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구의 핵심 개념_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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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구 10개의 핵심 개념

문화연구 문제 틀의 변화 2013년 커뮤니케이션북스에서 출간한 본인의 저서인 󰡔문 화연구자󰡕에서는 문화연구(Cultural Studies)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학자 10명의 이론적 논의를 소개한 바 있 다. 문화연구 학자 중심의 저술은 한 문화연구자가 문화 연구에 미친 공과를 정리하는 데 효율적이긴 하지만 1980 년대 이래 문화연구가 성장하면서 자본주의사회에 대한 문제 틀(problematics)에 변화를 가져오고 다양한 학자들 이 상호 영향을 받으며 문화연구를 발전시킨 과정을 통시 적으로 설명하는 데는 한계를 갖는다. 문화연구는 1980년 대 이후 일단의 학자들이 영국 좌파 사회주의 입장에서 벗 어나는 경향을 보이면서 정통 마르크스주의 노선에 수정 을 가하기 시작한다. 사실상 문화연구를 포함한 비판언론 학은 마르크스주의적 문제의식을 준거 틀로 사용하는 경 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은 자본 주의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비판 이론으로서 마르크스주 의의 유효성에 심각한 회의를 초래했고, 이에 따라 문화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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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는 다양한 학자들의 영향을 받으며 마르크스주의의 기 본 가정들에 상당 부분 이론적 수정을 가하며 오늘에 이르 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저서는 문화연구 핵심 개념 10개를 다시 정리한다.

마르크스 사회구성체론의 수정 정통 마르크시즘의 사회구성체론에 의하면 토대(base)는 상부구조(superstructure)를 결정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것은 마르크스(Marx)의 역사적 유물론에서 역사의 발전 과정은 토대 즉 생산력과 생산관 계의 변화가 한 사회의 정치 이념과 법 체계를 변화시켜 왔다고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따라서 정통 마르크시즘 의 관점에서 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체로 사회구성 체론에서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논리에 따라서 문화를 경제적 토대의 반영물로 생각하거나, 그 자체의 생 산·배급에 관련된 경제적 토대에 의해 결정되는 현상으 로 간주한다. 그러나 문화연구 진영은 마르크스주의 기본 명제 중 첫 째인 사회구성체론을 수정하기 시작한다. 즉, 문화연구 는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 간 이원적 계급 갈등을 기 조로 하는 마르크스주의적 계급 갈등의 사회구성체론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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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상이한 상황에서 작용하는 다중적 권력관계를 강조하 는 복잡하고 다면적인 사회구성체론을 제시한다(이효성, 1992). 또한 문화연구는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기계적결정론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토대는 상부구조에 느슨하게 영향을 미치거나 혹은 토대의 영향력에 상부구 조가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대표적인 예로, 영국 문화주의 전통을 수립한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는 정통 마르크스주의가 정 치 경제 체제에 사회주의적 비판을 가한다는 점은 받아들 이지만 문화 현상을 설명하려 할 때 사용하는 토대·상부 구조론과 이 사회구성체론에 근거를 둔 경제결정론은 거 부했다. 윌리엄스는 마르크스와는 달리 결정 문제를 회피 하며 모든 실천들은 그 속에서 상호작용한다는 급진적 상 호작용론을 제시했다. 윌리엄스는 상부구조로서 문화 영 역은 토대를 반영하고 재생산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 했기 때문이다(Williams, 1977). 다른 한편, 마르크스주의 구조주의자인 알튀세르(Althusser, 1972/ 1992)는 사회구 성체는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지닌 정치적·경제적 이데 올로기의 층위로 형성되어 있으며, 이 층위들 각각의 실천 은 상대적인 모순이나 불일치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또 한 특정한 시기에 사회구성체의 다양한 층위에 존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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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모순의 결과가 결합되어 각 층위들은 중층 결정된 다고 보았다. 알튀세르의 관점에서 사회구성체를 구성하 는 각 층위 중층 결정의 존재는 자본주의사회의 어떠한 사 회구성체도 경제적 층위를 기본으로 단순하게 발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종합해 본다면, 문화연구를 수행하는 학자들은 자본주 의 산업사회가 인종·성·세대와 계급 등으로 불평등하 게 분열되어 있다는 비판적인 인식에는 동의한다. 이것은 문화연구가 기본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에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연구는 계급을 축으로 하는 경제적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의존하기보다는 비환원론적 마르크스주의를 모색한다. 따라서 문화연구는 모든 것을 경제로 환원시키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총체성인 사 회구성체론이나 본질주의를 부정한다. 