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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xpression of the Emotions in Man and Animals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머리말

오랫동안 표정(expression)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 왔지 만1), 대부분은 관상학(physiognomy)에 초점이 맞추어졌 다. 관상학은 영구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얼굴의 특징을 인 지하는 학문 분야다. 나는 관상학이 다루는 여러 주제에 대 해서는 크게 흥미가 없다. 관상학에 관한 책자나 논문들도 나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2) 프랑스의 화가였던 르브룅 (Le Brun)의 ≪강연(Conferences)≫은 1667년에 출간되었 으며 관상학에 관해 가장 잘 알려진 책 중의 하나다.3) 이 책

1) 존 불워(John Bulwer)의 ≪Pathomyotomia≫, 1649. 다양한 표정에 대한 풍부한 묘사를 찾아볼 수 있다. 근육의 움직임과 관련해서는 투크 박사(D. Hack Tuke)의 ≪신체에 미치는 정신의 효과(Influence of the mind upon the body)≫, 2판, 1884, 1권 232쪽 참고. 베이컨은 여기에 ‘몸짓의 원리, 신 체의 움직임과 해석’에 대한 글이 추가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2) 파슨스(J. Parsons)는 1746년 발간된 ≪철학 회보(Philosophical Transactions)≫의 부록 41쪽에 실린 그의 논문에서 표정에 관해 언급했던 저자들 41명의 명단을 제시했다. 3) 1667년 발표된 ≪감정의 다양한 표현에 관한 강연(Conferences sur l'expression des differents Caracteres des Passions)≫, 1820년 모로 (Moreau)에 의해 편집된 라바터(Lavater) 판, 9권 257쪽에 재발간된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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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내용 중에는 몇 가지 쓸 만한 것들이 있다. 그 뒤로 네덜 란드의 해부학자인 캄페르(Camper)가 1774~1782년 사이 에 저술한 비교적 오래된 수필집인 ≪연설(Discours)≫은4) 르브룅의 ≪강연≫에서 내용이 거의 한 발짝도 더 나아가 지 않았다. 그렇지만 다음의 책들은 충분히 고려할 만한 가 치가 있다. 생리학의 걸출한 발견을 다루고 있는 ≪표정의 생리학 과 해부학≫은 찰스 벨(Charles Bell) 경이 쓴 것이며5), 1806년에 초판이 1844년에 3판이 출판되었다. 벨 경에 이 르러서야 비로소 과학의 한 분야로 생리학의 토대가 마련되 었을 뿐 아니라, 과학다운 구조도 새롭게 구축되었다. 벨의 연구는 모든 측면이 흥미롭다. 그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묘사했다. 또한 표정의 움직임과 호흡의 긴밀한 관계를 제시한 것으로 정평이 높다. 한 예를 들어보자. 일견 사소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눈 주위의 근육

연(Conferences)≫을 항상 인용했다. 4) ≪다양한 감정 표현의 방법에 관한 피에르 캄페르의 강연(Discours par Pierre Camper sur le moyen de representer les diverses passions)≫, 1792. 5) 나는 주로 세 번째 판을 인용하는데 이 책은 벨의 사후인 1844년에 출판되 었으며 그의 최후 수정 내용이 담겨 있다. 1판은 1806년에 발간되었으나 질 이 좀 떨어지고 그의 주요한 견해가 누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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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의식적으로 수축되는 것은 격렬한 호흡에 동반되는 혈 압의 상승으로부터 예민한 눈을 보호하기 위한 동작이라는 것이다. 위트레흐트(Utrecht) 박사의 협조를 받아 나는 이 와 같은 사실을 면밀하게 조사했다. 앞으로 계속 살펴보겠 지만 눈 주위 근육의 수축은 인간 표정의 다양한 양상을 이 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벨의 책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외국의 몇몇 저술 가들은 그의 책을 무시했거나 평가절하했다. 반대로 르무 안(Lemoine)은6) 벨 경의 저작에 흠뻑 빠져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찰스 벨의 저서는 철학자이건 예술가이건 인간의 얼굴 에 육성을 불어넣을 작정인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열심 히 읽어야 한다. 미학의 전범으로서 그 빛이 비추는 곳은 물리학과 도덕이 만나는 과학의 금자탑이다.

