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김상훈 시선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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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시선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은 인류의 유산으로 남을 만한 작품만을 선정합니다. 오랜 시간 그 작품을 연구한 전문가가 정확한 번역, 전문적인 해설, 풍부한 작가 소개, 친절한 주석을 제공하는 고급 시 선집입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김상훈 시선 김상훈 지음 남승원 엮음

대한민국,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4


편집자 일러두기 ∙ ‘초판본 한국 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 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 이로 추천했습니다. ∙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 석을 덧붙였습니다. ∙ 이 책은 ≪전위 시인집(前衛 詩人集)≫(노농사, 1946), ≪대열 (隊列)≫(백우서림, 1947), ≪가족(家族)≫(백우사, 1948)을 저 본으로 삼았습니다. ∙ 차례는 각 시집의 수록 순서를 따랐습니다. ∙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습니 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 했습니다. ∙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 잡았습니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습니다. ∙ 주석은 현대에는 쓰지 않는 생소한 단어, 현대의 독자들이 쉽게 뜻을 알기 어려운 한자어, 원전의 글씨가 잘 안 보여 엮은이가 추 정한 글자, 사투리, 토속어, 북한어 등 설명이 필요한 경우에 달았 습니다.


차례

≪前衛 詩人集≫ 말 ························3 田園 哀話 ····················4 葬列 ·······················9 旗폭 ······················11

바람 ······················13

≪隊列≫ 아버지의 門 앞에서 ················17 市民의 집들 ···················19

어머니 ·····················21 소 ·······················23 勞動者 ·····················25

고개가 삐러진 동무 ···············28 어머니에게 드리는 노래 ··············30 順伊 ······················33 小白山脈 ····················35


東으로 向한 窓 ··················37

≪家族≫ 家族 ······················41 小乙이 ·····················78 北風 ······················94 草原 ······················103 獵犬記 ·····················109

해설 ······················119 지은이에 대해··················130 엮은이에 대해··················135


≪前衛 詩人集≫



바른길로만 끝없이 달리고 싶은 말아 네ᄉ발이 푸른 대처럼, 싱싱하구나

戰塵 피비린내 나는 千 里 길을

한숨에 뛰어가 祖國의 슬픔을 救하고

獨裁者의 채쭉 아래 쓰러진 無數한 젊은 넋이 어굴해서 荒野에 바람을 거슬러 울었다지

도라와 이제 헐벗은 主人의 담 밑에서 진종일 낡은 지푸래기만 너흘어도1)

잠을쇠 구지 닫힌 곳집을 지키는 치사스런 番犬은 아니라는 자만에 말은 갈기털 날리며 발을 굴르고 섰다.

1) 너흘어도: 물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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田園 哀話

小作爭議가 끝나지 않어 散髮한 벳단이 밭고랑에 누어 있는 들길을

지처 쓰러진 이야기를 담고, 牛車 바퀴가 게을리 굴러 가고, 荒凉하다. 賤한 촌百姓이 사는 이 마을엔

어미가 子息을 헐벗겨 떨리고 삽살개 사람을 물어 흔들고 金錢과 바꾸워진 딸자식을 잊으랴 애썼다. 日章旗가 太極旗로 變했어도

그것은 지친 그들에게 ‘萬歲’ 소리로 높이 낼 負擔밖에 설익은 빵덩이 하나 던저 주지 못했다.

北滿에서 떨다 온 三乭아

어미 죽고, 기여들 집 한 間 없고, 잊지 못한 게집 가 버리고 말해라 포근이 안아 즐 어느 것이 너의 祖國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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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늘하고 모진 돌맹이, 주저앉을 따마저 地熱이 식었 구나 칼 든 화적이 송아지를 몰아가고, 여호고개 밑에서 殺人 났던 이야기가 골 안에 遑遑히 피 묻은 말발굽처럼 도라다닌다. ‘獨立’! 骨髓에 겨려, 꿈 되여 알른거리드니만 마츰내 닥처온 네가, 싫다, 이름 좋은 그림자였드냐! 악착하구나 氷雪은 차곡이 싸이는대 누덕이 옷에 한결같이 주리고 떨어 안 죽음을 恨하는 하라버지와 못살아 발버둥치는 작은 것들을 고대로 보고 있어야 하느냐? 獨立의 貴한 선물로…

新作路 나자 젊은것들 끌어가고 拓植會社에 마지막 世傳畓을 팔든 날

일만 하면 먹여 주는 마름집 소 八字가 부럽다고 石伊는 밤새워 울드니 이날도 亦是 소가 부러운 게다.

