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송영 단편집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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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송영 단편집 송영 지음 김학균 엮음

대한민국, 서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느러가는 무리



一 승오는 오정이 거의 다 되여서 겨우 차자왓다. ˚ ˚ ˚ (모군 이곳은 한 五十 명가량이 일단이 되여 잇는 도가심 군) 판1)이다. 우전천(隅田川) 지류인 소명목천(小名木川) 언덕 넓은 들 가온대에 잇다. 논랑 모양으로 번듯번듯한 일터는 업시 널려 잇다. 냇가이며 는 비가 노−온2) 닭에 왼통 진흙 구렁이3)가 되여 잇다. 한복판에는 내와 통한 연못이 잇다. 거기에는 집 질 재목이  모양으로 가득하게 차서 잇다. 한편에서는 벌 ˚ ˚ ˚ (長屋)4)을 지여오고 잇다. 냇가가 중심이 서 길다란 낭아야 되여 이곳저곳에는 흙도 미여 날느며5) 달구질도 하며 도 파는 로동자들이 버려 잇다. 이곳은 부흥국에 속한 작업장 이다. 진재6) 통에 한번에 멸시를 당해버린 심천구(深川

1) 도가심 판: 토목 공사 따위의 공사판. 2) 노−온: 늘 오는. 3) 구렁이: 구덩이. 4) 낭아야: 칸을 막아서 여러 세대가 살 수 있도록 만든 연립 주택. 5) 미여 날느며: 메어 나르며. 6) 진재: 관동 대진재. 1923년 9월 1일 일본 가나가와 현(神奈川縣) 중부 에서 사가미 만(相模灣) 동부, 보소 반도(房總半島)에 걸친 일대를 진 원지로 한 대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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區) 주민을 위하야 림시로 집을 짓고 잇는 곳이다. 야트막한 한울은 재빗 가튼 기운이 묵업게 어렷다. 수업 는 연통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는 열븐 구름가티 몰켯다 헤 여젓다 한다. 멀니는 소명목천에서 짐배들의 오고가는 소리와 긔동선 의 어리는 긔관 소리가 컷다 적엇다 하고 들닌다. 는 건너 언덕에 줄을 대여 잇는 각 공장에서는 긔게 소리 덜네 는7) 소리가 한데 합해서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게 이상한 소 리가 되여 희미하게 흘너오고 잇다. 그리고는 달구질하는 소리 주고밧는 로동가 흙 파는 소 리 시시대거리는 짓거림만 연못 속에 재목8)가티 단조럽 게 들성거릴 이다. ˚ ˚ ˚ (假舍) 압지 승오는 로동자가 모혀 자고 잇는 바락 왓다. 한−널각9)으로 길다랏케 사 귀만 맛초고 양철로 집웅을 햇다. 한 七八 간이나 되게 길어 보인다. 듬성듬성 하게 사이가 버러진 것은 말 외양간 모양 갓하엿다. 가운대 에는 외문이 잇다. 미다지 모양으로 밀어서 열고 닷는 문

7) 덜네는: ‘덜렁이다’의 방언. 큰 방울이나 매달린 물체 따위가 흔들리는 소리가 나다. 8) 재목: 물에 담가둔 목재. 9) 한−널각: 큰 널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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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물론 장식도 업고 고리도 업는 명색만이 그리고 하는 것만이 문의 사명을 직히고 잇슬 이다. 승오는 크도 적도 아니한 몸에  아닌 추복을 입엇다. 해에 바래고 드러서 빗가티 되고 억개지 무릅팍 등속 이 해여저서 너펄거리고 잇다. 더욱이 궁둥이는 그럿케 ˙ ˙ ˙ ˙ 10) 입은 볼기이 내다보힌다. 발에는 저져서 사루마다 주둥이가 저진 흰 구두를 신엇다. 진흙이 뭇고 검정도 무 더서 뭐라고 말하기에도 어렵게 되엿다. (안 족제비라고 하기에는 너무 봇태는 것 같고 해서…) 모자만은 철 마처 쓴 겨울 캡이다. 과히 더럽지는 아니햇스나 마분지로 속 너흔 창이 겨저서 잇다. 얼골은 검고 말는 품이 광대와 코만 잇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니다. 모자 밧그로 훨신 나온 머리는 귀를 덥고 목덜미 를 아조 가려버렷다. 둑거운 입살, 퀭하게 드러가고 가손 진11) 두 눈, 그리고 얼골에는 그늘이 만코 어둠이 만타. 감 초여지지 못할 주린 빗은 무겁게 어리여 잇다. 더욱히 두 눈 에는 고통과 번민! 거듭 무섭게 저주하는 빗이 빗나고 잇다. 그럭저럭 동경 온 지는 두 달이 넘고도 석 달이 갓가온

