. 그러다가 모세가 아주 오래전에 이 세상 을 떠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죽은 사람에게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어서 그 사람에 대해선 신경을 꺼버리 기로 했다. 곧 나는 담배를 피우고 싶었고, 과수댁한테 담배 한 대만 피우게 해달라고 졸라보았지만, 과수댁은 막무가내였다. 담배 피우는 것은 깨끗하지 못한 나쁜 버릇이니까 이제부터 는 아예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 정말 이 세상에 는 이런 사람들이 흔하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남에게 심하 게 구는 사람 말이다. 이 과수댁은 자기 친척도 아닌 이미 죽 22


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모세에 관한 일로 해골을 빠갠 다. 그러면서도 내가 쓸모 있는 걸 하려고 하자 서슬이 시퍼 렇게 날뛴다. 자기는 연방 코담배를 피우면서, 자기는 괜찮 다는 식이다. 이 과수댁의 동생이 되는 안경 낀 호리호리한 노처녀 왓 슨 아줌마가 이 무렵 자기 언니인 과수댁과 함께 살러 왔다. 이 여자는 철자 책을 가지고 내게 달려들었다. 이 아줌마가 한 시간쯤 나에게 공부를 시킨 다음에야 과수댁은 내 고삐 를 풀어주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 후 한 시간쯤은 죽을 만큼 심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왓슨 아줌마는 밤낮으로 나를 보기만 하면, “허클베리, 발을 그런 데 올리지 마”, “허클베리, 그렇게 덜그럭거리지 말고 똑바 로 앉아”라고 했다. 그러고는 금방 “허클베리, 그렇게 하품 을 하거나 기지개를 켜지 마. 왜 좀 얌전하게 굴지 그래?”라 고 잔소리를 해댔다. 버릇없이 굴면 지옥에 갈 거라며 지옥 이야기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해서 나는 정말로 거기에 가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나처럼 말하는 건 나쁘다 며, 자기 같으면 온 세상을 다 준다 해도 그런 말은 하지 않 을 거라고 했다. 자기는 좋은 나라에 가서 살 거라는 거였다. 일단 입을 연 왓슨 아줌마는 계속해서 천당 이야기를 자 질구레하게 늘어놓았다. 거기에 간 사람들은 하루 종일 하 23


프를 타며 노래 부르고 빈둥거린다는 거였다. 언제까지나 영원히 말이다. 나는 그곳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물 론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았다. 톰 소여는 거기 갈 것 같으 냐고 물었더니, 천만의 말씀, 당치않은 소리라고 펄쩍 뛰었 다. 어쨌든 잘된 일이었다. 나는 늘 톰과 함께 있고 싶었다. 나는 양초 토막 하나를 집어 들고 2층 방으로 올라가 그 것을 책상 위에 놓았다. 창문 옆 의자에 걸터앉아 신나는 생 각을 해보려고 했지만 헛수고였다. 너무 기가 죽고 무서워 서 정말 누가 나와 함께 있어주었으면 했다. 조금 있으려니 까 거미 한 마리가 내 어깨로 살살 기어올라 오기에 그놈을 손톱으로 탁 튀겼더니 그만 촛불에 떨어져 눈 깜짝할 사이 에 지글지글 타버리고 말았다. 누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불길한 징조라서 좋지 않은 일이 곧 닥쳐오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서워서 어찌나 벌벌 떨었던지 하마터면 입고 있던 옷이 다 벗겨질 뻔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걸으면서 세 번 방향을 바꾸어 그때마다 가슴에 십자를 긋고는 마녀를 쫓아내려고 머리카락 몇 개를 실로 잡아매 두었다. 거미를 죽이고 악운을 쫓는 데 무슨 소용이 닿는다는 말을 아직 누 구한테도 들어본 적은 없었지만. 시간이 꽤 지난 다음 마을 저 멀리서 땡땡하고 시계가 열 두 시를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이 아까보다 훨씬 더 24