또한 문화연구 진 영에서 시도된 정통 마르크스주의 사회구성체론의 수정 은 아래로부터의 이데올로기적 경쟁과 저항이라는 더 넓 은 사회적 맥락과 지배 세력 안에서 균열과 긴장을 강조하 는 것이다(이효성,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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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마르크스 이데올로기론의 수정 문화연구 진영은 마르크스의 사회구성체론의 수정과 함 께 마르크스가 정립한 허위의식으로서 이데올로기론 역 시 보다 역동적으로 수정·보완하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큰 틀에서 볼 때 영국의 문화주의에서 진행되었고 다른 한 편으로는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와 결합된 구조주의에서 진행되었으며, 1980년대 들어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이 융합해 오늘날 문화연구라고 부르는 연구 전통이 수립되 게 된다. 보다 구체적으로, 영국 문화주의 연구 전통에서 는 이데올로기라는 개념 대신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헤게모니 개념을 확장시켜 문화 현상의 지 배·피지배 구조를 설명하려 시도한다. 그람시는 ‘헤게모 니’ 개념을 끌어들여 이데올로기의 본질과 그 기능에 대해 독창적인 논의를 펼치는데, 그람시의 이데올로기론은 상 부구조의 상대적인 자율성을 중시하며, 지배 이데올로기 는 헤게모니를 통하여 경제적 차원과 비경제적 차원에서 균형을 통해 발현된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그람시가 채 택하고 발전시킨 헤게모니에 의한 사회 지배는 지배 집단 의 지도력에 의해 비경제적 차원인 시민사회를 통해 이루 어지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사회구성들의 암묵적인 ‘합의’를 통한 지배인 것이다(김지운 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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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문화주의를 형성한 윌리엄스는 이러한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을 확장시켜 헤게모니가 전반적인 사회적 과정으로서 문화 개념을 담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즉, 헤게모니란 언제나 하나의 전체적인 과정으로서, 또 포괄 적이고 사회·문화적인 형성물로서, 이것이 실제로 효력 을 지니기 위해서는 그 범위가 실제 사람들이 체험하는 모 든 영역 전체에 상식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Williams, 1977). 다른 한편, 프랑스 구조주의 마르크스주의자인 알튀세 르는 물질·경제적 요인에 근거를 두고 있는 마르크스 이 데올로기론을 비판하고 새로운 이데올로기론을 정립한 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가 마르크스가 생각하는 정적 인 신념 체계로서 허위의식이라는 관점보다는 한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갖고 있는 실천 측면에 주목한다. 즉, 인간 은 이데올로기를 통해 자신이 생각하고 행위하는 방식을 사회 현실과 자연스러운 관계 속에서 내면화해 사회의 지 배 가치나 행위 양식 등에 무의식적으로 편입된다는 것이 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도,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것도 이데올로기의 호명 에 의해 주체화하면서 상식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Althusser,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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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구 전통의 매체 수용 이론 문화연구 진영은 마르크스의 사회구성체론, 이데올로기 론의 수정과 함께 1980년대 이후 매체 수용 이론을 발전 시켰다. 그람시와 윌리엄스의 헤게모니 이론을 기반으로 하는 영국의 문화주의 전통과 구조주의 입장인 알튀세르 의 이데올로기론을 이론적으로 결합시켜 홀(Hall, 1980) 이 발표한 논문인 “텔레비전 담론 속에 부호화와 해독”에 담긴 부호화·해독 모델은 영국의 문화연구에서 커다란 획을 긋는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포함하고 있다. 텔레 비전 프로그램들이 하나의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 다르게 읽힐 수 있는 비교적 열린 텍스트라는 점을 처음으로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홀이 발표한 부 호화·해독 모델은 두 가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는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이 의미의 투쟁 영역으로서는 너무 제한되어 있다는 인식이고, 둘째는 의 미 투쟁의 장이 해독 영역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점을 이 론화한 것이다. 이러한 홀의 부호화·해독 모델은 에코 (Eco, 1966)의 ‘일탈 해독’ 개념을 기반으로 이전까지 관심 영역 밖이었던 ‘해독’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문화연구에 하나의 전환점을 이루게 된다. 즉, 수용자에 대한 새로운 해석학적 시각은 특정 텍스트에 대한 해독된 의미와, 해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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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 사회적 위치에서 비롯된 사회적 경험 사이의 일치 여 부를 탐구하는 작업들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이것은 이전 까지 텍스트의 지배 이데올로기 분석에 연구를 집중시켜 왔던 해석적 연구에서 수용 연구로 방향 전환을 가져오게 된 계기가 되었다(김지운 외, 2011). 이러한 맥락에서, 문화연구 진영에서도 텍스트 안의 불 일치, 모순, 간극을 주장하는 새로운 수용 연구들이 출현 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문화연구는 능동적인 의미 생산 자로서 수용자를 재개념화하면서, 의미는 텍스트와 수용 자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구성된다는 이론적 전제에서 다 양한 수용 이론들이 등장하게 된다.