10) 사루마다: 원문에는 ‘사루마디’. 남자용 속옷. 11) 가손진: 가선지다. 눈시울에 주름이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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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굼기도 그만큼 만히 햇고 고생도 그만큼 깊엇섯다. 그 는 처음에는 사회국과 직업소개소로, 도라다니기를 시작하 여, 사무원 점원 직공 견습 신문 배달부 엇더튼지 손으로 되 는 것은 아니 해보려는 것이 업서섯다. 그는 이제지 석 달 동안에는 최고 리상이 밥버리요 최대 환희가 밥 먹을 것이 요 최대 고통이 밥 업는 것이엿섯다. 먼저 먹어야겟다고 그 는 알 만한 사람 될 한 회사 혼자 생각에는 모조리 다 가보 고 그 외에 신문 소개란이나 길가에 붓친 광고지도 다 보 와가지고 동에서 서으로 서에서 동으로 넓은 동경을 전차와 는 관게를 코 헤매고 도라다니엿섯다. 그러나 개개히 실패이엿섯다. 실패라도 八九분이나 그 럿치는 안트라도 二三분이라도 될 듯하다가 트러진 위는 아니엿섯다. 아조 상쾌한 실패이엿섯다. 처음부터 거절 한 층 나아가 멸시 모욕 이러한 실패이엿섯다. 그는 식민디 토 민이라는 것과 외방 사람이라는 것과 는 학교 졸업장 업 는 것과 그리고는 손고락이 길고 몸이 약하다는 것이 거절 당한 이유의 여러 가지엿섯다. 그는 별로히 흥분도 아니 되엿섯섯다. 도로혀 그는  로 고소(苦笑)를12) 하엿다. 그것은 그가 너무나 그 가튼 생

12) 고소(苦笑)를: 원문에는 ‘고소(苦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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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에서 자라나고 지내오고 당해보기만 한 그 닭에 오히려 그 가튼 사람 갓지 아닌 사람들에게 학대밧고 멸시밧는 것 에 신경이 마비된 닭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질서 잇는 리지가 머리에 벗틔고 잇슬  말이다. 분화구 모양가티 그 의 가슴이 탁 터질 에는 그는 완통13) 텬하를 딀부시려는 용사가 되고 만다. 그가 석 달 동안 터문이업는 생활을 해오 는 동안에는 거의 시간마다 울니는 시게 종 모양으로 열두 시로 그는 용사가 되여왓다. 찰라찰라의 용사는 그로 하여 곰 갈 길을 찻게 맨든 원동력이 되엿다. 그러나 그는 고향이 그리웁지 안엇다. 그리웁지 안은 게 아니라 가고 십지 안핫다. 저절로 나는 생각이엿다마는 그는 그 ‘저절로’지도 억 제를 하엿다. 만일 저절로 나는 생각을 방임하고 보면 그는 그보다 더 큰 고통이 업고 비애가 업섯다. 병든 어머니가 압장이 되여 노랏케 시드른 어린 처라든 지 월사금 못 내서 퇴학을 당당히 당한 동생이라든지 젓 지 말너부터 울고 지내는 젓먹이 이라든지 뭉텡이 된 산 송장 을 볼 수가 업섯든 것이다. 그 아니라 머리서부터 발굼치지 왼몸과 왼 동작(動

13) 완통: 온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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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을 살려는 정대한 운동에 밧치고 모혓든 동지들이 밧그 로 관헌의 압박을 밧고 안으로 개인경제가 파멸이 되여 터 지려는 화산 가튼 가슴을 부둥키고 헤여저서 초조하고들 잇 는 동지들의 얼골, 그 얼골들을 볼 수가 업섯든 것이다. 그는 죽으면 죽어도 ― 어듸서 죽으나 굴머 죽기는 맛찬 가지나 ― 가기를 실혀햇섯다. 그리다가 그는 十여 년 동안이나 도가 판으로 도라다니 다가 지금에는 어느 공장의 직공이 되여 잇는 먼 일가 형을 우연하게 맛낫다. 그리하여서 “네가  하겟느냐. 너 가튼 도련님은 그런 일을 어림도 업다. 별소리 말고 어서 조선으로나 가거라” 하 ˙ ˙ 을 바든 뒤에 이곳 노가다 판으로 소개 는 별별 소리와 다짐 가 되여 오는 길이 다만 소개일 이지 확실이 결정되여 오 는 것은 물론 아니다.

二 승오는 문 압흐로 갓가히 왓다. 어듸를 드러가든지 ― 더욱 히 직업 문에 드러가는 곳에서는 ― 이러나는 울넝징이 그의 가슴을 엄습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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