조용했다. 곧이어 창 아래 나무 사이 어둠 속에서 작은 나뭇 가지 하나가 뚝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무엇인가 가 흔들흔들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 귀를 기울 였다. 그러자 바로 아래에서 “야옹, 야옹!” 하고 고양이 우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옳지, 됐다!’ 하고 나는 되도록 낮은 목소리로 “야옹! 야옹!” 하고 대답하고는, 불을 끄고 창 을 빠져나가 헛간 지붕으로 기어내려 갔다. 그런 다음 땅 위 로 미끄러져 내려가 나무 사이로 기어들어 가니, 톰 소여가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나무 사이 오솔길을 따라 과수댁의 뜰 끝까지, 나 뭇가지에 머리를 긁히지 않도록 몸을 구부린 채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부엌 옆을 지날 때 나무뿌리에 발이 걸 려 넘어지는 바람에 나는 그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우리 들은 몸을 웅크리고 가만히 숨을 죽였다. 짐이라는, 몸집이 큰 왓슨 아줌마네 검둥이 노예가 부엌 문가에 앉아 있는 모 습이 뒤쪽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 때문에 꽤 똑똑히 보였다. 짐은 일어서서 잠시 목을 길게 뽑고는 귀를 기울였다. 그러 고는 이렇게 말했다. “거기 누구야?” 좀 더 귀를 기울인 다음 그는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 내 려오더니 바로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섰다. 손을 뻗으면 거의 25


닿을 만한 곳이었다. 몇 분이 지나도록 누구도 소리를 내지 않은 채 세 사람이 꼼짝 않고 가까이 서 있었다. 발목에 가려 운 데가 생겼지만, 감히 긁을 수도 없었다. 다음엔 귀가 가 려워지더니 이번에는 두 어깨 사이 등이 가려워졌다. 긁지 않으면 금방 죽을 것만 같았다. 그 후에도 나는 몇 번이고 그 런 경험을 했다. 지체 높은 분과 함께 있게 된다든지, 장례 식에 참석한다든지, 졸리지도 않은데 잠을 자려고 한다든 지, 그러니까 몸을 긁어서는 안 될 장소에 있기만 하면, 어찌 된 영문인지 어김없이 온몸이 천 군데 만 군데 가려워졌다. 얼마 안 되어 짐이 이렇게 말했다. “어이, 누구 있어? 분명 무슨 소리가 나기는 났는데. 옳 지, 이러면 되겠네. 내가 여기 주저앉아서 다시 한 번 그 소 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되겠군?” 이러면서 짐은 나와 톰 사이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등을 나무에 기대고 두 다리를 쭉 뻗는 바람에 하마터면 다 리 하나가 내 한쪽 다리에 닿을 뻔했다. 이번에는 코가 가려 워지기 시작했다. 너무 가려워 그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도 긁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배 속이 가려웠다. 다음에 는 궁둥이가 가려웠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이 렇게 비참한 상황이 불과 6분 정도 계속되었는데 너무나 길 게 느껴졌다. 이제는 가려운 곳이 열한 군데나 되었다. 1분 26


도 더 참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를 악물었다. 바 로 그때 짐이 숨을 크게 몰아쉬더니 곧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려움증이 말끔히 사라졌다. 톰은 짐의 머리에서 모자를 살짝 벗겨 머리 위 나뭇가지 에 걸어놓았다. 짐은 약간 꿈틀거리긴 했지만 눈은 뜨지 않 았다. 나중에 짐이 말하기를, 마녀들이 자기에게 요술을 걸 어 혼을 빼앗고 미주리 주 여기저기를 데리고 돌아다니다가 나무 아래에 도로 데려다 놓으며, 누가 했는지 보여주려고 모자를 나뭇가지에 걸어놓았다고 했다. 그다음 이 얘기를 할 때에는, 마녀들이 자기를 뉴올리언스까지 몰고 내려갔다 고 했다. 얘기가 되풀이될 때마다 점점 더 뻥을 치더니 마침 내는 마녀들에게 끌려 온 세계를 두루 돌아다니는 바람에 죽을 정도로 녹초가 되었고, 등은 말안장 때문에 종기투성 이가 되었다고 했다. 짐은 엄청나게 자랑했고 나중에는 다 른 검둥이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짐의 얘기를 들으려고 수만 리 떨어진 곳에서 검둥이들이 찾아왔고, 짐은 이 지방 의 어느 검둥이보다도 더 존경을 받았다. 낯선 검둥이들은 입을 헤벌리고 서서 마치 짐이 무슨 신비로운 존재인 것처 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우리는 언덕을 따라 내려가 조 하퍼랑 벤 로저스랑 또 두 서너 명의 사내애들이 폐허가 된 무두질 공장에 숨어 있는 27