1980년대 이후 문화연구의 연구 전통들 종합해 본다면, 문화 현상을 설명하는 알튀세르의 이데올 로기론과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은 문화연구를 형성하 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보다 구체적으로 1980년대 이후 문화연구는 이를 바탕으로 몇 가지 중요한 연구 경 향을 보인다. 첫째는 문화가 사회에 대한 인식을 구축해 낸다는 입장에 기반을 둔 연구 경향으로, 문화적 텍스트 의 이데올로기 연구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의 기호학 방법론에 입각한 연구들,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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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에 의존 한 연구들이 여기에 속한다. 둘째, 문화와 사회는 경험으 로 매개된다는 입장에 기반을 둔 해석학적 범주에 들어가 는 연구 경향이 있다. 셋째, 문화가 사회를 경험하는 방식 자체를 제조해 낸다는 입장에 기반을 둔 연구 경향으로, 이는 문화의 이데올로기 성격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 라 그 이데올로기 체계를 경험된 것으로 생산해 내는 방식 자체에 더욱 중요성을 부여한다. 후기구조주의의 주체 구 성 이론적 시각과 문화주의적 연구 중 주체의 접합 이론 등이 여기에 속한다(박명진, 1989). 이러한 연구 경향에 더해 피스크(Fiske, 1987)가 주도하는 능동적 수용자론에 입각한 다양한 수용 연구들이 문화연구에 출현했고, 2000 년대에 들어서면서 소셜 네트워크가 만드는 문화 현상에 상당한 연구가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미디어 정치경제학자들의 문화연구 비판 문화연구의 수정주의 연구 전통에 대해, 미디어 정치경제 학자들이 문화연구에 가하는 중요한 비판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문화연구는 미디어의 텍스트 해석에서 수용 자들이 언제나 능동적이고, 미디어의 텍스트들은 다의적 이고 여러 유형의 해독이 가능하다는 가정을 견지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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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데, 미디어 텍스트의 다의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텍스트의 의미 해석에서 수용자들이 행하는 해독의 기여도는 광대한 반면, 미디어의 영향력은 상대적 으로 약해진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Curran, 1990; Corner, 1991; 김지운 외, 2011). 둘째, 미디어 정치 경제학은 거시 사회적인 권력 구조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그에 적절한 방법론을 개발해 온 데 반해, 문화연구는 사 회적 권력 구조에 대해 그에 비견할 정도의 주의를 경주하 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Mosco, 1996). 셋째, 문화연 구는 문화적 산물이 생산되는 제도적 맥락에는 거의 관심 을 기울여 오지 않았다고 비판한다(Curran et al., 1996). 사실상 문화연구는 문화 생산의 측면보다는 문화 소비에, 즉 문화 생산의 노동보다는 문화의 레저 관행에 절대 중점 을 둠으로써 문화연구는 문화 산물의 소비 자유를 과장해 왔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화연구는 어떤 집단 이 어떤 기사들을 제작 전달하고 어떤 의미들을 생산·유 포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가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디어 정치경제학자들은 이 런 과정을 분석해야 문화의 생산과 소비에 얽힌 권력관계 를 이해할 수 있고, 나아가 문화와 보다 폭넓은 지배 구조 사이의 상관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Garn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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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김지운 외, 2011). 결론적으로 문화연구자들은 미디어 정치경제학자들에 의해 대중문화 현상과 행위에 대한 설명을 역사·정치경 제학적 맥락에서 이론적으로 위치시키는 데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대중문화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접근 방식은 생산에 대한 연구가 분석의 시작이지 최종 결과가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고, 경제환원론적 결정 문제 역 시 보다 개방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문화연구는 생산 차원의 연구와 접목해 사회 구조적 차원에서 변화의 문제에 좀 더 개입할 필요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화연구 개념 선정 이유 이 글에서 선택한 문화연구의 개념들은 지금까지 기술한 것처럼 문화연구가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가정들을 수정 하면서 발전시켜 왔던 연구들을 이해하기 위해 핵심적인 것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화연구의 핵심인 문화의 장 에서 의미 투쟁을 분석하기 위해 적용하고 있는 ‘이데올로 기’, ‘헤게모니’, ‘텍스트’, ‘담론’, ‘접합’, ‘능동적 수동자’, ‘문 화정치’, ‘민속지학적 수용자 연구’ 개념들이 선정되었다. 이와 함께 문화연구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탈식민주의’, 그리고 문화연구의 영역을 포괄적으로 정리한 ‘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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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연구 영역’이 10개의 핵심 개념에 포함되었다.

참고문헌 김지운 · 방정배 · 정재철 · 김승수 · 이기형(2011). 󰡔비판커뮤니케이션: 비판이론 · 정치경제 · 문화연구󰡕.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박명진(1989). 󰡔비판적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성과와 그 쟁점󰡕. 서울: 서강대학교 언론문화 연구소. 이효성(1992). 비판언론학의 새로운 성찰을 위해서. ‘포스트’시대의 비판언론학. 14∼45쪽. 임영호 편역(1997). 󰡔스튜어트 홀의 문화 이론󰡕. 서울: 한나래. Althusser, L.(1969). For Marx. London: Penguin Press. Althusser, L.(1971). “On Ideology and Ideological State Apparatuses”, Lenin and Philosophy and Other Essays.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Althusser, L.(1991). “On Marx and Freud.” trans. Montag, Warren, Rethinking Marxism 4: 1. Althusser, L.(1992). “Contradiction and Overdetermination”, 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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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es and Communication(Hanual Publis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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