왜놈이 쫓겨만 가면 제 것이야 찾을 줄 알었드니 한 마지기 석 섬이 더 나는 이 넓은 들을 또 누가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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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먹이 찾어 뿔뿔이 흐터지든 무리 빈주먹 쥐고 거지 되여 찾어들며 前生에 지은 罪를 뉘 우치고, 壬亂 때부터 살아온 이 마을이 三百 年 동안 쉰 집이

못 찬다고 하라버지 嘆息하야 山禍2)라 일커르고3) 病들어도 藥 한 첩 못 써 보고 죽이는 눈알이 까−만 어

린것을 惶恐無地하야 山神에게만 빌었다. 朝鮮아 물어보자! 그대의 아들 八割이 굶주리누나

어인 前生에 罪지은 者 이리 많으며 어인 송장의 毒이 이리 크며 어인 神靈의 극성 이리 限없나 아아 農軍은 사람이 아니라니 ‘朝鮮’아 이래야 옳으냐! ○

2) 산화: 산탈. 묏자리가 좋지 못한 탓으로 자손이 받는다는 재앙. 3) 일커르고: 일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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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겨진 힘줄과 억센 손마듸와 삽자루와 번쩍어리는 호 미 방아타령하는 목통과 거사춤 추는 엉덩이와 씨름 잘하는 정갱이 삽질하는 두 주먹이였다. 土地를 다고 아아 土地를 다고

목매여 울면 들은 체나 하겠느냐. 아아 政客은 農軍이 없는 서울에서만 會議를 하는구나

그들은 農軍을 爲해 稅金과 형벌을 定하고 農民은 일하다가 죽고 자식새끼 無識해야 하는 슬픈 代價를 支拂한다.

씨 뿌리고 싻 트면 김매고, 익으면 걷어드리고 말으면 쌓고 피땀을 애껴서는 안 되는, 비바람을 避해서는 안 되는 부즈런하고 억세야만 되는 이 일은 우리 農軍만이 한다. 아아 土地를 農軍에게 다고. 배곺아서 일 못하는 農軍 이 없게 해 다고… 이렇게 부르짖고 싶다. 딱한 百姓들이 이렇게 부르지 저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羊보다 順하기에 洋服쟁이 두려워 고개 숙이고 모도 다 빼았기고도 말할 주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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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앞 목매다라 죽은 소나무 있고, 그 앞엔 젓가슴처럼 탐스러운 들이 가로놓여, 오롱조롱 매달린 어린것들이 바라보고 있것만 小作爭議가 끝나지 않어 散髮한 벳단은 눈[雪]에 덮이고

지쳐 쓰러진 이야기를 실고 牛車 바퀴가 굴러갔다. 이 땅 사람들의 장꺼리를 실고 罹災民을 실고 邑에서 나오는 수선스런 소문들과, 窒息하는 農軍의 生活을 실고

머슴이 이끌고 여윈 소가 끌고 마루택이를 넘어 牛車 바퀴는 게을리 게을리 사라진다.

달도 없이 밤은 유난히 검고 눈 우에 자꾸 서리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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葬列

바람도 구름도 서름에 젖어 葬列은 자옥마다 눈물이 고이고

요령도 吊旗도 없어야 하기에 서럽게 서럽게 밀려서 간다.

돌뿌리마다 낯익은 길을 참아 떠나지 못해 짐짓 망서리건만 볕이 그리워 외치며 죽은 벗을 太陽 없는 나라로 보내야 하니

마을 婦人내도 들은 소문에 행주치마로 얼굴 가리는대 無慘히 쏘와 죽인 사람들 銃 들고 와 멀그럼이 구경하고

아츰저녁 함께 부르는 이 노래로 너이들 보낼 줄이야… 찬 방에서 껴안고 잠들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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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생각 잊을려고 몸부림치며

葬列은 고요히 흘러간다

꿈 많은 서울도 아득히 등지고 가면 도라오지 못하는 길을 무엇이 불러 어데로 간다고…

(1946.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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旗폭 -全評 世界勞聯 加入 祝賀 大會에서

鎔鑛爐처럼 끌어 이글거리는 더위에

어깨 맞부비며 그래도 씩씩한 얼골들 二十萬 名의 視線이 쏠리는 곳에

보라! 높이 세워진 한 幅 기빨이 있다

밀가루와 감자로만 살아가도 구리ᄉ쇠빛 시들 줄 몰으는 해바라기처럼 타는 渴望이 正直하게 한 기빨을 노리는 곳에 湖水처럼 밀러와 담기는 벅찬 民主主義가 있다