것을 찾아냈다. 그다음으로는 소형 보트의 밧줄을 풀어서 강 하류 쪽 언덕 중턱의 큰 절벽까지 저어 가서는 물가로 올 라갔다. 덤불 속으로 들어가자 톰은 우리에게 비밀을 지키 겠다는 맹세를 하라고 하면서, “자, 우리 강도단은 ‘톰 소여 갱단이라고 ’ 부를 거야. 입단하고 싶으면 맹세를 하고 자기 이름을 혈서로 써야 해”라고 했다. 톰은 미리 맹세를 써둔 종이를 꺼내 읽었다. 누구도 이 갱단에서 나갈 수 없고, 어 떤 비밀도 누설해서는 안 되며, 만일 단원 중 누군가가 해를 입으면, 그자와 그자의 가족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을 거고, 반드시 그 살인 명령을 완수해야 하며, 그자들을 죽여 그 가 슴에다 이 갱단의 표지인 십자가를 새겨 넣을 때까지는 어 떤 음식도 먹어서도 안 되고, 또 잠을 자서도 안 된다는 내용 이었다. 모두 끝내주는 맹세라며 톰이 혼자 머리로 짜낸 것인지 물었다. 톰은 이 중 몇 가지는 자기가 생각해 냈지만, 나머 지는 해적에 관한 책과 강도에 관한 책에서 뽑아낸 것으로, 멋진 갱단이라면 누구나 다 이러한 맹세를 한다고 했다. 비 밀을 누설한 단원의 가족도 죽이는 게 좋겠다고 누군가가 말하자, 톰은 좋은 생각이라며 연필로 적었다. 그러자 이번 에는 벤 로저스가 말했다. “여기 헉 핀은 가족이 없어서 어떻게 하지?” 28


“아버지가 있잖아?” 하고 톰 소여가 대답했다. “있긴 해도 요즘 안 보인단 말씀이야. 그전에는 가죽 공 장에서 곤드레만드레 취해 돼지처럼 곧잘 잠도 잤는데, 1년 넘게 이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거든.” 모두 이 문제를 의논하더니 나를 갱단에서 빼버리려고 했다. 죽일 가족이 있어야 하며, 안 그러면 다른 애들과 공 평하지 않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뾰족한 생각이 떠 오르지 않아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거의 울음보를 터 뜨릴 지경이었는데, 갑자기 한 가지 방도가 생각났다. 나는 왓슨 아줌마를 내놓았다. 아줌마를 죽이면 된다고. 그러자 모두 한목소리로 말했다. “옳거니. 그 아줌마면 돼. 그럼 문제없어. 헉도 입단할 수 있어.” 그래서 전원이 바늘로 손가락을 찔러 피로 서명했고, 나 도 종이에다 표시를 했다. 나는 날이 새기 바로 직전, 곳간 의 지붕으로 올라가 창문을 통해 방으로 기어들어 갔다. 새 옷은 온통 촛농과 진흙투성이였고, 몸은 우뭇가사리처럼 완 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이튿날 아침 나는 옷 때문에 왓슨 아줌마한테 톡톡히 꾸 중을 들었다. 과수댁은 나무라지 않고 촛농과 진흙을 깨끗 이 닦아주며 자못 슬픈 표정을 하고 있어서, 잠깐이라도 얌 29


전히 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왓슨 아줌마는 나를 골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기도를 올렸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왓슨 아줌마는 매일 기도를 드리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얻 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언젠가 나는 낚싯줄은 있지만, 낚싯바늘이 없었다. 낚싯바늘이 없 다면 낚싯줄도 전혀 쓸모가 없어서 서너 번 낚싯바늘을 주 십사 하고 시험 삼아 기도를 해보았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 다. 어느 날 왓슨 아줌마에게 나를 위해 한번 기도해 줄 수 없겠냐고 부탁했더니 나보고 바보 멍텅구리라고 했다. 왜 내가 멍텅구리인지 그 까닭은 얘기해 주지 않았고, 나는 아 무리 생각해 봐도 그 까닭을 알 수 없었다. 언젠가 나는 숲 속 깊숙한 곳에 들어가 앉아 이 문제를 오 랫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기도 덕택으로 갖고 싶은 물 건을 무엇이든 다 손안에 넣을 수 있다면, 왜 교회 집사인 윈 아저씨는 돼지고기 때문에 잃어버린 돈을 도로 되찾지 못하 는 것일까? 왜 과수댁은 도둑맞은 은제 담배 상자를 도로 찾 지 못하는 것일까? 왜 왓슨 아줌마는 살이 찔 수 없을까? 나 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냐, 기도란 건 쓸데없는 거야” 라고. 과수댁한테 가서 이 얘길 했더니 사람이 기도를 올려 손안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정신적인 선물이라고 ’ 했다. 내 머리통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말이었지만 과수댁은 그게 무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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