앞으로 살펴볼 몇 가지 이유 때문에 벨은 그의 견해를 피 력하는 데 만족했으며 다양한 표정의 근저를 끝까지 추적하

6) 알베르 르무안(Albert Lemoine), ≪관상학과 말씨(De la Physionomie et de la parole)≫, 1865, 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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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았다. 다른 감정을 표현하는 데 왜 서로 다른 근육을 움직이는지, 예컨대 근심이 가득 차거나 슬플 때 눈썹 안쪽 이 올라가거나 입 가장자리가 처지는 이유를 설명하려 들지 않았던 것이다. 1807년 모로(Moreau)는 라바터의 ≪관상학≫을7) 편집 하면서 그의 논문을 몇 편 끼워 넣었다. 여기에도 안면 근 육의 움직임에 관한 훌륭한 묘사가 발견된다. 그러나 그는 이 주제의 철학적 의미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

7) ≪인간을 이해하는 기술(L'Art de connaitre les Hommes)≫, G. Lavater. 총 10권으로 발행된 1820년 판 책의 서문에 모로가 관찰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 책의 초판은 1807년에 출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실 은 1권의 시작 부분인 “라바터에 대한 이해(Notice sur Lavater)” 편이 1806 년 4월 13일 기술된 것으로 나타나 있기 때문에 의심할 여지가 없는 듯하다. 몇몇 문헌에는 1805~1809년 사이에 발간되었다는 기록이 나타나기는 하지 만 1805년은 맞지 않는다. 한편 뒤센 박사는 1862년 발간된 ≪관상학의 메 커니즘(Mecanisme de la Physionomie Humaine)≫ 및 ≪일반 의학 (Archives générales de médecine)≫에서 모로의 귀중한 논문집 ≪A compose pour son ouvrage un article important≫이 1805년에 출판되었 다고 주장했다. 1820년 판 1권에는 1806년 4월 13일 이외에 1806년 1월 5 일, 1805년 12월 12일의 날짜들이 등장하는 글들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이 논문들이 1805년에 쓰인 것으로 보고 뒤센 박사는 1806년 출판한 벨보다 모 로에게 우선권을 주었다. 이 같은 과학적 업적의 우선권 결정 문제가 논란 이 되는 것은 드문 예이나 그들의 업적 평가의 비교에서는 그다지 중요한 영 향을 주지 않는다. 위에서 인용한 모로 및 르브룅의 견해는 1820년 라바터 판 6권 8쪽, 9권 279쪽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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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예를 들면, 모로는 얼굴을 찌푸리는 행위, 즉 프랑스 작 가들이 주름 근육이라고 말하는 눈썹주름근(Corrugator supercilli)의 움직임을 이렇게 묘사했다. “이러한 찌푸린 표 정은 괴로울 때 혹은 정신을 집중할 때 가장 분명히 표현되 는 얼굴의 움직임이다.” 그리고 이 근육이 어디에 위치하고 어떤 근육과 연결되는지 설명을 덧붙였다.

억압적이거나 심오한 열정의 특징으로서 얼굴에 응축된 표정은 유기체로 하여금 근육을 수축하거나 움츠리게 만든다. 마치 압박을 줄인다거나 얼굴의 좁은 부분에서 만 놀람이나 불편한 감정을 숨죽여 표현하기라도 하는 듯이.