韓人들이 범의 우름보다도 두려워하는 赤旗歌를 불으며 한 기빨 밑으로 모이자

옳은 路線으로 나라 이끄는 信號旗 가슴마다 간직하고 先輩들은 죽어 갔느니라

우리 모두 하늘보다 푸른 自由를 안고 祖上의 피 꿈틀거리는 땅 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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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끝 勞動이 자랑스러우며 사는 날까지 모히자! 믿어운 한 기빨 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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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드높은 洋館을 걷어차고 가난뱅이의 살림에 한숨을 담어 가는 바람아 나는 네가 부럽다

잠든 듯 고요히 아기의 뺨을 어루만지다가도 단비를 몰아와 매마른 밭고랑에 물을 뿌리다가도 성나면 번덕이는 칼날이 古木 가지를 부르트려 우뢰 번개 아래 親日派 가슴을 조리고 同族의 피를 빨든 도적의 떼 呪文을 웨이게 하는 萬年을 두고도 한결같이 젊은 바람아

내 蒼白해 눈물과 親熟한 버럿4)을 버리고 함부로 내달아 부대치는 바람아 너의 마음이 되지 못하느냐

아츰저녁 까마득히 바라보는 붉은 기빨을 하늘 높이 날려 주는

4) 버럿: 버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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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모라 헤치고 太陽이 여기 있다고 일러 주는 새 새끼 떼 날려 泰山을 넘기고 不遇한 겨레의 피 묻은 喊聲을 傳해 주는

바람은 낡은 歷史책의 냄새 나는 페−지를 넘긴다.

이불자락에서도 이러나는 바람이 자옥 밑에서도 피여나는 바람이 大洋에 거만한 帝國主義의 汽船을 삼켜 치우고

어느새 도라와 홀어머니의 낮잠을 勸하기에 부지런한 山脈을 한숨에 내달아 火田民의 등곬에 땀을 씻어 주고 製絲 工場 유리窓에 매달려

패리한 女工들을 웃기랴 애쓰는

바람아 너는 푸로레타리아의 友軍이냐 隊列을 지어 진흙 길에 북을 치며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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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隊列≫



아버지의 門 앞에서

등짐지기 三十 里 길 기여 넘어 갑분 숨껼로 두드린 아버지의 門 앞에 무서운 글字 있어 共産主義者는 들지 말라 아아 千 날을 두고 불러 왔거니 떨리는 손이 문고리를 잡은 채 멀그럼이 내 또 무엇을 생각해야 하느냐

태여날 적부터 도적의 領土에서 毒스런 雨露에 자라 가난해도 祖先이 남긴 살림 하구 싶은 말 가지구 싶든 사랑을 먹으면 禍를 입는 咀呪받은 果實인 듯이 진흙 不吉한 땅에 울며 파묻어 버리고 나는 마음 弱한 植民地의 아들 千 斤 무거운 壓力에 죽엄이 부러우며 살아왔거니

이제 새로운 하늘 아래 일어서곺아 용소슴치는 마음 무슨 야속한 손이 불길에 다시 물을 붓는가

徵用사리 봇짐에 울며 늘어지든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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刑務所 窓 구멍에서 억지로 웃어 보이든 아버지

머리 씨다듬어 착한 사람 되라고 옛글에 日月같이 뚜렷한 聖賢의 무리 되라고 삼신판에 물 떠 놓고 빌고 말 배울 쩍부터 井田法을 祖述하드니 이젠 믿어운 기빨 아래 발을 마추랴거니 어이 歷史가 逆流하고 習俗이 腐敗하는 地點에서 地 主의 맏아들로 罪스럽게 늙어야 옳다 하시는고 아아 解放

된 다음 날 사람마다 잊은 것을 찾아 가슴에 품거니 무엇이 가로막아 내겐 나라를 찾는 날 어버이를 잃게 하는고 刑틀과 종 文書 진니고

양반을 팔아 송아지를 사든 버릇 小作料 다툼에 마을마다 哭聲이 늘어 가든

낡고 不純한 生活 헌신짝처럼 벗어 버리고 저기 붉은 旗폭 나붓기는 곳 아들, 아버지 손길 맛잡고 새로야 떠나지는 못하겠는가 이 아츰에… 아아 빛도 어둠이런듯 혼자 넘어가는 고개 스물일곱 해 자란 터에 내 눈물도 남기지 않으리 벗아 물 끓듯 이는 民衆의 喊聲을 傳하라 내 잠깐 惡夢을 물리치고 한숨에 달려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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