그러나 다양한 표정의 기원과 의미를 설명하고자 하는 순간 모로는 내 견해와 다른 길로 접어든다. 1667년에 르브 룅이 공포에 대해 언급한 아래의 문단을 보면 모로의 견해 가 철학적으로 조금 진보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쪽은 올리고 다른 쪽은 내릴 때, 올라간 눈썹은 뇌와 연결되어 악마로부터 그것을 지키려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반면에 낮아지는 쪽 눈썹은 부은 것처럼 보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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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뇌로부터 정령이 흘러내려와 두려움을 끼치는 악 마로부터 뇌를 보호하려는 것 같다. 피가 한꺼번에 몰려 심장에 압박이 가해지면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숨을 쉬 기 위해서다. 입을 크게 벌리면 목소리를 내는 기관에서 분명치 않은 소리가 들린다. 근육이나 정맥이 부풀어 올 랐다면, 뇌에서 정령을 보내지 않고는 그런 일이 일어날 까닭이 없다.

위 문장은 당찮은 말의 놀라운 표본으로 인용할 만하다. 버제스 박사의 ≪안면 홍조의 기전 혹은 생리학≫은 1839년에 출판되었다. 이 부분은 13장에서 간혹 인용할 것 이다. ≪인간 표정의 기전(Mechanism de la Physionomie Humaine)≫은 뒤센(Duchenne) 박사가 1839년에 2절판, 8 절판 두 종류로 출간했다. 특이하게도 그는 전기적 자극에 의한 안면 근육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이를 수많은 사진에 담았다. 뒤센은 내가 필요한 것이라면 자기가 찍은 어떤 사 진이라도 사용하도록 허락했다. 프랑스에서 그에 대한 평 가는 엇갈렸다. 어쨌거나 뒤센 박사는 어떤 표정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단일 근육이 수축되어야 한다고 보았지만, 이는 좀 과장된 것이다. 헨레(Henle)의 해부도에서처럼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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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아는 한, 그런 근육 들이 각기 독자적으로 작동할 가능성은 사실상 매우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센 박사가 나중에 자신의 오류를 눈치 챈 것은 자명해 보인다. 그가 전기 자극을 통해 손의 근육 생리학을 성공적으로 밝혀낸 것을 보면 말이다. 안면 근육 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그는 대체로 올바른 입장을 취했다. 내 생각에 뒤센 박사는 전기 자극을 이용하여 표정의 움직 임을 설명하는 데 커다란 진보를 이룩했다. 지금까지 아무 도 안면 근육의 세세한 움직임이나 피부에 잡힌 주름에 대 해 연구한 적이 없었다. 또한 그는 의식적으로 조절하기 힘 든 안면 근육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도 밝혔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뒤센은 어떤 감정을 표현할 때 특정 근육이 수축되지만 왜 다른 근육은 그렇지 않은지를 이론적 으로 따지는 일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저명한 프랑스의 해부학자인 피에르 그라티올레(Pierre Gratiolet)가 소르본대학에서 수행한 ‘표정’에 관한 강의 내용 은 나중에 그가 죽은 후, 1865년에 ≪표정의 움직임과 생리 학(De la Physionomie et des Mouvements d’Expression)≫

8) ≪인체 해부학 개요(Handbuch der Systematischen Anatomie des Menschen)≫, Band Ⅰ, Dritte Abtheilung,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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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매우 흥미롭고 귀중한 관찰 결과로 가득하다. 그의 이론은 다소 복잡하지만 다음의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

감각이나 상상력 혹은 사고는 (그것들이 고양된 형태로 드러나게 된다면) 그에 상응하는 감정 없이 작동될 수 없 다. 이러한 감정은 직접적으로, 동조적으로, 상징적으로 혹은 은유적으로 육체의 외부 기관에 전달된다. 외부 기 관은 나름대로 자신의 작동 기제가 있다.

그라티올레는 유전된 습관, 그리고 어느 정도는 개인의 습관에 대해 간과했다. 내가 보기에 그는 바로 그런 이유 때 문에 여러 가지 종류의 몸짓이나 표정을 바르게 설명하지 못했거나 전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라티올레는 상징적 행 동의 한 가지 예로 당구 치는 사람을 언급했다.

당구공이 치는 방향에서 조금 빗나가면 그 선수는 머리 나 어깨를 써서 그 방향을 되잡으려는 듯한 몸짓을 취한 다. 비록 상징적인 동작이어서 절대로 공의 경로를 바꿀 수 없는 경우라도 말이다. 초보자의 그런 몸짓은 동작이 매우 커서 보는 사람들의 미소를 절로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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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동작은 내가 보기에 단순한 습관이다. 물건을 한 쪽으로 옮기고자 할 때 사람들은 흔히 물건을 그 방향으로 밀어낸다. 앞쪽으로 옮길 작정이면, 앞으로 밀어 둔다. 물건 을 잡아 두려고 하면 보통 뒤쪽으로 잡아당긴다. 따라서 자 기의 공이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보통 그 방향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것들은 회피할 수 없는 인간의 행동 방식이다. 그 방식은 오랜 습관이고 그것이 지 시하는 방향으로 거의 무의식적으로 수행된다. 근육이 서로 동조해(sympathetic) 움직이는 경우에 대해 그라티올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쫑긋한 귀를 가진 어린 개가 저 멀리서 주인이 먹음직스 런 고깃덩이처럼 보이는 것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본다면, 시선을 고정하고 주인의 모든 움직임을 주시할 것이다. 눈의 움직임처럼 귀도 마치 무슨 소리라도 들으려는 듯 이 꼿꼿이 세운다.

여러 세대를 거치는 동안 개들은 어떤 물체를 골똘히 쳐 다보고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쫑긋 세웠다. 또는 반대 로 어떤 소리가 들리면 그 방향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이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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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귀와 눈, 두 기관은 오랜 습관을 통해 확고하게 서로 연 합해서 움직이게 되었다고 믿는 편이 귀와 눈이 원래 동조 하는 기관이라고 단정하는 것보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1859년에 발간된 ≪표정≫에 관한 피데릿(Piderit) 박사 의 논문은 내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 뒤에 이어진 그라티 올레 연구의 핵심 내용이 이미 다 들어 있었다. 1867년에 피 데릿은 ≪표정과 관상학의 학문적 체계(Wissenschaftliches System der Mimik und Physiognomik)≫를 출간했다. 몇 개 의 문장으로 그의 견해를 다 알 수는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아래의 두 문장을 보자.

표정을 나타내는 근육의 움직임은 부분적으로 가상의 물체 혹은 감각적 인상과 관련이 있다. 이 명제 안에는 표정과 관련된 모든 근육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열쇠가 숨어 있다.

표정의 움직임은 다양하고 운동성 있는 안면 근육의 움 직임 그 자체다. 왜냐하면 근육의 운동을 결정하는 감정 기관(mind organ)의 바로 옆에 신경이 위치하기 때문이 고 이 근육이 감각기관을 보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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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데릿 박사가 벨의 연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격한 웃음은 고통과 본성을 공유하기 때문에 얼굴에 주름이 진다거나, 눈물이 눈을 자극하기 때문에 어린아이의 눈 주 변 근육을 수축시킨다는 말 같은 것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앞으로 내가 때때로 인용할 유익한 내용 들이 산재해 있다. 표정에 관한 짤막한 논문들은 많지만, 여기서 특별히 언 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베인(Bain)의 연구9) 두 가지 는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표정을 감정의 꾸러미 혹은 감정의 한 부분으로 본 다. 표정은 내적인 감정이나 의식이 어떠냐에 따라 몸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흥분시키거나 분산하는 작용을 하는 마음(mind)의 일반적인 법칙이다.

다른 곳에서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기쁨은 생명을 보존하는 기능을 상승시키고 고통은 그

9) ≪감각과 지성(The Senses and the Intellect)≫ 개정판, 1864, 96, 288쪽. 초판의 서문은 1855년 6월에 씌어졌다. 베인의 ≪감정과 의지(Emotions and Will)≫ 2판도 참조하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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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감소시킨다고 하는 원리야말로 표정의 움직임 또 는 몸짓을 상당 부분 설명할 수 있는 근거다.

앞에서 언급한 감정의 분산된 작용 법칙은 그러나 특정 한 어떤 표정을 설명하기에는 다소 부족해 보인다.10) 스펜서는 ≪심리학 원리(Principles of Psychology)≫ 라는 책에서(1855년 출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은 두려움이 크면 그 상황으로부터 숨거나 도망 치기 위해 운다.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떨린다. 이 모두 는 악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다. 파괴적인 감정은 일반적으로 근육의 긴장한 정도에 변화를 일으킨다. 이를 앙다물거나 손톱을 치켜세운다. 눈동자와 콧구멍이 커지고 으르렁거린다. 이 모든 것은 포식자가 피식자를 죽이는 과정에 수반되는 보다 약한 형태의 동작들이다.

10) 베인, ≪감각과 지성≫, 1873, 698쪽. ‘다윈의 표정에 관해’라는 제목의 후 기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다윈은 나의 확산 법칙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것이 특정한 표정에 시사점을 주기에는 너무 일반적인 것 같다’고 했다. 그의 말은 옳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도 모호한 표현을 썼다.” ‘그는 베인(저자 자신)을 비평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라고 쓴 글 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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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에 많은 감정 표현의 저변에 담긴 진실이 있다 고 믿는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에 관한 관심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점은 놀라우리만큼 복잡한 결과를 파헤쳐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말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벨이 말 한 것11)과 비슷한 얘기를 한 사람이 있다. “감정이 밖으로 드러나는 양식은 의식적인 움직임을 필연적으로 동반한 다”는 것이다. 스펜서도 ≪웃음의 생리학(Physiology of Laughter)≫이라는 귀중한 책을 출간했다.12) 이 책에서 그 는 “감정 표현은 습관적인 몸짓으로 표현되는 경향이 있다” 고 주장한다. “어떤 계기에 의해 신경이 과잉 분출되면 그것 은 가장 습관적인 경로를 따라 흐른다. 만약 그 흐름이 충분 히 해소되지 못하면, 그것은 보다 덜 습관적인 행동으로 드 러난다.” 이 법칙은 우리의 주제를 다룰 때 아주 중요한 요 소가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13)

11) ≪표정의 해부학≫, 3판 121쪽. 12) ≪에세이, 과학, 정치학, 사색(Essays, Scientific, Political, and Speculative)≫, 2nd series, 1863, 111쪽. 초판에는 웃음에 관해 언급한 내 용이 들어 있으나 그다지 중요한 내용은 아니다. 13) 스펜서(Herbert Spencer)는 1871년 4월 1일 발간된 격주 평론 ≪Fortnightly Review≫ 426쪽에서 ‘도덕과 윤리적 감정(Morals and Sentiments)’에 대해 또 다른 글을 저술했다. 또한 스펜서는 1872년 발간된 ≪심리학 원리≫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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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원리를 확립하는 데 기여한 스펜서를 제외하면 표정에 관한 글을 남긴 다른 모든 사람들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종이 애초부터 지금과 같은 형태로 존재해 왔다고 확 고하게 믿는 것 같다. 벨에 따르면, 인간의 안면 근육은 “표 정을 나타내는 단순한 도구 이상이 아니라거나”, 표정을 드 러내기 위해 “특별히 마련한” 어떤 것이다.14) 유인원인 원 숭이가 인간과 동일한 안면 근육을 가지고 있다는15) 사실 은 이러한 근육이 온전히 인간의 감정 표현을 위해서만 진 화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도 원숭이가 순 전히 찡그린 표정만을 드러내기 위해 특별한 근육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16) 감정 표현 말고

책의 2판 2권 539쪽에 자신의 최종 결론을 제시했다. 스펜서의 영역을 침해 했다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나의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란 책에 이미 이 책의 일부분을 기술 했다. 표정에 관한 주제로 쓴 내 노트에는 1838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14) ≪표정의 해부학≫, 3판 98, 121, 131쪽. 15) 오웬(Owen) 교수는 그의 논문에서(≪동물학회지 Proc. Zoolog, Soc.≫ 1830, 28쪽) 이것은 오랑우탄의 경우라고 설명하며 인간의 감정 표현에 사 용되는 잘 알려진 중요한 근육에 대해서 설명한다. 매컬리스터 (Macalister) 교수의 ≪자연사 연보(Annals and Magazine of Natural History)≫, vol. vii, May, 1871, 342쪽에 침팬지의 안면 근육에 관한 설명 도 참조하기 바란다. 16) 초판에는 얼굴 찡그리기(grimace)를 ‘무시무시한(hideous)’라고 묘사했 다. 아마도 저자는 ≪아테늄(1872년 11월 9일)≫ 591쪽에 서술된 비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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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안면 근육이 다른 특정한 용도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벨은 인간과 하등 동물의 차이를 극대화하려고 노력했 던 것 같다. 그렇기에 하등 동물은 표정이 없고 단지 의지 혹은 본능의 표출을 위한 단순한 행동 양식이 있을 뿐이라 고 말했다. 그는 한술 더 떠서 동물의 얼굴 근육은 단지 분 노와 두려움만을 표현할 수 있다고도 피력했다.17) 주인을 따르는 개가 귀를 내리고 입술을 올리고 꼬리를 흔들면서 부산 떠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인간이 사랑이나 겸손함을 표현할 수는 없다. 친한 친구를 만난 인간이 지어 보이는 미 소 짓는 눈빛과 웃음기 가득한 볼의 움직임과 달리, 개의 저 런 움직임은 본능이나 의지가 표현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 다. 만약 벨이 개의 애정 표현에 관해 조금이라도 의문을 가 졌더라면, 그는 개의 특별한 본능이 인간 사회에 편입되어 인간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창조되었으리라고 볼 수도 있 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벨은 이러한 주제로 보다 많은 연구 를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근육도 단순히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발달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경험적으로 알았다고 해도 그라티올레가 자

굴복해 수식어를 바꾼 것 같다. 17) ≪표정의 해부학≫, 3판 121, 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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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이론에 진화의 원리를 적용하지는 못한 것 같다.18) 그 는 각각의 종(species)을 서로 고립된 창조물로 보았다. 다 른 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뒤센은 사지의 움직임 에 대해 언급한 다음 얼굴의 표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19)

지혜로운 창조주는(혹은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신의 입김은) 하나의 근육 아니면 여러 종류의 근육을 동시에 움직여 아무리 미세한 것이라 할지라도 감정을 드러내 는 표식을 인간의 얼굴에 직조할 수 있다. 이런 관상학적 언어가 창조되면 그것은 우주적이고 불변하는 표정을 인간 모두에게 부여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은 모두 같은 근육을 이용해서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학자들은 대부분 표정이라는 주제를 설명할 수 없는 어 떤 것으로 여긴다. 따라서 걸출한 생리학자인 뮐러(Müller) 는 “다른 감정을 표현할 때 다른 표정을 짓는 것은 어떤 감 각이 흥분했을 때 특정한 안면 신경이 거기에 발맞추어 작 동된다는 것이지만 왜 그렇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

18) ≪관상학(De la Physionomie)≫ 12, 73쪽. 19) ≪관상학의 메커니즘(Mécanisme de la Physionomie Humaine)≫, 8vo edit,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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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바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20) 인간과 다른 동물들을 서로 격리된, 독립적인 창조물로 보는 한, 표정의 원인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은 다 가설 자리가 없다. 이런 관점을 뒤집어 보면 몇 가지, 아니 모든 것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의 몇 가지 표정, 예 컨대 두려움이 극심하면 머리털이 곤두선다거나, 분노했을 때 이를 드러내는 행동은 과거 어느 시기에 인간이 동물 비 슷한 상태를 거쳐 왔다는 믿음이 없다면 결코 해석할 수 없 다. 유사한 종들 사이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몇몇 표정들, 예 를 들어 사람이나 원숭이가 웃을 때 동일한 안면 근육을 사 용한다는 것은 그들과 우리 인간이 공통 조상으로부터 분기 해 나왔다고 가정할 때만 비로소 의미를 띤다. 모든 동물의 구조와 습성이 점진적으로 진화했다는 관점을 취하면 표정 에 관한 주제가 새롭고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 표정을 연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근육의 움직임은 극히 미세하고 순식간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있는 반면,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지 전혀 알 아차릴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깊은 감동을 느꼈을 때 는 감정이 고조되어 정확한 관찰을 하기 힘들거나 거의 불

20) ≪생리학의 요소(Elements of Physiology)≫, 영문판 2권, 9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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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해진다. 이에 관한 흥미로운 증거를 나는 자주 관찰했 다. 우리의 상상력도 때때로 심각한 판단 착오를 불러올 수 있다. 주변의 자극에 대해 어떤 표정을 기대하면서 이미 그 것이 존재한다고 믿기 쉽기 때문이다. 뒤센 박사는 특정한 감정을 표현할 때 여러 가지 근육이 수축한다는 것을 경험 적으로 알았지만 나중에는 표정의 움직임은 결국 한 가지 근육의 수축에 의해 나타난다고 확신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믿음과는 달리 마음의 어떤 상태 를 표현하기 위해 취하는 몸짓이나 표정의 움직임을 정확하 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째, 어린아이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어린아 이들은 많은 감정을 여과 없이 표현하기 때문이다. 벨은 아 이들은 ‘천진난만’하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면서 ‘순수하게 샘처럼 솟아나는 단순함’을 상실한다고 말했다.21) 둘째는 정신병자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들은 숨길 수 없는 강한 열정을 어쩌지 못하고 표출한다. 나는 그들을 직 접 관찰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렇지만 모즐리 (Maudsley) 박사가 소개해준 크라이튼 브라운(Crichton Browne) 박사를 알게 되었다. 그는 웨이크필드 근처의 정

21) ≪표정의 해부학≫, 3판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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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병원에 근무한 경력이 있고 오랫동안 감정과 표정에 관 한 주제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자신이 소장한 자료와 기록 물을 내게 보내 주었고 적재적소에 적합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에게 진 빚이 많다. 또한 두어 가지 흥미로운 조 언을 준 서섹스 정신 병원의 패트릭 니콜(Patrick Nicol) 씨 에게도 감사드린다. 셋째로 앞에서 언급한 뒤센 박사가 그러했듯이, 전기적 자극을 이용해서 근육의 수축을 관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다. 뒤센은 둔감한 노인의 안면 근육이 전기적 자극에 어떻 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하고 많은 확대 사진 속에 그 결과를 남겼다. 그의 사진을 입수한 다음 나는 남녀노소를 불문하 고 스무 명의 지인들에게 그 사진을 보여 주었다. 물론 아무 런 설명도 덧붙이지 않은 채 사진 속의 인물이 어떤 감정과 표정을 짓고 있는가를 물었다. 그리고 그들의 답변을 그들 의 언어로 기록하게 했다. 어떤 사진에 대해서 그들은 즉각 적으로 대답했지만 그들이 사용한 용어는 다소 제각각이었 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실에 가까울 것이고 나는 이것을 하 나씩 따져 볼 것이다. 한편, 사진 속 몇몇 표정에 대해서는 스무 명의 사람 거의 모두가 다른 답변을 내놓았다. 이는 우 리의 상상력이 얼마나 쉽게 굴절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 주 는 증거다. 처음 설명과 함께 뒤센 박사의 사진을 보았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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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경탄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 전에 설명을 보지 못했더라면 나도 스무 명의 지인들이 보 였던 것과 같은 황당한 불일치를 피해 갈 수 없었을 것이다. 넷째로 나는 인간의 표정을 가까이서 관찰한 위대한 화 가나 조각가의 작품에서 뭔가 도움을 이끌어 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잘 알려진 그림과 조각을 면밀히 살펴봤어도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면, 나는 거기서 거의 도 움을 얻지 못했다. 의심할 바 없이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 하는 자신의 목표를 잊지 않고 있다. 때문에 안면 근육이 왜 곡될 정도로 수축된 표정은 아름다움을 위배한다고 보는 것 같았다.22) 솜씨 있게 빚은 심미적 창조물만이 예술 작품을 채우고 있었다. 그다음으로, 나는 동일한 표정과 몸짓이 세계 곳곳에 정 주하고 있는 다양한 인간 종족에서 보편적으로 드러나는가 를 알고 싶었다. 특히 유럽인의 영향이 적은 지역에서 말이 다. 만약 그들이 어떤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유사한 표정이 나 몸짓을 사용하고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 고 있거나 본능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 습

22) 이 현상에 대한 설명은 로스(W. Ross)가 1836년 번역한 레싱(Lessing)의 ≪라오콘 Laocoon≫, 19쪽에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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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한 표정이나 몸짓은 언어가 그렇듯이 종족에 따라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1867년 초에 나는 설문지를 인쇄해서 여 기저기 돌렸다. 상당히 많은 답변이 회수되어 되돌아와야 했고 그것은 기억이 아닌 실제적인 관찰의 결과물이어야 했 다. 오랜 시간 공들여 작성한 설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놀랄 때 눈과 입이 크게 열리면서 눈썹이 올라가는가? 2. 부끄러울 때 남들이 알아볼 정도로 얼굴이 붉어지는 가? 그렇다면 얼굴의 얼마만큼이 홍조를 띠는가? 3. 화가 났을 때 얼굴을 찡그리고 몸을 바짝 세우며 머리 를 꼿꼿이 들고 주먹을 꽉 쥐는가? 4. 어떤 주제에 골몰할 때 혹은 어려운 문제를 이해하려 고 할 때 얼굴을 찡그리거나 눈꺼풀 아래쪽 피부가 주 름지는가? 5. 의기소침해지면 입술 주변이 처지고 프랑스어로 ‘슬 픈 근육’이라 불리는 근육이 수축되면서 눈썹 안쪽이 올라가는가? 이때 눈썹 안쪽 끝이 조금 부풀어 오르 며 이마의 중앙 부분에 주름이 집중되어 잡힌다. 6. 기분이 좋으면 눈빛이 빛나고 눈 주변과 아래쪽에 주 름이 약간 생기는가? 또 입술 양쪽 끝이 약간 당겨지 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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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다른 사람을 비웃거나 호통칠 때 상대방을 향해 윗입 술의 양끝이 송곳니 위쪽으로 올라가는가? 8. 완고한 표정을 지을 때 입을 다문 채 눈썹을 내리깔고 약간 찡그리는가? 9. 모욕감을 느끼면 입술이 삐죽 나오고 숨이 짧아지면 서 코를 높여 들썩거리는가? 10. 혐오감을 느낄 때, 입에서 뭔가를 뱉거나 토하려 할 때처럼 아랫입술이 내려가고 윗입술은 약간 올라간 채로 숨을 급하게 쉬는가? 11. 극도로 두려움이 커질 때 유럽인들이 그러는 것과 같은 일반적인 표정이 드러나는가? 12. 과도한 웃음 끝에 눈물이 약간 흐르는가? 13. 진퇴양난의 난감한 상황에서 어깨를 움츠린 채 팔꿈 치를 몸 안쪽으로 향하고, 손바닥을 편 채로 바깥쪽 으로 뻗으며 눈썹을 추켜올리는가? 14. 심술 난 아이가 입술을 삐죽거리거나 입술을 뾰족 내미는가? 15. 죄의식, 교활함 혹은 질투심을 드러내는 특별한 표 정이나 몸짓이 있는가? 비록 정의하기 힘든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16. 확신에 차서 긍정할 때 고개를 끄덕이는가? 부정적 일 때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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